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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8가, 그리고 성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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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윗을 하다가 강풀님(@kangfull74)이 "노래 (청계천8가)의 한 대목.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가슴을 공명시키는 민중노래."라고 쓴 걸 보고 "청계천8가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아마 이 노래를 아는 많은 이들이 좋아하지 않을런지..."라는 리플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찾아보니 저의 진보블로그엔 이 노래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더라구요. 그래서 생각난 김에 예전에 네이버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펌해서 올립니다. 그 글을 쓴 것도 2004년이니 6년이 넘었네요. 이에 덧붙여 '성탄, 그리고 청계천 8가'라는 글도 함께 올립니다. 유튜브에 동영상파일이 올라왔으면 좋았을 텐데, 없더군요. 대신 오디오파일을 함께 올리면 저작권 위반이 될까요? 공식음반으로 나오기 이전 버전이니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혹시 나중에라도 문제가 되면 바로 지우럽니다(비굴하지만 예전에 한번 곤혹을 치룬 적이 있어서리...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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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8가   2004/06/16 00:46

 

저에게 민중가요는 단지 노래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길이 그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내가 흐트러질 때 나를 바로잡아주는 등대였습니다. 특히 '청계천 8가'라는 노래는 언제나 치열한 삶의 현장에 뿌리박고 살아야 함을 알려주었지요. 

 

천지인 1집 - 청계천 8가

 

청계천 8가를 처음 접한 것은 <노자세소>라는 공연에서였습니다. 노자세소는 아마 '노래가 있는 자리, 세상을 여는 소리'의 줄임말로 기억되는데, 90년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학내에서 민중가요가 점차 불리워지지 않는 것에 제동을 걸고 학생들이 민중가요를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하며, 노래패들이 정기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서울대에서 94년경부터 매주 점심무렵마다 하던 정기공연이었습니다. 각 단대 노래패와 중앙노래패인 메아리 등이 공연을 해서 많은 관심을 모았지요.
  
이제는 그 명칭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때 공연을 했던 노래패 중에 락그룹을 표방하면서 전자악기로 무장하고 자작곡과 그 때 유행하던 민중가요를 락풍으로 편곡하여 부르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과후배인 김진욱 님이 드럼을 쳤고, 리드보컬로 박지현 님이 나섰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박지현 님은 나우누리의 노래모임과 설대 사범대 노래패 '길'에서 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타는 목마름으로', '함성 속에서', '타는 목마름으로'(이 노래는 서기상 님이 리바이벌해서 유명해졌습니다) 등을 작사. 작곡했고, 나중에 음반도 내었습니다. 불법음반...-.-;;

 

그 때 이들을 통해 처음 천지인의 '밤바다'와 '청계천 8가' 등을 접했습니다. 뭔가 애절하면서도 가슴에 와닿는 가사가 귀에 들어오더군요. 물론 저는 그 때 노래공장 2집을 통해 민중가요계에서는 새롭게 시도된 약간 락풍의 리듬에도 적응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발라드가 더 좋았던 듯 합니다.
 
청계천 8가가 이렇게 맘에 들었지만, 처음에는 누구의 노래인지, 누가 불렀는지도 몰랐죠. 그 때 저는 고시공부를 한다고 매일 학교 도서관에 나와서 앉아있었지만, 매주 수요일에 하는 '노자세소' 공연을 할 때면 도서관에 있다가도 나가서 공연을 보곤 했습니다. 귓가에 민가가 들리는 데 어찌 공부가 되겠습니까? 이런 정신으로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 때 파악하고 일찍 접었어야 했는데... ㅡ.ㅡ;; 아무튼 가끔씩 듣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공연할 때 가끔 불리워지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물어물어 이게 천지인(http://www.chunjyin.co.kr/)의 노래라는 것을 알았고, 천지인의 음반을 살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오는 길에 사회과학서점인 '그날이 오면'에서 '천지인 1집'을 사서 그 자리에서 항상 가지고 다니던 녹음기에 헌법강의 테입 대신 천지인 1집을 끼워넣었지요. 그렇게 '청계천 8가'는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매일 등하교길에 근 한두달 동안 천지인의 테입만 들었던 듯 합니다. '청계천 8가'와 '청소부 김씨, 그를 만날 땐', '밤바다', 그리고 '우리들의 외식' 등의 노래를 외웠지요. 
 
95년도쯤에 2년 아래 후배 한명의 생일모임에서 이 노래를 처음 불렀습니다. 그리고 96년경엔가 학교에서 천지인이 대동제에서 공연을 할 때 이 노래를 라이브로 처음 들었습니다. 물론 그 때는 남성 리드보컬이 군대를 간 후여서인지 여성보컬의 목소리로 들었구요. 아마 손현숙 씨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다음부터 청계천 8가는 저의 18번이 되었습니다. 혼자 거리를 거닐 때에도 어김없이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게 되는 가사, "파란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그러면서 가슴에서 뭔가 뭉클하고 솟아오르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천지인 2집 - 청계천 8가(Acoustic 버전)

 

이 노래를 들으면서 민중가요도 단지 생경하고 선동적인 구호성의 가사로 점철된 것이 아니라, 군가풍의 획일적인 리듬을 가진 것이 아니라, 바로 구체적인 삶의 끈질김과 치열함을 노래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노래에서 정감어린 사람사는 냄새가 난다고나 할까요?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지요. 더구나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이제는 청계천 8가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지금, 어쩌면 추억의 고전으로 남게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 2월경엔가 반전집회를 하는 도중 천지인이 문화공연을 하면서 '청계천 8가'를 부르는데, 다들 따라부르더군요. 이젠 거의 임을 위한 행진곡에 버금가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싶은데...
 
이렇게 민중가요와 락을 결합시킨 민중락밴드로서 1993년에 결성된 천지인은 메이데이, 이스크라와 함께 한국민중가요의 흐름에서 락음악이 그 중의 주요 장르로 수용되도록 하는데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다른 밴드들은 다 사라졌지만 천지인은 여전히 살아남아 아직도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노래 중에서도 특히 '청계천 8가'는 노래패에서 기타코드를 배우는 데 최선의 악보가 되고 있지요. 또한 대학 노래패들이 새내기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할 때 항상 나오는 곡이기도 하고요. 천지인 1집은 이에 힘입어 노래공장 1집과 함께 민중가요계의 비공식음반으로는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천지인 1집에 수록된 노래가 가장 많이 불리워지지만, 천지인 2집의 어쿠스틱 버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손현숙님의 버전도 새로운 느낌이 들겁니다.

 

참, 원래 청계천 8가는 김성민 씨가 천지인 1집을 만들면서 마지막에 음반을 채우기 위해 급조한 노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대박을 터뜨린 거죠. 아무래도 노래에도 무엇인가 영감같은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손현숙 - 청계천 8가(김원빈, 정은주 편곡)

 

                   청계천 8가

                                                     김성민 작사. 작곡

 

파란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물샐틈 없는 인파로 가득찬
땀냄새 가득한 거리여 어느새 정든 추억의 거리여
어느 핏발솟은 리어카꾼의 험상궂은 욕설도
어느 맹인부부가수의 노래도
희미한 백열등 밑으로 어느새 물든 노을의 거리여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던 한낮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빈 거리여
칠흙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워~워~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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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그리고 청계천 8가  2005/02/15 20:06

 

새벽에 구름배님의 블로그에 들렸다가 청계천8가의 노랫말이 김정환 시인의 '성탄'이라는 시를 옮긴 것임을 알았습니다. '성탄'은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온 김정환 님의 1982년 첫 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에 실려있는 시였습니다. 그래서 웹서핑을 통해 '성탄'을 그렇게 찾으려고 했건만 없더군요. 이걸 확인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것도 병인 것 같아요.)
 
그래서 오후에 '그날이 오면'에 들려서 [한국의 빈곤과 불평등: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관련하여](도서출판 오름, 2004 - 이 책은 윤도현, 김성희, 김정훈 님이 공저한 것으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온 것인데, 최근에 빈곤·복지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뭔가 구체적인 것을 알아야겠다고 하던 차에 발견한 것입니다)이라는 책을 사면서 <지울 수 없는 노래>가 있는지를 살펴봤지요. 딱 한권 있더군요. 가격은 4000원. 싼 맛에 샀습니다.  
 
1982년이면 김정환 님이 1954년생이니 서른도 채 되기 전에 쓴 시집이지요. 그 때는 인텔리 냄새가 나도록 하면서 현실주의에 충실한 그런 시들을 쓰려고 노력했나 봅니다. '성탄'이라는 시도 마찬가지이구요. 물론 형식에 있어서 뭔가 변화를 주려 한 흔적은 있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고. 
 
살펴보니 정말 청계천8가에 나오는 노랫말들이 많이 등장하는군요. 저는 김성민님이 곡과 글을 쓴 것으로 알았는데... 사실 이런 시에서 그런 노랫말을 빼오는 것도 웬만한 사람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일 겁니다. 둘 다를 알고 나니 10년뒤에 나온 노랫말이 더 좋게 느껴진다는... ㅡ.ㅡ;; 그리고 시에서는 청계천8가가 아니고 6가네요.  

 

                 성   탄
                                                                    김 정환 시
 
그해 겨울, 그날의 부근 동안을
난 내내 청게천 6가에서 살았다
칠흑 같은 밤이 술렁거렸고, 땀에 찌든 막벌이꾼들의 치미는 근육덩어리들이
반짝였다, 어물전에 산더미처럼 쌓인 생선의 비늘들이
진압치 못해 축축한 성욕처럼 온 세상 위를 꿈틀대며 기어갔다
그리고 밀어닥친 홍수처럼, 아님 밀려난 흥남부두처럼
사람들이 파란 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마구 건너갔다
 
   보따리가건너갔다비틀거리는어깨들이건너갔다물샐틈없는크
리스마스캐롤들이건너갔다생계유지걱정무겁게매달린자식새끼
들이덕지덕지건너갔다큼지막한헤드라이트불빛들이사방에서마
구덮쳐얼굴을갈겼다도대체숨쉴틈을주지않는이땅은누구땅이냐
핏발불끈솟아오른리어카꾼의험상궂은욕질이그틈을비집고건너
갔다김이모락나는순대가건너갔다홍어찜이건너갔다이조시대민
중의수탈을절인오줌냄새가건너갔다그북새통을쫓겨나못비킨다
못비켜이자리는죽어도못비킨다아낙네가보따리를움켜쥐고길을
건너갔다차량의홍수가흐르는밤거리희미한백열등밑에서맹인여
가수의마이크목소리가축축히젖어들었다오늘도걷는다마는청계
천 6가내가쫒겨나는것이아니다좀더끈끈한삶그대로우리들의희
망은희미한가로등과비린내내일의가난을어쩔수없을지라도성시
반짝이는것은살아있는것들일뿐산다는것은얼마나위대한가물샐
틈도없이사람들이횡단보도를넘쳐흘러갔다.
 
그해 겨울, 그날의 부근 동안을
난 내내 청계천 6가에서 살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가난의 뱃 속에서 희망의 씨앗이 잉태됐고
나는 온통 시끄러운 아수라장 속에서 알았다
반짝이는 것은 비참이 아니라 목숨이라는 것을
목숨은 어떤 비참보다도 끈질기다는 것을
현실은 어떤 꿈보다도 더 많은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성스러움의 끈적끈적함을, 끈적함의 견고성을
 
                                                    <우리 세대의 문학 ·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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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8 23:06 2010/09/08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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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gimcheol님의 트윗 Tracked from @gimcheol 2010/09/08 23:11

    청계천8가를 심심하면 부르는데, 그럼 저도 음유시인? ㅋㅋ 생긱난 김에 천지인의 '청계천 8가'에 관한 사연을 블로그에 올립니다. http://bit.ly/ajyf23 @ecorednom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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