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추석 전야 케이블 시청기

규민을 재우고 마루로 기어나온 남편과 나, 맥주 한 캔 까서 나눔.

이 때부터 남편에게는 시댁만 오면 한 번 해주고 넘어가야하는 일이 있다.

리모콘 잡고 채널 돌리기.

어떤 프로를 진득하게 보는 일 없이, 전체 채널을 다 넘어가주어야한다.

아까 언뜻 지나간 얼굴이 누구였지, 나는 그 사람이 나왔던 채널로 다시 돌아가서 궁금증을 풀고 싶지만, 남편의 올 추석 케이블 처녀비행을 망칠 수는 없다. 

이제 한 바퀴 다 돌고 다시 돌아가는 중이려니,하고 조금 더 기다리지만 채널은 끝도 없다. 새로운 채널, 새로운 채널, 채널, 채널, 채널....

 

 

지금으로부터 이십년 전에(헉, 그게 벌써 이십년 전!) 순진한 십대를 꼬득여 미국으로 언어연수랍시고 잠깐 놀다오는 사업에 순진한 십대였던 나도 속아넘어가, 미국에 갔던 적이 있었는데(그 돈을 모았다면 지금 뭘 해도 했을것인디), 거기서 날 먹여주고 재워주었던 집에서 내가 첫 날 기절했던 것이 바로 수십개의 채널이었다. 그 집 자식이 리모콘을 잡고 돌려대는데, 내가 촌닭 표정을 하고 있었나보다. 나보고 한국에는 채널이 몇 개 있냐고 물었다.(내가 이걸 어떻게 알아들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11번, 9번, 7번, 2번을 떠올리고 네 개라고 말했었고, 그 집 엄마가 여기는 몇십몇개라고 답을 하는데, 너희 나라는 그렇지만, 여긴 미국이라 없는게 없지,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도 몇 십 개의 방송이 생기는 날이 올까, 그렇다면 정말 볼 것도 많고, 얼마나 좋을까, 너무 재미있을텐데,라는 환상을 가슴에 품었다. 몇 십 개의 채널... 아, 그것은 바로 행복의 대명사.

 

 

남편은 채널을 한 바퀴 쭉 돌리는 과업을 끝마치더니, 그 과업의 동반자였던 리모콘을 나에게 건네주고, 방으로 자러갔다.

이제부턴 리모콘이 나를 동반해준다.  어깨가 뻐근해졌다.

 

나도 별 수 있나, 돌려대야지.

 

어언 한 바퀴 지나가고,

또 돌려대고,

(눈이 아프다. 멀미기분도 나는 것 같다.) 나도 방으로 들어갈까,하는 순간, 커트니 콕스와 그 누구지... 브레드 피트의 옛날 연인 발견. <후렌즈>인가 보다.

브레드 피트의 옛날 연인은 웃통을 벗고 침대에 들어가 가슴까지 이불 덮고 있다.

뒤에 어떤 남자가 역시 웃통을 벗고 함께 누워있다.

그 집의 거실에서는 커트니 콕스와 어떤 남자가 식탁에 앉아있는데, 남자가 여자더러 왜 나랑 자지 않느냐,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온통 섹스 투성이인 이 드라마는 곧 끝나고 바로 이어서 (만만치않은)<섹스 앤 더 시티>가 이어질 것이란 자막이 떴다.

<섹스 앤 더 시티>라면 내가 비디오를 한 바가지 빌려다 본 적이 있는 그 프로다.

그나마의 보람을 느끼며 <섹스 앤 더 시티>를 보기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섹스 앤 더 시티>를 보고 얼마나 세월이 흘렀던가.

주인공들의 처지가 많이 변해있다.

주인공의 주인공, 쎄라 뭐뭐 파커는 입 주위의 주름이 꽤 늘었다. (나이 든 여배우가 여전히 나오다니, 잠깐 감격)

 

쎄라 뭐뭐 파커는 오십대의 예술가(옛날에 <백야>에 나왔던 백인배우)랑 사귀고 있었는데, 이 남자가 함께 빠리로 가서 살자고 제안. 그 제안 때문에 친구들과 갈등('네 직업과 인생은 뉴욕에 있다..')을 갖는다는 내용인데, 중간에 마흔 먹은 뉴욕 파티 킬러 여자 하나가 이제 파티에서도 담배도 못 피우고 약도 못 하는 세상이라며 창문 열고 담배를 피우다 그대로 창문 밖으로 미끄러져 추락사하는 사건과 함께 나이 먹은 싱글의 삶은 뉴욕에서도 비참하다는, 뜻밖의 신파가 있었다. 그러고보니, 주인공과 사만다를 빼고 나머지 두 여주인공 또한 기혼자가 되어있다.

 

쎄라..파커는 남자친구의 함께 살자는 제안에, 드라마의 신파 기운을 타고 있었고, 오직 사만다만이 앞뒤 생각 안하며, 여전히 여럿 남자 밝히며 꿋꿋이 살고있다.

 

하지만, 비혼이든, 기혼이든, 여기 주인공들은 죄다 흐드러진 부르조아다.(이 단어는 너무 의도적이군. 그래도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교육 잘 받고, 뽄때나는 직업을 갖고, 재산도 넉넉한 사람들을 가리켜 뭐라고 해야하지?)

사만다는 자신의 '하녀'가 자기의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하는 것 같다고 한다.

바이브레이터를 써야하는 싱글이지만, '하녀'는 있는 것이다.

 

그녀의 바이브레이터에 공감하고 웃으면, 그녀의 '하녀'를 둔 생활과 레벨이 달라도 그녀와 '동급'인 양 착각하게 되기 마련인데, 당연한 것이, 이 프로가 무슨 대입입시준비 프로도 아니고, '하녀'를 두며 살 수 있는 레벨에 집중한 프로가 아니라, 섹스를 알고 하고 그래서 바이브레이터가 뭔지 알아먹는 사람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프로이니까.

 

그래서 티뷔와 주식이 20세기 가장 거대한 사기라고 했었나. 노동자도 자본가로 착각하며 살 수 있는 장치이니.

역겨울 것 없는 섹스가 난무하는 드라마들은 섹스가 칫솔처럼 생활의 필수품인 듯 광고를 하고, 그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가지려 미국아이들의 첫 섹스를 경험하는 나이는 점점 어려지는 것인가 보다.

구십년대 중반, 내가 쫌 친하게 지냈었던 어느 캘리포니아 출신의 미국인(캘리포니아 출신들은,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으면 미국도 아니고 재수없게, "캘리포니아"라고 대답한다.)은 첫 섹스를 언제했냐는 나의 물음에, 진실게임도 아니면서 나를 아주 화들짝  놀래킨 답을 주었었다. 열세살(그러면 우리 나이로 열네살 쯤 되겠지.)이라는 거다. 너만 그렇게 빨리 한거냐, 다 그러냐, 했더니, 역시 진실게임도 아니었던 만큼, 거기는 다 그렇다고 했다.

 

하고 싶다면 하는 게 미국식 자유라면, 섹스를 이른 나이에 한다고 뭐라 하자는 건 보수니, 노파심이니, 란 소리듣기 딱이지만, 그들이 죄다 완벽한 피임을 하고 섹스를 할까. 피임에 대해 줄줄이 논문을 쓸 수 있는 노땅도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피임인데. 그것은 어차피 9*.*%의 확률에서 출발하는 것인거늘.

 

얼마전 한겨레 신문 간지에 있던 조효제 교수의 글이 생각난다.

9.11.이후 부시정권이 만든 법, 'no Child left behind Act'라는, 역시 번듯한 교육받고 눈돌아가는 연봉을 받아가며 일하는 자들답게 미끈한 제목을 달고있는 이 법 조항은, 어떤 애들도 뒤쳐지지 않도록 군(軍)에서 접근가능한 개인정보를 제공하게하는 근거가 되는 법인데, 모병제이면서 전쟁으로 먹고사는 미국이 총알받이 군인을 어떻게 계속 공급할 것이냐 아이디어를 모색하다가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대학도 가지 못하고, 마땅한 직업도 구할 수 없는 젊은 청춘에게 원하면 대학등록금과 확실한 연봉 등을 광고하는 군대는 당연 유혹적이겠지.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가 빈익빈 부익부 시스템을 공고하게 쌓을 수 있었던 데에는 몇수십개의 케이블 채널 또한 있구나,라며 혼자 허벅지를 쳤다.

 

아침부터 밤늦도록 일하러 나간 부/모를 기다리며 얼마나 많은 할렘가의 어린 아가들이 케이블을 끼고 살까. 하녀를 거느린 뉴욕 부르조아의 바이브레이터 이야기에 히히덕거리며 하녀를 거느리는 직업(을 위한 교육) 대신 바이브레이터나 혹은 건전지도 필요없는, 저절로 섰다가 정말로 싸기도 하는 바이브레이터를 선택하겠지.

 

 

몇수십개의 케이블과 그 천박하고 천박한 프로그램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