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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이란 무엇인가?(Erik Olin W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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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소심이 님이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 수립을 위한 참고자료로서 모 게시판에 올려주신 글을 다시 퍼온 것이다. 알다시피 에릭 올린 라이트는 분석적 마르크스주의자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이 글은 그가 입장을 바꾸기 전의 글에 의존한 듯 보인다.

 

최근에 80년대에 번역되었던 책들을 자주 접하고 그들 중의 몇권을 가끔씩 읽게 된다. 거의 10-20년의 기간을 두고 다시 보니 그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아마 이 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80년대에 이런 글이 읽힐 수 있었을까.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에 대해 잘 정리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공무원노조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은 당장 그들을 왼쪽으로 이끌어가기 어렵고, 보이는 행태에 실망할지언정, 변혁을 고민한다면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것이다. 관료제에 대한 좀더 섬세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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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이란 무엇인가?(Erik Olin Wright)


잘 알다시피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의 현대적 기원은 그람시와 폴라니에게서 찾을 수 있으며, 더 최근에 이 전략을 명시적으로 제시한 사람은 앙드레 고르쯔(1967년 저작, Socialism and Revolution)이다. 이후 이 전략을 계승하는 그룹은 사민주의 좌파(대표적인 논자로는 에스핑 안데르센, 존 스테판), 유로코뮤니즘 좌우파(대표적인 논자로는 마그리, 밀리반트, 풀란차스, 라이트)이다. 이 전략은 레닌주의와 사민주의 우파(대표적인 논자로는 크로슬랜드) 사이의 중간적 노선이다.

 

아래의 내용은 라이트(Erik Olin Wright)의 글-1985, [국가와 계급구조], 이다(5장 결론: 사회주의 전략과 국가)-을 중심으로 (약간 다른 논의들을 결합하여)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에 대해 정리한 것이다. 라이트의 글은 상당히 난해한 논의들이 많기 때문에, 이 내용의 정리는 가능한 저자의 논지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풀어쓰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렇지만 이 정리는 여전히 충분히 풀어쓰지 못했고, 활동가들에 맞추어 정리하였다. 특히 용어 선택에 문제가 많다. 그리고 상세한 출처는 생략하였다. 양해해 주셨으면 한다)


 



1. 개혁주의, 급진적 혁명주의, 비개혁주의적 개혁

 

사회주의로의 이행전략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핵심 쟁점은 다음과 같다. 국가(관료제와 의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노동자계급의 의회집권은 사회주의 혁명에 이바지할 수 있는가?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국가들은 어떻게 사회주의 혁명에 이용될 수 있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좌파 내에는 크게 세 가지 입장-개혁주의, 급진적 혁명주의, 비개혁주의적 개혁-이 존재한다. 


개혁주의(전통적 사민주의 우파)자들은 "자본주의 국가를 붕괴시키지 않고서도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기초로서 자본주의 국가를 이용할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국가기구를 중립적인 기구처럼 본다. 그러므로 이들은 국가기구가 다양한 계급세력들에 의해서 매우 상이한 목적 달성을 위해 이용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이들에게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의 민주적 국가기구를 통해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 일련의 정책들 혹은 개혁들로 간주된다.
급진적 혁명주의(전통적 레닌주의)자들은 "사회주의로 이행에 있어서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일반적으로 배제한다". 이들은 자본주의 국가가 구조적 한계(계급성)를 가지고 있어서 국가기구를 이용하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필연적으로 부르주아의 지배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본다. 결국 이들의 입장에서 자본주의 국가는 노동계급에 의해 장악될 수 없고, (선진 및 대중교육을 위한 수단 이상으로) 이용될 수 없으며, 마땅히 파괴되어야만 한다고 본다.


개혁주의와 급진적 혁명주의 사이에서 국가에 대한 독특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사민주의 좌파와 유로코뮤니즘 좌파이다. 유로코뮤니즘 좌파의 대표자 중의 한 사람인, 루시오 마그리는 선진자본주의에서의 사회주의 전략은 의회에 참여하지만 이 참여가 선거행위에만 제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전통적인 형태의 대의제 의회민주주의에다가 여성운동, 청년운동, 실업노동자의 운동 등을 통해 표현되는 새로운 형태의 직접민주주의를 추가시키는 일이며 대중의 활성화와 조직화를 보다 더 확대시키는 일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체에 대항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의해 제공되는 기회를 이용하는 것도 필요하다...우리는 개혁주의 좌파 정당이 정부에 들어가서 곧 혁명의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좌파 정당이 국가권력을 아직은 충분히 통제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정부 자체를 이용하여 대중운동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고 대중운동의 협조를 위한 공간과 도구를 창출해 줄 수 있기를 제안하고 있다"


라이트는 이러한 유로코뮤니즘 좌파의 입장을 "자본주의 국가가 그 자체의 붕괴를 위해 이용될 수 있다"라는 명제로 정리하면서 이를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이라고 명명한다. 이 명제는 (개혁주의와 유사하게) 좌파들이 사회주의적 목적-사회주의적 전제조건의 창출-을 위해 민주적 자본주의 국가를 체계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수용한다. 그러나 이 입장은 (개혁주의와 달리) 자본주의 국가가 특정의 사회주의적 변혁에 대해 구조적 한계를 부과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국가기구에 '계급성'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입장은 (레닌주의와 유사하게) 사회주의로의 지속적 이행을 가능케 하기 위해 자본주의 국가구조의 궁극적 붕괴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레닌주의와 달리) 이 입장은 선진자본주의라는 조건 하에서 좌파가 자본주의 국가기구들을 통제하고 자본주의 국가권력 자체를 공격하기 위해 국가기구를 체계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앞에서 정리한 논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의 몇 가지 문제-즉 자본주의 국가가 계급성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국가가 사회주의 전략을 위해 이용가능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국가를 붕괴시킨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좀 더 세밀하게 다루어 보자.


2. 국가의 계급성

 

자본주의 국가가 '계급성'을 가진다는 것은, 국가가 자본축적과정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본축적에 유리한 정책과 조치들을 취하는 선택적 기제(selective mechanism)를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기본적으로 자본가가 아니므로 생산을 명령하거나 통제할 권리가 없다. 사적 자본가만이 생산을 명령하거나 통제할 특권을 가진다. 그러므로 국가권력은 자본축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국가는 조세에 의존하고, 이 조세는 상당부분 자본 축적의 규모에 의존한다. 또한 노동자계급 및 신중간계급의 일자리와 자영업자의 영업이익 또한 상당부분 사적 자본의 투자에 의존하기 때문에, 국가는 여러 계급으로부터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자본축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국가권력을 장악한 세력은 자본축적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국가내의 여러 부서들과 공무원들의 개별 이익조차도 자본축적을 유지와 부합될 때에 적절하게 유지될 수 있다. 이와 같이 볼 때, 국가정책은 자본축적과 별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이미 (좌파가 장악하건 우파가 장악하건 간에) 자본주의 국가는 그 자신의 존립을 위해 '자본축적의 안정화'라는 요구를 내재하고 있다. 즉 "국가기구들과 국가제도의 체계는 자본축적의 이익에 상응하는 '계급적 선택성'을 내재하고 있다"(오페)

 

오페의 논의에 따르면, 자본주의 국가의 계급적 선택성은 세 가지 방식-조정적, 억압적, 은폐적 선택성-으로 나타난다. 이중 조정적 선택성과 억압적 선택성은 체계통합(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양립불가능성으로부터 나오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과 관련되고, 은폐적 선택성은 사회통합(이것은 계급갈등을 완화하면서 정권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것)과 관련된다.

  
첫째, 조정적 선택성은 다양한 사회세력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다양한 갈등하는 정책안이 등장할 때 국가가 총자본가의 이익에 일치하는 정책, 제도, 조직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러 개발정책 안들이 나왔을 때, (물론 계급투쟁에 의해 매개되지만) 총자본가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억압적 선택성은 국가가 반(反)자본가적 활동과 이익에 대항하여 자본일반을 보호하려는 선택을 의미한다. 즉 이것은 국가가 노동운동을 직접적으로 억압하거나, 노동자를 다양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기제를 통해 고립·해체시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가로막거나, 친노동자적 정책들이 정책의제로 상정되지 못하도록 배제하는 것이다. 앞의 세 가지는 뒤에서 보다 상세히 다룰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 문제(친노동자적 정책의제의 배제)만 예를 들어 보자. 민주노동당에서 제시한 '부유세'(이 정책은 반자본주의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쉽게 정책의제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의 국가기구 및 제도체계가 자본주의적이고 이것도 강하게 친자본가적으로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기본적으로 부유세 상정안은 이와 관련된 여러 제도들과의 조화 문제가 걸리기 때문에 쉽게 정책의제로 상정되지 못한다. 또한 의제형성 및 통과 과정에서 의원들에 의해 다양하게 수정된다. 마지막으로 통과가 되었을지라도 정책집행 과정에서 관료기구에 의해 의도적, 비의도적으로 정책집행이 약화되거나 폐기된다.


셋째, 은폐적 선택성은 국가가 사회통합을 위하여 국가의 제도적 기제 속에 나타나는 자신의 계급적 편향성을 일반이익이나 민주적 정당성으로 은폐시켜야만 한다. 이것은 국가에 심각한 모순을 야기한다. 즉 국가는 한편으로는 잉여의 증대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룩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기업들을 위하여 자본축적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해야 할 절박성을 지니는 동시에 정권을 재생산할 수 있도록 국가권력행사상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절박함을 지닌다. 이러한 국가에 대한 이율배반적 요구가 자본축적 조건의 여건 조성과 정당성 확보 사이의 모순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는 자본축적의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시 위하여 노동력의 상품화를 촉진시켜야 하는 동시에 (계급투쟁이 매개될 때) 정당성을 위하여 노동력의 탈상품화(예를 들어 복지정책)를 촉진시킬 수도 있다. 이 복지정책 중 일부는 잉여가치의 창출과정에 기여하지 않은 채 자본축적에 부담 또는 장애요인이 될 수도 있고, 또는 노동계급의 역량 강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3. 개혁주의(사민주의) 전략과 혁명적 급진주의(레닌주의) 전략의 한계

 

이제 국가의 계급성에 대한 이상의 이론적 논의를 기초로 개혁주의 전략과 혁명적 급진주의 전략의 한계를 살펴보자.


먼저 개혁주의 전략부터 살펴보자. 개혁주의 전략은 조정적/억압적 선택성과 은폐적 선택성의 내적 모순구조를 잘 활용하여 여러 개혁정책을 수행하였고, 부분적으로 노동자 계급 역량의 강화에 기여하였다. 그렇지만 개혁주의 전략은 사회주의로의 이행과 관련하여 국가구조에 내재한 '계급적 선택성'의 문제를 과소평가하였다. 개혁주의자들은 국가구조의 붕괴 없이는 친노동자적 정책이 관철되기 어렵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여기서 국가구조의 붕괴란 레닌주의적 의미보다는 국가기구의 계급적 선택성의 약화 혹은 제거라는 의미이다. '붕괴'라는 용어의 대중적 불신을 감안하여 좀 더 풀어쓰자면, 국가구조의 중립화와 정책형성과 집행에의 대중적 참여 구조의 강화이다. 개혁주의 전략은 자본주의적 국가구조의 붕괴보다는 주로 개혁적 정책형성을 경쟁적 정당민주주의와 사회적 합의주의의 틀에서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사회주의 정책을 거의 관철시키지 못하였고, 20세기 후반에 개혁주의적 정책 수준의 여러 정책형성 및 집행에서 후퇴하였고, 새로운 정책의제-특히 소수자 및 새로운 가치에 입각한 정책들-의 형성을 상당부분 배제하였다. 이것은 서구에서 신사회운동과 대안정당운동을 낳는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나는 신사회운동론의 전략 전반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 논의는 좌파정당과 노조의 혁신을 위한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이 문제를 보다 구체화해보자. 먼저 정책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보자. A정책은 철저한 자본가의 단기적 이윤확보에는 '최선'이 되는 반면 노동운동을 약화시키는 친자본가적, 반노동자적 정책이다(예를 들어 최근의 비정규직 개악안), B정책은 자본가에게는 단기적으로는 손실이지만 장기적으로 이득이 되거나 또는 '차선'이 되고, 노동운동에 부분적으로 유리할 수 있는 중립적(?) 정책이다(예를 들어 연대임금정책과 경영참가정책). C정책은 자본가에게는 불리한 반면, 노동운동에 유리한 친노동자적 정책이다(예를 들어 임노동자 기금정책이나 보편적 기초소득정책). 민주노동당이 제1당이 된다면, 여러 진통이 있겠지만 B정책을 통과시킬 수도 있다. 이 경우에도 B정책이 정부 수준에서 제대로 집행될 수 있을지는 상당히 미지수이다. 정부까지 장악하여 B정책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해보자(이것은 스웨덴 사민주의가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이 정책이 관철되는 과정에서의 견고한 노조의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최선의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은 C정책을 관철시킬 수 있는가? 우리는 스웨덴과 같은 최선의 상황에서도 C정책의 관철이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그 중 한 요인이 자본가의 격렬한 저항에 견딜 수 있는 국가기구의 붕괴가 없었다는 점이다. 즉 정책형성 및 집행과정에의 국가기구 내에 시민참여구조 및 실질적인 권한부여 전략이 취약했다는 점이다. 결국 '국가기구의 붕괴' 없는 개혁전략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촉진할 수 있는 정책형성 및 정책집행에 성공할 수 없었고, 아래로부터의 계급정치의 잠재력을 훼손함으로써 B수준의 정책 또한 지키기 어려웠다.

개혁주의자들이 국가의 계급적 선택성을 과소평가하였다면, 역으로 급진적 혁명주의(레닌주의)자들은 국가의 계급적 선택성을 과대평가하였다. 레닌은 국가의 핵심을 '관료제'(행정부와 군부)로 보는 반면, 의회를 '말뿐인 시장'으로 취급한다. 그는 보통선거권과 부르주아 의회가 대중을 현혹시켜 사회질서를 정당화해줄 뿐만 아니라,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인구의 상당수의 선거권으로부터의 배제, 부르주아 언론, 대의제도의 기술상의 문제로 인해) 부르주아에 의해 장악될 수밖에 없고, 설혹 의회를 장악하더라도 자본의 권력을 흔들지 못하기 때문에, 부르주아 의회를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기구라고 보았다. 그는 관료제가 자본에 기능적이고, 계급투쟁을 약화시키고, 국민의 참여를 가로막는 점에서 자본가 계급을 위한 도구라고 보았다. 앞의 국가에 대한 이론적 논의로 표현하면, 레닌은 국가를 강한 조정적/억압적 선택성을 내재한 강한 응집체로 보고 반면 은폐적 선택성을 부차적 요소로 다룸으로써 국가기구에 내재한 내적 모순과 이용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하였다. 즉 레닌은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이용하여 C정책뿐만 아니라 B정책을 관철시킬 가능성을 배제하였고, 나아가 B정책이 노동계급 역량 강화와 관련하여 가질 수 있는 여지 또한 배제하였다.


이에 따라 레닌이 선택한 전략은 기존의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운 국가기구를 수립하고, 기존의 의회체제를 '활동적인 체제'-전위당과 소비에트-로 대체하는 이중권력(dual power) 전략이었다. 이중권력이란 새로운 혁명적 국가기구가 먼저 확립되고 구정권의 기구와 더불어 존재하게 되는 비교적 짧은 혁명적 상황의 시기를 의미한다. 사실상 각각 대중적 지지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는 셈이다. 레닌은 이러한 전략 하에서 소비에트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전위당이 관료제적 요소를 약화시키고 대중참여를 촉진시킬 것으로 기대하였고, 나아가 직접민주주의가 강화되면 관료제가 필연적으로 쇠약해질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레닌의 전략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함께 여러 분석상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먼저, 레닌은 관료제의 문제를 과소평가하였다. 그는 관료제가 자본주의적 계급투쟁의 맥락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속성이 제거되면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둘째, 레닌은 전위당과 소비에트의 내적 모순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였다. 전위당의 지도부가 정치적 책임성(호응성)을 지지 못한다면 불가피하게 관료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닌은 책임성 있는 전위당의 지도부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재생산하는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제도 및 방책들에 대한 적절한 논의를 결여하고 있었다. 또한 레닌의 소비에트 집회에서 대중들 간의 의견이 불화할 경우 이러한 의견불화를 절충할 수 있는 제도 및 방책에 대한 적절한 논의를 제시하지 못하였다. 결국 의견불화를 조정하지 못할 경우 집회는 마비되고, 점차적으로 대중의 집회참여는 줄어들고, 다시 관료제의 의사결정으로 넘겨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레닌은 소비에트 집회가 관료제를 효과적으로 감독할 역량을 가질 것이라고 지나치게 낙관하였다. 그는 '교환을 위한 생산'에서 '사용을 위한 생산'으로 전환하면 행정이 단순화될 것이고,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자 교육을 통해 노동자를 훈련시킨다면 노동자들이 행정상의 통제와 책임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지만 당시의 러시아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였다. 다수는 문맹이었고, 노동자계급은 소수였고, 노동시간의 단축은 곤란하였다. 셋째, 레닌은 여전히 관료제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기술전문가 집단에 대한 통제문제를 간과하였다. 이들 전문가 집단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업무를 통제하고 활용할 수 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위의 행정책임자와 아래의 노동자계급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면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주도권을 해칠 우려가 있다. 이렇게 볼 때, 전위당과 소비에트를 통한 관료제의 통제 구상은 일정정도 타당성이 있지만 앞에서 지적한 여러 요소들을 결여하고 있음으로 인해 한계를 노정하였고, 결국 관료제의 문제를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레닌의 이중혁명 전략은 시민사회가 발전하지 않은 후진국에서 가능한 전략이었지만, 선진자본주의에서는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아가 전통적 레닌주의 전략은 선진국의 민주적 자본주의의 맥락에서 국가의 이용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을 포착하기 어려운 한계를 지니고 있다. 국가의 이용가능성의 문제에 대한 라이트의 답변은 아래에서 제시된다.
    
4.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은 자본주의에서의 자본축적에의 의존성과 기능성(계급적 기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의 이용(의회에서의 부상 또는 관료제에의 집권)을 통해 계급적 선택성을 약화 또는 제거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처럼 국가구조 내의 계급적 선택이 약화될 경우, 국가의 계급적 선택성과 국가의 계급적 기능성과의 거리가 한층 멀어질 수 있고, 이것은 사회주의적 정책의 형성 및 집행의 가능성을 증대시킨다. 바로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은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모순적 상황을 활용하여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이러한 비개혁주의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목해야 할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좌파정당은 부르주아 정치의 틀 내에서 노동계급의 당면계급이해(임금인상, 노동조건 개선 등)와 근본계급이해(사회주의로의 이행)간의 연계를 촉진시킬 것인가?(조정적 선택성의 약화) 둘째, 좌파정권은 국가 관료제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 셋째, 좌파정권은 어떻게 국가 관료제를 노동계급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용할 수 있는가?(억압적 선택성의 약화) 넷째, 좌파정권은 우파의 저항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1) 첫 번째 문제부터 보자. 비개혁주의자들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경쟁적 정당민주주의에서의 경쟁이 노동자계급의 근본이해를 당면이해를 위한 투쟁으로 대체하는 기본 메커니즘 중의 하나임을 인정한다. 선거운동은 지지자들의 당면이해가 걸린 공약을 촉진하고, 당이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구조적 전제는 자본주의 경제의 안정이다. 더구나 선거에서 다수의석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노동계급 이외의 유권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자본주의의 재생산이라는 요구에 부합하는 개혁으로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좌파정당은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정치의 틀 내에서 당면이해와 근본이해를 연계시킬 수 있도록 촉진하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우리는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스웨덴의 복지국가를 통한 '노동력의 부분적 탈상품화' 전략과 '자본축적의 정치화 과정'의 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동력의 부분적 탈상품화는 '교환가치로서의 노동력의 판매'와 '사용가치의 소비를 통한 인간의 재생산'간의 연계를 부분적으로 약화시킨다. 노동력의 탈상품화의 심화는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당면임금투쟁(노동력의 교환가치를 상승하려는 투쟁)을 점차로 국가로 하여금 사용가치를 제공하라는 투쟁으로 대체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국가계획의 확산, 투자와 자본의 흐름에 대한 국가의 통제, 국가에 의한 보다 광범위한 생산영역의 직접적 조직화에 의해 상품관계의 무제한적 힘이 약화되고 축적과정 자체의 점진적 정치화가 나타난다(물론 최근에는 역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축적과정 내에서 국가의 점증적 개입은 자본가 노동간의 경제적 갈등을 정치적 갈등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된다.

  
물론 이 예들은 당면이해와 근본이해의 분열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 복지제도가 보편적 복지제도로 형성되지 못한다면, 노동력의 탈상품화 전략은 완전히 상품화된 노동자(완전한 임금노동자)와 덜 상품화된 노동자(학생, 연금생활자, 실업자, 불완전 고용층)로 노동자계급 내의 새로운 분할을 야기하여 노동자간의 적대감을 심화시킬 수 있다. 또한 축적과정의 정치화는 자본축적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신념을 정치적 수준에서 재생산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선진자본주의 내에서 좌파정당이 채택하는 성공적으로 통과시킨 정책들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의 내용과 이 정책의 형성 및 집행과정을 둘러싼 계급투쟁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좌파의 정책은 노동자계급의 계급형성 및 여타계급과의 계급연합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세부적으로 고려하면서 제시되어야 하고, 나아가 정책형성 및 집행과정을 둘러싼 참여 및 투쟁의 방안까지 제시하여야 한다.

 

(2) 두 번째 문제는 관료제(행정부 및 공공부문)의 통제 문제이다. 좌파정권이 노동계급의 근본이해에 기여할 수 있는 정책을 제도화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고자 한다면, 좌파정권은 그러한 정책을 입법화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정책을 실제로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관료제의 실제 작용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필요로 한다.


관료제 내에는 좌파정권에 저항적인 최상급 공무원과, 노동자계급과 부르주아 사이에서 모순적 계급위치를 점하는 중급 및 중상급 공무원, 그리고 본질적으로 노동자계급적 속성(국가정책의 수립과 집행으로부터 배제된 속성)을 지니는 하급공무원으로 나뉜다. 국가는 재정위기 등의 문제에 직면하여 노동과정을 합리화하려고 시도함에 따라 공무원들의 노동자계급화 경향은 증가될 것이고, 이것은 공무원들과 민간부문 노동자계급과의 잠재적 연합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하급 공무원들이 노동계급과의 연합에 참여한다면, 최상층의 저항을 상당부분 약화시킬 수 있다.


물론 당면이해에서 조세와 국가부문의 임금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공무원과 민간부문 노동자계급간의 분열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분열의 장벽을 없애려면 공무원들 역시 정치적 요구-사회적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 및 사업에 대한 요구, 국가공공사업의 운영에 대한 시민 및 소비자의 참여 요구 등-를 둘러싸고 조직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시점부터 공무원 및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정책역량-공무원들의 자기이해와 공공성을 조화시키는 정책개발-과 운동방식-노동운동 및 시민운동 단체들과 연대-을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국가를 붕괴시키기 위해 국가를 이용하는 비개혁주의적 개혁전략의 성패여부를 공무원 노조의 조직화 여부에 크게 의존한다.

 

(3) 세 번째 문제는 국가관료제를 노동자계급의 계급역량 강화에 이용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자본주의 국가를 붕괴시킨다는 주장의 핵심은 노동자계급의 계급역량을 손상시켜 노동자 계급이 정치적 헤게모니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국가구조를 붕괴시킨다(억압적 선택성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풀란차스가 주장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 국가의 중심적 기능 중의 하나는 부르주아지를 조직화하는 반면, 노동자계급의 조직을 해체시키는 것이다. 법 앞의 평등, 비밀투표, 법적 범주로서의 '계급'의 부정(유권자는 국민 또는 시민이다)은 사람들을 계급성원으로부터 원자화된 시민으로 변형시키는 데 기여하고, 나아가 국가의 억압적 기구는 노동자계급의 조직역량의 성장을 제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의 조직와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국가조치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첫째, 좌파의 집권은 사회운동에 대한 비억압적 입장을 취함으로써 노동운동에 대한 국가의 직접적인 억압조치를 해결할 수 있다. 나아가 좌파정권은 대중운동의 다양한 실험과 성장을 위한 보호막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상당한 난제가 존재한다. 좌파정권은 국민들에게 사회질서의 유지와 책임성을 입증해야만 하고, 이것은 대중운동의 확대를 제한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특히 좌파정권은 극우파와 극좌파의 전술과 관련하여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우파세력들은 이러한 국가의 대중운동에 대한 비억압을 다양한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만일 좌파정권이 선택적으로 우파를 억압할 경우 중간계급의 이탈을 낳을 수 있다. 또한 의회 밖의 극좌파가 고도의 파괴적인 전술을 활용할 수 있다. 만약 좌파정권이 극좌파를 억압할 경우 많은 좌파의 동요가 나타날 수 있다. 좌파정권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원칙을 지키는 동시에 이러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좌파정권은 대중운동의 활성화가 단기적으로 손실을 입더라도 장기적으로 훨씬 엄청난 득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자본주의 국가가 노동자계급을 주기적인 투표행위로 제한하여 고립화·원자화시키는 효과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이들이 조직된 집합체의 성원으로서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길을 넓히는 것이다. 국가 및 지역기획회의에 공장대표나 평의회 대표의 참여, 국가 산업의 자주관리 구조의 촉진 등을 통한 국가의 '부분적 탈관료제화'는 정치참여를 보다 집합적이고 공적인 정치생활의 형태로 전환시킬 수 있고, 노동자계급 형성을 확장, 심화시킬 수 있는 잠재적 여지를 가지며 노동자계급의 계급역량 강화에 기여할 것이다(이와 관련된 국가적 수준의 방향과 지방적 수준의 방향에 대한 많은 정책들이 개발되어 있다. 여러분은 지방적 수준에서의 대표적인 실험인 참여예산제를 기억할 것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추후 소개하겠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의 틀 내에서 이러한 탈관료제화 전략은 지속적으로 제한될 것이고, 다양한 법적, 제도적 장애 요인에 의해 끊임없이 방해받을 것이다. 당연히 밟아야할 과정상의 규칙들은 새로운 민주적 국가행정에 참여하려는 민중조직의 주도권을 끊임없이 깨뜨리려 할 것이다. 또한 관료적 특권은 행정적 분권화(더 작은 단위로의 분권화와 시민으로의 분권화) 시도의 효과를 해칠 수 있다. 또한 노동자들의 주40시간 노동시간은 참여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세밀한 정책이 요구된다. 이러한 정책들은 대의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대안적 시도가 싹트는 데 기여할 것이고, 더 근본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나타내 주는 데 기여할 것이다.


결국 좌파는 의회에서의 다수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보일 뿐만 아니라(이 자체로 험난한 과정이다) 집권 이전에 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특히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의 상당한 활력과 응집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내부 민주주의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적 역량이 없다면, 노동계급의 정부에의 참여는 코포라티즘(사회적 합의주의)의 틀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둘째,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관료제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하급 공무원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이것은 선거 승리 이전에 공무원 노조의 활성화와 민주노조와의 긴밀한 연대가 있어야 한다. 셋째, 자본가 계급의 이데올로기적 패권(사회주의적 대안이 가능하지 않다)을 넘어서서 노동자계급 내의 사회주의적 의식을 확산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관료제에의 참여는 상당부분 지연될 것이다. 넷째, 선거투쟁을 다양한 사회운동과 체계적으로 연결시키고, 선거전략을 국가수준의 정부 못지 않게 지역 수준에 맞추어 다양한 실험을 경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당의 프로그램은 대중의 아래로부터의 주도권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는 것이어야 하는 동시에 천편 일률적이고 관료적인 방향으로 구성되지 말아야 하고, 사람들의 행위에 평등, 참여, 자율성, 관용 등의 사회주의적 문화가 풍부하게 배양되도록 해야 한다. 
 
(4) 네 번째 문제는, 부르주아지는 좌파정권과 노동자계급이 국가기구를 붕괴하는 풍부한 실험이 진행되도록 기다리지 않고 저항한다는 데 있다. 부르주아의 저항 방법은 첫째, 다양한 형태의 자본파업(자본도피, 국제금융기구에 의한 신용단절, 통상금지), 둘째, 무장된 반동혁명(쿠데타), 셋째, 제국주의 세력의 침투 공작(칠레의 사례) 등이 있다. 첫 번째 문제와 관련해서는 추후 논의로 넘기겠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제와 관련해서는 원론적인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 즉 좌파세력은 지속적인 군부혁신과 민주화를 추진하고, 국제사회의 세력균형을 통해 제국주의 세력의 군부지원을 차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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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2 17:42 2005/04/2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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