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박노자의 혁명론

View Comments

2008/12/02 19:06 
2008년 말에 박노자 교수가 레디앙에 글을 쓰면서 다함께의 활동가들과 논쟁을 벌이면서 자신의 혁명론을 개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급진적 개혁론이라고 해야 맞겠다. 그런데 그 내용이 나름 현실적이면서도 흥미롭다. 사례를 들어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부분은 그에 상반되는 예를 들어 반박할 수 있기에 논리적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긴 하나, 그렇게라도 약간은 절충적인 자신의 혁명론을 일관성 있게 펼치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가깝기도 하고...
관련 글을 발췌하여 담아놓는다. 

 

---------------------------------------------------
"서구 민중에 대한 낭만적 꿈 버려라" (레디앙, 2008년 10월 28일 (화) 09:25:10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내가 혁명보다 급진적 개혁이 바람직하다고 느끼는 이유
 
지난 번에 미 제국 패권의 위기 및 몰락 과정에서 수많은 국지전들이 발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요지의 글을 쓰고 나니 이에 대한 한 반론이 들어왔습니다. 반론의 요지는, 패권 위기 과정에서 전쟁이 발발될 수 있어도 주요 핵심부 (구미 지역) 국가들의 민중의 반전 운동이 크게 일어나 제국주의 전쟁을 막을 수도 있다는 주장, 그리고 반전 운동을 자본과 국가와 같은 수준의 행위자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 즉 핵심부 민중의 반전 - 나아가서 혁명 - 운동 역량에 대해 보다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줄기차게 '반전'과 '국제 연대', 나아가서 - 요즘 거의 딴 데에서 들어보기 힘든 - '혁명'까지 외치는 <다함께> 류의 분들의 열정을 대단히 존경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대체로 도심 중산계층의 가정에서 곱게 커 배고픔을 한 번 겪어본 적이 없는 이 분들이 '혁명'을 이야기할 때에 과연 그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머리가 아닌 피부로 아는지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알았다면 아마도 그런 용어의 사용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했을 것입니다.
 
'혁명'이란 정확하게 권력과 부의 대이동, 그리고 권력 구조의 본격적인 재편성을 의미합니다. 사회주의 혁명은 원칙상 권력 그 자체의 극복, 즉 권력과 부가 없는 사회를 지향하지만 우리가 역사에서 아는 '현실적' 사회주의 혁명들이 다 빠짐 없이 대대적인 반동, 즉 권력과 부의 재등장과 그 체제의 재편성으로 귀결됐습니다. 
 
혁명을 외치자면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하죠. 자기 목숨과 남의 목숨 말입니다. 그리고 혁명의 칼이 칠 '남'들이 꼭 '악질 반동'만이 아닐 것이라는 것도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혁명이란 것 무엇인지 파데에프라는 작가의 <궤멸>이란 소설에서 학교 수업때에 잘 배웠습니다.
 
일제 시베리아 출병 때의 연해주에서의 공산주의적 유격대 대장인 레벤손이란 마음씨 착한 유태인이 그 주인공인데, 밀림에서 자신의 유격대 대원들을 먹여주고 살려주기 위해서 한 조선인 농민에게 그가 정성껏 키운 돼지를 몰수해야 됐던 것이었습니다. 돼지를 빼앗으면 조선인의 가정이 굶어죽을 확률이 크지만 유격대는 살고, 놓아두면 조선인이 살게 되지만 유격대는 죽는다, 이게 설정입니다. 레벤손의 심장이 찟겨지는 듯한 고통을 받지만, 그가 일단 돼지를 빼앗고 조선인과 그 가정, 그 작은 아이들을 굶어죽게 놓아둡니다. 그렇게 하고도 계속 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혁명가인 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젓먹이 아이라도 죽일 수 있는 처참한 광경이야말로 혁명입니다. 이건 한국 경찰에 의한 '닭장 투어' 정도를 벌써 심각한 탄압으로 아는 이들로서는 상상이 잘 안가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굳이 그러한 상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그들이 사는 준(準)핵심부 나라에서 진짜 혁명이 일어날 확률이 대단히 낮기 때문이죠. 갑작스러운 중국 자본주의의 몰락이나 중-미 무력 갈등으로 국내 산업 구조가 망가지면 모를까, 그러한 극단적 시나리오가 실현되지 않는 이상 준핵심부/핵심부 국가에서는 혁명을 일으키기에 필요한 원한과 증오가 잘 축적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비정규직 양산 등으로 민생의 파탄이 심해도 1917년의 러시아나 해방 직후의 조선과 달리 개개인의 물리적 생존 그 자체가 아직도 어느 정도 보장돼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 보장의 정도가 한국보다 훨씬 더 좋은 핵심부 국가의 경우에는 피지배계급은 개개인별로 자본/국가 체제에 대단히 잘 포섭, 편입돼 있습니다.
 
전체 가구 중의 약 절반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인생의 어떤 문제에 대해 복지 사무소나 학자융자관리국 등 국가 기관을 찾아가 해결할 수 있는 노르웨이는 그 포섭/편입의 정도가 가장 두드러지지만(사민주의적 복지 자본주의야말로 가장 공고한 자본주의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개개인들이 국가/자본과 개별적으로 거래하면서 그 생존은 물론 상당히 높은 소비의 수준까지도 유지할 수 있죠. 
 
미 군대가 장학금 등 미끼로 주로 가난뱅이들을 사들여 총알받이로 만드는 오늘날 같으면 중산계층들의 반전 운동의 열정도 훨씬 덜하죠. 중산계층의 개혁주의자들의 반(半)자유주의적 사고 구조로서 비판하기 어려운 전쟁이라면 반전 운동이 대단히 미약할 수도 있죠. 예컨대 1999년의 유고 공습 때에 노르웨이의 노동당과 사회주의좌파당, 그리고 주요 노조들이 다 나토의 만행을 '알바니아인을 위한 구제' 이름으로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탈레반이 귀하신 덴마크 군인 50명의 몸을 주검으로 만들어버리면 아마도 침략군 철수 압력이 갑자기 강화될 것입니다.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이니 제발 서구 민중들에게 지나친 기대를 걸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자본주의적 계산에 철저하게 길들여진 그들은 침략 전쟁이 그들에게 크게 불리하다는 걸 몸으로 이해하면 크게 움직일 수도 있는데, 그들의 이해를 가장 잘 돕는 것은 피침략국들의 군사적 패배입니다.
 
악행의 실체를 바로 보는 정견(正見)이야말로 선의 시작이죠. 레벤손형(型)의 인간에게 고통과 회개, 속죄가 있을 수 있지만, 제국주의와 동거하는 '사민주의자'들에게는 그 안정된 삶에 대한 집착 이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한국이나 노르웨이에서 혁명이 일어날 확률이 낮다는 사실, 즉 급진적 개혁운동이 현실적으로 가장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또 반기기도 합니다. 레벤손과 달리 저는 조선인 농민의 아이를 굶겨 죽이면서까지 혁명할 자신이 개인적으로 없기 때문입니다.
 
--------------------------------------
"최선은 급진적 개혁" (레디앙,  2008년 10월 31일 (금) 11:36:40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혁명은 비판할 수 없는 자연현상…혁명군에 강간당한 여성의 울부짖음 
 
저는 혁명을 '비판'하려 하지 않습니다. 혁명이 좋아서가 아니고 혁명을 비판하는 것이 마치 자연현상을 비판하는 일과 같기 때문입니다. 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서 어느 정도 준비된 지도자 계층도 필요하고 어느 정도 틀을 갖춘 이데올로기도 필요하지만, 일차적으로 혁명을 일어나게끔 하는 것은 한 사회의 토대와 상부구조에서의 해결 불가의 모순들입니다.
 
제가 '비판'했다기보다는 '사건'으로서의 혁명의 실체를 보다 명확하게 그려주고, 역사가 우리에게 혁명이라는 선택을 만약 안겨준다면 이게 우리에게 뭘 의미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이 불가피해지기 전에 우리가 뭘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가 이 정도로 이야기해본 것 뿐입니다. 
 
사회주의자가 되자면 '밑바닥'부터 봐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컨대 혁명 시대 문학의 독서를 권고하고 싶습니다. 혁명 시절에 소련 초기의 비밀 경찰 (체카)에서 잠깐 일하고 1920년에 신흥 소련 공화국과 폴란드 전쟁의 전선에서 소련 군의 편에서 취재를 한 이삭 바벨이라는 작가의 일기를 한 번 읽어보세요. 그 전선에서는 주로 유태인으로 구성된 주민들을 폴란드 군인들도, 카자크인/농민이 다수인 소련 군인들도 똑같이 약탈한 것인데, 바벨이 상황을 그렇게 묘사합니다:
 
"중요한 것 : 우리 군인들이 무관심하게 배회하면서 가능한 곳마다 약탈을 자행하고, 이미 부상 당한 주민들의 옷을 빼앗음. 똑같은 증오, 똑같은 카자크 기마병, 다만 국가 소속이 다를 뿐. 넌센스! 유대인 마을들의 생활 - 탈출구가 없다. 군인들이 다 죽이기만 한다. 여성들이 거의 돌어다니지 못할 지경임. 어제 수다스러운 유대인을 만났는데, 그 딸을 카자크 기마병이 강간하자 이층에서 뛰어내려 팔을 다 부러뜨렸다. 잦은 일이다": 1920년8월28일.
 
혁명군이든 반혁명군이든 도살, 겁탈, 강간이 뒤따르는 것은 똑같았습니다. 물론 레닌과 트로츠키가 이와 같은 일을 막으려고 노력했다는 반론이 들어오겠지만, 레닌과 트로츠키가 혼자서 혁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내전과 외전들이 꼭 혁명에 뒤따르지 않는다고 반론하실 분들이 계시다면, 각종의 전쟁으로 귀결되지 않은 역사 속의 혁명 하나라도 대주시기를 바랍니다
  
지도자/담론/조감도의 차원에서는 혁명이란 아름다운 그림으로 다가가지만, '밑바닥'의 차원에서는 강간 당하다가 이층에서 뛰어내려 팔을 부러뜨린 여자의 고함소리부터 들립니다. 그런 게 불가피하다면 불가피한 일로 받아들이겠지만, 불가피해지기 전에 일단 우리가 최선을 다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최선, 즉 '급진적 개혁'이란 피를 흘려 이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쟁취할 수 있는 '최대한'을 의미합니다. 일부 대형 기업소 (일차적으로 금융 기업들)를 국유화해야 하겠는데, 무엇보다 먼저 토건 국가예산을 교육, 복지 예산으로 바꾸어 경기부양책을 무상교육/의료 실천을 통해서 하는 것, 부동산 보유세 등 부유층을 직접 집중 겨냥하는 각종 부유세들을 징수하고, 부동산 투기 적발시에 투기로 벌어들인 재산을 몰수하는 것, 대학 평준화와 명문대 개념의 불식을 위해서 최대한의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 남북한 간의 공통 군축으로 군사 예산을 계속 줄이고 교육, 복지 예산을 늘리는 것 등등을 의마하는 것이죠.
 
'개혁주의'라는 누명이 붙을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한국적 맥락에서는 이 정도면 대단히 '급진적' 개혁주의가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대안이 국민적으로 선택되어지면 우리가 대다수의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 한 때 박헌영 선생께서 '진보된 민주주의'라고 불렀던 - 상태로 나아갈 수 있겠지만 지금대로 갈 경우에는 정권이 가면 갈수록 '밑바닥'의 불만을 짓누르기 위해서 강경한 억압, 탄압책을 채택해야 할 것이고, 결국 권위주의적 경향의 대대적 강화로 갈 것입니다.
 
----------------------------------------
세계혁명, '거창한 얘기'하기 전에 (레디앙, 2008년 11월 09일 (일) 23:40:42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혁명-급진개혁 논쟁] 남의 이론 번역-소개보다 중요한 것들
 
미래의 혁명에 대한 논쟁이란 현실이 아닌 막연한 가능성을 갖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어디까지나 신학적 성격이 강하죠.
 
현실을 이야기하게 되면 최고 세율을 약 60%까지 높이자든가, 부동산 투기꾼의 재산을 몰수하자든가 쓸데 없는 군대부터 좀 축소시키자든가 등등 제게 제일 중요한 이야기를 김종환님께서도 아마도 빠짐없이 다 지지하실 것이기에 굳이 애를 쓰고 논쟁을 할 만한 맛이 안나죠. 개인적으로 종교도 있고 종교에 대해서 신경을 아주 많이 쓰긴 하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는 종교가 아닌 통계 등 사실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걸 미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조합(NTL - 노르웨이 공무원 노련)은 제가 오슬로대에서 근로해온 지난 8년 동안 3번이나 파업을 선포했습니다. 물론 파업을 선포하자마자 사용자측에서 당장 우리에게 양보를 했기에 실제 파업 일수가 적었는데, 어쨌든 늘 투쟁할 자세가 돼 있죠. 지금도 저희 노련과 사용자(오슬로대) 사이에서의 임단협이 결렬 상태에 있고 양쪽에서 투쟁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저희 조합에서 학교 교직원 중에서 43%나 차지하는 임시직(박사 과정생 포함 - 여기에서는 박사과정생도 원칙상 교직원입니다)에 대한 학교의 임금 인상 제안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 반대'와 '자본주의 반대'는 엄밀히 두 가지 다른 이야기죠. 신자유주의야 노르웨이 좌파뿐만 아니라 사회적 안정성과 이 사회의 장기적 미래를 염려하는 상당수의 우파들도 반대하죠. 그러나 자본주의 반대는, 복지 국가 쟁취 투쟁이 한참이었던 1930~1940년대까지만 해도 일각의 노동 운동가 사이에서 인기 있는 구호였다 해도, 복지국가가 제도화된 이후로는 그 대중성을 많이 잃은 것도 사실이죠.
 
복지주의 현상 유지만를 주장하고 친미를 외치는 노동당은 30~32%인데, 저 같은 이들이 노동당을 아주 싫어해도 결국 협력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동당과 농민당인 중앙당과 협력을 해야 그나마 간신히 노르웨이 사회에서 '총좌파적 헤게모니'를 유지하여 신자유주의자들을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이죠.
 
'지금, 여기에서의 혁명'을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공당은 노르웨이에 없고(공산당 2개가 있는데 현실에서의 혁명을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혁명에 준하는 급진성의 개혁과 궁극적인 세계적 사회주의 혁명을 외치는 적색 선거 연합-적색당" (http://en.wikipedia.org/wiki/Red_(Norway))은 요즘 잘해봐야 지지율 1% 정도입니다. 그 분들의 원론적 강령 (http://roedt.no/program/prinsipprogram/)을 보면, 저도 크게 봐서 많은 부분에 대해 동의를 하죠. 문제는, 그 듣기 좋은 원론적 이야기를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활용하느냐인데, 노르웨이의 혁명당은 아직도 노동자 사이에서 거의 하등의 지지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선 지지자들을 보면 거의 다 노조 활동을 안하는 젊은 지식인들이죠. 굳이 원론을 따진다면 저만 해도 적색당에 지지를 보내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제 소속 계급을 이탈하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노조에 가입하고 노조 활동을 하는 노르웨이 노동자(교수도 노동자의 일부죠) 중에서는 복지주의의 유지 및 증강의 현실적 투쟁을 떠나서 '더 이상'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데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여유가 있는 이들을 찾아보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 즉 신자유주의로부터의 방어선 유지도 아주 버겁기 때문에요. 그게 우리가 사는 현실인데, 김종환님께서도 먼저 구미 노동자들과 직접 만나보시고 그들의 삶과 투쟁 이야기를 좀 들어보시고 그들의 동향을 직접 살피신 뒤에 '세계 혁명'에 대한 거창한 이야기를 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침략 전쟁에 대한 태도 같으면, 아프간 파병 반대는 노르웨이에서는 50%, 독일에서는 무려 75% 정도죠. 그게 다 좋은데, 수많은 독일 노동자들은 아프간 침략을 반대해도 그 침략을 지지하는 독일 사민당에 대한 지지를 끝내 철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노르웨이 사정과 마찬가지로, 보수적 사민주의자들을 빼놓고서는 '총좌파'의 전선 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총좌파의 영향력 유지에 따르는 복지제도의 유지는, 유럽 노동자들에게 이름모를 아프간 민간인들의 무고한 죽음에 비해 훨씬 더 일차적인 과제입니다.
 
오늘날 유럽의 복지주의적 현실은 노동자와 지배자 사이의 타협의 산물인데, 우리 계급이 이 타협 과정에서 지불한 대가의 일부는, 지배자들의 세계 정책에 대한 일정 정도의 '묵인'이죠. 즉, 반대를 한다 해도 어느 정도의 수위를 넘는 반대를 하지 않고 이 문제에 일차 순위를 매기지 않습니다.
 
그게 우리가 사는 현실입니다. 그러니까 철지난 과거의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고 피범벅이의 러시아 혁명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시는 대신에,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우리 조합원들에게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대의 순위를 높여야 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피부에 와닿는 논리를 개발해주시기나 했으면 좋겠어요. 제게 같으면 그러한 논리는 바로 '생명의 신성함'이죠. 노르웨이가 아무리 살기 좋은 곳이라 해도 노르웨이 군인이 아프간에서 한 사람의 현지인을 죽인다면 이는 우리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죄악이 되고 말고, 우리 복지주의의 존재의 이유, 즉 생명의 존중이 무너집니다.
 
제가 제 동료들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말이라도 통하는데, 크론슈타드 수병을 잔혹하게 학살한 이웃 나라 과거의 정치인들을 무비판적으로 찬양하기 시작하면 말이 더이상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급'을 단순히 들먹이지 말고, 우리 노동 계급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현실적으로 '급진화'의 효과를 얻을 것인지, 과거 이야기나 남의 나라에서 만든 이론의 재탕삼탕이 과연 우리 계급에게 '지금, 여기에서' 필요한지 남의 이론을 충실히 번역해주고 '소개'해주는 차원을 벗어나서 한국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얻어 '복지주의 동맹'을 형성할 방법이 무엇일는지 스스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
"탁상공론할 여유도 기분도 아니지만" (레디앙, 2008년 11월 12일 (수) 14:55:02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나의 혁명론①] 한국, 건국 이후 최대 위기상황…'다함께 혁명론' 비현실적
 
생산성이 좀 나아지고 정부들이 위기 관리의 케인즈주의적 수법이 약간 진화해서 그렇지, 구조적으로 봤을 때에 우리의 역사적 시계는 지금 다시 한 번 1929년입니다. 그리고 케인즈주의적 위기 관리의 수법들이 '진짜 위기'의 도래를 연기시킬 뿐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자본주의 공황론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입니다.
 
우리가 건국 이후의 최고의 위기권으로 지금 빠져들어가고 있는 중이죠. 그럴 때에 민중의 권익을 위해서 같이 나란히 서서 같이 싸울 동지들과 굳이 탁상공론할 여유도 기분도 없습니다. 왜 탁상공론이냐고요? 정병호님 등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을 긍정하시는 것까지 다 좋은데, 혁명을 긍정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혁명의 지도자가 되는 게 아니거든요.
 
마찬가지로 저처럼 "제발 인명을 경시하지 말라"고 외친다고 해서 막상 내전과 같은 상황이 닥칠 경우에는 결국 혁명의 편을 선택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혁명이 아름다워서가 아니고 반동이 더 무서워서 그럴 수도 있고, 마르토브 선생처럼 "노동자들이 잘못된 길로 간다 해도 그들과 같이 가겠다"는 철학일 수도 있고….
 
저는 볼셰비키에 대해서 상당히 다면적인 평가를 합니다. 그 민중성이나 급진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하고, 그 구조적 경직성이나 농민들을 무시하는 도시 제일주의적 버릇에 대한 안좋은 생각도 있고. 그러나 어쨌든 간에 볼셰비키들은 이미 1917년 이전부터 전위적 노동계급의 지도자들이었어요.
 
'다함께'도 과연 그런가요? 과문의 탓일 수도 있지만, 저는 '다함께'가 이끈 파업이나 '다함께'가 지도하는 노동조합을 아직도 본 바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함께'가 공장 노동자로 적위군을 조직하여 청와대를 포위, 공격할 확률이 현실적으로 아주 낮기에 그가 좋은가 나쁜가에 대한 쓸 데 없는 이야기를 당분간 그만둡시다.
 
이 세계의 역사는 계급적 지배, 즉 권력 행사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생산력이라는 토대의 진화에 따라 거기에 상응하는 상부구조상의 관계, 즉 권력 행사의 방식 등도 계속 진화됩니다. 생산성이 가장 높고 일반의 소비 수준이 가장 높은 세계 체제의 핵심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무엇입니까? 바로 계급 권력 행사의 가시적인 '탈폭력화'죠. 예컨대 준핵심부의 한국만 해도 정병호님과 같은 분들을 철저하게 감시하는 관헌들은 지금도 필요만 생기면 법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폭력적 지배로 회귀하지만, 노르웨이 같으면 우리와 같은 공무원노련의 조합원인 경찰들은 지금 월급이 적다 하여 파업할 지경입니다.
 
경찰도 그렇게 2만 명이 될까 말까 하는, 징병제 군대도 그렇고 여기에서 이미 지배계급이 반민중적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국내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못됩니다. 그러면, 노르웨이 지배자들이 노르웨이판 정병호들에게 타도를 당할 것 같아서 밤잠을 설치고 있나요? 아니죠. 정병호님들과 취향이 비슷하신 분들이 여기도 있지만 요즘 감시 대상도 안된다고 합니다(이슬람 혁명가들은 감시대상이고).
 
그러면 그렇게 자신이 있는 이유가 뭐죠? 바로 저들의 지배에 아주 두꺼운 '동의적 기반'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태까지 연간 평균 2~3%씩 실질 소득이 향상돼온 노르웨이 민중들은 이 체제를 교정 대상으로 볼 수 있어도 타도의 대상으로 볼 일은 당분간 없습니다. 그러면, 이 체제의 기반이 '대중적 동의'라면 체제를 바꿀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나 행동방식도 레닌의 시기와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
민중은 왜 자본주의 체제에 동의하나 (레디앙, 2008년 11월 16일 (일) 11:07:26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나의 혁명론②] 복지 만족과 대안 현실 부재…'다함께'식 < '노힘'식
 
제가 8년 전에 노르웨이에 왔을 때부터 가장 애타게 찾고 있었던 것은 바로 '혁명가'들이었는데, 정말 혁명적인, 즉 자본주의 그 자체를 시종일관 부정하여 비(非)자본주의적 사회를 건설하려는 이들을 오로지 인텔리 중에서만 좀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외국의 선진 이론을 번역, 소개하여 그 선진 이론 이외에 인류의 문화를 그냥 도외시하는 그러한 방식의 혁명가들은 아니고 주로 저와 같은 모양으로 불교나 도교도 즐겨보고 권위와 공해가 없는, 즉 '무위계적이고 생태적인 사회'를 목적으로 삼는, 그런 부류의 시인들이나 화가,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자본주의에 대한 '아름다운 개인적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고, 저도 이와 같은 반란에 십분 찬동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죠. 나만의 깨달음, 즉 우리 부처님이 말씀하신 성문과 연각, 벽지불의 깨달음을 일체 중생의 대중적 깨달음으로 어떻게 전환시키느냐, 즉 개인적 반란을 대중적, 세계적 반란으로 어떻게 '대승화'시키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노르웨이의 절대 대다수 근로인민들이 '지금 여기'의 체제를 긍정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 그 중생들을 멸시하면 안돼요.
 
첫째 이유는, 1973년 이후로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이 사실상 제자리걸음해온 미국이나, 1997년 이후에 저임금 노동자의 실질 소득이 사실 계속 소폭으로 감소돼온, '88만원 세대'의 대한민국과 달리, 노르웨이에서는 여태까지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감소된 해는 거의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임금노동자까지도, 연대주의적 임단협 방식 (먼저 전국적으로 노총이 저임금 노동자를 특히 배려하는 임금인상 요구를 해마다 경총에다 하는 방식) 덕택에 소폭으로나마 그 구매력을 그래도 꾸준히 키워나갔습니다.
 
거기에다가 노동계급 사이에서의 체제에 대한 동의적 기반을 만드는 또 한 가지 요소는, 복지주의보다 더 나은 가시적, 현실적 이상형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980년대 한국 운동권으로서 그나마 무상 의료/교육이 있었던 소련/북한이 이상시될 수 있는 여지도 있었지만, 무상 의료/교육이 다 있는 데다가 민주주의까지도 있는 노르웨이 입장에서는 이미 1950년대에 소련은 아주 모자라는 사회이었죠.
 
문화혁명 와중의 중국에다가 온갖 야무진 '긍정적 오리엔탈리즘적' 상상을 다 덮어씌울 수야 있었지만 아예 거기에서 남아 살 자신이 있는 사람, 즉 그걸 현실적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몇 명이나 있었나요?
 
이 '동의적 기반'에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이들이 균열을 일으키자면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실효적일까요? 이 동의적 기반의 조직적 실체는, 85만 명의 노동대중들을 결집시키는 노르웨이의 노총입니다. 사실, 이 나라의 영향력 제일의 조직이죠. 노총이야말로 노동계급의 경제적, 사회적 요구를 표명하여 그 요구의 관철을 위해 자산계급을 압박하는, 즉, 궁극적 차원에서 우리 요구의 조절과 평화적 실현을 통해 우리 계급과 자산 계급의 일시적인 '평화 공존'을 가능케 하는 복지주의의 '기둥'입니다.
 
일선에서 이 과정을 담당하는 이들은 약 13만 명에 달하는 각급 노조의 간부들, 즉 단위 직장에서의 조합장들과 상위 조합의 지회장들, 지회 임원진, 그리고 노련들의 대표자 등등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우리 계급의 의향을 구체화시키고 정책화시키는 핵심적 계층이죠. 그러면 우리 계급이 급진화되자면, 계급 조직의 핵심인 그들부터 급진화돼야 할 것이죠.
 
노르웨이 같은 사회에서 급진적 분자, 혁명가가 할 일은 무엇보다 노동조합에서의 사업입니다. 조합으로 움직이는 나라는, 조합이 왼쪽으록 가면 역시 왼쪽으로 가게 돼 있죠. 그러니까 정말 볼셰비키적인 길로 가자면 특정 이념을 중심으로 해서 따로 '이념적 조직'을 만드는 것보다는 '노힘'처럼 조직화된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해서 급진화 사업을 전개하는 것이 더 논리적이지 않을까요?
 
저는 조직 사업의 국외자인 만큼 뭐라고 충고할 입장이 안되지만, 적어도 여기 노르웨이에서 '노조는 힘'이라는 등식을 체험적으로 익혔습니다. 그리고 혁명이란 결국 '이념'이라기보다는 일차적으로 한 계급의 조직화된 '힘'의 표출이 아닌가요? 
 
---------------------------------
혁명의 필수 조건 한 가지 (레디앙, 2008년 12월 05일 (금) 12:39:21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나의 혁명론③] 국가폭압 기구의 내파 또는 돌연적 약화
 
많게는 총인구의 7~8%가 배고파 저승으로 떠난 이 무서운 사회에서는 혁명은 고사하고 대형 소요 사태라도 일어났는가요? 답을 다들 아시니 굳이 말을 안해도 됩니다. 그리고 그 이유 중의 하나를 밑에다 제시해보겠어요.
 
'백성이 힘들어서 혁명이 일어난다'는 등식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에 전혀 성립되지 않아요. 백성이 힘들면 발버둥쳐서 살기도 하고, 아주 안돼서 배고파 죽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혁명이 곧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한 가지 필수 조건이 있어요. 다름이 아니라 '국가 폭압 기구의 내파/돌연적 약화'입니다.
 
1917년의 러시아나 1918년의 독일처럼 무의미한 살육에 지칠 대로 지친 군인들이 총부리를 진짜 적, 즉 자기 장교 쪽으로 돌리든지, 1945년의 조선처럼 식민지 국가 그 자체가 깨져버리든지, 1870~71년의 프랑스처럼 독일한테 아주 심하게 얻어맞아서 내부 폭발의 조건이 마련되든지 어쨌든 '권력의 공백'이 필요합니다. 그 틈새가 생겨버리면 그걸 '혁명적 권력'으로 채우면 됩니다. 즉 '이중 권력 상태'의 전제 조건이 생기는 것이죠. 그런데 지배자들이 그걸 모르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대량 아사 상태로 진입한 북한에서 당이 아닌 군을 우선시하는 선군 정치가 펼쳐졌습니다.
 
한국이 아직도 다소 후진적 정치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지배자들의 폭압 기구에 대한 의존이 거의 압도적으로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폭압 기구에서 파열음이 나면 윗쪽에서 아무래도 머리가 아주 아플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의 발생 확률이 아직도 매우 낮아요.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고 굽신거리기만 잘하면 만사형통하여 입신출세라는 걸 유치원때부터 잘 가르치고 초등학생부터 점수 경쟁을 시켜버리면 교과서에서도 안나오고 선배들도 이야기 안한 일을 나중에도 잘 안하게 돼 있습니다.
 
한국은 지배의 방식이 아직도 폭압에 매우 의존하는 만큼 폭압 기구의 내파와 이에 따르는 아주 재미있는 일들의 이론적 가능성이라도 있지요.(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서구는 그것도 거의 없으리라고 봅니다. 폭압 지배가 아니니까요.
 
노조 관료를 욕하기 전에, 노조 관료들이 따낸 20% 임금 인상이라는 체제와의 타협을 받아들이고 공장에 복귀한 그 당시 프랑스 대형 공업 노동자들의 의식 세계를 생각해보시죠. 위험하게만 보이는 '자율에의 모험'보다 관리인에게 복종을 하는 대가로 '편안한 여가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을 그들도 결국 선택한 것이 아닌가요?
 
선진 사회에서 근로대중들이 그들의 계급적 이익에 훨씬 민감해지는 것은 맞아요. 임단협 때에 1~2% 임금 인상률 차이로 의견을 좁히지 못하면 몇 주간 파업할 수도 있고 그렇죠. 그러나 과연 그들이 임금 인상 이상의 진전에 대한 열망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는가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한번 실사구시적으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
촛불은 본격적 투쟁의 전주곡일 뿐 (레디앙, 2008년 12월 11일 (목) 09:40:51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나의 혁명론④] 준주변부의 반란…"문제는 좌파의 능력인데"
 
신 세계공황이 가장 먼저 반체제적 운동의 커다란 파도를 일으킬 나라들이 바로 소위 '준(準)주변부' - 준핵심부 그룹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그룹의 공동적 특징을 이야기하자면 대체로는
1. 1인당 국민 소득은 만불에서 3만불 정도 되는, 중간 소득의 사회들이고
2. 산업노동자 계급이 이미 잘 형성돼 있고
3. 세계 시장의 역할 분담에서 주로 중간 정도의 부가가치의, 자본/에너지 집약적 몇 개의 특정 품목으로 그 독특한 틈새를 갖고 있고
4. 매우 보수적인 제도적 민주주의부터 사회적 다양성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소프트 권위주의" 체제를 갖고 있는 사회들입니다.
 
정치-사회적 형태도 '권위주의의 잔재가 강한 민주주의'(그리스)에서 '극도로 보수적, 경찰 국가의 특징을 갖는 제도적 민주주의'(한국) 내지 '사회적 제세력의 운신을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용인하는 소프트 독재'(러시아)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공통점이라면 완비된 복지 국가(북구/서구)와 노골적 독재 사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반체제적 운동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불균형 복합 발전' 원칙의 자본주의 후기적 변용이라고 봅니다. 일면에서 종합적 민도(일반교육 보급 수준, 언론 구독, 사회적 토론 참여 등)가 높고 고등교육 수준은 거의 서구와 가까울 정도인데(사회 교육적 인프라의 고등화된 발전), 또 일면으로는 고급화된 인력을 받아들일 만한 생산 구조가 아직도 미비돼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금년의 촛불집회들이 그 본격적 싸움의 전주곡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본격적 시합은, 아마도 부동산 가격들이 폭락하고 경제가 전반적으로 역성장하기 시작하고 나서 일어날 듯합니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한나라당을 찍으면서 사는 나라에서는, 아주 비상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혁명', 즉 사회-경제-정치적 형태의 완전한 변모는 발발될 가능성이 매우 낮죠. 그런데 대공황이 몰아치면서 대규모의 - 지난 번 촛불잡회 이상의 - 변혁 운동은 분명히 일어날 듯합니다.
 
문제는, 과연 지금처럼 분열돼 있고 매체력과 계획력, 구체적 대안 제시의 능력에서 많이 부족한 좌파 정당들이 그 변혁 투쟁을 이끌 만한 역량이 될는지, 아니면 자유주의적 '개혁 사기꾼' 패거리들과 손을 잡거나 그들에게 아예 주도권을 넘겨줄는지, 이게 문제입니다. 
  
---------------------------------------------------
유럽 2009년, '반란의 해' (레디앙, 2009년 01월 23일 (금) 09:30:55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나의 혁명론⑤] 한국은?…촛불 횃불되고 피는 피를 부를 것 
 
요즘 정부가 '떼법'을 억수로 욕하지만, 사실 민주성이 거의 없는 형식뿐인 우리 '민주주의' 하에서는 대규모 집단 행동 이외에는 지배자들에게 그 어떤 뜻 있는 양보도 따낼 방도는 별로 없습니다. 이 '떼법'이란 사실 위기 시대 민중들의 생존법일 뿐입니다.
 
아이슬랜드도 이제 사람들이 다 짐을 싸가지고 떠나는 '북구판 동유럽'이 됐지만 '원조 동유럽', 즉 구소련, 구 동유럽 국가들은 1929년 이후의 최악의 위기로 '반란' 상태입니다. 약 1주일 전에 - 제가 소련 시절에 자주 여행다녔던 - 라트비아 공화국의 수도 리가에서 노조 등 대중 개혁주의 조직들이 주도하는 격렬 시위로 비상상태가 돼버렸어요. 스웨덴, 독일의 투자와 차관으로 이루어진 여태까지의 '고성장'이 바닥을 드러내고 대중들의 소비력이 급격히 떨어지니 서구형 소비자가 되려다가 갑자기 다시 빈민이 된 사람들이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경제가 쇠락해가고 생존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민생고를 해결하기는커녕 '강경 진압'과 살인적 망동으로 대응할 경우 민중의 행동은 대개 '비폭력' 수준에 잘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은 고금동서의 통례입니다. 2009년판 촛불 사태가 횃불 사태, 또는 투석전 사태로 발전될 경우에는 민중을 제발 탓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준주변부가 이제 들고 일어나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혁명'이 도래할까요? 글쎄, 지금까지 제가 유심히 지켜보는 아이슬랜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지에서는 대중의 행동들을 좌파적/급진적 사회주의자 - 노르웨이의 사좌당이나 독일의 좌파당 격의 정치조직들과 노조들이 주도해온 것이고, 그들이 선언한 목적은 제가 몇 달 전에 이야기한 '급진적 개혁'과 거의 동질적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윤 추구가 아닌 복지 지향적 국가 주도의 경제 (여기에서 은행의 국유화가 중심적임), '자유무역'의 중지와 민중의 요구에 맞추어진 통제된 무역만의 허용, 외국 투자를 위시한 일체 투자에 대한 철저한 통제 등은 핵심적 아젠다입니다. 케인스주의보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 것은, 예컨대 은행을 비롯한 대규모 기업체들의 국유화에 대한 요구일 것입니다. 어차피 경제가 폐허화되는 상황에서는 국유화는 유일한 생존 방안일 수도 있구요.
 
요컨대 볼셰비키들의 일당 독재/비밀경찰의 횡포만 빼고 개인 인권 보호 위주의 성숙된 민주주의로 대체시킨다면 1921~1929년 사이의 소련의 국가 자본주의적 혼합경제시스템과 같은 모델은 유럽 준주변부의 나라들에게 - 물론 시대적 변화에 따라 알맞게 손질한 뒤에는 - 어느 정도 맞을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나 그 목표 달성을 위해 가열찬 싸움을 계속 해야 할 것입니다.
  
--------------------------------
문제는 다시 '국가'다 (레디앙, 2009년 02월 16일 (월) 08:42:29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수출버블 붕괴 시대, 국가 역할 커져…"나는 국가 중시 구좌파"
 
우리 좌파들에게 한 가지 별로 안좋은 버릇이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가끔가다 지배자들을(본의 아니게일 수도 있지만) 좀 지나치게 악마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컨대 MB에 대한 '왼쪽'으로부터의 비판을 보면, 꼭 환경을 일부러 망치고 노동자들을 일부러 죽이고 온갖 악을 골라 행하는 '원흉'의 모습은 나타납니다. 말 그대로 '흉악하기 짝이 없는', 그런 인물로 보이는 것이지요.
 
물론 그의 도덕적인 모습을 보면 과연 그와 같은 말을 해오고 그와 같은 일을 해온 사람이 공공의 영역에서 정치를 해도 되는가, 라는 의문은 강하게 제기됩니다. 지난 번의 '마사지 걸' 발언만 갖고 이야기해도 말씀이지요. 여성을 이 정도로 비하하는 말을 노르웨이 정치인이 했다면 이미 공공 영역에서 사라진 지 오래 됐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MB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차원에서는 한국 지배 계급의 전체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부동산 사재기, 술을 먹으면서 '경험담'을 과시하기, 회사가 망해도 부자로 계속 잘 살기(이건 한국 자본가의 전형적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고)  이러한 의미에서는 지배계급의 '합의' 하에서 집권한 대통령은 이 지배계급을 명실상부하게 '대표'하는 것입니다. 
 
MB뿐만 아니고 한국 지배계급의 대다수는 (주)대한민국이 그렇게 해서 여전히 주가를 올릴 줄 아나 봅니다. 사실, 이들의 반노동, 반환경 지향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이와 같은 '성장 경로'에 대한 반성 없는 의존성, '수출/토건 경제'의 미래성에 대한 맹신이야말로 가장 무섭습니다.
 
그들이 '악인'이라서 문제가 아닙니다. 자본증식을 위해 매진하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사를 보는 이들 중에서는 '선인'은 별로 없어요. 그들에게 - 소련이 몰락했을 때의 이북의 김씨 부자와 마찬가지로 - 미래에 대한 예측과 비전이 없다는 게 진짜 문제입니다.  
 
무한한 수출 팽창에 의한 성장의 시대는 이제는 완전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1964년 이후의 한국 경제 발전 모델(수출 주도 + 토건 경제)을 완전히 교체해야 하는 시점이 왔는데, 그걸 '수출+토건'이 몸에 밴 지배자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 답답한 노릇이지요. 그런데 앞으로 우리 발전의 가능성들을 보면 1964~2008년 시대와 한 가지 중대한 공통점은 있어요. 그 때만큼이나 그 이상 - 아마도 차라리 그 이상 - 으로 국가 주도적 발전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시 철권 통치 시대로 가도 국가고, (주)대한민국을 모든 종업원들이 똑같이 소액 주주로 돼 있는 '우리 모두의 사회적 기업', 즉 복지 사회로 재디자인해도 국가의 역할은 주도적일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는 저는 '다중'을 중시하는 자율주의적 분위기의 '신흥 좌파'들에게도 많은 걸 배우고 있지만, '국가 권력의 평화적 탈환'을 꿈꾸는 '구식 좌파'로 남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다가오고 있는 경제 대란을 구할 주체는 은행을 사회화시키거나 매우 무거운 부유세를 부과할 만한 행정력을 가진 '국가'밖에 어차피 없을 것 같아서에요. 그리고 좌파가 '국가 탈환'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에는 우리의 미래는 거의 뻔합니다. 그 미래에 비해 지금의 MB시절은 거의 '왕성한 민주주의 정치 시대'로 보일 것입니다.
 

  

2009/02/17 17:03
박노자, 다함께, 장석준을 엮어내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이재영의 맵시있는 솜씨가 엿보인다. 여기에 사노련이나 노정협 등의 혁명론까지 포함해서 비교했으면 더욱 논지가 뚜렷하지 않았을까. 사민주의자들이야 이미 혁명을 포기한 사람들이니 제껴두고... 
이재영의 의견도 귀담아둘만하다.
 
다시 혁명을 꿈꿀 수 있을까? (레디앙, 2009년 02월 13일 (금) 12:37:07 이재영 기획위원)
[평화혁명의 모색 ①] 박노자, 다함께, 장석준의 경우 
 
폭력혁명과 급진개혁을 넘어 (레디앙, 2009년 02월 14일 (토) 00:50:02 이재영 기획위원)
[평화혁명의 모색 ②] 맑스주의 혁명론의 문제점 

 

---------------------------------------
2009/03/11 22:34

'나의 혁명론'이라는 이름으로 박노자의 글이 레디앙에 올라오지 않지만, 그게 최근에 쓴 글은 대부분 넓게 보아서 혁명론과 관련된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2월 말 이후의 글들을 발췌해서 담아왔다.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준)(전진)의 홈페이지에 가본 이들은 알겠지만, 박노자의 글이 장석준의 글과 함께 칼럼란에 올라온다. 박노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전진이 지향하는 바와 유사하다고 보아, 박노자에게 요청하여 레디앙의 글을 함께 옮겨놓고 있는 것이다. 아마 올 여름 쯤에는 전진 회원들과의 교류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박노자의 글은 과거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을 때 느꼈던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 나아가 유럽 선진사회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날카로운 통찰력을 준다. 그의 글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꽤 된다. 생각할 꺼리도 있고... 특히 서유럽 사민주의에 대한 착각과 환상을 깨는데 유용하다. 물론 대한민국이 그 정도의 사회만 되더라도 훌륭한 진전이라 하겠지만, 거기에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이 있었음도 잊어서는 안된다.
 

 

------------------------------------------------
그람시가 뭔감유? 카우츠키는 또 누구? (레디앙, 2009년 02월 20일 (금) 10:40:28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민주주의 초선진의 노르웨이, 맑스주의 '개무시'도 초선진
 
한 학생이 '중국 지식인들과 티베트 문제 해결의 가능성들'에 대한 논문을 쓰려는데 그 초점은 중국의 진보적 지식인(왕역웅, 왕휘 등)의 티베트관에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론적 검토를 하는데 있어서) 문제는, 그 학생이 그람시나 만하임이 누구인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옥중노트』를 아주 길게 소개했는데, 그래도 '전통적 지식인'과 '유기적 지식인'의 차이는, 그 학생에게 거의 납득이 되지 않았던 모양에요.
 
난생 처음 들어본 이야기이고 매체 등에서 전혀 쓰이지 않는 개념이니 고등 수학을 배우듯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 학생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그람시가 싫어서 안 배운 것도 아니고 노르웨이에서 석사까지 다 밟아온 젊은 '지식인 후보자'가 그람시 이름을 들어볼 확률이 대단히 낮아서 문제입니다. 즉, 학생들에게 전달되어지는 '통상적 지식 체계'의 구조적 문제지요. 노르웨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전형'에 가까운 '초선진'사회지만,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이야기를 사회적으로 '묻어두는' 데에도 '초선진' 급입니다.
 
마르크스에 대해서는 '독일 출신의 급진주의자' 정도 아는 게 보편적이지만, 마르크스를 직접 읽어본 노르웨이 학생 역시 한 번도 발견한 적은 없습니다. 노르웨이 학생들한테는 150년 이상이 된 유럽의 마르크스주의 전통이란 대개 백과사전에서의 아주 간단한 언급 수준으로만 인식됩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위대한 전통이 학생들에게 '개 무시'를 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초,중, 고교 수업 때는 잘 언급이 안되는 게 큰 원인이겠지요. 노르웨이 노동당 역사야 이야기되어지지만, 그 노동당 초기에 마르크스를 읽은 사람이 주도했다는 부분은 교묘하게 빠지네요.
 
그 다음에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이나 그 이론가들이 거의 안다루어지고 공산운동사는 대체로 '비극의 역사'로 이야기되어집니다. 러시아 사회주의자들 중에서는 폭력혁명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도, 폭력혁명을 지지해도 스탈린을 싫어했던 사람들도 많았다는 걸 사람들에게 설명해봐야 이해해주는 이들이 드뭅니다.
 
그리고 젊은이로서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약 30%의 고교 이전 학생들이 왕따 현상의 희생자들입니다) 일단 '쿨'해보여야 하는데, 카우트스키나 베른스타인의 학술투 이야기들은 별로 '쿨'하지 않아요. 팔레스타인 지지 테모를 하거나 촘스키를 읽는 게 '쿨'하지만 이론서를 '쿨'하게 읽을 고급 독자들을 노르웨이 학교가 키우지 않아요.
 
사회적 갈등들이 잘 봉합되고 만족감이 만연한 곳에서는 우민화되는 게, '땡전뉴스' 시절의 대한민국보다 더 쉽습니다. 훨씬 더 쉽지요. 개인과 사회 사이의 현저한 갈등이 없으면 개인 발전을 촉진시키는 촉매제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향유'지요. 1년에 3~4번이나 남유럽에 가서 좋은 피자와 좋은 섹스를 즐기고, 정기적으로 운동을 잘하고, 아이와 웃으면서 같이 자주 놀고, 그리고 물건을 고르는 재미를 천천히 즐기고…. 이게 자본주의적 지옥의 '천당적 부분'이겠지요. 하여간 '맛쓴 지옥'보다 이리 '달콤한' 지옥은 훨씬 무섭습니다.
 
-------------------------------------
"새로운 마르크스, 무슬림서 출현" (레디앙, 2009년 02월 23일 (월) 08:56:54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이스라엘, 극우파쇼 국가로…"19세기적 유대인은 죽었다"
 
원래 의미의 유럽 유대인이란 '영원한 타자'지요. 유대인을 명실상부한 '국민'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는 유럽에서 제2차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소련 이외에 없었어요. 그게 현실적 생활을 하는 데에 많은 불편과 위험을 의미했지만 동시에 일부 유대인 지식인들의 '비판 의식'을 극대화시키는 데에 아주 공헌했어요. 싫든 좋든 '주류' 사회와 남남 관계이다 보니 사회를 대상화시켜 냉정하게 읽는 것은 훨씬 더 쉬웠습니다. 그러니 마르크스류의 세계주의적 급진주의자들은 물론, 한나 아렌트와 같은 '악의 평범성', 즉 '우리 안의 파시즘'을 잘 파헤치는 이들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쉽게 성장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세상을 지옥시하고 사회 속에서의 전체주의적 면모들을 예리하게 파헤치는-카프카류의 유대계 지식인은 1940~50년대부터 조금씩 멸종하기 시작했어요. 한편으로는 1950년대 이후로는 구미 지역에서 유대인들은 대개 경제, 사회적으로 중산층에 편입됐습니다.
 
거기에다가 1967년 '6일 전쟁'과 미국-이스라엘 '혈맹' 체결 이후로는 아렌트와 같은 온건 좌파들까지도 거의 광적인 '이스라엘 지지'로 몰려버리고 말았어요. 말하자면 '조국이 없었던' 이들은 이제사 '조국'을 찾은 것이지요. 그런데 '조국'이 있다면 '비판 의식'에 '안녕'하고 스스로도 평범해지고 악해져야 하는 법... '조국'을 위해서 저질러지는 악이란 늘 '선'으로 선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저항할 줄 아는 좌파적 이들은 대체로 홀로코스트 때에 죽거나, 소련 안에서 스탈린 숙청에 희생되거나, 또 일부는 스탈린주의 체제에 포섭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영원한 타자'로서의 유대인은 점차 사망을 고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유럽 21세기의 '유대인'은 무슬림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그들에게 유럽 사회가 하는 대접은, 19세기말 유대인들이 받았던 대접과 대동소이합니다. 사이드나 그 학파에 이슬람 지역 출신들이 많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지요. 19세기말의 유럽 좌파가 다수의 유대인을 포함했듯이, 아마도 21세기 유럽 급진 좌파는 상당부분 이슬람지역 출신자들에 의해 리더될 듯합니다.
 
----------------------------------------------
나라 망해도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레디앙, 2009년 02월 27일 (금) 09:03:06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나의 혁명론⑥] 더 매혹적이고 잔혹한 자본주의 올 수도
 
요즘 대공황이 계속 심화됨에 따라서 머지 않은 미래에 '혁명'이라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좀 많아지는 모양입니다. 미국의 신문들을 보면 예컨대 정치적으로 미국과의 관계가 매우 소원하고 경제적 연관성이 취약한 러시아에 대해서는 "혁명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를 거의 희망적으로 발언하고, 반면에 미국의 경제를 뒷받침해주고 있는 중국에서의 '대중 폭동'을 거의 경계하다 싶은 논조입니다.
 
대공황 이후 혁명?
소망적 사고라 할까요? 일단 본인이 바라는 대로 세계를 보려는, 아주 인간적이고 고금동서에 늘 있는 취향입니다. 뭐, 보안 기관 출신으로 국가주의적 색깔을 가진 한 러시아 정치학도가 내년이나 내후년에 미국이 "6개 나라로 갈라지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라는 예고(?)까지 했으니 피차간에 별로 차이가 없다고 봐야지요.
 
양쪽에서 마음속에 바라는 바를 현실에다 그대로 투사하려 합니다. 그리고 극좌파들 중에서는 '혁명의 도래'를 희망적으로 이야기하는 이들의 수도 급속히 늘어나는 것 같아요. 글쎄, 마르크스께서 "끝없는 끔찍함보다 차라리 끔찍한 끝이 더 낫다"고 하셨으니 저도 다른 방법으로 해결될 수 없는 모순들이 차라리 폭발이라도 되는 것이 꼭 이 시기에 불가피하다면 이를 역사의 필연으로 알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모순들이 첨예화됐다고 해서 과연 그 '첨예화'가 자동적으로 '내파'로 이어지는가의 여부입니다. 저는 적어도 후기 자본주의의 경우에는 그게 그렇게 단순하게 되어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각종 사회-정치적 요인의 복합적 작용에 따라서 모순들은 사회를 폭발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수많은 특정 개인들을 '폭발'시켜버리는 동시에, 사회는 자본주의의 또 다른 -더 매혹적이고 더 잔혹한- 방식으로 전환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사례로 제가 직접 체험했던 1990년대의 러시아를 들겠어요.
 
더 매혹적이고 잔혹한 자본주의
지금은 세계 대공황 시기라 할 만하지만 1990년대의 러시아는 '대공황' 정도도 아니고 '망국'의 경지이었습니다. 국내총생산의 약 50% 하락, 남성 평균 수명의 59세로의 단축, 약 2백만 명 가까이 되는 길거리 아이의 발생, 그리고 알콜 중독과 마약 등의 횡행...
 
그 때에 러시아를 가본 사람이면 대충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것입니다. 수학자처럼 외국에서 자리 잡기가 비교적 쉬운 직종의 전문가들 중 거의 절반 가까이 망명 격의 '해외 취직'을 하고, 해외 취직이 어려운 인문학도들이 터키나 중국에 가서 보따리 장사하고,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로프스크의 여성 의사나 교사, 장교 부인들이 '벌이' 삼아 대한민국에서 성노동(?)하면서 가끔가다가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고...
 
이 정도면 지금 대한민국의 불황은 아이 장난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면 망국적 알콜 중독자 옐친의 정부는 성난 근로대중의 대오에 의해서 타도된 바 있었습니까? 오호통재라, 그 망국판에 근로대중들이 그다운 총파업을 한 번 해보지도 못한 것은 1990년대 러시아의 현실이었습니다.
 
탄압이 태심해서 그랬던가요? 글쎄, 탄압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정말이지 성난 노동자들의 대오들이 망치 등을 들고 모스크바를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다면 아마도 군대 병졸과 중, 하급 장교들의 상당부분은 그들과 합류했을 것입니다.
 
노동계급은 물론이고, 군에서도 옐친에 대한 생각이란 '빨리 쳐죽여야 할 망국적' 대상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빨간 깃발을 들고 모스크바를 향해 행진하는 근로인민대중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도도 없었던 것이지요.
 
노동자들은 깃발을 들지 않았다
물론 그 이유들은 아주 복합적입니다. 하나는, 공업경제가 죽어가는 판에 노동자, 특히 숙련공들의 탈(脫)계급화와 분산화, 원자화 등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보기를 들면 군수 공장이 망하자 처자를 살리려는 일념으로 동대문 시장에 왕래하여 한국산 가죽 점퍼 보따리를 날라와 파는 업으로 전환한 선반공은 더 이상 '노동계급 혁명의 예비군'은 아니지요. 비공식 부문의 일개 종사자지요. 그렇게 해서 러시아 노동계급이 줄어들기도 하고 분자화되기도 했어요.
 
공장에서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으니 저녁에 시장터에서 과일장사나 하는 노동자는 그 당시 러시아 노동계급의 대표자이었지요. 한국산 가죽 점퍼를 나르고 과일장사한다고 해서 진정한 의미의 '부르주아'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물론 극소수는 성공하여 자본가가 되기도 했지요) 비공식 부문에 발을 담근 이상 그 가산의 정도도 천차만별이 되고 의식의 변화도 나타납니다.
 
'경기'에 좌우되는 부문인지라 '경기 하락'을 가져다주는 대중적 저항 등을 또 별로 안좋게 보게 되지요. 그렇게 해서 '계급 연대'는 불가능하게 됩니다. 글쎄, 대한민국에서 지금 자영업이 점차 망해가는 추세지만 '한국적 사회구조'에서는 늘 어디론가 몸을 둘 수가 있지요.
 
부모에게 얹어 살면서 아르바이트하든지(일본형 '프리타'입니다), 각종 영업판매직을 전전하면서 생계를 잇든지 주변의 도움으로 끝이 안보이는 '취업 준비'에 몰두하든지... 구체적인 형태야 러시아와 다르지만 불황이 심회될 수록 '모래알 사회' 현상도 -일본의 전례대로- 심화되지 않을까, 일단 우려를 떨쳐낼 수 없네요.
 
사회주의를 경멸했던 러시아 젊은이들
1990년대 러시아에서는 30년 이상의 기성인들은 그나마 '연대 정신이 강했던 사회주의 시절'을 그리워하기라도 했지만(저도 많은 면에서 지금도 스탈린주의 시절이 그립지요...) 젊은이들은 대개 사회주의의 '사'자만 들어도 벌써 쌍욕을 내뱉곤 했어요.
 
'그때'는 규율사회이었지만 1990년대의 러시아에서는 돈으로 사는 섹스든 마약이든 길거리에서 맥주병을 들고 큰 소리로 쌍욕을 내뱉는 행위든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욕망의 해방'이라 할까요? 물론 별로 수준이 높은 욕망들은 아니었지만, 약간의 돈으로 여자를 사고 약간의 싸움 실력으로 조폭의 멤버가 돼 동네 사람들을 겁에 떨게 만들어도 된다는 데에 대해 대만족했던 이들을 많이 봤어요. 물론 이 정도의 '해방'(?)은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진 지 오래됐지만 아마도 앞으로도 깊어져가는 불황에 터지는 수많은 서민들은 바로 마약, 술, 범죄, 상업화된 섹스의 영역으로 흡수될 듯합니다.
 
중남미를 보시면 이명박 류의 정부(저런 류의 사람들을 저는 '정부'로 부르고 싶지도 않아요. 정부는 마땅히 국민에 대한 책임감이라도 있어야 정부지요)가 이끄는 대한민국이 무엇이 될는지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꼭 혁명이 일어나는 법은 없지요.
 
하여간 모든 시나리오에 다 대비하면서도 최악을 막아보는 것은 최선책이겠지요. 우리 상황에서는 최악이란 바로 중남미형 영속적 불안의 격차 사회로의 전락인데, 그걸 막는 방책으로서는 제가 그 전에 이야기한 '급진적 개혁' 이외에는 저로서 도대체 보이지가 않습니다....
   
------------------------------------
신앙, 혁명, 소비 그리고 자본주의 (레디앙, 2009년 03월 02일 (월) 08:41:30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소비하지 않고 제대로 믿으면 모두 자본주의 이단아될 것" 
  
신이 없는 종교인 불교, 그것도 절간에 잘 안 가고 승단의 권위를 잘 인정하지 않는 저 같은 무정부주의적 불자까지도 이처럼 '과학적 유물론'의 입장에서는 '이상한 사람' 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신을 인정하는 기독교인이나 이슬람 신도를 과연 포용하기가 쉽겠습니까? 불자든 이슬람 신도든 혁명의 신도든 그 신앙이 소비품이 아닌 '인생의 좌표'인 이상 이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결국 똑같은 '이단자'들입니다.
 
후기 자본주의의 유일신이란 소비 하나뿐인데, 그 유일신을 부정하는 그 어떤 신앙을 가져도 이 사회에서 주변으로 밀려나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오늘날 혁명의 가능성을 높이 치지 않아도, 그리고 레닌이 한 때에 쓰던 방법들에 대해서 카우츠키의 비판을 공유한다 해도 차라리 레닌의 신도들을 동류로 여기기가 쉽습니다. 저는 그들의 신앙 신조를 십분 공유하지 못해도 적어도 그들의 생활적 태도를 존경이라도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소비의 신도들 같으면 '존경'이라는 말을 쓸 수도 없는 것입니다. 
 
후기 자본주의의 소비 신앙을 보시면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1. 일회성 원칙
자본주의 전기는 '근검 절약, 헌 물건을 오래 쓰기' 위주이었는데, 자본주의 후기는 '새 물건으로 빨리빨리 갈아치우기'를 선호합니다. 그렇게 해야 계속 떨어져가는 이윤 마진을 높일 수 있지요. 
 
2. 이국성 원칙
새롭고 참신한, 보다 자극적인 소비재를 찾을 때에 이국적으로 보이는 것들은 최선이지요. 그걸 '개방성'이나 '세계성'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그것보다는 무제한적으로 새롭게 소비할 것을 찾으러 다니는 잡식성 소비자의 근성입니다. 
 
3. 부단성 원칙
소비는 끝이 없어야 돼요. 잘 때는 안하겠지만 그 기간만 빼고 나머지 시간은 노동 아니면 소비일 것입니다. 소비하거나 소비를 생각하는 시간이 평균 노르웨이인의 낮시간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 걸요. 참, 노르웨이인이야 그나마 스키를 타서 숲을 거닐 때나마 소비를 안하지만 대한민국의 김대리는 그 대신에 소주와 삼겹살을 소비하면서 자신의 관계자본(인적 망)을 열심히 증식할 것입니다... 
 
<법구경>에 빠지든 <자본론>에 빠지든 내가 소유할 수 없는, 소유할 필요도 없는 것에 집착한다는 것 자체는 이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반역입니다. 평생 동안 맛이 있고 멋지고 유쾌한 것들만 즐기려는 곳에서는 나는 나의 인생을 소유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나'와 '너'는 없다는 생각은 최대의 이단이에요. 그래서 제가 예컨대 폭력을 거부한다 해도 아프간에서 지금 제국주의 군대들을 상대로 자살 공격을 하시는 분들을 깊이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분들의 방법론에 문제가 커도 '나'의 목숨을 신의 뜻에 맡긴다는 생각만큼은 진정한 종교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소위 '종교인'들을 보면 놀라운 것은 '종교'와 자본주의가 너무나 궁합이 잘 맞는 것이지요. "부자는 축복 받은 사람"이라고 교회에서 말하고 사찰에서 대입기도를 하는 것은 종교 행위가 아니고 종교의 부정입니다. 
 
-------------------------------------
국가와 자본의 작품 '집단기억' (레디앙, 2009년 03월 10일 (화) 09:49:27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레닌 모르는 러시아 학생들…"세상에서 가장 유용한 거짓말"
 
요즘 읽은 연구 논문 중의 하나가 상당히 충격적이었어요. '벨고로드'라는 러시아 중부 도시의 중학생 (11-13세)을 상대로 해서 "소련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느냐"고 작문을 하게 하여 그 결과를 분석한 것인데 그 결과를 보면 기가 찹니다.
 
학교에서 역사 교육이 아주 소략하고 텔레비전이 거의 상업적 오락 위주다 보니 일단 '기억' 자체가 대단히 모호하고 불확실합니다. 다수의 응답자들이 소련의 구성 공화국의 수 (15개)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며, '레닌'이 누구이었는지, 언제 살았는지, 뭘 했는지 잘 알지는 못합니다.
 
'스탈린과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위대한 승리'는 국가적 선전 덕분인지 그나마 기억에 남아 있지만 '레닌과 혁명'에 대한 기억들은 철저하게 불식되고 말았습니다. 
 
이걸 이제 가르치지도 텔레비전에서 보여주지도 않으니까 제정 러시아에서 노동투쟁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1898년에 결성된 러시아 사회민주당이 뭘 하는 단체이었는지, 볼셰비키가 누구이고 멘셰비키가 누구인지 제대로 아는 러시아 중학생은 이미 1%가 될까 말까 합니다. 그냥 기억에서 지워진 셈이지요.
 
물론 학생들이 부모 세대로부터 들은 소련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익히 압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돈을 뜯지 않았던 나라이었다", "소련에서 경찰들의 횡포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고 같이 노동하고 공익을 생각했다"...
 
이 정도면 요즘 러시아 학생들에게 '외국'이나 다름이 없지요. 그러면서도 텔레비전과 학교가 심어준 '공산주의'의 부정적 이미지는 거의 지배적입니다. "교회에 못다니게 했던 악마들의 국가", "범죄를 저지르면 손목을 잘랐던 세상", "하루 이틀이나 줄서야 빵을 살 수 있는 빈곤 국가"... 공산주의적 이상을 철석같이 믿으면서도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제 할머니를 생각하면 쓴 웃음이 나옵니다.
 
오늘날 지배자들이 그들에게 불편한 '과거의 기억'을 성공적으로 '청소'하고, 그들에게 유리한 과거의 상을 구축케 한 셈입니다. 저들이 가장 혐오하는 단어 중의 하나는 '국제주의'인데, 그 단어를 아는 러시아 학생은 이제 없다시피 합니다. 다들 '강대국인 우리 나라에 대한 자긍심'부터 익히는 것이지요. 
 
과거란 우리에게 남의 나라이기에 그 나라를 여행할 때에 부득불 '현지 당국의 안내와 감시'를 받게 돼 있지요. 대다수 일반인들에게 역사 공부의 거의 전부는 학교 수업과 텔레비전, 그리고 신문에서 나오는 이야기인데, 그 통로만 효율적으로 통제하면 다수의 집단 기억을 거의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것입니다.
 
본인이 경험하지 않은 과거에 대한 집단 기억이란 결국 사회적 구출물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부모 세대가 경험한 과거라면 '역사의 조절자'들이 완전히 마음대로 하지는 못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뭘 어떻게 배워도 집에 가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오늘날 러시아에서의 악마화 작업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돈을 뜯지 않았던 시대'를 기억하는 부모 세대가 존재하는 이상 완전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박정희가 아무리 일본과 일본 우익들을 사랑했다 해도 일제 때에 (자신과 달리) 신분 상승이 아닌 차별과 가난을 경험했던 다수가 살아 있었기에 일제시대 관련 학교 수업 내용을 철저하게 '독립운동' 위주로 해야만 했습니다.
 
본인이 독립운동가들을 '합법적 권력에 공연히 덤벼드는 불온분자'로 생각해도 탈식민적 사회의 '자연적' 집단 기억을 아주 무시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에서 일제 시절에 경찰들에게 맞아본 사람들이 소수의 노년층이니 뉴라이트식으로 "민족의 장래를 도모하기 위해 일제 당국과 협력했던 김성수와 방응모 같으신 위대한 건설적 민족주의자들 덕분에 우리가 결국 문명화되고 이만큼 잘 산다"는 이야기를 학교나 방송에서 해도 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용한 거짓말
우리가 그걸 '친일'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여기에서 알맹이는 친일도 친미도 아닌 '친자본주의'입니다. 각종 '불온 분자'가 아닌,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자본을 열심히 증식하는 '건설적인 분'들은 역사의 주인공이 돼야 보수의 천년왕국 건설은 가능해질 것입니다.
 
일본이란 그래도 어디까지나 '외부적 타자'이니 일제시대 때의 한국 자본가들의 열성적인 '당국과의 건설적 협력'은 그나마 문제의식이라도 일으킵니다. 그런데 여론조사마다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으로 박정희를 뽑는 나라에서는 '한강의 기적 시대'에 대한 학교, 방송에서의 찬가는 대중적 저항에 부딪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요즘 학계에서 '문화사로의 전환'이 유행이다 보니 노골적인 '독재 찬양'이 아니고 '텔레비전 보급, 점차적 소비 대중화, 아파트 건설의 붐, 체육 열풍' 등등의 '비정치적인 (중간 계층의) 생활 이야기'가 1970년대에 대한 '새로운 건설적 의식'의 핵심이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똥을 먹고 살 수 없다"는 여공들, '따이한'들의 총탄에 쓰러지는 월남 농민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파업을 벌였던 '노가다' 노동자들, 군대에서 고참의 구타에 죽거나 평생 정신병자, 불구자가 된 병영국가 희생자들은 다 어디론가 역사의 뒤안길로 슬거머니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점차 대다수가 가난해지고 이렇다 할 만한 전망이 보이지 않는 장기적 불안과 침체의 현 시대에, 대한민국이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던 '우리들의 위대한 과거'에 대한 수요가 높은 반면, 서민들이 지금도 용산참사에서처럼 터지고 죽는 상황에서 과거 서민들의 고생을 굳이 환기시킬 필요를 국가는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랑스럽고 건설적인' 과거가 탄생되고, 위대한 토건/수출 국가의 '족보'가 쓰여집니다. (국가와 자본이 쓰는) 역사란 이 세상에서 제일 유용한 거짓말이지요...
 
---------------------------------
한일야구부터 섹스투어까지 (레디앙, 2009년 03월 19일 (목) 09:31:39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나의 혁명론⑦] 맑스의 꿈…현대 노동자들이 누리는 것
 
노동 그 자체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원천이지만, 소외된 자본주의 하의 노동은 인간을 상품으로 만들고 결국 소모시키고 맙니다. 강요받은 노동이 좋을 리가 없고 인간이 상품화되는 걸 스스로 거부해야 한다고 마르크스가 생각했기에 '노동과 자본 사이의 적대적 모순'이 설정된 것이었습니다. 모순이 있는 것이야 십분 동의하지요.
 
그런데 과연 적대적인, 즉 해결이 불가능한 모순인가요? 『경제-철학 초고』에서 마르크스가 "노동자가 많이 생산할수록 덜 소비한다"고 적고 있을 만큼 생산자를 소비자로 보지 않았는데, 21세기 벽두 자본주의의 제1철칙은 바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不二'입니다. 자본주의가 바뀌었다면 그게 바뀐 것이지요.
 
노동자가 5주 휴가 동안 그리스에서의 호텔과 각종의 휴양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는 유럽은 그렇다 치고도, 5주 휴가가 없는 이 '중간적' 준주변부의 대한민국에서마저도 노동자가 '노예 노동'의 8~10시간을 꾹 참고 견디고 나면 소비할 수 있는 것은 소주와 삼겹살 이외에도 많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라 해도 '국민적 기쁨'부터 서비스 노동자의 감정 노동의 결과까지, 다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남성 정규직이면 거기에다가 온갖 '플러스 알파'들이 또 들어가지요. 베트남 섹스 투어와 같은 부분들 말씀입니다.
 
그러나 노동자 밑에도 노동자가 있고, 노동자 위에도 노동자가 있는 오늘날의 완숙한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위에 있는 노동자에게 밑에 있는 노동자의 자기 상품화란 '즐거움' 그 자체가 될 수 있지요. 복합화된 자본주의 사회라는 피라미드에서는, 약간이라도 높은 위치를 점한 노동자는 거의 당장에 그 생활 양식/성향상 '새끼 자본가'로 둔갑되지요. 부동산과 주식 투자 등을 통해서 자본의 세계와의 연계를 모색해도 그 밑에 있는, 보다 가난한 여성/저숙련/외국인/청년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꺼립니다. 분리통치가 지금처럼 완벽해질 수 있다는 걸 마르크스가 예측할 수 있었나요?
 
자본주의의 주기성 - 필수적 공황의 도래, 이윤율저하 원칙 등 때문에 노동자들이 구조적 고통을 받게 돼 있지만, 약간이라도 체제 속에서 안정된 위치를 갖게 되면 그 체제의 아주 보수적일 일부분이 되고 맙니다.
 
감옥이 즐겁고 달콤하기만 하면 인간이라는 동물은 그 감옥의 종신 수인을 자청할 확률은 매우 높지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비자본주의적 대안의 매력을 보여주자면, 이미 죽은 100년 전의 혁명가들의 이야기를 백 번, 만 번 반복하는 것보다는 수유연구실처럼 '자본 없는 즐겁고 발랄한 앎의 공간'이라도 만들어 자본이 없을 때에 앎이란 얼마나 맛이 있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게 더 효율적일 걸요.
 
다른 나라, 다른 시대의 과거 위인 이야기를 하느니,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자본의 사슬을 벗는 위인이 되면 사람들이 일단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꼭 학벌 따고 월급 받고 상사에게 아부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요? 물론 진보정당 등은 임금노예들의 인생을 개선하도록 노력도 해야 하지만, 또 다른 차원에서 자본주의 '이후'를 '가시적으로' 준비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2009/07/27 19:44

 

재분배형 복지국가가 유일한 해결책 (레디앙, 2009년 07월 27일 (월) 06:42:08 박노자)
총파업과 촛불, 노동-중산층 연대 필수 
한국사회 변혁 가능성…경로 분명하나 대중 설득은 '미지수'
 
 
제가 보기에는 이제 곧 시작된 저성장 내지 무성장 시대에는 재분배형 국가로의 전환이란 거의 '유일한 해결'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40년 후에 이 나라 인구의 거의 40%를 이룰 65세 이상 노인에게도 인간다운 노후를 보장할 수 없을 것이고, 또 쏟아져 나오는 대졸, 고졸들에게 행정 인턴과 취업 준비 이상의 미래도 보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결국 '정치'입니다. 보수 - 한나라당이든 그 어떤 새로운 노무현이든 - 가 계속 집권할 경우에는 '한국형 재분배 사회'란 토건 예산과 인턴 채용의 사회일 것이고, 국민의료보험 적용의 범위가 계속 조금씩 넓어져가도 공립 병원 하나 찾을 수 없는, 그런 사회일 것입니다.
 
사회주의/사민주의 세력이 기적적으로 집권할 경우에는 우리는 늦게나마 무상 의료/교육으로의 여정을 시작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고, 망가져 가는 영세 상인들의 자살을 그들에게의 실업 수당, 재교육 수당 지급 보강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지요. 그런데 제게 매우 자명한 이 이야기로 대한민국의 다수 유권자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 것인지, 저도 솔직히 좀 오리무중입니다... 
                                                  * * *
 
1 변혁 – 바람직한 변혁 방향
 
1) 사회 자원 관리권은 관료-재벌 블록으로부터 민주 사회로
현실 인식
'재벌 준(準)독재'로서의 한국. 특권 집단으로서의 재벌(10대 기업의 유효 세율은 약 16%에 불과. 특히 삼성전자/LG전자는 6% 안팎 – 대조적으로는 일반 기업은 약 19%, 참고로 유럽 연합의 평균 기업 세율은 26%). 지난 12년 동안 (1997~78년 위기 이후) 주요 재벌들은 자산 대 부채 비율을 높이는 등 건강해졌으며, 계열사 수를 늘리는 등 '문어발 식 확산'에 계속 힘을 쏟았다.
 
관료 집단은 '4대강 정비 사업' 등 막대한 토건 예산이나 사법 권력 남용 등을 무기로 기업과 지역사회, 시민사회 등에 힘을 행사할 수 있으며, 거시적으로는 재벌 집단의 관리를 받고 있음. 관료에 대한 재벌의 관리 실체의 일면을 노회찬 의원이 공개한 X-파일 등이 전했는데, '재벌-관료 지배 블록' 전체를 견제할 만한 세력은 현재로서 한국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바람직한 변혁 방향
기업 세율 및 재산 세율, 소득 세율을 유럽 복지 국가 수준으로 상향 조절하여 경기부양책을 토건 예산이 아닌 복지 예산을 통해 실행하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포괄적 의미의 ”진보” 세력은 ”재벌-관료 블록”을 제압할 만한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
 
2) 경쟁 사회에서 공공 위주의 사회로
현실 인식
자본주의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사회적 서열 자체는 없어지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이 서열은 사실상 '대입'에서, 이미 10대 후반에 정해지는 것이고 그 뒤로는 거의 바뀌지 않는다. 즉, 한국 사회는 '초기 선발형' 사회에 속하는데, 초기 선발은 세습 신분제보다야 낫다 해도 결정적 선발의 시기가 초기일수록 출발 조건의 영향이 크다는 것은 정설이다. 더군다나 '학력 세탁'(지방대 졸업 등 ’불리한 학력’을 명문대에의 편입 등을 통해 극복하는 일)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매우 경직된 초기 선발형이라고 봐야 한다. 초기 선발일 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교육 비용을 대줄 부모의 경제력인데, 한국의 1% 부자가 57%의 부동산 가치를 독점하는 반면 60%의 직장인들이 고용보험 가입조차 못해 실직 때에 사실상 기본생계 보장조차 불가능하다.
 
불황임에도 상위 10분위(10%의 부유층)의 소득은 지난 1년간 2% 이상 늘어나도 하위 10분위(10%의 최하 빈곤계층)는 4% 이상 줄어든 것은 최근의 대한민국이다 – 사회격차의 수준은 이미 멕시코와 같다. 극단적 격차 사회에서는 경직된 초기선발형 신분상승 경쟁 구조란 사실상 '카스트 제도'(신분세습)로의 퇴행을 의미할 뿐이다. 
 
바람직한 변혁 방향
전체 졸업자 중의 비율에 맞추어서 중소기업 이상의 일체 기업에서 지방대 졸업자 등 차별 피해자의 고용 의무화 및 공무원 시험을 1, 2차로 나누어 1차로 자격이 있는 후보를 선발한 뒤에 2차로 지방대 출신의 비율을 전체 졸업자 중의 비중에 맞추어서 지방대 출신을 할당해 선발하는 제도 등 적극적 역차별 정책을 도입한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사립재단 이월금 관리권을 국가 교육 당국이 갖도록 사립대학 운영 구조를 공공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일체 고등교육기관을 공공화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의료부문 – 인구 1천 명당 활동 의사 수는 한국은 아직도 1.7명 밖에 안돼 프랑스(3.4명) 등 유럽 복지 국가보다 약 2배 낮은 것으로 나타남. 동시 공공의료기관의 비율은 10%도 안돼 OECD 평균의 75%보다 몇 배 적음 – 의 경우 아직도 빈곤층과 중산층 하위계층 등은 공공부문의 무료 의료 서비스를 많이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앞으로 의료 기관의 증설을 공공 위주로 하여 공공부문의 의료 서비스 제공 비율을 적어도 일본 수준(35%) 내지 그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급선무이다. 장기적 목표는 북유럽 복지국가처럼 공공부문 위주(공공부문 비율 85~90%)로 돼 있는 무상 교육과 의료 체제다.
 
3) 위험/폭력 사회에서 자아 실현 사회로
현실 인식
'위험 사회'로서의 한국 사회 시험 스트레스와 성적 스트레스, 취직과 실직 스트레스, 군사주의적 직장 문화, 경제적 불안과 미래 전망 부재 등으로 자살율은 OECD 최고 수준이다. 하루 35명 꼴, 인구 10만 명 당 연간 25명으로 '자살 공화국'이다. 한국 노동 인구의 35%가 자영업자들인데, 그 도산의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 식당 1개 당 인구 80명인데 식당 밀도는 미국보다 약 8배 높다. 즉, 영세 식당 업자 파산이 불가피하다. 최근 할인점 등 대형 소매업 확산으로 영세 소매업자들의 파산은 큰 문제다. 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파산 당한 영세 사업자들은 생계 곤란, 자살 위험에 빠진다. 파산, 자살에다가 '산업 재해' 위험 정도가 매우 높은 '산재공화국'이다. 2008년 재해 피해자는 거의 10만 명, 사망자는 2422명이었다. 재해로 인한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재해 사망율)은 한국이 1.49%로 미국(0.36%)과 영국(0.07%)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로 인한 사망자가 미국보다 4배나 많고 영국보다 사망자가 21배가 많다는 것이다. 이 통계도 산재 보험 적용 대상자만 잡히는 통계이기 때문에, 상당수 중소기업 노동자 및 외국 노동자의 재해 사고(사망 포함)는 여기에 잡히지 않는다. 특히 노동자의 '약자층'은 목숨을 버릴 각오로 노동에 임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폭력 사회'로서의 한국 사회 군의 일부 부대 (특히 의경 등)에서는 여전히 생명 및 정신 건강을 위협할 수준으로 폭력 행위가 횡행하며 학교/가정 체벌의 근절은 여전히 요원한데다 학생 사이에서의 폭력 행위는 꾸준히 증가되고 흉악해진다. 직장에서의 수직적 명령-복종 체계는 비록 물리적 폭력으로 나타나지 않아도 개인에 대한 심적 폭력으로 체감될 확률이 높다. 
 
바람직한 변혁 방향
누진 세율 적용, 부유층 집중 과세(현재 한국 국내총생산 대비 부동산 보유 세금 총액 비율은 0.8% 밖에 되지 않지만 영국만 해도 3.3%임)를 통해 영세 자영업자까지 포함시키는 포괄적인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고, 안전 사고에 대한 기업체 책임 강화, 학교에서의 학급 성적순 발표 금지 등 '경쟁 교육' 근절 등 각자가 '자아 실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안전하고 쾌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2. 변혁을 이끄는 방법
 
한국사의 경험
'온건한' 개혁이라 해도 대체로 '밑으로부터의' 급진적 운동의 압박을 받아야 이루어질 수 있었다.
 
동학 농민 전쟁
전쟁 자체는 패배와 농민에 대한 말살 (관군과 일본군은 약 2만 명 이상을 도살한 것으로 추정됨)로 끝났지만, 불합리한 행정 관행과 유교 사회의 억압적 법률 등을 시정하라는 농민의 요구는 갑오 개혁 과정에서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다. (노비 혁파, 과부 재가 허용, 일반 행정과 세정 분리로의 움직임 등)
 
1919년 3.1 운동
'독립'을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무단 통치를 문화 통치로 바꾸도록 지배자들에게 압력을 가한 것이고, 1920년대의 공산주의/아나키즘 운동부터 야학, 형평사 운동까지 각종 해방적 움직임들의 심성적 기반을 조성했다.
 
1948년 북한 건국 초기의 각종 급진적 개혁(무상 몰수와 무상 분배 식의 토지개혁 등)
이승만 정권으로 하여금 민주당 등 지주계층이 주도하는 정치조직들의 저항을 뚫어 불완전하게나마 토지개혁 등을 단행하게끔 '압력'을 가한 점이 인정된다. 
 
1960년4월의 '학생 혁명'
목적(민주화)은 결국 달성되지 않아도 '밑으로부터'의 불만 표출은 한국 사회 지배 구조의 취약함을 노출시켰으며 지배층으로 하여금 경제 개발에 대한 강력한 압박감을 주었다. 경제 개발이 되지 않을 경우 전체적 '사회의 폭발'이 예상됐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일련의 '평등 지향적' 정책(고교 평준화, 대학 정원 확대, 과외 금지 등)은 결국 사회적인 불평등 확대에 대한 민중적 불만을 무마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 이는 역사 원동력으로서의 '민중의 불만과 힘'의 의미를 설명해준다. 
 
이와 함께 1985년의 구로 동맹 파업 등 군사 독재 정권 말기 노동자 투쟁은 최저 임금제의 최초 법제화(1986년) 등 여러 양보를 따내는 데에 주효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에 민주 노조의 확립과 기초적 복지제도(의료보험의 적용 범위 확대 등)를 착근시켰다. 이는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따낸 권력의 '양보' 내용이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도 2008년 5월 이후 '촛불 집회' 등 집단적 불만 표출들은 '대운하 계획'과 같은 가장 무리한 종류의 토건국가적 프로젝트를 좌절시키는 데에 있어서 주효한 바 있었다. 
 
결론
변혁을 이끌기 위해 앞으로 필요한 총력 투쟁은 1996~97년 총파업과 2008년 촛불집회 투쟁의 '혼합 형태'다. 즉, 파업 투쟁과 중산층의 시위투쟁, 불매 운동 등이 상승효과를 낼 경우에는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돼 정치계의 전반적 '진보화' 등의 가능성을 전망할 수 있다. 결국 복지/공공성 위주 국가로의 전환의 전제조건은 노동계급과 중산계층들의 강력한 '진보연대'와 공동투쟁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7/27 19:44 2009/07/27 19:44

댓글0 Comments (+add yours?)

Leave a Reply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gimche/trackback/903

Newer Entries Older Entries

새벽길

Recent Trackbacks

Calender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