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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영화, <세입자<the tenant, Le locataire>


 

남편이 로만 폴란스키의 옛날 영화를 얻어와서(누가 씨디로 구워주었다고 했다. 그 편리함에 놀랄 정도였지만, 난 사실 영화를 못 봐도 괜찮으니 이런 식의 편리함은 세상에 없었더라면 더 좋을텐데 하는 느낌..) 볼래?했다. 그래서, 처음엔 볼 생각이 없었다. 나는 또 바뻤다.

그러나 컴퓨터에서 영화가 돌아가고 있으니 그냥 또 봤다.

 

로만 폴란스키 영화는 로즈마리 베이비가 엄청나다는 얘기만 들었지, 실제로 본 것은 특별히 로만 폴란스키라고 할 만할 것들도 아니었다. 피아니스트(2002)나, (내가 좋아하는) 죽음과 하녀(1994)(한국어 제목이 뭐더라.).. 그런데 이 1976년도 영화를 보고있자니, 로즈마리 베이비가 얼마나 엄청날 건지 알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이 조종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 꼭두각시 인형처럼.

갑자기 휙 나타나서 소심한 대사를 늘어놓거나, 호통을 치는 인물들.

안절부절하며 공포에 떠는 주인공은 그러나 상황을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망상의 세계로 데리고 간다.

별 것도 없는 줄거리임에도  그런 분위기로 인해 신경이 거슬린다.

줄거리는, 1976년엔 쇼킹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보기엔 단조롭다.

아파트의 새 세입자는 전 세입자가 창문 넘어로 투신자살하였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무슨 이유인지 이 남자는 아직 죽지않았다는 전 세입자의 병실을 방문하고, 그 병실에서 그녀의 친구를 만나 이소룡영화를 같이 보며 키스를 한다. 아파트 안의 신경질적인 이웃들과 부딪히는 등의 며칠이 지나가고, 남자는 이웃들이 자신을 전 세입자로 만들어 투신자살하게 하려한다는 환각에 시달린다. 남자는 전 세입자가 남기고 간 원피스를 입고 화장을 하고 긴머리 가발을 쓰고 투신한다. 한 번 떨어졌는데 안 죽으니 몸을 질질 끌고 올라가 다시 떨어진다.

 

단순한 조명(공포스러울땐 어두컴컴)과 문학적인 대사, 그리고 놀랄 땐 앞으로 가고 관찰할 땐 한 발 물러 따라가는 우직한 카메라, 진지한 표현이란 표현의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시나 의도자의 진심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고전을 만난 기쁨을 음미하나, 이는 영화를 씨디 안에 복사할 수 있다는 테크놀로지 덕분이겠지만, 진심을 오바하는 방법의 세상, 테크놀로지의 세상이 바로 모든 종류의 의도자들이 경계해야할 것 아니겠는가. 영화를 못 봐도 좋으니, 세상의 모든 씨디와 디비디와 컴퓨터와 *지털은 종말하였으면.  엘피와 필름과 타자기가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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