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에릭 홉스봄 - 자본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오직 이러한 도전세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일시적이고 기묘한 동맹만이 민주주의를 구했다. 히틀러 독일에 대한 승리는 기본적으로 적군(赤軍, Red Army)에 의해서 쟁취된 것이 있고, 오직 적군에 의해서만 쟁취될 수 있었던 것이다. 파시즘에 맞선 자본주의-공산주의 동맹의 이 시기 - 기본적으로 1930~40년대 -는 여러 점에서 20세기사의 중심이자 결정적인 시기이다. 여러 점에서 그 시기는 세기 대부분 동안 - 짧았던 반(反) 파시즘 시기를 제외하고는 - 화해 할 수 없는 적대적 상태였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관계로 볼 때 역사적인 역설의 시기이다. 제1차 세계대전시 러시아의 차르체제 경제의 성과와 제2차 세계대전시 소련 경제의 성과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듯이(Gatrell/Harrison, 1993), 히틀러에 대한 소련의 승리는 10월 혁명으로 소련에 수립된 체제의 성과였다(Gatrell/Harrison, 1993). 그러한 승리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미국 바깥의) 서방세계는 아마도 자유주의적 의회주의라는 테마의 변주곡들보다는 권위주의적, 파스스트적 테마의 변주곡들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전세계 자본주의의 전복을 목표로 하는 10월 혁명의 가장 지속적인 결과가, 전쟁에서나 평화에서나 -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자신의 적대자들에게 자극과 공포를 줌으로써 그들 자신을 개혁시키고, 경제계획의 인기를 확립하여 그들에게 개혁절차들 중 일부를 제공해줌으로써 - 자신의 적대자들을 구한 것이었다는 점은 이 기묘한 세기의 아이러니들 중 하나이다.
......
그러나 이제는 되돌아봄으로써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세계적 도전이 보인 위력은 상대가 약한 데에 기인한 것이었다. 파국의 시대에 19세기 부르조아 사회가 붕괴하지 않았더라면 10월 혁명도, 소련도 없었을 것이다. 파산한 유라시아 폐선(廢船) 농업국인 전(前)차르 제국에서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급조된 경제체제는, 자신을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현실적인 세계적 대안으로 간주하려 하지도 않았고 다른 곳에서 그렇게 간주되지도 않았다. 그 경제체제가 그러한 대안으로 보이게 된 것은 1930년대 대공황 덕분이었고, 소련이 히틀러를 패배시키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도구가 되고 그럼으로써 양대 초강대국 - 그 두 나라의 대립이 단기 20세기 후반을 지배하고 떨게 했던 동시에 (이 또한 지금에 와서 알 수 있듯이) 여러 점에서 그 시기의 정치구조를 안정시켰다 -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파시즘의 도전 덕분이었다.
-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 에릭 홉스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