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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이 그렇게 말한 줄 이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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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6. 10 헌책방에서 몇 개월 전에 샀는데, 이번에 읽었다. 책상에 앉아 있지 않으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 때 이런 소설을 읽는 것은 괜찮겠지.
 
성석제 소설집 |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 창작과비평사 | 2002.
 
1. 저자의 말에 대하여
 
내가 짠 그물이 성글다.
이 그물로는 물고기를 잡지 못하겠네.
 
그때가 올까.
이 마음속 고래 한 마리,
펄쩍 뛰어 밖으로 뛰쳐나오는 그날,
바다가 먼저 넘치지는 않을까.
넘쳐 넘실 스르르 북해를 만나러 가지 않을까.
 
내가 친 그물이 성글어 보인다.
성긴 그물이여, 나라도 엮어볼 테냐, 잡으려느냐.

이 책을 당신, 천지의 붉은 물고기처럼 유유한 존재께 바치노니, 나는 당신들과 다르고도 상관없어 보이는 모든 것, 나무와 돌, 하늘, 바람, 아카시아꽃에서 언제나 당신들을 느낀답니다. (성석제/저자) 
 
책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저자의 말’이 앞의 소설들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매개고리를 잘 찾지 못하겠는데, 내가 둔한 건가.
 
2. 제일 인상적인 작품은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표제작답게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 많은 사람들이 꽂힐 것 같다. 좀 모자라는 농부인 황만근은 어렸을 때부터 온갖 비웃음과 조소, 모멸을 당하지만, (모자라기 때문에) 이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일을 다하였고, 그가 죽는 순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다.
묘비명의 형식을 따른 이 작품에서는 글의 맨 마지막에 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서술을 한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아니하고 감탄하지 않는 삶이었지만 선생은 깊고 그윽한 경지를 이루었다. 남의 비웃음을 받으며 살면서도 비루하지 아니하고 홀로 할 바를 이루어 초지를 일관하니 이 어찌 하늘이 낸 사람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이 어찌 하늘이 내고 땅이 일으켜세운 사람이 아니랴. (40쪽)
 
강풀의 만화 ‘바보’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을 보고 허세욱 열사를 떠올렸는데, 이게 그에게 실례일까. 나에게 허세욱 열사는 그렇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3. 전형적인 인간들
이 소설집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현대소설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그러한 인물들이 아니라 상당히 기이한 인물들인데, 나에게는 고전소설에 나오는 전형적인 인간형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거기에서 나오는 즐거움도 있었다고 해야 하나. 작품해설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성석제의 ‘리얼리즘의 탈피’의 측면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의 황만근, 직접 ‘나’에게 연락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 허락을 얻은 다음에야 연락을 취하며, 결혼식을 해서 부조금 들어오면 그거 모아서 장사밑천이나 하자고 했고, 화자인 ‘나’를 부른 이유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천애윤락'의 동환,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의 평범하면서도 별난 친목계원들, 서음(書淫)이라 불릴 만큼 책을 좋아하면서도 책 밖에서는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책’의 동갑내기 당숙, 냄새 자체로 괴물 취급을 받았으나 자라면서 숨이 막히게 하는 수준의 꽃미남 외모로 세 명의 여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천하제일 남가이’, 평범한 듯 하면서도 온갖 다양한 여인들에게서 사랑받는 ‘욕탕의 여인들’의 나, 그리고 처음 시작하는 도박에서는 언제나 이기는, 그래서 언제나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도박에 나서는 ‘꽃의 피, 피의 꽃’의 도선생, 이들은 일상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괴이한 사고나 행동을 하는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런 인물들에게서 현대 한국사회의 전형성을 본다면 내가 이상한 건가. 그 만큼 이 한국사회가 정상에서 벗어난, 기우뚱한 사회인지도 모른다.
 
4. 서음(書淫), 책벌레, 간서치(看書痴, 책만 보는 바보)
나도 책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책’에 나오는 당숙은 많이 심하다. 그마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책벌레들을 조롱하기 위해 쓴 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당숙에 대한 묘사는 흥미롭다.
 
당숙은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어떤 자리에서나 뒷전과 그늘을 택했다. 그래도 조금 알 만해지는가 싶은 어느 순간 당숙은 책을 가지고 간단하고 손쉽게 자신의 정체를 감추었다. 수업시간에 보는 교과서를 제외하고 어떤 책이든 당숙과 함께 있으면 당숙은 알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당숙이 책을 들고 있었는지, 읽고 있었는지, 걸어갔는지, 소리를 냈는지, 책을 베고 잠을 잤는지, 책으로 파리를 잡았는지 도무지 기억할 수 없었다. 책은 당숙을 희미하게 만들고 당숙은 책과 사물의 경계선을 흐렸다. 그러면서도 둘은 섞여서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116쪽)
 내가 보기에 당숙은 어떤 책을 읽어서 내용을 안다기보다는 다자인, 촉감, 냄새, 분량과 무게, 책장을 넘길 때 나는 소리, 거기에 더하여 책에 관한 독특한 육감을 가지고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 같다. … 책을 읽기보다는 느끼려고 한다. 글자 하나하나의 생김과 책에 있는 낙서며 흠, 색깔을 기억한다. … 책과 당숙, 두 존재의 혼재를 1+1이라고 하면 그 결과는 2가 아니고 0이거나 -2가 되기 십상이다. (118-119쪽)
도서관 직원의 소개로 처음 당숙을 만난 자리에서 당숙모는 자신이 번역한 책을 하나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 내용을 자신보다 훨씬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고 있는 당숙에게 소름이 끼쳤다고 한다. … 소름이 끼치게 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여자의 속마음은 뭘까. 나는 모르지만 당숙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책에 나와 있기만 하다면 그가 모르는 건 없었으니까. (119-120쪽)

 
책을 보는 것과 모으는 것, 사는 것은 다르다. 법정 스님도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한 집착이 책에 대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게 분명 소유욕이긴 하겠지만, 지식욕으로 수렴되는 류의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 만큼 버리기 힘든 책에 대한 집착은 맘껏 충족하기가 쉽지 않다. 이사할 때마다 책이 걸리적거린다. 책을 옮기는 게 가장 힘든 이삿일이라고 하는데, 역시나 여기서도 책 이사 장면의 에피소드는 압권이다. 실제 책을 보관하는 문제는 심각하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책들, 더 이상 보지 않을 책들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무엇인가를 잘 버릴 줄 아는 사람(이는 무엇을 버려야 하고, 무엇을 보관해야 하는지를 분별할 줄 안다는 것을 전제한다)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평생의 과제가 아닐까 싶다.
 
5. 미남이란
미남에 대한 천하제일 남가이의 정의.
“세상에는 수많은 미남이 있어. 인종이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지만 어디에나 미남은 존재하거든.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미남은 뭔가. 진정한 미남은 그걸 아는 법이지. 가짜들은 몰라. 가짜 미남은 진실을 모르지.”
“아무리 멀리서 봐도 사람처럼 보이는 얼굴, 명백히 사람일 수밖에 없는 얼굴, 이런 얼굴이 미남의 얼굴이야. 잘생겼다는 건 사람답다는 걸 말하는 거지. 천하제일 미남은 천하에 짝이 없이 사람답다는 거야. 그런 사람이 흔할 것 같지. 하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찾기가 어렵다네.” (172쪽) 

 
잘생겼다는 게 사람답다는 거라고 하자. 그렇다면 사람다우면 잘생긴 걸까. 그게 성립하지 않는 게 문제다. 아쉬운 건 아니고...
 
6. 연애는 어떠해야 하는가
‘욕탕의 여인들’은 주인공이 만나는 다양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남녀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도 보여주고...
 
사귀기에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 같은 것보다 낫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 뜨거운 부위에서 차가운 부위로 열이 옮아가듯 움직임이 있다. 서로 비슷해져서 고여 있는 물 같은 상태보다, 알 것 다 알아서 미지근한 관계보다는 낫다. (228쪽)
 
그런가. 서로 다르다와 서로 같다의 스펙트럼 안에는 다양한 정도의 다르고 같음이 존재하지 않을까. 극단이 아닌 어정쩡한, 그냥 그저 그런 관계. 물론 중심축은 다른 쪽에 있어야겠지. 하지만 서로 다 알고 많이 일치하는 관계가 어디 얼마나 있을까. 상대적일 터이다.
 
7. 도박의 정의
노름은 믿음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 자신의 운에 대한 믿음, 노름의 일회성에 대한 믿음, 인생의 일회생,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노름을 하게 한다. 누구의 믿음이 큰가, 철저한가에 따라 이기고 진다. (289쪽)
 
지금의 진보정당운동은 도박일까, 아닐까.
 
8. 재치, 유쾌, 경쾌, 그러나 씁쓸함
성석제의 다른 소설에서도 그렇지만, 이 소설집은 재치 있고, 유쾌하지만, 다 읽고 나면 그것이 씁쓸한 웃음임을 보여준다. 물론 그렇다고 이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이것은 아마도 경쾌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비틀림 때문일 텐데, 반전은 없어도 이런 맛을 주는 작품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책의 여기저기 보이는 말장난도 재미있는데, 상투적인 듯해도 이런 걸 적재적소에 써먹는 것도 큰 재주다.
 
속인다고 하더라도 그 돈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다리가 부러지고 손이 작두로 잘려나가면서 깨달아야 했다. 그는 진정한 도박꾼은 속이지 않고도 언제나 이긴다는 철리(哲理)를 깨치기 위해 절로 들어가 뼈를 깎는 고행을 했다. 그러는 동안 … 인생의 허무를 알았고 모든 욕심을 버렸다. 그는 별볼일 없는 화투장을 통해 천하를 내다본다. 천하가 그를 몰라주어도 성내지 아니한다. 그에 의하면 ‘어차피 인생은 거는 것(賭)이며 도(睹)로써 도(蹈)하고 도(渡)하여 도(道)에 도(到)한다.’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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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1 12:38 2010/06/11 12:38

2 Comments (+add yours?)

  1. 박군 2010/06/15 01:38

    황만근씨를 만나셨군요? :) 성석제가 입담이 좋기는해요. 그런데 새벽길님 독후감도 멋지네요. ^^ 그나저나 진짜 부지런하신듯, 언제 이런 소설집까지 섭렵을 다 하시는겁니까..

     Reply  Address

    • 새벽길 2010/06/19 03:24

      제가 성석제와 같은 해학적 느낌이 있는 소설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오쿠다 히데오의 글도 좋아하고요.
      독후감이라고 하기엔 좀... ㅠㅠ
      소설책이나 에세이는 버스나 지하철을 탔을 때 등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읽지요. 물론 이런 것도 생각나는 부분을 정리해놓는 게 약간 독특하지만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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