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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엘리스. 2007. 『직접참정제도, 민주주의의 허상인가? ―미국의 주민발안제도 현장』. 아르케.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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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미국 윌라미트대학 정치학과 리처드 엘리스(Richard J. Ellis) 교수의 Democratic Delusions: The Initiative Process in America(University Press of Kansas, 2002)를 번역한 것이다. 100여 년에 걸쳐 직접민주주의를 실험해온 미국 내에서도 이 제도에 대해 엇갈린 시각과 평가가 있는데, 이 책은 미국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직접투표 안건 사례의 분석을 토대로 직접참정제도, 특히 주민발안제도를 심층적이고, 비판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엘리스 교수는 오늘날 미국정치에서는 주민발안제도가 시민을 주인으로 만들어 주는 좀 더 민주적인 정치과정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생각은 일종의 허상이거나 기만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의회정치 과정과 마찬가지로 이 제도도 많은 단점이 있음을 광범위한 사례를 들어 입증하고 있다. 그는 시민들에게 대표민주제가 여전히 많은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주민발안제도를 운영할 때에도 정치인과 의회에 대해 품고 있는 만큼의 불신과 의구심을 지녀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한 불신이야말로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옮긴이가 현재 행정안전부 정책기획관으로 재직 중인 것으로 보아, 이 책을 번역한 의도를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직접민주주의제도들에 대해 부정적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진보세력과 NGO단체들이 대체로 대의민주주의 기제보다는 직접민주주의 기제들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현실에서 향후 나타날 수도 있는 부작용들을 미국의 사례를 통해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는 이 책은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특히 승자독식의 직접입법 정치의 속성을 보여주고, 제대로 설계되지 않은 직접민주주의 기제가 오히려 소수자에 대한 횡포로 작용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주민발안제가 도입되던 초기에 유렌은 “주민발안제와 주민승인투표제가 있다는 위협만으로도 정치인들은 행동을 정화할 것이며, 낭비적이고 불공정한 법을 통과시키지 못할 것이다. 직접입법은 ‘문 뒤의 총’(gun behind the door)이 될 것”라고 하였다. 소위 최소사용이론인데, 엘리스는 이 논리가 1950-60년대에 적절했지만, 그 이후에 변질되었다고 파악한다. 이 '문 뒤의 총'을 쓰는 총잡이는 “시민들에게 권력을 돌려주라”고 소리치지만, 이렇게 무턱대고 발사되고 있는 총탄 섬광 속에서 스스로가 이전보다 더 큰 힘을 가지게 되었다고 느끼는 시민들은 별로 없는 것 같으며, 오히려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약한 소수집단도 총 쏘기의 표적이 된다고 비판한다.
 
이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실제 주민발안뿐만 아니라 이러한 혐의를 받는 많은 진보적인 제도들이 존재한다. 진보세력이 대중으로부터 불신을 받는 것도 이런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전환의 계기가 된 것이 캘리포니아의 제안 13호(Proposition 13), 즉 하워드 자비스(Howard Jarvis)가 주도했던 1978년의 재산세 감축 주민발안으로 언급되는데, 엘리스는 이것이 그 원인이 아니라 하나의 증상이라고 지적한다. 이 점을 떠나 'Proposition 13'은 한국에서도 주요하게 언급된다. 심지어 90년대 중반에는 행정고시 지방행정과목의 2차시험문제로도 출제되었다. 이처럼 제안 13호는 신자유주의적인 지방개혁사례임에도 불구하고 시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을 강조하여 지방행정에서도 자주 나오는 사례이다. 사실 주민발안제도가 어떻게 오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데, 한국의 학자들은 이 점에 대해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엘리스는 오늘날 주민발안과정이 돈 많은 특수이익집단에 의해 장악되었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조직가 자금력을 지닌 특수이익집단이, 특히 직접민주제도가 빈번히 사용되어온 주에서, 이 제도의 활용에 중심에 서있었다고 주장한다. 키와 크라우치에 따르면 “주민발안은 의회 입법안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법이 불만스러워 자신들에게 좀 더 유리한 법을 추구하는 일부 특수이익집단으로부터 제안되고 있”으며, 주민발안을 사용하는 집단은 “입법부를 상대로 로비하는 조직들과 다르지 않다.” 결국 대의민주주의 기제보다 더 나은 점이 없다는 것이다.
 
"주민발안은 특히 공직에 출마한 후보자들에게 매력적인 존재다. 주민발안을 발의함으로써 후보자들은 더욱 주목을 받게 되고 선거자금 조성에 도움을 받으며 핵심 지지층의 투표 참여율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상당히 찔렸다. 과거 민주노동당은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을 함에 있어서 이후 지방선거에 출마시키려는 후보자들이 주요 직책을 맡도록 함으로써 인지도를 제고하고자 하였다. 사실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방법은 불가피하게 선택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유의미하고 실질적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이었다면 보수정당의 후보자들도 그와 유사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실제 미국에서도 1990년대에 주민발안제도를 활용했던 정치인들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피트 윌슨(Pete Wilson)이나 오리건의 케빈 매닉스 의원과 같은 보수정치인들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좀더 평가가 필요하다.
 
엘리스는 대부분의 주민발안의 경우 지지자들보다는 오히려 반대자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결집시킨다는 점에서 정치적 위험성이 있으며, 결국 다른 정치과정처럼 주민발안과정도 위험과 보상, 비용과 이익을 모두 지닌다고 파악한다. 또한 대부분의 시민이 주민발안 한 건을 투표에 상정시킬 수 있는 확률은 주 복권에서 잭팟을 터트리는 수준이며, 주민발안을 투표에 상정시키고 또 통과시키려는 과정을 보면 아마추어가 자리할 곳은 없다고 본다. 결국 주민발안이나 의회정치과정 모두 조직화된 이익집단, 정치적 활동가, 그리고 선출직 공무원에 의해 지배되는 정치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주의적 수사에 미국인들이 너무나 미혹되어 있기에 이 제도를 비판적으로 엄밀히 살피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이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연장선상에서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 논란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엘리스는 특수이익집단의 대표적인 예로 노동조합을 들고 있다. "주민발안과정을 통해 단체의 이익을 추구하고 수호하겠다는 방침을 정하면서 노조는 곧바로 그들이 주민발안 정치에 잘 맞는다는 사실을 재빨리 간파했다.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조직과 돈의 환상적 결합이야말로 안건을 부결시키는 것은 물론 안건을 투표에 상정시키고 통과시키는 데 매우 유리한 도구였다"(엘리스, 2007: 194).
 
그런데 노동조합은 특수이익집단일 뿐인 걸까. 하지만 정치학에서는 대체적으로 이렇게 파악하고 있다. 이에 비추어 자신의 일터에서 공공성의 계기를 발견해내고 이를 가지고 투쟁하자는 게 과연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지... 노동조합의 성격에 대한 엄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사회공공성 운동의 경우도 노조가 특수이익집단에 불과할 뿐이라는 정치학적 규정을 깨뜨리는 수단으로 작용한다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건 규범적인 문제가 아니다.
 
필자는 특수이익집단이 때로는 전업 활동가, 그리고 돈 많은 일부 부호들이 독점하고 있는 주민발안과정에서 제도와 주민들 사이에 두고 역할을 하는 유일한 행위자라고 본다. 이러한 언급 속에는 공익집단, NGO의 존재나 역할에 대한 별다른 의미부여가 들어 있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미국과는 달리 이른바 주창형 NGO가 많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여 한국의 정치과정을 분석해야 한다.
 
"미국의 주민발안제도는 다수에 대한 견제장치를 결여하고 있다는 특색이 있다. 그러나 주민발안권이 오로지 헌법수정에만 제한되어 있는 스위스에서 특히 연방 수준의 주민발안제도는 다수를 견제하는 여러 장치를 지니고 있다." "주민발안은 의회 내 다수파로 하여금 종전의 의회과정에서 실패를 맛본 소수집단의 관심사항에도 귀를 기울이도록 촉구하는 수단으로 종종 사용된다. 주민발안과정이 극도로 대결적이고 제로섬 게임 양상을 보이는 미국과 달리 스위스에서는 주민발안이 의회 내에서 협의와 타협을 조장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자주 사용된다." 역시 직접민주주의 기제에 대해 검토를 하고자 한다면 스위스 사례를 볼 수밖에 없겠군.
 
이 책은 주민발안이 법원에 제소되는 점에 주목하여 별도의 장을 할애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권력을 되돌려 준다는 명분의 주민발안제가 미국인들로 하여금 자유를 보호받기 위하여 정부의 3부 중 가장 민주성이 떨어지는 사법부에 점점 더 의존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최장집 교수가 가끔 언급하는 정치의 사법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
 
"법원은 제도적 구조의 중요한 부분이며 성급하거나 근시안적 이익에 매몰된 다수를 견제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법원은 여러 민주주의 제도의 한 부분일 뿐이며 여러 기관 중 민주성이 가장 미흡한 기관이기도 하다. 헌법 설계자들이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하여 법원에 너무 많이 의존하는 것을 주저하였던 정확한 이유는 법원이 너무나 반민주주의적 기관이기 때문이다."
 
"직접민주주의는 헌법 설계자들이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의지하였던 대표제 기관들을 우회함으로써 정부의 3부 중 가장 책임성이 떨어지는 사법부에 국민들이 점점 더 많이 의존하게 만들고 있다. 법원은 헌법적 권리를 보호하는데 적합한 기구이다. 통상의 의회입법과정에서는 대중주의적 이해관계와 열정을 미묘하게 선별 여과시키는 작용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법원이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적합지 않다. 판사들이 입법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부분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는 경우에는 사법 적극주의와 과잉 개입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법원이 제한적인 헌법적 역할에 머물러 있다면 엉성한 문언으로 작성한 잘못되고 혼란스런 수많은 제안이 선거에서 범람하게 되고 이런 것들이 주 헌법과 법률에 대거 담겨지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주민발안제도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미국에서 유권자들이 정부기구들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진보적 정책 어젠다를 추진해 가는 과정에서는 비교적 미미한 역할만을 했을 뿐이라는 서술은 충격적이다. 우리가 직접민주주의 기제를 확대해나가려고 하는 데에는 진보적 어젠다를 추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고가 있어서인데, 현실은 그와 상반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나타났으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우리는 진보적 어젠다 추진을 강조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실제 나타난 양상은 이와 다를지 모른다.
 
"주민발안제도의 본질적 문제는 이 제도가 의회입법과정보다 불량한 공공정책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주민발안 입법에서 만들어진 실수는 일반적으로 고치기가 더욱 어렵다는 점에 있다. 의회입법과 달리 선거로 통과된 주민발안 입법은 진정한 ‘시민의 목소리’로 널리 받아들여진다. 주민발안으로 만들어진 법을 수정, 폐기하려는 의원들이나 이익집단은 일반대중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로 비난받는다.
그러나 주민발안 입법은 통상 유권자들이 지닌 우선순위나 가치보다는 주민발안 공급자들의 이데올로기나 관심사항을 더 반영한다. 이슈를 헌법 수정안으로 만들 것인지 법률안으로 만들 것인지도 유권자들이 아닌 발의자들이 결정한다. 아울러 답변 자체를 거의 결정짓는 이슈 선정과 선택 대안의 작성도 안건 발의자들이 한다. 유권자들이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안건 공식의제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선거가 여론조사와 유사한 방식으로 그 결과를 만들어 냄을 의미한다. 여론조사에서 얻는 답은 질문을 어떻게 물었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리처드 엘리스. 최두영 옮김. 2007. 『직접참정제도, 민주주의의 허상인가? ―미국의 주민발안제도 현장』. 아르케. Richard J. Ellis. 2002. Democratic Delusions: The Initiative Process in America. the University Press of Kansas.
 

1. 주민발안의 두 사례
 
○ 양쪽 모두 정당한 이해관계와 이익을 지니고 있는 경우 어느 한 쪽에만 유리하게 처리하지 않고 경합하는 모양새를 띠면서 이익과 요구 사이에 균형을 잡는 일을 이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정치다. 반면 주민발안과정은 경합하는 이익과 이해관계를 균형잡는 일을 잘해낼 수 없다. 주민발안은 안건 추진자가 반대자들의 이익이나 걱정은 무시해버릴 수 있고,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제도다. 그러나 의회입법 과정은 경쟁하는 이익을 타협시키고 선호의 강도를 고려하도록 만들어진 제도다(엘리스, 2007: 32).
 
○ 1994년의 오리건 주민발안 안건 8호는 공무원들로 하여금 봉급의 6%를 자신들의 퇴직 후 연금기금에 기여하도록 한 것으로, 주 전역에 걸쳐 공무원들의 봉급을 6%나 효과적으로 감축하는 것이었다. 안건 58호는 한 평범한 시민 헬렌 힐에 의하여 발의된 반면에 안건 8호는 한 야심적인 정치인과 여러 명의 직업적 주민발안 활동가, 그리고 한 갑부 후원자가 만들어 낸 작품이었다. 또한 헬렌 힐은 일이 끝났을 때 일상의 삶으로 돌아갔으나, 안건 8호 추진자들은 입법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또 다른 주민발안을 시작하였다(엘리스, 2007: 39).
 
안건을 추진한 공화당 소속의 초선 주 의원 밥 티어난과 젊은 정치적 야심가 빌 사이즈모어는 정부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에 가장 큰 타격을 가했다. 이들은 정부가 시민을 무시하는 거만함과 비열함으로 젖어 있다는 노골적 메시지를 전파했다. 그러나 일시적 경작을 위해 숲 전체를 베어 태워버리고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방식의 정치를 강요했다는 점에서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더욱 손상했다. 공무원 노조와 고용주들이 제도의 허점을 악용했던 것은 법안 작성의 잘못에도 부분적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이유는 정치적인 것으로, 법안에 대한 공무원들의 걱정과 이해관계를 수렴하는 조치가 전혀 없었고, 이에 따라 공무원들은 이 법이 민주적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들에게 이 법은 순전히 숫자의 힘으로 강요된 것일 뿐이었다. 합의를 만들어내거나 최소한 타협을 이루려는 노력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공무원과 지방정부는 법을 피해가기 위한 모든 합법적 수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주민발안의 정치적 이슈가 선거 후에 나타나는 이유는 이 제도를 통한 입법이 반대쪽의 이해관계를 거의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엘리스, 2007: 47-48).
 
○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법시스템에 의존하는 경우 닥치는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 가장 분명한 문제는 사법제도의 정당성에 대한 위협이다. 정치의 영역에 점점 깊이 개입함으로써 사법부는 당파적이거나 이념 지향적인 공격에 더욱 취약해진다. 더욱 곤란한 문제는 사법부에 문제해결책을 구하는 경우에 때로는 주민발안제도가 지닌 제로 섬 게임의 성격, 즉 승자독식의 정치를 영구화하는 결과를 자칫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회 제도의 특징적인 한 가지 미덕은 타협과 합의를 만들어내려 한다는 점이다. 타협은 의회입법과정을 산만하게 만들고 지겨울 정도로 느리게 진전되게 만든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다양한 이익과 이념이 산재해 있는 민주주의 사회를 하나로 유지해가게 하는 접착제 기능을 한다(엘리스, 2007: 50-51).
 
○ 민주적 합의라는 척도로 측정했을 때 안건 8호나 58호는 모두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두 안건 모두 통합보다는 분열을 조장했고, 분명하고 확연히 드러나는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냈다. 양 안건 모두 상대방의 정당한 이해관계와 주장을 이해하기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 의하여 추진되었다. 양 주민발안의 추진자가 기존 상황에 대하여 제기한 의문들은 모두 중요하고 정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양자 모두 즉각적이고 급진적인 변화를 고집하는 절대주의적 해결책을 내놓았다. 점진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려는 노력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특히 심각한 타격을 입는 사람들에 대한 예외적 조치나 배려를 고려하는 노력도 전혀 없었다. 양 발안의 지지자들은 복잡 미묘한 정책적 이슈를 옳고 그름이라는 단순 도덕의 문제로 환원시켜 버렸다(엘리스, 2007: 51-52).
 
오늘날 특히 직접입법제도를 많이 활용하는 주에서는 사람들이 처음 주민발안제도를 주목했을 때는 염두에 두지 않았을, 티어난과 같은 직업변호사 정치인과 사이즈모어와 같은 유능한 주민발안 전문가, 벤들과 같은 능란한 서명수집가, 그리고 파크스와 같은 갑부에 의하여 주민발안제도가 지배되고 있다(엘리스, 2007: 54).
 
2. 주민발안제도 혁명
 
○ 주민발안제의 초기 지지자들은 거의 틀림없이 미국 정치 스펙트럼의 극좌 지대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주민발안제와 주민승인투표제를 가장 처음으로 지지한 정당은 사회노동당(Socialist Labor party)이었고, 그다음에 지지한 정당은 당시 급속히 세력을 확산하던 인민당(People's party, 대중당)이었다(엘리스, 2007: 57).
 
○ 미국에서 주민발안제와 주민승인투표제의 탄생에 가장 중요한 사건은 1892년 초 제임스 설리번(James W. Sullivan)의 『주민발안제와 주민승인투표제를 통한 시민직접입법』(Direct Legislation by the Citizenship through the Initiative and Referendum)이라는 조그만 책의 출간이다(엘리스, 2007: 61). 
 
○ 20세기 초 수십 년간 미국의 주들이 주민발안제와 주민승인투표제의 채택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이는 동안 이 제도의 지지자들은 줄곧 천년왕국의 논리(millennial jurisdiction) - 직접입법제도는 “특권을 보전하려고 버둥대는 특수이익집단을 밀물 같은 사회정의의 요구”가 쓸어버리게 해줌으로써 정치를 바꿀 것 - 와 함께 최소사용의 논리(minimalist jurisdiction)를 가지고 이 제도를 옹호하였다.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은 이 제도를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직접입법제도는 “대표제 기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 의회가 진정한 대표기구로 운영되도록 … 자극하고 통제하고 … 각성시키는 수단”이라고 언급하며 안심시키기도 했다. 통상 주민발안보다는 주민승인투표제를 선호하는 이런 최소사용 개념의 입장에서 보면 직접입법제도는 시민들이 정치인들을 통제하려고 그저 이따금씩만 사용하는 또 하나의 ‘정치적 보호 장치’(safe guard of politics)일 뿐이다. 최소사용의 논리는 이 제도에 대한 일반의 우려를 감소시키는 데 효과를 발휘하였다(엘리스, 2007: 69-70).
 
그러나 이들 제도는 많은 초기 주창자들이 내세웠던 급진적 변화의 유토피아나 해방의 희망에 걸맞는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개혁의 대부분은 전통적 방법, 즉 의회입법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단일세 제도와 같이 좀 더 획기적인 급진주의 만병통치약은 유권자들로부터 언제나 거부당했으며, 돈과 로비스트, 힘센 특수이익집단들은 여전히 미국의 모든 주에서 계속해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주민발안 캠페인 과정에서도 돈과 특수이익집단 이 두 가지가 후보자 선거에서 수행하는 만큼의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엘리스, 2007: 70-71).
 
○ 최소사용이론의 예측은 1950년대와 60년대에 특히 적절했다. 1942년에서 1971년 사이 30년간 전국적으로 거의 350건의 주 단위 주민발안이 투표에 부쳐졌다. 이는 주민발안제가 있는 주에서 평균 매 2년마다 한 건 정도에 해당되는 수치이다. 그러나 1990년에서 2000년 사이에는 미 전역에서 458건의 주민발안이 있었다. 이는 1940년대나 50년대에 주민발안이 선거에 등장했던 수치의 세배를 넘는 것이다(엘리스, 2007: 71-73). 
 
이 총잡이는 “시민들에게 권력을 돌려주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이렇게 무턱대고 발사되고 있는 총탄 섬광 속에서 스스로가 이전보다 더 큰 힘을 가지게 되었다고 느끼는 시민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총을 휘두르는 이 악한은 단순히 정치인만을 위협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약한 소수집단도 총 쏘기의 표적이 된다(엘리스, 2007: 73).
 
많은 관찰자들은 주민발안제도가 문 뒤의 총으로부터 이익집단과 정치인들이 선호하는 무기로 변질된 것이 캘리포니아의 제안 13호(Proposition 13), 즉 하워드 자비스(Howard Jarvis)가 주도했던 1978년의 재산세 감축 주민발안부터라고 한다(또는 이 발안에 책임을 돌린다). 이 발안은 거의 모든 주요 정당과 신문의 반대에도 압도적 다수표로 통과되었고, 이 사례는 공공정책을 형성하는 과정은 물론 정치적 어젠다를 바꾸는 데에 주민직접입법이 엄청난 힘을 지닌다는 점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러나 제안 13호는 원인이었다기보다는 하나의 증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주민발안제도 사용이 증가하는 현상은 그 이전에 이미 감지되었다. 1976-77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52건의 주민발안이 발의되었는데, 이 수치는 1938-39년 선거주기 이래 가장 많은 건수이다. 가장 명백한 반박 증거는, 이 제도의 사용이 전국적으로 크게 증가한 것이 1988년 이후 비로소 나타난 현상이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엘리스, 2007: 73-74). 주민발안을 통한 입법은 한때 캘리포니아 정치에서 미미한 현상이었으나, 이제 이 주의 정치를 지배하는 현상이자 특징으로 발전하였다(엘리스, 2007: 75).
 
○ 주민발안제의 매우 빈번한 사용은 비교적 적은 수의 주에 집중되어 있다. 이 시대의 가장 현저한 특징 중의 하나는 주민발안제의 사용이 크게 늘어나긴 했지만, 이 제도의 도입이 다른 주로 확산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20세기 초에는 주민발안제가 많이 사용되면서 미국 내 여러 주가 여기저기서 이 제도를 받아들였다(엘리스, 2007: 78-79).
 
○ 주민발안제와 주민승인투표제를 도입하려는 안건은 20세기 마지막 20년 동안 미국 내 거의 모든 주에서 발의되었다. 그러나 미시시피를 제외하고 어느 주도 주민발안제도를 새로운 민주주의 제도로 채택하지 않았다(엘리스, 2007: 81). 게다가 미시시피의 직접참여제도는 캘리포니아나 오리건에서 대중주의의 도구로서 사용되는 직접참여제도와는 닮은 점이 거의 없다.
 
○ 20세기 후반에 이들 제도를 이미 가지고 있던 주에서는 직접입법이 더욱 활발하게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타지역으로 제도가 확산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을까? 일부 주민발안제도 지지자들은 양 경우에 모두 직업적 의원들이 그들의 이익 보호를 염두에 두었거나 강력한 특수이익을 대변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캘리포니아 등에서 주민발안제의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당초 이 제도에 긍정적이었던 많은 이들이 오히려 우려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각종 주민발안들이 재산세와 학교, 보건의료 시설, 그리고 다른 여러 서비스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캘리포니아처럼 되는 현상”(Californication)에 대한 우려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을 식히고 있는 것이다(엘리스, 2007: 81-82).
 
○ 직접입법제도를 세금 감축과 적극적 처우(affirmative action) 시책 폐지에 사용하자는 아이디어에는 모든 보수주의자들이 군침을 흘리지만, 이들 가운데도 이 제도가 오히려 진보적 어젠더를 진전시키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보주의자들 가운데도 이 제도를 바라는 사람들보다 걱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대다수의 좌파 진영에서는 직접입법이 긴요한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의 능력을 감퇴시키는 데 악용되지 않을까 우려한다(엘리스, 2007: 83-84).
가까운 장래에 직접입법 활동이 현재 주민발안제도가 없는 26개 주에서 정치생활의 중요동인이 될 것 같지는 않다(엘리스, 2007: 85).
 
○ 주민발안제도의 사용에 대한 가장 일반적 설명은 유권자의 감정 상황에 초점을 두는 해석이다. 유권자들이 분노하고 불만족했을 때 이 제도의 사용 횟수가 증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에 대한 신뢰 수준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상당한 기복이 있었지만, 주민발안의 사용 빈도는 대체로 이러한 기복과는 무관한 추세를 유지하였다. 주민발안의 르네상스를 촉발시키는데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불신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틀림없지만, 이 제도에 대한 지속적 의존이 정부에 대한 일반 대중의 신뢰나 불만 정도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엘리스, 2007: 86).
 
주민발안 사용에 대한 공급 관점의 모형에 따르면 선거에 상정되는 주민발안 건수는 주민들의 수요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민발안의 공급자에 의해 결정된다. 공급자들은 주민발안을 선거에 올리는 주민발안 활동가와 전문가들이다. 서명수집 활동의 전문화 현상은 대중의 감정상황과 주민발안 사용 사이의 연관성을 없애는 데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만일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어떤 안건이라도 투표에 상정시킬 수 있다면 주민발안의 사용 정도는 대중이 느끼는 수요와는 무관하게 변화할 것이다(엘리스, 2007: 87).
 
3. 주민서명 수집 사업
 
○ 주민발안을 위한 서명수집 활동의 실제 모습은 낭만적 상상과는 날이 갈수록 점점 달라지고 있다. 서명을 수집하는 일은 이제 일종의 비즈니스가 되었다. 다른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는 이익이 첫째 목적이다. 청원서를 올려놓은 테이블 뒤에 서 있는 서명수집 활동요원 대부분은 이상적 주민발안제가 꿈꾸던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용역 노동자들이거나 자신이 수집한 서명만큼 보수를 받는 보상금 사냥꾼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청원서 내용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이들 중 많은 사람은 세금을 늘리는 주민발안에 서명을 받아주며 돈을 받고, 동시에 세금을 줄이는 발안에 서명을 받아주고 돈을 받는다(엘리스, 2007: 89-90).
 
만일 수집된 서명이 대중의 지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지 못하고 그저 돈으로 얻어진 결과일 뿐이라면 주민발안과정에서 돈이 지나친 역할을 한다고 이 제도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옳은 것이다. 필립 듀보아와 플로이드 피니가 주장하듯이 “만일 충분한 자금과 전문적 캠페인 기술의 뒷받침이 있어 정치적 이익집단이 그들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투표에 상정시킬 수 있다”면 대중민주주의의 도구로서 주민발안제의 역할에는 중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엘리스, 2007: 91).
 
○ 1980년대에 일부 주에서는 자원봉사자의 활용이 선택이 아니라 법으로 의무화되어 있었다.
여러 주가 법률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유급 청원인을 금지하려 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단순하면서도 그러나 빈번히 간과되어온 사실, 즉 유급 청원인이 주민발안제도 자체만큼이나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환기해준다. 
  
○ 유급 청원인이나 전문 서명수집업체의 등장은 더욱 다양한 집단들이 주민발안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서 민주주의를 증진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유급 청원인에 대하여 “대가를 지불하고 누구나 안건을 투표에 상정시킬 수 있다”는 강력한 비난이 따른다. 부자나 자금력이 좋은 특수이익집단이 대중의 지지 정도와 무관하게 그들의 안건을 투표에 상정시키는 것은 직접민주주의의 원래 이상을 훼손하는 것처럼 보인다. 돈으로 어떤 안건이라도 투표에 상정시킬 수 있다면 풀뿌리 민주주의는 ‘지폐 민주주의’로 전락하고, 일반 주민들을 특수이익으로부터 구하려고 시도된 제도가 바로 그 특수이익에 포획되어 버린다. 이 제도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을 의회가 무시하지 못하게 하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정치인이나 힘 있는 특수이익집단들이 자기이익을 확장하거나 부패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고자 만들어진 제도이다.
성공적인 자원봉사활동이 있었다는 사실은 많은 주민들이 해당 이슈에 크게 공감하고 있고 안건을 위한 서명 수집에 소중한 시간을 기꺼이 내놓을 태세가 되어 있음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안건의 추진자들은 자원봉사자들의 확신과 정열을 결집하고 부결과 법정 제소의 부담을 무릅씀으로써 그들의 이슈를 유권자 앞에 제시할 권리를 얻은 것이다(엘리스, 2007: 106-07).
 
오늘날 주민발안과정이 돈 많은 특수이익집단에 의해 장악되었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은 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조직가 자금력을 지닌 특수이익집단이, 특히 직접민주제도가 빈번히 사용되어온 주에서, 이 제도의 활용에 중심에 서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주민발안안건은 ‘일반시민’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주민발안은 의회 입법안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법이 불만스러워 자신들에게 좀 더 유리한 법을 추구하는 일부 특수이익집단으로부터 제안되고 있다.” 키와 크라우치는 주민발안을 사용하는 집단이 “입법부를 상대로 로비하는 조직들과 다르지 않다”고 부연한다(엘리스, 2007: 107-08).
 
자원봉사자도 전혀 공짜는 아니다. 자원봉사자는 무급이지만 이들을 모집하여 훈련시키고 활동을 조정하는 비용은 대단히 크다(엘리스, 2007: 108).
 
○ 자원봉사운동이 때론 조직화된 이익집단에 의해 주도된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규모의 조직적 자원봉사 활동 수요에 가장 잘 대응할 수 있는 주체는 개별화된 시민이 아니라 특수이익집단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기성 이익집단이 지니고 있는 조직화된 자원에 접근할 수 없는 개인들이 지폐 민주주의에 가장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전히 자원봉사자에 의한 서명수집활동은 원칙적으로 그리고 현실적 이유로 주민발안과정에서 계속 사용되고 있다. 자원봉사자는 투표상정자격 획득단계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임으로써 자금력이 부족한 주민발안 캠페인이 제한된 자원을 아끼고 본 캠페인에서 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더 중요한 것은 서명수집단계에 자원봉사자를 참여시킴으로써 시민들을 정치적으로 의식화시키고 관련 집단들을 결집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오직 자원봉사자만을 활용하거나 그에 크게 의존한 캠페인은 홍보효과 면에서도 크게 유리할 수 있다(엘리스, 2007: 109-10). 
  
○ 만일 주가 서명의 지역분포요건을 신설하거나 요건 서명수를 늘림으로써 서명수집 과정을 더 어렵게 한다면 이런 조치는 재정적ㆍ조직적 자원이 풍부한 집단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서명수집업체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나고 보통의 시민들이 그들의 이슈를 투표에 상정시키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투표상정자격 획득과정에서 서명수집업체와 돈이 덜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서명요건을 완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더 많은 수의 주민발안이 투표에 상정되도록 수문을 열어주는 것과 같아 이미 현재의 선거가 수많은 직접투표안건으로 넘치고 있는 주정부들에게는 매력적인 개혁안이 될 수 없다. 연방대법원은 투표상정자격 획득과정의 기부금에 한도를 둘 수 없게 하고, 또한 유급 서명수집요원의 금지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서명수집과정을 개혁하려는 주정부들을 절망적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엘리스, 2007: 139-40).
 
사실상 부유한 개인이 투표상정자격을 돈으로 살 수 있는 현재의 법제하에서 주민발안과정의 무결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안건의 투표상정이 일부 부자들이 유급서명수집요원을 써서 된 것인지 아니면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인지를 주정부가 유권자에게 알려주어야 한다(엘리스, 2007: 141).
 
서명요건을 크게 낮추면서 주민발안의 내용을 알게 된 시민들이 스스로 사전에 지정된 공공장소로 가서 청원서에 서명을 해야 하는 방안을 채택한다면 주민발안 가운데 시민의 진정한 고충이나 관심을 담은 안건은 투표상정이 훨씬 용이해질 것이다. 시민들 사이에 관심이 많거나 논란이 되는 이슈를 담은 안건의 투표상정이 상대적으로 더 유리해진다면 시민생활과 무관한 이슈를 담은 안건들에는 주민발안 절차가 훨씬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이다. 서명을 수집토록 하는 목적이 안건에 대한 광범위하고 탄탄한 시민 지지가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라면 이 방안은 최적의 대안이 될 것이다.
과감한 입법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해결책은 시민의 손에 달려 있다. 시민들은 제안된 법안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고 장시간 숙고해보기 전까지 주민발안 청원서에 서명을 해주지 않는다면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시민들이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서명을 해달라고 하는 헛된 소리에 현혹되어서도 안 된다. 주민발안 청원서의 서명은 ‘사람’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특정 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것이다(엘리스, 2007: 143).
 
4. 국민의 이름으로
 
○ 주민발안제도 옹호자들은 주민발안이 어떤 경위로 투표상정 요건을 갖추게 되었든지 간에 안건이 투표에서 통과되었다면 그것은 해당 발안이 주민의지를 대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항상 최종적인 결정권은 유권자들이 지닌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이슈의 모습을 형성하는 개인이나 조직의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엘리스, 2007: 145).
 
여론 조사자가 얻는 답은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엘리스, 2007: 146).
  
○ 1980년대와 199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제기된 주민발안의 1/3 이상은 선출직 공무원이나 또는 그 후보자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선출직 공무원들은 오늘날 주민발안과정에 일상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주민발안은 특히 공직에 출마한 후보자들에게 매력적인 존재다. 주민발안을 발의함으로써 후보자들은 더욱 주목을 받게 되고 선거자금 조성에 도움을 받으며 핵심 지지층의 투표 참여율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엘리스, 2007: 150-51).
 
○ 주민발안과 의회입법과정 사이의 본질적 차이는 의회입법을 처리하는 의원들이 지닌 좀 더 많은 경험과 전문성에 있다고 하지만 매닉스나 윌슨 같은 정치인들이 작성한 조잡하고 일방적인 내용의 주민발안을 보면 이 같은 신화도 깨어진다. 비록 정치인들이 때로는 법안 작성을 위한 경험을 분명 더 많이 가지고 있지만, 입법결과의 결정적 차이는 법안 기초자 개개인의 지식이 아니라 의회입법과정이 지닌 집합적 능력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만일 정치인들이 더 좋은 법안을 작성한다면 이는 의회입법과정의 엄격한 원칙들을 준수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하나의 법안이 법률로 되는 긴 과정의 매 단계, 즉 위원회 심의, 관련 기관과 이해집단의 증언, 최종 심의회, 본회의 토론, 수정, 상하 양원 안을 절충하는 위원회, 집행기관장의 비토권한 등은 모두 법안의 정치적 또는 기술적 오류를 찾아내고 교정하기 위한 것이다. 정치인들도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려 하고, 또 스스로 원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 의회입법과정의 냉정한 원칙이 없으면 정치인들은 우리처럼 그저 자신의 선호만을 입법에 담으려 할 것이다. 
 
주민발안과정은 단어와 문구, 수정안과 부칙을 둘러싼 끝없는 논쟁을 회피하면서 입법을 성사시킬 수 있도록 해준다. 주민발안의 매력은 이것만이 아니다. 정치인, 특히 고위직을 꿈꾸는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대중에게 비치는 이미지와 지명도가 그가 추구하는 정책만큼이나 중요하다(엘리스, 2007: 165-66).
 
대부분의 주민발안은 지지자들보다는 오히려 반대자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결집시킨다는 점에서 정치적 위험성이 있다.  결국 주민발안은 때론 정치인들에게 유익한 수단이 되지만, 요술 총알이 되기도 한다. 다른 정치과정처럼 주민발안과정도 위험과 보상, 비용과 이익을 모두 지닌다. 그것도 정치의 일부인 것이다(엘리스, 2007: 167-68).
 
○ 오리건의 사이즈모어, 콜로라도의 브루스 등의 주민발안 활동가들
공공연한 패배와 타격에도 그의 집요함과 시간적 여유, 자금력, 그리고 주민발안 분야에 대한 풍부한 경험 덕분에 브루스는 1990년대 말까지 콜로라도 정치과정에서 비록 많은 사람으로부터 비난받으면서도 주요한 역할을 계속 수행했다.
  
주민발안 활동가는 일반 주민이 갖지 못한 기술과 자원, 경험, 그리고 영향력을 소지하고 있는 정치적 엘리트이다. 정치인도 마찬가지이지만, 정치인들이 그들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게 하는 장치인 선거가 있는 반면, 주민들이 주민발안 활동가를 통제할 수 있는 장치는 없다. 브루스의 행동이 아무리 골칫거리이고 주장이 터무니없고 또한 제안 내용이 부적절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가 원하는 한 그는 주민발안 게임의 장에 언제까지 남아 있을 수 있다. 왜 그리 많은 활동가가 유권자들의 대부분이 그다지 혹은 전혀 원하지 않는 일련의 주민발안을 끝없이 내놓는지를 바로 이러한 책임 메커니즘의 결여가 설명한다(엘리스, 2007: 180-81).
 
○ 특수이익집단
입법부는 제도의 특성상 선호의 강도를 고려하는 반면에 주민발안절차는 모든 선호를 동일한 비중으로 취급한다. 이슈에 대한 지지 기반은 광범위하나 지지 강도가 떨어지거나 혹은 반대자는 적으나 반발의 정도가 강렬한 경우에는 의회입법과정에 비하여 주민발안과정이 안건을 추진하기에 유리하다. 의회입법과정은 이익집단들이 그들의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정책을 무산시킬 수 있는 수많은 비토점이 있다. 주민발안절차는 이익이 더 광범위한 대상에 분배되고 비용은 소수에게 집중 부과되는 이슈에 더욱 유리한 속성을 지닌다. 사이즈모어가 의회입법절차와 주민발안 입법절차 사이의 커다란 차이점을 강조한 것은 옳다. 그러나 그가 조직화된 이익집단이 주민발안의 주요 발의자가 아니라고 본 것은 잘못된 것이다. 
 
○ 주민발안과정은 이익집단 정치로부터 벗어난 곳에 위치한 피안이 아니라 종래의 이익집단 대부분이 여전히 권력투쟁을 벌이는 또 하나의 장일 뿐이다. 이 새로운 정치 현장은 분명 이전의 정치과정과 차원이 다르고 성격도 다르며, 때론 전통적 의회과정에서의 행위자들과는 다른 선수들을 선호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이익집단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유권자들이 주민발안 안건에 대한 반대 주장을 가장 잘 듣고 충분하게 안건을 파악한 후 투표를 하는 경우는 강력한 특수이익집단이 해당 안건에 대응하기 위해 결집되었을 때이다. 특수이익집단은 때로는 전업 활동가, 그리고 돈 많은 일부 부호들이 독점하고 있는 주민발안과정에서 제도와 주민들 사이에 두고 역할을 하는 유일한 행위자이다(엘리스, 2007: 200).
 
○ 유권자 요구에 둔감해진 정치시스템이 사회적 불의를 외면하고 있을 때 어느 의식 있는 시민이나 단체가 이를 시정하고자 주민발안을 주도하여 정치인과 이익집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후에 다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는, 헬렌 힐의 이야기와 같은 이상적 주민발안의 모습은 과연 몇 건이나 될까?(엘리스, 2007: 212)
 
5. 다수의 지배
 
○ 미국의 정부 제도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수결 원칙을 수정하거나 심지어 이 원칙을 포기하고 있다. 아주 엄격한 다수결 원칙이 적용되는 정치시스템이라면 집행부 수장의 거부권이나 사법부 심사는 물론 양원제 형태의 입법부나 심지어 의회 상임위원회도 필요 없을 것이다.
다수결 원칙의 예외들은 이 나라가 역사적으로 민주적 심의를 조장하여 좋은 정책을 만들어 내려 했을 뿐만 아니라 소수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했음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특별 다수결(또는 다른 기관에서 연속된 다수결)을 요구하는 것은 다수로부터 소수를 보호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다수자들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협의하고 타협하도록 유도한다. 의회입법과정의 속도를 완화하는 것은 단순히 소수를 보호하려는 것일 뿐만 아니라 편협한 당파적 이해나 일시적인 정치적 이익을 뛰어넘는 공공의 복리를 도모하려는 것이다(엘리스, 2007: 222-223).
나는 주민발안 투표에서 특별 다수결 요구가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진정한 다수결 원칙을 조장한다고 믿는다(엘리스, 2007: 224).
 
○ 정치현상에 대한 미국인들의 회의는 선택적이지 선천적인 것은 아니다. 정치인과 정치에 대한 미국인들의 견고한 의구심은 때론 ‘시민’에 대한 순진스러울 정도의 무지와 궤를 같이한다. 정치인들을 공개적으로 불신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시민의 의지에 대해서는 아무 주저 없이 무조건적 신뢰를 표명한다. ‘시민’은 상충하는 이기적 요구와 집단 이익들, 시끄러운 언쟁과 추한 다툼으로 얼룩져 있는 정치제도와 전혀 다른, 조화롭고 균질한 전체로 여겨진다(엘리스, 2007: 226-27).
 
○ 줄리안 율(Julian Eule)은 “직접민주주의제도는 노골적 다수주의를 견제하기 위하여 연방헌법이 정하고 있는 견제장치를 대부분 결여하고 있다. 따라서 직접입법제도를 통하여 제정되는 법은 더욱 엄격한 사법적 견제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주민발안 입법은 의회입법이 거치는 것과 같은 엄격한 제도적 검증과정을 통과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판사는 이 같은 제도적 견제가 부족했던 부분을 상쇄하도록 좀 더 엄격히 심사기준을 적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엘리스, 2007: 229).
주민발안 절차의 약점은 법원의 역할을 확대한다고 해서 치유될 수 없다. 이보다는 주민발안제도 자체를 보완하여 의회입법과정에는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노골적 다수주의’에 대한 견제 장치를 지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같은 방안의 하나는 주민발의 안건이 법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형태의 특별 다수결을 충족하도록 하는 것이다(엘리스, 2007: 229). 
 
미국의 주민발안제도는 다수에 대한 견제장치를 결여하고 있다는 특색이 있다. 그러나 주민발안권이 오로지 헌법수정에만 제한되어 있는 스위스에서 특히 연방 수준의 주민발안제도는 다수를 견제하는 여러 장치를 지니고 있다. 칸톤과 연방에서 스위스의 주민발안은 모두 간접제안 방식이다. 즉 주민발안은 먼저 의회에 제출되어야 한다.
스위스 의회는 주민발안을 주민투표에 회부할 때는 통상 왜 무슨 이유로 부결시켜야 하는지를 주민들에게 밝힌다(엘리스, 2007: 249-50).
 
주민발안의 성공률은 철회된 안건의 수를 감안하면 더욱 낮아진다. 사실 국민투표에 부쳐지는 발의 안건 수만큼이나 많은 주민발안이 철회된다. 철회의 가장 주된 이유는 의회가 주민발안 발의자가 만족할 수 있는 입법조치를 하기로 약속했거나 또는 그런 입법조치를 이미 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 가운데 많은 경우가 주민발안 발의자의 당초 목적이 해당 이슈를 주민투표에 부치려는 것보다는 오히려 의회의 조속한 입법조치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주민발안은 스위스 의회의 입법과정에서 필수적 요소이기도 하다. 주민발안은 의회 내 다수파로 하여금 종전의 의회과정에서 실패를 맛본 소수집단의 관심사항에도 귀를 기울이도록 촉구하는 수단으로 종종 사용된다. 주민발안과정이 극도로 대결적이고 제로섬 게임 양상을 보이는 미국과 달리 스위스에서는 주민발안이 의회 내에서 협의와 타협을 조장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자주 사용된다(엘리스, 2007: 251).
 
연방수준에서는 스위스 발안제도는 오히려 심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 모델로 볼 수 있으며, 이 점에서 미국의 주민발안제와는 현저하게 다른 것이다. 스위스 제도의 면밀한 고찰은 미국의 주민발안제도를 정당화하지 않으며, 오히려 미국식 주민발안제의 한계를 노정시키고 미국 주민발안제가 지향해야 할 개선방향을 보여준다(엘리스, 2007: 251-52).
 
6. 법원에 제소되는 주민발안
 
○ 아이러니한 것은 주민들에게 권력을 되돌려 준다는 명분의 주민발안제가 미국인들로 하여금 자유를 보호받기 위하여 정부의 3부 중 가장 민주성이 떨어지는 사법부에 점점 더 의존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1960년 이래 주민투표에서 통과된 주민발안 가운데 약 절반이 법원에 제소되었다.
주민발안의 지지자들은 법원에서 패소하면 사법부가 오만을 부리며 법정에 앉아 입법을 하고 일반국민의 의지를 무시하고 있다고 판사를 맹비난한다. 그러나 주민발안이야 말로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의회를 우회함으로써 판사를 정치의 최전선에 끌어들이고 의회의 결정기회가 봉쇄된 부분에 대하여 판사들이 양식에 따른 정치적 판단을 내리도록 한다(엘리스, 2007: 263-64). 
  
○ 법원에 제소되는 주민발안 입법의 대부분은 법적 기술적 결함 때문에 제소되지만, 이보다 주민발안제도가 내포한 정치적 측면의 결함이 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관례적으로 주민발안 투표에 상정되곤 하는 쟁점 이슈에 대해서는 법안 반대자들에 대한 상당한 양보조치 없이 법률이 의회를 통과하기 어렵다. 타협과 합의형성을 특징으로 하는 의회입법과정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성격의 분쟁이 법원에서 다뤄지는 것을 막아 준다. 대부분의 주민발안 입법이 지니고 있는 정치적, 기술적 측면의 미비점들은 왜 많은 주민발안 입법이 법정에 제소되는지 설명해 준다(엘리스, 2007: 303-04).
 
○ 법원과 민주주의의 딜레마
직접민주주의는 헌법 설계자들이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의지하였던 대표제 기관들을 우회함으로써 정부의 3부 중 가장 책임성이 떨어지는 사법부에 국민들이 점점 더 많이 의존하게 만들고 있다. 법원은 헌법적 권리를 보호하는데 적합한 기구이다. 통상의 의회입법과정에서는 대중주의적 이해관계와 열정을 미묘하게 선별 여과시키는 작용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법원이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적합지 않다. 판사들이 입법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부분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는 경우에는 사법 적극주의와 과잉 개입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법원이 제한적인 헌법적 역할에 머물러 있다면 엉성한 문언으로 작성한 잘못되고 혼란스런 수많은 제안이 선거에서 범람하게 되고 이런 것들이 주 헌법과 법률에 대거 담겨지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엘리스, 2007: 309-10).
 
7. 황금시대의 신화
 
○ 주민발안제도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로의 전환기에 소위 황금시대를 구가했다고 한다. 이 시대 직접민주주의는 아직 특수이익집단이나 거액의 자금, 유급 서명수집요원, 유권자를 오도하는 안건 의제서, 그리고 30초 TV광고 등으로 오염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의회는 절망적으로 타락해 있었고 오직 대기업의 이익과 정당 보스의 요구를 위해서 움직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주민발안제와 주민승인투표제는 시민들이 정치적 기득권층을 정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민의 도구였다.
그러나 주민발안제의 진짜 역사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덜 낭만적이다. 우선 이는 당시 주 의회의 부패를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 당시 의회가 대중 여론이나 압력에 둔감하지 않았다는 것은 유권자들이 주민발안제와 주민승인투표제를 획득할 수 있었다는 것에서 드러난다. 많은 주에서 주민발안제도를 도입할 때 의회 표결의 찬성률이 주민투표에서의 지지율보다 높게 나타났다(엘리스, 2007: 311-12).
 
주민발안제도는 유권자들이 정부기구들에 대한 통제력을―주민직선 예비선거, 상원의원 주민직선, 부패방지법, 그리고 주민소환제 등을 통한―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진보적 정책 어젠다를 추진해 가는 과정에서는 비교적 미미한 역할만을 했을 뿐이다(엘리스, 2007: 316). 주민발안은 캘리포니아 주에서 진보주의 어젠다를 추진해 가는데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엘리스, 2007: 331). 캘리포니아에서 주 단위 주민발안의 초창기를 지배한 이슈는 주류금지였다. 기묘한 것은 주민발안제도의 신화를 이야기할 때 주류금지 발안은 의례 빠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주류금지 발안은 여러 면에서 주민발안제도에 적합한 이슈였기 때문에 이를 누락시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엘리스, 2007: 332-33).
 
○ 주민발안제와 주민승인투표제는 초창기부터 이미 그 순수성을 잃기 시작했다. 이는 제도운영 초기부터 “부유한 이익집단들에게 청원서 작성의 실질적 독점권을 주었다.” 주민발안을 투표에 상정시키는 과정에서 “추진하는 법안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가 있는지는 별 상관이 없다. 오히려 이보다는 주민발안을 추진하는 개인이나 특수이익집단이 청원서 회람을 위하여 충분한 돈을 지급할 능력이 있는지가 관건이다.”
 
주민발안제도 운영과 관련하여 오늘날 많은 사람이 비판하고 있는 주 외부로부터의 거액의 기부금 유입현상은 이 제도의 초기 시행과정에도 이미 나타났다(엘리스, 2007: 325).
 
에필로그
 
○ 주민발안제와 주민승인투표제에 대한 의미 있는 개혁성과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 요인은 그런 개혁이 오늘날 미국 정치문화를 관류하는 가장 강력한 두 흐름인 자유주의와 대중주의와 맞부딪치기 때문이다(엘리스, 2007: 344).
 
유권자들은(여론조사 응답자들과는 현저히 다르게) 일반적으로 주민발안제도 개혁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 의회들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계속해서 주민발안과정을 규율하는 법을 바꾸려고 한다. 다만, 의회가 제안한 대부분의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다(엘리스, 2007: 345).
 
○ 주민발안제의 변화는 항상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변화는 주정부 공무원과 주민발안 활동가들이 기술의 진보 특히 인터넷이 제시하는 새로운 가능성이나 문제점과 씨름하는 과정에서 분명 더욱 심화될 것이다. 선거담당 공무원들에게 가장 즉각적으로 닥치는 변화는 서명의 수집과 제출을 전자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주민발안 활동가들은 이런 방식이 이 제도에 대한 대중의 접근을 확대할 것이라고 흥분해 있다. 온라인을 통한 청원서 수집은 풀뿌리 활동과 자원봉사 활동을 활력화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집단이 누리는 투표접근성 면의 이점을 감퇴시키는 방안으로 널리 이해되고 있다(엘리스, 2007: 347-48). 
 
○ 인터넷과 주민발안제도를 열렬히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대략 투표수를 집계하는 제도다. 선호의 강약은 고려되지 않는다. 그러나 헌법의 설계자들이 만든 의회입법과정에서는 선호의 강약도 중요시된다. 민주적 심의과정은 단순히 투표수를 집계하기보다는 선호의 강약을 반영함으로써 다수는 물론 소수자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 반면에 주민발안 선거나 인터넷을 통한 이슈 투표에서는 소수집단의 동의 여부에 개의치 않는 정책을 만들어 낸다. 여기서 패자는 고충을 정부의 3부 가운데 가장 민주적 책임성이 떨어지는 사법부로 가져가 호소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입법부가 선호의 강약을 측정하여 반영하는 것은 이상적이다. 그러나 정치적 자원의 동원은 흔히 가치와 신념의 강약보다는 오히려 조직과 돈에 의하여 좌우된다. 의회 회기 막바지에 밀고 들어오는 법률 수정안들은 헌법의 설계자들이 구상했던 엄격한 검토과정과는 전혀 동떨어진 모습으로 처리된다. 안건과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정책 전문가들은 해당 사안에 대한 지식이 매우 부족하다(엘리스, 2007: 352-353).
 
그러나 이러한 모든 단점에도 의회제도는 과거의 실수를 인식하고 고치고 이를 통하여 학습한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의회가 오점 많고 불완전한 도구라고 보는데 익숙해져 시민들은 물론 의원 스스로도 기존의 법률을 변경하거나 개선하는 것을 잘못이라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민발안제도의 본질적 문제는 이 제도가 의회입법과정보다 불량한 공공정책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주민발안 입법에서 만들어진 실수는 일반적으로 고치기가 더욱 어렵다는 점에 있다. 의회입법과 달리 선거로 통과된 주민발안 입법은 진정한 ‘시민의 목소리’로 널리 받아들여진다. 주민발안으로 만들어진 법을 수정, 폐기하려는 의원들이나 이익집단은 일반대중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로 비난받는다.
그러나 주민발안 입법은 통상 유권자들이 지닌 우선순위나 가치보다는 주민발안 공급자들의 이데올로기나 관심사항을 더 반영한다. 이슈를 헌법 수정안으로 만들 것인지 법률안으로 만들 것인지도 유권자들이 아닌 발의자들이 결정한다. 아울러 답변 자체를 거의 결정짓는 이슈 선정과 선택 대안의 작성도 안건 발의자들이 한다. 유권자들이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안건 공식의제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선거가 여론조사와 유사한 방식으로 그 결과를 만들어 냄을 의미한다. 여론조사에서 얻는 답은 질문을 어떻게 물었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엘리스, 2007: 354). 
 
○ 대중들은 인터넷 민주주의가 약속하는 변혁의 힘에 열광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표민주주의를 받치는 정치적 원칙이 오늘의 시대에도 적실성이 있다는 점을 시민들에게 교육하는 일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시민’(people)을 단일 결정체로 찬미하는 대중주의에서는 정치적 교섭과 타협이 필요한 가치와 이익의 충돌 현상이란 거의 또는 전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정부의 강제력에 강한 회의를 품고 있지만, 이 같은 회의는 선출된 지도자나 민주적 책임성을 지닌 공직자에 대한 신랄한 냉소와 피해 망상적 불신으로 손쉽게 변질될 수 있다. 주민발안과정은 시민을 정치인과 대결시키고 정부 없는 입법시스템을 언약함으로써 자유주의와 대중주의의 가장 불안스런 요소를 먹고 자란다. 미국의 정치 지도자와 정치기관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재건하려면 무엇보다 미국 정부문화의 두 조류가 지닌 반정치적ㆍ반민주적 전제와 암시를 폭로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민발안제도를 성스런 베일로 가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허상(democratic delusion)을 식별해 내는 것이야말로 심의민주주의, 대표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공통적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엘리스, 2007: 3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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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4 21:06 2009/07/04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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