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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을 퇴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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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의 여론조사를 인용해서 2mb가 자신감을 가지고 강공을 펄치고 있다고 하는데, 선데이라고 해서리 '선데이서울'의 복제판인 줄 알았다.
이명박은 6월 19일 특별 기자회견에서 청와대 뒷산에 올라 시위대가 아침이슬을 부르는 것을 들으면서 ‘뼈저린 반성’을 했다고 얘기하더니 , 그러한 말이 시민을 속이기 위한 헛짓거리였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 한마디로 예상했던 대로다. 
 
촛불이 줄어서 자신이 이겼다는 생각이 들더냐. 이명박은 시민과 소통하려는 맘 자체가 없었다. 그는 "촛불의 숫자가 많을 때 빈말일지언정 두 번 사과하고, 여러 번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겠다고 다짐했던 그는 그 숫자가 줄면서 촛불이 사위어가고 시민들이 지치고 약해 보이자 국가정체성에 도전하는 세력이라며 역습을 가했다." 소통의 대상을 쪽수로 선택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지만, 시민들은 6월 21일, 22일 이명박의 사과에 만족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저들은 그대로 밀고 나가서, 오늘은 고시를 관보 게재했다. 국가정체성을 어긴 이가 바로 자신임을 보여주었다.
 
저들을 저대로 놔두어야 할까. 단지 믿을 것은 억압적 국가기구밖에 없는 저들에게, 그 동안은 상징적 구호에 불과했던 '명박 퇴진'을 이제는 실질적인 구호로 내세워야 한다. 물론 이명박을 퇴진시키기 위한 섬세한 기획과 구체적인 내용들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부족하다고 해서, 우리가 만들어낸 정세가 아니라고 해서 그냥 이대로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6월 25일은 또다른 전환점이다. 촛불집회가 시작된 5월 2일, 가두로 진출했던 5월 24일, 처음으로 청와대 앞 도로까지 진출하여 밤샘시위를 벌였던 5월 31일, 그리고 가장 많은 시민들이 쏟아져나왔던 6월 10일에 이어 고시 확정 발표에 따라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고 25일만에 다시 물대포가 등장한 6월 25일은 촛불이 또 다른 형태로 변했음을 의미한다. 25일 집회의 의미와 특징에 대해서는 장석원 기자가 잘 정리해놓았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기껏해야 '선출직 고위공무원 1호'에 불과하다. 대통령이 임기를 다 못 채우고 물러난다고 해서 국민이 불행해지는 일은 없다. 총칼로 권력을 빼앗은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일지라도 대통령의 직무를 다할 수 없는 자라는 것이 입증됐다면 물러나야 한다. 주권자인 시민에 의해 대통령이 해임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우리 역사에 건강한 양분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 정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을 포기했다. 그럼 국민은 주권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이제 헌법이 보장한 '행복해질 권리', '죽지 않을 권리',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이명박 정권을 퇴진시키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이 글에 대해 오바라고 댓글을 단 이들은 대부분 진보신당의 당원들로 보이는데, 진보신당이 얼마나 대중의 정서에서 떨어져 있는지, 얼마나 허접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번 직접행동을 통해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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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정치, ‘숫자의 마술’ 부작용 (미디어오늘, 2008년 06월 25일 (수) 11:40:49 류정민 기자)
[기자칼럼] 이 대통령 ‘뼈저린 반성’ 유효기간은 일주일? 
 

2008년 5월, 6월 대한민국에 벌어지는 일들을 예측한 사람이 있을까.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헌법 제1조’를 부르고 ‘조중동 반대’를 외치는 상황은 자체로 연구 대상이다.
 
민주화 20년, 평화적 정권교체 10년의 세월에 대한 총체적 평가는 2007년 12월19일 대통령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국민 여론은 정권을 교체시켜 줬으니 지난 정부의 잘못은 되돌리고 잘한 점은 이어받으라는 무언의 압력을 보냈다. 
 
이명박 정부가 취임 100일 만에 위기국면으로 내몰린 가장 큰 이유는 민주적 가치가 무너지는 현실 때문이다. 노무현 시대에는 대통령을 마음껏 비판하고 욕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국민의 비판에는 악담과 저주만 있던 것은 아니다. 
 
▲ 중앙선데이가 지난 22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중앙선데이 
 
무너진 민주적 가치, 이명박 정부 위기의 본질

남녀노소 직업을 불문하고 국민의 바람과 기대, 아쉬움이 분출될 수 있는 것도 한국사회가 한 단계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부동산 값 폭등, 비정규직 확산, 사회 양극화 심화 등 참여정부가 남긴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지만 권위주의 시대를 타파하려는 노력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일성으로 국민을 섬기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행동에는 권위주의 시대의 병폐가 되살아나고 있다. 찬찬히 들여다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9일 특별 기자회견을 열고 ‘뼈저린 반성’을 얘기했다.
 
국민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았다는 반성의 의미였다. 주요 방송 생중계를 지켜본 국민 중 일부는 이명박 정부의 태도 변화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한 변화는 끝 모르게 떨어지던 국정운영 지지도에 미세한 변화를 가져왔다.
 
이명박 정부 달라지지 않은 '독선'

그러나 국민의 마음은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입으로 ‘진정성’을 얘기한다고 마음으로 그것을 느낄 수는 없는 법이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뽑힌 대통령이 취임 100일 만에 퇴진 압력을 받고 실제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40%가 물러나야 한다고 응답하는 현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국민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돌리려면 이명박 정부의 잘못이 무엇인지 정말로 ‘뼈저린 반성’을 하면서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노력이 선행돼야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뼈저린 반성’을 얘기한 지 일주일도 안돼 그러한 주장은 ‘눈속임’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 부산 MBC의 지난 21~22일 여론조사 결과. ⓒ부산 MBC 
 
이명박 정부는 변한 것이 없었다. 오히려 오만하고 독선적인 모습이 더 부각됐다. 촛불 민심을 경청한다고 해놓고 촛불 참가자를 향해 빨간색 덧칠을 하는 구태를 보이고 있다. 청와대가 진두지휘하고 여당과 법무부 검찰 경찰이 움직이고 일부 보수신문이 여론몰이에 나서는 모습은 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을 연상하게 한다.
 
경향신문 "대통령이 국민 겁박하나"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 폭력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의도로 이런 얘기를 했는지는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검찰과 경찰은 인터넷상에서 대통령에 비판적인 여론을 향해 ‘재갈’을 물리려 하고 있다. 여당 지도부는 촛불 참가자를 프로 시위 꾼으로 묘사하고 있다. 대통령 주도 공안정국을 언론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경향신문은 25일자 <이명박 대통령, 국민을 겁박하나>라는 사설에서 “독재정권 시대의 이념적 편 가르기를 통한 국면 돌파 방식을 연상케 한다. 이는 국민을 겁박하는 것”이라며 “이 대통령의 발언은 '뼈저린 자성'이 한창 타오르던 촛불을 일시 모면하기 위한 수사였다는 심증을 더욱 굳혔다”고 주장했다.

국정운영은 게임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민을 상대로 포커 게임을 하고 싶은가. 표정으로 적당히 상대를 속이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국민도 대통령을 상대로 '한판 대결'을 벌여달라는 말인가. 국민을 상대로 싸워서 이긴 정권이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왜 모르고 있는가.
 
이명박 정부 26일 관보 게재하나

이명박 정부는 미국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을 담은 고시를 26일 관보에 게재할 것으로 보인다. 쇠뿔도 단김에 빼자고 비판여론을 의식하지 않는 일사천리 행보이다. 중앙일보가 여론조사로 도와주고 동아일보도 측면지원에 나서고 한나라당 싱크탱크까지 ‘여론조사 정치’에 동참한 것을 보며 자신감을 얻은 것인가.
 
하지만,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는가.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가 이명박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가 30%를 돌파했다고 밝혔던 당일 부산 MBC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정지지도가 15%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물론 조사 주체나 기법의 차이에 따라 지지도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표를 몰아줬던 지역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비판의견이 여전하다는 상황 자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여론조사에 담긴 ‘숫자의 마술’에 국정운영의 방향을 결정하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 선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론조사 수치가 잠시 기분을 풀어줄지 모르지만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끄는 ‘덫’으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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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칼럼]이명박의 ‘국가 정체성’을 묻는다 (경향, 이대근 정치·국제에디터, 2008년 06월 25일 18:07:57)
  
두 달 가까이 계속되는 촛불집회도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이지만, 이명박의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태도 역시 예상한 것 이상이다. 이 나라 전체가 촛불로 뒤덮여 아우성일 때도, 대응이 너무 늦는 것 아니냐며 여당이 발을 구르며 초조해 할 때도, 지지율이 한 자릿수를 향해 추락할 때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촛불이 지칠 때까지 참고, 또 기다렸다. 이런 그의 인내와 기다림은 보상을 받았다. 촛불집회 규모가 지난 6·10 백만 대행진을 정점으로 작아진 것이다. 숫자를 중시하는 그에게 이 사실은 결정적이다. 재협상을 거부하고, 대운하 외에는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기업 민영화는 선진화로, 무한경쟁의 교육자율화는 교육제도 개선으로, 재벌중심 경제정책은 규제개혁으로 이름만 바꾸고는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게 불만이라면 백만 촛불대행진을 또 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촛불은 할 말을 다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호소했으면 된 것 아닌가. 촛불은 지쳤다. 그러나 지칠 줄 모르는 이명박은 더 해보자고 한다. 수석뿐 아니라 장관을 다 내주는 한이 있어도 기존 국정 방향과 통치 방식을 고수할 테니 저항할 힘이 남아 있으면 더 해보라고 한다. 촛불이 졌다. 이명박이 이겼다.
 
촛불 줄자 ‘반국가세력’ 모함
이런 승리는 그가 시민 의사에 귀기울였다면 결코 얻을수 없는 전과이다. 이명박이 국민과 소통한다면서도 촛불집회의 시민들과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이유가 있다. 반대세력은 늘 있게 마련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반대세력의 존재와 규모는 대통령의 잘잘못의 크기과 별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그는 믿는다. 따라서 그들의 의견은 국정 운영에 참고할 만한 가치가 별로 없다. 그가 국정에 반영하지도 않을 의견을 듣는 것처럼 위선을 부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국민의 뜻을 받들지도 않았고, 반대 의견에 귀기울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국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라고 했다. 반대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가장 중요한 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앞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말은 믿을 수 없는 빈말로 분류하는 게 마땅하다.
 
뼈저리게 반성했다는 그의 말도 오해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국정방향과 정책의 잘못을 반성한다는 뜻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기가 제시한 국정방향과 국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던 자신을 자책한다는 의미이다. 추가 협의가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확보해 시민의 상한 자존심을 회복시킬 것으로 믿은 것도 잘못이다. 김종훈 본부장은 미측에 백만 촛불대행진 사진을 보여주며 이게 과학으로 설명되는 것이냐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미국 역시 한국의 주장에 일리 있어서가 아니라, 동맹차원에서 고맙게도 양보해 주었다는 것이 청와대 대변인의 자랑이다. 당당하게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확보하라는 것이 시민의 요구였다. 그러나 정부는 과학, 권리, 논리로 설득하는 대신 정서적 호소를 했다. 미국이 잘못한 것은 없지만, 과학을 잘 모르는 한국인들이 떼를 쓰고 있으니 달래줘야 한다고 매달리자, 부시가 그런 한국의 처지가 안쓰러워 조금 양보해 줬다는 게 그들이 말하는 추가협상이다. 한·미 양국 정부가 시민을 바보로 만들고 모독했다. 이명박이 시민을 가벼이 여긴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사례를 더 들 수 있다. 촛불의 숫자가 많을 때 빈말일지언정 두 번 사과하고, 여러 번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겠다고 다짐했던 그는 그 숫자가 줄면서 촛불이 사위어가고 시민들이 지치고 약해 보이자 국가정체성에 도전하는 세력이라며 역습을 가했다. 돌아서는 촛불의 등에 칼을 꽂았다.
 
‘국가정체성’ 지킨 시민들 모독
국가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어떤 국가여야 하는가에 대한 시민들의 의사의 총체이다. 시민들은 촛불집회에서 그것을 표출했다. 시민들은 신자유주의 난폭성으로 인한 삶의 파괴, 주권과 건강을 양보한 대외관계, 우리 사회가 기반하고 있는 가치와 합의의 붕괴를 막기위해 나섰다. 국가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촛불을 든 것이다. 그런데 시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시민을 반국가 세력으로 모함했다. 적반하장이다. 누구의 국가인가. 시민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그의 국가인가. ‘다른 국가’를 꿈꾸며 국가를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그는 누구인가. 이명박의 국가 정체성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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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공화국은 내전 중" (레디앙, 2008년 06월 26일 (목) 06:43:06 장석원 객원기자)
달라진 촛불 '축제에서 항쟁으로'…정권, 기댈 덴 군과 경찰 
 
공화국은 내전에 돌입했다. 70년 전 스페인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2008년 6월 25일 대한민국은 총성 없는 내전 상태에 들어갔다.
 
이명박 정권은 미국과의 추가협상 후 여론이 많이 좋아졌다고 판단한 듯 쇠고기 정국에 대한 정면돌파 입장을 결정했다. 그리고 정부는 25일 해가 지기 전에 현직 국회의원과 초등학생을 포함한 47명의 시민을 강제연행하면서 자신들의 의지가 얼마나 강고한지 과시했다.
 
시민도 경찰도 달라졌다

자정 무렵부터는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물대포가 다시 등장했다. 물대포에 이어 경찰은 20세기의 유물인 토끼몰이 진압을 부활시켰다. 새벽까지 이어진 경찰의 진압은 눈에 띨 정도로 공격적으로 변해 있었다. 결국 전경이 한 시민의 손가락을 물어 끊는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거리의 시민들도 지금까지의 촛불대중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다음 아고라는 정권과 경찰에 대한 격한 감정을 담은 글들이 쏟아졌다. 이미 언론은 시민의 분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정부 시책에 대한 소박한 반대에서 시작한 운동이 50일 만에 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확장됐다. 대통령은 취임 120일 만에 시민사회를 뒤집어 놓고 국민을 투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촛불에는 배후가 있다는 대통령의 말은 진실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바로 촛불을 횃불로 만들고 있는 주범이요 배후세력인 것이다.
 
▲25일 이명박 정권은 자신들이 경찰의 물리력이 아니면 유지될 수 없는 정권임을 드러냈다. (진보신당 칼라TV 제공)

 
축제에서 항쟁으로, 뿔난 시민들

25일 촛불 문화제는 여러 면에서 의외였다. 우선 장기간 지속된 일정, 정부와 미국의 추가협상 종료, 보수의 반격 등 여러 이유로 참여 동력이 떨어지고 있었고 25일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줄기는커녕 참석자가 늘어났다. 이건 전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공이다.
 
문제는 참석자들의 수가 아니라 분위기다. 네티즌들은 장관고시 강행 소식이 인터넷에 뜨기가 무섭게 집결장소와 시간을 공유하고 행동에 들어갔다. 광우병대책위가 상황 파악에 주력하고 있던 시점이다. 그리고 이들이 경복궁역 인근에서 첫 번째 연행자가 됐다.
 
이후 세종로에서 진행된 집회에서도 대책위는 기획보다 방송지원 수준에 그쳤다. 대중들은 스스로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이 바라는 목포와 자신의 행동을 일치시켰다. 그리고 그런 개인적인 일치가 다수의 행동통일로 연결된 것도 25일의 특징이다.
 
대책위에 대한 서로 정반대되는 불만이야 애초부터 계속 있었고 그래서 대책위와 상관없이 나의 길을 걷는 대중도 꾸준히 존재했지만 지도부로부터 자유로운 대중들이 개별이 아니라 집단으로 행동한 것은 50일이 지난 촛불이 다른 형태로 변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비폭력과 마조히즘

요구조건 또한 정권에 대한 분노와 민주주의의 문제로 정리됐다. 개별사안에서 일반적인 문제로 확장된 것이다.
 
또 하나 눈에 띤 것은 그동안 촛불문화제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반복된 '폭력 vs 비폭력' 논쟁이 대폭 줄었다는 점이다. 정신 차릴 틈을 안주고 몰아붙인 경찰 탓이기도 하겠지만 비폭력을 목숨처럼 고수하던 이들이 경찰의 폭력성을 목도하고 충격을 받는 모습도 쉽게 관찰됐다. 이는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지켜보던 사람들에게서도 강하게 감지됐다.
 
사실 폭력이란 물리력이 아니다. 폭력이란 멀쩡한 대학생을 잡아다가 물고문하고 죽이거나, 거리를 온통 둔덕으로 채워서 장애인은 집밖에도 못나오게 만들거나, 커피는 여직원이 타야 제 맛이라고 굳게 믿는 것이다.
 
최루액을 탄 물을 자연 상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스피드로, 그것도 사람을 향해 쏘아대는 집단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것은 폭력이 아니다. 비폭력이란 예를 들어 대열에서 이탈해 시위대 안으로 들어온 전경을 사람들이 둘러싸고 때려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지휘관이 굳이 명령을 하지 않아도 시위대를 흠씬 두들겨줄 각오와 준비와 훈련이 돼있는 사람들 앞에 서서 '너희가 내 몸에 무슨 짓을 하건 난 그냥 맞아줄게'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폭력의 숭고함이 아니라 그냥 단순한 마조히즘일 뿐이다.
 
벼랑 끝으로 달려가는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의 존재는 현 정국에서 최대의 미스터리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지금 어떠한 분석과 예측도 거부하고 있다. 일부러 악수를 두는 것이 아니라면 이명박 대통령은 빠져나오려고 몸부림 칠 때마다 스스로를 더 파묻는 그야말로 기가 막혀버릴 상황에 놓여있다.
 
대통령 스스로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지금 철저하게 혼자다. 내각은 사표를 제출한 좀비들이고, 국회는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지 오래고, 여당은 지도부 뽑는다고 정신이 없다. 관료들은 정권 핵심으로부터의 결정 기능이 마비되면서 간단한 업무의 집행조차도 청와대의 눈치를 보면서 손을 놓고 있다. 보수언론은 대통령을 방어하기는커녕 광고 문제 등 자기들을 방어하는 데도 숨이 차다.
 
믿었던 미국은 이제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부시는 방한을 취소했고, 미의회는 차기 주한미대사 결정을 늦추는 외교적 결례를 범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항의표시는 고사하고 '동맹강화'라는 뜬구름만 잡고 있다.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어떠한 미련도 없음을 50일 동안 거리에서 목 놓아 외쳤다. 그런 이명박 정부가 지금 기댈 것은 경찰과 군대 딱 둘 뿐이다. 군대는 계엄령이 필요하니 사실 경찰 하나만 남는다. 지금 이명박 정권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야구팀 하나도 못 만들 숫자의 신임 청와대비서진들과 경찰력이다.

신임 대통령이 공안정국을 만들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대통령이 현재 가진 유일한 통치수단은 경찰집단 뿐이다. 경찰로 권력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두고', '패고', '잡아들이는' 일이다. 다른 말로 '공안정국' 만들기다.
 
'실용주의자' 대통령은 취임한지 반년도 안돼서 이 나라를 게슈타포 국가로 변모시켰다.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경찰이라는 이름의 폭력집단

촛불을 대하는 경찰의 태도에서 매번 드러났고, 특히 25일과 26일 새벽의 강경진압을 통해 더 이상 한국 경찰이 '공권력'이 아님은 분명해졌다. 지금 이 나라의 경찰은 무장한 폭력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일본경찰이 좌익에 강경하고 야쿠자에게 취약하듯이, 한국경찰도 우익 강경파들과 이상한 협업 관계임이 밝혀졌다.
 
시민을 보호하고 법을 지키는 일은 한국경찰이 가장 마지막에 떠올리는 임무다. 시민들이 아스팔트에 발만 디뎌도 경기를 일으키는 경찰이 정작 전경버스로 차선 메우기, 도심에 컨테이너로 블록 쌓기, 광화문 앞에서 세종로 사거리까지 점거농성하기 등 불법이란 불법은 다 저지르고 있다.
 
우익단체가 시민들을 폭행할 때 이를 막아주는 정의로운 역할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집회할 때 경찰이 시민을 폭행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경찰이 무장한 채 떼로 몰려다니면서 하는 일은 바로 정권을 보위하고 저항세력을 분쇄하는 것이다. 국민세금으로 유지되는 경찰이 왜 정권 경호부대로 둔갑한 것일까. 간단하다.
 
한국경찰은 제주도에서부터 서울까지 경찰청에 절대종속 돼있고 경찰청은 특정세력이 장악하고 있으며 특정세력 내부의 출세 문제는 정권의 결정사항이다. 집권세력은 경찰 수뇌부의 충성만 확보하면 전 경찰을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 거리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경찰은 그래서 공권력이 아니라 정권의 의지가 작동하는 기계에 불과한 것이다.
 
경찰은 25, 26일 양일간 모두 134명의 시민을 연행했다. 경찰청장은 아마도 대통령의 취임 120일 선물로 134명의 연행자를 바치고 싶었던 모양이다. 현 정권에 대한 경찰의 충성은 의심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민주당 살고 싶으면 전원 의원직 사퇴하라

시민들이 장관고시 강행 소식을 접하고 자발적인 저항행동에 돌입했을 때 민주당은 국회에 모여 등원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철학적인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민주당은 촛불투쟁 50일 동안 정국의 주도는 고사하고 정국의 유의미한 세력 역할조차 못했다. 이들의 역할은 그저 논평하고, 동요하고, 눈치 보는 것뿐이었다.
 
이 소심하고 무능력한 정치세력은 대중에 영합해 주가를 올리는 정치인 특유의 친화력은 고사하고 촛불이 대세가 되었을 때도 '우리가 촛불을 들면 너무 과격해보이지 않을까'하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대중들이 '재협상'이라는 요구안을 자생적으로 만들어갈 때도 '그래도 한미FTA는 해야 하지 않겠냐'는 딴소리를 천연덕스럽게 했던 것이 민주당이다.
 
지금 민주당은 갈 곳이 없다. 민주당은 국회를 거부했으면 거리에 서든가, 거리가 싫으면 국회로 돌아가든가 했어야 했다. 그러나 한 것도 없이 어정쩡하게 두 달을 보냈다. 이제는 등원하자니 폼이 안 나고 싸우자니 뒷북인 난감한 신세가 됐다.
 
그렇다고 탈출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외부세력이 국회를 해산할 수 없는 현행 헌법 상 18대 국회를 해산하는 방법은 민주당 소속의원 전원이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제아무리 용가리통뼈라고 하더라도 사실상의 단독국회를 유지할 수는 없다.
 
18대가 자연스럽게 해산하고 조기총선이 치러진다면 민주당은 현 의석수보다 훨씬 많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민주당이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크게 산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민주당의 현역의원들이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질 만큼 용기 있는 정치인들이었다면 이명박이 그렇게 쉽게 대통령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내 진보정당과 원외 진보정당은 연타석 히트를 날리고 있지만 1905년 러시아혁명과 같은 상황이 도래하지 않는 이상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갈 일은 없어 보인다.
 
총파업 선언한 노동운동

민주노총은 장관고시 강행시 총파업 돌입을 선언했다. 진짜 산별총파업은 물론 아니다. 수입쇠고기를 운송할 화물조직부터 시작해 가능한 사업장으로 파업을 확장하겠다는 취지다.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기는 했지만 민주노총의 파업지침은 26일 새벽 하달됐다. 단위노조 간부들이 비상대기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새벽에 떨어진 파업지침은 언론과 국민을 향한 성명서 성격이 더 강해 보인다.
 
재벌총수님들은 두 명만 모여도 '노동조합 등쌀에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지만 엄살일 뿐이다. 만약 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 어느 나라에서 시민들이 정부시책을 놓고 열흘만 시위를 벌였으면 그 나라의 노동조합은 재깍 총파업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노동조합은 시민들이 50일 가까이 싸워도 총파업을 선언만 해보는 그런 수준이다. 이런 노동운동을 두고 '강성노조'라고 우는 소리를 하는 걸 보면 한국재벌들이 분명 '글로벌 스탠다드'에 취약하긴 한 모양이다.
 
산별총파업은 중요하다. 시민들이 50일을 싸웠다. 대단하다. 그러나 앞으로 100일, 150일을 더 싸우는 것은 쉽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총파업을 통해 평일 낮에 딱 5일 싸우는 것이 평일 저녁과 주말에 150일 싸우는 것보다 더 위력적이고 효율적이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이 선언에서 실행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내전을 종식시키는 방법

25일자 한겨레신문은 멀리 독일에서 울리히 벡 교수가 보내온 특별기고문을 실었다. 울리히 벡 교수는 기고문의 말미에서 "한국인들이 '시장이 알아서 조절할 것'이라는 이론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새롭게 변해야 한다'는 이론을 앞에 놓고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섰다"고 썼다.
 
물론 그가 추천하는 답은 긴 쪽인데,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건 이명박이 대통령의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시장이 알아서 다 조절한다면 CEO형 대통령은 필요 없다. 반면 이명박이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는데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기고문을 다르게 해석하면 '이명박이 계속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가 물러나야 할 이유는 100가지쯤 된다'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기껏해야 '선출직 고위공무원 1호'에 불과하다. 대통령이 임기를 다 못 채우고 물러난다고 해서 국민이 불행해지는 일은 없다. 총칼로 권력을 빼앗은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일지라도 대통령의 직무를 다할 수 없는 자라는 것이 입증됐다면 물러나야 한다. 주권자인 시민에 의해 대통령이 해임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우리 역사에 건강한 양분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 정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을 포기했다. 그럼 국민은 주권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이제 헌법이 보장한 '행복해질 권리', '죽지 않을 권리',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이명박 정권을 퇴진시키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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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퇴진운동 본격화" VS "쇠고기 문제에 집중" (프레시안, 이대희/기자, 2008-06-25 오전 9:02:59)
2차 국민대토론회, '촛불'의 진로 놓고 격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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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6 17:56 2008/06/2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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