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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엥겔스, '독일이데올로기' 중에서

모든 인간 역사의 제 1전제는 당연히, 살아있는 인간 개인들의 생존이다. 그러므로 최초로 확인되어야 할 사실은 이 개인들의 신체적 조직과 이 신체적 조직에 의해서 주어진, 그 밖의 자연과의 관계이다...... 모든 역사 서술은 이 자연적 기초들 및 역사 진행 속에서의 인간들의 행동에 의한 이 자연적 기초들의 변모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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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활동과 육체활동, 향유와 노동, 생산과 소비가 상이한 개인들에게 귀속될 가능성 및 그 현실성까지 분업과 함께 주어져 있기 때문에 이 세 가지 계기, 즉 생산력, 사회적 상태 및 의식이 서로서로 모순에 빠질 수 있으며 모순에 빠질 뿐이라는 결론, 그리고 이들 세 가지 계기가 모순에 빠지지 않을 가능성은 오직 분업이 다시금 지양되는 것에만 놓여져 있다는 하나의 결론을 우리는 이 쓰레기더미 전체로부터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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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분업과 더불어, 서로 교류하고 있는 모든 개인들의 공동 이해와 각 개인 또는 한 가족의 이해 사이의 모순이 주어진다; 더군다나 이 공동이해라는 것은 그저 단순히 관념 속에 '보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현실 속에서, 노동을 분담하고 있는 개개인들의 상호의존성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바로 특수이해와 공동이해 사이의 이러한 모순으로 말미암아 공동이해는 현실의 개인 및 전체 이해에서 분리된 채 국가로서, 그리고 동시에 환상적 공동[체]성으로서 독자적 형태를 취한다. 하지만 이 공동이해가 독자적 형태를 취하는 것은 항상 혈연, 언어, 비교적 큰 규모의 분업 및 그 밖의 이해 - 그리고 특히, 우리가 뒤에서 전개할 것과 같이, 이미 분업에 의해서 조건지어져 있으며, 각각의 그와 같은 인간집단 속에서 자기 분화하며, 그것들 중에서 하나가 다른 모두를 지배하는 바의 계급들의 이해 - 와 같은, 모든 가족 집단 및 종족집단 속에 존재하는 끈들의 실제적 기초 위에서이다.
..... 일반적으로, 보편적인 것은 공동적인 것의 환상적 형태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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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업은, 인간이 자연성장적인 사회에 살고 있는 한, 다라서 특수이해와 공동이해간의 분열이 존재하는 한, 그래서 활동이 자유의지에 의해서 분할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성장적으로 분할되어 있는 한, 인간자신의 활동은 인간에 대해 대립하는 낯선 힘, 인간에 의해 지배되지 않고 인간을 굴복시키는 힘으로 전화한다는 사실에 대한 최초의 실례를 우리들에게 제공한다. 즉 노동이 배분되기 시작하자마자, 모든 개인들은 그들에게 강요되는, 그들이 벗어날 수 없는 특정한 배타적인 활동의 영역을 갖게된다; 그는 한 사람의 사냥꾼이거나 한 사람의 어부, 목동, 비판적 비판가일 뿐이며, 그가 생계수단을 잃지 않으려 한다면 그는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한다 - 반면에 아무도 하나의 배타적인 활동의 영역을 갖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그가 원하는 분야에서 자신을 도야할 수 잇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사회가 전반적 생산을 규제하게 되고, 바로 이를 통하여, 내가 하고 싶은 그대로 오늘은 이 일 내일은 저 일을 하는 것,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고 저녁에는 소를 치며 저녁식사 후에는 비판하면서도 사냥꾼으로도 어부로도 목동으로도 비판가로도 되지 않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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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소외' -철학자들이 이해할 만한 용어로 말하자면- 는 당연히 오직 두 가지 실제적 전제 하에서만 지양될 수 있다. 이 소외가 하나의 '견딜 수 없는' 힘으로 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서 그것에 대항하여 인간이 혁명을 일으키는 그러한 힘으로 되기 위해서는, 이 소외가 완전한 '무산자'로서의 인간개중을 산출하되 이와 동시에 현존하는 부의 그리고 문명의 세계와 모순된 채로 산출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 양 전제는 생산력의 거대한 상승 - 고도의 생산력 발전을 전제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생산력들의 이와 같은 발전 (이와 동시에 이미, 인간의 지역적 현존재에 내포되어 현존하는 경험적 존재를 대신하여 세계사적으로 현존하는 경험적 존재가 주어지는 때)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현실적 전제인데, 왜냐하면 생산력의 발전 없이는 결여가 단지 궁핍만을 일반화할 뿐이고, 따라서 궁핍과 함께 필수품을 둘러싼 투쟁이 다시 시작되지 않을 수 없으며 온갖 해묵은 오물이 다시 발생해야만 될 것이고 나아가 오직 생산력들의 보편적 발전으로서만 비로소 인간의 보편적 교류가 확립되며, 따라서 한편으로는 모든 민족들 속에 '무산자'대중이라는 현상이 동시에 만들어지고 (보편적 경쟁) 각 민족들이 다른 민족들의 변혁에 의존하도록 되어 결국에는 세계사적인, 경험적으로 보편적인 개인들이 지역적 개인들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이것 없이는 1. 공산주의는 단지 하나의 지역성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며, 2. 교류의 힘들 자체로 보편적 힘들, 그리하여 견딜 수 없는 힘들로서 발전할 수 없을 것이고, 향토적·미신적인 '상황'에 머무르고 말 것이며, 그리고 3. 교류의 모든 확장이 지역적 공산주의를 폐지할 것이다. 공산주의는 경험적으로는 오직 주된 민족들의 '일거의' 또는 동시적인 행동으로서만 가능하며, 이는 생산력들의 보편적 발전 및 그와 결부된 세계적 교류를 전제로 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공산주의란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 현실이 이에 의거하여 배열되는 하나의 이상이 아니라,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을 공산주의라고 부른다. 이 운동의 조건들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전제로부터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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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들은, 분명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서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지, 성부르노의 어처구니없는 의미에서나 또는 '유일자'니 '만들어진' 인간이라는 의미에서 자기 스스로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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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건축. 미개인들에게 있어서 각 가족이 자기들의 혈거나 움막을 가진다는 것은 유목인들에게 있어서 각 가족이 별도의 천막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명하다. 이와 같은 분리된 가사경제는 사적 소유의 더한층의 발전에 의해서 더욱 필요하게 될 뿐이다. 농업민족들에게 공동의 가사경제는 공동의 토지 경작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다. 하나의 거대한 진보는 도시들의 건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모든 시기들에 있어서 사적소유의 지양과 분리될 수 없는 분리된 경제의 지양은 그것을 위한 물질적 조선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확실히 불가능했었다. 공동의 가사경제의 창설은 기계의 발전, 자연력들의 이용 및 여타의 많은 생산력들 - 예를 들면 수로들, 가스조명, 증기난방 등등의 발전 및 도시가 농촌의 대립의 지양을 전제한다. 이러한 조건들이 없다면 공동의 경제는 그 자체 다시 새로운 생산력이 되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물질적 토대도 가지지 못하는 것이 될 것이며, 한갓 이론적인 기초 위에 근거하는 것, 즉 하나의 망상인 것이 될 것이며, 단지 수도원 경제로 이끄는 것이 될 뿐이다. - 무엇이 가능했던가는 도시들로의 밀집에서, 그리고 특정의 개별적 목적들을 위한 공동주택 (감옥, 병영 등등)의 건설에서 보여지고 있다. 분리된 경제의 지양이 가족의 지양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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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개인들은 단지 그들이 다른 한 계급에 대항하여 공동의 투쟁을 수행해야만 하는 한에서만 하나의 계급을 형성한다; 그 밖의 경우에 경쟁 속에서는 개인들 자신이 다시 서로 적대적으로 대립한다. 다른 한편 계급은 개인들에 대해서 다시 자립적인 것으로 되어서, 그 결과 개인들의 이러한 생활조건들은 예정되어 있는 것으로 존재하게 되고, 그 생활상의 지위 및 그와 동시에 그들의 인격적 발전이 계급에 의해서 지시 받게 되며; 계급아래 포섭되게 된다. 이러한 일들은 개별적 개인들이 분업 아래로 포섭되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며, 오로지 사적 소유 및 노동 그 자체의 지양을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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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 개인들의 자유로운 발전과 운동의 조건들은 우연에 맡겨져 있었으며, 각각의 개인들에 대해서 자립적인 것들로 되었는데, 이는 바로 개인들의 개인들로서의 분리 때문이고, 분업과 함께 주어진 불가피한 연합, 즉 개인들의 분리에 의해 그들에게 낯선 결박이 되어 버린 불가피한 연합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연합은 예를 들면 「사회 계약」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자의적인 연합이 아니었고, 개인들이 우연성을 만끽하는 그러한 조건들에 관한 불가피한 연합 (예를 들면 북아메리카의 국가의 형성과 남아메리카의 공화국들을 비교해 보라)이었다. 특정의 조건들 안에서 방해받지 않고 그러한 우연성을 즐길 이와 같은 권리를 사람들은 지금까지 인격적 자유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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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대적 사적 소유에 조응하는 것이 현재 국가인데, 이 현대국가는 조세로 인해 점차적으로 사적 소유자들에 의해 매수되고 국채제도로 인해 사적 소유자들의 수중에 떨어져서, 그 존립은 증권거래소에서의 국채 증권의 동작 속에서 사적 소유자들, 즉 부르조아들이 국가에 부여하는 상업적 신용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부르조아지는 그들이 바로 더 이상 하나의 신분이지 않고 하나의 계급인 까닭에, 더 이상 지방적으로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자신을 조직하지 않을 수 없게되고 그들의 평균적 이해에 보편적 형식을 부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공동체로부터의 사적 소유의 해방을 통해서 국가는 시민사회와 나란히 있는, 그리고 시민사회 바깥에 있는 특수한 존재로 되었다. 그러나 국가는 부르조아지들이 그들의 소유 및 그들의 이익을 상호보장하기 위하여 대외적으로도 대내적으로도 필요로 하게 된 조직의 형태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맑스, 엥겔스, '독일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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