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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정보인권 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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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공공연구소의 연구위원들은 공공운수노조·연맹에서 발행하는 공공운수노동자에 돌아가면서 칼럼을 써야 한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는데, 저번에 나왔던 공공기관 체제전환 보고서의 내용이나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글을 쓰라는 압박(?)이 가해졌다. 그래서 쓰게 된 것이 검찰의 통진당 당원명부 압수수색에 대한 내용. 물론 저번에 블로그에 썼던 것을 조금 수정한 것이고, 다른 이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았기에 그냥 밀어부쳤다. [공공운수노동자] 8호 12면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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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정보인권 불감증

  
얼마 전 질병과 신체적 특징 등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대량 보유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유 기한을 초과한 1억6000여만 건의 개인정보를 파기하지 않고 불법 보유한 것이 드러나 논란이 된 바 있다. 건보공단은 개인별 건강검진 정보 2억1255만 건을 컴퓨터 파일 형태로 만들어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9364만 건이 정부가 규정해놓은 보유기간 5년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보공단이 보유한 개인정보에는 사생활 침해 등 치명적 내용이 많기 때문에 악용될 소지가 있어 보존 기한 관리나 정보 관리에 만전을 기울여야 한다. 건보공단의 개인정보 불법 보유가 논란이 되었던 것도 이러한 악용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는 그 동안 정보인권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의 노력이 작용하였다.
 
그렇다면 우리 안의 정보인권 수준은 어떠할까. 지난 5월 22일 <통합진보당, 어디로Ⅱ>라는 주제로 열린 MBC 100분토론에서 한 토론자는 구 민주노동당의 경우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하고 있어서 실명인증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인터넷 실명제와 관련된 입장은 정보인권 척도 중의 하나였기에 이 발언은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비례대표후보 경선 부정 논란에 이은 검찰의 당원명부 압수수색의 와중에 통합진보당이 범했던 더 큰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바로 구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던 이들을 포함한 20만 명이 넘는 이들의 개인정보를 집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검찰의 당원명부에 대한 압수수색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점은 따로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사법부마저도 당원명부와 같은 정보는 일반 개인정보보다 높은 수준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는데, 통합진보당은 그 관리를 제대로 하기는커녕 이미 없어진 민주노동당 당원들의 개인정보, 아니 민주노동당을 탈당했던 이들의 개인정보까지 그대로 보관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언론에 공개했다. 강기갑 통합진보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13년 동안 입ㆍ탈당한 20만 명이 넘는 기록을 탈취해 간 것”이 문제라고 했는데, 탈당한 당원들의 개인정보를 바로 삭제했더라면 20만 명이나 되는 이들의 개인정보가 검찰로 넘어갈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련의 논란에서 개인정보 보호에 신경쓰는, 정보인권에 노력하는 진보정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는 개인정보 보호의 기본법으로선 미흡한 측면이 많다고 시민사회로부터 비판받는 「개인정보보호법」의 관련조항을 어긴 것이기도 하다. 동법 제21조 제1항은 “보유기간의 경과,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달성 등 그 개인정보가 불필요하게 되었을 때에는 지체 없이 그 개인정보를 파기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간 정보인권운동진영에서는 국가기관이 개인정보에 효율성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 정보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희박하다고 비판해왔다. 기본적인 정보인권 개념조차 탑재하지 않은 채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확보한 수십만 명의 개인정보를 언제 다시 이용할 줄 모르니 집적해 놓는 것이 정치활동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통합진보당의 마인드 또한 그들이 바꾸고자 하는 지배권력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통제하고 있으면, 제대로 관리할 능력이 있으면 개인정보를 집적해도 괜찮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이러고서도 대기업이나 포털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를 비판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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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1 00:05 2012/06/01 00:05

3 Comments (+add yours?)

  1. 지나가다 2012/06/01 02:57

    글의 취지에 대해서 공감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작금의 상황에서 정보가 탈취당한 상황에 대해서 더 분노해야 하는거 아닌가 싶어서 댓글을 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런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양비론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Reply  Address

    • 곰탱 2012/06/01 08:54

      검찰이 개인정보를 탈취한 것도 분명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이 그 원인 제공을 한 것도 사실이지요. 여기서 말한 원인은 부정 논란이 아니라, 20만명이나 되는 개인정보를 갖고 있었다는 것, 그렇게 중요한 정보에 대해 강력한 암호화 등의 조치를 해놓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죠. 손해배상 소송 들어가면 몇십억, 몇백억대입니다. 당 문닫게 만들 수도 있을 건입니다.

      더욱이 일단 검찰에 정보를 빼앗겼다면, 당사자들에게 네 어떤어떤 정보들이 검찰에 넘어갔다고 알리고 피해가 발생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등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책임있는 정당의 자세이겠죠. 기업들도 다 하는 일입니다. 더구나 지난 해에 당원이었다는 사실만으로 교사와 공무원들이 큰 피해를 봤던 경험을 했던 정당 아닙니까.

      그럼에도 통합진보당은 입장도 안 밝히고, 이런 사태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진상조사도 책임자 징계도 없이, 우리 정보 빼앗겼어.. 하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만 하고 있습니다. 검찰만 놓고보면 통합진보당이 피해자일지 모르겠으나, 일반 당원들에게는 오히려 가해자입니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것까지 양비론으로 해석되면 우리 내부의 문제를 고칠 중요한 시기를 놓치는 것 아닐까요?

       Address

  2. 곰탱 2012/06/01 09:20

    앗. 정정.. 암호화는 어느 정도 되어 있었군요. 얼마나 강력한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푸는데 며칠 걸릴 걸로 예상된다는군요.

     Reply  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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