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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도 내일이면 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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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WBC 때문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일 WBC 일본과의 결승전이 끝나면 무슨 낙이 있을까 싶어 우울해지기도 한다. 이것 때문에 끊었던 케이블 방송을 다시 연결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물론 그렇다고 평소에 내가 야구의 광팬이었던 것은 아니다.
 
프레시안에 올라온 정희준 교수의 글은 그 와중에 WBC의 문제를 잘 짚어주고 있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는 예의 다른 기사들처럼 '한국 야구의 힘'에 대해 쓴 글인 줄 알았다가, 정희준 교수가 필자인 것과 '병역 면제'를 적시한 부제를 보고 이번 WBC에서 붉어진 문제를 지적하는 글인 것으로 예측하게 되었고, 역시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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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가 '사고'치는 진짜 이유 (프레시안,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2009-03-23 오후 2:26:08)
[정희준의 '어퍼컷'] '병역 면제'에 목 맨 한국 야구
 
한반도에 스포츠가 들어온 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포츠는 민족적 콤플렉스를 치유해주고 '자랑스러운 한국인'을 확인시켜주는 '집단 세례'의 기능을 해왔다. 그런데 100년이 지나도록 스포츠는 '이성의 영역'에서 점점 더 먼 쪽으로 흘러갔다. 21세기 한국의 스포츠는 아직도 자기만족, 자아도취의 세계일 뿐 아니라 대중 마취와 집단 환상을 조장하는 대중 종교의 성전이고 집단 자위의 집결지가 되어가는 듯하다.
 
미국은…, 조용하다. 놀랐다는 사람도 아직 못 봤다. '경악'했다는 그 '세계'는 어느 동네에 있는 세계인지 잘 모르겠다. WBC가 시작한 이후 꽤나 많은 이곳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대부분은 그런 대회가 있다는 정도만 알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미국 야구팬들에겐 메이저리그 팀들의 스프링캠프가 더 중요하다. 그들에겐 미국팀의 WBC 우승 여부보다 이번 시즌 뉴욕 양키즈 중견수 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WBC 2라운드 경기 대부분의 관중 수는 현재 진행 중인 스프링캠프 시범경기 관중 수(보통 1만~2만 명)에 못 미쳤다.
 
메이저리거가 많을수록 강팀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은 WBC의 경우엔 정확하게 틀린 답이다. 메이저리거들에게 3월은 몸을 만들어야 할 스프링캠프 기간이다. 어쩔 수 없이 이들의 WBC 경기 출전은 스프링캠프처럼 몸만들기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래서 절대 무리 안 한다. 메이저리거가 가장 많은 미국팀에 부상 선수가 가장 많은 이유가 사실은 이것이다. WBC가 투수들의 투구수를 제한한 초등학교 야구 같은 희한한 규정도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배려한 것이다.
 
그럼 한국팀은 왜 강한가. 마침 눈에 들어오는 기사가 있다. 바로 '병역 면제 추진' 기사다. 경기 결과에 무엇이 걸렸느냐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 차이는 경기 막판 기진맥진해 더 이상 뛸 수 없는 사람을 주저앉게도 만들고 죽어라 뛰게도 만든다.
 
WBC는 올림픽에서 퇴출되자 메이저리그가 급조해서 만든 일종의 '초청 대회'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라는, 일개 국가의 프로리그가 만든 이 대회는 야구의 세계화를 통해 야구를 상품화, 즉 돈벌이 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이들 덕에 정말로 덕 본 사람들이 있다면 한국팀이 결승까지 올라가 주는 바람에 광고 수입이 엄청나게 들어온 방송사와 취재 거리 찾아 피곤하게 헤매는 대신 책상에 앉아 외신 번역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기자들 정도일 것이다. 병역 면제 받고 싶으면 메이저리그 하라는 대로 할 게 아니라 세계야구연맹과 함께 노력해서 야구가 올림픽종목에 다시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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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교수의 글은 대체로 동의할 수 있는데, 병역 면제와 관련된 부분은 지나친 비약으로 보인다. 병역면제 혜택을 받지 못한 선수가 단 4명 뿐이라는 점에서, 나머지 다른 선수들이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는 것이다. 제1회 WBC 대회에서 이승엽의 "후배들한테 너무 미안했다"는 울음 섞인 인터뷰는 설명해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오히려 WBC가 지닌 국가대항전의 성격을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인식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는 데에서 찾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 쿠바의 카스트로마저 쿠바가 일본에 진 후에 이번 WBC 대회의 억지스런 조배정을 비판했다지 않은가.
 
대회를 만든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선 나름의 합리성을 도모했다. 메이저리거들이 많은 미국, 멕시코, 도미니카(1회전 탈락을 했지만), 푸에르토리코 등을 한 조에 넣어 이에 관심이 있는 이들의 주목을 끌고, 국가대항전에 집착하는 한국, 일본, 쿠바 등을 한 조에 넣어서 흥행성을 도모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과 한국이 4-5개국만을 상대한 채 결승에 오르고, 무슨 시리즈 경기처럼 5차례나 대결하게 된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관중 수도 1회 대회 때보다 더 늘었다니 그 정도면 되었겠지.
 
팻코파크 구장에서 승리한 후에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퍼포먼스도 두번째 보니 조금 무감각해진다. 3년 전에는 우리 안의 국가주의가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짓거리 같아 한숨만 나왔는데, 이제는 국가대항전 승리한 다음에 나오는 의례적인 것으로 보이더라.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식의 세레모니로 파악하고... 그 만큼 2002년 월드컵 개최 이후 국가주의가 확산된 것으로 봐야 하는 걸까.
 
엘리트체육이 아니라 생활체육이 육성되어야 한다는 말은 제껴두고라도, 메이저리거가 많으면 국위선양되는 걸까. 별다른 위안거리가 없는 현실에서,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맹활약을 하고, 여자골프 LPGA에서 10위권 내에서 한국계가 과반 이상 차지한다든지,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가 늘어나 그들이 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걸 국가 차원으로 승격시키는 것은 과도하다. 그냥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즐기면 되지 않겠는가. 
 
허구연 MBC 야구 해설위원이 대운하 추진보다는 돔구장 건립 추진이 더 경제적이라고 하면서 열변을 토하던데, 한국이 WBC에서 우승하면 이 분위기를 타고, 아니 우승하지 않더라도 일본의 도쿄돔과 비교를 하면서 돔구장 건립이 추진될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일종의 토목공사인데, 쉽게 되진 않겠지만...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지어졌던 대부분의 경기장이 수익성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걸 보면, 제대로 된 수요예측을 해야 하고, 경제성 또한 따져야 한다. 그리고 다른 종목들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하고... 말 그대로 종합경기장 형태의 돔구장이 가능할지...
 
조금 삐딱했는데, 걍 야구는 야구대로 즐기고 싶다. WBC의 문제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것마저 없었으면 3월이 정말 우울했을 것 같다. 앞으로는? 살펴 보니 4월 1일에 북한과의 월드컵 축구 예선전이 있는데, 아마도 내일 결승전이 끝나면 관련 기사가 조금 나오다가 월드컵 남북대결로 시선이 쏠릴 것이다. 어제 박지성이 입국했다던가...
 
병역면제를 결부시키지 않고, 야구에서도 제대로 된 국가대항전 경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정희준 교수의 시각과는 달리 올림픽에서 야구가 다시 채택되는 것이 아니라 월드컵 축구처럼 월드컵 야구경기를 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른 부작용이 상당함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상당히 흥미롭지 않겠는가.
 
WBC를 앞으로는 4년마다 한다지만, 지금처럼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와 겹치는 3월에 하는 것이 아니라 리그 중에 이를 중단시키고, 세계야구연맹이 중심이 되어 추진하자는 것인데, 쉽지 않겠지.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절대 용인하지 않을 테니까. 월드컵 축구가 전세계 정치, 경제에 미치는 효과와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미국도 국가 전체의 비용/편익을 구체적으로 따져 고려해볼 수도 있겠지만, 미국이라는 국가가 이를 강제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만한 이득도 없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야구는 축구처럼 전세계적인 스포츠가 아니기도 하고...
 
내일 일본과 또 붙는 걸 볼 생각 하니 정말 지겹네. 이거 봐야 해? 그래도 이거 경기예측하고, 지켜보고, 복기하고, 관련기사 훑어보는 재미를 어찌 참을 수 있으랴. 걍 '순수'하게 야구팬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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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3 20:12 2009/03/23 20:12

7 Comments (+add yours?)

  1. EM 2009/03/24 00:42

    미국인들은 별 관심없는데 한국인들만 유독 WBC에 열광하는 것하고 병역면제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언제부턴가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 부는 바람, 즉 무슨 문제만 있으면 다 "민족주의"니 "국가주의"니 하는 것에 잘못을 다 덮어씌우는 그런 태도도 불편합니다. 스포츠계에선 정희준 교수가 그 대표적인 인물인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스포츠계 내부에서 그런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내부사정을 좀 알 것 같은 사람이 남들 다 하는 "민족주의"니 "병역면제"니 하는 소리만 늘어놓는 것은 그다지 반겨지지가 않네요;;

    그나저나... 저는 이제껏 한번도 안 보다가 오늘은 마지막이기도 하고 그래서 좀 보려고 하는데... 그다지 재밌을 것 같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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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새벽길 2009/03/24 01:13

    동기부여 요인을 찾으려다 보니 병역면제에 주목했겠지요. 그래도 그건 더이상은 아닌 듯하고요.
    정희준 교수는 이번 글에서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별로 언급하지 않았어요. 다만 WBC를 둘러싼 메커니즘을 지적했는데, 거기에 병역면제까지 언급해서 오바를 한 것으로 봅니다.
    요즘에는 국가주의 문제 제기는 양극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를 인식하는 이들은 이를 전제로 깔고 비판을 하고, 인식하지 않는 이들은 갈수록 오히려 이를 미화하기까지 하고요. 그 간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 우려스럽습니다.
    저는 오늘 하는 것도 보려고 하는데... ㅡ.ㅡ;; 화룡점정이라고, 재미가 없어도 봐야 후회가 없을 듯...

     Reply  Address

  3. EM 2009/03/25 04:02

    저는 덧글로 화룡점정을... ^^;;

    일단 위 글에 대해 간단히 덧붙이자면... 위에서 필자는 크게 한국인들의 지나친 열광과 선수들의 눈부신 활약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면서, 전자는 "국가주의"와 후자는 "병역문제"와 연관을 시키고 있지 않은가요. 첫째로, 각각의 이슈를 이런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저는 못마땅합니다. 먼저 "(한국인들의) 열광" 부분을 "국가주의"와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치게 식상하기 때문이고, 다음으로 "(선수들의) 선전" 부분을 "병역문제"와 인과관계로 묶는 것도 지나치게 단순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새벽길님께서 밝혀주셨듯이 이 두 얘기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이렇게 각각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도 불만족스럽지만, 글 전체적으로 보면, 짤막한 글에 두 가지 상이한 이슈가 제기되는 것도 벅찬데 그나마 그 둘이 그다지 효과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 보입니다. 대충 보면 국민들이 열광하는 것과 병역면제가 뭔가 상관관계가 있단 얘기 같기도 하고... 말이죠. 제가 "미국인들은 별 관심없는데 한국인들만 유독 WBC에 열광하는 것하고 병역면제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네요"라고 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제가 너무 까칠했나요? ^^;;;

    암튼 저도 오늘 시합을 봤습니다. 간만에 야구 보니까... 아, 간만도 아니네요. 작년에 올림픽을 봤으니^^;; 암튼 재밌었어요. 저야 그냥 한경기 본 거지만... 계속 봐오셨던 분한텐 좀 실망스러웠을 것 같네요. 선수들이 못해서가 아니라.. 경기방식 등등과 관련해서요..

    그나저나 저는 한편으론 지기 잘했단 생각도 듭니다. 같이 보던 친구들이 이기면 태극기 들고 뛰자고 그래서요,,,;;;;;

     Reply  Address

  4. 새벽길 2009/03/25 21:47

    화룡점정을 깨뜨려서 죄송... ㅋ
    저도 정희준 교수가 병역면제를 연결시킨 것은 조금 아닌 것 같다는... 그러데 언론은 연일 그런 쪽으로 군불을 피우고...
    저는 계속 봐온 편인데, 다른 경기에 비해 어제의 한일전이 내용면에서는 상대적으로 괜찮았다고 보는 편입니다. 명승부전이었다는 것이죠. 야구팬의 입장에서 불만은 있지만, 경기방식이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니까 사소하지요.
    제 주위엔 이기면 태극기 들고 *랄하겠다는 이들은 없더군요. 많이 성숙되었다고 해야 하나. 아님 주위에 나이든 사람밖에 없어서 그런 것인지...

     Reply  Address

    • EM 2009/03/25 22:28

      같이 본 사람들은 한국에서 대학 잠깐 다니다가(1-2년) 군대 다녀온 뒤, 런던에 와서 학부부터 다시 시작한 남자 친구들은데요... 가끔은 이들의 "조국사랑"이 좀 지나치다 싶을 때가 있어요. 외국에 나와 있어서 더 그럴 것 같은데... 함께 경기를 본 친구의 방엔 태극기가 세 개나 걸려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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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새벽길 2009/03/25 23:34

    그 친구들은 그럴만 하겠네요. 바람직하진 않은데, 이해는 할 수 있을 듯...
    태극기 퍼포먼스 같은 걸 보면 한국의 국기사랑은 유별나지 않은가요? 지금은 약간 면역이 된 것 같기도 하고요.

     Reply  Address

    • EM 2009/03/26 12:14

      일단 한국이 유별나다는 데는 저도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들이 전혀 안 그러는 건 아니겠죠. 제 짐작에는... 다음과 같은 이슈가 있을 것 같네요. 일단 많은 나라들이 국기를 일부러 만들었을 겁니다. 즉 자기들 나름대로는 거기에 중요한 의미를 집어넣으려고 했겠지만, 결국 그런 식의 의미부여가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지 않다는 점에서 보면, 그런 국기들은 모두 "일부러" 만든 거죠. 아무래도 이런 국기에 대해서는 사람들도 그다지 애착이 없을 것 같네요. 그에 비해 전통적으로 (그게 언제부터든) 내려오는 국기도 있을 겁니다. 이런 국기는 앞의 경우에 비해 전국민적으로 더 많은 사랑을 받지 않을까 싶네요. 이렇게 보면 영국은 매우 재밌는 케이스인데요... 아시겠지만 영국 국기 유니온잭은 영국의 각지역 깃발들을 짬뽕한 겁니다. 이런 점에서 이건 "일부러" 만들어진 것인데... 하지만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 같은 데서는 기존의 자기 지역을 상징하는 깃발들이 여전히 쓰이고 있기도 하죠. 제가 받은 느낌은, 유니온잭에는 별 열광을 하지 않던 사람들도 이런 자기 지역깃발에는 더 애착을 갖는 것 같다는 겁니다. 이런 애착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날 때가 바로 축구 할 때죠. 유니온잭 말고... 잉글랜드만을 상징하는... 성조지(St George)기..던가... 평소엔 인종주의 문제도 있고 또 지역주의 문제도 있어서 잘 등장하지 않는데, 축구 같은 거 하면(잉글랜드 대 다른나라) 갑자기 많이 나타나곤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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