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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몸값』 (오쿠다 히데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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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몸값』 1, 2권
오쿠다 히데오 장편소설,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

 
책 표지에는 이러한 소개가 나와 있다.
“소설이든, 수필이든 자신만의 확고한 개성을 통해 ‘오쿠다 월드’라는 말을 창조시키며 독자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작가 오쿠다 히데오. 3년 만에 내놓은 장편 신작 『올림픽의 몸값』은 그의 새로운 도전이 담긴 역작이다. 특유의 섬세하고 흡인력 강한 스토리텔링과 살아 있는 캐릭터는 유지하면서, 여기에 그동안 미처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두근거리는 긴장감, 시대에 대한 리얼리티, 사회에 대한 메시지가 유연하게 녹아있다. 지루할 틈 없이 전개되는 세 사람에 대한 90여 일의 기록은 ‘이야기꾼 오쿠다’에 대한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오쿠다 히데오는 이 작품으로 제43회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경쾌한 느낌을 주는 오쿠다 히데오의 전작들과는 구분된다. 헌책방에 나와 있길래 낼름 사서 읽었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얘기들이 그리 만만치가 않다. 하나하나가 웬만한 세미나의 주제가 될 수 있을 정도.  
작년 이맘 때 즈음에 읽고 인상적인 주요부분만 발췌해놓았는데, 오늘
강양구 기자의 기사에 이 책이 언급된 것을 보고 다시한번 발췌된 부분을 정리해보았다. 당시 읽을 때에는 주인공 구니오의 출생지역이 후쿠시마 원전이 소재한 도호쿠 지방이었다는 걸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역시 책읽기도 포인트를 잡아서 읽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도호쿠 지역의 묘사는 발췌되어 있다.  
항상 하던대로 내가 발췌한 부분을 중심으로 약간의 코멘트를 덧붙인다. 물론 다른 이의 생각을 빌려온 것도 있고...

 

 1. 주요 등장인물은 네 사람이다.
우선, 올림픽 경비본부 최고책임자의 둘째아들로 도쿄대 출신 최고 엘리트 가문의 자제인 스가 다다시. 그는 엉뚱하게 텔레비전 방송국 연예부에 입사한다. 이 또한 시대적 흐름을 간파한 것이다.
일류대학은 나오지 못하고 평범한 대학을 졸업하여 경찰이 된 뒤, 현장을 착실하게 내 발로 뛰는 말단형사의 ‘직감’으로 어려운 사건을 풀어나가는 오치아이 마사오. 그는 도쿄 교외에 등장한 아파트단지에 입주한 ‘단지족’이기도 하다. 그는 만삭의 아내와 이제 곧 두 살이 되는 아들을 사랑하는 소시민 ‘가족주의’의 상징이기도 하다.
도쿄대 앞 헌책방 집 딸 고바야시 요시코는 가게에 꽂힌 책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이제 막 일본에 상륙한 비틀즈에 열광하는 아가씨이다. 꽃미남 도쿄대 학생에게 마음이 설레고 백화점 신상품을 할부로 사들이는 직장여성이다.
이들 세명은 도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바란다. 대부분의 민중들이 그러한 생각을 지니고 산다. 한국에서도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를 바라는 것처럼. 소설 속에서 한 트로츠키주의 분파의 한 학생이 이를 잘 언급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은 이미 이론을 뛰어넘어버렸어. 아무리 체제 측의 프로파간다라고 호소해도 이제는 절대 귀를 기울여줄 사람이 없어.”
“시마자키, 이건 어디까지나 전술의 문제야. 올림픽 분쇄를 외쳤다가는 그 길로 일본의 좌익 운동은 최소한 100년 동안은 민중의 신임을 잃어. 이해 좀 해줘라.” (2권 260쪽)
그래도 동계올림픽 유치의 문제점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이를 언급하는 매체도 있으니 1960년대의 도쿄보다는 나은 셈인가?
하지만 도쿄대 경제학부 대학원생인 시마자키 구니오는 이를 방해하려고 한다. 춥고 척박한 북녘 아키타에서 가난한 농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으나 일본 최고의 도쿄대에 합격한 수재이다.
스가 다다시, 오치아이 마사오, 그리고 시마자키 구니오, 이 세 사람의 눈으로 이야기가 서술되는데, 오쿠다 히데오는 이 중에서 누구의 눈으로 보고 있을까. 오쿠다 히데오의 전력으로 봤을 때 그나마 구니오의 시각이 제일 가깝기는 한데, 저자는 여기에서도 조금 떨어져 있다. 그와 별개로 가장 바람직한 시각은 무엇일까?
 
2.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일어난 후의 시간을 교차하면서 진행되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런 소설을 본 적은 그리 많지 않은데...
 
3. 형사인 마사오의 얘기 속에는 공안부와 형사부의 대립이 잘 드러난다. 공안부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온갖 불법적인 일을 다 자행한다. 공안부와 형사부는 같은 사건을 다루면서도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전형적인 관료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4. 구니오가 살았던 마을에 대한 묘사
어떻게 해볼 수도 없이 가난하고 미래라고는 없는 이 마을 꼴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경제백서가 노래하던 ‘이제 전후의 피폐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라는 선언은 도쿄에만 해당되는 것인가. 이 마을은 전쟁 전부터 똑같은 생활고에 허덕였다. 이렇게 살기가 고단하다니, 대체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그야말로 동물의 삶이다.
… 어머니가 돌연 파르르 떠는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큼직한 눈물이 비 오듯이 땅에 떨어지고 얼굴을 구깃구깃하게 만들었다. 그 눈물은 아들의 죽음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무상한 운명에 대한 항의처럼 보였다.
… 구니오는 끝까지 울지 않았다. 자신이 눈물을 쏟으면 형과 이 마을이 더욱 더 비참해질 것 같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1권 117-118쪽)
 
어머니가 좀 더 있다 가라고 했지만, 집에 있어봐야 할 일도 없고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서 가정교사 아르바이트가 있다고 둘러대고 도망치듯이 고향 마을을 떠나왔다. 구니오는 어머니의 슬픈 웃음을 바라보며 견딜 수 없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공부 하나 잘하는 덕분에 자기 혼자만 고향의 가난함에서 벗어났다는 현실의 잔혹함과, 그것을 받아들인 데 대한 죄책감이었다. 자산은 구마자와 촌에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아무 도움도 될 것 같지 않은 학문의 세계에서 살아가려 하고 있었다. 자신은 매정한 인간이라는 자책에 휩싸였다. 그 괴로운 자책감은 우에노역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우에노역 플랫폼에 내려서자 그때까지 차 안에서 들려오던 도호쿠 사투리는 깨끗이 사라지고 개찰구를 빠져나와 인파 속에 섞여들자 뭔가 무거운 족쇄에서 해방된 듯한 마음이 들었다.
도쿄의 풍경은 잡답 그 자체였다. 눈에 비치는 모든 곳에 사람이 있었다. 그것이 지금의 구니오에게는 고마웠다. 분모가 크면 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관심의 양은 적어진다. (1권 159-160쪽)
→ 책에 나오는 구니오의 심정에 대한 묘사는 소위 서울 명문대에 다니는 시골 출신 대학생들이 7-80년대에 느꼈던 그것일 터이다. 이를 느끼지 않았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
 
5. 노동자들
구니오는 배에 힘을 주어 스스로 기합을 넣었다. 육체노동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타락하고 만다. 자본이 만들어낸 무한한 욕구가 품고 있는 비합리성,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건 프롤레타리아밖에 없다. 세상을 바로잡는 건 프롤레타리아를 빼고는 없다. 고향의 어머니가 흘린 눈물은 피눈물이다―.
몸 안쪽에서 후끈 달아올랐다. 오늘부터 열심히 해보자고, 달리기 경주에 임하는 초등학생처럼 결심했다. (1권 184쪽)
→ 이 소설의 배경은 68년 도쿄올림픽 시기이지만, 이를 70년대말 80년대초의 한국현실에 대입하면 그대로 들어맞는다. 아마 80년대 현장에 투신한 학출들도 구니오와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프롤레타리아를 육체노동자로 한정하여 협소하게 파악하는 것도 과거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면 그러했을 것이고... 다만 건설현장에 대해서는 룸펜 프롤레타리아라고 하여 변혁의 주력군에서 제외하지 않았던가.
 
“왜 나를 지명했어요?”
남자(본사인 건설회사 사원)는 가볍게 쓴웃음을 짓더니 “인부 중에 심부름을 부탁할 만한 사람은 형씨밖에 없잖아요”라고 말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일하는 게 좋죠. 힘쓰는 일은 돈벌이 나온 인부들이 하면 돼요. 그 사람들은 그것 말고는 못하잖아요. 우리한테는 다른 할 일이 있어요. 적재적소라고 하죠? 대학원 졸업하면 형씨도 두뇌 쓰는 직장에 다닐 텐데.”
구니오는 애매하게 웃었을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의 친절은 분명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인부에게 그런 친절을 베푸는 일은 없다. 아라이 이하의 노동자들은 미리부터 다른 계급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적재적소? 혼자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혹시라도 인부들이 듣는다면 크게 분노할 것이다. 분노 끝에는 분명 허탈한 마음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리고 쿠데타는 일어나지 않는다.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다. (1권 271쪽)
 
시마자키 구니오가 다다시의 집이 폭파되기 전날인 8월 21일에 자신의 지도교수인 마르크스경제학자 하마노 교수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저는 현재, 도쿄올림픽 건설 현장에서 일합니다. … ‘근대주의의 최대의 무기가 생산이라면 그것을 비판하지 않고서 근대주의를 극복할 수는 없다’라고 교수님께서 언젠가 하신 말씀을 지금은 그저 되새기고 또 되새길 뿐입니다.
여기에서의 노동은 한 마디로 가혹 그 자체입니다. 아침 7시에 버스에 차곡차곡 태워져 현장에 쏟아놓으면 그 다음은 소나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근로기준법도 타관 인부에게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잔업은 사실상 강요되고 식사와 수면을 제하고는 오로지 노동뿐인 나날입니다. 부상을 입어도 산재가 인정되는 건 건설회사의 정규직 사원뿐이고 타관 인부는 무시됩니다. 사람이 죽어도 유야무야되고 맙니다. 현장 감독의 눈은 항상 윗선의 회사 사람에게로만 향하고, 아래쪽의 의사가 위로 전달되는 일은 없습니다. 노동력은 무한히 보충되는 것으로서 비품과 동일한 취급을 받습니다. 아니, 값비싼 중장비와 비교한다면 인간은 그 이하이겠지요.
그런 상황이니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의 모순에 크게 분개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실상은 지극히 조용합니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합숙소에 돌아와 술을 마실 때, 그들은 평범하고 명랑하고 거침이 없습니다. 저 자신도 마찬가지여서 착취 구조의 맨 밑에 있으면서도 쉽게 현실을 받아들여 거의 종복과 같습니다. 만일 마르크스가 이곳에 있었다면, 저임금에 장래에 대한 보장도 없는 상황인데도 떨쳐 일어서지 않는 무저항 일변도의 노동자들을 보며 크게 낙심하고 고뇌할 것입니다. ‘계급투쟁이란 실은 계급 간의 다툼이 아니다’라고 교수님은 저서에게 밝히셨습니다만, 저는 그 의미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노예를 해방시켜주는 것은 노예 측의 지도자가 아니라 지식계급 혹은 유산계급에서 태어난 이질분자, 혹은 테러리스트들이라고 이제야 실감했습니다. 거기에 제가 ‘조합도 사회주의 정당도 실은 부르주아의 일종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덧붙인다면 교수님은 어떤 반론을 하실까요. 노동의 실천이라는 건 지식을 뒤흔드는 힘을 가진 모양입니다. (1권 353-354쪽)
급조된 건축물들에는 서구적인 도시로 거짓되게 꾸미려고 안달하는 도쿄의 왜곡됨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거대하고 아름다운 콘크리트 덩어리 뒤에 일본의 현실은 감춰지고 무시되고 있습니다. 민중에게 헛된 꿈을 부여하여 현실을 망각하게 하는 것이 지배층의 상투수단이라면, 현재로서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굳이 어려운 이론을 펼치지 않더라도, 저희 고향은 지금 빈곤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착취의 가장 밑바닥에 있습니다. 그들은 양처럼 얌전할 뿐입니다. 올림픽이 일시적인 사탕이 된 것이겠지요. (1권 354-355쪽)
 
“올림픽 끝나면 나는 또 다른 공사 현장이야. 그 다음에는 어디가 되려나. 도쿄만 매립 아니면 고속도로 연장 공사인가? 어딜 가건 일은 다 똑같지. 곡괭이 휘두르고 일륜차 끌고 합숙소에서 자고, 그게 우리 인생이야.” 요네무라가 잔디를 뜯어 내던지며 한숨을 쉬었다.
“어이, 요네무라. 시마자키 마음 아프겠다. 이 녀석은 착한 놈이야. 머리가 좋아도 거들먹거리지 않고 잘난 척하지 않고. 이런 놈이 정치가가 된다면 우리 살기도 한참 좋아질 텐데 말이다.” 시오노가 옆에서 거들고 나섰다. “기왕이면 아주 높은 사람이 되어 줘. 네가 언젠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높은 사람이 되면 그거 보면서 이 사람 안다고 자랑 좀 쳐보자.”
“예, 그래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구니오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자신은 머지않아 텔레비전에 보도될지도 모른다. 지명수배자나 체포된 범인으로. 그렇게 되면 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국가 권력에 대항한 레지스탕스라고 경의를 표해줄까, 아니면 일본을 수치스럽게 한 매국노라고 분개할까.
구니오는 합숙소에서 한 달 반을 보내면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있었다. 가혹한 노동을 강요받는 프롤레타리아들이 전혀 사회를 원망하지 않고 반역의 의지도 보이지 않는 현실. 그들은 가난해도 지긋지긋해하지 않고, 원망이 있어도 그걸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그저 운명이라고 반쯤 체념한 채 살아갈 뿐이다. 이건 일본 민족만 가진 특별한 성질일까. 적어도 마르크스가 살았던 유럽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권 67-68쪽)
 
“자네, 도쿄대생이라며? 그런 머리 좋은 놈이 어쩌다 위에 대들 생각을 했어?” (오타니 파의 두목은) 위협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진기한 생물이라도 발견했다는 듯한 분위기다.
“도쿄올림픽이 그저 보여주기 위한 급조된 번영을 바탕으로 거행되려 하기 때문이에요. 이 나라의 프롤레타리아는 완전히 짓밟혀 마치 발판처럼 취급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그대로예요. 이걸 용서한다면 국가는 점점 더 자본가를 우대하겠지요. 누군가는 반기를 들지 않으면 민중은 앞으로도 계속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야 합니다.”
“아, 어려운 소리는 읊지 마. 요컨대 뭘 원하는 거야? 돈인가?”
“아뇨, 평등한 사회입니다.”
“평등? 그런 게 어디 있어?” 두목이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까지는 없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실현하려는 것이죠. 우리 고향은 빈농의 시골입니다. 정치권 밖으로 내팽개쳐진 지역이에요. 화려한 도쿄의 100분의 1이라도 좋으니 그 부를 돌려주고 싶은 겁니다.” (2권 206쪽)
 
정부 고급 관료인 아버지나 형이 어딘지 모르게 민간인을 업신여기는 듯 하던 게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권력의 편에 서게 되면 사적인 욕구에 따라 움직이는 민간인이 거치적거리고 열등한 생물로 보인다. 권력을 일단 손에 넣으면 그리 쉽게는 놓지 못하겠구나, 하고 다다시는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요컨대 세상이란 윗분과 그렇지 않은 쪽으로 나뉘는 것이다.
하긴 자신이 그중 아래쪽에 서고 싶은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자신이 텔레비전 방송국을 선택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패배한 분함과는 또 다른 생각을 했다. 나한테는 무엇보다 소중한 자유가 있다. 누구의 명령이라도 내가 이해할 수 없을 때는 복종하지 않을 의지가 있다. (2권 342쪽)
→ 중간계급들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오쿠다 히데오는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일하는 스시 다다시를 통해 현대 일본의 주력을 형성하게 되는 중간계급들의 심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네가 빨갱이라면서? 도쿄대에 들어갈 만큼 머리 좋은 아이니까 제발 세상 좀 바꿔줘. 우리 같은 일용직 인부가 희생물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할 거 아니냐.” 시오노의 말투에는 어딘가 건조한 체념이 있었다. 구니오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꼭 그렇게 좀 해다오, 응?”
그쪽에서 먼저 전화를 끊었다. 희생물이라는 말에 구니오의 마음은 크게 뒤흔들렸다. 예전에 마르크스를 인용하면서 혹독한 착취 구조 속에서도 저항할 줄 모르는 합숙소 노동자들이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잘못이었다. 그들은 현재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똑똑히 인식하고 있었다. 다만 싸울 방법을 알지 못할 뿐이다. (2권 363-364쪽)
올림픽 축하 무드에 찬물을 끼얹을 만한 사건사고는 모조리 무대 뒤로 감추려는 것일까. 신문까지도 본래의 사명을 망각하고 올림픽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다.
대체 올림픽 개최가 정해진 뒤로 도쿄에서는 얼마나 많은 인부들이 죽었을까. 빌딩 건설 현장에서, 다리와 도로 공사장에서 희생자가 끊이지 않았다. 신칸센 공사를 포함한다면 아마 수백 명을 웃돌 것이다. 그들은 수도 도쿄를 근대도시로 꾸며내기 위해 각 지방에서 바친 산 제물이었다.
구니오의 마음속에 침울하고도 참담한 감정이 마치 몇 년씩 농산물이 나지 않는 황무지처럼 덩그러니 가로놓였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이 뭔가를 개혁해보겠다는 욕망도 없었다. 있는 것은 죽어간 형이나 동료에 대한 애도의 마음뿐이다. (2권 364-365쪽)
→ 구니오는 계속 노동자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이미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이를 멈출 수는 없었다.
 
6. 공산주의?
시마자키 구니오가 요시코에게 하는 말.

“공산주의라고 하면 금세 빨갱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체제 측에서도 노골적으로 경계하지만, 인간의 근원적인 행복을 생각하는 지극히 순수한 사상이야. 공산주의란 우리에게 있어서, 창출되어야 할 어떤 상태이지 그것에 따라서 현실이 바로잡혀야 하는 어떤 이상이 아니야. 우리가 공산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실천적인 현재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적인 운동이야.” (1권 374쪽)
→ 시마자키는 물론 이 말을 하고 “이건 교재를 통째로 외운 거야. 시험 보려고 달달 외웠어”라고 덧붙였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7. 중앙과 지방
조악한 필로폰을 과다섭취하고 심장마비로 죽은 야마 씨의 부인과 구니오의 대화.

“도쿄는 참말로 좋구먼. 뭐든지 다 있고.” 아주머지가 지금 이 시간을 곱씹듯이 절절히 말했다. “같은 나라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키타하고는 참말로 딴판이야. 이 정도면 올림픽을 해도 외국 사람들한테 하나도 부끄러울 거 없겠어. 어디든지 넉넉하고 화려하니 기운이 넘치잖아. 길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다 복스럽고……. 참말로 도쿄에서 복은 죄다 독차지한 것 같구먼.”
“복을 독차지했다…….” 구니오가 그대로 따라 중얼거렸다. 이보다 정확한 말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니, 그렇게 놔둘 수는 없죠”라고 내뱉었다.
아주머니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구니오를 돌아보았다. 구니오 자신도 왜 그런 말이 튀어나왔는지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뭔가 뚜껑이 열린 것처럼 줄줄이 말이 튀어나왔다.
“도쿄만 부와 번영을 독차지하다니, 결단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에요. 누군가 나서서 그걸 저지해야 합니다. 내게 혁명을 일으킬 힘은 없지만, 그래도 타격을 주는 것쯤은 할 수 있어요. 올림픽 개최를 구실로 도쿄는 점점 더 특권을 독차지하려 하고 있어요. 그걸 말없이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요.” (1권 403-404쪽)
→ 한국에서 서울, 수도권의 위상이 일본에서 도쿄의 그것과 같지 않을까. 문제는 이를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인데, 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지방의 역량은 어떻게 강화될 수 있을까.
 
8. 올림픽을 보는 시선
“아저씨랑 나랑 (올림픽) 방해 작업 좀 해볼까요?”
구니오의 말에 무라타는 술이 목에 걸려 요란하게 켁켁거렸다. “이봐, 학생. 지금 뭔 소리야?” 바지에 흘린 술을 손으로 툭툭 털어냈다.
“개최 자체를 저지하기는 힘들겠지만 나라에 한바탕 파란을 일으킬 정도의 복안은 있어요.”
… 무라타는 구니오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사람은 참말로 겉만 보고는 모르는 것이구먼. 학생, 혹시 전학련이니 뭐니, 그런 거야?”
“아뇨, 나는 논 폴리스예요. 하지만 프롤레타리아의 한 사람으로서 권력자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양도 있다는 것을 저항이라는 형태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도대체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네. 학생,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괜히 올림픽을 방해했다가는 온 나라 사람에게 지탄을 받아.”
“그럴까요?”
“그야 물론이지!” 무라타가 단호하게 말했다.
구니오는 술을 입에 옮기며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벽의 포스터를 바라보았다. 국기의 빨간 빛이 평소보다 더 선열하게 비쳤다. 저건 어쩌면 민중의 피 색깔이 아닐까. 최근 한 달 동안 아키타 노동자가 둘이나 죽었다. 그것을 아는 국민은 거의 없다. 아니, 알았다 해도 문젯거리로 생각해주지도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올림픽을 위한 인간 희생물로 국가에 바쳐졌다―.
… “무라타 씨, 기왕이면 관헌을 상대로 돈을 쌔비잔 말이에요.” 구니오가 말했다.
“이봐, 그렇게 큰소리로 말하면 어떻게?” 무라타가 팔꿈치로 쿡쿡 쳤다.
“노동자들끼리 서로 빼앗아봤자 비참하기만 하죠.”
“학생,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라에서 왕창 뜯어내야죠. 룸펜 프롤레타리아의 반역입니다.”
“호오, 그거 좋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같이 하고 싶어.”
구니오가 술에 취했다고 생각하는지, 대충 맞장구를 쳐주는 느낌으로 아무렇게나 대꾸했다.
“우선 1억 엔 정도만 뜯어냅시다.”
“좋지. 나도 1억 엔 좀 만져보자.”
“올림픽을 인질로 몸값을 두둑이 받아낼 거예요.”
“그래, 좋네. 까짓 거, 하자!” 무라타가 쓴웃음을 지으며 술을 더 달라고 외쳤다.
구니오는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포스터 속 국기 색깔이 이제는 훨훨 타오르는 불길로 보였다. (1권 412-414쪽)
→ 『올림픽의 몸값』이라는 책 제목이 여기에서 나온 모양이다. 한국에서 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되었을 때 일부 운동권 학생들은 “분단올림픽 반대, 공동올림픽 개최”를 주장했다. 하지만 그 아래 도사린 계급갈등의 모습을 살피지 못했던 것 같다. 단지 김동원 감독의 영화 ‘상계동 올림픽’ 등 문화운동권에서만 올림픽 개최에 대해 계급의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바 있다. 이를 구니오의 시각과 비교해본다면 과거 7-80년대 한국에서의 운동이라는 게 얼마나 낭만적인 것이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9. 그리고 나머지 얘기들
구니오는 그저 빈말이나마, 다음에 또 오시라고 했더니 아주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이구, 내가 또 올 일이 있겠어?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데, 한가하게 여행 다닐 여가는 내 생전에는 없구먼.”
구니오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이 아주머니는 남은 인생을 오로지 육체노동에 바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큰 특권을 쥐고 있는지 새삼 실감하고, 동시에 노동자 계급에 강한 부채감을 느꼈다. 기껏 공부 하나 잘한다는 것으로 자신은 노동을 면제받고 있다니. (1권 405쪽)
→ 그렇다면 그 부채감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구니오와 철도 소매치기 무라타의 대화
“그렇구나. 올림픽은 무라타 씨한테는 큰돈이 들어올 기회군요.”
“그래도 외국인한테는 손 안 댈 테니까 걱정 마. 내 고객은 어디까지나 도쿄 부자들이야.”
“외국인한테는 왜 손을 안 대죠?”
“왜냐니, 이봐…….” 무라타가 몸을 돌려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외국인한테 피해를 줬다가는 국가의 수치가 되잖아. 그랬다가는 그 외국인들, 두 번 다시 이 땅에 안 오지. 우리도 그런 정도는 생각이 있어.”
“의외로 체제적이시네요.”
“뭐야, 체제적이라는 게?”
“지배층 쪽에 선다는 뜻이에요.”
무라타가 잠시 미간을 좁혔다. “그게 뭐, 나쁜 일이야?”
“멀리 극동의 섬나라까지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이라면 부르주아 중의 부르주아겠죠. 빼앗을 거라면 그쪽을 노려야 해요.”
“그런가?”
“당연하죠.” 구니오는 조용한 눈빛으로 딱 잘라 말했다. (1권 410-411쪽)
→ 구니오처럼 생각하진 못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은연 중 국가주의에 물들어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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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1:03 2011/04/0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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