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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 ‘계급·계층 투표’ 뚜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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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낙구 선배가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라는 책을 펴낸다고 한다. 그와 관련된 기사가 경향신문에 났는데, 많이 흥미로운 기사다. 1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이기에 이를 누가 사볼까 싶지만, 의외로 관심을 갖는 이들이 꽤 있을 듯하다.책 내용의 핵심은 경향신문의 인터뷰 기사에 있다. 

 

손씨는 “지금까지 서민들이 부유층 지지 정당인 한나라당을 찍으면서 계급 배반 투표를 한다는 분석과 시각이 많았는데, 주된 경향은 아니었다”면서 “부유층은 열심히 계층 투표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아예 투표를 안 하거나 야당을 찍는 식의 투표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유권자들은 철저하게 계급투표를 한다는 것이다. 주택소유자와 아파트가 많은 곳일수록 한나라당에 투표하는데, 이는 집값을 올리기 위한 합리적 선택의 결과이다. 그리고 셋방 사람이 많고 아파트 비율이 낮은 곳일수록 민주당에 투표를 하는데, 이는 집없는 사람들의 경우 80%가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하는 등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사는 곳을 '내 동네'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어 지역 정체성도 떨어지고, 투표율 또한 낮게 된다. 지방정치가 잘 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손낙구 선배는 파악한다.

 

나름 의미 있는 분석이다. 게다가 거기에 들어간 손낙구 선배의 노력이 만만치 않으니... 한 동안 뜸하더니 이 책을 쓰려고 했나 보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이 조금은 일면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분명 서울에서 주택 보유 여부가 정치적 성향을 결정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가장 주된 요인일까. 그리고 서울, 수도권과 지방은 그 성향이나 변수가 분명히 다를 것이다. 지방에서 집이 있다는 자체는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또한 연구의 함의도 조금은 이해하기 어렵다. 뉴타운정책이 민주당의 지지층과 어긋난다는 사실이 연구결과에서 드러났다고 치자. 그리고 자기 지지층이 진정으로 원하는 정책을 내야 하는 것도 맞다. 그렇다면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은 어떠한 주택 정책을 펴야 할까.

 

그 지지층들도 집을 얻게 되면 민주당을 버린다는 뜻인데, 민주당은 될수록 주택보유율을 낮추어야 하는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결과가 맞다면 집 보유 자체가 지지를 결정하는 변수가 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구체적으로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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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강남이라도 대치1동·역삼1동 ‘표심’ 극명 (경향, 손제민 기자, 2010-02-07 18:28:50)
ㆍ집가진 사람들 ‘집값 상승’ 위해 여당에 투표
ㆍ이사 잦은 빈곤층, 야당 지지해도 선거 무관심
ㆍ한나라 ‘뉴타운 수혜’… 민주 정책방향 바꿔야

 
대치1동과 역삼1동. 두 동네는 이른바 ‘강남’에 속해 있다. 그러면 둘 다 부자 동네일까. 그렇지 않다. 손낙구씨가 쓴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1동은 거주자의 88%(다주택자 16% 포함)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97%가 아파트에 산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강남 지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강남구의 역삼1동은 무주택자가 80%에 이르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6%밖에 되지 않는다. 혼자 사는 가구 비율도 대치1동은 3%이지만, 고시원과 원룸이 많은 역삼1동의 1인가구는 55%에 이른다. 두 동네는 부동산 자산 보유 측면에서 빈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셈이다.
 
그것이 선거정치에 갖는 의미는 분명해 보인다. 대치1동의 2004년 총선 투표율은 72%, 그 가운데 한나라당 지지가 64%였다. 반면 역삼1동에서는 유권자의 49%가 투표에 참여했고, 이 중 한나라당 지지는 41%에 불과했다. 당시 역삼1동의 민주+열린우리당 득표율은 43%로 한나라당을 앞섰고, 민주노동당 득표율도 13%에 달했다. 역삼1동만 그런 것이 아니다. 논현1동, 대치4동, 일원1동, 수서동 등이 아파트와 부동산 보유의 측면에서 본 ‘강남 속의 강북’이라 할 만하다. 투표 행태까지 역삼1동과 비슷하다. 이는 강남을 한 덩어리로 보았을 때에는 결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이는 서울 전체로 확대해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잠실7동 등 10개 동네를 보면 평균 84%가 집을 가진 사람이고, 아파트 거주자가 98%다. 반면 투표율이 가장 낮은 논현1동 등 10개 동네는 집을 가진 사람이 26%, 아파트 거주자가 5%에 불과하다.
 
1인가구와 (반)지하 거주자는 투표율 상위 10개 동네에서 각각 5%, 1%에 불과하지만, 투표율 하위 10개 동네에서는 43%, 17%로 높다. 투표율 상위 10개 지역의 한나라당 지지는 2004년 총선에서 57%,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76%에 달했지만 투표율 하위 10개 지역은 한나라당 지지가 각각 32%, 58%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투표율 상위 10곳과 하위 10곳의 선거권자는 각각 28만명, 29만명으로 비슷하다. 하지만 실제 투표자수는 19만명 대 13만명으로 6만명의 차이가 났다. 투표율이 낮은 동네가 높은 동네에 비해 6만표 만큼 민의가 덜 반영된 셈이다.
 
이러한 경향은 수도권 전체 1186개(실제 분석은 자료가 있는 1164개) 동네로 확대해도 똑같이 적용된다. 손씨는 이렇게 정리했다. “아파트가 많고 주택 소유자가 많은 부자 동네는 열심히 투표를 하고 대개 한나라당을 찍는다. 아파트가 적고, 무주택자가 많은 가난한 동네는 투표를 잘 안 하지만 하게 되면 민주당을 찍는다.”

 
부동산 보유 여부가 이런 투표 행태로 이어지는 데는 이사를 얼마나 자주 다니느냐가 중요 변수이다. 셋방 사는 사람들이 집 주인보다 이사를 더 자주 다닐 것임은 짐작 가능하다. 손씨가 인용한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가구의 절반 이상이, 셋방 사는 가구의 80%가 최소 5년에 한 번 씩 이사를 다닌다. 전 국민의 30%, 셋방 가구의 52%는 2년에 한 번씩 집을 옮긴다. 수도권은 더 심해서 2년이 지나면 셋방 가구의 절반을 포함해 동네 사람 3분의 1이 바뀌고, 5년이 지나면 셋방 가구의 82%를 포함해 동네 사람의 3분의 2가 바뀐다. 여기엔 뉴타운 재개발이 한몫한다. 단기간 내에 재개발로 상당수 주택이 아파트로 교체된 성동구에 지역구를 두었던 최재천 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은 “불과 4년 만에 동네가 모두 아파트로 바뀌는 바람에 선거 조직 자체가 들어갈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최 의원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2004년 성동구의 아파트 비율은 57%였지만, 그가 낙선한 2008년에는 아파트가 70%를 넘은 상태였다.
 
손씨는 “셋방 사는 사람들은 2년도 채 살지 못하고 떠나니까 내 동네라는 관념이 생길 수 없고, 따라서 지방선거든 총선이든 지역에서 벌어지는 선거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하지만 아파트와 자기 집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동네는 아파트 값을 올려줄 것이라고 믿는 후보를 찍기 위해 열심히 투표장에 나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최근 몇년간의 선거를 두고 ‘강남지역은 계급 투표(한나라당 지지)를 하는 반면, 강북지역은 계급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이미지 수준의 분석은 틀린 것이 된다. 2008년 총선 결과도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심판의 연장이라는 측면 못지않게 서울의 동네별 인구, 주택 구성이 바뀌어버린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뉴타운 재개발의 수혜자는 한나라당이었으며, 지금 같은 수도권 재개발이 계속 추진된다면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발붙이기 어렵다는 얘기가 가능하다.
 
▲어떻게 조사했나
2005년 통계청 인구주택 총조사부터 ‘타지주택 소유 여부’와 ‘거주 층’ 문항이 추가돼 자기 집을 전세 놓고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 통계가 잡히게 됐다. 손낙구씨는 이 자료를 행자부의 다주택 소유 자료, 선관위의 투표 자료와 대비하며 동네별 주택 소유 여부와 거처 종류를 나누고 투표율과 정당별 득표율을 견주어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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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계급·계층 투표’ 뚜렷 (경향, 손제민 기자, 2010-02-07 18:37:01)
ㆍ수도권 1164개 읍·면·동 ‘정치사회 지도’ 분석
ㆍ아파트 많은 동네, 투표율 높고 한나라 지지
ㆍ세입자 많은 동네, 투표율 낮고 민주당 지지

 
내 집을 가진 사람과 아파트가 많은 지역일수록 투표율이 높고, 그렇지 않은 지역일수록 투표율이 낮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또 주택소유자와 아파트가 많은 동네일수록 한나라당에 투표하고, 셋방 사는 사람이 많고 아파트 비율이 낮은 동네일수록 민주당(열린우리당 포함)에 투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돈 없는 서민들이 자신의 계급을 배반하고 한나라당에 표를 준다는 일각의 통념과 달리 유권자들이 철저한 계급·계층 투표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 손낙구씨는 다음주 출간할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후마니타스)에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1164개 읍·면·동별 주택 소유 실태와 투표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이 같은 결과를 얻어냈다. 책에 따르면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의 투표율 상위 20% 동네에서는 집을 소유한 사람 비율이 67%, 아파트 거주자 비율이 76%인 반면 투표율 하위 20% 동네들은 집을 소유한 사람이 37%, 아파트 거주자가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투표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한나라당, 낮은 지역에서는 당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득표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투표율 상위 20% 지역에서 각각 한나라당 64%, 민주당·열린우리당 27%, 하위 20% 지역에서는 한나라당 56%, 민주당·열린우리당 33%의 득표율을 보였다. 즉 집 소유, 아파트 거주 비율이 높은 동네에서 투표율이 높았고, 이 동네가 한나라당에 투표한 흐름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2004년 총선으로, 서울을 전체 수도권으로 확대해도 비슷한 흐름이 나왔다.
 
민주당·열린우리당은 무주택자 비율이 높은 동네에서 득표율은 높았지만, 한나라당에 비해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많이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한편 민주노동당 득표율은 주택 소유와 큰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뚜렷한 지지 기반이 없는 것으로 해석됐다.
 
학력과 종교도 투표 행태와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투표율 상위 20% 동네 주민의 대졸 이상 비율은 65%, 투표율 하위 20% 동네는 43%였다. 종교 인구도 투표율 상위 20% 동네의 경우 59%였지만, 하위 20% 동네는 52%였다. 이런 투표 경향은 수도권 1164개 동네를 투표율 순서에 따라 20%씩 다섯 구간으로 나눴을 때 예외없이 단계적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 통계와 역대 선거 투표 자료 등을 분석한 손씨는 “사람들이 부동산·학력 등에 따라 계층 투표를 해왔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민주당 등 야당은 한나라당을 따라갈 수 없는 뉴타운 같은 정책보다 자기 지지층이 진정으로 원하는 정책을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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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방 떠도는 이들 삶 속에 진보 해법 있다” (경향, 김종목 기자, 2010-02-07 18:24:46)
ㆍ‘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 저자 손낙구씨 
 
손낙구씨(47)가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를 구상한 것은 서민들의 실제 생활을 반영하지 못하는 진보 정치·운동의 현실과 한계 때문이었다. 손씨는 “반지하 전세·월세방을 떠돌며 사는 이들의 삶을 들여봐야 한국 사회와 정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진보 정치·운동의 대안과 해법을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목한 게 읍·면·동 단위의 동네다. 미시 분석을 하자 통념과 다른 사실이 나왔다. 손씨는 “지금까지 서민들이 부유층 지지 정당인 한나라당을 찍으면서 계급 배반 투표를 한다는 분석과 시각이 많았는데, 주된 경향은 아니었다”면서 “부유층은 열심히 계층 투표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아예 투표를 안 하거나 야당을 찍는 식의 투표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손씨는 전국의 3573개 동네 가운데 수도권의 1164개 동네를 분석했다. 손씨는 “수도권에 셋방 사는 사람들 중 80%가 2년에 한 번씩 이삿짐을 싸고, 집주인을 포함한 수도권 주민 가운데 3분의 2가 5년에 한 번씩 이사한다”면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기에 ‘내 동네’라고 여기지 못한다. 동네정치, 지방정치가 제대로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손씨는 “이 책이 정치에 국한된 책은 아니다. 어느 동네에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자세하게 나와 있다”며 “우유 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영업에 꼭 필요하겠다’면서 책이 나오면 빨리 달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1631쪽의 방대한 분량. 손씨는 “한편으로 속시원하고, 한편으로 허전하다”면서 “읍·면·동별 통계를 내느라 고생한 통계청 공무원들에게도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는 “수도권 이외 지역도 곧 분석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한국 사회를 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동산 계급사회>(2008)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손씨는 노동운동 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활동가다. 1999년부터 2004년 초까지 민주노총 대변인을 지냈고, 심상정 전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2010. 2. 12

한겨레가 손낙구 선배의 책에 관한 기사를 경향에 비해 왜 이리 적게 다루었을까 의문이 갔는데, 한겨레21에서 지면을 대폭 할애해서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 양이 많으니 더욱 심층적이다. 최장집 교수의 인터뷰도 다루었는데, 그의 논지는 손낙구 선배의 주장과는 조금 핀트가 어긋난다. 이는 최장집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사실 손낙구 선배의 분석의 한계 중의 하나는 아파트, 고학력의 투표 성향과 무주택, 저학력의 투표 성향 차이를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율로 나타낸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의 차이로 본 것이다. 물론 민주노동당의 경우 한겨레21의 기사에 나온 대로 주택 소유·아파트 거주 여부, 학력 수준, 종교 어디에서도 그 지지층 고유의 특색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그렇게 분석했을 텐데, 이는 그 동안 손낙구 선배나 진보정당 쪽에서 주장하는 바와는 어긋난다. 보수정당으로서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지층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게급투표와 연결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분석이 맞다면 민주당의 하위계급에 대한 흡수능력이 뛰어나고, 자신의 본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는 중간계급의 포용능력이 부족하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분석에 앞서 정당들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게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뭐라고 하든 손낙구 선배의 분석틀에서 보면 현재 소위 진보정당으로 간주되는 당들 중에서도 진보신당의 지방선거 정책이나 공약 등은 한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정쩡한 서민층 흡수전략이 있을 뿐 자신의 고유한 지지층을 발굴하고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부족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방선거라지만, 노동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과연 어떻게 민주당과 선을 그을 수 있을까.

 

덧붙여, 한겨레21의 관련기사를 보면 오바한 면이 보인다. 예를 들면 '진부함'에 갇힌 언어라는 대목이 그거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위건부두로 가는 길>에서 조지 오웰도 지적한 바이기는 하나, '동지'라는 언어 사용을 예로 들어 운동권적 언어 습관을 비판한다. 대중적이고 신선한 언어를 사용하여 딱딱한 진보의 이미지를 깨야 한다는 것이다. 

 

글쎄다. 분명 대중과 함께 호흡해야 하는 건 맞지만 그게 사용 언어에 대한 지적이라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언어, 담론이라는 건 지배체제의 기본토대가 아닐까. 이를 흔들지 못하는 한 기존 체제를 바꾸기는 어렵다. 대중문화와 마찬가지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일상에서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적과 싸우면서 닮아간달까. 진군, 분쇄 등의 군사용어식의 용어 대신 사용해야 하는 것이 미국식 자본주의에 물든, 자본이 제시하는 용어라면 그게 그거다. 좀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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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시민’은 가난하다 (한겨레21, 2010.02.19 제798호, 최성진 정인환 기자)
수도권 1186개 동네 투표 성향 분석한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
아파트·고학력 적극 투표하고, 무주택·저학력 ‘정치 소외’ 두드러져
 
정치로부터 소외된 계급, 이들은 ‘얼굴 없는 시민’이다. 어떤 제도권 정당도 이들을 대표하지 않는다. 이들 또한 어떤 정당에도 기대를 걸지 않는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경제·사회적 양극화가 가속도를 더해갈수록 ‘정치적 양극화’도 덩달아 심해지고 있다. 조만간 출간되는 노동운동가 손낙구씨의 책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수도권편>(후마니타스 펴냄·이하 <정치·사회 지도>)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연구서다.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1186개 동네를 대상으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비롯한 각종 통계와 2004년 총선 및 2006년 지방선거 등 최근 치러진 주요 선거 결과를 모아 분석했다. 메시지는 뚜렷하다. △부유층과 빈곤층은 자신의 계급에 따라 투표한다 △대다수 빈곤층은 투표하지 않는다 △계층 간 종교적 분화가 분명하다 등이다.
 
먼저 계층과 투표 여부의 상관관계에 대한 설명이다.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동네 10곳과 가장 낮은 동네 10곳이 있다(표1 참조). 이를테면 2004년 총선에서 양천구 목6동은 동네 유권자의 4분의 3이 투표에 참여했다. 강남구 논현1동은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투표를 포기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송파구 잠실7동은 동네 유권자의 3분의 2가 투표한 반면, 논현1동은 3분의 2 이상이 투표를 포기했다. 두 집단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투표율이 높은 10개 동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부자 동네’라는 사실이다. 84%가 자기 집을 갖고 있었다. 송파구 잠실7동과 문정2동은 동네 사람 가운데 90%가 주택 보유자다. 무주택자는 10%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투표율이 가장 높은 10곳 중 무주택자가 가장 많은 강동구 둔촌1동에서도 무주택자 비율은 27%밖에 되지 않았다. 주택 소유 여부와 함께 거주하는 주택의 종류도 계층을 나누는 주요 기준이다. 투표율이 높은 10개 동네 가운데 6곳이 100% 아파트 동네였다. 전체 아파트 비율은 98%로 나타났다. 그 밖에도 이들 10개 동네는 대체로 1인 가구(7%)도 적고 (반)지하 등 열악한 거주 환경의 가구(1%)도 드물었다.
 
투표율이 낮은 10개 동네의 사정은 정반대였다. 가구를 기준으로 했을 때 무주택자 비율이 평균 74%였다. 강남에 있지만 논현1동은 전체 가구의 75%가 무주택자이고 1인 가구 비율이 48%에 이르렀다. 역삼1동도 전체 가구의 80%가 무주택자였다. 이들 지역은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압도적으로 많고, (반)지하 주거 비율도 10~13%로 투표율이 높은 10개 동네의 평균(1%)보다 월등히 높았다. 주택 소유자가 그나마 많은 동네인 강북구 미아2동도 무주택자가 절반을 넘었다(55%).
 
주거 형태도 투표율에 따라 천양지차였다. 투표율이 낮은 10곳에 사는 사람 가운데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은 5%에 불과했다. 서민의 보금자리는 단독주택이었다. 76%가 단독주택 아니면 다세대주택에 살았다. 17%는 (반)지하나 옥탑, 쪽방에 살고 있었다. 전체의 43%가 1인 가구였다. 학력과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투표율이 높은 동네일수록 학력이 높고 종교 인구가 많았다면(64%), 반대의 경우 학력이 낮고 종교 인구 비율도 낮았다(49%).
 
투표율에 따른 주거 및 학력의 양극화는 그 범위를 518개에 이르는 서울 모든 동네로 넓혀도 비슷했다. 남승우씨는 강남구 논현1동과 역삼1동에 이어 서울에서 세 번째로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구로구 가리봉2동에서 구의원을 두 차례 지냈다. 남씨의 투표율 분석이다. “지역 주민 가운데 건설 일용직 노동자가 많아요. 하루하루 일해서 수입을 얻어야 하니까 투표에 참여하는 게 쉽지 않죠. 또 하나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좀 큽니다. 상대적으로 소득과 생활 수준이 워낙 낮아 정치를 통해 자신의 소득이 올라갈 수 있으리란 기대를 아예 하지 않는 겁니다.”
 
특히 관심을 가질 부분은 투표율과 정당별 득표율의 관계다. 결과적으로 말해 2004년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 등 두 차례 선거에서 투표를 많이 한 동네일수록 한나라당 득표율이 올라가고, 투표를 적게 한 동네일수록 민주당(열린우리당 시절 포함) 득표율이 올라갔다. 무주택자 비율이 높고, 주거 환경이 열악하며, 주민의 학력이 낮은 지역일수록 민주당 득표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교육 수준이 낮은 저소득층이 보수 정당에 투표한다는 ‘계급 배반 투표’ 이론을 뒤엎는 결과다.
 
서울의 전체 동네를 투표율순으로 나열해 다섯 묶음으로 나눠, 투표율이 가장 낮은 묶음을 1분위(하위 20%), 가장 높은 묶음을 5분위(상위 20%)라 정하면 좀더 이해하기 편하다(표2 참조). 한나라당은 투표를 가장 적게 한 1분위 104개 동네에서 가장 낮은 득표율을 보였는데, 2·3·4분위로 투표율이 올라가면서 득표율도 함께 증가하다가 투표를 가장 많이 한 5분위 104개 동네에서 최대 득표율을 올렸다. 민주당은 그 반대였다. 1분위 동네에서 가장 득표율이 높았고, 5분위 동네에서 표를 가장 적게 얻었다.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동네는 투표도 많이 했고, 민주당을 많이 찍은 동네에서는 투표를 포기한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아주 고약한 일이다. 이런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2008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였다. 당시 진보·개혁 진영이 지지한 주경복 후보는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17곳에서 이겼다. 반면 공정택 후보는 강남·서초·송파 등 이른바 강남 3구에서 몰표를 얻었다. 최종 승리는 공 후보 몫이었다.
 
서울에서 민주당 득표율이 높은 대표적 동네가 종로구 창신2동이다. 이곳에서 민주당은 2004년·2006년 선거에서 평균 56%를 얻었다. 서울에서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문제는 투표율에 있었다. 창신2동의 투표율은 2004년 60%, 2006년 51%에 그쳤다. 전국 평균 수준이거나 약간 못 미치는 결과였다. 최악은 아니었지만 ‘표밭’에서 최대한 차이를 벌려야 하는 선거의 속성상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정치·사회 지도>를 보면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도 수도권 주민의 주거 현실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수도권에 집 가진 사람의 절반은 평균 5년에 한 번씩, 셋방 사는 사람의 절반은 2년에 한 번씩 이삿짐을 싸고 있다. 전체의 3분의 2가 평균 5년에 한 번씩 이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이상 한집에 사는 사람은 100가구당 17가구에 불과했다. 손낙구씨는 “수도권에서 무주택자 비율이 평균 이상인 547개 읍·면·동에 사는 선거권자 768만 명 가운데 투표에 참가한 사람은 442만 명으로 투표율이 58%에 못 미쳤다”며 “수도권에서 투표에 잘 참여하지 않는 동네가 있다면 분명 집 없이 셋방을 떠도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가 주목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수도권 하층의 불안정한 주거 현실이 정치의식 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된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정치 공동체로서의 ‘마을’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정주 시스템이 필요하다. 복지든 교육이든, 아니면 일자리 정책이든 자기 마을에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하는데, 2년에 한 번씩 다른 지역으로 셋방을 옮겨가야 하는 현실이라면 공론 형성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가 바빠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면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배제되는 면도 있다.”   
 
이런 가운데 ‘얼굴 없는 시민’을 대변해줄 유력 정당은 없었다. 2005년 뉴타운 지구로 지정된 뒤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창신2동 사례가 그랬다. 임성수 회장의 증언이다. “2008년 4월 총선 때였죠. 내가 증거도 가지고 있는데, 그때 박진 한나라당 의원이 선거를 이틀 앞두고 막판 굳히기 작전에 들어갔어요. 그때 내놓은 게 ‘뉴타운 용적률을 높여주겠다’ 이거였습니다. 집 가진 사람들의 뉴타운 분담금을 덜어주겠다는 소리잖아요. 막말로 여기 집 가진 사람이 많습니까, 보증금 없이 월세 15만원을 주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까. 대다수 세입자를 위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대다수 세입자’에 해당하는 창신2동 주민은 정치적 요구를 조직하는 데 익숙지 못했다. 대신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는 확신을 가진 이들이 등장했다. ‘이해관계’를 매개로 똘똘 뭉쳐 투표에 열심히 참가하는 사람들이다. ‘적극 투표층’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거래’에 익숙했다.
 
강남 부유층으로 대표되는 이들에게 한나라당은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감면으로 보답했다. 2009년 세제 개편안을 내놓을 때도 정부는 서민·중산층에 감세 효과가 더 많이 돌아갈 것이라고 선전했지만,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이 국회 예산정책처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감세 혜택을 가장 많이 입는 쪽은 고소득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은 대신 저소득층 복지 정책에는 인색했다는 평가다. 2009년 12월 경기도 교육위원회가 초등학교 무상 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모두 11명인 경기도 교육위원은 전원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서울 중랑구 면목2동에 사는 이명수(55·가명)씨는 폐가전제품을 매입해 재활용업자에게 넘겨 생계를 꾸리고 있다. 1t짜리 고물차 한 대가 유일한 재산이다. 3층 다가구주택의 반지하 방 2칸에서 부인과 아들 둘, 그렇게 네 식구가 살고 있다.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는 25만원이다. 이씨가 사는 면목2동에는 9780가구 2만8517명이 산다. 이 가운데 전체의 18%인 1768가구가 이씨와 마찬가지로 반지하에 산다. 2008년 총선에서 이씨와 그의 이웃들인 면목2동 유권자는 절반 이상이 투표를 하지 않았다. 이씨는 민주당을 찍었다.
 
“우리 같은 서민을 위한다고 하니까 찍었죠. 물론 민주당이 꼭 서민을 대표한다고는 안 봅니다. 그래도 한나라당보다는 서민을 좀더 위해주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데, 반영이 안 돼 그렇지 정치에 대한 기대가 없는 건 아닙니다. 당장 우리 아들도 한 놈은 군대에 있고 한 놈은 대학생인데, 취업 제대로 하려면 중소기업을 살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대기업 중심인 한나라당보다 민주당이긴 한데, 모르겠습니다. 투표를 한다면 민주당 찍을 확률이 80%는 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바로 헌법 1조의 내용이다.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대표적 수단은 투표다. 그래서 투표율은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지표다. 2008년 4월9일 치러진 18대 총선의 투표율은 46.1%였다. 2004년 17대 총선(60.6%)에 비해 14.5%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17대 때보다 유권자가 220만 명 늘어났지만 투표에 참여한 국민은 되레 421만여 명 줄었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국민이 모두 2042만여 명이었다. 2010년 6월2일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이씨는 투표를 하게 될까? ‘얼굴 없는 시민’의 경계를 오가는 이씨에게 꼭 맞는 정당이 나타나느냐 여부에 달렸다.
 
정당 득표율과 종교의 상관관계
천주교는 한나라당 지지층 종교?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수도권편>을 보면, 수도권에서 투표율과 종교 인구 비율, 정당별 득표율과 종교 형태는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17대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서울 518개 동네를 ‘한나라당을 가장 많이 찍은 10곳’과 ‘민주당(열린우리당 포함)을 가장 많이 찍은 10곳’으로 나눠 살펴보니, 강남구 압구정1동 등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10개 동네의 종교 인구 비중은 평균 65%였다. 서초구 반포본동이 가장 높았고(68%), 강남구 청담1동이 낮았다(63%). 종교 인구 가운데서는 특히 천주교 신자(26%)가 많아서 불교(15%)는 물론 개신교(24%)까지 제치고 최대 신자 수를 기록했다. 한국 천주교 신자가 평균 11%인 것과 비교할 때, 한나라당 지지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천주교 비율은 2배 이상 높았다.
 
민주당을 가장 많이 찍은 10개 동네의 사정은 반대다. 종로구 창신2동 등 이 10개 동네의 종교 인구 비중은 50%로, 한나라당을 많이 찍는 동네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관악구 신림6동(56%)처럼 주민의 절반 이상이 종교가 있다고 응답한 지역도 있었지만, 영등포구 대림2동(44%)은 꽤 많은 차이를 보였다. 민주당이 표를 많이 얻은 지역의 주민이 선호하는 종교는 개신교(21%)였다. 불교(18%)가 그 뒤를 이었고, 천주교(10%)는 큰 차이를 보이며 처졌다. 개신교 신자 비율이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지역과 민주당을 많이 찍은 지역에서 비슷하게 높게 나타났다면, 천주교와 불교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 셈이다. 쉽게 말해 한나라당 지지층이 많은 지역일수록 천주교 인구 비율이, 민주당 지지층이 많은 지역일수록 불교 신자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를 바탕으로 “천주교가 한나라당 지지층의 종교”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특정 지역의 천주교 신자 비율과 한나라당 지지율이 상관관계를 갖는다 해도, 두 가지 사실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려면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임상렬 리서치플러스 대표는 “그동안 대체로 저소득·저학력층에서 불교 신자 비율이, 고소득·고학력층에서 천주교와 개신교 등 기독교 신자 비율이 높게 나타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특정 종교와 정당 지지층을 연결짓는 문제는 좀더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최근 천주교가 일련의 시국사건에 보인 보수적 태도로 볼 때 이번 조사 결과를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정치사회팀장은 “지난해 2월 용산 참사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국농성을 허락하지 않은 것 등 천주교의 보수화 논란을 설명할 때 유용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조사 결과를 종교계 내부에서는 어떻게 볼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핵심 관계자는 “천주교 신자 비율이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주요 성당이 서울 강남에 많이 진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과 학력을 갖춘 신도가 새롭게 편입되다 보니 ‘신도의 보수화’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는 설명이다.
 
조계종 핵심 관계자는 “1994년 이후 진보적 인사가 종단 요직에 많이 진출했다”며 “총무원 집행부와 중앙종회 핵심부에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스님들이 포진하면서 종단의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그런 가운데서도 참여정부 때까지는 정치적 균형과 중립을 많이 강조해왔다면,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종교 편향이 심해지면서 종단 내부에서도 진보 진영의 목소리가 좀더 힘을 받고 있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가 ‘정치의 양극화’를 견인했다면, 정치의 양극화는 다시 ‘종교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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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지지층 이사가고 쫓겨나고 (한겨레, 2010.02.19 제798호, 최성진 기자)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뉴타운’ 공략 답습,
지지층인 무주택자 움직일 만한 선거 전략 내놓지 못해

 
2008년 18대 총선의 판세를 가른 것은 뉴타운 공약이었다. 서울이 특히 그랬다. 뉴타운 약속의 효과는 대단히 컸다. 당시 서울 지역 당선자 명단과 그들의 공약을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서울 48개 지역구 가운데 뉴타운 공약이 등장한 지역구는 26곳이었다. 또 이들 지역구에서 뉴타운 공약으로 당선된 사람은 19명이었다. 뉴타운 열풍은 한나라당이 서울에서만 40개 지역구를 싹쓸이할 수 있었던 1등 공신으로 꼽힌다.
  
적지 않은 민주당 후보도 비슷한 공약을 내세웠다는 사실이다. 원주민 정착률을 높여야 한다거나, 공영개발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기도 했지만 포장은 똑같이 ‘뉴타운’이었다. 민주당이 뉴타운 광풍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그나마 7명의 당선자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사실 뉴타운 바람에 편승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2009년 초 용산 참사에서 드러났듯 일방적인 뉴타운 개발이 세입자의 주거 환경이나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민주당 내부에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총선 기간 내내 민주당은 뉴타운 광풍에 대해 중앙당 차원에서 별다른 원칙을 제시하지 않았다. 각 지역과 후보의 판단에 맡겼다. 후보들이야 표만 된다면 뭐든 한다는 태도를 취했다. 유인태 전 의원은 그런 행태를 두고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고백했다.
 
물론 뉴타운 광풍처럼 개발 이슈가 선거의 주요 변수로 등장할 때 이를 외면하거나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다. 개발에 대한 기대감에 따라 실제로 표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18대 총선에서 중랑을의 진성호 한나라당 후보는 중화 뉴타운 추진을 지원한다는 공약을 내세워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5선의 김덕규 민주당 후보를 가볍게 따돌렸다. 도봉갑 신지호 한나라당 후보도 비슷한 방식으로 열린우리당 의장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김근태 민주당 후보를 제쳤다.
 
문제는 뉴타운 사업에서 소외돼 있는 더 많은 무주택자를 움직일 만한 선거 전략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부유층과 저소득층이 ‘계급배반’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할 준비가 돼 있다면, 민주당 등 진보·개혁 정당이 주로 공략해야 하는 대상은 지지층인 저소득층이었다. 민주당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서울 518개 동네에서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가장 높게 나오는 곳인 종로구 창신2동 사례가 참고가 된다. 2004년 총선 때 열린우리당이 새롭게 출범하며 44%를 가져갔고, 새천년민주당은 18%를 얻었다. 둘을 합치면 62%였다. 열린우리당이 전국적으로 참패한 2006년 지방선거 때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각각 26%와 24%를 얻어, 합치면 50%대의 지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뉴타운 개발 바람이 몰아친 2008년 총선 는때 결국 47%를 얻으며 50% 선이 무너졌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는 동안 창신2동의 투표율도 함께 떨어졌다. 2004년 60%, 2006년 51%, 2008년 47%였다. 민주당 지지층이 점점 투표를 멀리했다는 뜻이다.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 등이 선거에 뛰어든 만큼 민주당에서 빠져나간 지지층이 모두 한나라당으로 옮겨간 것은 아니었지만, 민주당으로서는 ‘표밭’에서 지지층이 이탈하는 결과를 감수해야 했다. 창신2동 전체 유권자의 60%는 뉴타운이 추진되면 오히려 쫓겨나야 할 무주택자였다.
 
민주당의 반성은 2008년 총선이 끝난 뒤 시작됐다. 2009년 1월 용산 참사가 터지자 민주당은 참사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 뉴타운 및 재개발 정책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뉴타운 태스크포스(TF)단’을 발족했다. 이미경 사무총장을 위원장으로 한 뉴타운 TF에는 김희철·박영선 등 서울 지역 국회의원과 국회 국토해양위 소속 의원들이 참여했다.
 
민주당은 뉴타운 TF에서 △세입자 보호장치 강화 △소형 가옥주의 재산권 보호장치 강화 △순환형 재개발사업 추진 의무화 △공익적 재개발 확대 및 국가의 지원과 책임 강화 대책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 각 과제별로 세부 계획까지 비교적 촘촘히 세웠다.
 
출범 초기만 해도 뉴타운 TF는 재벌 건설사와 투기 세력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등 도시 서민과 세입자를 위한 대책 마련에 상당한 의지를 보였다. 같은해 2월에는 ‘뉴타운·재개발 제도개선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무분별한 개발 담론을 극복하기 위한 민주당의 노력은 당 안팎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지만 결실을 맺는 데는 실패했다. 뉴타운 TF에 참여했던 당 관계자는 “나름대로 의욕을 갖고 시작했는데, 뉴타운 국회 특위 구성 등에 대해 한나라당이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여야 간 협상이 잘 안 됐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뉴타운 TF는 그 이후 다시 잠잠해졌다. 초기의 의욕과 호응을 정치적 성과로 이어가는 데 미숙했던 것이다. 이것이 18대 총선 이후 민주당이 ‘지지 계층’을 위해 본격적으로 머리를 맞댄 최초이자 마지막 시도로 평가된다.
 
최근 교육 및 일자리 부문의 정책 비전을 담은 뉴민주당 플랜이 속속 발표되고 있지만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도 실천 계획이 의심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당 지지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저소득층 대책이 미흡한 사실도 눈에 띈다. 개혁 성향인 최문순 의원은 1월25일 뉴민주당 플랜 총론과 교육정책이 발표된 직후 “지난 10년간 심화된 빈부 격차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민주당이 새로운 수권 세력이 되려면 분배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까지 이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남은 기간 민주당이 지지 계층을 위한 획기적 아이디어를 내놓을 확률은 그렇지 못할 확률보다 높아 보인다. 만약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으면 하던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서울 지역 구청장 선거를 준비하는 민주당 관계자는 말했다.
 
“1인 가구를 포함한 저소득층이 주요 지지층이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찾아가도 만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사를 자주 다니기 때문에 지역 현안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공식적인 선거운동 기간은 짧고 공략해야 할 유권자는 많은데, 그렇다면 투표 참여가 불투명한 80%의 유권자보다 투표에 고정적으로 참여하는 나머지 20%의 여론 주도층을 상대로 선거전을 펼칠 수밖에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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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정당, 계급색이 없네 (한겨레21 2010.02.19 제798호, 조혜정 기자)
주택 소유·아파트 거주 여부, 학력 수준, 종교 어디에서도 진보 정당 지지층 특색 안 보여
 
지난 10년 동안 겪었던 진보 정당의 이런 부침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노동운동가 손낙구씨는 민주노동당이 계층적 지지 기반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지자의 경우 부자·고학력층은 한나라당, 서민·저학력층은 민주당이라는 구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지지층은 자산·거주형태·학력 등 계층별 특성과 정당 지지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
 
손낙구씨의 저서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수도권편>을 보자. 2004년 총선에서 서울·경기 등 수도권 읍·면·동 1164곳에서 민주노동당이 얻은 평균 득표율은 13%였다. 이 가운데 평균 이상으로 민주노동당에 지지를 보낸 동네는 501곳(평균 지지율 15%)인데, 이들 지역 거주 가구의 56%가 주택 소유자다. 반대로 민주노동당 득표율이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동네 663곳(평균 지지율 11%)의 주택 소유자는 55%다. 주택 소유자 비율이 거의 같다. 거꾸로 주택 소유자의 비율이 수도권 평균인 56%보다 높은 617곳에서 민주노동당의 득표율은 전체 평균 득표율과 같은 13%였다. 주택 소유자 비율이 평균보다 낮은 547곳의 득표율은 14%였다. 민주노동당을 많이 찍은 곳이건 적게 찍은 곳이건 주택 소유자 비율은 별 차이가 없고, 집을 가진 사람이 많건 적건 민주노동당 지지율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서민층 분포와 관련 있는 지표인 1인 가구와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 비중으로 따져보면 어떨까? 민주노동당을 평균보다 높게 지지한 501곳과 평균 미만으로 지지한 663곳의 1인 가구 비중은 19%로 같고, 지하·반지하 가구 비중은 각각 8%와 10%로 2%포인트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또한 지하·반지하 가구가 수도권 평균보다 많은 498곳과 평균보다 낮은 555곳에서 민주노동당에 보낸 지지율에도 차이가 없다. 서민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도 민주노동당에 ‘유별난’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는 말이 된다.
 
이런 현상은 아파트 거주 여부, 학력 수준, 종교, 투표율 등의 변수로 분석해도 마찬가지다. 계층적 특성과 민주노동당 득표율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는 이런 현상은 2004년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에서 반복됐다. 달라진 건 서울에서 3%포인트, 인천에서 2%포인트씩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빠졌다는 것뿐이다.
 
민주노동당 당직자 출신의 한 인사는 그 이유를 이렇게 풀이했다. “2004년의 높은 득표율·지지율은 ‘탄핵 후광 효과’와 민주노동당이라는 ‘새로운 정치 상품’에 대한 기대에 크게 힘입었다. 이후 지지율이 하향 곡선을 그린 건, 이런 거품이 빠진데다 진보 정치를 맛보게 해달라는 기대감을 당이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민주노동당 지지율은 민주당(참여정부 당시 열린우리당) 지지율과 동반 상승하거나 동반 하락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2004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 역시 2006년 지방선거에선 지고 말았다. 민주노동당 내 일부 세력조차 창당 시기엔 ‘시기상조론’을 근거로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주장했을 만큼, 두 당의 정체성 차이는 크지 않은 것으로 비쳤다. ‘보수 세력’으로 확고히 자리잡은 한나라당에 반대한다는 명분이 같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개혁 세력’이 잘 하면 ‘진보 세력’도 따라 지지받고, 못하면 같이 비판받는 상황이 전개됐다. 문제는 민주당에 비해 민주노동당의 지지기반은 확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원내 진출 2년 동안 민주노동당은 지지층이 누구인지,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파악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지지층 이탈을 불러왔다는 진단이다.   
 
물론 고민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2007년 초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당이 원론에만 맴돌 뿐, 서민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당 정책을 구체화하지 못했다. 서민 생활 속으로 더 들어가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현장과 당 활동을 일치시켜야 한다”며 ‘반성과 청산’을 주장한 바 있다. 노회찬 당시 의원도 “당장의 현실이 버거운 사람, 월소득 150만원 이하의 사람들 사이에서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한나라당에 밀린다. 비정규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민들에게 희망을 못 주고 있다”는 지적을 반복했다. 하지만 ‘실천’은 뒤따르지 않았다. 건강한 리더십도 구축되지 못했다.
 
조현연 진보신당 정책위의장(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부소장)은 저서 <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에서 “‘좋은 정치’의 실현이란 민중들의 삶의 문제를 구체적인 정책 대안으로 조직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파라는 이름의 ‘운동권 동창회’ 집합소였던 민주노동당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민주노동당은 ‘대중 정당’이 아니라, 자주파(NL)와 평등파(PD)가 노선 투쟁이나 당내 소권력 투쟁을 벌이는 ‘운동권 단체’였다는 통렬한 비판이다. 자기 정파의 지지를 얻어 주요 당직을 맡거나 정파의 세력을 확장하는 데 골몰한 나머지 ‘보통 사람’의 생각과 동떨어진 일들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민주노동당이 국가 비전으로 내세운 ‘코리아 연방공화국’ 논란이다. ‘코리아 연방공화국’은 경제가 최대 화두였던 20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발표한 공약이었다. 다수파인 자주파의 목소리가 관철된 결과였다. 평등파는 “통일보다 자녀 교육비나 돌아오는 카드 결제일이 더 큰 관심사다. 현 단계의 통일은 떡도 밥도 아니다”(조승수 당시 진보정치연구소장)라고 반발했다. 언론은 ‘코리아 연방공화국’의 내용보다 두 정파의 다툼을 보도하는 데 열을 올렸다. 당연히 ‘표’를 쥔 대중의 관심에선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지적엔 민주노동당도 공감한다. “소외된 계층에 관심을 갖지 못한 채 내부 정파 갈등, 내부 정치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서 원내 진출이라는 하늘이 준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게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위원장의 얘기다.
 
운동권만의 관심사에 골몰한 건 분당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명박 정권 퇴진 운동’을 당론으로 확정한 민주노동당 방침을 놓고선 핵심 당직자조차도 “황당하다. 정당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라면 정책으로 승부하고 선거에서 심판받아야지…”라며 혀를 찬다. 진보신당은 “새로운 진보, 진보의 재구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재벌 비판에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뻔한 원인과 대안을 내놓는 데 그치고 있다고 지적받는다. 어느 쪽도 서민이 믿고 의지할 대안 정당, 찍으면 내게 이익이 될 정당이라는 믿음은 주지 못한 채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진보 정당은 지역에서 주민의 삶과 호흡하는 데도 서툴렀다. 박용진 진보신당 강북구위원장은 두 당 모두를 비판했다. “당원은 집회 때 ‘머릿수’를 채워주는 존재밖에 안 됐다. 당이 지역 주민들이 뭘 원하는지 늘 귀기울이고, ‘손에 잡히는 복지정책’을 제시할 수 있었다면 진보 정당이 이렇게 힘들어졌을까? ‘우리가 당신들 편입니다, 입당하세요’라는 ‘5천원(최소 당비)의 신뢰’조차 만들지 못한 정당이 무슨 진보 정당이냐.”
 
진보 정당엔 미래가 없는 걸까? 대선 이후 분당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당원들의 선택은 크게 네 가지였다. 남아 있거나, 떠나 진보신당·국민참여당으로 옮겨가거나, 아예 정당에 가입하지 않거나. 다들, 대중 정당으로 길을 잡지 못한 결과물인 분당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서민의 이해를 진짜로 반영해줄 진보 정당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무당파’로 남은 광주의 전 당원은 “진보적 가치를 대중적으로 얘기할 수 있게 된 건 민주노동당 활동의 큰 성과다. 이젠 그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도부의 복잡한 셈법과 달리 당원 혹은 당원 출신들은 이번 지방선거가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정책에 기반한 선거 연합을 통해 ‘진보 정당표 정책’을 국민이 경험하도록 하고, 실력을 인정받으면 한발한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기대가 현실이 될지, 꿈에 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건 살아남으려면 이겨야 하고, 이기려면 자신들이 누구의 대리인인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점이다. 기러기떼의 선두는 뒤따르던 기러기들이 자기가 가는 방향과 조금 떨어진 방향으로 이동하면 즉시 그 쪽으로 이동해 앞장선다고 한다. ‘20 대 80’ 사회인 이 땅에서 80%가 과연 어디를 보고 있는지, 진보 정당이 다시 살펴야 할 때가 아닐까.
 
‘진부함’에 갇힌 언어
‘님’도 ‘씨’도 있는데 왜 굳이 ‘동지’?

 
“투쟁, 진군, 사수, 분쇄…. 이런 진부한 표현들에 갇히지 않을 때 상상력이 나온다. 흔히 노동자를 ‘세상을 바꾸는 존재’라고 한다. 그 세상을 바꾸는 존재가 자신은 얼마나 바꾸었나. 좀 세련되게, 그리고 전복적으로 바꿀 생각은 없단 말인가.” 고경태 전 <씨네21> 편집장은 자신의 책 <유혹하는 에디터>에서 진보 진영의 딱딱하고 상투적인 언어 문제를 지적했다. 미국 68운동 때 민주사회학생연맹(SDS) 지도자로 “웃음은 우리의 정치적 깃발”이라는 말을 남긴 제리 루빈을 인용하면서 그는 진보의 언어가 재기발랄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진보 진영, 특히 대중 정당을 표방하는 진보 정당의 경직된 ‘운동권 용어’는 대중이 진보 정당에 거리감을 느끼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지적된다. 생존권·동지·투쟁 같은 낯선 말이 밥·친구·싸움 같은 ‘일상의 언어’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이런 용어는 진보 정당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는 유용할 수 있지만, 대중에겐 ‘구별짓기’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2004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데는 TV 토론회 등에서 “불판을 갈아엎자”는 등 신선한 언어로 딱딱한 진보의 이미지를 깬 게 크게 작용했다.
 
김기주 민주노동당 의정기획실장은 “쉬운 말, 일상적인 말을 쓰려는 노력은 많이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운동권과 관계있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쉽게 바뀌진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심상정 진보신당 경기지사 예비후보 캠프의 김성희 공보실장도 “진보 정당은 국민들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정치 영역이자 개념이기 때문에 일상의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진보 진영 안에서 ‘우리는 다르다’는 자의식이 강한 것도 ‘운동권 용어’를 고치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언어는 생각의 집’이란 말이 있듯, 오랫동안 유지해온 생각의 틀과 언어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나마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일이 많은 국회의원이나 유명 정치인은 ‘단련’될 기회가 많기 때문에 나은 편이다. 하지만 정책을 만들고 연설문 따위를 준비하는 실무자들은 그렇지 않다. 이 때문에 진보 정당 주변에선 “대통령 문서는 17쪽을 넘기는 일이 없지만, 진보 정당 문서는 최소한 170쪽”이란 우스개도 나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도 없다. 관건은 얼마나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노력하느냐가 아닐까. 민주노동당 출신의 한 인사는 “축약어·은어 같은 운동권 용어 100개 가운데 98개는 안 쓸 수 있다. ‘님’도 있고 ‘씨’도 있는데 왜 굳이 ‘동지’냐. ‘투쟁’이란 말은 들어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며 “가급적이면 쉽고 일상적인 말, 적어도 어렵더라도 몇 번 들으면 친숙해지는 말을 의식적으로라도 골라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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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투표자를 대변할 차이를 만들어라” (한겨레21 2010.02.19 제798호, 최성진 기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인터뷰
“대연합에 앞서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는 영역을 찾아야”

 
선거 경쟁과 수의 힘을 핵심 원리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민중이라 불리는 시민의 다수는,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여러 제도적 메커니즘을 통해 자신의 삶의 조건이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면 사회복지에 친화적이고 노동통합적인 생산·분배 체제가 발전할 가능성이 다른 체제에 비해 훨씬 더 크다. 그런데 한국의 민주주의가 절차적 차원에서 공고화되고 제도적 차원에서 안정화 수준이 높아졌음에도, 왜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데는 무기력한가?
 
2006년 나온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민주주의의 민주화>는 이런 물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5년 전 최 교수가 지적한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는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수도권편>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최 교수가 민중이라 부른 시민의 다수는 정치를 통해 자신의 삶의 조건이 나아지리라고 기대하기보다 투표 불참을 선택하고 있었다. 학력과 소득이 낮고 주거가 불안정해 자주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으며 투표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계급적 정체성을 배반하지 않은 이들 정치 소외계급에 대한 최 교수의 견해를 들어봤다.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에선 자산소득·학력이 높은 사람이 한나라당을 찍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투표하지 않는 ‘정치적 양극화’가 드러난다. 이런 현상은 저서 <민주주의의 민주화>에서도 지적한 바 있는데.
=정치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느냐를 이해하는 데 투표율만큼 좋은 지표는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87년 민주화 이후 20여 년 동안 투표율이 대선, 총선, 지방선거, 재·보궐 선거 모두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이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2007년 대선 투표율은 63%다. 투표 안 한 사람이 40% 가까이 된다. 이명박 정부는 투표한 63% 가운데 절반도 안 되는 표로 들어섰다. 정치적으로 보면, 유권자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사람의 지지로 대통령이 돼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3분의 2까지 통치하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이슈마다 전쟁을 치르듯이 싸우고, 이명박 정부가 반민주적이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어떻다고 하지만, 이건 어찌 보면 ‘허상’이다. 투표한 사람들만의 정당 선호로 싸우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투표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 즉 정치적으로 대표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괴리와 균열이다. 투표하지 않은 사람은 (정치적 선호가) 개표되지 않았고, 그 많은 시민이 뭘 요구하는지 표출되지 않았다.
 
이 투표하지 않은 사람, 즉 ‘얼굴 없는 시민’이랄까 ‘침묵하는 다수’의 소리가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를 통해 드러났다. 자산소득, 대학 졸업 여부, 종교라는 세 가지 변수는 일차함수적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집 가진 사람, 대졸자, 종교 인구가 많을수록 한나라당 지지도 높다. 반대의 경우엔 투표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주택과 먹고 사는 문제에서 기존 정당이 자기들의 이익·요구·의사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투표하지 않는 사람도 적극적 불참자와 소극적 불참자로 차이가 있지 않나.
=투표해봤자 별다른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전망 때문에 투표를 하지 않는 게 적극적 불참자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게 소극적 불참자다. 하지만 차이는 애매하다.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에선 자산소득과 주거 형태를 중심 변수로 봤는데, 1인 가구, 지하·반지하 가구, 전·월세로 사는 사람들의 투표율이 낮다는 얘기는 내용적으로 이들이 비정규직 등으로 고용 조건이 나빠 투표일에 투표하러 가기 쉽지 않다는 거다.
 
-선거제도 측면에서 투표율이 낮은 이유를 분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역할에 비판적이다. 민주주의에서 국가가 선거를 관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게 가능하지도 않다. 정당 사이의 합의로 제도를 만들고 정당이 (선거를)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돈 안 드는 선거’, 즉 정치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정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됐기 때문에 정당 역할이 축소되기도 했다. 선거에서 대중과 접촉하기도 어렵고, 정당은 대중과 제대로 소통이 안 되게 됐다.
 
-정당 간 협의를 통해 선거제도를 만들면 정치의 효율성·생산성이란 가치가 선거제도에 반영되지 않을 수 있나.
=효율성·생산성은 경제적인 말이다. 정치도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게 필요하지만, 정치의 가치는 시민의 소리를 제대로 대표하고, 대표된 소리를 좋은 정책으로 만들어 시민에게 기여할 수 있느냐에 있다. 정치가 효율성·생산성이라는 가치로 이해되면 정치는 경제적 가치에 종속된다. 경제는 시장이나 생산체제처럼 정치와는 아주 다른 수준에서 발생하는 현상 아닌가. 그렇다면 시민의 소리는 어디서 대표돼야 하고, 민주주의는 뭐냐는 근본적인 문제를 던질 수 있다.
 
-그런 현상을 ‘정치의 신자유주의화’라고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해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 같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민주적인 역량이고, 독자적 역할과 지평을 갖고 있다. 그래야 경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관리하고,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정치와 경제가 연동돼서 움직이면 정치는 축소되거나 소멸해 민주주의의 가치가 위협받는다.
 
민주주의가 반드시 사회정의와 평등의 가치를 구현하는 체제라는 것은 오해다. 시민이 직접 통치하는 게 아니라 대표를 선출해 통치하기 때문에 시민의 요구와 선거 결과, 그 대표가 결정한 정책 내용 사이에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표들이 시민의 생각이나 요구와 동떨어진 정책을 펼 수도 있지만, 그게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얘기할 순 없는 거다. ‘지금은 절차적 민주주의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최상층을 대표하는 이명박 정부가 무슨 민주주의냐’고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선거를 통해 대표로 뽑혔기 때문에 엄연히 민주적이다. 그들이 아무리 정의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다수가 생각한다 하더라도 엄연히 민주주의다.
 
그래서 정당이 중요하다. 정당의 내용이 어떠냐에 따라 사회·경제적으로 좋은 정책이 나오고, 투표한 사람의 요구에 일정하게 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이 나쁘면 나쁜 결과도 나온다. 용산 참사 장례식에 야당 정치인이 참석해 애도한 것까진 좋다. 하지만 ‘이벤트’다. 아니라면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부의 재개발 정책, 토지 정책, 도시계획에 대해 야당으로서 정책 대안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 민주당이 아무리 이명박 정부를 비판해도 그 진정성을 믿을 수 있나? 민주당 집권 때도 비슷한 일을 했잖나. ‘과거에 우리가 이렇게 했는데 잘못됐고, 이명박 정부는 더 잘못됐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저렇게 하겠다’고 얘기하지 않는데, 저 사람들이 집권한다고 나아질 게 뭐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야당은 민주 대연합 구도로 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민주 대연합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 그건 ‘반이명박 정부 연합’이다. 어떻게든 이명박 정부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조급함과 성급함의 발현이다. 이명박 정부는 반민주고 반대 쪽은 민주라고 정의하기 어렵다. 또한 ‘대연합’은 정치적으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여러 사회 세력의 대연합이어야 하는데, ‘반이명박’이 너무 강조된 나머지 다양한 사회집단이 정치적으로 세력화하는 것의 의미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대연합은 필요하다. 하지만 민주 대연합은 양당 체제적 경향이고, 소수의 이익을 억압하는 결과를 낳는다. 소수의 이익이 대변될 여지를 열어놓고, 그 위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안을 만드는 과정이 우선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당 간의) ‘차이’를 먼저 만드는 게 대연합보다 중요하다. 대연합도 차이에 기초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은 영역을 찾아, 투표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투표장으로 끌어내느냐가 관건이다. 투표라는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사람들의 요구를 귀담아듣고 반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수를 만들 수 없다. 그동안 정치학자·평론가·정치인들이 정치현상을 설명할 때 지나치게 담론 중심으로 이슈를 따라 유행하듯 하는데, 이런 걸 그만하고 우리 사회 현실을 직시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번 연구 결과가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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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계급을 가르더라…순간 소름이 돋았다” (한겨레, 이세영 기자, 2010-02-11 오후 02:29:15)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 펴낸 손낙구씨
지지정당 선택 부동산자산따라 갈려
전통적 계급정치 모델과 차이 드러내
 
손낙구(49) 전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은 최근 <대한민국 정치 사회 지도>(후마니타스)라는 수도권 지역사회 연구서를 내놓았다. 분량이 1600쪽이 넘는다. 수도권 1186개 동네(읍면동)의 사회지표를 백분률로 환산해 정리하면서, 주민들의 정치적 선택이 자산(주택)·학력·종교 같은 사회경제적 변수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파헤친 역작이다. 그 전언 가운데 하나는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동네일수록 주택소유자와 고학력자가 많은 반면, 민주당을 많이 찍은 동네는 무주택자, 저학력자가 많다는 사실이다.
 
-분석 작업 전 이런 결과를 예상했나.
“엑셀 출력지를 뽑아든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막연히 추정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떤 사실이 그리 충격적이었나.
“서울에서 한나라당 득표율이 높은 동네 열 군데를 추려봤더니 주민 10명 가운데 8명이 자기 집을 갖고 있고, 9명은 대학 이상을 나온 사람인 반면, 민주당 득표율이 높은 동네들은 집 가진 사람이나 대학 나온 사람이 10명 가운데 4명이 채 안 됐다. 이거야 말로 주택을 매개로 진행 중인 ‘계급의 지역적 구조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손 전 실장의 작업은 한국에서 소득보다는 자산, 그 중에서도 부동산 자산이 사회정치적으로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유권자가 노동자인지 자본가인지, 노동자라면 생산직인지 사무·관리직인지, 소득은 또 얼마나 되는지 등의 차이보다 자기 집이 있는지 없는지, 다주택자인지 아닌지 등의 차이가 지지정당을 가르는 데 한층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손 전 실장의 분석결과는 전통적인 계급정치 모델에서 이탈하는 한국적 특수성을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책의 함의대로라면 한국에서 전통적인 계급구획이 정치적 의미를 갖긴 어려울 것 같다.
“단정하긴 이르다. 다만 앞선 책 <부동산 계급사회>에서 이야기하려 했던 것처럼 소득이나 금융자산보다는 주택 자산의 많고 적음으로 집단을 분류하는 게 한국에서 강한 설명력을 갖는 것은 분명하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다수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주택소유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집단 아닌가.
“지방은 특히 그렇다. 이번에 경기 화성(쌍용차가 있다)을 눈여겨 봤는데, 민주노총 조합원이 많은 대공장 지역이라 해서 결과가 다르게 나오지 않았다. 조합원 여부가 투표행위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얘기다. 변수는 역시 집이다.”
 
의아한 점은 손 전 실장이 애초 투표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변수로 주택·학력·종교 세 가지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계급에 기반한 투표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되어온 것이 출신지역이란 사실을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출신지역은 왜 변수로 안 다뤘나.
“불가능했다. 데이터로 활용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센서스) 자료에는 출신지 구분이 아예 없다.”
 
-서울·수도권 역시 출신지에 따른 투표경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통계를 돌려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나 역시 궁금하다. 추측컨대 출신지역과 계층이 상당부분 겹치게 나오지 않을까. 일선에서 선거를 치르며 느꼈던 문제이기도 한데, 호남 출신 가운데 무주택·빈곤층 비율이 높고, 영남 출신에선 주택소유·부유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게 사실이다. 이 문제로 최장집 교수와도 얘기를 나눠봤다. 최 교수도 얘기하더라. 조사해보진 않았지만 상당부분 겹칠 거라고.”
 
통계 전문가들은 손 전 실장의 분석이 지닌 방법론적 맹점을 꼬집기도 한다. 투표행위의 결과(정당득표율)에 따라 전체를 5개 집단(분위)로 배열한 뒤 각 분위별로 주택소유·학력·종교 등 변수들의 변화 추이를 살피는 방식으로는 어떤 변수가 얼마 만큼 실제 투표 행위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엄밀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변수들 상호간의 간섭을 통제하는 것이 필수다. 회귀분석 같은 전문 통계기법이 동원되는 이유다.
 
-회귀분석 기법을 쓰지 않은 이유는.
“내가 사회과학 전공자가 아니지 않나.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위까지만 가보자고 생각했다. 사실 회귀분석처럼 정교하게 들어가면 이번 것처럼 눈에 확확 들어오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장담은 못하겠다.(웃음)”
 
-연구자들 가운데 데이터에 욕심을 내는 사람이 적지 않을텐데.
“분석에 활용한 읍면동 단위 센서스 자료는 국회 보좌관할 때 입수한 공공자산이다. 독점할 이유가 없다.”
 
-연구 지역을 확장하거나 분석을 좀더 심화시켜볼 생각은.
“숫자니 통계니, 징글징글하다. 깊은 연구는 전문가들 몫이다. 난 본업인 노동운동사 연구나 하련다.(그는 올해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책에는 지역변수와 정당선호의 관계 못잖게 시선을 잡아끄는 게 있다. 투표율이다. 분석에 따르면 투표율이 낮은 동네는 예외없이 무주택자, 1인가구, (반)지하 거주자, 저학력자의 비율이 높다. 왜 가난한 동네 사람들은 투표장에 가지 않는가. 원인이 무엇이든 분명한 것은 가난한 자들이 민주주의 이전 사회가 그들에 부과했던 위치, 곧 정치라는 공적 공간에의 참여가 배제된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다수 대중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관철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이런 현상이야말로 랑시에르가 말한 ‘인민 없는 민주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그렇다면 정작 경각심을 가져야할 대목은 ‘계급의 지역적 구조화’나 ‘계급과 정치적 선택의 불일치’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적으로 뿌리뽑힌 자들의 다수가 ‘정치’라는 영역의 분할선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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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출간은 사건이다" (레디앙, 2010년 03월 11일 (목) 16:28:47 최장집)
[서평] 손낙구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다른 각도 노동문제
 
1. 들어가는 말
오늘(3월 10일) 출판기념회는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많이 있는 출판기념회와는 다르다. 시간적으로는 비슷하지만, 손낙구씨의 저서 『대한민국정치사회지도』를 위한 출판기념회는 색다르다. 일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진 정치인의 저서를 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학계에서 직업적인 학자들이 쓴 저서를 기념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가 그동안 노동운동에 전념했던 노동운동 활동가였고, 진보정당의 중심 활동가였다는 사실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직업적인 정치학자의 한 사람인 저로서는 많은 느낌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이 책이 담는 중심 문제들은, 직업적인 정치학자와 사회학자들에 의해 많이 그리고 체계적으로 수행됐어야 할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한국사회의 중심 문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학계의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직업적인 학자/연구자들이 아닌 노동운동과 현실정치에서 활동하던 사람에 의해 행해졌다는 점은, 저를 포함하여 대학에 몸담고 있는 직업적인 학자들에게 하나의 도전이자, 충격으로 느껴진다. 
 
2. 연구의 정치(학)적 중요성
오늘날 한국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 한국정치의 최대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집약하는 지표로서 극도로 낮은 투표율이다. 평등한 정치참여의 권리가 1인 1표의 투표권을 통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실천되는가? 그와 아울러 정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의 제도와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이러한 문제를 가장 잘 판별할 수 있는 지표로서 투표율 문제인 것이다.
 
또한 한 사회의 정치질서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와 믿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민주주의가 얼마나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가장 단순하고도 정확한 지표 역시 투표율이다. 민주화 이후 87/88년 대선/총선에서 각각 89.2%와 75.8%이던 것이 그로부터 20년 뒤 2007/8년 대선과 총선에서 63%와 46.1%를 기록하면서 30% 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이렇게 낮은 투표율은 유럽은 물론 일본과도 비교될 수 없고, 선진국 가운데 가장 투표율이 낮은 것으로 알려진 악명 높은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를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한국에서 사람들은 왜 투표하지 않나? 민주화가 된 지 20년 남짓 된 신생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왜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투표율이 낮나? 민주화 이후 투표율이 그 어느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유례를 찾기 어렵게 지속적이고 가파르게 떨어졌나?
 
이들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정치학자들의 최대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손낙구의 연구는 이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가 가졌던 어떤 연구 결과보다도 더 종합적이고 확실하게 그 해답의 윤곽을 제시하고 있다.
 
이 연구는 모든 집을 방문 조사한 전수조사 결과에 의거한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자료를 중심으로 여러 통계 자료 동원한 것으로, 이를 분석한 자료의 방대함과 변수들(주택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자산의 크기)의 현실정합성은 특기할 만한 것이다. 특히 읍면동 수준까지 내려간 전수조사에 따른 집합자료는, 응답률이 지극히 낮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방법에 의거한 연구들 혹은 기존의 관행이었던 시군구 단위의 조사결과에 의거한 연구들이 갖는 한계에 비해 훨씬 정확하고 포괄적이라는 강점을 가진다.
 
손낙구의 연구는, 지금까지 여러 정치학자들의 단편적인 연구들을 훨씬 뛰어넘는 업적이며,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못하고, 이루지 못했던 개척적인 연구로 높이 평가된다. 이 연구 결과는 너무나 방대하고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그로부터 발생하는 여러 중요 문제들에 대해, 그리고 통계기법을 사용하여 더 많은 문제들에 해답을 줄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한국정치와 민주주의 연구에 있어 연구지평을 넓게 열어줄 것이다. 
 
3. 연구의 사회(학)적 중요성
손낙구의 『대한민국정치사회지도』의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주택/부동산 문제를 중심으로 한 정치경제학적 의미뿐 아니라, 주거환경을 중심으로 한 인간의 삶의 조건을 규정짓는 도시사회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손낙구의 연구가 발견한 것은, 전체 국민의 30%, 셋방가구의 52%가 2년에 한번 씩 이사를 다니고,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 셋방가구의 80%, 그리고 수도권은 더 심해서 전체의 65%, 셋방 사는 사람의 82%가 5년에 한번 씩 이사를 간다는 사실이다. 
 
수도권 인구의 35%, 셋방가구의 54%는 2년에 한 번씩, 즉 2년이 지나면 셋방가구의 절반을 포함해 동네사람의 1/3이 바뀌고, 5년이 지나면 셋방가구의 82%를 포함해 동네사람의 2/3가 바뀌는 셈이다. 이래가지고는 제대로 된 지방자치는 고사하고 회사나 직장에서 사원들의 주소록을 만들기조차 어렵다. 물질적 자산의 측면에서, 주택소유가 불평등을 만들뿐 아니라, 공동체와 인간관계의 유기적 구조를 해체하고, 인간의 정신적, 정서적 안정성에 기초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조건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참으로 폭력적인 환경이 주는 긴장과 불안, 개개인의 삶의 불안정성은 여러 개인적, 집단적 수준에서 정신적, 사회병리적 현상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저는 이런 점들이 이 연구결과가 사회학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4. 무엇이 이런 업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나? - 열정과 열정의 억제
앞에서 저는 직업적인 학자가 아닌 사람에 의해 수행된 연구가 놀라운 업적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연구자는 노동운동과 정치영역에서 부여된 역할을 하는 것이 그의 생업이고 사회적 역할이었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도 않고, 대학이나 연구소와 같은 데에 몸담고 있는 직업적 학자/연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연구비의 혜택을 받지도 못했다.
 
이 책의 출간으로부터 받는 혜택은 출판사에서 받을 인세가 전부일 것이다. 나아가 1,660 쪽에 달하는 책의 규모가 말하듯이 연구규모의 방대함으로 인하여 이 정도의 규모는 혼자서 하기가 어렵다. 요즘 학계에서 연구자/학자들이 하는 일반적인 방식대로라면, 연구팀을 구성하고, 프로젝트를 만들고, 연구비를 받아 공동으로 하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연구비도, 아무런 공동연구자도 없이 혼자서 이를 수행했다. 이것이 저자로서의 손낙구를 완전히 다르게 볼 수 있게 하는 요소다. 손낙구의 방대한 연구결과를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은, 모로하시 테츠지(諸橋轍次, 1883-1982)라고 하는 일본의 위대한 한문학자다. 그는 36년간 노고의 결과로 만들어진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 13권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사전은 지금까지 나온 한문사전 가운데 가장 크고 완벽한 사전으로, 한문을 하는 사람은 필수적으로 참조하는 사전이다. 벌써 십수 년은 족히 지났지만 하버드 대학교에서 이를 영역하기 위해 수백만 불짜리 프로젝트를 만들어 작업을 진행하다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얘기 들은 적이 있다.
 
모로하시는 인문학자이지만, 또한 손낙구와 유사한 정치사회학적 영역에서 19세기 말 런던의 빈곤실태를 조사 연구한 찰스 부스(Charles Booth. 1840~1916)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리버풀의 유명한 상업 부르주아지로, 부유한 상인이고 선박 소유주였던 그는 평소 보통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데 상당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급진파들이 런던의 빈곤상태를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얼마나 진실인가 직접 조사해보기로 결심했다.
 
런던 빈민지구인 동부지역의 골목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모든 거주자들을 조사하다가, 직접적인 방법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바꾸어서 자료 수집을 끝냈다. 그는 총 17권의 조사보고서를 완성(1901~1902)했다. 그의 연구는 영국에서 경험적 사회학을 개척했고, 1908년 영국 노년연금 도입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무엇이 혼자서 이런 엄청난 작업을 하도록 했나? 무엇이 손낙구로 하여금 이런 연구를 하도록 만들었나?
 
저는 그것을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열정 없이는 이러한 작업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열정이 무언가 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것은 제어되고 정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사회의 부정의를 보거나, 인권이 유린된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빈곤과 노동 현실이 참담하여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때, 우리 안으로부터 열정이 발동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열정이 현실을 바꾸거나 어떤 것을 이루어낼 수 있기 위해서는 이를 절제하고 정련하는 내적 힘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것은 한낱 정서적으로 급진적이 될 뿐이다. 열정을 갖는 사람은 많으나 내적 통제력으로 절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저자 손낙구는 한국사회에서 누구보다도 부동산 자산의 정치경제가 만들어내는 생활조건과 주거환경의 실상을 밝히는데 그의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것이 한국사회의 불평등의 핵심적 요소이며, 노동자들, 사회 소외계층들의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 핵심적 문제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의 연구가 말하는 핵심적 문제의 하나는 노동문제와 주택문제로 표출되는 부동산 자산의 불평등 구조는 직결돼 있다는 점이다. 즉 그것은 다른 각도에서 접근된 노동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연구를 통하여 노동문제는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 그것이 밖으로 표출되지는 않았지만 강렬한 열정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이 그동안 학계에서 누구도 하지 않았던 거대한 작업을 만들어내게 했던 힘이라고 생각한다. 
 
5. 연구의 결과가 말하는 것
손낙구의 연구가 말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정치적 갈등구조의 양극화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인 정치언어나 레토릭, 정치적 슬로건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에서의 양극화다.
 
한국사회의 중심적인 갈등구조는 다른 것이 아닌, 대표된 영역과 대표되지 않은 영역간의 갈등, 즉 사회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중산층 이상의 제도 내로 통합된 사회계층과 서민으로 통칭되는 제도 내로 통합되지 못한 노동자, 사회적 약자, 소외세력 간의 갈등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을 경험적 자료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후마니타스>의 박상훈 박사의 간결한 표현처럼 한국사회에서 제1당은 유효 투표자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무당파,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제2당은 한나라당, 3당은 민주당 등이며, 이것이 갖는 함의는 크다.
 
오늘날 정치 갈등은 대결적이고 격렬하게 공격적인 언어의 홍수로 뒤덮여지고, 보수파와 진보파 사이에 엄청난 이념적 차이와 중대한 정치적 이슈를 둘러싼 타협 불가능의 투쟁처럼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방향과 보통 사람들의 사회경제적인 삶의 문제를 둘러싼 진정하고 중심적인 갈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단지 가식적인 것이거나,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격렬한 것으로 나타나는 정치적 대립과 투쟁은 제도권 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반영할 뿐이다.
 
그러므로 한국 민주주의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참여의 위기다. 이를 풀어 말하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참여의 불평등과 중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조건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동행하는 것은 필연적이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정치참여의 평등을 원리로 하여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보호할 수 있는 평등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시장에서의 불평등과 힘의 열세를 일정하게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 약자들이 투표하지 않을 때(투표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게 될때)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시장경제적 힘의 구조는 그대로 개인과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집단에게 몰아닥칠 수밖에 없다.
 
이점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거나 개선하려는 투쟁과 노력 이전에 해야 할 과제는 바로 어떻게 정치적 참여의 평등에 가까이 다가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코자 하는 투쟁과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노동문제는 어떻게 접근되고, 그 해결을 위한 실천적 전략이 모색될 수 있는가 하는 방향이 나타난다. 이것은 손낙구의 연구가 노동운동에 대해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함의다.
 
요컨대 노동운동은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접근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 핵심은 노동자들, 사회적 약자들이 투표할 수 있는 그들의 정치적 대표의 조직을 건설하는 문제다. 손낙구의 연구는 노동운동이 이 문제에 완전히 실패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민주(+열린우리)당을 많이 찍는 동네일수록 투표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면, 민노당/진보신당은 동네별 특성과 지지율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다. 이 연구는 진보정당은 자신만의 지역기반을 갖지 못한 채 유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정작 누구보다 보호를 필요로 하는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들은 사실상 투표의 대상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노동운동이 진정한 노동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해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언어, 발상, 전략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손낙구는 이 상황을 노동운동의 중심과 지도부의 위치에서가 아니라, 그 반대편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조건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노동운동의 정치언어, 이념은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접근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투쟁을 통해 사회경제적 조건을 곧바로 개혁 또는 변혁코자 하는 것을 지향했다. 그것은 급진이념적이고, 정치적 동원을 위한 슬로건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노동운동을 접근하는 것의 핵심은 정치적으로 유효한 집단을 투표를 통해 조직하는 것이고, 정치과정에서 정치적인 행위자가 되는 정도만큼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노동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정치적 참여의 평등을 실현하는 노력이 선행되고, 그 다음 이를 통해 사회경제적 문제를 접근하는 우선순위가 전도된 것이다. 민주화운동 시기 대학생, 지식인들에 큰 영향을 가졌던 노동운동과 그 전통은 우리 사회의 유기적 핵심에 침투하지 못했다.
 
추상적 언어와 이념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동안, 구체적으로 노동현실을 개선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구체적인 문제로 환원해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손낙구가 연구에 임했던 방식은 더없이 중요하다. 그는 무엇을 먼저 주장하기 이전에, 또는 당위적인, 규범적인 문제를 말하기 이전에 사태의 실상을 먼저 규명하고자 했다. 문제가 경험적인 사실을 통해 드러났을 때 우리는 문제에 대한 해답은 많은 부분 저절로 발견하게 된다. 
 
6. 맺는말
손낙구의 연구는, 이미 누군가 특히 직업적인 학문 연구자들에 의해 다루어졌어야할 민주화이후 한국사회의 중심문제를 다루었고, 열악한 조건 하에서 개인의 혼자 힘으로 누구도 하기 어려운 방대한 경험적 연구결과를 만들어냈다.
 
그의 연구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를 밝혀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과학계의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다. 그의 학문적 성과에 대해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결과가 직업적인 지식인 사회 밖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 또한 커다란 의미가 발견된다. 연구결과는 정치적 실천의 장에서 나왔기 때문에, 정치실천에 있어 보다 직접적인 충격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느껴진다. 특히 노동운동의 방향에 있어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하게 된다. 다시 한 번 저자 손낙구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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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디플로] 계급투표에 관한 불편한 진실 (한겨레21 2010.03.12 제801호, 이종래 독일 뮌스터대 철학박사.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사회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3월호] [특집]계급과 투표의 고차방정식
 
선거철이다. 계급투표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하지만 이 단어를 들으면 한편으론 고개를 끄덕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묘한 반감마저 들기도 한다. 왜냐면 한국 정치사에서 계급투표라는 말을 쓸 만큼 눈에 확연하게 드러난 선거 결과가 과연 얼마나 존재했을까라는 도발적 질문이 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해방 이후 한국 정치에서 계급의 이익을 배신하는 반(反)계급투표만 끊임없이 반복해온 현실만 머리에 맴돌 뿐이다. 1950~60년대 ‘막걸리 선거’와 ‘고무신 선거’를 거쳐 80~90년대 ‘빨랫비누 선거’와 ‘갈비탕 선거’로 이어져온 각종 향응이나 금품 제공은 부정선거의 화려(?)한 단골 메뉴였다. 고무신 한 짝과 막걸리 한 잔에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면서도 지독히도 지연·혈연·학연에 연연해온 풍토는 우리 선거 문화에 여전히 내재하고 있다. 노동자로 대표되는 서민이 자신의 처지를 대변하는 후보에게 신성불가침한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가문·학교에 따라 줄서기를 하는 전근대적 선거 행태를 지금도 쉽게 접하는 마당에 계급투표 운운하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지 외려 의문부터 드는 게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냉소적이고 자기비하적 자책 이전에 한국의 정치 사회에서 계급투표는 어떻게 굴절되고 왜곡·변형돼가는지 한 번쯤 따져보는 게 의미 있을 수 있다. 정치사회학에서 계급투표는 특정 계급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하는 집단적 투표 행위를 의미한다. 특정 집단이 기존 조직이나 제도로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 선거 공간에서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바로 계급투표다. 이런 정치적 행위는 궁극적으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해 사회적 변화를 도모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되는데, 계급투표라는 본디 개념은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투표 행위에서 연유한다.
 
계급투표의 구체적 실체는 노동자 집단이 선거를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 행위를 조직하고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가 당선되도록 하는 행위를 말한다. 노동자 계급투표는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모순으로 파생되는 계급정치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흔히 보편적 이해관계로 포장되는 경향이 있는 자본가적 계급투표에 비해 노동자 계급투표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즉,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선거에 참여하고 투표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먼저 사회 변혁을 지향하는 합목적적 행위의 연장선상에서 계급투표를 제한할 경우 변혁과 개량의 구분이 우선된다. 이 경우는 노동자계급의 대표가 실제로 획득하는 득표율에 대한 의미보다는 선거 과정에서 후보가 일반 대중을 상대로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를 얼마나 철저하게 알리고, 자본가 주도의 계급지배가 만들어낸 사회구조적 모순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문제점을 전파하는 데 의미를 둔다. 이와 반대로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대표자를 의회로 진출시키는 일에 심정적으로 동의한 노동자가 손쉬운 투표 행위 정도로만 집단화한다는 의미에 무게중심을 두는 해석도 있다. 이 경우는 노동자 대표가 선거에서 실제 획득한 득표율에 대한 해석에 의미를 둔다. 선거를 선전과 선동의 장으로 보는 해석보다는 후자의 경우가 한국 사회에서도 설득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의 동질적 투표 행위가 실제 존재하는지는 과연 자신들의 선거구 내에서 진보 정당을 얼마나 지지했는가로 확인할 수 있다. 노동자 계급투표라는 개념은 노동자 지지표의 ‘응집력’으로 치환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해석은 계급투표의 저변에 놓인 노동자 개인의 행위를 규명하기보다 현상으로서 계급투표를 증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계급투표의 원인 분석에는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해 계급투표는 노동자 계급의식의 단편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계급 형성 과정에서 필요한 노동자 정체성을 확인하는 단서가 될 수 있음에도, 이에 대한 해명이 불충분하다. 게다가 계급투표가 존재한다고 해서 계급의식 역시 자동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할 수는 없다. 이 모든 의문은 한국 정치사에서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계급투표, 과연 있기는 하나? 
계급의식을 가진 특정 계급이 집단적 투표 행위를 하는 것을 계급투표라고 할 경우,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이 계급투표를 하고 있다고 보기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1987년 이후 노동조합운동이 대중화됐지만, 선거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계없는 몰계급적 투표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이른바 ‘즉자적 계급’(Klasse an sich)으로서 산업노동자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노동자의 투표 행위는 다른 계급 혹은 계층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아 ‘대자적 계급’(Klasse für sich)으로서 노동자계급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원론적 의문마저 제기될 수 있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전국 평균 득표율 약 3%를 올린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는 비록 일부 산업 지역에서 평균 이상의 득표율을 올렸지만 전국 합계 약 71만여 표에 불과했으며, 이 득표수는 80만여 명에 달하는 민주노총 조합원 수보다 적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물론 제조업 노동자가 밀집해서 살아가는 울산·창원과 같은 산업 지역의 경우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려는 후보가 꾸준히 당선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계급투표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 경우는 전국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지역적이고 예외적이라는 점에서 일반화하기 어렵다.
 
반(反)계급투표, 과연 무슨 의미일까?
사회적 존재인 계급과 무관한 투표를 하는 걸 반(反)계급투표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이른바 계급이라는 존재를 배신한 반(反)계급투표의 경향성은 한국 정치사에서 너무나 쉽게 발견된다. 해방 이후 한국 정치·사회의 지형은 ‘진보 배제’와 ‘보수 독점’이라고 간략하게 말할 수 있다. 물론 10년 전에 등장한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했기에 진보 배제라는 말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국회에서 진보 정당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감안하면 정치적 배제라는 용어 사용이 그리 무리가 아니다.
 
이런 정치적 현실은 선거라는 장에서 더욱 쉽게 확인된다. 노동자계급이 포함된 서민층은 계급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지역 정체성’에 따라 투표를 해왔으며, 선거 결과는 마치 삼국시대로 되돌아가는 느낌마저 준다. 다시 말해 유권자의 투표 행위는 계급 정체성보다 지역 정체성으로 구조화돼버린 현실에서 과연 노동자의 합리적 선택이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회의도 가능하다. 물론 최근 들어 정치적 주류의 흐름과 관계없이 노동자의 집단적 투표 행위가 현상적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현상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가 선거 시기에 자신의 후보에게 몰표를 던지는 행위로 인해 생기고 있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계급의식 형성의 단서라고 볼 수 있는 ‘노동자 정체성’이 놓여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몰표를 던지는 투표 행위와 유사한 현상이 자본가계급에서도 존재한다. 강남 3구를 주축으로 하는 부동산 자산가인 소부르주아지들의 투표 행위가 대표적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종부세 저항의 진원지였던 강남 3구 소자본가계급의 투표 행위는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철저하게 반영하고 있다. 부동산과 투표 행위 간의 인과성을 실증적으로 증명한 손낙구의 책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수도권 편>에도 나와 있듯이 다주택 소유자, 아파트 거주자, 정상적인 부부 가구 모형이 많은 지역의 투표율은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을 뿐만 아니라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성도 높다. 주택의 소유·주거·가구 형태에 따라 지지 정당과 투표 가능성까지 달라질 뿐만 아니라, 지난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나타났듯이 선거 과정에서부터 부정선거 의혹이 끊이지 않던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부동산 자산을 소유한 유산계급이 계급투표에 몰두하는 데 비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무산계급의 투표 경향성을 두고 반(反)계급투표의 전형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 주장은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손낙구의 책에도 이미 나와 있듯이 표의 응집성에선 비록 유산계급에 미치지 못하지만 무산계급 역시 자신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대변하는 중도 혹은 진보 정당에 나름대로 열심히 투표해왔다고 보는 게 정당하다. 선거 결과에서 당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투표 행위가 계속되면서 무산계급의 정치적 무관심 역시 높아졌을 개연성을 두고 계급의식의 부재로 인한 몰계급적 투표 행위라고 핍박해선 곤란해 보인다. 쉽게 말해 아무리 열심히 투표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 데 대한 염증과 혐오가 계급 응집력의 저하와 정치적 무관심의 증가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으로 대변되는 무산계급의 이해관계를 무시하는 유산계급 중심의 정치는 항상 자신들만의 고유 의제인 지역주의를 감초 삼아서 우려먹어왔을 뿐이다.
 
반(反)계급투표라는 말은 한편으론 노동자계급 중심의 계급투표의 허약함을 냉소적으로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지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자본가 중심의 계급투표를 숨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중적이다. 하지만 이 언어적 이중성은 자산가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계급투표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는 현실의 원인마저 찾아보기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의 빈약함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모든 문제를 ‘내 탓이오’라는 식으로 돌리는 숙명론과 결정론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자산가가 주도하는 계급투표를 정확하게 표현하면 자본주의적 사회질서를 강화하는 역(逆)계급투표일 뿐, 결코 계급지배 질서에 반(反)하는 계급투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교묘하게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반(半)계급투표, 무엇 때문에?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계급투표는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는데, 자산가 중심의 계급투표는 제대로 꽃을 피우는 희한한(?) 현상이 한국 사회에서 왕왕 생기고 있다. 제대로 된 진보 정당이 필요하다는 여론조사에선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긍정적으로 답하면서도, 실제 선거에만 들어가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권자만 선택하는 격차가 존재하듯이 계급투표 역시 의미와 현실에선 큰 차이가 있다. 바로 이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을 간단하게 말하면 계급정치의 빈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사회에서 노동자계급 주도의 계급투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집중적으로 일어난다. 산업화 초기 시절 형성된 노동자 계급정당에 충성하는 산업노동자의 모습은 서구사회에서는 흘러간 옛 추억의 하나이지만, 한국 사회에선 제발 일어났으면 하는 소망의 하나이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1세기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의 한국 사회에서 계급투표가 발현하기 어려운 점은 우선 자본주의 초창기에 형성된 공장노동이라는 동질적 조건에서 집단적 계급의식을 형성할 수 있었던 서구와는 너무나도 다른 조건의 차이에 기인한다. 멀리는 분단과 전쟁이라는 시대적 조건으로 인해 진보와 보수로 대별되는 이념적 균형을 한국 사회에서 만들기 어려운 역사적 경험이 있었다. 여기에 압축성장이라는 한국적 발전 모델이 사회운동에도 그대로 투영되면서 경제적 분배 정의에 초점이 맞춰진 노동운동과 탈물질적 가치 다양성이 우선될 수밖에 없는 신사회운동이 동시에 공존해, 계급정치 형성과 내용에 대한 접근마저 너무나 이질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도 간과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계급정치 형성에서 필요한 주체들이 지속적으로 보수 정당에 몸을 의탁하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계급정당의 출현은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계급이 중심이 되어 이웃한 다른 계급과의 연합 혹은 연대를 구축해가는 계급정치가 더디게 발달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노동자계급 내부가 결코 동질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복잡다단하게 변화하는 현실에서도 기인한다.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 규모에서 전면적으로 작동하면서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화와 이질성 증가라는 현상은 산업화된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먼저 산업화 정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인구학적 측면에서 전통적 노동자계급의 주류였던 제조업·생산직 노동자 수는 점차적으로 줄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 조직화의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런 현상은 많은 함의를 가지고 있다. 왜냐면 노조라는 조직으로 모으기가 쉬운 노동자 수는 줄어드는 데 반해, 노조 조직화가 어려운 노동자가 절대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정체성을 확인하고 계급의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중간 교두보인 노조의 역할이 점차 약화 혹은 무력화하는 현상이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고전적 노동자계급의 요새였던 ‘굴뚝산업’이 서서히 사라지고 첨단 정보기술(IT) 산업과 민간 서비스 산업이 신흥 산업으로 부각되면서 노동의 성격이 강제성에서 자율성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등장하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증가하면서 남성 주도로 대표되는 기존 노조운동에 변화를 강요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말해 전통적 육체노동자에 초점이 맞춰진 노조운동으로는 정신적 서비스가 가미된 ‘감정노동자’를 포섭하기가 어려운 현상이 산업사회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전 지구적 규모에서 발생하는 공통분모적 현상 이외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종사자 사이에 2배 이상의 임금 격차가 존재하고, 노조 조직률이 임금노동자 전체 대비 10% 안팎에 이를 만큼 낮다는 사실까지도 감안해야 한다.
 
노조조직에 포함되지 않은 대다수 노동자에겐 계급투표의 징후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조직된 노동자는 열심히 계급투표를 하고 있는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반쪽짜리 계급투표의 전형일 것이다. 하지만 이 반쪽짜리 계급투표가 노동시장의 변화에 속수무책의 지경에 놓인 노조운동의 무기력에 책임이 있는지, 아니면 능동적이고 공세적으로 변화하는 자본의 움직임에 따른 것인지는 한 번쯤 생각해볼 대목이다.
 
계급투표와 민주주의의 함수관계
우매한 대중이 합법적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철저히 반(反) 혹은 비(非) 민주적 지도자를 선출할 때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는 위기에 빠진다. 파시즘으로 대표되는 전체주의 체제의 등장 과정에는 선거라는 절차가 통과의례처럼 있었다. 한 사회에서 일자리 문제가 가장 심각했을 때 대중은 반(反)계급적 투표 행위에 몰입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착안하면, 민주주의 위기와 계급투표 사이에 놓인 상관관계의 비밀은 풀릴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은 곧잘 들리면서도 사회·경제적 첫 번째 의제인 일자리 문제는 비켜가거나 굴절되는 기이한 현상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다.
 
새해가 되면 일자리 문제 해결이 가장 시급하다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말하고 있지만, 정작 노동시장에서 늘어나는 일자리란 불안정하고 장래가 없는 비정규 노동밖에 없는 상황이다. 학생에서 실업자로 자리를 바꾸는 것 외에 달리 선택할 게 무어냐는 청년층 예비 노동자들의 볼멘소리가 개인적 무능으로 치부되는 현실은 하나의 보기일 뿐이다. ‘88만원 세대’만 있는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직업 선택의 기회마저 제대로 없는 노령 노동자를 일컫는 ‘50만원 세대’도 있다고 말을 하면, 그건 나만 아니면 그만일 뿐이고 사회가 개인적 불행까지 감당할 수 없지 않느냐는 기묘한 도덕 교육으로 환원되고 만다. 이것도 모자라서인지 청년과 고령 노동자 사이에 놓인 중·장년 노동자 중에서 노조로 조직된 대기업 노동자에겐 ‘대기업 이기주의’라는 사회적 저주와 비난이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노조라는 울타리에서 보호받는 행운(?)을 걸머쥔 노동자가 계급투표의 주도 세력이라는 사실은 항상 괄호 안의 내용으로 숨겨지고 있다.
 
일자리 문제는 구직자가 눈높이를 낮추면 해결될 수 있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계급의식을 가진다는 건 또 다른 인고의 노력을 요구한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는 더 이상 전통적인 노동자계급이 계급정치를 주도하기 어려운 현대사회에서 계급이란 과거처럼 생산관계에서 파생된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소비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인식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계급의식은 과거처럼 작업장에서 유사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동질적 의식이 아니라, 소비를 할 수 있는 상품과 문화의 향유에서 발생하는 의식적 동질성에 따라 새로이 형성·변화하는 과정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촛불 세대’가 보여준 신선한 문화적 충격에 노조 운동가들이 스스로 변화하려고 몸부림쳤듯이, 우리 시대의 계급의식 역시 새로운 이미지와 모습으로 변형되고 있다면 지나친 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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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당락 ‘아파트 값’이 갈랐다 (한겨레, 송호진 기자, 2010-06-17 오후 09:24:21)
선관위 득표율 공개…오세훈, 압구정동서 최고득표
아파트보급률·소득수준 따른 ‘계층투표’ 양상 뚜렷 
 
주택소유율과 아파트보급률, 소득수준이 비교적 높은 지역은 한나라당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무주택자가 많은 지역에선 민주당 등 야당에 표를 던지는 성향은 여전할까?
중앙선관위가 지난 16일 누리집에 공개한 ‘6·2 지방선거’ 전국 읍·면·동별 득표율을 토대로 서울시 429개 동의 득표율을 분석한 결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러한 ‘계층투표’가 뚜렷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선거에서 득표율이 50%(47.4%)를 넘지 못한 오세훈 한나라당 당선자는 주택소유율과 아파트보급률이 80%에 육박하는 서울 압구정동에서 가장 높은 77.1%의 득표율을 보였다. 이른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강세도 확연했다. 타워팰리스 등이 있는 도곡2동, 주택소유율이 90%에 이르는 잠실7동과 문정2동, 아파트단지인 대치1동 등에서 70% 안팎의 득표율을 챙겼다. 특히 불과 2만6412표 차로 당락이 갈린 이번 선거에서 오 당선자는 도곡2동에서 서울지역 중 가장 큰 차이인 7485표 차로 한명숙 민주당 후보를 따돌렸다. 아파트가 몰려 있는 여의도동에서도 오 당선자는 68% 득표율을 얻어 한 후보를 6418표 차로 제쳤다.
 
반면, 한 후보의 득표율이 제일 높았던 곳은 종로구 창신2동(61.8%)이었다. 이곳은 2005년 뉴타운 지구로 선정된 뒤 후유증을 겪고 있는 곳으로, 주민 상당수가 뉴타운 개발 이익을 누리지 못하는 세입자들이다. 한 후보는 상대적으로 단독·연립주택이 밀집해 있고, 1인가구 비율이 높은 관악구(대학·낙성대·신림·청룡·중앙동), 구로3동 등에서 60%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했다. 한 후보가 오 당선자와의 표차를 가장 크게 벌린 곳은 관악구 청룡동(3419표 차)이었다.
 
주거생활의 차이, 소득수준 등이 투표율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양천구 신정6동(64.3%)은 주택소유율이 80%를 넘고, 아파트보급률이 95%에 이른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도 투표율이 가장 낮았던 논현1동은 이번에도 35.7%로 최저를 기록했다. 논현1동은 전체 가구의 약 75%가 무주택자이고 혼자 사는 가구 비율이 50%에 육박한다. 오 당선자는 강남인 이곳에서 50.5%의 득표율에 머물렀다.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란 책에서 주택소유, 학력, 종교 등과 정치적 선택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손낙구씨는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학력이 높은 곳에선 한나라당을 지지하면 한나라당이 정책으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투표의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른바 부자동네에선 투표율이 높은데다, 그중 4분의 3가량의 득표율을 한나라당이 가져가지만, 민주당이 야당 성향의 동네에서 한나라당만큼 득표율을 얻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선거에서 한명숙 후보는 429개 동 중 61%가 넘는 263개 동에서 오 당선자를 이겼지만, 0.6% 득표율 차로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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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8 13:43 2010/02/08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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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 Tracked from 2010/02/10 14:46

    &ldquo;아파트가 많고 주택 소유자가 많은 부자 동네는 열심히 투표를 하고 대개 한나라당을 찍는다. 아파트가 적고, 무주택자가 많은 가난한 동네는 투표를 잘 안 하지만 하게 되면 민주당을 찍는다.&rdquo; *새벽길님의 [서울도 &lsquo;계급&middot;계층 투표&rsquo; 뚜렷 ] 에 이 책과 관련된 주요기사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책 가격이 9만원이나 되어 선뜻 구매하기 어려운데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 정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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