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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 햇살이 더 서럽다.

창가에 앉아 해를 맞으며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해가 따뜻해서 햇빛은 참 좋은 거라고..그리고 이제 봄이니 참 좋은 시절이라고 혼자 생각하며 지긋이 눈을 감고 급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그러다 참세상 기사를 읽었다.

 

모든 사람이 맘편히 봄을 맞이 했으면 좋겠다. 

 

 

[김진숙] 부지매 집회 : 봄이 오면 뭐가 제일 하고 싶으세요?

http://www.newscham.net/news/trackback.php?board=newsers_news&id=266



[김진숙] 2월 23일 부산지하철 매표 해고노동자 집회 연설문


대티역엘 갔었습니다. 스물아홉 구혜영의 자존심과 맏이로서의 생존이 풍족하진 않으나 소박하게 이어지던 곳. 괴정역엘 갔었습니다. 스물여섯 황이라의 미래와 꿈이 물결처럼 일렁이던 곳. 그러나 지금..그들은 거기 없습니다. 한평도 안되는 공간이었으나 그들의 생존이 이어지고 그리고 꿈이 넘실거리던 그곳엔 암전처럼 불이 꺼지고 그들은 지금..서른,스물일곱이 되어 시청앞 찢긴 깃발처럼 나부끼는 천막에 영치되어 있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흔들리는 천막보다 더 불안스레 흔들리며 그곳에서 가을을 보냈고 한겨울의 들판을 바람막이 하나없는 맨몸뚱아리로 지들끼리 일으켜주고 지들끼리 눈물 닦아주며 꾸역꾸역 건너왔습니다.

비정규직이 뭔지도 몰랐다던 그들은 얼마나 어리석었던 걸까요. 지하철에 입사했다고 그렇게 좋아라 했다던 그들은 얼마나 순진했던 걸까요. 정성 다해 다리고 주름잡은 유니폼이 행여 구겨질세라 품에 안기조차 조심스러웠을 첫 출근. 새벽 4시.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분주히 동동거렸던 그 벅찬 설렘은 얼마나 가당찮았던 걸까요. 지하철에서 일하면 지하철 직원이라 믿었다던 그들은 도대체 얼마나 바보였던 걸까요. 그 가당찮은 설렘과 어리석음의 댓가는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하다못해 종이쪼가리 한 장없이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는 한 마디에 모멸감을 느낄 사이도 없이 그들은 버려졌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럴 수는 없는건데..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게 되는 불면의 밤들이 무수히 이어지고 골백번을 생각해도 그렇게 쓰레기처럼 버려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손님한테 이유없이 상소리를 들었던 새해 첫날의 새벽도 이렇게 무참하진 않았습니다. 정규직이 하던 일을 하면서도 절반도 안되는 첫월급을 받아들던 날도 이렇게 억울하진 않았습니다. 같은 역에 일하면서도 정규직 선배들과는 스스럼없이 어울리기 힘든 보이지 않는 벽앞에서도 이렇게 절망하진 않았습니다.

꿈을 짓밟히고, 밥먹고 잠자고 화장실가는 일상마저 짓밟히고. 100만원의 월급중 70만원은 부모님 드리고 10만원은 적금넣고 10만원은 보험넣고 10만원은 용돈이었던 그 눈물겹던 생존마저 참담히 짓밟혔으나..차마 자존감마저 내버릴 순 없었던 그들은 바람불고 비마저 내리는 날.찢겨져 뒹구는 포스터처럼 젖어들기만 하던 스물몇살,서른 두어살의 생애를 말릴 유일한 방편으로 기어이 청춘과 꿈과 존재를 영치할 천막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곳에서야 자신들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알았고,1300만 노동자 중에 860만이 비정규직이라면 나 아닌 누군가는 이 자릴 채울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도 알았고,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심지어는 자신에게도 납득시킬 수 없었던 날벼락같던 해고의 이유도 알게 됐습니다. 부모님으로 부터도 선생님으로 부터도 배울 수 없었던 진실들이 있음도 알았고,노동자는 저항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는 사실도 구르고 채이며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이기 이전에 이미 누군가의 딸이고 아들이고 엄마이고 아빠였던,그들도 우리처럼 거창하진 않으나 꿈꾸었던 겁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아침이면 어딘가로 출근하는 꿈. 그들도 우리처럼 저녁이면 된장찌게 끓는 밥상앞에 둘러앉는 꿈. 그들도 우리처럼 지하철에 다니는 게 자랑스러운 꿈. 그들도 우리처럼 일한만큼 댓가받고 땀 흘린만큼 인정받는 꿈. 그러나..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요. 수백 번도 더 꿈꾸었으나 수백 번도 더 그 꿈으로 부터 배신당해 온 그들은 도대체 뭘 잘못했던 걸까요.

인파로 북적이는 출근시간의 번잡한 지하철 안에서도 이 사람들은 다 어딘가로 출근할 데가 있는 사람들이구나.아침마다 외로웠던 사람들. 166일이나 됐으면 이제 익숙해질만도 하련만 이 외로움은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습니다. 매일 아침 천막 앞에 설 때마다 한숨 부터 쉬게되는 사람들. 84일이나 됐으면 친숙해질만도 하련만 이 막막함은 여전히 낯설기만 합니다. 퇴근선전전을 할 때 바쁜 걸음으로 퇴근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녁 노을보다 더 서러워지는 사람들. 듣도 보도 못한 점거농성이란 것도 해보고,난생처음 경찰들과 싸움도 해보고,하늘같은 시장님 체어맨 앞에 드러누워도 보고,천막도 쳐보고..

가을도 거기서 보냈고, 겨울도 거기서 보냈고,추석도 거기서 보냈고,연말연시도 거기서 보냈고,설도 거기서 보냈고,생일도 거기서 보냈는데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겁니까. 시청,공단,한나라당 그 완강한 시멘트 벽들을 향해 얼마나 더 외쳐야 합니까. 출근하는 사람들,퇴근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이 고통스런 시간들을 얼마나 더 견뎌내야 하는 겁니까. 가슴에서 시시각각 황소바람이 이는 이 황량한 벌판에 얼마나 더 서있어야 합니까. 불안함으로 저절로 눈이 떠지는 이 모진 새벽들을 얼마나 더 참아내야 끝이 난단 말입니까.

그러나..정작 참으로 견디기 힘든 건,사람에게서 받게 되는 상처일겁니다. 한 번도 미워한 적이 없는 사람들로 부터 영문도 모른 채 받아야 했던 상처. 고스란히 듣기만 할 뿐 한 마디도 되돌려줄 수 없는 상처들.. 밤 12시가 넘으면 화장실을 찾아 헤매야 하는 불편보다, 밤마다 고막을 찢는 폭주족의 굉음보다 더 광폭하게 가슴에 바퀴자국을 남기곤 하던 상처들...

정규직의 적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자본입니다. 우리가 맞짱을 떠야할 건 약자가 아니라 구조조정이라는 사시미 칼을 든 깡패입니다. 자본의 발밑에 짓밟혀 파들파들 떨고 있는 민들레를 한번 더 짓밟는 게 아니라 그 발을 치워줘야 합니다. 민들레에게 너희도 시험쳐서 소나무가 되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민들레도 숨쉬고 씨앗을 흩날릴 영토와 햇볕을 나눠줘야 합니다.민들레가 죽어가는 땅에선 어떤 나무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살아나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그들이 승리해야 우리가 지켜질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칼날엔 눈이 없습니다. 가장 핵심적 업무였던 비행기 조종사도 파견이 밀려 들어오고,조선소의 핵심인 크레인과 한국통신의 핵심부서들도 이미 도급으로 넘어 갔습니다. 철도 기관사들에겐 1인 다기능화라는 명목으로 열차를 연결하고 분리하는 일과 청소까지 기관사의 업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2인 승무가 1인 승무가 되고 다섯명의 정규직이 일하던 역이 세명으로 줄어들고 3호선은 두명이 일하고 야간엔 그나마 한명이 일해야 하는 부산지하철에 이미 비정규직이 1300명 입니다.

구조조정의 끝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 서로 대립하게 만들고,자본이 해야 할 말을 같은 노동자가 하게 되는 이 기가막히는 상황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본질일 것입니다.

현대자동차에서 대우자동차에서 만도기계에서 한진중공업에서 병원에서 은행에서 공공기관들에서,수백만의 노동자가 짤렸지만 단 한명도 자신이 구조조정 대상이 되리라는 걸 상상하지 않았듯이,무심한 냉대와 비수 같은 말 한마디가 언젠가 고스란히 내 심장에 꽂히게 되리라는 걸 상상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철도,이랜드,롯데호텔,한국항공우주산업,부산은행,KM&I 등 정규직이 연대한 비정규직 싸움은 다 승리했고,그 승리는 정규직의 고용까지 담보를 했지만,비정규직들끼리만 싸웠던 한국통신,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 등은 다 패배했고 결국은 정규직도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 내몰려야 했습니다.

평등해야 강해진다 했습니다. 1300명의 비정규직이 파견법이 통과되면 2천이 되고 3천이 되고야 말 쓰나미를 막아낼 든든한 방파제를 지금이라도 쌓아 올려야 합니다. 저들이 밑돌이 되겠답니다. 기꺼이 밑돌이 되어 땅 밑에 엎드려 무릎걸음으로 초석이 되겠답니다. 무릎이 깨어지고 손바닥이 벗겨져 피가 흐르더라도 그 길이 비정규직 철폐의 길이라면,누군가에게 다시 이 설움을 물려주는 길이 아니라면 기어서라도 가겠답니다.

아무 죄가 없는 저들이,아무 잘못한 게 없는 저들이,천막에서 한 겨울을 났던 그 몸 엎드려 다섯 걸음 걷고 한 번 엎드리는 그 길에서 만나게 되는 게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만은 아니길 바랍니다.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비정규직이라는 아직도 낯선 이름으로 살다가 그마저 빼앗긴 저들이 만나게 되는 게 더이상 서러움만은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이 자리엔 지하철 청소용역 노동자들도 와 계십니다. 스물 몇살의 아들 딸들과 사십 오십살의 어머니들이 비정규직 철폐의 같은 머리띠를 매야 하는 현실.이 현실을 바꿔낼 답이 뭔지 지하철노조가 답해야 할 차례입니다.

공연한 질문이었는지도 모르겠으나.. 황이라와 정명수가 스물 여섯이라는 말을 들었던 바람 몹시 불던 밤. 바람소리 때문만은 아니었겠으나..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해고된 게 그 나이..스물 여섯.. 그날 이후 저는 단 하루도 청춘을 지녀보질 못했습니다. 차라리 50이었다면 이 더러운 세상과 타협하며 그럭 저럭 살 수 있었을까요. 훌쩍 60이라도 됐었다면 그 말도 안되는 일들을 그냥 저냥 삭히며 포기할 수 있었을까요.

마흔일곱에도 해고자로 남아있는 제가 20년 세월의 무력감과 죄스러움을 눙치기 위해 스물 일곱의 신규해고자에게 어느 날 물었었습니다. 봄이 오면 뭐가 제일 하고 싶으세요? 내게도 저토록 빛나는 청춘이 하루라도 있었다면..볼 때마다 꿈꾸게 되는 맑은 영혼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원피스 입고 삼랑진 딸기밭에 가고 싶어요. 적개심도 아니고 이데올로기도 아닌..그 순결한 꿈이 이루어지는 봄이길.. 부디 저 고운 영혼들이 꽃보다 먼저 환해지는 봄이길.. 봄마저 쟁취해야하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그런 봄이 부디 저들의 것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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