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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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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져나올 수 없는 어둠, 정녕 출구는 없는가? (프레시안, 이관형 미학자, 2010-10-08 오후 7:23:58)
[프레시안 books]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
 
혁명을 꿈꾸는 자가 있는가? 인간 이성을 신뢰하는 자가 있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라. 그 기치 하에 일어난 일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를. 혁명에 침을 뱉을 자가 있는가? 인간 이성을 조소하는 자가 있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라. 당신이 조소하는 인간 이성과 혁명이 치열하게 이루려 한 것을. 그 위대한 문제의식을.
 
혁명! 러시아 혁명! 그것은 애굽(이집트)의 종살이를 걷어치우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들어감을 보장하는 인간 이성의 약속이었다. 미륵 세상이자 천년 왕국의 약속이었다. 장자(莊子)가 소요유로, 스파르타쿠스가 반란으로, 각종의 민란과 농민 전쟁으로 꿈꾸었던 그것이었다. 엥겔스가 독일 농민 전쟁을 분석한 후 그것이 실패한 이유를 혁명의 물적 토대의 부재에서 찾고 이제 근대 자본주의의 물적 토대(생산력)에서 비로소 인류의 오랜 꿈, 모든 사상과 모든 종교가 이루고자 한 그것, 평등 세상의 실현이 과학적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신이 약속한 가나안 땅은 40년 광야 생활의 고통을 통해서야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는 젖과 꿀이 흐르지 않았다. 인간이 약속한 가나안에 다다르는 데에는, 비록 수많은 이의 피가 필요했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1917년 혁명 발발 후 불과 5년 만에 20세기의 가나안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20세기의 가나안'에도 젖과 꿀이 흐르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광야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인간의 약속은 70년도 채우지 못하고 파기되었다.
 
그 7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가? <한낮의 어둠>(아서 쾨슬러 지음, 문광훈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은 이 70년 초반의 10여 년간 벌어진 일을 소련 공산당 최고의 이론가 부하린을 모델로 했다는 주인공 '루바쇼프'의 최후를 통해 보여준다. '젖과 꿀이 흐르게' 하고자(?) 먼저 동지들의 '피를 흐르게' 했던 일련의 사건을 그 동지들의 대표 단수 '루바쇼프'를 통해 전한다.
 
그 10여 년간 허다한 혁명의 주역들이 죽었다. 그것도 혁명 과정이 아니라 혁명을 이룬 소련에서, 적이 아닌 동지의 손에 죽어갔다. 레닌이 병석에 있던 1923년 스탈린, 지노비예프, 카메네프는 트로이카 체계를 형성, 반 트로츠키 노선을 편다. 1924년 트로츠키와 그 파는 힘을 잃는다. 공동의 적 트로츠키가 힘을 잃자 1925년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는 레닌의 부인인 크루프스카야 등과 손을 잡고 스탈린과 대적한다. 스탈린은 부하린 등과 연합한다. 지노비예프 등은 세를 불리기 위해 이번엔 반대로 트로츠키 등과 이른바 '통합반대파'를 결성한다. 1926~27년이다.
 
그렇지만 1928년 이후 트로츠키는 당에서 제명되고 유배, 국외 추방의 길을 걷다가 1940년 망명지 멕시코에서 자객에게 피살된다.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 등도 부침을 거듭하다가 1936년 모스크바 재판을 통해 처형된다. 이들(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 등)의 처형을 계기로 1937~38년 고참 볼셰비키들에 대한 처형 광풍이 몰아친다. 부하린도 이 광풍을 피하지 못한다. 그는 스탈린 진영에 가담했으나 한때 지노비예프 등을 끌어들여 스탈린과 대적하려 했던 적이 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1938년에 처형된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갔다. 이중(二重)의 데자뷔(旣視感)를 경험했다. 이 책을 처음 읽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 책 안의 상황을 이미 겪었다는 느낌. 내가 무슨 대단한 투사였다고 죽음으로 내몰리는 주인공 '루바쇼프'와 같은 경험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철이 바뀌어 새로 꺼내 입은 옷에 들어 있던 꼬깃꼬깃한 지폐처럼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 온갖 악다구니를 쳐도 쉴 새 없이 쏟아지던 군홧발의 아득한, 아련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더불어 'SKRM(남한 혁명 운동)'이라는, 지금 생각하니 무모하고 모호해서 오히려 가상하고 기특하기도 한, 그를 둘러싼 소위 '사투(사상 투쟁)'의 기억까지 밀려왔다. 그리고 그로 인해 서로의 가슴에 남은 깊은 상처들까지···.
 
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정말로 만약에 우리가 성공했더라면? 우리 역시 수많은 생쥐스트와 로베스피에르와 트로츠키와 지노비예프와 부하린과 또 다른 박헌영과 임화를 낳지 않았을까? <한낮의 어둠>을 읽으면서 느낀 데자뷔는 우리가 겪은 1980년대의 혁명도 무엇도 아닌 상황에서조차 예상할 수 있었던 어둠, 한낮이 도래하기도 전에 느꼈던 어둠이 아니었을까?
 
그래서였나? 나는 <한낮의 어둠>의 한 장 한 장을 쉽사리 넘기지 못했다. 인생의 "한낮"이던 푸르던 날의 푸르른 기상은 기억에 없고 "한낮"을 옥죄던 구속과 폭력의 두려움, 조직과 인간에 대한 실망, 미래에 대한 전망의 부재, 나 자신에 대한 역겨움과 좌절 등의 "어둠"만 되살아났다. 이제 초연할 만도 한데 그렇게 되질 않았다. 모든 평론이 그렇듯 서평도 그 대상과 얼마간의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책은 우리의 1980년대와 오버랩(overlap)되면서 다소간의 객관성도 유지하지 못할 지경으로 나를 끌고 갔다.
 
루바쇼프는 '우리' 볼셰비키들의 정치적 입장을 이렇게 말한다. "위태로운 전환기에는 오래된 법칙(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법칙) 외에는 어떤 것도 불가능하다. 우린 이번 세기에 신마키아벨리즘을 도입했다. (··) 우리는 보편적 이성의 이름을 내건 신마키아벨리주의자였고 그것이 우리의 위대성이었다." (138쪽)
 
저자 아서 쾨슬러는 '그들' 볼셰비키에 대해 덧붙인다. "그들은 권력 철폐를 지향하는 권력을 꿈꾸었고, 사람들의 지배받는 습관을 없애기 위해 지배하는 일을 꿈꾸었다." (87쪽)
 
루바쇼프는 이런 신념 하에 자기 자신이 훗날 똑같은 논리로 제거당할 논리를 내세워 하부 당원(리하르트)을 제거한다. "역사는 망설임과 주저를 모른다네. 완만하지만 과오 없이 자기 목표를 향해 흘러갈 뿐이지. 역사는 지나는 경로의 모든 굴곡에 그것이 실어 나르는 진흙과 익사자의 시체를 남기네. 역사는 자기 길을 알고 있고, 결코 어떠한 잘못도 저지르지 않아. 역사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갖지 못한 자는 당원이 아니야." (67쪽)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한 일,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망설임과 주저'에 봉착한다. "미래에 무엇이 진리로 판단될 것인지 현재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타고난 예지적 능력도 없이 예언자의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비전을 논리적 추론으로 대치시켰다." (142쪽)
 
결국 그는 자신이 패배하였음을 자인한다. "사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나의 무오류성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패한 이유이다." (142쪽)
 
그럼에도 루바쇼프는 '품위'를 버리고 '이성'을 택한다. 즉 역사를 위해, 당을 위해, 인민을 위해 최후의 봉사를 한다. 당으로부터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함에도 당의 지시를 이행한다. 자신이 반동이자 배신자라고 공개 재판을 통해 거짓(?) 증언을 함으로써, 인민의 공분이 자기에게 쏠리도록 함으로써 말이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에도 그는 의문의 답을 얻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그 의문을 자신의 가슴에 묻어야만 했다. "그러나 약속된 땅은 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이 방황하는 인류를 위한 그런 목표가 정말로 있었는가?" (351쪽)
 
혹자는 말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말이 옳았다고. 근대적 생산력이 뒷받침되어야, 즉 '젖과 꿀'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어야 혁명이 일어난다고. 그러나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의 필연적·법칙적 도래를 기다리자고 하지 않았다. 결국 혁명은 오히려 '약한 고리(?)'인 러시아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직까지 '의지'가 개입하지 않은 '필연'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혁명을 성취한 볼셰비키들이 이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들은 '젖과 꿀'의 문제를 놓고, 그 문제를 실현할 권력의 문제를 놓고 격돌했다. 스탈린이 승리했다. 그 결과 '소련'은 정확히는 69년 만에 간판을 내린다. 혹자는 스탈린이 사회주의를 말아먹었다고 한다. 혹자는 스탈린의 중공업 정책이 있었기에 그나마 소련이 69년이라도 지속될 수 있었다고 한다. 무엇이 옳든 가정은 가정일 뿐이고 가치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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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0 17:28 2010/10/1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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