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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의 『Girl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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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 임희선 옮김. 『Girl 걸』. 북스토리. 2006.
 
헌책방에 가서 소설책을 사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예외가 있는 게 바로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이다. 물론 소장가치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의 소설은 일단 재미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서 나름의 교훈을 이끌어낼 수도 있으나, 그렇게 소설을 보기엔 넘 삭막하지 않은가.
 
『Girl 걸』은 2006년에 일본에서 나오자마자 번역되었다. 이는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의 인기에 따른 후광효과일 테지만, 그렇게 나온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들은 다 재미있더라.
 
여기서는 단편 소설집 형태로, 다섯 가지 얘기를 묶어 30대 여성들의 삶을 다룬다. 라라피포나 공중그네는 단편들의 모음이면서도 서로 연결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다 제각각이다. 그래서 호흡이 짧은데, 좀더 길게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한 때 잘 나갔던 ‘걸’들이다. 물론 단편집 내에 ‘걸’이라는 단편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전현직 ‘걸’에 대해 다룬다고 할 수 있다.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나면서 나름의 여운을 남겨 준다. 생각할 꺼리가 있다는 거다. 이를 경쾌한 유머로 풀어내고 있다는 것, 이것이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에 빠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거기까지이고, 전작들보다 더 나아간 면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은 것으로 족하다.
 
모두 일본의 30대 여성 삶을 다루었지만, 한국적인 현실에도 들어맞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워킹맘’에서 얘를 가진 여성에 대한 배려는 확실히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나머지는 30대 여성들이 다 접할 만하고, 가질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도 당연히 인상적인 구절들을 발췌해놓았다. 나는 30대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지만 공감이 되는 바가 꽤 있었다.  

 

‘띠동갑’
 
어째서 지금까지 독신으로 있는지 요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자면 결혼으로 생활을 바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과 자유와 연애, 그 중 하나라도 잃고 싶지 않았다. 서른넷이 된 지금은 이 나이가 되어서 타협하고 싶지 않다는 것과 슬슬 결혼하지 않으면 평생 독신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반반이다. 하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해서 그냥 일상생활에 묻혀 살고 있다. (57쪽)
 
신타로(주인공 고사카 요코의 띠동갑인 22살 미남의 신입사원)는 나의 현실도피처였구나……. 차분한 기분으로 생각했다. 현실을 마주보는 게 싫어서 나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남자를 짝사랑하며 시간을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이게 모라토리엄이다. (66쪽)
 
‘히로’
 
결국 남자는 같은 남자의 기분만 생각해주려고 한다. 동성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동성의 원망을 살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기하라 부장을 잘못 보았다. 남자의 체면이 뭐 어떻다고? 그런 건 남자 말고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허상이다. 헌법에도 남자 체면을 인정하라는 조항은 없다. 그걸 권리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130쪽)
 
(주인공 세이코가 나이많은 부하남성직원에게 무시당하자 하는 말) “여자랑 일하기 싫으면 스모협회(여기는 여성들이 출입할 수 없음)나 가서 일자리를 알아보지 그래. 안 그러면 어디를 가나 여자들이 있을 테니까. 보호받아야 하는 가냘픈 여자애가 아니라 당당하게 자기 몫을 하는 여성들 말이야.” (132쪽)
 
(술 취해 들어온 세이코와 그녀의 남편 히로키와의 대화)
“있잖아, 히로.” “응, 왜?”
“솔직히 대답해줬으면 좋겠거든. 혹시 마누라 월급이 더 많은 게 자존심 상하지 않아?”
히로키가 돌아보았다. 잠시 침묵이 돌았다.
“솔직히 말해도 돼?” “응. 그랬으면 좋겠어.”
히로키가 가만히 쳐다보았다. 취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나도 안 상하는데.”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세이코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쩜 이렇게 멋있을까? 어쩜 이렇게 기가 막힌 파트너가 있을까? 그렇다. 히로키는 ‘남자의 체면’이 어쩌구 하는 쫀쫀한 말은 꺼내지 않는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이다. (134쪽)
 
‘걸’
 
신입사원 때는 서클에 20대 후반의 여자가 있다는 것조차 너무 놀랍고 이상했다. 결혼도 하지 않고 놀러 다니는 그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스물둘 때는 젊다고 할 수 있는 나이가 기껏해야 스물다섯까지였다. 하지만 금세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분명 환경 때문일 것이다. 오미츠(30대 후반 독신이면서도 20대 초반같은 감각을 지니려고 노력하는 여성, 여기서 말하는 ‘걸’이다.) 같은 연장자는 사내에 얼마든지 있다. 다 같이 힘을 모아 억지로 시간을 붙잡아두고 있었다. (171쪽)
 
유키코는 인생의 반은 우울하다, 라고 입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여자는 참 살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어떤 길을 선택해도 다른 길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188쪽)
 
평생 여자애. 아마 자기도 그 길을 가게 되겠구나 하고 유키코는 생각했다. 앞으로 결혼을 해도, 그리고 아이를 낳아도. 그렇게 살건 말건 내 마음이다.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뭐. (196쪽)
 
(요조숙녀였던 안자이 히로코가 아마추어 모델로 대회장에 선 직후)
“얼굴이 뜨거워서 불이 날 것 같아요. 내일부터 어떻게 출근하지?”
안자이 이로코는 대기실에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말했다.
“괜찮아요. 전에 신디 로퍼도 그런 노래를 불렀잖아요. ‘Girl just wanna have fun’ 이라고.”
유키코가 웃으며 말했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남자의 눈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자기가 즐거워지려고 멋을 부리는 것이다. 젊게 있고 싶은 것이다.
“정말 즐거웠어요. 고맙습니다.”
안자이 히로코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이자 유키코는 코끝이 찡해졌다.
여자끼리는 서로를 알아줄 수 있다. 개인적인 취향이 다소 다를 뿐이지 좋아하는 것은 똑같기 때문이다. (197쪽)
 
‘아파트’
 
자기도 결혼을 의식해서 최근 몇 년 동안은 큰 변화를 피해왔다.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도 게을리했다. 참 아깝게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이가 서른이라면 좀 더 충실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정신적으로 여유가 더 있었을 것 같다. (225쪽)
→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일본 회사들은 충성을 맹세하면 처지를 배려해주는 곳이구나. 개혁이니 능력 위주니 말로는 그래도 결국은 정에 지배되고 있는 것이다.
사쿠라이와 야마다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들에게는 생활이 걸려 있다. 지켜야 할 것이 많다. 그 속에서 살면서 머리를 숙이고, 위에서 내려오는 수많은 과제와 억지를 견디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 모습을 무사안일주의라고 놀리는 자기는 무책임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다. (236쪽)
→ 철드는 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데...
 
아파트 구입은 여러 가지 현실을 직시하는 작업이다.
“혹시 아파트를 사고 난 다음부터 회사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았니?”
“무사안일주의? 하기야 그 말을 들으니 그런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전직하려는 생각은 싹 없어져버렸으니까.”
그렇구나. 예전에는 우리 둘 다 정기적으로 “다 때려치울 거다” 하고 큰소리치곤 했다. 아파트를 사게 되면 나도 종신고용을 바라게 되겠지. (245-246쪽)
→ 이거 딜레마다. 이걸 해결해야 변혁도 가능하다. 
 
지금 이 순간, 자기의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깨달았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파트는 그래도 사야지. 아오야마의 2LDK가 아니라 내 눈높이에 맞는 것을. 아무래도 ‘현상유지’ 코스가 최고다. 다시 한번 찾아보자. 멋도 부리고 싶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살고 싶으니까……. (267-268쪽)
 
‘워킹맘’
 
“아이를 낳으면 우선순위가 순식간에 바뀌어버리거든요. 자기 물건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지고, 헤어스타일이나 화장도 우선은 간편한 것이 최고가 되고, 돈을 쓸 때도 내가 이걸 안 사면 아들 교육비에 얼마를 더 들일 수 있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한다니까요. 사이토 씨는 참 좋겠어요. 마음대로 돈을 쓸 수가 있어서.”
마지막에 강렬하게 비꼬는 말로 못을 박아주었다. (...)
밤이 되자 자기혐오의 감정이 생겨났다. 해버렸어……. 아사미가 말하던 ‘명분 내세우기’를 자기도 해버린 것이다.
그야 남자들은 신경을 써줄 것이다. 특히 육아를 아내에게만 맡기고 있는 사람들은 양심에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 더욱 그럴지 모른다. 그리고 독신인 사이토 리카코도 그렇다. 싱글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에 초조감도 있을 것이다. 결혼은 그렇다 쳐도 출산에는 연령제한이 있다.
다카코는 한숨을 쉬었다. 비겁한 수단을 써버렸어. 특히 마지막에 한 말은 너무했다……. (327-328쪽)
 
“애를 키우고 있으면 말이죠, 가끔씩 내가 무슨 큰일을 하고 있다는 오만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유모차를 밀면서 근처를 왔다 갔다 하는 주부들이 그렇잖아요. 남들의 보호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얼굴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 게 싫어서 나는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제 해버렸어요.”
“큰일 맞잖아요. 밖에서 돈 벌고, 집에서는 애 키우고.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나 같은 사람은 이 나이 되도록 집에 가면 나 혼자만 챙기면 되는데.”
“아무튼 반성하고 있어요. 어제는 그 뒤에 약간 우울해졌어요.”
“난 더 우울했는데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신기하게 말이 필요 없었고, 둘이서 같이 그냥 웃었다.
사람은 제각기 다르다. 남이 행복한지 어떤지를 나의 잣대로 재겠다는 자체가 불손한 짓이다. (332-333쪽)
 

 

80년대 중반 마돈나 못지 않게 좋아했던 팝가수 중에 신디 로퍼가 있었다. 신디 로퍼는 84년도에 발매된 위의 데뷰앨범으로 5장의 싱글을 모두 차트 5위 안에 밀어넣는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단지 하나의 앨범으로밖에 명을 누리지 못했지만, 우리가 아는 명곡들이 많다. 왁스의 리메이크곡 '오빠'로 얼마전 다시 인기를 끌었던 She Bop(이 노래는 조금 외설적이다.), 80년대 팝 발라드곡인 Time After Time 등. 왜 신디 로퍼는 계속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Cyndi Lauper - Girls Just Wanna Have Fun "언니들은 단지 재미를 원할 뿐이야!"
 
I come home in the morning light
My mother says, "when you gonna live your life right?"
Oh, mother dear, were not the fortunate ones
And girls they want to have fun
Oh, girls just want to have fun
 
The phone rings in the middle of night
My father yells, "What you gonna do with your life?"
Oh, daddy dear,you know you're still number one
But girls they want to have fun
Oh, girls just want to have fun
 
That's all they really want some fun
When the working day is done
Oh, girls they want to have fun
Oh, girls just want to have fun
 
Some boys take a beautiful girl
And hide her away from the rest of the world
I want to be the one to walk in the sun
Oh, girls they want to have fun
Oh, girls just want to have
 
That's all they really want some fun
When the working day is done
Oh, girls, they want to have fun
Oh, girls just want to have fun
They just wanna, they just wanna
They just wanna, they just wanna
Girls, girls just want to have fun
 

2008. 2. 19
위의 라이브는 신디 로퍼가 1987년 빠리에서 했던 라이브 공연이라고 한다. 20년 전의 것이건만 왜 이리 생생한 걸까. 동영상을 보면서 괜시리 흥겨워서 고개를 흔들면서(그것도 헤드뱅잉이라고...) 노래를 따라불렀다. 신나는 일은 하나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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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4 04:23 2009/08/14 04:23

2 Comments (+add yours?)

  1. 마리화나 2009/08/14 10:41

    같은 히데오인 요코야마 히데오 소설들도 재밌더라고요. ^^

     Reply  Address

  2. 새벽길 2009/08/14 21:55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은 아직 본 적이 없는데, 여유가 되면 봐야겠군요.

     Reply  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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