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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렇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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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인문대 졸업생들의 취직문제

    

어제자 한겨레신문에 난 이공계와 인문사회계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을 비교해놓은 기사를 보고 많은 것이 생각났다.

우선 사회학과가 역시 취업이 쉽지 않구나 하는 것. 나도 그렇지만 후배들도 고생하는구나. 그렇다고 마땅한 탈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공계 전기공학부의 경우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한전 취직이 인생의 목표라는 것. 그 만큼 직업의 안정성이 높게 취급되는데, 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할 듯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도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야 하고...

    

취업 여부와 상관 없이 조사 대상자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공무원과 공기업이었고, 특히 취업이 어려운 여자들은 일반 기업 취직을 일찌감치 접고 공무원 시험만 준비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는 모두 공공연맹과 관련된다. 공공연맹 소속의 노조들이 단체협상이나 파업을 할 때 이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많이 가는 것도 '있는 넘이 더 한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정보화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일반행정 사무직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수가 크게 줄었기 때문에 문과생이 갈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었고, 이것이 인문대 졸업생들의 취업난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하고 있다.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긴 하지만, 이 경우 인문계 전반의 순수기초학문 전공자들의 취업 문제로 연결되는 것 같아 조금은 안타깝다.

나아가 전기공학과 사회학과를 비교한 것이 표본선정에 있어서 타당한가의 문제도 있다. 아직까지는 수능입학시의 커트라인에 따라서 취업마져 어느 정도 결정되는 상태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난감하다.

    

인문대 졸업생, 이공계와 평균연봉 900여만원 차이 (한겨레, 2006-08-03)
인문대 졸업생, 정규직 진입까지 고단한 이직행진 (한겨레, 2006-08-03)



ㅇ 빈곤과 가족해체와의 상관관계

      

“높은 부채액과 열악한 고용상황에 허덕이면서도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다 보니 실제 실업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신빈곤층은 정부로부터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복지정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빈곤이 미치는 영향은 끝이 없네.

       

'가난 때문에 생이별'…빈곤층 10명 중 6명 가족해체 (새전북신문 이윤미기자)

     

전주나눔의집 김정원 운영위원장은 지난 6월 한달간 전주지역 기초생활수급자층과 차상위계층, 근로빈곤층 등 9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주지역 저소득층 생활실태 조사결과’를 토대로 빈곤의 만성화와 신빈곤층 확대 실태를 여실히 드러냈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3)

분석자료에 따르면 조사대상 빈곤층의 47.4%인 426명은 기혼 상태였고, 나머지 45%인 404명은 이혼, 별거 또는 사별 등의 이유로 배우자와 함께 살고 있지 않았다. 특히 수급자층의 경우에는 배우자와 함께 살고 있는 비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했고 전체 응답자의 64%가 배우자와 떨어져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3.7명은 최근 3개월 이내에 세금이나 공과금, 보험료 등을 체납한 경험이 있고 절반이 넘는 응답자는 부채를 안고 있었다. 이들의 평균 부채액은 2,169만원으로 사업실패나 생활비, 주택자금 등으로 안게된 부채가 대부분이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부채 상환능력이 극히 취약하다는 점. 근근이 이자만 갚고 있는 경우가 39.4%, 이자도 내지 못하는 경우가 34.5%로 결국 10명 중 7명은 부채 탕감 대책이 전무한 실정이다.

   

ㅇ 청와대와 조동의 싸움에 담론까지?

       

한겨레신문 김선주의 칼럼에 엘리아스 카네티가 나오고 진중권의 공적 글쓰기 중단이 언급되었다. 단지 진중권과 같은 논객의 글쓰기가 안타까워 쓴 것인 줄 알았는데, 행간을 읽어보니 인터넷은 몰라도 나날의 역사를 쓰는 마당인 언론에서는 책임지지 못할 말과 폭력적인 글이 나와서는 안된다는 것이 주되게 하고 싶었던 얘기였던 듯하다. 온라인 공간 또한 오프라인 소통의 반영일 터, 언론과 인터넷을 분리하는 게 타당할까.

      

어차피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낼 수는 없고, 내 편과 네 편일 갈릴 때가 많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는 분명히 내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편인 양하여 혼란을 야기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사회 진보에 끼친 악영향도 상당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래서 가끔씩은 명확하게 입장 표명이 요구될 때가 많으며, 그러할 때 담론도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인터넷 댓글을 통해서는 사실 소통이라는 게 힘들다. 하지만 이를 가지고 온라인 소통의 전부를 본 것처럼 말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지금까지 김선주 칼럼을 잘 읽어왔으면서도 오늘의 칼럼은 그 행간에 나와는 다른 생각이 감추어져 있는 듯하여 불편하다. 

나 또한 담론이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김선주칼럼] 담론이 사라진 시대 (한겨레, 2006-08-03)

        

엘리아스 카네티는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무책임하게 주고받는 말들, 그것은 대중을 오도하는 말이 되어 비참한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독소가 되고 있다. 진정한 시인, 적어도 언어를 특별히 중시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시인은 언어로써 파악 가능한 모든 일에 대하여 끝까지 책임지려는 의지가 갖춰져 있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모든 글쓰는 사람은 이런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최근 진중권씨가 공적 글쓰기를 그만하겠다고 선언했다. ... 그의 글에 동의하지 않은 적도 있지만 그의 문제 제기는 어떤 사안에 대해 발전시킬 여지가 많은 담론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사고의 지평을 새로운 방향으로 열어줬던 것이 사실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절필 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시사적인 문제에 대해 공적인 글쓰기를 절대로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실제로 쓰지 않고 있다.

     

왜 글을 쓰고 글을 읽는가. 소통을 위해서다. 다른 사람의 글에서 공감을 얻기도 하고, 또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으면서 내가 몰랐던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담론을 형성하면서 개인과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글쓰기는 내 편과 네 편을 정해놓고 자기 말만 한다. ... 소통이 필요없는 언어는 폭력이다. ... 내 편 네 편을 확실히하기 위해 글을 쓰고 읽을 뿐 진정한 담론이 형성되지 않는다.

    

인터넷이란 일종의 배설장소다. 댓글이란 오늘은 이 소리 하고 내일은 저 소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은 나날의 역사를 쓰는 마당이다. 그런 곳까지 책임지지 못할 말과 안팎으로 전쟁을 부추기는 글이 난무한다. 그러다 보니 진정성을 의심받는 것이 두려워 글쓰기를 포기한 사람도 생겼다. ... 이렇게 교육받은 인구가 많고 인터넷으로 소통이 원활한 시대에 소통이 안 되는 불행을 세계적으로 겪고 있다니 끔찍하다.   

   

ㅇ 다들 그렇지는 않다

     

나 또한 "다들 그렇지 않나요?"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다. 하지만 그건 책임전가용으로서 보다는 대응하기 귀찮아서 나오는 소리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은 나의 목소리가 그 과정에서 사라졌다.

요새는 SBS의 '만명에게 물었습니다. 야심만만'을 보지 않는다. 나오는 얘기가 뻔하기도 하고, 주로 출연연예인의 신변잡기로 점철되는데다, 자신이 출연할 영화나 드라마, 자신의 신보를 홍보하기 위해 출연한 기색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크게는 시간도 없고...

  

"다들 그렇다"라는 이데올로기는 무섭다. 그렇지 않은 소수의 목소리는 묻혀버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앞으로는 "다들 그렇지 않나요?"라는 말이 나오는 자리가 있다면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음을 명백하게 밝혀야겠다.

    

그건 그렇고, 듀나의 SF소설도 한번쯤을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다들 그렇지 않나요?” 야심만만한 그들의 뻔한 말 (한겨레, 듀나, 2006-05-04)

       

“다들 그렇지 않나요?”는 참으로 편한 책임전가용 도구다. 하지만 편리한 말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건 거짓이다. 세상에 ‘다들 그런’ 것은 없다.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것 같은 육체적 욕망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나는 세상에 ‘다들 그런’ 것이 없다는 건 안다. 인터넷은 ‘다들 그런’ 세상을 깨트리는 도구여야 했다. 실제로 지난 10여 년 동안 인터넷이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 인권 운동이 이 정도 수준으로 올라간 것도 순전히 익명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인터넷 덕택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과연 인터넷이 다양성을 소개하는 도구인가? 인터넷이 아무리 무한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고 해도 사람들이 가는 곳은 뻔하다. 그들은 몇몇 포털사이트와 잘 가는 몇 군데에 링크를 걸어두고 그곳만 죽어라 간다.

  

‘다들 그런’ 세계의 구성원들에게 인터넷은 ‘다들 그런 세상’에 대한 따분한 선입관을 강화시키는 도구에 불과하다. ... 글의 우둔함과 멍청함이 심해질수록 논리와 정당성 대신 대부분 그들 뒤에 버티고 있는 ‘다들 그런 사람들’의 머릿수에 의지하고 있다.

   

ㅇ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인사

    

노회찬 의원이 8월 4일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노대통령은 "해당 업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장관 자리를 다른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했다"면서, "지금까지 (정책 코드가 아니라) 정략 코드 인사가 많았고, 이에 대한 불만이 코드인사 반대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박용진 대변인의 논평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무원칙하고 정략적인 인사정책에 대한 불신이 누적되어 문재인 전 수석의 법무부장관 임명에 대해 비판여론이 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청와대의 인사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번 문재인 전 수석의 발탁 움직임도 '회전문 인사'의 소지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코드인사의 측면에서 파악하는 것은 초점을 벗어난 것이다. 지금의 한나라당 및 민주당, 그리고 여당 일각의 비판은 김병준 부총리의 자진사퇴에 이어 정치적 공세의 성격이 강하다.

       

나는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의 논평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며, 그의 견해를 지지한다.

    

8월 3일(목) 오전 10:40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 브리핑

-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 법무부장관 임명 관련 김근태 의장 발언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 임명설에 대해 말이 많다.
어제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께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문재인 전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 임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노무현 대통령은 법무부장관 임명에 대해선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여당 의장이 한발 앞장서 임명 반대라는 입장을 밝힌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청와대에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인사권자의 임명권을 정면으로 받아버리는 형국이 되니 보기에도 당황스럽다. 여당과 청와대 관계가 이런 방식으로 간다면 민생 현안은 관심 밖으로 밀려난 채 국민들의 불쾌지수만 높아질 뿐이다. 
       
또한 코드인사 자체에 대한 비판만 있다.
자신과 생각과 뜻이 맞는 사람을 인사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이자 임명권자의 권한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코드인사에 대해 비판한다고 해서 조갑제씨를 장관에 앉힐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하다못해 대학의 총학생회장도 자신과 뜻이 받는 사람으로 집행부를 인선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지 코드인사가 문제라는 점을 주장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법무부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코드인사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업무 적합성을 놓고 임명의 타당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법무부장관을 임명하면 업무 적합성을 따져 비판해야 한다. 여당과 청와대간의 볼성사나운 난타전이 없었으면 한다. 아울러 여당은 의견전달과 조율 방식이 아닌 기자간담회 자리를 통한 대통령과 공개적인 정면충돌을 즐기는 방식은 피했으면 좋겠다. 
      
끝으로 정리하자면 문재인 전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 임명에 대해 코드인사라는 비판에 앞서 업무적합성을 꼼꼼히 따지는 것이 야당과 국회의 역할이라는 점 다시 강조한다. 

    

ㅇ 드디어 민주당의 지지율이 노동당을 앞서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와 공동으로 실시한 주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지난주보다 3% 포인트 상승한 46.1%로 1위를 기록했으며, 열린우리당이 22.3%, 민주당 8.6% 민주노동당 6.2% 순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지난 2004년 총선 이후 처음으로 지지율 면에서 민주당이 노동당을 앞선 것이다.

    

이는 이번 보궐선거를 거치면서 예견되어온 결과였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무능력, 지방선거 이후 제대로 당혁신을 하지도 못하고 지리멸렬한 당 내부의 상황, 당내 부정선거 의혹조차 제손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무기력함 등 주체적인 면만 보더라도 특별하지 않다. 

    

이를 당 위기의 징후로 받아들이고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글쎄다. 중앙선관위의 조사 이후 쑥대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처방안을 내놓지 못해 아무도 이에 대해 입을 닫고 있는 상황. 한숨만 나온다.  

오늘 옆자리의 연구원에게 농담 비슷하게 당에 가입하라고 권유한 내가 괜시리 쪽팔린다. 

   

민주당 지지율 8.6%, 민주노동당 눌러 (레디앙, 2006년 08월 04일 (금) 14:13:02
대선후보 선호도, 이명박 29%-박근혜 25.4%-고건 20.5%

    

ㅇ 애매한 술집

   

지난 화요일 미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박사후과정(Post-Doc)으로 들어온 후배 녀석 환영회를 한다고 석사 동기들이 압구정 역 근처에 모였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바쁘다고 나오지 않았다. 기본 퇴근시간이 10시라니 여유가 없을 듯도 하다.

  

결국 나온 친구들은 다 학위를 가지고 대학에 자리를 잡고 있는 넘들이다. 

그래서인지 일식집에서 1차를 할 때 다들 학위나 학계의 동향 등을 중심으로 얘기를 나누었다. 

   

2차로 옮길 때 그냥 빠져나오려다가 새로 오는 친구 얼굴이나 보려고 남았는데, 2차로 간 장소가 애매한 곳이다. 그냥 같이 간 사람끼리 술을 마셔도 되고, 여자를 부르면 나오기도 하고...

처음에는 그냥 카페 겸 술집이라고 하여 그냥 들어갔는데(나만 몰랐다), 빠져나올 수도 없었다. 

   

꼭 그렇게 여자들이 나와서 술도 따라주고 안주도 먹여주고 해야 술맛이 나고, 얘기가 술술 풀리는 걸까. 이럴 때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뿌리치고 나오기에는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버렸다.

예전에는 단란주점일 것 같이 보이면 아예 들어가지 않았고, 그런 곳에 갈 것 같으면 나는 자연스럽게 제외되었는데... 내가 여성의 성상품화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그날 새벽까지 술을 많이 먹었다. 아침에 해장을 하지 못할 정도로... 

다음부터는 아예 술을 먹지 않든지 해야지.

이 글을 쓰면서도 쪽팔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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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4 23:57 2006/08/0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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