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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이론적 검토(홍주환,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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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을 다시 보니 내용이 또 새롭다. 이와 관련된 글을 읽거나 글을 쓸 때면 왜 이런 글이 막상 머리에서 생각이 안나는지... 항상 관련된 논의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하는데...
 
홍주환. 2003. 이론적 논의: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이론적 검토. 신광영 외. 「공무원노동조합운동: 조직과 사회적 역할」.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생각나는 점 몇 가지 정리.
 
우선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지금의 상황에서 어떠한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남아공 사례보다 동유럽의 노동조합을 다룬 Ost(2002)의 논의가 흥미로울 듯하다. 오스트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이해관계에 복무하기보다는 전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개입에 선차성을 두게 됨으로써 노동자들은 점차 노동조합에 무관심하게 되었고,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자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되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적인 문제보다 현장 내의 분할,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분리에 대해 좀더 고민이 요구된다. 비정규직 문제를 전체 사회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타당하겠지만, 이것과도 조금은 괴리가 있다.
 
‘작업장에서의 조합원들의 직접적인 문제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인 문제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운동의 명암을 좌우할 것이라고 한 점에 동의를 하나, 이는 지나치게 어려운 과제다. 
 
신사회운동과 노동조합주의를 연결시킨 대목은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다지 중요한 논의는 아닌 것 같다. 특히 한국의 현실에서는... 한국에서 신사회운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는지도 의문이고, 지금도 있지는 않다고 본다. 순전히 서구의 논의.
 
노동조합운동이 지역주민의 대중적인 지지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이를 왜 깊게 다루지 않았는지... 사실 공공부문 노조는 전형적으로 각 지역에 조직을 가지고 있고, 지역밀착사업을 하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비단 공무원노조 뿐만 아니라, 전교조, 사회보험, 지방의료원 등이 그러하다. 여기에서 공공성의 계기를 찾아내면 좋았을 텐데...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은 처음부터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를 내포하고 있으며, 공공성의 정치는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이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의 합리적 핵심을 체현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주환 선배는 얘기한다. 우리끼리야 이를 수긍하지만, 대체로 이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실증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지점이다. 이를 보편적인 인식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진전이라 할 것이다. 
 
아래의 지적은 지금까지 한 동안 간과하고 있었다. 공공성, 공공부문, 공공영역을 분석할 때 명심해야 하는 사항이다. 이걸 다시 생각하게 된 것만 해도 이 글을 읽은 의미가 있다고 해도 좋다.
현실적으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변화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경찰, 소방, 교육, 위생, 운동 등은 거의 대부분 사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이었으나 이제는 대부분 공적 기구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 변화는 비교적 최근의 일인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본래적으로 공적인 서비스” 또는 “공중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제공되어야 하는 서비스”라는 의미의 공공서비스 개념이 존재하는 것과 그것이 누구에 의해서 생산 및 공급되어야 하는가가 별개의 문제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Brill, 1989, 24). 
공공부문의 사회적 역할 또는 범위, 그리고 구조 변화는 시장의 실패, 국가의 실패, 시장의 복원/국가의 축소라는 일련의 과정, 즉 서구에서의 복지국가의 형성 및 쇠퇴, 신자유주의적인 정치경제의 전개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20세기 주요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구조변화는 한편으로는 국가의 복지극대화 전략과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경쟁의 효율성 추구 전략이라는 두개의 커다란 축 사이의 주도권 싸움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Naschold, 1996). 
 
아직까지는 공화주의적 관점보다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이 현실을 설명,이해하고 비판하는 데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 이것은 전공이 행정학이라는 것에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 공화주의적 관점에 친화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공적 영역의 성격 규명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국가를 공적인 활동의 일부로 봐서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공적 영역을 계급투쟁의 장으로 보고, 여기에 어떻게 개입하고 바꿀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정치적 상황성”(political contingency) 개념에도 주목하자. 공공부문 및 공공서비스 노사관계가 정치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은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논의에서는 이 사실이 은폐된다. 사실 공기업 사유화는 그 무엇보다 정치적인 과정이 아닌가. 이에 대해서는 배병인 박사(2007)가 잘 논의하고 있다.
정치적 상황성 개념은 그것이 공기업의 전략 구성을 민간부문의 기업들에서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불확실하게 만들지만, 결국 그것을 통해서 공기업의 행위 논리가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Batstone, et al., 1984). 그리고 또한 그것은 공공부문 및 공공서비스 노사관계는 정치적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시 학교에서 얼굴을 볼 수 있는 주환 선배는 이 주제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홍주환. 2003. 이론적 논의: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이론적 검토. 신광영 외. 「공무원노동조합운동: 조직과 사회적 역할」.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1. 들어가며
공무원의 노동조합 결성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반(反)노동조합 세력의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도 있었던 정부 또는 공공서비스 부문에서도 노동조합이 결성됨으로서 자주적(민주적) 결사의 원리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 있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자주적 결사체로서의 공무원 노동조합이 사회적 연대의 원리를 어느 정도 체현하는가에 있다. 사회적 연대를 부정하는 자주적 결사체는 사회의 진보적 발전에 역기능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을 이론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공무원 노동조합들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을 따져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노동조합운동론의 최근 동향
1)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social movement unionism)
90년대 들어서 전지구적 차원의 노동조합운동의 상황에 대한 토론 과정에서 사회적 노동조합주의 또는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에 대한 논의들이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대체적으로 사회운동적 노조주의가 주장하는 것은, 노동조합운동이 그 활동 영역과 대상을 노동조합 및 그 조합원의 틀에 가두지 않고 비조합원 노동계급 전체와 근로인민 대중으로까지 넓히고, 또는 좁은 의미의 경제적 이해관계의 문제들에서 나아가 근본적인 정치적, 사회적 이해관계의 문제들에까지 확대시켜야(outreach)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일국적인 차원의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에서 더 나아가 전지구적인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global social movement unionism)가 주장되기도 하였다(킴 무디, 1999; 피터 워터만, 2000; Robinson, 1993; Seidman, 1994; Nissen, 1999; Lambert, 2000).
*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의 사회운동적 성격을 강조하는 경우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social movement unionism)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나, 노동조합운동이 노동조합의 틀, 즉 조합원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문제에만 활동영역을 협소하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틀을 넘어서 전 사회적인 문제를 노동조합운동이 포괄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하고자 하는 ‘사회적 노동조합주의’(social unionism)와 개념상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은 그것의 사회적 기반인 공공부문이 사회적으로 특수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구조적으로 사회적 또는 사회운동적인 특징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운동이 공적 조직들(국가 또는 정부 기구들)에 기반하여 전개되고 있다는 특징이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을 공적인 의제들과 밀접하게 관련되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은 공적 이슈 또는 사회 전체의 문제를 자신의 이슈 또는 문제로 삼지 않을 수 없는, 사회적 노동조합주의 또는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를 본래적으로 그 특징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Johnston, 1994; Ponak et al. 1995; 신광영, ; 홍주환 외, 2001).
이렇게 볼 때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노동조합운동이 사회적으로(또는 계급적으로 또는 대중적으로) 어떠한 위상을 차지할 것인가 하는 점과 관련되어 있다. 로빈슨(I. Robinson, 1993: 21)은 노동운동의 구성원들, 리더들 또는 그 지지자들의 도덕적인 헌신성이 노동운동의 발전에 중요하다고 보고 그 맥락에서 사회적 노동조합주의를 주장하는데, 그에 따르면 사회적 노동조합주의는 다음의 두가지 측면에서 “사회적”이다. 첫째로 사회적 노동조합주의는 전체 사회의 변화와 노동조합원이 아닌 다수의 이해관계 증진을 추구하기 때문에 스스로 정한 목표와 그에 대한 의무감의 적용 범위에 있어서 사회적인 것이다. 둘째, 현존 사회질서에 대한 도덕적 비판을 가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분파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소수 집단보다는 대부분의 근로 인민의 가치와 경험과 공감할 수 있는 비판을 결집해 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운동이 조직률의 저하와 사회적 영향력의 약화라는 위기적 상황을 돌파하기 위하여 모색한 하나의 지향으로서의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운동의 내용은, 노동조합운동의 역사를 볼 때, 사실 그렇게 새로운 것이라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운동의 사회운동적 성격이 새삼 강조되는 것은 노동조합운동이 주로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한 경제주의적, 실리적 이익추구, 즉 노동조합의 “서비스 모델”에 몰두하면서 점차적으로 그 사회운동적 성격이 탈각되어 가고, 특히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이 기존의 노동조합 활동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방향으로 변화함에 따라서 노동조합운동이 전반적으로 위기상황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조합)운동 내부 또는 노동자계급 대중 내부의 균열, 이질성, 잠재적 갈등 등이 외부적 상황 - 억압적 권위주의 사회(남아공이나 브라질과 같은 경우. Seidman, 1994 참조) 또는 사회주의적 전체주의적 사회(소련 또는 동구의 구사회주의와 같은 경우, Ost, 2002 참조) 등 - 에 의해서 감추어지거나 또는 억압되어 있는 상황 조건에서 비로소 가능하였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러한 상황 조건이 해소되는 경우 노동조합운동 진영을 하나로 묶어주었던 힘이 약화됨으로써 잠재되어 있던 내부 균열이 파열되어 다양한 세력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면 더 이상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가 유지될 수 없게 된다.
von Holte(2002)는 남아공의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가 그것을 배태하고 있었던 바로 그 구조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즉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가 서 있던 구조적 조건이 침식됨에 따라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고 본다. 남아공의 노동조합은 단순히 노동자들의 계급 조직이 아니라 비계급적인 연대에 기초한 대중운동이기도 했던 것이다. 남아공 노동조합의 이러한 사회정치적 구조는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의 전투성과 생명력의 근거였다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러한 사회정치적 조건의 급격한 변화(아파트헤이트에서 민주주의로)가 기존의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의 위기를 낳은 것이다(287-98).

Ost(2002)에 따르면, 동유럽의 노동조합들은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를 기본적인 특징으로 하였다. 이 동유럽판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조합이 작업장에서 벗어나 ‘사회운동’에 복무하도록 하였다. 결국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이해관계에 복무하기보다는 전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개입에 선차성을 두게 됨으로써 노동자들은 점차 노동조합에 무관심하게 되었고,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자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된 것이다. 조합원들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것에 우선적인 관심을 갖는 노동조합 활동, 노동조합의 서비스 모델이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가 노동에 유리할 것인지의 여부는 노동조합들이 스스로를 그 한 부분으로 생각하는 사회운동의 성격이 어떠한가에 달려있다”(37)고 할 때,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운동에 대해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는 별로 상관없는 것으로 판단하게 되는 경우라면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자들에게 좋을 것이 없는, 또는 오히려 부정적인 것이 되어 노동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이다.
‘작업장에서의 조합원들의 직접적인 문제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인 문제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운동의 명암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노동조합 그 자체의 특징에서 비롯된다. 노동조합은 운동과 조직의 모순적 결합체(Flanders, 1970) 또는 운동과 제도화의 긴장관계(von Holte, 2002: 298)로 간주될 수 있으며, 노동조합의 이러한 특징을 무시하는 경우 노동조합운동이 그 목적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게 되는 것이다. 
 
2) 신사회운동과 노동(조합)운동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운동이 “개념적으로” 작업장 안에 매몰되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주의에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의 독특성은 운동과 조직의 결합체라는 노동조합의 모순적 성격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구조적인 수준에서 어느 정도 완화시킨다.
노동조합운동과 신사회운동의 관계에 대한 관심은, 과연 노동조합운동과 신사회운동은 서로 달라서 갈등적인 관계에 놓일 것인가 아니면 서로 (지향하는 바가) 같아서 협조, 호혜, 공생적인 관계에 놓일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만약 전자라면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조합운동에 적대적인 또는 갈등적인 또 하나의 큰 세력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어서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고 만약 후자라면 노동조합운동은 새롭게 등장한 지원세력을 맞이하여 더욱더 강력한 사회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사회운동의 등장은 시민사회의 활성화와 맥을 같이 한다. 여성운동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체제에, 생태환경운동은 자본주의적 발전의 반생태적인, 지속가능하지 않은 성장 경제에, 지역운동은 중앙집권적이고 위계적인 (국민)국가중심의 정치질서에, 반핵평화운동은 핵에너지와 전쟁가능성에 기초하고 있는 위험사회에 대해서 전혀 다른 대안을 추구하는 신사회운동의 핵심적인 흐름이다. 문제는 이러한 운동들이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그 만큼 노동운동 등 기존의 사회운동 및 정치역학과 갈등관계에 놓일 가능성에 있다.
시민사회의 활성화는 대체적으로 이전에는 잠재되어 있었던 사회구성의 다원적인 구조의 활성화, 즉 기존에 지배적이었던 의제에 의해서 억압되었던 사회적 의제들과 관련된 요구의 분출을 의미한다. 상황이 그러하다면, 노동조합운동에 부과되는 중요한 과제는 시민사회의 활성화 내지 신사회운동의 전개와 스스로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또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와 관련된다. 만약 ‘조직노동’(organized labor)이 이미 기존 질서의 한 구성부분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그에 따라 새로운 사회운동들에 의해 비판적인 토론의 대상이 된다면, 그것은 새로운 상황 하에서 노동조합운동이 (적극적인 의미에서)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사회운동의 흐름이 노동조합운동에 대해 주는 함의는 노동조합운동을 여러 사회운동들 중의 하나인 것으로 ‘절대적으로 상대화’시키는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조합운동이 여전히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또는 진보적 사회발전으로의 지향에서 다른 ‘부문’운동들에 대해 우위를 점한다고 상정되는 경우조차도, 노동조합운동이 한 사회에서 고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매우 단순한 사실에서 출발한다. 특히 ‘조직노동’의 영역이 축소되고 있는 상황과 그로 말미암은 근로계급 대중 내부의 분화, 그리고 (좁은 의미의 전통적인) 노동 이외의 영역에서 새로운 운동 축이 활성화하는 상황과 그에 따른 운동들의 분화는 노동조합운동으로 하여금 자기 정체성의 확립 및 타자들의 정체성과의 접합(articulation) 가능성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운동은 최소한 “생존”을 위해서라도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아야 하고 따라서 연대의 틀을 확장시켜야 하는 바, 이를 위해서는 모종의 자기 변화를 위한 다양한 모색과 과감한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3) 요약 : 노동조합운동과 공공성 문제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조합운동의 지평을 확대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재확립, 재강화하고자 한 중요한 흐름이지만,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그것의 ‘사회운동적’ 성격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경우 자칫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적 기초가 취약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 시민사회의 활성화와 신사회운동의 전개는 새로운 사회운동 공간의 확장으로 인해 노동조합운동의 공간이 상대적으로 협소해지는 한편 노동조합운동과 여타 사회운동이 서로 경쟁하는 위치에 놓일 가능성을 크게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운동이 지역주민의 대중적인 지지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노동조합-지역공동체의 호혜적인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노동조합운동이 조합원의 협소한 이해관계만을 대변하는 조직으로 그 기능이 축소되지 않고 지역주민의 (정치, 경제, 사회적인) 이해관계를 대변하거나 또는 그것을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노동조합이 지역 주민의 삶에 뿌리내리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노동조합운동은, 일차적으로는, 작업장 또는 일터에서의 협소한 의미의 이익 실현에 소홀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지역공동체와의 유기적 관계 형성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하면서, 이에서 더 나아가, 직접적인 이해관계의 틀을 벗어날지라도 전체 지역공동체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제반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조직과 운동의 유기적 결합을 실현하는)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운동은 민간부문보다 공공부문이 구조적으로 유리하다. Johnston(1994)이 지적하였듯이,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의 의제는 그 자체로 공적 영역의 의제가 된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아무리 협소한 이해관계의 실현을 위한 의제를 제출하는 경우에조차 그것이 공적인 의제가 되는 구조적인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지역주민과의 유기적 관계 형성에 성공적인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운신의 폭이 유의미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은 처음부터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민간부문 노동조합운동이 그 활동의 공적 성격을 외면하고 자신의 협소한 이익실현만을 위해서 ‘공장 문’을 굳게 닫을 수도 있는 반면,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의 경우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조건은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협소한 자기이익 실현을 위한 활동에만 몰두할 수 없도록 함과 동시에 자기이익 실현을 위해서라도 공적 영역에서의 적극적인 활동을 추구하도록 한다.
 
3. 공공서비스(공공부문) 노동조합주의의 이론적 기초
공공서비스는 국가 또는 정부의 역할, 기능을 담당하며, 그 성격에 대한 검토는 국가가 사회 또는 시민사회와 맺는 관계의 성격 또는 국가 그 자체에 대한 논의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국가-사회관계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공공성, 공공부문, 공공영역 등과 관련된 논의를 내포한다.
1) 공/사 구분의 문제
구체적으로 한 사회에서 공공부문이 무엇 또는 어디까지이고 민간부문이 무엇 또는 어디까지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은 공공부문이나 민간부문에 대한 완전히 합의된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도 관련되어 있다. 사회과학에서 이 문제는 공/사(public/private) 분리/구분의 문제와 관련되어 논의되어 왔다.
사회적 관계는 공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공적 생활(공동의 이익을 위한 공동의 부, 타자에 의한 관찰에 대한 개방, 사람들의 다양성과 그로 인해 초래되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행위들에 대한 관용 등을 주요한 특징으로 하는 영역)과 사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사적 생활(개별적/개인적이고, 주민들에 의해 통제되고, 격리되어 있으며, 가족이나 친구들과 관련된 은밀한 생활 영역)의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적 생활과 사적 생활이 상호 고립되어 있지 않다. 즉 공적인 이해관계(public interests)가 사적 생활의 영역에 침투하고 반대로 사적인 이해관계(private interests)가 공적 생활 및 그 환경을 상당한 정도로 변화시킴으로써 양자의 구분이 불분명해지고 있는 것이 현대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관찰되는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Brill, 1989: 20; 고길섶, 2000).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여 사회과학 이론들은 일반적으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특정한 사회적 상황 하에서 그 자체로 변화하거나 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으로 인식하여 왔다. Turkel(1992)에 따르면, 공/사(public/private)의 구분은 사회과학적 논의에서 매우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현대에 들어와서, 페미니즘(“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다”)과 좌파 이론(“민주주의 사회는 공적인, 사적인 제도, 담론 등이 통합된 사회이다”) 등에 의해서 공/사의 분명한 구분에 대한 이의제기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현실적으로도 기존의 공/사 구분이 더 이상 쉽지 않게 되었다. 특히 전통적인 공/사 분리적 사고의 결과인 국가/시장의 이분법적 사고도 현실적으로 공적으로 규제되지 않는 시장이 존재할 수 없고 또한 사적인 질서도 공적 규제 양식의 한 표현이라는 것이 점차로 분명해짐에 따라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된 것이다. 현실적으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변화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경찰, 소방, 교육, 위생, 운동 등은 거의 대부분 사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이었으나 이제는 대부분 공적 기구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 변화는 비교적 최근의 일인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본래적으로 공적인 서비스” 또는 “공중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제공되어야 하는 서비스”라는 의미의 공공서비스 개념이 존재하는 것과 그것이 누구에 의해서 생산 및 공급되어야 하는가가 별개의 문제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Brill, 1989, 24).*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 및 각각의 특징에 주목하는 논의는 다양하게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Weintraub(1997)은 이를 네 개의 큰 흐름으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는 자유주의적-경제학적(the liberal-economistic) 모델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공공정책 분석이나 일상적인 법적, 정치적 논쟁에서 지배적인 담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공/사의 구분은 국가(state administration)와 시장경제의 구분과 관련되어 있다. 둘째는 공화주의적 또는 고전적 접근으로서, 이에 따르면 공적 영역은 정치적 공동체 또는 시민사회의 영역과 관련되어 논의되며 이것은 한편으로는 시장과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에 대응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셋째는 주로 사회사나 인류학 쪽에서의 공/사 구분 방식으로, 여기에서 공적인 영역은 유동적이고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는 사회성(sociability)의 영역으로서 주로 문화적이고 연극적인 관행의 분석 적용된다. 넷째는 페미니즘 분석들의 주요한 경향으로서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구분은 가족과 그 외의 경제적, 정치적 질서의 구분과 관련되며 특히 시장경제가 공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구분을 고려할 때, 공공부문 및 공공부문 노사관계와 관련된 기존의 논의들은 주로 첫 번째의 모델 하에서 전개되어 왔다고 할 수 있으나, 최근 전개되고 있는 공공부문의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대두되고 있는 논의들의 핵심은 오히려 두 번째의 접근 방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정 시 특정 사회에서 특정한 부문이 ‘공공부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공적 영역에서의 담론 상황에 의거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공공부문의 사회적 역할 또는 범위, 그리고 구조 변화는 시장의 실패, 국가의 실패, 시장의 복원/국가의 축소라는 일련의 과정, 즉 서구에서의 복지국가의 형성 및 쇠퇴, 신자유주의적인 정치경제의 전개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20세기 주요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구조변화는 한편으로는 국가의 복지극대화 전략과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경쟁의 효율성 추구 전략이라는 두개의 커다란 축 사이의 주도권 싸움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Naschold, 1996). 국가와 (시민)사회, 국가와 시장, 정치와 경제 등의 이분법적 설정을 두고 이루어져 온 논의들은 한편으로는 그 양자를 대립적으로 배치하는 것이었고(고전적 자유주의의 문제설정이 이에 해당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양자를 상호 밀접하게 연결된 것으로 설정하는 것이었다(공적 영역을 국가와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매개자로 설정하는 하버마스 등의 논의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전자는 공공부문을 국가의 사회적 역할 및 기능과 관련된 공적 영역의 것으로, 그 외의 것을 사적 영역의 것으로 설정하는 한편 국가(또는 정부)로 대표되는 공적 영역이 최소화되고 민간의 자율적인 영역인 (시장으로 대표되는) 사적 영역이 최대화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후자는 반대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명확한 구분 가능성을 의문시하면서, 그것의 명목적인 구분을 전제로 하면서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상호작용, 특히 (국가를 주요한 제도적 구성요소로 하는) 공적 영역의 활성화 및 영역 확대가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의 증대, 즉 복지국가 또는 혼합경제의 등장, 특히 이와 관련된 사회적 또는 공적 서비스 영역의 등장 및 확대는 이와 같은 전통적인 구분 또는 뚜렷한 분리를 실질적으로 어렵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Kaufmanm, 1991: 4). 그런데 실질적으로 한 사회에서 공공부문 또는 공적 영역의 지위는 사회의 영역별 배치 또는 그 역할을 둘러싼 제 사회세력의 갈등과 그것의 “잠정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국가와 시장의 관계, 국가와 시민사회와의 관계, 정치와 경제와의 관계 등은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사회의 제 집단들의 이해관계의 대립과 타협, 일방적인 강요 또는 상호간의 합의에 의해서 (비록 장기적일지라도) 일시적으로만 유효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관계 및 그것의 변형과 관련된 논의를 진행한 대표적인 학자로 J. 하버마스와 H. 아렌트를 들 수 있다.
우선 하버마스(2001)는 부르주아 공론장의 형성 및 발전 과정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상호 침투 경향을 논하고 있다. 국가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이 확대되면서 국가는 기존의 일상적인 기능을 넘어서 사적 부문에 속해 있던 제반 활동을 자신의 것으로 삼게 된다. 즉 “국가는 사인들에게 공적 임무를 위임하거나 기본 계획을 통해 사적 경제활동을 조정하거나 아니면 스스로가 생산자와 분배자로 활동하기 시작”(252)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근대(현대) 사회에는 공적으로 또한 사적으로 중요한 사회적 영역이 형성되고, 그 위에 세워진 국가 제도와 사회 제도들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라는 기준으로 더 이상 세분할 수 없는 하나의 단일한 기능복합체”(254)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이제 이 공적 영역은 “조직된 사적 이해관계”가 서로 경쟁적으로 침투하는 공간이 되고, 그에 따라서 공론장은 사적 이해관계가 조정되는 공간, 더 나아가 국가의 공권력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치적 공론장, 즉 민주주의의 원리가 적용되는 공간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하버마스가 공적 영역의 형성, 발전, 변화 및 그것의 사회적 함의를 주로 다루고 있다면, 아렌트는 사회적 영역 또는 ‘사회적인 것’(the social)의 등장과 함께 공적 영역 및 사적 영역이 어떠한 방식으로 변용되었는가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렌트(1996)에 의하면, 본래 인간 생활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구분되어 영위되었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라는 구분은 가정과 정치적 영역의 구분에 상응”하는데, 이 때 사적 영역은 개인의 유지와 종족의 보존과 관련된 “경제”의 영역 또는 필연성의 영역으로서 “정치”의 공간 즉 자유의 영역인 공적 영역과 분명히 구분되는 것이었다. 정치의 공간인 공적 영역에서는 힘과 폭력이 작용하는 영역인 사적 영역에서와는 달리 말과 설득을 통해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공간이다. 그런데 근대의 출현과 함께 “사적인 영역도 공적인 영역도 아닌 사회적 영역”이 출현하였는데, 이 사회적 영역의 출현은 사적 영역의 관심사, 특히 경제 또는 필연성의 문제가 공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적인 것(the social)”의 등장으로 인간 생활의 제반 과정이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서 공적인 영역의 문제가 되었다. “살기 위해서 상호의존한다는 사실이 공적인 의미를 획득하고 단순한 생존에 관련된 활동이 공적으로 등장한 곳”이 바로 사회인데, 이러한 특징을 갖는 사회에서 “공적”(public)이라는 말은 첫째, “공중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누구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그러므로 가능한 가장 폭넓은 공공성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둘째, “세계가 우리 모두에게 공동의 것이고, 우리의 사적인 소유지와는 구별되는 세계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사회(사회적인 것, 사회적 영역)의 등장은, 정치적 영역의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성을 본래적인 특징으로 하는 사적 개인들을 소멸시키는 경향이 있다. 즉 사회적인 것이 공적 영역을 지배하게 됨으로써 필연성의 영역에 속해있던 경제가 지배적 담론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고 따라서 공적 영역이 소멸할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하버마스와 아렌트의 공적인 것(공적 영역)과 사적인 것(사적 영역)에 대한 논의는 서로 논의의 초점이 다르긴 하지만 공적 영역의 의의 즉, 하버마스의 경우에는 민주주의적 공론이 이루어져야 하는 곳으로서, 아렌트의 경우에는 사적 이해관계의 침투로부터 보호받아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곳으로서의 공적 영역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에서 공적 영역 또는 공공부문에 모아지는 사회적 관심을 적절하게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의 활동 공간이 공적 영역이라고 하는 점이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은 공적 영역에서 공적인 것을 다루는 조직, 제도의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조직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의 제반 활동은 그 자체로 공적 논의의 대상이 되고, 그 구성원들의 사적인 이해관계만을 추구하는 것이 처음부터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이 한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담론을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의 유무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입지에 매우 중요하게 될 것이다.
 
2) 국가-시민사회 관계와 공공서비스(공공부문)
자유주의적 관점의 국가-시민사회 관계에서 국가는 시민사회를 보호해야 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자유로운 시민들로 구성되는 공간인 시민사회가 우선하고, 그로부터 나타나는 제반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 불가피하게 국가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유일한’ 장치이다(함재봉, 1995). 문제는 자유의 공간인 시민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설정된 국가가 주어진 권한 밖의 힘을 행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자유의 공간인 시민사회가 우위에 있고 국가는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부수적인 역할만을 수행해야 한다.
맑스주의적 관점은 기본적으로 계급국가론적 입장에서 국가-시민사회를 바라보며, 시민사회는 계급투쟁의 공간이고 국가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기구가 된다. 이렇게 볼 때, 만약 공적 영역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한편으로는 지배계급이 계급지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헤게모니 행사의 공간이, 다른 한편으로는 피지배계급이 계급지배에 대항하기 위한 대항헤게모니를 행사하려는 공간이 된다. 즉 공적 영역은 계급투쟁의 장이 되는 것이다.
공화주의적인 관점에 따르면, 공적인 영역은 자유의 공간이다. 공적인 영역은 자유의 공간인 시민사회를 보호하는 소극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공동체의 구성원들인 시민들이 공공선, 또는 공적 이익을 구성하고 추구하기 위해 논쟁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곳이다. 더욱이 그러한 토론의 공간은 시민들의 자기실현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개인적 또는 사적인 것들은 분명히 보호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공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Honohan, 2000). 이 때 국가는 공적인 활동의 일부가 된다. 국가는 공적 이익을 앞세워 사적인 영역을 규제하는 기구가 아니라 자유로운 시민들의 공적 토론을 통해서 ‘잠정적으로’ 규정되는 공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 된다.
결국 각각의 관점에 따라서 국가의 사회적 역할 변화 또는 국가의 제자리 찾기에 대한 접근이 조금씩 또는 크게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과도한 개입주의적 국가를 고전적 자유주의 국가의 이상에 맞도록 강력하게 변화시키고자 한다. 공공서비스의 기존의 확대된 역할은 상당한 정도로 축소되거나 시민사회 영역으로 이전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맑스주의적 관점에서는 국가가 지배계급의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투쟁(전복)의 대상이면서, 피지배계급의 이익을 보호, 확대하기 위한 보루가 될 수 있고 또 그렇다는 측면에서 투쟁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우 구체적으로 공공서비스는 시민사회에 대해서 모순적인 위치에 놓여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공화주의적 입장에서는 공공서비스가 다원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시민사회의 공적 담론의 과정과 그 결과들을 수용하고 그것을 구체화하는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공적 담론의 영역에 참여하기도 하는 것으로 설정될 것이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의 성격, 즉 국가권력의 강력함 정도와 시민사회의 활성화 정도의 상호관계의 양상에 따라서 공공영역의 성격은 차이를 보여왔다. 예를 들어 영국같은 경우 자유주의적 시민사회가 발달하여 공공영역이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담보함으로써 국가권력의 권위주의적 성격이 약화되었다면, 동아시아와 같이 권위주의적인 국가와 미발달한 시민사회가 결합된 경우 공공영역은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담아내는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국가에 의해서 장악되는 타율적인 공간이었다. 특히 한국의 경우 공공영역은 타율적 공공영역과 자율적 공공영역으로 이중적으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시민사회의 성장은 자율적 공공영역의 확장과 타율적 공공영역의 축소,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의 극복, 포괄적인 의미의 민주화와 관련되어 있었다(신광영, 1994).*
* 김호기(1998)는 공공영역을 제도적 공공영역과 비제도적 공공영역으로 구분한다. 공공영역은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정치적 의사가 결집되는 사회적 영역”이며, 이때 제도적 공공영역은 국가와의 중첩영역이고 비제도적 공공영역은 시민사회와의 공공영역이다. 신광영(1994)의 경우에는 공공영역의 자율성 확보, 즉 타율적 공공영역의 축소와 자율적 공공영역의 확대가 민주화의 관건이 된다면, 김호기(1998)의 경우에는 제도적 공공영역과 비제도적 공공영역의 유기적 연계, 즉 제도적 공공영역의 시민사회에의 개방 및 국가의 비제도적 공공영역에의 개방이 관건이 될 것이다.

민주화는 시민사회의 형성와 활성화, 자율적 공공영역의 확장과 동시적으로 전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시스템이 민주화 이전으로 회귀하지 않는 한 공공서비스는 이제 더 이상 발전주의 국가가 보여주었던 방식으로 타율적 공공영역을 주도적으로 형성하기도 쉽지 않고 또한 자율적 공공영역을 억압할 수도 없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공공서비스가 공공영역에서 모종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공공영역의 행위자로 참여하는 길 뿐이다. 그리고 그 때의 공공영역은 자율적 공공영역일 터이다. 그리고 이것은 공공서비스가 사회운동의 목소리를 공공영역에서 같이 토론함을 의미한다. 공공서비스는 - 그것의 타율적 공공영역의 주도적 형성자로서의 기능을 논외로 한다면 - 사실상 국가와 시민사회를 연결시켜주는 매개고리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사회운동은 ‘국가의 구조변화(the transformation of the state)’를 위한 주요한 힘, 추동력으로 작용한다(Quadagno, 1992). 그것은 반드시 공적 토론의 시공간을 필요로 하고, 그것을 통해서 국가-시민사회 관계의 성격을 방향지우고 그 관계의 변화를 추동해 나가는 중요한 매개체 또는 행위자를 필요로 한다. 그 중에서도 공공서비스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이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이 국가-시민사회 관계에 있어서 공공서비스의 위치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그 위에서 공공서비스가 진보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기여할 수 있다면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은 공공성의 확대 강화의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역할과 과제
1)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구조적 조건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론을 모색할 때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할 것은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함의가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과 특히 최근 몇십년간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지위가 계속적으로 변화하여 왔다는 점이다. 그것은 국가-(시민)사회 관계의 양적, 질적 변화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힐 수 있다.
우선 공공서비스에 대한 국가론적 접근의 필요성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역할이 구체화되는 영역이 공공서비스이고 그것은 국가-사회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설정되는가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공공서비스에 대한 논의는 국가에 대한 논의의 틀, 특히 국가-사회관계에 대한 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리고 국가-사회관계라는 맥락에서 국가와 공공서비스를 바라보는 것은 국가의 제반 행위가 국가-사회관계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국가-사회관계는 계속적인 발전 및 변화하는 유기적인 망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대처리즘 하의 영국은 국가-사회관계 변화의 급격한 모습을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영국에서의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민영화는 국가-사회관계의 구조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홍주환 외, 2001: 54-57).
국가-사회관계의 구조변화는 공공서비스의 공급과 관련해서 기존의 관점들 간의 경합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Naschold, 1996). 하나는 시장의 실패와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의 실패와 관련된 것이다. 전자는 복지국가론과 관련된다. 복지국가론은 국가가 공공이익을 위해서 복지를 극대화하여야 한다는 입장에서, 공공부문의 확장을 통해 공적인 사회보장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며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를 강화할 것을 주장한다. 서구의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 형태들이 복지국가론이 구체화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후자는 신자유주의 국가론과 관련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수행한 대내적 역할은 한편으로 경제활동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력의 재생산 기반 또는 사회복지제도의 기반을 확장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최근 30여년간의 국가 역할의 변화는 기존의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가 자유주의적 국가로 그 형태를 변화시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공서비스 내지 공공부문의 구조변화는 국가-사회관계의 신자유주의적 개혁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국가-사회관계 재편은 민영화와 공공서비스 혁신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민영화는 국가의 시장에 대한 직접 개입을 철회하는 것이었으며 공공서비스 혁신은 공공서비스에 기존의 행정 개념 대신에 경영 개념을 도입하여 효율성을 제고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개혁도 결국 국가 실패 또는 시장 실패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며, 이것은 국가-사회관계에 대한 위의 두 관점 사이의 갈등이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적 소유와 그 처분권, 시장 메커니즘, 국가의 시장 규제 등의 전체적인 관계를 재조정하는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최소국가론이나 국가 개입주의의 문제점을 모두 극복하는 방식으로 국가의 역할, 즉 공공부문 및 공공서비스의 역할을 재조정하는 것, 이를 위해서 기존의 관료주의적 행정주의와 다른 한편의 공공서비스의 효율성 중심주의의 긍정적인 측면을 결합시키는 것 등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Naschold, 1996).
한국의 경우 기존의 국가주도의 경제성장 중심적 국가-사회관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됨에 따라서 국가와 시장의 관계는 국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이 간접적인 형태와 협상을 추구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이제 국가는 “시장의 질서를 지배하기보다 시장의 질서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김윤태, 2003: 321). 현재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은 기존의 국가-사회관계가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하는 구조적 조건에 처해 있다. 소위 공공부문 “상시개혁체제의 구축”에 따라서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조직개편이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성과 및 능력 위주의 인사제도가 도입되고 있다. 행정기관에 대한 경영진단을 추진하고, 책임운영기관 제도를 도입하는 등 공공서비스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제도개혁이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한편, 성과주의 예산제도, 성과주의 급여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조직간 구성원간의 경쟁제도를 확산시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인력 감축도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공공서비스 구조조정은 국가-사회관계를 시장중심적인 방향으로 재조정하는 것이었는바, 이것은 한편으로는 공공서비스가 어떤 사회적 함의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의제를 제기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공서비스의 구조조정에 따른 공공서비스 종사자들 즉 공무원들의 노동조건의 변화와 관련된 의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의 근거가 된다. 특히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특성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이 노사관계를 통해서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함의와 구체적으로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기제의 모색을 좁게는 공공서비스 노사관계상의, 넓게는 전 사회적 범위의 의제로 삼도록 한다.
 
2) 공론장으로서의 공공서비스 노사관계 - “공공성의 정치”의 제도화
케인즈주의적 개입주의 국가나 신자유주의 국가의 “사회 관리 기능”이 의문시되고 있고, 따라서 국가 및 공공부문의 역할과 지위에 대한 사회적인 차원의 재조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하나의 공식 또는 공리로서의 ‘공공부문의 핵심 활동’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것은 일종의 민주적 정치결정 과정의 결과로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분석적이고 경험적인 현대 과학의 여러 방법들을 동원하여 뒷받침하여야 하는 것이다(Naschold, 1996).
이제 필요한 것은 국가-사회관계의 성격과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공공서비스의 성격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다. 무엇보다도 국가-사회관계의 성격에 대한 사회적 규정은 그 사회의 공공서비스 및 공공부문의 지위와 그 위에 서있다고 할 수 있는 공공서비스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그것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공공서비스와 그 수혜자 간의 유기적이고 균형있는 결합에 관한 밑그림을 제공하며, 이것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목표설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된다. 공공서비스 개혁은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함의에 대한 재규정을 의미함과 동시에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생활 조건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문제는 국가-사회관계의 전환이 국가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특히 노동배제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한국사회의 통치구조 또는 지배구조에 대한 성찰적 논의가 생략된 것이었다는 점에 있다.
“정치적 상황성”(political contingency) 개념은 “각 공기업들의 목표와 그것의 운영 규칙, 정부 부처의 개입, 정당들의 정책, 대중의 여론, 여타 국가기구들의 요구, 그 공공기관이 생산하는 재화 및 서비스를 사용하는 공적 기구들 및 민간부문의 이익입단들의 제반 압력 및 요구 등”을 함축하는 개념으로서, 공공부문을 둘러싸고 있는 구체적인 조건들이 계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상황을 의미하며, 서구의 주요 공기업들에서 노사관계 갈등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공기업들이 운영되고 있는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서 찾고자 했던 Ferner(1988) 등의 논의에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정치적 상황성 개념은 그것이 공기업의 전략 구성을 민간부문의 기업들에서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불확실하게 만들지만, 결국 그것을 통해서 공기업의 행위 논리가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Batstone, et al., 1984). 그리고 또한 그것은 공공부문 및 공공서비스 노사관계는 정치적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가-사회관계 변화의 방향과 내용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사회적 차원의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그것의 관철을 위해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공공성의 정치”에 있어서 주도권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도 관건이 된다.
공공서비스 노사관계는 공공성의 정치가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다양한 영역들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공공서비스가 갖는 사회적 함의는 공공성의 정치의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공공성의 정치에 관련되는 제반 사회세력의 각축은 그것을 특정한 내용으로 고정시키지 않는다. 한 사회의 공적 영역은, 특히 민주화 이후 점차 확대되고 있는 자율적 공적 영역은 사실상 국가-사회관계의 형식과 내용을 시시때때로 규정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공적 영역과 공공서비스 노사관계 및 노동운동은 어떤 관계를 갖는가 하는가이다. 공공서비스 노사관계가 의제로 삼는 것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공적 형태와 내용을 취하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그 자체로 공적 영역에 발을 딛고 있다고 하겠다.
중요한 것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은 공적 영역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의제설정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비로소 (비록 그것이 협소한 이해관계의 발로로 비쳐지더라도)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생활 조건의 향상을 위한 요구도 같이 의제로 삼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공성의 정치는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이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의 합리적 핵심을 체현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특히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은 그 특성상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결국 공공성의 정치는 사회적 의제를 자신의 의제로 삼도록 강제하는 제도적 틀 위에 있는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에게 중요한 전략적 지침이 되는 것이다. 단체교섭이라는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틀의 제한에 매몰되지 않는다면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은 노사관계의 제반 수준, 영역에서 자신의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사회적 의제를 자신의 문제로 지속적으로 전환시켜 제기할 수 있는 특수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은 공공서비스 노사관계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상황을 공세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구조적 역량을 담지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운동으로서의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은 국가-사회관계의 매개적 위치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시민사회의 활성화된 자율적 공적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그 사회적 의제를 노사관계의 영역으로 유입시키고 이를 통해서 국가의 민주적 전환을 끊임없이 시도해가는 것을 자신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5. 결론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로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중요성을 무기로 삼아 협소한 자기이해에 매몰될 것인가, 아니면 공무원 노동조합들의 선언들이 주장하는 바람직한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실현을 위한 주체로 자리잡을 것인가는 공무원 노동조합의 주체적 역량에 달려있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은 민간부문의 노동조합운동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운동과 조직’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데 있어서 유리한 구조적 위치에 있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이 어떻게 사회적 시민권을 확고하게 하는가는 공공서비스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을 그에 유리한 방향으로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주체적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국가-사회관계의 매개적 위치에 있는 공공서비스가 공적 영역에서의 담론 의제를 자신의 것으로 하고 비권위적인 조정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이 조직의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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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7 05:02 2010/02/07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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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벽길 2010/02/07 14:50

    이 글에는 공공포럼 제2차토론회(2001.7.3) 및 민주사회정책연구소 공공부문연구센터 토론회(2001.7.11)에서 발표된 것을 수정하여 「노동사회」에 발표한 글이 주요한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공공포럼 토론 및 「노동사회」발표글은 각주나 참고문헌이 생략되어 있어서 학술문헌으로 인용하기엔 한계가 있다.
    홍주환. 2001. 국가와 공공부문 노사관계: "공공성의 정치"의 제도화. 「노동사회」 2001년 8,9월호(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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