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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ing 제시카 스타인

늦게까지 함께 놀았던 친구를 무작정 뒤따라가는 규민.

어차피 그 아이는 아빠가 집으로 데리고 가는 길. 가봤자 돌아서서 우리집으로 돌아오게 될테니 내버려두었다.

그런데 아이 아빠는 집으로 곧장 가는 대신 비디오가게에 들렸다. 그 가게는 폐업한다고 비디오테이프들을 싸게 팔고 있던 중이었다.

덩달아서 비디오가게에 들어선 규민과 나, 그리고 규민의 친구와 친구의 아빠는 문에 들어선 순간부터 각각 갈라져 눈을 휘번덕이며 비디오테이프 꽂이 사이사이를 누볐다.

 

그 가게는 제법 컸다.

구석구석 잘 살펴보면 횡재를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가게가 자꾸만 문을 닫는 건, 불행이다.

넓어봤자 삼분의 이 쯤의 공간을 만화책에 거의 내어주고 있는, 그래서  비디오 테이프래봤자 구비하고 있는 자산은 없고 죄다 최신프로를 반짝 내놓고 거두고 내놓고 거두기를 반복하는 비디오가게들만이 남아가는 현실은, 불행이다.

 

그렇다고 사실 내가 영화를 자주 봐주면서, 그들의 생업에 도움을 주면서,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니 비디오가게계의 현실비판은 관두고, 아무튼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펄떡 휘번덕휘번덕 뛰며 이곳저곳을 누볐던 네 명의 사람들로 돌아가자면.....

 

규민이과 그의 친구는 곧 함께 만화비디오 칸 앞에 서서 하나하나 품평회를 하기 시작했다.

미키마우스 만화 씨리즈라면 규민이는 전문가 급. 친구 앞에서 무어라고 평을 해주는데, 친구가 못 알아듣는다. 친구는 우리나라 만화 씨리즈 '백구'를 규민에게 추천하고 있다. 들려오는 그애 아빠의 목소리, "너 그거 본적도 없잖아."

 

규민이가 친구랑 시간을 잘 보내주는 덕분에 나는 구석구석 눈을 핑글핑글 돌리고 있는데...(단시간에 가장 많은 글자를 읽어낸 순간일 듯.)

그날밤 나는 횡재하였다.

3개 2,000원 부분에서 <멘>과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 그리고 <안토니아스 라인>을 찾은 것이었다.

 

<멘>은 내가 짱 좋아하는 영화다.

평생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영화.

그리고 남편쟁이를 위해서 한 편의 좋은 작품의 스탠다드를 고르려고 했는데, <안토니아스 라인>이 눈에 딱 들어왔다. 흠, 이 영화는 두고두고 볼 것 같지는 않지만, 발견했으면 왠지 예의상 사드려야할 것 같은 기분에...

그리고 다시 남편쟁이를 위해서... 먼저 <숏컷>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걸 고르면 4편의 영화가 되니(<숏컷>은 비디오 2장), 2,000원 넘는다고 할 것 같아 포기.

그러면 무얼????? 하고 눈을 돌리고 있는데, 저 멀리멀리 꼭대기 구석에서 이 눈에 착 들어온 것이었다. 그래서 남편쟁이를 위한 것은 영원히 물건너 가고, 알차게 나만을 위한 세 편.

 

규민이도 세 편의 비디오를 골라놨음.

<미키마우스의 생일잔치>, (친구가 추천했던)<백구>, 제목은 기억안나고 순정만화 하나.

 

그래서 엊그제 을 보았다.

 


 

 

이 영화, 주인공이자, 씨나리오를 쓴 두 여자배우들이 하나는 70년 생이고, 하나는 71년 생이다. 작정하고 나와 딱 맞는 것이다.

한국/서울 남자 백 보다 지구 반대편 여자 둘이 훨씬.....

 

 


 

 

이 영화가 동성애로 안내하는 방식을 포함하여, 결국은, 이성애자들을 안도하게 해주지만, 무엇보다 큰 이 영화의 미덕은 동성애를 특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있다는 것.

영화의 씨나리오를 두 여자가 썼기 때문인데, 무척 세심하고도 유머러스한 관찰의 눈은 분명 훌륭한 것.

그런데 나는 여자의 시기를 지나 인간의 시기에 입문하고 있어서인가(이, 뭐, 썰렁한 표현인가...), 신문사를 그만두고 그림에 전념하고나선 후의 제시카, 그리고 신문사를 그만두고 작가의 길에 나선 조쉬(뉴욕 여피의 전형이었던 제시카와 조쉬의 복장이 달라졌다. 촌스러운 원피스에 청자켓을 입은 제시카, 빵꾸난 티셔쓰를 입은 조쉬)가 더 궁금해지는 기분.

 

그것은 마치 그녀 제시카 역시 여자의 시기를 지나 인간의 시기로 옮겨가고 있음처럼 느껴진다. 너무 내 식대로 해석인가.

다니던 회사 관두고 아티스트로 전념하면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삶에 입문했다는?

엉터리 도식이겠지만, 여전히 일면 일리가 있다고 믿는다.

회사와 아트 ---- 그것은 정녕 생활과 삶의 차이인 것이다.

그것은 정녕 하루하루와 인생의 차이인 것이다.

으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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