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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삭감 저지 산별총파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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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돌아가는 것으로 봐서는 오늘 최임위 회의를 통해서도 최저임금이 결정되지 않을 듯하다. 민주노총은 작년만큼 최저임금 투쟁에 힘을 쏟았을까. 글쎄다. 자본이 사상 유례 없이 최저임금 삭감안을 제출하면서 끝까지 버티고 있으며, 공익위원들을 침묵시키고 있는 것에 비하면, 노동계가 쏟고 있는 노력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이런 상황에서 침묵하고 있는 공익위원들을 비판하고, 자본의 탐욕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뒤늦긴 했지만, 레디앙에 실린 장석원 동지의 글이 반갑다. 이런 정도의 제안이라면 좀더 일찍, 연결이 되는 현장조직들에게 직접 전달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당연히 내가 먼저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 것 또한 아쉽고...
 
투쟁 속에서 건설되는 산별노조를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건 내가 속한 정치조직에 대한 자기비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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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삭감 저지 산별총파업해야 (레디앙, 2009년 06월 29일 (월) 07:22:01 장석원 / 객원기자)
삭감안, 노동운동 사회적 존재 지우려는 자본의 치밀한 전략 
 
80년대 영국의 어느 공장
산별노조에 대해 공부하던 시절 본 외국 책의 사진이 기억난다. 80년대 영국의 한 공장라인에 모인 조합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인데 그들 가슴엔 '최저임금인상'이라는 산별노조의 요구가 적힌 배지가 하나씩 달려있었다. 분명 그 조합원들은 대공장의 직원으로서, 거대 산별노조의 조직원로서 최저임금과는 관련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최저임금을 인상하라는, 회사규정에 어긋나는 부착물을 달고 조립라인에 들어갔다. 왜? 단순히 노조의 지시기 때문에?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아마도 조합원들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그 배지를 달고 있었을 것이다. 그 누군가는 동네 슈퍼마켓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아내일 수도 있고,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옆집 총각일 수도 있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저임금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들일 수도 있다. 그러한 연대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산별노조라는 큰 집의 존재였을 것이다.
 
더 나아가 산별노조는 80년대 대처 정권의 최저임금 삭감 위협이 돈 몇 푼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조합을 고사시키려는 일련의 공격이라는 점을 조합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교육과 홍보를 병행했을 것이다. 그게 산별노조다. 
 
2009년 오사카의 메이데이
올해 일본 오사카에서 목격한 풍경이다. 우경화한 노총인 렝고의 결성 이후 오사카에서는 옛 총평의 노선을 따르는 전노협계와 내셔널센터에는 가입하지 않은 독립민주노조들이 연합해 독자적인 메이데이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주류의 렝고와 공산당계 전노련과는 별개의 메이데이 집회를 오사카성 공원에서 개최했다. 연합집회라고는 하지만 대공장 노동조합의 개별집회 수준도 못되는 1천여명이 모인 작은 대회였다.
 
그러나 일본 독립민주노조의 선봉인 전항만 조합원들이 몸에 두른 선전조끼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조끼에는 '일조(북일)수교 실현', '미군은 이라크를 떠나라' 같은 구호가 적혀 있었다. 뙤약볕 아래서 바람도 안 통하는 비닐조끼를 두르고 전항만의 조합원들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추방명령을 받은 동료 조합원의 구명 서명을 받고 있었다. 전항만은 비정규센터 등의 간행물을 통해 국내에서도 소개됐듯이 소수의 활동가로 이루어진 정파노조가 아니라 부두노동자들의 대중적인 조합이다. 어용과 기업별 조직이 판치는 일본에서 산별과 민주노조 원칙을 지키는 조직이다.
 
한국의 잘나가는 산별노조에서, 전투적인 대공장 조직에서 조합원들에게 정치구호가 담긴 선전물을 입히거나 나눠주라고 하면 조합원들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산별 지도부 자체가 그런 발상을 하지 못하거나 꺼린다. 하지만 우리가 대놓고 한수 아래로 보는 일본 노동운동에는 아직 이런 조직들이 살아있다. 이게 진짜 산별노조다. 
 
지금 최저임금을 삭감하자는 한국 자본
현재 진행 중인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자본 측은 최저임금 시급의 5.8% 인하를 주장했다. 현행 시급 4,000원을 3,770원으로 낮추자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 3%를 고려하면 사실상 9%에 가까운 삭감안이다.
 
전망치가 3%지만 현재 드러나는 여러 지표만 놓고 봐도 5% 이내의 최저임금인상은 사실상의 동결 삭감이다. 그런데도 자본 측은 아예 마이너스로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계가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지만 자본가들의 계산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은 일단 미조직, 저임금 노동자의 생존권 문제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노동운동이 힘을 집중해 투쟁할 대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합원이 최저임금 이상의 수준에 도달해 있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경우 일반 조합원들을 최저임금 인상투쟁의 동력으로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는 외국의 노총, 산별노조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도 최저임금은 다수 조합원의 이해가 아니라 조직되지 못한, 노동시장의 언저리를 맴도는 노동자들에게 절박한 문제다. 그럼에도 이들이 조직의 힘을 동원해 최저임금인상이나 방어투쟁을 벌이는 것은 그것이 노동자계급 일반의 이익의 지키는 의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노동운동의 사회적 지도력과 영향력을 가늠하고 계급 내의 연대를 강화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후자에 주목해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에 출석한 자본 측 대리자들이 대규모 삭감안을 들고 나오는 것은 1차적으로 최저임금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러나 동시에 후퇴하고 있는 한국 노동운동의 사회적 존재를 지워버리기 위한 결정타로서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다.
 
만약 민주노조운동을 포함해 전체 노동계가 최저임금의 삭감을 막지 못하거나 사실상의 동결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이는 한국 노동운동이 사업장을 벗어난 연대를 구축할 이유나 필요가 없음을 의미하는 꼴이 된다. 그야말로 계급적 단결에 기초한 노동운동의 죽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최저임금 투쟁은 노총, 산별기구 상근 간부들의 동원투쟁으로 전락하고 있다. 자본 측은 그 빈 공간을 주목하고 있다. 
 
최저임금삭감에 맞서는 산별 총파업 투쟁을
지금이라도 산별노조의 전국단위 활동가조직과 대공장 현장조직들은 최저임금 삭감 저지와 현실 수준의 인상을 쟁취하기 위한 산별총파업을 현장에서 선동해야 한다. 산별의 지도부도 조합원 교육과 홍보를 통해 최저임금 투쟁의 현황을 보고하고 연대를 호소해야 한다. 말만 많은 좌파조직들도 산별 총파업을 촉구하는 연대체를 꾸리고 직접 사업장과 지도부를 압박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되도 않을 일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올 것은 뻔하다. 우리의 산별노조는 자기 문제를 가지고도 총파업을 하지 못한다. 하물며 남(?)의 문제인 최저임금을 방어하기 위해 총파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간부나 활동가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조합원들이 이기적이어서 동력이 없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간부나 활동가들이 조합원들을 핑계로 연대를 회피하고 있을 뿐이다.
 
가령 최저임금 확정 최소 한 달 전부터 교육을 배치하고, 선전을 진행하고, 총파업 찬반투표를 붙였는데 그런 과시성 투표에서조차 부결로 결과가 나온다면 조합원들의 이기주의를 비난할 수 있겠지만 그런 과정은 진행된 적도 없다. 조합원에게 전달되지 않는 선전물이 민주노총에서 사업장으로 배달됐을 뿐이다. 조합원들은 최저임금과 관련된 상황을 일반 언론을 통해 접하고 있다.
 
현실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노동운동을 하는 이유는 노동자 세상이 가능하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노동자 세상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노동운동은 최저임금 적용 대상인 노동자들을 공격해 노동운동의 무용성을 사회에 과시하려는 자본의 계획을 뻔히 알면서 현실적 조건을 앞세워 총파업을 호소조차 못하는 비겁함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자기부정의 길을 걷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토록 명백한 공세 앞에서 총파업을 꿈도 못 꾸는 산별노조가 1년 뒤 혹은 10년 뒤에 산별총파업을 벌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근거 없는 환상이라는 점이다. 민주노총이 '국민 임금인상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선전과 기획을 담당하고 산별노조는 간부 동원을 책임진다는 이 기묘한 분업체계를 무시하고 지금부터라도 현장에서 산별총파업을 제안하고 호소하자. 전국의 정치조직과 현장조직들부터 앞장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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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위원회 9인의 공익위원 귀하 (참세상, 연정(르뽀작가) / 2009년06월29일 12시28분)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32)
 
6월 28일 밤 10시, 서울 강남 최저임금위원회 앞. 저녁 무렵 잠시 내린 비로 더위가 약간 꺾이긴 했지만, 습도는 높고, 푹푹 찌는 날씨 속에 최저임금 현실화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이 투쟁 문화제를 하고 있다.
 
늦은 시간, 최저임금위원회 앞에 모여 있는 노동자들의 공익위원들에 대한 분노가 만만치 않았다. 어떤 면에서 경영계의 그러한 요구야 ‘뻔한 것 아니냐’는 마음이 있었겠지만, 공익위원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열린 집회마다 공익위원들에 대한 성토가 빠지지 않았다.
 
공익위원들은 “노동계와 경영계의 차이가 커서 공익위원들이 중재안을 제시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다.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 당신들의 역할이 ‘중재’에 있는가? 당신들의 역할은 말 그대로 공익을 대표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논의에서 ‘공익’이란 무엇인가? 최저임금법에서는 최저임금의 목적을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공익위원들 당신들의 역할은 정부와 재계의 눈치를 보며 숫자놀이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노동자의 노동력 재생산을 최소한으로나마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최저수준의 임금이 정해지도록 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차이가 커서 중재하기가 어렵다니...
 
최저임금은 중재나 숫자 조율을 통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최소한도로 먹고, 일하고,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최저임금이 결정될 수 있도록 이론적․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고, 이견이 있는 이들을 설득하는 것이 공익위원들의 역할이다. 노동계에서 물가 인상률을 고려하여 애초에 제시했던 금액이 시급 4,600원이었던 건데, 많다고 한다. 노동계가 요구하기 전에 노동자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최저임금을 제시하는 것이 공익위원이 해야 할 일 아닌가?
 
현재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문형남 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총장 ‘09.4.21. 위촉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
정태면 최저임금위원회 상임위원 ‘09.1.28. 임명(~’12.1.27.)
홍성우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09.4.21. 위촉
박준성 성신여대 경영학과 교수 ‘09.4.21. 위촉
박능후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09.4.21. 위촉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 ‘09.4.21. 위촉
이종훈 명지대 경영학부 교수 ‘09.4.21. 위촉
정진화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부교수 ‘09.4.21. 위촉
김경자 카톨릭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 ‘09.4.21. 위촉
 
최저임금위원회 상임위원 1명을 제외한 8명이 모두 대학 교수들이다. 공익위원을 대학교수로 위촉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 이유 중에 한 가지가 공익 대변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공익위원들은 정부와 경영계에 빌붙어 사실상 최저임금 삭감안에 동조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물가가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데, 미국조차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고 하는데, 교수라는 사람들이 신문은 읽는 건지, 도대체 ‘연구’라는 것을 하기는 하는 건지 의문이다. 공익위원들, 최저임금 83만원이 많다고 하는 당신들의 임금은 도대체 얼마인지 정말 궁금하다. 정말이지 83만원 갖고 한 달을 살아보라 말하고 싶다. 얼마 전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최저임금제도의 유의미성과 경제위기 시 최저임금 인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지구적 일자리 협약’ 채택을 통해 최저임금의 정기적 인상을 권고한바 있는데, 들어보기는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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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3% 대 -1.5%, 29일 넘길 듯 (참세상, 김용욱 기자, 2009년06월29일 13시41분)
“표결강행, 사용자 쪽의 삭감·동결 수순"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해 28일 오후 5시부터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8차 전원회의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29일 새벽 1시 50분께 산회했다. 결과는 노동계 +13% VS 재계 -1.5%. 이날도 회의 시작 다섯 시간 동안 수정안 제시 없이 정회와 속개를 거듭했다. 저녁 8시께는 재계 쪽이 수정안을 거부한 채 공익위원 조정안을 요청해 노사 간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다시 정회와 속개를 거듭하다 밤 10시 20분께 재계 쪽은 기존 -2%에서 0.5% 물러난 1.5% 삭감안을, 노동계 쪽은 +15%에서 2% 물러난 13% 인상안을 수정안으로 제시했다. 회의는 29일 새벽 1시가 넘어서자 재계에서 공익위원 안 제출을 재요청하자 정회한 후 50분께 모여 9차 회의 일정을 잡고 산회했다.
 
이 과정에서 문형남 최저임금위원장이 “9차 회의에서 타결이 안 되면 표결처리 하겠다”고 밝혀 노동자 위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이승철 민주노총 대변인은 "표결강행이 이뤄질 경우 이를 사용자측의 삭감·동결 의견을 관철하기 위한 수순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서 "최임위 안팎에서 활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경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9차 회의는 29일 저녁 7시에 속개할 예정이지만 법정 시한인 29일까지 타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보통 법정 시한을 코앞에 두고 노사 간 이견이 있으면 공익위원이 범위율을 제시하지만 재계가 삭감을 들고 나와 공익안 제시가 쉽지 않다. 노사 이견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한 달여 논의 과정에서 공익위원 ‘침묵’ 논란도 있어 막판에 공익위원들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노동계는 공익위원의 침묵이 결국은 재계의 입장에 손을 들어주는 셈이라고 반발해 왔다. 이찬배 민주노총 여성연맹 위원장은 “공익위원이 제시하는 범위율이 삭감이나 동결이 포함될 경우 회의는 파행으로 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처럼 공익위원이 재계 쪽에 유리한 범위율을 제시하고 표결처리를 강행하면 노동자 위원 집단 퇴장도 예상된다.
 
또 법정 시한이 29일이기는 하지만 강제 조치가 없어 시한을 넘겨도 큰 문제가 없다. 2002년부터 작년까지는 법정 시한을 지켜왔지만, 2001년 이전에는 일정을 지키지 못해서 4번 정도 8월 초까지 계속 줄다리기를 한 경우가 있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 하지만 노동자위원 및 사용자위원 각 3분의 1 이상의 출석이 있어야 한다.각 위원이 2회 이상 출석 요구를 하고도 출석을 하지 않으면 표결처리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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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9 19:41 2009/06/2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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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가 해외에서 계속 사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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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MB가 해외순방길에 나섰다고 하면 그의 설화 때문에 걱정부터 앞서는데, 일본을 방문한 자리에서 역시 한건 터뜨렸다. 항간의 소문대로 일본에서 태어났기에 예의 애국심을 발휘한 것인지, 아니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나 2020년 부산 하계 올림픽 유치 노력을 모르고 있는 것인지... 일본이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다면 대륙간 순환개최 관행에 따라 평창과 부산의 올림픽 유치는 물건너가게 된다는 상식조차 없단 말인가.
 
물론 역발상도 가능하겠다. 올림픽 유치에 들어가는 쓸데없는 노력을 절감할 생각으로 일부러 일본의 2016년 하계 올림픽 유치를 지원하겠다고 한 것이라는... MB가 토건세력에 반감을 갖는 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설마...
 
그렇게 평창과 부산의 올림픽 유치가 좌절된다면 국가적으로는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MB가 해외에서 계속 사고치기를 바래야 하나, 아니면 사고치지 않기를 바래야 하나. 사고치지 않기를 바란다면 MB의 해외 순방 자체를 저지해야 할까, MB의 입을 꿰매야 할까. 
 
암튼 이번 사안에서 만큼은 MB 화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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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일본 2016년 하계올림픽 유치 지원 논란 (프레시안, 송호균 기자, 2009-06-29 오후 2:55:17)
MB는 어느 나라 대통령?…평창·부산은 어쩌라고?
  
이날 정상회담에서 아소 총리는 오는 2016년 하계 올림픽 유치경쟁과 관련해 한국 정부에 협조를 요청했고, 이 대통령은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열리는 게 한국에도 좋지 않겠느냐"면서 지원 의사를 밝혔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도 일제히 이같은 소식을 보도하며 환영했다. <교도통신>과 <산케이신문>은 "이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에서 2016년 하계 올림픽의 동경 유치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의사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청와대 측은 "이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발을 빼고 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확인 결과 이 대통령은 일본의 하계 올림픽 유치와 관련해 지지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오보'를 냈다는, 석연치 않은 해명이어서 진위논란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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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9 18:04 2009/06/2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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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의 바우처 위헌판결, 그 의미와 시사점(2006, 진보교육뉴스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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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처 제도는 계속 확산되고 있는데, 아직까지 바우처에 대해 제대로 정리를 하지 못했고, 당연히 그에 관한 글도 쓰지 못했다. 올해 중에 하나 쓰고자 한다면 공부를 좀더 해야 할 것 같은데...
  
2006/02/26 03:05
 
올해 교육부문을 비롯하여 바우처 제도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해봐야겠지만, 시장친화적 기제로서 바우처제도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경제관료들 뿐만 아니라 행정학계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 플로리다 주 대법원이 바우처 제도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린 것은 제대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지식센터에서 2005년말에 진행했던 해외사례 및 제도연구에서 바우처제도에 대해 정 모 교수가 6개를 담당하여 썼다. 물론 이는 박사과정생이 거의 대신 쓴 것인데, 거기에 아래 제기된 문제들이 반영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이를 도입해야한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쓴 것 같은데...
 
나중에 시간나면 바우처 제도를 비판하는 글을 써봐야겠다. 아래 글은 교육바우처에 관한 것이지만,  행정학의 주요 쟁점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06년 2월 17일에는 [플로리다의 바우처 위헌판결, 그 의미와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있었다.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전국교수노동조합/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교육이론정책연구회/ 진보교육연구소/ 민주노동당 최순영의원실 주최인데, 그 취지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ㅇ 신자유주의 교육의 대표적인 모형인 바우처 시스템(Voucher System, 플로리다주의 공식 명칭은 Opportunity Scholarship Program)에 대해 지난 2006년 1월 5일 플로리다 대법원은 위헌 판결을 언도하였음. 이로 인해 미국내 학교선택제 논쟁에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됨.
 
ㅇ 하지만 한국교육은 거꾸로 가고 있음. 유아교육 분야의 현행 학비지원 방식은 바우처 시스템에 가까움. 여기에 더해 교육부는 방과후 학교를 바우처로 운영하려고 하고, 선택형 보충수업이나 교육과정을 확대하고자 하며, 국립대학 통합과 법인화를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음. 그리고 얼마 전에는 기획예산처가 중등교육에 바우처 시스템을 도입하여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음. 또한 보수세력은 시간만 나면 ‘수요자 중심 교육’을 내세우면서 바우처 시스템이나 학교선택제 도입, 고교평준화 해체 등을 주장하고 있음. 신자유주의 교육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과 주장이 가히 창궐의 수준임.
 
ㅇ 이런 이유로 플로리다 대법원의 위헌 판결의 의미, 그리고 한국교육이 배워야 할 시사점 등을 논의해보고자 함. 
 
아래에서는 이 자료집의 내용을 옮긴다. 발제문의 배태섭 님의 글은 진보교육뉴스에도 실려있다.
http://gimche.tistory.com/attachment/cfile24.uf@1166520B4A47A7368FCF9A.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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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플로리다 주 바우처 제도 위헌판결의 의미와 시사점 (진보교육뉴스 70호, 배태섭 진보교육연구소 사무국장, 2006년02월14일 9시45분)
 
지난 1월 5일 미국 플로리다 주 대법원은 주의 헌법에 의거하여 기존의 무상공교육제도를 대체하는 사립학교에 공공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바우처 제도에 대해 최종적으로 위헌판결을 내렸다. 플로리다 주는 주지사 제브 부시가 강한 의지를 갖고 미국에서 유일하게 주 의회가 바우처 제도에 대한 법제화를 통해 주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도록 조치를 취해놓은 곳이다. 이로써 플로리다 주 뿐만 아니라 미국 내 다른 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교선택제 논쟁에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최근 국내에서도 바우처 제도를 비롯하여 학교선택권을 확대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할 것이다.
 
미국의 구조적인 교육불평등
가. 교육재정의 불평등
미국에서는 일정한 지역을 기초로 지역교육구(School District)를 설치하고 이 교육구가 구내의 공립학교의 운영을 관장한다. 지역주민들은 특별히 사립학교에 다니지 않는 한 자신의 교육구 내에 있는 공립학교에 자동으로 배정이 되며, 학비는 무료다. 교육재정은 지역교육구, 주, 연방정부에서 지원하는 세금으로 조성된다. 이 가운데 지역교육구와 주가 90% 가까이 부담하며, 연방정부는 10% 가량만을 지원한다.
 
특히 지역교육구는 교육재정을 해당 지역주민이 부담하는 직접세(특히 재산세)로 조성하기 때문에, 지역주민의 구성에 따라 지역간 교육재정의 격차가 극심하게 나타난다. 미국은 대체로 경제력이 높은 중상류층은 도심 주변에 발달한 교외(suburb)에 모여 사는 반면, 흑인이나 히스패닉계가 주축을 이루는 저소득 빈민층들은 주로 도심의 집값이 싼 지역에 모여 산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사회계층이나 인종에 따라 주거지의 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나 비백인이 모여 사는 지역의 교육재정은 백인 중산층 이상이 모여 사는 곳의 그것과 현격한 격차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교육재정의 격차는 응당 학교간 격차를 초래하여 교육자원, 교육시설 및 여건, 교사임금 등에 있어서 차이를 낳고 이것이 결국 지역간 학력격차를 낳고 있다. 즉 교외의 공립학교는 넉넉한 학교재정, 좋은 학교시설과 풍부한 교육자원, 높은 교사임금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반면, 도심 빈민지역의 공립학교는 부족한 학교재정, 무직이나 알콜중독 학부모, 낮은 교사임금과 상당수의 무자격 교사, 불안전한 주변환경 등으로 인해 이 지역에 거주하는 가난한 흑인,히스패닉계 아이들은 사회적 이동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으며, 학업성취도 또한 낮을 수밖에 없다.
 
나. 사립학교의 상대적 우위
현재 미국의 초중등학교 가운데 약 20% 정도가 사립학교이며, 전체 학생의 10% 정도가 사립학교에 재학하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그리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설립초기부터 상류층을 위한 교육이나 종교교육을 담당해오면서 미국교육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미국의 사립학교는 재정적으로 완전히 독립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부담하는 수업료의 비중이 높고 기타 기부금과 후원금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그래서 만약 교육구 내에 있는 무상 공립학교를 포기하고 사립학교에 자신의 자녀를 보내려 한다면, 지역 교육세도 내고 비싼 사립학교 등록금도 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지게 된다. 따라서 아무나 자신의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들 명문사립학교들은 높은 수준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대학수준의 수업(AP제도)을 개설하여 명문대학으로 직통하는 코스로 인식된다. 실제로 중산층 이상의 가정배경을 지닌 아이들이 이들 명문사립학교를 독점하면서 계층간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교육격차를 선택권 확대로 해소
하지만 미국은 이렇게 뿌리 깊게 존재하는 불평등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도심지 공립학교의 실패’라는 현상을 해소하고자 경제적 접근방식을 택했다. 즉 ‘실패한’ 공립학교에 강제로 다녀야 하는 교육소비자들에게 사립학교나 다른 지역의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어 학교간 경쟁을 유발하면 자연스레 교육의 질이 높아지리라 본 것이다. 학교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선 비교적 단일한 공립학교 체제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학교제도를 도입해야 하고, 이들 학교에 쉽게 다닐 수 있도록 행.재정적으로 지원을 해야 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협약학교(charter schools), 특성화학교(magnet schools)이며, 사립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해주는 바우처 제도(school voucher)가 등장했다. 하지만 공립학교의 규제완화와 선택권의 보장은 결국 선별(tracking)의 심화로 이어져 계층간 인종간 불평등을 더욱 확대시키기 십상이다.
 
가. 특성화학교
특성화학교는 ‘특별한’ 교육과정을 운영함으로써 교육구내의 학생들에게 다양한 선택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공립학교제도이다. 즉 특별한 교육수요에 부응함으로써 사립학교나 다른 교육구로 빠져나가는 학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자는 것. 실제로 특성화학교는 도심지에 위치해 있는데, 특성화학교로 인해 그나마 우수한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이렇게 남은 공립학교는 더욱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각주. “열악한 지역에 거주하는 우수한 학생들은 당연히 특성화학교를 지원할 것이고, 그에 따라 지역사회 학교는 더욱 가르치기 힘든 학생들만 남게 될 것이다. … 지역사회 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들은 사기가 저하되고 지역사회의 연대를 와해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한만길,「미국교육의 이해와 오해」,『교육비평』14호(2003년 겨울).)
 
나. 협약학교
협약학교도 특성화학교와 마찬가지로 학력향상에 실패했다고 여겨지는 도심 공립학교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으로써, 공립학교에 대한 불만을 등에 업고 급속하게 성장했다. 학부모, 교사, 지역인사 등이 특정한 교육목표를 달성하겠다는 협약(charter)을―학력향상에 관한 약속은 반드시 포함된다―주정부와 맺고 어느 정도 재정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교사자격, 교육과정, 학교운영 등에 있어서 상당한 자율권을 누리고 있다. 
 
이렇게 선택과 경쟁에 기반한 협약학교 또한 기존의 도심 공립학교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즉 실제로 선택권을 향유하는 계층은 도심지역에 사는 일부 백인중산층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협약학교의 빠른 성장은 학교운영에 있어서 영리재단의 등장을 촉진시켰다. 즉 에디슨 회사와 같은 영리단체가 주나 교육구와 계약을 맺고 공립학교를 위탁운영한다. 이들은 결국엔 비용을 최소화하는 효율성과 오로지 소비자의 욕구에 의해 학교를 운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교육적 목적을 추구하는 데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각주. 한만길, 앞의 글.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공영형 혁신학교’의 모델이 협약학교이다.)
 
바우처 제도와 이를 둘러싼 논쟁
가. 바우처 제도 현황
바우처 제도 또한 실패한 도심 공립학교에 대한 대안으로써 사립학교에 다니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재정적으로 보조를 해주는 것을 말한다. 더 나아가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학교간 경쟁을 유도하여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학교는 자연스레 도태되도록 하겠다는 취지라 할 수 있다. 학생은 주정부로부터 상품권(voucher)을 받아 사립학교에 등록금으로 납부하고, 사립학교는 정부에 이 바우처를 지불하고 재정을 받는 방식이다. 물론 정부로부터 바우처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가계소득이 일정한 기준 이하여야만 한다.
 
바우처 제도를 처음으로 실시한 곳은 위스컨신 주의 밀워키 시인데, 밀워키는 1990년에 바우처 제도를 최초로 도입하여 처음엔 7개교의 337명의 학생들에게 바우처를 제공했고, 1998년에는 종교계 학교들도 참여하게 됨에 따라 급속도로 팽창했다. 2004~5학년도 말에는 115개 학교에 15,000명(15%)에 이르는 학생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바우처 제도가 시작된 이래 사립학교들은 거의 5억 달러의 돈을 지원받았다. (각주. "Keeping Public Schools Public: Free-Market Education", Rethinking Schools, Vol.20 No.1 Fall 2005. http://rethinkingschools.org/special_reports/ voucher_report/index.shtml) 아리조나 주는 2003~4학년도에 19,00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세를 공제해주었다. 플로리다 주는 지난 1999년 주 의회가 주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는 법으로 제정함으로써 바우처 제도를 도입했다. 그밖에 오하이오 주의 클리블랜드와 펜실베이니아 주, 유타 주, 워싱턴 D.C에서 소규모로 바우처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각주. “Despite court rulings, few states offer vouchers", Milwaukee Journal Sentinel, June 11, 2005.)
 
나. 바우처를 둘러싼 논쟁
그동안 바우처 제도는 미국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정/교 분리원칙에 어긋난다는 논란이 있었다. 왜냐하면 바우처 제도에 참여하고 있는 절대 다수의 학교가 종교계 학교들이며, 이로 인해 공공자금으로 종교계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따라서 특정 종교를 교육하는 학교에 정부의 공공재정이 지원되는 것은 정/교 분리를 명시하고 있는 미국 헌법에 위배된다는 내용의 소송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2002년 미 연방대법원이 오하이오 주의 바우처 제도에 대해 합헌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정부의 자금은 종교계 학교가 아니라 부모에게 지급되었다는 점, 그리고 종교계 학교를 선택한 것은 학부모였다는 점을 들어 바우처 제도가 정/교 분리 원칙을 어기지 않고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각주. 김영주,「자율적 학교선택과 바우처 프로그램」,『교육개발』135호(2002. 9)) 
 
하지만 당시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바우처의 지원대상을 저소득층으로만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바우처 도입 운동은 저소득층을 주요 대상으로 삼으면서 정치적 정당성을 얻고자 했다. 그러나 실제로 대법원의 합헌판결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들이 바우처 제도를 전격적으로 도입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연방대법원이 합헌판결을 내렸지만, 작년에는 각 주가 비종교계 학교뿐만 아니라 종교계 학교에도 재정지원을 해야 할 의무가 없음을 명시한 바 있다. 이러한 조치들로 인해 각 주가 바우처 제도가 합법적인지 여부와 바우처 제도에 대한 정책적 판단(즉 바우처 제도가 공립학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여부)을 내려야만 했다. 실제로 각 주에선 정책적 논쟁이 바우처 제도의 도입에 있어서 중요한 장애물이 되었다. 이를테면 지원액수, 학력향상에 대한 책임, 공립학교 부실화 등의 논쟁이 첨예하게 대립되면서, 바우처 제도의 도입이 지지부진했다. (각주. "Keeping Public Schools Public: Free-Market Education", Rethinking Schools, Vol.20 No.1 Fall 2005. http://rethinkingschools.org/special_reports/voucher_report/index.shtml)
 
그도 그럴 것이 바우처 제도가 공립학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대다수 빈민 아동들에게는 오히려 불이익이 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바우처 제도를 통해 지원받는 돈은 사립학교 등록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며,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공립학교에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재정은 교육구에 등록된 학생수를 기준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일부 학생들이 재정지원을 받아 사립학교로 빠져나가면 기존의 공립학교 예산은 감축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남아 있는 학생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셈이다. 게다가 원하는 사립학교로 모두가 입학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즉 사립학교의 학생선발은 학교의 자유이기 때문에 이를테면 교외의 좋은 사립학교들은 빈민층 아이들을 달갑게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바우처를 지원받는 사립학교의 책임성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 학교는 학력평가 결과를 공개할 의무도 없거니와, 학생들의 정학률이나 중도 탈락률, 인종분류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의무가 없다. 밀워키의 경우 바우처 제도에 수억 달러의 돈이 투여되었지만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관한 어떤 자료도 알려진 게 없다. 심지어 교사자격에 관한 규제도 받지 않기 때문에 애초 바우처 제도의 도입 취지였던 ‘학력향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플로리다 주 대법원의 위헌판결의 내용과 의미
판결은 꽤나 명쾌하다.
플로리다 주 헌법 제9조 1항은 주가 보장해야할 교육의 의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주는 주내에 거주하는 모든 아동들에게 적절하게 교육을 제공해야 하는 최고의 의무를 지닌다. 적절한 제공은 단일하고, 효율적이며, 안전하고, 안정된, 양질의 무상공립학교에 관한 법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1999년도부터 주 전체에 시행되고 있는 ‘기회 장학금제도’ Opportunity Scholarship Program 는 실패한 학교로 판명난 공립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에게 사립학교로 옮길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해주고 있으며, 현재 733명의 학생들에게 세금으로 조성된 공공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헌법에 따라 주가 아동들을 교육시켜야 하는 유일한 수단인 무상공립학교와 경쟁관계에 있는 별도의 사립학교에 공공재원이 흘러들어가는 셈이다. 이로 인해 공립학교에 지원되어야 할 재정이 감소될 뿐만 아니라, 공립학교 혹은 다른 사립학교와 비교했을 때 결코 ‘단일하지 않은’ 사립학교에 돈이 지원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우처를 지원받는 사립학교들은 학업성취도평가 결과의 공개나 자격있는 교사의 채용, 교육과정 편성운영 등과 같이 공립학교에 적용되는 숱한 법적 기준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단일’할 수가 없다. 따라서 대법원은 바우처 제도가 단일한 무상공교육제도를 통해 모든 아동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헌법의 규정을 위반하고 있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지난 항소심에서는 바우처 제도가 헌법에 규정된 정/교 분리원칙을 위반하고 있다고 판결했었는데, 이번에 대법원은 그 쟁점에 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주 대법원이 주로 하여금 공립학교에서 학생들을 교육시켜야 할 의무가 있음을 명시한 최초의 판결이다. (각주. "Florida Supreme Court strikes down school vouchers", USA TODAY 2006. 1. 5.) 헌터대학의 조셉 비터리티 교수는 많은 주들의 헌법이 공교육은 ‘단일할’ 것을 요구하는 플로리다의 조항과 유사하기 때문에 이번 판결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교사연맹 American Federation of Teachers 부의장인 토니 코티지는 이번 판결이 “대법원이 공공자금은 공립학교에 사용되어야 함을 인정했다는 것이 명백하다. 이번 판결은 플로리다에서 바우처의 파멸을 재촉하는 것임이 틀림없다.”며 매우 달가워했다. (각주. “Florida Supreme Court Blocks school vouchers", The New York Times 2006. 1. 6.) 물론 주지사 제브 부시는 “독점을 보호하는 정부로부터는 아무런 이득을 볼 수 없다.”며, 이번 판결에 대해 개헌을 포함하여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했지만 이번 판결은 학교선택권 논쟁을 벌이고 있는 다른 주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공교롭게도 플로리다 주 주지사인 제브 부시는 현 조지 부시 대통령의 동생이다. 그가 취임한 이후 보수적 정책을 추진해오면서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플로리다에서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다. 주 의회가 주지사의 뜻을 받들어 바우처 제도를 법제화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던 셈이다. 대법원은 제브 부시가 중요한 업적 중의 하나로 여겼던 바우처 제도를 이번 학년이 끝나는 대로 중단할 것을 명령했기 때문에 그 타격은 남다를 것으로 보인다.
 
공립학교에 다닐 때조차 돈을 내야하고, 거기다 사교육비까지 추가로 내야하는 우리로서는 헌법적 수준에서 양질의 무상공교육의 의무를 보장하고 있는 플로리다가 너무나 부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 탄생한 제도가 미국에서 퇴짜를 맞았다는 사실을 교육관료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바우처 제도를 포함한 학교선택제를 더욱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무상으로 양질의 교육을 받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자 국가의 중요한 의무라는 개념조차 척박한 이 땅에서 학교선택권이 난무하게 된다면 그 피해는 선택할 능력도 없고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이 고스란히 지게 된다. 
 
무조건 미국식 교육제도를 도입하기에 급급한 정부관료, 그리고 국민들에게 이번 플로리다 판결의 내용과 의미를 널리 알리고, 이를 통해 학교선택권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보다 튼실하고 확대된 공교육체제를 만들어 가는 방향으로 논의가 모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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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처, 어떻게 볼 것인가 (박정원 전국교수노조 기획정책실장, 상지대 교수)
 
1. 바우처에 대한 찬반 
정부가 교육재정을 지원하면서도, 동시에 공급자간의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보자. 이렇게 함으로써 독점적 공급이 초래할 빈곤과 비효율을 회피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고의 본질은 간단하다: 교육을 공급하는데 쓸 보조금을 학교에 주는 대신, 정부는 각 소비자(학생이나 학부모이다)에게 소비자가 선택한 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교육 바우처를 주는 것이다. 이제, 정부는 더 이상 가격과 수량 양자를 지배할 수 없으며, 대신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학교가 전형적인 잉여극대화 추구 방식으로 시장에 대응하게 된다. (시장에서 인지된) 훌륭한 학교에 대해서는 교육서비스의 수요가 증가하게 되고, 그에 대응해 공급을 증가시키게 될 것이다. (역시, 시장에서 인지되기를) 질이 떨어지는 학교는 수요가 감소하며 따라서 공급량도 축소해야 한다. 이 제도는 교육서비스의 표준과 효율성을 최적화시킨 모든 학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게 되고, 정부의 재정지원도 계속되게 된다.
 
바우처 계획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유시장원칙을 신봉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Milton Friedman(1955; 1975, ch.12)은 미국에서 그러한 계획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이다. 영국에서는 Peacock과 Wiseman(1964), West(1967a), Gorman(1986), 그리고 Kelly(1989)가 지지자 그룹에 포함된다. 이들 옹호자들은 모두 교육을 시장의 힘에 맡겨 교육체계의 경제적 효율성을 증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모든 제안들이 제기되는 동기는 결국, 학부모에게 선택권(parents choice)을 줌으로써, 학교가 시장이 원하는 형태의 교육을 적절히 공급하도록 하는 인센티브를 주는데 있다. 바우처 제도는 그 부산물로서, 이제까지 시장에서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부분을 학교의 성장을 통해 채울 수 있도록 촉진한다. 결과적으로 더욱 다양하고 진실로 포괄적인 체제가 출현할 것이다.
 
그러나 바우처 계획에 대한 비판도 계속되어 왔다. 특히 학부모의 선택을 강조하는 부분이 집중포화의 대상이 되어왔다. 첫째, 학부모는 일단의 학교들이 공급하는 교육의 질에 대해 정확히 접근할 수 없으며, 그와 같은 판단은 전문적인 교원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Vaizy, 1962). 바우처의 옹호자들은 그러한 방식의 온정주의적 접근은 학부모를 모독하는 것이며, 전문직이라 하더라도 부여된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한다. 더구나 전문적 판단은 학부모들이 공개적인 선택을 행할 때 상담을 요구함으로써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Clark and Round, 1991).
 
둘째, 선택은 어쩔 수 없이 도시지역에 한정되며, 바우처 계획의 이익은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주어질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제도는 지리적으로 연속하지 않고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들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변형된 일부 바우처 계획들에서, 학생수요의 변화에 대응하여 학교가 공급하는 교육서비스의 가격을 변화시키는 행위가 허용되고 있다. 그리하여 명망 있는 학교들은 단기에서 자신의 가격을 올릴 수 있으며, 반대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학교들은 자신의 가격을 하락시킴으로서 학생을 모집하고 있다(Wagner, 1974). 다른 대안으로서는 입학자격이 학교별로 다르게 설정되거나, 혹은 또 다른 공급규칙들이 부과되었다(비록 이러한 해결책이 모두, 소위 ‘명문’ 학교들이 가격을 차별화하는 재정적 인센티브 측면에서 도입하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우에 학부모의 선택권은 침해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일부 학생들이 재정적 근거로 그리고 학업능력이나, 혹은 운에 따라 차별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우처 계획의 세 번째 주요 비판 논지이다. 물론 핵심적 이슈는 이로 인해 야기된 선택권의 침해가 다른 제도(현행의 제도를 포함하여)하에서 받게 되는 침해보다 더 큰가, 아니면 작은가 하는 문제이다.
 
학교가 수업료를 자유로이 변경할 수 있게 허용된 바우처 계획은, 부유한 학부모를 둔 학생은 ‘최상급’ 학교를 다니게 되는데 비해 가난한 학부모들은 자기의 자녀들을 ‘최하급’ 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는 빈곤의 악순환(vicious cycle)을 결과한다. 이러한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바우처를 분배할 때 가난한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차별화해야 한다(Jencks, 1970).
 
부모의 소득에 입각한 Jencks의 누진적 바우처 분배계획은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예를 들어 Friedman(1975)조차도 ‘보상 바우처 제안에 대해 크게 공감한다’고 표현했다. 비록 교육비 지출에 관한 중산층의 강한 정치적 로비가 그러한 운동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냉소적 시선으로서 자신의 공감수준을 낮추어버리긴 했지만. 더구나 경쟁시장 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 모델’이 강조하는 암묵적 가정 - 개인간 화폐의 한계효용은 일정하다 - 은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교육분야에서도 의구심이 든다. 이러한 시각은 저소득 가정출신 학생들에게 더 높은 가치의 바우처를 지급해야 하는 이유를 추가해 준다.
 
바우처에 대한 네 번째 비판은 세 번째 비판으로부터 도출된다. 능력과 소득기반에 따른 차별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바우처 계획은 사회를 분단시키는 경향이 있다(Blaug, 1967) 과거에 grammar school(대학진학 예비학교)과 secondary-modern school(실용교육을 하는 중등학교) 사이의 분할에 대해 적용되었던 비판이, 오늘날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분할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다. 학교입학이 지리적 수용가능 지역에 의해 결정되던 시절에 부유한 학부모들이 인근 학교의 질을 기준으로 이사를 자주 했던 사실과, 이로 인해 도시지역이 부유한 지역과 가난한 지역으로 공간 분할되는 경향을 악화시켰던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교원노조가 이 제도에 대해 조합원들의 고용전망을 위협하는 제도라고 주장하면서 바우처의 도입을 적극 반대해 왔다(전국교사노동조합, 1983). 물론, 자신들의 비교우위가 직업의 외부에 놓이게 될 것이지만, 교사의 직무를 보호함으로써 전체적으로 경제적 효율성과 형평성이 강화될지 분명하지는 않다.
 
여섯째, 충분한 학생을 모집하지 못한 학교들의 건물과 교육설비들이 유휴화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관심이 표명되어 왔다. 그렇지만, 이 비판은 바우처 계획에서 가격체계의 역할을 간과하고 있다.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불량한 서비스를 공급한다고 평가된 학교는 수업료를 삭감하던가 아니면 입학조건을 완화함으로서 자기 학교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킬 수 있다. 그러한 조치를 취하고도 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운 학교는, 더욱 효율적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형태의 교육공급을 하는 다른 학교에 학교건물과 시설을 임대해 주면 된다.
 
마지막으로, ‘교육은 모든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는 제약조간이 부과되어 있다면, 바우처의 크기를 정하기가 쉽지 않다. 지역 내의 학교들이 정부가 바우처의 크기를 인상하도록 압력을 넣기 위해 담합하여 수업료를 비용 이상으로 일제히 올리게 된다.
 
아주 단순한 형태의 바우처 실시제안은 오래 전부터 문헌에 나타나고 있다. West(1967b)는 그 근원을 18세기의 정치평론가 Thomas Paine(1915, pp. 246-252)으로 추적하고 있다. 그렇지만 말할 필요도 없이, 비록 일관적이지는 못하지만, 바우처가 상당한 지지를 받게 된 것은 Friedman(1955)이 그 아이디어를 재정립한 이후의 일이다. 바우처 계획의 성과에 대한 증거는 매우 제한적이고, 또 미국에서의 일련의 실험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 간접 증거는 영국에도 존재하는데, 영국에서는 1980년대에 잠시 바우처 제도의 도입이 고려되었던 적이 있다.
 
2. 각국의 바우처 실험 
미국
교육 바우처에 대한 미국에서의 초기 실험은 1972년에 캘리포니아주 산호세市 Alum Rock 지역의 일부 공립학교에서 시작되었다(Weiler, 1977). 이 실험에서는 자유시장에 대한 몇 가지의 제한이 가해졌다. Alum Rock 계획은 규제 보상 바우처 계획이었는데, 여기에서 공급 여석이 부족한 학교들은 추첨에 의해 학생이 분배되었다. 학교 수업료는 기본 바우처의 가치와 동일하게 규제되었지만, 보상 바우처를 받을 자격이 있는 학생을 모집하는 학교는 재량으로 보상 바우처를 발행할 수 있게 추가 기금이 지급되었다. 첫 해에는 교육구의 학교들 중 1/4만이 참여하였다. 교사들의 종신재직권(job tenure)과 연공에 따른 권리(seniority right)는 보장되었다. 이 계획에 참가한 각 학교들은 학부모들에게 더 많은 추가선택권을 주기 위해 여러 개의 ‘미니학교(mini-schools)’로 교육단위를 다시 분할하도록 하는 조치가 권장되었다.
 
Alum Rock 실험의 성공여부에 관한 판단은 간단하지 않다. 학부모들은 과거의 제도하에서보다 새로운 제도하에서의 자녀교육에 대해 일반적으로 만족했다. 교사들은 재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추가 기금을 받게 되어 좋았지만, 복잡한 행정절차가 야기한 업무증가에는 불만이었다. 보상 바우처에 들어가는 비용은 상당히 컸으며, 재정적으로는 바우처 체제가 과거의 제도보다 고비용임이 드러났다: 이러한 결과는 계획을 수립하는데 대체로 높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향상되었는지, 아니면 하락했는지에 대해서는 확고한 증거가 없다. 따라서 실험이 아주 제한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Alum Rock 실험은 바우처가 실제 유용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또 다른 교육 바우처 실험은 뉴잉글랜드 지방의 여러 곳에서 실시되었다(Sugarman, 1974). 더욱 최근에는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 시 행정당국에 의해 유도된 ‘학부모권(parent power)’ 계획이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Tan, 1990). 1979년에 도입된 이 계획은 애초 초등학교가 인종적으로 분리되는 경향을 줄이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 제도의 도입 이후, 학부모는 그들의 자녀를 보낼 대상학교 네 개를 선택하여, 각자 순위를 지정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다수인종 학생에 대한 소수인종 학생의 비율이, 미리 결정된 제한선을 침범하지 않는 한, 학교에 수용 여석이 있다면, 자신의 부모가 가장 선호하는 학교에 학생이 배정되었다. 학교들은 공격적으로 자신의 산출물을 판매했다. 이 계획은 대체로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향상시키고, 동시에 인종적 통합을 촉진하며, 학교별 성취도 격차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되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일은, 캠브리지 시는 미국에서 가장 작은 도시 교육구의 하나라는 사실(고등학교가 한 개밖에 없다)이며, 바우처 성공의 부분적인 원인이 도시규모에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최근 미국에서 개발된 또 다른 방식은 보충교육 계획(Remedial Education Program)과 관련하여 1986년에 있었던 논쟁에서 촉발되었다. 원래 이 제도는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아 평균 빈곤율이 높은 지역의 자치정부가, 만일 그렇게 하겠다면, 학업성적이 평균이하인 학생들의 부모에게 바우처를 지급하는 계획이었다. 이 바우처는 어떤 인가된 학교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 것으로서, 보충수업료를 가지고 학생의 교육 바구니를 가득 채울 목적이었다. 학부모는 바우처를 사용할 학교를 결정할 수 있었다. 바우처의 가치는 전형적인 보충교육비의 대부분(전부는 아님)을 충족하게 되어 있었다. 자신의 재원으로 바우처의 가치를 높이려는 학부모들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게 허용되었다. 이 계획은 대중들의 커다란 반발에 직면해, 결국 공공부문 학교체계 내에서의 선택권 신장이라는 다소 덜 급진적인 계획안으로 교체되었다.
  
네덜란드
네덜란드의 교육제도는 오랫동안 제한적 바우처 계획과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James, 1984). 네덜란드에서는 초등과 중등교육의 70% 이상이 사적 부문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데, 대체로 종교단체에 의해 운영된다. 공공부문은 (지방자치체가 지급하는) 자본 보조금과 바우처 체계에 의해 재정이 유지된다. 실제로 개별 학생은 지방 공공부문 학교의 1인당 수업료와 같은 액수의 바우처를 교부받는다. 학생은 이 바우처를 공공부문 학교에서 사용할 수도 있고 사립학교에서 사용할 수도 있다. 학교는 그 바우처가 대표하는 양의 기금을 국가로부터 청구한다. 정부로부터의 재정지원에는 일정한 학생:교사 비율에 근거한 교사의 봉급(교사의 봉급은 공사부문 모두 정부가 통제한다)이 포함된다. 사립학교들은 스포츠시설이나 도서 등 교육서비스 그 자체에 포함되지 않는 설비를 충당하기 위해 보충등록금을 부과할 제한된 권리를 가진다. 따라서 그러한 학교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학생의 가족이 스스로의 자원으로 바우처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비록 네덜란드 체계가 많은 장점-경쟁구도 내에서의 선택 가능성이라는-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적부문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은 사적부문과 공적부문의 구별이 곤란할 정도의 규제를 수반하고 있다.
 
영국
영국에서는, Margaret Thatcher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에서 바우처의 도입을 여러 차례 고려하였다. 대처시대에 앞서 켄트 주에서 실시된 초기 실험은 굉장한 관심을 끌었다. 1978년에 실시된 한 실행연구는, Ashford 교육구의 바우처 제도 운영은 행정비용이 많이 소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Kent 주의회, 1978). 인건비가 높은 학교들(교사진이 나이가 많거나, 낮은 학생:교사 비율 때문에)은 관할청에서 적절한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곤란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어 있었다. 반면 학부모 선택권 면에서 얻을 것은 그리 크지 않았다: 8명의 학부모 중 단 1명만이 자녀가 다니는 학교를 바꾸기 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2년에 Ashford 지역에서 바우처 사용에 관련된 실험적 연구가 제안되었는데, 이 계획은 그 해 가을 주 교육위원회 위원장이 사임한 후 폐기되고 말았다. 이와 유사한 실험계획이 Sefton에서도 세워졌지만, 역시 소개되기도 전에 폐기되었다. 1984년 중엽에 영국정부는 바우처 도입계획을 철회했다. 바우처 계획의 실시비용에 대한 우려가 한 이유가 되었다: 그것은 현재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가 최초로 보조금을 받게 되므로, 교육재정 비용을 곧 바로 상승시킬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교육계획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려는 공무원들의 욕망도 바우처 아이디어의 진전을 가로막는 한 요인이 되었다. 1986년과 1990년에도 잠시 바우처 도입운동이 있었지만, 1993년에 가서는 영국에서 교육 바우처를 도입하려는 모든 계획은 사라졌다. 
 
교육이란 학교교육뿐만 아니라 직업훈련도 동시에 포괄하는 개념이다. 직업훈련 분야에서 영국은 이미 바우처를 실험한 바 있다. 1990년 고용부 장관인 Michael Howard(Hansard, 3월 27일)는 직업훈련비 보증제도를 발표하였다. 1991년 4월 몇몇 지역에서 실험적 계획이 시작되었는데,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는 지역의 훈련과 기업위원회(Training and Enterprise Councils: TECs)가, 스코틀랜드에서는 지역기업연합(Local Enterprise Companies: LECs)이 운영을 담당하였다(Howard, 1991). 그 계획은 다음과 같이 시행되었다. 전일제 교육을 마치는 16세와 17세의 사람들에게 훈련비 보증서(혹은 바우처)가 발행되었다. 각 젊은이에게 주어지는 보증서에는 화폐가치가 인쇄되어 있었다. 청년 노동자들은 훈련을 시켜주는 고용주나, (평생교육 대학과 같은) 특별한 훈련 공급자에게 이 보증서를 제출함으로써 사용할 수 있다. 각 보증서의 가치는 중앙정부가 결정하고 배분하지만, TECs나 LECs 같은 지방 고용주들이 자기 지역의 청년들에게 더 많은 직업훈련을 시키기를 원할 경우 그들이 이를 공급하게 했다.
 
TECs와 LECs는 지역 교육청, 평생교육 대학, 및 직업훈련 서비스 기관들과 긴밀한 협조를 해야 했다. TECs와 LECs는 또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모든 젊은이들에게 훈련계획의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에게 제공되는 훈련이 질적으로 적절하며 산업의 수요와 일치되도록 했다. 이 실험적 계획은 그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세밀하게 관찰되었으나, 어떤 확고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바우처 계획에 관한 논의에 대해 전 영국 교육성장관 Keith Joseph(1984) 경의 발언을 참고로 할 필요가 있다.
 
나는 교육 바우처 아이디어에 지적으로 매료되어 있다. 왜냐하면 바우처 제도는 학교의 선택권과 다양성을 증가시킴으로써 소비자인 학부모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시장 메커니즘의 가능성을 일정부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관찰하는 과정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학교교육이 모든 국민들에게 무상으로 공급되어져야 하며, 의무적이어야 하고, 일정한 수준을 가져야 한다는 요구들이 존재하는 속에서, 이 요구들과 일치할 수 있는 바우처 제도의 실시가 어렵다는 점이다. 국가의 개입을 필요로 하는 이러한 요구들은...... 재정과 행정규제 양 측면에서 대체로 현행 제도하에서와 마찬가지의 행정적 노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바우처 아이디어는 더 이상 의안이 될 수 없었다.
  
한 마디로 바우처는 교육의 무상의무공급 및 수월성 유지요구와 배치된다는 점이다.
 
칠레와 콜롬비아
칠레에서는 1980년대 초에 바우처 제도가 도입되었다. 바우처 도입의 장점이 소득과 연관된 바우처라는 점이 대부분의 분석에서 지적되었지만, 칠레에서는 저소득층과 장애 학생들에게 불리한 정액 바우처(flat voucher)가 도입되었다. 바우처 제도 실시 20년이 지난 후 칠레의 교육체계 내에 극심한 불평등이 자리잡았다. 최저층 가계출신들이 성적 등에서 최악의 결과를 얻었는데, 이들 학생들은 공립학교에 집중되었다: 공립학교의 40%가 저소득층 20% 출신들이다. (참고로 칠레에는 국가재정만으로 운영되는 공립학교, 사립이지만 보조금 지원을 받는 학교, 국가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 순수 사립학교 등 세 가지가 있다). 재정지원 사립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사회계층 10분위 가운데 상위 8분위 출신들로서 다양한 인구계층이 이 교육의 수요자들이다. 하지만 가장 부유한 가계 출신 학생들은 수업료 지불 사립학교에 집중적으로 입학한다. 칠레의 경험에서 바우처제도는 중산층에게 유리함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소득에 반비례하는 바우처를 도입하여 저소득층에게 유리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양극화를 예방하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Pablo Gonzalez, Alejandra Mizala, Pilar Romaguera(2004), VOUCHERS, INEQUALITIES AND THE CHILEAN EXPERIENCE, Teachers College, Columbia University).
 
1999년에 교육 사유화정책의 일환으로 바우처를 도입한 콜롬비아는 애초 저소득층을 겨냥한 제도를 도입하였지만, 조사결과 학교간 격차와 자원배분의 격차만을 초래했을 뿐, 초기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Patricia Mayer(2004). Educational Vouchers in Colombia, Teachers College, Columbia University).
 
3. 미국 각 주의 바우처 실시현황
Cleveland Scholarship and Tutoring Program (Ohio)
10년의 역사를 지닌 클리블랜드 바우처(CSTP)는 K-10학년 학생들이 사립 무종파 학교나 종교학교에 다니게 될 때 기금을 지급한다. 기금(scholarship)은 인근 교육구의 공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도 주어질 수 있지만, 현재 공립학교가 참여하고 있는 곳은 없다. 덧붙여 CSTP는 공립학교 재학생을 위한 개별교육 기금(tutoring grants)도 제공한다. 이 계획의 기금을 받는 학생의 수는 1996~97년의 1,994명에서 2004~2005년 5,675명으로 증가했다.
 
두 가지 기금은 추첨에 의해 지급되며, 연방 빈곤선의 200%이하의 저소득가정(2005년의 경우 4인 가족 기준 $38,700)에게 우선권이 있다. 이외의 가계들은 확보된 기금(funds)이 충분할 경우에만 신청할 수 있다. 새로운 기금 수령자들의 약 절반 이하가 과거 사립학교에 입학했던 어린이들이다. 프로그램 설치 이후 기금최고액은 $2,250이었다. 2003~04학년도에는 학생 1인당 규모가 $2,700으로서 처음으로 증가했다. 학생들은 개인적 조건에 따라 더 큰 기금을 받기도 한다. 미국 대법원은 2002년 6월 27일 이 계획이 합헌임을 5-4로 의결한 바 있다.
 
Colorado Opportunity Contract Pilot Program
2003년 4월 16일, 주지사 Bill Owen이 Colorado Opportunity Contract Pilot Program 법률안에 서명함으로써 콜로라도는 2002년 6월 연방 대법원의 바우처 합헌 판결이후 바우처 입법을 통과시킨 최초의 주가 되었다. 작년 6월 Colorado의 한 판사는 주의 바우처 계획이 교육에 대한 지방교육청의 통제를 약화시키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이 계획은 관내에 주정부 책임제(accountability system) 하에서 하위 점수를 받은 학교가 8개 이상인 모든 콜로라도 교육구에 적용되게 된다. Denver와 Colorado Springs를 포함하여 11개의 교육구가 실시대상이 된다. 여기에서 빠진 교육구들은 학교운영위 투표를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무료 급식자(free)이거나 일부 지원(reduced-price school lunches)을 받는 유치원생부터 12학년까지의 아이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Florida
A+ Opportunity Scholarship Program과 장애인을 위한 McKay Scholarships for Students with Disabilites Program 두 종류가 있다. 여기서 A+ Opportunity Scholarship Program은 지난 1월 5일 플로리다 대법원에 의해 위헌으로 선언되었다. 아직 이 판결이 McKay Scholarship program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고 있다. 플로리다 의회와 주지사는 학부모들이 자녀를 사립 종교학교나 비종교학교에 입학시킬 때 받는 두 개의 바우처 계획을 통과시켰었다.
  
A+ Scholarships. 플로리다 교육성이 4년 단위의 평가에서 2년간 낙제한(failing) 공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A+ Opportunity Scholarship Program (A+OSP)의 대상이 된다. 그들이 받는 기금은 낙제한 학교의 편성 최고학년까지 유효하며, 배정된 고등학교가 C등급 이하를 받으면 고등학교 내내 기금이 지급될 수 있다. 학부모들은 자격을 갖춘 학생들을 사립학교나 다른 공립학교에 입학시킬 수 있다. 2003~04학년에 Pensacola지역의 두 개의 낙제학교로부터 Miami-Dade, Palm Beach, Orange and Escambia군 등 주 전체의 10개 학교로 확대되었다. 2005~06학년에는 F를 두개 받은 15개 학교의 학생들로 바우처 자격이 확대되었다. 2005~06년에 모두 733명의 학생들이 사립학교에 다닐 수 있게 기금을 받고 있다.
 
McKay Scholarships. 배정된 공립학교에서 자녀들의 학업에 불만인 장애학생들의 학부모는 이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다. 2005-06학년에 16,144명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Maine "Tuitioning" Program
메인 주의 읍들 가운데 공립학교가 없는 지역은 주민 자녀들을 위해 사립과 공립학교 모두에 통용되는 바우처를 지급한다. 이 계획은 자녀들이 비종교 사립학교에 다닐 때의 비용을 지불하는데, 메인 주 외부에 있는 학교라도 관계없으며 인근 교육구의 공립학교라도 상관없다. 거주하는 읍에서 수업료를 지불하며, 메인 주의 공립고등학교 학생 일인당 평균교육비가 그 상한선이다. 2001년 가을, 5,933명의 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립학교에 등록했으며 8,252명은 인근의 공립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 제도는 형태만 달랐지, 메인 주에서 200년간 지속되어 왔다. 이 프로그램은 애초 비종교학교와 함께 종교학교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1980년에 메인 주의 국무장관이 “종교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수업료를 지불하는 관행은 미국 헌법의 실정법 조항을 위반하고 있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결과적으로 1981년에 메인 주 의회는 이 제도에서 종교학교를 배제하는 현행의 법률을 통과시켰다. 2004년 10월 22일, 연방 상고심에서 이 법률을 지지하였다(Eulitt v. State of Maine).
 
Milwaukee Parental Choice Program (Wisconsin)
Milwaukee Parental Choice Program(MPCP)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그램인데, 비종교사립이나 종교사립학교 입학하는 학생을 둔 저소득가계에 최고 $6,351의 바우처를 지급하고 있다. 1990~91년 7개 학교 341명으로 출발하여, 2005~06년에는 모두 125개 학교 14,824명(전일제 학생 수로 환산하여)으로 확대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입학자 수 상한에 도달하였다.
 
MPCP 학생들은 연방정부 빈곤선의 175%이하 소득(2005~06년 4인가족 기준 $34,274) 가정출신의 밀워키 학생들에게 주어진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립학교들은 모든 지원 자격을 갖춘 모든 학생들을 받아들여야 하며 정원을 초과하는 학생이 지원하였을 경우 무작위 선택을 하여야 한다. 이 Milwaukee Parental Choice Program의 성과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으며 학자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Vermont "Tuitioning" Program
1869년부터, 버몬트 주는 공립학교가 없는 시골읍 지역의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지급해 왔으며, 해당 학생들은 다른 교육구나 사립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2001~02학년 동안, 90개 정도 읍 출신의 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 공사립학교에 다니는 학생 7,147명에게 수업료를 지불하였다. 이 학생들 가운데 약 30% 가량이 주 내의 85개 자립형 학교에 다닌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읍들은 자신들의 자녀가 비종교 사립학교나 인근 교육구 또는 다른 주의 공립학교에 보내는 비용을 지급한다. 읍의 교육청이 학생들의 교육비용을 지급한다. 학생이 자립형 학교를 선택하면, 교육구 내의 의사결정권자들은 주 고등학교 평균 수업료와 동일한 금액을 지불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데, 이 액수가 실제 수업료보다 작을 경우 학부모들이 그 차액을 부담하여야 한다. 이 프로그램은 원래 비종교 학교들과 함께 종교학교들도 포함하고 있었지만, 1961년과 1999년에 걸쳐 Vermont 대법원의 판결로 종교 부속학교들은 제외되었다.
  
Washington, DC
2004년 1월 22일, 상원이 D.C. School Choice Incentive Act 법을 통과시켜, 워싱턴DC를 연방정부가 바우처를 지원하는 최초의 주로 만들었으며 이에 따라 미국의 연방교육성이 바우처를 집행하는 유일한 주가 되었다. 1,400만불에 상당하는 바우처 계획이 5개년 기금 프로그램으로 입안되었는데, DC 내의 저소득층 자녀들이 사립학교나 교구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최고 $7,500의 기금을 지불하는 것이다. 2005~06년 현재 이 프로그램은 59개 학교의 1,705명 학생들을 지원할 수 있는 규모를 갖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Anthony Williams 시장의 교육개선 3개 부문 조치의 일부분인데, 이 조치는 헌장학교와 공립학교에도 각각 1,300만불씩을 지원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 연방정부의 무료 또는 점심할인 계획을 적용받는 유자격자에게 지급된다(2005년에 4인 가족기준 소득이 $35,798 이하이거나 연방 빈곤선의 185% 수준). NCLB 법하에서 “개선이 요구되는” 공립학교의 학생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4. 결론
 
미국에서 바우처 도입에 대한 찬반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실증분석 결과들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클리블랜드 지역의 바우처를 대상으로 한 가장 최근의 연구결과는 “바우처 수혜 학생들에게 있어서 어떤 성적의 향상도 없었다; 오히려 이들의 수학성적은 조금 낮아졌다.... 바우처의 옹호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프리카계 학생들에게 어떤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Clive Belfield(2005), The Evidence on Education Vouchers: An Application to the Cleveland Scholarship and Tutoring Program, Teachers College, Columbia University).
 
교육은 사회적 불평등을 합리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제이다. 교육정책의 성격을 기준으로 사회모형을 분류한다면, 엘리트에게 유리한 교육정책을 실시하는 ‘엘리트사회’, 계급중립적인 교육정책을 실행하는 ‘자유방임사회’,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게 유리한 교육정책을 실시하는 ‘평등주의사회’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Henry Levin). 한국사회는 고교평준화의 큰 틀을 유지하고 있어 외형적으로는 자유방임사회로 분류될 수 있겠다. 하지만 지역별 학생 1인당 지자체 교육비지원액의 차이, 사교육비 지출을 통한 사교육시장의 활용, 자사고와 특목고의 확대, 국립대 법인화 추진과 수업료 인상 추진, 소위 명문대학과 대학원에 대한 집중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한국사회는 사실상 세계 최고수준의 엘리트사회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교육기회를 크게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저소득계층에 대한 집중지원, 공교육의 정상화 정책 추진 및 실질 빈곤층의 학비 전액 국가부담, 대학등록금 후불제도 등의 제도적 개혁들이 적극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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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공공성 확대와 지불보증제(Voucher) 제도 (장수명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정책위원, 한국교원대 교수)
 
(1) 학생들이 사립에 재학하는 비율이 높은 나라의 경우나 각 나라의 학교급에서  정부의 사립학교 재정지원이 일반적인 현상임.
◦ 이는 사립학교가 시민의 기초교육을 담당하는 영역이 크고 공공재 역할의 기능이 크기 때문임.
◦ 따라서 바우쳐 논쟁에서 엄격한 정경분리 원칙과 자율적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미국의 경우는 매우 특이함. 따라서 플로리다 주의 바우처에 대한 위헌적이라는 판결 사례가 우리나라의 경우에 직접적인 의미는 크지 않다고 봄. 
◦ 다만 교육에 대한 주공적 책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후 플로리다 주의 교육정책의 변화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봄.
 
(2) 이런 기준으로 보았을 때 현재의 비평준화 지역의 고등학교 체제에서 어느 정도의 학생의 학교선택권과 학교의 학생선발권이 보장되는 학교의 재정지원제도는 대체로 유사 바우처 제도라고 봄.
◦ 중등교육에 바우처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는 기획예산처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평준화 해체논리와 같은 맥락으로 보여짐. 
◦ 재정의 중앙집중화 문제: 대부분의 나라의 경우 주정부나 지역구의 재정이 주요한 재정의 원천이 되고 있어 바우처 제도 적용에 한계가 있음.
◦ 한국의 경우 중앙에 대한 의존도가 80% 가량 되기 때문에 전국 차원의 바우처 제도가 적용될 수 있음. 학생들이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를 선택할 경우 정부는 학생 1인당 비용을 그 학교로 지원하는 것임.
◦ 아직 이는 시도되지 않았음.
  
(3) 문제는 교육과정운영, 학생선발 등에 관한 학교의 자율권 문제임.
◦ 미국의 경우 학생선발권은 사실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나 (기존의 학교성적, 비행, 차별 등과 관련한 기준으로 학생선발은 금지되어 있음.) 교육과정운영은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음.
◦ 북유럽 국가의 경우 재정지원과 학교에 대한 공공통제가 일반화된 경우와 학교자율에 맡기는 경우 두 가지로 나누어짐.
 
(4) 우리나라의 경우 영리기관에 대한 공공자금인 교육재정지원의 문제
바우처를 이용하여 공공기관이나 비영리 재단인 아닌 영리를 위한 탁아소나 유치원에 간접지원을 하는 경우 학생선발(가령 장애가 있는 아동 등 비용이 많이 드는 아동을 기피할 가능성)과 운영의 비공개성(이윤을 남기기 위해 아동에 들이는 비용을 감소)으로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음. 사설학원에 대한 정부의 공공자금이나 고용보험의 바우처를 통한 재정지원은 공공의 민주적 통제 없는 재정운영으로 문제가 됨.
◦ 이에 대한 조사나 구체적 자료가 필요하다고 봄
 
2. 교육격차와 바우처 제도 
□ 바우처 제도는 교육의 질이 근접지역간에 심각한 차이를 내고 있을 때 그 원인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나 근본적인 대책이 없이 진행되는 대증요법(對症療法)으로 제시되고 있음.
□ 학교간의 교육서비스의 제공의 경쟁을 유도하는 바우처 제도나 자율학교, 영리기관의 학교운영 등을 제시하게 됨.
□ 그 원인이 부족한 재원과 교육에 있어 관료주의, 범죄문제, 빈곤문제, 또래집단 문제 등과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을 때에도 아동의 교육에 대한 적극적 관심을 가진 학부모들에게는 이를 선호하게 됨.
□ 한국의 경우 강남과 강북의 교육차이가 바우처 제도의 문화적 사회적 지지의 한 근거가 되고 있음.
□ 문제는 이러한 제도가 교육의 형평성을 제고하는 데 어떤 기여했는가하는 점임. 이에 대해서 갈수록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남.
 
□ 교육상품화의 제도화 

제도

제도의 형태 및 운영

옹호론자의 주장

반대론자의 주장

바우쳐 제도

(대학 학자금의 이자공급, 근로자 취업훈련, 저 소득층 유아교육 지원)

미국과 칠레

정부가 학생들에게 지원하는 현금 지불이다.

2 가지 형태: 재정, 규제, 정보

① 사회적 경제적 약자를 위한 voucher: 학생선발 제한 자금지원제한

② ‘add-on’ ‘supple- mental voucher’: 공공자금으로 제공된 voucher에 보충하는 사적 기금. 

① 학부모나 학생들의 선택권을 제고/교육 다양성 제고

② 한 지역의  공립학교는 다른 지역의 공립학교나 사립학교와 경쟁을 유발함으로써 수요자의 요구에 반응하고 따라서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

 

① Cream-Skimmed

② 정보활용의 부재

③ 교통비(근거리)

④ 지역 사회의 민주적  통제를 벗어나고 규제를 강화하게 된다. 결국 비효율적이다.   

 

 

헌장학교

(Charter Schools)

학교설립의 주체자들이 교육당국(지역 교육청 등)과 계약을 맺고 공적 자금을 지원받아 학교를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것: 미국의 경우 대학에 승인권과 평가권이 있음. 

 

① 특권과 관료주의의 비효율성을 제거할 수 있다.

② 공립학교에 모범을 제공하고 경쟁을 통한 공립학교 개혁의 기제가 된다.

 

 

① 학교를 경제적 이윤을 만드는 장으로 만들 수 있다.

② 학생선발과 정보차이 등으로 사회적 분리를 가져올 수 있다.

③ 공공의 통제가 어렵다. 평가회피

④ 공립학교 재정의 사용-공립학교의 질 저하

⑤ 경영부실로 EMO로 넘어간다.

EMO

(Educational Management Organization)

Edison School

교육청과 계약을 맺고 기업이 세금으로 공립학교를 운영하고 이윤을 남김.

일부 서비스: 급식 및 운송 등에서 출발 이제는 전체 교육행정과 교육과정을 기업이 수탁

 

① 교육도 서비스라는 상품이기 때문에 기업 경영자들이 보다 효율적이다.

② 기업 경영자들이 소비자의 요구에 더 민감하다.

③ 시장경쟁구조의 압력으로 다른 공립학교를 변화시킬수 있다.

① 교육에 대한 의사 결정이 교사 학부모나 지역 주민이 아닌 기업의 중앙에서 결정.

② 이윤추구의 장: 학생수송과 급식비의 과다 책정

③ 학업성취 부풀리기 및 정보통제

④ 낮은 교사보수와 이직률의 과다.

이윤 기업화

(정부의 학교 운영의 중단/사립학교의 영리 재단화-학원과 경쟁)

설립의 자유/비배분 원칙의 부재(이윤추구)/기업측면의 규제만 존재

 

① 교육도 상품이므로 정부가 관여할 필요가 없음.

② 완전경쟁시장을 유지함으로써 가장 효율적임.

① 교육은 공공재적 성격을 가짐.

② 기업의 목적은 이윤 극대화인데 교육 상품의 목적은 단순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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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처, 한국교육에 미치는 영향
  (이철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 부소장)

1. 한국교육 현실(교육의 사사화 영리산업화)
 
○ 전국 단위의 단일한 대학서열체제, 학벌사회 : 이는 교육의 본질 및 공교육을 왜곡하고 있으며, 사교육 수요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음.
○ 사회 양극화의 심화 : 이는 소비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으며, 기득권층의 해외 소비가 증가하고 있음, 소비자의 선택권 논리가 계층간의 대립으로 이어지고 있음.
○ 교육을 기제로 한 불평등의 대물림 :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계층을 위한 차별적인 학교 설립, 빈곤으로 인한 교육기회의 차별 일상화, 지역간 불균형, 학력서열화.
○ 신자유주의 교육 시장화, 상품화 : 교육비의 민중전가, 국립대 법인화, 대학 구조조정, 교육개방, 영어교육 확대, 교육의 영리 산업화 등.
 

2. 바우처 논의 상황
 
(1) 바우처 제도의 기본 내용
특정 분야의 소비를 늘리기 위한 상품권제도
학력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무상공교육 제도를 기반으로 소수의 선택권 보장
교육 실패의 책임을 학교에 두고 학교간 경쟁체제를 강화하려는 것
 
(2) 한국에서의 논의 상황
○ 보건의료 영역에서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저소득층에게 바우처를 지급하는 등 방안을 보험개발원, 금융연구원이 작성하여 정부에 제출하였음
○ 공공임대 주택정책을 포기하고 주택 바우처 논의 중
 
(3) 교육부문에서 상황
○ 방과후 학교에서 도입계획 발표 : 2006년 교육부 주요업무계획에 의하면 ‘방과후 학교는 수익자 부담을 원칙으로 하되, 농어촌 지역과 도시 근로자 자녀의 수강료 지원을 위한 바우처 제도 도입’ 이라고 밝힘
○ 유아교육의 경우는 이미 사교육 기관을 포함하여 시행중
○ 2007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대안학교 시행령 법제화 과정에서 대안학교 지원 내용이 학생수에 따른 평균교육경비 지원 방식으로 제정되고 있음
○ 이미 시행중인 평생학습도시 사업에서 학습쿠폰이나 교육통화사업이 시행중이며 이는 방과후학교나 교육복지 사업과 연계하여 확대될 예정
○ 빈곤과 실업에 관한 재교육기회에서
 
3. 바우처 제도 도입의 근본 문제
 
○ 한국 역시 제도로서의 공교육의 실패, 수요자의 선택권 보장이라는 논리에 근거 하고 있음. 그러나 한국의 교육 실패는 미국처럼 약물, 학력저하 등이 아님. 전국적인 서열체제로 하나의 교육적 가치만이 지배하는 것이 문제임.
정부는 빈곤과 양극화의 대책으로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지원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으나 빈곤과 양극화는 노동과 복지의 문제이므로 비정규 노동에 관한 대책을 세워야 함.
○ 바우처제도는 한국에서 빈곤층의 아픔을 핑계로 기득권층의 학교 선택권을 보장하는 결과를 빚을 것임.
학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을 말하나, 다양한 가치지향이 없는 현실에서 서열체제만 만들 것임은 이미 자립형사립고가 입증하고 있음.
○ 한국에서의 사립학교의 비중은 절대적. 대부분은 공립학교보다 교육 환경이 열악하다고 볼 수 있음. 사립학교가 공립학교보다 교육적으로 성공하고 있다는 아무런 근거가 없음.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바우처는 사립학교가 아니라 일반학교에 두루 적용될 수밖에 없음
○ 공공기관과 학교에만 지원한다고 하나 열악한 지역의 학교의 경우부터 시작하여 사교육기관으로 바우처가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어 사교육산업만 부흥시킬 것임
○ 공교육 무상교육체제 완수 이후에나 생각해 볼 문제임
○ 학교 교육 실패의 책임을 학교간 경쟁 강화로 돌리려는 것임
 
4. 예상되는 결과(교육공공성의 파괴)
 
(1) 자사고의 전면화 등 평준화 해체
○ 소수의 선택권 보장은 다수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
○ 평준화를 보완한다는 선택형 학교는 평준화를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킬 것임
 
(2) 사회 공공성의 파괴
○ 학부모의 선택기회 보장을 말하나 추가 비용을 부담하지 못하는 빈곤층의 실패는 결국 부모와 학생의 문제로 돌아감.
○ 교육을 통한 불평등의 대물림 정당화
○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은 학교의 학생 선발권과 동의어 임
 
(3) 전국단위 학업성취도 평가 실시
○ 학교 선택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학교간 정보가 공개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전국단위 학업성취도 평가가 실시되어야 하는 것이 수순임
○ 학교 구조조정, 학교장 책임 경영, 시험에 대비한 경쟁교육의 강화
 
(4) 지역간 불균형 등 소외지역 불평등 심화
○ 이는 미국의 사례에서 이미 입증되었음
○ 전국단위 서열체제, 고등학교간 서열체제
 
(5) 고교등급제 전면화, 학벌사회와 대학서열체제 강화
 
5. 교육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언
 
○ 교육정책은 교육적인 판단에서 입안되어야 한다. 빈곤대책은 빈곤을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며, 교육정책은 공교육이 가지고 있는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어야 한다. 저소득층을 위한 대책은 비정규 노동의 철폐여야 한다.
○ 사교육수요가 확대되는 한 공교육 정상화의 길은 멀기만 하다. 사교육비의 근본원인인 대학입시제도, 대학서열체제, 학벌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즉각 시행해야 한다. 이의 해결없이 다양한 교육은 공허한 염불일 뿐이다.
○ 무상공교육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선택권은 기본을 동일하게 한 이후에 논의해야 한다. 빈곤으로 인한 학업 중단, 밥을 굶은 학생들의 문제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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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대법원의 바우처 위헌 판결문 (No. SC04-2323~25, 06년 1월 5일) 
Pariente, C. J. 작성/ 김지성 옮김

 

 

 

 

First District of Court of Appeal이 주 법령이 위헌이라는 선언하였기 때문에, 이 법정은 플로리다 헌법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상고를 받아들인다. 플로리다 헌법 조항 V, 3(b)(1)절 참조. 우리가 결정할 이슈는 플로리다 주가 플로리다 헌법에 의해 공공 재원을 학생들이 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에 있어서 사립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쓰는 것이 금지되는지 여부이다. 문제가 되는 법은, 현재 플로리다 법(2005) 1002.38절에 명문화된 학교 바우처 시스템을 허용하고 있고 이것은 Opportunity Scholarship Program(OSP)로 알려져 있다. 

  

OSP 아래에서, 주의 어떤 최소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공립학교의 학생은 두 개의 선택사항을 가진다. 첫째는 주 기준을 충족하는 기록을 가진 다른 공립학교로 옮기는 것이다. 둘째 선택사항은 공공기금(public treasury)에서 사립학교의 그 학생의 수업료(tuition)를 지불하는 데 쓰이는 돈을 받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 돈은 그 학생의 교육구(school district)에 갔을 것이다. 우리가 다룰 협의(narrow)의 문제는 이 두 번째 선택 사항이 주로 하여금 “주 경계 안에 거주하는 모든 어린이들의 교육”을 보장(provide)하고 “법률에 의해, 학생들이 높은 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통일적(uniform)이고, 효율적(efficient)이고, 안전(safe)하고, 안정(secure)되고, 그리고 높은 질의 무상 공립학교(free public schools) 시스템”에 대해 보장(provide)할 것을 명령하고(require) 있는 주 헌법의 일부분을 위반하고 있는 지다. 플로리다 헌법 IX조 1(a)절.

   

일반 원칙에서, 법정은 법률 제정의 배경이 되는 경쟁하는 정책 고려들을 재검토(reweigh)할 수 없다. 이 분쟁에서 양 측을 지지하는 공공 정책적 주장은 분명히 잇점을 가지고 있고 주지사의 동의를 얻은 입법부는 이 프로그램의 옹호자들에게 우호적으로 뒤이은 논쟁에서 결론(resolve)지었다. 대부분의 경우에, 이러한 상황은 문제의 결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일하게 자명하게, 공공 정책 이슈에 대한 입법부의 결정(resolution)에 대한 일반적인 존중(deference)은 항상 헌법에 의해 제한된다. 헌법적 제한 범위 내에서 행동함으로써, 시민들의 논쟁의 대상이 되는 이슈를 결론짓는 입법부의 권한은 광범위한 존중을 받는다. 이러한 제한을 넘어설 때, 헌법은 헌법에 반하는 어떠한 입법보다 우선하여야 한다.

   

따라서, 우리 앞에 높인 이슈를 살펴보는데 있어서, 판사들은 강조하건데 다른 기구(branch)에 의해 내려진 공공 정책에 현명한지 또는 현명하지 않은가를 검토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입법부가 조금이라도 더 또는 덜한 정도로 공립학교 시스템을 대신(supplant)하거나 대체(replace)하려고 의도했는지도 검토하지 않는다. 실제로 반대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여기서 문제가 되는 이 법률은 영향을 미치는 학생 수에 있어서 제한됨을 인정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입법의 옳음(soundness)이나 또는 영향을 받는 학생 수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슈는 헌법이 입법부에 어떤 제한을 두는 가다. 우리는 사소한 헌법의 위반과 큰 위반에 구분을 두지 않는다. 두 가지 동일하게 무효(invalid)다. 실제, Founding Fathers들에 의해 그려졌던 정부 시스템에서, 사소한 것들은 큰 것들의 선례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정확하게 사소한 위반을 기피한다.

   

우리의 조사는 헌법의 IX조 1(a)절의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장의 명백한 언어(plain language)로부터 시작한다. 관련된 문구는 다음과 같다: “주의 경계 내에 거주하는 모든 어린이들의 교육에 적절한 보장 조치(adequate provision)를 하는 것은 주(state)의 최고의(paramount) 의무다”  “적절한 보장 조치(adequate provision)”라는 동일한 용어를 써서, IX조 1(a)절은 더 자세히(further) 언급한다.: “적절한 보장 조치는 법률에 의해, 통일적(uniform)이고, 효율적(efficient)이고, 안전(safe)하고, 안정(secure)되고, 그리고 높은 질의 무상 공립학교(free public schools) 시스템에 대한 적절한 보장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아래에서 더 풍부하게 표현된 이유에서, 우리는 OSP가 이 언어를 위배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 프로그램은 공공 재원(public dollars)을 헌법에 규정된 플로리다 어린이들 교육에 대한 주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sole means)인 무상 공립학교와 병립적이며 경쟁적인 별개의 사립 시스템으로 전용(divert)한다. 이러한 전용은 무상 학교에 가용한 돈을 줄일 뿐만 아니라 서로 또는 공공 시스템과 비교하였을 때 “통일적이지(uniform)” 않은 사립학교에 재정을 지원한다. 법이 공립학교들에 부가하는 많은 기준들이 이러한 공적 자금을 받는 사립학교에 적용할 수 없다. 요약하면, OSP를 통해 주(state)는 복수의, 비통일적인 교육 시스템을 육성함으로써 공립학교의 통일적인 시스템에 대한 헌법적 의무를 직접적으로 위반하고 있다. 우리가 OSP가 IX조 1(a)절을 위반함으로써 위헌임을 결정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First District가 판결한 것처럼 OSP가 헌법  I조의 제3절의 “보조 금지(no aid)” 조항을 위반하고 있는지를 다룰 필요가 없음을 발견했다.    

 


PROCEDURAL HISTORY

(역자 주: 하급심에서 논의의 과정을 정리한 부분(원문 5~7쪽 상단)으로 번역하지 않음.)


ANALYSIS(분석)

(분석 도입부(원문 7쪽 전부)는 생략.)

(1) The Opportunity Scholarship Program


(2) Language and History of Florida's Education Articles (플로리다 교육 조항의 언어와 역사)


플로리다 헌법은 1838년의 시초부터 교육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플로리다 헌법(1838) X조항 참조. 시초의 교육 조항은 거의 배타적으로 학교의 이용을 위해 미합중국에 부여한 공유지의 보존(preservation)을 다루고 있는 두 개의 간략한 절만을 포함했다. 1849년, 입법부는 “공민학교(common school)”의 설립을 인정함으로써 학교 시스템을 입법화했다. 플로리다 법률(1848) 229장 참조. 교육 조항은 1861과 1865년 헌법에서 내용상 동일하게 남는다. 플로리다 헌법(1861)의 X조항과 플로리다 헌법(1865) X조함 참조.

1868년, 교육 조항은 상당히 확장되고, 플로리다 헌법(1868)  VIII조 1-8절 참조, 주(state)가 모든 플로리다 어린이들에게 무상 공립학교 시스템을 제공해야하는 첫 의무를 포함한다.:


제1절. 구별과 선호 없이 주 경계에 거주하는 모든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해 충분한 보장 조치(ample provision)를 하는 것이 주의 최상의 의무다.

제2절. 입법부는 공민학교(Common Schools)의 통일적(uniform) 시스템과 대학을 제공하여야 하고, 이상의 자유로운 운영을 보장해야 한다. 이 기관들의 수업은 무상이어야 한다.  


이 법정에서 Coalition for Adequacy & Fairness in School Funding, Inc. 대 Chiles(680 So. 2d400, 405 (Fla. 1996)) 사건에서 설명되었듯이, “이 변경으로 인해, 교육은 ‘주의 최상의 의무’가 되었고 주는 ‘모든 어린이의 교육을 위한 충분한 보장 조치’를 해야 할 의무를 부여 받았다.”

1885년에 교육 조항들은 XII 조항으로 옮겨졌고 “주는 모든 어린이의 교육을 위해 충분한 보장 조치를 해야 함”에 “최상의 의무”를 부과했던 조항은 삭제됐다. 플로리다 헌법(1885) XII조 제1절 참조. XII조의 제1절은 단순히 “입법부는 공공 무상 학교의 통일적인 시스템을 보장하여야 하며 이상의 자유로운(liberal) 운영을 보장해야 한다.”라고 규정했다.

1968년 헌법의 채택에서 아래와 같이 규정한 IX조의 제1절에서 또 다른 교육 조항의 중요한 개정이 보인다.


무상 공립학교의 통일적 시스템과 고등 교육(higher education) 기곤과 인민의 필요가 요구하는 기타 공공 교육 프로그램의 설립·유지 및 운영을 위한  적절한 보장 조치를 법을 통해 해야 한다.

* 플로리다 헌법(1968) IX조 제1절.


“기타 공공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새로운 언급은 “무상 공립학교 또는 고등교육 기관의 일반적 개념 안에 엄격한 의미에서 포함되지 않는 전문대학(junior colleges), 성인 교육 등”을 가리킨다. Bd. of Pub. Instruction 대 State Treasurer, 231 So. 2d 1, 2(플로리다 1970). “적절한 보장 조치(adequate provision)” 문구의 추가의 효과는 Coalition for Adequacy & Fairness 사건에서 분석되었다. 그 사건에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어떤 재정 지원이 “적절한지”에 대해 결정할 권한은 사법부가 아니라 입법부가 가지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680 So. 2d at 406-07 참조.

1998년에 부분적으로 Coalition for Adequacy & Fairness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교육이 “근본적 가치” 이며 “주의 최상의 의무”임을 분명히 하고 주에 의해 제공되는 공립학교 교육의 적절함(adequacy)의 기준(standard)을 제시하기 위해 아래와 같이 IX조의 제1절의 수정안을 헌법 개정 위원회 (Constitutional Revision Commission)가 제안하고 우리 주의 시민들은 승인하였다.:


어린이의 교육은 플로리다 주의 인민의 근본적 가치다. 따라서 주 경계 안에 거주하는 모든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해 적절한 보장 조치를 하는 것은 주의 최상의 임무다. 적절한 보장 초지는 법을 통해 학생들이 높은 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통일적이고, 효율적이고, 안전하고, 안정되고, 그리고 높은 질의 무상 공공 교육 시스템과 고등 교육 기관과 인민의 필요가 요구하는 기타 공공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제공되어야 한다.

* 플로리다 헌법  IX조 1(a)절(강조 추가).


1998년 수정안에 대한 헌법 개정 위원회의 Executive Director와 General Counsel의 코멘트는 제1절을 변경하는 수정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교육을 “근본적 가치”로 함, (2) 어린이의 교육에 적절한 보장 조치를 하는 것을 주의 최상의 의무로 함, 그리고 (3) 공립학교 시스템이 “효율적이고, 안전하고, 안정되고, 그리고 높은 질이” 되는 것을 요구함으로써 “적절한 보장조치”를 정의함.

“근본적 가치”라는 언어는, 헌법에서 새로운, Coalition for Adequacy and Fairness in School Funding, Inc 대 Chiles, 680 So. 2d 400 (Fla. 1996) 사건의 플로리다 대법원의 결정에서 따온 언어로 명문화되었다. 헌법 개정 위원회에 제출된 초기 제안문들은 교육을 “근본적 권리(fundamental rights)”가 되는 형식으로 틀을 잡고 있었다. 주가 모든 개인들이 교육 시스템에 가지는 불만족에 대해 법적 책임(liable)을 지게 될 수도 있다는 위원들의 우려에 대한 반응으로, “근본적 가치”로 대체되었다.

“최상의 의무”라는 언어는 “구분과 선호 없이 주 경계 내에 거주하는 모든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한 충분한 보장 조치를 하는 것이 주의 최상의 의무”라고 규정한 1868년 헌법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여준다. ....

“효율적이고, 안전하고, 안정되고, 그리고 높은 질”이라는 문구의 추가는 1997-98 헌법 개정 위원회에 의해 제1절의 두 번째 문장에서 발견되는 “적절함” 조항을 측정할 수 있는 헌법적 기준을 제시하기 위한 시도를 보여준다. 위원회의 활동은 직접적으로 최근 법정에서 IX조의 제1절이 적절한 교육에 대한 근본적 권리를 창설하였고, 주가 공공 교육에 충분한 자원을 제공하는데 실패하여 위반하였다는 결정을 추구했던 소송에 대한 대응이다.

* William A. Buzzett과 Deborah K. Kearney, Commentary, IX조 제1절, 26A Fla. Stat. Annot. (West Supp. 2006) (원본에서 제1차 변경).


Coalition for Adequacy & Fairness 사건에서 IX조 제1절을 검토함에 있어, 재판부는 헌법상의 언어가 주 입법부에 부과하는 의무의 수준을 규명하기 위해서 주 교육 구절을 분석하는데 네 가지 범주 시스템(four-category system)을 인정하였다.:


제1범주 구절은 단순히 “무상 공립학교” 시스템이 제공되어야 함을 요구한다. 제2범주 구절은 주가 제공해야 할 질의 최소 수준을 부과한다. 제3범주 구절은 “더 강력하고 더 구체적인 교육 의무(education mandate)와 목적 전제(purpose preamble)”를 요구한다. 그리고 제4범주 구절은 교육의 제공에 있어서 주의 최대 의무를 부과한다. Barbara J. Staros, School Finance Litigation in Florida: A Historical Analysis, 23 Stetson L. Rev. 497, 498-99 (1994). 이 등급 체계를 이용해, 1868년 플로리다 교육 구절은 제4범주의 의무 - 교육을 제공할 국가의 최대 의무 -를 입법부에 부과하고 있다 . 덧붙여, 이는 입법부가 교육의 통일적 시스템에 대해 보장 조치할 의무를 부과한다.

* 680 So. 2d at 405 n.7.


1998년 개정이 “최상의 의무” 언어를 복원한 후에, 플로리다 교육 조항은 다시 통일적이고 높은 질의 공공 교육에 대해 보장 조치를 할 주의 최대 의무를 부과하는 제4범주 구절로 구분된다.

공립학교에 의해 제공되는 교육의 질에 대한 지속적인 우려는 우리 주의 시민들이 2002년에 학급 크기(class size)를 지정하는 헌법 수정안을 채택하게 이끌었다. 플로리다 헌법 IX조의 1(a)절 참조.; Advisory Opinion to Attorney Gen. re Florida's Amendment to Reduce Class Size, 816 So. 2d 580, 586 (Fla. 2002) (투표용지에 제안된 수정안을 배치할 것을 승인하는). 같은 선거에서, 우리 주의 시민들은 또한 “높은 질의 유치원 입학 전(pre-kindergarten) 교육 기회”를 주가 제공할 것을 요구하는 헌법 수정안을 승인했다. 플로리다 헌법 IX조의 1(b)-(c)절.; Advisory Opinion to Attorney Gen. re Voluntary Universal Pre-Kindergarten Education, 824 So. 2d 161, 167 (Fla. 2002) (투표용지에 제안된 수정안을 배치할 것을 승인한) 참조.


(3) Constitutionality of the Opportunity Scholarship Program (OSP의 합헌성)


우리의 OSP의 합헌성에 대한 검토에서 “[이 입법]을 제정하는데 입법부의 정치적 동기가, 만약 있다면, 이 재판부의 조사의 적절한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해당 법률을 헌법의 명령에 비추어 판단하는데 제한된다.” School Bd. of Escambia County 대 State, 353 So. 2d 834, 839 (Fla. 1977). 우리는 이 법정으로 불려온 법률은 “합헌성의 추정을 걸치고 있다”는 것을 유념하고 있다, City of Miami 대 McGrath, 824 So 2d 143, 146 (Fla. 2002) (Dep't. of Legal Affairs 대 Sanford-Orlando Kennel Club, Inc., 434 So. 2d 879, 881 (Fla. 1983)을 인용한), 그리고 재판부는 법령에 합헌적 해석(constitutional construction)이 합리적으로 가능한 경우에 합헌적 해석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도 유념하고 있다. Tyne 대 Time Warner Entertainment Co., 901 So. 2d 802, 810 (Fla. 2005)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우 우리는 OSP가 교육을 위한 적절한 보장 조치를 해야 함이 주의 “최상의 의무”이고 이 의무가 이행되는 방법(manner)은 “법을 통해 무상 공립학교의 통일적이고, 효율적이고, 안전하고, 안정되고, 그리고 높은 질의 시스템”이라는 IX조의 1(a)절에서의 명령(mandate)과 직접 불일치(in direct conflict)한다고 결론 내린다.


가. The State's Obligation Under Article IX, Section 1(a) (IX조 1(a)절 아래에서 주의 의무)     

이 재판부는 플로리다의 교육 조항은 입법부에 다음과 같은 헌법적 의무를 부여하고 있음을 오랜 동안 인정해왔다.:


헌법 [IX조 1절의 선조인] XII조 1절은 입법부가 공공 무상 학교의 통일적 시스템과 무상 학교의 이러한 시스템의 자유로운 유지(maintenance)를 위해 보장 조치를 할 의무가 있음을 명령하고 있다. 이것은 공공 무상 학교 시스템은 ....... 주 전역에서 통일적인 운영(operation)되어야 하고 이러한 시스템은 자유롭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원리 위에 설립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 State ex rel. Clark 대 Henderson, 188 So. 351, 352 (Fla. 1939).


현재 Henderson 사건에서 논의된 조항보다 훨씬 강력한 IX조 1(a)절은 공공 교육에 관하여 세 가지 중요한 구성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조항은 (1) “어린이의 교육은 플로리다 주 인민의 근본적인 가치다”라고 선언하며, (2) “주 경계 내에 거주하는 모든 어린이의 교육을 위한 적절한 보장 조치를 제공하는 것이 주의 최상의 의무라고” 규정하여 교육 의무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3) 어떻게 주가 이 교육 의무, 구체적으로, 이행할 것인지를 “적절한 보장 조치는 법을 통해 무상 공립학교의 통일적이고, 효율적이고, 안전하고, 안정적이고, 높은 질의 시스템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강조 추가)

Overton 판사는 Coalition for Adequacy & Fairness 사건에서 그의 동의하는 의견서에서 “이 교육 조항은 우리 헌법에서 교육은 정부 구조 아래에서 자유 사회(free society)에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680 So. 2d at 409. Overton 판사는 또한 아래를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우리 미합중국 헌법의 저자들과 우리의 일반적인 정부 구조 또한 교육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James Madison이 다음처럼 말했듯이:


지식은 영원히 무지를 지배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 자신의 지배자이기를 원하는 국민은 자신들을 지식이 주는 힘으로 무장해야 한다.... 교양 기관(Learned institutions)은 모든 자유 인민들의 선호 대상(favorite objects)이어야 한다. 그것들은(역주: 교양 기관)은 공중의 마음에 빛을 비춰 공중의 자유(public liberty)에 대한 교묘하고 위험한 침략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방위책이 된다.


Robert S. Peck, The Constitution and American Values, in The Blessings of Liberty: Bicentennial Lectures At The National Archives 133 (Robert S. Peck & Ralph S. Pollock eds., 1989). Thomas Jefferson은 이를 더 압축적으로 말한다.: “한 국가가 무지하고 자유롭기를 기대한다면 ... 그 국가는 이전에도 결코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 없을 무엇을 기대하는 것이다.” Thomas Jefferson이 Charles Yancey 대령에게 보내는 편지(Letter from Thomas Jefferson to Colonel Charles Yancey)(1월 6일, 1816년). 더 나아가 미합중국 대법원에서 이제까지 판결된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인 Brown 대 Board of Education, 347 U.S. 483, 493, 74 S.Ct. 686, 691, 98 L.Ed. 873, 880 (1954)에서 재판부는 교육은 “우리 민주 사회에 중요하다. 우리의 가장 기초적인 공공 책무의 수행에서 필수적이다... 이것은 좋은 시민정신(good citizenship)의 바로 그 토대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 같은 글 (원본 변경) 


나. Article IX, Section 1(a): A Mandate With a Restriction (IX조 1(a)절: 제한이 따르는 임무)

OSP를 창설한 1999년 입법에서 입법부는 다음과 같은 IX조 1절에 의해 부과된 공공 교육에 관한 입법부의 고양된 책무를 인정했다.:


(1) 발견과 의도. -- ... 입법부는 1998년 11월 총 선거(general election)에서 플로리다 주의 유권자들이 교육을 주의 최상의 의무로 만들기 위해 플로리다 헌법의 IX조 1절을 수정하였다는 것은 인식한다. 입법부는 주 헌법이 주로 하여금 높은 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 229.0537(1)절, Fla. Stat.(1999).


교육을 다루는 법률 조문들의 번호를 다시 매긴 2002년 입법에서 입법부는 IX조 1(a)절의 언어를 더 가까이 따라가는 언어에서 핵심에서 동일한 발견을 다시 하고 있다.:


입법부는 주 헌법이 주로 하여금 높은 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허용하는 통일적이고, 안전하고, 안정되고, 효율적이고, 높은 질의 시스템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 1002.38(1)절, Fla. Stat.(2005).


이러한 진술들이 헌법적 임무를 충족시킬 의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법적 발견(findings)은 헌법 조문의 중요한 언어를 생략했다. OSP 입법의 1999년 또는 2002년 버전 어디에도 IX조 1(a)절에서 주의 헌법적 의무는 “무상 공립학교의 통일적이고, 효율적이고, 안전하고, 안정되고, 양질의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점에 대한 입법부의 인정(acknowledgment)이 없다. (강조 추가)

입법부의 발견에서 생략된 헌법상의 언어는 결정적(crucial)이다. 이 언어는 입법권에 대한 제한으로 작용한다. Savege 대 Bd. of Pub. Instruction, 133 So. 341, 344 (Fla. 1931) (“우리 주의 헌법은 입법부에 권능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입법권에 대한 제한이다....”) 일반 참조. 헌법적 제한이 없을 때, 입법부의 “합리적으로 행사된 판단은 입법의 제정에서 유일한 제동장치다.” State 대 Bd. of Pub. Instruction, 170 So. 602, 606 (Fla. 1936).

IX조 1(a)절은 입법권에 대한 제한이다, 왜냐하면 이 조항은 어린이의 교육을 제공할 책무를 규정함과 동시에 이 책무의 수행에 대해서 제한을 규정하고 있다. 둘째와 셋째 문장은 개별적이고 관련되지 않은 의무라기보다는 반드시 동일 주제에 관한 것으로(in pari materia) 읽혀야 한다. 법률 해석의 이 원칙은 헌법 조항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헌법 수정안을 해석함에 있어서 진술한 것처럼, 조문은 “일반적 목적과 각 부분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서 하나의 전체로서 해석 되어야 - 각 하위 절, 문장, 그리고 구절은 조화하는 전체를 형성하기 위해 다른 것의 맥락에서 읽혀야” 한다. Dep't of Envtl. Prot. 대 Millender, 666 So. 2d 882, 886 (Fla. 1996); Physicians Healthcare Plans, Inc. 대 Pfeifler, 846 So. 2d 1129, 1134 (Fla. 2003) 역시 참조.

IX조 1(a)절의 두 번째 문장은 “주 경계 내에 거주하는 모든 어린이들의 교육을 적절한 제공을 하는 것이 주의 최상의 의무”라고 규정한다. IX조 1(a)절의 세 번째 문장은 두 번째 문장에서 요구하는 적절한 제공이 “법을 통해 무상 공립학교의 통일적이고, 효율적이고, 안전하고, 안정되고, 높은 질의 시스템”에 제공되어야 한다고 적시(specifying)함으로써 이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제한을 규정한다. (강조 추가) OSP는 주의 자원을 무상 공립학교 시스템이 아닌 다른 수단을 통해 우리 주 안의 어린이들의 교육에 쏟음으로써 이 조항을 위반하고 있다.

해석의 원칙인 “expressio unius est excusio alterius,” 즉 “하나의 표현은 다른 것의 배제를 암시한다,”는 우리를 동일한 결론으로 이끈다. 이 법정은 진술해왔다:


헌법이 한 가지 일을 함에 있어서 방식(manner)을 명백히(expressly) 규정하고 있는 경우, 이는 암시적으로 실질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그 일이 수행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헌법이 글로써 다른 방식으로 한 가지 일을 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더라도 그 일이 수행되어야 할 방식을 지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그것을 행하는 다른 방식에 대한 금지다. 따라서 헌법이 하나의 행동을 하는 방식을 지시한 때에는 지시된 방식은 배타적이다, 그리고 헌법 조항의 목적을 무력화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입법부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다.

* Weinberger 대 Bd. of Pub. Instruction, 112 So. 253, 256 (Fla. 1927) (인용 생략); S & J Transp., Inc. 대 Gordon 역시 참조, 176 So. 2d 69, 71 (Fla. 1965) (“권능을 행사하는 한 가지 방법 또는 수단이 헌법에 지시된 경우에 이것은 다른 방식으로 행사하는 것을 배제한다.”라고 규정한).


우리는 IX조 1(a)절이 “무상 공립학교 시스템이 주가 플로리다 어린이들에게 무상 교육을 제공하는 방식이라고 지정하고” 있고 “사립학교에 다니기 위한 학비를 지불하는 것을 통해 무상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공적으로 재정 지원되는 교육을 제공하는데 있어서 헌법에 지시된 것과는 ‘실질적으로 다른 방식’이다”라는 점에서 제1심 법정(trial court)에 동의한다. Holmes 대 Bush, No. CV99-3370 at 10 (2nd Cir. Ct. order filed March 14, 2000)(인용 생략).


※ 역자 주: 원문 23쪽 마지막 문단부터 25쪽 위 문단이 끝나는 부분까지 번역 생략. 이 부분은 “in pari materia”와 “exprssio unius est exclusio alterius" 원칙이 이 사건에 적용되어야 함을 설명하는 부분. 이어지는 부분은 25쪽 첫 문단임.


부모에게는 분명히 자신들의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를 결정할 권한이 있지만, IX조 1(a)절은 검찰 총장(Attorney General)이 주장하듯이 플로리다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주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의 “바닥(floor)”을 설정하지 않고 있다. 이 조항은 주의 의무가 플로리다 어린이들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임을 명령하고 있고, 이 의무를 충족시키는 방식을 무상 공공 교육의 통일적이고, 높은 질의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으로 지정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추가적인 동등한 대안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 Diversion of Funds from the Public Schools (공립학교로부터 재정의 전용)

헌법은 주가 공공 자금을 공립학교 시스템의 사립 대안을 재정 지원하는데 쓰는 것을 금지한다. OSP가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구체적으로 OSP는 공공 교육에 쓰도록 표시된 세금을 동일한 서비스 - 기본 주요 교육 -를 제공하는 사립학교에 이전한다. 따라서 피고의 주장과는 반대로, OSP는 공공 교육 시스템을 보완하지 않는다. 대신, OSP는 그렇지 않았다면 헌법에 명시된 입법부의 어린이의 교육에 대한 적절한 제공을 하는 배타적 방법인 무상 공립학교 시스템에 제공되었을 재원을 전용한다.


※ 역자 주: 26쪽 두 번째 문단과 세 번째 문단은 번역 생략. 27쪽에 이어지는 세 번째 문단의 마지막 문장을 다음에 번역


...... 공공 재원의 사립학교로의 체계적인 전용은 작은 범위나 큰 범위나 IX조 1(a)절과 호환되지 않는다.


라. Exemption from Public School Uniformity(공립학교 통일성에서 제외)

무상 공공교육 시스템이 플로리다 어린이의 교육을 제공해야할 임무에 부합하는 수단임을 적시하고 있는데 더해, IX조 1(a)절은 또한 이러한 시스템이 “통일적”이어야함을 요구하고 있다. OSP는 공공교육 시스템의 대안으로서 사립학교가 통일성 기준을 충족하도록 보장하는 어떠한 법적 장치도 갖고 있지 않다. 실제로 교육부로 하여금 사립학교의 데이터베이스를 설치하고 유지할 것을 지시하는 조항에서 입법부는 명백히 이 조항이 “사적 교육 기관을 규제, 조정, 승인 또는 인증할” 의도가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1002.42(2)(h)절, Fla. Stat.(2005). 이러한 감독의 공백은 교육부 내의 ‘홈스쿨링 및 사립학교국’(Office of Private Schools and Home Education Programs)을 창설하나 이 국이 “기관 또는 서비스를 제공 받는 학생들에 대해 어떤 권한도 가지지 않도록” 하고 있는 1001.21절에서도 또한 분명하다. 1001.21(1)절 Fla. Stat. (2005).

더 나아가 OSP에 참가하는 학생의 부모는 반드시 그 학생이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모든 주 단위의 평가를 치르도록 보장해야 하지만, 1002.38(5)(c)절, 사립학교의 교과과정과 교사들은 공립학교에서 강제되는 동일한 기준들에 해당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학사 학위를 가진 교사들만이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지만 사립학교는 학사 학위가 없어도 만일 이들이 “최소 3년간 공립 또는 사립학교에서 가르친 경험이 있거나 또는 가르치는 주제에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자격을 줄 수 있는 특별한 기술, 지식 또는 전문성이 있다면” 채용이 가능하다. 1002.38(4)(g)절, Fla. Stat. (2005).

덧붙여 공립학교 교사는 반드시 주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1002.38(4)(g)절, Fla. Stat. (2005) 참조. ......


※ 역자 주: 29쪽 첫 문단 생략. 교사의 인증과 선별(screening) 등에 대한 규정 설명


교육과정과 관련하여 공공교육 시스템의 수업은 “주 교육 위원회(State Board of Education)에 의해 채택되고 주가 학교에 대해 책임을 지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의 윤곽을 제시하는” “Sunshine State Standards”에 기초한다. 1003.41절, Fla. Stat. (2005). 공립학교는 수많은 다양한 주제와 더불어 모든 기초 주제를 가르쳐야 한다. 이러한 주제 중에는 독립 선언문의 내용, 미합중국 헌법의 핵심 사항들, 시민 정부의 요소들, 플로리다 주 역사, 미국 흑인(African-American) 역사, 홀로코스트(Holocaust)의 역사, 그리고 미합중국에 대한 라틴-아메리카계(Hispanic) 주민과 여성의 기여가 있다. 1003.42(2)(a)절, Fla. Stat. (2005) 참조. 그런데 프로그램에 참가 자격이 있는 사립학교는 이러한 주제들 중 어느 것도 가르칠 의무가 없다.

“학업 측면에서 부모에게 책임을 지는” 것에 더해서 OSP에 참가하는 사립학교는 단지 “적절한 비공립학교 승인 기구에 의해 채택된 교육과정 기준들”에만 제약을 받는다. 1002.38(4)(f)절, Fla. Stat. (2005).


이 모든 측면에서, OSP가 재정 지원하는 사립학교의 대안 시스템은 IX조 1(a)절에서의 명령과 조화를 이루는 통일적이라고 간주될 수 없다. 


마. Other Provisions of Article IX (IX조의 다른 조항들)

공공 재원을 교육의 대안 시스템을 지원하는데 주가 사용하는 것이 IX조 1(a)절을 위반하고 있다는 우리의 결심을 더 강화시키는 것은 IX조 6절에서 밝히고 있는 State School Fund에서 나온 돈의 사용에 대한 제한 부분이다. 이 조항은 State School Fund에서 발생한 수익과 이자는 “단지 무상 공립학교를 지원하고 유지하는 데에만” 쓰일 수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 IX조 6절, Fla. Const.7)

더 나아가 IX조를 전체로서 읽었을 때, 우리는 1(a)절의 언어와 2002년에 채택된 1(b)절의 언어 사이의 분명한 차이를 알 수 있다.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플로리다의 모든 4세 어린이는 주로부터 높은 질의 유치원 취학 전(pre-kindergarten) 교육을 자발적이고, 높은 질의, 무상의 그리고 전문적으로 인정되는 기준에 따라 제공되는 조기 유아기 개발과 교육 프로그램의 형태로 제공 받아야 한다. 조기 유아기 개발과 교육 프로그램은 언어와 인지 능력 그리고 정서적, 사회적, 규범적 그리고 도덕적 능력의 개발에 있어서 연령에 적합한 진척(progress)을 이루기 위해 기초 기능(skill)과 입법부가 적절하다고 결정할 수 있는 다른 기능들의 교육을 통해 개별 어린이의 능력을 발견하고 향상시키도록 디자인된 조직된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이 조항은 유치원 취학전 교육 기회가 반드시 무상이고 전문적으로 인정되는 기준에 따라 제공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두드러지게 빠진 것은 주가 기회를 제공하는데 있어서 특정한 수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의 교육을 무상 공립학교를 통해 적절하게 제공하도록 한 1(a)절 하에서 입법부의 의무와는 대조적으로 1(b)절 아래에서 입법부는 유치원 취학전 교육을 제공하는데 있어서 원하는 어떤 방식으로도 제공이 가능하다. 이는 적용 가능한 다른 헌법 조항들과 일관성을 가진다.


※ 역자 주: 이어지는 문단 생략. 원문 32쪽 중간 부분임.


마. Other Programs Unaffected (영향을 받지 않는 다른 프로그램들)


결 론


요약하면, IX조 1(a)절은 주가 플로리다 어린이의 교육을 적절히 제공해야 할 임무를 충족시키는 방식 - 공공교육 시스템을 통해 - 을 규정하고 있다. OSP는 이 헌법 조항을 위반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프로그램은 몇몇 어린이들이 공립학교 시스템의 통일성 의무를 지지 않는 사립학교의 대안 체계를 통해 공공적으로 재정 지원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재원의 전용은 공공 교육을 위한 공적 재원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공공 재원을 공립학교의 “통일성” 의무를 지지 않는 사립학교 대안 교육을 제공하는데 쓰고 있다. 따라서 두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OSP는 IX조 1(a)절에서 밝힌 명령을 위반하고 있다.

  

우리는 부모들이 자신들이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방식대로 자녀들을 교육시킬 기본적 권리를 문제시하지 않는다. 우리는 바우처의 옹호자들이 학생들이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는 견해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음을 인지한다. 우리의 결정은 부모가 실패한 학교(failing school)의 대안으로 공공 또는 사립학교에 의존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사립학교 선택 사항이 공적 재정 지원에 의존할 때 선택은 제한된다. 이 제한은 주의 책임이 주의 재정을 사립학교 교육을 재정 지원하는데 쓰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밝힌 IX조 1(a)절의 헌법적 명령에 의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근자에 우리가 설명하였듯이 “헌법에 존재하는 것은 항상 감정보다 우선해야 한다. 판사로서 우리의 맹세는 이 원칙이 우리의 북극성(역자 주: 지도 목표)일 것과 오로지 이 하나일 것을 요구한다.” Bush 대 Schiavo, 885 So. 2d 321, 336 (Fla. 2004).

  

우리가 1002.38절이 플로리다 헌법 IX조 1(a)절을 위반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에 우리는 Holmes I 사건에서 First District의 결정을 거부한다. 우리는 Holmes II사건에서 1002.38절이 위헌이라고 발견한 First District의 결정을 확인한다. 그러나 우리가 다루기를 거부한 이슈인 OSP가 플로리다 헌법의 I조 3절의 “보조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First District의 결정을 승인도 거부도 하지 않는다. 이번 학년도에 바우처를 받고 있는 학생들의 교육을 혼란시키지 않기 위해, 우리의 결정은 이번 학년도가 끝나는 시점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WELLS, ANSTEAD, LEWIS, and QUINCE, concur.

BELL, J., Dissents with an opinion, in which CANTERO, J., concurs.

 

4. 대안 논의 
※ 단기적 대안과 장기적 대안을 분리할 필요가 있음.
단기적 대안은 사설학원과 사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과잉투자, 사립학교의 높은 비율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며 장기적으로 국공립 중심의 질 높은 공공교육의 실현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임. 
□ 품질높은 공립학교의 확대와 강화
□ 사립의 공공성 강화
□ 교육의 민주성, 생산성, 사회통합성 강화
□ 교육은 공공재로서 하층과 중산층 이상의 계층에도 무료제공하는 것을 철학적 원칙으로 강조할 필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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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9 03:00 2009/06/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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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l, David. 2003. Public Services Work! Information, Insights and Ideas for Our Future. PSI. 「공공서비스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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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5 21:26
 
명색이 행정학을 전공하고 있다면서 PSI와 데이비드 홀(David Hall)이 쓰고 번역까지 된 「공공서비스가 답이다: 우리의 미래를 위한 정보, 통찰력과 아이디어」라는 글을 이번에 보게 되었다. 이것도 공공성과 공공서비스에 대해 문헌을 살피다가 우연하게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런 글을 제대로 접하게 되더라도 공공서비스나 사유화(privatization) 등에 대해 나름대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번역은 참 매끄럽게 되어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다. 번안 용어 중에서 능력재, 내부보조로 되어 있는 가치재(merit goods)와 교차보조(cross-subsidy) 등은 바로잡았다. 각주에 나와 있는 문헌 중에서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것만 따로 옮겼으니 참조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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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l, David. 2003. Public Services Work! Information, Insights and Ideas for Our Future. Public Services International. 장영배ㆍ김석ㆍ최용혁 옮김. 「공공서비스가 답이다: 우리의 미래를 위한 정보, 통찰력과 아이디어」.
 
"Public Services Work! Information, Insights and Ideas for Our Future"
David Hall, Public Services International, September 2003
 
Summary: This booklet examines public services by looking at their past, present and future. It charts the actual development of public services and the effect they have had on social cohesion and economic growth, the political structures and activity which creates and sustains them and the current problems and future opportunities, including the opportunities arising from globalisation. This historical framework helps identify factors which may be more important for the future of public services than the experiences and fashionable solutions of the last 20 years. The booklet includes an historical account of how public services have been developed over time to meet the changing needs of communities. It examines the role public services in building communities at local and national level, and the wide range of services that are provided publicly in different times and places. It further examines how public services make a positive contribution to economic growth and how the financing of public services requires redistribution through taxation and cross-subsidy. The study then looks at the political structures of public services, and focuses on four aspects: capacity, central and local governments, public participation, and the role of trade unions. The study concludes by considering problems that make it difficult for public services in many countries to deliver their objectives. It discusses the impact of introducing the private sector, including the question of relative efficiency, and the particular relevance of labour in public services. It explores future prospects for public services, and the potential contributions of internationalisation.
Site where article was first published: http://www.world-ps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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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서비스가 답이다!
- 우리의 미래를 위한 정보, 통찰력과 아이디어 -

 
데이비드 홀(David Hall) 지음 d.j.hall@gre.ac.uk
국제공공노련 연구소(PSIRU: Public Services International Research Unit)
그리니치대학(University of Greenwich), 런던, 영국
 
장영배/김석/최용혁 옮김
국제공공노련 한국가맹조직협의회(Public Services International - Korea Council)
 
국제공공노련(Public Services International)
[2003년 9월 발행]
 
목 차
「국제공공노련」(PSI: Public Services International)에 대하여   3
감사의 말씀         3
머리말          4
제1장 서론과 요약        6
제2장 공동체와 연대: 공공서비스의 역사적 발전    7
 2.1 공공서비스의 역사       7
 2.2 사회복지와 소득배분      13
 2.3 정치적 통일체의 건설: 국가, 탈식민화, 지방자치체  15
 2.4 공공서비스와 경제       20
 2.5 과세, 재분배, 차입(借入)      23
제3장 통치, 책임과 참여       28
 3.1 국가의 능력       29
 3.2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30
 3.3 정치활동과 시민참여      32
 3.4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의 역할     37
제4장 공공서비스의 문제점, 개혁 및 미래     39
 4.1 변화와 문제에 대한 대응      39
 4.2 민간부문을 객관적으로 파악한다     46
 4.3 노동        55
 4.4 공공서비스의 미래       62
제5장 결론         67
 
「국제공공노련」(PSI: Public Services International)에 대하여
국제공공노련(PSI)은 149개국에 627 가맹조직을 갖고 있는 국제노동조합 연맹이며,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세계의 2,000만 노동자들을 대표한다. 국제공공노련은 ‘질 높은 공공서비스’(QPS: quality public services)를 확보하기 위하여 장기간에 걸쳐 적극적인 운동을 펼치기로 다짐을 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국제공공노련은 성공적인 역사적 사례들을 이용하는 한편, 진정한 개혁을 통하여 실패들과 씨름해야할 필요성을 인정한다. PSI를 포함한 세계의 노동조합들은 질 높은 공공서비스가 세계의 민중들과 공동체들에게 기회와 정의를 제공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라는 견해를 공유하는 모든 사람들과 제휴하여 함께 운동할 것을 염원하고 있다.
 
감사의 말씀
이 책은 에마누엘 로비나(Emanuele Lobina)와 케이트 베일리스(Bayliss)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참여하였던 앞서의 연구에 의존하고 있다. 나는 웬디 케어드(Wendy Caird), 로빈 델라모테(Robin Delamotte), 팀 케슬러(Tim Kessler), 제인 레쓰브리지(Jane Lethbridge), 마이크 왜그호온(Mike Waghorne)이 이 책에 대해 제기한 논평, 제안, 격려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그들의 제안 덕분에 이 책은 상당히 개선되었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잘못과 결함들은 오로지 글쓴이의 책임이다.
데이비드 홀, PSIRU
 
머리말
국제공공연맹(PSI: Public Services International)은 ‘질 높은 공공서비스‘(Quality Public Services)를 지지하는 전세계적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국제공공노련과 그 가맹조직들은 공동체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공공서비스를 건설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이것은 더 많은 더 좋은 서비스를 요구하는 캠페인이거나 위협받고 있는 서비스를 방어하는 것을 뜻한다. 많은 경우 이것은 기존의 서비스를 개혁하고 건설하기 위해 활동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것은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여 질 높은 서비스가 제공되도록 지역사회와 적극적으로 함께 활동하는 것을 뜻한다.
 
『공공서비스가 답이다!』는 질 높은 공공서비스 확보 캠페인의 일환으로 국제 공공노련이 위촉하였으며, 공평과 발전에 관한 논의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세계화의 결과가 더욱 널리 불공평하게 느껴지고 있기에 더욱 시급하다.
 
『공공서비스가 답이다!』는 튼튼한 사회를 만드는데 있어서 질 높은 공공서비스의 역할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선진국과 발전도상국의 사례연구와 경험적 정보에 기초하고 있으며, 공식자료, 학계의 자료 그리고 비공식자료들을 사용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질 높은 공공서비스의 토대가 되는 원칙들 - 공동체와 연대에 대한 다짐과 약속, 책임과 민주주의의 필요성 - 을 확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무엇이 왜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증명된 사례들을 제공한다. 공공서비스의 위대한 역사를 깊이 파고들면서 이 책은 성공과 실패의 사례들을 검토하고 개혁에 대한 증명된 생각들과 새로운 생각들을 제안한다. 이 책은 오늘날 선진국과 개도국의 공공서비스가 직면한 쟁점들을 확인하고, 미래를 위한 통찰력, 생각, 선택들을 제시한다.
 
세계는 공공서비스가 왜 중요한가에 대한 위대한 오랜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토대가 되는 핵심전제이다. 보건의료나 교육과 같은 서비스들은 지난 100년 또는 200년에 걸쳐 지구상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발전되었다. 이러한 서비스체계의 효과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제공되고 연구되며, 또한 오랜 세월에 걸쳐 대중들과 정치가들의 논쟁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이 책의 밑바탕을 이룬다.
 
21세기가 전개됨에 따라, 유엔의 “새 천년 발전목표”(Millenium Development Goals)는 현재 유행하고 있는 시장위주 경제정책 하에서는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세계가 극단적 빈곤과 굶주림의 근절, 보편적 초등교육, 보건의 개선과 유아사망률 저하, 공평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룩하려면, 질 높은 공공서비스를 토대로 하는 적극적 계획이 있어야 한다.
 
1980년대 초 이후, 신자유주의는 토론과 의사결정을 지배해왔다. 대기업들의 영향을 받는 정치지도자들과 세계의 부자나라들의 통제를 받는 국제기구들을 포함하는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옹호자들은 사유화와 시장력(市場力: market forces)을 발전의 만병통치약으로 제시한다. 종종 세계은행과 같은 다자간 대출기구들이 공격적으로 밀어붙이는 이러한 정책들에 의해, 공공서비스는 사고 파는 상품이 되었으며 시민들은 고객으로 바뀌었다. 주민들이 강력한 공공서비스의 핵심수혜자인 선진국들은 정책혁신이라는 미명 아래 이제 개도국들에게 똑같은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사유화의 옹호자들은 공공서비스의 개혁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해결책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학자들, 유엔개발프로그램(UNDP)과 같은 국제기구들, 비정부기구들과 노동조합들의 수많은 비판은 이러한 근본적인 생각들의 위험, 그리고 왜 이러한 생각들이 계속하여 실패하는가를 강조해왔다. 그렇게 엄청난 실망과 수많은 어처구니없는 파국들을 겪은 후에, 왜 사유화가 강력한 제도적 틀을 갖춘 부유한 국가들에서도 - 지배구조가 취약한 가난한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 성공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에 대한 자세하고 충분한 분석들이 이제 나와 있다.
 
공공서비스의 약속보다 사유화의 문제가 더 잘 이해되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세계 인구 대부분의 삶이 나날이 질 높은 공공서비스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하는 일은 “잘 되지 않는다”라는 인식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사실인 지역이나 국가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며, 이 책은 시민과 정부가 공공서비스의 질과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하여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가를 제안하고 있다.
 
『공공서비스가 답이다!』는 국제공공노련(PSI)이 공평과 발전에 관한 논쟁에 기여하기 위하여 위촉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세계화의 결과가 더 널리, 그리고 불공평하게 드러나고 있기에 더욱 시급하다. 이 책은 질적 수준이 높은 공공서비스가 튼튼한 경제를 지원하고 강화하며 성장과 발전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강력한 증거를 보여준다. 공동체와 연대, 책임과 민주주의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는 질 높은 공공서비스는 유엔의 “새 천년 발전목표”에 나타나있는 목적들을 성취하고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스 엥겔버츠(Hans Engelberts) 국제공공노련 사무총장 www.world-ps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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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서론과 요약
 
이 책은 공공서비스의 과거, 현재, 미래를 살펴봄으로써 공공서비스를 검토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공공서비스의 발전과정, 공공서비스가 사회통합과 경제성장에 미친 영향, 공공서비스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정치구조, 세계화에 의한 기회를 포함한 미래의 기회와 현재의 문제들이다. 이러한 역사적 시각과 틀은 지난 20년 동안의 경험과 유행했던 해결책들보다 공공서비스의 미래에 더 중요할지도 모를 요인들을 찾아내는데 도움을 준다.
 
제2장은 공공서비스가 공동체의 변화하는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역사적으로 간략히 설명한다. 여기에서는 도로와 국방을 포함한 공공서비스의 초기 형태, 그리고 삶의 질을 높이고 동시에 경제발전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시스템이 어떻게 발전하였는가를 설명한다. 제2장은 복지국가의 역할, 지방과 국가차원의 공동체 건설과 공공서비스의 역할, 그리고 경제학자들의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 개념을 넘어서는, 여러 시대와 지역에서 공공적으로 제공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들을 고찰한다. 더 나아가 제2장에서는 공공서비스가 경제성장에 어떻게 긍정적으로 공헌하는가, 그리고 공공서비스의 재정확충이 부자와 가난한 자에게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치는, 조세제도와 내부보조(cross-subsidy)를 통한 재분배를 어떻게 필요로 하는가를 조사할 것이다.
 
제3장은 공공서비스의 정치구조를 살펴보며, 4개의 측면에 주목한다. 첫째, 규제의 역할이 무엇이든, 정부가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능력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다룬다. 둘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상대적 역할, 국가와 시대에 따른 이 역할들의 변화, 그리고 이것이 체제이행기에 있는 과거의 공산권국가들의 공공서비스에 영향을 미치는 독특한 방식들을 살펴본다. 셋째, 공공서비스를 창출하고 공공서비스의 책임성과 대응능력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정치활동과 시민참여의 중요성을 주목한다. 넷째, 이 과정에서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의 역할을 논의한다.
 
제4장은 공공서비스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본다. 여기에서는 많은 나라에서 공공서비스가 자신의 원래의 목적을 이룩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 내부적․외부적 문제들을 검토하며, 상대적 효율성의 문제를 포함한 민간부문 도입의 영향, 그리고 공공서비스에 있어서 노동의 특별한 관련성(relevance)을 논의한다. 끝으로, 공공서비스의 미래전망, 그리고 국제화의 잠재적 기여를 검토한다. 
 
결론에서 이 책은 공공서비스의 발전과 방향설정에 있어서 민주적 정치활동의 역사적 중요성, 중앙정부기구와 지방정부기구들이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해야 할 필요성, 미래의 발전에 있어서 지방에서 국제에 이르는 모든 수준의 효과적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책의 모든 장에서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현재와 역사적 경험에서 이끌어낸 사례연구들을 이용하여 주요 논점들을 설명하고 있다. 
 
제5장 결론
 
이 소책자의 주요 결론은, 공공서비스가 사회와 경제의 발전에 있어서 핵심적으로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공공서비스가 적극적인 시민참여에 의존하고 있는 정치적 선택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의 역할을 억제하려 하거나 공공부문을 현실적 또는 잠재적 시장으로 취급하는 것은 공공서비스에 의해 성취된 사회적․국민적 통합은 약화시킨다. 기타 몇 가지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아래에 지적하고자 한다. 
 
선택과 개혁
국가 및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정부는 공공서비스의 형식과 형태에 관하여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문제들에 대해서는 현지사정에 적합하게 공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은행들의 부대조건이나 지역적․지구적 무역규칙이 아니라 민주적인 메커니즘이 무능하거나 파멸적인 정책들을 억제하는 핵심 수단이 되어야 한다.
 
사회적 연대, 시민권, TAP(투명성, 책임, 참여)
시장으로서의 공공서비스의 잠재력이 아니라, 공공서비스의 보편적인 상호연대 기능을 우선시하여야 한다. 이것은 재분배적인 과세정책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투명성․책임․참여(TAP)의 원칙은 참여형 정치적 관리의 모델을 통하여 널리 채택되고 실행될 가치가 있다. 정치활동은 질 높은 공공서비스를 확보하는데 필요한 적극적 요소이다.
 
지구적 연대
국제적인 공급과 지원은 미래의 공공서비스에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공공-공공 파트너십(PUPs)과 같은 더 많은 연대 메커니즘, 상호협력적인 국제공공서비스정책, 그리고 지구적인 공공자금조달 메커니즘의 가능성 등을 모두 탐구할 필요가 있다. 
 
제2장 공동체와 연대: 공공서비스의 역사적 발전
 
공공서비스는 문명화된 인간의 삶의 일상적인 일부이다. 공공서비스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조직된다. 공공서비스는 국가의 핵심기능이고 정치적 논쟁의 핵심쟁점이다. 공공서비스는 시장이 실패하였거나 잠정적으로 보조적인 지원이 필요할 때 공백을 메우기 위한 기술적 활동으로 발전된 것이 아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공공서비스가 공동체, 국가, 경제의 발전에 있어서 얼마나 핵심적 요소였는가, 정치제도들이 공공서비스를 어떻게 발전시켰고 제공하였는가, 그리고 공공서비스를 위한 재정확보가 조세제도를 통한 정치적으로 논쟁적인 재분배에 어떻게 기초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제2장에서는 다음의 사항들을 설명하려고 한다.
- 공공서비스가 어떻게 발전하였는가에 대한 개요
- 사회복지발전의 토대가 되는 공동체와 상호부조의 원칙
- 국가와 공동체의 건설에 있어서 공공서비스의 역할과 서비스의 다양성
- 경제발전에 대한 공공서비스의 기여
- 공공서비스의 자금조달 시스템
 
2.1 공공서비스의 역사
 
공공서비스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오랜 세월, 100년에 걸쳐 발전해왔다. 공공서비스는 역사상 존재했던 대부분의 사회에서 발견된다. 고대 중국의 국가는 관개(灌漑), 운하, 비상공공곡물창고를 관리했고, 남아메리카의 잉카 국가는 도로와 수돗물 공급을 조직했으며, 유럽의 로마제국은 극장과 연금을 제공하였다. 보건의료와 교육은 일반적으로 가장 주요한 두 개의 공공서비스로 간주되고 있으나, 국가에 따라서는 은행업, 음악, 식품보조금, 항공사, 아침에 깨우는 전화와 감옥, 산림관리와 라디오 주파수에 이르는 거의 모든 서비스가 여전히 공공서비스에 포함될 수 있다.
 
중세유럽에서는 국가가 국방, 공공질서, 재판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도로, 다리, 항만관리와 등대도 발전되었으며, 배수 및 물 담당부서가 만들어져 농업을 위한 공동서비스를 관리하였다. 빈민구제, 병원, 학교교육이 자선사업으로 행해졌다. 나중에 우편서비스가 ‘왕립’사업으로 설립되었다. 이 대부분은 세금을 징수하고 이 일을 할 사람들을 고용하여 행해졌다. 18세기와 19세기에는 운수와 공익사업의 새로운 하부구조 서비스가 민간에 의해서 시작되었으나 나중에 공공기관이 접수하여 더욱 확대하였다. 이러한 서비스에는 운하, 철도, 가스, 수도, 전기가 포함된다. 18세기 동안, 이러한 네트워크와 서비스는 허가권을 부여받은 민간기업들이 종종 제공하였으며, 이 민간기업들은 이 사업들을 운영하기 위한 자금조달을 위하여 요금과 과징금을 징수할 수 있는 보호받는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이 시스템은 독점업체들의 부패와 과도한 착취 때문에 프랑스에서 붕괴되었는데, 이것은 프랑스 혁명의 한 원인이기도 하였다. 영국에서도 독점의 특권남용에 따라 공공기관에 의한 소유와 관리․운영 추세가 증가하게 되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 공공서비스의 ‘구체제’(ancien regime)에 해당하는 과거의 민간운영체제의 비효율성, 비용과 부패 때문에 과거의 체제는 공적 소유와 공적 서비스제공에 의해서 거의 완전히 대체되었다. 19세기 말 이러한 변화의 주요 메커니즘은 지방자치체였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방자치체는 자신이 민간운영자보다 더 효과적․효율적으로 통제․관리할 수 있고 노동자들에게 더 좋은 고용조건을 제공할 수 있으며 지역주민에게 더 큰 이득을 줄 수 있다는 근거 하에, 기존의 공익사업과 수송시스템을 구입하여 새로운 공익사업과 수송시스템을 세웠다. 또한 지방자치체는 돈을 빌려 자신들만의 시스템을 발전시킬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였다. 공적으로 소유․운영되는 지자체 서비스의 이러한 발전은 ‘자치체 사회주의’(municipal socialism) (또는 가스․수도 사회주의)로 알려졌다. 물론 국가 차원에서도 유사한 발전이 있었다. 글래드스토운과 디즈레일리의 보수당정부와 자유당정부는 전신시스템을 국유화했고, 밸포어와 애스퀴트의 보수당정부와 자유당정부는 새로운 전화시스템을 국유화했다.
 
서비스의 공적 소유와 제공의 이러한 확대는 20세기 전반부까지 계속되었다. 공적 의무교육은 유럽, 아메리카, 일본에서 확대되었고, 공공보건의료제도가 발전되었으며, 새로운 서비스들이 계속 추가되었다. 예를 들면, 비행기는 공항을 필요로 하였고, 민간부문은 기술발전에 따라 증가하는 필요한 투자를 제공할 능력이 없었다. 그리하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항공관제업무를 포함하는 공항개발을 공공서비스로 발전시켰다. “일반적 상업비행에 필요한 모든 공항의 소유와 운영은 공적 영역에 남겨져야 했다... 고객을 모으기 위해 충분히 낮은 요금을 부과하였기에 영국의 거의 모든 초기의 공항들은 필연적으로 항공운수에 대한 보조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폐허가 되어 다시 발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산업들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고 국가도 마찬가지였다. 냉전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과 서유럽의 이러한 구조전환과정에서 국가는 압도적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사회서비스는 개혁되었고 보편적 서비스로 제공되었다. 영국에서는 중등교육 수업료가 폐지되어 15세까지의 모든 아동들에게 무상의무교육이 제공되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요람에서 무덤까지” 재정적 안정을 제공하기 위하여 사회보장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철도, 가스, 전기가 국유화되었고, 광산, 그리고 철강산업과 같은 제조업 일부도 국유화되었다. (이미 국가소유였던 영국의 체신공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와 최초의 컴퓨터 개발에 중요한 연구개발 기여를 하였던 전화사업을 여전히 포함하고 있었다.)
 
1947년 영국에서 국민건강보험(NHS: National Health Service)이 만들어진 것은 보건의료시스템을 변혁시켰다. 이 개혁이전에는, 1912년에 도입된 기초국민건강보험에 더하여 비영리조직, 종교집단, 노동조합 등의 다양한 실체들이 운영하는 잡다한 건강보험제도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병원들도 자선단체, 종교집단, 국가가 운영하는 혼합된 형태로 발전하였으며, 일반개업의는 자유계약(freelance) 직업이었다.
 
영국 국민건강보험(NHS)의 핵심원칙은 정부의 조세수입과 국민보험을 재원으로 하여 국민 모두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보편적 서비스였다. 그 이전에 존재하던 병원들은 국유화되었고, 그곳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공무원이 되었다. 그리고 일반개업의들과 약사들은 여전히 자영업으로 남아있었으나, 국가가 보수를 지불하였다. 영국 국민건강보험의 분명한 업적으로는 보건의료를 전체 국민으로 확대한 것, 전체 국민 압도적 대다수의 지속적인 정치적 지지, 그리고 재정관리에 따른 관료제를 최소화하는 시스템을 꼽을 수 있다.
 
그 결과, 영국의 국민건강보험은 평등주의적 복지국가 서비스의 한 보기일 뿐 아니라 효율성의 본보기이기도 하다. 그것은 민간임의보험제도를 사용하고 있는 다른 선진국들의 보건의료보다 상당히 저렴하며, 처음부터 그렇게 인식되었다. 1950년대 후반 미국의 한 연구자는 효율성을 영국의 국민건강보험의 핵심적 업적으로 꼽고 있다. “국유화된 석탄산업과 마찬가지로, 영국의 국민건강보험의 주된 목적은 현저히 비능률적이고 부적절한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을 이룩하기 위한 주된 수단은 조직합리화와 중앙계획과 지역계획의 활용이었다...”
 
국제적 차원이 이미 중요해지고 있었다. 서유럽에서는 대부분의 재건설복구사업이 마샬플랜(Marshal Plan)에 의한 미국의 보조금과 융자에 의해 자금지원을 받았다. (전후복구를 위한 미국의 원래의 계획은 유럽, 특히 독일의 산업복구를 영원히 저지하는 것이었으나, 이 계획은 마샬플랜으로 바뀌었다.) 마샬계획에 의한 융자는 부대조건을 달지 않았다. 결국 유럽연합을 창출하게 되는 일련의 연계관계가 지속적으로 형성됨으로써 국제협력이 무르익어 가자, 사회적 파트너십 원칙은 중심적인 것으로 자리 잡았고, 그리하여 노동자들의 보호, 그리고 유럽연합의 정치과정에서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수 십 년에 걸쳐서 식민시대를 청산하고 독립을 획득하였고, 개도국의 정부는 새로운 국가의 건설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주도적 역할은 제국주의 국가에 본거지를 둔 민간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던 산업의 국유화, 그리고 새로운 국가의 공공서비스의 개발을 통하여 수행되었다. 그 후 50년 동안 개도국들은 선진국에서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던 보건의료와 교육 서비스의 진보를 이룩하였다. 여기에서 가장 큰 진보를 이룩한 나라들은 보편적으로 접근가능하고 정부재정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국영시스템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었다.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국영서비스들은 개도국으로서는 평균이상의 지출을 할 수 있었고 전염성 질병, 영양섭취, 모성보호와 태아보호를 목표로 한 정책을 펼 수 있었다. 이 시스템 덕택에 임신관리, 가정방문, 면역주사 접종 확대에 의해 산모와 어린이의 사망률이 크게 줄었다.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병원망(네트워크)의 지원을 받았고, 의사들은 일정 기간 동안 정부 보건의료서비스에서 일해야 했다. 보건의료에서 큰 진보를 이룩한 나라들에서는 여성들의 교육 수준도 훨씬 높았는데, 이것은 어린이들의 더 나은 영양섭취 수준 및 낮은 사망률과 연관되어 있다.
 
일반적인 통념과는 반대로, 빈곤한 국가들은 공공서비스의 제공, 특히 보건의료와 기초교육을 제공함으로써 대다수 주민들의 삶의 질을 크게 바꿀 수 있다. 이러한 서비스들이 개도국 평균이상의 자원을 할당받았던 코스타리카, 스리랑카, 인도의 케랄라(Kerala) 주, 보츠와나, 모리셔스, 짐바브웨의 주민들은 나미비아, 브라질, 남아프리카, 가봉 등과 같이 일인당 국민소득은 더 높았지만 이런 서비스들이 덜 제공되었던 상대적으로 더 부유한 국가들의 주민들보다 훨씬 긴 평균수명을 누렸다. 이러한 서비스들은 빈곤한 국가들에서도 제공할 수 있다. 이 서비스들은 노동집약적이고, 노동비용은 그러한 국가들에서 낮기 때문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가 지적하듯이, “빈곤한 국가는 보건의료와 교육에 지출할 돈이 더 적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국가는 부유한 국가들에서는 훨씬 더 큰비용이 들어 갈 똑같은 서비스에 더 적은 돈을 필요로 한다.”
 
경제정책이 국가지출을 억제하기 시작하자 1980년대에 경기후퇴가 나타났다. 초등학교의 취학아동수는 몇 몇 국가에서 정체하거나 감소하기도 하였다. 사하라 사막 남부의 아프리카에서는 취학률이 1980년의 77.5%에서 1990년의 68.3%로 떨어졌다. 그러나 강력한 공공서비스는 개도국에서 여전히 가능하다. 수업료의 폐지는 몇몇 아프리카 국가에서 교육을 확대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사례1] 참조), 쿠바 보건의료제도의 성과는 빈곤한 국가에서도 무엇이 가능한가를 증명한다([사례2] 참조).
 
[사례1] 우간다와 말라위의 수업료 폐지
교육비 징수는 가난한 가정의 많은 아이들이 교육받지 못하게 한다. 국가들이 수업료를 폐지하면, 학교에 등록하는 학생수가 그에 상응하여 늘어나며, 이에 따라 문맹률은 낮아지고 전반적 교육수준은 상승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국가들이 학교의 수업료를 폐지한 것은 공공교육시스템을 크게 확대시켰다. 이와 똑같은 효과를 우리는 최근에는 사하라 사막 남부지역의 두 국가, 우간다와 말라위에서 볼 수 있다.
 
1997년 우간다는 “보편적 초등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초등학교 수업료를 폐지하였다.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는 교육시스템 수입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수업료 폐지에 따른 국가의 재정적 충격도 상당하였다. 세계은행의 한 보고서의 결론에 따르면, “보편적 초등교육 프로그램이 도입되기 이전에도 교육시설은 부족함이 없었으나, 보편적 초등교육 프로그램은 취학아동수를 극적으로 증가시켰고, 이것은 학교교육의 직․간접적 비용이 빈곤가정 아이들의 초등교육 취학 확대에 중대한 장애물이었음을 뜻한다. 특히 이것은 여학생에게 해당된다. 여학생의 취학률은 보편적 초등교육 프로그램의 도입 이후에 크게 (경우에 따라서는 2배 이상) 증가하였다...성(gender), 소득, 지역과 연관된 취학기회의 불평등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중등교육의 수업료는 폐지되지 않았고, 학생수 증가에 상응하는 교사 증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래를 보라)
 
말라위에서는 1994년에 초등학교 수업료와 제복이 폐지되었으며, 이에 따라 취학률은 83%에서 98.7%로 증가하였다. 우간다와 마찬가지로 말라위에서도 중등교육에는 여전히 수업료와 제복이 존재하여, 중등교육 취학률은 72%이다.
 
[사례2] 가장 부유한 국가들에 비해 손색없는 쿠바의 보건지표
쿠바에서는 보건의료가 정부의 최우선과제의 하나였다. 쿠바의 보건의료체제는 능률적이고, 부패하지 않았으며, 개업의의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통하여 뛰어난 기본의료를 제공한다. 상대적으로 낮은 GDP, 그리고 의약품을 포함한 무역재제조치에도 불구하고, 쿠바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낮은 유아사망률과 임산부사망률, 인구대비 가장 높은 의사 비율, 그리고 가장 광범위한 공공보건의료서비스 제공을 자랑한다. 평균수명과 유아사망률을 포함한 핵심 보건지표에서 쿠바는 훨씬 더 부유한 선진국들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

 
2.2 사회복지와 소득배분
 
현대 공공서비스의 핵심적 특징은 공유된 사회적 목표에 근거한, 지역사회들을 넘어서는 상호보조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가장 강력한 현대복지국가모델은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에서 볼 수 있는 북유럽 모델이다. 이 모델의 특징으로는,  사회보장, 사회서비스와 보건의료서비스, 교육, 주택, 고용 등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사회정책, 완전고용에 대한 강조와 능동적 노동시장정책, 모든 시민이 자신의 고용 여부에 관계없이 기초적인 사회보장혜택과 서비스를 누릴 권리를 갖고 있으며 여기에 더하여 소득에 연계한 혜택도 함께 누리게 하는 보편주의를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서비스들을 위한 재원은 주로 조세를 통해서 마련된다. "비싼 사용자 요금도 없으며, 부유층에서 빈곤층으로의 상당한 이전소득을 지원하기 위해, 국민총생산의 비율로 보았을 때 세율이 높고 지출도 높다. 공무원이 전체 고용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낮은 빈곤율, 평등한 소득배분, 사회적 남녀평등(gender equality)의 진보에 의해서 측정하면 이 시스템은 성공적이다. 끝으로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은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다.“
 
1990년대에 스웨덴과 핀란드의 경제는 심각한 문제들에 직면하여, 실업이 증가하였고 정부예산에 대한 압력도 커져 차입(借入)을 제한하기도 하였다. 이 국가들의 복지시스템은 부담을 공평하게 분산함으로써 이 국가들이 경제위기에 대처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소득불평등의 측면에서 측정한 경제적 복지의 동향을 살펴보면, 이 두 국가에서 경제적 불황이 놀랍게도 경제적 복지에 거의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이 나타난다. 경기침체가 가장 극심했던 수년 동안에도 소득불평등은 전체적으로 증가하지 않았다. 이것은 경제적 재난과 실업이 국민전체에 공평하게 분배되었다는 것, 그리고 특히 소득이전의 형태로 이루어진 복지국가의 보상효과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부조형(扶助型) 복지제도는 북유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본의 경우 상대적으로 평등한 지역적 소득배분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것은 시장에 맡겨두면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서 일본이 고용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완전고용 추구는 사회정책의 일부이다. 지역격차는 상대적으로 적다. 일본의 현(縣)들의 1/3은 주민 1인당 소득이 국민 1인당 소득평균치의 5%이내에 있는 반면, 미국의 경우 1/6의 주(州)들만이 이 범위에 있다. 마찬가지로, 일본은 수준과 배분에 있어서 인상적인 사회적 지표를 자랑한다. 일본 국민의 대부분은 좋은 교육, 보건의료와 기본적 하부구조를 이용할 수 있다. 예컨대 일본의 현(縣)들의 98%는 국가평균의 5%이내의 고등학교 취학률을 자랑하고 있으나, 미국의 경우 이 수치는 84%이다. 또한 일본의 공공지출 우선순위는 다른 나라와 다르다. 일본과 미국의 공공지출은 각각 국민총생산(GDP)의 약 35%에 이르나, 일본은 미국(국민총생산의 3%)에 비해 국방에 상대적으로 지출이 적은 반면(국민총생산의 0.9%), 공공투자에 미국의 2-3배 많은 지출을 하고 있다.
 
사회적 목표는 사회서비스뿐 아니라 일련의 폭넓은 공공서비스에 대한 정책의 토대가 될 수 있다. 6개 개발도상국들의 최근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한 국제연구기관의 검토보고서는 사회적 목표를 마땅히 우선할 필요가 있다고 확고한 결론을 맺고 있다([사례3] 참조).(주. WRI, Power politics: Equity and environment in electricity reform, ed. by Navroz K. Dubash (August 2002), <http://pdf.wri.org/powerpolitics_execsumm.pdf>)
  
[사례3] 지속가능한 사회적 에너지 개발
2002년에 발간된 세계자원연구소(WRI: World Resources Institute)의 보고서는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가나, 인도,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6개 국가의 최근 경험을 살펴보았다. 이 보고서는 전력부문의 개혁과정이 어떻게 지속가능한 발전의 촉진과 사회적․환경적 목표의 달성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할 수 있는가를 검토하였다.
 
이 보고서는 조사대상 6개국 거의 모두에서 전력개혁의 목적과 과정에 큰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재정적 건전성에 집착함으로써, 전력부문의 개혁은 공공이익에 관련된 광범위한 관심사들을 배제하였다. 이 조사에서 우리는 전력부문 개혁에서 위태로워진 사회적 환경적 문제들을 검토하였다. 우리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이 문제들은 적절하게 다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미래의 선택을 제한하는 기술적․제도적․재정적 결정을 통하여 우리는 사회적․환경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진로에 감금될 수도 있다.” 이 보고서는 “전력부문개혁의 진보적 정책”이라 부르는 4개의 명쾌한 권고를 제시하고 있다.
 
1. 전력부문에서 이룩해야 할 목적들을 중심으로 개혁의 틀을 짜라. 재정적 문제에 의해서 주도되는 제도적 구조개혁에 매몰되는 것은 공공이익이라는 의제를 수용할 수 없다.
2. 재정을 중심으로 개혁목표들의 틀을 짜는 것이 아니라 개혁목표들을 중심으로 재정구조의 틀을 짜라...자금조달 메커니즘의 혁신과 결부된 개혁프로그램의 정치적 정당성이 단기적 이익의 시각에 개혁을 짜 맞추는 것보다 더 장래성 있는 진로가 될 수 있다.
3. 건전한 지배구조를 갖춘 개혁과정을 지원하라. 개방적인 개혁 틀의 형성은 논쟁과 토론의 튼튼한 과정의 지원을 받을 때 비로소 공공관심사를 반영할 것이다.
4, 공공이익 의제에 관심을 모을 수 있는 정치적 전략을 수립하라. 공공이익의 옹호자들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지하는 정치적 연합을 강화하고 편협한 당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적 연합에 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
 
2.3 정치적 통일체의 건설: 국가, 탈식민화, 지방자치체
 
공공서비스와 사회프로그램의 개발은 모든 수준의 공동체와 정치적 통일체를 창출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국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정체성을 창출하는 하나의 중요한 방법이다. 많은 국가들의 경우 식민지 지배로부터의 독립에 뒤이어 공공서비스의 확대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독립 이후 처음 20년 동안 사하라사막 남부의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보건의료 하부구조가 강화되었고 주민들의 건강이 상당히 개선되었다. 캐나다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회프로그램들이 국민으로서의 일체감을 창출하는데 강력한 역할을 하였다. 공공서비스 축소와 사회적 부조 삭감의 하나의 결과는 이러한 국민의 연대감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다.(주. Santosh Mehrotra and Stephen W. Jarrett, "Improving basic health service delivery in low-income countries: 'voice' to the poor", in Social Science & Medicine, vol. 54, issue 11 (June 2002), pp.1685-1690) 
 
이것은 도시들도 마찬가지이다. 19세기 유럽의 도시들에서는 자치체의 서비스가 발달됨에 따라 자치체로서의 도시에 대한 시민적 자부심이 발전하였으며, 이러한 자부심은 비엔나에서 맨체스터에 이르는 유럽 전역의 시청에서 볼 수 있다. 동일한 효과를 오늘날에도 볼 수 있다. 인도의 아메다바드(Ahmedabad) 시(市)당국이 1999년에 지방채(地方債)를 발행하였을 때([사례5] 참조), 시민들은 이 도시가 인도에서 지방채를 발행한 최초의 도시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따라서 공공서비스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구들이 존재하지 않거나 상실하게 되면 그것은 그만큼 파괴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콜롬비아의 칼리(Cali) 시(市)는 성공적인 시영 공익기업 Emcali를 발전시켰다. 이 기업은 지역에너지서비스와 환경서비스를 운영하였으며 국제신용등급을 획득할 정도로 재무구조가 튼튼하였다. Emcali를 사유화하려는 정부의 제안에 대하여 지역사회는 국내외에서 강력한 반대캠페인을 벌였다. 그러는 사이에, 이 지역의 빈민들은 공공서비스의 축소가 아니라 더 많은 공공서비스를 필요로 하였다. 칼리 시의 빈곤하고 폭력사태가 자주 일어나는 주변화된 인근지역들의 청년집단에 대한 조사연구의 결론에 따르면, “이 인근지역들에는 사회적 유대감이 존재하였지만 이것이 공공서비스의 제도적 기구의 부재를 메워 줄 수 없었다.”
 
[사례4] 영국 버밍엄(Birmingham) 시의 공공서비스의 발달
영국의 주요 공업도시의 하나인 버밍엄市는 산업화 시기인 19세기와 20세기 동안 아주 다양한 공공서비스를 발전시켰다. 버밍엄은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의 수단으로서 자치체 서비스를 발전시킨 것으로 국내외에 유명해졌다. 공공서비스의 발달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아래의 간략한 역사는 1838년 버밍엄 시의 탄생부터 1938년 버밍엄 공항의 개장에 이르는 기간 동안 버밍엄 시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발전을 보여준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년에 출간된 『우리의 버밍엄』(Our Birmingham)이라는 소책자에서 발췌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버밍엄과 우리 후손들의 버밍엄‘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소책자의 목표는 젊은이들이 버밍엄 시의 과거의 성장, “그리고 특히 버밍엄 시의 미래의 발전”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자치체로서 버밍엄의 성장
1939년 시영공항의 개항
1930년  슬럼가 일소운동 시작
1930년  복지사업이 시 관할이 됨
1919년  대규모 시영주택계획의 시작
1919년  시영교향악단의 결성
1916년  시영저축은행의 개시
1910년  버밍엄 시가 영국 최초로 도시계획을 개시
1908년  모성보호와 아동복지 서비스 시작
1904년  웰시(Welsh) 수도사업 개시
1904년  시영전차 조업 개시
1898년  전력공급이 시 관할이 됨
1890년  최초의 시영주택
1876년  수도가 시 관할이 됨
1875년  시가 소방사업을 개시
1975년  개선계획과 함께 가로청소공사가 발족
1875년  가스공급이 시의 관할이 됨
1874년  최초의 시영병원(열병만을 다룸)
1872년  최초의 보건의료관 임명
1870년  교육위원회 발족
1867년  미술관의 개설
1861년  공립도서관의 개설
1856년  애덜리(Adderley) 공원 개설
1851년  개선법(Improvement Act)은 과거의 지방단체의 권한을 시의회로   통합하여, 도로, 하수시설, 전등, 쓰레기처리, 공공건물, 시장, 목욕탕  에 관한 모든 관할권을 시의회 에 부여함
1850년  윈슨 그린(Winson Green)에 최초의 시영구호원 개설
1842년  경찰 창설
1838년  자치체헌장에 의해 선거에 의한 시의회가 탄생
 
“자치체선거에 투표함으로써 당신은 시의회의 선거에 참가하는 것이 됩니다. 시의회는 여러 위원회들을 통하여 시를 통치하고 당신을 위한 다양한 많은 서비스를 운영합니다. 이 서비스들 중에는 재정적 자립을 이루고 있는 것도 있지만, 시당국이 부과하는 재산세로부터 징수한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것도 있습니다. 위의 역사에서 나타나듯이, 시의 업무범위는 1838년 시의회가 만들어진 이후 크게 증대되었습니다. 개선법이 통과된 1851년 이후 시의 업무범위는 급속하게 성장하였고, 또 1870년대 조셉 체임벌린(Joseph Chamberlain) 시대에도 다시 급성장하였습니다” 자료: 『우리의 버밍엄』(Our Birmingham) (1943년)
 
공공서비스는 버밍엄 시의 변화하는 필요와 변화하는 사회구조에 상응하여 발전하였다. 버밍엄 시의회 자체가 민주주의적 토대였으며, 시의회는 나중에 법과 질서의 기능(경찰), 문화기능과 여가활용기능(미술관, 도서관, 오케스트라, 공원), 공공보건의료(보호시설/수용시설, 산후조리서비스), 공익사업(가스, 수도, 전기), 수송(전차, 공항), 교육, 주택, 도시계획, 소득지원, 소방, 은행 등의 공공서비스 기능을 떠맡았다. 이 서비스 기능들 중에는 민간부문이 상업적 토대에서 시작하였으나 버밍엄 도시 전체에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실패했던 기능들, 즉 수도, 공중위생, 가스, 그리고 나중에는 전기도 포함되었다.

 
서비스의 다양성
거의 모든 국가에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들은 일정한 범주의 서비스들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는 보건의료․교육․어떤 형태의 사회보장 등의 사회서비스, 수도․에너지․통신(우편, 전신전화, 도로, 철도, 항공을 포함)의 공익사업, 경찰․사법․국방의 국가안전보장 기능이 포함된다. 그러나 공공서비스의 전체규모와 범위는 주어진 시점의 해당국가의 서로 다른 경제적․정치적 이해관계와 우선순위를 반영하는 정치적 논쟁거리일 수밖에 없다.
 
공공서비스와 국가활동은 아주 다양한 활동을 포괄할 수 있다. 여기에는 문화에 대한 지출이 포함되며, 예를 들면 공익방송, 그리고 오페라나 고전음악 또는 서부 아프리카의 댄스뮤직과 같은 예술축제와 미술관, 토착음악에 대한 지원이 여기에 해당된다. 현재 성공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말리, 세네갈, 기니, 자이레 출신의 뮤직밴드들은 모두 1970년대 토착댄스뮤직에 대한 국가의 능동적인 후원에 힘입어 성장했다. “그 당시에 사람들은 음악을 만들 돈을 갖고 있지 않았다. 악기들은 비쌌으며 대중들은 레코드를 사거나 콘서트에 갈 돈이 없었다. 그것은 국가가 지원해야 했다.”
 
무엇이 적절한 공공서비스부문인가를 결정하는 일반적 원칙은 없다. 여러 시대와 지역에 따라 국가서비스는 은행서비스, 산림관리, 유제품(乳製品)의 마케팅, 약품 제조를 포함하기도 한다. 영국의 경우, 몇몇 대폿집들(pubs)은 1917년부터 1970년대 이를 때까지 국가가 운영하였다. 모로코에서는 세계은행관리가 그 활동을 중단하라고 주장할 때까지 정부기구가 병아리를 양계업자들에게 제공하였다. 이 활동의 중단에 의해 발생한 공백을 시장이 채워주지 못했으며, 그 결과 양계업자들의 생계가 타격을 받았다. 정부지출의 우선순위도 바뀔 수 있다. 어떤 국가에서는 국방지출이 상대적으로 많은 반면(미국은 국민총생산의 3.2%, 이란은 국민총생산의 3.1%), 다른 나라에서는 국방지출이 적다(캐나다는 국민총생산의 1.1%, 소말리아는 국민총생산의 0.9%).
 
국가안보를 우선시하는 것과 같이, 정치적 우익들이 전통적으로 지지하는 국가기능들이 있다. 이것은 유럽연합 협약과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에 반영되어 있으며, 이 협약과 규정에 의하면 국가안보에 대한 고려는 이 기구들의 자유화와 경쟁 요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시각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 바뀐다. 영국의 전통적인 보수정당들이 21세기 초의 미국 공화당을 소름끼치게 할 조치들을 지지하거나 심지어 발의하였던 시대도 있었다. 예를 들면, 영국의 디즈레일리 보수당 정부에 의한 전신(電信)체계의 국유화 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화된 보건의료제도에 대한 보수당의 지지가 바로 그것이다.
 
어떤 서비스들, 예컨대 재판제도는 사회집단들에 따라 서로 다르게 파악한다. 기업가들은 재산권과 계약상 의무가 법정을 통해서 유지되는 것에 가장 관심이 많은 반면, 다른 사회집단들은 빈민들에게도 정의가 베풀어지는가에 더 큰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며, 이 경우 능력개발, 그리고 사법이외의 재판절차가 더 크게 강조된다. 보통 다른 분야에서의 국가지출을 제한하려고 노력하는 산업계이지만, 산업계도 장거리 도로망의 건설과 유지를 위한 국가지출은 전반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공공재(公共財), 가치재(價値財, merit goods), 그리고 정치적 선택
공공서비스의 제공은 경제적 규칙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과정에 의해서도 규정된다. 예를 들면 보건의료와 교육과 같은 서비스들은 시장을 통해서 제공될 수 있으나, 대부분의 사회들은 공공서비스를 통해서 보건의료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택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나은 사회적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정들은 시대와 국가에 따라 달라지는 정치적 선택을 포함하며, 국민의 토론을 거치게 된다.
 
경제학자들은 공공재의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 개념은 시장이 제공하지 못하는 서비스들의 관점에서 정의된다. 그러나 이 정의는 쓸모가 제한되어 있다. 이 정의는 시장이 정상적인 것이고 공공재는 시장실패라는 일탈적 사례로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서비스의 조직은 정상적인 것이며, 또한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한다. 경제학자들의 공공재 정의에 따르면 국방이 명백한 유일한 공공재이다. 이 정의는 교육, 보건의료와 같은 핵심서비스들을 포함하지 않으며, 이 서비스들을 ‘불순한 공공재’ 또는 ‘가치재’로 명명하여, 교육, 보건의료를 공공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일반적 인식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의 공공서비스는 정치적 가치뿐 아니라 기술적․경제적 이유 때문에 바뀌게 된다. 대중목욕탕의 제공은 시대에 따라 여러 나라에서 중요한 공중보건기능을 맡아왔으나, 대부분의 가정들이 목욕시설들을 갖고 있는 국가나 도시에서는 그 중요성이 떨어졌다. 다른 서비스들은 기술발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예컨대 도서관들은 전통적인 도서대출 기능뿐 아니라 인터넷 서비스나 음악CD를 제공하기도 한다.
 
2.4 공공서비스와 경제
 
경제를 지원한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관점에 따르면, 공공서비스에 대한 지출은 경제의 생산적 부문들에 대한 부담이며, 따라서 국가의 역할은 최소화되어야 하고 이 공공서비스들은 가능한 한 민간부문에 의해서 제공되어야 한다. 역설적인 사실은, 이것이 시장경제학의 지적 원조로 보통 간주되고 있는 아담 스미스의 관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공공교육이 정말로 수지맞는 일이라고 보았다. “공공교육은 아주 적은 비용으로도, 거의 모든 국민에 대하여 교육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들을 학습해야 할 필요성을 촉진시키고 격려하며 강제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공공서비스가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경제의 유용한 자산이 된다고 본 아담 스미스가 옳았다. 산업화시기에 일본의 경제성장에 기여한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일본의 낮은 문맹률이었다(19세기의 유럽보다 낮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팽창기간 동안 선진국들은 일반적으로 공공지출을 통한 국가의 서비스 제공에 의존하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루어진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독립이후의 성장도 공공서비스의 확대에 의하여 유지되었다. 또한 낮은 문맹률은 경제성장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동아시아 경제의 성장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아주 높은 수준의 교육과 보건의료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국가는 개발도상국의 많은 성공적인 성장 사례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하였다. (주. 장하준, 『국가의 역할』, 부키, 2006)
 
공공서비스가 성장에 기여하는 바는 이제 많은 경제학자들이 검토하고 있으며, 이 경제학자들은 특히 사회하부구조에 대한 공공자본투자를 고려할 때 (주. Chris Tsoukis and Nigel J. Miller, "Public services and endogenous growth", Journal of Policy Modeling, vol. 25, issue 3, (April 2003), pp.297-307) 공공서비스가 전체경제의 생산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몇 몇 정부 정책들은 당위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낮은 수준으로 공공지출을 하고 있다. 축적자본이 적은 개발도상국들은 성장을 창출하고 ‘빈곤의 덫’을 회피하기 위해 공공지출이 필요하다. 공공투자의 부족을 메우려는 민간기업들의 노력은 공공부문투자보다 더 비용이 들고 덜 효과적이다. (주. Ritva Reinikka, Jakob Svensson, "Coping with poor public capital", Journal of Development Economics, vol. 69, issue 1, (2002), pp. 51-69. http://www.sciencedirect.com/science/journal/03043878) 그리고 산업혁신과 개발은 정치가들의 적극적인 개입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주. Judith Tendler, Transforming Local Economies: Lessons from the Northeast Brazilian Experience, presented at the OECD/State of Ceara State Government Meeting on Foreign Direct Investment, (Fortaleza: 12 December, 2002). http://www.oecd.org/dataoecd/43/37/2489902.pdf
 
에너지 분야에서 민간부문을 활용한 경험을 세계적으로 검토한 결과, 핵심적 투자들을 민간부문에 맡기는 것의 효과에 대하여 의구심이 강화되고 있다. 이 검토결과에 의하면, “장기적 발전시각에서 보면, 개발도상국에서 가스와 전력부문을 전면적으로 사유화하는 것은 심각한 위험을 수반하며, 따라서 광범위한 사유화에 경도된 경직된 접근법보다는 유연한 정책적 접근이 더 낫다.” (주. Alberto Gabriele, "Policy alternatives in reforming energy utilities in developing countries", Energy Policy 32(11), 2004, 1319-1337. http://dx.doi.org/10.1016/S0301-4215(03)00099-5)
 
개인 소비와의 연관관계도 재발견되고 있다. 사회하부구조 서비스의 제공과 가격구조는 소비자 지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에 대한 한 연구에 의하면, TV, 냉장고, 세탁기에 대한 수요는 더 많은 가정들이 수도와 전기에 연결된다면 급속히 상승할 것이며(충분히 예측할 수 있음), 또한 전기세의 10% 인하는 이 제품들에 대한 수요에 극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즉 소득 10% 상승의 6배에 해당하는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연구는 세계은행과 같은 기구들이 옹호하고 있는 비용회수정책의 정반대가 되는 단순한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즉 국가는 제조업 제품들에 대한 수요 촉진의 한 수단으로서 전기요금을 인하해야 한다.
 
사다리 걷어차기
1980년대 이후의 정치적․경제적 정설에 따르면, 국가는 국민경제의 발전에서 최소한의 역할을 해야 하며,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시장에 맡기고 무역이나 민간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한 핵심 메커니즘은 사유화와 무역자유화였다. 이 두 정책은 모든 부문에 걸쳐 전반적으로 적용되고 있으나 공공서비스에 대하여 특히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정책들은 오늘날 선진국이 된 국가들의 경제에서 국가가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는 역사적 경험을 무시한다.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벨기에, 일본, 한국, 타이완은 자신의 산업들이 다른 나라들을 '따라잡도록' 진흥하기 위해 개입주의적인 산업․무역․기술정책들을 사용하였다. 예를 들면,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까지 주요 관세장벽을 갖고 있었다. 개발도상국들은 식민지를 벗어난 1960-1980년대에 이와 똑같은 정책들을 사용하였을 때 현재의 신자유주의 정책 하에서보다 훨씬 더 빨리 성장하였다. 이러한 사유화와 무역자유화정책들은 선진국에 근거지를 둔 다국적기업들이 자신들이 현재의 위치에 오르는데 사용하였던 국가개입의 ‘사다리를 걷어참’으로써 다국적기업들에 의한 지배를 보호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것에 대한 구체적 사례는 전기와 가스 부문에 대하여 유럽연합이 자유화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유럽연합의 법률지침들은 수직적으로 통합된 공공부문독점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 독점을 분할하여 전력․가스생산자들과 거래업자들이 고객을 놓고 경쟁하게 한다. 이 법률지침들은 중부유럽과 동부유럽의 체제이행국가들(transition countries)에게 적용되고 있으며, 이 국가들은 유럽연합 가입조건으로 유럽연합의 법률들을 채택해야 한다. 따라서 이 국가들은 유럽연합의 지침들에 의하여 자신들의 산업을 분할할 수밖에 없으며, 현재 그렇게 분할된 산업들을 팔고 싶은 강력한 동기를 갖게 된다. 어떤 경우든 구매자들은 서유럽의 안정된 에너지기업들이지만, 이들 자신은 종종 국가소유의 보호받는 독점체로서 현재의 규모까지 성장해왔다. 체제이행국가들이 자유화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전력산업을 분할하는 것은 서유럽기업에 대한 잠재적 경쟁자들을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유럽전역에 걸친 집중된 과점체계가 만들어졌다. 독일기업인 E.ON과 RWE, 그리고 프랑스의 (국유) EdF, GdF, Tractebel(Suez 그룹의 일부)는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에서 배전(配電) 및 발전을 맡게 되었다.
 
2.5 과세, 재분배, 차입(借入)
 
세금의 배분과 교차보조(cross-subsidy)
공공서비스의 재원으로는 어떤 형태의 과세, 보험료 또는 제공되는 자원에 대하여 지불되는 요금 등이 있다. 이러한 세금에 의해 지원되는 자금이 없으면, 빈곤층은 친구와 가족의 네트워크에서 제공되는 금전적 보조와 같이 소득재분배 효과가 적은 사회적 연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아이보리코스트에서 이미 관찰된 바 있다.(주. Marcellin Ayé, François Champagne and André-Pierre Contandriopoulos, "Economic role of solidarity and social capital in accessing modern health care services in the Ivory Coast", Social Science and Medicine, vol. 55, no. 11, (December 2002), pp. 1929-1946)
 
교차보조(cross-subsidy)는 공공서비스의 발전과정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하며, 이것이 없으면, 빈곤층들은 스스로 지불할 수 없는 서비스들을 결코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이 교차보조는 - 세금을 통하든 아니면 부유층이 서비스에 더 많이 지불하게 하는 가격체계를 통해서든 - 다른 사람들이 제공해야 한다. 때때로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교차보조가 공공부문에 전형적인 낭비적 관행이며, 사유화의 장점의 하나가 바로 이 교차보조의 제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민간수도업체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판자촌의 빈민들에게 수도서비스를 연결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중산층 소비자들에게 특별‘연대요금’을 부과하고, 시 당국이 수도관을 설치하며 빈민들 스스로가 무임으로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영국에서 철도를 운영하는 민간기업들도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다. Vivendi 기업의 철도 자회사인 Connex는 철도서비스를 계속 운영하는 조건으로 2002년 12월 정부로부터 5,800만 파운드를 더 요구하여 받아내는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보조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업의 계약은 형편없는 서비스 실적 때문에 8개월 후에 종료되었다.
 
과세는 공공서비스의 핵심적인 자금조달방법이다. 과세는 국가가 사람들과 기업체들의 소득, 지출 또는 거래로부터 돈을 징수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는 정치적 정당성에 의존한다. 과세의 효과는 본질적으로 소득재분배를 지향한다. 그리하여 부유층의 지출력은 줄어드는 반면 그 대신 대중 전반에 대한 공공서비스 또는 빈곤층의 소득이 증가한다. 세금을 낼 가능성이 가장 큰 집단들은 종종 허점을 이용하거나 면제나 정상참작을 위한 정치적 로비를 함으로써 자신들이 지불하는 세금을 줄이려 한다. 공공서비스의 또 하나의 주요 재원은 국민전체의 위험공동관리(risk pooling)에 의한 보험제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소득재분배 효과가 가장 적은 자금조달 방식은 서비스의 사용자들에게 요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특히 이것이 서비스제공의 모든 비용을 회수하기 위하여 설계되었을 경우 이것은 상업적 서비스제공자들이 부과하는 시장가격과 아주 가깝게 된다. 요금을 부과할 경우에도 교차보조의 요소를 제도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 예컨대, 사용자는 매일 자신들이 사용하는 최초의 50리터의 물에 대해서는 요금을 거의 안내거나 전혀 안 내고 그 이상의 사용량에 대해서는 요금을 더 낼 수도 있다.
 
포괄적 연대의 효율성
중앙정부 차원의 소득세는 잠재적 기여자의 가장 큰 집합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소득재분배에 가장 효율적이다. 지방차원의 과세는 동일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소득만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으며, 이 경우 지역에 따라서는 자신의 서비스를 도저히 금전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욕구는 많으나 돈은 모자라는) 빈곤층이 아주 많이 살 수 있다. [국제적 차원의 소득세 징수는 토빈(Tobin)세 지지자들이 옹호하는 것처럼 소득재분배에 더욱 효율적일 것이다.]
 
연대의 토대를 넓히는 것의 장점에는, 보험을 기반으로 하는 제도에서 위험공동관리(risk pooling)가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포함된다. 한국에서는 2000년 7월 국민건강보험의 틀이 바뀌었는데, 350여 개의 건강보험조합들이 하나의 건강보험조합으로 통합되었다. 다수의 건강보험조합들의 존재는 불공평, 재정적 불안과 정부보조금에의 의존, 농촌의 자영업자들의 배제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사실, 이제 새로운 시스템은 과거에 따르던 다원주의적 독일 모델에서 벗어나 영국과 비슷한 단일 국민건강보험 제도에 좀 더 가까워졌다. 이 개혁은 진보적인 시민사회집단의 지지를 받는 새로운 대통령의 선출이라는 특정한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일어났다.
 
세금 징수
정부가 안정적이고 믿을 만한 수입을 확보하려면, 공평하고 정직하며 회피할 수 없는 세금 징수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효율적인 세금징수 시스템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이것은 공공서비스 제공에 있어서 국가별 편차와 서비스 편익을 통한 소득재분배의 크기를 설명하는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었다.
 
공공부문에 이러한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은 근대 유럽국가들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중요하였다.
프랑스와 유럽의 다른 국가들의 ‘구체제’(ancien regime)하에서는 부유층과 문벌이 좋은 집단들은 임의적인 면제에 의해서 납세를 회피하였으며, 세금징수는 중개자들의 수중에 맡겨져 있었다. 그 결과, 국가의 소득은 불안정하였고, 세금부담은 불공평하게 나누어졌다. 따라서 세금징수를 국가통제 하에 두는 것은 중대한 진보였다. “너무 많은 것이 세금징수자들의 사적인 주도권에 맡겨져 있었다...이러한 기생적 중개자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던 영국의 개혁은 꾸준히 신중하게 이루어졌다...최초의 조치는 관세와 소비세를 국가통제 하에 두는 것이었다.” 세금징수의 이러한 국유화는 또한 공공부문의 차입(借入)을 떠받치는 탄탄한 수입기반을 만들기 위한 극히 중요한 조치였다. “국가가 이러한 재정기구의 지배권을 획득하지 않았다면, 영국은 오늘날과 같이 잘 작동하는 신용대부 시스템을 발전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전체 시스템은 국가의 ‘신용도’에 의존하였다...이것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의회가 새로운 수입원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채권, 차입, 투자자금의 조달
거의 모든 차입의 경우 정부와 공공당국은 민간기업보다 더 싸게 돈을 빌릴 수 있다. 이것은 개발도상국과 체제이행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국적기업들은 보통 자신의 자금보다는 지역에서 진행중인 프로젝트를 담보로 돈을 빌리며, 그리하여 이에 대한 금리도 다국적기업의 수익성에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지역의 조건과 정부보증에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은행과 투자회사들이 정부에 융자해주는 자금의 규모는 정부의 신용도에 대한 평가에 의해서 제한된다.
 
공공당국은 민간기업들이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자금원으로부터 투자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아래의 표는 이러한 자금원들을 단순하게 범주화한 것이다. 빌린 돈에는 이자지불이 뒤따르며, 궁극적으로 세금징수든 요금부과든 다른 자금원을 통하여 갚아야 한다.  이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관한 문제가 역시 나타나게 된다.  
 
공공당국은 지난 100년 이상에 걸쳐 돈을 빌리거나 채권을 발행함으로써 스스로 자금을 조달하였다. 이것은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자치체)도 하고 있으며, 선진국뿐 아니라 인도의 아메다바드(Ahmedabad) 시(市)의 사례가 증명하듯이 개발도상국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다국적기업을 중개자로 가질 필요가 없다.
 
[사례5] 인도의 아메다바드(Ahmedabad) 시(市)와 지방채(地方債: municipal bonds)
아래의 표는 인도에서 17번째로 큰 도시(영국 버밍엄의 3배)인 아메다바드(Ahmedabad) 시 발전사의 주요 사건들을 보여준다. 영국 버밍엄과 핵심적 차이의 하나는 아메다바드 자치체의 발전이 도시 자체의 발전과 마찬가지로 독립투쟁의 역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메다바드 자치체는 1947년 마침내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그 기능이 한 번 이상 중단되었다.

 
재정의 개선: 세금징수와 지방채(地方債)
 
연도     주요 사건
1857 1월 19일에 아메다바드 자치체 탄생
1858 최초의 도서관인 Himabhai Institute 개관
1873 법률에 의해 자치체로서 공인됨
1882 초등교육이 자치체 관할이 됨
1887 시 당국에 의한 최초의 우물 건설
1890 Khadia에 최초로 지하배수구 설치, 러시아 짜르 황제 아메다바드 방문
1897 전화사업 개시
1910 자치체가 처음으로 정지됨
1913 전력회사의 발족
1916 도시계획법이 실시됨
1918 아메다바드 노동자 파업
1921 아메다바드 자치체가 대영(對英) 비협력운동 때문에 정지됨
1922 마하트마 간디 체포, 반역죄로 6년 징역형 받음
1924 선거에 의한 아메다바드 시 자치체 활동 재개
1938 M. J. Library 개관
1940 간디 다리(Gandhi Bridge) 개통과 전염병 전용병원 개원
1942 ‘Quit India'운동. 아메다바드 시 자치체 기능 정지. 역사적 섬유산업 노동자 파업
1946 두 번째의 자치체 폭동. 아메다바드 자치체 기능 재개
1947 버스수송서비스가 지자체 관할이 됨. 독립기념일 경축
1948 고압송전선망 계획의 준비와 발전소 확장
1955 새로운 시민병원 건설. 아메다바드 시 자치체 우유 공급계획, 엘리스브리지 지역 배수시설 건설
1956 최초의 여성대학(B. D. Arts College) 개교, 최초의 수영장 개관
1980 LIC의 도움으로 코타푸르 상수도 프로젝트 시작
1988 세계은행의 원조에 의해 새로운 지역에서 배수시설 프로젝트와 도시화 프로젝트 개시
1994 시공사(市公社)는 재정개선을 위해 몇 가지 행정개혁과 엄격한 조치 실시, 자치체 업무 컴퓨터화 시작
1997 아메다바드 시공사(市公社: AMC)는 CRISIL로부터 신용평가를 받고 A+등급을 받음. 이것은 나중에 AA로 상향됨
1998 아메다바드 시공사(AMC)는 인도 최초로 10억 루피의 공사채(公社債)를 공모
2000 간디 다리와 엘리스 다리의 확장, 시민헌장 최초로 발표, 야심적인 Raska 수도 프로젝트 개시
자료: www. ahmedabadcity.org
 
1990년대 중반에  아메다바드 시공사(市公社)(AMC: Ahmedabad Municipal
Corporation)는 재정적자상태에 있었으나 특히 상하수도 인프라의 투자 등 서비스를 크게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AMC는 자신의 세금징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에 착수하였다. 주요 소득원은 아메다바드 시로 들어오는 물품에 부과되는 ‘옥트로이’(octroi) 세(稅)였다. AMC는 징수액을 현실화하고 추가 징수원을 고용하였으며, 부패를 일소하였다. 그 결과 AMC는 세금징수액을 60% 늘렸다. 두 번째 주요 수입원인 재산세에 있어서는, 시당국은 컴퓨터화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고,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제재를 가하였으며, 세금징수 직원을 강화하였다. 그 결과 세금징수액은 55% 증가하였다. 또한 AMC는 자신의 회계시스템을 전산화․현대화․전문화하였다.
 
그리고 나서 AMC는 주로 상하수도 시스템을 위하여 59억 7300만 루피의 자본투자계획을 작성하였는데, 이 중 30%는 자체 소득을 통해 충당하고, 나머지는 융자와 지방채를 통해서 조달하였다. 1998년 아메다바드 자치도시는 지방채를 발행한 인도 최초의 도시가 되었으며, 이 지방채는 신용등급 AA를 받았다. 가장 중요한 투자는 아메다바드 시 주민의 60%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대규모 수돗물 공급계획인 Raska 프로젝트이며, 현재 이 프로젝트는 기록적으로 5개월에 완성되었으며, 필요자금의 20%는 지방채 수익으로 충당하였고, 나머지 80%는 인도 중앙정부의 주택도시개발공사의 융자로 충당하였다.
 
인도의 다른 도시들도 아메다바드 시를 뒤따랐다. 2002년까지 6개의 다른 도시들(뱅갈로어, 루드히아나, 나식, 나그푸르, 마두라이, 인도레)이 55억 루피의 지방채를 발행하였고, 모두 모집액 이상으로 신청자들이 많았다. 

 
제3장 통치, 책임과 참여
 
공공서비스는 서비스를 조직할 수 있는 정치시스템에 의존한다. 민첩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관련 공공당국은 주민에게 책임을 져야 하며, 또한 시스템의 기획과 우선순위 결정에 시민들의 참여를 고무해야 한다. 제3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통치의 문제들에 대해 살펴본다.
  - 국가가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을 필요성
  -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책임 구조
  - 능동적인 참여 정치의 필요성
  -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의 역할
 
3.1 국가의 능력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국가의 능력이 요구된다. 즉, 보편적인 서비스를 조직하고 자금을 조달하며 서비스들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정치적 권위가 존재해야 한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국민국가가 이에 해당하지만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농촌 지역에서는 지역당국이 이에 해당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부도 과세와 고용의 권한과 자원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자들에게는 곤란한 일이다. 이들은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해야한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든 기능을 민간 부문에 하청으로 맡겨 버리는 최소 국가(규제완화국가)를 선호한다. 그리고 나면 국가의 역할은 단지 규제에만 그치게 된다. (혹은 여기서도, 이들은 여전히 독립적인 규제담당자를 임명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물 부문에 대한 수많은 보고서들이 지적하다시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 국가는 다국적기업들을 규제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실패한 물 부문 관-민 파트너십 창출 시도에 관한 한 연구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있다. “BOTT의 경험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공공부문의 능력부족은 공공-민간 부문 파트너십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화를 추진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이유이다.”(주. K. Bakker, D. Hemson, “Privatizing water - BOTT and hydropolitics in the new South Africa", in South African Geographical Journal, vol. 82, issue 1, (2000), pp. 3-12) 구 소련 연방국가들의 물 부문에 관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의에 제출된 보고서 역시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구 소련에서 독립한 대부분의 신생 독립국가 정부가 민간부문의 참가, 특히 광범위한 형태의 민간 부문의 참가를 효과적으로 규제하는 능력은 공공-민간 파트너십을 추진함에 있어서 중대한 제약요소의 하나이다.” 개발도상국가들의 물 분야 일반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규제 기구가 여전히 초보적인 국가들이 많으며, 규제기구가 투명성을 결여하고 있는 국가들도 있고, 규제기구의 조직구조가 극도로 복잡하여 정치의 간섭에 취약함을 드러내고 있는 국가들도 있다. 특히 이 조사는 프랑스 식 이권계약과 연관된 규제과정이 필연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책임성의 한계에 관한 의문점을 명확히 하였다.”
 
서비스 공급에 있어서 국민국가가 실제로, 그리고 잠재적으로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는가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에 대한 분석이 단순화되고 형식화되어 버릴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인도의 에너지 부문의 경우, 세계은행은 과도한 국가개입이 문제라도 비난하고, 민간 부문의 도입을 해결책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접근은 공공에너지 시스템의 참으로 성공적인 실적들을 무시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도의 비정부기구(NGO)인 프라야스(Prayas)는 시스템의 괄목할 만한 성과들에 주목하면서, 동시에 그 결함에 대해서도 엄밀하게 밝히고 있다: “국가소유와 독립채산, 농업과 일반가정에 대한 교차보조(cross-subsidy) 등에 기반한 현재의 모델에 의해... 50년 동안 공급능력은 55배로 성장하였고, 고객은 7천 8백만 명에 이르며, 50만개의 마을이 전력을 공급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한계가 있으며, 이 부문의 진짜 문제는 인구의 절반이 아직도 이러한 혜택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으며, 전력부족, 회계와 검침의 취약성, 엄청난 재정적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주. Prayas Energy Group, Lessons of the Enron Debacle: Democratization through TAPing of governance as the remedy, (India, 2001). <http://www.prayaspune.org/energy/24_INFRA_Rep_01.pdf>)이러한 분석의 기초하여 프라야스는 TAP(옮긴이: “투명성․책임․참여”를 뜻함. 아래의 [사례9] 참조) 접근법을 옹호하면서, 정치활동과 정치참여의 확대를 - 그 축소가 아니라 - 해결책으로 제시할 수 있었다.
 
3.2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복잡한 관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에 대한 단순한 일반화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브라질 세아라(Ceara) 주의 성공적인 창의적 제도에 관한 사례 연구(아래 글 참조)는 외견상 분권화된 프로젝트조차도 주 정부(state government)에 의한 현저한 개입과 권한 확대를 낳게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의 역학은 자문단의 보고서와 같은 외적 요소뿐만 아니라 역사적, 경제적 환경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와 바하마, 마르티니크, 수리남 등과 같은 카리브해 지역 국가들에 관한 한 연구에 따르면, 보건의료개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에는 국가별 고유한 역사적 배경, 특정한 개혁에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미주개발은행(IADB)과 같은 국제기구, 그리고 종종 ‘국제적 해결방안’에 기반한 충고를 내놓는 자문그룹 등이 포함된다. 이 ‘국제적 해결방안’은 실제로는 대처 정부에 의해 영국에 도입된 변화, 즉 구입자와 공급자 기능의 분리, 관리 기능 위임 등의 변화를 의미했다.
 
필요한 재정적 인적 자원의 이전 없이 단순히 책임을 지방정부로 위임하는 것은, 특히 경제성장과 사회적 구조개혁의 상황에서는, 공공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지방당국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과거에는 서비스를 공급받지 않았던 지역사회들의 서비스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구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시절 분리되었던 지역들을 통합하여 새로운 자치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제한적인 성공이었을 뿐이다. 중앙정부가 중앙의 세수(稅收)를 통한 지방교부금을 지방당국의 책임을 지원하는데 필요한 수준만큼 확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보건의료 교육, 환경 등과 같은 분야의 새로운 국가정책이 “통일성도 투명성도 없는” 방식으로 지방 당국에 의해 실시되고 있다. 지방자치체는 급속한 경제성장의 상황속에서 서비스를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규제책임을 지게 되었고, 그리하여 경제적 사회적 발전은 공식적인 책임배분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실제로는 지방이 결정하는 부분이 크다. 이것은 지역 주민과 지방산업의 수익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체의 재정 능력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사회문제와 환경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현지에 적합한 해결책과 자원이 마련되어야 한다.”
 
중부․동부유럽의 체제이행기 국가들과 주요 문제들
공산주의 체제로부터 이행기에 있는 국가들에는 특유의 문제가 있다. 구 소련과 동유럽의 구체제의 중앙집권제는 민주적 기구를 질식시켰으며, 대부분의 경제부문의 관리에 있어서 비효율적이고 둔감한 운영관리 시스템을 만들어냈고, 경제침체와 정치부패를 낳았다.
 
1980년대 말의 체제붕괴는 공공서비스를 포함해 정치․경제시스템을 구조개혁하고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것이 공공서비스의 모든 측면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과세를 통해 보건의료서비스의 자금을 충당하는 과거의 시스템은 회계사무소와 경영자문가들이 이 나라들에 채택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미국식 민간보험 제도보다 확실히 더 나은 국민의료운영방법이다. 동유럽 국가들에 전형적인 지역 수도당국은 영국의 지역수도사업자가 (사유화 이전에도 이후에도) 누리고 있는 것과 유사한 규모의 경제를 누렸다.
 
이 점은 1995년 세계은행의 물 담당 간부직원의 보고서에서도 솔직하게 지적되었다. “통일 이후 구 동독지역의 상․하수도 산업의 개혁 과정을 조사해본다면.... 그 기본 방침이 단순히 “그들”(동독)을 “우리”(서독)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 구 동독지역에 대한 서독 모델의 무비판적 채택은 동독 지역에 불행한 결과를 낳았다. 구 동독지역의 지역별 수도기업들(WABs)은 공산주의의 흔적으로서 해체되었다. 그 결과, 가격은 매우 높고 질은 낮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백 개의 비경제적인 소규모 자치체기업들이 난립하게 되었다."
 
다른 구 공산주의 국가들에서는 사태가 다를 수 있다. 중국의 경우 여전히 공산당의 통치 아래 있지만, 중국 경제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지방정부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고, 공공서비스의 역할도 변화하고 있다. 중국보다 훨씬 작은 나라이며 경제 봉쇄로 고립되어 있는 쿠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공공보건의료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3.3 정치 활동과 시민 참여
 
공공서비스의 형태와 규모에 대한 결정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정치적 과정은 비공개적인 경우가 많고, 결정은 비밀리에 밀실에서 내려진다. 이것은 공공부문조직, 특히 의도적으로 국가정책 결정을 은밀하게 하며 그 결과에 대해 일반시민의 영향력이 미칠 가능성을 봉쇄하려는 폐쇄적 중앙집권형 조직의 약점이었다. 더 민주적이고 더 좋은 결정과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책결정 과정에 대한 대중의 참여와 개방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빈곤층들은 정책결정과정에서 배제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 과정에서 자금원조기관과 정부관료들이 결탁되어 있지만, 이러한 빈곤층과 불이익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정치 활동을 특히 격려할 필요가 있다.(주. www.ids.ac.uk/ids/bookshop/rr/Rr53.pdf) 여성도 문화적 이유 혹은 가정적 이유 때문에 일반적으로 참여에서 배제되고 있지만, 부적절하고 불충분한 서비스에 의해 가장 큰 부담을 지고 있는 것은 바로 여성이다.
 
참여확대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통치에 관한 걸출한 사례가 남반구, 예를 들어 브라질과 인도의 케랄라(Kerala) 주에서 발견되고 있다. ([사례6]과 [사례7] 참조). 브라질의 참여예산편성 모델은 현재 유럽의 관심을 끌고 있다. 나폴리와 베네치아를 포함해 100개 이상의 이탈리아 자치체가 참여예산제의 도입을 촉진하기 위한 지방자치체 연합체를 결성하고 있다. 참여예산제의 명쾌한 모델은 포르투 알레그레(Porto Alegre)이다. 그로타마레(Grottammare)라는 도시, 그리고 밀라노 도심의 작은 자치행정구인 피에베 엠마누엘레(Pieve Emanuele)에서는 실천적인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는 지역민들의 참여를 통해 민주적 의사 결정이 가능토록 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에너지 정책에 대한 지역 주민의 정책결정 참여를 가능케 하는 제도는 1930년대 미국 태평양연안의 주들에서 설립되었다([사례8] 참조). 주민투표를 발의할 수도 있는데, 최근의 두 가지 사례는 물 사유화 제안에 대한 뉴올리언즈의 투표, 그리고 2001년 에너지 위기 이후 캘리포니아 주의 여러 도시에서 에너지를 자치체사업으로 하려는 공영화 제안에 대한 투표이다. 또 유럽에는 계획안에 대하여 시민이 직접 투표하는 형태의 시민참여 전통이 있다. 스위스와 독일에서 이러한 창의적 제도들을 최근 활용하여 투표에 의해 사유화 제안을 부결시킨 바 있다.
 
[사례6]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Porto Alegre)의 참여예산제
포르투 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Orçamento Participativo - OP)는 주민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 혹은 특정 주제영역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또한 지자체가 어떤 사업을 우선하여 시행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주는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이다. 이 제도는 세제개혁과 지출계획을 공약으로 내건 새로운 지방정부가 1989년의 선거에서 탄생하면서 시작된 것인데, 이 계획의 실시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이 지방정부는 대중토론회와 집회를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참여예산제(OP)는 시의 수입 증대에 커다란 효과가 있다. 중앙정부의 교부금에 의존하고 있는 오늘날 브라질 대다수 자치체들과는 달리, 포르투 알레그레 시의 경우 자체재원이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이것은 주로 세원(稅源)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를 보다 쉽게 확인할 수 있음으로 인해 가능했다.
 
참여예산제는 신중하고 투명한 절차이다. 일단 내려진 결정은 문서화되어 발간되며, 엄격히 시행된다. 참여예산제의 내부규칙들은 참여한 시민들에 의해 제정되며, 그리하여 제도 자체가 자율 규제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참여예산제의 특징은 국가 이외의 공공영역의 출현을 촉진하였다.
 
많은 빈곤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은행과 국영기업을 포함하는 브라질의 국가기구들은 대부분 역사적으로 일반 시민의 복지보다도 개인적 당파적 이익에 봉사해왔다. ... 그러나 이제 참여예산제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으며, 참여예산제도에 등록된 조합과 주민조직의 수는 현재 약 1,000개에 이르고 있다... 우선순위 결정은 지역사회의 요구를 더 잘 반영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과거의 정부가 결정한 우선순위와는 정반대이다. 이것이야말로, 포르투 알레그레 인구의 99.5%가 현재 정수처리된 물을 먹고 있으며, 84%(브라질 최고 수준)가 하수처리 혜택을 보고 있는 한 이유이다.
 
... 이 시스템은 세 가지의 중요한 공공목표, 즉 지속가능한 서비스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 천연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획득, 공적자금관리에 대한 시민의 항구적 참여를 충족시키고 있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주. PSIRU and DMAE, Water in Porto Alegre, Brazil, prepared for the World Summit on Sustainable Development, (2002), <http://www.psiru.org/reports/2002-08-W-dmae.pdf>) 
 
[사례7] 인도의 케랄라(Kerala) 주  - 참여 계획 작성
이러한 접근법이 적용되고 있는 하나의 국가가 인도이다. 인도에는 참여민주주의적 구조의 독특한 역사가 있다. 현저한 보기는 인도 남부의 케랄라 주이며, 여기에서는 대규모 시민참여에 기초한 새로운 구조가 개발되었다.
 
이것은 심지어 세계은행도 칭찬하고 있고, 세계은행은 보고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케랄라 주의 지방분권화 프로그램은 아마도 세계 최대의 지방분권화 프로그램일 것이다. (주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3백만 명이 각종 집회에 참여한다. 이것은 지방의 개발과 지방의 통치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며, 원대하고 혁신적이며 과감한 접근법이다... 이것은 불리한 입장에 있는 집단이 충분히 자신들의 요구를 표명할 수 있도록 하고 이러한 집단에 대하여 여러 기관들이 책임과 설명의무를 지도록 하기 위해 전면적인 변화를 추구하려는 정부의 심오한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
 
이 시스템에서는 지방집회에 다량의 자금을 이양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러한 지방집회는 자금배분계획을 작성할 의무가 부여되어 있고 동시에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참가하도록 조직적인 선전노력도 이루어진다. 그 결과 놀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고 있다. 주(州)는 예산의 40%를 지방으로 이양하였고, 지방의 마을평의회에 대하여 숙련된 전문적 지원을 제공하며, 이 시스템 하에서 선출된 수천 명의 의원 하나하나에 대하여 훈련을 제공한다.
 
민주적 원칙들은 이 구조 자체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군더더기로 붙어있는 것이 아니다. 여덟 가지의 핵심 원칙들에는 “주민의 최대한 직접참여, 설명책임(수행상황에 대한 지속적인 사회적 감사), 정보에 대한 권리(알 권리)를 통한 투명성”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문제였던 부패의 위험에 대해서는, 모든 기록문서와 결정을 공개하고 투명하게 하는 것을 철저하게 지킴으로써 대응할 수 있다. “전면적인 투명성은 지방분권화가 부패의 지방 분산으로 전락할 위험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수익자의 선발과 집회의 보고서와 의사록, 그리고 청부업자/수익자 위원회를 통하여 지방단체가 행하는 공사와 관련된 청구서와 전표 등을 포함하는 모든 문서는 공개문서이다. 소정의 수수료를 내면 서류의 사본을 입수할 수 있다.”
 
[사례8] 미국 워싱턴 주: 공영전력사업을 요구하는 민주적 투표
워싱턴 주의 전기 공급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몇 개의 민간회사에 의해 19세기에 시작되었다. 1891년부터 자치체에 의한 공영사업이 시애틀 등의 도시 및 소읍들에서 발달하기 시작했다. 지방주민은 유사한 방식으로 전등과 전력, 수도 서비스를 확보하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노동조합 등의 지원에 의해 주 전체의 유권자 운동이 발기하여 최소 필요 인원수의 두 배에 해당하는 61,000명의 서명을 획득하였다. 비록 워싱턴 주 상원은 1929년에 법을 제정하는 것을 거부하였지만, 법 제정은 자동적으로 주 주민의 직접투표에 회부되었으며, 주 전체에서 152,487표 대 130,901표로 찬성표가 더 많았기 때문에, 1931년에 법제화되었다.
이 법은 민간기업과 지방의 전력협동조합 및 자치체 전력시스템의 요소를 합쳐놓은 자치체기업의 설립을 규정하고 있다. 지역공익사업체인 PUD(People's Utility District)는 민간기업의 기본적인 사업 구조를 갖고 있고, 코미셔너로 구성되는 이사회가 주식회사 이사회와 똑같은 권한을 갖는다. PUD는 비영리사업이기 때문에 공익성의 측면에서 유리하고, 자치체 시스템이기 때문에 낮은 비용의 공공자금조달방법을 이용할 수 있다. 또 PUD는 지방의 전력조합이 실천 촉진하고 있는 바와 같이 공공사업이 지역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법은 이 시스템을 강제하고 있지는 않으나, 지역주민의 발의에 기초하여 PUD를 설립할 수 있게 한다.  
오늘날 워싱턴 주에는 28개의 PUD가 존재하며, 전력과 상하수도사업을 제공하고 있다. 워싱턴 주 인구의 60% 이상이 PUD(28%)와 자치체 공익사업(21%), 그리고 협동조합과 공제조합(5%)을 통해 서비스를 공급받고 있다. 
 
이웃한 오리건 주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스템이 채택되었다. 1931년에 오리건 주 의회가 주 헌법 수정안을 가결함으로써 PUD의 설립이 가능해졌다. 오리건 주에는 현재 6개의 PUD가 있으며, 주 전력 필요량의 9%를 공급한다. 이 중 넷은 1940년대에 설립되었으며, 둘은 1980년대에 설립되었다.
 
[사례9] 정치 활동 - 인도의 TAP(투명성, 책임, 참여) 원칙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 주의 푸네(Pune)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도의 비정부기구(NGO)인 프라야스(Prayas)는 에너지 관련 정책결정을 공개토론에 회부하는 길을 열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프라야스는 이러한 과정의 원칙을 TAP, 즉 투명성(transparency)과 책임(accountability), 참여(participation)로 부르고 있으며, 자신들이 창시한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마하라슈트라 전력규제위원회(MERC)는 1999~2000년 기간 동안 전기요금 인상을 추진하기 위해 TAP 원칙을 따랐다. MERC는 전기요금인상안의 주요 골자를 주 내의 수십 개의 신문지상에 발표하였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MERC는 서명이 들어있는 진술서와 간단한 편지의 형태로 모두 468건의 이의신청을 접수하였다. 이 단계에서 전력규제위원회가 중요한 행동을 취하였다. MERC는 이러한 이의신청을 내부적으로 처리하는 대신 마하라슈트라 주 전역에서 공청회를 개최하는 절차에 착수하였으며, 이에 따라 5번의 공청회를 지역본부에서, 3번의 공청회는 뭄바이(Mumbai)에서 개최하였다.
 
프라야스 및 뭄바이 그라학(Mumbai Grahak) 마을평의회 등의 단체들은 정보제공과 엄격한 투명성 확보 요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러한 공개절차는 풍부한 상세정보를 만들어냈고, 그리하여 마하라슈트라 주 전력위원회(MSEB)는 자신이 만든 자료와 예측, 분석의 오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6개월에 걸쳐MERC와 MSEB, 그리고 시민은 사실상 함께 협력하여, MSEB가 애초 제안했던 18% 인상 대신 6.5%의 전기요금인상에 그치게 되었다.”(주. Subodh Wagley, "Tapping consumer power", The Hindu, (11 September, 2002), quoted in Transnational Institute (TNI) unpublished paper, Discussion Paper Toward a Equitable, Sustainable, and Democratic Electricity Future: Power Liberalization or Power Transformation?, vers.1.0, (2002))
 
2002년에는 프라야스와 노동조합들이 함께 MSEB의 구조개혁에 관한 대체계획안을 만들었다. 이 계획안은 주 정부와 MSEB 자체 및 노동조합이라는 3개의 주요 당사자가 참여하는 새로운 ‘공공통제모델’(Public Control Model), 그리고 아래와 같은 일련의 합의점을 언급하고 있다.

 - 업무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수량적 목표 설정(요금 징수, 송전과 배전 상의 손실 삭감, 이용 용이성 등)
 - 조업 및 절차에 관한 대책(TAP 참여 절차, 규제)
 - 의무와 책무에 대한 약속과 헌신(정부가 기한 내에 보조금을 지불하는 것)
 - 방해 행위와  벌칙

 
3.4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의 역할
 
공공서비스 노동조합들은 자주 공공서비스에 관한 정치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노동조합의 대표기능은 노동조합이 사용자(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의 경우, 국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조합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 대부분의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에는 강력한 전문 직업의식(professionalism) 요소가 있으며, 따라서 노동조합은 어떻게 하면 서비스를 가장 잘 운영할 수 있는가에 대해 조합원의 정보와 경험에 근거한 집단적인 견해를 표명한다. 셋째,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은 역사적으로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공공서비스의 발전을 촉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던 더 광범위한 노동조합운동의 일부이다. 넷째, 노동조합은 종종 정당과 공식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많은 개발도상국들에서 노동조합은 해방정당(parties of liberation)을 지지하였다.
 
노동조합은 시민사회의 명백한 한 구성요소이며, 공공서비스에 관한 정치적 논의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기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이러한 논의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된다. 많은 자문가들과 개발은행, 학자들은 노동조합을 무시하거나 노동조합을 ‘위험한’ 존재라고 적극 경고한다. 2000년에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 물 포럼에서는 네덜란드의 주도적인 물 연구소인 IHE가 물의 이해관계자 구도를 제시하면서 민간 계약업자들은 포함시켰지만, 정작 물 노동자와 그들의 노동조합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러한 무지는 피해를 끼칠 수 있다. 일부 은행가와 정치가, 민간 기업이 자신들의 이익을 노동조합이 반드시 지지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데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지만, 개방된 민주적인 절차에서는 이러한 대립은 예상되며 장려될 수 있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에 대해 가장 강력히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느 국가의 서비스라도 그 서비스가 주주에게 수익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 그 서비스 공급에 참여하는 다국적기업을 ‘파트너’로서 부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공공서비스에 있어서 노동자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주. Judith Tendler, Good Government in the Tropics,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8), pp. 10-12) 
 
[사례10] 뉴욕 주(미국): 노사 협력 시스템
미국의 뉴욕 주에서는, 1990년대에 많은 자치체들이 노사위원회에서 종합적 품질관리(TQM)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노동조합이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구조개혁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프로그램에 관한 한 연구에 의하면, 이것은 조직화된 노동조합의 역량에 대한 인정, 그리고 따라서 ‘파트너쉽’ 접근법의 매력에 대한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뉴욕 주에서는 공공부문의 노조 조직률이 높기 때문에, 노사 협력을 통한 내부구조개혁은 특히 중요한 대안이 되었다.” 이러한 접근법의 결과로 명확한 이익이 경험되었다. “이러한 협력적인 직장구조는 의사소통을 향상시키고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참여를 넓혀, 노사관계와 직원의 동기부여를 크게 개선한다.”
 
[사례11] 스웨덴: 자 가자!
이러한 접근법의 하나는 스웨덴 말룽(Malung)에서 최초로 탄생하였다. 구조개혁에는 노동조합과 노동자가 중심적 역할을 맡으며 참여할 뿐만 아니라, 구조개혁 자체가 노동조합에 의해 기획되었으며, 영어의 ‘Come on!'에 상당하는 스웨덴어 ‘Koman!'(’자 가자!‘라는 뜻)이라는 단순한 구호로 불리고 있다. 이 ’Koman‘ 접근법은 작업 정보와 기획, 자원관리를 노동자들의 수중에 맡겨두는 것이다. “조합원들은 자신의 직무의 연구자가 된다. 그들은 어떻게 품질을 향상시킬 것인가, 어디에 책임이 있으며 또 있어야 하는가, 어떠한 훈련이 필요한가를 논의한다. 조합원들은 구체적인 작업의 비용을 측정하여 결국 각자가 맡은 직무와 관련된 비용을 알게 된다.” 그 결과 말룽에서는 비용이 절감됨과 동시에경영 피라미드의 전통적인 역할이 변화 축소되었다.
(주. Brendan Martin, European integration and modernization of local public services: trade union responses and initiatives, (EPSU 1996), chapter 5)
 
제4장 공공서비스의 문제점, 개혁 및 미래
 
공공서비스는 정체되어서는 안 되고 변화해야 하며, 내외의 문제점들에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정부와 세계은행이 선호하는 해결책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이 문제점들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문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역할을 인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공서비스는 미래에 국가가 발전하고 국제적 측면의 역할이 확대되며 새로운 과제와 수요의 증대가 뒤따르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에 대처하기 위하여 발전해야 한다. 제4장에서는 아래의 내용을 살펴본다.
 
 - 변화에 대응한다 : 공공서비스는 완벽하지 못하며 개선되어야 하지만, 사유화도입에 의한 구조개혁을 주장하는 ‘처방들’은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정부예산의 삭감을 목표로 하는 개혁에 의해 서비스가 특히 피해를 볼 수 있다
 - 민간부문을 객관적으로 파악한다 : 경험적 증거에 의하면, 민간부문이 반드시 효율적이라고 할 수 없으며, 다국적기업은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민간부문을 이용하여 투자자본을 조달하려는 시도는 실제로는 이론만큼 성공적이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 노동의 역할은 중요 : 더 좋은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공급하는 방법은 적정한 인력수준과 훈련 및 임금이라는 과거의 교훈은 오늘날의 혁신에 의해 재확인되고 있다
 - 공공서비스의 미래 : 미래의 경제발전이란, 공공서비스가 세계경제에서 더욱 더 중요한 부분이 되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새로운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공공서비스는 확대될 필요가 있으며, 국제적 기구와 활동이 더욱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4.1  변화와 문제에 대한 대응
 
공공서비스는 늘 변화하는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공공서비스 자신이 변화할 필요성은 늘 존재한다. 변화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나타나는 인구의 고령화와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 지역의 에이즈(AIDS) 영향 등과 같은 인구학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도 있고, 중국의 아주 급속한 성장과 같은 경제변화, 또는 인터넷과 같은 기술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공공서비스가 직면한 문제 중에는 정치의 변화에 기인하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공공지출과 차입을 줄이는 것을 중시하는 정부에 의해서 마련된 재원이 감소하여 발생하는 문제들도 있다.  IMF, 세계은행, WTO 등과 같은 국제기구들의 정책이 원인인 문제들도 있다.
 
또 내부적 요인에 의한 문제도 있다. 예를 들면 서비스가 효과적이지 않고 책임성이 없거나 관리운영이 잘 되지 않거나, 또 부패 및 기업에 의한 감독자와 정치가의 ‘매수’가 있거나, 취급체제가 만들어내는 ‘유령노동자’의 부담을 서비스가 떠맡게 될 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문제들을 부정해서는 안 되며, 정면으로 맞서 이러한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아래의 항목에서는 공공부문의 개혁, 그리고 주로 상업화의 형태에 기인하는 몇 개의 공통적 문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공공부문 개혁
개혁은 공공부문의 내부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며, 효율적인 서비스도 공급할 수 있다.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에서는, 예컨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농촌전력화사업, 브라질 상 파울로 등과 같은 거대도시의 상하수도시설의 확장, 말라위와 같은 빈곤국가의 물 사업의 개선, 또는 요르단강 서안지역의 라말라(Ramallah)와 같이 극도로 곤란한 지역의 효율적이고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한 수도시스템의 유지 등과 같이, 공공부문을 통하여 수도와 전력시스템의 공급대상을 확장하고 알맞은 가격의 서비스를 공급하며 이 과정에서 효율성을 높였다. 구조가 똑같지 않다는 것이 강점이 될 수도 있다. 상수도 사업은 보통은 자치체의 책임이며, 지방의 책임과 능력의 이점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가 수도사업을 하기 위하여, 물 공급의 책임이 분할될 경우 물 공급이 위협받게 되는 도시중심부 이외의 지역에서도 수도시스템의 개발을 지속하고 있는 국가들도 있다.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사례12] 참조), 상대적으로 역사가 오랜 국가들에서 이미 확립되어 있는 서비스들도 새로운 상황 속에서 적응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공공서비스 역할을 개발할 수 있다.
 
새로운 공공서비스 운영관리의 개발은 투명성, 책임, 참여의 원칙에 기초하여 계속되어야 한다.(주. D. Whitfield, Public Services or Corporate Welfare, (London: Pluto Press, 2001), 제9장) 공공서비스의 공급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습득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새로운 기술 및 방법에 뒤쳐지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입수 가능한 지식을 충분히 이용해야 한다. 여기에는, 경험과 모범실천사례를 공유하기 위하여 열리는 공식 회합, ‘상호자율규제’도 포함된다. 하나의 보기로, 네덜란드의 자치체 수도회사가 매년 서로 경험을 비교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시민에 대한 책임 메카니즘도 서비스공급에 관한 시민의 지식과 인식을 활용하기 위해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 마하라쉬트라 전력위원회는 공개토론에 의해 자신들의 접근법에 대하여 중요한 통찰역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공개토론에는 한편으로 공공서비스 노사,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더 광범위한 학자와 기술자 사이의 논의 및 훈련도 포함되어 있다.
 
[사례12] 유럽의 현대적 공공서비스
이탈리아의 크레모나 시는 지역의 공공교통, 상수도, 가스, 전력, 쓰레기처리, 자원재생, 폐기물처리 등을 운영하는 ‘다부문 공공사업회사’(multi-sectoral utility) AEM SpA를 소유하고 있다. AEM은 통합적인 폐기물관리시스템을 개발하였고, 이 시스템에 의하여 종류가 다른 쓰레기들이 구분하여 회수된다. 전체 폐기물의 35%를 차지하는 유기폐기물과 금속은 재활용되며, 폐기물의 60%는 소각되어 최첨단 열병합 발전소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며, 5%는 지정된 폐기물처리장에 버려진다. 쓰레기의 분리 회수능력을 높이기 위하여 AEM은 ‘시클로와 리시클로’(Ciclo and Riciclo)라 부르는 장려제도를 도입하였다. 각각의 쓰레기회수센터에서는 종류별로 구분된 폐기물은 킬로 단위로 점수가 부여되고, 이 점수를 모으면 대중교통과 정기 주차권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도 있고, TV와 자전거 등과 같은 여러 경품을 받을 수도 있다.
 
프랑스의 우정사업을 담당하는 라 포스테(La Poste)는 전국에 17,000개 우체국을 갖고 있어 유럽 최대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우체국이 외부세계와 연결해주는 마지막 서비스가 되는 일도 종종 있는 빈곤한 도시지역에 라 포스테는 25,000명의 직원을 포함하여 1,048개의 우체국을 운영하고 있다. 2002년 3월에 라 포스테와 프랑스 정부가 조인한, 도시지역에 관한 새로운 정책협정에는 사회적으로 배제된 집단들의 채용, 훈련, 경력개발에 관한 조항도 포함되어 있다.
 
이탈리아 우정사업을 담당하는 포스테 이탈리아네(Poste Italiane)는 공공 인터넷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한 자회사를 만들었다. 민간 IT 회사가 제공하는 통상적 서비스 이외에도, 포스테콤(Postecom)은 세 개의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하였다. 즉 공공서비스 요금의 지불을 온라인화하고 우체국에서 무료로 공공인터넷과 이메일을 이용할 수 있게 하였으며, 전통적인 우체국업무를 전자화하여 온라인 쇼핑 서비스에 대한 공식적으로 승인된 안전한 창구를 제공하였다.
 
쉬타트스파르카세 쾰른(Stadtsparkasse Köln: SK)은 독일의 쾰른 시가 소유하고 있는 비영리 금융서비스회사이다. 이 회사는 34,000개의 당좌예금구좌를 갖고 있으며, 이 중 1/3은 사회보장급부를 받고 있는 사람들의 구좌이다. SK의 지점망과 직원들은 이러한 사회의 빈곤층에게 그렇지 않았다면 이들이 받지 못했을 재무적 조언을 제공해주고 있다. SK는 어떤 고객도 받는다는 보편적 서비스 의무를 인식하고 활동하고 있지만, 이것은 상업은행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SK는 또 융자를 통하여 중소기업을 지원하며, ‘신기업의 촉진’을 담당하는 부서를 갖고 있어 약 500개의 기업들에게 조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상호 작용하는 영역
이러한 현대화 과정의 일환으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상호 작용하는 영역이 있다. 이것은 자재 등 공급계약을 부여하는 조달시스템을 통하여 관리된다. 서비스 자체를 사유화하지 않으면서, 이러한 계약의 금액은 매우 크며, 투명하고 효율적인 조달을 통하여 효율성과 공정성의 이익 모두를 얻을 수 있다
 
시민의 공평성과 고용에 관한 정책을 추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조달 규칙에 의해 고용에 있어 남녀차별과 인종차별을 금지시킬 수 있고, (2차 대전 이후 미국 정부에 의해 채택되었던) 고용균등을 촉진하기 위한 차별철폐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또한 조달 규칙은 공공서비스의 제반 조건들에 상응하는 임금 지불을 요구할 수 있고,(세계은행의 조달규칙에 규정되어 있는 바와 같이) 반(反)부패정책을 실시하도록 하기 위하여 제재조치를 사용할 수 있다.
 
비교적 소액의 투자로 투명성과 효율성의 효과를 크게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전자조달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는 국가들이 많다. 유럽연합(EU)의 모든 공공조달은 현재 전자입찰제도 TED(Tenders Electronic Daily)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체제이행국가들에서는 컴퓨터화된 조달절차를 도입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고 지역 기업의 활성화를 촉진할 수 있다.
 
‘처방전’에 의한 구조개혁
많은 나라들에서 공공서비스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의 주요 범주의 하나는, ‘처방전에 의한 구조개혁’, 즉 현실의 문제가 무엇인가에 관계없이 반드시 어떤 형태든 사유화를 포함한 구조조정개혁이 도입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 시스템의 구조적 장점을 파괴하고 실제적 약점을 해결하지 못할 수 있다. 좋은 보기가 영국의 철도이다. 영국 철도는 만성적인 투자부족과 역량부족으로 고전하고 있었지만, 1990년대 초에 도입된 사유화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고 임무를 다수의 민간계약회사들 사이에 세분화함으로써 문제해결은 더욱 어려워졌다.(주. 영국에서는 철도 보수수리업무는 민간계역회사들과 계약을 해지하였고 다시 공공서비스로 되돌아왔다. The Guardian, October 23, 2003, "Rail safety move ousts contractors: Unions hail 'renationalization' step")
 
구조개혁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고 적절한 것도 아니다. 덴마크의 보건의료제도를 최근 조사한 결과, 시장세력의 도입이라는 유행을 회피한 것을 올바른 판단이었다. 보건의료제도가 붕괴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잡을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덴마크 보건의료제도의 구조 자체가 추가적인 개선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힘이 되고 있다. “재원은 대부분 공적 재원이다...보건당국은 국가와 일체화되어 있고 그것이 계획수립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환자부담액이 낮은 수준이고 민간부문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것은 덴마크의 ‘연대의식’을 반영하는 것이고 공평성을 촉진한다. 이 시스템이 기술적 효율성과 배분 측면의 효율성과 공평성의 차원에서도 그러한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보건의료서비스연구에 더 많이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재정적 압력
공영기업을 사유화하는 첫 번째 동기는 공공적자를 삭감하거나 채무수준을 낮추려는 것이며, 이것은 세계 어디서나 공통된다. 서비스를 매각하면 현금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예산을 개선한다. 현지에 특별한 문제가 있거나(예를 들면, 1990년대 말 독일 베를린에서는 재정위기가 가스, 수도, 전력사업의 매각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국가의 공공부문 축소정책, 또는 IMF 구조조정정책의 조건으로서 요구되는 등, 사유화를 필요로 하는 현지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 몇몇 부문에서는 이것이 공공부문-민간부문 파트너십의 유일한 동기일 수 있다. 딜로이트(Deloitte) 컨설팅은 2003년도 에너지회의에서 “현금수입 이외의 이유로 사유화를 진정으로 옹호하려고 하는 정치지도자를 발견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서비스를 훼손하는 정책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세계은행 자신의 문서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많은 나라들에서, 사유화를 앞장서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재무성이며, 이들은 자산매각으로 얻는 재정수입을 최대화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편협한 거래비용의 시각에서 이 과정을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자산의 매각가치와 개혁에 의한 하부부문의 경제․사회적 영향 사이에는 중대한 균형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수입에 대한 고려 때문에 서비스요금을 높게 유지하고 시동의무를 최소화하며 경쟁의 도입을 연기하며 많은 상세 규제내용을 간과해버린다. 그러나 경험에 의하면, 바로 이것이 빈곤층에게 가장 해로울 수 있는 전략이다.”(주. Antonio Estache, Vivien Foster and Quentin Wodon, "Making Infrastructure Work for the Poor: Policy Options based on Latin American Experience" in WBI Studies in Development, (FPSI, World Bank, 2001), p.19)
 

국제기구 : WTO, IMF, 세계은행
이러한 정책들이 세계 속으로 퍼져가는 주요 방법은 주요 국제경제기구인 WTO, IMF 및 세계은행을 통해서이다.
 
• 세계무역기구(WTO)는 서비스무역일반협정(GATS)를 통하여, 보건의료를 포함한 공공서비스의 사유화를 추진하라는 별도의 잠재적 압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부문을 포함한 공공부문 전반에 대한 사유화 압력을 넣고 있다. GATS의 중요한 요소는 국가가 어떤 부문을 무역 개방한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국가가 각 부문을 개방할 의무는 없지만, 개방할 수도 있고 타자가 개방을 요구할 수도 있다. GATS의 유럽연합 교섭담당자들은 수도사업을 개방하도록 많은 나라들에게 요구하였다.
 
• IMF는 엄격한 부대조건들을 규정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재정지원을 받는 국가의 공공서비스에 대한 조건들도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면, 탄자니아에 대한 부대조건에는 통원치료의 요금을 받을 것, 그리고 학교의 수업료를 부과할 것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세계은행은 수도와 에너지를 포함한 많은 공공서비스에 대한 정책으로서 사유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세계은행에는 국제금융공사(IFC: International Financial Corporation)라는 부서가 있는데, 이것은 민간부문에만 투자할 수 있기 때문에, 예를 들면 아프리카의 보건의료에 대한 투자는 모두 민간의 병원벤처사업 및 이와 유사한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되었다. 세계은행은 또한 많은 융자들에 대해서도 사실상의 부대조건을 강요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예종되어 있는 가나의 수도사업에 대한 투자에는, 수도인 아크라의 수도사업을 사유화한다고 하는 부대조건이 실제로는 붙어있다.
 
선별 정책 : 부자들은 따로 논다.
공공서비스에 있어 최대의 약점의 하나는 ‘선별정책’(cherry-picking)이다. 즉, 돈이 많은 부자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더 좋은 질 높은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으며, 공공서비스에 기여하는 것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공서비스의 토대가 되는 재정적 연대를 손상시키고 공공서비스를 지속하기위해 필요한 정치적 합의를 훼손하며 그러한 서비스로부터 자원을 빼앗아 소비자지향의 시장으로 보내버린다. 공공서비스를 위한 자원을 삭감하는 것은 공공서비스의 질을 저하시키고 지불능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자신을 위해 민간부문으로부터 자원을 구입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사태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소우셜 워치(Social Watch)는 코스타리카에서 이런 과정을 확인하였다. “질 높은 공공교육은 사회적 공평성과 높은 생활수준의 주요한 요소였지만, 현재의 사립학교열풍에 의해 유복한 학생들의 공립학교 이탈이 진행되고 그 결과 자원이 감소하고 있다...그리하여 교육은 사회적 이동을 위한 기구에서 지위와 배제의 도구로 변화하였다.” 말레이시아에서는 “2개의 교육시스템이 출현하였다. 즉 지불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질 높은 사립교육과 저소득자들 대상으로 하는 상대적으로 질 낮은 공공교육이다.” 그리고 독일의 보건의료제도에서는, 공적건강보험기금을 탈퇴하고 더 값싼 민간보험을 구입하는 것이 허용되고 있기 때문에 공적건강보험기금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드는 회원의 비율이 높아진다. 부자들은 자신의 서비스를 위하여 개인적으로 스스로 지불하고 다른 한편으로 빈곤층들은 더욱 빈약해지는 공공부문을 통하여 자신의 치료비를 지불하는 이중구조가 되어 결국 하강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그 결과, 심지어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의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서도 예를 들면 보건의료에 있어 민간부문이 성장해왔다.(주. Leon Bijlmakers and Marianne Lindner, The World Bank's Private Sector Development Strategy: Key Issues and Risks, (ETC Crystal/WEMOS, April 2003). <http://www.wemos.nl/prs/library/healtheconomic/psd_strategy_worldbank.pdf>)
 
4.2 민간부문을 객관적으로 파악한다
 
공공서비스는 경제적․정치적으로 민간부문과 접점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공서비스는 민간기업으로부터 제품, 건설공사, 서비스 등을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이러한 재화의 구입에 관한 투명한 규칙을 규정하고 있는 조달관리체제를 통하여 처리될 필요가 있다(앞의 내용 참조). 그러나 사유화의 파도, 그리고 공공-민간 파트너십은 이것을 넘어서서 민간부문을 이용하여 상업적 틀 속에서 서비스를 구조적으로 개혁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이 과정은 서비스 자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효율을 높이고 투자자본을 제공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험에 의하면, 이러한 주장에는 근거가 없고, 오히려 이 과정에 의해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공공기업과 민간기업의 상대적 효율성
민간부문이 공공부문보다 ‘명백하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가정하는 일이 많지만, 경험적 증거와 이론은 이러한 가정이 틀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핀란드 경제학자 요한 빌너(Johann Willner)는 일련의 부문들에 대한 비교연구에서 얻은 경험적 증거를 검토하였는데, 1/2 이상의 비교연구가 공적 소유가 결코 덜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빌너의 이론적 분석에서는, 정치가들이 생산확대와 고용에 편향되어 있고 이것이 ‘인원과잉’을 낳는다하더라도, 독과점시장에서는 정치적 개입이 실제로는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주. Johan Willner, "Ownership, Efficiency, and Political Interference" in European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vol.17, no. 4, (2001), pp.723-748)
 
공공부문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보기는 보건의료이다. 상업화된 미국의 의료제도의 비용은 GDP의 13.6%이지만, 영국의 국민보건제도의 비용은 GDP의 6.7%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미국의 유아사망률은 OECD 국가들 중에서 최악이다. 하나의 이유는, 미국 보건의료지출의 1/4이 지불과 청구의 복잡한 관료제에 지출되는 비용이라는 것이다. 전력산업의 경우, 공공기업과 민간기업에 대한 전세계적 비교의 결과 소유자가 공공인가 민간인가에 의해 거의 아무런 차이도 보이지 않았다. 생산성 향상이라는 측면에서는 공공부문이 훨씬 더 나을 수도 있다. 영국에서 대처(Thatcher)정부에 의해 사유화된 산업들을 검토한 바에 의하면, 생산성 향상은 대부분의 경우 사유화 이후가 아니라 사유화 이전의 일이었으며, 자치체에 의한 쓰레기 수집사업의 생산성향상은 사유화된 쓰레기 수집사업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었다.(주. Bishop, Kay and Mayer, Privatization and Economic Performance, (Oxford University Press, 1994)) 공공부문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는 가장 가난한 국가들에서도 볼 수 있는데, 말라위의 릴롱웨(Lilongwe) 시의 수도국은 1990년대에 누수율을 17%까지 낮추었는데, 이것은 영국의 테임즈 워터(Thames Water)社가 2001년에 달성한 것보다 더 좋은 성적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공공소유가 제공하는 정당성은 실제적 강점이다. 1976년 영국에 가뭄이 들었을 때 당시에는 물이 공적소유였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물의 절약을 호소한 결과 물의 사용량은 약 25% 감소하였다. 그러나 1995년 비슷한 가뭄이 들었을 때, 사유화된 물회사의 요청이 있어도 물의 사용량은 거의 줄지 않았다. 왜냐하면 물회사는 물을 독점하여 탐욕스럽게 착취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주. Water in Public Hands 2001, <http://www.psiru.reports/2001-06-W-public.doc>)
 
불평등한 교섭력
사유화 과정 및 사유화 이후, 민간부문은 공공부문과 시민 자체를 희생시키면서 일련의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사유화가 “비대칭적 교섭조건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매각명령이 떨어진 순간부터 공공자본은 소수의 부유한 (국내의 또는 해외의) 투자가에게 아주 유리한 조건으로 이전되었다...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정부는 정치적․사회적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가능한 한 조급히 공익사업을 매각하려할 정도로 현금이 궁핍하였다...사유화 이전에 아직 공공소유로 있을 때 이루어진 효율성 향상을 위한 구조개혁의 많은 성과들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사적 소유자는 추가적인 인원삭감, 요금인상 및 최신기술의 이용에 힘입어, 만성적인 재정부족에 시달렸던 공공관리체제에서는 달성할 수 없었던 독점적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핵심적인 문제는, 이윤목적에 초점을 맞춘 일반적으로 대규모인 다국적기업에 대한 공공당국의 대응능력이 상대적으로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도로, 수도사업, 기타 인프라 건설을 위한 사업특허에 관해서 가장 오랜 경험이 있는 프랑스에서는, 이 시스템이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지방의원들이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거대한 정치․경제․금융력을 발휘하는 거대기업들을 다루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정부의 보고서는 서술하고 있다.
 
기업의 전략적 행위의 영향은 철도 인프라 건설계약에 관한 전세계적 조사에서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조사는 이러한 계약의 실제 최종비용이 늘 당초의 견적액을 훨씬 초과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에 대한 통계적 분석에 의해, 이 현상은 기업측에 의한 “조직적인 거짓말‘로서 일관성 있게 설명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부패
많은 서비스의 사유화에 의해 고가의 장기계약이 탄생하는데, 이것은 다시 부패의 동기부여와 기회를 만들어낸다. 다국적기업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부패에 관여해왔으며, OECD 국가들은 이것을 규제하기 위하여 입법조치를 강구하였다. 세계은행은 조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지만, 선진국에서 경영자가 부패에 연루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다국적기업들(수에즈 Suez社와 베올리아 Veolia社를 포함)에 대하여 여전히 융자해주고 있다.
 
국가들이 국제적인 사유화 거래 속에서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국제금융기구들(IFIs: International Financial Institutions)과 OECD 국가들의 정부는 예외 없이 해당기업을 옹호하고 해당국 정부에 대하여 부패에 대한 법적 절차를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하나의 보기가 파키스탄으로, 허브코(Hubco)社(당시에는 영국의 전국전력(National Power)이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가 전력구입협정(PPA: power purchase agreement)을 획득하기 위한 부패에 연루되어 있었다. 파키스탄의 전력당국 WAPDA는 WAPDA가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생산된 모든 전력을 구입하는 것을 보증하였다. 이 협정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하였고, WAPDA는 큰 위기에 빠졌다. 영국 정부와 세계은행은 파키스탄에 대하여, ‘파키스탄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를 훼손할 것’이라는 이유로 이 부패사건의 수사를 계속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 대신 군대가 WAPDA의 경영을 접수하였고, 노동조합활동을 금지하였다. 이것은 결국 훗날 군대에 의한 전체국토 장악의 예행연습이었다.
 
또 하나의 보기는 인도네시아로서, 세계은행의 다자간 투자보증기관(MIGA: Multilateral Investment Guarantee Agency)이 엔론(Enron)社가 수하르토 정권과 맺은 부패한 전력구입협정(PPA)을 보증하였다. 전력당국은 지불할 수 없었고, 엔론社는 MIGA에게 보상금을 요구하였다. MIGA는 이 보상금을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되받았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항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불을 거부하면 인도네시아에 대한 투자에 대해서는 앞으로 일체 보증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협박하였다.
 
기업의 교차보조(cross-subsidy)
사유화에 의해 상실되는 것은 공적 교차보조이지, 민간의 교차보조가 아니다. 다국적기업은 광범위한 국가들에서 여러 가지 사업들로부터 이윤을 획득하여 그것을 다른 장소로 배분하고 투자하는 지구적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것이 다국적기업의 핵심이며, 예를 들면 에너지 헌장(Energy Charter) 등의 많은 무역거래는 정확히 자금을 A국가의 부문1로부터 B국가의 부문2로 이동하는 것을 허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 극단적인 보기가 2000년 1월의 비벤디(Vivendi)社의 행위로서, 미디어와 통신에 투자하기 위해 많은 자금을 차입한 이 회사는 물, 에너지, 폐기물, 운수를 포괄하는 새로운 ‘환경부문’(현재는 별개의 회사인 베올리아 Veolia社가 되어 있다)을 창설하였다. 비벤디社는 비벤디 그룹의 모든 부채(220억 달러)를 이 부문에 떠넘기는 한편, 통신부문을 ‘부채 없게’ 만들었다. 베올리아社의 물, 폐기물, 에너지 고객들은 아직까지도 요금으로서 여분의 이자까지 지불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은 떠날 수 있다
다국적기업은 특정 국가의 공공서비스에 대하여 장기적인 약속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첫 번째 책임은 주주에 대한 것이며, 주주들의 자본에 대하여 위험을 고려한 적절한 수익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된 사업에 주주들을 계속 묶어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비스제공에 대한 다국적기업들의 약속은 느슨한 것으로, 예상수익이 나오지 않으면 재검토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최근의 보기로는, 개발도상국 투자사업의 1/3을 철수시킨다고 발표한 수에즈社의 정책, 또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수에즈社의 자회사가 필리핀의 물사업에서 아직 장기간에 걸쳐 계약년수가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특허계약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한 것 등이 있다.
 
[사례13] AES社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의 에너지 사업에서 손을 떼다
다국적 에너지 기업 AES社도 충분한 수익을 제공하지 않는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2003년 8월에 전력가격의 하락에 의해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이 회사는 (영국 전력의 8%를 생산하는) 영국 최대의 드랙스(Drax)발전소에서 철수했다. 그 후 같은 달에 이 회사는 우간다의 부주갈리에 있는, 물의를 일으킨 거대한 수력발전프로젝트에서도 철수한다고 발표하여, 우간다 정부가 다른 회사를 찾아보던가 대안적 에너지 정책을 개발해야할 상황에 빠뜨렸다.
 
2년 전에 이 회사는 인도에서도 똑같은 일을 하였다. 1999년에 AES社는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주(州)의 하나인 오릿싸(Orissa) 州의 배전회사의 하나를 인수했다. 1개월 뒤, 싸이클론이 오릿싸 주를 급습하여 수 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가옥과 마을, 그리고 전력망의 일부가 파괴되었다. AES社는 자기 회사가 전력망에 대해서 보험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전력망의 재건비용으로 인도 정부가 6천만 달러를 자기에게 지불하든지, 아니면 오릿싸 주의 주민의 전력요금을 3배로 인상하라고 주장하였다. AES社의 최고경영책임자인 데니스 바케(Dennis Bakke)는 “정부가 부담하지 않으면 주민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애초 사유화의 목적은 시스템의 재정위기에 대처하는 것이었지만, AES社는 오릿싸 주의 국유회사 Gridco에 의한 대량의 전력공급에 대한 지불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Gridco는 전력을 구입할 자금이 없었다. 2001년 7월에 AES社의 임원들은 이 배전회사에서 사임하였다. 종업원들은 임금체불 때문에 파업하겠다고 위협하고 있고 소비자들은 늘어나는 정전사태에 항의시위를 하게 되자, 2001년 8월 말에 규제당국은 사실상 사태수습에 나서야 했다.
 
사하라 사막 남쪽의 아프리카 국가들의 공공교통 사업에서 다국적 기업들이 철수한 사례도 있다. 말라위는 1995년에 버스사업을 사유화하여 영국에 본거지를 둔 다국적기업 Stagecoach社에 양도했다. 버스사업이 독점이었을 때 이 다국적기업은 성공을 거두었다. 자유화와 경쟁이 도입되어 버티는 것이 어려워진 Stagecoach社는 1997년에 철수하였다. “승객부문과 상업수송부문의 자유화에 의해 민간사업자와의 경쟁이 차량투자와 자본수익을 잠식하게 되자 Stagecoach社는 궁지에 몰렸다.” 공공당국이 서비스를 공급해야 할 처지에 놓였으며, Stagecoach社가 갖고 있던 버스회사의 주식은 국가의 지주회사가 다시 사들였다. 왜냐하면 버스 서비스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버스회사의 현재의 조업을 유지하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1년 후에 비슷한 일련의 사태가 케냐의 나이로비에서도 일어났다. 나이로비도 보스사업을 사유화하면서 Stagecoach社에게 양도하였다. 1998년 9월 Stagecoach社는 케냐의 버스회사를 매각하였다. 이 회사는 적자를 보고 있었고, 케냐 의회는 이 회사의 60년에 걸친 독점을 폐지하고 경쟁을 도입하도록 결정하였다. Stagecoach社는 160명의 운전사와 차장을 6개월 이내에 해고하겠다고 발표하였다. Stagecoach社는 요금을 대폭 인상하여 택시 요금보다 높은 때도 있었으며, 그 후 적자노선을 폐지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흑자경영은 할 수 없어서 결국 완전히 철수하였다. 버스사업은 케냐사람들이 설립한 새로운 회사가 인수하였고, 이 회사는 요금을 대폭 인하하였다.
 
민간융자의 위험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공공서비스는, 장기적으로 보증된 계약의 대가로 민간부문을 이용하여 자본투자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책 때문에, 압박을 받고 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공공부문의 차입을 억제하는데, 바로 이것은 많은 정부의 정책목표임과 동시에 예외 없이 IMF가 요구하는 공식 조건이다. 공공서비스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앞으로 20년 - 30년에 걸친 계약상의 의무 때문에 민간사업자에게 변함 없이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업자는 지불요구액을 최대화함과 동시에 서비스를 위해 사용되는 자원을 제한함으로써 이윤을 지속시키려는 명확한 동기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의 PFI(private finance initiative: 사적자본도입에 의한 사회자본정비)는 공공당국에 대하여, 병원 건설, 학교 보수, 하수처리장 건설, 그리고 심지어 새로운 국민보험제도의 개발을 위하여 이 제도를 사용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병원의 경우, PFI제도에 의한 비용은 언제나 예외 없이 애초 견적보다 더 많았으며, PFI에 의해 자금을 조달한 병원에서는 병상수(病床數)를 30% 줄이고 직원을 20% 줄여야 했다. 학교에 있어서 PFI에 대한 공식감사보고도 기대되었던 경비절감이 실현되지 않았다고 경고하였다. 또한 이 보고에 의하면, “PFI 이외의 선택방안을 동등하게 유리한 조건으로 추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본조달 인센티브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강력한 논거가 있다. 이것은 PFI 메커니즘 자체를 경쟁에 노출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런던 북부의 학교를 개선하기 위한 PFI 프로젝트에서는, 책상과 의자, 컴퓨토용 배선 등의 비용이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방자치체가 625만 파운드의 추가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접근법이 특히 수도와 전력부문의 인프라 투자에 대하여 채택되고 있다. 30년 이상의 장기수도사업특허계약이 투자를 유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다국적기업들에게 주어져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많은 계약들에서 요금이 인상되었고 투자가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통화평가절하에 대처하지도 못하였고 수요는 예상보다 적었고 공공당국에 의한 통제도 상실되었다.
 
수도 사유화를 이 부문으로 주식투자를 유인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정당화했던 영국에서는, 요금규제 강화에 대하여 민간 수도회사들은 거의 모든 주식을 회수하고 그것을 부채로 바꾸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이것은 공공당국이 사용해왔던 고전적인 자금조달형태이다. 그러나 공공당국은 늘 민간기업보다 낮은 금리로 융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수도회사들이 부채에 의한 자금조달로 되돌아 간 것은 사실상 사유화의 핵심적 논거를 스스로 거부하는 것이다.
 
[사례14] 세계은행과 18세기
세계은행 등이 민간회사로의 위임을 통하여 서비스와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을 옹호할 때, 그들은 현대 지구화의 새로운 혁신적 상황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18세기의 유럽에 존재하고 있던 것과 똑같은 시스템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빅토리아 이전의 영국수상이었던 로버트 피일(Robert Peel)이 1828년 의회에서 표명한 다음과 같은 견해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수도사업의 개선은 정부에 의해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그 비용도 국민이 부담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수돗물은 지금까지 민간회사가 청구했던 요금 정도의 값싼 요금으로 결코 공급될 수 없을 것이다...정부의 개입은 사유재산에 대한 개입과 마찬가지로 아주 인기 없는 정책이 될 것이다.” 몇 년 후, 런던에 퍼진 콜레라 전염병은 이 견해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으며, 밀(Mill)은 당연한 귀결로서 독점사업의 공적관리 필요성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다. “진정으로 공중에게 중요한 사업은 경쟁의 자유를 거의 몽상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대규모가 되어야만 유리하게 조업할 수 있다...그것을 바로 공적 기능으로 취급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그 후 1세기가 지난 후, 피일이 옹호했던 낡은 시스템은 공공서비스의 ‘구체제’(ancien regime)인 과거의 민간시스템에 내재하는 비효율성, 비용, 부패 때문에 공적 소유와 공적 공급으로 완전히 대체되었다. 19세기말 이것의 주요 메커니즘은 지방자치체 설립이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시당국은 기존의 사업 및 운수시스템을 매입하여, 민간업자보다 더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더 효율적이며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고용조건을 제공하며 지역주민들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근거 하에 독자의 새로운 시스템을 설립하였다. 시당국은 자금을 차입할 수 있는 권리, 따라서 독자 시스템 개발에 투자할 권리도 획득하였다. 공적으로 소유․운영되는 지방공영사업의 발달은 ‘자치제 사회주의’(municipal socialism)(또는 가스․수도사회주의)로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국가 차원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발전이 있었다. 글래드스토운(Gladstone)과 디즈레일리(Disraeli)의 보수당 정권과 자유당정권은 전신시스템을 국유화하였고, 밸포어(Balfour)와 애스퀴쓰(Asquith)의 보수당정권과 자유당정권은 새로운 전화시스템을 국유화하였다.

 
보증, 채무구제, FDI(외국인직접투자)의 한계
정부의 채무부담은 어느 관점에서 보더라도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어 왔으며, 그리하여 국제적인 압력에 의해 ‘과중채무 빈곤국가의 채무구제계획’(HIPC)가 만들어졌다. 개도국이 지원을 받고 HIPC의 대상이 되기 위한 조건의 일부로 IMF는 개도국에게 공공부문의 차입을 삭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서비스의 사유화 압력은 그와 병행하여 아래의 세 가지 주요 메커니즘을 통하여 정부의 채무부담을 증가시킨다.
 
사유화된 서비스에 투자하기 위해 민간기업이 융자를 받을 때, 정부는 보증을 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예를 들면, 필리핀정부는 마닐라에서 사업특허에 의해 민영화된 수도회사의 하나인 메이닐라드(Maynilad)가 받은 융자를 보증해주고 있다. 폴란드정부는 투로우(Turow)발전소를 건설하는 다국적기업의 민간 공동사업체(consortium)가 받은 융자를 보증해주고 있고, 페루정부는 리오 칠론(Rio Chillon) 수도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는 민간 공동사업체가 발행한 채권을 보증해주고 있다. 또 공공당국은 생산물을 ‘인수하든가 지불하든가’라는 형태의 구입보증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소위 독립전력생산업자(IPP: independent power producers)의 대부분은 전력구입협정에 의해 지원받고 있으며, 이 협정에 의해 공동당국은 필요와는 상관없이 업자에게 이윤을 보장해주는 가격으로 전력을 구매할 의무를 지고 있다. 비슷한 장기적 ‘인수하든가 지불하든가’ 형태의 협정은 터키의 이즈미트(Izmit), 페루의 리오 칠론, 중국의 쳉두(Chengdu)에서 민간자금에 의해 건설된 대형 수도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PFI제도 하에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고 있는 공동사업체에 대하여 영국정부는 ‘그림자 통행요금’의 지불을 보증해주고 있다.
 
개도국의 공공서비스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시장찬미자들의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었다. 아래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외국인직접투자는 개도국 자체의 국내자본투자보다 훨씬 더 적다. 외국인직접투자는, 특히 정부보증이 이용되고 있는 곳에서는 추가투자가 되지 못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해당국가의 국제신용도가 노출됨에 따라 정부의 보증을 받은 국제융자가 허용되는 총액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3년에는 국제민간자본이 많은 개발도상국을 기피하고 있을 때, “주로 연금기금과 보험기금 및, 은행융자를 통한 국내저축이 국내인프라의 자금원이 되고 있다.”
  
4.3  노동
 
서비스의 중심은 노동자
공공서비스, 특히 교육과 보건의료와 같은 서비스에서는, 서비스의 주된 구성요소는 교사, 간호사, 구급의, 청소원 등의 노동자 자신이다. 사업적으로 보면, 이러한 서비스는 노동집약적이다. 즉, 이러한 서비스의 질은 노동의 질과 양과 강력하게 그리고 결정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교육에서는 교사 1인당 학생의 수가 교육의 질의 척도로서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교사가 많을수록 좋다. 이것은, 교사가 더 많고 학급당 학생 수가 적을 것을 기대하고 또는 간호사가 더 많고 더욱 고도의 자격을 갖춘 의사가 더 많을 것을 기대하고 사립학교나 사립병원에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도 인식하고 있다.
 
직원의 수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교육에서 아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국가가 초등교육의 수업료를 폐지하면 학생 수는 급증한다. 그러나 교사를 추가 채용하지 않으면 교육의 질은 저하될 수 있다. 말라위에서는, 그 결과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급증하였는데, 교사들을 추가 채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라위는 교사 1인당 110명의 학생이라는 교사대 학생의 비율을 낮추기 위해 준(準)교사를 이용하였지만, 교사의 수와 질은 아직도 이용자들에 의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우간다에서도 결과는 비슷하여, 교사대 학생의 비율은 전국적으로 38에서 65로, 지방에서는 48에서 70으로 각각 증가하였다.
 
노동시장의 지구화는 특수한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선진국의 공공의료와 공공교육 서비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도국의 숙련노동자를 사용해왔다. 최근에는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데, 선진국은 간호사와 교사를 양성하는데 충분한 투자를 하지 않고 그 대신 남아프리카공화국, 카리브해 연안국가들, 필리핀 등의 국가들로부터 그러한 기능을 가진 숙련노동자들에 의존하여 대처하고 있다. 이것은 2개의 특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즉, 선진국은 숙련인력을 값싸게 획득할 수 있는 반면에, 개도국은 인력양성에 쏟은 투자의 수익을 받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공공서비스와 경제에도 중대한 영향이 미치고 있다. 때때로, 개도국은 이러한 숙련인력 대신에 더 낮은 임금을 받고 더 낮은 기술을 가진 노동자를 고용하게 되어 결국 서비스의 질이 손상되는 일도 있다. WTO의 GATS에 들어있는 조항들은 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임금과 노동조건:  서비스에 미치는 영향
저임금이나 불안정한 고용은 보건노동자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영향을 미친다. 저임금은 이용을 위한 비공식적인 추가요금, 보건노동자의 부업, 민간부문으로의 이직 등을 초래할 수 있다. 중부유럽과 동부유럽에서는, 보건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지급지연에 의해 큰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이것은 부분적으로 재정위기의 결과이기도 하고, 또 의약품에 대한 지출이 우선시되어 임금지불이 지연된 결과이기도 하였다. 공정임금의 중요성은 세금을 징수하는 노동자들과 관련해서도 명백하다. 이 점은 정치철학자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에 의해 이미 18세기에 지적되었다([사례15] 참조).(주. "많은 경우, 통제와 적절한 규제가 결여된 상태에서 급속한 사유화가 진행됨에 따라 보건의료의 발전은 대혼란에 빠졌고 정상적 운영관리가 불가능해졌다. 높은 가격, 수입약품의 범람, 지나친 이윤폭 때문에 사람들의 지불능력 부족이라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WHO European Health Care Reforms: Analysis of Current Strategies: Summary, p. 25). "폴란드 소비자연맹은 소책자를 발행하여, 번창하는 폴란드시장에 나와 있는 많은 의약품들이 쓸모없거나 값 비싸거나 혹은 이 모두에 해당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환기시켰다.” (FT Bus Rep 10 October 1995))
 
[사례15] 토마스 페인(Thomas Paine)과 세금징수원(tax collectors)
공공서비스에 있어서 노동자가 적절한 임금을 받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인간의 권리”(The Rights of Man)의 저자인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이 이미 18세기에 주목하였다. 1772년에 페인이 영국의 관세․소비세당국의 소비세(간접세) 담당 지방 세금징수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 세금징수원의 임금 인상을 지지하는 소책자를 썼다. 페인은 부패와 무능한 직원의 문제가 세금수입 감소를 가져온다고 지적하면서, “우리 사무소에서는 사기행위와 공모행위가 채 일주일도 안 돼서 몇 건씩 적발되고 있다...근년에는 부적합하고 자격미달의 사람들을 소비세 담당으로 채용하고 있어 우리 사무소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수입도 불안정해졌다”고 쓰고 있다. 페인은 임금을 제대로 받고 충분한 자격을 갖춘 직원이라면 부패에 빠지는 일도 적을 것이고 국가의 수입도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람이 정직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정직하게 살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다. 정직하고 유능하게 살 수 있도록 임금을 충분히 인상하는 것은 이 나라의 모든 법률이 이룩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좋은 효과를 낳을 것이다...세금징수원들은 빈곤의 유혹에서 벗어날 것이고 수입도 빈곤의 사악함과 분리되어 보호될 것이다. 사태의 개선은 현재의 불만만큼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것이고, 새로운 건전함이 현재의 부패를 근절할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페인은 이 임금인상요구서를 작성하였다는 이유로 영국 정부에 의해 해고당했다. 그 후, 그가 쓴 “상식”(Common Sense), "이성의 시대“, ”인간의 권리“는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1776년의 미국혁명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1789년의 프랑스혁명 후에 프랑스 국민공회의 명예대의원이 되었다.
 
그러나 채 30년도 지나지 않아서 영국에서는 적극적인 고용정책에 의해 효과적인 세금징수기구가 개발되었다. 1797년의 소득세도입은 지속가능한 수입원으로서 착실히 중요성이 증가하였고 세금징수도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세금징수원들에 대하여 주의와 배려가 베풀어졌다는 것이다. “새로운 효율성이 나타난 주된 원인은 신뢰할 수 있고 유능한 세금징수원들을 훈련시키는데 정부가 처음으로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상황을 개선하려면, 더 나은 임금과 더불어 훈련을 통한 적절한 능력개발도 필요하다. 캄보디아의 보건의료서비스의 ‘뉴딜’(New Deal)계획에서는 빈곤층에 대한 의료비보조와 함께 보건노동자의 소득향상도 제공하였다. 접근과 이용은 개선되었으나,  간호의 질은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보고서의 결론에 의하면,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려면 더 많은 훈련과 능력개발이 필요하다(Van Damme and Messen, 2001) .
 
임금인상에 의해 서비스가 개선될 수 있다는 놀라운 사례가 방글라데시에 있다([사례16] 참조).
 
[사례16]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Dhaka)에서는 수도노동자의 임금 두 배 인상이 서비스와 재정을 개선하다 (미국의 헨리 포드가 했던 것과 똑같이)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의 상하수도공사(DWASA)는 다카의 식용수, 하수, 폭풍우 때의 배수사업을 담당하는 공공부문 공익사업체로 설립되었다. 1990년대에 이르자, DWASA는 재정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비효율적이었고 시스템의 손실률도 높았다. 세계은행(국제개발협회)은 구조개혁, 민영화 검토, 요금의 청구와 징수 및 기타 업무의 실험적 사유화 등을 부대조건으로 하여 새로운 융자를 제공할 것을 제안하였다. 노동조합은 사유화의 가정된 이점들을 실제로 테스트하겠다고 역으로 제안하였고, 최종적으로는, 국제개발협회, DWASA, 정부대표 및 노동조합은 1년의 실험기간 동안 하나의 수입구역(Revenue Zone)을 민간부문 하에 두고,  다른 또 하나의 수입구역은 직원공제조합 하에 두어 각각 테스트하기로 합의하였다.
 
확실히 직원공제조합(EC)이 DWASA와 민간업자보다 월등한 업적을 보였다. EC가 담당한 구역에서는 수입이 크게 증가하였고, ‘감정서에 기록되지 않은 물’이 줄어들었다. EC의 성공 원인은 DWASA가 지급하는 임금의 두 배로 임금을 인상하여 직원들의 성의를 확보했다는 것, 참여 의사결정을 통하여 노동자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사유화된 EPC의 실패 원인은 과거의 경험의 결여, 가분수형 관리체제, 그리고 현장직원의 지식을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 등이다. DWASA 구역은 관료주의, 저임금, 그에 따른 부패와 비효율 때문에 계속 실패하였다.
 
빈곤층과 슬럼가 주민들도 EC 때문에 이익을 보았다. 노동자들이 DWASA의 규칙에서는 통상금지되어 있는 일반가정에의 접속을 하였기 때문이다. DWASA의 규칙에서는 (통상 비용으로) 극빈세대에도 물을 공급할 수 있으나, 이를 위해서는 극빈세대가 DWASA의 지역 내에 토지를 정식으로 소유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극빈세대의 대다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물을 파는 민간업자로부터 통상 가격의 10배의 값을 치르고 물을 살 수밖에 없었다. EC는 많은 이러한 가정들을 수도에 접속시켰고 일반가정요금 수준으로 요금을 징수하여, DWASA의 수입을 늘렸고 빈곤층에게는 더 값싸고 신뢰할 수 있는 물을 제공하였다.
 
이것은 1914년에 미국의 헨리 포드가 자동차노동자의 하루 임금을 2.5달러에서 5달러로 두 배 인상했을 때의 경험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종업원의 이직률과 결근이 줄어든 반면, 포드社의 노동생산성은 같은 해에 약 51% 상승하였다.
 
자율성과 열정(성의)
공공서비스노동자, 특히 전문직 노동자는 한 일에 대하여 보수를 받는다고 하는 전형적인 경제적 동기를 초월하여, 자신의 일에 대하여 더 큰 책임과 열정을 통상 기대할 수 있다. 이 상대적 자율성은 단순히 노동시간의 의미뿐만 아니라 더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생산성의 원천이다. 교사는 세부적으로 지시받는 것보다 본인의 판단에 따라 일할 때 좋은 수업을 할 가능성이 더 크다. 사유화, 민간위탁 또는 ‘민간부문방식’의 경영관행을 공공부문에 도입하는 것의 문제점의 하나는 이 효과적인 공공부문조직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주. 공공서비스 윤리의 경제적 가치에 관하여 설명한 것으로는 다음을 보라. Patrick Francois, "Public Service Motivation as an Argument for Government Provision", in Journal of Public Economics, vol.78, issue 3, (November 2000), pp. 275-299. 이 저자의 결론에 의하면, “공공서비스의 중요성과 독특성을 만들어내는 헌법적, 법률적, 문화적, 리더십 요소들은 반영되지 않거나, ‘개혁’되어야 할 관료적 문제로 처리되어 버린다.” 이 저자는 노동자 자율성의 이득에 대한 증거로 Denhardt(1993), Wilson(1989), Gold(1982), Rainey and Steinbauer(1999)를 언급하고 있다.)
 
브라질의 세아라(Ceara) 주(州)의 경험([사례17] 참조)은, 새로운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시민참여와 감시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것과 아울러, 어떻게 노동자들의 일에 대한 열정을 공공서비스의 개혁과 혁신에 활용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사례17] 열대지방의 뛰어난 정부 - 브라질 세아라(Ceara)州의 노동자들과 혁신적 제도
1980년대에 브라질 북서부의 세아라 주 정부는 (실재하지 않는 ‘유령직원’에 대한 지불을 중단함으로써 임금을 관리하는 것을 포함하는) 일련의 개혁을 도입하였다. 또 “예방위생, 비공식부문 생산자로부터의 공공조달, 대규모 긴급공공사업프로그램 등에 있어서 몇 개의 뛰어난 혁신적 프로그램”과 농업확장사업을 도입하였다.
(주. Judith Tendler, Good Government in the Tropics, (John Hopkins University Press, 1997), pp.9, 13)
 
쥬디쓰 텐들러(Judith Tendler)가 이 프로젝트들에 대하여 쓴 책의 결론에 의하면, 모든 프로그램들은 “높은 성과와 중요한 영향의 조짐들을 보여주었다. 예방위생에서는, 유아사망률이 감소하고 백신 접종률이 극적으로 증가하였다. 농업확장에서는, 농민의 생산량과 생산성이 측정 가능할 정도로 크게 증가하였다. 조달프로그램에서도, 소규모 공급자들의 생산량과 생산성이 증가하였으며, 아울러 지역경제의 발전에 중요한 파급효과를 만들어냈다. 가뭄에 의한 비상시기에 공공사업 건설프로그램은 평소보다 더 빨리 고용을 창출하였고 장비와 행정보다 노동에 대한 지출 비율을 크게 높였으며 고용과 프로젝트 및 구호 물자를 연고주의에 따라 배분하지 않았다.”
 
텐들러는 모든 사례들을 관통하는, 업적향상의 4개의 공통 원인을 밝혀냈다.
첫째, “이 프로그램들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직무에 대하여 큰 열의와 헌신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주류’ 개발조언에 의해서 무시되고 있는 요소라고 텐들러는 시사하고 있다.
 
둘째, “정부 자체가 노동자들의 높은 헌신성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존경을 표시하였다. 정부는 이러한 특정 프로그램들과 그 노동자들에게 사명감을 불어넣었다. 정부는 프로그램에 대하여 작은 성공이라도 끊임없이 선전하였다. 탁월한 업적에 대해서는 화려한 연출과 의식을 통하여 표창하였다...이 모든 것이 일반시민들이 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존경심을 갖도록 하는데 기여하였는데, 이것은 정부에 대한 경멸감이 널리 퍼져있던 시기에 참으로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또 다시 이것은 “그렇지 않다고 증명되지 않는 한, 공무원은 유감스럽게도 자기이익을 추구할 뿐이라고 가정하는 개발조언”과는 크게 대조적인 견해이다.
 
셋째, 노동자들은 보통 때보다 더 광범위하고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였는데, 특히 고객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고 고객에 필요에 더 빨리 대응함으로써 고객과 공무원 사이에 신뢰와 존경이 싹 텄다. 이것은 공무원의 재량권을 계획의 세부사항에만 국한시키는 종래의 개발조언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요구에 민첩하게 대응하여 일이 진행되도록 하기 위하여, 시민이 작업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 개발되었으며, 정보를 제공받고 기대감을 가진 시민에 의해 노동자들 자신도 늘 모니터링되었다. 지역주민이 공공당국과 노동자에 대하여 요구를 제기하는 것이 장려되었으며, 주 정부는 노동자의 작업시간을 정확하게 알렸다. 이것은 끊임없는 홍보활동의 또 다른 측면이었는데, 정부는 지역주민에게 감시자의 역할을 맡도록 촉구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당신의 프로그램이며, 그것의 성공을 결정하는 것도 당신입니다...선출된 사람들이 규칙을 확실히 지키도록 하고, 누군가 규칙을 위반한 경우에는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 사례들은, 특히 중앙정부의 약화를 통한 ‘지방분권화’의 미덕에 대한 단순한 사고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사례들은 활동의 분권화를 포함하고 있지만, 중앙정부, 시민사회, 중앙정부의 ‘3자간의 역학’을 보여준다. 어느 측면에서 주 정부는, 예를 들면 채용자의 선발과 출자할 프로젝트의 선정에 있어서 기준을 부과하고 스스로 책임을 떠맡음으로써 지방자치체의 재량을 실제로 축소하였다. 주는 예를 들면 홍보캠페인을 통하여 민주적인 시민활동을 촉진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하였고, 가뭄구제프로그램에 있어서는 새로운 자치체협의회를 창설할 것을 주장하기까지 하였다. 이 모든 활동들을 스스로 이끌었던 주 지사는 현대적 기업가 집단의 지지를 얻어 그 위치에 올랐다.
 
적극적 사용자로서의 공공부문
공공서비스는 중요한 고용 제공자이다. 자동화에 의해 제조업의 노동력 수요가 감소함에 따라, 공공서비스는 20세기 중엽부터 고용성장의 중심적 원천이었다. 이것은 특히 여성에게 중요했는데, 보건, 교육 및 사회서비스에서 여성이 노동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특히 높다. 의료, 구급의료, 간호, 청소, 요식조달(catering) 등의 직업은 주로  이 부문들에서 만들어진 고용이다.
 
역으로, 이 서비스의 사유화는 임시직 확대와 임금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 캐나다의 브리티쉬 콜럼비아 주에서 행해진 조사에서는, 의료보조직의 사유화에 의해 여성이 대부분(85%)을 차지하는 이 분야 직원의 임금은 크게 낮아질 것으로 판명되었다. 2003년에 다국적기업 Compass社에 주어진 계약에서는, 보건의료 관리사무직원의 임금수준이 1984년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것은 대처 정권하의 영국에서 보건의료와 자치체업무가 조직적으로 민간위탁될 때의 경험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것의 주요 대상은 청소, 요식조달 및 세탁업무에 고용되어 있는 여성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저임금노동자였다. 국가의 노동시장에서 훈련․개발기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부문이 몇 개 있다. 몇 몇 국가에서는, 철도시스템이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 중에서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보수, 영접, 그리고 이와 비슷한 엔지니어링 및 건설기술 등의 많은 직업의 많은 견습연수와 훈련을 담당하였다. 사무직에 있어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면, 영국의 공무원은 전국적으로 보면 1960년대 이후 훈련받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창출하는 주된 원천이었으며, 오늘날에도 높은 자질을 갖춘 과학자들의 최대 사용자이다.
 
또한 공공부문은 많은 경우 차별철폐정책, 즉 성별 또는 인종에 의해 불이익을 받는 후보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우선권을 부여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에서 아주 중요하였다. 2003년 7월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대학이 일정한 기준 하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차별적으로 우대할 수 있다는 원칙을 지지하였다. 이 판결을 지지한 사람들 중에는, 차별철폐조치의 성공을 상징하는 미국 군부의 고관인 콜린 파월(Colin Powell)과 노오먼 쉬바르쯔코프(Norman Schwarzkopf)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성을 차별적으로 우대하는 것의 중요성도 보여주었다. 이 판결을 지지한 연방대법원 판사의 한 명은 그녀 자신도 차별철폐조치가 없었다면 그 지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공공부문은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갖고 있는 노동자의 고용을 보호하는 직장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이 역할은 사회적으로 중요하지만, 노동력의 생산성을 저하시키기 때문에 서비스가 하청주어지면 이 역할이 위협받게 된다. 1981년 대처정권 하에서는 쓰레기 수집업무에 처음으로 민간업자가 사용되었을 때, 처음에는 업자는 학습장애가 있는 노동자를 선전소책자에 이용하였지만 몇 개월 후에는 조용히 해고하였다.
 
4.4 공공서비스의 미래
 
공공서비스의 역할은 세계사회와 세계경제에서 더욱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현재 공공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되고 있지 못한 개발도상국들에서는 공공서비스가 필연적으로 성장한다. 이 국가들이 성장하고 이들의 기대도 커짐에 따라, 과거에 선진국이 그랬던 것처럼, 공공서비스에 투여되는 국부의 비율이 증가한다.
국가들의 공공서비스 산업이 성장한다. 이런 국가들의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들의 욕구가 커짐에 따라 과거 선진국들이 경험했던 것과 같이 공공서비스에 대한 투자는 늘어난다.
 
둘째, 공공서비스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있다. 여기에는, AIDS에 대한 대응 및 고령자 간호 등의 보건의료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포함된다. 각 국가 및 국제 차원에서 공공당국은 교육을 모든 사람에게 확대하고 미래의 ‘지식사회’ 또는 ‘지식경제’를 구축하기 위한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셋째, 지구화는 지구화 과정을 지원하고 규제하며 그것에 공헌할 공공부문의 국제적 역할의 지속적 확대를 요구할 것이다.
 
변화하는 욕구를 명확히 보려면, 인터넷을 개발하고 정보기술의 필요에 대응하는데 있어서 공공서비스가 하는 역할, 그리고 국제적 공공서비스의 다양한 발전동향을 주목해보면 된다.
 
새로운 책임영역: 인터넷과 정보기술
세계 정보네트워크의 핵심적 요소인 인터넷은 공공당국이 창출한 것이다. 인터넷은 미국의 국방 및 대학의 컴퓨터시스템이 공적자금에 의한 계획적 정책조치로서 네트워크를 만듦으로써 탄생하였다. 그것은 1989년의 네 개의 호스트 컴퓨터로 시작하여 1990년대에는 2000개를 넘어섰는데, 이 기간 동안 민간부문은 인터넷을 “공개된 연구와 교육에 한정하여 이용할 수 있었고, 다른 목적을 위한 이용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 후 1990년 이후 인터넷은 민간 사용에도 개방되었다.
 
공공당국은 정보․컴퓨터기술(ICT)을 개발하고 공공서비스 자체에서 ICT를 이용하는데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이러한 역할에 포함되는 것은, 서비스의 직접적 제공, 특히 학교와 대학의 교육 서비스, 도서관, 우체국, 학교 및 기타의 장소에 공공인터넷 설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획득과 개발을 위한 조달․개발 결정, 예를 들면 네트워크와 기준의 관리에 관한 기획기능, 그리고 서비스와 정보를 시민들이 이용하기 쉽게하기 위한 인터넷의 사용(‘전자정부’) 등이다.
 
이러한 서비스들은 현재 모든 국가에서 정부가 개발하고 있다. 아래에 소개하는 말레이시아는 일반적 유형의 한 보기이다.
 
[사례18] 말레이시아의 ICT 개발과 전자정부
말레이시아 정부는 국가ICT(정보통신기술)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이 위원회는 말레이시아의 국가능력을 개발하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다. 프로그램들은 크게 5개의 항목으로 나누어지며, 광범위한 공공기관이 관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 속에는, 교육․훈련․능력개발을 위한 프로그램, 전자비지니스의 지원, 네트워크를 빈곤한 지방지역으로 확대하기 위한 ‘보편적 서비스의무’에 대한 재정지원, ‘전자정부’ 서비스를 위한 인터넷의 이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자치체를 고성능의 상호작용형 코뮤니티센터로 변화시키기 위한 실험적 프로제트가 현재 수방 자야(Subang Jaya)에서 진행되고 있다.
 
또 말레이시아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하여, 자원이나 사회기반시설이 빈약한 국가에서 어떻게 정보기술을 개발할 것인가에 관하여 적극적인 조언을 제공하고 있다. 그  조언의 핵심 요점은 아래와 같다. “OSS(Open Source Software: 즉 리눅스(Linux)와 같은 비상업적 무료시스템)의 채택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소프트웨어의 최초의 경비는 라이선스가 있는 소프트웨어의 비용에 비하여 아주 소액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적으로 OSS 코뮤니티는 크며, 이것은 기술적인 지원을 더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인접국가인 인도는 OSS의 열렬한 지지자이다. 또 하나의 이점은 OSS와 인터넷에서 이용가능한 기술지원 네트워크를 사용하여 프로그래머를 어릴 때부터 신속하게 훈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새천년 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와 인권
‘새천년 개발목표’(MDGs: Millenium Development Goals)는 2000년에 유엔이 합의한 목표이다. 사실상 모든 MDGs는 공공서비스를 통한 정부의 행동에 명백히 의존하고 있다. 보통초둥교육의 달성, 아동사망률의 저하, 임산부의 건강개선, HIV/AIDS 및 기타 질병의 퇴치 등은 모두 공공보건의료 및 교육서비스의 확대에 의존하고 있다. MDGs의 첫 번째 목표인 빈곤과 기아의 근절은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재분배를 위한 공적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 “성장만으로는 교육과 보건의료의 개선을 이룩할 수 없으며, 사람들을 빈곤의 덫으로 몰아넣는 사회적․정치적 불균형도 바로 잡히지 않을 것이다. MDGs를 달성하려면, 빈곤층이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힘을 권한(힘)을 부여해야 하며, 정부는 이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이들을 지원해야 한다.” 환경의 지속가능성에는 깨끗한 물의 공급과 이용의 확대라는 목표도 포함되어 있다. 발전을 위한 지구적 파트너쉽은 “에너지와 운수시스템, 인간의 숙련과 지식에 대한 투자를 필요로 한다.”
 
국제적 인권의 인식은 여러 공공서비스들에 걸쳐서 확대되고 있다. 2002년 11월, UN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위원회는 물에 대한 접근과 이용을 근본적 권리라고 선언하였고, 또 물은 그저 경제적 상품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재화라고 선언하였다.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을 비준한 145개 국가들은 이제 이 협약에 의하여 안전한 물에 대한 “공평하고 차별 없는” 접근과 이용을 촉진할 의무가 있다. UN 인권위원회(UNCHR)는 서비스, 특히 보건의료, 교육 및 물의 자유무역화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도록 WTO 가맹국들에게 강하게 촉구하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국제적 공공부문과 지구적 공공재(global public goods)
지구적 공공부문은, UN의 각종 대규모 국제기구들, 세계보건기구(WHO), 세계은행( 및 아시아개발은행 등의 지역개발은행),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형태로 이미 존재한다. 국민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이 기구들은 공적이익(관심사)보다 사적이익을 우선시할 수 있으나, 이 기구들은 집단적 정치적 발의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부정할 수 없는 공공기관이다. 이 기구들은 예를 들면, WHO는 보건, UNESCO와 같은 UN기구는 교육, 세계은행은 경제발전(그러나 실제로는 그 책임을 다하고 있지 못함) 등과 같이 특정한 공공서비스 영역에 책임이 있다.
 
국제적 공공재에 대한 일반적 접근법의 하나는 1999년에 UN에 의해 제시된 것으로, 이것은 국제적 공공부문 메커니즘을 통하여 공급되고 자금 조달될 필요가 있는 ‘지구적 공공재’라는 아이디어였다. 환경문제가 하나의 범주이다. 깨끗한 공기에 관한 개별국가의 입법은 이제 CFC와 이산화탄소 배출삭감에 관한 몬트리오올 의정서와 교토의정서 등과 같은, 대기오염에 관한 국제조약에 의해서 보완되고 있다. 국제어업규제는 어업자원보호를 위한 핵심 메커니즘이다.
 
의료보건문제는 또 하나의 범주이다. 예방접종에 의해 전염병을 통제하려는 협조적 노력에 의해 1990년대에는 천연두가 지구에서 근절되었다. AIDS와 HIV를 통제하기 위한 노력의 중심은 국제행동이며, 여기에는 의약품의 제조와 판매 등과 같은 경제적 문제를 복지와 공공의 이익에 기반한 국제적 결정에 종속시키는 것이 포함된다. WHO는 최근에 SARS가 대규모로 발생하였을 때 나타난 바와 같이 이러한 질병들의 감시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
 
지식과 통신은 국제적 행동의 필요성과 영역이 확대되고 있는 또 하나의 범주이다. 인터넷에의 접근은 교육에 있어서, 따라서 발전에 있어서도 필수불가결하다. “지구적 지식의 효율적인 생산과 공평한 이용은 집단적 행동을 필요로 한다” 지식에 관한 특허가 효과적이려면 국제적이어야 하며, 이제는 WTO의 TRIPS(지적소유권의 무역관련측면에 관한 협정) 메커니즘을 통한 합의에 따라야 한다. 이것은 이러한 쟁점들에 대하여 국제적인 공공서비스 접근법을 개발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WTO의 논의는 지적소유권을 오로지 무역자유화나 무역규제의 문제로만 다루고 있고, 의약품 등의 유익한 발명을 광범위하게 사용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공공이익, 특허 없는 발명의 존중과 격려, 기업특허와 이에 상응하는 법적 지원시스템을 갖고 있는 국가이외의 다른 국가들의 개발필요들을 무시하고 있다.
 
지구적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한 지구적 공적자금조달 및 과세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제안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더 효과적인 재분배를 위하여 과세기반을 현재보다 더 크게 장점이 있으며, 남아프리카 정부의 한 관리가 “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의 폐지에 필적하는 지구적 공공자금조달(public finance)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던 문제이자 과제이다. 가장 잘 알려진 제안은 노벨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James Tobin)이 제안한 국제금융거래에 대한 과제이다. 그 외에도, 국제항공여행에 대한 과징금,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 지불하는 요금의 일부를 지금까지 소홀히 취급되왔던 열대질병과 농업에 대한 연구의 지원 또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교육을 지원하는데 사용하자는 제안 등도 있다.
 
상호부조: 공공-공공 파트너십(PUPs: Public -public Partnerships)과 기타 행동
다른 형태의 국제협력과 행동도 발전하고 있다. 여기에는 공공-공공 파트너십(PUPs)의 일반적 개념, 즉 경험이 풍부한 기존의 기관이 이윤 목적이 아니라 상호부조를 기반으로 하여 능력개발을 돕기 위하여 다른 공공기관과 손을 맞잡는 것이 포함된다.
 
눈에 띄는 이것의 한 예는, 발트해 주변의 구 공산국가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의 자치체 상하수도회사들에 지원이 제공된 사례이다. 지원 자체는 자매결연협약, 재정원조, 개발은행융자 등을 통한 능력개발의 형태를 취하였다.
 
발트해의 오염 청소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협력공동체인 헬싱키위원회(HELCOM)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HELCOM에는 유럽연합 국가들, 개발은행 및 체제이행국가들이 참여하였다. 활동의 핵심은 발트해 공동종합환경행동프로그램(JCP)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발트해로 들어오는 모든 하천유역에서 폐수처리를 필요로 하는 문제의 ‘분쟁지역’(hot spots)을 찾아내고 이것을 공동의 문제로 처리하기 위해 기술적․재정적 자원을 중개하여 모으는 것이었다. PUP가 이 일환으로 도입되었다. 예를 들면, 리투아니아에서는 카우나스에 폐수처리장을 설치하려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것은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자금을 지원 받고 핀란드 공공부문기관(핀란드환경연구소)의 조언과 원조를 받았으며 스톡홀름 수도(Stockholm Water)와 자매결연을 맺으며 진행되었다. 스웨덴의 자치제회사들과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수도국들도 이와 비슷한 자매결연을 맺었다. 1998년의 조사에 의하면, 이 접근법은 잘 작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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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서비스가 답이다” (매일노동뉴스, 김재홍 기자, 2003-12-11 오전 10:28:31)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선 국제 공공노동자들의 대응
  
전 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은 공공부문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낳고 있다. 각국에서 공공기업들이 민영화되고 공공 서비스 관련 예산들이 감축되고 있다. 더구나 공공부문에 대한 공격은 대다수 국민들에게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서비스 제공에 대해 시장논리가 개입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을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최대의 공공부문 노조 연합체인 국제공공노련(PSI)은 지난해 9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세계 총회에서 ‘질 좋은 공공서비스(Quality Public Services, QPS)' 캠페인을 결의하고 신자유주의에 맞서 공공서비스를 지키기 위한 전 지구적 운동을 벌이고 있다.
 
PSI는 ‘공공서비스가 답이다’는 제목의 정책자료집을 통해 “공공서비스는 사회와 경제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관건”이라며 “공공서비스를 시장의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공공서비스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기능을 무력화시키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PSI는 공공서비스를 지키기 위한 QPS 운동의 핵심을 노동계와 시민사회 간 사회적 연대에 두고 있다. 공공서비스의 축소는 노동자들에게 뿐 아니라 사회전체에도 심각한 문제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PSI 한국 가맹조직들에게 QPS 운동을 설명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당부하기 위해 9일 방한한 QPS운동 총괄 코디네이터 웬디 케어드씨도 “공공서비스 축소에 대해 시민사회와 공공부문 노동자들 간에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며 “이들 간에 서로 결합하고 연대하는 것이 QPS운동의 목적”이라고 규정했다.
 
‘질 좋은 공공서비스’ 제공에 초점 맞춰야
 
먼저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제공받아야 할 공공서비스가 시장의 이윤추구논리에 의해 제공받지 못한다는 시민들의 고통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근로조건 악화와 함께 고민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케어드씨는 “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전문성과 인간다운 근로조건이 필수적이며 이런 환경이 부실해질 경우 공공서비스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공공서비스를 오랫동안 제공해 온 노동자들은 삶이 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으며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및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전 세계적으로 공공부문 민영화의 실패사례들도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케어드씨는 미국의 대규모 정전사태를 예로 들며 “민간기업이 이윤을 이유로 설비투자를 하지 않은 결과”라며 상수도, 철도 등 많은 영역에서 이 같은 질의 저하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 같은 실패사례들을 통해 지역사회와 노동계가 정부에게 사유화 정책에 대한 평가를 요구하고 사유화에 따른 비용증가, 장기적인 영향 등을 분석해 사유화 정책 중단에 대한 정책적 압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국에서도 97년 IMF 구조조정 이후 공공부문 사유화 추진이 본격화되면서 공공부문을 지키기 위한 노동계의 거센 투쟁들이 있었지만 전사회적인 연대를 이끌어 내고 정부정책을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케어드씨는 한국의 공공부문 사유화 문제에 대해 “일반 시민들도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누려야 할 공공서비스와 사기업의 이윤동기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게 될 것”이라며 “이 같은 인식을 얼마나 확산하고 여론으로 조직할 수 있느냐에 따라 사유화를 저지하거나 최소한 속도라도 늦출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케어드씨는 또 질 좋은 공공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며 “한국에서는 공무원들을 포함해서 공공부문에 대한 노동기본권이 제대로 확보돼 있지 않아 더 나은 공공서비스 제공을 위한 논의구조에 노조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미 오랜 공공서비스 제공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선진국에서는 노조가 단체교섭을 통해 공공서비스의 질을 개선하는 데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공공부문에 대한 노동기본권의 완전한 보장과 노조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케어드씨는 “현재 세계화를 이끌고 있는 자본과 다국적 기업의 이해에 대항할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가 ‘질 좋은 공공서비스 운동’이 될 것”이라며 한국에서도 전 지구적 연대와 함께 지역차원의 적극적인 활동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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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9 01:42 2009/06/29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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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촛불-복지연합,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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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부터 새록새록 나오더니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 민주주의, 파시즘X, 정당연합 등의 논의가 쏟아져 나온다. 여기에 노무현 정권에 대한 재평가 논의와 진보의 재구성, 그리고 독재에 대한 정의 등 다양한 부가적인 논의가 추가된다. 작년 촛불정국에 대한 환상이 부채질하는 점도 있으리라. 이에 대해 좌파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눈에 띄는 것들만 모았는데도 꽤 된다. 아래 글들 중에서 이광일, 김원, 손호철(애매하긴 하나), 조희연의 글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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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여, 다양한 세력 모아 한국형 뉴딜연합 만들라” (한겨레, 이세영 기자, 2009-03-26 오후 07:29:35)
진보-보수 합동 심포지엄
정책포럼-선진화재단 주최
‘감성의 정치’ 실현 등 제안

 
“감성의 연대가 필요하다.”(홍성민 동아대 교수), “밥 먹여주는 좌파로 거듭나라.”(주대환 사민주의연대 대표), “친북이 아닌 애북(愛北)·지북(知北)이 필요하다.”(김근식 경남대 교수)
 
진보세력의 회생을 위한 다양한 처방전이 제시됐다. 26일 중도좌파 두뇌집단(싱크탱크)인 좋은정책포럼(이사장 변형윤)과 뉴라이트 그룹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세일)이 공동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진보적 정치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다양한 ‘연대 전략’을 제안했다. 성장과 세계화, 북한 문제 등 진보의 ‘약한 고리’에 대한 성찰도 이어졌다.
 
‘한국의 진보, 그들은 누구인가’를 주제로 발표한 홍성민 교수는 진보세력을 향해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파트 부녀회, 전업주부, 노인, 취업준비생처럼 학문적으로 범주화하기 어려운 집단들이 한국의 현실정치에서 막강한 결집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홍 교수는 “감성과 취향 등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이것을 정치변혁의 역량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며 “이를 위해 계급과 이념, 옳고 그름에 호소하는 ‘이성의 정치’에, 정체성과 취향, 좋고 싫음에 주목하는 ‘감성의 정치’를 융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는 최근 진보진영에서 두드러진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에 대한 선호 현상의 배경과 한계를 조명했다. 그는 “북유럽 모델은 진보진영이 전통적으로 강조해온 평등과 연대의 가치에 부합하는데다, 최근의 경제 실적도 양호한 편이어서 특별한 관심을 끄는 것 같다”며 “문제는 이 모델과 관련한 논의가 지나치게 모델 확립 이후의 작동 방식과 성과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요컨대 한국이 어떤 경로를 통해 이런 모델과 유사한 방향으로 진화해갈 수 있는지에 대한 탐색이 없다는 것이다.
 
김윤태 교수는 다양한 진보세력이 하나로 결합하는 ‘정치연합’의 형성을 제안했다. 사소한 이념적 차이를 떠나 다양한 진보세력이 하나로 결합하는, 미국 루스벨트 정부의 ‘뉴딜연합’과 같은 연대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거 전통과의 과감한 단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주대환 대표는 “먹고사는 문제를 중심 과제로 삼고, 민족민주운동으로 상징되는 ‘후진국형 진보’에서 벗어나 선진국형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채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들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애정어린 비판을 쏟아냈다. 보수 쪽 토론자인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주대환 대표의 ‘밥 먹여주는 진보’ 개념의 편협성을 지적했다. 그는 “사람들의 욕망에는 ‘밥’으로 포괄할 수 없는 탈물질적 영역들이 얼마든지 존재한다”며 “녹색이나 탈근대적인 다양한 가치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는 “진보세력이 진보정당과 진보 유권자 사이에 가로놓인 ‘정치의식의 거리’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고, 강명세 세종연구원 연구위원은 “진보정당의 착근을 가로막는 지역주의 문제와 적극적으로 대결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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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여주는 민주주의를 해야” (서울, 이순녀기자, 2009-03-25  23면)
국민과 소통에 실패한 한국의 진보
 
“한국의 진보그룹이 가지고 있는 관습적인 사고방식은 민주·독재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홍성민 동아대 교수)  
“지금까지 진보는 먹고 사는 문제에 무관심한, 혹은 무능한 진보였다.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자기들끼리의 논쟁에 갇혀 진보 진영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진보진영은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만 높일 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김윤태 고려대 교수)
 
자기 반성의 목소리는 냉철했다.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세일)과 좋은정책포럼(이사장 변형윤) 공동주최로 열리는 심포지엄 ‘한국의 진보를 말한다’에 발제자로 나서는 인사들은 미리 내놓은 발표문에서 현재 진보 진영이 처한 위기를 날카롭게 진단했다. 이들이 지적하는 위기의 원인은 일맥상통한다. 진보의 가치는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는데, 진보 그룹은 그 흐름을 읽지 못하고 경직된 대결구도에 매몰돼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주대환 대표는 ‘한국 진보에 미래는 있는가’란 글에서 “노동운동이 자기 조합원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해 국민적 지지를 잃은 탓에 진보 전체가 국민의 지지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김윤태 교수는 ‘한국 진보의 비교사적 고찰’에서 “1987년 이후 민주화운동은 방향 감각을 상실했다. 정당은 국회의 권력 게임에 매몰됐고, 노동조합은 점점 쇠퇴했다.”고 말했다. 홍성민 교수는 ‘한국의 진보,그들은 누구인가’에서 “민주주의 모델을 상정하고 그것이 아니면 이단이고, 비겁한 타협이라고 매도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러한 자기 반성을 전제로 새로운 진보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주 대표는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뉴레프트 운동을 제안한다. 그는 “도덕적 우월감이 없는 좌파를 지향하고, 대한민국을 긍정하며, 국가의 역할을 인정하는 등 사상적 전환과 관점의 변화를 통해 진보는 환골탈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새로운 진보는 사회경제적 문제의 해결을 중심과제로 삼아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윤태 교수는 “2008년 촛불시위는 정부와 국회가 아닌 거리와 가상공간에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잠재력이 표출됐다는 점에서 새로운 진보의 지평을 확대한 중요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촛불을 들고 거리에 모이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사회운동의 역동적 힘은 정치사회의 현실적 대안과 긴밀하게 연결돼야 하며, 정당과 사회운동은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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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논쟁..혁신된 진보가 필요하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2009-03-26 19:11)
한반도선진화재단.좋은정책포럼 개최
 
"요즘 내가 내부고발자처럼 인식돼 있다"면서 운을 뗀 주 대표는 '한국 진보에 미래는 있는가'에서 해묵은 진보나 보수보다는 복지국가를 기반으로 한 사회민주주의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민족·민주운동은 이미 낡은 가치"라고 일축하고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노동자 간 임금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복지국가의 이상은 필요하고, 또 이를 정치화할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 대표는 "새로운 진보뿐 아니라 새로운 보수도 나와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보수주의자가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보수도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윤태 고려대(사회학) 교수는 '한국 진보의 비교사적 고찰'에서 "진보 진영이 두 번이나 집권하고 나서 진보 진영의 위기가 나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인 현상"이라며 "이는 진보 진영이 권위주의에 맞서서 저항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민주화 이후에 무엇을 할지 구체적인 계획이나 비전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가가 통제하는 획일적인 평등주의는 이제 더는 작동하지 않는 원리다. 개인의 능력을 강화하면서 사회적 협력 방안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거버넌스(통치체제)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덕진 서울대(사회학) 교수는 토론에서 정치 집단과 일반 시민 사이의 불일치를 언급했다. 그는 "한국의 진보는 연령이 젊고, 소득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다. 반면 보수는 고연령, 저소득, 저학력 계층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어 저소득, 저학력 계층이라면 복지를 강조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정치세력을 지지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는 정책을 옹호하는 보수집단을 지지하는 불일치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명세 세종연구소(정치학) 수석연구위원은 장 교수가 지적한 정치집단과 일반 시민 사이의 이 같은 불일치의 원인으로 지역주의를 꼽았다. 강 연구위원은 "밖에서는 노동운동을 하다가 동네에 오면 향우회 활동을 한다. 지역주의가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며 "정책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김일영 성균관대(정치학) 교수는 토론에서 "한국진보가 범했던 중요한 실수가 주된 전투의 전장을 과거에서 찾았다는 것"이라며 "한국의 진보와 보수가 싸워야 할 전장은 과거가 아닌 미래"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홍성민 동아대(정치학) 교수는 '한국 진보, 그들은 누구인가'에서 "계급이라는 단위로 보수나, 진보라는 주체를 설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이제는 진보의 의미가 됐다"고 진단했고,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경제학) 교수는 '한국의 진보, 글로벌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글로벌화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무조건 개방을 많이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여러 부작용을 통제하는 범위 안에서 (개방을) 해 나가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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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 속의 한국, 어디로 가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호] 2009년 05월 05일 (화) 20:19:32 필리프 퐁스/<르몽드>도쿄특파원, 번역 최서연)
경제위기와 신뢰상실, 이명박 정부의 '이중고'
국민들 지나친 비관론 빠져 우파에 몰표
해법은 우경화 아닌 직접 참여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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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촛불, 일상의 역동적 저항 (한겨레21 2009.05.22 제761호, 안수찬 국내 부편집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5월호] 기획 / 혁명은 왜 일어나는가
87년 체제에서 진화한 ‘호모 칸델리스’의 탄생
풀뿌리 주민단체가 주도, 정치 플랫폼으로 접속

 
혁명분자들에겐 실망스런 일이지만, 광장의 저항이 의회의 권력으로 곧장 이어지는 일은 좀체 없다. 대부분 우회로를 거친다. 1917년의 러시아혁명 정도가 거의 유일한 예외일 것이다. 1789년의 프랑스혁명조차 그 직후 거대한 반동의 시기를 볼거리처럼 싸매고 나자빠졌다.
  
권력 잉태의 우회로를 걷고 있다는 점에서 2008년 4~8월의 ‘촛불 항쟁’도 예외가 아니다. 2008년 4월 어느 주말, 서울 청계광장에서 일군의 여중생들이 촛불을 들었다.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주부 등이 그들을 따라 촛불을 들었다. 5월 2일 제1회 촛불문화제가 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뒤이어 8월 무렵까지 촛불의 물결이 거리를 덮었다. 그 사람들, 그 시간들을 통틀어 우리는 ‘촛불’이라 불렀다. 그리고 촛불은 흔적도 없이 꺼져버렸다.
 
20세기의 저항은 중앙권력에 집중했다. 그러나 촛불은 달랐다. “잠 좀 자고, 밥 좀 먹자”는 지난해 촛불 항쟁의 구호는 “개별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유럽 68혁명의 구호와 정확히 일치한다. 삶의 구속을 거부한 젊음의 역동적 반란이었다는 점에서도 흡사하다. 일상의 혁명성에 주목한 새로운 저항 인류의 정념이 촛불 이후 한국에서 꿈틀거리는 것이다.
 
1년 전 촛불 항쟁은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 심지어 시민단체까지 당혹시켰다. ‘호모 칸델리스’, 즉 촛불 시민들은 ‘중앙의 지도’에 순응하지 않았다. 청소년이 성인을,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시민들이 시민단체를, 시민단체가 기성 정당을 이끌었다. 그 역주행은 작동하지 않았다. ‘중앙’·‘지도’·‘계획’· ‘국가’의 강박은 사라졌고, ‘지역’·‘참여’·‘토론’·‘일상’에 대한 환호가 유쾌하게 번졌다. 이에 대해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촛불집회와 한국 사회>(문화과학사)라는 책에서 “촛불집회에서 활성화된 시민세력이 풀뿌리 수준에서 여론 변화를 이끌어내고 제도정치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모색하지 못할 경우, 정치위기의 기본 구조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일찌감치 지적한 바 있다. 이번 경기도 교육감 선거는 신 교수가 비관을 섞어 전망했던 촛불 정치의 등장을 우리 눈앞에서 구현한 사례다.
 
한국 풀뿌리 주민단체의 역사는 세 시기로 구분된다. 그 가운데 3세대 주민단체가 촛불 정치를 지피고 있는 주역이다. 1987년 6월항쟁을 이끌었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풀뿌리 주민단체의 요람이었다. 당시 국민운동본부는 전국 시·군·구 단위로 지역 조직을 뒀는데, 6월항쟁 이후 주로 빈곤 지역에 남아 있던 조직들이 자생적인 풀뿌리 주민단체로 발전했다. 서울 관악·구로 등 노동자 주거 지역이 대표적인데, 이들 1세대 주민단체는 노동·빈민·농민 등 전통적 재야 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자생적 주민조직의 두 번째는 넓은 의미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들이 일구었다. 기성 정치에 염증을 느낀 시민들이 정치인 노무현을 중심으로 일종의 팬클럽을 형성했고 2000년대 들어 전국 단위 조직으로 발전했다. 이들은 이후 ‘시민참여 정당’을 내세운 개혁당의 지역적 근간이 됐다. 참여정부의 부침과 함께 이들의 활동은 사실상 수면 아래로 침잠했지만, 노무현 개인에 대한 호감과 별개로 제대로 된 시민정치를 꿈꾸던 사람들이 과거 개혁당 지역조직에 많이 참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대통령제를 위시한 ‘중앙정치’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풀뿌리 조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마지막 3세대가 오늘날 전국에 걸친 풀뿌리 주민단체를 이루고 있다. 공동육아조합, 방과후교실모임, 공부방모임, 먹거리 생활협동조합, 생태공동체 등이 2000년대 중반 이후 곳곳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육아, 교육, 먹을거리 등 일상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민들의 자생적 모임이다. 1·2세대 주민단체는 ‘동원’의 질서에 강하게 긴박돼 있었다. 반독재 운동의 거대한 명분에 ‘복무’한다는 이념을 갖춘 ‘전업 운동가’들이 주를 이뤘다. 3세대 주민단체는 본질적으로 ‘참여’의 정서가 강하다. 내 아이의 문제를 당신 아이의 문제와 함께 풀기 위해 품앗이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전업 운동가는 없다. 굳이 표현하자면 생활 운동가가 있다.
 
이들에겐 광우병 쇠고기, 탁아·육아 시절, 입시 교육, 주택 가격, 대학 등록금 등이 가장 큰 고민이다. 이 ‘3세대 풀뿌리 주민 모임’들이 1년 전, 촛불 시위의 주역이었다. 이들의 고민이 곧 지난해 촛불의 슬로건이었다. 이제는 촛불 정치의 동력이 되고 있다. ‘개별적인 것’에 주목했던 시민들이 ‘정치적인 것’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2000년 무렵 전국의 시민단체가 2만여 개였고, 2003년에는 2만5천여 개로 늘었다. 2000년 이후 새로 생겨난 5천여 개 단체의 대부분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풀뿌리 단체로 추정된다. 게다가 2000년과 2004년의 낙천·낙선 운동을 거치면서 지역 시·군·구 단위의 주민단체들은 더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 현재 풀뿌리 주민단체는 5천~1만여 개로 전국 곳곳을 점점이 장악하고 있다.
 
결국 촛불 후보의 등장은 풀뿌리 주민단체들의 개미군단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결과다. 경기도 시흥시에서 ‘범시민 후보’가 탄생한 과정은 이를 생생하게 웅변한다.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7월, 시흥시에는 작은 촛불이 켜졌다.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운동이 시작됐다. 당시 각종 개발사업 관련 뇌물 수뢰 혐의로 구속된 이연수 시장이 감옥에 갇혔으면서도 월급까지 받아가는 상황이었다. 시흥의 풀뿌리 주민단체들은 한여름철 두어 달 동안 4만6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풀뿌리 정치의 전통이 깊었던 것도 배경이 됐다. 이 지역에서는 2005년 급식조례제정 운동을 하며 석 달 동안 2만여 시민들의 서명을 받은 경험이 있다. 1997~98년 시화호 개발 반대,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2008년 촛불문화제, 그리고 최근까지 지속됐던 주민소환운동을 거치면서 주민들의 연대는 넓어지고, 구성원은 다양해지고, 정치적 각성도 비등했다.
 
이 중 소금창고 복원 운동의 경험은 각별했다. 한 회사가 철거해버린 일제시대 소금창고를 지역문화재로 복원하기 위해 지역단체들이 ‘소금창고시민행동’이란 이름으로 뭉쳤고 2007년 6~8월 촛불문화제가 이어졌다. 이념을 넘어선, 범시민운동의 ‘결정체’였다. 중앙정치적 시선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생활 의제’였기 때문이다. 이들의 행사 때는 진보단체는 물론 지역예총·문학회 등까지 울력해 1만여 명의 시민이 모였다. 결국 시와 회사로부터 복원 약속도 받아냈다. 이들이 이듬해 주민소환운동의 지지자·서명자가 됐을 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시장은 올 1월30일 대법원에서 뇌물수수죄로 시장 자격을 박탈당했다. 주민소환운동에 뒤이어 “우리의 후보를 직접 내세워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들이 자연스레 모아졌다. 시흥시장 선거에 ‘범시민 후보’로 나선 최준열 후보는 주민소환운동본부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최준열 후보 캠프 관계자는 “지난 2월, 예비후보 등록 당시 후보 개인에 대한 인지도는 5%에 불과했지만, (범시민 후보라는 사실만으로도) 지지율이 16%가 넘었다”고 말한다. 16%는 유권자 대비 주민소환운동 서명자의 비율과도 일치한다.
 
풀뿌리 주민단체가 없었다면 1년 전 촛불도 없었을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촛불’만 봤다. 지금 광장에는 촛불이 없다. 그래서 촛불이 사그라졌다고 생각한다. 정작 촛불을 지폈던 풀뿌리 주민단체는 지난 1년 동안 더욱 정력적으로 활동해왔다. 1년 전의 ‘촛불’이 전국에서 지역 단위로 낙하해 생활 영역에 밀착하고 기존 대의정치를 견제·혁신하려고 정치 영역에 뛰어든 것이다. 그 일부가 이번 경기교육감 선거와 4·29 재보선에서 등장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 ‘촛불 후보’의 움직임이 더 긴박해질 것은 불문가지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촛불의 진화를 관찰하며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뚜렷한 결론을 내리진 못했지만, 대체적 방향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 기초지자체는 물론 광역지자체 선거에 시민 후보를 내는 ‘큰 그림’을 구상하고 있다. 민주당은 물론 진보 정당까지 아울러 ‘시민 후보 중심의 선거 전략’을 펼치겠다는 정서가 강하다. 경기도 교육감 선거는 그 모범 답안이었다.
 
전국 440여 개 단체가 참여해 시민사회 진영을 두루 포괄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지난 2월 총회에서 ‘지방선거 기획단’을 구성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 시민운동 진영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해, 오는 6월께 보고서를 제출하는 ‘특임’을 맡았다. 서울의 주요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단체의 상근활동가 10여 명이 지방선거 기획단에 참여하고 있다. 오광진 연대회의 정책팀장은 “지방선거에 참여할지 말지를 포함해 백지 상태에서 여러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대회의는 이 보고서의 내용을 토대로 내년 지방선거 전략을 토론해 확정지을 방침이다.
 
시민운동가 출신의 후보가 선거에 참여했던 과거 사례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몇몇 명망가들이 개인 자격으로 기존 정당에 영입되거나, 일부 단체 차원에서 무소속 후보를 배출하는 방식이었다. 최근 논의는 정당 영입 또는 정당 건설은 배제한다는 전제 위에 진행되고 있다. 실현 가능성은 아직 점칠 수 없으나, 가장 적극적인 시나리오는 서울시 등 ‘전략 지역’에 시민 후보를 출마시키는 것이다. 경기도 교육감 선거 때처럼, 주민단체와 시민단체들이 내세우는 후보에 대해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시민 주도의 촛불 연합 후보’ 모델이다.
 
이처럼 ‘촛불 후보’는 대의정치 내지는 제도권 정당에 대한 불신과 저항을 기본 동력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것이 정치 전체에 대한 혐오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는 과제로 남아 있다. 경기교육감의 투표율은 12.5%에 불과했다. 역대 최저치다. 중앙정치에 대한 혐오가 선거 불참으로 이어졌다. 유권자들의 정치적 관심을 총체적으로 불러세우지 못하면 결국엔 공멸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범시민 후보의 파괴력이 작용한다 해도, 뒤이은 총선·대선 등을 감안하면 ‘정당’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아래로부터의 연대라는 시민 후보 모델은 대단한 의미가 있지만, (풀뿌리 세력 내부에서) 정책을 합의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삶의 바닥부터 전복시키려는 촛불 시민들이 꿈틀대고 있다. 거리의 축제가 정치의 플랫폼으로 연결되는 것은 철학자 마루쿠제의 표현을 빌리면 미적인 것의 정치적인 것으로의 침입이다. 촛불 시민은 조금 멀지만, 가치 없지 않은 우회로를 택해 조금씩 지역정치와 중앙정치로 진입하고 있다. 촛불 시민, 호모 칸델리스가 광장을 지나 의회와 청사를 향하고 있다. 2009년 현재, 한국 사회에 저항이란 게 존재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손가락을 들어 동네 골목길을 가리키면 된다. 그 길 역시 청와대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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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명박’ 넘어 ‘대안정부’ 준비해야 (한겨레, 최장집(미국 스탠퍼드대 교환교수), 2009-06-01 오전 10:50:17)
‘노무현 이후’ 남겨진 과제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와 제도를 존중하고 이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제 그것에 반해서는 정치 안정도, 사회 안정도, 정권 유지도, 정책 추진도, 경제 발전도 가능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규모 촛불시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죽음, 전국적인 애도와 정부 비판의 큰 흐름은 이를 실증한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이 평범하지만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한국의 서민, 소외 세력이 배출한 대통령의 인간적 고뇌와 굴욕감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분노를 일으켰고 그가 지키고자 했던 이상과 가치는 깊은 공명을 가져왔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정치적 출로도, 어떤 정신적·심리적 의탁도 갖지 못한 보통의 시민들에게 그의 죽음은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가져다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민주화는 권위주의 체제를 타파하는 데까지만 허용되고, 사회 여러 부문과 정당 체제, 나아가 체제의 운영 원리를 새롭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으로서 노무현 개인에 대해 과도하게 책임을 물었던 때도 많았다. 사실 그의 성취와 한계는 넓게는 한국 민주주의 전체, 좁게는 민주화 세력 스스로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민주화 세력 사이에서도 지난 정부, 지난 정치인들에 대해 지나치게 책임을 따지는 것보다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데 힘이 모아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선택이 가능한가?
 
야당을 강화하여 현 정부를 대체할 대안 정부가 될 수 있는 길을 찾는 일의 중요함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기 어려울 것 같다. 방향에 대한 선택은 이처럼 비교적 간단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방법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것이 오늘의 정치 현실이다. 지난 경험을 통해 우리는 집합적 열정을 불러일으켜 권력에 항거하는 것보다, 이를 정치적으로 조직하여 집권파의 권력 남용을 견제하고 궁극적으로 차기 정부가 될 강력한 대안 세력을 형성해가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배웠다. 권력에 항거하는 열정의 분출이 반이명박 정서를 최대화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대칭적 양분 구조가 가져올 정치적 효과는 기대와 다를 수 있다. 국내외의 수많은 역사적 사례가 보여주듯이, 운동과 제도의 체제가 분리된 양극화된 갈등 구조는 보수의 장기 집권에 기여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제1야당으로서 민주당이 대안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보수정부가 할 수 없는 영역을 대표하고, 정책 대안을 개발하고, 지지 기반을 다져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당은 외부로부터 인적 자원을 수혈하는 데 훨씬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또한 지금과 같은 보수적 이념에서 훨씬 더 개방적이고 유연해야 하고, 실현 가능한 성장 정책을 추구하는 동시에 사회 경제적 이슈와 노동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다뤄야 하고, 기존의 진보적 정당이나 노동운동과도 적극적인 연대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의 요구들은 새로운 리더십의 창출과 병행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과정은 정치의 방법을 통해 대중적 에너지를 어떻게 결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하나의 모델이었다. 그가 오늘의 정치 지도자들, 정치인들, 정치 지망생들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의 하나는, “모나면 정 맞는다”라는 말로 압축된 보수적 정치 규범에 순치되지 않고 보여준 과감함이다. 정치에서 비난받을 일은 대중의 에너지를 허비하는 일이다.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는 7년 전 노무현이 이룩한 일을 성취해낼 또다른 노무현을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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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최후의 꿈 ‘진보의 재구성’ (시사IN [90호] 2009년 06월 01일 (월) 14:21:13 박형숙 기자)
 
노 전 대통령은 비공개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참모들과 함께 질문을 던지고 의견을 덧붙이고 자료를 올리고 책도 추천하면서 주제에 접근해갔다. 학자 출신 참모들이 전공별로 ‘독선생’ 노릇을 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지낸 성경륭(사회학),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정치학), 정책특보를 맡았던 이정우(경제학),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정치학),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김창호(철학) 등 전·현직 교수가 참여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들에게 “같이 공부하자. 월급은 못 주고 차비는 드릴 테니 자주 오시라”고 열의를 보였다. 김창호 전 처장은 “처음에는 나와 소수의 사람이 책과 참고자료를 지원하는 수준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참여하는 분이 늘어나면서 인터넷 소통 공간도 마련되고 시스템화되었다”라고 말했다.
  
“한 가지 주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그 주제 속으로 파고들어 애초의 줄거리에서 일탈하는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그다지 흔치 않았던 일이었다.”(윤태영 전 대변인) 최종 수렴지는 ‘진보주의’였다. 5년 대통령 경험을 바탕으로 노무현은 국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기존 틀로는 자신의 생각을 담아낼 수 없다는 생각이 그리로 이끌었다. 의외였다.
 
임기 말 참여정부의 정체성에 대해 그는 “진보를 지향한 정부”라고 규정했지만 수사처럼 들렸다. ‘유연한 진보’ ‘실용 진보’ ‘합리적 진보’라며 기존 진보와 차이를 드러내려 했지만 ‘노무현=진보주의자’라고 인정하는 좌파는 별로 없었다. 되레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 진영에서는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사이비 진보”라고 비판했다.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참여정부의 모호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노무현의 대표 어록이었다. 특히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그런 비아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뒤 노무현은 국가의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국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난관에 처했다. 그 자신 탈권위주의와 시민권력을 주창해온 주인공. 사회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도 있지만 동시에 경계하고 뛰어넘어야 할 위치에 국가가 있다는 점을 깨닫고, ‘내 고민을 진보라는 틀에 담아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노무현식 진보는 달랐다. 국가 영역의 ‘복지’, 시장 영역의 ‘성장과 경쟁’, 시민사회 영역의 ‘공존의 가치’를 어떻게 진보로 재구성하느냐가 핵심. 주체는 시민이었다. 하지만 시민사회가 위기에 빠졌다는 게 그의 현실 인식이다. 지난 10년 민주정부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탈권위주의 사회로 이동하고 있지만 국가가 후퇴한 ‘빈자리’를 시장과 소수 독점 미디어가 차지하면서 시민사회 영역은 더 좁아지고 위축되었다. 여기에서 노무현이 왜 기를 쓰고 조·중·동과 법정 소송을 불사하고 언론 개혁을 부르짖었는지 그 이유가 드러난다. 시민에 의한 사회 재구조화의 전제는 합리적 토론과 논쟁이었다. 공론장이 살아야 시장의 지배, 독점 미디어의 지배를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쥐어줘도 왜 휘두르지 못하냐는 비난, 또 무능한 정권, 아마추어 정권이라고 낙인찍히는 수모를 감수하면서도 권력을 동원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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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그 이후', 지금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프레시안,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2009-06-01 오후 7:24:08)
[기고] 전혀 새로운 조직의 등장이 필요하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뭘 해야 할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논객이고 운동가고 일반 시민들 할 것 없이, 먼저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주장들 속에 우리가 채택할 것은 채택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교집합'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 또한 지금 시국에서, 아니 이명박 정권의 치하에서 계속되어야 하는 실천이며, 계속되어야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지금. 민중들의 분출하는 분노가 기존의 분노와 사뭇 다르다. 그 원인들이 몇 가지 있다. MB악법으로 인한 공공성 파괴를 목격해야 할 비정규직, 교육관계, 공기업사유화 대상들, 언론관계 등에 종사하는 당사자들의 분노가 있다. 또한 경제환경을 재벌 중심으로 몰아가면서 일상의 삶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각종 경제관련 악법을 목격해야 하는 종소기업가들부터 소속 노동자 등 당사자들의 분노가 있다. 그리고 검찰이나 경찰의 행태에 대한 분노다. 권력의 주구로서 부끄러움을 상실하고, 국민과 시민들을 적대시하며 오로지 이명박 정권 유지수단으로 자청하는 검찰과 경찰에 대해 격렬히 분노하는 시민들이 많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몰아간 주범인 청와대와 법무부 검찰 뿐만 아니라 조중동 등과 같은 수구언론들의 작태에 분노하는 민중들이 있다. 겹치기도 하고 또 따로따로, 다양한 의제 속에서 일어나는 분노는 한 곳을 지목하고 있다. 그곳이 바로 '청와대'이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현실의 맥락을 짚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해야 할 것 같다. 지난 해 6월 전국적으로 수백만 명이 모였던 촛불집회는 '저들'에 의한 어이없는 대반격에 밀려 지난 해 하반기부터 올 상반기 내내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노동계 등에 깊은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평가는 다양했고, 여전히 촛불을 타고 있다고 말했지만, 지난 해 겨울부터 시작된 한나라당의 2차에 걸친 '도발적 입법전쟁'에 속수무책이었다. 다만 언론노조가 소속된 미디어행동 정도가 칼바람 부는 여의도에서 투쟁을 깃발을 올렸을 뿐이다. 반면 저들은 '경찰계엄령'을 내린 듯, 철통같은 경찰방어막 뒤에 서서 촛불집회 참여자들을 탄압하는 수순을 잊지 않았다.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는 '인터넷모욕죄'로 아예 법제도를 개악하자는 데까지 비화하면서 반격을 가했다. 상대적으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구조를 지닌 '공영방송'은 스스로 무릎 꿇고 투항했다. MBC마저 정치권력으로부터 직접적인 압력이 있었던, 스스로 알아서 했던 '기는 모양새'를 현 정권에서 노골적으로 전시하기도 했다.
 
또한 투쟁의 구심으로서 민주노총, 아니 금속노조를 비롯한 민주노총의 주력부대들은 한결 같이 침묵함으로써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전반적인 시대반동 사회반동의 작태를 그냥 방관했을 뿐이다. 저들이 할 수 있는, 준비된 투쟁역량과 더불어 준비된 연대투쟁의 자각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항세력들의 기대와 달리 무기력했다. 그렇다고 딱히 새롭게 대오를 정비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한 것 같지도 않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은 더 한다.
 
그 동안 각종 현안마다 깃발을 들고 저항의 중심으로 역할했던 유명한 시민사회단체들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언론노조가 속한 미디어행동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민단체나 연대체들이 지난 겨울부터 지금까지 거의 모든 투쟁에서 무기력함을 노출하면서 투쟁의 현장 밖으로 나 앉아 있었다. 할 수 있는 역량도 싸워야겠다는 의지도 부족했고 박약했다. 딱 한 번, 화려한 불꽃놀이를 하듯 싸운 6월을 제외하고 이명박 정권 집권 내내 무기력증을 호소함으로써 전체 사회운동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지난 1년 반을 보내고만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채 진행했던 전면전이었고, 진행하면서 준비하지 못했던 전면전'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채 진행됐던 전면전이 자발적인 시민들에 의해서 발생한 불가항력이었으면, 진행하면서 준비하지 못했던 전면전은 시민사회의 무능력이었다. 전술적 과제를 확정하고, 조직적 과제를 논의하는 장을 열지 못했던 시민사회단체의 무능력과 더불어 전술적 조직적 오류에 기인한다. 그 결과 자발적인 시민들의 자발적인 분노를 한 곳으로 집중할 수 있는, 전술적 과제와 전략적 과제를 구분할 수 있는, 조직적 포괄로 안정적인 민주주의 수호투쟁을 계속 할 수 있는 지도력은 순식간에 사그라 들었고, 저들의 공권력을 기반으로 한 폭력적 반격과 국회를 지배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법제적 반격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전혀 새로운 조직의 등장이 필요하다. 몇 몇 명망가들이 자신들의 인맥으로 구성하는 전국단위의 투쟁체 구성방식은 20여 년 전인 1987년 6월 항쟁을 이끌었던 '국민운동본부' 구성방식을 전혀 탈피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다. 그 명망가들은 구성하는데만 의미있는 요소였을 뿐 운영하고 책임지는데까지 그 의지나 역량은 '진화'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일반 시민들이 참여해 촛불을 들었다가 부당한 처우를 당해도 하소연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하소연뿐만 아니라 체포되거나 구속되어도 홀로 외로이 고립감에 고통당하지 않도록 전 과정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시민들과 함께 밤을 새고, 시민들과 함께 투쟁하며, 시민들과 함께 동고동락을 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 처럼, 몇몇 명망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뚜렷하고 합의된 전술적 목표, 조직적 대오, 권위있는 지도부를 구성하는 방식부터 달리 가야 한다는 의미다. 진격의 시점과 퇴각의 시점에 다수가 따를 수 있는 권위있는 지도부의 구성은 이제 긴급한 과제가 되었고, 이를 관철시킬 수 있는 헌신적이고 민주적인 핵심역량을 구성하는 것이 긴급한 과제가 되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시민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공개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비밀주의 밀실주의 안면주의 정실주의 일방주의적 조직구성방식은 이제 낡은 것을 쓰레기통에 내던지듯 내 던져버려야 한다. 일방적으로 위로받고 배려받는 조직, 일방적으로 위로해주고 배려해 주는 조직이 아니라, 소통의 건강함을 바탕으로 함께 위로하고 받고 더불어 배려하고 받는 그런 살아 숨 쉬는 조직이 필요하다. 이것이 기존의 조직과 자발적 시민들이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운동적 열정이 넘실대는 조직을 구성하는 원칙이다. 이런 조직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집단지성과 더불어 집단실천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런 집단지성과 집단실천은 공개적인 시국대토론회 등을 통해서 '교집합'을 찾아내고, 그 교집합을 중심으로 투쟁의 내용을 한정함으로써 상호이해와 상호인정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 전국 방방곡곡에서 경제적인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국민들이 널려 있고, 반민주적 작태에 분노하면서 자신의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가 억압당하는 국민들이 쉴새없이 분노를 토하고 있다.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분노를 표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고 걸러 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 새로운 소통의 공간이 절실해지고 있다. 이들이 와서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덕수궁 대한문 앞이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일정하게 쟁취해 놓은 공간, 거의 유일하게 시민들간 국민들간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현재 시점에서 덕수궁 대한문 앞 작은 공간밖에 없다.
 
이 공간에서부터 이제 우리는 '만인공동회'를 선언하고 실행해야 할 것이다. 직접민주주의 모범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부문별 쟁점토론에서부터 종합적 시국토론을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인터넷 공간의 논객들부터 출전해서 토론하고, 글쓰고, 또 토론하고 글 쓰며 네티즌과 소통하고 일반시민들과 소통하자.
 
비정규직 문제 북핵문제 언론악법문제 건강의료문제 교육문제 경제문제 문화문제 등 각 부문이 고민하고 있는 각종 문제를 드러내 시민들과 함께 토론하고 시민들과 함께 공유함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넘어 새로운 진보의 정책과 방향을 설정해 보자. 당연히 투쟁과 저항의 구심점을 조직하는 조직논쟁도 이 공간에서 '선수'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발언함으로써 함께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적 불평등 해소 대안을 마련해 보자. 한국경제의 성장방법론도 논의해 보자. 분배방법론도 토론해보자. 작지만 크게 보고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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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복지연합’으로 나가자 (레디앙/참여사회연구소 <시민과 세계> 2009년 하반기호, 2009년 06월 01일 (월) 15:47:11 이재영 기획위원)
[좌파의 위기, 위기의 정치] "범야권 2010 촛불 프라이머리를" 
  
1. 이명박의 위기 아닌 위기
이명박 정권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파시즘’이라는 예단에서부터 ‘노무현 2기’라는 평가까지로 다양하다. ‘파시즘’이라는 평은 대체로 자유주의파, 문화적 관점, 비관적 경고에서 나오고, ‘노무현 2기’라는 평은 대체로 사회주의파, 경제적 관점, 냉소적 분석에서 나온다. 
 
이명박 정권 스스로의 동인, 그리고 그 정권에 대한 일반의 인식에서 보자면 이명박 정권을 가장 먼저 규정하는 것은 노무현 정권 ‘다음’의 정권이라는 점이다. 국민들은 이 정권이 하는 일이 노 정권과 ‘다르기’를 바라고, 이 정권의 정치 기획은 노 정권과 ‘다르게’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출발하는 듯하다. 그 ‘다름’이 사실인가 아닌가, 좋은가 나쁜가는 정권이든 국민이든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노무현과 민주당은 2004년 국가보안법과 언론법, 과거사 등에서 ‘개혁적’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고,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2008년 국정원법과 미디어법, 교과서 등에서 ‘보수적’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이것은 대립자와의 차별화를 통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적 정체(正體)를 확인하는 것이 노무현과 이명박 정치행위의 근간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경제적 포만을 줄 수 없어 이데올로기적 위무로 대체할 수밖에 없는 한국 보수의 위기를 반증한다.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정권과 많이 다르지만, 노무현 정권이 김대중 정권과 다른 정도보다는 작게 다르다. 조금 긴 관점을 들이대면 김영삼 김대중 정권이 비슷하고, 노무현 이명박 정권이 비슷하다.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대목은 그 정권들이 일종의 붐(boom)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노와 이는 공히 각각의 당 안에서는 취약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386’으로 불리는 수도권 고소득 노동자 가족군(群)의 선도적이고 일관된 지지로 집권에 다다른다.
 
다른 점이 있다면, 노무현에 대한 지지는 민주주의의 심화에 대한 열망이었고, 이명박에 대한 지지는 그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감이 사회경제적 욕구로 급속히 전화된 점이다. 그러나 노무현의 경제사회 정책이 수도권 고소득 노동자 가족군의 욕구 실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경험적으로 증명되면서 그의 지지세력은 팬클럽과 삼성 일족으로 협소화, 견고화된다. 이명박 정권 역시 촛불집회를 거치며 수도권 386과 절연되고, 결국 그 정권에는 교회, 우익인사 등 공신(功臣)만이 남게 됐다. 이렇게 해서, 한나라당 안에서 색깔을 의심받기조차 하던 이명박이 ‘수구 꼴통’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3김 시대에 뒤이은 ‘노무현+이명박 현상’이란 [ ① 기성정당 지지기반의 이완 ② 수도권 고소득 노동자 가족군의 여론 주도성 ③ 그 인구집단 욕구의 급격한 변화 ④ 기성정치권의 욕구 수용 불가에 의한 괴리 ]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무능하다거나 한국 정치가 장기파동(long waves) 국면에 들어섰다는 판단이 곧 급격한 정치변동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촛불집회가 거리에서의 아노미와 감성적 일탈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운동의 한계가 아니라, 그 운동이 처해있던 정치적 조건으로부터 기인한다. 민주당들은 이미 촛불시위자들의 눈 밖에 났고, 사회주의 정파들은 ‘정치’에 입문하지 못한 상황, 이명박 정권만이 유일한 국가 정치세력이라는 사실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즉, 보수우익의 위기는 그 상대자들의 침묵으로 인해 현상하지 못하고 잠재한다.
 
2. 좌파 위기의 뿌리
위기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은 어느 기준에서 어찌 보느냐에 달려 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모색되기 시작한 한국 좌파정치의 장기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을 굳이 위기라 할 필요도 없겠다. 짧은 시간에 꽤 커졌고, 더 커져야 할 미래의 도상에서 잠시의 정체나 퇴보를 피할 도리는 없으므로, 지금 한국 좌파정치가 보이는 지지부진함이란 정상적 발전과정의 한 시점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토막난 국회 의석 수, 저조한 지지율,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같은 것이 우연적 요소들에 의한 일시적 머뭇거림이라기보다는 그 운동 자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 약점이 표출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좌파정치의 위기는 자못 심각하다. 
 
어떤 사람들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을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조만간 재통합할 것을 빌어 마지않는다. 어느 나라 어느 정당에서든 내부 정파가 있어 왔으니, 민주노동당파와 진보신당파가 한 당 안에서 어울려 놀지 말란 법은 없겠지만, 1997년부터 2007년까지 민주노동당 10년의 역사는 양자가 결코 융화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비당적인 조직이었음에도 민주노동당이 10년이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 당의 미개척 영역이 워낙 광대했던 덕분이다. 초기에 수십 개의 지구당을 장악하고 있던 정파들은 백여 개의 지구당으로 진출하면서도 다른 정파와 심각한 충돌을 빚지 않았고, 어느 누구든 민주노총이라든가 사회운동의 여러 영역에서 ‘민주노동당’으로 행세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미개척지가 점차 줄어들면서 당 성장이 포화에 이르고, 지구당과 분회 차원에서까지 정파끼리의 충돌이 빚어지고, 당 밖에서 누가 민주노동당을 대표할 것인가가 ‘모의’가 아닌 ‘실탄(實彈)’의 문제가 된다. 
 
처음에는 어느 누구도 ‘그깟 강령 따위’에 개의치 않았지만, 나중에는 당 권력을 경과하면 공중파 TV에서 “북핵은 자위권이다”라거나 “민주노총이 각성해야 한다”고 외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당선 가능성도 없는 출마가 고역이었지만, 나중의 민주노동당에게는 적어도 비례명부 상위권은 정파들의 명운과 장래를 좌우하는 뜀틀이 되었다. 당 이념을 대신한 유일한 규율은 지극히 형식화된 다수표였는데, 그나마도 ‘북조선식 강권 투표’나 ‘남한식 매수 투표’가 횡행하며, 다수파든 소수파든 ‘민주주의’로 후퇴하게 되었다.
 
애초 쌍방 누구도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고사는 모면하였으므로 동거의 이유가 사라졌고, 가족이 불었으니 더 이상 비좁은 집에 동거할 수도 없다. 민주노동당은 처음부터 그만큼만 기획됐었고, 결국 성공했다. 형해화된 강령 쪼가리가 아니라 통일된 이념을 가지지 못한 것이 민주노동당의 실패라면, 노동계급 통일을 이루어내지 못한 것이 민주노총의 오늘이다. 민주노조운동은 노동계급 다수자에게 자신의 존재 의의와 정당함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민주노조운동은 민주화 이전의 가족주의와 민주화 이후의 경쟁논리를 내면화했고, 그를 노동조합운동이라는 형식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선도적 조직 가담자들의 ‘고성장기 과실 분배형 노동운동’으로 출발하여, 조직 외부의 불안정노동에 대항하는 ‘저성장기 과실 배제형 노동운동’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노조운동은 그 공개적 지향과는 무관하게 실질적으로는 자본독점운동의 한 축으로 편입되었다.
 
3. 상상의 확장, 정치로의 집중 : 촛불프라이머리
좌파정치의 위기가 이념의 부재와 세력 형성의 실패로부터 기인한다는 진단은 별스럽지 않다. 다만, 민주노동당의 정체와 분당, 민주노총의 퇴락을 거치며 그런 문제의식이 첨예화되고 있을 뿐이다. 
 
지금, 주대환과 단병호는 진보정당들 밖에서 ‘사민주의’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이루기 위해 힘쓰고 있다. 물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사회당 같은 당들 중에 딱히 적을 둘만한 곳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의 최근 행보는 다분히 ‘탈정당적’이다. 하지만, 이런 근원적 문제의식이 현실 타개에 도움이 되기는 대단히 어렵다. 이념부터 세우자는 주대환의 주장,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다시 시작하자는 단병호의 진술은 몇 줄짜리 강령과 수백 명의 노동자들밖에 가지지 못한 150여 년 전의 독일 망명객들이 공산당을 창건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주대환의 이념은 노동자들에 의해 실험 실천되지 못할 것이고, 단병호의 노동자들은 이념에 의해 모이거나 이끌어지지 못할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의 주장은 우리 운동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되먹임 자폐선(feedback loop)에 갇히게 할 뿐이다.
 
1847년 공산주의자동맹, 1869년 독일사회민주노동당의 창당 이래 사회주의 운동의 본령이란 이념운동도 아니고 노동운동도 아니다. 그것은 도전적 정치다. 정치는 이념을 유예시킬 수 있지만, 이념이 정치를 자연스레 불러오지는 못한다. 정치가 세력을 대체할 수는 있지만, 세력은 정치를 넘어서지 못한다. 정치는 이념과 세력의 구성에 필요한 시간의 누적을 지혜로운 선택으로 단축시키는 것이다. 대자적 계급은 진보정치 아래에서만 형성되고, 급진이념은 도전적 정치에 의해서만 조탁될 수 있다
 
지금의 한국 정치는, 이명박 정권의 지지 기반 취약과 동시에 민주당의 지리멸렬함, 즉 부동(浮動)하는 민심에 의해 정치재편이 내연(內燃)하는 형국이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답보하는 것은 유권자들이 경험을 통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초록동색’이라 인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최근 몇 년 동안 유권자들의 정파성은 일관되게 약화되고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정당 지지세력이 소멸하는 한편, 보수정당들이 근친수렴한 결과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재기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정치재편은 야권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2012년까지의 정치 상황은 민한당에서 신민당으로 제1야당이 교체되던 상황과 비슷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촛불현상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를 여러모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진보정당까지 포함되는 정치세력이 촛불집회를 제대로 수용치 못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사회문화적 폭발은 어떤 식으로든 정치에 반영될 수밖에 없으며, 어느 때일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재편의 동력으로 재등장할 것이다. 
 
최근, 야권 일각에서는 지방선거에서 범야권이 출마 선거구를 조정하자는 구상이 조심스레 검토되고 있다. 4대 동시 지방선거의 경우 선거구와 출마자가 워낙 많고, 그 대부분인 기초의원 선거에서 이른바 ‘범야권’이 심각하게 경합하는 경우가 많지 않으므로, 이런 구상은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문제는, 광역단체장처럼 정치적 상징성이 크고 경쟁이 치열한 선거에서도 그런 ‘조정’을 할 것인가이다. 첫째, 그런 조정이나 연합을 할 필요성이 있는가? 야권 전체가 워낙 열세이므로, 조정이나 연합은 필요하다. 둘째, 그런 조정이 바람직한가? ‘범야권’이라 통칭되지만, 정책적 스펙트럼이 넓으므로, 정책 차이까지 묻어버리는 연합이라면 바람직하지 않다. 셋째, 그런 조정이 가능하도록 할 방법이 있는가? 모든 야당이 수긍할 만한 공정한 룰(rule)은 없다. 양보를 강요할 수 있는 명분은 ‘촛불프라이머리’ 정도가 유일할 것이다.
 
주경복 모델과 김상곤 모델을 따라 할 수 있다. 물론, 지방선거에서는 정당을 배제할 수 없고, 후보를 만드는 과정도 훨씬 대중적이어야 한다. ‘경제민생 위기극복 연석회의’를 이룬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과 광우병대책회의, 촛불집회를 주도한 네티즌들이 함께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부산시장 선거 등에서 촛불프라이머리를 치루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그 틀 안에서 일정한 기준과 자격 요건으로 선거관리위, 선거인단, 후보자를 정할 수 있다면, 다음 지방선거가 또 한 번의 촛불축제가 될 수도 있다.
 
4. 한국 정치의 위기, 변화의 위기 : 복지연합으로 나가자
촛불프라이머리가 성사된다면 그 안에서 공동공약을 도출할 수도 있겠고, 일회성의 선거연대이니 선출된 후보 측에 공약을 일임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런 시도가 ‘촛불연합’쯤으로 불릴 수도 있겠는데, 이런 구상을 해보는 이유는 그동안의 좌파운동이 이념이나 세력을 형성하기에는 부적절한 노선을 밟아오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고, 만약 그렇다면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촛불연합 같은 것으로 판을 흔들어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래 한국 사회를 이끈 주요 변화, 노무현의 집권, 이명박 정권의 등장, 촛불집회는 흔히 ‘중산층’으로 불리는 고소득 노동자 가족군의 욕구 표출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눈부신 경제성장과 급속한 민주화의 산물이고, 경제주의 노동운동과 자유주의 시민운동에 의해 고무되었다. 그런데 이런 사실(史實) 속에는 불안정 노동계층과 영세 자영업자가 빠져 있다. 지금 한국 좌파운동을 형성하고 있는 세력은 유럽의 공산당이나 사회민주당들이 태동할 때보다 훨씬 더 부유하다. 그래서, 색깔로는 ‘사회주의’이고 형식으로는 ‘노동운동’인 한국의 좌파운동이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급진적이지 못하고, 정치적 비약점(jumping point)을 넘지 못한 채 고립돼 있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물론, 정치와 노동운동에서 이미 조직돼 있는 좌파운동으로부터 섣불리 이탈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촛불연합이 제대로 된 하층연대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운동엘리트집단보다 더 깊고 넓은 풀(pool)인 것은 분명하다. 중산층화된 좌파운동은 그 풀 안에서 우리 운동이 포섭하지 못한 불안정 노동계층을 만날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기업임금과 기업복지 선점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하층 계층과 사회복지연합을 맺으면서, 세력과 이념의 재구성을 도모해야 한다
 
1995년이었던가 삼성 이건희는 한국 정치는 후지고, 저희 자본가들이 다 이룬 것이라 우겨댔었는데, 경제를 포함한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언제나 정치의 급격한 변화와 호응해왔다. 군사주의적으로 조직된 영남권의 중화학공업 노동자들,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전투적 노동운동이 조직한 노동력이 1990년대 초반까지의 성장을 이끌었다. 이 세기 들어서는 창의적이면서도 값싼 IT노동자들, 김영삼과 김대중 그리고 개방적 대학문화가 쏟아낸 노동력이 한국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지속성장은 ‘생태’나 ‘신성장동력’ 따위에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성장이란 바로 정치 변화에 의한다. 그런데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김영삼으로, 김대중으로, 노무현으로 끊임없이 변화해온 흐름이 끊기고 있다. 뻔히 보이는 한국 정치의 미래는 한나라당의 장기집권이거나 중도수렴된 보수양당의 지리한 정권교체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여러 사회지표가 OECD 최고라는 둥, 최저라는 둥 운위되는 상황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길고 긴 변화의 도정을 앞두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정치가 현재처럼 요지부동이라면 사회적 불균형과 불안정은 다른 통로를 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한국 사회의 위기란 바로 정치적 변화의 정지이고, 좌파정치의 정체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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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화두 ‘민주주의’ (한겨레21 2009.06.05 제763호, 조혜정 기자)
[표지이야기-기억의 미래] 퇴임 뒤 시민주권운동 제안하며 누리꾼과 열띤 토론…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 돌리지 말라”던 그 말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를 돌리지 마십시오.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꾸는 힘은 국민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2002년 대선 직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마지막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이런 말을 했다. ‘국민이 만드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고민은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했다. 재임 기간엔 권력 분산을 시도했고, 퇴임 뒤엔 시민에겐 ‘시민주권운동’을 제안하는 한편, 민주주의·진보주의를 성찰하는 책을 남기고 싶어했다. 화두는 던졌으되 완성하지 못한 ‘노무현의 민주주의’는 남겨진 이들에게 숙제로 남았다.
 
노 전 대통령이 그린 민주주의의 모습은 그가 제안한 시민주권운동 개념이 어떻게 정리되고, 어떤 방식으로 유통됐는지에서 엿볼 수 있다. 대통력직에서 물러나 고향 봉하마을로 돌아간 직후인 지난해 3월 노 전 대통령은 공식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시민주권운동, 앞으로 제가 여러분에게 함께 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은 운동입니다”라며 토론을 제안했다. 노 전 대통령은 “시민주권운동의 개념을 저보다 잘 설명한 글”이라거나 “저보다 한 수 위의 글입니다. 저도 이렇게 배웁니다”라고 토론 글을 소개하면서 일독을 권했다. “우리가 함께 참여해 이런 글들을 정리하고 편집하면 ‘시민주권운동’과 ‘민주주의 2.0’에 관한 훌륭한 설명이 완성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집단지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수백, 수천 건의 댓글·관련글로 토론이 확산되면서 시민주권운동엔 살이 붙었다.
 
“결국 세상을 바꾸자면 국민의 생각을 바꾸어야 하고, 국민의 생각을 바꾸는 데는 미디어가 중요하다.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정보는 넘쳐나지만 내용이 부실하다. 협업으로 역량을 확대하고, 토론과 검증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주장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시민주권운동의 목적지가 참여와 권력 견제였음을 설명해준다. 이런 구상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 때부터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교수와 참모들에게 진보주의 연구를 해보자며 만든 비공개 인터넷 카페에 지난 4월13일 ‘한국은 지금 몇 시인가?’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좌파 신자유주의자 노무현’이 자신을 포함한 민주정부 10년을 어떻게 성찰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에도 진보주의의 역사가 있었는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는 진보의 정권이었는가? 제3의 길, 유럽의 진보주의 기준으로 평가해보자. 그래도 한계는 분명하다. 본시 그들의 좌표는 어디에 있었을까? 과거의 말과 이력을 살펴보자. 무엇이 발목을 잡았을까?” 같은 날 쓴 ‘세계는 진보의 시대로 가는가? 진보주의의 미래?’라는 글에선 진보주의의 방향을 고민했음이 드러난다. “진보의 시대라는 개념이 정태적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의 위기와 그 이후 세계의 질서. 세계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진보 진영의 전략은 새로운 경쟁의 환경과 경쟁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런 노 전 대통령의 활동을 두고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카페를 열고 시스템을 만들어 공동창작을 모색했다. 시스템을 만들고 그 안에서 각종 문제를 제기하고 댓글을 다는 순간, 대통령은 분명 미래를 꿈꾸며 사는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은 “자신의 연구와 탐구를 시민 노무현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치열하고도 절박한 실천의 끈으로 여겼다는 점이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제도 정비는 그의 대통령 재임 시절을 관통하는 과제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개헌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월9일 대국민 특별담화에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그는 왜 ‘안 될 일’을 굳이 추진했던 것일까? 의문을 푸는 열쇠는 정치개혁의 핵심인 권력 분점과 정당 책임정치에 있다. 2005년 7월28일 열린우리당 당원들에게 쓴 글을 보면 그런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당정분리 제도는 대통령의 권력을 제한하자는 국민적인 여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당과 국회의 위상과 권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 총리에게 보다 많은 권력을 이양함으로써 당을 정권의 중심에 서게 하는 것이 시대정신에 맞는 국정 운영이라 생각한다.” 책임총리제를 도입해 국정 운영의 많은 권한을 총리와 나누고, 당 중심의 국정 운영을 하려고 애썼다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하지만 4대 개혁입법을 비롯해 그가 추진한 일은 사사건건 야당의 반대에 부닥쳤다.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정책도 효과를 내기도 전에 수시로 치러지는 선거 때마다 ‘정권 심판’의 소재가 됐다. 그로선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불일치가 불합리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더해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모든 대통령이 임기 중반 이후 레임덕에 시달리고 결국엔 탈당을 강요당했던 것도 대통령 단임제와 임기 불일치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인식했다. 두 기관의 임기를 맞춰 국정 운영을 맡기고, 그 평가는 다음 선거 때 받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원포인트 개헌 제안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당시 이백만 청와대 홍보특보는 “(노 대통령이 청산하겠다고 약속한) ‘낡은 정치’는 낡고 닳아 효율성이 현저하게 떨어진 국가 운영 시스템을 의미한다. 헌법은 국가 운영 시스템의 최고 규범이므로, 헌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의미다. 개헌안은 이런 의미에서 낡은 정치 청산의 핵심이자 정치개혁의 화룡점정”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개헌 발의를 할 경우에 대비해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작성해두었던 대국회 연설문을 보면, 이런 문제의식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글에선 평소 자신이 구상했던 내각제 개헌과 관련한 내용까지 언급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에게 지역주의 극복은 “정치 생애를 건 목표이자 대통령이 된 이유”였고, “정권을 내놓고라도 반드시 성취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일이며 역사에 대한 의무”였다. 지역주의 해소를 위해 구체적으로 선거구제 개혁, 대통령 결선투표제와 내각제 도입 등을 검토해볼 시점이 됐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한나라당에 제안한 대연정은 그렇게 지역주의의 벽을 무너뜨려보자는 ‘노무현식’ 해법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을 테니, 지역구도만은 벗어나보자는 주장이었다. 소문상 전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이 내내 붙잡았던 화두는 민주주의였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대화·타협하는 게 민주주의인데, 이를 가로막는 것이 적대적 지역구도와 권력 독식이라고 여겼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대연정을 제안했던 건 대화와 타협을 위한 연합정치를 모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정 제안도 실패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지역주의 극복이야말로 제도 개선이 우선돼야 할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특정 지역을 한 정당이 독식하는 구조를 깨는 건 사실 노 전 대통령을 떠나서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다. 그래야만 새로운 정치세력의 유입도 가능하고, 정치가 국민의 요구에 더 잘 반응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하든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든 비례성이 높은 투표제가 도입돼야 한다. 대선에서도 결선투표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격이라 국회가 쉽게 제도를 바꾸려 들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서복경 참여연대 실행위원은 “유권자는 선택할 대안이 있어야 투표를 한다. 정치·사회·심리적 친밀감과 안정감을 주는 대안이 되도록 정당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7대 총선에서 유권자가 열린우리당을 선택했던 건 ‘개혁’을 내세운 새로운 대안이었기 때문인데, 이 대안이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실패하고 해체돼버리면서 유권자는 배신감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정치 무관심층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정치 무관심은 한국 사회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의식의 확대도 필요하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덕수궁 돌담길에 늘어서 힘겹게 그를 보내던 시민들 사이에선 희망의 싹도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내는 마지막 길, 당신께 이것만은 약속드립니다. 평생 투표를 꼭 하겠습니다.” 누군가 마련한 붙임판엔 ‘평생 투표’를 약속하는 색색의 스티커가 빈틈없이 붙어 있었다. 다시 노 전 대통령의 말을 되새길 때다.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를 돌리지 마십시오.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꾸는 힘은 국민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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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야권의 진보는 ‘노’의 신자유주의보다 떳떳한가 (시사IN [91호] 2009년 06월 09일 (화) 14:38:05 이종태 기자)
노 전 대통령은 공격적 개방과 복지로 한국을 지구적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적응시키려 했다. 결과는 현실 정치 공간에서의 패배. 그러나 노무현을 비판해온 야권 세력은 그를 능가할 수 있는가. 
 
2003년 대통령에 취임한 노무현이 5년 동안 끌어안고 뒹굴었던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대외적 조건이었다. 이런 대외 조건에 노무현이 대응한 방법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적극 적응’이었다. 박정희와 전두환도 시도하지 못했던 자본시장 개방(국내 기업의 소유권을 외국인이 보유하거나 거래할 수 있게 하는 조처)을 김대중이 완료했다면, 노무현은 공격적인 개방을 통해 경제성장을 성취하려 했던 정치가였다. 개방과 자유화를 가장 급진적으로 추구한 정치가는 민주화운동 출신인 김대중과 노무현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시아 금융허브’와 그 수단인 자본시장통합법을 추진했다. 해외의 유수 금융기관을 국내로 유치하기 위해 한국투자공사를 설립한 것도, 골드만삭스나 리먼브러더스 같은 투자은행을 육성하자는 주장이 국정 지표처럼 부상한 것도 노무현의 집권기였다. 은행에서 보험상품을 팔고, 증권사가 지급결제권을 가지게 하는, 이른바 금융기관의 겸업화와 대형화를 본격 추진한 것도 참여정부였다.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하면서 금융을 비롯한 교육·의료·법률·회계 등 ‘고급 서비스업’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한국의 대외 의존도 역시 노무현 시대에 오히려 크게 심화되었다. 국민총소득(GNI)에서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노무현이 취임한 2003년 70.6%에서 2007년에는 85.9%로 급증했다. 내수를 중시하는 정부인데도 그랬다.
 
노무현은 신자유주의 성장 전략을 추구하면 양극화가 깊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경험을 앞서 겪은 미국 민주당(클린턴 이후), 영국 신노동당의 1990년대 이후 ‘신노선’을 벤치마킹한 흔적이 보인다. 이 신노선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폭넓은 계층이 함께 성장하는 동반성장 모델을 선호한다. 부유층이 성장해서 하위 계층으로 부를 확산시킨다는 ‘트리클 다운’ 효과에는 회의적이다. 둘째, 우파 세력으로부터 시장과 성장이라는 가치를 빼앗아 자기 세력의 의제로 삼았다. 노동자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라 해도 좀처럼 시장을 규제하거나 제한하려 하지 않는다. 셋째, ‘복지’의 개념을 바꿨다. 이들에게 복지는 ‘세금을 걷어서 소외층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투자’다. 예컨대 교육 부문에 집중 투자해 지식정보사회에 적합한 인재를 많이 키움으로써 경제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식. 이 경우 복지는 경제의 일부분이 된다. 넷째, 기회의 평등이다. 사회투자 혹은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는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국민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사상이다.
 
한국의 복지 지출은 노무현 재임 기간에 크게 늘어났다. 공공부조(생활유지 능력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제도)인 기초생활보장제도 예산은 노무현이 집권한 2003년 1조9600억여 원에서 2007년에는 2배에 가까운 3조4300억여 원으로 급증했다. 의료보험 보장 수준도 김대중 재임 시의 50% 내외에서 64%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노무현이 미국 민주당과 영국 신노동당의 사회·경제 철학을 정책에 본격적으로 반영한 것은 집권 후반기다. 특히 보육 부문은 영미의 사회투자 개념을 거의 직접적으로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4월부터 시행 중인 아동발달지원계좌는, 저소득 어린이 측에서 이 계좌에 일정한 금액을 적립하면 18세까지 같은 금액을 정부가 넣어준다. 18세 이후에는 이 돈을 학자금, 기술습득 비용, 창업이나 주거마련 비용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희망스타트 프로젝트는 저소득층의 0~12세 아동을 대상으로 건강·복지·교육 등에서 맞춤형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보육 예산은 2003년 3428억원에서 2007년에는 1조4178억원으로 4배 이상 늘어났다. 2007년 6월의 참평포럼 1차 월례강연회에서 노무현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회투자는 우리 국민을 경쟁력 있는 국민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사람이 경쟁력이다. 어린이에게, 그리고 불편하거나 조건이 불리한 사람들에게 집중 투자를 해서 그 사람들에게도 사람다운 삶을 보장함과 더불어서 우리 사회의 부담을 없애가자는 것이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적극적 개방을 통한 강력한 성장’이라는 기조 아래에서, 사회통합 및 성장 인프라 육성 차원으로 인적 자본에 투자한 것이다. 이는 기실 영국과 미국 중도 진보 세력의 정책을 한국화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무척 엄혹했다. 그 이유를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 당시에 틀 지워진 복지제도를 대대적으로 확충했다. 그리고 복지를 사회 기본권으로 간주하게 한 공로가 있다. 그러나 그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은 오히려 양극화를 극대화하고 재생산하면서 복지를 억압했다. 사실 경제 부문에서 진행되는 양극화를 복지로 막기는 힘들다.”
 
‘뉴민주당 선언’의 내용은 기실 노무현의 후기 노선과 대동소이하다. 경쟁력 및 가치의 원천을 자본이 아닌 사람에게서 찾는 것이 그렇고, 일자리 창출과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삼는 것도 그렇다. 성장을 상대적으로 강조하지만 노무현도 성장주의자였다. 사실 뉴민주당 선언과 노무현의 후기 노선은 미국 민주당과 영국 신노동당의 쌍생아다. 그러나 이 노선에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중도진보 세력이 이 노선으로 집권하고 경제성장에 기여한 나라는 영국과 미국이라는 금융패권 국가였다. 또 이 노선은 지난해 가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본격화한 세계 금융위기 이후 운명이 불투명하다. 영국 신노동당은 지지율이 급락하는 추세다.
 
‘불판을 갈자’거나 ‘뉴민주당 선언은 부도수표’ 등 은유와 비아냥은 멋지다. 그러나 먼저, 노무현이 오르기 위해 버둥거리다 떨어지고 만 그 ‘벽’을 진보 정치의 현실적 제약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넘을 자신이 없다면 노무현을 비판할 자격도 없다. 그 ‘벽’의 이름은 신자유주의 세계체제라는 엄혹한 대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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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행정부·의회 권력분배해야” (한겨레, 김지은 기자, 2009-06-11 오후 09:08:33)
‘6월포럼’…‘한국민주주의 퇴행’ 잇단 제기
‘반대통령제’ ‘유럽식 비례대표제’ 등 제안

 
6월 항쟁 22돌을 맞은 10일 저녁 <한겨레> 후원 6월포럼 연속토론회에서는 흔들리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진단과 우려, 대응 모색을 둘러싸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발제자로 나선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서울 정동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선거를 통해 평화적· 정상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진 상황에서 보수정권이 들어섰다고 민주주의가 과연 후퇴하겠느냐는 질문 앞에서 자성하고 있다”며 “6월 항쟁 22돌을 맞은 시점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다시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지난 10년 한국정치의 가장 큰 변화를 “밑으로부터 참여의 급증에 따른 직접 민주주의의 확대”와 “아래로부터의 지방화인 ‘협치’(거버넌스)의 증대”로 꼽았다. 반면 한국 정치의 또다른 특성으로 ‘정당 민주주의, 대의제 민주주의의 더딘 발전’을 들었다. 박 교수는 “직접 민주주의를 수용하지 않고는 대의체제, 민주정부가 안정적이기 어렵다”며 대통령과 총리, 행정부와 의회가 권력을 적절히 분배하는 ‘반대통령제’를 대안의 하나로 제시했다. 박 교수는 ‘전자 민주주의의 확대’도 변화의 큰 축으로 꼽고, 대의 민주주의가 투명성과 공개성을 핵심으로 하는 전자 민주주의를 반영할 것을 제안했다.
 
박 교수는 신행정수도 문제처럼 ‘불법’이 존재하지 않는 ‘정치문제’를 사법의 영역으로 다루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민주주의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시장성, 효율성이 민주성, 시민성의 가치를 압도하고 있고, 정치가 특정 기업 일부 최상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며 사회 공공성의 파괴를 우려했다.
 
토론자로 나선 조현옥 이화여대 교수 역시 ‘민주주의의 퇴보’를 우려하며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정당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당 발전이 시민 의식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지만, 너무 직접 민주주의를 강조하면 정당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며 “소수 정당이 제도권 안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유럽식 비례대표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등 선거 제도를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전자 민주주의의 중요한 의미 가운데 하나로 ‘엘리트와 대중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을 짚었다. 그는 또 한국 정치의 특성으로 ‘속물주의’를 꼽으며 “속물주의는 우리 사회가 모든 문제를 경제 우선주의로 보면서 도출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 사회가 80년대 이후 정치적·절차적 민주주의에 매달렸는데, 경제적 민주주의는 등한시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내용적인 민주주의가 채워지지 않은 게 우리 사회를 속물주의로 이끄는 게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황인성 통일맞이 집행위원장은 “6월 항쟁과 한국 민주주의는 앞으로도 진전한다고 생각하며, 불가역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선 토론자들이 ‘정당정치 복원’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과 달리 현 상황에 대해 “시민단체의 책임이 더 크다”며 “시민단체들이 일상적 참여정치를 기본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집중적으로 정치행동을 할 수 있는 그룹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정치에서 남북한 문제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북한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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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붙는 ‘민주주의 논쟁’ (경향, 김진우기자, 2009-06-08 17:29:27)
ㆍ盧 전대통령 서거, 6·10항쟁 22돌 맞아 점화
 
‘민주주의’가 다시 말해지고 있다. 지난해 촛불시위에서 터져나왔던 민주주의 논쟁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다시 불거지고 있다. 최근 잇따른 시국선언에서도 현 정부 들어 ‘민주주의 원칙들’의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때 마침 ‘역사비평’ ‘문화과학’ 등 계간지 여름호에선 민주주의 관련 특집들을 마련했다. 6·10 민주항쟁 22돌을 맞아 한국민주주의의 현실을 성찰하는 토론회도 잇달아 열리고 있다.
  
계간지 ‘역사비평’ 여름호도 현재 한국 사회가 급격한 민주주의 후퇴와 사회경제 정책의 혼돈을 목도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특집 ‘경제위기와 민주주의-대공황기 사회경제 정책의 함의와 한국의 미래’를 마련했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한국의 경제위기, 민주주의와 시장만능주의’라는 글에서 비슷한 시기 경제위기에 직면해 각각 시장만능주의와 경제민주주의의 길을 택한 미국과 스웨덴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스웨덴의 경제위기 극복 및 경제와 민주주의 동반 발전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고 밝혔다. 경제위기를 단시간 내에 극복하겠다는 조급주의를 버리고 구조개혁의 기회로 받아들인 점, 정부와 재계가 노동자를 대등한 동반자이자 경영의 협력자로 받아 들여 산업 평화와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꾀한 점 등이다. 이 교수는 “이명박 경제 정책의 본질은 서로 모순되는 관치경제·개발주의와 시장만능주의가 혼합된 것이므로 집권 5년은 관치경제·개발주의와 시장만능주의 사이를 우왕좌왕할까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나치의 일자리 만들기와 재무장’이라는 글을 발표한 이진모 한남대 교수(사학)는 “나치 독재정권에 의한 일시적 경제회복은 비극적인 ‘막다른 골목’ 세계대전으로의 길이었다”면서 “심각한 세계적 경제위기에 직면해 독재는 신속하고 효과적인 해결을 약속했지만 그들이 남긴 것은 단지 전쟁과 파멸이었다”고 말했다.
 
‘문화과학’ 여름호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최근 경찰폭력의 증가, 악법 입법, 극우세력 준동 등 다양하게 파시즘적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전체 특집을 ‘파시즘’으로 잡았다. ‘역사적 파시즘과 파시즘 X’라는 글에서 편집위원회는 “역사적 파시즘의 특수한 배치를 가능하게 했던 여러 조건들과 요소들이 이명박 정권과 함께 다시금 현저하게 부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정권이 장담하는 것과 달리 한국경제가 금년 하반기에 U자형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L자형 패턴을 취하고, 대다수 국민들이 탈정치화되어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몰될 경우 이 두 조건을 우파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파시즘 X’가 출현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밝혔다. “북한과의 긴장관계 강화는 파시즘 체제 구축을 위한 정세적 변수로 활용될 수 있다”고도 했다. 편집위원회는 “한국은 제3세계의 지역적 군사독재와는 달리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찰력에 의존하는 ‘정보파시즘’이 결합된 ‘신자유주의 파시즘’과 같은 양상을 취할 수 있다. 이런 변종 파시즘 체제는 과거와 같이 군사력을 굳이 동원할 필요 없이 법률적 정보 통제를 통해서 구축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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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한국민주주의의 현실을 논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 6. 4)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6월민주항쟁기념 학술대토론회 개최
 
6월민주항쟁 22돌을 맞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는  6월민주항쟁의 의미를 되새기고 한국민주주의의 현황을 점검하는 학술대토론회를 오는 6월 9일(화) 오후 1시 30분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개최한다. “한국민주주의와 87년체제”라는 주제로 개최되는 이번 토론회에는 손호철(서강대), 박명림(연세대), 정일준(고려대), 이영훈(서울대), 이병천(강원대) 교수와 원희룡(한나라당), 김부겸(민주당) 의원 등 한국사회의 지식인으로, 정치현장에 있는 현직 국회의원으로 저마다의 다양한 시각을 펼치는 이른바 ‘영향력 있는 지식인’들이 모여 한국민주주의의 현황에 관한 견해와 전망을 펼칠 예정이다.
   
한국사회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일련의 민주화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지만 그 당시 성립된 (대통령 5년 단임제를 골자로 하는) 9차 개정헌법의 헌정체제와 사회문화의 기조를 지금까지 큰 틀에서 유지하며 이것이 여러 가지 사회적 역학관계(dynamics)를 만들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른바 ‘87년 체제’ 이후의 한국사회는 여야간 정권교체, 시민사회 활성화, 남북 긴장완화와 같은 성공적인 민주주의 발전 요소도 있었던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화의 도전이나 새로운 정치질서를 갈망하는 시대정신에 맞게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가 정체 또는 위기를 맞고 있다는 부정적인 평가 역시 존재한다.
 
정일준 교수는 “통치성을 통해본 한국현대사: 한국의 사회구성과 ‘87년체제’”라는 주제로 보다 색다른 관점의 체제론을 제시한다. 정교수는 87년체제에서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뿐만이 아니라 53년 체제, 61년체제의 한국사회가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전지구적 관점에서 볼 때 자유주의적 시장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정교수는, 사회과학에서 흔히 말하는 국가의 개입 정도나 시장의 형성 상태가 아니라, 사회적인 것을 해체하고 있는 통치성의 저발전을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척도로 봐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호철 교수는 ‘체제논쟁’ 자체에 충실한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손교수는 48년체제(극우반공체제)로부터 61년체제(개발독재체제), 이의 정치체제(관료적 권위주의내지 종속적 파시즘)를 해체한 87년체제를 거쳐, 이를 정치경제체제(발전국가)를 해체해 신자유주의로 대체한 97년체제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 특히 97년체제를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사회체제로서 그 의미를 크게 받아들이고 있다. 87년체제는 헌정체제 등 일부 부분체제로서의 의미만 남았을 뿐 이미 97년체제로 대체되었고 08년체제 역시 제한적 정치적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갖고 있다는 면에서 97년체제의 틀 내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그는 앞으로 ‘너무 큰 체제론’이 아니라 정당체제, 사회운동체제, 분단체제 등 부분체계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가 보충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박명림 교수는 민주화 20년의 발자취에 대해 성과와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문민화, 지방화, 엄정한 선거와 그 결과의 준수, 시민사회 발전, 남북화해 진전, 인권과 양성평등의 증진, 동아시아 협력 주도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가져왔지만 많은 문제를 낳아오기도 했다. 박교수에 의하면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대통령제 권력구조, 지역주의의 과잉대표, 노동의 과소대표, 사법통치사회, 반복되는 개헌논의 등으로 표출되는) 제도적 불안정성, (민주화될수록 기업, 언론, 교육, 종교 등의 사회경제 권력의 자율성이 커짐에 따라 양극화가 심화되는) 사회경제적 역진(逆進) 현상, (자유․시민․개혁 세력/담론과 노동․민중․급진 세력/담론 사이의 연합이 해체되는 대신) 경제유일주의․시장만능주의, 그로 인한 속물화 등이 부각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박교수는 “사회정책(social policy)과 시장경제(market economy)를 결합”한 “사회국가”, 공적 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시민교육, 헌정구조의  개편(4년 중임의 반대통령제(semi-presidentialism), 감찰관련 기구의 독립 및 중립화를 통한 감독부(監督府)의 신설 등),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결합하는 반(半)직접민주주의의 실현, 개혁세력의 최대연합을 민주화 의제로 설정하고 실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 발표 요약문
< 통치성을 통해본 한국현대사 : 한국의 사회구성과 ‘87년 체제’ >
- 정일준(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이 글에서는 통치(governing)라는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를 개괄하면서, ‘87년 체제’ 담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자 한다.
 
우리는 ‘통치성(governmentality)’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현재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사회의 국가화 또는 시장화가 아니다. 바로 국가의 ‘통치화’(governmentalization)가 문제이다. 통치성의 문제설정과 통치테크닉은 정치투쟁과 경쟁의 유일한 쟁점이자, 유일한 실제 공간이다. 국가의 통치화는 동시에 국가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것이며, 국가가 오늘날과 같이 된 것은 동시에 국가의 안팎을 규정하는 바로 이 통치성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국가의 능력 안에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등등을 끊임없이 정의하고 재정의 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통치기예이기 때문이다.
  
국제관계의 역사사회학이라는 시각에서 한국의 국가와 시장의 역사적 형성과 변형을 지구정치경제체제와의 관계 속에서 추적함으로써 한국의 사회구성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나아가 ‘한국사회’의 역사로서의 현재에 작용하는 안팎과 위아래의 힘들을 자유주의적 민주화,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효과로 파악하면서 ‘87년 체제’ 담론을 ‘53년 체제’, ‘61년 체제’ 또는 ‘97년 체제’와 상호관계 속에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자유주의 통치성이 뿌리내리지 못한 가운데 신자유주의 통치성으로 과속질주함으로써 현 정부는 권위주의적인 신자유주의 통치성(authoritarian neoliberal governmentality)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국가의 과잉개입이나 과소개입도, 시장의 전횡이나 미비도 아니다. 바로 사회적인 것(the social)을 해체하는 통치성의 저발전이 문제이다! 비판은 통치에 선행하지 않는다.
 
< ‘한국체제’ 논쟁을 다시 생각한다.-87년 체제, 97년 체제, 08년 체제론을 중심으로> - 손호철(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87년체제론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체제논쟁은 그동안의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정치경제체계와 정치체계의 결합체라는 ‘사회체계(social system)’와  헌정체제, 사회운동체제, 노동체제, 정당체제, 젠더체제, 분단체제 등 다양한 ‘부분체제들(partial regimes)’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바라볼 때 87년체제는 헌정체제 등 일부 부분체제로서의 의미를 아직도 갖고 있지만 한국사회를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사회체계(열린 총체성)로서는 그 의미가 소멸됐고 현재는 97년 체제라고 규정하는 것이 맞다. 한국의 사회체계는 48년체제(극우반공체제)로부터 개발독재체제인 61년체제, 이의 정치체제(관료적 권위주의내지 종속적 파시즘)를 해체한 87년 체제를 거쳐 정치경제체제(발전국가)를 해체해 신자유주의로 대체한 97년체제에 이르렀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경제체제의 단절이 없었다는 이유로 61년 체제와 97년 체제만이 존재하며 87년체제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일부의 견해는 경제환원론으로 잘못된 것이다. 나아가 일부에서는 08년체제의 등장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역시 잘못이다. 이명박정부들어 정치적 재권위주의화와 경제체제의 우경화(‘우파 신자유주의’)가 나타나고 있지만 이것이 97년체제의 특징인 제한적 정치적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08년체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다만 97년체제의 하위체제로서 08년체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사회체계 분석과는 별개로 다양한 수준에서의 부분체제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바 이글에서는 그 예로 헌정체제, 노동체제, 분단체제, 정당체제, 정치균열체제, 민주화체제, 사회운동체제 등을 예시적으로 살펴보았다. 예를 들어 분단체제의 경우 적대적 분단을 특징으로 하는 48년체제에서 평화공존적 분단을 특징으로 하는 2000년체제를 거쳐 다시 적대적 분단으로 회귀하는 08년체제로 나가고 있다.
  
정당체제는 좌우 이념정당이 난립했던 45년체제에서 보수정당들만 남은 53년체제(보수정당독점체제), 이 보수정당들이 지역정당으로 변모한 87년체제(보수지역정당독점체제)를 거쳐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이 이루어진 현재의 04년체제(보수지역정당우위체제)에 이르고 있다. 사회운동도 좌우운동이 난립한 45년체제, 분단후 자유주의적 반독재민주화운동만 남은 53년체제, 5.18이후 진보운동이 살아난 80년체제, 민주화이후 자유주의적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이 분화되는 90년체제, 뉴라아트같은 냉전적 시민운동이 등장해 민중운동, 시민운동, 뉴라이트의 3분구도가 이루어지는 2000년체제, 효순, 미선 촛불시위이후 조직화되지 않은 네티즌들이 주도하는 02년체제로 변화해 왔다. 한국의 체제논쟁은 앞으로 이 같은 다양한 부분체제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뚜렷이 한 뒤 이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를 많이 축적해 나가야 한다.   
  
< 한국민주주의; 온 길, 선 곳, 갈 길 > - 박명림(연세대 지역학 협동과정 교수. 정치학)
 
처음으로 경험하는 건국 이래 최초의 진보정부에서 보수정부로의 평화적 정권교체는 한국민주주의의 현실에 대해 수많은 이론적 현실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한국 민주주의 후퇴의 정도가 훨씬 심각하고, 속도가 빠르며, 범위가 전사회적이라는 점이다. 과연 민주화 20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고, 무엇이 문제였는가? 현실구조와 정치에서 항상 거시는 미시로 발현되고, 미시는 거시로 응축된다.
  
한국민주화의 긍정적 성취로서는 탈군사화와 군부의 정치개입 전면금지 및 문민화 고착, 주기적 선거 및 결과승복 전통 확립, 사법부 독립, 인권증진, 정치사찰의 중단, 돈 안드는 선거 실시,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 최소한의 공공성·형평 정책의 추구, 시민사회와 참여의 폭발적 성장, 양성 평등의 진전 및 지방자치·지방분권 증진, 내적 민주화의 남북관계로의 파급효과로 인한 대북화해협력 정책의 시도, 동아시아 협력 이니셔티브 주도 등의 성과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성취는 쉽게 폄하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발전이 지금 거의 모든 영역에서 역전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성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주화는 많은 문제를 안은 채 진행되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한국 민주화의 제도적 불완전성, 불안정성이다. 무엇보다도 정치의 탈정당화, 지역화, 대통령-여당 갈등의 반복, 사법화·형사화, 헌법적 문제의 반복적 출현이 지속되었다. 87년 이후 한국정치의 대의기능은 정당을 넘어 시민단체, 사법부, 인터넷, 언론으로 5분(五分)되었다. 정당의 역할은 그만큼 축소되었다. 게다가 ‘모든 민주정부들’이 대통령탈당으로 인해 세계 정당민주주의 국가 역사상 유례없이 반드시 비정당·무정당 통치기간을 가질 정도로 정당체제는 불완전·불안정하였다. 모든 여당은 갑자기 대통령당화하였다가 급격하게 탈대통령화하였다. 동시에 대통령의 권력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위치로 급변하길 반복한다. 대통령(현재권력)과 여당(미래권력)의 갈등 역시 필연적이었다. 노태우-김영삼, 김영삼-이회창 갈등 이래 현재의 이명박-박근혜 갈등에 이르기까지 현행헌정구조에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선거균열과 정당체제는 지역주의·지역정당체제와 같이하며, 이는 일반적 사례와는 달리 대통령제와 다당제가 만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역정당체제와 노동의 배제·과소대표가 병행된 것은 주목할만하다. 보수정부는 말할 필요도 없이 김대중·노무현 집권조차 상당 부분 지역연합에 기초하였음을 고려할 때 이 요소는 헌정구조·정당체제와 관련해 심각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상 삶과 정치의 사법화와 형사화(criminalization) 역시 중요한 현상이었다. 즉 민주화 이후 법원-헌재의, 헌법적 법률적 권한을 넘는, ‘정치적’ 비중과 역할의 현저한 증대이다. 대통령 탄핵소추, 행정수도, 병역의무, 호주제, 환경문제(새만금), 삼성승계를 포함한 중요한 정치·사회·경제·인권·생활 의제들이 법원의 독립을 넘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법재판소를 포함한 법원에 의해 결정되는 “법원에게 물어보는 사회”, “헌재에게 물어보는 사회”, 즉 ‘사법통치사회’(juristocracy)가 되었다. 검찰의 기소 및 법원의 재판이 국민대표의 당락을 좌우하는 형사화 역시 점점 증대되고 있다. 의회와 법원의 상호독립과 균형을 범위를 넘는, 비선출직인 법원의 과도한 사회개입과 결정권한은 대의민주주의의 위협요소가 아닐 수 없다.
   
헌법의제와 개헌문제 역시 빈발하였다. 중간평가 약속(노태우), 3당합당과 권력구조 개헌 합의(김영삼), DJP 연합과 개헌 약속(김대중), 개헌제안(노무현), 집권시 개헌 약속(한나라당)....을 포함한 모든 정부들이 개헌을 약속하거나 제안할 만큼 87년 헌정체제는 불안정하였다. 지금도 18대의회는 개헌문제를 계속 논의하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이 문제를 극복하거나 정리하지 않으면 매 정부마다 개헌을 추진하거나 반대하는 상시개헌제안과 실패 상태가 반복될 것이다.
 
둘째 시장만능주의로 인한 사회경제적 이념적 정서적 양극화였다. 이제 사회경제적으로 한국은 시장유일주의로 인해 정부의 시장화·사사화·탈공공화로 인해 시장의 경제적 불평등이 그대로 사회적 시민적 공공적 교육적 불평등으로 고착되는, 마치 부자 한국, 서민 한국의 두 개의 한국인 것처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통계를 따르면 양극화를 넘어, 민주주의의 기저조건으로서의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을 위협하는 거의 사회해체 수준에 돌입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게다가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정서적 이념적 거리 역시 너무나 멀어져 진보 한국과 보수 한국의 두 한국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통합은 고사하고 두 이념은 지금 두 조직, 두 노선, 두 시위, 두 지향을 갖고 모든 이슈에서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셋째는 한국민주주의의 사회적 경제적 역진현상이었다. 즉 정치와 사회경제의 심각한 부조응-탈구(dislocation)현상이다. 기실 이점은 한국민주화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은 정부·정치와 시민사회만이 민주화되어 민주정부를 갖는 일종의 기형적 돌출적 민주화였다고 할 수 있다. 민주정부만이 시민사회의 지지로 등장하고 지탱한, 마치 섬처럼 포위된 민주화였던 것이다. 게다가 민주화가 시장화로 치달으면서 모든 나라에서 국가의 민주주의를 밑받침하는 경제와 사회, 특히 기업, 언론, 교육, 종교의 핵심 4 부분은 민주화가 진전될수록 증대되는 자율성에 바탕해 더욱 양극화·과두화(사실상 半獨占化)·보수화하였다. 우리는 자율화에 따른 거대한 힘의 역전과 포위, 이점을 포착하지 못했던 것이다. 민주화로 인한 자율화, 즉 민주정부로부터 자율성을 부여받을수록 더욱 과두화하며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역설의 병행이었던 것이다. 즉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사회적 역민주화가 함께 진행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미 보수적 과두적인 경제사회 영역에다가 정부마저 투표를 통해 다시 보수정부로 바뀌자 모든 영역에서 일거에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넷째는 담론적 지적 문화적 헤게모니 현상 및 이의 전사회화-정치화였다. 일종의 좌우 모두의 단일표제주의로서의 경제유일주의 현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점은 특히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서 두드러졌다. 특별히 자유-노동, 시민-민중, 개혁-급진 담론의 분열 - 양측 모두의 한계로 인한 - 과 후자의 전자에 대한 경제정책-분배정책 실패에 대한 거센 공격은 공교롭게도 보수언론을 통해 기업과 보수정당의 담론 장악 - ‘잃어버린 10년’ ‘경제가 문제다’ ‘CEO 대통령이 필요하다 ’- 에 크게 기여하였다. 자유-노동연합, 시민-민중연합, 자유-사민연합을 통해 보수파를 견제하고 사회정책-복지정책을 강화할 수 있었던 역사적 경로에 비해 이 분열은 경제사회의 과두화와 성장연합-발전연합의 재구축에 기여하는 역설적 역할을 수행하고 말았다. 급진파, 노동계층의 투쟁 및 자유-노동연합이 보수주의를 견제하고 자유주의-사민주의-복지연합을 갔던 경로들과 반대를 갔던 것이다. 보다 거시적 비교 연구가 필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끝으로 경제유일주의, 시장만능주의로 인한 속물화 역시 지적되어야한다. 인종, 지역, 종교적 요인을 빼고 한국에서 특정 상류층 구역의 선거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몰표현상을 보이고 있다. 시장화의 진전과 함께 삶의 거의 모든 가치가 경제적 물질적 부의 크기에 의해 좌우되면서 인간적 사회적 삶의 다른 중요한 가치들이 급격하게 쇠락, 축소되고 있다. 심지어 “부동산”, “복부인”, “투기”와 같은 부정적 용어들조차 시장화의 흐름 속에 성공의 징표로 받아들여지는 가치전도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들로 인한 재빠른 부의 창출이 과거와 달리 이제는 아무런 도덕적 부끄러움과 장애를 느끼지 않는 가운데 삶의 빠른 외면적 성공을 자랑하는 전국가적 전사회적 전세대적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언표는 아마 “초등학교 때 1억 만들기”와 같은 가공할 시장주의=물질유일주의(유물주의)=속물주의일 것이다. 민주시민은 고사하고 여러 기본자질을 갖춘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화창출의 주체를 만들려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수단의 목적화로의 완전한 전도인 것이다. 재화의 크기가 삶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거의 유일한 기준이다보니, 절차와 방법에 관계없이 가장 속물적인 삶조차 가장 성공적인 삶으로 받아들여진다. 더욱 큰 문제는 공적 시민과 사적 삶, 공적 요구와 사적 욕망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과 무게의 완전한 소멸이다.
 
대안은 비교적 분명해보인다. 발표자는 이를 다섯 가지로 요약해보고자 한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최소 존재 이유의 복원, 즉 형평성, 공공성의 회복이랄 수 있다. 그것은 시장의 극심한 양극화 과두화와 불평등을 교정하기 위한 정부의 형평성·공공성 회복, 분배역할을 말한다. 자본주의에서 민주주의와 민주정부의 존재이유는 시장의 창의력을 보장하는 동시에 불평등을 교정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시장과 정치는 존재의 이유가 같지 않으며 서로 보완적 역할을 통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사회적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음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발표자는 삶의 질과 복지를 추구한, 한국 정도의 경제성장 이후 거의 모든 선진 민주국가들이 갔던 “사회정책(social policy)과 시장경제(market economy)의 결합”, 또는 “사회국가”를 바람직하면서도 실현가능한 대안으로 제시해왔다. 현재 OECD 평균 1/6-1/7로서 최악에 불과한 정부의 공적 지출, 재분배역할을 최소한 OECD 평균수준이라도 수행해야하는 것이다. 사회정책과 분배역할에 관한한 한국은 정부 역할이 없거나 그대로 시장에 맡겨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많은 사례에 대한 거시적 역사적 비교연구들이 보여주었듯 사회권력자원의 분산과 형평 없이 극심한 과두사회나 양극화 상황에서 지탱가능하고 발전하는 민주체제는 존재하기 어렵다. 민주정부는 전적으로 사회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둘 중의 하나, 즉 과두체제로 치닫거나 또는 민중저항을 통해 붕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공공성 형평성의 회복은 지금 한국민주주의는 물론 한국사회와 체제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정말 화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민중혁명과 급진주의를 넘었던 서구부르주아처럼, 한국 보수정부와 세력의 보수적 지혜가 절실한 부분이다.
 
둘째는 시민덕성의 제고를 통한 사회적 공준, 공동선, 공동가치 기준의 확립을 위한 노력이다. 좌우, 진보와 보수를 넘어 합의가능한 공준을 창출하는 문제는 민주주의를 정의하고 추구하는 문제보다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기실 인간과 사회문제의 많은 것들은 두 이념의 극단적 편향으로는 외려 풀리지 않으며, 거꾸로 그 중간 어느 지점에서인가의 중용, 합의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다.
  
물론 사회문제와 인간문제, 개별성과 전체성은 분리될 수 없다. 시민 개개인 삶의 발전을 위한 사회전체 문제의 해결은 필수적이며, 전체 사회문제의 바람직한 개선의 목표 역시 개별적 삶을 행복하게 하고 평안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발전을 위한 공적 시민의 양성과 시민덕성의 제고·교육은 그 자체 사회적 가치이자 개인적 행동규범을 포괄한다. 궁극적인 의미에서 좋은 시민없이 좋은 민주주의, 좋은 사회는 어렵다. 좋은 민주주의는 곧 좋은 시민을 양성하는 체제이기도 하다.
  
셋째는 헌정구조의 근본적 개혁이다. 이제 현행 단임 대통령제는 더 이상 지속되어서도, 지속될 수도 없다. 한국민주주의는 고사하고 한국의 체제 자체가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려운 것이 현행 5년단임제이기 때문이다. 발표자는 행정부와 의회, 대통령과 국무총리(또는 부통령)가 권력을 분점하는 동시에 책임성을 제고하며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4년 중임의 반대통령제(semi-presidentialism)를 제안한다. 또 국회의원 보수와 특권을 축소한 뒤 국회의원 숫자를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늘려 대표성을 강화한다.(현재는 선진국의 1/2 수준) 그때 비례대표는 지역대표의 1/2 수준으로 대폭 증가시킨다.
  
또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지역대표 의원 선거를 실시하며, 대통령 임기 중간에 비례대표 의원 선거를 실시하여 임기 중간에 중간평가를 결행, 직접 참여와 저항 이외에는 임기 내내 평가의 기회가 없는 현재의 선거주기를 혁신한다. 즉 책임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한다. 권력구조는 4권분립체제를 지향한다. 검찰·감사원·국세청·공정거래·금융감독기구 등 감찰관련 기구의 독립 및 중립화를 통한 감독부(監督府)의 신설을 통한 입법-사법-행정-감독의 4권분립을 제안한다. 이제 3권분립은 더 이상 맞지 않는다.
   
넷째는 민주주의 구성원리의 수정이다. 87년 이후가 보여주듯 인민주권과 국민주권,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 참여와 대의의 결합 없이는 후자, 즉 대의민주주의조차 안정될 수 없다는 점이다. 국민주권을 넘어 인민주권과 참여를 제도화하는 민주정부 구성 노력이 절실하다. 즉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결합하는 반(半)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다. 특히 주요 사안에 대한 시민직접결정의 원칙을 도입하여 확장할 필요가 있다.
  
정당과 대표들(의회)의 대표행위에 대한 시민통제 역시 강화되어야한다. 이제 시민참여, 시민발의, 시민청원, 시민소환, 시민입법, 시민의회(공회)제도에 대한 다양한 모색을 통해 참여와 대의의 결합 없이는 6월항쟁, 촛불, 탄핵반대, 추모 열기 등을 수용하여 직접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시민의사를 제도적으로 수렴·반영하지 않고는 대의정치와 정당체제를 안정시킬 방도가 존재하질 않는다.
  
다섯째는 정치연합을 향한 진보개혁진영의 지혜, 중용, 공존, 인내를 강조하고 싶다. 야당-재야-노동-시민 사이의 최대민주연합을 통해 반군부독재 민주화를 이루었듯 이제 다시 최대진보개혁연합, 또는 최대복지연합, 자유-사회-개혁연대를 결성하여 2단계 민주화를 달성해야할 것이다. 강조할 필요도 없이 한국에서 자유-노동, 시민-민중 세력, 온건 개혁과 진보 개혁 세력과 정당 사이의 기원, 네트워크, 노선, 지향은 (기존 민주개혁, 또는 급진담론의 주장과는 달리, 그리고 금번 정권교체로 드러났듯) 그들과 보수세력 사이의 차이보다 훨씬 작다. 아니 크더라도 보수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줄 정도로 강조되거나 최대강령주의·근본주의를 고수해선 안된다. 진보에서 보수로의 정권교체 효과를 목도한 이제 이 차이는 과거처럼 반복되거나 과장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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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민주주의’ 후퇴인가 ‘97년 신자유주의’ 심화인가 (한겨레, 이세영 기자, 2009-06-11 오후 02:31:26)
한국사회 체제논쟁 재점화
‘반신자유주의’-‘반이명박’ 정치논쟁으로 확대
손호철 “IMF뒤 양극화·비정규직 등 근본 변화”
  
‘87년 체제냐, 97년 체제냐.’ 진보 사회과학계에 다시 한번 ‘체제논쟁’이 점화될 조짐이다. 논쟁의 중심에는 1990년대 후반 노사관계 연구자들에 의해 처음 사용된 뒤, 2000년대 중반 계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특성을 총괄하는 용어로 공론화된 ‘87년 체제’가 자리잡고 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9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한국 민주주의와 87년 체제’라는 주제로 마련한 토론회에서 “87년 체제론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체제논쟁은 더이상 ‘주먹구구식’ 논쟁이 아닌, 경제체제와 정치체제의 결합체인 ‘사회체제’와 헌정·노동·정당·젠더 체제 등 다양한 ‘부분 체제들’을 구분하는 체계적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논쟁의 방향 전환을 촉구했다.
 
지금의 한국을 규정하는 총체적 사회질서가 1987년 불완전한 민주화를 통해 형성됐다고 보는 ‘87년체제론’에 대해선 6월항쟁 20년을 전후한 2007년 무렵부터 다양한 논의들이 쏟아졌다. “87년체제는 없다”는 전면부정론이 나왔는가 하면, “87년체제는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종결됐다”는 시효소멸론도 주목을 받았다.
 
대선과 이명박 정부 출범을 거치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논쟁은 촛불시위와 미디어법 파동, 용산 참사 등을 계기로 꿈틀대기 시작했다. 공고화 단계에 진입했다고 여겨지던 정치적 민주주의가 퇴행 양상을 보이면서 이른바 ‘민주화 체제’로서 87년체제가 갖는 과도기적 불안정성이 거듭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창비그룹이 최근 87년체제를 둘러싼 학계의 논의를 <87년체제론>이란 책으로 묶어낸 것이 발화점 구실을 했다. 책의 서문에서 김종엽 한신대 교수는 97년체제의 우위를 주장하는 손 교수 등의 주장을 “우파의 ‘선진화론’과 동일한 프레임에서 87년체제를 평면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이번에 손 교수가 작심한 듯 창비의 87년체제론을 반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손 교수의 비판은 창비그룹이 1987년의 질적 전환에만 집착한 나머지 그 이후의 전환, 곧 1997년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체제의 전면화가 갖는 의미를 부당하게 축소하고 있다는 데 맞춰져 있다. 비정규직의 주류화와 청년 실업, 사회 양극화 등 “97년 이후 나타난 근본적 변화를 목격하면서도 한국의 사회체제가 여전히 87년체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에 눈먼 ‘색맹 사회과학’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손 교수가 볼 때, 87년체제는 헌정체제 같은 부분 체제의 의미는 있지만, 사회를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사회체제의 의미는 소멸됐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의 변화에 주목하는 ‘08년체제론’에 대해서도 손 교수는 “권위주의 회귀와 경제의 우경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97년체제의 특징인 제한적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벗어난 것이 아니란 점에서 08년체제를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일축한다.
 
이번 논쟁의 무게가 간단치 않은 것은 체제 성격을 둘러싼 이론적 경합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반신자유주의 연합’(97년체제론) 대 ‘반이명박 연합’(87년체제론) 같은 정치전략과 연동된다는 데 있다. 1980~90년대 엔엘·피디간 사회 성격 논쟁이 ‘민주대연합론 대 독자세력화론’이라는 정치 논쟁과 짝을 이뤄 진행된 것과 같은 이치다.
 
손 교수는 헌정·노동·민주주의·분단·젠더 체제 등 다양한 부분 체제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손 교수의 논의에서 이들 체제는 사회체제의 ‘하위체제’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그 안에 담긴 정치적 의미는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97년체제가 요청하는 반신자유주의 연합을 기축으로 다양한 ‘하위연합’을 접합시켜야 한다는, 일종의 반헤게모니 전략이다. 손 교수의 97년체제론을 ‘신자유주의 환원론’으로 비판해온 반대 진영의 반응이 기다려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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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X의 탄생 (한겨레21 2009.06.12 제764호, 안수찬 기자)
[표지이야기]유사 파시즘, 신자유주의 공안국가, 파시즘 프렌들리…
규정은 아직 이르지만 ‘파시즘 경향’은 급증해
 
청와대 한 수석실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가 좌파 방송 때문이므로 절대로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게 내부 분위기”라고 최근 상황을 전했다. “미디어법 통과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국정 방향에도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시민들의 추모 열기, 교수들의 시국선언, 정부에 비판적인 여론조사 결과 등을 모두 배척하고 있다. ‘독주’다. 이를 ‘독재’라 칭하는 이도 늘고 있다. 비판 여론은 안 듣는다. 집회·시위는 금지한다. 그들은 현재 조작당하고 있을 뿐이므로, 조만간 대중을 조작하는 자들을 처벌하면 된다…. 청와대의 이런 인식에서 ‘파시즘’을 읽어내는 목소리도 마침내 터져나오고 있다.
 
“두 조건과 하나의 전략이 결합할 경우 이명박 정권은 새로운 ‘파시즘 엑스(X)’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계간 <문화과학> 2009년 여름호) <문화과학> 편집위원회 공동 명의의 글이 최근호에 실렸다. 이명박 정권이 ‘파시즘 엑스’로 돌변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학자들이 집단적으로 ‘파시즘’의 개념을 빌려 현 정부를 공식 호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학계에선 파시즘을 함부로 규정하는 것을 꺼린다. 우파 세력을 모욕주려고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쉽게 사용하면, 진짜 파시즘의 등장을 흘려버리는 ‘양치기 소년’이 될 수 있다.
 
‘파시즘 엑스’는 조금 다르다. 일단 유보적인 개념이다. 이명박 정권이 곧 파시스트 정권인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그렇게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그 형태가 과거 독일·이탈리아의 파시즘과는 조금 다를 것이라는 점에서 미지의 것을 경고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문화과학>은 현 정부가 ‘파시즘 엑스’로 변화할 “여러 조건과 요소들이 현저하게 부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한국 경제가 올 하반기에 ‘U’자형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L’자형으로 침체할 경우, 또 대다수 국민들이 탈정치화돼 먹고사는 문제에만 급급할 경우, 그리고 우파가 억압·통제를 통해 이런 상황을 돌파할 경우, “세계 최초로 신자유주의 해체기의 ‘파시즘 엑스’가 한국에서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과학>의 설명은 이렇다. △장기 침체로 인해 시장에서 퇴출되고 있는 600만 명 이상의 자영업자 △100만 명에 이르는 실업자 및 85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잠재적 실업자이면서도 소비자본주의에 익숙한 20대 등이 우익 사회운동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 지지율 30%를 떠받치는 견고한 보수층(우익 개신교·50대 이상 노년층·영남)이 중핵이 되고, 뉴라이트 단체들이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3월 국민행동본부 산하 ‘애국기동대’의 출범은 작지만 눈여겨볼 대목이다. 해병대·특전사 출신 90여명으로 이뤄진 애국기동대는 출범 선언에서 “반헌법적 좌익 폭도들과 싸운다” “좌익들의 패륜적 테러에 대해 정당방위적 자위권을 행사한다”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는 종북 반역 세력을 공동체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제거하는 일에 목숨을 바친다” 등을 ‘맹세’했다. 선언문만 보자면, 극우 돌격대를 연상시킨다. 출범식 직후에는 무술 시범도 보였다.
 
파시즘은 강력한 국가 통제를 특징으로 한다. <문화과학>은 ‘MB 악법’에 주목한다. 국정원법 개정(국내정보 수집권한 확대·국가비밀 범위 확대), 집회·시위법 개정(마스크 착용 금지), 신문·방송법 개정(신방 겸영 허용·대기업 지상파 지분 확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감청 권한 강화) 등은 개인의 자유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 관련법 개정이 이뤄지면 표현의 자유의 모든 영역을 ‘합법적으로’ 틀어막을 수 있다. 여기에 최근 북핵 위기로 인한 남북 대결 국면은 ‘외부의 적’을 동원하는 공포정치의 바탕이 될 수 있다. <문화과학> 발행인인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문학)는 “히틀러의 나치즘은 정권을 먼저 장악하고 나중에 우익 대중운동을 일으켰다”며 “이명박 정부의 집권 기간에도 ‘국면’에 대한 판단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 엑스’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자유주의와 좌파에 대한 적대감, 적으로 규정한 대상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겠다는 의지를 매개로 탄생한 합성물이 파시즘 정권이다.”(로버트 팩스턴, <파시즘>)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현 정권이 정말 파시스트 정권이라면 모든 세력이 연합해 이를 막아야 하는데, 그렇게 강하게 규정하면 좌파 세력 내부의 건강한 ‘차이’가 사라지고 일종의 ‘반파시스트 전선’만 득세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민주주의에 두려움을 느끼면서 대중을 동원해 반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권력이 판단한다면, 이를 ‘유사 파시즘’이라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고세훈 고려대 교수(공공행정학)도 “권위주의를 오랫동안 경험한 한국 시민들의 저항을 염두에 둔다면, 노골적인 파시즘이 한국에서 등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억압은 “전체주의건 권위주의건 파시즘이건 (민주주의의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로서 심각한 상황”이라고 본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는 파시즘 대신 ‘신자유주의 공안국가’라는 말을 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집회·사상·결사의 자유가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고, 검찰·경찰·감사원 등 권력기관도 과거처럼 ‘정권의 하수인’이 됐다. 그는 “파시즘이라고 규정짓는 일보다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파쇼화’를 우려하고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레커먼은 ‘프렌들리 파시스트’(friendly fascist)라는 말을 썼다.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정권이 ‘선한 얼굴로’ 정치적 반동을 재촉했다는 것이다. ‘파시즘 프렌들리’의 맥을 잇는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 미국의 사회비평가 나오미 울프는 <미국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파시즘 이행기’라는 표현을 썼다. 부시 정권이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마련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그는 “파시스트 체제로 옮아가는 것은 여러 행위들이 합쳐져 민주주의를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하는 형태를 취한다. (그 결과) 어느 순간 민주주의가 급작스럽게 퇴보한다”고 봤다. ‘파시즘 이행기’를 판별할 몇 가지 잣대를 제시했는데, 이명박 정부 시기의 한국 시민들에게도 유용할 것이다.
 
△집회·시위에 나서거나 비판적 발언을 하면 신체적 위협을 가한다. 시민들의 무차별 체포와 투옥을 꺼리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민간의 ‘준군사조직’이 등장한다. △일반 시민을 사찰한다. 도청을 합법화하고 개인의 전과와 정치 성향, 사생활 등을 기록한 개인 자료를 활용한다. △교수·공무원·언론인·문화예술인 등 비판적 인사들을 전략적으로 겨냥해 직장에서 쫓아내거나 경력을 파괴한다. △시민단체에 첩자를 심어 조직을 파괴하거나 국세청의 세무조사 등으로 괴롭힌다. △비판적 검사를 해임하는 등 법의 지배 방식을 뒤엎는다. 인격모독을 포함한 고문, 근거 없는 고발, 저지르지 않은 범죄에 대한 마구잡이 기소 등의 사법독재가 등장한다. △정치적 압박으로 자유언론을 탄압한다. 언론인을 모독하거나 수치심을 주고, 해당 언론의 책임자들이 언론인을 해고하게 만든다. △시민들의 사상·행위·표현을 범죄로 만들기 위해 불법행위의 범주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새로 법을 만들거나 개정해 ‘법의 이름으로’ 처벌한다. △일련의 과정에서 안팎의 위협을 부각시킨다.
 
나오미 울프는 파시즘이 소리 없이 진행된다고 말한다. 그가 제시한 ‘파시즘 이행기’의 잣대는 어쩐지 낯익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22년이 지난 2009년 6월, 한국의 시민들은 파국의 징후를 날마다 발견한다. 경찰·검찰·언론 등에서 일어나는 그 징후를 돋보기로 들여다볼 때다. 안 그러면 ‘파시즘 엑스’가 정말 온다.
 
파시즘이란 ‘경고 표지’를 세심히 읽어라
 
2009년은 파시즘 탄생 90주년이다. 파시즘은 1919년 3월23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무솔리니가 퇴역군인, 언론인, 지식인 등을 모아 “민족주의에 반하는 사회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자신들을 ‘파시 디 콤바티멘토’, 즉 전우단이라 불렀다. 이때부터 파쇼 또는 파시즘은 내부의 적을 만들어 악마화하고 이에 가차 없는 폭력을 휘둘러 축출하는 정치·사회 운동을 일컫게 됐다. 파시스트 정권은 이런 일을 국가와 법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경우다. 그 어원은 ‘도끼’다. 고대 로마의 집정관이 시가 행진 때 나뭇가지에 싸인 도끼를 들었다. 그걸 ‘파스케스’(fasces)라 불렀다. 국가의 권위와 결속을 상징했다.
 
학자들은 파시즘을 독재, 권위주의, 전체주의 등과 구분해 쓴다. 학문적 의미에서 파시즘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만 발생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반동’ 또는 민주주의의 ‘실패’가 파시즘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화 이전 단계의 제3세계 독재는 파시즘이 아니라 권위주의 또는 전체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파시즘은 대중운동의 특성을 띠고 있다. 민주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등에 대한 강력한 분노를 띤 광범위한 대중이 파시즘을 옹립한다. 다만 이탈리아와 달리 독일은 나치 정권 수립 이후 본격적인 ‘나치 국민운동’이 전개됐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파시스트 대중운동이 선행해야 파시스트 정권이 수립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반대의 방식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분야의 고전인 <파시즘>의 저자 로버트 팩스턴은 “미래의 파시즘은 굳이 고전적 파시즘의 외적 특징이나 상징을 그대로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시즘 등장의 ‘경고 표지’를 더 세심하게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협을 느낀 보수 세력이 적법 절차와 법의 지배를 포기할 태세를 갖추고 더 강한 동맹 세력을 찾아헤매며 국가주의적 선동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고자 할 때, 파시스트들은 벌써 권력에 아주 가까이 접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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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같은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한겨레21 2009.06.12 제764호, 신윤동욱·임지선 기자)
[표지이야기] 들끓던 애도가 잦아든 거리, 강경 진압에 저항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슬픔은 켜켜이 쌓이고 쌓이네
   
“아직은 애도의 시간.”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역사학)는 그렇게 말했다. 애도의 행렬이 거리로 나와서 분노의 구호를 외치기보다는 각자가 슬픔을 삭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덧붙인다. “그러나 마음에 저축된 분노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아가 한홍구 교수는 사람들이 촛불의 교훈을 되새기고 있다고 말한다. “탄핵 저지의 촛불은 민주세력에 다수당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개혁의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해 촛불은 아무리 거리에서 외쳐도 이명박 정부가 듣지 않는단 사실을 알려줬다. 그렇게 촛불은 두 번의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얻었다. 의회에 맡겨서 안 되니까 거리로 나왔는데, 거리로 나와도 안 되니 다시 의회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촛불은 똑같은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역시나 투표다. 수많은 조문객은 종이에, 가슴에 꾹꾹 눌러썼다. ‘평생 꼭 투표하겠습니다.’ 한홍구 교수는 그것을 “유권자의 의식과 기준을 확 바꾼 혁명”으로 평가한다. 장석준 실장도 “민심이 정치에 스며든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촛불이 지난 4월의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촛불의 효과는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의 보수적 선택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을 바꿔놓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던 수도권 중도층의 민심을 2007년 이전으로 되돌렸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수도권의 변화가 부산·경남 등 지방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장 실장의 분석처럼, 실제 6월3일 실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대구·경북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한나라당을 앞섰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합법적인 조문으로 이미 사람들은 촛불을 들었다”며 “지금도 지지 정당을 바꾸는 것으로, 한국방송 <뉴스9>를 보는 대신에 문화방송 <뉴스데스크>를 보는 것으로 유·무형의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고 보았다. 안진걸 팀장은 “대규모 시위로 드러나지 않아도 반이명박 정서가 더욱 깊어지고 넓어졌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물론 강경 진압의 침묵 효과도 있다. 박진 활동가는 “수많은 전경에 첨단장비를 동원하고 법률 조항까지 활용해 단순 집회 참가자도 범법자로 만드는 물리력의 겁주기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강력한 물리력 동원의 이면에서 자신감의 결여를 읽기도 한다. 박 활동가는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역 광장 곳곳에 숨어 있는 경찰을 보면서 동의받지 못한 권력의 자신감 상실이 애처로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감이 곧바로 정권의 위기로 이어지진 않는다. 민주화의 역설적 혜택을 보수 세력이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장석준 실장은 “쇠고기 정국의 촛불도 정권을 바꾸자는 요구는 아니었다”며 “1987년 민주화 이후에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한 동의가 이뤄져, 정권이 반민주적 수단을 동원해도 최소한의 민주적 원칙을 깨지 않는 한에선 정권 교체 요구까지 나아가진 않는다”고 분석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문화콘텐츠학)는 또 다른 측면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수구 세력은 국민이 말로는 저렇게 하지만, 선거에선 정작 다르게 나타날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촛불집회의 성과와 더불어 한계를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문학)는 “지금 상실의 대상은 단순히 노무현 개인을 넘어서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고 간 무엇”이라며 “그러나 대의제 민주주의 틀을 넘어서기 꺼리는 한국의 중간층은 불만의 원인인 이명박 정부라는 기표를 제거할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촛불을 민주화 이후로 추구해온 정상 국가에서 벗어난 이명박 정부에 대한 항의로 보았다. 그러나 중간층의 이러한 열망은 새롭게 등장한 기득권 정권 앞에서 꺾였다. 이 교수는 “한국의 기득권층은 사익 추구를 곧 공공성으로 착각하는 집단”이라며 “87년 이후로 민주주의 룰을 만들어온 중간층의 자부심은 기득권 정부의 벽 앞에서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그렇게 촛불은 중간층에 좌절의 경험으로 남았다. 그래서 대의제 안에서 좌절된 욕망을 위무하는 굿 같은 촛불을 다시 들기는 어렵단 것이다. 여기에 장석준 실장은 촛불 방식의 한계도 지적한다. “촛불은 누구나 참여 가능한 수준의 저항으로 대중의 동의를 얻었다. 그런데 정권의 강경 진압에 맞서 이런 방식의 저항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딜레마에 부딪혔다. 그래서 집회가 유지되려면 다른 방식이 필요한데 그것은 대중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그러나 잠복한 슬픔은 당장의 행동을 넘어서 사람들 가슴에 깃발을 세우고 있다. 한홍구 교수는 “유관순의 죽음이 3·1 운동을, 순종의 죽음이 6·10 만세운동을, 김주열의 죽음이 4·19를, 박종철의 죽음이 6월 항쟁을 낳았다”며 “그의 서거도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크나큰 변화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종이나 순종 같은 조선시대 임금보다 훨씬 친근한 존재여서 사람들이 느끼는 일체감이 더하고 슬픔이 깊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까지 더해져 광주보다 더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조문객이 느낀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네댓 시간을 기다려 조문을 했던 이들을 “조문객이 아니라 상주”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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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문제는 대중이다 (프레시안,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2009-06-15 오전 9:31:21)
[손호철 칼럼] 탄핵정국-MB집권-촛불집회-조문정국, 그리고…
 
'광기의 순간'. 대중이 일상으로 벗어나 광장으로 뛰쳐나온 '광장의 정치'가 '제도정치'를 압도하는, 역사에 드물게 나타나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지칭한다. 그렇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생겨난 '광기의 순간'과 조문정국은 6.10 민주항쟁 기념행사를 단락으로 하여 끝나가고 있는 것 같다.
 
지난 재보궐 선거에 나타난 한나라당의 참패를 시작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한나라당의 추락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후 가속화된 데다가 민주당의 지지도가 급등해 최근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역전이 됐다. 그러나 이 같은 지지율의 변화가 현재 의석에서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 나아가 친박연대와 자유선진당을 포함한 냉전적 보수세력의 압도적인 우위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속도전이라는 국정운영방식을 바꾸지 않을 경우 6월 국회에서 언론관련법의 강행처리 등 최근 일련의 사태로 잠시 주춤했던 이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길은 거의 없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사과 등이 없으면 6월 국회에 응할 수 없다는 강경입장을 밝힌바 있다. 나아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도 전의를 불사르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등이 언제까지 등원을 거부하고 장외투쟁에 전념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일단 국회가 열리게 되면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
 
정치권 밖으로 나가,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중운동과 진보적 시민운동이 또 다른 변수이다. 특히 진행되고 있는 쌍용자동차의 총파업을 비롯해 민주노총이 예고하고 있는 7월 총파업, 그리고 한나라당이 방송법을 강행처리하려 할 경우 일어날 MBC 등 언론노동자들의 총파업, 아직도 별 성과 없이 지난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용산참사 관련 투쟁 등 다양한 시민사회수준에서의 투쟁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해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공세를 막아낼 수 있을 지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이 투쟁 역시 일반 대중들의 지지가 없는 한 고립되어 각개 격파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향후 정국을 좌우할 것은 다시 한 번 대중이다. 대중이 노대통령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자성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오만에 분노해 다시 한 번 일어선다면 이 같은 공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다시 광장을 비우고 집으로 돌아가 광장을 외면한다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결국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문제는 대중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최근의 역사만 해도 그러하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분노한 대중은 질풍처럼 거리로 달려 나와 노 전 대통령을 구해줬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은 자유주의세력으로는 처음으로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고 한나라당은 대중의 분노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천막당사 생활까지 해야 했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와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실망한 대중은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며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상 최대 표차의 승리와 한나라당에 총선에서의 압승을 선사했다.
 
이도 잠시,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은 다시 대중을 거리로 내몰았다. 장마도, 장대비도 꺾지 못한 대중의 분노 앞에서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 올라 끝없이 이어지는 촛불을 보며 자성을 했다는 굴욕적인 사과를 해야 했다. 그러나 촛불이 사그라지자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용산참사와 여러 비극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침묵했다. 이명박 정부의 공격은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을 가져왔고 이에 다시 대중은 일어나 끝없는 조문 행렬을 이루었다.
 
조문 정국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애도와 분노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또 다시 민심에 귀를 닫고 속도전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이 같은 MB의 오만에 대중이 분노해 일어날 것인지, 아니면 지난해 촛불 이후처럼 조용히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갈지, 그것이 문제다. 그리고 해가 져야 비상을 시작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대중의 움직임에 대해 사후적 해석만을 할 뿐, 언제 대중은 분노하고 언제 대중은 침묵하는지, 알 수 없는 나의 무력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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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단계 '진보개혁세력'의 과제는? 역시 '연합'이다 (프레시안, 조성대 코리아연구원 기획위원/한신대 교수, 2009-06-15 오후 3:38:14)
[기고] 수도권 선거연합 합의가 출발점
 
Ⅰ. 역주행시대와 구동존이(求同存異)

무엇보다 MB정부가 탄생한 후 후퇴만을 거듭하는 소위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를 바로잡아 세워야 한다. '민주회복 국민위원회'의 당면한 과제는 22년 전 6월 항쟁의 피와 땀의 결실인 87년 체제를 지켜내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세는 민주주의회복을 위한 반MB전선만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현 단계 반MB전선의 요체는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양산하는 MB식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진보적 사회정책연합을 통해 대안적 정치세력을 구축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87년 체제가 생산해낸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를 계승함과 동시에 진일보시키는 작업인 것이다.
 
이른바 사회양극화해소를 위한 진보정책연합은 결국 공적 영역의 회복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고 MB식 신자유주의 정치로 인해 허물어진 한국사회를 복원하는 중요한 원칙을 제공해줄 것이다. 이것은 민주당만으로 혹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모두에게 공동의 과제일 수밖에 없으며 서로가 크게 다르지 않은 공통된 과제로 구체화할 수 있는 그런 대(大)정책들이다.
 
그러나 그동안 진보정치세력은 서로의 차이를 강조하고 결별하는데 너무 익숙해왔다. 몇몇 정당 지도자들의 당파적 결정에 의한 분당 및 신당창당의 반복, 혹은 민노당과 진보신당 사이의 종북주의 논쟁은 분열과 결별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진보진영이 분열할 때 대중들은 우리로부터 이탈하며 결국 MB식 정치만이 살아남을 뿐이다. 따라서 진보개혁진영은 사회양극화해소를 위한 진보적 정책연합을 구성함에 있어서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즉, 차이는 유보하고 공통점을 확대발전시키는 넓은 진보로 세력을 재구성해나가야 하며, 이는 당면한 반MB 진보연대의 실천과제이기도 하다.
 
Ⅱ.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연합의 길
4·29 재보선은 한국사회 진보개혁세력에게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첫째, "MB식 정치는 아니다"는 정치적 심판이었다는 점이다. 둘째, 단결하면 승리한다는 교훈을 주었다는 점이다. 4·29 재보선은 MB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였다. 한나라당에게 0대 5라는 참패를 안겨준 이번 재보선은 분명 MB정권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러나 보다 주의 깊게 짚어봐야 하는 대목은 선거가 "MB식 정치냐 아니냐"라는 질문지에 국민들이 단지 "MB식 정치는 아니다"고만 판정해 주었을 뿐이라는 점이다. 이는 정치노선과 정치세력이라는 양 측면에서 MB식 신자유주의 정치노선을 심판하고 퇴출시킬 수 있는 통일적인 정치적 대안이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MB식 정치는 행정부 출범초기의 집권 정치연합을 유지하지 못하고 해체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4·29 재보선이 '단결하면 승리한다'는 교훈을 진보개혁세력에게 안겨주었다는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문제는 이와 같은 단일화에 이은 반MB진영의 정치적 승리를 어떻게 향후 지속적으로 발전·확대 시킬 것인가에 있다. 4·29 재보선에서 승리한 각 정당이 그 승리를 당파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존립과 독자적 발전에 대한 유권자의 위임으로 아전인수 한다면 진보개혁진영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정치지형을 의제적으로 다당제화해서 결과적으로 진보의 분열을 정당화하고 보수·수구적 정치세력의 정치적 재기와 독주에 협력하게 될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향후 민주당의 행보는 대단히 중요하다. 4·29 재보선 당시 민주당은 한마디로 말해 반MB진영의 구심 역할에서 낙제 점수를 보여줬었다. 전주지역 공천을 둘러싼 당 지도부의 분열과 DY의 무소속 출마는 그 진의야 어떠했던 간에 민주당이 과연 대안정당일 수 있는가에 심각한 의심을 품게 했다. 부평과 시흥에서의 민주당의 승리 또한 수도권 개혁블럭 유권자들이 출구(exit)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MB심판의 선택지로 민주당을 활용한 것이지 진정한 대안정당으로 신뢰하고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조문정국을 맞아 민주당은 약 5년 만에 처음으로 한나라당에 앞선 당지지율과 서울광장에서 끓어오르는 민심에 다소 고무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모든 진보개혁세력이 공유할 수 있는 의제를 제안하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포함한 제반 진보적인 사회세력과 소통하며 반MB전선을 폭넓게 재구성하려고 노력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이에 실패하게 된다면 국민들은 민주당을 차갑게 외면하고 현재의 지지율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버릴 것이다.
 
6월 광장의 성과를 아전인수로 해석할 경우 촛불 민심이 차갑게 등을 돌릴 것이라는 점은 민주당뿐만 아니라 민노당과 진보신당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울러 현재 회자되고 있는 친노진영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도 여론의 차가운 뭇매를 맞게 될 것이다. MB식 정치에 분노한 시민들이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등으로 분열되어 있는 진보개혁진영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회의적임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Ⅲ. 2010 지방선거와 '진보적 연립자치'의 방향
그렇다면 진보개혁진영은 '반MB 진보개혁연대'의 통합을 어떻게 실현해 나갈 수 있는가? 첫째, 시기적으로는 2010년 지방선거를 단기적 목표지점으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10월 재보선을 목표지점으로 순행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통합의 형식으로 연립(자치)정부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통합의 진원지를 우선 수도권 개혁블록의 형성에 두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10월 재보선과 2010년 지방선거가 진보개혁진영의 통합의 기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조건 승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방선거는 아래로부터의 통합을 통해 종국적으로 상층부의 통합을 이룰 수 있는 민주주의적 연대의 좋은 시험장이 될 수 있다. 반MB 정치통합의 사회적 요구가 높은 이 때 우리는 가장 하위의 지방정부 단위부터 서로의 정치적 차이를 인정하고 공통분모를 확대해나가는 연립자치를 실현해야 한다. 그리고 다가올 2012년 대선에서는 명실상부한 진보개혁진영의 연립정권을 실현해야 한다. 물론 그 전까지 진보개혁진영이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될 수만 있다면 연립정권이 아니라 진보개혁진영의 단일정부가 구성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통합의 내용은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진보적 사회정책연대이며, 구동존이(求同存異로)의 지혜가 이 과정에서 더 없이 중요한 자세임은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통합은 어떤 형식적 틀을 지닐 수 있는가. 한마디로 표현하면 연립자치, 즉 각 지방정부를 진보개혁세력의 연립정부로 구성하자는 것이다. 연립의 지분은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각 정당 혹은 정파가 얻는 국민적 지지도를 기준으로 하면 될 것이다. 아울러 광역의회 또한 연정을 구성할 것을 목표로 교통정리를 해나가면 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합의를 기초자치단체와 기초의회로 확산시켜 나가면 된다.
 
이 밖에 진보적 연립자치를 목표로 형식적 틀은 다양하게 고민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및 필요하다면 진보적 시민단체를 포함해 대표자 연석회의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 10월 재보선을 위해 가장 바람직하게는 아래로부터의 후보단일화를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학습과 훈련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연립자치를 실현하는 중요한 실험장소가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연립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각 정당은 현재의 정당의 울타리를 뛰어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이 과정에서 각 당은 파당적 이해를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특히 민주당의 선명한 정치노선은 민노당과 진보신당을 통합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험지가 될 것이다. 물론 진보적 연립자치를 전국적으로 실현해나갈 수 있다면 좋은 일이나 그 마저도 난관에 봉착한다면, 수도권에서나마 후보단일화를 통해 진보개혁진영의 통합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수도권이 개혁블록 형성의 핵심적 지역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롭다는 것 외에 향후 대선과 총선 가두에서 반MB 정치의식이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개혁의 진원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수도권에서의 승리는 진보개혁진영에게 모멘텀을 부여할 것이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내년 지방선거를 평가하는 리트머스지로 작용할 것이며, 따라서 진보개혁진영은 무조건 단일화된 후보를 내놓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모든 정당과 정치세력이 일체의 기득권을 포기해야함은 두말한 나위가 없다 하겠다.
 
이상의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을 포함한 진보개혁세력은 민주주의회복과 양극화해소를 위한 진보적 사회정책 과제의 도출과 해결을 위한 건설적 토론과 대안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 과정에서 넓은 진보로의 재구성을 추진하는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야 한다. 첫째, 현시점 한국사회 진보개혁세력에게 요구되는 것은 진보적 사회정책연합을 기치로 반MB 진보연대를 넓은 수준에서 재구성하는 것이다. 둘째,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반MB 연립자치의 승리로 몰고 가야 한다. 10월 재보선에서의 후보단일화와 내년 지방선거에서 연립자치를 위한 연합공천과 후보단일화를 실천해야 한다. 셋째, 최소한 진보개혁진영은 수도권 개혁블록의 형성 즉 수도권 선거연합에 합의해야 한다. 수도권의 승리는 전국승리의 키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모든 정당 및 정파는 자신의 당파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민주당을 비롯한 모든 정당과 정치세력의 기득권 포기는 진보연대 구축에 있어서 민감하지만 과감하게 접근해야 하는 통합의 전제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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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이길 유일한 방법은? (프레시안, 최병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사회민주주의연대 회원, 2009-06-16 오후 12:00:01)
[복지국가SOCIETY] 노무현 이후, '초록-복지 동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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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를 ‘파시스트’로 부를 것인가 (시사IN [92호] 2009년 06월 15일 (월) 10:59:05 이종태 기자)
경찰 폭력,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 극우 세력의 준동. 파시즘을 연상케 하는 현실. 한국은 파시스트 국가로 가고 있는가.  
 
6월8일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심포지엄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뉴라이트 계열의 사단법인 시대정신 개최)에서는 ‘민주주의’라는 화두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은 취지문에서 “광우병 파동, 용산 참사 및 노무현 국민장 등에서 주장하는 민주화 요구는 실체가 전혀 없는 유령과도 같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한국은 민주 절차에 따라 선출된 합법적 정부가 통치하는 국가이다. 그렇다면 야당과 진보적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안 이사장은 ‘사상적 포장에 불과하다’라고 아주 명확하게 정리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포장했나? ‘종북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통일지상주의, 반미주의’ 등이다. 결국 안 이사장에 따르면 현재 민주주의 논쟁은 극좌 세력의 위장전술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실제로 “한국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정당에서는 제왕적 총재가 부활하면서 사당화(私黨化)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후보 경선이 사라졌다. 제왕적 대통령이 부활하고 투표율이 낮아지는 것도 민주주의 후퇴의 징후이다. 임 교수는 정치 부문 외에서도 민주주의의 후퇴를 읽어낸다. 경제·복지·교육 등에서 시장원리만이 강조되면서 공공성과 사회통합 기능이 상실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위협이다. 그래서 임 교수에게 촛불시위는 “자기 파괴적인 시장의 운동에 저항해서 사회를 보호”하려는 민주수호 운동이 된다.
 
그러나 이런 논지가 김주성 한국교원대 교수에게는 “현행법상 불법 시위를,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정당화하는 주장”에 불과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인민들은 (주권자로서) 헌법을 제정하는 제헌 권력을 가진다.” 그러나 일단 헌법이 제정되면 인민은 그 헌법에 따라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러므로 현행 법규의 위반을 정당화하는 것은 “법치주의·입헌주의의 후퇴이고 따라서 민주주의의 후퇴를 의미한다.”
 
이에 대해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단순히 ‘법의 지배(입헌주의)’ 차원에서만 진단할 수는 없다”라고 비판한다. 또한  △촛불 시민과 시민단체들에 대한 보복성 수사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미네르바 기소 및 장자연 관련 수사 등 사례에서 ‘법의 지배’라는 원칙 자체가 유린된 증거를 찾는다.
 
사실 이런 논쟁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2004년 탄핵 정국 당시 ‘의회권력 대 거리 민주주의’라는 형태로 제기된 바 있다. 대의민주주의 대 직접민주주의의 구도다. 분명한 것은 ‘대의민주주의 대 직접민주주의’라는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틀만으로 구체적 현상을 재단하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런 추상적 논의의 틀을 벗어나 이명박 정부를 구체적 개념으로 규정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김세균 서울대 교수나 이광일 성공회대 연구교수 등은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라는 패러다임으로 우리 사회를 읽으려고 시도한다. 예컨대 이들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사회 전반을 시장경제 일변도로 재편하면서, 민중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시스템이다. 이 과정에서 형식적 민주주의 제도까지 훼손하거나 후퇴시키기도 한다. 한국의 신자유주의 개혁은 이명박 정부 이전인, 10여 년 전부터 추진되었다. 그러나 추진 주체가 김대중·노무현 등 민주화운동 세력이었기 때문에 민주주의 제도의 후퇴가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성향상 경찰 기구를 통해 사회적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고 저항을 분쇄하는 방법으로 신자유주의적 사회 분열을 해결하기 쉽다. 자본에는 약하지만 대중에는 강하고, 자본에 대한 규제는 폐기하지만 대중의 저항은 제도적 폭력으로 완강하게 저지하는 국가이다.
 
한편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로부터 파시즘의 조짐을 읽어내려는 시도까지 나오고 있다. 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6월 초에 발간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제9호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에 대해 “그 자체가 파시즘적”이라고 비판한다. 문화이론 전문지인 <문화과학> 2009 여름호는 ‘파시즘 X’라는 용어를 통해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파시즘적 경향성’을 짚어보려고 했다. ‘파시즘 X’는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파시즘(독일·이탈리아·일본)과 다를 수 있는, ‘미지의 형태의 파시즘’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두 가지 조건과 한 가지 전략이 공고히 결합하는 경우 이명박 정권은 언제든지 새로운 ‘파시즘X’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그 두 가지 조건이란 바로 △한국 경제가 올해 하반기에 U자형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L자형 패턴을 취하는 경우와 △대다수 국민이 탈정치화되어 먹고사는 문제에만 매몰되는 경우다. 이런 정세를 우파가 잘 이용하기만 하면 “‘파시즘 X’가 출현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라고 <문화과학> 편집위원회는 주장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6월11일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식에서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하며 이명박 정부를 사실상 ‘독재자’로 규탄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을 제외한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등 보수 정치세력으로부터 “공산주의자” 등 원색적 비난을 듣고 있다. 그런데 특정 세력에 대한 규정으로 파시스트, 파시즘, 경찰국가 등은 ‘독재’보다 훨씬 강한 개념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독재자’와는 타협하고 거래할 수 있지만, 파시스트와는 어렵다. 파시스트는 ‘타도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강한 규정들이 지식인 사회에서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사회적 적대감이 위험수위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1년4개월여 만에 엄청나게 많고 폭 넓은 정적 집단을 만들었다. 그러나 파시스트처럼 ‘공포와 숭배’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밑으로부터의 파시즘’이라는 대중운동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애국운동(우파 대중운동)’은 대중뿐 아니라 그들이 지지하는 정부·여당으로부터도 진지하게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자칫하면 지식인 사회가 이명박 정부를 호명하는 방식들(파시즘·경찰국가)은, 극우집단이 다른 세력에 퍼붓는 저주(예컨대 친북 좌파)처럼 ‘배제의 논리’로만 작동할 수도 있다. 냉정하고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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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문제는 ‘반MB 연합’과 ‘반신자유주의 연합’의 결합이다 (한겨레,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09-06-17 오후 09:33:25)
한겨레를 읽고
 
<한겨레> 6월11일치 “‘87년 민주주의’ 후퇴인가 ‘97년 신자유주의’ 심화인가”라는 기사는 내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한국 민주주의와 87년체제’라는 토론회에서 발표한 글을 중심으로 ‘87년체제’ 논쟁을 잘 소개해주었다. ‘87년체제’는 헌정체제 등 일부 ‘부분 체제’의 의미는 있지만 경제체제와 정치체제의 결합체인 ‘사회체제’라는 면에서는 ‘경제체제’가 신자유주의적으로 완전히 바뀐 1997년 이후 시효가 다 되어 현재는 ‘97년체제’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해당 기사가 논쟁을 정치전략과 연결시킨 부분은 문제가 있다. 기사는 ‘97년체제론’이 반신자유주의 연합론과, 87년체제론이 반이명박 연합과 연동된다고 분석했으나 이는 내 생각과 다르다. 기사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제 글이 구체적으로 분석했듯 97년체제론이 반신자유주의 연합론과 관련된 것은 사실이지만, 반이명박 연합은 87년체제가 아니라 08년체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반이명박 연합은 크게 보아 첫째 이명박 정부 집권 후 나타난 정치적 민주주의의 후퇴, 둘째 감세 등 극우적 경제정책, 셋째 냉전회귀적인 대북정책과 관련되어 있는 바, 이는 모두 87년체제와는 거리가 멀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후퇴는 ‘08년체제’의 정치체제와 관련된 것이고, 감세 같은 이명박 정부의 ‘우파 신자유주의’ 정책(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좌파 신자유주의’와 구별되는)은 ‘08년체제’의 경제체제와 관련된 것이다. 나아가 부분 체제인 분단 체제라는 시각에서 보면 2000년체제가 ‘평화공존적 분단’이었다면 ‘08년체제’는 군사독재 시절의 ‘적대적 분단’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에 반대하는 것이 반이명박 연합이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97년체제’냐, ‘08년체제’냐가 아니라, ‘97년체제’와 ‘08년체제’의 관계, 즉 반신자유주의 연합과 반이명박 연합의 관계다. 전자만을 강조하는 것은 좌익 소아병으로 문제가 많다. 반대로 후자만 강조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정규직 확대, 신자유주의 정책 등에 대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반이명박을 위해 무조건 대동단결하자는 것은 역으로 우편향이다. 결국 반이명박 연합과 반신자유주의 연합을 정세에 따라 적절히 결합해 나갈 수밖에 없다.
 
일례로 민주당은 최근 재보궐 선거에서 한-미에프티에이 본부장 출신을 인천 부평을 후보로 출마시켰는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민주노총 등은 반이명박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지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엠비(MB)악법 반대투쟁,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등과 관련된 반이명박 투쟁에서 이들이 민주당에 대해 “너희는 한-미에프티에이 본부장을 공천한 신자유주의 세력이니 같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당장 눈앞의 투쟁인 ‘08년체제’의 문제, 나아가 보다 심층적인 문제인 ‘97년체제’의 문제를 적절히 결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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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바보 전태일과 '벌거벗은 용산' (프레시안, 이광일 성공회대 연구교수, 2009-06-19 오전 11:45:58)
[기고] '인간적인 것'에 대하여
 
노무현 정권을 둘러싼 이런저런 평가들, 그 시시비비를 가리는 언술들도 제법 눈에 띕니다.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그 평가들 가운데 '인간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을 나누어 말하는 언술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서민적인 인간 노무현'과 '개혁가로서 정치인 노무현'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언술이 그리 낯선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막걸리 한 사발 걸치며 논에서 모를 심는 인간 박정희'와 '민족과 국가의 진로 앞에서 결단해야 하는 정치인 박정희'라는 언술을 오랜 동안 들어 왔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을 비교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언술에 주목하는 이유는 추모라는 이름 아래 바로 그 '인간적인 것'이 '정치인 노무현'?혹은 '정치인 박정희'?의 역사적 과오와 오류들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고 걸러내는 망으로 기능하는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것이 미래의 삶에 대한 사유와 그것을 향한 크고 작은 실천을 봉쇄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는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사이에는 종종 분신한 전태일을 생각하곤 합니다. 노무현과 달리 이 가난한 노동자에 대한 평가들에서는 '인간 전태일'과 '노동운동가 전태일'을 구분하는 언술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인간적인 것'은 개별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그 어떤 고유한 특성이 아닙니다. 애초 그런 것은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타자들과 이런저런 모순과 갈등을 매개로 관계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역사적 존재들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그 관계들에는 모순과 갈등을 해소하려는 시도들, 즉 정치들(운동들)이 이미 내재되어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가 지니고 있다는 '인간적인 것들'이 그가 맺고 있는 이런저런 관계들, 따라서 그에 내재된 정치를 매개로 평가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들에게는 '인간적인 것'으로 다가온 것이 다른 이들한테는 자신들의 희망과 꿈을 빼앗아간 '비인간적인 것'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어느 분들에게는 파격적이고 반권위주의적인 말투와 행동이 다른 분들에게는 무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민주적인 것'이 또 다른 이에게는 '독재인 것'으로 인식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인간적 평가'가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은 결코 서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이분법은 인간을 역사적인 관계들의 밖으로 밀어내어 마치 '모두에게 준거로 적용될 수 있는 그 어떤 인간적인 것'이 실존하는 것처럼 추상화시킨다는 점에서 현실을 가리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입니다.
 
당연히 전태일에 대한 평가도 이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 다른 지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것은 노무현과 달리 전태일을 둘러싼 평가들에서는 이런저런 이견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를 죽인 구조적 폭력, 즉 자본과 권력은 다르게 평가하겠지요. 하지만 최소한 민주주의, 그리고 요즘 성숙하지 못한 이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곤 하는 '진보'를 말하는 이들에게 그는 '더불어 사는 삶을 죽음으로 추구한 사람, 노동자 전태일'로 기억될 뿐입니다. 아니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구조적 폭력 그 자체인 자본과 권력조차도 비록 표면적이겠으나 그의 삶에 대해 비아냥거리지는 못합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들의 적대감 속에 감추어진 그 어떤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의 비밀은 이른바 '인간적인 전태일'과 '노동운동가 전태일'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 시대의 모순에 직면하여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었던 이 노동자는, 그래서 '단 한 사람의 지식인 친구가 있었으면'하고 희망했던 바로 그 노동자는 자본과 권력에 저항하며 자신이 그 일부이자 전체라고 생각한 노동자들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인간적인', 그리고 '운동적인(정치적인)' 모든 것을 다 하였기에 심지어 적대자인 자본과 권력조차도 그를 가벼이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즉 그 인식, 의도 여부와 무관하게 그가 '사적인 것을 상징하는 인간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상징되는 정치적인 것'을 구분하여 대중을 지배하고자 하는 자본과 권력의 이분법적 인식 틀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에게 새삼스레 '인간적인', '운동적인(정치적인)'따위의 수사를 붙이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 뿐입니다. 전태일이 인간적인 이유는 그가 진정 역사적이고 정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인간적인 그 무엇'이 따로 존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500만 명 이상이 추모한 '정치인 노무현'의 '인간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진 자유주의 정권 10년 동안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명분 아래 진행된 '신자유주의개혁'의 도상에서 죽어간 노동자들, 농민들, 가난한 자들에게 그 권력은 분명 '살아 있는 권력'이었습니다. 지금 그 바통을 이어받아 파시즘화 경향을 확대, 심화시키고 있는 신자유주의경찰국가 이명박 정권의 구조적 폭력 때문에 죽어나가고 있는 이들처럼, 그 당시에도 그런 이들이 있었습니다. '민주화운동의 적자'라는 것을 내세우며 그 주검들에게 내뱉은 언술들을 깨끗이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어찌되었든 그 언술과 행태들이 '인간적인 것'이었나요.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인간 노무현'의 그 어떤 언술과 행동에 호감을 지니기도 하였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가 속했던 정치세력이 집권 이전이나 이후에 가난한 대중에게 준 멸시, 억압과 삶의 고통을 상쇄할 만큼 그토록 '인간적인 것'이었는지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인격화된 자본과 권력'에게 '인간적인 것'을 바라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많은 경험들을 통해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들도 권력 이전에, 대통령 이전에, 정치인 이전에 인간들인데'라며 기대를 버리지 못하다가 삶 자체를 빼앗긴, 혹은 빼앗기고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 그 '인간적인 것'이 의미하는 바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거기에 대고 지금 '인간적인 정치인, 인간적인 대통령' 운운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까. 만일 그것이 실존의 차원에서 망자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결국 노무현 정권 시대가 지금보다 더 좋았다는 것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혹은 그 정권에 대한 객관적 비판을 무디게 하고 잠재우기 위한 것이라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집권기에는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느니, 민주주의의 대강이 완성되었느니 말하면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외치는 자들을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정도로 여기고 탄압하더니 지금 와서 다시 그것이 '역진'하였다고 한탄하며 이미 폐기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자고 말하는 것이 정말 '인간적인 것'인가요. 이른바 '인간적인 것'이 '그 어떤 상식'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언술과 행태야말로 정말 비인간적이고 상식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도 지금 그 '인간적인 것' 운운하는 것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노무현 정권을 옹호하는 것은 정치적 자유이니 그 자체에 대해 누가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래도 어찌됐든 '자신들의 인간적, 정치적 군주'를 잃은 그 애통한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기에, 그리고 최소한 실존적 죽음 앞에 명복을 비는 것이 그야말로 '인간적 도리'라고 생각하기에 그들이 다소 격한 감정을 토해대며 분노의 화살을 '진보'에게 돌리는 것에 대해서도 그것은 지성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정중히 말씀드린 바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에 그치지 않고 억지 논리와 해석, 천박한 지식으로 '진보'를 조롱하고 그것도 모자라 누군지 알 수 없는 이들에게 "협잡꾼"이라는 딱지마저 붙여 진보를 도매금으로 넘기니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자신들이 지지한 정치세력의 재집권 실패의 원인을 정치적 이념과 전망을 달리하는 진보의 탓으로까지 돌리는 그들의 언술을 접하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며 오히려 이런저런 연민이 증폭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그 이유는 이런 발상과 행태를 지닌 분들에게 둘러싸여 '반특권, 반권위, 반지역주의'를 모색하려 했으니 애초 그런 목표 자체가 (신)자유주의정권 아래에서 실현될 수 없었던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그래도 노무현 정권이 하고자 했던 최소한의 개혁조차도 제대로 될 수 없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은 이들이 기존의 그 특권, 그 권위, 그 지역주의에 기대어 자신의 그 알량한 지위와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은 아닐까라는, 장관과 고위 관료, 군 장성, 그리고 국영기업체 사장 등의 지역적, 학교별 안배를 따지면서 마치 그것이 지역주의의 완화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준거인 양 들이대다 자신들의 지분만 일정 정도만 보장되면 수탈, 억압받는 타인의 고통쯤은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 처신하는 바로 그런 이들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역사적으로 자신들이 더 이상 민주주의자로 기능할 수 없는 그 지점에, 따라서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지점에 '인간적인 것'이라는 추상적인 언술을 가져다 놓고 자신들의 한계와 오류를 성찰하기보다 그것을 덮어버리고자 하는 그런 자들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진정 노무현정권의 지지자, 혹은 '이론적, 정신적 후원자'라면 오히려 그를 잘 보필하지 못한 반성과 함께 절필을 해도 부족할 판에 자신들의 천박한 붓끝을 놀려 딴에는 망자를 추모, 옹호한다고 하나 '망나니 춤'을 추어 정치적, 이념적 차원을 떠나 실존적 차원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진보에게까지 상처를 내고 있으니 이 어찌 '반인간적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인간적인 것'이란 진정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도대체 그것은 어디에 숨어 있는 것입니까. 저는 외려 용산에서 울리는 이름 없는 자들의 삶의 외침과 생동감 속에서 그것을 봅니다. 거기에서는 단순히 추모와 애도,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과 새로운 사회관계들의 단면을 볼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영감과 감성의 흐름, 그것의 나눔과 공유, 그리고 그와 결부된 이성적이고 창조적 행위들이 어우러져 있기에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심지어 자본과 권력에 대한 팽팽한 긴장감마저도 순식간에 해학으로 전변시키는 그야말로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들의 단면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거기에서는 각자의 사상과 이념, 종교를 넘어 '자기지배의 실현으로서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그 어떤 자발적 힘, 인간에 대한 애정이 존재하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인가요, 거기에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벌거벗은 주권자들'에 대한 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과 거대 건설자본이 그 곳에서 빼앗을 수 있는 것이 또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이미 그들은 자신들의 육신의 일부인 부모, 자식의 생명조차 빼앗기고 그 불구덩이에서 살아 나온 또 다른 그들의 일부는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해서 그곳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그 무엇을 대가로 바라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권력과 부를 두고 싸우는 '주류와 비주류'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권력'과 그것을 자신의 목표로 하는 지금 '죽어 있는 권력'이 아닙니다. 그들은 거기에도 끼지 못하는, 아니 끼고 싶어 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를 꿈꾸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글로벌 건설자본과 결탁한 파시스트적 경찰국가가 내몬 '벌거벗은 주권자들'의 삶 그 자체를 지키기 위해 그 곳에 관심을 가지는, 아니 자기 자신을 벌거벗은 주권자라고 생각하기에 그로부터 눈과 귀를 뗄 수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들 또한 저 위임권력들을 통제하는 '주권자'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주권을 빼앗아 간 그들에 의해 자꾸만 죽음과 삶의 경계로 내몰리는 그런 허울뿐인 '벌거벗은 주권자'는 아닌지요.
 
사정이 이런데 그런 그들을 향해 권력과 자본이, 그 어떤 이들이 대중을 선동하는 진보, 좌파, 심지어 '빨갱이'라고 역설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오히려 사회구성원의 최소한의 삶과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국가가 바로 그들이 하고 있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오히려 억압하고 탄압하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다양한 영역에 존재하는 부당한 사회관계들, 권력관계들을 해소,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면, 그것을 무슨 수로 피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 비난이 무서워 수탈, 억압, 차별, 배제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약탈당하는 자연과 생태에 눈 감는다면, 그것을 어찌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자, 진보, 좌파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어찌 '인간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제2의 노무현'이 아니라 그 시대의 문제들을 진정 자기 것으로 삼은 너무도 아름다운, 너무도 인간적인 청년 전태일이 그리워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시공간을 넘어 '산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만큼 '인간적인 것'이, 따라서 '정치적인 것'이 어디에 있나요. 그것을 부정하는 모든 것은 반인간, 반정치입니다. 아직도 150일 이상을 병원의 차가운 냉동고에 보관된 용산의 주검들, 삶의 기로에 선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과 고통 받는 수많은 이들, 이미 찢기기 시작하여 신음하는 4대강과 같은 자연과 생태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저편에 많은 이들의 추모 속에 국민장을 마친 한 시대의 정치지도자이자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의 죽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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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독재’를 생각한다 (레디앙, 2009년 06월 22일 (월) 11:25:19 김원 / 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
[정치사회비평] 김대중-노무현 때도 비슷…추모 머문 대안의 후퇴 
 
노무현 사망 이후 민주주의, 독재 등 말이 등장하고 있다. '담론' 차원에서. 담론이라는 면에서 독재나 민주주의가 세력관계를 반영한 적이 오래되었는데, 좀 새삼스럽다. 그럼 '독재'란 무엇일까? 담론 수준에서 독재는 '군부지배', '일당-일인의 전횡적 통치', '억압적 통치' 등이 아닐까? 요즘 보수정당이나 일부에서 자주 쓰는 '소통의 부재'란 아마도 시민사회와 반대당의 의견을 무시하고 행정부와 다수 여당이 정책을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이는 시민사회내 다양한 요구를 정당이나 정책을 통해 대변하지 못하는 '이익매개 기능'의 약화라고 해석 가능하다. 이는 곧바로 '정당정치의 미발전'으로 이어진다. 예전 말로 치자면, 대의제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되돌이켜 보면 이전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시기에는 소통이 잘 이루어졌나 질문하면 그 역시 아니다. 포퓰리즘적 통치에 기초한 정당제와 대의제의 약화는 2000년대 내내 지속된 현상이다. 그래서 최장집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라고 비판했고, 시민들에게 지적인 충격을 준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독재나 소통 결여란 문제가 제기될까? 표면적으로 드러난 현상을 보자. MB정권은 이전 정권에 비해 공권력으로 상징되는 억압적 국가기구의 사용이 잦다, 시민운동이나 사회운동 등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이 강력하다 등이 이를 보여주는 주된 현상들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전 정권에도 사회운동 등에 대한 탄압은 존재했고, 억압적 국가기구도 작동했다. 불안정노동, 구조조정, 노사관계로드맵 등을 기억하면 된다. 다만 우리는 너무 쉽게 잊을 뿐이다. 물론 억압적 국가기구 작동이 이전보다 노골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독재라고 부르는 근거는 아니다.
 
이는 '대안'과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독재를 부르는 순간, 그 대안은 민주주의가 되고, 대안-담론 수준의 민주주의는 정상적인 정당정치, 소통의 원활 등으로 좁혀진다. 다시 1987년 수준의 민주주의로 회귀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독재라는 담론을 사용하는 데 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본질적으로 보면 모든 자본주의 국가와 정권은 독재이다. 다만 정권 형태의 차원에서 '누가 집권'했냐에 따라, 반동적 부르주아지냐 아니면 자유 부르주아지냐에 따라 그 형태상 차별성이 나타날 뿐이다.
 
이런 엄밀한 논의를 떠나서, 담론 수준에서 독재에 대항해 투쟁하자고 대중들에게 외치면, 대중들은 '민주주의'를 요구할 것이고, 그 민주주의는 87년 제8차 개헌에서 규정한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즉 민주주의의 계급성이 아주 쉽게 망각된다는 것이다. 지금 운위되는 민주주의는 이른바 독점자본의 정치적 외피로서 민주주의이다. 그 외피에 상처를 내는 반동적 부르주아지들의 지배에 대항하자는 것이 현재 시점이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내가 해버린 하나의 이유는 '독재'란 담론이 지닌 자기 한계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사용하더라도 써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인지되지 않았을 때, 민주주의 투쟁은 대안을 스스로 형성하지 못하고 소멸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친 김에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억압적 국가기구', 이른바 공권력의 문제다. 일단 전제해야 하는 것은 현재 국가기구의 작동은 80년대적인 것은 아니란 점이다. 이른바 국가-자본관계에서 자본의 지배력이 전일화된 상황에서, 공권력의 동원은 과대성장한 국가의 시민사회에 대한 탄압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은 자신의 장기적 정치이익 - 이른바 경제위기 극복이나 사회안정 등 - 을 위하여 공권력의 노골적인 사용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총자본과 국가간 이해의 수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MB정권은 자본분파들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능력을 지녔기에, 공권력을 주로 하는 정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18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국가=억압', '시민사회=헤게모니'라는 얼토당치 않은 말을 그람시가 말한 것처럼 해석했다. 물론 그람시 소개서 중에 그런 해석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람시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자본주의 국가는 늘 억압적이며, 최종 순간에 자본(총자본)을 방어하기 위해서 강제력을 준비하고 예비한다. 이것이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이며 억압적 국가장치를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작동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현재 억압적 국가기구의 작동은 '독재'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가 총자본의 장기적 정치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자율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나타난 상황이다. 아주 '자연스러운 작동'이라고 할 수 있다.
 
시국선언이 확대되는 와중에 '시민사회는 독재에 맞서고 있다'는 주장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시민사회는 이념적인 면에서나, 조직적인 면에서 분화가 공고화된 상태이다. 지금 시국선언은 시민사회내 MB정권의 공권력의 과잉 사용과 시민사회내 이익매개 기능의 단절을 비판하며 나온 - 모두가 아니지만 적어도 최대 반대연합이란 의미에서 - 현상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독재와 소통의 부재라는 현실 진단은 매우 제한적이고 현재 상황에서 사회운동의 대안을 스스로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대안이 퇴영적인 만큼 설득력을 시민사회에서 좀 더 넓게 가지기 어렵다는 말이다.
 
혹자는 87년 6월 이전을 회고하며, '좀 더 대중적인 슬로건'을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별로 대중적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시민사회내 존재하는 대항세력의 입지를 좁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추모정국에서 형성된 민주주의-독재 전선을 이동시켜야 한다. 그 이유는 현재 전선이 가진 한계가 너무 명확하기에 그러하다. 그냥 민주주의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민주주의인지에 대해 대중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역시 이 점에서 나는 죽음으로 형성된 추모정국의 생명력보다는, 금융위기 이후 형성되고 있는 대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제 죽음과 추모에서 한 발 떨어져서 추모 주위에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냉정하게 살펴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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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춘 "누가, 왜 화해와 용서를 말하나" (프레시안, 강이현 기자, 2009-06-03 오전 9:51:19)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화해와 용서를 내세운 신문이 몇몇 있다. 화해, 용서, 해야 한다. 그런데 그 말이 어떤 상황에서, 누구의 입에서 나오는지가 중요하다. 피해자냐, 가해자냐… 이것이 중요하다. 또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의도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가 중요하다."
 
지난달 25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월요민주주의학교'에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다수의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퇴임 후 1년6개월도 되기 전에 자살했다는 것"이라며 "순수하게 개인적 이유가 아니라 검찰의 정치성 짙은 수사를 받다가 자살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이, 왜, 어떤 상황이 국민의 대표였던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우리 국민은 질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김 교수는 "이는 김구, 여운형 암살부터 시작됐던 계속되어온 역사의 비극"이라며 "왜 우리나라 역사는 이렇게 비극적인가, 왜 한국 사회의 한 시대는 한 사람이 죽어야 끝이 나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모든 사람을 낙인찍고,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적대시해서 죽게 만드는 우리 사회 체제가 어디서 온 것인지 성찰해봐야 한다"며 "한국이 처한 전쟁이라는 상황은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역시 한국 사회의 전쟁, 그리고 군사주의 역사와 맥락이 닿아 있다는 것이다.
 
"현재 남·북한은 사실상의 전쟁 중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도 사실 전쟁 상황이었던 걸 고려하면 한국은 지난 100년 동안 계속 전쟁 상황이었다고 본다. 우리 사회 구성원 간의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김동춘 교수는 "현재 한국을 이끄는 주류 세력의 정신 구조를 이해하는 데에는 전쟁만큼 중요한 변수가 없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짧은 10년을 제외하면, 한국은 오랜 세월동안 국민들의 자신의 의사를 정당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더라도 무사할 수 있던 사회가 아니었다"며 "전쟁 체제는 기본적으로 만성화되고 구조화된 폭력의 체제였고, 그 체제에서 지배 질서의 기둥은 경찰과 군대였다"고 분석했다.
 
"경찰과 군대는 폭력기구다. 그들이 전면에 나서는 사회는 기본적으로 전쟁 체제다. 국가 예산 중 상당 부분이 군대에 지출되고, 국민을 처벌하고 감시하여 그들의 복종을 유도하는 사회, 그것이 바로 전쟁 체제라고 본다. 또 국회와 국민의 감시와 통제 밖에 있는 비밀 국가조직이 무소불휘의 힘을 발휘하는 사회 역시 전쟁 체제다."
 
김 교수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뒤 1961년에 설립된 한국의 국가정보원, 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미국의 FBI, 일본에 존재했던 '특별고등경찰' 등을 예로 들며 "비밀조직에게 명분을 제공하는 것은 전쟁"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적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권력자의 권력을 극대화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을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국민을 사찰, 테러, 감시를 묵인하는 체제가 전쟁 체제"라며 "그 극단적인 형태가 학살"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한국뿐 아니라 냉전에 있었던 여러 나라에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당시의 학살이 멀리 떨어지고 야만적인 현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금과 시기적으로 멀리 떨어지 않았을 뿐더러 지금 우리 사회가 한 걸음만 더 떼면 저렇게 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즉 적과 나의 이분법이라는 광기가 발동하면 그렇게 된다"며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상황 속에서 상대방을 덧칠하고 좌우 양쪽에서 서로를 죽이는 것은 무서운 행동이지만, 준 전쟁 상황인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일이 계속 반복돼 왔다"고 덧붙였다.
 
김동춘 교수는 "국가보안법 등을 기반으로 한 기본적인 사찰 체제는 지난 60년 간 해체되지 않았다"며 "조용한 형태의 사실상의 학살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공권력의 이름을 빌린 합법적 폭력은 언제나 법의 경계를 넘어서 법 영역 밖에서 이뤄져 왔다"며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공권력의 불법성이 한 걸음만 더 나가면 고문과 불법 감금과 학살이 자행되던 그때와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빨갱이 죽이는 것이 뭐가 죄가 돼?' 이런 생각이 과연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졌는지 질문해보자. 정치적 반대 세력, 위험한 이의 목숨을 뺏는 것 자체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우리 사회의 문화와 지배 구조가 어디에서 왔는가?"
 
이어 김동춘 교수는 "이것은 곧 한국 지배세력의 문제와 연동돼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과 군부, 그리고 경찰이 가지고 있는 좌익 공포증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살로까지 몰아간 일종의 가해 매카니즘 역시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김 교수는 "자신의 정치적 반대 세력은 물론 회색지대에 있는 세력까지도 없애지 않으면 안 된다는 보수 세력의 태도는 이들이 갖고 있는 태생적 콤플렉스에서 오는 게 아닐까"라고 분석했다. 그는 "일차적으로는 친일 콤플렉스가 보수 세력 심성의 기원을 이룬다"며 "그 세대는 자연적으로 없어졌지만, 문제는 이 콤플렉스가 변형된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친일 세력 이후 스스로 도덕적 정당성을 결여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권력자로 등장했다. 국민을 설득할 어떤 정치적 명분도 없는 상태에서 권력이 주어졌고, 해방 이후에도 미군이 이들을 용인하면서 계속 권력을 쥐었다. 콤플렉스를 가진 이들은 자기들처럼 때가 묻지 않은 사람들이 아닌 사람, 즉 도덕성을 무기로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런 사람들이 저항하거나 대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여기서 지배세력에게 관용과 타협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잘못한 사람이 사죄를 해야 하는데, 문제는 거꾸로가 된다. 자기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 깨끗한 사람, 바른 말 하는 사람, 공격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어 이들을 모두 빨갱이로 모는 것, 이것이 우익 콤플렉스의 기원이다."
 
따라서 김동춘 교수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포용력이 좁은 이유는 자신의 정치 도덕성 기반이 그만큼 좁다는 걸 의미한다"며 "흐르는 위기의식과 공포감으로 구성된 우리 사회의 만성적인 콤플렉스가 반대 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가져오게 했던 이유가 아닐까"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것을 조금이라도 극복하려 했던 시기는 우리 사회에서 지난 10년 정도로 아주 짧았다"며 "이후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과거 정치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이런 식의 정치 문화와 지배 체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은 사실 국민"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국민들이 고발하지 않거나, 굴복하거나, 침묵하거나, 항복하거나, 도피하는 까닭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 때문"이라며 "흔히 전쟁이나 폭력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학하면서 자기 파괴로 가는 과정과 같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지난 60년 동안 한국 사회를 움직여온 전쟁의 트라우마와 지배 체제에 대해 끊임없이 돌파구를 찾는 시도가 계속되어 왔고, 조금씩 변해왔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지배 세력이 관성을 쉽게 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것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단죄하고, 이를 통한 용서와 화해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동춘 교수는 마지막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같은 비극적 일을 보면서 너무 생생하게 우리의 현대사가 반복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며 "왜 이런 일이 계속 나타나는지 우리는 곰곰히 돌이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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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춘 "노조 운동하면 감옥 갈 각오하는 '민주 국가'?" (프레시안, 강이현 기자(정리), 2009-06-11 오전 6:36:29)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②]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가 민주화 됐다고 한다. 그런데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과연 얼마나 민주화가 이뤄졌나. 노조 운동 열심히 하고 감옥 가지 않을 수 있는가. 기업 측의 손해배상소송 청구를 당해서 노동간부가 파산하지 않을 수 있는가. 부당노동 행위를 한 사용자가 처벌될 수 있는가."
 
김동춘 교수는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화가 진행됐고,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이 당선됐다"며 "이들의 당선에는 어느 정도 노동세력의 힘이 작용했지만 결국 6월 항쟁의 성과로 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분석했다. 그는 "더 거시적으로 얘기하면 1987년 이후 민주화가 많은 진전을 이뤘지만 질적인 측면을 들여다보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사회 세력은 시민운동과 민주노총 운동, 혹은 진보정당, 혹은 이들을 지지하는 소극적 지지세력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동춘 교수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불평등 지수가 높아지는 것 역시 단시 신자유주의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상쇄시킬 수 없었던 내적 역량의 취약성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식민지와 분단이라는 상황 속에서 외생적 형태로 진행됐다. 자본가도 국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계속되고 있다." 이날 '계급·계층의 변화와 사회운동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의를 맡은 김동춘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의 탄생 배경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한국의 부르주아와 지배 세력은 태생의 한계가 있었다"며 "또 국가주도의 성장정책과 높은 수출의존도 때문에 자본은 국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김동춘 교수는 "국가의 후원이란 면세 조치, 수출 특혜 등 각종 혜택으로 자본이 외국 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 것과 경찰과 검찰을 동원해 노동자들의 저항을 차단하는 것과 두 가지로 집중되었다"며 "이 두 가지로 초기 한국 자본이 성장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대기업은 경제적 자유를 주장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국가의 지원과 보호를 요청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며 "또 초기 자본축적 과정에서 권력과의 결탁, 부동산 투기, 탈세, 노동자 탄압 등 온갖 부도덕한 과정을 거쳐서 부를 축적한 도덕적 취약성이 있으며 따라서 국민적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김동춘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의 또 다른 특성을 두고 "기본적으로 2차대전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작품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미·일·한 자본주의가 가진 특성이 있다. 우선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노동 배제 체제다. 미국 자본주의는 노동 운동과의 전쟁의 역사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사실상 어용노조 밖에 없다. 한국 노조는 공식적으로 허용돼 있지만, 노조 운동은 감옥행을 의미했다." 그는 "또 다른 공통점은 진보정당이 없는 점, 사회 복지나 국가 복지라는 개념이 없는 점, 계급적 연대 대신 교육을 통해 가족이나 개인단위로 출세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도록 끊임없이 성취를 유도하는 사회라는 점"이라며 "특히 한국 사회는 이런 특징이 극우 반공과 함께 굴러가는 정치경제 체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동춘 교수는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겪은 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자본주의를 설명하며 그냥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안일한 해석이며, "개발독재가 변형된 신자유주의"라고 지적했다. 그는 "남미와 한국처럼 개발독재형에서 신자유주의로 넘어간 나라는 사실상 자유주의 단계를 거치지 않았다"며 "이는 어느 정도 복지 체제가 남아있는 서유럽 등과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1987년 이후 한국 자본주의를 설명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지구화"라며 "특히 서비스 부문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났고, 이는 노동유연화와 연결되면서 비정규직의 숫자가 50%대까지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세 번째 특징은 주주자본주의"라며 "국민의 다수가 주식 투자자가 되면 이들은 자기의 정체성을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고, 주주로 생각하게 되고, 노조의 파업에 반대하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김동춘 교수는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의 또 하나의 특징으로 '비대칭적 계급구조화'를 들었다. 그는 "지배층으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의 계급으로 뭉쳐온 반면 사회적 약자, 소수자, 노동자는 계급으로 뭉치지 못하는 현상이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1992년이후의 총선과 대선을 분석해보면 소위 '강남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투표행태를 '여촌야도'로 설명했지만, 1992년을 계기로 서울에서도 부유한 지역에서는 일관되게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또 계급구조화가 진행된다는 것은 부가 세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매개체가 결혼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재벌가는 재벌가 끼리만 결혼하고, 명문대 입학자의 출신 배경이 고착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김동춘 교수는 "반대로 노동 세력은 현실정치에서 하나의 세력이나 계급으로 단결하지 못했다"면서 지역주의와 낮은 계급의식이 중요한 원인이지만, "친노동 후보가 나오더라도 현실 정치의 한계 때문에 노동자들은 힘이 있는 쪽을 지지한다"며, 민주당의 애매한 노선도 노동세력의 취약성과 연관시켜 설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 세력화가 되지 않는 노동 운동은 비정규직, 서비스화, 위로부터의 노동 탄압과 맞물리면서 조직률이 떨어졌다"며 "민주노동당이 2004년 10석을 얻은 것 역시 노동 운동의 힘보다는 선거제도의 변화 즉 비례대표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민주화는 아직 요원해보이기만 한다. 그러나 최근 한국 민주화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바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이어진 거대한 추모 행렬이다. 김동춘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 18대 총선 결과 온 국민이 '경제 동물'이 된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다수의 국민들은 최소한의 양심과 정의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조문의 성격"이라며 그들은 "돌아가신 노 전 대통령을 애통해하고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을 슬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많이 가진 이들은 그렇게 슬퍼하지 않았다. 많이 슬퍼한 사람일수록 스스로가 많이 힘든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노 전대통령의 죽음과 자신의 처지를 같은 것으로 본다. 통칭 서민이라 불리는 약자, 당하고 산 사람들, 차별 받았던 이들이 더 많이 슬퍼했다고 본다."
 
김동춘 교수는 "더 많이 슬퍼한 바로 그 사람들이 정말 단결해야 할 사람들"이라며 "누가 자기를 대변할 수 있는지 깨달아야 할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이들 대다수는 노조활동을 한번도 접해보지 못하고 시민단체는 잘난 사람들이 주도하는 것으로만 아는 사람"이라며 "조문한 수백~수천 만 명의 에너지를 어떻게 현실적 동력으로 전환시킬지는 결국 진보정당, 시민단체, 노조에 던져진 숙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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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진짜' 노무현 기념 사업을 하고 싶다면…" (프레시안, 강이현 기자(정리), 2009-06-17 오전 8:23:23)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③]
  
정말 '노무현 대통령'을 기리는 일은 어떤 것일까?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아르헨티나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념 사업도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월요민주주의 학교' 강연에서 손호철 교수는 "문제는 노무현 정신"이라며 "질 줄 알면서도 올바르다고 생각하면 부딪혔던 용기를 가진 제2, 제3의 바보 노무현을 양산하는 게 그 첫 번째"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가 꼽은 두 번째 노무현 정신이 있었다. 바로 지역주의 극복이다. 이는 이날 강연의 주제이기도 했다.
 
"한국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1987년까지는 민주-반민주가 압도적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1987년 이후 불행히도 지역주의가 전면화됐다. 민주-반민주 구도는 약화됐지만 사라지지 않은 채 이어졌고, 지역주의의 압도적 우위가 계속됐다. 거기에다 부상하고 있지만 자리잡지 못한 진보-보수 구도가 결합된 상태, 이것이 한국 정치다."
 
우선 손호철 교수는 1987년 양김(김대중-김영삼)의 분열을 꺼내며 "지역주의에서 양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며 "이로써 민주화가 5년 늦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둘이 연합해서 민주화 운동을 해도 될까말까 했는데, 한 김이 군사세력과 연합해서 다른 한 김을 죽이는 3당 합당과 DJP연합이 나왔고, 결국 계속 캐스팅보드는 군사 세력이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한국 지역주의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호남-영남의 대결이었다는 인식"이라며 "부마 항쟁만 보더라도 TK와 PK는 전혀 다른 세력이었고, 부산-경남과 호남은 저항적 지역주의를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양김이 분열하지 않았다면 민주-반민주의 구도로 TK 대 PK-호남의 대결이 치뤄졌을 것"이라고 "노무현의 비극은 이 속에 뿌리가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1987년 3김이 떨어져나오면서 4개의 지역당 구도가 나왔다.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민정당, JP를 중심으로 한 공화당, 이 두 개는 군사독재세력이었다. 그리고 YS와 DJ가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을 들고 나왔다. 호남과 PK는 저항적 지역주의였다. 그 지역구도 때문에 1988년 총선에서 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가 일어나게 됐고, 노태우는 정계 개편을 해서 야당과의 연정을 시도한다. 그러나 원래 생각과 다르게 3당 통합이 이뤄졌다. 이는 결국 군사독재 세력과 민주화운동 세력의 연합이면서 지역 연합이었다. 호남을 소외시킨 나쁜 연합이었다."

손호철 교수는 "이때 YS를 따르던 정치인 중 그를 따르지 않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노무현이 있었다"며 "또 제3의 길을 원하던 유권자들은 무주공산이 됐는데, 이들은 비호남 야성 유권자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노(反盧)와 친노(親盧)의 뿌리는 거기에 있다"며 "제3후보의 가능성이 항상 남아있었고, 이는 1992년 정주영 이후 이인제, 노무현, 김두관, 유시민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이 유권자들이 지역구조의 우위 아래 민주-반민주를 선택했다는 점"이라며 "거기에서 열린우리당의 비극 등 모든 갈등이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1992년 대선에서 김대중은 떠나고 부산의 정치인 이기택이 민주당을 이어받아 지도부를 했다. 당시 민주당의 탈지역화가 어느 정도 일어났다. 그러나 1995년 지자체 선거에서 김대중이 나오면서 탈지역주의는 깨졌고, 노무현은 부산시장 선거에서 참패했다. 이후 DJ가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어 나올 때 또 안 따라간 이들이 노무현을 비롯한 몇몇 개혁후보였다. 노무현의 정신, 3김정치의 극복과 지역주의의 극복을 내건 그의 첫 실험이 이것이었다."
 
손호철 교수는 "1997년 대선에서 노무현은 정권교체를 위해 자신과 대립했던 김대중 진영으로 갔고, 이후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쳐 대선에서 당선됐다"며 "그러나 지역주의 극복은 그에게 버릴 수 없는 과제였고, 열린우리당을 통해 시도했지만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아무리 지역주의를 욕해도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갈등구조가 생기지 않는한 이는 영원할 것"이라며 "2004년에는 탄핵과 반탄핵이라는 중요한 이슈가 있었고, 1987년 이전엔 민주-반민주라는 압도적인 구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한국 정치는 초계급적 지역 연합이라고 생각한다"며 "그걸 깰 수 있는 방법은 거꾸로 가는 것, 바로 초지역적 계급 연합"이라고 말했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걸인'부터 '재벌'까지 자기 지역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초계급적 지역연합이라면 지역을 넘어 노동자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초지역적 계급연합이다.
 
그는 "진보 정당이 크고, 한국 정치가 진보 정치로 가는 것만이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노무현 정신을 실현하는 방법은 진보정당 키우는 것이 현실적인 답"이라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이 '이제는 진보 정당을 도와줘야겠다'고 말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딜레마는 지역주의를 깰 수 있는 강력한 해답이 진보정당인데, 다시 가장 커다란 장애는 지역주의라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전국 평균 3%를 얻었는데, 가장 득표율 낮은데가 대구가 아니라 광주였다. 그런 지역적 딜레마를 푸는 것이 한국 정치의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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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아직도 진보·보수 타령인가?" (프레시안, 강이현 기자(정리), 2009-06-24 오전 7:54:31)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④]
 
"더 이상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으로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지난 15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월요 민주주의 학교' 강연을 맡은 손호철 교수는 "한국 정치를 볼 때 진보, 보수, 개혁의 의미를 잘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한국 정치에서 핵심 화두는 개혁이었다. 그러나 개혁이라는 단어를 사회과학적으로 분류하지 않고 사용했기 때문에 혼란에 부딪혔다. 특히 한국에서는 두 가지 개혁을 뭉뚱그려 보고 있다. 민주 개혁과 신자유주의 개혁이 그것이다."
 
우선 손호철 교수는 "개혁은 부단히 재생산되고 다시 등장한다"며 '개혁'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의 역동성을 지적했다. 그는 "현재 한국 사회는 진보 대 (흔히 개혁 세력이라 부르는) 자유주의적 보수 내지 개혁적 보수 대 (흔히 보수라 부르는) 냉전적 보수의 삼분구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손 교수는 "민주주의 전선과 신자유주의 전선이라는 두 개의 개혁, 두 개의 전선이 있다는 것에 주의하라"며 보수 세력으로부터 '좌파'라고 공격을 받았던, 또는 '진보' 정권이었다고 일컬어졌던 노무현 정부가 진행했던 개혁의 성격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손 교수는 "2004년 총선에서는 탄핵의 역풍을 맞으면서 한국 헌정 사상 최초로 자유주의 세력이 과반수를 차지했다"며 "그 여세를 몰아 노무현 정부는 언론법, 국가보안법 폐지 등 자유권에 해당하는 권한을 확대하는 개혁 법안을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노무현 정부 역시 오히려 집회와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을 개악하는 등 자유권 확대 측면에서 많이 기여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반면 신자유주의 개혁의 대표적 사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며 "그때 지지층과 열린우리당 내에서 강한 반발이 일어난다. 사실 '한나라당과 우리가 별로 다르지 않다'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정확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예는 김근태 의원이 당 대표였던 시절인데 사실상 한나라당과 연정을 해서 비정규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호철 교수는 "즉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개혁은 '자유민주주의'로 가는 개혁이었지, 자유민주주의를 넘어 진보로 나가는 게 아니었다"며 "극우로 왜곡됐던 한국의 보수를 '글로벌 스탠더드'의 보수, 즉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로 정상화하는 과정이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찬성하면 진보인가? 자유민주주의는 틀린 주장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사회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가 된다. 국보법 폐지의 찬반 여부는 진보-보수가 아닌 보수-수구, 정상적 보수-극우의 갈림길이었다."
 
또 손 교수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경제 규제를 했으니까 좌파 정부였다"는 주장 역시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최고 좌파는 박정희가 아닌가? 햇볕정책 때문에 좌파 정부였다? 그 정책은 페리보고서를 베낀 것이었다. 복지 정책? 김대중과 노무현 복지 정책의 수준은 유럽과 미국 신자유주의의 5분의 1 정도였다. 두 정부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적 세력이었다." 손호철 교수는 "이 둘을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헷갈리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자본가 입장에서 보면 신자유주의 개혁은 좋은데 국보법은 폐지하지 않는 게 좋은 것이다. 앞으로 개혁이라는 말이 나오면 이게 민주 개혁인지, 신자유주의적 개혁인지 분류해보라"고 지적했다.
 
이어 손호철 교수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대우자동차와 쌍용자동차 사태 역시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 개혁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노동자들의 파업을 짓밟고 싼 값에 대우자동차를 GM에 팔았다"며 "국부를 거덜내는 방식으로 팔았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데 그 장본인인 민주당이 대우를 살리겠다며 폼을 잡고 나오고 있다"고 질타했다.
 
손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해 경제위기를 봤다면, 신자유주의 정책이 잘못됐었다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는데 청개구리처럼 거꾸로 가는 건 이명박 정부만이 아니라 뉴민주당 플랜을 들고 나온 민주당도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 역사성 정확히 알고 넘어가야 한다. 물론 그때의 국면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손호철 교수는 "결국 경제를 살렸지만, 결과로 무능보다는 부패가 낫다며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다. 원조 무능은 한나라당인데도 그런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 대다수는 경제위기가 아직 극복되지 않아서 못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못 사는 이유는 경제 위기가 신자유주의적으로 극복됐기 때문"이라며 "이제 민생의 어려움은 경제위기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영원한 우리의 미래가 됐다"고 전망했다. "자유주의 10년, 결과는 민생 경제의 실패와 양극화가 됐다. 중산층과 서민 정부 표방하고 나섰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반서민적 정권이었다. 전두환, 박정희보다 빈부 격차를 심화시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이 결국 박정희 향수를 불러오지 않았나."
 
손 교수는 "그런데 이명박의 중요한 공이 있다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가장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킨 반서민적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씻어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민주당을 보면 신자유주의 개혁이 민주 개혁의 발목을 잡은 셈"이라며 "민주당으로서는 민주 개혁만이 한나라당과 구별한 자신의 정체성인데도, 신자유주의의 개혁에 발목을 잡히는 딜레마에 빠졌다"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손호철 교수는 "결국 신자유주의 업보를 풀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어려움들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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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그들은 민주주의를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프레시안, 강이현 기자(정리) , 2009-07-03 오전 8:49:37)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⑤·끝]
 
"한국에 파시즘이 오는가?" 정권은 더욱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고 있다. 서울광장, 광화문, 쌍용차 평택 공장, 용산 참사 현장 등 곳곳에서 경찰은 '철통 경비'를 서거나 정부에 비판적인 집회와 기자회견을 막고 참가자를 연행한다. 지하철과 버스정류장 곳곳이 '집회'를 막는다는 이유로 통제된다. 정부 정책 홍보를 위해서라며 극장에 '대한 늬우스'가 상영된다.
 
그러는 사이, 언젠가부터 '파시즘'이라는 단어가 다시 지면 위로 등장했다.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는 이명박 정부를 두고 "파시즘 초기"라고 일갈했다. 지난 6월 29일 손호철 서강대 교수가 진행한 강연의 주제도 바로 파시즘이었다.
 
손호철 교수는 우선 파시즘 논쟁에 앞서 파시즘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파시즘 논쟁은 굉장히 감정적이고 정치 선동적 측면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정치적 코드, 선정적 용어로서의 파시즘이 아니라면 파시즘에 대한 좀 더 과학적인 정의가 무엇일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우선 독일과 이탈리아를 파시즘의 전형으로 생각하는 시각이 있다. 손호철 교수는 "히틀러 동원에 움직이는 대중들을 연상하듯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와 동원, 그리고 파시스트당이 전형적인 파시즘에 대한 인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두 번째 시각은 파시즘이 독일과 이탈리아 등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1920~30년대 동유럽과 남유럽에서 전반적으로 일어난 광범위한 현상이라고 보는 관점"이라며 "파시즘에서 대중적 지지는 일반적 현상이 아니며 출현 과정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호철 교수는 "따라서 현재 한국에 파시즘이 오는가의 여부를 따질 때 억압성의 전면화냐, 또는 광범위한 대중의 자발적 지지에 기반하느냐라는 두 개의 이슈가 개입돼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파시즘의 기본은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 여부가 아니라 20세기 초반에 나타난 독점자본주의로 성장하면서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반동적 재편이 있었느냐의 문제라고 본다"며 "이승만 정권을 두고 파시즘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정권이 덜 억압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독점 자본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파시즘이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며 "결국 경제 공황 속에서 자유주의 정권들의 경제 위기 극복 능력이 무능했고, 그것에 따라서 첨예한 계급 갈등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도 비슷하다. 민생의 위기와 양극화가 바로 파시즘이 나오게 된 계기라고 볼 수 있다"며 "자유주의 정권의 무능, 사회적 갈등의 첨예화라는 점에서 우리도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손호철 교수는 "MB 정부는 현재까지 두 시기로 구분될 것 같다"며 "집권 이후 2008년 광복절까지가 촛불 시위 방어에 급급했던 수세기라면 광우병 집회 이후 공세로 전환됐고, 월스트리트발 금융 위기를 핑계로 이같은 공세를 더욱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2기를 중심으로 얘기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우파 신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적 토건 국가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파시즘 체제가 나오게 되는 기본적 틀은 국가의 경제 개입"이라며 "대공황을 가져온 것은 시장이었고, 미국이 그 위기를 뉴딜을 통해 해결했다면, 독일과 이탈리아는 억압적 국가 개입을 통해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그것과 전혀 다른 신자유주의적 방식이 이뤄지고 있다"며 "금산 자본 분리 완화, 비정규직 법안 추가 개악, 최저임금제 부분적 해제, 부유층 감세, 삽질 경기 부양책 등 기본적으로 친자본주의고 반동적인 경향을 동일하게 나타나지만 국가 개입이 아니라 규제 완화라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자유주의 위기를 해결할 때, 부유층에 증세하고 빈곤층에 감세하는 부의 이전을 하는 오바마적 해법이 있다면 MB식 해법은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그는 "오히려 부자를 감세하고, 재정 적자가 나니까 부가가치세를 높이는 방식을 통해서 부가 더욱 더 부유층에 이전되게 하며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다양한 저항을 억압적 방식으로 누르는 신파시즘으로 가는게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손호철 교수는 "또한 정권의 성격과 상관없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게 되면 민중의 저항이 나오기 때문에 이를 누르고 진행하기 위해 경찰국가의 특성이 나타난다"며 "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어느 정도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양극화를 가져오고, 그래서 경찰국가로 갈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항상 레이건, 부시 정부가 작은 국가를 얘기하면서도 법과 질서, 경찰 증원을 요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결국 정부가 민주 정부이냐에 상관없이 신자유주의적 정치를 펴게 되면 경찰 국가 경향이 내재돼 있다"며 "그런데 MB 정부는 플러스 알파"라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정치적 민주주의의 핵심인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사상의 자유 모두 후퇴하고 있다"며 "더군다나 MB악법들이 통과될 경우 이는 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뿐만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이 부활하고 있다"며 "최근 이뤄진 검찰청장, 국세청장 임명이 제왕적 대통령 부활을 또 다시 예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그럼에도 아직까지 예외적인 파시즘 국가라고 보기에는 헌정 질서의 중단이나 의회 민주주의적 틀의 철폐와 같은 극단적 조치는 아직 없다"며 "나는 이것이 야금야금 갉아먹는 것 같은 '크리핑 파시즘(creeping fascism)의 경향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손호철 교수는 "그런데 중요한 것은 파시즘이 MB 정권이 끝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라며 "또 우파 신자유주의도 꼭 MB 문제로 환원해선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한국적 특수성과 관련해 봐야할 문제"라며 "한국적 파시즘의 대중적 기반이 인구가 많은 영남에 있다는 지역주의적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또 50대 노령층과 근본주의적 기독교층도 한국적 파시즘의 대중적 기반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손 교수는 "그러나 낙관적 요소도 있다"며 "한국의 경우 이념적 정체성이 뚜렷한 것이 아니라 최장집 교수의 표현대로 일종의 열망·실망의 사이클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즉 현 국면은 국민의 반동화가 아니라 실망의 사이클 때문이라고 본다"며 "10년쯤 뒤에는 다시 냉전세력에 대한 실망으로 국민의 재진보화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손호철 교수는 "또한 25~30%의 무당파가 계속 침묵하거나 한나라당을 지지할 경우 MB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에도 70~75%가 지지 내지 침묵을 하는 것이 돼 '파시즘적 경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25~30%를 어떻게 끌어내고 조직할지가 중요할 것"이라며 "단순히 상층부 연합이 아니라 오바마처럼 풀뿌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파시즘이 뭐냐에 대한 훈고학적 논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민주주의가 공격받고, 이에 대해 다수가 침묵한다면 이미 파쇼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체제로서의 파시즘은 아니더라도. 결국 민주주의냐 파시즘이냐는 것은 예측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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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8 19:43 2009/06/28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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