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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의 『관료제』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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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es, Ludwig von. 황수연 옮김. 2009. 『관료제』.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Bureaucracy. Libertarian Press, Inc. 1996.
 
- 미제스의 『관료제』는 관료제론을 강의하면서 참고도서 중의 하나로 읽은 것이다. 그런데 이를 읽어서 관료제에 대한 지식이 늘었다기보다는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200여 페이지의 짧은 팜플렛을 읽은 느낌이다. 미제스는 하이에크의 스승이 되는 사람으로, 그 밑에 '훌륭한' 신자유주의 전사들을 길러냈다. 이 책은 초판이 1944년도에 나왔고... 
 
- 미제스는 사회주의에 대해 지나치게 편협하고 단순한 개념에 입각하여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대부분의 시민들이 모두 사회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의 이름을 딴 연구소까지 있다니 잘 이해가 안 된다.
미제스는 관료주의의 배후에 사회주의 경향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래서 관료주의를 비판할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로의 경향 그 자체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좋으면 우리편, 나쁜 것은 사회주의라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진보주의적’ 비판가들이 단순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긴 그런 이들도 있을 테지만, 극소수이다. 머리 속에 하나의 전형을 만들어놓고 이를 비판하는 짓, 이런 걸 누가 못하나.
 
- 미제스는 정부가 창조적 성격의 사람의 노력을 마비시키고 그가 공동체에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막는다고 하면서, 소득세와 법인세 때문에 신참(사업분야의 혁신자)이 자본을 축적할 수가 없게 되는 예를 든다. 소득세가 신참의 최초 이윤의 80% 이상을 흡수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과연 기업이 자본을 축적하지 못하는 주된 요인이 세금일까.
 
- 사회주의와 개입주의, 관료주의가 동일한 것인가. 단순하게 이를 동일시하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미제스나 해설에서 말하는 관료제는 무엇을 의미할까. 사부문에는 관료제가 없는 건가. 베버의 논의에서부터 제대로 알고 말하면 좋을 텐데.
 
- 국민들이 실상을 제대로 알게 되면 관료주의 경향을 막을 수 있다고? 과거 골방 좌파들이 민중들이 각성만 하면 사회주의 혁명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과연 몰라서 막지 못하는 것인가.
- 관료제를 옹호하고 싶진 않지만, 이윤 관리가 가능한 것을 관료제가 맡아 하면 왜 안 되는 걸까. 미제스의 논리대로라면 관료제가 맡아 해서 이윤 관리를 더 잘하고 그만큼 효율적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게 된다. 미제스나 해설의 논리는 결국 뭐라고 해도 깰 수 없는 도그마가 있다.
 
- 편집자 서문에 1944년 이 책이 나왔을 당시 영국, 독일, 그리고 소련에서는 사회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단다. (17쪽) 이것만으로도 이 책이 사회주의에 대한 얼마나 무식한 발상을 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 미제스의 주장 중에서는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을 시장화하고 시장원리를 전일적으로 관철시키고자 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도 들어 있다. 정부 고유의 영역과 논리를 인정하는 셈인데, 이에 대해서 신자유주의자들은 어떻게 볼까.
 
- 미제스의 공기업에 대한 논의도 흥미롭다. 공기업은 사실상 이윤 추구 기업과 다르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명령과 지시가 관철되는 정부 관료제와 다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공부문을 차츰 사유화(민영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미제스의 논리로는 이것은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사유화되는 영역은 원래부터 시장 원리가 관철되었어야 하는 부분인 것이다.
 
- 미제스의 주장을 그대로 지금의 시장지상주의자들에게 돌려주면 좋을 것들이 많다. 이를테면 시장과 국가의 중간 영역, 제3의 영역, 경제적 개입주의에 대한 옹호는 결국 사회주의 옹호와 다르지 않다고 하는데, 이와 비슷하게 이는 사실상 세련된 자본주의를 하자는 논리다라고 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평범한 시민 대 전문적인 관료제화 선전원을 대립시킨 부분 등 ‘당신들이 떠받드는 미제스도 이런 주장도 했어’ 하는 식으로 꼴 보수들에게 들이밀 만한 내용도 꽤 있다.
 
- 미제스의 책을 읽으면서 이분법적인, 단순한 사고는 한계가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전ㆍ선동하는 데에는 나름 기능을 하겠지만, 궁극적으로 보면 설득력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 미제스는 소비자 주권을 강조하는데, 소비자가 주인이라고 떠들곤 하는 자본가들의 앞잡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소비자가 주인이고 왕이라면 그 주인이나 왕을 할 것이지 왜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공급자, 자본가의 역할을 하느냐고. 당신들의 이론적 기반이 되고 있는, 합리적ㆍ이기적 경제인을 강조하는 공공선택이론에 따르더라도 그게 타당할 텐데 말이지.
 
- 덧붙여, 기회가 되면 우체국시스템에 대해 제대로 연구해보기로 했다. 레닌이 쓴 '국가와 혁명'에 우체국을 찬양하면서 모든 사회 시스템을 우체국과 같이 바꾸자는 제안이 있었던가. 미제스는 자꾸 레닌이 칭송했다는 우체국 사례를 반복해서 언급하면서 관료제를 비판하는데, 최근 일본의 우정 민영화 무산 사례 및 오바마의 우체국 민영화 반대 발언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우체국 법인화 시도를 비교하여 분석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래 글은 책 내용 중에서 해설 부분을 발췌 요약한 것이다.

 

『관료제』에서 미제스는 이윤을 벌고 손실을 피하려는 기업가들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 관리와 정부가 정해놓은 규칙들과 규정들에 따른 관료적 관리 사이를 비교한다. 이윤과 손실의 시장 관리 아래서는 기업가들은 특정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에 필요한 다양한 생산 요소들의 비용에 반영되는 시장 가격의 지도를 받는다. 그 결과 시장 경제에서 활동하는 기업가들은 비용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수요를 만족시키는 최상의 방법도 계산할 수 있다.
반면, 관료적 관리에서는 관료제의 목표를 화폐로 측정할 수 없고 업무 수행에 대해 손익 계산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업무에 관해 관료들의 재량에 맡길 수 없고 법과 예산을 통해 통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관료들은 확실하게 정의되지 않는 목표의 달성보다는 지시와 규정을 준수하는 것을 목표로 행동한다. 그 결과 관료제는 비용이 많이 들며 낭비적이라고, 관료적 절차는 경직적이며 형식적이라고, 그리고 관료들은 나태하며 반응이 느리다고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관료제 그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것은 치안 및 사법과 같은 일정 인간 활동 영역들을 관리하는 적합한 방법이다. 범죄 없는 거리 및 정의와 같은 ‘산출물’은 매우 가치 있고 심지어 필수 불가결하지만 시장에서 가격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러므로 그것들을 야기하려는 노력에서 이루어진 총지출과 대비될 수가 없다. 이런 것은 성격상 이윤 관리로 처리될 수가 없다.
미제스에 따르면, 관료제에 대한 통렬한 비난은 요점을 놓치고 있다. 그러한 현상의 전개에 대해 관료제나 관료들이 책임져야 할 것이 아니고 그 원인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관료제란 업무를 수행한 결과이자 징후일 뿐, 그러한 문제의 뿌리는 훨씬 더 깊다. 관료제나 관료들이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경제 통제에 문제가 있다.
이윤 관리가 가능하지 않은 한정된 인간 활동 영역들은 관료제가 맡아서 관료적 관리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윤 관리가 가능한 것을 관료제가 맡아 하면 안 된다. 관료제에서는 경제 계산을 할 수가 없으므로 문제가 야기되기 때문이다. 즉 사기업을 관료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나 관료제가 공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실패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확립된 절차에 대한 강요된 복종은 기업 관리자에게 소비자 욕망을 예상하여 조정하거나 혁신할 여지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경제 정책은 기회가 닿는 대로 자유 기업을 정부 통제로 대체하려 하고 있다. 정당들과 압력 집단들은 경제 활동들의 공적 통제를, 정부 계획을, 그리고 기업의 국유화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그들은 교육의 정부 통제, 의료 분야의 사회주의화를 겨냥한다. 그들의 눈에는 국가 통제는 모든 질병들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보인다. 미제스에 따르면, 이러한 자칭 ‘진보적인(progressive)’ 정책들 때문에 새로운 사무실들과 정부 기관들이 버섯처럼 번창한다. 관료들은 숫자가 늘어나고 차츰차츰 개별 시민들의 행동의 자유를 제약한다.
오늘날 관료제의 문제점은 관료적 방식으로 처리해서는 안 될 일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점이다. 경제적 생산과 분배 체제에는 관료제가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심하게 나타나는 관료적 경직성으로의 추세는 기업 활동에 대한 정부 개입의 결과다. 그것은 사회의 경제 조직의 틀에서 이윤 동기가 수행하는 역할을 제거하려는 정책들의 결과다. 다시 말해, 정책들이, 정치 및 경제 체제가, 정부의 경제 통제가 관료제화와 관료주의를 야기한다.
이러한 사회주의, 개입주의, 관료주의의 경향은 의회가, 더 나아가서는 유권자가 만든 것이다. 소위 ‘진보주의적' 경향은 의회가 유권자가 막을 수 있다. 유권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의원들이 사업에 대한 정부 통제의 입법을 못하게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유권자들의 의식이 중요하고 국민들의 사상이 중요하다. 국민들이 실상을 제대로 알게 되면 사회주의, 개입주의, 관료주의의 경향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경제학적 독해력 향상이 중요하다. 시민들이 경제 문제를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스스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민주 국가 국민들은 경제 문제에 대한 상식을 갖출 의무가 있다. 국민들은 스스로를 교육하고 훈련시켜야 한다. 관료제화를 막기 위해서는 국민 경제 교육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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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8 13:33 2010/03/2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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