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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철에 민주파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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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인 동지가 서울도시철도노조 선거에서 10대 위원장으로 당선되었다. 어용 2명과 겨루었던 1차선거에서 100여표차로 1위를 차지하여 결선에 진출하였는데, 결선투표에서 오히려 표차를 더 늘리면서 당선된 것이다. 1차선거에서는 여러 본부에서 골고루 표를 얻었으나 결선투표에서는 구조조정 가능성이 높은 기술본부 쪽 조합원들이 같은 지부 소속인 김남일 후보에게 몰표를 줄 것으로 예측되어 결선에서 승리하기 어려울 것으로 봤는데, 이 예상을 뒤엎었다. 직능본부 4개 중 역무본부를 빼고 나머지 본부에서도 민주파가 당선되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아무래도 여기에는 위기시에는 투쟁적인 집행부를 바라는 조합원들의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하는 꼬라지를 보건대, 어용이 당선되고, 민주노총을 탈퇴한다고 구조조정을 막을 수는 없으리라 판단하여 합리적 선택을 했다고 봐야 한다.  
   
아마 도철에서 어용이 당선되었다면 KT노조의 탈퇴 및 쌍용차사태와 연결하여 '위기의 민주노총' 운운하는 기사로 다시한번 지면을 도배할 수 있었을 텐데, 보수언론으로서는 아쉽게 되었다. 도철 선거결과를 보도라도 할까?
 
이로서 민주노총 탈퇴와 제3노총, 전국지하철연맹 건설의 흐름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서지의 민주노총 탈퇴 조합원 총투표 또한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도철 선거결과를 과대평가해서도 안 된다. 공공운수연맹의 논평처럼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 민주노총 죽이기 정책이 현장의 조합원에게 큰 반발을 불러온 결과"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의미부여이다. 조합원들의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이 예상밖의 승리를 가져다 준 것으로 냉철하게 봐야 한다. 허인 집행부가 현장을 재건하지 못하고 타당한 대응을 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공공부문 노조운동의 몰락을 재촉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도철의 새 집행부의 역할은 막중하다. 현장을 되살리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기존 조합원들의 자리 지키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철이 수도 서울에서 공공성 강화의 거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허인 동지가 작년 7월에 받은 석사학위 논문 제목이 "정부의 공공부문 노동통제와 노동조합의 대응 전략에 관한 연구: 1998년 이후 민주노총 공공연맹의 활동을 중심으로"였다. 이제는 아는 것을 실천에 옮길 때이다. 내가 알고 있는 허인 동지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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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도시철도노동자의 선택은 '투항'이 아닌 '저항'이었다 (공공운수연맹, 2009년 7월 29일)
 
29일 저녁 서울지하철 5,6,7,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노조 선거 결과 전 공공연맹 부위원장을 역임한 허인(40)후보가 10대 위원장으로 당선됐다. 허인 당선자는 민주노총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 김남일 후보를 상대로 412표라는 큰 표차로 승리한 것이다.
 
도시철도공사노조의 이번 선거결과로 최근 서울지하철노조, 인천지하철노조 등에서 진행되던 민주노총 탈퇴와 제3노총 건설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서울지하철노조도 최근 대의원대회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지하철연맹 건설에 대한 안건이 부결된 바 있다. 이에 따라 9월 2~4일에 진행될 예정인 서울지하철노조의 민주노총 탈퇴 조합원 총투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 민주노총 죽이기 정책이 현장의 조합원에게 큰 반발을 불러온 결과다.
 
허인 당선자는 이번 선거결과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정책에 대한 현장조합원의 반발이 극심했다"라며 "공공부문에 대한 구조조정 위기감이 현장에 팽배하다"고 말했다. 허인 당선자는 지난 2002년 서울도시철도노조 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당시 이명박 시장이 추진하던 심야지하철연장운행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다. 이후 2005년에는 (구)공공연맹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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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시철도 노조에 친민주노총 수장 당선 (한겨레, 이완 기자, 2009-07-30 오전 12:38:18)
허인 위원장 당선…“일방적 강제퇴직 막겠다”
 
서울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 노동조합의 10대 위원장에 민주노총 성향의 허인(41) 후보가 당선됐다. 서울도시철도 노조는 지난 27일부터 사흘에 거쳐 실시된 위원장 결선투표 결과, 허 후보가 5242표 가운데 2805표(53.5%)를 얻어 새 위원장으로 당선됐다고 29일 밝혔다. 허 위원장의 임기는 다음달 25일부터 2년간이다.
 
허 후보의 당선으로 서울도시철도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 움직임은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도시철도 노조는 지난 4월 대의원대회에서 노조 규약 가운데 ‘민주노총’이라고 명시된 상급단체 조항을 삭제하는 등 민주노총 이탈 움직임을 보여왔다. 허 당선자는 이날 표결 결과가 나온 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밀어닥친 엄청난 해고 압력과 시민 편의를 무시한 성과주의에 시달리고 있던 공기업 노동자들의 위기의식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 같다”며 “일방적인 강제퇴직 등 인원 감축을 막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허 당선자는 “민주노총을 규약에서만 삭제했을 뿐 탈퇴한 것은 아니었다”며 “현 집행부가 추진한 전국 지하철연맹 결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민주노총과 힘을 합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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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철도노조 민주파 허인 후보 당선 (참세상, 이꽃맘 기자, 2009년07월30일 11시42분)
직능본부 4개 중 3개도 민주파...“구조조정에 맞설 것”
 
함께 진행된 직능본부장 선거에서 역무본부를 제외한 기술, 승무, 차량본부에서 허인 위원장 당선자와 함께 하는 후보들이 당선되어 앞으로 정책추진에 힘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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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지하철연맹 건설에 제동 잇따라 (참세상, 이꽃맘 기자, 2009년07월30일 11시46분)
‘저항’을 선택한 지하철 노동자들...“MB 민주노총 죽이기에 반발”
 
민주노총 탈퇴를 반대하고 있는 허인 후보가 서울도시철도노조 위원장 선거에서 큰 표 차로 당선된 것도 전국지하철연맹 추진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다. 전국지하철연맹 상임준비위원장인 하원준 위원장은 이번 선거에서 가장 작은 수의 표를 받아 결선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허인 위원장 당선자는 민주노총의 산별노조 건설 지침에 따라 지하철 노조 산별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허인 당선자는 <참세상>과 통화에서 “지하철 노동조합들의 통합을 1단계로 해 산별노조를 건설할 것”이라며 “전국지하철연맹 추진 세력과 가장 큰 차이는 민주노총과 함께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지하철노조는 이미 지난 3월 “노동자운동이 정권의 탄압과 내부적 어려움으로 위기를 겪는 틈을 이용해 민주노조 운동을 허물고자 하는 시도”라며 전국지하철연맹 구성에 반기를 든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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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30 04:12 2009/07/30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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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유로 세대, 아이팟(IPOD) 세대, 베이비 루저, 88만원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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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1000유로 세대는 한국의 88만원 세대와 같을까. 88만원 세대론에 대해서는 단지 이름붙이기라고 생각하지만, 유럽의 경우를 보면 한국과는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청년 세대의 실업률이 특히 심각하다는 것에서 그러하다.   
   
그들은 세상을 바꿀 정도의 세력화를 이룩할 수 있을까. 지금 상황에서는 희박할 듯 싶다. 역시 구태의연하지만, 계급론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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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유로 세대는 ‘잃어버린 세대’ (헤럴드경제, 양춘병 기자, 2009.07.15.10:58)
유럽 청년실업률 심각
교용불안 지속 자신감 결여

 
미국의 외교잡지 포린폴리시(FP)는 14일 “최근 몇 년간 실업 문제는 모든 계층에 걸쳐 심각하지만 특히 유럽의 청년들이 실업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유럽의 젊은이들이 새로운 잃어버린 세대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0년간 유럽의 청년 실업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평균보다 높은 16~17%를 기록했다.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사용자가 각종 사회보장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단기 임시고용계약이 성행하게 됐고 이런 일자리는 주로 젊은층에 돌아가고 있다. 이들은 건강보험급여 등 각종 사회보장수당이 없을뿐더러 해직수당도 기대할 수 없어 실질 소득이 부모 세대에도 못 미친다.
 
2007년 당시 약 600만명의 젊은이들이 이런 임시직에 종사했고 이들은 지난해부터 지구촌에 불어닥친 경기침체 때문에 고용계약이 끝나면서 곧바로 일자리를 잃는 1차적 피해를 당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전체 실업률이 약 26%에 달했지만 25세 이하 구직자의 실업률은 40% 이상으로 올랐다. 또 영국 실업자의 3분의 1이 25세 이하의 젊은 세대이고 스페인의 청년 실업률은 40%에 육박했다.
 
영국의 저명한 한 싱크탱크는 최근 “젊은 세대의 고용불안이 지속되면 그들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필요한 경험과 능력, 자신감이 결여된 ‘잃어버린 세대’가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국가들은 청년 실업에 대처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으나 대부분이 아직 초기단계이고 그것이 이행되려면 몇 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FP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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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앞날… 자조섞인 신조어 봇물 (세계, 송은아 기자, 2009.07.26 (일) 20:35)
아이팟(IPOD)세대 불안정·압력·과중한 세금·부채 시달려
 
3년 전 변변찮은 일자리를 전전하며 한 달에 1000유로를 번다고 해서 등장한 ‘1000유로 세대’는 최근 ‘700유로 세대’에 자리를 내줬다. 프랑스에서는 이들을 ‘제네라시옹 프레케르(불안한 세대)’나 2차대전 후의 베이비 부머에 대비되는 ‘베이비 루저’로 지칭한다. 이들은 또 영국에서는 불안정하고(insecure) 압력을 받으며(pressured) 과중한 세금 부담(overtaxed)과 부채에 시달린다(debt-ridden)는 의미를 딴 ‘아이팟(IPOD) 세대’로 통한다. 유럽에서 청년 실업률이 가장 높은 스페인에선 저임금 청년 근로자들을 ‘밀리에스따(월 1000유로밖에 못 버는 세대)’라고 일컫는다.
 
이들 유럽판 ‘88만원 세대’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데 더해 급등한 자산 가격과 재정적자·연금적자 등 이전 세대의 빚만 물려받았다. 프랑스 사회학자 루이 쇼벨은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프랑스 베이비 루저들은 부모 세대보다 3년을 더 공부하고 훨씬 열악한 직업과 낮은 생활수준을 감내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의 경우 1973년 대졸자의 6%만이 실업자가 됐지만 이제는 이 비율이 25∼30%에 이른다. 임금 수준이 20년간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두배, 세배로 급등했다. 1970년 50세와 30세 노동자의 임금격차는 15%였지만 지난해에는 약 40%로 벌어졌다. 쇼벨은 “이제 프랑스에서 성공은 개인의 교육수준이 아니라 부모가 부유한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며 “20대 동안 부모가 뒷바라지해주는 사람은 꽉 닫힌 고용시장을 뚫고 들어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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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이슈] 일도 꿈도 잃은 ‘1000유로 세대’ (서울, 안석기자, 2009-07-29  17면)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호에서 영국의 청년실업 문제가 자국내 경기침체의 가장 주요한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통계국(ONS)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5월 현재 실업률은 7.6%로 나타났다. 이는 노동당이 집권하기 6개월 전이었던 1996년 이후 최고치다. 18~24세의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의 2배가 넘는 17.3%로 나타났다. 11.9%였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얼마나 가파른 상승세인지 확연히 알 수 있다.
 
유럽 대부분 국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럽연합(EU) 통계기관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지난 5월 현재 EU 27개국의 실업률은 연율 환산 기준 8.9%로 지난해보다 2.1% 포인트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청년실업은 이 기간 동안 더욱 악화됐다. 지난 23일 발표된 유로스타트의 자료에 따르면 EU 27개국 15~24세 청년 실업률은 올해 1·4분기 18.3%로 지난해 동기 대비 3.7% 포인트 증가했다. 500만여명의 청년들이 직장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실업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단연 스페인으로 33.6%이다. 네덜란드(6.0%), 덴마크(8.9%) 정도가 양호할 뿐 실업률이 15%를 웃도는 국가가 18개국이나 된다. 특히 발트 3국의 실업률은 더욱 급속히 악화됐다. 지난해 7.6%였던 에스토니아의 청년 실업률은 올해 24.1%로 급증했다. 11.0%였던 라트비아는 28.2%로, 9.5%의 리투아니아는 23.6%로 각각 상승했다. 이같은 수치는 한국과 비교하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지난 5월 기준 한국의 실업률은 3.8%, 20~24세 실업률은 9.2%로 나타났다. 유럽으로서는 한국이 부럽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청년실업률이 높은 이유는 기업이 조금이라도 더 숙련된 인력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기업으로서는 취업과 함께 재교육을 시켜야 하는 젊은이들을 경기 호황기 때처럼 고용하려 하지 않는다. 중장년 세대가 일자리를 지키는 사이 그 자녀들이 일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등 서유럽의 경우는 동유럽의 젊은 이주노동자들이 자국 내로 유입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체 일자리가 고정돼 있다는 ‘노동총량의 오류’라는 반론도 받고 있지만 불만이 높은 자국민들에게 이런 주장은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노동 유연성 역시 실업률을 높이는 주된 이유다. 타임은 스페인의 청년실업 문제를 다룬 최근 호에서 “청년층의 노동의욕이 줄어드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라며 “스페인이 최근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많은 비정규직 근로자 때문이었으며 이들 대부분이 청년층”이라고 지적했다. 타임은 청년층의 실업 문제가 중장년층보다 사회문제화하기 더 쉽다고 지적했다.
 
소위 ‘잃어버린 세대’ 논란은 정치적 이슈로 변형돼 선거 등에서 주요 의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들 청년 실업자가 범죄의 덫에 걸릴 우려도 나온다. 이들은 부모 세대 보다 반사회적 경향을 띨 확률이 더욱 높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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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이슈] 값싼 일자리 남발한 노동유연성의 덫 (서울, 안석기자, 2009-07-29  17면)
파이낸셜타임스 “호황엔 훌륭한 자산… 침체땐 독” 
 
“노동 유연성은 경제가 정상적일 때는 훌륭한 자산이지만 불황기에는 심각한 독이 됩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노동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최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노동시장의 유연성 문제를 언급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7일(현지시간) 경제전문지로서는 이례적으로 노동시장 유연성을 미 실업문제의 주 원인으로 지적했다. 고용주의 자의로 해고된 이들이 호황기와 달리 구직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각종 경기 지표에서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미국이 실업 문제만큼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경제 위기와 노동 유연성이 맞물린 지금의 상황은 몇 년 전만 해도 실업문제에 관한 한 모범국이었던 미국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값싼 노동력의 덫에 걸린 대표적인 유럽 국가는 스페인이다. 유럽에서 실업률이 가장 높은 스페인은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일 만큼 유럽에서도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다. 한때 스페인은 노동인구의 8%가 이민자일 만큼 유연한 노동시장 아래 유럽 국가 중에서도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2001~2005년 유로존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1.4%에 불과했지만 같은 기간 스페인의 성장률은 2% 이상이었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는 모든 것을 바꿨다. 비정규직은 해고 1순위가 됐고 대부분은 젊은층이다. ‘1000유로 세대’(Milleuristi)라는 서글픈 유행어가 생긴 배경도 이 때문이다. 또 채용이 줄어들다 보니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4일 독일노조연맹의 보고서를 인용, 경제 위기로 중장년층 근로자는 물론 청년층을 위한 직업 훈련장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정규 학교 교육을 마친 젊은이들로서는 입사지원서를 낼 곳도, 자질을 향상시킬 곳도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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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9 13:27 2009/07/2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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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에서의 죽음의 뜀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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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를 하다가 이렇게 긴장하면서 길게 뛰어본 것도 처음이다. 평택 쌍용차공장이 있는 삼거리에서 법원사거리까지가 5km라고 하는데, 거의 2km를 계속 뛰지 않았나 싶다.
 
회의 끝나고 연구소로 가는 길에 운수노조의 박모 동지와 함께 가게 되었는데, 방향을 바꾸어서 나도 평택에 가기로 했다. 차로 갈 수 있다는 점이 이러한 결심을 하게 한 배경이다. 평택에 가게 된 것은 대추리 이후 처음이다. 하긴 쌍차 사태와 관련하여 꼭 가서 연대하려고 했는데, 이날 아니면 공권력이 투입될 듯하여 기회가 없을 것 같았고, 그래서 쪽수를 채우는 심정으로 간 것이다.
  
교통체증 때문에 집회시간에 맞출 수는 없었고, 도착해서 보니 4시가 다되었다. 이미 평택역 앞 전국노동자대회는 종반이었고... 하지만 어차피 집회참여보다는 행진에 더 염두를 두었기에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집회 때는 평택역 광장을 꽉 채우기는 했지만, 그리 많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행진하면서 보니 거의 배로 늘어나서 만여명이 되는 듯 싶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연대의 대오들, 그들이 공장에 갇혀 있는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어 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쌍용차 공장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10km라고 하니 엄청난 거리다. 해남읍에서 대흥사까지가 12km였는데... 그 거리를 걸어서 간신히 공장 앞 삼거리 근처에까지 진출했는데, 전경들로 가득차있다. 숲속에까지 말이다. 평소보다 증원을 했다고 한다. 도장공장에서 붉은 깃발을 흔드는 쌍차 조합원들이 보였다. 물도, 음식물도, 의약품도 제공되지 않는데,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건지... 괜시리 눈물이 나더라. 물론 이를 보기 위해 앞쪽으로 일부러 나간 것인데, 25일에 쌍차 도장공장 건물을 본 이들은 아마 민주노총 선봉대들을 비롯한 대오의 선두 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대치하고 있던 것도 잠깐. 선봉대와 본대가 거리를 두고 진격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본대를 몇 걸음 뒤로 가게 했는데, 얼마후 경찰과 충돌하게 되고, 그 이후 계속 밀렸다. 살수차로 최루액을 섞은 물을 살수하면서 경찰이 다가오는데, 물러서지 않을 재주가 없었다. 관련기사를 보니 짱돌을 던지는 모습도 나오긴 하더만, 본대에 있던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까지는 보이지 않고, 시원한 물대포가 진군하는 모습만이 잡혔다. 그러니 쫄지 않을 수 있나. 
 
게다가 하늘에서는 두 대의 경찰헬기가 떠서 도장공장과 행진대오를 감시하더니 결국에는 하늘에서 색소가 든 봉지를 떨어뜨렸다. 아마도 행진대오를 향해서 거의 50여개를 떨어뜨렸을 것이다. 거기에 최류액이 들었는지 여부는 확실지 않지만, 그것을 피하느라 집회대오는 계속 우왕좌왕했고, 짭새들은 그 사이를 노려서 치고 들어왔다.
 
법원사거리까지 도망가는 길에 옆으로 빠지는 길은 거의 없었다. 서울에서 가투를 하다가 경찰에 쫒기면 길가는 행인 행세를 할 수도 있고, 옆길로 빠질 수도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짜알이 없다. 살수차가 계속해서 틈을 주지 않고 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헉헉거리며 2km가량을 계속 뛰었다. 그 중 대열에서 낙오된 이들도 상당했다. 하지만 선봉대를 비롯하여 남성들은 계속 뛸 수밖에 없었다. 연행될 경우 짭새들에게 폭력세례를 받으면서 오히려 폭력 등의 혐의로 구속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평택역에 있을 때보다 훨씬 늘어나서 만여명에 가까운 인원이 된 집회대오는 그렇게 힘없이 물러났다. 물론 선봉대는 나름대로 저항을 했겠지만,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으리라. 그렇게 뛰어서 물러나면서 들었던 죽봉을 내버지고 뛰는 이들이 10여명 보았다. 하긴 그 무거운 것을 계속 들고 2km를 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민주노총은 법원사거리에서 싸울 것을 준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쌍차 공장으로 진입하려 할 때에도 법원사거리에서 한동안 실강이를 벌이다가 나아간 것인데, 그 만큼 준비가 되어 있진 않았기에 경찰이 밀고 오는 순간 속수무책이었던 것 같다. 후퇴를 하면서 자위를 하자고 하여 보도블럭을 깨고 죽봉을 든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일부만 그랬을 뿐이고, 대부분은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하며 함께 하지 않았다. 아마 짱돌과 죽봉을 든 동지들은 약간 아쉬움을 느꼈으리라.
 
나중에 낙오된 후에 천천히 걸어왔던 이들의 말을 들어보니 집회 대오 속에 사복형사들이 상당히 있었다고 한다. 5-6명이서 걸어가는 이들이 있어 이들도 낙오된 조합원인가 싶었는데, 대화하는 걸 보니 사복이었다는 것이다. 하긴 복장이 비슷한데 어떻게 구별할 수 있었겠는가. 아마도 이들이 중심이 되어 근처 아파트나 논길로 빠진 이들을 색출해낸 모양이다. 당연히 그렇게 앞장서지 않았던 여성조합원등은 연행하지 않았고...
  
암튼 나는 몇번이고 그만 뛰고 주저앉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은 낙오되지 않고 대오와 함께 후퇴를 했고, 그것은 정말 죽음의 뜀박질이었다. 예정에 없던 평택행이었기 때문에 구두를 신고 가방까지 들고 뜀박질하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가관이다. 그렇게 시위 도중 짭새에 쫒기면서 공포감에 젖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이는 후미에 있던 선봉대 동지들이 압도적인 물리력을 가진 짭새를 저지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던 이유였겠지만, 중과부적인 상황에서 그렇게 무력하게 엄청나게 뛰면서 물러난 경험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법원사거리까지 이동하는 동안 계속 머리 위에서는 경찰헬기가 떠돌면서 색소가 든 봉지를 떨어뜨리면서 겁을 준다. 아마도 길거리에 있는 집회대오에 대해 그렇게 헬기에서 뭔가 던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결국 법원사거리에서 대오를 정비하여 이제는 제대로 붙어보자 하면서 짭새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들은 거기까지 나와 해산시킬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쇠파이프까지 등장했지만, 시간만 흘러갔고, 법원사거리에 모여있던 3-4000되는 인원들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9시경 집회지도부는 법원사거리에서 집회마무리를 하고 평택역으로 다시 이동하면서 평택경찰서를 타격하자는 전술을 짠 것 같았는데, 집회 사회를 보았던 동지가 지도부 지침을 따르지 않고 대오가 진격하여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을 탓하자, 이에 대해 여기저기서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결국 신승철 사무총장이 나와 사과를 하면서 자신이 선두에 서서 진격하겠다고 하여 다시 공장 쪽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방송차도 다 빠지고 쇠파이프도 다시 회수한 상황에서 진격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그건 대중의 판단에 반발한 지도부의 객기였다. 냉철하고 현명한 지도부라면 조합원들을 잘 설득하여 최선의 선택을 했어야 하는데, 그러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이해는 한다. 지금 도장공장 안에 있는 이들은 물도 마시지 못하고 있는데, 물도 전달하지 못하고 이대로 물러나야 되겠는가, 29일에 다시 모이자고 했지만, 오늘처럼 모일 수 있는지, 모이기 전에 쌍차에 공권력이 진입하지 않을지 하는 걱정을 누구나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대오를 사지에 몰아넣는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경찰이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집회대오를 칠 생각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충돌을 했다면 엄청난 연행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뒤늦게 별 성과 없이 대오는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은 정말 힘 빠지더라. 안타깝기도 하고...
하루 온종일 그렇게 평택에 있었는데,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뜀박질을 했다는 것 이외에 남는 게 없다. 그렇더라도 평택에 가지 않았던 것이 더 나았을까 하면 그것은 아니다.
 
민중의 소리 기자가 지적한 것처럼, 민주노총은 집회의 상황을 참가자들에게 설명하여 잘 설득하고 대회가 원만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하든지, 아니면 물과 음식을 공장에 반드시 넣어줄 수 있는 투쟁을 벌였어야 했다. 물론 이렇게 민주노총의 무능함을 비판하지만, 다른 수를 내기도 애매했다고 본다. 아쉽기는 하지만...
 
그날 총 20km이상을 걸은 것 같다. 한달 운동할 것을 다 했더니 몸상태가 영... ㅜㅜ 그래도 쌍차 도장공장 안에 있는 이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도 감사해야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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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사태 해결 촉구" 전국노동자·범국민대회 개최 (민중의 소리, 배혜정 이준형 기자, 2009-07-26 00:30:27)
"집단살인 당장 멈춰라".. 경찰, '최루액' 쏘며 강제진압
 
[3신 대체:오후 10시 50분] 쌍용차 공장 향하던 집회대오, 10시께 해산
[2신추가:오후 7시 50분] 경찰, 하늘에선 '최루액' 투척.. 땅에선 마구잡이 연행
[1신:오후 5시20분] "쌍용차 사태 해결 촉구" 전국노동자·범국민대회 개최
 
쌍용, 협상결렬 … 경찰, 집회 무력해산 (레디앙, 2009년 07월 26일 (일) 01:26:09 이은영 기자)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범국민대회 "독재 분쇄"… 30명 연행 
 
'쌍용차사태 해결촉구' 민주노총, 경찰과 충돌 (참세상, 정문교 기자, 2009년07월26일 3시10분)
쌍용차 노사교섭 사측거부로 무산
 
민주노총 전략도 없고, 전술도 없고.. (민중의 소리, 배혜정 기자, 2009-07-27 17:47:00)
1만여명 집결한 25일 전국노동자대회, 지도부는 '우왕좌왕'만
 
민주노총이 이날 집회에서 시종일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데는 쌍용자동차 사측이 "민주노총이 폭력을 행사한다"는 이유 등을 들어 대화를 거부하고 나서 것에 부담을 느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높다. 실제 이날 오전 노사정 간담회가 무산되면서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은 임성규 위원장에게 평화적인 집회가 될 수 있도록 고려해 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은 이같은 상황을 참가자들에게 설명한 뒤 대회가 평화적 기조로 치러질 수 있도록 설득을 하든가, 아니면 민심을 반영해 '어떤 과정을 치르더라도' 물과 음식을 공장에 넣어주는 투쟁을 벌였어야 했다. 쌍용자동차지부 핵심관계자는 "민주노총이 사측의 언론플레이에 말리는 것 같다"며 "민주노총이 투쟁으로 이 상황을 돌파해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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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요구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2009.07.25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는 의사 일동)
[의사 83인 연명 기고] "쌍용차 공장에 의료진 출입을 보장하라"
 
소위 '쌍용차 사태'가 벌어진 이래, 벌써 네 명이 세상을 떠났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혹은 노동자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이렇듯 목숨까지 걸어야하는지 그저 가슴이 먹먹해질 뿐이다. 이제 와서 새삼스레 파업 투쟁의 정당성이니, 먹튀 자본의 부도덕성이니 따지고 싶지 않다. 강 건너 불구경을 지나쳐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정부의 무책임함도 따지고 싶지 않다.
 
다만, 우리는 인간에 대한 예의, 그것도 최소한의 예의를 요구하고자 한다. 장사에도 상도덕이 있다. 야간에 빚 독촉을 하고 채무자의 가족을 협박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심지어 전쟁터에도 지켜져야 할 룰은 있다. 적군이라도 환자들에게는 의료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며, 의료물자의 수송은 보호받아야 한다.
 
쌍용자동차 사 측은 어제까지 함께 일하던 노동자를 파업 파괴조로 동원하여 노동자들의 가슴을 찢어놓고, '수면가스' 살포 운운하며 진압 작전을 모의해 왔다. 식수와 가스를 차단하는 것도 모자라 확성기로 음악을 틀어대며 잠을 못 자게 하는 주도면밀함까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며 파업 참가 노동자들의 연로한 부모와 가족들을 협박했다.
 
심지어 환자들을 위한 약품 반입을 금지하고, 환자를 만나러 가겠다는 의료진의 출입을 차단하기까지 했다. 후송이 필요한 환자들마저, 체포 협박 때문에 현장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측의 행태에, 우리는 의사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분노를 감출 수 없다.
 
지난주, 다섯 살도 채 안 된 두 아이를 남겨두고 한 노조간부의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가 평소에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측의 설명이 사실이라 해도, 현재의 '사태'가 그녀 죽음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게다가 우울증을 앓는 환자에게 '협박'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더더군다나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사측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경찰의 의료진 출입 봉쇄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하물며 가운을 입은 현장 진료 의사를 연행하는 모습에서 사실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에도 이런 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체불명의 '비닐 봉투 최루액'을 맞은 노동자들의 피부에 수포가 생기고 진물이 흘러내리는 사진이며, 미국 영화에서나 보던 테이저 건의 탄환이 노동자 얼굴에 박힌 사진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런 모습을 도대체 어떤 의학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있겠나? 이제 경찰은 '용산'에서 특공대를 투입할 때 사용했던 진압용 컨테이너를 배치했다고 한다. 어디까지 갈 셈인가? 용산 참사만으로는 진정 부족하단 말인가?
 
우리는 의사로서 쌍용자동차 사측에 '최소한'의 것들을 요구한다.
첫째, 사측은 노동자 가족들을 회유ㆍ협박함으로써 극심한 스트레스와 가족 갈등을 유발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죽음은 한 명으로 충분하다.
둘째, 식수 공급을 재개하고 음식물 반입을 허용해야 한다. 이 무더위에 물을 공급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살인 행위다.
셋째, 의료진의 자유로운 출입과 의약품 반입, 안전한 환자 후송을 허용해야 한다.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을 가진 이들에게 무더위와 스트레스, 수면박탈은 견디기 어려운 조건이다. 또한 각종 외상을 입은 이들에 대한 위생적 처치 또한 매우 시급하다. 이러한 세 가지 요구는 결코 커다란 정치적 결단도 아니고, 숭고한 인도주의적 희생도 아니다. 다만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또한 우리는 정부에도 '최소한'을 요구한다.
첫째, 무엇보다 강제 진압은 절대 안 된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도 꿈쩍 안했는데, 그깟 노동자들의 목숨이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는 또 다른 용산 참사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둘째, 최루액과 테이저 건 등 어떤 건강 위해를 가져올지 모르는 진압장비의 무차별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 파업과 시위 현장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진압 장비의 임상 시험장이 결코 아니다.
 
마지막으로, 의사로서 우리는 쌍용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부탁한다.
죽지 말고, 제발 살아서 싸워야 한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동료들과 함께 했던 소중한 순간들을 떠올려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건강하게 살아남아, 다시 일터에서 가정에서 그 행복했던 시간들을 함께 하길 바라는 수많은 이들의 연대의 마음을 당신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혹은 연구실에서 건강문제를 연구해왔던 우리 의사들은, 더 이상의 불필요한 죽음을 두고 볼 수 없다. 환자 한 사람의 건강을 되찾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평균 수명 1년을 늘리는 보건정책을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이렇듯 아까운 생명들을 줄줄이 떠나보내고 속수무책으로 다음 차례의 비극을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진심으로, 다시 한번, 사 측과 정부의 최소한의 예의를 요구한다!
 

 

[투고] 25일 평택 노동자대회에 참석한 한 활동가의 주장 (주간 현장노동자회 37호)
“한 것 없이 욕만 먹은 집회”
 
25일 평택역 노동자대회에서 총연맹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심정 같아서는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들고 싶다. 그러나 오늘 그렇게 해서는 못 이긴다. 돌발행위 폭력행위는 하지 말고 위원장의 통제에 따라 달라.” 그러자 장내는 술렁거렸습니다. 무언가 극한 투쟁이라도 벌여야 된다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니냐는 아우성이었죠.
 
그리고 행진으로 쌍용차로 향하는 도중 맨앞 지도부는 어느 시점에서인가 멈춥니다. 투쟁을 총괄 지휘하는 총연맹 간부 누군가가 핸드마이크로 이렇게 외칩니다. “민주노총 깃발은 앞으로 가지 않습니다. 여기 도로를 잡습니다. 산하연맹 깃발도 앞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자 “경찰이랑 짜고 여기서 해산하는 거 아니냐”는 말과 욕설 및 고함들이 쏟아지고 급기야 일부 참가자들은 지도부가 들고 있는 플랜카드마저 빼앗습니다. 몇몇 운동단체들이 총연맹 지도부를 넘어 앞으로 나아갔죠. 나중에 들어보니 당시 대오를 멈춘 것은 선봉대오를 갖추기 위해 시간을 벌려고 했던 계획된 전술이었다죠.
 
쌍용차 정문에서부터 법원사거리까지 경찰력에 밀려 퇴각합니다. 그 때 각 단위별 조직담당자회의가 진행되고 대오는 1시간 넘게 방치됩니다. 그 뒤 총연맹의 어느 간부가 핸드마이크를 잡고 회의결정사항을 알리러 나옵니다. “애초 전술이 계획되었으나 일부 조합원들이 지도부를 무시하고 앞으로 치고 나갔습니다. 우리는 조직입니다. 조직은 조직다워야 합니다.” 그러자 욕설과 고성이 난무합니다. 이에 그는 “조합원이 아닌 사람은 조용하십시오.”라고 공개적으로 말합니다. 물통까지 날라갔습니다. 결국 총연맹 사무총장이 대신 사과하고 “해산하지 않고 다시 진격 한다”고 밝히면서 사태는 수습됩니다.
 
집회를 하는 것이 소정의 목적(회사나 정부압박, 정문돌파, 생수공급)을 달성하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집회참가자들의 결의와 결속력을 높이는 성과를 노려야 합니다. 그래서 “아, 오늘 정말 힘차게 싸우고 돌아간다. 다음에는 더 싸워보자”는 이야기가 지방으로 내려가는 버스안에서 이야기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25일 전국노동자대회는 굳이 안 해도 될 말들 몇 가지 때문에 서로 오해하고 불신하고 갈등과 혼란이 표출된 집회였습니다. 온갖 비아냥과 험한 말들, 그리고 멱살잡이까지 나오는 모양새로 5km를 행진하면서 쌍용차 앞까지 진출했던 괴풍경을 봤습니다.
 
투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예상되는 우려지점을 논하거나, 투쟁이 끝나기도 전에 잘잘못을 따지며 성급하게 평가하려고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25일, 몇 가지 차분하지 못한 투쟁지휘부의 말 실수 때문에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커녕 내부의 결집력도 훼손시킨 하루가 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준비는 준비대로 한 것 같은데, 한 것은 없고 욕은 욕대로 먹는.
 
이것은 단지 실수일 뿐일까요, 아니면 누군가가 이야기하듯이 ‘신뢰 자체를 하기 힘든’ 근본적인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어찌되었든, 이러한 질문이 증폭되는 순간, 지도부는 한순간에 아래로부터의 신뢰와 지도력을 잃어간다는 것을 ‘제발’ 가슴에 새겼으면 합니다. 29일 투쟁 때는 이런 일의 반복이 없기를 기대합니다.
 
25일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한 활동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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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7 23:38 2009/07/27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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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자, 애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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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한국의 진보세력에게 애국이 금기의 언어였던가. '소수' 좌파세력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운동권들은 애국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였다. 1989년 백산서당에서 나온 조해문의 『애국시대』라는 소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물론 조국해방문학의 약어인 듯한 저자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북에서 나온 것을 펴낸 것이다) 그리고 스스럼 없이, 아니 자랑스럽게 자신을 '애국자'라고 밝히는 이들이 많았다.
 
보수꼴통들도 애국자임을 자임한다는 점에서 '애국'이라는 말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이들이 꽤 있었지만, 단발마에 불과했다. 이런 애국주의 프레임 안에서 독도문제, 중국의 동북공정 논란이 자리잡고 있다.  
 
송영선 의원이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는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한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 미국을 붙들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김용갑 의원은 “송의원은 애국자다, 애국자”라고 거들었다. 박진 의원도 “한·미 간에 손뼉이 맞는 와중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말은 잘못된 패배주의”라며 “미국 대통령과 국방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판단을 잘못하고 있는 미국에 할 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6. 8. 29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장은주 교수가 '진보적 애국주의'에 대해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뉴라이트가 '진보'라는 말을 사용하고자 하는 논리와 그리 다르지 않다.

 
덧붙이는 생각.
애국주의라는 용어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하는 말인데, 이러한 사회과학적 용어의 프레임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즉 사회과학적인 용어들이 우리나라에서 서구와는 달리 사용되는 경우가 상당히 있고, 한국적 현실에 맞게 짜여진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애국주의나 자유주의의 경우는 조금 모호하지만, 민족주의가 그러하고, 요새 한참 뜨고 있는 공화주의가 그러하다. 민족주의라고 하면 서구에서는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한국적 현실에서는 진보적인 가치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공화주의도 아직 대중화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만약 그 유용성이 확인된다면 공화당을 창당했던 박정희의 딸이 가만놔두진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공화당은 보수의 상징이다. 다시 말하면 최근 진보진영 일각에서 논의되는 공화주의가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해도 공화당 프레임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용어에 대해서 검토하면서 좀더 문헌연구를 할 필요가 있겠다. 경로의존성과 프레임 이론에 대해서도 정리해야 하고...

 
공화국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를 것이다. 장은주 교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합창하던 이들이 '공화국'에 대해 나름의 신심을 가질 것이라고 판단하지만, 홍세화 선생과 같이 프랑스식 공화국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테고, '태백산맥'이라는 빨치산 노래에 나오듯이 공화국이라고 하면 '북조선'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공화당을 떠올리지 않을까. 
 
예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애국자'라는 글이 생각난다. 거기에 권정생 선생의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라는 시를 옮기고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권정생 - 애국자가 없는 세상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테고
대포도 안 만들테고
탱크도 안 만들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애국자가 싫다
 
내가 애국자라는 단어를 싫어하게 된 것은 상당히 된 듯하다.
이제는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것들에 진저리가 난다.
아니 자신이 애국자라는 사람, 애국자가 되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나에게 덜 떨어진 인간으로 보인다.
이러한 나의 의견이 치기로 보일지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연장에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한겨레신문에 얼마 전 나온 '애국주의' 이론 논쟁 확산 기사가 불편하다. 물론 애국주의에 대해 차분하게 성찰할 기회가 된다면 모르겠지만, 진보적 애국주의라고 해도 거기서 거기 아닐까. 
예전에 관련하여 블로그에 옮겨놓았던 글들도 가져온다.
    
 

‘촛불 시민’에게서 진보적 애국주의 가능성 발견 (한겨레, 이세영 기자, 2009-07-22 오후 08:14:17)
‘애국주의’ 이론 논쟁 확산
 
지난해 역사교과서 파문을 계기로 촉발된 ‘대한민국사 논쟁’의 후폭풍이 예사롭지 않다. 12월 주대환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과 장석준 진보신당 정책실장의 논쟁을 통해 진보진영 내부로 옮겨붙은 논쟁은 최근 학계 전문가들이 가세하면서 이른바 ‘애국주의’를 둘러싼 이론 논쟁으로 확산되는 형세다. 장은주 영산대 교수(법학과·사진)가 이달 초 발간된 반년간 <시민과 세계>(참여사회연구소 펴냄)에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는 것-진보적 애국주의의 가능성과 필요’라는 글을 발표한 데 이어 박명림 연세대 교수, 신진욱 중앙대 교수 등도 유사한 주제의 기고와 발표문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달 12일 <경향신문>과 웅진지식하우스가 함께 여는 ‘공화주의’ 토론회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도 ‘애국주의’다.
   
기실 한국의 진보세력에게 ‘애국’은 오랫동안 금기의 언어였다. ‘유신’과 ‘5공’으로 상징되는 극단적 국가주의가 그들의 뇌리에 ‘억압하는 아버지’라는 국가 이미지를 확고하게 각인시킨 탓이었다. 그들은 권위에 순응해 안위를 찾기보다 ‘분단된 민족’과 ‘억눌린 민중’의 이름으로 불의한 아버지에 저항했다. 그들에게 민족과 민중은 아버지의 폭정에 신음하는 어머니, 형제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일정하게 확보된 뒤에도 그들의 무의식은 ‘과거의 아버지’를 상기시키는 어떤 말이나 상징도 용납하지 않으려 했고, ‘자애로운 아버지’에 대한 대중의 갈망 역시 비판과 극복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을 사랑하라’는 것은 가슴으로도 머리로도 수용하기 힘든 부당한 강요이자 또다른 억압이었다.
 
장은주 교수는 진보세력의 이런 완강한 ‘반(反)애국주의’가 놓치고 있는 지점들에 주목한다. 그것은 대중들의 정치적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국가적 긍지’와 관련된 문제다. 예컨대 서울광장에 모여 앉아 “대~한민국”을 외치는 시민들의 행위를 비합리적인 국가주의적 열정의 분출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인이 자존감 없이는 정상적 삶을 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국가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민의 ‘국가적 자부심’이 필수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의 법철학자 마사 너스봄의 말을 빌려 말한다. “애국주의는 대체로 나쁜 것이다. 그러나 애국주의가 위험할 수 있다고 해서, 또는 우파들이 즐겨 이용하는 정치적 수단이라고 해서 진보정치가 그것을 외면하는 것은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진보정치는 오히려 올바른 애국주의로 무장하고 우파가 독점하고 있는 정치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야만 한다.”
 
장 교수는 ‘진보적 애국주의’의 가능성을 지난해 여름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합창하던, 광장의 그 시민들에게서 발견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을 통해 국가의 독단적 권력행사에 저항하는 그들의 행동이야말로, 애국의 근거를 ‘공화국’이 보장하는 ‘모든 사람의 평등한 자유와 참여’에서 찾는 ‘공화주의적 애국주의’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우리가 대한민국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공화국’이란 정치체제를 통해 모든 사람의 평등한 자유를 보장하고 실현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이 과연 인민의 사랑을 요구할 만한 ‘공화국’의 이념에 충실해왔냐는 것이다. 장 교수는 “아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애국을 거부해야 할 이유는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무엇보다 주목하는 것은 공화주의의 이념을 성문화한 제헌헌법이다. “우리나라가 스스로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하는 헌법을 가지는 순간, 그 헌법은 지배의 합리화와 민주적 법치주의의 완성을 향한 내재적-규범적 동학을 발현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독재에 저항했던 민주화 투쟁 역시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이념의 실현되지 않은 가치를 환기시키고 새롭게 해석하면서, 그것을 실현하려고 했던 운동”에 다름 아니다. 이를 통해 장 교수가 진보세력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이렇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적인 토대에 대한 솔직한 수용 위에서 갖게 되는 ‘미래에 대한 책임의식’ 같은 것으로 표현돼야 한다.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을 부정하고 조롱하면서 그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실천을 ‘체제 내적’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것은 현실을 조금이라도 의미있게 바꿔 나가는 데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
 
이런 장 교수의 주장에 대해선 반론 역시 만만찮다. 장석준 진보신당 정책실장은 장 교수의 주장을 “기원론적 사고”로 몰아붙인다. 장 교수는 “지금의 시점에서 과거를 재구성하면서 현재의 소망을 과거에 투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 실장은 말한다. “대한민국의 과거에는 도저히 납득하고 수용할 수 없는 부정적 현실들이 존재하며, 그 현실은 아직까지도 살아남아 미래의 발전을 가로막는 질곡이 되고 있다. 그것을 무시한 채 대한민국을 자기준거적, 규범적 현실로 인정하라는 것은 또다른 폭력이다.” 앞으로 전개될 논전의 치열함을 예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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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주의 논쟁, 뉴라이트가 제기…촛불시위 계기로 고민 본격화 (한겨레, 이세영 기자, 2009-07-22 오후 08:11:53)
애국주의 논쟁의 지형
정치권 유시민·노회찬 등 ‘관심’
진보진영 일각선 위험성 경계도
   
‘애국’의 문제를 먼저 제기한 것은 뉴라이트 진영이다. 이영훈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뉴라이트 학자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국가적 자긍심’을 고취한다는 명분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적의 역사’ ‘승리의 역사’로 추어올리는 한편,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각각 ‘건국의 아버지’ ‘근대화 혁명가’로 미화함으로써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불기 시작한 젊은 세대의 ‘대한민국 열기’를 보수주의 프레임 안으로 흡수하려는 시도에 나섰다.
 
진보진영에서는 2008년 촛불시위를 계기로 ‘애국주의’에 대한 고민이 본격화했다. 2002년 미선·효순양 사건, 2004년 탄핵반대 집회 직후에도 이른바 ‘대한민국주의’의 실체에 대한 논의들이 있었지만, 깊이 있는 학문적 담론의 차원으로 승화되진 못했다. 논의가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올라선 것은 2000년대 중반 ‘공화주의’와 ‘애국주의’에 대한 서구 학계의 심화된 논의들이 소개되면서부터다.
 
박명림(연세대)·김상봉(전남대)·장은주(영산대)·안병진(경희사이버대)·신진욱(중앙대) 교수 등은 ‘시민적 공화주의’라는 차원에서 ‘국민적 정체성’과 인권과 소수자 보호 같은 ‘보편주의적 가치’의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이 그리는 애국주의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로 경사되지 않으면서, 철저하게 보편적 인권과 개인의 자율을 보호하고 신장시키는 것을 지향한다. 반면 진보진영 일각에는 여전히 ‘애국주의’가 갖는 종족적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경계하는 흐름 역시 존재한다.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와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 장석준 진보신당 정책실장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모든 구성원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참여를 보장하는 공화주의의 이념에는 동의하면서도, 그것을 국민 정체성 형성의 매개로 삼으려는 시도에는 비판적이다. 민주공화국을 긍정한다는 것은 그 권력의 최종 근거인 ‘대한민국 시민의 힘’을 긍정하는 것이지, 헌법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거나 현실의 국가를 자기준거적이고 규범적인 현실로 인정하는 것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등이 ‘공화주의적 애국’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 단체 중에서는 참여사회연구소가 공화주의와 애국주의 논의에 적극적이다. 참여연대는 조만간 ‘민주공화국’을 주제로 한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아래의 글은 누구의 글일 것 같은가. 신자유주의 시장개혁이 일상 깊숙히 파고드는 이 나라에서 시대착오적으로 "왼쪽으로, 좀더 왼쪽으로"를 말하는 이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현실 사회주의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대안은 이미 붕괴했다고 하면서 현실을 인정하고 참여 속의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는 이들이 득세하는 이 시기 이 땅에 좌파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는 제 정신인 사람일까. 
 
시장의 절대성을 외치던 사람들이 애국주의, 국가주의의 화신이 되어 독도수호를 얘기한다. 투철한 국가관의 확립과 경제적 자유의 신성불가침이 소위 자유주의자의 이름으로 공존가능한가.
   
진보정당을 표방하면서 독도에 군대주둔을 얘기하고 일본에게 매운 맛을 보여주겠다고 이벤트를 벌이는 민주노동당의 모습도 이 자유주의자의 눈으로는 이해되지 않을 성 싶다. 어쩌면 글의 말미에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민주노동당의 슬로건을 인용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에 대해 쪽팔리는 하루하루가 계속되고 있다.
글쓴이의 이름은 글의 말미에 있다.
 
왼쪽으로, 좀더 왼쪽으로 (한국일보, 2005/03/16 17:38)
자유·국가주의 기괴한 '통정'
복지 취약한 한국엔 좌파 필요

 
한국의 이념 지형에서 기괴한 것은 흔히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자유지상주의(근본주의적 자유주의)가 유사 파시즘적 국가주의와 만들어내고 있는 맥놀이다. 시민사회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에 경기를 일으키는 자유지상주의자와, 국가를 의인화해 충성스럽게 섬기는 유사파시스트가 서로에게 아무런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자유지상주의자는 대수롭지 않게 박정희를 찬양하고, 박정희 숭배자는 거리낌없이 최소정부론을 외친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에서 민주주의의 두 적으로 거론한 무정부주의와 수호자주의가 통정하고 있는 꼴이다.
 
이 두 세력은 단지 정을 통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지상주의와 국가주의는 드물지 않게 한 입에서 발설된다. 아침에는 시장의 거룩함을 주장했던 사람이 저녁에는 애국주의의 화신이 되고, 어제는 투철한 국가관의 확립을 선동했던 신문이 오늘은 경제적 자유의 신성불가침을 외친다. 이것은 자유지상주의와 국가주의의 이념적 친화를 뜻하는가? 그럴 리는 없다. 개인적 선택을 절대시하는 자유지상주의와 집단을 물신화하는 국가주의는 물과 기름이다. 그 둘을 동시에 주장한다는 것은, 그 주장이 진심이 아니거나 주장자가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뜻이다.
 
그러면 어쩌다가 한국에서 이 둘은 한 몸뚱이를 이루게 됐는가? 그것은 이념적 간극을 가뿐히 넘어서는 인적 연속성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의 국가주의자들은, 제 몸에 국가주의의 흔적을 남긴 채 민주화 시대의 자유지상주의자로 변신했다. 왜? 그것이 ‘세계화’라는 대세의 공식 이념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가운데 완고한 일부는 아직도 국가주의에 매달려 있고 또 다른 일부는 세련된 자유지상주의자로 완전히 전향했지만, 상당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이형동질의 낭만적 파토스를 오가며 이 화해할 수 없는 두 이념을 한 몸으로 부둥켜안고 있다.
 
한국의 국가주의와 자유지상주의는 ‘박정희의 친구들’이라는 동일 인구집단에 혈연적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 때문에 쉬이 분리되지 않는다. 그것이 한국에서 우파와 극우파를 구별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들이 함께 내세우는 것은 타락한 ‘자유’의 구호다. 이 범우파 블록 안에서 시간은 자유지상주의 편일 것이다. 세계화의 해일은 이내 국가주의자들의 기를 꺾어놓을 것이고, 분열증적 개인들의 내면에서도 자유지상주의는 국가주의를 이길 것이다. 국가 위세를 특별히 중시하는 초강대국이 아닌 나라에서, 동원된 애국심이 계속 자본에 맞먹는 결기를 유지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가보안법이 자본 운동의 걸림돌이라고 판단되는 순간, 우익 진영의 폐지 반대 목소리는 쑥 들어갈 것이다. 자유지상주의는 한국의 전통적 수구 기득권층만이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경쟁자들도 꽤 개종시켰다. 지금 한국에서 자유지상주의는 개혁의 이름으로 관철되고 있고, 여권의 주류는 총자본에 굴복한 듯하다. 이것은 물론 우리만의 사정은 아니다. 자유지상주의의 범람은 세계화에 시큰둥한 유럽에서까지 목격되고 있다. 그러나 서유럽 국가들에 맞먹는 경제규모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나라들이 두세 세대 전에 이룩한 복지시스템이 없는 한국에서 이것은 재앙이다. 서유럽과 달리 우리에게는 줄일 복지 자체가 없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복지시스템 구축과 공동체구성원 사이의 연대를 핵심 가치로 삼는 좌파적 감수성이 우리 사회에 특히 긴요한 것은 그래서다.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슬로건은 한 정당의 선거구호를 넘어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기술적 근본원리가 돼야 한다. 세법 손질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부자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좌파 세상이 왔다고 호들갑 떠는 야당과 우익언론이 민생을 얘기하는 것은 뻔뻔한 일이다. 민생은 본디 좌파적 가치다. 우리 사회에는 좀더 많은 좌파가 필요하다.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독도문제는 그냥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광기어린 민족주의 열풍은 소위 진보를 표방하는 이들에게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같은 당적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보다 당 밖에 있는 좌파나 사회당에 더 정서적 친밀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단순히 예전 NL-PD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어서도 아니고 자주계열에 반감이 있어서도 아닐 것 같은데...
 
갈수록 도를 더해가는 일본의 우익세력도 그렇지만, 이에 장단을 맞추는 남한의 우익세력도 마찬가지로 역겹다. 많은 얘기를 하기는 싫다. 그냥 글 몇개를 링크하면서 그 중에서 주목할 부분만 지적하기로 한다.
 
참, 독도 얘기를 하려면 빼먹어선 안될 것이 있다. 정세에 맞는 노래를 쏟아내는 윤민석이나 우리나라에 대한 것이다. 지난 탄핵 때는 윤민석이 노래를 내어놓더니 이번에는 우리나라이다. 우리나라는 이전에도 나에게 찍힌 바 있다. 이라크 파병철회와 반전평화를 목놓아 외치던 작년 여름, 그들이 내놓았던 '못가'라는 노래는 못내 거슬렸다. 일부에서는 그게 무슨 대수냐라고 했지만 말이다.
 
'독도는 우리의 땅이다'라는 작사/작곡한 백자라는 분은 지난 대선 시기에 권영길 후보의 로고송을 몇개 만들기도 했는데, 맘에 드는 노래도 있었지만, 차라리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노래도 있다. 이번 노래 또한 그렇다. 우리나라의 홈페이지에 가면 이 노래의 다운 횟수가 8만회가 넘어서 다른 노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임을 볼 수 있다. 이 노래의 컬러링을 홍보하면서 나오는 멘트. "독도는 우리땅, 대마도도 우리땅!"
 
쪽바리라는 일본인 일반을 비하하는 말을 쓸 필요가 있었을까. 김규항이 지적한 대로 '일본의 비정규 노동자와 극우 정치인'은 같은 쪽발이 새낀가? 나와 이건희는 같은 민족인가. 같은 민족이라서 어떻다는 건가?
한번 붙자고? 끝장을 내주겠다고? 전쟁을 하자는 것인가.
가사에서 대마도도 우리땅이라고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전형적으로 우익의 관점을 가사에 나타내고 있다.  게다가 가락은 이전에 만들었던 우리나라의 노래와 별로 차이가 있지도 않다. 이런 노래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근거에서 그러는 것일지...     
 
1. '독도'에는 없다: ‘패권’에 맞서는 ‘진보’의 길
4월 4일에 발행된 전진통신 제1호(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준)의 소식지)에 실린 독도 관련 글이다. 이는 접하기 어려우니 글을 전재한다. 구체적인 실천지침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내의 우익세력과의 각을 세운 것도 아니지만, 원칙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 동안 독도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주한 일본 대사의 추방'과 '독도 군대 파견'이라는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의 입장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았다. 이런 와중에 한국 진보운동의 큰 스승인 리영희 선생은 3월 29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쉽게 동요하고 흥분하면, 싸우기도 전에 저들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이라며 "그런 대응으로는 절대로 일본을 따라 갈 수 없다"고 일갈했다. 더불어 "지금 일본의 행보 뒤에는 미국이 있으며" 따라서 "표피적으로 드러난 일본 우익에 대한 감정적 대응보다는 미국이 일본을 앞세워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그 목적, 흉계, 전략을 확실히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리 선생의 말씀은 과연 정곡을 찌르는 것이다. 왜 일본 우익이 한편으로는 독도, 댜오위다오釣魚島문제 등을 터뜨려 한 중과의 국경 분쟁 양상을 만들면서 다른 한편으로 역사 교과서 왜곡을 추진하는지, 이 점을 잘 봐야 한다.
 
역사 교과서 왜곡은 일본이 동아시아의 군사 패권 국가로 재부상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자기 정당화 수단이다. 과거 제국주의의 범죄 행위를 무(無)로 만들어야만 새로운 제국주의의 출발을 축복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우겨대는 것은 자기네가 보기에도 결코 폼 나는 일은 아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한국 중국을 일본의 피해자가 아니라 대등한 적대자로 만드는 새로운 쟁점, 즉 영해 문제다. 과거사가 아니라 영해 문제가 주된 쟁점으로 떠오른다면, 일본은 더 이상 피고被告의 자리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 자기들도 원고原告의 자격임을 강변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재판의 쟁점도 이제 더 이상 '제국주의'가 아니게 된다. 일본 우익이 납북자 문제를 과장 왜곡하여 북 일 갈등을 조장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책략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민중들이 시마네현 조례에 대한 감정적 대응으로만 일관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장은 일본에 맞서 민족의 결의를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일본 우익의 장단에 놀아나는 꼴이 될 것이다.
 
일본의 제국주의 패권에 대한 투쟁, 그 길은 '독도'에는 없다. 우리는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판에서 싸워야 한다. 우선 그것은 동아시아의 현대사를 바로 놓기 위한 차분하고 끈질긴 대응이어야 한다. 일본의 과거 범죄 행위들(위안부 문제,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 등)을 분명히 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과서 왜곡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일본의 좌파 세력과 굳게 연대해야 한다. 비록 80년대 말을 거치면서 사회당과 총평이라는 좌파의 버팀목이 무너지긴 했지만, 일본 사회 저변에는 아직 사회당 잔류 세력들 노동조합 반핵평화운동 풀뿌리 시민운동 등 진보적인 역량들이 남아 있다.
     
우리는 시마네현 조례로 고양된 감정적 흥분에 편승해서 영해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그래서 일본 내 좌파의 입지를 좁히기보다는 이들과 연대해서 미 일 제국주의를 고립시킬 쟁점들을 제기해야 한다. 원폭 투하 60주년을 맞아 한 일 양국에서 동시에 동아시아 비핵화와 군비축소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대중적인 운동을 벌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바로 여기에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한국 진보 세력의 과제가 있다.
 
2. 독도로 간 호랑나비 (2005년 03월 18일 17:01)
미디어참세상 기자인 molot님이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이다. 사건이 터졌을 때의 어떤 쇼가 벌어졌는지를 잘 묘사해놓고 있다. 이 가사의 마지막을 따서 메신저의 대화명으로 3-4일을 사용하였다.
molot님의 미디어참세상글 --> 독도 둘러싼 긴장,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듯, 극우를 극우로, 제국주의를 파시즘으로 막을 수는 없어 
 
하여튼 난리다. 남녀노소, 남북한 해외, 보수 개혁 할 것 없이 독도로 대동단결이다. 누가 한 마디 쓴소리를 할 법한데 월드컵 때 쓴소리 했던 인권운동사랑방이 거의 린치 당하다 시피 했던걸 본 탓인지 아니면 워낙 일본이 헛소리를 하는 탓인지 한 목소리 일색이다. 그런데 상황이 점입가경에 접어들고 있다. 북핵저지연대랑 한총련이 한 목소리로 한자리에서 시위하는 것이야 그렇다 손 치더라도 단지, 할복, 투신에 이어 분신까지 등장했다.
 
게다가 상황은 급기야 코미디의 반열에 접어들고 있으니 모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지정에 맞서 대마도의 날을 지정하겠다고 나섰다. 결혼 서비스 회사 선우에서는 '독도 수호 미팅'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오늘 들었던 가장 압권인 뉴스는 독도는 우리땅을 불렀던 정광태와 콧털 김흥국이 손을 잡고 "독도로 간 호랑나비" 앨범을 제작하기로 했단다.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다시 잘 팔린단다. 출판사는 작가는 이 사태를 예견하고 이 소설을 썼다는 카피로 공세적 광고를 재개했다.
 
제국주의와 파시즘이 정말 나쁜 것은 상대방의 그것을 촉발시키고 강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세계 대전 당시 유럽의 노동계급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옆 나라의 노동계급과 제 목숨들을 버려가며 싸운 전례가 있지 않은가? 지금 일본제국주의는 한국의 국수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마 양국의 파시스트들을 슬며시 웃음을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파시즘으로 제국주의를 막을 수는 없지 않은가? 
 
3. 독도는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의 것이다! (2005년 3월 17일 14시 13분)
녹색평론 편집장인 변홍철님이 '녹색평론 읽는 사람들'에 올린 글의 일부다. 글의 뒷부분에 진보정당의 성명서인지 의심스러운 민주노동당의 3월 16일 성명이 나와있다. 근래 들어 내가 민주노동당원임을 부끄럽게 했던 글 중의 하나이다. 변홍철님의 이 글은 정리되어서 한겨레신문의 의견란에도 실렸다. 실천적인 대응방침은 뚜렷하지 않지만, 민주노동당 성명에 대한 적절한 비판으로서 의미가 있다. 아마 이 글이라도 빨리 나오지 않았으면 정말 쪽팔려서 돌아버리는 줄 알았을 것이다.    
 
'독도 문제'를 두고, 우리사회가 갑자기 좌와 우도, 여와 야도 없이 획일화된 목소리로 '반일'을 외치는 이같은 상황을 결코 건강한 사회적 반응이라고 두고 보기에는 우려스러운 점도 없지 않다. 특히 어제(3월 16일) 민주노동당의 소위 '지도부'가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제정' 사태와 관련해 발표한 성명서의 내용은 평소 관심을 가지고 민주노동당의 활동을 지켜보던 한 시민으로서, 참으로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국가주의/민족주의적 열기(광기에 가까운)의 확산에 부화뇌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소위 진보정당의 역사적/사회적 책무에 대한 치열한 고뇌와 팽팽한 긴장 대신, 은근슬쩍 분위기와 시류에 편승, 영합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다른 것은 두고라도, 독도문제와 관련해 정부에 '강력한 조치'를 촉구하면서, '독도 국군주둔', '독도 개발' 따위를 주문했다는 것을 읽고는, 차라리 수치스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전통적으로 '진보' 혹은 '좌파'의 관점과 입장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국가주의를 바탕으로 한 성장과 개발 논리, '국익'이라는 허황된 이데올로기와 유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워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민주노동당 '지도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의 인식과 현재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는 좀더 근원적이고 비판적인 상상력과 언어와 실천이 필요하다. 이러한 때에 '국익'의 이데올로기적 광기에 합류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임을 알아야 한다.
 
독도는 원래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 수많은 물고기와 파도의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풀뿌리 민중들은 그러한 자연의 섬인 독도를 인간의 탐욕과 국가주의적 논리로 '소유(영유)'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리석은 자본과 국가의 개발/팽창 논리로부터 이 아름다운 섬과 바다를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그동안 생각해왔습니다.
 
우리 한국 민중은 이번 독도에 관한 당신들 지도자들의 움직임이, 과거에 그랬듯이 또다시 동북아시아와 세계에 '제국주의적인 힘'으로써 팽창해 나가겠다는 터무니없고 부도덕한 야심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 언제나 그랬듯이 팽창과 정복, 전쟁에의 유혹은 어느 나라든 민중의 피를 빨아먹는 지배세력과 권력엘리트들의 것이지, 하루하루를 노동하여 정직하게 먹고사는 풀뿌리 민중의 이해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는 것을 일본의 형제 여러분도 너무나 잘 아실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제발 평화를 사랑하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양국 풀뿌리 민중의 오랜 지혜와 전통에 입각하여, 독도가 독도로서, 자연이 자연으로서 그냥 아름답게 보존되고 유지될 수 있도록 하십시다. 그것은 국가를 뛰어넘어 우리 모든 민중의 의무입니다. 제발 자연을, 독도를, 국가주의와 군국주의라는 더러운 명분으로 같이 짓밟는 어리석음에 동참하지 맙시다. 독도는 독도이기도 하고, 당신들에게는 '다케시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인간이 붙인 이름일 뿐, 독도는 원래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 수많은 물고기와 파도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전세계 풀뿌리 민중의 국제주의와 평화주의에 대한 신뢰와 연대의 원칙을 결코 저버려서는 안되며, 더구나 "생태적으로 지탱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인류보편의 비전을 놓쳐서도 안된다
 
일본의 군국주의와 팽창주의를 경계하고, 한-일 민중과 평화주의 세력의 연대로 이러한 '도발'에 맞서 싸우는 것은 물론 긴급한 우리의 과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과제와 '민족주의적/국가주의적 대응(처방)'은 전혀 인연이 없는 것이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이라크 침략전쟁에 우리 군대를 파견해 놓고, 그것을 우리의 힘으로 철군시키지도 못하고 있는 '전범국가의 국민'으로서의 부끄러움을 고스란히 지고서, 우리가 지금 어떻게 일본의 팽창과 군국주의화만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천성산과 새만금 파괴, 골프장과 기업도시 열풍과 같은 반환경적, 반민중적 거대국책사업으로, 우리 땅 전체와 민중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이 참혹한 '일상의 전쟁상황'을 우리가 제지하지도 못하면서, 독도의 영유권을 확인하기 위해 독도를 '개발'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우리사회 진보정당의 수준인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일본의 파렴치함과 야욕을 무조건 비난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4. 독도문제에 대하여 (최종 편집: 2005년 03월 25일 19:15:53)
최근에 진중권님이 인터넷 경향신문 언바세바의 칼럼 [진중권의 좌향좌]에 올린 글 중에서 돌을 던진 사람보다 꽃을 던진 사람이 많은, 몇 안되는 글 중의 하나이다. 의외의 결과이다. 독도문제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잘 썼다.  
 
끓어오르는 민족감정에 편승하는 것은 진보정당이 할 일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이런 분위기가 자칫 낡은 민족주의의 고양으로 흐르지 않게 견제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일본 대(對) 한국’의 대립이 아니라 ‘한일우익 대(對) 한일 두 나라의 개혁진보세력’으로 바로잡는 역할. 거기에 진보정당의 과제가 있다. 어느 나라 진보정당에서 “군대를 보내자”는 맛이 간 헛소리를 하던가. 진보는 내셔널리즘의 광기에 내셔널리즘으로 맞설 게 아니라 내셔널리즘에 인터내셔널리즘으로 맞서야 한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일본을 ‘섬’으로 고립시켜 그들의 우경화 야욕을 저지해야 한다면,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국제주의의 관점에 서서 일본 내의 양심세력과 연대하여, 그 사회 내에서 일본의 우익을 고립, 약화시켜야 한다.
 
네티즌들 역시 이제는 과거와 달리 좀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이것은 흥분할 문제가 아니라 풍자를 할 문제다. 가령 일본 시마네현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선포한다면, 우리 쪽에서는 “시마네현의 울릉군으로의 편입을 축하합니다”라고 대꾸해주며, 시마네현을 시마네면으로 개칭하여 울릉군 시마네면(面)의 면민들에게 울릉군의 명예 군민증을 선사해주면 될 일이다. 일본 우익의 도발에 같은 수준으로 대응할 필요 없다. 그들의 머리 꼭대기 위에 앉아서 점잖게 그들의 망령을 비웃어주면 될 일이다.
 
5. 독도문제에 대한 당의 대응에 관하여 - 진보정당의 고민은 달라야 한다. (2005-03-25   18:55:01)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이 중심이 된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당원 일부가 당과 학생위원회의 독도문제에 대한 당의 대응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였다. 이주희 학위장 등은 독도에서 일장기를 불사르고 울릉도 농성에 돌입하는 등 도대체 한나라당 학생위원회인지, 자유총연맹 산하 학위인지 그 정체를 알지 못하게 하는 행동을 저질렀다. 적어도 여기에 있어서는 반핵반김어쩌고 저쩌고 하는 분들과 동일하다. 이런 사안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아니던가?
 
6.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등의 공동보도문 (2005-03-25  16:44:32)
중앙당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은 이런 것을 앞장서서 만들어나가야 하지 않는가.
 
일본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제정 조례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등은 일본 내 극우세력의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에 다름 아니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공동의 입장을 밝힌다. 
-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실효적 점유상황을 보더라도 한국의 영토임이 명백하다.
- 따라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일본 내 극우 세력의 팽창주의적 야욕의 발로이며, 일본의 우경화와 군국주의화를 부추기는 불순한 시도에 불과하다.
- 나아가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 주장에 동조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한일간의 미래지향적 교류에 찬물을 끼얹고, 비생산적인 긴장과 극우 민족주의의 발호를 부추기는 퇴행적 외교술에 불과하다.
- 특히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한국 국민들의 분노가 고조되어 있는 상황에서 미국무부장관의 일본의 UN, 상임이사국 진출지지 발언은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묵인함으로써 동북아의 긴장 고조를 방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나아가 일본 군국주의를 지렛대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불순한 국제정치공학적 발상인 바 우리는 일본의 UN, 상임이사국 진출를 명백히 반대한다.
- 한일 진보세력은 차제에 독도의 영유권 문제뿐만 아니라 일본의 전범국가로서의 국제적 책임을 묻고 일본이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지 않는 평화애호국으로 상호 선린을 도모하는 이웃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7. '독도수호'는 민중의 요구가 될 수 없다! (2005년03월29일 13:59:13)
한·일 지배계급이 공명하는 <(대미)군사동맹>을 분쇄하는 민중적 연대를 구축하자!
사회진보연대의 [사회화와 노동] 257호에 실린 것이다. 이건 길더라도 읽어봤으면 좋겠다. 앞부분만 발췌하고 뒷부분은 전재했다. 요새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가 독도에 간 것에 대해 다함께가 옹호하고 나선 것에 대해 논란이 있다. 다함께는 항상 무슨 사안이 있을 때 일관된 입장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찌보면 대중추수주의적으로 왔다갔다 한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적인 세를 얻는 것도 아니고... 다함께가 제대로된 국제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였으면 좋겠다. 이건 진영논리가 아니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공방이 점차 전사회적으로 ‘반일여론’을 확산시키는 가운데 과연 남한의 사회운동은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개입할 것인가?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번 사태는 미국과 일본이 한 축이 되고 남한이 적극적으로 조응하는 동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적 재편전략에 대한 비판의 현재성을 분명하게 부각하고 있다는 것이며 사회운동은 바로 이러한 현재적인 의의에 착목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반미반전 투쟁에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독도 영유권 논란’은 현재적인 동아시아의 제국주의적 재편과 관련되어 있으며, 둘째 ‘독도수호’를 외치며 ‘반일’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지배계급과 별 다를 바 없는 국가주의적 동원전략에 무비판적으로 조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갈등은 식민지적 사회·경제적 관계를 청산하기는커녕 유지·온존하는데 급급했던 미국의 동아시아 전후 처리의 부산물인 것이다. 일본에서 국가주의/민족주의의 발호의 특징은 대부분 주변 국가와의 ‘과거사(근현대사) 왜곡’ 혹은 ‘영유권’ 문제를 둘러싸고 극우세력의 발언권이 강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 압도적인 지지로 지방선거에서 재선된 도쿄 지사 이시하라 신타로가 다른 무엇보다도 중점적으로 추진한 사업은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원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행한 초·중·고등학교에서 국기게양과 국가제창의 의무화였다. 일본 내 우익세력의 목청이 커진 이유에는 장기불황과 청년층의 실업자 급증, 강력한 대중적 기반을 지니고 있었던 총평-사회당 블록을 주축으로 한 이른바 ‘혁신세력’의 몰락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1990년대 냉전의 종식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에 조응하는 일본의 대외정책의 기조가 그동안 극우세력이 꾸준히 주장하던 방향과 일맥상통함으로써 일종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는 쟁점이 이른바 ‘보통국가론’인데, 이는 군대의 보유와 집단자위권을 금지하는 현재의 ‘평화헌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다.
 
일본의 ‘우경화’는 점차로 일본의 ‘재무장’을 필요로 하는 미국의 동아시아 재편전략, 나아가 세계전략 속에서 점차 힘을 얻고 있으며 이에 대한 우리의 비판은 동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적 군사재편에 대한 반대, 한-미-일 삼각동맹에 대한 비판, 나아가 ‘무한전쟁’과 ‘무한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사회운동의 반전-대안세계화의 과제 속에서 위치 지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비판하지 않는 ‘반일’은 민중의 생존을 담보로 추진되는 현재의 제국주의적 폭력을 간과, 내지 은폐하고 오히려 민중의 시선과 관심을 오로지 과거의 일제의 침탈에만 맞춘다는 점에서 퇴행적일 수밖에 없다.
 
일본의 우익세력은 독도 뿐 아니라 주변 국가와 영유권 분쟁에 휘말려있는 모든 지역이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움직임을 ‘군국주의 침략의 부활’로 규정하고 즉각 ‘영토수호’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은 언뜻 보면 가장 직접적이고 정당한 대응인 듯 하다. 그러나 첫째, 이는 무엇보다 사태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지배계급의 동원전략에 호응한다는 점에서, 둘째로, 무엇보다 동아시아 차원에서 진행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재편전략에 공조하는 한·일 지배계급의 동일한 논리를 무력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국가주의/민족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정당화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혹자는 독도는 일제의 침략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아니냐고, 따라서 ‘독도의 영유권’을 ‘수호’하는 것은 민중의 요구를 정당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적으로 돌이켜볼 때 어떤 특정한 지역에 대한 배타적인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민중들 스스로의 권리를 주체적으로 쟁취하려는 것이었다기보다는 국가와 민족의 ‘영광’을 위해서 지배계급에 의해 ‘동원’되는 것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 ‘동원’의 성과는 민족/국가에 대한 ‘상징’을 중심으로 애국심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어떤 ‘경계’를 중심으로 그 외부의 집단에 대해 ‘단결’을 고취하고 내부의 ‘모순’과 ‘적대’에 대해서는 은폐하는 것은 지배계급이 급진적이고 저항적인 민중들의 운동을 무력화하는 가장 고전적인 수법이다. 민족주의/국가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언제나 지배계급에 대한 비판세력은 ‘반역자’나 ‘스파이’로 매도당해왔다. 물론 ‘독도’는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영토분쟁과는 다른 경우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운동이 배타적인 ‘영유권’을 주장하자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일본의 우익들의 요구를 ‘제국주의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고 한다면 과연 이에 대한 남한 민중들의 대응이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적합한 것인가의 질문을 던져야한다. 우리는 ‘영유권’ 주장의 논리가 첫째는 지배계급의 ‘동원전략’에 조응하는 것이라는 점, 둘째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방식으로는 제국주의적 군사재편에 조응하는 일본의 ‘우경화’(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공명하는 것은 비단 이들만이 아니라 남한의 지배계급 역시 마찬가지이다)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들어 운동진영 일각에서 제기되는 ‘독도수호’를 위한 캠페인을 반대한다.
    
이번 ‘다케시마의 날’ 제정 이후 국내의 운동진영 역시 이러한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논리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않다. 막연하게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구호만을 가지고 극우보수 단체들과 그다지 구별되지 않는 국가주의적·민족주의적 논리에 기대어 대응하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어필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사회운동의 행동반경을 제약하는 올가미로 남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전(<사회화와 노동>241호, ‘친일파 청산인가, 식민지배/제국주의 청산인가?’)에 식민지/제국주의 잔재의 청산은 ‘친일파 청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 ‘제3세계’ 국가들이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는 오늘날 지극히 현재적인 과제이며, 나아가 식민지 시기부터 자리잡고 있는 사회구조 자체를 바꾸는 문제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사회운동은 제국주의라는 지극히 현재적인 쟁점을 ‘친일파 청산’이나 ‘독도 수호’에 가두어버리는 지배적인 논리에 맞서야 한다. 민중이 배타적인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평화에 대한 보편적인 권리를 옹호하고 확장하기 위해 발언하고 투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독도는 과연 누구의 영토인가?”라는 질문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한·일 양국의 지배계급을 동시에 비판할 수 있는 제국주의 군사폭력에 대한 반대, 즉, 동아시아에서의 광범위한 반미반전의 민중적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 사회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메이데이날 정말 답답해서 그냥 광화문의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있을 수 없었다. 사방에서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목소리로 넘쳐났지만, 도대체 무엇을 기념하겠다는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집회의 기조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앉아있을 때에는 유인물이나 책을 읽었고, 그것도 모자라 아는 사람들을 찾아 얘기를 나누는데 집중하고, '연대를 걸고' 테이프를 팔러 돌아다녔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남북의 노동자가 한소리로 독도문제에 대해 낭독하는 순서에서는 발걸음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 성명은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되었단다. 만국의 노동자가 연대하고 단결하여 투쟁하자는 날인 세계노동절에 '우리민족끼리' 도대체 뭘 어쩌자고?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것 말고도 지적할 것이 너무 많아서 아예 신경을 끄고자 했다. 이수호 민주노총 집행부의 입 이수봉 씨는 언론에 대고 폴리스라인이 잘 지켜져서 잘되었다는 발언을 했다. 아마 그들 눈과 귀에는 같은 날 청주에서 벌어진 사태는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냥 사회적 교섭만 잘되면 장땡이었겠지.
 
이런 내 마음을 담아서 장귀연님이 민중언론 참세상에 좋은 글을 써주었다. 그냥 내 의견이라고 보면 된다. 거참, 내가 교시를 내린 것도 아닌데... 세계노동절 날 민족과 국가를 강조하는 그 짓에 대해서는 정말 지적하고 싶었다.
 
그만큼 우려스러운 일은, 외세에 대해 전국민 전민족이 똘똘 뭉쳐야 한다는 또다른 애국주의의 발상이다. ... 전국민과 전민족은 똘똘 뭉쳐 통일된 목소리를 낼 수가 없고 내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국가간 경계와 민족이라는 상상적 공동체를 가로질러, 자본과 노동이라는 심대한 계급 분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른바 국민적·민족적 목소리는 짐짓 이러한 계급 적대를 은폐하고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기 마련이다. 


노래공장 - 인터내셔널가 (편곡 박태승)

 

 

뒤바뀐 연대와 적대 (참세상, 장귀연, 2005년05월02일 11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위기에서 나라마다 난무하는 강한 국가와 민족이라는 수사가 전세계적 자본과 노동의 적대와 대립을 은폐하고 있음을 밝히는 것이, 노동자와 노동 대표들의 임무일 터다. 그러나 노동절대회에서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백번 양보해서 자본이 잘 나가면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많아질 가능성이 그나마 높아진다 하더라도, 자본의 경쟁력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 노동자 대표가 할 소리인가? 이 말이 성립되려면 또다른 국가주의의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이 높아지면 노동자들도 잘 될 거라는 생각. (‘강대국 건설’을 외치는 일본 우경화의 대중적 기반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하여 국가의 경쟁력 자본의 경쟁력을 위해, ‘우리나라’ 정부와 손을 잡고 ‘우리나라’ 자본과 손잡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연대 속에서 계급의 분열과 적대는 환상적으로 사라진다.
 

 

 저번주 한겨레21에 실린 이용석 선생님에 관한 글을 읽고 학부모들이 참 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국기에 대한 경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이제는 우리 안의 국가주의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어렸을 때 멋모르고 배운 <향토방위군의 노래> 등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내가 정말 싫다.
 
생각할 꺼리가 있을 듯하여 담아왔다.
 
“세계와 함께 살아야 하는 어린이들에게는 (국기에 대한 맹세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자랑스런 조국과 민족’은 개인이 스스로 느껴야 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때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하지 않을까요?”
 
선과 악의 보편적 윤리조차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아이들에게 애국심을 가르치는 건 폭력이다.

 
국기 경례 거부, 중징계당하는가 (한겨레21, 남종영 기자, 2006년07월13일 제618호)
학부모들의 진정으로 경기도 교육청 징계위에 회부된 현직교사 이용석씨…“국기·국가 부정하는 교육했다”는 이유지만 실제론 사설 모의고사 거부 탓


쪼국과 민족의 장스런 태극기 앞에… (한겨레21 2006년07월13일 제618호, 남종영 기자)
월요일마다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어린이집들…“서너 살배기에게 전체주의 교육하나” 소수 부모들의 항변은 묵살돼 
 
“나는 장스런(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쪼국(조국)과 민족의 뭉한(무궁한) 영광을….” 지난해 봄 경기 구리에 사는 유키코 오노(31·가명)는 3살짜리 아들 진한(가명)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한국인 남편과 국제결혼을 한 뒤, ‘국기에 대한 맹세’를 처음 들은 것이 그때였다. 진한이는 어린이집에서 배웠다고 했다. 애국주의에 심한 거부감을 느껴 일본에서 한 번도 기미가요를 부르지 않고 히노마루 앞에서 절하지 않았던 유키코는 아이 입에서 ‘무궁한 영광’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이라는 표현이 나오자 섬뜩했다. 진한이는 ‘국기에 대한 맹세’ 외우기를 재밌어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되는 애국가도 신나게 불러댔다.  얼마 뒤 유키코는 어머니회의 자리에서 이 문제를 꺼냈지만, 이상한 사람 취급만 당했다. “다 하는데, 뭐가 문제냐?” “괜찮다. 나도 초등학교 때부터 다 하고 자랐다” “일본인이라서 그러는 거 아니냐?”는 수군거림만 들렸다.
 
과연 한국인과 일본인의 민족적 차이 문제일까. 혹은 식민지와 피식민지 국가의 역사적 체험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일까. 적어도 경기 성남에 사는 수민(3)이의 아버지 김진수(32)씨는 그렇지 않았다. 김씨 또한 지난 5월 36개월밖에 되지 않은 딸이 애국가를 부르는 것을 듣고 어린이집과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 “어디서 배웠냐고 넌지시 물어봤는데, 어린이집에서 배웠다고 하더군요.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한테 벌써 이런 것을 가르치다니요.” 한 걸음 더 나아가 수민이는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맹세 흉내까지 냈다. 교사에게 물어보니, 일주일에 한 번씩 애국조회를 한다고 했다. 수민이는 월요일 아침마다 태극기 앞에서 경례와 맹세를 하고, 애국가를 불렀다.
 
애국조회는 ‘애국조회’나 ‘주례’라는 이름으로 대다수 어린이집에서 이뤄지고 있다. 주로 월요일에 강당이나 큰 교실에 전체 원생이 모여 줄을 선 뒤, 태극기 앞에서 경례와 맹세를 하고 애국가를 부른다. 국민의례가 끝나면 원장은 아이들 앞에서 훈화를 한다. 수도권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독도 문제나 월드컵 같은 애국심과 관련한 시사적인 주제를 고른다”고 말했다. 운동장 열병과 주번 교사의 엄한 호통이 없을 뿐이지 애국조회의 골격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유성희 서울 노원구립어린이집 연합회장은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대부분 애국조회가 실시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라며 “실제 생활에서 나라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지 소방서나 교통안전시설 견학 등을 통해 체험하는데, 애국조회도 이것과 연계해서 자율적으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문제는 애국조회와 같은 애국심 교육이 서너 살배기 아이들에게 바람직한가라는 점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에 나오는 전체주의적 문구가 아이들에게 적합한지도 논란거리다. 선과 악의 보편적 윤리조차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아이들에게 애국심을 가르치는 건 폭력이라는 게 유키코와 김진수씨의 생각이다. 임재택 부산대 유아교육학과 교수(생태유아교육학회장)는 “이런 관행은 아이들을 국가주의에 매몰시킬 수 있다”며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가치를 가르치는 것은 몰라도 ‘국가는 무조건 옳고 충성해야 한다’는 맹목적 관념을 가르치는 건 온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일본의 학부모는 공통적으로 “내 아이에게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키코는 “맹목적인 충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일본의 히노마루·기미가요 강제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고, 김진수씨는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맹세는 가장 나중에 따라 배우고 외우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국가주의에 대한 유키코와 김씨의 촉각이 너무 예민한 것일까.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이어진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때 인터넷에서 ‘황우석 살리기’에 나선 상당수 네티즌은 청소년들이었다. 청소년들은 월드컵 기간에는 ‘우리는 대한민국입니다’를 외치며 국가주의 축제에 흥분했다. 유키코와 김씨는 여기서 자식들의 미래를 본다. 임 교수는 “독일 발도로프 프로그램을 따르는 유치원에선 아침마다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시를 낭송해준다”며 “판단 능력도 없는 아이들이 일방적인 국가주의 교육을 받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은 모두 자발적으로 애국조회를 실시한다. 취재 도중에 만난 교사들도 “날로 공동체 정신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애국심을 가르치는 게 뭐가 문제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지 국가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고 시작하는, 군사정권이 심어준 한국인의 내면 의식이 이런 어린이집의 관행을 만들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이 크다.

 

2009. 08. 14
민주적 애국주의에 관한 글이 의외로 논쟁이 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 아마도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 전후로 -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한국, 남한을 대체하더니 드디어 이를 긍정하면서 이론화하는 흐름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은주 교수를 잇는 다른 논의가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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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주의’에 바치는 진보진영의 위험한 짝사랑 (한겨레, 권혁범/대전대 교수·정치학, 2009-07-29 오후 08:12:21)
반론|장은주씨 ‘민주적 애국주의’를 경계한다
‘대동’ 앞세운 주장 ‘전체주의’ 우려…“세계시민주의가 더 큰틀” 

 
지난 23일 <한겨레>에 소개된 장은주 교수의 ‘민주적 애국주의’에 관한 글은 나라를 사랑하고 그것에 충성을 바치는 것 자체를 죄악시할 이유는 없으며, 인권·정의·자유 등의 보편 가치를 내장한 애국주의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2002년 월드컵 이후의 ‘대한민국주의’ 열풍은 주목해야 할 현상이며, 진보진영이 그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우파에게 운동의 유력한 무기를 헌납하는 꼴이라는 그의 주장에선 ‘진보적 애국주의’를 공론화해 진보세력의 헤게모니를 강화하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장 교수가 정치적으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장 교수 희망대로 다수의 시민들이 민주적 애국주의에 동화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유사시 그것은 장 교수가 그렇게 비판하고 거부하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쉽게 동원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위기 담론 속에서 민주적·진보적 가치는 밀려나고 국가가 전면에 나서게 되리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물론 장 교수는 보편적 인권과 개인의 자율성은 보호돼야 하고, 개인이 희생돼선 안 된다는 단서를 단다. 하지만 그가 “국민국가적 수준의 하나 됨”이나 “대동의식”을 얘기할 때는 전체주의의 냄새마저 풍긴다.
 
대체 “나라를 미워하고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게” 왜 나쁜가. 민주주의는 국가를 비판하고 심지어 그 존재를 부인하는 권리까지도 포함하는 것 아닌가. 물론 장 교수의 주장처럼 나라를 “아름답게 바꾸려는” 노력의 중요성을 나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유일한 공동의 대지”이며, 따라서 그것을 사랑해야 한다는 장 교수의 주장은 전지구적 이동과 소통이 증대함에 따라 다문화적 정체성이 확산되는 오늘날의 현실과도 모순된다.
 
장 교수는 보편주의와 애국주의가 결합되는 이상적 상태를 꿈꾸지만, 이 역시 매우 인위적이고 관념적인 조합처럼 여겨진다.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면서 장 교수가 우려하는 ‘종족주의적 애국주의’로 퇴행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가 민족주의를 반대한다지만, 애국주의가 어떻게 민족주의와 분리될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장 교수가 강조하는 ‘공화주의적 애국주의’의 실체 역시 의문스럽긴 마찬가지인데, 과연 모든 시민이 정치에 자발적으로 평등하게 참여하는 공화주의의 이상이 현대 사회에서 실현 가능한 것인가. 오히려 나는 한나 아렌트 식의 공화주의에서 어떤 억압성을 본다. 정치 참여에 대한 거부와 무관심조차도 나는 민주주의 사회의 필수적인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민족에 대한 사랑과 자긍심이 부재한 사회는 없다. 따라서 그것을 없앤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교육과 계몽, 시민운동을 통해 그것을 세계시민주의의 하위단위로 끌어내리거나, 마을이나 생태공동체, 국가연합 같은 비국가적 공동체의 경쟁·조력자로 공존하게 만드는 것은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 국가를 비판하는 “비민족주의적 진보적 민주주의자들”이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 “좋은 이유”가 과연 “국가적 삶 속에서 참된 인간과 도덕적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인가. 나는 이런 장 교수의 견해 역시 국가의 괴물적 속성을 애써 외면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분명 ‘대한민국주의’로 축약되는 새로운 애국주의 물결은 우려되는 현상이며, 그저 외면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앞서 열거한 이유들 때문에 그것을 ‘민주적 애국주의’에 담아보려는 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세계시민주의로 그것을 견제하고 제어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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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목조르는 국가? 인권을 수호하는 국가! (한겨레, 장은주/영산대 교수·철학, 2009-08-05 오후 10:32:52)
권혁범씨 ‘애국주의’ 비판에 답한다
민주공화국선 인권-공화주의 ‘쌍두마차’
정치적 실천 위해 국가토대 인정 불가피
 
 
핵심적인 논점 몇 가지만 명확히 해 두려 한다. 우선 문제를 ‘세계시민주의 대 애국주의’라는 구도에서 이해해선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권 교수와 나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규범적 지향을 갖고 있다. 나 또한 누구보다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옹호하고, 국가주의나 전체주의를 혐오하며, 종족주의적 애국주의의 위험성을 경계한다. 다만 권 교수는 선험적이고 본질주의적 방식으로 국가와 애국주의의 문제를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그에게 국가는 그 자체로 ‘언제나’ 괴물이고, 애국주의는 ‘반드시’ 정치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는 이념인 모양이다.
 
나는 권 교수처럼 문제를 ‘형이상학적’이거나 ‘도덕주의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이해한다. 우리는 국가를 그 자체로 어떤 형이상학적 실체로 파악해서 그것을 신성화하거나 역으로 악마화해서는 안 된다.  
 
나는 ‘정치’를 사회 성원들이 집합적인 의견과 의지의 형성을 통해 사회적 삶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공동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국민국가와 그 안에서 형성되는 연대 의식은 오늘의 조건과 한국적 맥락에서는 그런 정치적 실천을 위한 우회 불가능한 지반이다. 이런 이해는 국가의 절대화나 전체주의와는 무관하다. 핵심은 집합적 실천의 문제해결적 합리성과 그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토대를 확인하자는 것이지, 국가를 무시하고 부정할 권리를 부인하거나 다문화주의적 상황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정치적 실천의 양식이 규범적으로 올바른 모습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나는 한갓된 애국주의가 아니라 공화주의적인 ‘헌법 애국주의’를 이야기한다.
 
애국주의는 자칫 위험한 나락으로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회피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더 위험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를 무시하면서 정치 자체를 부정하거나 실천적으로는 공허할 수도 있는 세계시민주의 같은 이념에 매달릴 게 아니라, 정당한 애국주의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민주공화국 대한민국’과 민주적 헌정주의는 우리의 그런 정치적 실천의 올바른 양식을 충분히 담보해 줄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기획과 그에 대한 헌신은 ‘모든 사람의 평등한 자유’의 실현이라는, 오늘날 규범적으로 유일하게 정당한 정치적 지향에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권과 공화주의를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파악하는 것은 매우 낡고 잘못된 이해다. 인권과 민주주의적 실천은 서로가 서로의 전제이자 귀결이기 때문이다. 그 점은 민주공화국의 참된 이상이, 다수의 힘을 앞세우며 보편적 인권을 무시하는 뉴라이트식 대한민국주의나 이명박식 법치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적 정체성과 근본적으로 모순된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 줄 수 있다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에서, 장석준 진보신당 정책실장의 우려(<한겨레> 7월23일치)와 달리, 내 논의의 초점이 대한민국의 모든 면모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에 있지 않다는 것도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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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주의’ 화두가 잊은 ‘비민주공화국’ 정치현실 (한겨레,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문학, 2009-08-12 오후 08:05:27)
‘민주적 애국주의 논쟁’ 진전을 기대하며
미성숙한 시민사회서 ‘진보적 애국주의’는 공허한 목표 

 
원래 장 교수의 의도는 국가에 대한 진보진영의 원칙론을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해체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장 교수의 주장은 ‘진보도 대한민국을 사랑하자’는 건데, 내 생각에 도대체 이 ‘사랑’이 모호하다. 물론 장 교수는 대한민국의 모든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소위 뉴라이트의 ‘대한민국주의’를 비판한다. 장 교수 입장에서 “뉴라이트의 대한민국주의는 제대로 된 애국주의”일 수 없다. 그 이유는 “비민주적이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그 근본에서 부정하는 반-대한민국주의”이기 때문이다. 이런 진술을 토대로 유추했을 때, 장 교수가 말하고 있는 ‘애국주의’의 속성을 규정하는 것은 바로 ‘민주주의’이다. 말하자면, 장 교수가 긍정하고자 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 것이다. 아니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민주공화국이어야 한다! 
 
그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나라사랑이라는 당위명제가 사실명제로 별다른 증명 없이 자리바꿈하는 걸 목격할 수 있다. 그런데 장 교수가 문제제기하고 있는 그 진보적 민주주의자의 태도야말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말을 당위명제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장 교수나 진보적 민주주의자들이나 사실은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장 교수는 진보적 민주주의자들과 동일한 가치판단을 전제하고 있으면서 왜 다른 결론을 도출하는 것인가? 기본적으로 장 교수가 논리적 혼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지금 두 가지의 당위명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어야 한다’는 명제와 ‘대한민국을 사랑해야 한다’는 명제를 아무런 고민 없이 그대로 치환해버리는 것이 장 교수의 논법이다. 장 교수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동원하는 하버마스와 로티의 실용주의적 관점들은 말 그대로 ‘실용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실정과 맞지 않는다. 하버마스가 유럽적 전통을 옹호하는 것이라면, 로티는 미국적 전통을 옹호하는 것이다. 그래서 각각 전자는 공화주의와 복지국가에서, 후자는 존 듀이의 이념에서 긍정적인 측면들을 추출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근거하고 있는 이런 ‘시민사회의 상식’을 한국에서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시민사회의 상식은 도래할 것이지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버마스나 로티가 유럽적 전통과 미국적 전통에서 진보적 논의를 출발시키고자 하는 까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전통이 ‘인민’의 경험으로 ‘국가’에 축적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쁜 국가나 좋은 국가는 존재할 수가 없고, 국가는 초월할 수 없는 정치의 절대지평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장 교수의 고민은 이 지점에 맞닿아 있는 것이지만, 그의 주장이 힘을 얻으려면 애국주의에 대한 원론적 옹호와 ‘대한민국을 사랑하자’는 한국적 요구가 어떻게 서로 결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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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들의 대한민국’ 진보정치 토양 될 것 (한겨레, 신진욱/중앙대 교수·사회학, 2009-08-27 오후 08:56:36)
기고 ‘민주적 애국주의론’ 의의는 
 
<한겨레> 지상에서 ‘애국주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념 논쟁이 구체적 맥락에서 분리되면 도대체 왜 이 논쟁을 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하고 겉돌게 된다. 진보 진영에서 ‘대한민국’ 정체성 문제가 화두로 등장하게 된 내외적 맥락이 있다. 그중, 외적 맥락은 뉴라이트식 대한민국사 해석이 공식화되는 과정이다. 뉴라이트가 주도하는 역사담론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그것은 지배자의 역사다. 이들은 통치세력과 재벌, 엘리트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성공 신화’를 그린다. 독재와 인권 유린, 불평등은 질서유지와 경제성장을 위한 필요악으로 간주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민족적·국가적 경계의 해체다. 일본의 점령통치, 미국에의 종속 등은 결과적으로 이 나라의 경제 근대화에 이바지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무제한적 시장개방의 정당성이 도출된다. 이 두 가지 특징을 합치면, 명목적으로 대한민국의 주권자라고 하는 ‘국민’은 힘도 없고(정치적 배제), 집도 없는(정치공동체 해체) ‘고아’다. 
 
이와 같은 세계관과 역사담론에 대항해서 진보 진영이 오랫동안 동원해 온 정신적 자원은 저항 민족주의였다. 하지만 이런 ‘코리아 민족주의’의 관점은 점차 진보적 시민사회 내에서조차 낡고, 일면적이며, 폐쇄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왜일까? 87년 민주화 이후,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시민들의 정치적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는 이제 깨뜨려야 할 것만이 아니라, 또한 지켜야 할 많은 것들이 있게 되었다. 문제 많고, 살기 힘들고, 아직은 불완전하지만, 대한민국은 시민들이 함께 만드는 ‘내 나라’가 되어가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이 나라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정치적 자의식이 성장했다.
 
나는 이 새로운 정체성을 ‘애국주의’와 연관시키는 것에 무척 조심스럽다. ‘애국’은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에 국면적으로 결합되는 집단귀속감이지, 그것의 중핵이나 토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가 나(우리)의 삶의 무대며, 내(우리)가 주인 되는 공동체라는 의식은 여전히 정당하고 중요하다. 그것은 진보 정치가 민중적이면서 동시에 국민적인 세력이 되기 위해 굳건히 발 디뎌야 하는 토양이다. 그 땅에서 발을 뗀 선구자가 바로 식민지 근대화론자와 세계화 예찬론자들이었음을 잊지 말자.
 
규범적으로는 세계시민적 보편주의가 모든 특수한 정체성의 기초가 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특수한 정체성이 보편적 가치의 생성과 실현을 위한 기초가 된다. 추상적 가치가 ‘내 삶의’ 실제적 원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그 가치의 의미를 구체화하고 실현할 ‘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집이 없는 세계시민은 우주 공간에서 부유하며 세계를 관조하는 존재와 같다. 우리가 ‘나라’라고 일컫는 공동체는 비록 정치적 삶을 살기 위한 유일한 무대는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무대임에는 틀림없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시민들은 ‘대한민국’을 외쳤다. 2008년 촛불시위에서 시민들이 외친 것은 ‘함께 살자 대한민국’이었다. 대한민국이 ‘유기체’에서 ‘공동체’로 전환된 사건이다. 이러한 연대의식은 우리 역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4·19 혁명, 광주항쟁, 6월 항쟁의 역사적 순간에 사람들은 언제나 태극기를 휘날렸고,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을 태극기로 감쌌다. 이들은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고 조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들의 대한민국’이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미성숙한’ 시민사회를 유럽이나 미국의 ‘성숙한’ 시민사회와 대비시켜, 진보적인 대한민국 정체성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아메리칸 징고이즘이나 게르만 내셔널리즘보다 한국 시민사회의 대한민국 정체성이 훨씬 더 건강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역사 위에서,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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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탈민족주의 확산 본격 제동 나섰다 (한겨레, 이세영 기자, 2009-08-27 오후 08:58:11)
가을호에 앤더슨 저작 강도높게 비판한 글 게재
“상상의 공동체, 신자유주의·학문우경화에 일조” 
 
창비 진영이 탈민족주의 담론의 원류 격인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론’을 정조준했다. 지난주 출간된 <창작과 비평> 가을호를 통해서다. <창작과 비평>은 1990년대 말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탈민족주의 담론에 대해 특집·논단 등의 꼭지를 통해 그 ‘현실적 공허함’을 이따금 지적하긴 했지만, 앤더슨의 저작을 겨냥해 직접 비판을 가하기는 처음이다. 창비의 달라진 행보 뒤에는 남북관계가 위기에 봉착하고 시장근본주의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탈민족 담론의 확산을 방치할 경우 자칫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노력이나 국가를 매개로 한 공공적 실천의 중요성을 망각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이런 창비의 문제의식은 ‘상상의 공동체론’을 논박하기 위해 게재한 라디카 데사이 캐나다 매니토바대 교수의 글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데사이 교수의 비판은 민족주의를 ‘문화적 구성물’로 보는 앤더슨의 시각과 그 안에 내장된 ‘유럽중심주의’에 맞춰져 있다. 민족주의의 내용은 “해당 사회의 경제적·정치적 과제들이 요구하는 바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실재임에도 앤더슨은 그것을 오직 문화적인 조성물로 간주할 뿐 아니라, 제3세계 민족주의를 아메리카와 유럽의 선행 모델에 대한 ‘표절’의 산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한층 견고한 유럽중심주의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물론 앤더슨의 민족주의 연구에 담긴 성과를 데사이 교수 역시 긍정한다. 민족주의의 기원을 19세기 중반의 유럽이 아닌, 18세기 후반 미국의 탈식민화 과정에서 찾음으로써 “민족주의를 언어나 종족 또는 다른 원초적 요인들에 의존해 설명하는 오랜 설명방식”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데사이 교수가 볼 때 상상의 공동체론이 거둔 ‘성공’은 학술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인 것이다.
 
요컨대 <상상의 공동체>는 신자유주의가 제3세계를 경제적으로 재식민화하는 상황에서 “학문을 탈정치화하고 민족주의를 가당찮은 문화적 박식의 일부로 만듦으로써 학문의 우경화에 일조”하고 “진보정치가 민족문제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에 반격할 필요가 절실해지는 중요한 시점에 민족주의 연구를 유럽중심적인 것으로 만들고 제3세계의 민족주의를 서구의 구성물로 규정해 그 정통성을 박탈”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데사이 교수는 <상상의 공동체>가 거둔 인기의 일부는 “신자유주의와 그것의 파생물인 ‘지구화’의 소산이었다”고까지 말한다.
 
이런 데사이 교수의 말은 창비가 앤더슨에 대한 비판을 통해 얻으려는 효과가 무엇인지를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신자유주의와의 ‘결과론적 공모’ 혐의를 추궁함으로써 탈민족주의 담론의 확산에 확실한 제동을 걸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데사이 교수의 글을 발굴해 게재를 추천한 사람이 편집인 백낙청 교수였다는 점도 주목된다.
 
염종선 <창작과 비평> 편집장은 26일 “지난 3월 <아시아-퍼시픽 저널: 저팬 포커스>라는 해외 잡지에 실린 글을 백 교수가 발견해 번역게재를 추천했다”며 “편집위원들도 이 글이 탈민족주의 담론의 편향된 부분에 대한 교정 효과가 있다고 판단해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데사이 교수의 원문은 창비 영문판 누리집(www.changbi.com/english)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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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7 22:56 2009/07/27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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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혁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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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2 19:06 
2008년 말에 박노자 교수가 레디앙에 글을 쓰면서 다함께의 활동가들과 논쟁을 벌이면서 자신의 혁명론을 개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급진적 개혁론이라고 해야 맞겠다. 그런데 그 내용이 나름 현실적이면서도 흥미롭다. 사례를 들어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부분은 그에 상반되는 예를 들어 반박할 수 있기에 논리적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긴 하나, 그렇게라도 약간은 절충적인 자신의 혁명론을 일관성 있게 펼치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가깝기도 하고...
관련 글을 발췌하여 담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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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민중에 대한 낭만적 꿈 버려라" (레디앙, 2008년 10월 28일 (화) 09:25:10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내가 혁명보다 급진적 개혁이 바람직하다고 느끼는 이유
 
지난 번에 미 제국 패권의 위기 및 몰락 과정에서 수많은 국지전들이 발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요지의 글을 쓰고 나니 이에 대한 한 반론이 들어왔습니다. 반론의 요지는, 패권 위기 과정에서 전쟁이 발발될 수 있어도 주요 핵심부 (구미 지역) 국가들의 민중의 반전 운동이 크게 일어나 제국주의 전쟁을 막을 수도 있다는 주장, 그리고 반전 운동을 자본과 국가와 같은 수준의 행위자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 즉 핵심부 민중의 반전 - 나아가서 혁명 - 운동 역량에 대해 보다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줄기차게 '반전'과 '국제 연대', 나아가서 - 요즘 거의 딴 데에서 들어보기 힘든 - '혁명'까지 외치는 <다함께> 류의 분들의 열정을 대단히 존경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대체로 도심 중산계층의 가정에서 곱게 커 배고픔을 한 번 겪어본 적이 없는 이 분들이 '혁명'을 이야기할 때에 과연 그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머리가 아닌 피부로 아는지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알았다면 아마도 그런 용어의 사용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했을 것입니다.
 
'혁명'이란 정확하게 권력과 부의 대이동, 그리고 권력 구조의 본격적인 재편성을 의미합니다. 사회주의 혁명은 원칙상 권력 그 자체의 극복, 즉 권력과 부가 없는 사회를 지향하지만 우리가 역사에서 아는 '현실적' 사회주의 혁명들이 다 빠짐 없이 대대적인 반동, 즉 권력과 부의 재등장과 그 체제의 재편성으로 귀결됐습니다. 
 
혁명을 외치자면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하죠. 자기 목숨과 남의 목숨 말입니다. 그리고 혁명의 칼이 칠 '남'들이 꼭 '악질 반동'만이 아닐 것이라는 것도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혁명이란 것 무엇인지 파데에프라는 작가의 <궤멸>이란 소설에서 학교 수업때에 잘 배웠습니다.
 
일제 시베리아 출병 때의 연해주에서의 공산주의적 유격대 대장인 레벤손이란 마음씨 착한 유태인이 그 주인공인데, 밀림에서 자신의 유격대 대원들을 먹여주고 살려주기 위해서 한 조선인 농민에게 그가 정성껏 키운 돼지를 몰수해야 됐던 것이었습니다. 돼지를 빼앗으면 조선인의 가정이 굶어죽을 확률이 크지만 유격대는 살고, 놓아두면 조선인이 살게 되지만 유격대는 죽는다, 이게 설정입니다. 레벤손의 심장이 찟겨지는 듯한 고통을 받지만, 그가 일단 돼지를 빼앗고 조선인과 그 가정, 그 작은 아이들을 굶어죽게 놓아둡니다. 그렇게 하고도 계속 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혁명가인 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젓먹이 아이라도 죽일 수 있는 처참한 광경이야말로 혁명입니다. 이건 한국 경찰에 의한 '닭장 투어' 정도를 벌써 심각한 탄압으로 아는 이들로서는 상상이 잘 안가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굳이 그러한 상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그들이 사는 준(準)핵심부 나라에서 진짜 혁명이 일어날 확률이 대단히 낮기 때문이죠. 갑작스러운 중국 자본주의의 몰락이나 중-미 무력 갈등으로 국내 산업 구조가 망가지면 모를까, 그러한 극단적 시나리오가 실현되지 않는 이상 준핵심부/핵심부 국가에서는 혁명을 일으키기에 필요한 원한과 증오가 잘 축적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비정규직 양산 등으로 민생의 파탄이 심해도 1917년의 러시아나 해방 직후의 조선과 달리 개개인의 물리적 생존 그 자체가 아직도 어느 정도 보장돼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 보장의 정도가 한국보다 훨씬 더 좋은 핵심부 국가의 경우에는 피지배계급은 개개인별로 자본/국가 체제에 대단히 잘 포섭, 편입돼 있습니다.
 
전체 가구 중의 약 절반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인생의 어떤 문제에 대해 복지 사무소나 학자융자관리국 등 국가 기관을 찾아가 해결할 수 있는 노르웨이는 그 포섭/편입의 정도가 가장 두드러지지만(사민주의적 복지 자본주의야말로 가장 공고한 자본주의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개개인들이 국가/자본과 개별적으로 거래하면서 그 생존은 물론 상당히 높은 소비의 수준까지도 유지할 수 있죠. 
 
미 군대가 장학금 등 미끼로 주로 가난뱅이들을 사들여 총알받이로 만드는 오늘날 같으면 중산계층들의 반전 운동의 열정도 훨씬 덜하죠. 중산계층의 개혁주의자들의 반(半)자유주의적 사고 구조로서 비판하기 어려운 전쟁이라면 반전 운동이 대단히 미약할 수도 있죠. 예컨대 1999년의 유고 공습 때에 노르웨이의 노동당과 사회주의좌파당, 그리고 주요 노조들이 다 나토의 만행을 '알바니아인을 위한 구제' 이름으로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탈레반이 귀하신 덴마크 군인 50명의 몸을 주검으로 만들어버리면 아마도 침략군 철수 압력이 갑자기 강화될 것입니다.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이니 제발 서구 민중들에게 지나친 기대를 걸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자본주의적 계산에 철저하게 길들여진 그들은 침략 전쟁이 그들에게 크게 불리하다는 걸 몸으로 이해하면 크게 움직일 수도 있는데, 그들의 이해를 가장 잘 돕는 것은 피침략국들의 군사적 패배입니다.
 
악행의 실체를 바로 보는 정견(正見)이야말로 선의 시작이죠. 레벤손형(型)의 인간에게 고통과 회개, 속죄가 있을 수 있지만, 제국주의와 동거하는 '사민주의자'들에게는 그 안정된 삶에 대한 집착 이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한국이나 노르웨이에서 혁명이 일어날 확률이 낮다는 사실, 즉 급진적 개혁운동이 현실적으로 가장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또 반기기도 합니다. 레벤손과 달리 저는 조선인 농민의 아이를 굶겨 죽이면서까지 혁명할 자신이 개인적으로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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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은 급진적 개혁" (레디앙,  2008년 10월 31일 (금) 11:36:40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혁명은 비판할 수 없는 자연현상…혁명군에 강간당한 여성의 울부짖음 
 
저는 혁명을 '비판'하려 하지 않습니다. 혁명이 좋아서가 아니고 혁명을 비판하는 것이 마치 자연현상을 비판하는 일과 같기 때문입니다. 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서 어느 정도 준비된 지도자 계층도 필요하고 어느 정도 틀을 갖춘 이데올로기도 필요하지만, 일차적으로 혁명을 일어나게끔 하는 것은 한 사회의 토대와 상부구조에서의 해결 불가의 모순들입니다.
 
제가 '비판'했다기보다는 '사건'으로서의 혁명의 실체를 보다 명확하게 그려주고, 역사가 우리에게 혁명이라는 선택을 만약 안겨준다면 이게 우리에게 뭘 의미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이 불가피해지기 전에 우리가 뭘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가 이 정도로 이야기해본 것 뿐입니다. 
 
사회주의자가 되자면 '밑바닥'부터 봐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컨대 혁명 시대 문학의 독서를 권고하고 싶습니다. 혁명 시절에 소련 초기의 비밀 경찰 (체카)에서 잠깐 일하고 1920년에 신흥 소련 공화국과 폴란드 전쟁의 전선에서 소련 군의 편에서 취재를 한 이삭 바벨이라는 작가의 일기를 한 번 읽어보세요. 그 전선에서는 주로 유태인으로 구성된 주민들을 폴란드 군인들도, 카자크인/농민이 다수인 소련 군인들도 똑같이 약탈한 것인데, 바벨이 상황을 그렇게 묘사합니다:
 
"중요한 것 : 우리 군인들이 무관심하게 배회하면서 가능한 곳마다 약탈을 자행하고, 이미 부상 당한 주민들의 옷을 빼앗음. 똑같은 증오, 똑같은 카자크 기마병, 다만 국가 소속이 다를 뿐. 넌센스! 유대인 마을들의 생활 - 탈출구가 없다. 군인들이 다 죽이기만 한다. 여성들이 거의 돌어다니지 못할 지경임. 어제 수다스러운 유대인을 만났는데, 그 딸을 카자크 기마병이 강간하자 이층에서 뛰어내려 팔을 다 부러뜨렸다. 잦은 일이다": 1920년8월28일.
 
혁명군이든 반혁명군이든 도살, 겁탈, 강간이 뒤따르는 것은 똑같았습니다. 물론 레닌과 트로츠키가 이와 같은 일을 막으려고 노력했다는 반론이 들어오겠지만, 레닌과 트로츠키가 혼자서 혁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내전과 외전들이 꼭 혁명에 뒤따르지 않는다고 반론하실 분들이 계시다면, 각종의 전쟁으로 귀결되지 않은 역사 속의 혁명 하나라도 대주시기를 바랍니다
  
지도자/담론/조감도의 차원에서는 혁명이란 아름다운 그림으로 다가가지만, '밑바닥'의 차원에서는 강간 당하다가 이층에서 뛰어내려 팔을 부러뜨린 여자의 고함소리부터 들립니다. 그런 게 불가피하다면 불가피한 일로 받아들이겠지만, 불가피해지기 전에 일단 우리가 최선을 다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최선, 즉 '급진적 개혁'이란 피를 흘려 이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쟁취할 수 있는 '최대한'을 의미합니다. 일부 대형 기업소 (일차적으로 금융 기업들)를 국유화해야 하겠는데, 무엇보다 먼저 토건 국가예산을 교육, 복지 예산으로 바꾸어 경기부양책을 무상교육/의료 실천을 통해서 하는 것, 부동산 보유세 등 부유층을 직접 집중 겨냥하는 각종 부유세들을 징수하고, 부동산 투기 적발시에 투기로 벌어들인 재산을 몰수하는 것, 대학 평준화와 명문대 개념의 불식을 위해서 최대한의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 남북한 간의 공통 군축으로 군사 예산을 계속 줄이고 교육, 복지 예산을 늘리는 것 등등을 의마하는 것이죠.
 
'개혁주의'라는 누명이 붙을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한국적 맥락에서는 이 정도면 대단히 '급진적' 개혁주의가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대안이 국민적으로 선택되어지면 우리가 대다수의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 한 때 박헌영 선생께서 '진보된 민주주의'라고 불렀던 - 상태로 나아갈 수 있겠지만 지금대로 갈 경우에는 정권이 가면 갈수록 '밑바닥'의 불만을 짓누르기 위해서 강경한 억압, 탄압책을 채택해야 할 것이고, 결국 권위주의적 경향의 대대적 강화로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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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혁명, '거창한 얘기'하기 전에 (레디앙, 2008년 11월 09일 (일) 23:40:42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혁명-급진개혁 논쟁] 남의 이론 번역-소개보다 중요한 것들
 
미래의 혁명에 대한 논쟁이란 현실이 아닌 막연한 가능성을 갖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어디까지나 신학적 성격이 강하죠.
 
현실을 이야기하게 되면 최고 세율을 약 60%까지 높이자든가, 부동산 투기꾼의 재산을 몰수하자든가 쓸데 없는 군대부터 좀 축소시키자든가 등등 제게 제일 중요한 이야기를 김종환님께서도 아마도 빠짐없이 다 지지하실 것이기에 굳이 애를 쓰고 논쟁을 할 만한 맛이 안나죠. 개인적으로 종교도 있고 종교에 대해서 신경을 아주 많이 쓰긴 하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는 종교가 아닌 통계 등 사실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걸 미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조합(NTL - 노르웨이 공무원 노련)은 제가 오슬로대에서 근로해온 지난 8년 동안 3번이나 파업을 선포했습니다. 물론 파업을 선포하자마자 사용자측에서 당장 우리에게 양보를 했기에 실제 파업 일수가 적었는데, 어쨌든 늘 투쟁할 자세가 돼 있죠. 지금도 저희 노련과 사용자(오슬로대) 사이에서의 임단협이 결렬 상태에 있고 양쪽에서 투쟁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저희 조합에서 학교 교직원 중에서 43%나 차지하는 임시직(박사 과정생 포함 - 여기에서는 박사과정생도 원칙상 교직원입니다)에 대한 학교의 임금 인상 제안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 반대'와 '자본주의 반대'는 엄밀히 두 가지 다른 이야기죠. 신자유주의야 노르웨이 좌파뿐만 아니라 사회적 안정성과 이 사회의 장기적 미래를 염려하는 상당수의 우파들도 반대하죠. 그러나 자본주의 반대는, 복지 국가 쟁취 투쟁이 한참이었던 1930~1940년대까지만 해도 일각의 노동 운동가 사이에서 인기 있는 구호였다 해도, 복지국가가 제도화된 이후로는 그 대중성을 많이 잃은 것도 사실이죠.
 
복지주의 현상 유지만를 주장하고 친미를 외치는 노동당은 30~32%인데, 저 같은 이들이 노동당을 아주 싫어해도 결국 협력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동당과 농민당인 중앙당과 협력을 해야 그나마 간신히 노르웨이 사회에서 '총좌파적 헤게모니'를 유지하여 신자유주의자들을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이죠.
 
'지금, 여기에서의 혁명'을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공당은 노르웨이에 없고(공산당 2개가 있는데 현실에서의 혁명을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혁명에 준하는 급진성의 개혁과 궁극적인 세계적 사회주의 혁명을 외치는 적색 선거 연합-적색당" (http://en.wikipedia.org/wiki/Red_(Norway))은 요즘 잘해봐야 지지율 1% 정도입니다. 그 분들의 원론적 강령 (http://roedt.no/program/prinsipprogram/)을 보면, 저도 크게 봐서 많은 부분에 대해 동의를 하죠. 문제는, 그 듣기 좋은 원론적 이야기를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활용하느냐인데, 노르웨이의 혁명당은 아직도 노동자 사이에서 거의 하등의 지지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선 지지자들을 보면 거의 다 노조 활동을 안하는 젊은 지식인들이죠. 굳이 원론을 따진다면 저만 해도 적색당에 지지를 보내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제 소속 계급을 이탈하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노조에 가입하고 노조 활동을 하는 노르웨이 노동자(교수도 노동자의 일부죠) 중에서는 복지주의의 유지 및 증강의 현실적 투쟁을 떠나서 '더 이상'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데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여유가 있는 이들을 찾아보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 즉 신자유주의로부터의 방어선 유지도 아주 버겁기 때문에요. 그게 우리가 사는 현실인데, 김종환님께서도 먼저 구미 노동자들과 직접 만나보시고 그들의 삶과 투쟁 이야기를 좀 들어보시고 그들의 동향을 직접 살피신 뒤에 '세계 혁명'에 대한 거창한 이야기를 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침략 전쟁에 대한 태도 같으면, 아프간 파병 반대는 노르웨이에서는 50%, 독일에서는 무려 75% 정도죠. 그게 다 좋은데, 수많은 독일 노동자들은 아프간 침략을 반대해도 그 침략을 지지하는 독일 사민당에 대한 지지를 끝내 철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노르웨이 사정과 마찬가지로, 보수적 사민주의자들을 빼놓고서는 '총좌파'의 전선 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총좌파의 영향력 유지에 따르는 복지제도의 유지는, 유럽 노동자들에게 이름모를 아프간 민간인들의 무고한 죽음에 비해 훨씬 더 일차적인 과제입니다.
 
오늘날 유럽의 복지주의적 현실은 노동자와 지배자 사이의 타협의 산물인데, 우리 계급이 이 타협 과정에서 지불한 대가의 일부는, 지배자들의 세계 정책에 대한 일정 정도의 '묵인'이죠. 즉, 반대를 한다 해도 어느 정도의 수위를 넘는 반대를 하지 않고 이 문제에 일차 순위를 매기지 않습니다.
 
그게 우리가 사는 현실입니다. 그러니까 철지난 과거의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고 피범벅이의 러시아 혁명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시는 대신에,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우리 조합원들에게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대의 순위를 높여야 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피부에 와닿는 논리를 개발해주시기나 했으면 좋겠어요. 제게 같으면 그러한 논리는 바로 '생명의 신성함'이죠. 노르웨이가 아무리 살기 좋은 곳이라 해도 노르웨이 군인이 아프간에서 한 사람의 현지인을 죽인다면 이는 우리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죄악이 되고 말고, 우리 복지주의의 존재의 이유, 즉 생명의 존중이 무너집니다.
 
제가 제 동료들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말이라도 통하는데, 크론슈타드 수병을 잔혹하게 학살한 이웃 나라 과거의 정치인들을 무비판적으로 찬양하기 시작하면 말이 더이상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급'을 단순히 들먹이지 말고, 우리 노동 계급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현실적으로 '급진화'의 효과를 얻을 것인지, 과거 이야기나 남의 나라에서 만든 이론의 재탕삼탕이 과연 우리 계급에게 '지금, 여기에서' 필요한지 남의 이론을 충실히 번역해주고 '소개'해주는 차원을 벗어나서 한국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얻어 '복지주의 동맹'을 형성할 방법이 무엇일는지 스스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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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공론할 여유도 기분도 아니지만" (레디앙, 2008년 11월 12일 (수) 14:55:02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나의 혁명론①] 한국, 건국 이후 최대 위기상황…'다함께 혁명론' 비현실적
 
생산성이 좀 나아지고 정부들이 위기 관리의 케인즈주의적 수법이 약간 진화해서 그렇지, 구조적으로 봤을 때에 우리의 역사적 시계는 지금 다시 한 번 1929년입니다. 그리고 케인즈주의적 위기 관리의 수법들이 '진짜 위기'의 도래를 연기시킬 뿐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자본주의 공황론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입니다.
 
우리가 건국 이후의 최고의 위기권으로 지금 빠져들어가고 있는 중이죠. 그럴 때에 민중의 권익을 위해서 같이 나란히 서서 같이 싸울 동지들과 굳이 탁상공론할 여유도 기분도 없습니다. 왜 탁상공론이냐고요? 정병호님 등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을 긍정하시는 것까지 다 좋은데, 혁명을 긍정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혁명의 지도자가 되는 게 아니거든요.
 
마찬가지로 저처럼 "제발 인명을 경시하지 말라"고 외친다고 해서 막상 내전과 같은 상황이 닥칠 경우에는 결국 혁명의 편을 선택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혁명이 아름다워서가 아니고 반동이 더 무서워서 그럴 수도 있고, 마르토브 선생처럼 "노동자들이 잘못된 길로 간다 해도 그들과 같이 가겠다"는 철학일 수도 있고….
 
저는 볼셰비키에 대해서 상당히 다면적인 평가를 합니다. 그 민중성이나 급진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하고, 그 구조적 경직성이나 농민들을 무시하는 도시 제일주의적 버릇에 대한 안좋은 생각도 있고. 그러나 어쨌든 간에 볼셰비키들은 이미 1917년 이전부터 전위적 노동계급의 지도자들이었어요.
 
'다함께'도 과연 그런가요? 과문의 탓일 수도 있지만, 저는 '다함께'가 이끈 파업이나 '다함께'가 지도하는 노동조합을 아직도 본 바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함께'가 공장 노동자로 적위군을 조직하여 청와대를 포위, 공격할 확률이 현실적으로 아주 낮기에 그가 좋은가 나쁜가에 대한 쓸 데 없는 이야기를 당분간 그만둡시다.
 
이 세계의 역사는 계급적 지배, 즉 권력 행사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생산력이라는 토대의 진화에 따라 거기에 상응하는 상부구조상의 관계, 즉 권력 행사의 방식 등도 계속 진화됩니다. 생산성이 가장 높고 일반의 소비 수준이 가장 높은 세계 체제의 핵심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무엇입니까? 바로 계급 권력 행사의 가시적인 '탈폭력화'죠. 예컨대 준핵심부의 한국만 해도 정병호님과 같은 분들을 철저하게 감시하는 관헌들은 지금도 필요만 생기면 법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폭력적 지배로 회귀하지만, 노르웨이 같으면 우리와 같은 공무원노련의 조합원인 경찰들은 지금 월급이 적다 하여 파업할 지경입니다.
 
경찰도 그렇게 2만 명이 될까 말까 하는, 징병제 군대도 그렇고 여기에서 이미 지배계급이 반민중적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국내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못됩니다. 그러면, 노르웨이 지배자들이 노르웨이판 정병호들에게 타도를 당할 것 같아서 밤잠을 설치고 있나요? 아니죠. 정병호님들과 취향이 비슷하신 분들이 여기도 있지만 요즘 감시 대상도 안된다고 합니다(이슬람 혁명가들은 감시대상이고).
 
그러면 그렇게 자신이 있는 이유가 뭐죠? 바로 저들의 지배에 아주 두꺼운 '동의적 기반'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태까지 연간 평균 2~3%씩 실질 소득이 향상돼온 노르웨이 민중들은 이 체제를 교정 대상으로 볼 수 있어도 타도의 대상으로 볼 일은 당분간 없습니다. 그러면, 이 체제의 기반이 '대중적 동의'라면 체제를 바꿀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나 행동방식도 레닌의 시기와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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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은 왜 자본주의 체제에 동의하나 (레디앙, 2008년 11월 16일 (일) 11:07:26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나의 혁명론②] 복지 만족과 대안 현실 부재…'다함께'식 < '노힘'식
 
제가 8년 전에 노르웨이에 왔을 때부터 가장 애타게 찾고 있었던 것은 바로 '혁명가'들이었는데, 정말 혁명적인, 즉 자본주의 그 자체를 시종일관 부정하여 비(非)자본주의적 사회를 건설하려는 이들을 오로지 인텔리 중에서만 좀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외국의 선진 이론을 번역, 소개하여 그 선진 이론 이외에 인류의 문화를 그냥 도외시하는 그러한 방식의 혁명가들은 아니고 주로 저와 같은 모양으로 불교나 도교도 즐겨보고 권위와 공해가 없는, 즉 '무위계적이고 생태적인 사회'를 목적으로 삼는, 그런 부류의 시인들이나 화가,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자본주의에 대한 '아름다운 개인적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고, 저도 이와 같은 반란에 십분 찬동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죠. 나만의 깨달음, 즉 우리 부처님이 말씀하신 성문과 연각, 벽지불의 깨달음을 일체 중생의 대중적 깨달음으로 어떻게 전환시키느냐, 즉 개인적 반란을 대중적, 세계적 반란으로 어떻게 '대승화'시키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노르웨이의 절대 대다수 근로인민들이 '지금 여기'의 체제를 긍정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 그 중생들을 멸시하면 안돼요.
 
첫째 이유는, 1973년 이후로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이 사실상 제자리걸음해온 미국이나, 1997년 이후에 저임금 노동자의 실질 소득이 사실 계속 소폭으로 감소돼온, '88만원 세대'의 대한민국과 달리, 노르웨이에서는 여태까지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감소된 해는 거의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임금노동자까지도, 연대주의적 임단협 방식 (먼저 전국적으로 노총이 저임금 노동자를 특히 배려하는 임금인상 요구를 해마다 경총에다 하는 방식) 덕택에 소폭으로나마 그 구매력을 그래도 꾸준히 키워나갔습니다.
 
거기에다가 노동계급 사이에서의 체제에 대한 동의적 기반을 만드는 또 한 가지 요소는, 복지주의보다 더 나은 가시적, 현실적 이상형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980년대 한국 운동권으로서 그나마 무상 의료/교육이 있었던 소련/북한이 이상시될 수 있는 여지도 있었지만, 무상 의료/교육이 다 있는 데다가 민주주의까지도 있는 노르웨이 입장에서는 이미 1950년대에 소련은 아주 모자라는 사회이었죠.
 
문화혁명 와중의 중국에다가 온갖 야무진 '긍정적 오리엔탈리즘적' 상상을 다 덮어씌울 수야 있었지만 아예 거기에서 남아 살 자신이 있는 사람, 즉 그걸 현실적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몇 명이나 있었나요?
 
이 '동의적 기반'에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이들이 균열을 일으키자면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실효적일까요? 이 동의적 기반의 조직적 실체는, 85만 명의 노동대중들을 결집시키는 노르웨이의 노총입니다. 사실, 이 나라의 영향력 제일의 조직이죠. 노총이야말로 노동계급의 경제적, 사회적 요구를 표명하여 그 요구의 관철을 위해 자산계급을 압박하는, 즉, 궁극적 차원에서 우리 요구의 조절과 평화적 실현을 통해 우리 계급과 자산 계급의 일시적인 '평화 공존'을 가능케 하는 복지주의의 '기둥'입니다.
 
일선에서 이 과정을 담당하는 이들은 약 13만 명에 달하는 각급 노조의 간부들, 즉 단위 직장에서의 조합장들과 상위 조합의 지회장들, 지회 임원진, 그리고 노련들의 대표자 등등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우리 계급의 의향을 구체화시키고 정책화시키는 핵심적 계층이죠. 그러면 우리 계급이 급진화되자면, 계급 조직의 핵심인 그들부터 급진화돼야 할 것이죠.
 
노르웨이 같은 사회에서 급진적 분자, 혁명가가 할 일은 무엇보다 노동조합에서의 사업입니다. 조합으로 움직이는 나라는, 조합이 왼쪽으록 가면 역시 왼쪽으로 가게 돼 있죠. 그러니까 정말 볼셰비키적인 길로 가자면 특정 이념을 중심으로 해서 따로 '이념적 조직'을 만드는 것보다는 '노힘'처럼 조직화된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해서 급진화 사업을 전개하는 것이 더 논리적이지 않을까요?
 
저는 조직 사업의 국외자인 만큼 뭐라고 충고할 입장이 안되지만, 적어도 여기 노르웨이에서 '노조는 힘'이라는 등식을 체험적으로 익혔습니다. 그리고 혁명이란 결국 '이념'이라기보다는 일차적으로 한 계급의 조직화된 '힘'의 표출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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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필수 조건 한 가지 (레디앙, 2008년 12월 05일 (금) 12:39:21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나의 혁명론③] 국가폭압 기구의 내파 또는 돌연적 약화
 
많게는 총인구의 7~8%가 배고파 저승으로 떠난 이 무서운 사회에서는 혁명은 고사하고 대형 소요 사태라도 일어났는가요? 답을 다들 아시니 굳이 말을 안해도 됩니다. 그리고 그 이유 중의 하나를 밑에다 제시해보겠어요.
 
'백성이 힘들어서 혁명이 일어난다'는 등식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에 전혀 성립되지 않아요. 백성이 힘들면 발버둥쳐서 살기도 하고, 아주 안돼서 배고파 죽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혁명이 곧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한 가지 필수 조건이 있어요. 다름이 아니라 '국가 폭압 기구의 내파/돌연적 약화'입니다.
 
1917년의 러시아나 1918년의 독일처럼 무의미한 살육에 지칠 대로 지친 군인들이 총부리를 진짜 적, 즉 자기 장교 쪽으로 돌리든지, 1945년의 조선처럼 식민지 국가 그 자체가 깨져버리든지, 1870~71년의 프랑스처럼 독일한테 아주 심하게 얻어맞아서 내부 폭발의 조건이 마련되든지 어쨌든 '권력의 공백'이 필요합니다. 그 틈새가 생겨버리면 그걸 '혁명적 권력'으로 채우면 됩니다. 즉 '이중 권력 상태'의 전제 조건이 생기는 것이죠. 그런데 지배자들이 그걸 모르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대량 아사 상태로 진입한 북한에서 당이 아닌 군을 우선시하는 선군 정치가 펼쳐졌습니다.
 
한국이 아직도 다소 후진적 정치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지배자들의 폭압 기구에 대한 의존이 거의 압도적으로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폭압 기구에서 파열음이 나면 윗쪽에서 아무래도 머리가 아주 아플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의 발생 확률이 아직도 매우 낮아요.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고 굽신거리기만 잘하면 만사형통하여 입신출세라는 걸 유치원때부터 잘 가르치고 초등학생부터 점수 경쟁을 시켜버리면 교과서에서도 안나오고 선배들도 이야기 안한 일을 나중에도 잘 안하게 돼 있습니다.
 
한국은 지배의 방식이 아직도 폭압에 매우 의존하는 만큼 폭압 기구의 내파와 이에 따르는 아주 재미있는 일들의 이론적 가능성이라도 있지요.(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서구는 그것도 거의 없으리라고 봅니다. 폭압 지배가 아니니까요.
 
노조 관료를 욕하기 전에, 노조 관료들이 따낸 20% 임금 인상이라는 체제와의 타협을 받아들이고 공장에 복귀한 그 당시 프랑스 대형 공업 노동자들의 의식 세계를 생각해보시죠. 위험하게만 보이는 '자율에의 모험'보다 관리인에게 복종을 하는 대가로 '편안한 여가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을 그들도 결국 선택한 것이 아닌가요?
 
선진 사회에서 근로대중들이 그들의 계급적 이익에 훨씬 민감해지는 것은 맞아요. 임단협 때에 1~2% 임금 인상률 차이로 의견을 좁히지 못하면 몇 주간 파업할 수도 있고 그렇죠. 그러나 과연 그들이 임금 인상 이상의 진전에 대한 열망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는가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한번 실사구시적으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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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본격적 투쟁의 전주곡일 뿐 (레디앙, 2008년 12월 11일 (목) 09:40:51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나의 혁명론④] 준주변부의 반란…"문제는 좌파의 능력인데"
 
신 세계공황이 가장 먼저 반체제적 운동의 커다란 파도를 일으킬 나라들이 바로 소위 '준(準)주변부' - 준핵심부 그룹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그룹의 공동적 특징을 이야기하자면 대체로는
1. 1인당 국민 소득은 만불에서 3만불 정도 되는, 중간 소득의 사회들이고
2. 산업노동자 계급이 이미 잘 형성돼 있고
3. 세계 시장의 역할 분담에서 주로 중간 정도의 부가가치의, 자본/에너지 집약적 몇 개의 특정 품목으로 그 독특한 틈새를 갖고 있고
4. 매우 보수적인 제도적 민주주의부터 사회적 다양성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소프트 권위주의" 체제를 갖고 있는 사회들입니다.
 
정치-사회적 형태도 '권위주의의 잔재가 강한 민주주의'(그리스)에서 '극도로 보수적, 경찰 국가의 특징을 갖는 제도적 민주주의'(한국) 내지 '사회적 제세력의 운신을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용인하는 소프트 독재'(러시아)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공통점이라면 완비된 복지 국가(북구/서구)와 노골적 독재 사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반체제적 운동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불균형 복합 발전' 원칙의 자본주의 후기적 변용이라고 봅니다. 일면에서 종합적 민도(일반교육 보급 수준, 언론 구독, 사회적 토론 참여 등)가 높고 고등교육 수준은 거의 서구와 가까울 정도인데(사회 교육적 인프라의 고등화된 발전), 또 일면으로는 고급화된 인력을 받아들일 만한 생산 구조가 아직도 미비돼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금년의 촛불집회들이 그 본격적 싸움의 전주곡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본격적 시합은, 아마도 부동산 가격들이 폭락하고 경제가 전반적으로 역성장하기 시작하고 나서 일어날 듯합니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한나라당을 찍으면서 사는 나라에서는, 아주 비상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혁명', 즉 사회-경제-정치적 형태의 완전한 변모는 발발될 가능성이 매우 낮죠. 그런데 대공황이 몰아치면서 대규모의 - 지난 번 촛불잡회 이상의 - 변혁 운동은 분명히 일어날 듯합니다.
 
문제는, 과연 지금처럼 분열돼 있고 매체력과 계획력, 구체적 대안 제시의 능력에서 많이 부족한 좌파 정당들이 그 변혁 투쟁을 이끌 만한 역량이 될는지, 아니면 자유주의적 '개혁 사기꾼' 패거리들과 손을 잡거나 그들에게 아예 주도권을 넘겨줄는지, 이게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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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2009년, '반란의 해' (레디앙, 2009년 01월 23일 (금) 09:30:55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나의 혁명론⑤] 한국은?…촛불 횃불되고 피는 피를 부를 것 
 
요즘 정부가 '떼법'을 억수로 욕하지만, 사실 민주성이 거의 없는 형식뿐인 우리 '민주주의' 하에서는 대규모 집단 행동 이외에는 지배자들에게 그 어떤 뜻 있는 양보도 따낼 방도는 별로 없습니다. 이 '떼법'이란 사실 위기 시대 민중들의 생존법일 뿐입니다.
 
아이슬랜드도 이제 사람들이 다 짐을 싸가지고 떠나는 '북구판 동유럽'이 됐지만 '원조 동유럽', 즉 구소련, 구 동유럽 국가들은 1929년 이후의 최악의 위기로 '반란' 상태입니다. 약 1주일 전에 - 제가 소련 시절에 자주 여행다녔던 - 라트비아 공화국의 수도 리가에서 노조 등 대중 개혁주의 조직들이 주도하는 격렬 시위로 비상상태가 돼버렸어요. 스웨덴, 독일의 투자와 차관으로 이루어진 여태까지의 '고성장'이 바닥을 드러내고 대중들의 소비력이 급격히 떨어지니 서구형 소비자가 되려다가 갑자기 다시 빈민이 된 사람들이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경제가 쇠락해가고 생존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민생고를 해결하기는커녕 '강경 진압'과 살인적 망동으로 대응할 경우 민중의 행동은 대개 '비폭력' 수준에 잘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은 고금동서의 통례입니다. 2009년판 촛불 사태가 횃불 사태, 또는 투석전 사태로 발전될 경우에는 민중을 제발 탓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준주변부가 이제 들고 일어나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혁명'이 도래할까요? 글쎄, 지금까지 제가 유심히 지켜보는 아이슬랜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지에서는 대중의 행동들을 좌파적/급진적 사회주의자 - 노르웨이의 사좌당이나 독일의 좌파당 격의 정치조직들과 노조들이 주도해온 것이고, 그들이 선언한 목적은 제가 몇 달 전에 이야기한 '급진적 개혁'과 거의 동질적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윤 추구가 아닌 복지 지향적 국가 주도의 경제 (여기에서 은행의 국유화가 중심적임), '자유무역'의 중지와 민중의 요구에 맞추어진 통제된 무역만의 허용, 외국 투자를 위시한 일체 투자에 대한 철저한 통제 등은 핵심적 아젠다입니다. 케인스주의보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 것은, 예컨대 은행을 비롯한 대규모 기업체들의 국유화에 대한 요구일 것입니다. 어차피 경제가 폐허화되는 상황에서는 국유화는 유일한 생존 방안일 수도 있구요.
 
요컨대 볼셰비키들의 일당 독재/비밀경찰의 횡포만 빼고 개인 인권 보호 위주의 성숙된 민주주의로 대체시킨다면 1921~1929년 사이의 소련의 국가 자본주의적 혼합경제시스템과 같은 모델은 유럽 준주변부의 나라들에게 - 물론 시대적 변화에 따라 알맞게 손질한 뒤에는 - 어느 정도 맞을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나 그 목표 달성을 위해 가열찬 싸움을 계속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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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다시 '국가'다 (레디앙, 2009년 02월 16일 (월) 08:42:29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수출버블 붕괴 시대, 국가 역할 커져…"나는 국가 중시 구좌파"
 
우리 좌파들에게 한 가지 별로 안좋은 버릇이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가끔가다 지배자들을(본의 아니게일 수도 있지만) 좀 지나치게 악마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컨대 MB에 대한 '왼쪽'으로부터의 비판을 보면, 꼭 환경을 일부러 망치고 노동자들을 일부러 죽이고 온갖 악을 골라 행하는 '원흉'의 모습은 나타납니다. 말 그대로 '흉악하기 짝이 없는', 그런 인물로 보이는 것이지요.
 
물론 그의 도덕적인 모습을 보면 과연 그와 같은 말을 해오고 그와 같은 일을 해온 사람이 공공의 영역에서 정치를 해도 되는가, 라는 의문은 강하게 제기됩니다. 지난 번의 '마사지 걸' 발언만 갖고 이야기해도 말씀이지요. 여성을 이 정도로 비하하는 말을 노르웨이 정치인이 했다면 이미 공공 영역에서 사라진 지 오래 됐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MB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차원에서는 한국 지배 계급의 전체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부동산 사재기, 술을 먹으면서 '경험담'을 과시하기, 회사가 망해도 부자로 계속 잘 살기(이건 한국 자본가의 전형적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고)  이러한 의미에서는 지배계급의 '합의' 하에서 집권한 대통령은 이 지배계급을 명실상부하게 '대표'하는 것입니다. 
 
MB뿐만 아니고 한국 지배계급의 대다수는 (주)대한민국이 그렇게 해서 여전히 주가를 올릴 줄 아나 봅니다. 사실, 이들의 반노동, 반환경 지향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이와 같은 '성장 경로'에 대한 반성 없는 의존성, '수출/토건 경제'의 미래성에 대한 맹신이야말로 가장 무섭습니다.
 
그들이 '악인'이라서 문제가 아닙니다. 자본증식을 위해 매진하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사를 보는 이들 중에서는 '선인'은 별로 없어요. 그들에게 - 소련이 몰락했을 때의 이북의 김씨 부자와 마찬가지로 - 미래에 대한 예측과 비전이 없다는 게 진짜 문제입니다.  
 
무한한 수출 팽창에 의한 성장의 시대는 이제는 완전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1964년 이후의 한국 경제 발전 모델(수출 주도 + 토건 경제)을 완전히 교체해야 하는 시점이 왔는데, 그걸 '수출+토건'이 몸에 밴 지배자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 답답한 노릇이지요. 그런데 앞으로 우리 발전의 가능성들을 보면 1964~2008년 시대와 한 가지 중대한 공통점은 있어요. 그 때만큼이나 그 이상 - 아마도 차라리 그 이상 - 으로 국가 주도적 발전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시 철권 통치 시대로 가도 국가고, (주)대한민국을 모든 종업원들이 똑같이 소액 주주로 돼 있는 '우리 모두의 사회적 기업', 즉 복지 사회로 재디자인해도 국가의 역할은 주도적일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는 저는 '다중'을 중시하는 자율주의적 분위기의 '신흥 좌파'들에게도 많은 걸 배우고 있지만, '국가 권력의 평화적 탈환'을 꿈꾸는 '구식 좌파'로 남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다가오고 있는 경제 대란을 구할 주체는 은행을 사회화시키거나 매우 무거운 부유세를 부과할 만한 행정력을 가진 '국가'밖에 어차피 없을 것 같아서에요. 그리고 좌파가 '국가 탈환'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에는 우리의 미래는 거의 뻔합니다. 그 미래에 비해 지금의 MB시절은 거의 '왕성한 민주주의 정치 시대'로 보일 것입니다.
 

  

2009/02/17 17:03
박노자, 다함께, 장석준을 엮어내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이재영의 맵시있는 솜씨가 엿보인다. 여기에 사노련이나 노정협 등의 혁명론까지 포함해서 비교했으면 더욱 논지가 뚜렷하지 않았을까. 사민주의자들이야 이미 혁명을 포기한 사람들이니 제껴두고... 
이재영의 의견도 귀담아둘만하다.
 
다시 혁명을 꿈꿀 수 있을까? (레디앙, 2009년 02월 13일 (금) 12:37:07 이재영 기획위원)
[평화혁명의 모색 ①] 박노자, 다함께, 장석준의 경우 
 
폭력혁명과 급진개혁을 넘어 (레디앙, 2009년 02월 14일 (토) 00:50:02 이재영 기획위원)
[평화혁명의 모색 ②] 맑스주의 혁명론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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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1 22:34

'나의 혁명론'이라는 이름으로 박노자의 글이 레디앙에 올라오지 않지만, 그게 최근에 쓴 글은 대부분 넓게 보아서 혁명론과 관련된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2월 말 이후의 글들을 발췌해서 담아왔다.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준)(전진)의 홈페이지에 가본 이들은 알겠지만, 박노자의 글이 장석준의 글과 함께 칼럼란에 올라온다. 박노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전진이 지향하는 바와 유사하다고 보아, 박노자에게 요청하여 레디앙의 글을 함께 옮겨놓고 있는 것이다. 아마 올 여름 쯤에는 전진 회원들과의 교류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박노자의 글은 과거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을 때 느꼈던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 나아가 유럽 선진사회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날카로운 통찰력을 준다. 그의 글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꽤 된다. 생각할 꺼리도 있고... 특히 서유럽 사민주의에 대한 착각과 환상을 깨는데 유용하다. 물론 대한민국이 그 정도의 사회만 되더라도 훌륭한 진전이라 하겠지만, 거기에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이 있었음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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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가 뭔감유? 카우츠키는 또 누구? (레디앙, 2009년 02월 20일 (금) 10:40:28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민주주의 초선진의 노르웨이, 맑스주의 '개무시'도 초선진
 
한 학생이 '중국 지식인들과 티베트 문제 해결의 가능성들'에 대한 논문을 쓰려는데 그 초점은 중국의 진보적 지식인(왕역웅, 왕휘 등)의 티베트관에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론적 검토를 하는데 있어서) 문제는, 그 학생이 그람시나 만하임이 누구인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옥중노트』를 아주 길게 소개했는데, 그래도 '전통적 지식인'과 '유기적 지식인'의 차이는, 그 학생에게 거의 납득이 되지 않았던 모양에요.
 
난생 처음 들어본 이야기이고 매체 등에서 전혀 쓰이지 않는 개념이니 고등 수학을 배우듯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 학생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그람시가 싫어서 안 배운 것도 아니고 노르웨이에서 석사까지 다 밟아온 젊은 '지식인 후보자'가 그람시 이름을 들어볼 확률이 대단히 낮아서 문제입니다. 즉, 학생들에게 전달되어지는 '통상적 지식 체계'의 구조적 문제지요. 노르웨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전형'에 가까운 '초선진'사회지만,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이야기를 사회적으로 '묻어두는' 데에도 '초선진' 급입니다.
 
마르크스에 대해서는 '독일 출신의 급진주의자' 정도 아는 게 보편적이지만, 마르크스를 직접 읽어본 노르웨이 학생 역시 한 번도 발견한 적은 없습니다. 노르웨이 학생들한테는 150년 이상이 된 유럽의 마르크스주의 전통이란 대개 백과사전에서의 아주 간단한 언급 수준으로만 인식됩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위대한 전통이 학생들에게 '개 무시'를 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초,중, 고교 수업 때는 잘 언급이 안되는 게 큰 원인이겠지요. 노르웨이 노동당 역사야 이야기되어지지만, 그 노동당 초기에 마르크스를 읽은 사람이 주도했다는 부분은 교묘하게 빠지네요.
 
그 다음에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이나 그 이론가들이 거의 안다루어지고 공산운동사는 대체로 '비극의 역사'로 이야기되어집니다. 러시아 사회주의자들 중에서는 폭력혁명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도, 폭력혁명을 지지해도 스탈린을 싫어했던 사람들도 많았다는 걸 사람들에게 설명해봐야 이해해주는 이들이 드뭅니다.
 
그리고 젊은이로서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약 30%의 고교 이전 학생들이 왕따 현상의 희생자들입니다) 일단 '쿨'해보여야 하는데, 카우트스키나 베른스타인의 학술투 이야기들은 별로 '쿨'하지 않아요. 팔레스타인 지지 테모를 하거나 촘스키를 읽는 게 '쿨'하지만 이론서를 '쿨'하게 읽을 고급 독자들을 노르웨이 학교가 키우지 않아요.
 
사회적 갈등들이 잘 봉합되고 만족감이 만연한 곳에서는 우민화되는 게, '땡전뉴스' 시절의 대한민국보다 더 쉽습니다. 훨씬 더 쉽지요. 개인과 사회 사이의 현저한 갈등이 없으면 개인 발전을 촉진시키는 촉매제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향유'지요. 1년에 3~4번이나 남유럽에 가서 좋은 피자와 좋은 섹스를 즐기고, 정기적으로 운동을 잘하고, 아이와 웃으면서 같이 자주 놀고, 그리고 물건을 고르는 재미를 천천히 즐기고…. 이게 자본주의적 지옥의 '천당적 부분'이겠지요. 하여간 '맛쓴 지옥'보다 이리 '달콤한' 지옥은 훨씬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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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마르크스, 무슬림서 출현" (레디앙, 2009년 02월 23일 (월) 08:56:54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이스라엘, 극우파쇼 국가로…"19세기적 유대인은 죽었다"
 
원래 의미의 유럽 유대인이란 '영원한 타자'지요. 유대인을 명실상부한 '국민'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는 유럽에서 제2차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소련 이외에 없었어요. 그게 현실적 생활을 하는 데에 많은 불편과 위험을 의미했지만 동시에 일부 유대인 지식인들의 '비판 의식'을 극대화시키는 데에 아주 공헌했어요. 싫든 좋든 '주류' 사회와 남남 관계이다 보니 사회를 대상화시켜 냉정하게 읽는 것은 훨씬 더 쉬웠습니다. 그러니 마르크스류의 세계주의적 급진주의자들은 물론, 한나 아렌트와 같은 '악의 평범성', 즉 '우리 안의 파시즘'을 잘 파헤치는 이들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쉽게 성장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세상을 지옥시하고 사회 속에서의 전체주의적 면모들을 예리하게 파헤치는-카프카류의 유대계 지식인은 1940~50년대부터 조금씩 멸종하기 시작했어요. 한편으로는 1950년대 이후로는 구미 지역에서 유대인들은 대개 경제, 사회적으로 중산층에 편입됐습니다.
 
거기에다가 1967년 '6일 전쟁'과 미국-이스라엘 '혈맹' 체결 이후로는 아렌트와 같은 온건 좌파들까지도 거의 광적인 '이스라엘 지지'로 몰려버리고 말았어요. 말하자면 '조국이 없었던' 이들은 이제사 '조국'을 찾은 것이지요. 그런데 '조국'이 있다면 '비판 의식'에 '안녕'하고 스스로도 평범해지고 악해져야 하는 법... '조국'을 위해서 저질러지는 악이란 늘 '선'으로 선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저항할 줄 아는 좌파적 이들은 대체로 홀로코스트 때에 죽거나, 소련 안에서 스탈린 숙청에 희생되거나, 또 일부는 스탈린주의 체제에 포섭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영원한 타자'로서의 유대인은 점차 사망을 고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유럽 21세기의 '유대인'은 무슬림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그들에게 유럽 사회가 하는 대접은, 19세기말 유대인들이 받았던 대접과 대동소이합니다. 사이드나 그 학파에 이슬람 지역 출신들이 많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지요. 19세기말의 유럽 좌파가 다수의 유대인을 포함했듯이, 아마도 21세기 유럽 급진 좌파는 상당부분 이슬람지역 출신자들에 의해 리더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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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망해도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레디앙, 2009년 02월 27일 (금) 09:03:06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나의 혁명론⑥] 더 매혹적이고 잔혹한 자본주의 올 수도
 
요즘 대공황이 계속 심화됨에 따라서 머지 않은 미래에 '혁명'이라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좀 많아지는 모양입니다. 미국의 신문들을 보면 예컨대 정치적으로 미국과의 관계가 매우 소원하고 경제적 연관성이 취약한 러시아에 대해서는 "혁명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를 거의 희망적으로 발언하고, 반면에 미국의 경제를 뒷받침해주고 있는 중국에서의 '대중 폭동'을 거의 경계하다 싶은 논조입니다.
 
대공황 이후 혁명?
소망적 사고라 할까요? 일단 본인이 바라는 대로 세계를 보려는, 아주 인간적이고 고금동서에 늘 있는 취향입니다. 뭐, 보안 기관 출신으로 국가주의적 색깔을 가진 한 러시아 정치학도가 내년이나 내후년에 미국이 "6개 나라로 갈라지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라는 예고(?)까지 했으니 피차간에 별로 차이가 없다고 봐야지요.
 
양쪽에서 마음속에 바라는 바를 현실에다 그대로 투사하려 합니다. 그리고 극좌파들 중에서는 '혁명의 도래'를 희망적으로 이야기하는 이들의 수도 급속히 늘어나는 것 같아요. 글쎄, 마르크스께서 "끝없는 끔찍함보다 차라리 끔찍한 끝이 더 낫다"고 하셨으니 저도 다른 방법으로 해결될 수 없는 모순들이 차라리 폭발이라도 되는 것이 꼭 이 시기에 불가피하다면 이를 역사의 필연으로 알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모순들이 첨예화됐다고 해서 과연 그 '첨예화'가 자동적으로 '내파'로 이어지는가의 여부입니다. 저는 적어도 후기 자본주의의 경우에는 그게 그렇게 단순하게 되어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각종 사회-정치적 요인의 복합적 작용에 따라서 모순들은 사회를 폭발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수많은 특정 개인들을 '폭발'시켜버리는 동시에, 사회는 자본주의의 또 다른 -더 매혹적이고 더 잔혹한- 방식으로 전환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사례로 제가 직접 체험했던 1990년대의 러시아를 들겠어요.
 
더 매혹적이고 잔혹한 자본주의
지금은 세계 대공황 시기라 할 만하지만 1990년대의 러시아는 '대공황' 정도도 아니고 '망국'의 경지이었습니다. 국내총생산의 약 50% 하락, 남성 평균 수명의 59세로의 단축, 약 2백만 명 가까이 되는 길거리 아이의 발생, 그리고 알콜 중독과 마약 등의 횡행...
 
그 때에 러시아를 가본 사람이면 대충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것입니다. 수학자처럼 외국에서 자리 잡기가 비교적 쉬운 직종의 전문가들 중 거의 절반 가까이 망명 격의 '해외 취직'을 하고, 해외 취직이 어려운 인문학도들이 터키나 중국에 가서 보따리 장사하고,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로프스크의 여성 의사나 교사, 장교 부인들이 '벌이' 삼아 대한민국에서 성노동(?)하면서 가끔가다가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고...
 
이 정도면 지금 대한민국의 불황은 아이 장난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면 망국적 알콜 중독자 옐친의 정부는 성난 근로대중의 대오에 의해서 타도된 바 있었습니까? 오호통재라, 그 망국판에 근로대중들이 그다운 총파업을 한 번 해보지도 못한 것은 1990년대 러시아의 현실이었습니다.
 
탄압이 태심해서 그랬던가요? 글쎄, 탄압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정말이지 성난 노동자들의 대오들이 망치 등을 들고 모스크바를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다면 아마도 군대 병졸과 중, 하급 장교들의 상당부분은 그들과 합류했을 것입니다.
 
노동계급은 물론이고, 군에서도 옐친에 대한 생각이란 '빨리 쳐죽여야 할 망국적' 대상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빨간 깃발을 들고 모스크바를 향해 행진하는 근로인민대중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도도 없었던 것이지요.
 
노동자들은 깃발을 들지 않았다
물론 그 이유들은 아주 복합적입니다. 하나는, 공업경제가 죽어가는 판에 노동자, 특히 숙련공들의 탈(脫)계급화와 분산화, 원자화 등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보기를 들면 군수 공장이 망하자 처자를 살리려는 일념으로 동대문 시장에 왕래하여 한국산 가죽 점퍼 보따리를 날라와 파는 업으로 전환한 선반공은 더 이상 '노동계급 혁명의 예비군'은 아니지요. 비공식 부문의 일개 종사자지요. 그렇게 해서 러시아 노동계급이 줄어들기도 하고 분자화되기도 했어요.
 
공장에서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으니 저녁에 시장터에서 과일장사나 하는 노동자는 그 당시 러시아 노동계급의 대표자이었지요. 한국산 가죽 점퍼를 나르고 과일장사한다고 해서 진정한 의미의 '부르주아'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물론 극소수는 성공하여 자본가가 되기도 했지요) 비공식 부문에 발을 담근 이상 그 가산의 정도도 천차만별이 되고 의식의 변화도 나타납니다.
 
'경기'에 좌우되는 부문인지라 '경기 하락'을 가져다주는 대중적 저항 등을 또 별로 안좋게 보게 되지요. 그렇게 해서 '계급 연대'는 불가능하게 됩니다. 글쎄, 대한민국에서 지금 자영업이 점차 망해가는 추세지만 '한국적 사회구조'에서는 늘 어디론가 몸을 둘 수가 있지요.
 
부모에게 얹어 살면서 아르바이트하든지(일본형 '프리타'입니다), 각종 영업판매직을 전전하면서 생계를 잇든지 주변의 도움으로 끝이 안보이는 '취업 준비'에 몰두하든지... 구체적인 형태야 러시아와 다르지만 불황이 심회될 수록 '모래알 사회' 현상도 -일본의 전례대로- 심화되지 않을까, 일단 우려를 떨쳐낼 수 없네요.
 
사회주의를 경멸했던 러시아 젊은이들
1990년대 러시아에서는 30년 이상의 기성인들은 그나마 '연대 정신이 강했던 사회주의 시절'을 그리워하기라도 했지만(저도 많은 면에서 지금도 스탈린주의 시절이 그립지요...) 젊은이들은 대개 사회주의의 '사'자만 들어도 벌써 쌍욕을 내뱉곤 했어요.
 
'그때'는 규율사회이었지만 1990년대의 러시아에서는 돈으로 사는 섹스든 마약이든 길거리에서 맥주병을 들고 큰 소리로 쌍욕을 내뱉는 행위든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욕망의 해방'이라 할까요? 물론 별로 수준이 높은 욕망들은 아니었지만, 약간의 돈으로 여자를 사고 약간의 싸움 실력으로 조폭의 멤버가 돼 동네 사람들을 겁에 떨게 만들어도 된다는 데에 대해 대만족했던 이들을 많이 봤어요. 물론 이 정도의 '해방'(?)은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진 지 오래됐지만 아마도 앞으로도 깊어져가는 불황에 터지는 수많은 서민들은 바로 마약, 술, 범죄, 상업화된 섹스의 영역으로 흡수될 듯합니다.
 
중남미를 보시면 이명박 류의 정부(저런 류의 사람들을 저는 '정부'로 부르고 싶지도 않아요. 정부는 마땅히 국민에 대한 책임감이라도 있어야 정부지요)가 이끄는 대한민국이 무엇이 될는지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꼭 혁명이 일어나는 법은 없지요.
 
하여간 모든 시나리오에 다 대비하면서도 최악을 막아보는 것은 최선책이겠지요. 우리 상황에서는 최악이란 바로 중남미형 영속적 불안의 격차 사회로의 전락인데, 그걸 막는 방책으로서는 제가 그 전에 이야기한 '급진적 개혁' 이외에는 저로서 도대체 보이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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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혁명, 소비 그리고 자본주의 (레디앙, 2009년 03월 02일 (월) 08:41:30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소비하지 않고 제대로 믿으면 모두 자본주의 이단아될 것" 
  
신이 없는 종교인 불교, 그것도 절간에 잘 안 가고 승단의 권위를 잘 인정하지 않는 저 같은 무정부주의적 불자까지도 이처럼 '과학적 유물론'의 입장에서는 '이상한 사람' 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신을 인정하는 기독교인이나 이슬람 신도를 과연 포용하기가 쉽겠습니까? 불자든 이슬람 신도든 혁명의 신도든 그 신앙이 소비품이 아닌 '인생의 좌표'인 이상 이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결국 똑같은 '이단자'들입니다.
 
후기 자본주의의 유일신이란 소비 하나뿐인데, 그 유일신을 부정하는 그 어떤 신앙을 가져도 이 사회에서 주변으로 밀려나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오늘날 혁명의 가능성을 높이 치지 않아도, 그리고 레닌이 한 때에 쓰던 방법들에 대해서 카우츠키의 비판을 공유한다 해도 차라리 레닌의 신도들을 동류로 여기기가 쉽습니다. 저는 그들의 신앙 신조를 십분 공유하지 못해도 적어도 그들의 생활적 태도를 존경이라도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소비의 신도들 같으면 '존경'이라는 말을 쓸 수도 없는 것입니다. 
 
후기 자본주의의 소비 신앙을 보시면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1. 일회성 원칙
자본주의 전기는 '근검 절약, 헌 물건을 오래 쓰기' 위주이었는데, 자본주의 후기는 '새 물건으로 빨리빨리 갈아치우기'를 선호합니다. 그렇게 해야 계속 떨어져가는 이윤 마진을 높일 수 있지요. 
 
2. 이국성 원칙
새롭고 참신한, 보다 자극적인 소비재를 찾을 때에 이국적으로 보이는 것들은 최선이지요. 그걸 '개방성'이나 '세계성'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그것보다는 무제한적으로 새롭게 소비할 것을 찾으러 다니는 잡식성 소비자의 근성입니다. 
 
3. 부단성 원칙
소비는 끝이 없어야 돼요. 잘 때는 안하겠지만 그 기간만 빼고 나머지 시간은 노동 아니면 소비일 것입니다. 소비하거나 소비를 생각하는 시간이 평균 노르웨이인의 낮시간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 걸요. 참, 노르웨이인이야 그나마 스키를 타서 숲을 거닐 때나마 소비를 안하지만 대한민국의 김대리는 그 대신에 소주와 삼겹살을 소비하면서 자신의 관계자본(인적 망)을 열심히 증식할 것입니다... 
 
<법구경>에 빠지든 <자본론>에 빠지든 내가 소유할 수 없는, 소유할 필요도 없는 것에 집착한다는 것 자체는 이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반역입니다. 평생 동안 맛이 있고 멋지고 유쾌한 것들만 즐기려는 곳에서는 나는 나의 인생을 소유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나'와 '너'는 없다는 생각은 최대의 이단이에요. 그래서 제가 예컨대 폭력을 거부한다 해도 아프간에서 지금 제국주의 군대들을 상대로 자살 공격을 하시는 분들을 깊이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분들의 방법론에 문제가 커도 '나'의 목숨을 신의 뜻에 맡긴다는 생각만큼은 진정한 종교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소위 '종교인'들을 보면 놀라운 것은 '종교'와 자본주의가 너무나 궁합이 잘 맞는 것이지요. "부자는 축복 받은 사람"이라고 교회에서 말하고 사찰에서 대입기도를 하는 것은 종교 행위가 아니고 종교의 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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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자본의 작품 '집단기억' (레디앙, 2009년 03월 10일 (화) 09:49:27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레닌 모르는 러시아 학생들…"세상에서 가장 유용한 거짓말"
 
요즘 읽은 연구 논문 중의 하나가 상당히 충격적이었어요. '벨고로드'라는 러시아 중부 도시의 중학생 (11-13세)을 상대로 해서 "소련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느냐"고 작문을 하게 하여 그 결과를 분석한 것인데 그 결과를 보면 기가 찹니다.
 
학교에서 역사 교육이 아주 소략하고 텔레비전이 거의 상업적 오락 위주다 보니 일단 '기억' 자체가 대단히 모호하고 불확실합니다. 다수의 응답자들이 소련의 구성 공화국의 수 (15개)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며, '레닌'이 누구이었는지, 언제 살았는지, 뭘 했는지 잘 알지는 못합니다.
 
'스탈린과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위대한 승리'는 국가적 선전 덕분인지 그나마 기억에 남아 있지만 '레닌과 혁명'에 대한 기억들은 철저하게 불식되고 말았습니다. 
 
이걸 이제 가르치지도 텔레비전에서 보여주지도 않으니까 제정 러시아에서 노동투쟁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1898년에 결성된 러시아 사회민주당이 뭘 하는 단체이었는지, 볼셰비키가 누구이고 멘셰비키가 누구인지 제대로 아는 러시아 중학생은 이미 1%가 될까 말까 합니다. 그냥 기억에서 지워진 셈이지요.
 
물론 학생들이 부모 세대로부터 들은 소련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익히 압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돈을 뜯지 않았던 나라이었다", "소련에서 경찰들의 횡포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고 같이 노동하고 공익을 생각했다"...
 
이 정도면 요즘 러시아 학생들에게 '외국'이나 다름이 없지요. 그러면서도 텔레비전과 학교가 심어준 '공산주의'의 부정적 이미지는 거의 지배적입니다. "교회에 못다니게 했던 악마들의 국가", "범죄를 저지르면 손목을 잘랐던 세상", "하루 이틀이나 줄서야 빵을 살 수 있는 빈곤 국가"... 공산주의적 이상을 철석같이 믿으면서도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제 할머니를 생각하면 쓴 웃음이 나옵니다.
 
오늘날 지배자들이 그들에게 불편한 '과거의 기억'을 성공적으로 '청소'하고, 그들에게 유리한 과거의 상을 구축케 한 셈입니다. 저들이 가장 혐오하는 단어 중의 하나는 '국제주의'인데, 그 단어를 아는 러시아 학생은 이제 없다시피 합니다. 다들 '강대국인 우리 나라에 대한 자긍심'부터 익히는 것이지요. 
 
과거란 우리에게 남의 나라이기에 그 나라를 여행할 때에 부득불 '현지 당국의 안내와 감시'를 받게 돼 있지요. 대다수 일반인들에게 역사 공부의 거의 전부는 학교 수업과 텔레비전, 그리고 신문에서 나오는 이야기인데, 그 통로만 효율적으로 통제하면 다수의 집단 기억을 거의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것입니다.
 
본인이 경험하지 않은 과거에 대한 집단 기억이란 결국 사회적 구출물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부모 세대가 경험한 과거라면 '역사의 조절자'들이 완전히 마음대로 하지는 못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뭘 어떻게 배워도 집에 가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오늘날 러시아에서의 악마화 작업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돈을 뜯지 않았던 시대'를 기억하는 부모 세대가 존재하는 이상 완전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박정희가 아무리 일본과 일본 우익들을 사랑했다 해도 일제 때에 (자신과 달리) 신분 상승이 아닌 차별과 가난을 경험했던 다수가 살아 있었기에 일제시대 관련 학교 수업 내용을 철저하게 '독립운동' 위주로 해야만 했습니다.
 
본인이 독립운동가들을 '합법적 권력에 공연히 덤벼드는 불온분자'로 생각해도 탈식민적 사회의 '자연적' 집단 기억을 아주 무시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에서 일제 시절에 경찰들에게 맞아본 사람들이 소수의 노년층이니 뉴라이트식으로 "민족의 장래를 도모하기 위해 일제 당국과 협력했던 김성수와 방응모 같으신 위대한 건설적 민족주의자들 덕분에 우리가 결국 문명화되고 이만큼 잘 산다"는 이야기를 학교나 방송에서 해도 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용한 거짓말
우리가 그걸 '친일'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여기에서 알맹이는 친일도 친미도 아닌 '친자본주의'입니다. 각종 '불온 분자'가 아닌,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자본을 열심히 증식하는 '건설적인 분'들은 역사의 주인공이 돼야 보수의 천년왕국 건설은 가능해질 것입니다.
 
일본이란 그래도 어디까지나 '외부적 타자'이니 일제시대 때의 한국 자본가들의 열성적인 '당국과의 건설적 협력'은 그나마 문제의식이라도 일으킵니다. 그런데 여론조사마다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으로 박정희를 뽑는 나라에서는 '한강의 기적 시대'에 대한 학교, 방송에서의 찬가는 대중적 저항에 부딪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요즘 학계에서 '문화사로의 전환'이 유행이다 보니 노골적인 '독재 찬양'이 아니고 '텔레비전 보급, 점차적 소비 대중화, 아파트 건설의 붐, 체육 열풍' 등등의 '비정치적인 (중간 계층의) 생활 이야기'가 1970년대에 대한 '새로운 건설적 의식'의 핵심이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똥을 먹고 살 수 없다"는 여공들, '따이한'들의 총탄에 쓰러지는 월남 농민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파업을 벌였던 '노가다' 노동자들, 군대에서 고참의 구타에 죽거나 평생 정신병자, 불구자가 된 병영국가 희생자들은 다 어디론가 역사의 뒤안길로 슬거머니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점차 대다수가 가난해지고 이렇다 할 만한 전망이 보이지 않는 장기적 불안과 침체의 현 시대에, 대한민국이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던 '우리들의 위대한 과거'에 대한 수요가 높은 반면, 서민들이 지금도 용산참사에서처럼 터지고 죽는 상황에서 과거 서민들의 고생을 굳이 환기시킬 필요를 국가는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랑스럽고 건설적인' 과거가 탄생되고, 위대한 토건/수출 국가의 '족보'가 쓰여집니다. (국가와 자본이 쓰는) 역사란 이 세상에서 제일 유용한 거짓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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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야구부터 섹스투어까지 (레디앙, 2009년 03월 19일 (목) 09:31:39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나의 혁명론⑦] 맑스의 꿈…현대 노동자들이 누리는 것
 
노동 그 자체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원천이지만, 소외된 자본주의 하의 노동은 인간을 상품으로 만들고 결국 소모시키고 맙니다. 강요받은 노동이 좋을 리가 없고 인간이 상품화되는 걸 스스로 거부해야 한다고 마르크스가 생각했기에 '노동과 자본 사이의 적대적 모순'이 설정된 것이었습니다. 모순이 있는 것이야 십분 동의하지요.
 
그런데 과연 적대적인, 즉 해결이 불가능한 모순인가요? 『경제-철학 초고』에서 마르크스가 "노동자가 많이 생산할수록 덜 소비한다"고 적고 있을 만큼 생산자를 소비자로 보지 않았는데, 21세기 벽두 자본주의의 제1철칙은 바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不二'입니다. 자본주의가 바뀌었다면 그게 바뀐 것이지요.
 
노동자가 5주 휴가 동안 그리스에서의 호텔과 각종의 휴양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는 유럽은 그렇다 치고도, 5주 휴가가 없는 이 '중간적' 준주변부의 대한민국에서마저도 노동자가 '노예 노동'의 8~10시간을 꾹 참고 견디고 나면 소비할 수 있는 것은 소주와 삼겹살 이외에도 많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라 해도 '국민적 기쁨'부터 서비스 노동자의 감정 노동의 결과까지, 다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남성 정규직이면 거기에다가 온갖 '플러스 알파'들이 또 들어가지요. 베트남 섹스 투어와 같은 부분들 말씀입니다.
 
그러나 노동자 밑에도 노동자가 있고, 노동자 위에도 노동자가 있는 오늘날의 완숙한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위에 있는 노동자에게 밑에 있는 노동자의 자기 상품화란 '즐거움' 그 자체가 될 수 있지요. 복합화된 자본주의 사회라는 피라미드에서는, 약간이라도 높은 위치를 점한 노동자는 거의 당장에 그 생활 양식/성향상 '새끼 자본가'로 둔갑되지요. 부동산과 주식 투자 등을 통해서 자본의 세계와의 연계를 모색해도 그 밑에 있는, 보다 가난한 여성/저숙련/외국인/청년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꺼립니다. 분리통치가 지금처럼 완벽해질 수 있다는 걸 마르크스가 예측할 수 있었나요?
 
자본주의의 주기성 - 필수적 공황의 도래, 이윤율저하 원칙 등 때문에 노동자들이 구조적 고통을 받게 돼 있지만, 약간이라도 체제 속에서 안정된 위치를 갖게 되면 그 체제의 아주 보수적일 일부분이 되고 맙니다.
 
감옥이 즐겁고 달콤하기만 하면 인간이라는 동물은 그 감옥의 종신 수인을 자청할 확률은 매우 높지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비자본주의적 대안의 매력을 보여주자면, 이미 죽은 100년 전의 혁명가들의 이야기를 백 번, 만 번 반복하는 것보다는 수유연구실처럼 '자본 없는 즐겁고 발랄한 앎의 공간'이라도 만들어 자본이 없을 때에 앎이란 얼마나 맛이 있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게 더 효율적일 걸요.
 
다른 나라, 다른 시대의 과거 위인 이야기를 하느니,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자본의 사슬을 벗는 위인이 되면 사람들이 일단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꼭 학벌 따고 월급 받고 상사에게 아부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요? 물론 진보정당 등은 임금노예들의 인생을 개선하도록 노력도 해야 하지만, 또 다른 차원에서 자본주의 '이후'를 '가시적으로' 준비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2009/07/27 19:44

 

재분배형 복지국가가 유일한 해결책 (레디앙, 2009년 07월 27일 (월) 06:42:08 박노자)
총파업과 촛불, 노동-중산층 연대 필수 
한국사회 변혁 가능성…경로 분명하나 대중 설득은 '미지수'
 
 
제가 보기에는 이제 곧 시작된 저성장 내지 무성장 시대에는 재분배형 국가로의 전환이란 거의 '유일한 해결'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40년 후에 이 나라 인구의 거의 40%를 이룰 65세 이상 노인에게도 인간다운 노후를 보장할 수 없을 것이고, 또 쏟아져 나오는 대졸, 고졸들에게 행정 인턴과 취업 준비 이상의 미래도 보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결국 '정치'입니다. 보수 - 한나라당이든 그 어떤 새로운 노무현이든 - 가 계속 집권할 경우에는 '한국형 재분배 사회'란 토건 예산과 인턴 채용의 사회일 것이고, 국민의료보험 적용의 범위가 계속 조금씩 넓어져가도 공립 병원 하나 찾을 수 없는, 그런 사회일 것입니다.
 
사회주의/사민주의 세력이 기적적으로 집권할 경우에는 우리는 늦게나마 무상 의료/교육으로의 여정을 시작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고, 망가져 가는 영세 상인들의 자살을 그들에게의 실업 수당, 재교육 수당 지급 보강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지요. 그런데 제게 매우 자명한 이 이야기로 대한민국의 다수 유권자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 것인지, 저도 솔직히 좀 오리무중입니다... 
                                                  * * *
 
1 변혁 – 바람직한 변혁 방향
 
1) 사회 자원 관리권은 관료-재벌 블록으로부터 민주 사회로
현실 인식
'재벌 준(準)독재'로서의 한국. 특권 집단으로서의 재벌(10대 기업의 유효 세율은 약 16%에 불과. 특히 삼성전자/LG전자는 6% 안팎 – 대조적으로는 일반 기업은 약 19%, 참고로 유럽 연합의 평균 기업 세율은 26%). 지난 12년 동안 (1997~78년 위기 이후) 주요 재벌들은 자산 대 부채 비율을 높이는 등 건강해졌으며, 계열사 수를 늘리는 등 '문어발 식 확산'에 계속 힘을 쏟았다.
 
관료 집단은 '4대강 정비 사업' 등 막대한 토건 예산이나 사법 권력 남용 등을 무기로 기업과 지역사회, 시민사회 등에 힘을 행사할 수 있으며, 거시적으로는 재벌 집단의 관리를 받고 있음. 관료에 대한 재벌의 관리 실체의 일면을 노회찬 의원이 공개한 X-파일 등이 전했는데, '재벌-관료 지배 블록' 전체를 견제할 만한 세력은 현재로서 한국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바람직한 변혁 방향
기업 세율 및 재산 세율, 소득 세율을 유럽 복지 국가 수준으로 상향 조절하여 경기부양책을 토건 예산이 아닌 복지 예산을 통해 실행하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포괄적 의미의 ”진보” 세력은 ”재벌-관료 블록”을 제압할 만한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
 
2) 경쟁 사회에서 공공 위주의 사회로
현실 인식
자본주의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사회적 서열 자체는 없어지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이 서열은 사실상 '대입'에서, 이미 10대 후반에 정해지는 것이고 그 뒤로는 거의 바뀌지 않는다. 즉, 한국 사회는 '초기 선발형' 사회에 속하는데, 초기 선발은 세습 신분제보다야 낫다 해도 결정적 선발의 시기가 초기일수록 출발 조건의 영향이 크다는 것은 정설이다. 더군다나 '학력 세탁'(지방대 졸업 등 ’불리한 학력’을 명문대에의 편입 등을 통해 극복하는 일)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매우 경직된 초기 선발형이라고 봐야 한다. 초기 선발일 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교육 비용을 대줄 부모의 경제력인데, 한국의 1% 부자가 57%의 부동산 가치를 독점하는 반면 60%의 직장인들이 고용보험 가입조차 못해 실직 때에 사실상 기본생계 보장조차 불가능하다.
 
불황임에도 상위 10분위(10%의 부유층)의 소득은 지난 1년간 2% 이상 늘어나도 하위 10분위(10%의 최하 빈곤계층)는 4% 이상 줄어든 것은 최근의 대한민국이다 – 사회격차의 수준은 이미 멕시코와 같다. 극단적 격차 사회에서는 경직된 초기선발형 신분상승 경쟁 구조란 사실상 '카스트 제도'(신분세습)로의 퇴행을 의미할 뿐이다. 
 
바람직한 변혁 방향
전체 졸업자 중의 비율에 맞추어서 중소기업 이상의 일체 기업에서 지방대 졸업자 등 차별 피해자의 고용 의무화 및 공무원 시험을 1, 2차로 나누어 1차로 자격이 있는 후보를 선발한 뒤에 2차로 지방대 출신의 비율을 전체 졸업자 중의 비중에 맞추어서 지방대 출신을 할당해 선발하는 제도 등 적극적 역차별 정책을 도입한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사립재단 이월금 관리권을 국가 교육 당국이 갖도록 사립대학 운영 구조를 공공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일체 고등교육기관을 공공화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의료부문 – 인구 1천 명당 활동 의사 수는 한국은 아직도 1.7명 밖에 안돼 프랑스(3.4명) 등 유럽 복지 국가보다 약 2배 낮은 것으로 나타남. 동시 공공의료기관의 비율은 10%도 안돼 OECD 평균의 75%보다 몇 배 적음 – 의 경우 아직도 빈곤층과 중산층 하위계층 등은 공공부문의 무료 의료 서비스를 많이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앞으로 의료 기관의 증설을 공공 위주로 하여 공공부문의 의료 서비스 제공 비율을 적어도 일본 수준(35%) 내지 그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급선무이다. 장기적 목표는 북유럽 복지국가처럼 공공부문 위주(공공부문 비율 85~90%)로 돼 있는 무상 교육과 의료 체제다.
 
3) 위험/폭력 사회에서 자아 실현 사회로
현실 인식
'위험 사회'로서의 한국 사회 시험 스트레스와 성적 스트레스, 취직과 실직 스트레스, 군사주의적 직장 문화, 경제적 불안과 미래 전망 부재 등으로 자살율은 OECD 최고 수준이다. 하루 35명 꼴, 인구 10만 명 당 연간 25명으로 '자살 공화국'이다. 한국 노동 인구의 35%가 자영업자들인데, 그 도산의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 식당 1개 당 인구 80명인데 식당 밀도는 미국보다 약 8배 높다. 즉, 영세 식당 업자 파산이 불가피하다. 최근 할인점 등 대형 소매업 확산으로 영세 소매업자들의 파산은 큰 문제다. 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파산 당한 영세 사업자들은 생계 곤란, 자살 위험에 빠진다. 파산, 자살에다가 '산업 재해' 위험 정도가 매우 높은 '산재공화국'이다. 2008년 재해 피해자는 거의 10만 명, 사망자는 2422명이었다. 재해로 인한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재해 사망율)은 한국이 1.49%로 미국(0.36%)과 영국(0.07%)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로 인한 사망자가 미국보다 4배나 많고 영국보다 사망자가 21배가 많다는 것이다. 이 통계도 산재 보험 적용 대상자만 잡히는 통계이기 때문에, 상당수 중소기업 노동자 및 외국 노동자의 재해 사고(사망 포함)는 여기에 잡히지 않는다. 특히 노동자의 '약자층'은 목숨을 버릴 각오로 노동에 임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폭력 사회'로서의 한국 사회 군의 일부 부대 (특히 의경 등)에서는 여전히 생명 및 정신 건강을 위협할 수준으로 폭력 행위가 횡행하며 학교/가정 체벌의 근절은 여전히 요원한데다 학생 사이에서의 폭력 행위는 꾸준히 증가되고 흉악해진다. 직장에서의 수직적 명령-복종 체계는 비록 물리적 폭력으로 나타나지 않아도 개인에 대한 심적 폭력으로 체감될 확률이 높다. 
 
바람직한 변혁 방향
누진 세율 적용, 부유층 집중 과세(현재 한국 국내총생산 대비 부동산 보유 세금 총액 비율은 0.8% 밖에 되지 않지만 영국만 해도 3.3%임)를 통해 영세 자영업자까지 포함시키는 포괄적인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고, 안전 사고에 대한 기업체 책임 강화, 학교에서의 학급 성적순 발표 금지 등 '경쟁 교육' 근절 등 각자가 '자아 실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안전하고 쾌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2. 변혁을 이끄는 방법
 
한국사의 경험
'온건한' 개혁이라 해도 대체로 '밑으로부터의' 급진적 운동의 압박을 받아야 이루어질 수 있었다.
 
동학 농민 전쟁
전쟁 자체는 패배와 농민에 대한 말살 (관군과 일본군은 약 2만 명 이상을 도살한 것으로 추정됨)로 끝났지만, 불합리한 행정 관행과 유교 사회의 억압적 법률 등을 시정하라는 농민의 요구는 갑오 개혁 과정에서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다. (노비 혁파, 과부 재가 허용, 일반 행정과 세정 분리로의 움직임 등)
 
1919년 3.1 운동
'독립'을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무단 통치를 문화 통치로 바꾸도록 지배자들에게 압력을 가한 것이고, 1920년대의 공산주의/아나키즘 운동부터 야학, 형평사 운동까지 각종 해방적 움직임들의 심성적 기반을 조성했다.
 
1948년 북한 건국 초기의 각종 급진적 개혁(무상 몰수와 무상 분배 식의 토지개혁 등)
이승만 정권으로 하여금 민주당 등 지주계층이 주도하는 정치조직들의 저항을 뚫어 불완전하게나마 토지개혁 등을 단행하게끔 '압력'을 가한 점이 인정된다. 
 
1960년4월의 '학생 혁명'
목적(민주화)은 결국 달성되지 않아도 '밑으로부터'의 불만 표출은 한국 사회 지배 구조의 취약함을 노출시켰으며 지배층으로 하여금 경제 개발에 대한 강력한 압박감을 주었다. 경제 개발이 되지 않을 경우 전체적 '사회의 폭발'이 예상됐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일련의 '평등 지향적' 정책(고교 평준화, 대학 정원 확대, 과외 금지 등)은 결국 사회적인 불평등 확대에 대한 민중적 불만을 무마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 이는 역사 원동력으로서의 '민중의 불만과 힘'의 의미를 설명해준다. 
 
이와 함께 1985년의 구로 동맹 파업 등 군사 독재 정권 말기 노동자 투쟁은 최저 임금제의 최초 법제화(1986년) 등 여러 양보를 따내는 데에 주효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에 민주 노조의 확립과 기초적 복지제도(의료보험의 적용 범위 확대 등)를 착근시켰다. 이는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따낸 권력의 '양보' 내용이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도 2008년 5월 이후 '촛불 집회' 등 집단적 불만 표출들은 '대운하 계획'과 같은 가장 무리한 종류의 토건국가적 프로젝트를 좌절시키는 데에 있어서 주효한 바 있었다. 
 
결론
변혁을 이끌기 위해 앞으로 필요한 총력 투쟁은 1996~97년 총파업과 2008년 촛불집회 투쟁의 '혼합 형태'다. 즉, 파업 투쟁과 중산층의 시위투쟁, 불매 운동 등이 상승효과를 낼 경우에는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돼 정치계의 전반적 '진보화' 등의 가능성을 전망할 수 있다. 결국 복지/공공성 위주 국가로의 전환의 전제조건은 노동계급과 중산계층들의 강력한 '진보연대'와 공동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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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7 19:44 2009/07/2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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