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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나 일주일

집 떠나기 전 일주일, 규민이랑 부비며 꼬박 집에만 있었다.

규민이가 기관지염을 앓아 꼼짝없이.

공기 좋은 데 가서 살아야지, 하는 소리가 입에 달렸다.

그런 일주일을 보내니 어서 빨리 부산으로 가고 싶었다.

떠나는 날 월요일 전 주말엔 규민이에게 "엄마 퇴근"을 선언하고 뻗었다.

일요일밤엔 잠까지 안 왔다.

이게 얼마만이냐. 흥분과 긴장.

아이가 걱정되긴 했지만, 남은 선수진들도 든든하고, 이제 애 걱정은 의도적으로 접어두기로 작정하였다.

 

월요일 새벽 4시반 집을 나섰다.

5시25분 발 케이티엑스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정확히 구포역.

8시 10분 도착했더니 왠걸, 날씨 너무 좋음. 완전 봄.

촌스럽게 두꺼운 겨울코트 차림이라니.

낯선 도시, 차 창 밖의 낯선 거리,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8시 45분 쯤 목적지 신라대에 도착했다.

대학켐퍼스 또한 얼마만이냐. 스무살로 돌아가는 기분이닷.

 

그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아홉시부터 저녁 여덟시까지 수업으로 꽉 채워진 날을 보내는데, 왜 그렇게 신이 나고 재미있고 즐겁고 상쾌하고 유쾌한지.

규민, 미안, 집에서 고생하는 남편, 미안, 여러모로 신경쓰고 고생한 엄마, 미안.

역시 학생이 최고 좋은 직업임을 다시 한 번 느낌.

나, 그냥 학생으로 평생 살면 안될까.

수업은 어찌나 가슴을 절절 끓이던지, 그림 수업은 또 나의 손의 아티스틱 욕구를 어찌나 일깨우던지, 몸으로 움직이는 수업은 또 어찌나 착 달라붙던지.

이렇게 한나절을 보내고, 기숙사 방의 단출한 살림 속에서 밥을 챙겨 먹고 빨래를 하고 책을 들춰보는 저녁나절, 이런 하루가 꿈인가, 생시인가..

 

그리고 집으로 왔다.

마지막 뒷풀이밤을 거하게 보내고, 잠이라곤 기차안에서 잠깐 눈을 붙인 게 전부인 물먹은 솜덩이같은 몸을 끌고.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안에서 누가 달려온다.

엄마, 부르면서.

 

앗, 저 아이가 규민인가.

내 팔에 들어온 이 아이가 규민이던가.

나랑 너무도 똑같이 생긴 이 아이.

특히 눈매가 너무 나랑 똑같다. 표정을 어색하게 구사하는 모양새하며, 입 안의 말을 분명하게 꺼내놓지 못하는 망설임도 어쩜 이렇게 나랑 똑같은지.

내가 이렇게 나랑 똑같은 애를 세상에 내놨구나, 넌 어떻게 앞으로 살아갈래.

갑자기 이 애가 와락 측은하다.

어차피 세상에 나와서 살아가야하는, 나랑 똑같은 아이.

 

규민아, 니가 규민이 맞아?

엄마는 어떤 예쁜 요정이 날개를 훨훨 움직여 엄마한테 오는 줄 알았어.

 

엄마, 나 보고싶었어?

그럼,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몰라.

맨날맨날 내 생각했어?

그럼, 규민이 잘 있는지, 밥 잘 먹는지, 터전에서 잘 놀고 있는지, 아빠랑 잘 놀고 있는지, 맨날맨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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