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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언론법에 대한 사법부의 결정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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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선 선거가 3:2의 결과가 나온 데 이어 바로 용산참사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결과 언론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다. 어떤 이는 사법부와 헌재가 정치적이라고도 하고, 이제는 헌재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진짜 정치를 하자고 한다. 헌재 존폐 자체를 묻자고도 한다.
 
다 맞는 얘기다. 우리가 그걸 몰랐나. 문제는 그걸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다시 사법부에, 헌재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있다.
 
적어도 사법부와 헌재에 대해서는 폭로를 통해 얻을 것은 많지 않다. 어쩌다가 나오는 의미있는 판결에 대해 그래도 사법부는 죽지 않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법 또한 이 지배질서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수단임을 잊지 말자고 해야 한다. 사법부는 몇몇 양식있는 인사가 포함된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해놓고도 내가 내뱉는 말 또한 공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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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는 실망으로…헌재 앞 시민들 분노 (미디어오늘 2009년 10월 29일 (목) 18:06:03 김수정)
[현장] 휴대폰 DMB로 뉴스 시청…“미디어법 유효 이해 안 돼”
 
사람들의 눈은 전부 휴대폰에 집중돼 있었다. 2시 정각. 헌법재판소가 야당의원이 미디어법에 대해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청구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리기로 한 시각이다. 사람들은 YTN을 시청하다 이내 MBC로 채널을 돌렸다. 이날 헌법재판소의 언론악법 판결을 생중계 한 곳은 MBC뿐이었다. 2시쯤에는 각기 다른 채널을 보는 것 같더니 이내 한 방송사 뉴스로 채널이 모아졌다. 헌재 한쪽에서는 생중계로 뉴스속보를 전하고, 다른 쪽에서는 생중계되는 뉴스를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별 다른 소식이 전해지기 전, 한쪽에서 ‘와’ 하는 환호성이 들린다. 문자로 판결 내용을 먼저 받은 모양이다. 사람들은 기대에 찬 눈빛을 하면서도 뉴스 속보가 나오기 전 박수를 치기는 아직 이르다는 눈치였다. 2시24분. 화면에 ‘신문법 권한 침해 7:2 인정’이라는 속보가 떴다. 이곳저곳에서“만세”가 터져 나온다. 한 시민은 “정의는 살아있다”고 외쳤다.
 
곧 방송법에 대한 판결이 속보로 올라왔다. ‘방송법 심의표결권 6:3 침해 인정’이라는 내용이었다. 또 다시 만세 나왔다. 이내 IPTV법 심의 표결권 침해’라는 속보가 화면을 통해 보도됐다. 사실 하루 전만 해도 헌재가 기각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아서 처음 뉴스를 시청하는 사람들의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런데 헌재가 한나라당의 불법투표, 대리투표를 인정하고 심의토론이 생략됐다는 점 등을 들어 야당 의원의 심의 표결권이 침해됐음을 인정했다. 재투표에 대해서도 일사부재의원칙 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람들은 헌재가 언론악법 무효를 선언할 지 모른다는 기대에 차 있었다.
 
2시38분. ‘신문법 무효 청구 기각’이라는 속보가 전해졌다. 그래도 방송법 판결은 다를 수 있다는 기대에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곧이어 ‘방송법 무효 청구 기각’ 소식도 화면을 통해 보도됐다. 사람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절차상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헌재는 오늘 죽었다”, “민주주의는 죽었다”는 악에 바친 목소리도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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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현·송두환 재판관 "헌법재판소의 사명을 포기한 것" (프레시안, 채은하 기자, 2009-10-29 오후 5:26:50)
[분석] "헌재는 '위법" 여부만 판단…나머지는 '국회'가"?
 
헌법재판소(소장 이강국)가 29일 신문법·방송법 등 언론 관련법을 둔 권한 쟁의 심판에서 법 처리 과정의 '위법'을 인정하면서도 '법안 가결 선포 무효 청구'는 기각한 결정이 나오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런 결정을 위해서 "이전 판례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논리"를 들고 나왔다. 신문법·방송법 처리 절차는 '위법'이지만 이를 해결하는 것은 국회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것. 이들 두고 몇몇 헌법재판관은 소수의견에서 "헌법재판소의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강국, 이공현 재판관은 "권력 분립과 국회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이유에서 헌법재판소는 원칙적으로 처분의 권한 침해만 확인하고 권한 침해로 야기된 위헌, 위법 상태의 시정은 피청구인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김종대 재판관도 "행정 처분이 아닌 국회 법률 제정 과정에서 비롯된 국회의원과 국회의장 사이의 권한 심판 사건에서 헌법재판소의 권한 쟁의 심판권은 심의·표결권 침해 여부 확인에 그친다"면서 "효력에 대한 사후의 조치는 오직 국회의 자율적 의사 결정에 의해 해결할 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이동흡 재판관도 "무효 여부는 입법 절차에 관한 헌법 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흠이 있는지 여부에 의해 가려져야 한다"며 "의사진행이 국회법 93조에서 규정한 절차를 위반했다 하더라도 다수결의 원칙이나 회의 공개의 원칙 등 헌법에 규정된 국회의 의사 원칙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 재판관은 이윤성 국회부의장의 신문법 가결 선포 행위가 △법안 제안 취지 설명 절차 생략 △질의 ·토론 절차 생략 △'대리 투표'로 다수결 절차 위반 등으로 청구인(야당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는 의견을 냈다. '신문법안 처리는 위법이지만 헌법 재판소는 무효 결정을 할수 없다'는 논란인 셈. 이들과는 달리 애초부터 "신문법안 가결 선포 행위가 야당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민형기, 목영준 재판관은 "판단할 필요 없이 이유 없다"고 무효 확인 청구를 기각했다.
 
이러한 '불일치'는 방송법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민형기, 이동흡, 목영준 재판관은 "방송법 가결 선포 행위는 청구인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라면서도 "이것은 입법절차에 관한 헌법 규정을 위반하는 등 가결 선포 행위를 취소 또는 무효로 할 정도의 하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을 내놨다. 김종대 재판관은 "신문법 가결 무효 청구와 같은 이유로" 기각했고, 이강국, 이공현, 김희옥 재판관도 방송법 재투표 논란을 놓고 "의결 정족수에 미달된 이상 방송법 수정안에 대한 국회 의결이 유효하게 성립됐다고 할 수 없으므로,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며 방송법 무효 청구를 기각했다.
 
한편, 이런 결정을 놓고 일부 헌법재판관은 "헌법재판소의 사명을 포기하는 것", "권한 쟁의 심판의 성격과 맞지 않다"는 소수 의견으로 반박했다. 조대현, 송두환 재판관은 "신문법안은 질의·토론 절차가 생략된 점 이외에도 표결 과정이 극도로 무질서하게 진행돼 표결 절차의 공정성, 표결 결과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바 위의 사유들은 중대한 무효 사유를 구성한다"면서 "권한 침해 행위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가결 선포 행위의 무효를 확인하거나 이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들 재판관은 다수 재판관들의 결정에 대해 "가결 선포 행위의 심의·표결 권한 침해를 확인하면서 그 위헌성·위법성을 시정하는 문제는 국회의 자율에 맡기는 것은 모든 국가작용이 헌법 질서에 맞추어 행사되도록 통제해야하는 헌법재판소의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신문법에 한해서 무효 확인 청구를 인용하는 소수 의견을 낸 김희옥 재판관도 이에 동의하면서 "권한 쟁의 심판 제도는 헌법적 권한 질서에 관한 확인과 직접 침해된 청구인의 권한을 구제하도록 한 쟁송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며 "신문법안의 가결을 선포한 피청구인의 행위가 헌법과 국회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인정한 이상 무효 확인 청구를 인용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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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방송법 무효청구 기각 “표결과정 문제 있으나 법안은 유효” (경향, 장은교·박홍두기자, 2009-10-29 18:26:04)
ㆍ‘정치적 민감사안 소극적 판단’ 논란만 키워
 
헌법재판소가 지난 7월 국회의 미디어법 개정안 처리 과정이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법안의 효력에 대해서는 “유효하다”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입법절차의 비민주적인 절차를 지적해 재발가능성을 막는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이번 결정의 의의를 밝혔으나, 과정상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법안을 유효하다고 결정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재판관들은 과정상 문제와 별개로 법안 자체는 유효하다고 결정했다. 개정안 가결 선포가 무효임을 확인해 달라며 청구한 효력정지가처분은 기각 결정한 것이다. 법률에 대한 무효 여부에 대해서는 신문법과 방송법을 각각 6 대 3과 7 대 2로 기각했다. 재판부는 “절차상의 문제는 있으나 국회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법률 자체에 대한 위헌 여부는 판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심의·표결권 침해는 확인했지만 이를 바로잡는 것은 국회에 맡긴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법률안 심의절차를 어긴 점은 인정되지만 입법절차를 무효로 할 정도의 하자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통과된 인터넷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개정안과 금융지주사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권한침해라고 볼 수 없고 법률안도 유효하다”고 결정했다.
 
헌재의 이날 결정에 대해 “헌재가 정치적인 판단을 했다” “소극적인 결정이다”라는 등 비판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표결 과정의 절차상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미디어법의 효력은 인정해줌으로써 헌재가 책임질 것은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승환 한국헌법학회장(전북대 법학과 교수)은 “법안이라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을 잃을 경우 법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재판관들도 다 아는 사실”이라며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사법 최고기관이라는 헌재가 헌재라는 이름만 빌려서 한쪽에만 유리한 정치적 판결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으로 미디어법은 다음달 1일부터 효력을 갖게 됐지만, 법적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헌재가 대리투표와 재투표 의혹에 대해 모두 사실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헌재가 이번 결정을 통해 미디어법 재논의의 길을 터줬다는 해석도 나온다. 또 통과 과정에 있었던 불법성을 시정할 책임이 국회에 있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개정 법안에 대해 헌재가 확실한 ‘면죄부’를 부여해 재논의 자체가 불가능하게 했다는 반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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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탓 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진짜 정치를 (미디어스, 2009년 10월 30일 (금) 10:37:37 윤현식/건국대 법대강사)
[기고]위법 행위의 모든 당사자는 사퇴해야
   
말장난
헌법재판소 결정문이 언제나 중후하고 유려한 문장을 동원해 추상같은 권위가 넘쳐흘러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대략 난감한 결정문을 통해 국민들로 하여금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드는 건 헌법재판소가 할 일이 아니다. 허무개그는 개그맨들이 하는 걸로 족하다. 근엄하게 법복을 입으신 분들이 개그맨들의 밥줄까지 끊어놓으려 하는 건 상도의를 거스르는 반칙이다. 문제는 이런 반칙이 상당히 자주 있다는 것. 불과 몇 년 전에 “관습헌법”이라는 놀라운 논거를 제시함으로서 21세기 대한민국을 졸지에 경국대전 치세로 돌려보냈던 헌법재판소는 또다시 “절도죄는 인정되나 장물소유권은 도둑님께” 류의 결정문을 내놓았다.
 
이미 미디어관련법 개정과정에서 벌어졌던 의회의 ‘막장쇼’가 어떤 절차적 하자를 가지고 있는지는 분분하게 논의한 바가 있다(미디어스 7월 23일자 ‘미디어법, 참을 수 없는 절차상의 하자’ 참조). 따라서 이하에서는 절차상의 문제를 상론하지 않을 것이나,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에 따르면 재판관 다수가 이러한 절차상의 하자를 분명히 인정하고 있으며 그 결과 국회의원들의 의안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이윤성 국회부의장의 진행으로 “날치기”에 준하여 이루어졌던 미디어법 개정안 의결과정은 국회법이 정한 절차를 대부분 위배했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이 세간의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절차상의 위법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각 법률안의 무효확인청구에 대해선 기각을 해버렸다는 점이다.
 
당연히 기각결정을 한 다수 재판관에게도 논리는 있다. 그 주요 논리 중 하나는 권한쟁의심판에서 처분의 취소나 무효결정은 헌법재판소의 재량사항일 뿐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헌법재판소가 불법을 확인해줬으니 그 시정은 원래 책임 있는 기관이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첫 번째 논리인데, 헌법재판소법 상 권한쟁의에 관하여 취소 및 무효결정을 “할 수 있다”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본 조항은 명백한 위법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취소 혹은 무효의 결정을 마음 내키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고 해석할 이유가 없다. 처분의 불법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처분의 취소 혹은 무효를 결정하지 않을 바에야 도대체 헌법재판소가 권한쟁의심판을 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결국 헌법재판관 다수는 법률규정이 강제조항의 형식으로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빌미로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코메디
공전절후한 4차원 안드로메다급 말장난이 되어버린 헌법재판소의 결정문보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오히려 헌법재판소까지 이 문제를 끌고 간 정치인들의 행태이다. 근본적인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헌정질서가 보장하고 있는 대의제체제, 즉 정당정치가 완전히 실종되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권한쟁의심판은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이지 정상적인 해법은 아니다. 해법은 정치 자체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 들어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빈번히 헌법재판소로 넘겨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신행정수도이전 건이며, 한미FTA관련 사안들이며, 전략적유연화에 관한 건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이르기까지, 그 예는 무수히 많다.
 
각 사안들이 가지고 있었던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권이 자체적으로 해결했어야 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헌재에 책임을 떠넘겼다는 거다. 권력중추의 독선과 여당의 밀어붙이기, 야당의 반발과 의정의 파행이 여지없는 공통점으로 각 사건에서 발견되고, 그러한 특징들은 이번 미디어법 개정과정에서도 여실히 확인된다. 시시때때로 사건의 주인공들이 역할을 바꾼다는 점만을 제외하곤 언제나 비슷한 양상이 전개된다. 그 결과 헌법재판소는 정치권이 자기 책임을 손쉽게 떠넘길 수 있는 일종의 도피처가 되어버렸다.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훌륭한 결정을 내리라고 요청하는 것은 실로 난망한 일이다.
 
이렇게 어색한 구도를 만들어놓은 후에 하는 일이 기껏 헌법재판소 정문 기둥을 앞에 두고 철야를 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절간에서 이만배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삼보일배를 하고 어떤 이들은 촛불을 켠다. 뭐하자는 걸까?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미륵불이라도 된다는 건가? 아니면 델피신전의 신관이라도 된다는 건가? 뭘 바라는 걸까? 정치가 원내에서 또는 장외에서 불꽃 튀는 설전과 투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안수 떠놓고 손바닥을 비비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코메디가 아니다. 의원직 전원 사퇴라는 배수진을 치겠다던 민주당은 헌법재판소 판결 전날 이루어진 보궐선거에서 3:2로 승리했다고 환호를 올린다. 거기엔 미디어법과 관련된 정치도 없고 투쟁도 없었다. 4대강 개발은 반대한다고 하면서 경인운하는 찬성하고 있는 어떤 의원이 승리의 만세를 부르는 장면이 TV화면에 크게 부각되는 판국에, 조중동 방송이 안방을 장악한다고 한들 대세에는 지장이 없는 거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가져올 파장에서 보다 주목되는 것은 정치권의 충돌이 아니다. 어차피 청와대는 휘파람을 불고 있을 것이고 여당은 다 끝난 일이라고 덮어버릴 일만 남았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헌법재판소를 공격하는 걸로 또다시 자기책임을 회피할 것이다. 시민사회는? “희망과 대안”으로 뭉치려나? 아무리 봐도 경천동지 상전벽해에 준하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개정미디어법 체제를 뒤집을만한 건수는 보이지 않는다. 헌법재판소가 절차상 위법을 지적하고 국회로 하여금 그 흠결을 치유하라고 권고를 했더라도, 칼자루를 쥐고 있는 여당이 이렇게 나오게 되면 앞길은 마냥 막막한 거다.
 
진정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과 중앙을 위시해 미디어법 개정에 사활을 걸었던 언론사들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자마자 이들은 환호작약한다. 너도 나도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선언하며 종편채널의 꿈에 들떠있다. 하나같이 이들은 자신들이 자금과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겠노라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예컨대 중앙일보는 “좌우 이념대력의 스펙트럼이 아닌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라는 가치를 방송에 도입하겠다”고 사자후를 뿜어대는 실정이다. 물론 이 발언을 한 당사자는 자신의 포부가 전형적인 보수이데올로기라는 점은 살짝 감추고 넘어간다. 이렇게 개정 미디어법과 관련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우려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결국 사고는 정치인들이 치고, 욕은 헌법재판소가 먹는 와중에 조선 중앙을 비롯한 언론재벌과 재벌언론은 로또대박을 맞은 듯이 떼돈을 벌 꿈에 부풀어있다. 제 돈 들여 돈 벌겠다는 것을 막을 이유도 없고, 배 아파할 이유도 없다. 자본주의사회 아닌가? 개정 미디어법의 논리가 바로 그거고. 게다가, 어차피 개발동맹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장삼이사들에게, 늘어나는 아파트 프리미엄에 기뻐하는 것만큼 딱 그 정도의 수준으로 조선방송 중앙방송이 선정적인 방송을 내보낸다고 한들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인가?
 
헌법재판소 탓하지 말고
다시 한 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돌아가자. 헌법재판소가 무효청구를 인용하지 않은 것은 의원들의 입장에서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안도할 일일지도 모른다. 결정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당시 본회의장은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었는데, 한나라당 의원들에 의한 대리투표는 물론이려니와 민주당 등 야당의원들의 투표방해 역시 결정문에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다시 말해,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국회법에 따른 정상적인 심의·표결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 데 대하여 공히 그 위법성을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의원들에게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헌법재판소가 청구를 인용하였더라면 법률안 처리를 무효로 만들 정도로 위법행위를 한 모든 의원들은 총 사퇴를 해야만 한다. 본연의 의무인 법률안 처리를 하는 데 있어서조차 위법을 행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의원으로서의 권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치적 사안을 헌법재판소로 손쉽게 넘기는데 버릇이 들어버린 정치인들 스스로가 대오각성하는 것이다. 헌법이 괜히 3권분립을 엄정하면서 의회에 막대한 권한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헌정질서를 운운하는 국회의원들이 헌법에 보장된 자신들의 권리조차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자신들을 뽑아준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자신들의 주제파악도 못하는 주제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가지고 비아냥거릴 자격은 최소한 현직 의원들에게는 없다고 봐야한다.
 
야당의원들, 특히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까지 했던 민주당 의원들은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의원직 총사퇴를 하고 다시 투쟁에 돌입하시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항간에 개정 미디어법을 헌법소원을 통해 무력화시키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으나 그건 굳이 의원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나설 필요가 없다. 개정 미디어법으로 인하여 피해를 본 당사자들이 직접 헌법소원에 나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정치인들은 지금부터라도 진짜 정치를 하기 바란다. 촛불이니 삼보일배니 하는 21세기형 샤머니즘 정치는 ‘막장쇼’의 외전일 뿐이다. 차라리 금배지 떼고 국회해산하고 정권타도투쟁을 벌이던가. 그게 더 현실적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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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만큼 정치적이다 (프레시안, 정종권 진보신당 부대표/ 용산참사해결촉구 단식 중, 2009-10-30 오전 11:48:25)
[기고] 용산참사 판결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보며
 
첫번째 이야기, 용산참사 재판에서
10월 28일 수요일 오후 2시 중앙지방법원에서 용산참사 철거민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었다. 2명에게 징역 6년, 5명은 징역 5년, 집행유예는 2명,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3명의 철거민들은 법정 구속됐다. 얼마 뒤면 딸 결혼식을 앞둔 아버지도 용산사건의 후유증으로 지팡이를 짚고 재판받으러 법원에 왔다가 법정에서 구속됐다.
 
검사 구형내용을 그대로 베낀듯한 판결에 항의를 하며 재판정을 퇴장하던 방청객에게 판사가 외친 말은 "저기 떠들고 구호를 외치며 퇴장하는 사람 잡아서 구속시켜"라는 악다구니 소리였다. 왜 그렇게 들렸을까? 나에게 판사의 그 목소리는 법정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판결의 부끄러움과 치부를 감추려는 몸부림이었다.
 
판결문에서 가장 가소로운 소리로 들렸던 것이 "철거민들의 불법행동은 대한민국 국가 법질서의 근본을 유린하는 행동으로 법치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으며 중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구절이었다. 누가 반사회적이고, 누가 대한민국의 상식과 정의를 파괴하는지 판사 자신의 양심에게 물어볼 일이다. 법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땅의 법률은 상식을 유린하고 정의를 파괴하고 불의를 정당화한다. 만인에게 평등한 게 아니라 만 명에게도 평등하지 못한 게 대한민국 법률이다.
 
누군가 옆에서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너희 사법부가 이건희, 정몽구와 같은 재벌들, 높은 권력자들에게 그 엄정하다고 하는 법치주의의 잣대를 제대로 들이댄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가? 재벌들에게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무죄, 이러저러한 경제적 사회적 공헌을 이유로 정상 참작하여 집행유예 등등 그리고 가진 것 없는 철거민들에게는 목숨 잃고 다치고 구속된 것도 억울한데 제 아비를 죽였다는 죄목을 씌우고 중형을 선고한다. 지존파의 절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슬프지만 진실이다.
 
망루에서 화염병을 본 적이 없다는 특공대원들의 진술은 부정하면서 화염병이 발화와 참사의 핵심원인라고 우긴다. 누가 던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철거민들이 던졌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법률의 이름으로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사상의 중범죄를 엄정하게 처벌하겠다고 판결한다. 이런 판결을 하고도 국민들이 사법부를 정의의 심판자라고 신뢰하기를 바란다면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이다.
 
여러 여론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정부기관 중에서도 아주 낮은 중하위로 나타난다. 누가 그 불신을 만들어내는가? 바로 사법부 자신이다. 정치 권력자와 재벌과 같은 경제 권력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기는 태도, 정의와 진실의 기준이 아니라 정치논리에 근거한 고무줄 판결이 스스로의 존립근거를 위협하는 것이다. 10월 28일 사법부의 판결은 사법부를 살인하는 판결이다.
 
26일 월요일부터 용산범대위 대표자 5명이 용산참사 해결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문규현 신부가 용산참사 해결을 촉구하는 단식을 하다가 쓰러져서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고, 청와대와 정운찬 국무총리, 서울시는 서로 폭탄 돌리기 하듯이 책임을 미루는 상황에서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단식농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노숙농성에 들어가자마자 경찰은 곧바로 단식자 전원을 연행하였고, 48시간을 30분 앞두고 석방하였다. 불법집회를 했다는 것이 혐의였다.
 
그 대표자들은 이전에 1인시위를 하다가도, 기자회견을 하다가도 불법집회라고 연행되었고, 또 용산참사 해결촉구 3보1배를 하다가도 연행되었다. 이제는 단식을 하겠다고 거리 그것도 인도에 주저앉았다가 또 연행된 것이다. 거창하게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것도 없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입을 틀어막고, 오로지 정부방침에 순종할 자유 비판하지 않을 자유 그리고 숨 쉴 자유만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28일 용산 재판 결과가 나왔다. 사실 재판 전에 조금은 기대한 것이 사실이다. 워낙 힘들게 버티고 있는 유가족들에게 재판 결과가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10개월째 이명박 정부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지쳐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주 가끔씩 보이는 의로운 판사들의 판결을 보면서 그 행운이 우리에게도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한나라당, 사법부의 정치적 담합과 결속은 강하고 굳건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로 끝났다. 희망은 민중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것이지 누군가의 선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달은 것이 그나마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두 번째 이야기, 미디어법 판결이 있었던 헌법재판소 앞에서
하루 뒤인 10월 29일 목요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에서 신문법, 방송법 등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청구에 대한 선고가 있었다. 구름처럼 많은 언론사의 취재경쟁 그리고 조마조마하며 기대하는 사람들이 헌법재판소 앞으로 몰려들었다. 방청인원이 한정된 - 용산참사의 선고재판도 방청객을 한정하였다 - 탓에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핸드폰 DMB를 켜고 헌재의 선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신문법, 방송법에 대한 선고에서 질의응답 기회 박탈 등 의원들의 법률심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이 인정되었고, 대리투표 등의 행위에 대해서는 위법한 것이라고 인정되었으며, 일사부재의의 원칙에 근거하여 재표결을 한 것도 위법하다고 헌법재판소는 결정했다. 각각의 쟁점에 대한 입장을 통해 총체적으로 신문법과 방송법이 위법한 결정과정을 거치면서 의원들의 권한을 침해한 것으로 결정한 것이다. 이 과정을 방송을 통해 듣고 있던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만세를 외쳤다. 한사람은 피켓을 들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눈물이 난다고 하였다.
 
그러나 바로 몇 분 뒤, 각 법률의 처리 과정에서의 권한침해와 위법한 사실을 인정하지만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신문법, 방송법의 효력을 무효화시키는 요청은 기각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고 당황하였다. 그 자리에 있던 법률가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의 환호는 분노로, 기쁨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누구는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이러저러한 혈중알콜조사를 해보니 음주를 하고 운전한 것은 분명한데 결론적으로 음주운전이 아니라고 판정한 것과 다를바 없다, 이러저러한 조사를 해보니 위조지폐인 것은 분명한데 이 위조지폐를 유통시켜서 사용할지는 당신들이 알아서 해라' 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규탄하였다.
 
헌법재판소는 87년 민중항쟁의 결과로 탄생한 소중한 제도적 성과이다. 그러나 제도가 그런 과정을 거쳐서 탄생하였다고 하여 그 실천이 항상 올바르거나 제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헌법재판소를 대표로 하여 사법부가 보여주고 있다. 사법부의 보수화, 특히 사법 상층부의 정치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사법부가 정의와 진실의 잣대로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의 의중과 기득권 집단의 이해를 옹호하는 것이 1차적인 잣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90년대 초반에 헌법재판소는 토지공개념 관련 3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유의 핵심은 사유재산의 보호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근본 정신을 훼손하는 입법이라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사회적 공평이라는 헌법적 정신은 이들에게 2차적일 뿐이다.
 
멀지 않은 시간인 바로 몇년전에 헌법재판소는 행정수도 이전 입법에 대해 관습헌법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가면서 위헌 판결을 했다. 헌법재판소가 새로운 헌법을 제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뿐인가, 종합부동산세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는 위헌판결을 하였고, 정반대로 교육형평성과 평등교육을 침해한다고 위헌소송을 낸 국제중학교 사건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법재판소와 용산참사 1심 재판부의 판결들을 관통하는 기조는 단 한가지이다. 사회정의와 공정함이 아니라 기득권과 권력자의 이해관계가 사법결정의 1차적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서글프지만 10월 28일 용산참사 1심 판결과 29일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 확인한 사법현실은 - 비록 몇몇 의로운 사법부의 성원이 있지만 -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의 모습을 뼈저리게 체감하고 느끼고 있는 것이 이명박 정부 2년의 시간이다. 결국 이러한 부당하고 불의한 현실을 바꾸는 것은 기득권 세력을 압도하는 민중들의 정치적 힘과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고 확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법부를 비롯한 그들도 힘이 있다면 우리를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만큼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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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존폐 여부 국민에게 묻자 (미디어오늘, 2009년 10월 30일 (금) 12:57:39 백병규 / 미디어평론가)
헌법정신 부인하는 쿠데타적 결정들…"존재 이유 사라졌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헌재가 ‘관습헌법’이라는, 기상천외한 논거를 들어 의회와 행정부를 농락했을 때 헌재 재판관들은 그 정체를 드러낸 바 있다. 그들은 헌재를 정치적으로 오염시켰을 뿐만 아니라, 헌재의 이름으로 헌법과 헌법정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쿠데타적 결정을 서슴지 않았다.
 
헌재는 이번 언론법 결정을 통해 다시 한 번 헌법과 상식을 짓밟았다. 이번 헌재 결정에서 소수 의견을 낸 조대현, 송두환 두 재판관의 신랄한 지적은 그 정곡을 찌르고 있다. “법안 처리과정에서의 위법성(심의 표결권 침해)을 확인하면서도 그 위헌성․위법성을 시정하는 문제는 국회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분명한 결정(무효 확인이나 취소선언)을 회피하는 것은 국가 작용이 합헌적으로 행사되도록 통제해야 할 헌법재판소의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다.”
 
헌재의 양식은, 사법의 정의는 그러나 속절없이 무너졌다. 교언영색의 복잡한 법리는 권력에 대한 사법의 치욕스런 ‘충성서약’을 분칠하는 분장일 뿐이다. 헌재는 위법하지만 합헌이라는 결정으로 법치의 근간을 허물었다. 국회의 위법을 적시하고도, 법의 논리로 권력의 폭력적인 힘의 남용을 용인함으로써 헌법과 법률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말았다. 3권 분립이라는 이유로 사법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함으로써 3권 분립을 와해시켰다. 민주주의와 법치의 기본질서를 송두리째 망가트렸다.
 
바로 이런 점들을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헌재의 결정은 유효하다. 헌법과 헌법 정신의 최종 수호기관이 스스로 헌법을 파괴하고 있는 현실, 그것이 드러내고 지시하고 있는 바는 무엇인가? 언론법 문제는 이제 단순히 언론법 차원을 넘어섰다. 언론법 논란의 핵심이 민주주의의 기본 요건에 관한 것이었다면, 언론법 헌재 심의는 이 땅의 모든 헌정 시스템, 공공적 체제에 대한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재검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당장에는 헌재의 존재 이유를 공론에 붙여야 할 때가 됐다.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의 근간이 결정적으로 위태롭게 될 때마다 민주주의와 헌법정신을 배신하는 헌재라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지극히 정치적이며 기회주의적인 헌재의 결정을 존중해 언론법의 재심의를 정부 여당에 기대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일 뿐이다. 언론법에 대한 불복종 정도는 어찌 보면 부차적이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헌재의 존폐 여부를 곧바로 시민들에게 물을 때가 됐다.
 
비단 헌재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불법적인 재판 간여가 명백하게 확인돼 대법원장의 사실상 사퇴 권고에도 불구하고 뻔뻔스럽게 대법관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사법부의 현실에서 과연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런 대법관 같은 이들이 사법부에 어디 한 둘일까? 그런 사법부의 심판에 과연 누가 승복할 수 있을까? 사회 정의의 실현이라는 본래의 역할은 저버린 채 되레 권력의 통치 기구로 전락하고 있는 검찰 체제를 이대로 두고 과연 어떤 사법적 정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용산 참사 사건 1심 재판은 사법부가 사회적 정의 실현에 얼마나 역행할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법시스템뿐만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원칙과 공공적 질서 자체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그 근원을 살펴보면 시스템도 시스템이지만, 결국 공공 부문에 복무하는 ‘사람의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게 제기된 때도 없다. 공공부문에 종사해서는 안 될 사람들, 공공부문의 책임과 역할을 감당할 의지와 품성을 갖지 못한 사람들, 기득권 세력의 대변자로 전락한, 권력과 자본의 사병과 그 조직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지난 10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경험, 그리고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공공부문의 기가 막힌 변신은 한국 역시 공직사회와 공공 조직의 일대 쇄신 없이는 그 어떤 전향적인 정치 사회적 변화도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여실하게 확인시켜 주고 있다. 헌재는 어제 그것을 극명하게 재확인해주었다. 대한민국에 앞으로 필요한 것은 비단 정권 교체뿐만 아니다. 권력은 유한한 존재일 뿐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반세기 이상 대한민국을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지배하고 있는 ‘공공부문’과 ‘공공권력’의 교체야 말로 진정한 정치 사회적 변화의 기본 요건임을 새삼 절감케 한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그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할 때다. 필요하다면 모든 공직 사회와 공공 조직을 전면적으로 쇄신하는 청사진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그 맨 앞에 헌재의 존폐를 상정해도 좋을 것이다. 그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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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30 15:22 2009/10/3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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