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누가 영혼 없는 공무원을 만드는가

View Comments

검색하다가 여러 공무원노조의 홈페이지에 김정남씨의 아래 글이 퍼날라졌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산포럼에 실린 글인 만큼 다산의 목민심서에 나오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윗사람의 명령이 공법에 어긋나고 민생에 해를 끼치는 일이라면, 마땅히 의연하게 굽히지 말고 확연하게 자신을 지켜야 한다.”(唯上司所令 違於公法 害於民生當毅然不屈 確然自守)
 
과연 위의 말처럼 행하기 쉬울까. 
대학원에 들어와서 공무원시험 응시를 포기한 이후부터 나는 공무원이 되지 않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공무원이 되었다면 맘에도 없는 일을 하면서 도대체 내가 뭘하고 있나 자조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하에서는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부하에서도 영혼없는 공무원들이 다수 양산되었고, 그것은 공무원노조의 탄생에 조그마한 기여를 하였다. 영혼 없는 공무원을 거부하는 몸부림으로, 공무원 노동자 스스로 영혼을 가지고 살려는 자구노력이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는 또 다르게 상식마저 파괴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 상식이 누구의 상식인지에 대해서 따져봐야겠지만, 이 문제는 접고, 과연 5급 이상 관료들 중에 도저히 이 정부 하에서는 일을 못하겠다고 때려치고 나온 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특히 지난 7월초 곽노현 교수가 서울시 교육감으로 들어선 이후 서울교육 정책을 총괄하는 핵심부서를 지휘하고 있던 한 국장이 새 교육감과 이념적 노선이 다르다며 사표를 냈다고 한다. 곽노현 교육감을 가리켜 진보교육감이라고 하지만, 거기에 걸맞는 노선과 정책을 보여주지는 못했던 듯하다. 그럼에도 그 서울시교육청 고위공무원은 정책적 충돌을 염려해서 그만두었다니 약간 오바가 있기는 하지만, 그 결기는 인정해줘야 할 것 같다. (물론 보수성향의 공무원들 중에 이런 객기를 부리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기회주의자들일 테니까.) 
 
그런데 5급 이상의 공무원들 중에도 분명 진보적인, 또는 개혁적인 이가 있을 터인데, 그런 이들 중에 이념적 노선 운운하며 사표를 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첫째, 노무현 정부의 이념적 노선과 이명박 정부의 이념적 노선은 별로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친절봉사할 수 있다. 둘째, 개혁적인/진보적인 고위공무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그만두고 싶기는 하나, 생계문제 등으로 사표내는 비용이 편익보다 월등히 크기 때문에 그만둘 수 없는 이들이 많다. 넷째, 5급 이상 공무원들은 영혼이 없다. 어느 게 맞을까.  
 
뭐가 되었든 심지가 굳은 서울시 교육청 고위공무원의 에피소드를 지켜보면서 이래서 진보가 세상을 바꾸기에는 시일이 상당히 걸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 때문에 제대로 된 공무원노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공무원노조는 갈수록 맛이 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역시 합법성의 덫은 무서운가 보다. 한번 맛을 보니 다시 법외노조로는 활동하지 못하는 걸 보면...
 
음... 김정남씨 글만 펌하려 했는데, 또 쓸데없이 글이 엉뚱한 곳으로 샜다. 내 글쓰기는 도대체...

 

누가 영혼 없는 공무원을 만드는가 (다산연구소 다산포럼 403, 김정남, 2008-10-14 09:32)
 
국가공동체가 순탄한 진행을 못할 때, 그 탓을 공무원에 돌려 그들을 질타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의 유행이 아닌가 싶다. 공무원이 그만큼 만만한 것이다. 일찍이 루쉰(魯迅)은 그의 글 ‘눌함(喊)’에서 “오늘날 세상에서는 관료를 공격하는 것이 유행의 첨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 하지만 관료는 태어날 때부터의 특별한 종족이 아니라 평민이 변화한 것뿐입니다” 하였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 역시 한 때 민주화투쟁의 기간에는 공무원이란 부당한 권력, 거대한 악에 기생·봉사하는 집단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비록 잠깐이었지만 정부에 들어가 일하면서 시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이 나라는 쿠데타로 집권한 정치군인의 무리와 그 잘난 역대의 지도자들이 있어 지탱·유지되어 온 것이 아니라, 어쩌면 공무원이 있어 이만큼이라도 나라꼴을 갖추게 된 것임을 알았다.
 
공무원이 있었기에 이 정도나마 나라꼴을
실제로 나는 1천5백여 명에 달하는 전교조해직교사를 복직시킬 때나, 2002년 월드컵을 유치할 때 공무원들의 우수한 능력과 그 성실성, 그리고 그들의 책임감에 놀랐다. 역사를 보면 관료들의 무능과 부정·부패 때문에 나라가 망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존재 때문에 나라의 명맥이 유지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대통령직 인수과정에서 이른바 ‘공무원의 영혼’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노무현 정권의 국정홍보처가 참여정부의 이데올로그 역할을 한 행태에 대한 비판이 일자 그에 대한 반론 비슷하게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말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선출된 권력을 뒷받침해야 하는 공무원으로서는 자기의 영혼을 가지고 일할 수 없다는 자조가 그 말속에는 담겨 있었다. 1백년전 막스베버가 관료제의 맹목성과 위험성을 간파했다는 그 통찰력이 한국에서 새삼스럽게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최근 또다시 ‘공무원의 영혼’이 문제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종합부동산세 완화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지난날 참여정부시절, 종부세 강화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글을 국정브리핑에 올린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입장을 바꾼 배경에 대해 “정권이 바뀌었으면 바뀐 방향에 따라 서포트해주고 지원해 주는 것이 공무원의 책무”라고 강변했다고 한다. 바로 그 부처의 장관조차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에 규정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신분보장의 정신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의 정책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말은 공무원에게는 영혼이 없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으로 들린다.
 
과연 그런가. 나는 영혼이 있는 공무원을 보고 싶다.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 이 땅에도 있다는 것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공무원에게 영혼을 불어넣고, 불어넣지 않고는 권력이 할 탓이다. 공무원을 영혼 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시키는 쪽이 정당해야 한다. 그것이 시대정신과 공동선에 합치되고, 국가백년대계와 국리민복에 합당한지를 심사숙고, 신중히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권력의 무분별과 아집 탓, 그래도 공무원은 자구노력을 해야
누가 영혼 없는 공무원을 만들어내는가. 권력의 무분별과 졸속, 아집과 편견이 영혼 없는 공무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국민적 합의를 먼저 구한다면 영혼 없는 공무원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오면서 수많은 영혼 없는 공무원이 생겨나고 있으며, 좌우로 정권이 이동할 때마다 영혼 없는 공무원은 더욱 양산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공무원 스스로 영혼을 가지고 살려는 자구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영혼은 저절로 주어지거나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산(茶山)은 목민심서의 봉공(奉公)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윗사람의 명령이 공법에 어긋나고 민생에 해를 끼치는 일이라면, 마땅히 의연하게 굽히지 말고 확연하게 자신을 지켜야 한다.”(唯上司所令 違於公法 害於民生當毅然不屈 確然自守)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8/01 04:00 2010/08/01 04:00

댓글0 Comments (+add yours?)

Leave a Reply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gimche/trackback/1082

Newer Entries Older Entries

새벽길

Recent Trackbacks

Calender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