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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어쩌랴 길은 가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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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길이나 희망 때문이 아니라 '허나 어쩌랴 길은 가야 하고' 이 대목 때문에 옮겨온다.
한숨은 그만 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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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0 06:40 
내가 한참 다모에 빠져있을 때 쓴 글인 모양이다. 작년 글에 기대어 길에 대해서, 희망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만, 어쩌면 이는 길이 막힌 것에 대한, 절망에 대한 반어법적 토로가 아닐지... 신영복 선생의 말이 가슴 깊숙히 파고든다.
 
길과 희망 2003-09-04
 
한겨레신문을 보니 문화방송의 드라마 다모의 작가인 정형수씨가 정혁을 꿈꾼 장성백을 연기한 배우 김민준에게 ‘장길산과 체 게바라’의 이미지가 투영된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요새는 황보윤보다는 장성백에게 더 정이 간다. (지금보니 장성백은 허접한 사이비 혁명가였다. ㅡ.ㅡ;;)

다모 1부 프로로그에 보면 장성백의 말 중에 노신의 글귀를 언급한 대목이 있다. 조세옥(박영규)이 벼랑끝에 몰린 성백에게 “네놈의 길은 길이 아닌 길을 걸어온 게다”하자 성백이 “길이라는 것이 어찌 처음부터 있단 말이오, 한사람이 다니고 두사람이 다니고 많은 사람이 다니면 그 것이 길이 되는 법, 이 썩은 세상에 나 또한 새로운 길을 내고자 달려왔을 뿐이오”라고 대꾸하는 부분이 그것이다.

최근 며칠 사이에 심신이 많이 지쳤음을 느낀다. 충전이 필요한 듯 하기도 하다. 그래도 이렇게 널부러져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가다듬는다. 괜히 새벽길이 아니지 않는가?

길은 희망하고 관련이 있다. 장성백의 말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 [고향]에서 노신도 희망을 얘기하면서 길을 언급했던 것이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사실 이 글귀가 많이 알려진 것은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통해서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노신의 이 글보다는 고도원님(김대중 정부하에서 연설문담당비서관을 지냈다)의 댓글이 더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모양이다. "그렇습니다. 희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는 생겨나는 것이 희망입니다.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합니다. 희망은 있다고만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도 희망은 없습니다."  

나도 고도원님의 댓글이 좋긴 하지만, 김소진님의 [길]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구절이 더 마음에 든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 글을 내 홈페이지의 메인에 올려놓기도 했었다. 기억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길을 보면 왠지 위로가 된다. 널찍한 도로나 반듯한 길거리보다는 걷다가 언제든지 걸터앉아 다리쉼을 할 수 있는 뒷골목의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면 더욱 그렇다. 길이 있는 한 삶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가야할 길보다 무작정 걷는 길이 더 좋았다. 왜냐하면 그런 길의 끄트머리에는 반드시 고달픈 한 몸쯤은 누일 만한 집이 나타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길은 희망을 나타낸다. 희망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하였다. 이런 글들은 누가 힘들도 외롭고 어려울 때 줄 수 있는 좋은 말이다.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은 희망이 만든 것이다."(Martin Luther King Jr.)

"나는 희망을 가진다. 그러나 그 희망이 실현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해나가는가에 달려 있다. 만약 당신이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아무런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희망을 가질 권리가 없다."(Howard Zinn)

"그러나 희망이 다른 누군가의 절망이 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희망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합니다."(신영복)

"가령 말일세, 창문도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는 철(鐵)로 된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네. 머잖아 모두 숨이 막혀 죽겠지. 그러나 잠든 상태에서 죽어가니까 죽음의 비애는 느끼지 않을 걸세. 지금 자네가 큰소리를 질러 비교적 깨어 있는 몇 사람을 일으켜, 이 불행한 소수들에게 구제할 길 없는 임종의 고통을 겪게 한다면 도리어 그들에게 미안한 일 아닐까?"  "그러나 몇 사람이라도 일어난다면, 그 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맞다. 나는 내 나름대로의 확신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희망이라는 것을 말살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하면 희망이란 미래에 속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없다고 하는 내주장으로,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꺾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침내 그에게 쓰겠다고 응답했다. 이것이 처녀작인 '狂人日記'이다.
(노신, 鐵의 房에서의 외침)

신영복 선생의 글은 지금 자본과 보수언론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화물연대의 파업이 그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다. 그들의 희망이 바로 생존권이 보장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절망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노신과 하워드 진(미국의 반전운동가이다)의 글은 왜 우리가 나서서 희망의 불씨를 살려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백무산님의 "길은 광야의 것이라", 이 시는 길이 단지 희망만을 의미하지는 않다고 한다. 길은 우리가 어떻게 해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백무산 - 길은 광야의 것이라

얼마를 헤쳐왔나 지나온
길들은 멀고 아득하다
그러나 저 아스라한 모든 길들은 무심하고
나는 한 자리에서 움직였던 것 같지가 않다

가야 할 길은 얼마나 새로우며
남은 길은 또 얼마나 설레게 할 건가
하지만 길은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었고
동시에 나락으로 내몰았다
나에게 확신을 주었고 또 혼란의 늪으로 내던졌다

길을 안다고 나는 감히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 되돌아 서서
길의 끝이 아니라 시작된 곳을 찾았을 때
길이 아니라 길을 내려 길을 보았을 때
길은 저 거친 대지의 것이었다
나는 대지에서 달아나지 않았으므로
모든 것은 희생되었다 그러자,
한순간에 펼쳐진 바다와 같은 아, 하늘에 맞닿아
일렁이는 끝없는 광야의 그늘을 나는 보았다

우리들 삶은 그곳에서 더이상 측량되지 않는다
우리들 꿈은 더이상 산술이 아니다
길은 어디에나 있고 또 없다

길은 대지 위에 있으나
길은 자주 대지를 단순화한다
때로는 대지에서 자란 우리를
대지에서 추방하기도 한다
우리가 헤쳐온 길이 우릴 버리기도 한다
길은 자주 대지의 평등을
욕망의 평등으로 변질시키고
대지의 선한 의지를
권력의 사욕으로 타락시킨다

삶이란 오고 가는 것일까
인생이란 흐르는 길 위의 흔적일까
저기 출렁이는 물결을 보아라
허공에 맞닿아 끝없이 일렁이는 물결을 보아라

길이란 길은 광야 위에 있다
길 위에 머물지도 말고 길 밖에 서지도 말라
길이란 길은 광야의 것이다
삶이란 흐르는 길 위의 흔적이 아니다
일렁이어라 허공 가운데
끝없이 일렁이어라 다시 저 광야의
끝자락에서 푸른 파도처럼 일어서는
길을 보리라


난 시보다는 노래가 더 좋다. 길과 희망에 대해 노래한 것이 제법 있다. 대중가요를 보면 GOD의 길도 있고, 민중가요 중에는 노래공장의 들불의 노래 앨범에 실린 길도 있으며, 청춘의 도시의 길도 있다. 하지만 길에 대한 노래는 안치환이 짓고 부른 '길'이 제일 마음에 든다. 이 노래는 김남주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안치환이 부른 노래는 찾지 못했다. 대신 예울림의 음성으로(예울림은 연세대 노래패 울림터가 주축이 된 노래패였고, 이후에 꽃다지로 통합되었다) 피엘송에 있는 곡을 올렸다.

 

김남주 - 길

 

길은 내 앞에 놓여 있다

나는 안다, 이 길을, 이 길의 길이와 길이를

이 길의 역사를 나는 알고 있다

 

이 길에서 어디쯤 가면 비탈의 바위산이 있다

이 길 어디쯤 가면 가시로 사나운 총칼이 있다

이 길 어디쯤 가면

 

여기가 너의 장소 너의 시간이다

여기서 네 할일을 하라!

 

행동의 결단을 채찍질하는 고독의 검은 섬이 있다

 

허나 어쩌랴 길은 가야 하고

언젠가는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가자, 가고 또 가면 이르지 못할 길이 없나니

가자 이 길을 가고 오지 말자

남의 땅 남의 것으로 빼앗겨 죽창 들고 나섰던 이 길

제 나라 남의 것으로 빼앗겨 화승총 들고 나섰던 이 길

다시는 제 아니 가고 길만 멀다 하지 말자  

 

다시는 제 아니 가고 길만 험타 하지 말자

주려 학대받은 자 모든 것의 주인되는 길

오 해방이여!      

 

 

 

 

예울림 - 길
  

길은 내 앞에 놓여있다

 나는 안다 이 길의 역사를
길은 내 앞에 놓여있다

 여기서 내 할 일을 하라
허나 어쩌랴 길은 가야 하고

 죽창 들고 나섰던 이 길
가자 또 가자 모든 것 주인되는 길
오 해방이여

 
그리고 꽃다지의 진주라는 앨범에 실린 [희망]이라는 노래도 함께...(이 노래는 도종환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그리고 언덕길이라는 노래도 있고... 투쟁의 한길로는 솔직히 별로다.

힘내자! (이 때만 해도 맘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당위적으로 이런 말을 많이 했었는데... )



 

 

 

 

꽃다지 - 희망

그대 때문에 사는데 그대를 떠나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돌아서듯
이제는 그대를 떠나라 한다
겨울숲같은 우리 삶의 벌판에
언제나 새순으로 돋는 그대를
이세상 모든 길이 얼어붙어 있을 때
그 길을 흘러 내게 오던 그대를
이세상 모든 길이 얼어 붙어 있을 때
그 길을 흘러 내게 오던 그대를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다시 또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주던 그대를 눈물과 아픔도
쉽게 이겨낼 수 있도록
지켜주던 그대를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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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3 21:12 2010/07/03 21:12

2 Comments (+add yours?)

  1. ? 2010/07/04 19:46

    "다시 길로 돌아가자"
    의문표가 없는 의지의 각 잡음
    창조적 삶이 아닌 모방적 삶일수 있다.
    대륙의 정신적 지도자도
    옥중의 혁명시인도
    사회주의 노동자 시인도
    "스님의 수행의 실천의 禪行"도
    그때는 창조적 의지의 삶이 분명한 길이었다.
    그러나 지금
    "희망이 다른 누군가의 절망이 되고 있다면"
    여기서 오늘,역사의 사회구성원으로서 나?
    절망은 앵무새와 같음이 부정에+부정이 긍정의 법칙을 장악할뿐 둘다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희망을 찾아야 한다)"
    "생명의 길"은 순리에 따라서 인간과 자연의 인류적인 존엄함의 行이어야 한다.
    옥중의 혁명시인이 족쇄의 탄압으로 부터 역사의 진실을 놓지 않는 저항의 힘이 시이다.
    생명의 길에서 스님의 깨달음은 모두를 위한 희망이었다.
    그 절절함에서 분명하게 길은 있었다.
    禪이란 "佛의 종단에서 내리는 僧적의 증표"는 아니다
    성찰없는 저항은 탄압과 저항의 힘의비례 일뿐
    절망은 생명의 학살을 막을수 없다는그저 대치의 불행일 뿐이다.
    사람이 또 죽는다면
    물고기와 그 생물들의 생명의 공생도 물의 흐름도 여강이 될수 없는 '저항의 표류'라면.....
    길이란 깨달음을 실행하는 것이다.
    祖史禪의 僧標가 종교적 권력이라면
    생명을 살리는 생태의 저항이 되지 못하는 저항이 권력으로 군림 한다면
    그야말로 모든이의 희망을 살리기 위해
    생명의 길을 트기위해 창조적 길을 가는 것이다.
    모든것을 내려놓고 그야말로 역사의 화두를 던지며
    (이것이 살아있는 조사선이며,또한 지금 사회변혁의 저항의 태도이다)
    박물관에서는 깨달음은 가져 오지만
    돌조각 하나라도 가져와서 모시지 말자.박물관에서 메모해온 것은 이내 불태워 버려야 한다.
    그래야 87년을 넘어서는 촛불의 한계를 넘어서는
    또다른 역사의 함성이 길을 만들 것이다.

     Reply  Address

    • 새벽길 2010/07/11 02:23

      쩝... 사실 제가 뭐라고 댓글을 달아야 할지 몰라서...

       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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