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날을 새면 안되는 거여...
제멋대로 가는 길 (펌 사절) View Comments
1.
복권위 용역보고서와 공공기관 경영평가 비판 보고서의 초안을 마무리하는 날짜가 겹쳐서 어쩔 수 없이 연구실에서 날을 새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만을 손봤을 뿐이다.
복권위 용역보고서는 새벽 5시경부터 시작해서 오전 11시가 다 되어서야 내가 맡은 부분을 대충 끝내고, 이메일로 다른 이들에게 전송했다. 돈도 돈이지만, 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창의력을 발휘해서 칸을 채워야 하는 고통은 정말 견디기 어렵다.
이에 반해 공공기관 경영평가 비판 보고서는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는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이미 분량이 100페이지가 넘고, 그 중에 내가 쓴 - 아니 여기저기 잘 짜깁기한 - 부분이 70페이지가 넘다보니 뭘 조금만 고쳐도 여기저기 손볼 곳이 쏟아진다. (그나마 개요번호를 주고, 표목차 주기를 해서 쓸데없는 힘빼기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며칠 안보고 있으면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것도 아닌데 그새 내용을 까먹게 되고,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왜 그리 새롭고 참신한 건지... (꼭 '주여, 진정 내가 이 글을 썼나이까?' 이런 심정)
오늘 오후까지는 마무리해야 하는데, 내 앞에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와 관련된 자료와 관련파일이 수북히 쌓여있다. 이런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한숨만 쉬다가 또 어영부영하고 시간을 흘러보낸다. 이러고 있을 새가 없는데 말이다.
뭐, 그래도 일단 최선을... 잠은 오늘 하루 견디고, 밤에 푹 자는 것으로 대신한다. 문제는 저녁 때 홍알과 그 아해들의 모임이 있다는 것. 아무래도 그 전까지 보고서를 마무리 못하고, 가서는 자울자울 할 것 같다. 될대로 되라지.
2.
어제는 권용목씨가 사망했다는 기사를 봤다. 언뜻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나 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권용목 본인이었다. 향년 52세. 팔팔한 나이이다. 그런데 왜 그 아자씨가 말년에 뉴라이트노동연합이니 하면서 뻘짓거리를 했는지 이해가 안된다.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이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그의 장례식을 뉴라이트단체들이 시민사회단체장으로 치른단다. 그는 이를 맘에 들어할까.
그리고 어제 밤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도 들었다. 역시나 뉴스는 그의 부음소식으로 뒤덮였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본 YTN은 거의 10여분을 김수환 추기경 사망 소식으로 채운다.
그에 대해 할 말이 많다만, 고인에 대한 예의상 걍 한 사람의 종교인으로 보내주고 싶다. 그가 한국 인권운동에 기여한 것 등을 기억하면서 그런 내용으로 채우기엔, 말년에 조선일보를 애독했다던 그가 보인 언행도 잊지 않아야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것을 다 떠나 인간 김수환, 종교인 김수환으로서 보내주련다.
그렇게 넘어가니 마지막으로 한 말이 "고맙습니다"였다는 것, 자신의 안구를 기증했다는 것 등 인간적으로 좋아봐줄 만한 구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명동성당에 안치되어 있단다. 지난 토요일 서울역에서 충정로, 이대역, 종로3가, 그리고 명동 밀리오레 앞을 거쳐 마지막에 명동성당에서 정리집회했던 생각이 난다. 이상하게 명동성당에 있거나 지나치게 되면 3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하나는 6월 항쟁 때 며칠간 명동성당에서 농성했던 그 사람들, 두번째는 89년 어느날 가두투쟁을 마치고 정리집회를 하러 모인 자리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너를 부르마'를 부르던 것, 세번째는 99년 위암으로 투병하시던 아버지가 백병원에 입원에 있을 때 거의 매일 집과 백병원을 왔다갔다 하면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명동성당을 지나쳤던 것. 그 명동성당에 김수환 추기경이 누워있다.
영면하시라.
3.
어제 오후에 연구실에 들어가는 길에 황우석 지지자들의 텐트 옆에서 흘러나오는 민중가요를 들으니 묘한 기분이 들더라. 십여일 전에 설대 주변의 황우석 관련 프랭카드가 모두 수거되고, 길바닥에 써놓은 낙서도 다 지워졌건만, 텐트는 여전히 남아있으면서 틈만 나면 고장난 축음기처럼 비장한 톤으로 선동을 하거나 노래를 반복해서 들려준다.
얼마 전에는 민들레처럼이 가끔 흘러나오더니 어제는 불나비, 바위처럼이 흘러나오더라. 이 노래를 듣는 이들이 '황우석 지지자=꼴통 운동권' 이런 인식을 할 것이라 생각하니 참 기분이 더럽더라. 그렇다고 어떻게 너희 따위가 그런 노래를 틀 수가 있어 이렇게 화낼 수도 없고...
불나비는 내가 다녔던 학부의 과가였다. 김진균 선생의 필명이기도 했고... 지난 토요일은 김진균 선생의 5주기였기에 함춘회관에서 있었던 김진균 기념사업회 정기총회를 거쳐 마석 모란공원까지 다녀왔다.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고...
그러고 보니 그날도 복권위 보고서 용역 땜에 조찬이 있어서 날샜구나. 앞으로는 이런 멍청한 짓거리를 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그러려면 시간을 좀더 치밀하고 밀도있게 사용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할텐데... 항상 나의 로망이지만 쉽지 않더라. 그렇다고 걍 이대로 살자 이런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제대로 살자, 응!
로자 2009/02/18 08:06
"돈도 돈이지만, 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창의력을 발휘해서 칸을 채워야 하는 고통은 정말 견디기 어렵다." 대공감! 그렇다고 잘 아는 부분도 쓰는 게 즐거운 건 아니라는 게 문제죠. 더 잘 쓸 수 있을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마구 들어서 괴로운...
전 "걍 이대로 살자"로 거의 정리했는데. ^^;
새벽길 2009/02/21 05:47
이대로 사는 것도 쉽지 않아서 말이져.
처음에 시작할 때는 정말 나라면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쓰려고 하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어디서 뭘 먼저 시작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는...
최근에 감사원 감사의 문제와 관련해서 글을 써야 하는데, 이것도 자료수집만 조금 하고 전혀 진도가 안나가더라구요.
로자 2009/02/18 09:49
조선일보를 애독하던 만년의 김수환 추기경은.... 사실 지난 세대의 '할아버지'가 되신 후로 많은 걸 기대할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분은 그분이 필요했던 그 시대에 할 일을 하셨고, 그 후에 세상은 그분보다 더 빨리 나아갔던 것이지요. 물론 스스로도 같이 더 나아가실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으나... 이미 뒤쳐진 분을 뭐라 타박할 게 아니라, 이미 우리 후세대의 몫이었을 테니까요.
새벽길 2009/02/21 05:52
40만의 추모행렬이 이어지고, 그를 추모하는 여러 얘기들이 나오는데, 대부분 2000년 이전의 인연에 관한 것이더라구요. 아마도 그 때까지는 그럭저럭 자신에게 기대되는 일들을 하셨던 듯 하나, 그 뒤부터는 그 잔영으로 사는 듯 해요.
암튼 MB는 천운을 타고 난 것 같아요. 무슨 문제가 생기면 이를 뒤엎는 다른 사건이 생기니... 군포 여대생 살인사건도 적극 이용했지만 김추기경 사망도 국면전환의 많은 호재가 되지 않았을지... 삶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MB탓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며 열심히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남기면서 말이죠. 그 대가인지 몰라도 장례식을 공중파 3사가 중계방송을 했고, 김추기경의 장례절차는 국가기록물로 남겨졌다네요. 거참...
핵퍽탄 2009/03/13 08:21
전 어려서 집사람을 성당에서 만나 결혼했는데...둘이서 얘길 해보니 추기경님 말년의 언행에 대해선 '그냥 노인네 나이드시니 노망이 나셨네' 정도로 결론나더라구요. 권용목씨는 지지난 대선때 정몽준씨 지지하는 순간부터 끝까지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이더니....역시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건 유쾌하지 못하네요. 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