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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라는 이름은 익숙한데 이 감독이 만든 영화는 처음인 것 같다.
유명한 감독의 영화를 볼 때면 기대수준이 높아서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셔터 아일랜드’는 왜 이 감독을 거장이라고 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영화였다.
고립된 섬에 사건을 해결하러 가서 그 섬의 비밀을 파 해치는 과정에서 그 섬에 갇혀 버린다는 식의 이야기는 가끔 등장하는 영화 소재이다.
진부하지는 않지만 신선하지도 않은 이런 소재를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연출력은 정말 대단했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면서 과거의 기억이 오버랩 되는 방식 역시 몇몇 영화에서 시도된 방식이지만, 기존의 영화적 법칙을 넘어서는 능력 또한 놀라웠다.
1954년이라는 시대적 배경, 수용소라는 밀폐된 공간, 비밀을 감추기 위한 강한 억압적 분위기 등이 영화를 지나치게 칙칙하고 무겁게 만들 수 있었지만, 칙칙하지 않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긴장 속에 섞여지는 환영은 무거움을 걷어내는 역할을 충분히 했다.
특히, 긴장을 높여주기도 하고 풀어주기도 하는 음악의 튀지 않는 사용은 가장 인상적이었다.
감독의 연출력을 뒷받침 해주는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주기에 충분했다.
메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던 시기 미국이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그 시대적 배경에 적극적으로 맞서지 않으면서도 그 시대를 얘기한다.
폭력의 광기가 몰아치는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폭력의 광기에 공범이 될 것을 요구받는다.
공범이 되길 거부하며 정의감으로 불탄 채 진실을 찾아 헤매보지만, 광기를 뒷받침하는 거대한 시스템을 확인하고, 결국 그 시스템의 포로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그 시대였고, 그 나라였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무엇이 환상이고 현실이지 분간할 수가 없다.
논리적 일관성과 과학적 추론으로 접근하려던 노력은 광기와 시스템 속에서 방향을 상실한다.
모든 사람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기억과 환상마저도 의심하게 된다.
단 하나, 의심 할 수 없이 명확한 것은 그 섬을 빠져나올 수 없다는 점뿐이다.
감독은 50여 년 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지금의 미국을 얘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광기가 사라지기는 고사하고, 더욱 세련된 형태로 계속 살아 움직이는 미국!
거대한 수용소로 변해버린 닫힌 섬 미국!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섬으로서 나는 주인공과 달리 그 닫힌 섬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해봤다.
영화 속의 사람들 중에 누가 진실을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진실은 뭐지?
헤어 나오지 못할 만큼 복잡한 미로는 아니지만, 해석하지 못할 만큼 복잡한 구조인 것은 확실했다.
환영과 현실을 오가면서 둘을 합쳐보려고 했던 연출력의 과잉이었든지...
기억마저 조작되고 통제되는 시스템을 보여주려고 했던 철학의 과잉이었든지...
노엄 촘스키의 책을 읽고 나서 드는 느낌과 비슷했다.
제국주의 심장부에서 매우 격렬하게 제국주의를 비판하지만 왠지 허무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촘스키와 스콜세지는 그 셔터 아일랜드에 갇혀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벋어나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쉽게 벋어날 수 없는 닫힌 섬에서 느끼는 비판적 지식인의 고뇌일까?
섬에서 나고 자란 나는 고립과 폐쇄의 이미지로 섬이 다뤄지는 것이 매우 불변하다.
62년 전 이곳 제주 사람들도 고립과 폐쇄의 공포를 경험했다.
그리고 수 십 년을 이어온 억압과 통제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제주는 완전한 셔터 아일랜드가 아니었다.
제주로의 진압을 거부했던 군인들이 여수에서 반란을 일으키며 고립과 폐쇄에 저항했고, 수 십 년의 억압과 통제 속에서도 사람들은 다시 기억을 들춰내 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래서 제주의 4.3은 억압과 통제 속에 감춰지지 않았고, 제주는 고립과 폐쇄 속의 셔터 아일랜드가 아니게 됐다.
영화를 보고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 붙여져 있는 ‘4.3 62주기 추모공연 포스터’를 보면서 생각했다.
셔터 아일랜드에서 쉽게 벋어나지 못하는 미국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한가?
셔터 아일랜드이기를 거부하며 해군기지 반대를 위해 투쟁하는 제주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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