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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홉스봄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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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를 썼던 저명한 사학자 토니 주트는 생전 인터뷰에서 "그가 치러야 했던 가장 거대한 비용은 그가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고집 센 공산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으로 기억되는 것"이라면서, "홉스봄은 이 같은 고집 때문에 뉘우치지 않는 공산주의 사학자라는 십자가를 짊어져야 했다"며 "부당하고 공정하지 못한 평가"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입장 때문에 한 개인의 연구와 학문이 폄하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실제 짐이 된다면 바람직하진 않다.
 
김정한 교수는 홉스봄의 역사학이 마르크스주의와 분리될 수 없으며, 그가 정확히 마르크스주의자였기 때문에 탁월한 연구 성과들을 발표할 수 있었다고 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게 다른 학문연구 분야에서도 가능할까. 어차피 당대의 계급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홉스봄이 마르크스주의자였기에 역사학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면 이건 역사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예외적인 특성 때문일까, 홉스봄이 탁월해서일까.
 
내가 하는 연구와 공부도 그러했으면 좋으련만, 그게 가능할까. 쉽지 않은 미션인 듯하다. 지금 하고 있는 업무를 처리하는 데에도 헉헉대고 있는 판국인데...
 
그런데 홉스봄이 그렇게 우리들에게 깊은 영향을 남겼던가? 아니면 책을 읽어도 거기에서 뭔가를 끄집어 내지도 못하고, 책을 읽었던 기억만 있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가? 사실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을 제대로 읽은 것 같지가 않고, 그럴만한 능력도 모자라는 듯하다.
 
이번 기회에 홉스 봄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지금 당장 읽어야할 책들과 글들이 쌓여 있다. 홉스봄의 책을 읽는 건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이런 고전들은 따로 세미나나 독서모임을 하지 않으면 챙겨 읽기 어렵다. 올해 내로 뭐라도 하나 읽을 수 있을까. 『혁명가』라는 책은 지금 당장 읽어도 의미 있을 것 같다만...
 

김정한 교수의 글 중에서 일부를 발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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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봄을 읽으며, 홉스봄을 추모한다 (레디앙, 남종석 / 2012년 10월 2일, 4:09 PM)
 
저명한 역사학자와 투철한 공산당원 사이에서 (프레시안, 이재호 기자, 2012-10-03 오전 10:01:33)
타계한 맑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일대기

별나게 끔찍한 세상, 하지만 희망은 지켰다! (프레시안, 김정한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2012-10-05 오후 6:57:40)
[에릭 홉스봄, 1917-2012] 홉스봄을 위한 변명
홉스봄은 냉전 시대에 당 지식인들의 험난했던 여정을 분석하면서 스탈린주의적인 공산당의 정책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실제로 당의 지향을 변화시킨 인물들은 탈당하지 않고 당에 남은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당을 떠난다면 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고, 당시 탈당한 이들의 숙명은 반공주의가 아니면 정치적 무능력과 망각이었다.
 
홉스봄의 정치적 지론은 다양한 좌파들이 분열하지 않고 함께 싸우는 '인민 전선'이었다. 그는 혁명적이지 않은 정세에서 혁명가들이 자신들만의 신념과 원칙을 앞세워 대중들과 괴리되고 극소수파로 전락해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한 유럽 공산당들의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었다.
 
<보통이 아닌 사람들(uncommon people)>(<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김정한·정철수·김동택 옮김, 열림카디널 펴냄))은 역사의 곁가지에 불과한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평범하지 않은 집단적인 실천에 나서고 사회를 변화시키는지를 탐구한다. '아무 특징 없는 흔해 빠진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사실 홉스봄이 톰슨과 함께 '아래로부터의 역사' 내지 '풀뿌리 역사'를 역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 바 있다.
 
<혁명가>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이고 공산주의 혁명에 뛰어든 학생, 지식인, 노동자들이 직면했던 곤경과 문제점들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이런 저술들은 홉스봄의 주요 문제의식이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반란과 반역의 주체로 참여하고 변화하는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홉스봄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는 진화주의적 역사관을 견지했지만, 반면에 그 이행 과정은 실증주의에서 주장하는 자연 법칙처럼 이루어지지 않으며, 내세울 것 없는 수많은 익명의 개인들이 집단적인 실천으로 나아가는 조건과 계기들이 필요하며, 이것을 밝히는 것이 역사가의 과제라고 믿었다.
 
힘없고 가난한 자들과 한 편에 서려고 했던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다면 홉스봄의 이와 같은 문제의식과 연구 성과들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의 시대적 고민과 과제가 현 체제에 대한 반란, 반역, 봉기가 어떻게 일어나며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면, 홉스봄의 역사학은 소중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이 난세에서 그는 페리 앤더슨의 말처럼 결국 패배한 좌파로 남았을지 모르지만, 패배한 것과 굴복한 것은 같지 않다. 그리고 이제 홉스봄은 자신이 즐겨 인용했던 혁명가들의 농담처럼 '죽음으로써 휴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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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7 12:39 2012/10/07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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