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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세계화의 가면을 벗겨라』.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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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페트라스ㆍ헨리 벨트마이어. 원영수 옮김. 2008. 『세계화의 가면을 벗겨라』. 서울: 메이데이.
 
○ 페트라스와 벨트마이어의 이 책은 많은 기대를 가지고 읽었지만, 나에게 기대만큼 만족과 공감을 주지 못했다. 이것은 저자들이 다루는 내용이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남미의 경험을 일반화하다 보니 나타나는 문제도 있다. 공기업 및 NGO에 대한 근본주의적인 인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NGO와 민중운동단체에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원문이 그러한지 모르지만, 글이 너무 딱딱하다. 글에서 구체적인 통찰을 찾기 어렵다.
 
세계화거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아니며, 세계화의 가면을 벗기면 제국주의의 본질이 드러난다고 보는 점은 의미가 있다. 앞에서 세계화에 대한 논쟁을 다루면서 여러 견해들의 문제를 다루어서 흥미를 끌었지만, 거기까지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어설프게 21세기 사회주의의 전망을 보이다 보니 책의 뒷부분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처음에 나중에 써먹을 만한 부분을 옮기다보니 분량이 많아졌는데, 이렇게까지 타이핑할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타이핑하면서 글에 대한 코멘트를 하려고 했지만, 그냥 통과한다. 물론 옮겨놓은 글에 내가 동의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민영화에 대한 부분 때문에 읽기 시작했고, 그 부분을 자세하게 읽었는데, 한국의 민영화에 대해서는 그다지 함의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한 나라를 분석하더라도 좀더 치밀하게 분석해주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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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남한 자본주의에 대한 신식민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는 한국어판 머리말에 잘 나와 있다.
 
한국에서 재벌-군부-CIA 미제국주의 식민총독의 파워블록은 미군기자의 존재와 전세계 최대의 1인당 군사력 때문에 가능했다. 남한 산업과 무역의 성장은 미국의 군사적 점령 아래서 가능했다. 즉 남한 자본의 확장은 기본적으로 세계화의 결과라기보다는 아시아 정복을 지향하는 제국주의 전략의 산물이었다.
 
수많은 사이비 진보학자들은 남한 자본의 자율성을 강조하지만, 미국과 일본이 지배하는 제국주의체제로 통합되고 종속된 남한 자본의 현실은 1997~98년 경제ㆍ금융위기에서 분명해졌다. 남한의 자율적 자본주의는 미국, 일본, 유럽의 제국주의 자본에 의한 은행, 기업, 부동산의 대규모 인수로 대체되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6).  
 
세계화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적 기업과 무역의 확산을 묘사하지만, 자본축적과 해외팽창을 촉진하는 계급관계를 검토하지 못한다. 한국의 경험은 자본 이동에 결정적 힘으로서 계급관계와 계급투쟁의 중심성을 입증한다. 자본의 전지구적 운동은 단지 시장의 힘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범위와 강도에 의해 기본적으로 규정받는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7).
 
○ 김세균 교수의 추천사 중에서
 
저자들에 따르면, 세계화는 변화된 조건 속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계급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초국적 자본의 제국주의적 계급 프로젝트이다. 세계화는 불가피한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다.
 
세계화는 선행한 모든 자본주의적 발전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저항세력을 발생시키는 모순, 자신이 의존하는 체제만이 아니라 자본축적과정까지도 침식시킬 수 있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세계화에 대한 대안은 초국적 자본의 세계지배를 타도할 대중들의 투쟁 속에서 이미 출현하고 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10).
 
○ 남구현 교수의 추천사 ‘세계화의 가면을 벗기면 제국주의’ 중에서
 
저자들은 ‘제국주의’ 개념이 더 기술적인 유용성을 지닌 개념으로, 지금의 경향들을 잘 이해하고 정치적 실천을 지시하는 도구로서 제국주의 개념이 폐기되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남구현은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이 외화된 외적 모순이고, 제국주의-식민지 간의 모순으로서 제국주의는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해왔으며, 지구화는 지금 시기의 제국주의가 취하고 있는 형태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저자들도 제국주의 테제로 지금의 문제를 설명하고 있는데, 다만 세계화의 개념이 이데올로기적인 도구에 불과하며, 세계화의 개념과 제국주의 개념을 대치시킨 후, 세계화 개념 대신에 제국주의 개념을 사용하자고 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반면 남구현은 지구화 개념을 재규정해 사용하고 있다. 지구화 개념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에는 그에 상응하는 물적 토대가 있다는 것이다. 즉, 지금 시기의 지구적 자본운동을 지구화라는 개념으로 포착할 수 있고 이는 제국주의의 한 형태라고 보고 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13).
 
○ 네그리 류의 ‘제국’론과의 차이
 
네그리는 폭력적이고 팽창주의적인 제국주의와 제국을 구분한 후, 지구화된 시기의 제국을 지구적인 사법질서, 예컨대 미국식 헌정에 의한 보편법적인 질서에 의해 유지되는 것으로, 즉 제국주의에 비해 다분히 문명적인 것으로 그리고 있다.
 
이에 대해 페트라스와 벨트마이어는 지금의 지구화된 질서가 ‘제국주의’적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13-14).


□ 머리말
 
○ 1~3장은 세계화의 이데올로기적 차원을 다루며, 그 뒤에 감춰진 계급적 프로젝트, 즉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정확히 기술하기보다는 혼란스럽게 하려는 시도, 등장하고 있는 초국적 자본가계급의 경제적 이익에 이데올로기적 베일을 씌우려는 시도를 폭로한다.
 
이들의 이익을 위해, 기존의 세계경제 질서는 탐욕과 계급이익, 이윤창출의 자유로운 작동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창출하도록 하는 혁신의 과정 중에 있다. 동일한 이해를 위해, 세계경제 질서는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것, 발전 과정의 추동력이자 미래 번영의 선구자로 묘사되고 있다.
 
○ 이 책은 제국주의의 개념과 또 그와 연관된 담론을 복원하기 위한 작은 노력으로 제출되었다. 세계화의 ‘불가피성’, 전세계 민족들의 자유시장 자본주의로의 조정, 또는 종속의 불가피성은 민중들을 자신의 의지에 복종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자본의 이해를 자신의 이해로 바라보도록 강요하는 지배계급의 역량에 달렸다.
 
○ 5장에서 초점은 현재까지 작동한 제한과 규제로부터 풀려난 전지구적 자본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창출하도록 설계된 신자유주의적 구조 개혁 프로그램의 핵심요소인 ‘민영화’로 옮겨진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전지구적 자본은 국내시장을 보호하고, 전략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하며, 초국적 기업과 은행의 규제,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한 제한과 국가의 경제개입을 추진하는 경제모델에 의해 발생한 상황에 대처해야 했다.
 
1973년 칠레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살바도르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에 대한 군부 쿠데타는 대륙 전역과 그 이상에서 반동ㆍ반혁명 세력을 작동시켰다. 10년 내에 새로운 경제모델이 자리를 잡게 되면서, 세계시장을 ‘성장의 엔진’으로, 민간부문을 그 운전수로 바라보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광범위한 조건을 창출하였다. 5장은 민영화에 특별히 초점을 맞추면서 이러한 발전과정이 가져온 몇 가지 함정을 검토한다.
 
○ 6장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그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정치적 차원을 검토한다. 1980년대에 들어 모든 관심은 경제적 자유화 과정의 핵심적 전제조건, 또는 불가피한 결과로서 정치적 자유화와 국가의 민주화에 대한 강조로 바뀌었다. 이런 지적ㆍ정치적 맥락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불편한 관계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6장은 이와 관련된 문제를 검토한다.
 
○ 7, 8장은 구조조정(및 세계화) 과정에서 사회적 차원과 인간의 얼굴을 부여하려는 광범한 노력에 초점을 맞춘다. 정부의 탈집중화에 기초한 지역사회 중심의 보다 공평한 형태의 참여적 ‘발전, 시민사회의 강화, 비정부 기구들NGOs 등.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세 가지 경제발전의 양식이다. ① 선거, 세계화, 현대화, 발전 등의 과정에 대한 국가 개입, ② 중앙정부, 국제 개발기구들과 국제 금융기구들과 협력하는 비정부기구들의 프로젝트 구현, ③ 사회운동들의 반체제투쟁.
 
이 두 장은 각각의 대안적 접근과 관련된 사고와 실천의 동력을 재검토하고,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지역사회 중심의 ‘참여적 발전’ 현태 뒤에 숨겨진 의제를 폭로한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정부와 ‘또 다른 발전’의 주창자들만이 아니라, 사회적 좌파에 의해서도 경제변혁의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인 주체로 간주되는 비정부 기구들에 대한 비판을 제시한다.
 
○ 마지막 장에서 세계화 프로젝트와 미국-유럽 자본가들의 제국주의적 구도에 대한 사회주의적 전망을 제시한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발전모델이며, 새로운 밀레니엄(21세기)의 문턱에서 사회주의적 대안을 재건설할 필요성이다.
 
□ 1장. ‘세계화’인가, ‘제국주의’인가?
 
○ 세계화는 자본주의적 발전 동학에 의해 산출되는 복합적 변화만이 아니라, 이 발전과 연계된 가치와 문화적 관행의 확산을 가리킨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9).
 
대부분의 학자들은 세계화를 전지구적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기반한 운영체제 구조들 내에 각인된 일련의 상호 연관된 과정으로 본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세계화를 구조적 조건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전략의 결과, 초국적 자본가계급의 정치적 프로젝트, 이 계급의 이익에 복무하고 그것을 전진시키기 위해 세워진 제도적 구조에 기초한 것으로 인식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0).
 
세계화를 일련의 상호 연관된 과정으로 보는 이들은 세계화를 불가피한 것, 반드시 조정할 수 있는, 조정해야 할 어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특정한 국가 또는 국가군이 어떻게 세계경제의 변화에 적응하고 가장 유리한 조건 하에서 세계화 과정에 인입될 것인가이다. 그리핀에 따르면 문제는 세계화 과정의 추동력이 어떻게 인간개발의 요구에 복무하도록 통제할 수 있는가이다(Griffin & Khan, 1992).
 
세계화를 계급 프로젝트로 보는 이들은 세계화를 정확한 기술이라기보다는 처방을 위해 쓰이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간주한다. 새로운 전지구적 경제체제의 구조를 정의하는 기구들의 네트워크는 구조적 용어가 아니라, 새로운 국제적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고 그것의 진전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통제 하에 있는 의도적이고 우발적인 것으로 간주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1).
 
세계화론자들은 정부정책에 가해지는 제한, 또는 사회집단의 행동, 다양한 사회조직들이 추구하는 전략과 중대한 또는 실질적 (체제)변화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반면 세계화의 비판론자들은 제국주의 체제의 사회적 모순, 즉 자본주의 하에서 삶의 모든 영역을 만성적으로 파열시키는 개발의 모순에 의해 촉발된 변화 지향적 사회세력들의 등장과 기회를 강조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3).
 
○ 세계화의 ‘불가피성’은 심각한 쟁점이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쟁점은 세계화 담론이 무엇을 숨기고 현혹시키기 위해 설계되었는가이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3).
 
○ 세계화의 맥락에서 국가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견해에 따르면, 진정한 문제는 국가의 크기와 권력의 감소, 국민주권의 상실 또는 국가책임 및 기능의 공동화가 아니라, 초국적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위한 국가의 재배치이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46).
 
○ 세계시장을 통합적ㆍ상호의존적 국민경제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하는 ‘세계화론’은 지급불능의 부채가 은행과 기업들의 대규모 도산으로 이어지고 아시아 경제의 붕괴로 이어진 사태 때문에 완전히 붕괴했다. 아시아의 정권들이 유럽, 북아메리카와 일본의 대은행들에 구걸하는 모습은 세계화된 경제의 제국적 관계의 본질을 부각시켰다. 재정지원의 조건에 대한 미국과 유럽 지도자들의 지시로 미국과 유럽의 초국적 기업들이 아시아 대기업을 헐값으로 매입한 것은 세계경제의 국가간 관계의 제국적 성격을 부각시켰다. 제국 금융가들의 승리로 끝난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경제위기의 결과는 ‘통합’과 상호의존이 아니라, 종속과 제국주의를 의미한다. 국가간 관계를 정의하는 불평등과 착취는 세계화 개념틀에 대한 제국주의 개념틀의 유용성을 보여준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51).
 
○ 세계화의 정치적 차원: 통치의 문제
 
분명한 것은 현재 미국이 요구하는 민주주의가 로버트 달(Robert Dahl)이 특히 “다두제”(polyarchy)라고 부른 것, 엘리트 주도형 자유민주주의와 관계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제도에서 어떤 효과적 형태의 민중참여 또는 실질적 민주주의는 없다. 세계화의 조건 아래서 자본규제를 포함한 주요한 정책문제에 대한 효과적 의사결정은 정치적 과정에서 비민주성으로 악명높은 IMF, 세계은행, G7 등의 국제기구들에게 이전되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국제자본에 의한 국가의 접수, 또는 세계화 과정에서 기득권으로의 재정향이다.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신자유주의적 국가의 역할은 세 가지 중요한 기능으로 정의할 수 있다. ① 거시경제적 안정을 보장할 금융화폐 정책의 채택, ② 전지구적 경제활동에 필요한 기본 인프라의 제공, ③ 사회적 통제와 질서, 안정성 제공. 이런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국가는 일반적으로 축소, 탈중심화, 현대화되었으며, 그 규제기능과 정책결정 역량은 공동화되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53-54).
 
□ 2장. 세계화: 비판적 분석
 
○ 라틴 아메리카에서 세계화론자들과 국내 생산자들이 경제의 방향을 둘러싸고 전투를 벌인 19세기 내내 내전과 외국의 개입이 일어났다. 아시아를 세계화하기 위한 주요 전쟁을 벌였지만, 등장하던 국내 생산자들은 전통적 엘리트들의 지도 아래 저항했다.
 
중요한 점은 유럽의 무역상, 제조업자, 국내 농업 및 광업 엘리트들에 기반한 낡은 제국적 형태의 세계화가 현대적 신흥생산자들에 의한 발전에 주요한 장애물로 간주되었다는 점이다. 세계화의 즉각적인 반대자가 노쇠한 황제 또는 부패한 독재자들이었다는 사실이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등장했던 세계화가 근대경제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가 되었다는 사실을 모호하게 해서는 안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68-69).
 
○ 세계화론을 지지하는 계급들이 지배할 때, 양면적 계급들은 세계화론의 공세에 저항하기보다 적응한다. 종속적 계급들이 우세하면, ‘양비론자들’은 시민파업에 참여하고, 국가보호에 대한 요구를 증가시키고 착취공장과 조립공장에 대한 국가규제를 선호한다.
 
중요한 점은 옹호자와 수혜자들에 의한 민족국가의 통제와 지구적 팽창을 위한 조건창출을 위해 강력한 무기로서 국가를 활용할 역량이다. 반대자들의 약점은 부분적으로 조직적인 것으로, 반대는 강력한 국제적 연계와 이데올로기적 책임감 없이 부문적 요구를 중심으로 구축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78-79).
 
세계화에 대한 태도는 구조적 위치와 분배효과에 의해 분명하게 정의된다. 세계화 이데올로기와 그 보편적 호소력은 심각한 계급적 뿌리와 계급적 불평등을 신비화하는데 기반한다.
 
○ 세계화의 주기성
 
과거와 현재의 자본주의적 팽창의 외향적 주기를 설명하는 상호 연관된 세 가지 원천: 전쟁, 위기, 새로운 시장의 개방과 같은 세계 정치경제상의 변화, 정치경제권력에 대한 수출계급의 우위, 그리고 국가의 변화하는 구성과 대외팽창적 경제전략을 촉진하는 자원의 재할당.
 
최소한 20세기 동안, 자본주의적 경쟁이 민족주의적 보호주의 조치를 자극하고, 전쟁이 경제를 계층화하고, 사회적 반대가 자원을 국내적으로 환원했기 때문에, 세계화는 대세라기보다는 예외였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84).
 
공산주의의 붕괴, 혁명적 좌파의 패배, 그에 이은 노동ㆍ사회운동의 쇠퇴가 세계화론 정책의 강제를 위한 적합한 지형을 제공했다.
 
이른바 테크놀로지 혁명은 전반적 성장을 자극하는데 중요성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었다. 사실, 보다 기술적으로 후진적인 나라들, 중국, 인디아, 칠레와 터키가 대개 광범한 집약적 노동착취, 원재료의 추출, 값싼 제조상품의 생산에 기반하여 최대의 성장을 보였다.
따라서 자본의 국제화과정은 생산력의 발전ㆍ심화가 아니라, 새로운 영역을 착취하고 높은 이윤을 위한 지역을 찾아내는 데 기초한 것이다. 따라서 자본과 상품교역의 국제적 운동은 더 많은 자본주의, 더 많은 임금노동자, 더 많은 수출과 수입을 창출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경기침체를 향한 경향을 극복하는 데 실패했다.
 
○ 1970년대 초반이래, 자본가계급은 현장으로부터 유리되고, 노동의 교섭력을 무력화하려는 국가의 특혜에 아주 의존적인, 고도로 관료화된 노동조합운동을 이용했다. 자본가들이 복지문제에 대한 양보를 금지하는 직설적이고 일관된 전략을 발전시킨 반면, 노동관료들은 여전히 사회적 협약과 복지국가라는 낡은 관념에 매달려 있으며, 반자본주의적 전략을 개발하거나 사회주의적 대안을 고려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자본가들이 국가를 장악한 반면, 노동은 부문적 투쟁 및 협소한 임금문제에 연결된 압력그룹, 국외자로 남아 있다. 자본가들은 매스미디어를 지배하는 반면, 노동은 대안적 미디어를 결여하고 있다. 자본가들이 연이어 노동법개악을 주도하여 위로부터 계급투쟁을 강화하지만, 노동은 조합원이 감소하자 서비스 활동으로 전환하고 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86-87).
 
계급권력의 변화와 국가의 재구성은 국제적 흐름의 성장과 권력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세계화의 등장을 보강하는 기본조건이다.
 
○ 정보축적과 커뮤니케이션의 결정적 중요성은 그 정보의 분석과 사용이며 정보분석가들이 다루는 문제를 정식화하는 데 쓰이는 개념적 틀이다. 이들은 자율적 주체가 아니라 권력구조, 즉 때로 정보를 자본의 수익 또는 손실로 전환시키는 구조에 뿌리박은 개인과 계급들이다. 정보는 이윤을 얻는데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는 자본가들이 차트, 도표, 그래프를 작성하고, 데이터를 요약하고, 그것을 간결하고 사용가능한 형태로 온라인에 올리는 정신노동을 하도록 정보수집가를 고용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92).
 
○ 세계화의 분배 결과
 
세계화계급이 소득ㆍ재산 반혁명을 수행하는 특정한 메커니즘은 이데올로기(신자유주의 또는 자유시장), 법제화, 구조조정 정책을 통해서 작동하는데, 이는 이윤이 나는 공적 자원의 민영화와 전과정을 재정지원ㆍ지도하는 새로운 국가주의의 발전을 포함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116).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사실 전지구적 기업들 대부분의 교환이 기업 내에서 이루어짐에도 자유시장을 주장한다.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는 제국 국가와 해외투자가들의 밀접한 관계, 국가와 전지구적 기업들의 증가하는 상호의존성, 그리고 정치적 의제를 형성하는 전지구적 기업들간의 상호관계를 모호하게 한다.
 
세계화계급의 구조적 권력은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실행된 이른바 ‘구조조정 정책’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세계화계급의 구조조정 정책은 실제로 사회지출 삭감, 기업과세 삭감, 보조금 증가를 통한 ‘소득 재집중’의 과정이다. 임금노동자를 희생시켜(이른바 ‘노동유연화’) 고용주의 손에 집중한 권력은 기업조직의 위계상 완고함으로 이어진다. 고용주들은 일방적으로 고용, 해고, 아웃소싱, 하청, 그리고 착취율을 높이고 노동비용을 낮추고 글로벌 벤처의 이윤을 증가시키는 다른 수단에 대한 조건을 결정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117).
 
○ 국가정책과 세계화
 
과거에 민족국가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개입 없이 다국적 은행과 기업들이 팽창하고 또 그 개입이 심화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무기경쟁을 자극하고 문화적ㆍ종교적 선전에 자금을 지원하는데서 제국 국가, 특히 미국의 중요한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서 구소련, 중국, 동유럽과 과거의 급진적 제3세계 나라들에서 시장의 확장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무역협정과 무역블록은 민족국가들에 의해 정식화, 코드화, 실행되었다.
 
막대한 세금 감면, 대규모 보조금, 낮은 국내 노동비용을 자극하는 주요한 정책들은 모두 민족국가에 의해 정식화되었다. 민족구가 활동의 규모와 범위는 아주 증대되어서, 자유시장보다는 ‘새로운 국가주의’(New Statism)라고 언급할 지경에 이르렀다. 세계화는 먼저 새로운 국가주의의 산물이고, 직접적인 국가개입을 지속적으로 동반하며 또한 그것에 의해 유지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122).
 
현재의 세계화 국면에서 민족국가의 역동적이고 중심적인 역할을 확인하면 대안적 형태의 경제조직을 위한 중심으로서 국가의 엄청난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공기업, 자영 협동조합, 그리고 소득, 신용, 토지와 기술지원의 재할당과 재분배 등이 될 수 있다. 국가에 의한 투자재조정은 사법, 정치, 경제적 의미에서 국가가 강력한 역할을 수행하는 소유권의 근본적 변화를 전제한다.
민족국가 권력은 생산과 소비를 세계시장에서 지역시장의 중심성으로 이동시키고, 전지구적 교환을 보완적 활동으로 전화시키기 위한 기초이다. 민족국가 권력은 심화된 사회적 연대와 지역사회 연계에 뿌리박은 혁신과 기술적 조직화와, 보다 많은 자유시간에 대한 생산성 증가와의 연계를 위한 토대이다.
 
국가권력은 노동자 자주관리체제에 필수적이다. 기업을 경영하고, 생산성 및 경쟁수익을 생산자 집단으로 되돌려주는 데 필수적이다.
 
국가권력은 사회적 관계가 생산자계급에 우선성을 부여하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맥락에 시장을 위치시킴으로써 시장문제를 재정의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124-125).
 
○ 세계적 규모의 저항
 
선거기구들이 하나의 저항의 수단이지만, 비의회적 행동이 세계화 정책의 적용을 봉쇄하거나 제한하는 데 가장 광범하고 효과적인 접근이었다.
 
중도좌파 선거야당은 일단 집권하면 지배계급, 국제금융기구(IFI), 기존의 국가기관들의 요구에 순응하기 위해 거의 획일적으로 세계화 이데올로기에 동화되었다. 과거의 혁명적 그룹들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선거정치로 선회하여 정치적 공직에 들어가자 거의 항상 세계화에 대한 반대를 포기하고 세계화의 가정을 수용했다. 그 결과 세계화에 의해 악영향을 받는 모든 그룹들은 비의회적 활동과 조직화를 지향했다.
 
○ 세계화에 대한 대안
 
새로운 대안들은 창조되고 있다는 측면만이 아니라 거부되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이해해야 한다. 이는 “자유시장도 아니고, 관료적 국가주의도 아니다”라는 명제로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다.
 
오늘날의 대안은 저항그룹의 지역프로젝트와 투쟁하는 운동들의 강령적 변혁에서 발견된다.
이들 부문적 또는 소규모 활동을 국제금융기구와 NGO들의 대안적 지역발전 프로젝트와 구별하는 것은 그것들이 더 커다란 사회변혁을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의 일부라는 점이다. 이 대안들은 세계화 국가와 대치하는 저항그룹들에 의해 주도되고, 대개 내적으로 민주적이다.
 
주요한 정치적 문제는 민중적 사회프로그램을 자유주의적 경제학(‘시장사회주의’)과 통합하려는 세계화 개념에 묶인 테크노크라트 지식인들과, 민중적 생산형태의 다양성(협동조합, 공공, 가구 등)을 이해하지 못하는 완고한 집단주의자들에 대한 투쟁이다. 단일한 대안을 창출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지식인들이 갖는 이미지는 물론 창조과정에 있는 기존 대안에 대한 무지, 또는 대안이 없다는 세계화론 주장의 무의식적 수용이다. ‘대안의 필요성’에 대한 진부한 문구를 되풀이하는 대신에, 현재 정교화 과정에 있는 대안들을 투쟁하는 운동과 연결시키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133-135).
 
□ 3장. 이데올로기로서의 세계화
 
○ 세계화의 신화와 제국 권력
 
세계화인가, 미국 제국주의인가, 그것이 문제다.
 
국제경제의 구성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은 결정적으로 미국의 다국적 회사들이 단연 압도적인 세력이라는 것과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렇게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화라는 수사를 고집하는 만큼, 그것은 유례없을 정도로 착취하여 자신과 자신의 경영층을 부유하게 하는 미국기업들의 솟아오르는 힘을 왜곡하는 이데올로기적인 가면이 되었다. 세계화는 미 제국주의의 우위를 표현하는 하나의 암호라고 할 수 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141-142).
 
○ 새로운 제국적 질서
 
새로운 제국적 질서와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한 지배적인 경제기구의 이익 추구는 민주주의와 사회에 심대한 결과를 가져온다. 구조적인 수준에서, 선출되지 않은 외부 관료들이 경제의 근본적인 구조와 해당 국가들의 생활수준에 영향을 주는 거시경제적ㆍ거시사회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주된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곳에서 세계은행과 IMF에서 미국이 지명한 관료들이, 정부지출 수준과 소유관계, 개발전략, 그리고 사회생활의 많은 다른 결정적인 측면을 선거체제를 우회하여 결정한다. 이러한 외부의 정치적 주체들은 자기 나라의 정부와 초국적 기업의 요청에 반응한다. 대부분의 경우 각국 정치 지도층은 유권자나 심지어 선출된 의회와 협의하지 않고 퇴행적인 거시경제정책을 수행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159).
 
만약 권위주의를 공적인 협의나 책임 없이 결정하는 체계로 정의한다면, 국제금융기구의 비선출직 관료들의 증가하는 영향력과 권력은 그런 권위주의 체제의 중요한 축의 하나이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160).
 
새로운 권위주의는 선거과정과 개인의 자유를 고도로 엘리트주의적 의사결정 구조와 연결시킨 변종이다. 선거는 이루어지지만 선거운동 시의 민중주의적ㆍ사민주의적 수사는 무자비한 신자유주의적인 긴축정책과 구조조정 정책이 적용되는 선거 후의 정치와 전혀 조응하지 않는다.
 
정치적 기만의 교묘한 이용은 유권자들에게 진정한 선택과 정치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진정한 수단을 제공하는 경쟁선거의 기능을 의심하게 만든다. 신자유주의적인 의제(사유화나 구조조정 정책 등)를 실행하는 행정명령의 빈번한 사용은 민주주의적 관행이라기보다 옛날의 권위주의적인 체제의 스타일에 훨씬 더 가깝다.
 
새로운 권위주의는 시민문화라는 개념을 침식하는 엘리트주의적 결정과 선거과정, 선출된 입법부와 선출되지 않은 기업들의 결정자들, 그리고 선거전과 법령들을 혼합한 복합적인 체제이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161).
 
오늘날 시민들은 구조적으로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의 지출이나 세금, 민영화, 긴축계획, 그리고 초국적 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포함하는 가장 중요하고 실질적인 주제에 대하여 발표하고 선거할 권리를 부정당하고 있다. 이러한 시민권의 부정을 숨기기 위하여 자유주의 국가의 엘리트주의 옹호자들은 ‘시민사회’와 ‘세계화’라는 무정형적 개념을 사용한다.
 
문제의 핵심은 ‘시민사회’라는 개념이 사회 속의 하나의 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하여 낳은 분열적인 경제정책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일반적이고 포괄적이라는 데에 있다. 실질적인 시민권의 행사란 시민사회 속에서 구분되고 불평등한 관계와 시민사회와 국가에서 지배적인 계급들간에 맞물리는 관계를 인정하는 계급정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162-163).
 
□ 4장. 21세기 초의 자본주의: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미국 제국주의
 
□ 5장. 민영화의 미로
 
○ ① 라틴 아메리카의 민영화는 고립된 경제적 결정이 아니다. 이것은 각국의 강제기구를 통해 작동하는 거대한 정치적 힘과 관계가 있지, ‘시장 합리성’의 산물은 아니다.
② 공기업의 성장은 과거 자유시장 체제의 실패와 위기에 대한 대처였다. 공기업 발전은 대체로 위기와 필요성에 대한 실용적인 대응이지, 이데올로기적 판단의 산물은 아니다.
③ 공기업의 위기는 대부분 민간부문 기업들의 실패와 요구, 그리고 자본주의 정치인들의 정치 스타일의 산물이다.
④ 민영화는 이데올로기적ㆍ계급적 구조 양자의 변화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것은 차례로 각국 정부의 대표성을 침식하고 권위주의를 조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⑤ 민영화는 자국의 소비자들과 ‘시민 사회’ 하층의 이해와 요구를 무시하는 경제구조를 낳음으로써 국가개입, 공적 독점, 고비용 서비스의 해악을 ‘교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심화시킨다.
 
○ 민영화의 기원
 
오늘날의 민영화는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공격, 폭력적인 군사개입과 독단적인 행정명령의 사용에 그 뿌리를 둔 전지구적 전략의 일부로 이해되어야 한다. 현재의 민영화는 제국의 통제를 받는 ‘국제적’ 은행들의 명령 아래, 제국의 후원을 받아 프로그램을 고안하고, 가격을 결정하고, 잠재적인 구매자를 찾아내는 자문단과 정부기관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15).
 
본질적으로 민영화는 정치 행위이며, 국가경제전략으로서 ‘고유의 가치’를 적게 갖거나 또는 갖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민영화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 높은 비율의 저축과 투자, 또는 새로운 생산력 등 그 어떤 것도 보태지 않고 있다. 제국주의 핵심부의 민영화 전략은, 우선 민영화의 세력 확장이 되기 쉬운 세계 경제의 모든 영역을 동일한 질로 만드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민영화의 과정은 주로 기업을 접수하고 시장을 확장하는 수단이 아니라 제국이 지배하는 세계에 경쟁하거나 도전할 대안적 생산구조를 제거하는 수단이다. 일단 경제가 민영화되면, ‘민족주의’ 또는 ‘사회주의적’ 반격에 대한 두려움 없이, 그 정책의 열매를 수익성 높은 기업들이나 장악된 시장이 거둔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15-216).
 
민영화 과정은 사회 조직과 사회운동, 그리고 시민사회를 주변적인 역할로 격하시킨다. 대량 해고, 공장 폐쇄와 제조업자의 수입업자로의 변화는 고임금의 조직된 공장 노동자들을 감소시키고, 비공식 부문의 불안정 노동과 저임금 노동자들을 보다 많이 증가시킨다.
 
○ 민영화와 탈국유화
 
민영화는 사회복지를 후퇴시키고 소득을 재집중시키는 총체적인 과정의 일부였다. 민영화는 민간기업으로부터의 소득을 공공복지 프로그램을 통해 임금과 급여노동자에게 이전하는 대신에 납세자의 재원으로 유지되는 공공 소유 기업들을 민간기업으로 전환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18).
 
○ 민영화의 사회적 기반
 
서구 선진구과 개발도상국에서, 공적 소유는 대개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자유주의 수출모델에 맞선 민중투쟁의 결과에 기원을 둔다. 식수, 적절하고 저렴한 대중교통, 전략적인 전기ㆍ에너지 부문 등의 부재는 전염병을 예방하고 무역 및 제조업을 촉진하는 사회적 시설을 공급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에 대한 공적 요구로 이어졌다.
 
민영화는 역사적인 경향에 맞선 반개혁 운동이며, 복지국가, 혼합경제, 계급적 사회운동을 전복하려는 일반적 시도의 일부이다.
 
시장 합리성과 합리적인 선택에 관한 순수하게 경제적인 논쟁은 거시경제적 결정들이 공식화되고 실행되는 정치구조를 확인하는 역사적 또는 사회학적 설명력을 거의 갖지 못한다. 이와 같이 민영화의 이론적 근거는 동시대의 현실보다는 교리 해설에 보다 가깝게 관련되어 있다. 자유시장 이데올로그들은 공공부문이 발생했던 역사적인 경험과 정세를 잊어버린 채 공기업의 기원을 ‘이데올로기’의 탓으로 돌린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21).
 
○ 공기업: 실용주의와 이데올로기
 
라틴 아메리카에서 공기업의 성장은 산업화, 사회서비스에 대한 공적 수요의 증가, 전문기술 중간계급의 성장과 국내시장의 성장 등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공기업은 민간산업의 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였다. 민간부문은 새로운 생산계급의 싹트는 요구에 부응하는 충분한 규모로 자금을 조달ㆍ투자할(또는 비용 수준으로 생산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 일부 부르주아 계급을 포함한 민족주의 산업화 세력의 연합이 등장하여, 생산과 분배에 필수적인 저비용의 에너지와 교통망을 공급하기 위한 장기간ㆍ대규모 공공 투자를 지원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22-223).
 
○ 경제발전의 토대: 공공부문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공기업의 번영은 대체로 실용적 고려 때문이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24-226).
첫째, 국내 민간 기업가들은 막대한 양의 자본을 장기상환 조건으로 동원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기업은 성장에 필수적인 경제부문에서 등장했다. 민간 기업가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싶어 하지 않았거나, 결국 공공부문이 담당하게 된 많은 활동에 착수하기 위한 전문지식이 부족했다.
 
둘째, 일부 경우에 공기업은 대개 외국계 민간기업을 국유화한 결과로 생겨났다. 이것은 언제나 그들의 공장을 유지하거나 현대화하려는 투자자의 실패 또는 다른 지역이나 경제 부문에 투자 우선권 변화에 바탕을 두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핵심 서비스가 악화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외국 투자자들이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위협했는데, 이는 대량해고와 주요한 사회적 혼란을 의미하므로, 정부가 개입하여 그러한 기업을 공공부문으로 편입해야 했다.
 
그런 기업은 빈번히 부채, 못 쓰는 기계류와 높은 보상금을 남겨, 그 기업을 수익성 높고 효율적인 기업으로 전화시킬 국가의 능력을 심각하게 침식했다. 이를 ‘레몬 사회주의’라고 하는데, 민간부문이 부실기업을 고비용으로 국가에 떠넘기고, 수익성 높은 기업을 유지하는 경우다.
 
셋째, 공공설비부문(물, 가스, 교통)에서 민간 기업이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새로운 주민에게 서비스를 확대하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경우에, 국가가 개입하여 “수익이 나지 않는” 지역에 서비스를 확대하고, 잠재적 생산자에 저비용 서비스를 제공하여 잠재적 소비자를 위한 보건상태를 개선했다.
 
넷째, 공기업은 국가안보나 자연보존에 중요한 산업, 또는 광범한 발전 프로그램에 자금을 조달하거나 생산과 소비를 위한 수입품을 사들이기 위해 수출 소득을 제공하는 필수적인 산업에서 등장했다.
 
마지막으로, 공기업들은 1930년대 불황과 2차 세계대전 동안 국내적으로 수입될 수 없는 것들을 생산하기 위해 설립되었는데, 그 이유는 수출 또는 자유주의 경제모델의 붕괴 때문이었거나, 주요한 수출국들이 전쟁에 참전했고 생산을 군수산업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공기업은 이데올로기적 이유보다는 오히려 실용적인 이유로 등장했고, 때로 민간 활동을 대체했다. 공기업은 단순하게 이전의 자유시장, 수출 모델 아래서 경제를 다각화하고 경제회복을 촉진하며 쓰지 않았던 능력을 동원하는 보다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공기업은 고용을 제공하는 데 주도력을 발휘했고 발전 의제를 구체화하는 국가 정책결정권자들의 능력을 증대시켰다. 공적 소유와 국가 발전으로의 전환으로 각국 경제는 원료와 타국 영토에 근거를 둔 과거 수출기반의 자유주의 경제 시기에 경험했던 몇몇의 극심한 변동을 피할 수 있었다.
 
○ 공적 소유의 위기
 
공적 소유의 위기 원인의 ‘외적’ 요소는 공기업의 형식적인 조직 외부의 요인이고, ‘내적’ 요소는 조직의 구조 및 기능과 관련이 있었다.
 
외부적 조건이 공기업 위기의 본질적인 요소라 해도, 그것이 민영화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공공 부문 지지자들의 태도뿐만 아니라, 그 구조 및 기능과 관계있는 내부적인 요소도 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과잉고용은 많은 공기업에서 장기간 계속되는 문제였다. 많은 경우에 국가는 민간부문이 고용하지 않은 잉여노동을 흡수하면서 최종적 사용자가 되었다. 그 결과는 높은 관리비용, 부풀어진 임금대장과 불필요한 서류작업으로 나타났는데, 이 모든 것은 ‘비효율적인 국가부문’이라는 이미지의 원인이 되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31).
 
이러한 것과 관련된 것으로 정당들 사이에서 국가를 정치적 후견주의(clientelism)의 메커니즘으로써 이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덜 이데올로기적인 정당들은 국가공직의 제공을 통해 추종자와 선거전문가들을 끌어들이는 데 의존하였고, 그 결과 공공부문의 과부하, 낮은 생산성, 선거기구를 조직하는 데 이용할 수 있어서 정치적으로는 충성스럽지만 무능력한 직원들의 숫자의 증가를 가져왔다.
 
후견주의와 관련된 것으로, 공무원들을 정치화시켜 성과를 내는 능력 대신에 단기적인 정치적 충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결과 전술적인 이점들은 자주 전략적인 약점들을 초래했으며, 침체와 혁신의 부족은 공공부문 활동의 강화를 동반했다.
 
공공부문 기업들의 경직성은 부분적으로 노동조합들의 코포라티즘적 태도에서 기인했는데, 그러한 노조들은 공기업 노동자들 사이에서 비효율성을 옹호하고 어떤 경우에는 조장했던 민족주의 또는 사회주의 정당과 연결되어 있었다. 노동자계급인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를 증대시키거나 개선하려는 시도들은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보호한다는 사이비 노동자주의적 수사에 의해 무산되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31).
 
많은 경우에 공기업의 위계 구조(hierarchial structure)는 민간기업의 그것과 밀접하게 닮아있다. 그 결과 종업원과 관리자는 자주 위쪽으로 그리고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하여 혁신과 효율성을 촉진할 수 있는 외부적인 경쟁과 공적인 책임을 회피했다. 결국 공공부문 생산물과 서비스의 가격은 민간기업의 이익에 의해 조절되었고, 민간 보조금 및 공적 손실을 초래했다.
 
국가는 종종 손실을 부담하면서 비용 이하로 에너지를 공급했다. 공기업의 소득은 때때로 내부적으로 투자되지 않고 공적 기금으로 전환되었다. 그리하여 공공부문은 현대화에 실패했고 경쟁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내외부적인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 힘이 연동하여 공공부문의 위기를 초래하도록 작동했다. 이 위기에는 공공부문을 보다 많은 대중의 요구에 응하게 함으로써 공공부문을 혁신할 가능성과 공공부문을 해체하여 그 자원을 소수 민간부문에 넘길 가능성 모두 내재해 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32).
 
○ 민영화: 수단과 결과
 
중요한 것은 전체 민영화 과정이 권위주의적 배경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국가 수준에서 정치세력 변화의 결과였다는 점이다. 민영화는 결코 대중적 협의를 거치지 않았으며, 드물게 협의가 있었던 경우에 우루과이에서처럼 민영화론자들은 표를 잃었다.
 
민영화는 민간부문의 증명된 경제적 효율성에 근거하기보다는 오히려 경제적 진실을 확신하는 경제학자와 장군들의 독트린에서 나온 정책에 근거했다. 국제적 주체들이 민영화 과정의 계획과 진행, 자금 조달에 관여했다.
 
민영화는 공기업 건설의 대중적ㆍ민족적ㆍ실용적 과정과는 대조적으로, 고도로 정치화된 엘리트적ㆍ국제적 과정이었다. 민영화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진짜 의도를 숨기고 선출된 관리들 또는 비선출직 관료들에 의해 대규모로 실행되거나, 그들의 명령으로 집행되었다.
 
법령에 의한 민영화에 관여한 관리들은 종종 구체적인 대책을 고안하고 실행하고자 할 때면 비선출직 해외 은행가나 학문적 자문단과 의논했다. 그 결과 민영화의 전체 과정은 시민사회의 대표 조직들을 심하게 훼손했으며, 한편으론 대중들을 해산시키고, 다른 한편으론 엘리트들을 효과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여론을 주변화했다.
 
민영화 수사는 결정적으로 반국가주의였지만, 실제로 민영화 체제들은 단지 국가개입을 공공복지에 대한 자금지원에서 민간 엘리트들에 대한 자금지원으로 변화시켰다. 대규모 국가 개입은 지주와 은행가의 사적 부채를 ‘사회화’하도록 요구받았고, 수출업자에 대한 직간접적인 국가 보조금은 일반적 관행이 되었다.
 
노동자의 급여와 사회보험에 대한 국가 규제는 최상위층에서부터 부의 대대적 증가로 나타났다. 공기업 매각을 위해 국가가 정한 낮은 가격은 대기업 구매자로 하여금 뜻박의 이윤을 축적할 수 있게 했다.
 
○ 민영화의 영향
 
민영화는 계급구조를 심각하게 양극화했다. 민영화가 수반하는 서비스, 전기, 운송 등의 가격인상은 임금노동자와 봉급생활자들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린 반면, 공기업을 접수했던 민간 독점기업들의 이윤은 증가했다.
 
민영화에서 이득을 본 민간 독점기업들과 행정부 간의 강력한 결속의 결과, 대의제는 공적 자산을 민간 수중에 넘기는 과정에서 무시되었다. 중요한 결정은 다른 곳에서(해외은행 이사회에서) 내려진 반면, 의회는 기껏해야 이미 내려진 결정에 반응할 뿐이었다.
 
민영화의 마지막 결과는 민주주의의 약화와 필수 경제부문에 대한 입법부 감시의 상실이었다. 민간부문은 현재 어떤 공적 기관에도 대응하지 않고 책임지지도 않으며, 사적 이윤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36-237).
 
민영화가 국가경제의 발전에 미치는 기본적인 변화
- 민영화는 국민경제로부터 수익성 높은 축적의 원천을 빼앗는다. 특히 새로운 투자자가 해외로 그들 소득을 보낼 때 그러하다.
- 국가가 소득을 새로운 부문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즉 즉각적인 이윤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용과 투자에 새 장을 여는, 예를 들어 사회기반 시설과 교육, 지역적 다양화 등 긍정적인 영향을 가질 수 있는 전략적인 수단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 민영화의 함정
 
민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논거 중의 하나는 경쟁을 조장하고 보다 낮은 비용과 보다 높은 효율성을 촉진하기 위해 공적 ‘독점’을 끝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적 독점기업의 구매자는 민간 독점기업, 즉 등장하는 경제 제국을 강화하는 대규모 투자자였다. 민영화를 수반하는 탈규제로 말미암아 새로운 민간 독점기업들은 가격을 인상시켰고, 돈을 내지 못해 실제 수요의 충족에서 ‘비효율성’을 겪는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끊어버렸다. 대체로 민영화로 경쟁이 유발된 것이 아니라, 단지 소유권을 민간 수중에 재집중시켰을 뿐이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39).
 
공기업을 매각하는 가격은 대개 ‘정치적 가격’이지, 진정한 잠재적 시장가치가 아니다. 종종 정권과 연결된 투자자들, 대통령이나 행정부 고위직의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민영화에서 이익을 얻는다. 전례 없는 규모의 부패가 민영화 과정에서 발생했다. 공기업을 민간 소유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수억 달러가 정치가들의 손에 들어갔고, 선거체제를 타락시켰다.
 
공기업 매각 이전에, 국가는 조직적인 투자히피를 통해, 공공부문에 대한 대중적 불만을 자극하고 민영화에 대한 지지를 유도하기 위해 서비스 악화를 유도한다. 국가는 노동자들의 퇴직 비용을 떠맡고, 투입비용을 낮추고, 보조금까지 지급하여, 구매자에게는 낮은 노동 및 생산비용의 기업을 제공한다. 일단 민영화가 이뤄지면, 영업의 즉각적인 ‘호전’은 새로운 민간 소유자 때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민영화 엘리트들과 제휴하여 수행한 계획적인 국가정책의 조작된 결과이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40).
 
민영화된 산업들은 자국 생산자들을 구축하고, 노동력을 축소함으로써 실업 상황을 개선하기보다는 더욱 악화시킨다. 기술은 이전되고 사용료는 지불되지만, 새로운 기술의 연구개발을 위한 시설이 해당국으로 이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민영화에 대한 대안
 
① 공공 중심의 발전이 민간(국내외) 중심의 발전보다 우월하다. ② 공공부문 내의 사회적 소유가 국가소유보다 우월하다.
 
전략적 국가통제를 유지하고 사회적 형평성을 최대화하는 한편, 최상의 자본주의 성장을 보장하는 공공부문 발전과 관련된 방법(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44-245)

- 점진적 대체공식(Fade-out Formulas)
1930년대에서 1980년대 초까지 많은 나라달은 특정한 활동방향 속에서 (이윤을 보장하는 형태로) 외국기업들과 투자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은 시간적 한계가 있으며, 계약종료 시 공적 소유가 도입되어서 사적 소유를 대체할 것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외국 기업은 이윤을 얻고, 유치국은 경험과 궁극적 통제권을 갖게 된다.
 
- 턴키식 운영(Turnkey Operations)
1960년대 동안, 개발도상국들은 외국회사와 정해진 가격에 기업체를 건설하고 생산을 조직한 다음, 유치국에 ‘열쇠를 양도’하는 계약을 맺었다. 일부의 경우 진행 중인 생산에 대한 일정 비율의 로열티가 포함되었다.
 
소유권으로부터 기술적 노하우의 분리(Disaggregating Technical 'Know-how' from Ownership)
외국 자본이 전략적인 경제부문을 지배하도록 함으로써 외국 자본의 전지구적 전환과 우선 순위에 휘말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대신에, 일부 나라들은 기술진보를 확보하기 위해 기술적 노하우를 투자 및 소유권과 분리하여, 전자는 구매하거나 빌리면서 후자는 배제하였다. 그 결과 그 나라들은 기술진보를 그들 소유의 사회적ㆍ국가적 우선 순위로 편입하였다.
 
높은 수익률과 낮은 전문기술을 가진 경제 부문에서 합작투자를 형성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공적 통제는 계속 유지될 수 있다. 이윤은 공유하지만, 미래 성장과 투자순위가 국가적 목표에 통합될 것이라고 보증하면서 공적 통제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외국인의 참여를 배제하지는 않지만, 국가적 사업을 보완하고, 총체적인 국가계획 내에서 빈틈을 채운다.
 
공기업 내의 수직적 경영과 다른 경영 스타일이 공적 책임을 보장하는데 가장 중요하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사회적 통제는 관료적인 태만과 비효율성에 대한 본질적인 대책이다. 위기관리, 개인의 창의성, 생산물 개발 등의 민간 기술을 공기업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공기업은 과거보다 훨씬 더 기업가적이어야 한다. 공기업은 전반적 정책을 수립하는 협의과정을 그 실행에 대한 집행지도력과 결합시켜야 한다. 정책 결정은 위와 바깥쪽을 바라보기보다 안과 아래쪽을 지향하여, 운송과 통신의 패턴을 통해 지방을 연결하고 기본적인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이러한 것들을 수출 활동과 결합시켜야 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46).
 
□ 6장.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불편한 관계
 
○ 일부 학자들에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모순’이다(Shapiro, 1990; Meiksins Wood, 1995; Overloop, 1993). 민주주의의 ‘민주적 내용’이 시장관계 확대의 총체적 요소라기보다 민중운동과 계급투쟁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은 정치적 균형에 의해 유지되는 모순적 발전으로 간주된다. 그 균형 속에서 민주주의 세력은 끊임없이 자본주의 권력에 내재한 권위주의적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49).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세 가지 개념 각각은 사회체제의 상이한 영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본주의의 비판자들은 사회의 투쟁과 운동에 초점을 맞추고, 찬양자들은 시장의 천재성 또는 마술에 초점을 맞추며, 절차주의자들, 정치적 ‘현실주의’의 주창자들은 정치계급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제도화된 ‘게임의 규칙’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각각의 이론적 관점이 불완전하며, 따라서 다양한 역사적 표현을 갖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관계의 우연적이지 않더라도 구조적인 조건들을 설명할 수 있는 관점에 의해 보충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51).
 
○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참여를 지배하는 ‘게임의 규칙’과 절차가 있다는 생각은 자본주의적 소유관계와 이해의 압도적 중요성을 간과한다. 역사적 경험은 민주적 절차가 소유권에 대한 민중적 도전의 도우를 제공할 때, 자본가계급이 그 절차를 포기하는 수많은 사례를 제공한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선”이라는 주장은 주요한 권력경쟁자들 중의 하나가 이런 가치를 공유하는 것으로 가정하기 때문에 유용한 분석적 가설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계급적 이해 및 계급투쟁과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주의가 ‘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반대세력에 대한 자본가의 수용정도에 기반한 상대적 판단일 뿐이다. 민주주의와 민주적 절차는 자본주의의 헤게모니가 도전받지 않는 조건, 또는 노동자들이 자본가와 제국주의의 전복으로부터 자유로운 국가를 공고화할 수 있는 조건 아래서 가장 잘 작동할 수 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76).
 
선거과정은 사회적 행동에 의해 ‘수정’되고 확장되며 민주적 규칙, 절차 및 민주적 제도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거부를 가져오는 것은 바로 반헤게모니적 계급들의 정치적 참여의 확대와 심화이다.
 
현대 세계에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와 민주적 게임의 규칙이 외관상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부분적으로 자본주의적 소유에 대한 어떤 심각한 도전으로부터 좌파가 전략적으로 후퇴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이런 순응과정에 선행했던 역사적 경과, 탄압과 테러, 불법행위가 자본주의적 헤게모니에 대한 이런 순응을 고무하는 데 했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경과는 민주적 정치, 자본주의적 관계, 억압체제의 통치, 민주주의로의 복귀, 자본주의적 헤게모니의 수용 내에서 소유권에 대한 좌파의 도전과 관계가 있다.
 
이 경과에서 중요한 것은 중간적 요소, 즉 좌파의 정치적 가치와 지향을 변화시키는 데에서 자본주의적 폭력과 탄압의 역할이다. 좌파에 대한 징벌, 자본주의 아래서 민주주의가 한계를 갖는다는 강제적 개념은 이후에 그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 ‘내면화’된다. 전략적 취약성과 순응은 나중에 미덕, 즉 ‘그 자체로 선인 민주주의’ 개념으로 전화된다. 그러나 이 모호한 공식은 과거 좌파의 실체적 민주정치, 민주주의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도구적 개념, 좌파가 극복할 수 없고 또 자주 이해하지 못하는 폭력에 대한 좌파의 순응 등을 모호하게 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77-278).
 
→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 7장. 발전을 위한 협력
 
○ 저의: 관찰자의 시각에서
 
민영화와 모든 관계의 시장관계로의 전환은 자유시장론자들에 의해 가장 효과적이고 능력있는 기업이 ‘정당하게 보상받는 경쟁세계’를 창출할 기초로서 묘사된다. 현실의 자유시장 이미지는 민영화와 자유시장 작동의 제도적 맥락과 사회적 결과에 대한 완전한 왜곡이다. 민영화의 유일한 수혜자는 민간 대투자자이며, 그들은 공공서비스에 대해 과도한 요금을 부과하고, 고용을 축소하고, 전략적 경제결정에 대한 공적 책임을 제거한다.
 
소수의 정의는 다수의 불의이다. 이는 정의의 보편적 기준은 없고 협력과 발전을 정의하는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기준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계급적 정의만 있을 뿐이다. 각각의 개념은 적대적 계급들의 사회경제적 이해에 따라 구체적 개념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 문제는 삶의 질 지표의 지속가능성이며, 그것은 계급성과 정치체제의 민주적 책임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단지 삶의 질 지표를 보는 것은 발전의 궤도와 그 구조적 뿌리에 대한 거시적이고 장기적 이해보다는 발전의 간략한 일시적 ‘사진’을 제공할 뿐이다.
 
삶의 질 지표는 계급, 성, 인종에 따른 큰 편차 때문에 대상그룹을 보는 데에서 세밀화되어야 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292).
 
□ 8장. 제국주의에 봉사하는 비정부기구(NGO)
 
○ 임금ㆍ급여 노동자와 농민, 중소기업인에 대한 구조조정 정책의 지독한 영향은 잠재적인 전민족적ㆍ민중적 불만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이 지점에서 NGO들이 무대에 등장하여, 신비화를 통해 그런 불만을 기업ㆍ은행권력 구조와 이윤에 대한 직접적 공격에서 벗어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적 이윤착취에 대한 계급적 분석을 회피하는 지역적 마이크로 프로젝트, 탈정치적 ‘풀뿌리’ 자기착취와 ‘대중교육’으로 향하게 한다.
 
NGO는 전세계적으로 야망을 가진 고학력 계급의 최신 신분상승 수단이 되었다. 학자, 언론인, 전문가들은 NGO를 관리하는 유리한 경력을 위해 보상이 거의 없는 좌파운동에 대한 초기의 관심을 포기하고, 조직적ㆍ수사적 기술, 일정한 민중주의적 어휘를 NGO에 도입했다.
NGO 대표들은 저임금 농촌학교 교사들의 시위를 공격하는 경찰에게 머리를 얻어맞는 위험을 무릅쓰기보다는 ‘유능한 전문가’로서 현찰을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제안서를 쓰는 일에 보다 훨씬 능숙하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02-303).
 
NGO의 성장과 생활수준 하락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NGO의 번성이 구조적 실업이나 농민들의 대규모 탈농을 감소시키지도 못했으며, 점증하는 비공식 노동자군에 생계임금을 제공하지도 못했다. NGO가 이룩한 것은 기껏해야 자기 나라와 민중에게 영향을 미친 신자유주의적 경제의 황폐화로부터 도망쳐 기존의 사회계급 구조에서 신분상승을 꾀하는 현찰수입이 좋은 빈약한 전문가층을 제공하는 것뿐이다.
 
시민사회에 대해 말함으로써, NGO 사람들은 현대 ‘시민사회’를 양극화시키는 깊은 계급분열, 계급착취, 계급투쟁을 모호하게 한다. 분석적으로 쓸모없고 판단을 흐리게 함에도, ‘시민사회’라는 개념은 연구소를 후원하는 자본가들과 NGO의 협력을 촉진하고, 그들의 프로젝트와 추종자들이 신자유주의 경제를 지휘하는 대기업의 이해에 종속적 관계로 들어가도록 한다.
 
NGO 사람들의 ‘시민사회’ 수사는 사회서비스를 담당하는 포괄적인 공공프로그램과 국가기관들을 공격하기 위한 책략이다. NGO 사람들은 국가자원을 재배분하려는 대기업의 ‘반국가주의’ 수사에 편을 들어주며, 한쪽은 시민사회의 이름으로, 다른 쪽은 시장의 이름으로 그렇게 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04-305).
 
NGO 사람들이 스스로 묘사하는 혁신적 풀뿌리 지도자로서의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이들은 실제로 ‘이래로부터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민중운동을 무력화시켜 저항을 봉쇄함으로써 IMF의 작업을 보완하는 풀뿌리 반동들이다.
 
○ NGO의 기원, 구조, 이데올로기
 
NGO는 세 가지 상황 속에서 출현했다.
첫째로 NGO는 독재 시대에 불만으로 가득찬 지식인들의 안전한 피난처로서 출현하였다. 그들은 인권침해 문제를 제기하고 가혹한 긴축프로그램의 피해자들을 위한 ‘생존전략’을 조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인도주의적 NGO들은 대중을 궁핍화하는 ‘자유시장’ 정책의 등장에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억압적 지배자들이 대중적 민중운동의 심각한 도전에 부딪히기 시작하자마자, NGO 사람들은 지배계급과 제국주의 정책입안자들에 대한 정치적 대체물로 활용될 수 있는 ‘민주인사’로서 전략적 지위를 차지했다.
 
NGO들의 폭발적 증가는 제국주의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대중운동의 고양기에 이루어졌다. 급진적 사회ㆍ정치적 운동과 투쟁의 성장은 탈급진적 사이비 민중적 지식인들이 풍부한 자금을 가진 사적ㆍ공적 재단들에게 판매할 수지맞는 상품을 제공할 수 있었다.
재정 후원자들은 ‘도시 슬럼지대의 폭력현상과 같은 사회과학적 지식, 민중 공동체를 장악하여 그 에너지를 사회변혁 대신 자조운동 프로젝트로 전환시킬 NGO 사람들의 능력, 혁명적 활동가들을 불신하고 고립화시키는 ’새로운 정체성 담론‘으로 포장한 계급협조주의적 수사의 도입에 관심을 가졌다.
 
외부의 돈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NGO들은 번성했고, 지역 공동체를 자기 이익을 위해 싸우는 봉토로 분열시켰다.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야기한 빈번하고 심화되는 경제위기도 NGO들이 늘어나게 하였다. 지식인, 학자, 전문가들은 예산이 삭감되면서 직업이 사라지거나 월급이 삭감되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래서 제2의 직업이 필요하게 되었다. NGO는 하나의 구직기관이 되었고, 자문기구들은 잠재적으로 신분하강에 직면한 지식인에게 일종의 안전망이 되었다.
 
이들은 시민사회ㆍ자유시장ㆍ대안개발 논리를 뱉어내면서 신자유주의 체제 및 국제금융기구들과의 협력 정책을 기꺼이 수행하고자 하였다.
 
NGO들은 ‘민주주의 이행기’ 동안 처음에는 모호한 ‘진보적’ 색조를 취했다. NGO들은 구체제와 보수적 선거정치인들 간의 거래통로가 되었다. NGO들은 그들의 풀뿌리 수사, 조직자원, ‘민주적’ 인권옹호자로서의 지위를 이용하여, 민중의 지지를 사회경제적 변화가 아닌 법적ㆍ정치적 개혁에 국한시키는 정치인과 정당에게 연결시켰다.
 
1990년대에 ‘선거 거래’를 경험했던 모든 나라에서, NGO들은 사회경제적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보다 심화시킨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지지투표를 끌어 모으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반대급부로 전직 NGO 사람들이 마침내 정부기관의 운영자가 되거나 심지어 대중적 반향이 있는 직위(여권, 시민참여, 민중권력 등)와 같은 분야의 정부장관으로 기용되기도 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10).
 
○ NGo의 구조: 내부적 엘리트주의, 외부적 굴종
 
NGO 간부들은 스스로 임명한 자들이며, 이들의 핵심적 과제들 중 하나는 자금을 확보할 제안서를 구상하는 일이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11).
 
NGO들은 민주주의와 풀뿌리 수사를 함에도 위계적이다. 대표가 프로젝트, 고용과 해고를 완전히 통제하고, 누가 돈을 받고 국제회의에 참석할지 결정한다. ‘풀뿌리’는 본질적으로 이 위계제의 대상이며, 그들은 ‘그들의’ NGO가 긁어모으는 돈을 거의 보지도 못하고, 외국여행을 하지도 못하며, 그들의 ‘풀뿌리’ 지도자들의 급여와 부수입을 받아보지도 못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결정이 한 번도 투표로 결정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기껏해야 대표와 외국 자금 제공자가 이미 거래를 요리한 이후에야 비로소 NGO 직원들이 프로젝트를 승인해 달라고 가난한 사람들로 구성된 ‘풀뿌리 활동가’ 회의를 소집한다.
 
NGO들은 사회적 프로그램 및 공적 토론을 지역 민중과 선출한 원래 지도자들 손에서 빼앗아 선출되지 않은 외국 관리들과 그들이 임명한 자국 관리들에 대한 종속을 초래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훼손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12).
 
○ NGO 대 급진적 사회ㆍ정치운동
 
NGO는 운동이 아닌 프로젝트를 강조한다. 이들은 기본적인 생산수단과 부를 통제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부에서 민중들을 생산에 ‘동원’한다. 민중의 일상생활을 형성하는 구조적 조건이 아니라, 프로젝트의 기술적ㆍ재정적 지원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NGO들은 민중권력, 역능화, 성적 평등, 지속가능한 발전, 아래로부터의 지도력 형성 등 좌파의 언어를 흡수한다. 문제는 이러한 언어가 비대립적 정치를 추구하는 기부자 및 정부기관들과의 협력관계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NGO 활동의 지역성은 ‘역능화’가 제한된 자원을 가진 작은 사회생활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을 결코 뛰어넘지 못하고, 항상 신자유주의적 국가와 거시경제가 허용하는 조건 안에서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14).
 
NGO의 ‘원조’는 주민의 극소수에게 영향을 미치며, 부족한 자원을 두고 공동체들 간의 경쟁을 자극하고, 공동체 사이에 그리고 공동체 내에서 음흉한 분열을 조장하여 계급적 연대를 훼손한다.
 
‘탈정치적’ 태도를 취하고 자립을 강조하는 NGO들의 구조와 성격은 빈민을 탈정치화시키고 탈동원화한다. NGO들은 신자유주의적 정당과 대중매체가 조장하는 선거과정을 강화한다. 제국주의의 본질, 신자유주의의 계급적 기초, 수출업자와 임시직 노동자 간의 계급투쟁에 관한 정치적 교육은 회피한다.
 
그 대신에 NGO들은 ‘배제된 삶’, ‘권력없는 사람들’, ‘극빈상태’, ‘성적 또는 인종적 차별’에 대해 논하지만, 이런 조건들을 만들어 내는 사회체제를 다룬다고 하면서도 피상적 징후 이상으로는 결코 넘어가지 않는다. 순전히 ‘개인적인 자발적 행동’을 통해 빈민들을 신자유주의 경제에 통합시키는 NGO들은 연대와 사회적 행동의 겉모습이 국제적ㆍ일국적 권력구조에 대한 보수적 순응을 감추는 정치세계를 만들어 낸다.
 
대안을 정식화하는 문제는 또 다른 방식으로 방해받고 있다. 게릴라운동, 사회운동, 노동조합, 대중적 여성단체의 수많은 이전의 지도자들이 NGO에 흡수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회ㆍ정치적 운동은 물질적 혜택이 거의 없지만 커다란 존경심과 독립심,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정치ㆍ경제 체제에 도전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
 
NGO 이데올로기는 본질주의적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에 의존하며, 계급분석에 기초한 급진적 운동과 다소 부정직한 논쟁을 벌인다. 그들은 계급분석이 ‘환원주의적’이라는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하며, 맑스주의 내에서 인종 및 성적 평등의 문제에 대한 광범한 토론과 논쟁을 간과하며, 도한 정체성 자체가 계급적 차이로 명확하고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는 보다 중대한 비판을 회피한다.
 
성 내부의 계급적 차이가 주택, 생활수준, 건강, 교육기회를 결정하며 누가 잉여가치를 취하느냐를 결정한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NGO들은 정체성의 정치에 입각하여 활동하며, 이것이 새로운 포스트모던 정치의 기본적인 출발점이라고 주장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16-318).
 
정체성의 정치는 IMF의 사유화, 다국적 기업, 지주의 남성지배적 엘리트세계에 도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가정 내의 ‘가부장성’, 가정폭력, 이혼, 가족계획 등에 초점을 맞춘다.
 
○ 계급적 연대 대 NGO의 해외 기부자와의 연대
 
NGO 사람들은 국가의 ‘온정주의와 종속성’을 공격하면서 ‘자립’을 강조한다. NGO들은 신자유주의의 피해자들을 차지하려고 서로 경쟁하면서, 유럽과 미국의 NGO에게서 상당한 보조금을 받는다. 자립 이데올로기는 공무원들을 자원봉사자와 임시계약직 출세 지향적 전문가들로 대체할 것을 강조한다. NGO들의 기본철학은 부유한 계급의 국가적 자원에서 빈민의 자기착취로 관심을 돌림으로써, 신자유주의적 거시경제에 대한 협력과 종속으로 ‘연대’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맑스주의는 계급 내부의 계급적 연대와 국내외 착취자들에 대항하는 억압받는 집단(여성과 유색인종)의 연대를 강조한다. 주요한 강조점은 계급을 분열시키고 제한된 기간 동안 소수 집단을 진정시키는 기부행위에 주어지지 않는다. 맑스주의적 연대개념은 계급의 공통된 경제적 궁핍을 공유하고 집단적인 개선을 위하여 투쟁하는 동일한 계급 구성원들끼리의 공동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맑스주의자들은 연대를 문제만 제기하고 아무 것도 옹호하지 않는 외부의 논평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정치운동의 위험을 공유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NGO 사람들의 주된 목표는 ‘프로젝트’를 위한 해외자금을 ‘획득하는’ 것이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20-321).
 
○ 계급투쟁과 협력
 
지적으로, NGO들은 지식경찰(intellectual policeman)로서, 어떤 연구가 ‘수용 가능한’ 것인지 정의하고, 연구비를 배정하고, 계급분석과 계급투쟁 관점으로 투영되는 주제와 관점을 여과한다. 그리고 맑스주의자들은 회의에서 배제당하고 ‘이데올로그’로 낙인찍히는 반면, NGO 사람들은 자신을 ‘사회과학자’라고 치장한다.
 
지적 유행, 출판물, 학회, 연구자금에 대한 통제는 포스트 맑스주의자들에게 중요한 권력 기반을 제공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외부의 자금 후원자들과의 갈등을 피할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렸다.
 
○ NGO 이론을 위하여
 
구조적 관점에서, NGO들의 난립은 ‘낡은’ 소매상, 자유전문직, ‘새로운’ 공무원 집단 등과 구별되는 새로운 프티 부르주아지의 출현을 반영한다. 이 하청부문은 구체적 상품을 생산하지 않고 제국 기업들을 소기업을 운영하는 소상품 생산자들에게 연결시켜 주는 일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매판’ 부르주아지에 더 가깝다.
 
이 프티 부르주아지, 최소한 그 ‘중년층들’은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맑스주의자로서, 자신의 조직에 ‘민중적 수사’와, 어떤 경우에는 엘리트주의적 ‘전위’ 개념을 도입한다는 특징이 있다. 재산도 없고 국가기구에서 고정적인 지위도 없기 때문에, 이 새로운 계급은 자신을 재생산하기 위해 외부의 자금지원 기관들에 크게 의존한다. 그러나 민중적인 구성기반 때문에, 반맑스주의적ㆍ반국가주의적 호소를 민중주의 수사와 결합시켜야 했으며, 따라서 이 둘을 모두 망라하기에는 당연히 모호할 수밖에 없는 ‘제3의 길’이나 ‘시민사회’ 개념 같은 날조가 필요하였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27-328).
 
□ 9장. 미 제국과 마약 자본주의
 
○ 새로운 제국주의는 형태상 ‘신제국주의적’이지 않고, 책임성과 효율성이란 미국식 기준에 따라 라틴 아메리카 행정부 관료들을 평가하는 등 일상적인 명령체계를 통해 행사되는 직접적 집행통제이다.
 
새로운 제국주의는 더욱 강화된 라틴 아메리카 착취를 통해 전세계적 지위를 강화하려고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제국주의는 소요를 제어하는 두 가지 도구인 이데올로기와 조직적 네트워크를 수립했다. 이데올로기는 지식인들을 현혹시켜 ‘불가피한 미래의 물결’ 앞에 종속시키며,
 
□ 10장. 미국 헤게모니의 실제: 라틴 아메리카에서 우익의 전략
 
○ 일단 자유주의적 제도적ㆍ경제적 틀이 세워지고, 축적과 집중의 과정이 일어나면, 우익은 ‘통치가능성’ 문제에 대해 논쟁한다. 이 논의는 정당화의 형태, 지배계급 내 이해갈등의 해결규칙, 민중소요를 억지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57).
 
협상에 의한 이행은 신자유주의적 사회경제 질서의 공고화를 보장했다. 중도좌파는 주변적 선거야당으로 통합된 한편, 우익은 정치권력의 경쟁적 기구들에서 지배력을 유지했다. 정치경제 질서의 상층을 통제하면서, 우익은 다시 한번 선거제도 내에서 권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우익은 계급전쟁을 벌여, 주요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더 많은 권력과 경제자원을 주요계급 지지자들의 손에 집중시킴으로써 부르주아 계급을 강화한다. 우익은 매스미디어 제국의 통합을 촉진하고, 그리하여 우익자본가들의 손에 이데올로기적 통제력을 집중시킨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경제적’ 전략이라기보다 정치계급적 전략이다. 경제정책과 정치적 법령은 좌파의 사회적 토대를 분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법률적 조치들이 물리적 탄압을 강제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58-359).
 
○ NGO들은 고용, 공중보건, 교육과 같은 광범한 구조적 변화를 위해 투쟁하는 사회정치적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자립’과 소자영업을 추구할 ‘프로젝트’를 조직하는 중간계급 전문가들로 구성되며 정부의 지원을 받는 민간단체이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61)

○ 워싱턴 컨센서스에 체현된 ‘새로운 민주주의’는 민중협의, 농업개혁, 소득재분배 및 광범한 공적 사회서비스를 배제했다. 선거운동에 자금을 지원하고 보수적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지역사회 단체들을 훈련시킴으로써, 워싱턴은 신자유주의적 ‘자립’과 ‘개인주의’ 이데올로기로 라틴 아메리카 사회의 상이한 계층에 침투하였다.
 
‘민주적 야당’을 분열시킨 워싱턴은 우익 선거정당을 통해 자신의 경제군사적 정책을 관철시키고 좌파의 분열에 착수했다. 회의와 해외세미나를 통해 워싱턴은 좌파의 이른바 ‘온건파’를 지지했다. 비투쟁적 노동조합 관료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자유시장 경제학에 대한 세미나와 회의를 통해 지식인과 중도좌파 정치인을 훈련시킴으로써 워싱턴은 좌파를 분열시켰다. 중도좌파는 반제국주의 강령을 폐기하고 세계화 담론을 수용했다.
 
워싱턴의 개입형태 변화, 군사전략에서 선거전략으로의 이동으로 엘리트 권력구조, 부의 집중, 권위주의적 지배방법을 끊임없이 지지했음을 주목해야 하며, 파나마, 그레나다, 그리고 이른바 반마약 투쟁에서 지속적으로 휘두른 폭력에 주목해야 한다.
워싱턴의 우익전략은 전술적 유연성과 전략적 경직성을 반영한다.
 
보비오(1990)의 주장과는 달리, 우익은 계급적 이해에 부합하는 자신만의 ‘게임의 규칙’을 발명한다. 우익의 지배는 민주적 담론이 아니라 국가권력에 기초한다. 야당인 경우 우익은 민중의 불만을 이용하고 사회단체들이 좌파정부에 대한 계급투쟁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일단 권력을 잡으면, 민중집단을 주변화하고 법령으로 통치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67).
 
미국의 우익은 공공소유를 민영화하고, 사회적 지출을 낮추고, 세금을 인하하고, 노동법을 약화하는 법률을 정식화하기 위해 집권한 라틴 좌파를 이용한다. 야당일 때 우익은 보이코트, 공장폐쇄, 준군사작전, 자본이탈을 통해 계급투쟁에 참여하여 농민이나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입법화하는 민주정권을 파괴한다.
 
○ 우익 전략에 대한 고찰
 
오늘날의 자유주의 우익은 무력에 기초한 파워블록에서 ‘행정부 중심’의 권위주의적 선거체제로 이행했다.
 
‘신우익’의 ‘자연스런 동맹자’는 해외은행, 초국적 기업, 세계은행, IMF이다. 그들의 힘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 20세기에 유례가 없는 정도로 중도좌파의 정치적 지도부에 영향을 미칠 능력이다. 우익은 직접적으로 권력으로부터 지배할 뿐만 아니라, 민영화, 통합, 구조조정의 개념들이 브라질의 PT, 우루과이의 확대전선(FA),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PSLN), 멕시코의 민주혁명당(PRD), 쿠바공산당 등의 부문들에 의해서도 실행되고 연계되어 있다.
 
오늘날 신우익은 ‘생산’ 부문과 ‘금융’ 부문 모두에서 미국과 거의 갈등이 없다. 그들은 자유주의 의제를 공유하고, 마약과의 전쟁 아래 진행되는 미국의 군사침투를 용인하고, 기초에너지, 공익사업 및 기타 공기업을 미국계 초국적 기업에 파는 데 깊숙이 개입한다.
 
지역 ‘통합’의 제안은 본질적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억만장자 투자가와 수출업자들을 미국쪽 파트너들과의 정치경제적 연계를 심화하는 메커니즘이다. 우익의 과거 반제국주의는 통합에 길을 내주었다. 우익적 통합의 가장 중대한 이데올로기적 표현은 세계화의 수사이며, 이는 제국주의에 대한 종속의 암호일 뿐이다.
 
현 시기 우익지배의 역설은 경제적 착취와 빈곤이 심화되는 반면, 우익은 계속 ‘민주적 규칙’에 따라 행동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만약 민중운동이 착취조건에 심각하게 도전한다면, 역사는 우익이 자유시장과 선거로부터 자유시장과 기관총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가르쳐준다.
 
경제부문에서 자본의 운동, 제조업에서 금융으로, 상업으로의 이동은 자본 간의 분열이 훨씬 더 취약하고 노동에 대항한 목적의 통일성이 더욱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좌우분열은 본질적으로 계급적 분열이며, 수직적 민중주의 동맹은 과거의 것이 되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71-372).
 
□ 11장. 제국주의 시대의 사회주의
 
○ 개인적으로 그려지는 유토피아는 대개 민중투쟁으로부터 유리된 지식인들에 의해 날조되며, 그들의 사고는 그들의 일상생할만큼 민중계급의 경험과 필요로부터 유리되어 있다. 사회주의 변혁의 역사적 가능성에 대한 토론에 착수하기 이전에, 사회주의 대안의 적과 회의론자에 의해 제기된 가장 도전적인 문제에 구체적으로 답하는 것이 유용하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76).
 
○ 사회주의의 객관적 조건
 
제국주의는 두 가지 뚜렷하지만 대립되는 과정을 작동시킨다. ①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방식으로서 생산자들 사이에서 높은 정도의 사회적 협력과 ② 생산되는 부의 사적 수용과 집중, 이런 모순, 생산을 위한 협력과 집단적으로 생산된 상품의 사적 수용(appropriation)간의 점증하는 양극성은 사회주의적 변혁과정에 기본적이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80).
 
집단적 소유를 위한 투쟁에서 확고한 출발점을 제공하지만, 현대적 부의 사회적 성격과 착취관계를 폭로하는 것, 따라서 현대적 형태의 계급의식을 고무하는 것 자체만으로 사회주의로 인도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물결의 제국 확장과 시장관계의 전세계적 확대가 사회주의적 변혁을 배제했다는 주장은 거꾸로 된 것이다. 더 많은 나라에서 더 많은 노동자들을 사회적 분업으로 통합하는 바로 그 과정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집단적 행동의 객관적 토대, 즉 사회적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노동자들에게 작업장과 생산현장을 통제하고, 지역사회가 자신을 통제하고, 민중이 국가를 통제하는 체제를 위한 객관적 토대를 창출할 것이다.
 
사회주의 건설의 두 번째 객관적 조건은 정치적 의사결정의 증가하는 집중성이다. 오늘날,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선출되지 않은 소집단의 관료들이 지구상의 막대한 숫자의 민중들에 대해 더 커다란 발언권과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중앙은행, 유럽-북미 제국의 경제 및 재정부서의 관료들, IMF, 세계은행, 아시아은행, 미주개발은행 및 기타 국제금융기구들의 관료들이 수십억 민중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리고 조치를 취하고 있다.
 
선출되지 않은 이 엘리트 경제적 결정권자들은 다국적 기업, 억만장자 은행가들, 새로 등장하는 국제 자본가계급을 대변하고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책임진다. 일정한 정도로 이 의사결정 엘리트들은 정치권력이 비헤게모니 국가들의 선출된 관료들에 의해 강고하게 유지되는 것을 막아왔다.
 
자유민주주의의 제도적 덫이 모든 곳에 놓여져 있지만, 유권자 대중은 사실상 결정권이 없다. 전략적 결정은 집중화된 본부에서 법령으로 통치하는 비선출직 관료들에 의해, 민중적 대표성, 심의 또는 논의도 없이 결정된다. 따라서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집중화된 엘리트들의 지배에 종속되는 반면, 자신의 삶의 경제적 사회적 조건들에 대해 통제력을 더욱 더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선거정치와 엘리트 지배 간의 괴리, 확대되는 엘리트들의 이익과 다수의 악화되는 경제사회적 조건 간의 괴리는 민중투쟁의 객관적 기초를 이루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공존한다는 주장에 도전하는 혁명적 세력들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한다. 의사결정과 권력의 집중은 진정한 민주주의는 사회주의 하에서만 성취 또는 재발견될 수 있다는 주장에 객관적 기초를 제공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82-383).
 
○ 민중혁명의 주체적 조건
 
비판적 사상가를 포함한 많은 지식인들이 비관적 세계관을 택하고 있으며, 제국의 권력과 그 옹호자들의 힘을 과대평가하면서도, 좌파가 패배의 깊이를 충분히 간파하여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즉 사회제국주의자로 전향한 사회민주주의 세력인 ‘신우익’과 교제할 수 있는 체제 내부의 현실주의적 틈새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좌파를 폄하한다.
 
세계관을 결여한 이들 부류의 지식인들은 지배적 패러다임을 이용하고, 단지 추상적 비판의 척도를 제공하며, 이 패러다임의 지배력을 추적하며, 그 과도함을 폭로하고, 권력에 대한 ‘현실주의적’ 비굴한 태도로 도움이 안되는 진통제를 제시하면서도 지배적 패러다임의 미래에 자신을 투영시킨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95).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모을 수 있고, 광범한 대중에게 대안적 패러다임과 정책의 비용과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정보기술은 민주적 정책결정의 대체물이 아니라, 민중이 엄청난 자료를 통해 자신의 필요를 확인하고, 적합한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도구이다. 정보기술과 관련된 민주주의의 핵심적 전제조건은 적절히 구성된 새로운 국가이다. 국가는 민중참여, 논쟁과 신제국주의 경제로부터 사회주의 경제로 이행할 프로그램 정식화의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혁명이 민중에 의한 것이고 민중을 위한 것이지, 출세지향적 지식인들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핑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경제전략의 수립은 혁명의 1차적 수혜자를 체제의 사회적 토대로 만드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런 노선에 따라 두 번째 전략적 변화는 생산과 분배, 대출과 시장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여, 고용과 소득, 대중적 토대의 생산을 자극해야 한다. 이는 새로운 경제를 지향하고 정치적 지지를 공고화하는데 필수적이다.
 
국가는 세금과 지출에 연관된 예산의 우선순위 재조정에 핵심적이다. 제국 기업의 수출보조금을 중단하고 보편적 의료, 공공주거, 교육과 연금 등 사회적 지출을 인상시켜야 한다. 재정위기를 피하기 위해, 세금은 소득과 이윤, 재산에 따라 누진적이어야 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398-399).
 
○ 사회주의적 이행을 향하여
 
사회주의적 변혁과 관련해서 두 가지 기본적 오류가 존재한다. 하나는 ‘자립’과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의 개념과 관련된 ‘탈구’(delinking)의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 사회주의’라는 것으로, 시장에 의해 추동되는 힘들이 사회주의의 물질적 기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관념이다.
 
첫째, 전세계적 생산으로부터 탈구된 사회주의적 생산력의 발전은 고비용, 비효율, 그리고 궁극적으로 연장된 가혹한 ‘축적’으로 귀결된다. 대부분의 경우, 탈구는 소비와 생산에 필수적인 생산물을 포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오로지 엄혹한 전시상황이나 보이코트 시기, 계엄상태기 아래서만, ‘자립’과 희생을 호소함으로써, 가혹한 외부환경에도 혁명적 민중은 생산하고 살아남는다는 사고를 고무해 필요를 미덕으로 삼는 것이 유의미하다. 그러나 특수한 상황을 발전모델로 전환시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오류일 것이다.
 
두 번째 잘못된 접근은 공산당이 지도하는 시장의 힘, 사적 소유, 자유무역, 해외투자 등이 사회주의 건설을 향한 추진력이 될 수 있다는 덩샤오핑식 사고이다. 시장의 힘의 부상은 중국의 노동력을 전지구적인 값싼 노동예비군으로 바꿔놓았다. 이는 또한 당 간부와 지도자들을 사적 이득을 위해 국가를 약탈하고 환경을 파괴하며 생태적 재앙을 낳는 사업가들로 전환시켰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402-403).
 
사회주의 건설문제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먼저, 노동자계급은 오랫동안 거대한 ‘세계지식’ 체계를 만들어왔다. 혁명체제는 이러한 지식이 만들어진 값비싼 희생과 잔인한 억압의 초기 발전단계를 회피하기 위해 이 세계지식과 연결해야 한다.
 
둘째, 경제적 교환, 즉 국내외적 ‘시장 관계’는 지역 및 생산단위에서의 직접적 민중 대의제에 기반한 민주적 체제에 종속될 때만이 진보적 기능을 가질 수 있다. 총회 민주주의는 관료적 왜곡에 대한 강력한 억제력일 뿐만 아니라 시장교환의 내용과 방향에 대한 본질적 통제기제로서 기능한다.
사회주의적 전략은 국내 경제부문들 간의 본질적 연계의 창출 또는 재건에 초점을 맞춘다. 사회주의 경제는 제국 지배 수출경제의 특징인 ‘바퀴살’ 모델이기보다는 ‘격자’ 모델과 유사하다.
 
세계화의 폭정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소유와 통제에 대한 거부와 역동적인 성장을 만들어내는 지식 및 생산물의 축적에 대한 선별적 취득이 필요하다. 따라서 세계화(제국주의)의 기생적ㆍ착취적 구조를 창조적ㆍ생산적 요소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거부와 취득의 과정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를 제기한다. 국내의 사회주의적 관계와 대외적인 자본주의 시장참여 사이에 있는 고유한 모순을 다루는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과정에 대한 민주적 통제뿐만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는 연대ㆍ협동ㆍ평등의 가치로 노동대중을 이데올로기적ㆍ문화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교육과정은 이 접합된 가치들이 지도부와 간부들의 행동과 실천을 반영할 때에만 신뢰성을 가질 수 있다. 구 소련 사회주의의 유감스러운 특징은 지도부가 표명한 사고와 그들의 실천의 괴리였으며, 이는 환멸, 냉소, 불신, 세계화 선전에 대한 치명적인 유혹으로 귀결되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403-405).
 
○ 사회주의 건설에서 국가의 역할
 
사회주의적 변혁의 필수적 전제는 국가구조에서 근본적인 정치적 변화이다.
 
국가가 약화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가와 복지국가를 잘못 동일시하는 것이며, ‘전지구적 압력’에 직면한 자신의 무기력함을 비탄하는 세계화 이데올로그들의 변명조 선언을 그들이 국가기구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현실과 혼동하는 것이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408).
 
사회주의적 구조조정 프로그램과 신자유주의적 그것 간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효율, 경쟁력,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열쇠로서 ‘사회화’가 민영화를 대신할 것이다. 사회화는 지역 상호간 교환을 진전시키기 위한 운송과 통신 네트워크들의 확대를 포함할 것이며, 따라서 지방기업, 시장, 생산단위와 기구들을 다시 활성화할 것이다. 이것은 ‘비용-편익’ 분석이 특정 기업의 협소한 대차대조표가 아니라 지역적 또는 일국적 척도에 기반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한 예로, 농촌지역의 열차운행은 이 철도에는 ‘손실’로 귀결될 수 있지만, 지역경제의 생산과 소비를 증대시킬 것이다. 보다 큰 단위에 근거해서 계산된 최종 결과는 비용 효율을 측정하는 데에 보다 명료하고 보다 정확한 (사회주의적) 규준을 제공한다. 마찬가지로, 실업자를 고용하고 산출을 증대시키는 공공투자는 인적 자본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한 또 하나의 척도이다.
 
경쟁력의 측면에서 결정적인 것은 경제란 민중의 생활에 관한 것이라는 인식이며, 이는 일차적이고 기본적인 사항이다. 기본 식료품을 생산하는 사회화된 기업들은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이를 무시하는 수출 모델의 기업들보다 훨씬 경쟁력이 있다. 기본적 식량수요를 충족시키는 데에서 사회화된 생산은 ‘민중의 시장수요’에 보다 민감하며 그것을 충족시킬 능력과 의지가 앞선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411-412).
 
경제기업들의 사회화는 필요하지만, 경쟁력 있는 사회주의 경제를 창출하는 데 충분하지는 않다. 필요한 것은 산업 재전환과 ‘형평성’을 갖춘 ‘생산변혁’의 계획이다.
 
생산 또는 수익과 비용의 분배에 연관된 결과는 민중의 참여에 기초해야 하며, 비인격적인 기업 관료들이나 기득권의 의사결정권이 되어서는 안된다.
 
신자유주의적 수출모델을 거부함에 있어, 민중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혁신을 봉쇄하고 엄청난 비효율을 낳았던 중앙집권적 관료국가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의 현대화는 국가행정기능의 탈중심화, 그리고 우선순위에 대해 권리를 갖는 시민사회 내 지역 수혜자들에 대한 재분배를 의미한다.
 
정치적 피임명인들의 쓸모없는 관료적 기능에서 생산적 작업으로 재배치를 의미한다.
사회주의는 농촌학교를 의미하며, 학교를 전민중적으로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주의는 생산과 소비의 균형, 노동자 권리와 생산성 향상 및 작업장 규율 준수 의무의 균형을 의미한다. 사회주의는 또한 노동계급, 소비자, 여성, 그리고 소수인종들의 생산과 소비의 결정에 포함되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와 시민은 또 다른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나 값싸고 불필요한 소비재의 과잉풍요를 피하기 위해 국가와 경제기구들을 지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412-414).
 
직접 생산자들의 핵심적 역할에는 책임이 따르며, 이는 이행기에 일부 노동자가 생산과 양질의 상품에 해를 끼치는 ‘습관과 관행’을 여전히 가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포함된다.
 
종신고용의 보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노동의 양과 질에 대한 정기적이고 면밀한 평가가 규범이 되어야 한다. 상습적인 위반자는 해고되어야 하고, 권한을 남용하는 관료는 책임을 추궁받아야 하며, 공공시설 관리자와 노동자들은 납득할 수 없는 지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지방적, 탈중심화된 조직은 친구, 이웃, 시민들로 하여금 전기를 공급하고 전화선을 수리하는 등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끔 한다. 결근하는 교사들은 ‘결근일수를 제한 임금’을 받아야 하며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누렇게 변색된 강의노트를 가지고 낡아빠진 강의를 반복하는 교수들은 평가받아야 하며 강의를 개선하든지 해고당할지 선택해야 한다.
 
새로운 사회주의는 현장과 지역사회에 대한 노동자들과 민중의 통제,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조건과 결정에 대한 통제에 기초해야 한다.
 
새로운 사회주의는 이행기 모순의 복잡성을 인정하며, 무엇보다도 세계화에서 새로운 사회주의로 가는 이행기의 핵심적 요소로서 성적, 인종적, 민족적 관계를 민주화할 필요성을 인정한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414-415).
 
○ 이행의 공고화: 포스트 제국주의 체제의 정치학
 
새로운 사회주의 체제는 소유형태에 광범한 폭을 부여하겠지만 은행, 해외무역, 통신, 천연자원, 수송, 기반시설, 보건의료 등과 같은 일정한 전략적 부문은 공적으로 소유되어야 하고, 민중적 감시 아래 두어야 한다. 공공부문은 기업경영과 민중책임을 결합해야 한다.
 
○ 대안은 과거와 현재의 경험, 그리고 ‘새로운 경제모델’의 실패와 위기에서 생기는 기회로부터 나온다. 사회주의적 대안의 건설은 힘들고 오랜 투쟁을 필요로 하며, 사회의 가장 다양한 그룹들의 조정된 집단적 행동, 반대ㆍ저항세력들의 동원을 필요로 한다.
 
전지구적 제국들의 토대로서 사회적 관계와 국가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는 세계화 사유의 감옥에서 탈출하고, 정치적ㆍ사회적 행동의 영역에 들어설 수 있다. 우리는 세계화 이데올로그들의 정책을 전도시킴으로써 사회적 동원과 국가 권력이 신자유주의 모델의 충격요법, 산업의 재전환, 구조조정에 새로운 계급적 내용을 제공하는 대안적 전략의 형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페트라스ㆍ벨트마이어, 2008: 42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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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1 13:00 2008/05/1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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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축제되어가는 대학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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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식사하고 연구실로 오는 길에 지나가는 학부생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소녀시대가 연세대 축제에 오니 거기에 가봐야겠다고 하더라. 축제가 자신들이 즐길 수 있는 대학문화의 장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TV쇼를 재탕하는 것에 만족해하고 그런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개념 없는 짓을 하는 대학은 대부분 비운동권이 총학생회를 장악한 곳이다. 서울대 또한 이와 유사한 짓을 할 텐데 싶었는데, 역시나 15일에 원더걸스가 온단다. 피같은 학생회비가 그런 식으로 사용되는 게 과연 타당한지 모르겠다.
 
하긴 '서인영의 카이스트'에서도 카이스트 축제 전야제에 서인영이 소속된 기획사의 VOS, 피팝현준, 주얼리 등이 참여하는 것이 나왔다. 물론 여기에서는 서인영이 다닌다고 무료로 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전체 비용은 2시간 정도 콘서트를 하는데 거의 5,000여만원이 드는 것으로 견적이 나온다. 카이스트야 무료니까, 그리고 서인영이 청강이지만 학교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으니 그렇다 치고, 다른 학교들이 축제에 연예인을 불러서 학생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봤을지 의문이다. 아무 생각이 없었으니 그랬겠지만... 여기에서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의 경기를 구경하면서 몰락해가는 로마제국 말기의 부패한 꼬락서니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던 것을 떠올린다면 잘못된 비유일까.
 
지금의 대학축제가 과거의 대동제와 같은 것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식으로 축제에 연예인을 부르는 것에 학생회예산을 쓸거라면 앞으로는 교내 상업화나 등록금 인상에 대한 문제제기도 하지 마라. 이번 주 대학신문에 교내 상업화에 대한 기획기사가 나왔던데, 축제에서의 이런 문제는 왜 제기하지 않았는지 몰라. 이런 기사가 조선일보에 나오는 것도 신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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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축제는 '연예인 축제'? (조선일보, 2008.05.07 00:26)
소녀시대·원더걸스 등 섭외 경쟁…, 출연료 최소 수백만원
"상당수 학생들이 희망"… 일부선 "주객이 전도"
축제비용 절반이상이 출연료… 별도 지원 받기도

 
원더걸스는 8일 성균관대, 15일에는 연세대(신촌)와 서울대 두 곳, 21일 단국대, 22일 연세대(원주)에서 무대에 오른다. 소녀시대는 9일 성균관대, 15일 연세대(신촌), 23일 서울대 의대에서 무대에 선다.

주요 대학 학생회에 따르면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를 축제에 초청하는 비용은 1000만~2000만원 선. 이 돈을 받고 노래 3~4곡을 부른다고 한다. 그래도 총학생회마다 이들을 섭외하지 못해 애태운다. 5월 대학축제 시즌을 앞두고, 주요 대학 총학생회마다 연예인 섭외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연예인 4~5개 팀을 초청하며 5000만원이 넘는 돈을 쓰는 곳도 있다. 총학생회는 "축제의 흥행과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대학생들이 스스로 축제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연예인의 공연을 보는 '구경꾼'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어설프더라도 아마추어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학생 문화의 특징인데, 지나치게 프로 연예인에게 의존하는 축제로 흐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대학생 스스로의 삶과 고민 등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축제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도 "대학생들의 축제라면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창의적인 정신, 자발적인 참여, 이런 것들을 아우르는 대학문화를 담아야 한다"며 "기성품처럼 이미 만들어진 연예인의 공연에 중점을 두는 것은 알맹이를 외부에서 가져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축제를 주최하는 학생회 입장은 다르다. 한 사립대 학생회 관계자는 "학생회 입장에서는 연예인과 함께 축제를 즐기고 싶다는 학생들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기 연예인의 출연이 확정된 서울대·연세대 등의 경우, 인터넷 게시판의 축제 관련 게시글이 조회수 1000건을 넘어서는 등 축제 시작 전부터 학생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축제 때 연예인을 초청하지 않고 있는 이화여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등록금 인상이나 교내 상업화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축제에 비싼 연예인을 부르는 것은 모순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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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1 01:43 2008/05/11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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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노조의 미국산 쇠고기 입항저지 및 수송거부 검토를 환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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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 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노조 상근활동가들이 받고 있는 성평등 교육의 형식성에 대한 씹기에 심하게 공감을 한 후에 아래 보니 운수노조 홈페이지가 난리났다고 해서 뭔가하고 살펴봤다.
 
혹시나 또 무슨 골치아픈 논쟁이나 벌어진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근데 나와 있는 내용은 미국산 쇠고기 입항을 저지하고 수송을 거부하겠다는 운수노조의 성명서.
이게 왜 난리일까. 그리 특이한 사항도 없는데... 예전에 운수노조가 이와 비슷한 성명을 냈던 적도 있고... 그런데 여기에 딸린 댓글이 엄청나다. 그리고 조회수도 장난이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와 관련된 최근의 일련의 움직임은 지나친 느낌이 있다. 물론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되어서는 안되지만, 이것이 유행처럼, 자극성 사례나 구호를 통해 동원되는 것은 위험하다. 한홍구 교수가 과거에는 불의에 항거에서 일어났다면, 이제는 자신에 대한 불이익을 못참아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는데, 모로 가든지 서울로만 가면 되는 것일까. 
 
2MB의 행태에 대한 전반적인 불만 속에 공기업 사유화 문제, 재벌영리보험(민영의료보험보다 그 본질을 더 명확하게 말해주는 단어가 나은 듯 싶어) 및 의료선진화의 문제, 한미FTA의 문제, 한반도 대운하의 문제 등이 함께 논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과정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더 심도있는 얘기는 나오고 있지 않은 것이 아쉽다. 누구 말대로 도축과정에서 벌어지는 동물학대, 환경파괴의 문제, 육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등이 함께 다뤄져야 하지 않을까. 이기적이고 자극적인 동원은 한계가 있다. 사실 이런 측면에서 진보진영이 목적의식을 갖고 지금의 분위기가 더 급진적이고 근본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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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노조는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다
- 미국산 쇠고기 입항저지 및 수송거부 검토

 
1.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운수노조 위원장 김종인)은 5월 2일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해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후 광우병 위험이 의심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
 
2. 운수노조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전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굴욕외교라고 규정하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투쟁에 적극 나서는 것은 물론 쇠고기 선적 선박의 입항저지 및 수송거부 투쟁 등을 전 조합원의 의견을 물어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3. 운수노조는 이날 철도, 화물, 버스, 택시, 공항항만운송, 항공 등 6개 업종본부장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가 미칠 파장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하고 교통물류 수송을 책임지고 있는 운수노동자들이 쇠고기수입 저지투쟁에 앞장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4. 이에 따라 촛불집회 등 한미FTA저지 국민운동본부 등 광우병 의심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주요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은 물론 6월 중 군산항으로 입항할 것으로 알려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선박의 입항저지와 하역거부, 나아가 철도 및 화물차로 수송될 미국산 쇠고기 적재 냉동컨테이너 수송을 전면 거부하는 등 실제 행동도 검토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2008년 5월 2일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미친 소 걱정' 국민을 울게 만든 운수노조 (프레시안, 여정민/기자, 2008-05-07 오후 2:29:07)
'미친 소 운송 거부'에 누리꾼 지지글 폭주…"감사·눈물·화이팅"  
 
  "진짜 한 분 한 분 뵙고 악수라도 하고 싶네요." (아이디 김예진)
  "소름이 돋았습니다. 너무 멋있으세요. 힘내세요. 저희가 응원할께요." (아이디 박초롱)
  "아, 회사인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네요." (아이디 냥이)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개방이 '진기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들어 여론의 뭇매만을 맞아 오던 노동조합을 향해 "감사하다"는 국민의 지지와 응원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즐거운 비명'의 주인공은 바로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운수노조, 위원장 김종인).
  
  운수노조 집행부가 '미국산 쇠고기 운송 거부'를 결정하고 조합원 의사를 묻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인 가운데 벌써부터 누리꾼들이 폭발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틀 사이 지지글 4000여 개 넘어
  
  운수노조의 계획이 알려진 지난 6일에는 운수노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과 노조 성명서에 3000개의 글과 댓글이 달렸고, 7일 오후 2시 현재까지 이미 2000여 개의 글이 올라왔다. 6일에는 방문자가 몰리면서 몇 차례나 홈페이지가 다운되기도 했다.
  
  이틀 사이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외부인'의 지지 글은 모두 4000여 개로 지난 2005년 6월 홈페이지가 만들어진 뒤 2년 가까이 올라온 글 1300여 개의 3배가 넘는다. 이는 한 포털사이트에 '운수노조 응원 서명 게시판'이 만들어지고 노조 홈페이지를 링크시켜 놓은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누리꾼들의 지지 글은 일단 "국민의 건강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줘 감사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두 아이의 엄마로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매일 가슴 저리며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소식에 한 줄기 희망이 보이는 듯합니다. 어려운 용기를 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아이디 조미정)
  "감사합니다.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정말 큰 결심을 하셨습니다. 어떤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고 힘내셔서 계획하신 일이 아무도 다치지 않고 어려움(?) 없이 이루어지길 멀리서나마 바라고 또 바라겠습니다." 아이디 (이미경)
  "진짜 요새 학교 공부도 안 되고 우울하고 공부해봤자 죽을 거라는 생각에 공부도 손에 안 잡혔는데, 당신들 덕분에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이 보이네요. 정부에서 진짜 타격 많이 줄텐데 힘 내시구요. 끝까지 초심을 잃지 말길 바래요." (아이디 ^^)

  
  뿐만 아니라 운수노조 사무실로 직접 전화를 걸어 와 격려의 인사와 함께 도울 일을 묻는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운수노조 "국민 위협하는 MB의 잘못된 정책 집행을 왜 우리 조합원들이?"  

▲ 운수노조 집행부가 '미국산 쇠고기 운송 거부'를 결정하고 조합원 의사를 묻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인 가운데 벌써부터 누리꾼들이 폭발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사진은 지난 3일 열린 촛불시위의 모습. ⓒ프레시안

  운수노조는 이에 앞서 지난 2일 긴급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행동의 일환으로 '입항 저지 및 수송 거부 투쟁'을 조합원 의사를 물어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운수노조는 "6월 중 군산항으로 입항할 것으로 알려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선박의 입항저지와 하역거부, 나아가 철도 및 화물차로 수송될 미국산 쇠고기 적재 냉동컨테이너 수송 거부 등 실제 행동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종인 운수노조 위원장은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인 상황이고 온 국민이 반대하는 일 인만큼 잘못된 정책의 집행을 우리 조합원이 할 수는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운송 거부 투쟁'의 배경을 설명하며 "7일 오후 회의를 통해 조합원 총투표 일정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운수노조는 철도노조 화물연대를 비롯해 항공, 버스, 택시 등 교통과 물류 수송 전반을 담당하는 6개 업종본부로 구성돼 있다. 쇠고기의 입항 경로나 저장 위치에 대한 정보 파악에 유리한 운수노조가 실제 거부 투쟁을 벌이게 되면 쇠고기의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해 진다.
  
  누리꾼이 나서 "그러면 생계는 어떻게?" 걱정하며 "성금 모으자"  
  문제는 운송 거부가 실제 조합원의 생계 문제와 연관돼 있고, 자칫하면 지난해 금속노조의 한미 FTA 반대 파업과 같이 '정치 파업'이라는 명분으로 불법으로 간주될 위험이 있다는 것.
  
  현재 특수고용 노동자로 분류된 화물차 운전기사의 경우 '업무개시명령제'로 인해 운송 거부가 쉽지 않고 필수공익사업장에 해당되는 철도의 경우 단체행동권이 제한돼 있는데다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 있는 특정 냉동 컨테이너만 운송 거부가 가능할지 어려움이 존재한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누리꾼들은 조합원의 생계 문제를 걱정하며 "성금을 모으자"거나 "작은 돈이지만 보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아이디 '김재현' 씨는 "운송 거부하는 기사분이나 차량에 어떤 표시를 해 놓으면 어떨까"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 누리꾼은 "그러면 다른 국민들도 그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고 혹시나 더 잘 끼워줄 수도 있지 않냐"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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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6 17:13 2008/05/0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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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4. 17 - 04. 30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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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04-17 박지성에 대한 불편한 진실
 
정희준 교수의 글은 읽을꺼리가 많다. 박지성에 대해 이렇게 신랄한 말을 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물론 박지성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의 박지성 띄워주기는 너무 심하다. 그렇게 소재가 없는 걸까.
 
언론의 '박지성 장사', 그리고 불편한 진실 (프레시안, 정희준/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2008-04-17 오전 9:34:20)
[정희준의 어퍼컷] 만들어지는 영웅  
 


ㅇ 04-19 여초내각
 
유럽에서 여성이 내각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겨우 한명 뿐이니 나름대로 화제가 될 만도 하다. 여성장관의 미모를 거론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괜찮은 보도라고 하면 될런지...
 
스페인에서 30대 여성이 국방부 장관을 하게 된 것은 충격적이다. 민간인이 국방부 장관을 하는 것도 조금 거부감이 있을 텐데, 여성이 하게 되다니...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다.
 
유럽 '女超내각' 설전…MB내각은 '홍일점' (프레시안, 이승선/기자, 2008-04-18 오후 2:47:45)
'마초의 나라' 스페인서 30대 여성 국방부 장관 임명  

  
ㅇ 04-19 미국의 전체국가화 
  
미국에는 앞으로 갈 기회가 없을 듯하다. 지문날인에 이어 알몸투시까지 별 것을 다한다. 이런 것을 감수하고 미국에 갈 필요가 있을까. 이런 문제가 이슈화되지 못하는 미국 시민사회 또한 암담하고... 

LA공항, 인권침해 논란 ‘알몸투시’ 검색기 가동 (경향닷컴, 2008년 04월 19일 11:23:04)
  
항공기 탑승객의 옷을 투시해 알몸이 드러나는 등 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전신 검색기가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도입돼 시행에 들어갔다.
 
18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연방 교통안전청(TSA)은 보안검색 전신 검색기 1대를 도입, 델타항공이 이용하고 있는 LA국제공항내 5번 터미널에 설치하고 추가 보안검색이 필요한 승객들을 대상으로 17일부터 시범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LA공항은 애리조나 피닉스의 스카이하버국제공항에 이어 미국에서 2번째로 스캐너를 도입한 공항이 됐다. TSA는 검색기를 올해안에 30대 이상 구매해 다른 공항에도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밀리미터파(波) 화상기(millimeter wave imaging)’라고 부르는 이 검색기는 높이 2.7m, 폭 1.8m의 공중전화 부스 모양으로, 대상자의 신체를 흑백 영상으로 보여줘 무기류나 폭발물을 소지하고 있는 지의 여부를 한 눈에 알게 해준다. 이 검색기는 현재 미국의 모든 공항에 설치된 검색기들 보다 검색 시간을 크게 단축하고, 일부 문제 있는 탑승객들이 귀금속이나 총과 폭탄, 액체 폭발 물질 등을 신체의 은밀한 부위에 감추는 것을 샅샅이 찾아낼 수 있다고 미 국토안보부는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운동가들은 신형 검색기를 이용할 경우 탑승객의 가슴이나 근육 등 신체의 윤곽이 3차원 영상으로 보여짐으로써 나체 상황에서의 몸매를 노출시키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 검색기가 소량의 방사능을 유출해 노약자와 임산부, 어린이들에게 해를 미칠 수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지만 미국 당국은 인체에 해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o 04-22 삼성 이건희 회장의 퇴진
 
집에서 한참 용역 중간보고 발표글을 쓰고 있다가 삼성에서 긴급 기자회견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건희가 직접 나와서 기자회견을 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한 것도 충격이었다. 그리고 나서 오른팔인 이학수가 더 자세한 설명을 하고...
 
이런 내용이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걸 보니 참 삼성이 대단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아마도 이건희 퇴진에 초점을 맞춰 언론기사가 도배되겠지.
 
시간은 없지만 차분하게 몇 가지를 더 생각해본다.
사실 이재용이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닌가. 이재용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일선에서 물러나서 경영수업을 계속 받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다시 말해서 이재용이 제대로 삼성을 장악하기 위한 길을 터준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그리고 회견 내내 노동자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불법으로 보유한 것이 드러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등의 말이 있었지만, 삼성특검을 진행할 때 계속해서 시위를 벌였던 삼성SDI 해고노동자들에 대한 사과의 말 한마디 없었다. 아니 삼성을 이렇게 세운 노동자들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었다. 삼성이 불법로비에 사용한 비자금도 결국은 노동자들의 피땀을 빼돌려 만든 것일 텐데 말이다. 삼성은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 그리고 이학수, 김인주의 것이었을 뿐이었다.
 
삼성이 반성해야 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기자회견에서 다 언급할 수 없다는 점은 이해한다고 치자. 그런데 삼성이 과거에 자신들이 범해온 문제들에 대해 반성을 하고자 한다면, 삼성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무노조 경영에 대해 한마디 정도는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빠진 상태에서 어떻게 반성했다고 할 수 있는가. 이건희가 퇴진하면 다 끝나나. 눈가리고 아웅하는 꼴이지.
 
노동기본권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주제에 일류경영이 가능할까. 예전에 이건희는 마누라 빼고 다 바꾸자고 했었지. 그 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왜 무노조경영 소신(?)은 왜 못바꾸는 거냐.
 
이런 문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마 이건희의 퇴진을 들먹거리며 삼성이 흔들리는 거 아니냐고 법썩을 떨 이 사회가 무서워진다.
 
작년 대선 전에 이건희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몇 명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나는 이건희는 결코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 그게 불행하게도 예상대로 맞게 되었다. 앞으로도 이 사회는 내 기대에 결코 어긋나지 않을 것이고...
  
ㅇ 04-23 KTX승무원들, 아직 패배하지 않았구나
 
700일은 예전에 넘은 모양이네. 그 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KTX를 타고 다녔는데....
 
힘들었던 겨울 지나 다시 투쟁 시작하는 KTX승무원 (참세상, 최인희 기자, 2008년04월22일 16시52분)
[인터뷰] 오미선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 지부장 직무대행
 
"투쟁을 접는 건 사실 쉬워요. 우린 이만큼 파업의 정당성을 외쳤고 법원에서 우리 손을 들어주는 판결도 나왔으니 정리하겠다,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았죠. 계약직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건 그만큼 현실적으로 힘들었다는 걸로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장기투쟁사업장 분들은 그 결정을 안타깝게는 생각하지만 그걸로 패배의식을 느끼거나 원망하거나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8일 장문의 판결문에서 승무원들에 대한 공사의 교육과 업무지시관계, 자회사의 부적합성 등 세세하게 KTX승무원들의 주장을 입증해 줬다. '불법파견의 소지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적법한 도급이다'라는 둥 서울지방노동청의 판결에 극심한 불신을 갖고 있던 조합원들에게 다소의 희망이 보이는 중이다.
 
철도공사는 새로운 사장을 기다리고 있지만 승무원들은 투쟁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한 후 바로 서울역 릴레이 일인시위에 들어갔다. 철도노조 조합원들 내부에서조차 KTX승무원 투쟁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지도부가 교체되면서 각 지역과 단위 간부들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일일히 현장을 돌며 순회를 하고 있다. 조만간 기자회견을 열어 본격적인 투쟁을 선포할 계획도 잡는 중이다. 다른 노조나 연대 단체와 같은 외부도 일일히 순회하고 알리기 위해서 투쟁 800일에 즈음한 연대의 밤도 생각하고 있다.
 
"결말이 어떻게 날 지는 사실 모르겠어요. 역무 계약직이 될 수도 있고, 관광레저(자회사)로 갈 수도 있고, 직접고용 승무원이 될 수도 있고, 그냥 파업이 끝날 수도 있고. 하지만 상징성은 있다고 봅니다. 여성들이 이렇게 모여서 3년 가까이 투쟁했고 저희도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높이 평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여자들만 모여서 파업할 수 있는 용기를 못 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힘이 되어 주고 싶어요"
 
"저희가 너무 잠잠히 있어서 궁금하셨을 거 같아요. 살짝 휴식을 취했다고, 그냥 쉰 게 아니라 그만큼 힘들었다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다시 봄이 돌아왔잖아요. 내부적으로도 결의했으니 연대의 힘을 입어서 다시 움직이려고요. 물론 저희보다 오래 투쟁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투쟁을 오래 하다 보니 흐름이란 게 있는 거 같아요. 최고조에 달았다가 점점 식었다가 다시 발돋움해서 시작했다가. 지금 저희는 다시 발구르기를 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조합원들은 줄었지만 누구 하나 (투쟁을 그만둔) 그들을 원망하거나 책임을 묻지 않아요. 우리는 내 의지로 여기까지 왔고 스스로 투쟁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만큼 더 정당합니다"

 
ㅇ 04-24 진보신당의 현재를 보면 한심해서리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방문객 수도 많고, 활동도 활발하다며 스스로 자족해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노사모나 개혁당의 시기,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처음 진출할 때 지금의 진보신당보다 훨씬 더 활기차고 희망에 차있지 않았던가. 아무리 진보신당이 활발하다고 하더라도 노빠들만 할까.  
 
총선기간 중에 진중권은 키보드좌파가 되자고 했지만, 키보드좌파의 한계는 이미 검증된 것이 아닌가. 온라인은 나름의 독특한 특성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오프라인의 반영일 뿐이다. 키보드를 가지고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인터넷을 통해 백년정당을 하겠다던 개혁당이나 민주당의 경우를 보면 그 말로를 알 수 있지 않은가. 다 알면서, 게다가 보수정당이 걸어왔던 것을 반복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은가. 그걸 진보라고 포장하지 말라. 
 
나 또한 즐겁게, 경쾌한 마음으로 활동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나 진지하고 심각하게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소통이라면 더욱 더 밝고 즐겁게 해야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당의 홈페이지 게시판이 주요 소통공간이라면 그런 방향이 전반적으로 타당하고... 하지만 현실의 밝은 면 뿐만 아니라 어두운 면까지 아울러야 하는 진보정당이라면 진지할 때도 있어야 한다.  
 
논란이 되는 글이 올라오면 분위기를 해친다고 하여 자제를 요청하고, 소통이 잘 안되는 공간으로 미뤄버리는 진보신당의 당원게시판을 보면서 암담함을 느꼈다. 그렇게 좋은 얘기만 하면 좋을 일만 생기는 걸까.  
 
갈수록 오른쪽으로 가고 있는 진보신당을 보면서 이 당에서 과연 활동할 수 있는 건지 회의를 갖게 된다. 지금 시기는 평가와 논쟁이 필요한 시기이다. 즐거운 소통도 필요하지만, 서로에게 쓴 소리를 하면서 치열하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보신당은 그러한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재창당의 목소리를 외면되고, 코딱지만한 총선에서의 인지도에 연연한다.  
 
그리고 과연 종북주의 타파를 제외하고 민주노동당의 상황에 다른 게 뭔가. 거기에서 조직과 정책, 운영을 주도했던 이들이 여전히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총선을 핑계로 평당원 민주주의는 '조직화되지 않은 대중의 목소리'로 대체되었다. 
 
게다가 기술적인 문제라고 하지만 당원이 아닌 대중들에게 닫혀 있는 진보신당의 게시판은 자기들만으로 소통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민주노동당은 글을 쓰는 것은 몰라도 글을 읽는 것은 댓글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진보신당은 당원이 아니면 댓글을 읽을 수 없고, 한 글에 몇 개씩 붙은 댓글은 자신들끼리만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댓글에 딱히 읽어볼 만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서로 쓸데없는 얘기를 더덕더덕 붙여놓은 것이라 차라리 보여주지 않는 것은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질이 아닌 양 위주의 게시판은 의사소통의 통로가 될 수 없다. 그런 곳에 하루에 몇 십개의 글이 올라온다고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ㅇ 04-24 새벽, 다시 생활리듬이 바뀌었다
 
저번주까지 1시경에 자고 6시가 조금 못되어서 일어나곤 했는데, 논문과 보고서를 쓴다고 날도 새고, 밤늦게까지 있다보니 리듬이 깨져버렸다. 어제도 날을 샜는데, 지금 2시가 넘은 이 시간에 잠을 자지 않고 이러고 있다. 낮에도 거의 잠을 자지 못했는데...
 
아까 11시가 조금 넘어서 잠이 쏟아질 때 잠에 들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이젠 잠이 올 때까지 버티다가 잠드는 수밖에...
 
ㅇ 04-24 “고용 감소, 비정규직법 탓 아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간 설명이 필요한데...
 
"비정규직법 때문에 고용감소한 것 아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4월 18일, 한계희 기자)
노동부, 3월 고용동향 일부언론 보도 반박
 
지난 16일 통계청이 발표한 ‘3월 고용동향’에서 신규취업자가 18만4천명으로 3년여만에 최악의 지표를 보이자 일부 언론들이 비정규직법을 공격대상으로 삼고 있다. 비정규직법 때문에 고용시장이 위축했다는 것이다. 문화일보는 사설을 통해 ‘일자리 확보를 위해서도 비정규직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고, 한국경제신문은 ‘비정규직 보호법이 비정규직을 내몰았다’는 원색적인 기사 제목을 달았다. 이 신문은 임시직과 일용직 신규채용 감소를 놓고 “정규직 의무 전환의 굴레를 뒤집어쓰기 싫어한 기업들이 비정규직 채용을 꺼리면서 임시·일용직 취업자수가 대폭 줄어든 탓”이라고 해석했다.
 
두 신문사를 비롯해 비정규직법과 고용부진을 연관시키려는 언론사들의 목적은 같다. 현행법대로 오는 7월부터 100~300인 기업까지 비정규직법의 차별시정제도를 확대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법이 중소기업까지 포괄할 경우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기업에서 일정 부분의 정리해고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노동부는 17일 통계청의 조사를 분석해 발표했다.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비정규직법과 3월 고용악화와는 연관이 없다는 게 노동부의 생각이다. 우선 줄어든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이 아니라는 것. 임시직 감소가 도소매업이나 음식숙박업 등 소규모에서 주로 이뤄진 반면 상용직 증가는 사업서비스업이나 사회복지보건업에서 주도했다고 노동부는 분석했다. 경기침체로 소규모 식당 등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신영철 노동부 고용정책실장은 “비정규직 일자리 감소는 경기에 민감한 도소매업 등 소규모 사업장에서 주도했다”며 “전체 임시직에서 줄어든 16만여명 가운데 13만여명이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줄었고 그 중 80%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감소했다”고 말했다. 신 실장은 "오는 7월에 차별시정대상에 포함되는 100~300인 사업장에서는 변동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노동연구원, “고용 감소, 비정규직법 탓 아니다” (한겨레, 정남구 기자, 2008-04-23 오후 07:02:13)
노동연구원 “법적용 안받는 소기업 일자리 준 탓”
 
지난 3월 취업자 증가가 전년대비 18만4천명에 그치며 37개월만의 최저치로 떨어진 것을 놓고 “비정규직 보호법의 부작용 탓”이라는 주장이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임시직 근로자가 16만여명이나 감소한 것이 고용 부진을 이끈 까닭이다. 지난 21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국책·민간 경제연구소장 간담회에서도 “최근 고용감소는 비정규직법의 경직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재정부 관계자가 전했다. 이를 빌미로 7월로 예정된 비정규직 보호법 확대적용을 유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노동연구원 데이터센터 이병희 소장은 23일 “통계청의 3월 고용통계를 분석한 결과, 임시직 근로자의 급감은 비정규직법의 영향이 없는 상시근로자 100인 미만의 소기업에서 대부분 일어났다”고 밝혔다. 3월 임시직 근로자는 지난해보다 16만5천명 줄었는데, 이 가운데 82%인 13만5천명이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감소했다. 또 32만명 감소한 기간제 근로자도 86%인 27만6천명이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감소했다고 그는 전했다. 이 소장은 “이는 최근 고용감소가 비정규직법 적용 확대를 앞둔 기업들의 선제적 대응 탓이 아님을 뜻한다”며 “소규모 기업들이 경기후퇴를 우려해 계약기간이 끝난 노동자를 내보내고 신규채용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데이터센터 분석결과 비정규직법을 이미 적용받고 있는 대기업은 지난해보다 고용을 조금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 소장은 지난 18일 노동부 등 정부 관련부처 관계자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사용자단체 관계자가 참가한 가운데 열린 ‘최근 일자리 부진과 비정규직법과의 관계를 둘러싼 관련 전문가 및 이해당사자 회의’에서 이런 분석결과를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ㅇ 04-25 서인영의 카이스트
 
서인영의 카이스트는 그냥 아무 생각 없는 보면 그럭저럭 재미있다. 어제 케이블티비의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하게 서인영의 카이스트를 보고 이전 회를 다 봐버렸다.
여기에 쏟아지는 비판은 상당수 제대로 된 실력도 없으면서 명문대를 들어갔고, 거기에서도 진지한 모습보다는 면학분위기를 망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인영은 청강을 하고 있고, 프로그램 자체가 리얼리티 쇼라는 점에서 그냥 그대로 봐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언뜻 나타나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반응도 그리 나쁘진 않은 듯하고... 사실 서울대와 마찬가지로 카이스트 또한 약간의 편견에 둘러싸여져 있지 않았던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쥬얼리가 부르는 'One More Time'이 좋다거나 서인영이 출연한 <우리 결혼했어요>가 재미 있는 건 아니다. 이 프로그램을 왜 여기저기서 방영하는지 모르겠다. 조금 짜증...
 
참, 서인영이 누구인지를 아는 자체가 좀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은 패스.
 
서인영 너, 여우냐 푼수냐 (시사인 [32호] 2008년 04월 21일 (월) 13:52:41 이다혜 (판타스틱 기자))
  
여우인지 푼수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인지도. 겨우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서인영(사진)은 ‘박정아가 속해 있는 여성 댄스그룹 ‘쥬얼리’ 멤버로, 섹시 댄스로 유명했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유명세를 유지했다.
 
Mnet에서 방영 중인 <서인영의 카이스트>는 고등학교 때 데뷔해 제대로 된 학창 시절을 경험해보지 못한 서인영이 카이스트에 들어가 사고 치는 과정을 그린 리얼리티 쇼다. <무한도전> <강호동의 1박2일>이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고 나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서인영이 히트 친 두 프로그램은 약간 다르다. 애초 카메라 앞에서 ‘진행’하는 부분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자기 삶을 노출하는 게 다다. 방송용 이미지와 ‘리얼’한 자기 사이의 줄타기에서, 서인영은 의도치 않은 능숙함을 보인다.
 
카이스트에 ‘합격’한 서인영은 수업에 늦어도, 강의 한마디 못 알아들어도, 여학생들이 싸하게 쳐다봐도, ‘한국적’으로 부끄러워하고 반성하지 않는다. “난 일찍 사회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만큼 사회 경험이 풍부하다”라는 이유에서다. 남자 다루는 솜씨가 사회 경험의 범주에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입만 열면 ‘LA’ 타령인 크라운 제이를 쥐락펴락하는 솜씨만은 개인 강습이라도 받고 싶을 만큼 능란하다. 정형돈의 ‘남자’ 유세만큼이나 서인영의 ‘여자’ 핑계도 낡은 사고방식의 유물이지만, 그래도 자기가 원하는 걸 챙기는 데는 철저하다. 착하고 못된 걸 떠나, 솔직하니까 용서된다. 그게 ‘리얼리티’의 힘이겠지.
 
 
o 04-25 새벽에 비가 오다
 
내일 전북대에서 계속되는 행정학회 춘계학술대회에 참석하려면 새벽에 나서야겠지만 일어날 자신은 없고 해서 걍 날을 새기로 했다. 이미 생활리듬이 엉클어진 터에 오늘 날새고 오전에 잤다가 내일 새벽에 날새고 전주 가는 길에 잔다면 해결될 것 같다. 그리고 토요일부터 정상대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그런데 이 새벽에 꽤 둔탁하게 빗소리가 들린다. 일어난 다음에도 비가 오고 있을까. 구두를 포함하여 쓸만한 신발이 없어서 비가 오면 걱정이다. 이 참에 구두를 하나 사든지 해야 할 듯하다.
 
ㅇ 04-25 특검 때문에 실적이 안좋다고? 
 
어제 100분 토론에서 삼성특검과 관련한 주제를 다루었는데, 김상조 교수가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이 엄청나서 특검 탓을 못할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역시나 특검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1분기 영업이익이 2.6조란다. 이건 그간 재계와 보수언론 등에서 주장해왔던 '특검이 삼성의 발목을 잡는다'는 말과는 반대되는 결과다. 이런 식의 인과관계라면 특검을 해야 영업이익이 엄청 발생한다는 말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특검은 삼성의 발목을 잡지 않았다 (프레시안, 이대희/기자, 2008-04-25 오후 2:35:49)
삼성전자 1분기 영업이익 2.6조…'어닝 서프라이즈'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은 본사 기준으로 전 분기보다 21% 증가한 2조1500억 원이었다. 해외사업부를 포함한 연결기준으로는 2조5700억 원에 달한다. 1조7000억 원대에 그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을 크게 넘어서는 수준이다. 반면 매출액은 17조1100억 원에 그쳐 전 분기 대비 2% 줄어들었다.
  
휴대폰 사업부의 호성적이 실적 증가를 이끈 것으로 보인다. 작년 4분기 5800억 원대이던 영업이익이 올해 1분기에는 9200억 원으로 늘어났다. 대체로 1분기에 마케팅 비용이 많지 않아 비용 감소 효과도 컸다고 증권업계는 진단하고 있다.
  
재계와 보수 언론은 그 동안 줄기차게 '특검 수사가 삼성 그룹 경영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적어도 이번 삼성전자 실적만을 놓고 보면, 이들의 주장은 '근거 없음'이 증명된 셈이다.
 
계절적 요인 이외에 삼성전자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는 딱히 찾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실적 발표 이후, 삼성전자는 이를 곧바로 증명했다. 소니와의 합작사인 S-LCD를 통해 충남 아산 탕정의 LCD 8세대 2라인 증설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설비투자 액은 1조7000억 원이 넘는다. 특검 기간 한껏 몸을 움츠렸다가 특검이 끝나자마자 경영 정상화를 문제없이 가동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부문에만 7조 원을 투자하는 등 총 11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자비에 쏟아 부을 예정이다. 이건희 회장의 공석이 회사 운영에 큰 악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삼성전자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오히려 특검 수사 결과 계열사별로 독자적인 경영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돼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략기획실에서 그룹 전체 구도를 놓고 고민하던 과거와 달리, 삼성전자 경영진이 삼성전자 실적만을 위해 집중할 수 있게 돼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서 연구위원은 또 전략기획실 지시→삼성전자 경영진 회의→전략기획실 채택으로 이어지는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화돼, 경영 전략 수립이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김용철 변호사는 24일 밤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서 이번 특검 수사 결과에 대해 "삼성에 면죄부를 준 것"으로 평가절하했다. 그는 "이건희 회장은 사임 이전에도 결재를 직접 한 적은 없었고 항상 지시사항을 구두로 전달했다"며 "이사 등기마저 삭제돼 이 회장이 삼성에 대한 지배력은 유지하면서 법적 책임을 지지 않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ㅇ 04-25 그리 유창하지 않은 영어를 쓰는 2MB
 
명박이는 영어를 못해도 나는 좀 할 필요가 있다. 젠장... 그런데 왜 이리 하기 싫은 거야. 
 
영어 안 되면 대통령 못한다고? 사르코지를 봐 (시사인 [33호] 2008년 04월 29일 (화) 11:58:38 신호철 기자)
이명박 대통령과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영어 교육을 강조하고 친기업 정책을 주창하는 등 닮은 점이 많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사르코지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서의 영어 용법에 차이가 있다.
 
지난 4월18일 이명박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캠프데이비드 별장에서 만난 자리에서 “Can I drive?”(골프 카트를 내가 몰까요?) “He is my guest”(부시는 내 손님이죠) 등 영어로 농담을 했다. 그는 종종 외국인과 기자가 모인 자리에서 영어로 말하기를 즐긴다.
 
하지만 니콜라 사르코지의 경우는 다르다. 지난해 10월11일 그는 부시 대통령를 만나기 위해 미국 메인 주 켄느번크포트 골프장을 찾았다. 이 때 사르코지는 기자 앞에서 영어를 한 마디도 쓰지 않았다. 공식 기자회견 단상에서 모국어로 말하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다만 사르코지의 경우는, 부시 일가에게 ‘초청에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순간에도 프랑스어를 썼다. 자세히 당시 영상을 살펴보면 기자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르코지가 부시와 몇 마디 주고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자 가까이에 오면 꼭 통역을 불러 중계하게 했다.
 
이를 두고 자존심이 강한 프랑스인 특유의 고집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르코지는 이명박 대통령과 비슷한 실용주의자다. 그가 프랑스어를 고집하는 이유는 국어사랑 정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진짜 이유는 단지 자기의 영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영어, 이른바 ‘MB영어’란 발음이 어색하고 문법에 어긋남에도 개의치 않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4월15일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에게 ‘Why don’t you ask me know-how to win the primary’(나에게 경선에서 이기는 법을 물어보지 그랬어요)라며 농담을 걸었다. 문법에 따르면 ‘Why didn’t’라고 하는 것이 옳다. 이 대통령은 한국에서도 ‘best of best’(옳은 표현은 best of the best)라든지 ‘doing best’(옳은 표현은 doing their best) 따위 콩글리시로 말하다 누리꾼의 놀림을 받은 적 있다. 물론 ‘글로비시’라고 해서 다소 발음과 문법이 틀리더라도 뜻이 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영어학자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MB 영어’를 ‘실용 영어’ 또는 ‘서바이벌 잉글리시’라고 부른다.
 
사르코지는 품격을 지켜야 할 국가원수로서 제대로 영어를 하지 않을 것 같으면 아예 안 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지난 3월 말 영국 방문을 앞두고 사르코지는 몇몇 영어 인사 문장을 특별 교습받은 적이 있다. 과거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프랑스 의회에서 수려한 프랑스어로 연설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답례가 필요했다. 그 외 다른 경우에 사르코지는 영어를 잘 쓰지 않는다.
 
한편 사르코지의 전임 대통령이었던 자크 시라크 가 영어를 쓰지 않은 이유는 모국어주의 때문이었다.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해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시라크 대통령은 2005년 조지 W. 부시와 정상회담 때 일부러 프랑스어만 썼다. 밀담을 나눌 때도 예외가 없어 저녁 식사 자리에도 통역을 배석시켰다. 그는 유엔 회의 때 프랑스어 통역 서비스가 없으면 토니 블레어 총리의 말을 못 알아들은 척했다. 2006년 3월 유럽연합(EU) 정상회의 때 유럽상공인협회 프랑스 대표인 에르네스트 안토니에 세이에르가 25개국 유럽 정상 앞에서 영어로 연설하자 시라크는 화를 내며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국가 원수의 외국어 사용을 너무 금기시하거나 너무 과대 평가하는 것 모두 진짜 실용주의와 동떨어진 것이다. 요즘 이명박 대통령의 영어 외교를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교하며 외국어 능력이 대통령직 수행의 필수 요건인 것처럼 추앙하는 분위기가 있다. 지난 1월10일 한 국내 신문은 ‘대통령의 영어 실력’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과거)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 만난 자리에서 동문서답했다는 얘기가 안줏거리로 회자되면서 대통령의 언어 능력의 중요성이 거론된 적도 있다. 대통령의 자신감과 대인관계는 국가적인 무형자산에 속한다” “인간관계에 필수적인 디딤돌이 대통령의 외국어 구사 능력이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글 중간에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를 닮을 것을 주문했다. 그 글을 사르코지가 봤다면 머쓱해졌을 것이다.

 
ㅇ 04-26 한국행정학회 춘계학술대회 참여 
 
한국행정학회 춘계학술대회가 전북대에서 있었기에 전주에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갈 때는 늦을 듯하여 KTX를 타고 갔는데, 시간 여유가 남더라. 그래서 공공부문 개혁과 관련한 세션에도 참석하였다. 석희가 교수가 되어 발표하는 건 처음 보는데, 발표내용도 그렇고, 세션을 함께 짠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기획재정부와 뭔가 연계가 있지 않나 싶다. 물론 자신은 정부쪽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하지만... 공기업 민영화를 주장하는 글을 쓰면서 아니라고 하면 믿을 수 있나. 공기업 민영화에 비판적인 토론자들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모 조선대 교수.
 
내가 발표하는 세션에 행정연구원에 있는 민호가 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글의 완성도를 높이는 건데... 행정연구원에서는 올해 공공성과 관련한 사업을 하고 있단다. 행정포커스에서 정용덕 선생님이 공공성에 대한 화두를 꺼내더니 예상대로 이에 대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나 보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잘 될 수 있을까.
 
오늘 발표한 글에 대한 이정봉 교수의 코멘트는 그냥 그럭저럭이었다. 공공성을 민주성 및 형평성 등과 연계시켜 파악하면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이원근 교수의 코멘트는 인상적이었고...
 
서울로 올라올 때는 성락이 차로 별이와 함께 올라왔다. 성락이는 여전히 일본 애니매이션 애호가임을 감추지 않는다. 차의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것도 애니매이션 삽입곡들. 이 차를 타는 사람들 중에 이를 알아듣는 이가 얼마나 될까. 나나 되니까 그럭저럭 알아듣는 게지. ㅋㅋ
 
오는 길에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에 관한 토론회에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늦었다. 조금 더 일찍 서둘렀어야 했다. 그 토론회가 궁금했다.
 
ㅇ 04-26  동완이 결혼식과 경조사비 문화
 
동완이의 결혼식이 3시에 있었다. 아마 서둘렀으면 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축의금을 광민씨에서 전달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동완이는 현재 국회예산정책처에 있다. 게다가 결혼까지... 술술 잘 풀리는 건가. 그 녀석이 나보다 더 먼저 졸업하고 취직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내가 너무 게으른 거겠지. 조금 노력할 필요가 있겠다.
  
그건 그렇고, 오늘날의 치밀한 관계망의 사회 속에서 경조사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없으리라. 요새는 나 또한 없는 살림에 경조사비로 보통 5만원씩 하게 되는데... 나이가 나이인지라...
 
동양화가이셨던 아버지는 돈 대신 정성스레 그린 그림으로 대신해서 돈이 나갈 일은 없었던 듯한데, 재주가 없는 나는 마음으로는 안되고 결국 돈으로 떼울 수 밖에 없어서 안타깝다. 게다가 버는 게 있으면 모르겠는데... 공리주의적 시각은 아니지만, 내가 이를 보답받을 수 있을까. 
  
[20&30] 경조사비 문화 (서울신문, 이문영 기자, 2007-05-15  23면)
 
ㅇ 04-27 체크된 신문기사를 정리하려고 하다
 
어제 밤 언제인지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 그제 날을 샜기 때문일 텐데, 일어나 보니 3시가 조금 넘었다. 이것으로 정상적인 생활리듬으로 돌아오는 것일까.
아무튼 오늘은 더이상 잠에 들지 않도록 하면 되겠지.
 
시간이 난 김에 오늘은 그 동안 접어놓았던 신문기사들을 옮겨야겠다. 다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아니면 시간이 없을 듯하다. 모아놓은 신문만 50개가 넘는다. 이것을 블로그나 카페로 옮기는 것은 둘째로 치고, 일단 대충은 분류를 해놓아야겠다.
  
ㅇ 04-28 어제 현기를 만나다
 
저번 주에 갑자기 연락와서 둘다 가능한 시간대인 어제 약속을 잡고 만났다. 참여정부 시절과는 달리 국정홍보의 일이 널널하다고 한다. 3시간 할 일을 8시간 동안 하고 있다나.
 
하지만 평가를 성과 위주로 하는데, 이는 대체로 달성하고 있으므로 큰 문제는 없다고 한다.

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고 싶단다. 행정학의 새로운 이해, 정책학 원론 이외에 새행정학을 추천해주었다. 그 정도를 읽으면 아마 행정학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사실 대학원에 들어와서 따로 배울 것은 없다. 교수들도 차라리 외국 나가서 공부를 하라고 하고...
대학원생들 간의 토론도 별로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서 정규 과정에서 얻을 것은 거의 없으며, 대부분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 다만 다른 학과보다 잡시장은 열려 있는 편이다.
 
국정홍보처 폐지 후 소속 공무원들의 동향에 대해 물어보니 별정직 공무원들은 대부분 짤릴 것이란다. 현기를 통해서 정부 내의 사정을 좀더 자세하게 파악했으면 좋겠는데, 시간 여유가 없다.
 
한편 신재민 차관 얘기도 나왔다. 말그대로 언론을 장악하려 한다는 것인데, 아마도 무지막지하게 몰아부칠 듯하다. 이들이 개념이 있지가 않는지라... 

"현 언론제도는 5공 잔재...언론 난립 해소가 과제" (프레시안, 채은하/기자, 2008-04-28 오후 3:05:35)
문광부 "9월 관련법 일괄 개정…거대 복합미디어 양성할 것"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25일 제주에서 한국언론학회, 방송학회 등 4개 학회가 공동 주최한 학술세미나 축사에서 "공영방송의 소유 형태, 신문·방송 겸영, 방송·통신 융합과 같은 문제를 하나씩 고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디어 관련법을 모두 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르면 9월 정기국회에서 일괄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신 차관은 "현 언론의 법과 제도는 5공화국 시절 '당근과 채찍' 원칙에 의해 만들어진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며 "새 정부는 언론에 대해 시장 원리에 벗어나는 규제도 하지 않겠지만 어떤 형태의 지원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신 차관은 '언론계 5공 청산'이라는 자신의 발언을 2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980년 5공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한국방송(KBS) 2TV가 생기는 등 언론 통폐합이 있었다"며 "현재 문화방송(MBC)의 소유 구조도 5공때 탄생했다"고 부연했다.
 
그는 '시장주의' 원리를 앞세워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거대 신문들이 추진하는 '복합 미디어 그룹' 탄생은 적극 지원하는 반면 중소매체는 시장에서 퇴출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그는 세계적인 미디어 경쟁에 우리만 뒤처지지 않게 신문, 방송, 통신, 자본 간에 가로막힌 벽을 단계적으로 완전히 제거해 나가겠다"며 "강력한 자본력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큰 미디어 그룹이 탄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유진 사무처장은 "지금의 방송 구조를 시장 논리로 재편하기 위해 대단한 개혁인 양 '5공체제 극복'이라 표현하는 것은 그야말로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문제는 방송 영역, 특히 지상파 방송에서 최소한 지켜야 할 공공성을 어떻게 보장해줄 것인가가 핵심"이라고 했다.
  
  
ㅇ 04-30 이해찬의 싱크탱크 '광장'
 
이해찬 전 총리가 설립한 광장은 친노세력의 재결집을 위한 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실 광장이라는 이름은 이해찬이 아직은 운동권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때 서울대 앞에서 운영했던 사회과학서점의 이름이다. 지금도 그의 동생이 사회과학서적의 명함은 떼고 광장서적을 운영하고 있고... 이 광장서적을 기반으로 이해찬은 나름대로 돈을 모았다. 고시학원 운영, 종합문구점의 설립,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설렁탕집의 운영 등이 다 여기에서 나왔을 것이다.
 
아마 이러한 성공신화를 떠올리며 다시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친노세력의 결집을 도모하는 것 같은데, 광장이라는 말이 오염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예전에 관섭이가 공대 학생회장에 출마하면서 내걸었던 구호가 '나의 밀실에서 우리의 광장으로'였던가. 광장, 좋은 말인데...
 
이해찬 '광장' 개소…'친노 광장' 될까? (프레시안, 김하영/기자, 2008-04-29 오후 7:03:39)
정치적 해석 경계 불구, '친노 소통의 장' 전망 
 
이해찬 전 총리가 설립한 연구재단 '광장'(
www.agora4u.org)이 29일 서울 여의도에서 사무실 개소식을 열고 본격 출범했다. 이 전 총리는 '개혁·진보의 싱크탱크'라며 정치적 시각을 경계하고 있지만, 온통 관심은 '친노의 재결집'에 모아져 있다.
 
'소통'을 화두로 내건 광장은 앞으로 계간지 발간을 비롯해 월 2회 이슈브리핑 배포, 공공정책 연구아카데미 개설, 토론·강연회 등 정책 개발에 매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전 총리가 극구 부인함에도 불구하고 '盧의 남자'로 불리는 이 전 총리가 만든 '정책 연구기관'이기 때문에 광장을 중심으로 친노 세력이 재결집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친노 진영이 대거 총선에 낙선한 상태여서 현재의 민주당에서는 입지를 확보도 쉽지 않다. 따라서 독자 세력화를 통한 재기를 노리는 이들에게 적어도 광장은 이들의 정치적 소통의 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20년 만에 다시 ‘광장’으로 (시사인 [32호] 2008년 04월 23일 (수) 16:31:30 박형숙 기자)
 
정계에 입문한 지 올해로 꼭 20년. 이해찬 의원이 다시 ‘광장’으로 돌아왔다. 1987년, 그 거리의 광장이 아니다. 이번엔 정책이다. 이 의원은 최근 ‘광장’이라는 연구재단을 설립했다. 4월29일 개소식도 하고, 계간 〈광장〉 출간기념회도 연다. 보수 진영에 박세일 교수가 주도하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있다면 진보 진영의 싱크탱크로 ‘광장’이 있다는 식이다.
 
이해찬은 이제 ‘광장’을 통해 발언한다. ‘이명박 정부 첫 인사의 특징과 정책적 함의’라는 제목으로 보고서 1호가 나왔다. 뒤이어 총선 결과도 발빠르게 분석했다. 내주 개설되는 홈페이지(
www.agora4u.org)를 통해 공개할 예정인 이 보고서를 미리 들여다봤다. 18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통합민주당 계열의 의석수 비중이 5공 시절보다 낮은 유신 시대 수준으로 회귀해 최대의 위기를 맞았’지만, 원인은 ‘유권자의 보수화가 아니라 개혁적 유권자의 퇴장’이라고 진단했다.
 
대안은?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 연합의 정치를 하라고 제안한다. “범개혁 세력의 재건은 노선 경쟁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름의 청사진과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진보·개혁적 정체성을 가진 정당들 간의 연합을 통해 개혁층 저변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탈당 이후 이해찬 의원이 유일하게 수락한 ‘자리’는 독립운동가 김성숙 기념사업회 회장이다. ‘정치는 이제 정리했다’라고 말한다. 이해찬 의원은 자기 정치는 못해도 ‘판’은 잘 읽는 정치인으로 통한다. ‘광장’에서 이해찬식 ‘판읽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ㅇ 04-30 한국에서 인디 메이데이는 있을까
 
우리는 축제분위기로 한다고 하던데... 도대체 정신이 있는 것인지... 지금 축제를 벌일 때가 아닌데 말이다. 민주노총과 별도로 노동절 행사를 해야 하는 때가 와야 하지 않나 싶다.
  
일본 ‘인디 메이데이’ 확산 (한겨레, 도쿄/김도형 특파원, 2008-04-28 오후 09:33:37)
비정규직 등 뭉쳐 13개 개최
대형노조 중심 노동절 탈피

 
일본에서 파견사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와, 노숙자 등이 중심이 돼 반빈곤과 반세계화를 외치는 ‘인디 메이데이’(독립 노동절) 행사가 주목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20·30대의 절반 정도가 비정규직일 정도로 고용불안이 심각해지면서 렌고 등 대형노조 중심의 기존 메이데이와는 다른 형식의 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27일 나고야에서 20여개 단체가 참여한 ‘LOVE&가난뱅이 봄축제’가 열린 것을 비롯해, 노동절을 전후해 도쿄·구마모토·삿포로 등에서 13개의 행사가 개최된다.
 
인디 메이데이 행사는 2005년 청년 비정규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노조 ‘프리터 전반노조’가 ‘자유와 생존의 메이데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깃발을 올린 이후 4년째를 맞았다. 30일 도쿄도 신주쿠의 공원에서 열리는 ‘노숙자 메이데이’는 도쿄도의 노숙자 추방정책에 항의해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열린다. 특히 빈곤이 큰 사회·정치 문제로 떠오르면서 반빈곤 연대를 내세운 이들 행사가 힘을 받고 있다. 1920년 이후 해마다 5월1일 열려온 기존 행사가 노조 가입율 하락과 참여자 저조로 이름뿐인 행사라는 지적을 받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기존과 다른 행사 진행 방식도 눈길을 끈다. 트럭 위에서 디제이가 음악을 틀어주고 춤을 추면서 주장을 펼치는 광경도 보인다. “빈곤은 자기 책임이 아니다” “집세를 내려라” 등 구호도 다양하다.
 
 
[여적]인디 메이데이 (경향, 유병선 논설위원, 2008년 04월 29일 18:07:43)
 
5월1일 국제 노동절(메이데이)도 비이성적인 힘의 결과물이다. 미국 무역노동자연맹이 8시간 노동 입법화 투쟁을 선언한 게 1884년 5월1일이었다. 2년 뒤 8시간 노동 입법이 거부되자 하루 10~14시간 일을 해야 했던 노동자들은 파업에 나섰다. 하지만 ‘노동 귀족’으로 변질돼 정·재계와 한 통속이던 노조 간부들은 파업에 무관심했을 뿐 아니라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8시간 노동은 배부른 노조 간부가 아니라 하루하루가 팍팍한 노동자들이 쟁취한 것이며, 이를 기념하는 것이 바로 메이데이다.
 
일본에선 색다른 메이데이 행사가 눈길을 끌고 있다. 비정규직과 노숙자들이 정규직 중심의 대형 노조와 별개로 빈곤과 세계화에 반대하는 ‘인디 메이데이(독립 노동절)’가 열도 전역에서 시작됐다. 비정규직과 양극화의 실상을 자유롭게 고발하고 펼쳐 보이는 이들의 행사는 활력을 잃은 주류의 노동절 행사와 대조를 이룬다고 한다. 3년 전 청년 비정규직노동조합이 물꼬를 튼 이래 주류 노조의 밖에 있는 노동자들의 인디 메이데이 행사가 ‘반빈곤 연대’를 구축하며 새롭게 ‘비이성적인 힘’을 드러내고 있다.
 
기념일이지만 돋아나는 아픔이 더 큰 게 우리네 메이데이 풍경이다. 노동자 셋 중 두 명꼴인 비정규직의 문제를 ‘친기업’의 요란한 구호가 뒤덮고 있다. 3년 전 민주·한국 두 노총 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로 단식이라도 했지만, 올해는 그나마도 없다. 인디 메이데이의 활력도 없다. 우리 사회가 ‘이성적’이기 때문일까. 314일. 내일 노동절 아침, 이랜드의 아줌마 노동자들이 마주할 파업 일수다. 
 
목소리 낮춘 노동절…비정규직만 ‘냉가슴’ (한겨레, 황예랑기자, 2008-05-01 오후 01:28:58)
‘친기업정부와 탐색기’ 노동계 평화집회 계획
파업 몸살앓는 비정규직투쟁 쟁점화 소극적
6월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신호탄 될 가능성

 
1일은 노동계로부터 ‘노동정책 없는 정부’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이명박 정부 들어 맞이한 첫 노동절이다. 그러나 공기업 민영화, 비정규문제 등을 두고 연일 정부를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던 노동계가 의외로 ‘조용히’ 노동절을 맞이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1일 서울 대학로 등 12개 지역에서 기념대회를, 한국노총은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마라톤대회’를 연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공공부문 구조조정 저지’라는 구호를 내걸긴 했지만, 모두 평화적인 기념행사다. 노동계가 ‘친기업’적인 정부에 칼날을 세우면서도, 당장 싸움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전선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민주노총 중앙이나 각 연맹이 비정규직 투쟁 등 ‘밑바닥’을 끌어안지 못하는 데 대한 비판도 나온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연대회의 정책위원은 “공공부문 비정규직들이 구조조정 위기감에 들썩이고 있는데 상급단체들은 자기 싸움으로 받아안지 못하고 있다”며 “지난해와 달리 비정규투쟁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코스콤·이랜드 등 비정규 장기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에 대한 연맹 차원의 지원은 끊어진지 오래다. 현대차노조 등은 약속했던 이랜드노조 생계비 지원금을 아직까지도 내지 않았다. 박점규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사업부장은 “노동절 기념행사를 이랜드 본사 앞에서 열자는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국 연례적인 기념행사로 진행하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은수미 박사는 “이런 싸움들은 상급단체의 지원이 없으면 ‘소리없이’ 묻힌다”며 “노조가입률 5%에 불과한 비정규직들의 조직화에 역량을 투입하고, 비정규투쟁에 연대하지 않으면 노동운동에 미래는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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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2 12:00 2008/05/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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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3.31 - 04. 15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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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03-31 진보신당은 과연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을까
 
어제는 연구실에 있다가 집이 비좁아서 지금 당장 쓰지 않는 짐들을 내 집에 갖다 놓으려는 동생과 함께 집에 잠시 다녀왔다. 그 사이에 진보신당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는데, 나름대로 일치하는 점이 있었다. 내 의견을 중심으로 정리를 하면 우선 진보신당의 비례대표로서 박김영희 대표나 이남신 부위원장이 아주 적절한 것은 아니지만 당선이 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례대표에서 진보신당이 3%를 넘었으면 한다는 것이고...
 
노회찬, 심상정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부르조아 제도정당으로서 진보신당이 생존하는 데는 나름의 도움이 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좌파정당의 미래를 위해서는 차라리 되지 않는 게 낫다. 현재도 진보신당의 많은 인력이 노원병과 고양덕양갑에 쏠려 있다. 언론에서도 이 두 곳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고.. 따라서 이들이 당선된다면 자민통세력을 제외한 진보정당운동판은 이들 명망가 중심으로 굴러갈 수밖에 없다. 차라리 단병호 정도 된다면 서구에서 사민당 초기에 노동계급의 지도자가 당의 초석을 세운 것처럼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노심은 자신들의 성과를 노동계급으로 돌리지 못할 것으로, 아니 돌리지 않를 것으로 본다.
 
특히나 노심 주위에 있는 이들의 움직을 봐도 그렇다. 아무리 진보신당의 인지도가 떨어지고, 후보 개인의 인지도가 낮다고 하지만, 공보물에, 플랭카드에 '노회찬, 심상정과 함께 하는 진보신당', 이런 식으로 홍보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가.
 
게다가 국민의 대표를 뽑는 국회의원 선거인데도 지방의원이나 자지단체장 후보가 내놓음직한 지역공약으로 공보물을 채우고 있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런 공약들은 아무리 정교하고 눈에 확뜨이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지역의 개발, 경제공약으로 채우고 있는 보수정당을 따라잡지 못한다. 게다가 후보로 나온 한 개인이 지역에서 어떠한 활동을 해왔음을 홍보하는 것이 지금의 총선에서 표를 얻고 인지도를 상승시키는 효과 외에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그게 진보정치이고 좌파정치인가?
 
전국적인 공약으로, 민주노동당과 구별되는 공약이 그렇게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따로 나온 것인지... 좀더 좌파적인 정책을 내세울 수는 없을까. 총선을 정치적인 선전선동의 장으로 이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인가. 대운하 뿐만 아니라 한미FTA와 관련된 내용으로 진보신당의 정체성을 부각시킬 수는 없는가. 그것은 민주노동당과는 몰라도 보수정당과는 확실하게 구별되는 것인데,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린 문제인데, 그리고 지금까지 나름대로 쌓아놓은 성과가 있는데, 왜 이를 이야기하지 않는가.
 
기호 몇번을 알리는 번쩍이는 아이디어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기본은 해야 하지 않을까. 민생정당이라고 하고, 서민을 얘기하는 진보신당을 보면 도대체 새로운 진보를 얘기하는 민주당과 어떻게 차별을 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더욱 소극적으로 만들고...
 
“노회찬씨가 될 거예요” (레디앙, 2008년 03월 31일 (월) 01:02:06 손기영 기자)
[노원병 유세 현장] "홍정욱 후보 이질감" vs "홍처럼 성공하고 싶어" 
 
진보진영 '에이스 카드'의 악전고투, 덕양갑 (프레시안, 윤태곤/기자, 2008-03-31 오후 12:04:22)
'심상정 고공전' vs '손범규 지상전'  
 
영화인 165명 진보신당 지지 선언 (레디앙, 2008년 03월 31일 (월) 12:15:53 손기영 기자)
박찬욱-오지혜 등 “민노당을 지지했지만, 민노당 시대 변화 외면”
 
"자유선진당?" "아니 진보신당이요" (레디앙, 2008년 03월 31일 (월) 14:37:54 정상근 기자)
언론에 안 나오는 후보들도 바쁘다 "우리도 꿈이 있습니다"
 


ㅇ 03-31 고양 초등생 납치미수사건
 
새벽에 잠결에 티브이에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초딩이 폭행을 당하고 납치될 뻔한 사건의 CCTV 화면을 보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고양의 해당 서에 찾아가 호통을 내질렀다고 한다. 그러면 민생치안을 챙기고 있다는 표시가 되는 모양이다. 7000명 참여하는 집회에 그 배에 달하는 경찰력을 동원하여 교통체증까지 일으켜놓고선 이런 민생치안에는 여력이 없나 보다.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경찰들도 시위진압에 나서다가 수사에도 나서고 그렇긴 하더라만, 경찰 스스로 사건을 무마하려고 하는 것에서 보이듯 마인드가 변하려면 한참 걸릴 것 같다.
 
아예 경찰력도 사유화하는 것은 어떨지...
 
"경찰, 민생치안이나 제대로 챙겨라" (프레시안, 강이현/기자, 2008-03-31 오후 5:07:48)
고양 초등생 납치미수사건…'경찰 행정력' 비난 봇물 
 
지난 26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한 초등학생이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폭행을 당하고 납치될 뻔 한 어린이 납치 미수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경찰이 이번 사건에 대한 신고를 받은 뒤 납치가 아닌 단순 폭행사건으로 무마하려 했다는 부실수사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더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참여연대는 "사건이 발생한 지난 26일은 경찰청에서 '어린이 납치·폭행 종합치안대책'을 발표한 날"이라며 "누가 봐도 분명한 여자 어린이 납치미수 사건을 이렇게 대처한 것은 경찰의 어린이 치안대책이 말뿐임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심지어 피해자 가족에게는 언론에 알리지 말라며 은폐를 시도했다는 보도도 있다"고 언급한 뒤 "한심함을 넘어서 처참하다"고 비난했다.
 
참여연대는 "해당 사건을 단순 폭행사건으로 분류하고 수사에 손을 놓고 있던 바로 그때 경찰은 등록금폭등을 해결하라는 평화 행진에 1만 4000여 명의 전경을 배치하고 300명의 체포전담조를 투입하는 등 황당한 과잉대응을 하고 있었다"며 "게다가 정보과 형사들을 시켜 운하반대 교수들의 정보를 캐러 다녔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그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후 불법집회 엄단 운운하니 대규모 경찰병력을 동원해 공포분위기 조성에 골몰하고, 또 이명박 대통령이 운하를 강력 추진하겠다니 5공 시절처럼 반대교수들의 뒷정보를 캐며 압력을 행사하려 한 것 아니겠는가"라며 "경찰이 대통령의 눈치나 보며 황당한 과잉충성에 목매달며 민생치안은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평화시위 진압할 경찰병력은 있어도 어린이 범죄에 대처할 여력은 없단 말인가"라고 물으며 "경찰은 제발 민생치안이나 제대로 하라"고 촉구했다.
 
다산인권센터도 성명에서 "일산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CCTV를 설치해 봤자 이를 들여다 볼 의지조차 없는 경찰들의 대책이란 것은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치안부재의 책임을 지지 않고, 국민전체를 감시대상으로 삼는 인권침해 대책만을 내오는 경찰은 지금 사태의 모든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 "'넋빠진 경찰' 만든 게 누구인데…" (프레시안, 채은하/기자, 2008-04-01 오전 11:53:32)
이명박 비판…조·중·동 뒤늦은 '민생 치안' 강조
 
 
ㅇ 03-31 모교 야구부 결승진출, 아니 우승
 
-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의 결승에 진출한 모교의 야구경기를 공짜로 볼 수 있다고 영호에게서 동대문운동장으로 오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 쌓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라서 직접적인 현장응원은 물론 티브이 시청 또한 미루기로 했다. 나중에 결과나 봐야겠다.
 
게다가 뒷풀이의 후환이 두렵다. 오랜만에 동문친구들을 보게 되면 또 보나 마나 결혼얘기부터 직업 등등을 얘기하게 될 텐데, 그리고 총선에 대해서도 말이 나올 것이고... 그런 얘기를 하는 게 피곤하다.
걍 할 일이나 해야지.
 
- 쩝, 방금 포털을 확인해보니 광주일고가 덕수고를 꺾고 대회 4번째 우승을 거두었단다. 3:0의 스코아를 보아 팽팽한 투수전이었겠고, 가서 구경해봤자 별로 재미있지 않은 경기였을 것임에 틀림 없다. (이렇게라도 스스로 위로해야지. ㅡ.ㅡ;;) 지금쯤이면 친구들도 술자리로 옮겼겠군. 나는 술도 좋아하지 않으면서 술자리를 왜 이렇게 좋아할까.
 
ㅇ 04-01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다. 힘내시길...
  
나도 악필인데다가 필기 속도가 느린 편이다. 그래서 대여섯번 응시했던 행정고시 2차시험에서 떨어진 것도 실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필기 속도가 느린 것이 상당부분 작용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곤 한다. 사실 속기 능력을 시험보는 것도 아닌데, 시험시간의 부족은 많은 불만이었다. 그래서 아래 근육통환자의 헌법소원 시청에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게 된다.   

“사시2차 시간 짧아 불이익” 필기 느린 근육통환자 헌소 (경향, 박영흠기자, 2008년 03월 31일 18:06:57)
  
글씨가 느린 사법시험 준비생이 현행 2차 사법시험 시간이 너무 짧아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목과 어깨 근육에 통증을 느끼는 근막통 증후군 환자인 임모씨(34)는 2001년 이래 세 차례 사시 1차 시험에 합격했지만 2차 시험에는 매년 떨어졌다.
 
임씨는 “필기속도가 느려 도저히 한정된 시간 안에 보통의 수험생과 경쟁할 수 없다”며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현행 시험제도가 헌법상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는 것. 주관식 논술형인 현행 사시 2차 시험은 배점 50점당 1시간(각 과목당 2시간, 민법은 3시간)이 주어진다.
 
임씨는 답안의 분량과 성적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지난해 사시 합격자 중 상위 성적자들의 답안지에 대한 문서제출명령신청까지 낸 상태다.
 
ㅇ 04-01 허세욱 동지 1주기가 다가온다
 
작년 4월 1일 나는 전진 총회가 있어서 대전에 내려가 있었다. 총회 도중 갑자기 전해진 소식, 민주노동당의 관악 당원 한 사람이 분신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는 허세욱 동지였다. 그의 순수함과 진정성을 알기에 그라면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믿고 싶지 않았다. 만우절이어서. 그런데 지역위 상근하는 동지에게 물어보니 만우절 농담이 아니었고, 실제 상황이었다.
 
3월 말 즈음에 4월이 되면 허세욱 동지가 생각날 것 같았는데, 4월 1일이 되자마자 그가 떠오른다. 살아계실 때 조금 더 포근하게, 조금 더 편하게 그와 이야기를 하고, 좀더 살갑게 대할 수 있었는데, 그러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 후회된다. 그가 분신하면서 외쳤던 한미 FTA 반대는 여전히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되어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여기에 사활을 걸고 쟁점화시켜내지 못하고 있고...
 
ㅇ 04-02 어제는 만우절
 
멍청한 중앙일보. 도대체 그런 식으로 낚이면 어쩌자는 거냐. 중앙일보 하는 게 다 그렇지. 앞으로 다른 신문에서 오보낼 때 중앙은 끼지 말아라. 
 
<중앙일보>, '만우절' 기사에 낚이다 (프레시안, 채은하/기자, 2008-04-02 오전 11:50:19)
<가디언> '황당' 기사 그대로 보도…'분수대'에서는 다른 언론 오보 조롱

 
ㅇ 04-03 너무 기발하지 아니한가 
 
생각 같아선 나도 카페에 가입해서 구매하고 싶다만... 아마도 이 '삽질쥐' 티셔츠는 대히트를 칠 것임에 틀림 없다. 
 
"나는 찍지 않았'읍'니다"... '삽질쥐' 티셔츠 화제 (오마이뉴스, 조은미 기자, 2008.04.02 14:03)
이명박 풍자? 쥐 그림 티셔츠 '공동구매'...누리꾼 "쥐 그림 맘에 들어" 
 
 
ㅇ 04-05 대한상의 회장, 상속세 폐지 주장
 
역시 기업가 정부라 그런지 자본가들이 미쳐 날뛴다. 전경련, 대한상의, 한국경제연구원, 자유기업원 등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살판 났다.
 
미국에서는 상속세 폐지가 논란되었을 때,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데이비드 록펠러 시니어, 조지 소로스 등 엄청난 부자들이 나서서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은 상속세는 경제적 불균형을 완화하고 부를 상속받은 사람들의 '귀족계급화'를 막는 수단이라고 파악한다. 또한 상속세 폐지는 자칫하면 자본주의 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이에 대해 이들이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것은 재단을 만들거나 세금이 적은 외국에 신탁계정을 만들어 세금망을 빠져나가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재산을 이미 처리했기 때문이라고 파악하는 우파 골통들도 있다.
 
그런데 한국의 천민 자본가들은 상속세를 폐지하자고 한다. 물론 미국에서도 대부분의 부자들은 상속세 폐지에 찬성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적어도 미국과 같이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책임있는 부자들'이 없다는 것이 한국의 문제를 보여준다. 
 
상의 회장 “상속세 폐지” 주장 논란 (경향, 전병역 기자, 2008년 04월 05일 00:35:56)
경영권 위협 이유… “상속재산 처분때 양도세로 전환” 요구
 
경제단체가 상속세를 폐지하고 상속에 따른 이익에 대해서는 상속재산을 처분할 때 양도소득세를 물리도록 하자는 주장을 들고 나와 논란을 빚고 있다. 상속세는 미실현이득에 대한 과세인 데다 세금을 내면서 주식 등 재산을 처분해야 하기 때문에 경영권에 위협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재산 상속과 경영권 승계는 다른 문제”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은 은 4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한승수 국무총리를 초청한 가운데 가진 전국상의 회장단 간담회에서 “상속세를 폐지하고 상속재산을 처분하는 시점에서 자본이득세(양도소득세)를 과세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계는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율이 오히려 편법 상속을 불러온 만큼 세율 인하 및 다양한 상속세 납부제도를 도입해 떳떳한 기업 승계를 유도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특히 참여정부 동안 상속·증여세가 2003년 1조3000억원에서 지난해에는 2조8000억원으로 불어나 기업들의 불만을 산 것으로 보인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한성대 교수)은 “경영권과 재산권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 재벌기업의 인식 수준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경영권은 주주들로부터 위임받은 것일 뿐, 총수 일가가 사적으로 물려받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같은 갑부들도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 상속세, 증여세는 계속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가업으로 물려받아 10년 이상 유지한 중소기업에 상속세를 감면해달라는 우리까지 도매금으로 취급당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ㅇ 04-07 장석준 동지의 글 중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글
 
나는 노심의 당선을 결코 진보적 도시정치의 시작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들이 획득한 표는 단지 노회찬, 심상정이라는 명망가에게 주어진 표일 뿐이다. 이는 문국현에게 던져진 표와 별로 다르지 않다. 노회찬, 심상정이 얻는 표가 정당명부로 얻는 표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나름 믿을 구석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의 선거운동행태로 봐서도 이것을 진보적 도시정치라고 하기 어렵다. 당선된 뒤에 뭔가를 하겠다는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될 터이다.
 
나아가 진보정당이 지역구에서 승부를 본다는 것도 조금 이상하다. 지역구에서 지역공약을 내서 당선되겠다는 것이, 자신의 명망성과 인지도를 이용해서 당선된다는 것이 진보정치일까. 이번에도 비례대표의 확대를 주장하면서 비례대표로 승부를 보도록 노력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장석준 동지가 예로 든 진보적 도시정치의 예는 국회의원 당선사례가 아니고 단체장선거에서 승리하여 지방정부를 장악한 사례이다. 진보적인 지방정책으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지방정부를 장악할 수 있을 때 진보적인 도시정치가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노심의 당선 여부는 이것과 무관하다.
 
58년 만에 부는 의미심장한 바람 (레디앙, 2008년 04월 07일 (월) 07:45:01 장석준 / 전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실장)
[수도권 진보신당 후보 당선 의미] 진보적 도시정치의 시작
 
대한민국 50여 년 역사 속에 진보정당 후보가 국회에 진출한 적은 민주노동당 이전에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당선된 사례는 하나뿐이다(5공 시절 ‘관제’ 혁신정당 민주사회당의 고정훈 후보가 강남에서 국회의원이 된 것은 셈에 넣지 않겠다). 1950년 5월 30일 제2대 총선에서 사회당의 조소앙 후보가 서울 성북 선거구에서 낙승했던 것. 아무튼 서울(이제는 단순히 ‘서울’만이 아니라 ‘수도권’으로 바라봐야 할 테지만)에서 보수 우파의 스펙트럼을 넘어서는 정치인이 지역구 선거를 통해 국회에 진출한 사례는 이게 유일하다.
 
허나 진보신당의 두 대표 정치인이 수도권에서 당선된다는 게 이렇게 과거 역사와의 연관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첫째, 이것은 진보정당운동이 그 자연스러운 성장의 제2단계에 접어듦을 뜻한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약진은 8할이 1인 2표 방식의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덕분이었다. 노회찬, 심상정 두 전 의원도 이 때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했고, 17대 국회 4년 동안 그야말로 노력과 실력으로 성장했다. 지금 이들은 오로지 지난 4년의 의정 활동에 대한 평가와 인정을 바탕으로 지역구 당선에 도전하고 있다. 4년 전 진보정당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오직 정당 투표뿐이었다면, 이제는 그 정당 투표를 기회로 성장한 두 정치인이 지역구 당선이라는 새로운 출구를 열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주목할 것은 노회찬, 심상정 후보가 노원병, 덕양갑에서 쌓고 다진 30% 이상의 지지의 의미다. 선거 결과야 개표해봐야 알 일이지만, 각종 여론조사는 두 후보가 이미 30% 이상의 지지층을 형성했음을 보여주었다.
 
한국 사회에서 “나는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절대치와 상대치가 민주노동당의 질과 양을 제한했다. 그것은 종북주의의 잔존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무너뜨리기 쉽지 않은 벽이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서울의 북쪽 끝과 경기도의 한 베드타운에서 등장한 ‘노회찬 연합’과 ‘심상정 연합’의 의미를 곱씹어보아야 한다. 비록 그것의 지속성과 견고성 여부는 미래의 시험 대상으로 남겠지만, 어쨌든 이들 연합은 노동자와 서민의 다양한 부분과 층위를 서로 잇고 있다.
 
자신을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사무직 노동자들, 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영세 자영업자들, 교육 문제와 주택 문제가 머리에서 떠날 날이 없는 주부들, 그리고 심지어는 노회찬, 심상정 후보와 함께 하는 영화인들을 보고 지지 여부를 결정한 ‘문화적 좌파’들까지, 이질성이 분리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다양성으로 탈바꿈하는 어떤 결집이 진행 중인 것이다.
 
이것은 ‘이음의 정치’다. 외국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노동계급을 파편화하고 분열시키는 와중에 그에 맞서는 시도로 ‘이음의 정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주요 무대는 세계화가 작동하는 바로 그 중심 무대, 즉 대도시였다. 그래서 이것을 달리 말하면 진보적 도시 정치가 된다. 전통적인 산업도시, 즉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과거에 형성된 공통성을 계속 유지하는 데 머무는 게 아니라 세계화의 연결 지점 역할을 하는 대도시를 무대로 다양한 관심과 이해관계, 정체성을 서로 연결해 뭔가 새로운 공통성을 만들어가는 정치.
 
진보신당은 ‘진보의 재구성’을 표방한다. 그렇다면 수도권 지역구 후보의 당선만큼 이 당의 출발에 잘 어울리는 사건도 달리 또 없을 것이다. ‘진보의 재구성’의 핵심 내용에 속하는 ‘노동자  서민의 연대의 정치’, ‘진보적 지방 정치’가 수도권 지역구 당선이라는 문을 통해 비로소 구상과 논쟁의 세계가 아닌 실천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전진 여부는 항상 양이 아니라 질에 따라 가늠해야 한다. 지금 그 질의 판단 기준은 17대 총선에서 달성한 숫자와의 단순 비교도 아니고 영남 벨트의 수성 여부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수도권 지역구에서 부는 진보신당 노회찬, 심상정 후보의 심상치 않은 바람이다.

   
ㅇ 04-13 허세욱 동지 1주기
 
죄송합니다. 

늙은 전태일에게 (레디앙, 2008년 04월 12일 (토) 09:37:56 송경동 / 시인)
[기고-시] 허세욱 아저씨 영면 1주기를 맞아
 
난 당신이 위대해지는 것도
거룩해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거룩한 것들은
민중의 피와 땀 위에 세워진 허상이었다
거짓을 위한 동상이었고
대중을 무지로 이끄는 아편이었고
진실을 가리는 방패막이었다
누군가의 비겁과 위선과 체면을 위한 그럴듯한 수단이었다
그것을 위해 이 시를 읽어야 한다면
나는 거부하겠다. 당신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
안성평야에서 땅 한 평 없는 9남매 중 다섯째였고
리어카를 끌던 열다섯 어린 시장배달부였고
마흔에 갈 곳 없는 철거민이었고
쉰 넘어까지 월셋방 혼자 살며
죽어라 악셀을 밟던 택시운전수였다
 
더더욱 당신은 죽지 않았다
여기 살아 있다. 나는 오늘도 당신을 만난다
최저임금 쟁취 택시공영제 실시를 외치며
오늘도 콘테이너로 모여드는 가난한 운짱들 속에서
100일째 고공농성중인 인천 지엠대우 비정규직 천막에서
1년이 넘어가는 광주시청 비정규직청소부 아주머니들의 천막에서
노숙 1000일을 내다보는 기륭전자 천막에서
또 그렇게 싸우고 있는 코스콤에서 콜텍에서 콜트에서
한국합섬에서 코오롱에서 이젠텍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당신을 만난다
말을 아끼며 순박한 당신을 만난다
걱정스럽게 천막을 들춰보고 가는 당신을 만난다
떡봉지를 과일봉지를 놓고 가는 수줍은 당신을 만난다
당신은 그렇게 생전과 다름없이 어디에나 있다
국제반전행동의 날이 열린 서울역 앞
용산 국방부 앞, 홍제동 대공분실 앞
투쟁과 연대가 있는 곳이면 당신은 어디나 나타난다
나는 당신을 고양시 가로수에 목을 멘
붕어빵노점상 이근재 씨 빈소에서 보았고
인천에서 당신처럼 불길로 타오른
전기일용노동자 정해진 열사 빈소에서도 보았다
뉴타운개발에 밀려 외곽으로 쫒겨가는
가난한 이삿짐 일을 돕고 있는 당신을 보았고
새벽2시 시청역 노숙자들 곁에서 새벽5시 인력시장에서
오후 7시 떨이를 외치는 재래시장 좌판 앞에서
발길 돌리지 못하고 물끄러미 서 있는 당신을 보았다
 
당신은 그렇게 모든 소외된 자리
모든 투쟁의 자리에 함께 있다
자리에서마다 당신은 말한다
평등과 평화가 있어야 한다고
한미FTA는 이 모든 무장한 세계화 세력들이
노심초사 꿈꾸는 이 땅 식민의 완결판이라고
보라. 동지여. 이 거대한 자본의 감옥
폭력의 전장, 소외의 정신병동에서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가 누가 있는가라고
당신은 살아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죽어 있냐고
자본과 제국에 종속된 죽은 삶을 깨치고
이제 그만 산 목숨으로 돌아오라고
안타깝게 묻고 있다. 우리들이 알아서 죽고 죽이는 일상적 죽음들이
차근차근 금이 되고 화폐가 되고 증권이 되어
집문서 땅문서 콘도별장골프장 온갖 소유문서로 쌓여
단 몇 사람의 금고에 1조, 2조, 3조, 4조로 쌓여가고 있는데
초등학교 교과서만도 못한 상식에 절어 무얼 하고 있느냐고
세련된 족쇄일뿐인 현실에 매여 무얼 할 수 있겠느냐고
왜 오지 않은 다른 세상을 꿈꾸지 않느냐고
왜 연대하지 않느냐고 묻고 있다
왜 절규하며 새롭게 태어나 나아가지 않느냐고
묻고 있다. 대답해 달라고
 
대답하라. 산 자여!
대답하라. 죽어 있는 자들이여!

  
ㅇ 04-14 멀티태스킹을 버려라, 나에게 주는 충고 
 
나는 대학에 들어온 다음부터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나의 자랑으로 삼아 왔다. 알고 봤더니 전세계를 휩쓴 멀티태스킹의 신화가 시작된 것과 일치한다. 그런데 리사 헤인버그는 '성공을 만드는 강력한 힘, 집중'에서 가치 있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새 공부를 할 때 보면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못하겠더라. 특히 TV를 켜놓고 공부하는 짓은 못할 것이다. 이게 멀티태스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책이 말하고 있는 세 가지 충고, 멀티태스킹을 버리고 청킹을 하라, 한 가지 위대한 일을 하라, 버려라라는 것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겠다. 
 
시간 쪼개 한가지에 집중하라 (문화일보, 최현미기자, 2008-04-14)
멀티태스킹은 잘못된 신화다… 신간 ‘성공을 만드는 강력한 힘, 집중’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에 매달렸는데도 막상 퇴근할 때가 되면 일을 별로 안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가정 생활과 개인 일까지 미뤄두고 직장 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되돌아보면 나이만 먹었을 뿐 그다지 남는 것이 없어 불안하고 안타깝지 않은가? 미국의 성공학 컨설턴트 리사 헤인버그는 만약 당신이 이 질문에 대해 ‘그런 적이 있지’, ‘가끔 그래’ 혹은 ‘지금도 그래’라고 답을 한다면, 당신은 심각하게 ‘집중’에 대해 점검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는 최근 ‘성공을 만드는 강력한 힘, 집중’(마젤란)이라는 책에서 20여년 전부터 전세계를 휩쓴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의 잘못된 신화 때문에, 직장인들이 직장에서 불필요한 일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며 진정한 성공을 위해서는 쓸모없는 일, 의미 없는 프로젝트, 관습적인 스케줄을 과감하게 버리고, 가치 있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성공을 위한 ‘집중’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결심”이라며 자신에게 중요한 목표와 일에 집중하기 위한 3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그의 충고를 정리했다.
 
#멀티태스킹을 버리고, 청킹(chunking)을 하라
심하게 말하면 많은 것을 동시에 하는 멀티태스킹은 이제 쓸모가 없다. 온갖 커뮤니케이션 기술들의 발달로 더욱 확장된 멀티태스킹은 끔찍한 수준이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서조차 에너지와 열정을 빼앗아버린다. 관심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려면 그 만큼 시간을 소비하게 되고, 원래의 일로 관심을 돌려 일의 속도를 내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몇 번씩 방해를 받으면 매일 몇 시간씩은 잃어버리는 셈이다. 직장인들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제대로 완수하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제 직장인들은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시간의 일부를 잘라내서 한 부분에 집중’하는 ‘청킹’을 해야 한다. 하루를 일정한 덩어리로 나눠 그 시간 만큼은 하나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두시간 정도의 작은 단위로 시간을 묶고, 익숙해지면 시간을 점점 늘려 긴 시간으로 청킹을 하라. 하루에 한두시간 쯤은 세상과 단절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때만큼은 휴대전화를 끄고, e메일 창을 닫고, 사무실 전화를 자동응답 형태로 돌려놓으라. 팀원과 동료들에게 당신이 지금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라. 스케줄 표에 청킹 시간을 미리 표시하고 다른 일정을 잡지 말라. 몇 시간을 집중해서 혼자 일하고, 나머지 시간들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 된다.
 
# 한가지 위대한 일을 하라
하루에 한가지 위대한 일을 하도록 노력하라. 위대한 일이란 당신이 하는 모든 일과 연관이 있고, 그것을 마쳤을 때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키는 일을 말한다. 훌륭한 일은 삶의 진보를 가능하게 한다. 요즈음 직장인들은 너무 많은 종류의 다양한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일을 모두 형편없이 처리하는 것보다 몇가지 일을 제대로 하는 편이 낫다.
 
해야 할 일이 가치 있는 일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다음의 ‘3단계 필터’를 써라. ‘3단계 필터’는 1단계 ‘올바른 업무’, 2단계 ‘올바른 시간’, 3단계 ‘올바른 위치’ 필터로 이뤄져 있다. 먼저 1단계에서 이 일이 적절한 일인지, 또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 생각하라. 많은 일들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1단계를 통과하면, 2단계에 들어가 지금이 일을 할 적절한 시간인지, 이 일이 우선순위에서 상위에 있는지 생각하라. 또 많은 업무가 이 필터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2단계까지 통과한다면 3단계 질문을 던지면서 점검을 하라. “누가 이 일을 해야 할 것인가. 당신인가”라며. 이렇게 3단계 필터를 거친 일들을 가지고, 짧게 해야 할 일의 리스트를 만들어라. 이 리스트의 제일 위에 오늘 당신이 해야 할 가장 위대한 일을 적으면 된다.
 
#버려라
지속적으로 자신의 삶의 목표, 직장 생활의 목표에 대해 점검하고,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수행과제, 업무에 대해 의문을 가져라. 의미 없는 목표라면 가차 없이 폐기하고, 이전에 가졌던 열망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면 버려라. 큰 목표가 바뀌면 현실성 없거나 효과가 의심스러운 프로젝트도 바꿔라. 사람들은 대부분 목표를 너무 오래 붙들고 있다. 목표의 폐기 여부에 대한 판단이 어려우면 ▲나는 어떤 일에 가장 관심이 있는가 ▲나는 왜 이 목표를 세웠나 ▲어떤 일에 가장 열정을 느끼는가 등을 차례로 자문해 보라. 많은 직장인들은 자신이 이제까지 투자한 시간, 에너지, 자원이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버려야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삶은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집중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하나의 일이 더 중요하다.
 
 
ㅇ 04-15 브이 포 벤데타를 보다 잠들다
 
어제 밤에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OCN에서 브이 포 벤데타를 하는 걸 보다가 잠들었다. 이 넘의 잠은 이길 수가 없다. 잠든 시간은 12시가 채 되지 않았고, 지금 일어난 시간은 5시 15분. 이제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몸에 밴 것인가
 
브이 포 벤데타에 대해 다룬 글 2개를 소개한다. 하나는 씨네21에 나와 있는 것인데, 링크를 따라가면 관련된 다른 기사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홍성준 동지가 쓴 상당히 자극적인 글이다.  
 
 <브이 포 벤데타> 읽기 [1] - 자극적이지만 공허한 영웅담 (글 : 짐 호버먼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 <빌리지 보이스>) | 2006.04.12)  
 
* 제목 :  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
* 감독 : 제임스 멕테이그
* 주연 : 나탈리 포트만 (이비 해몬드 역), 휴고 위빙 (브이 역)
* 기타 : 제작 - 미국, 독일  |  장르 - 액션, 드라마, SF, 스릴러  |  상영시간 - 132 분  |  개봉 - 2006.03.16.
 
* 줄거리
가까운 미래, 2040년, 영국은 외관상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지고 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은 정치이견, 타종교, 개인의 성적 취향 등 국가가 제시하는 것과 다를 경우 "정신집중 캠프"란 곳에 끌려가 강제수용되었고, 거리에는 통금, 언론은 통제상태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다수의 민중은 평온하다고 믿는 것이다.
 
여 주인공 이비는 통금을 어기고 야간외출을 하다가 공안 기관원들에게 체포될 위기에 처한다. 이 때, 가면을 쓰고 나타난 V에 의해 구출되고 그 와의 인연이 시작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직장에서 다시 체포위험을 겪고 국가로부터 추적을 당한다. 결국 V의 집에 머무르면서 이비는 자신의 가족사(사회운동을 했던 부모가 국가에 의해 정신캠프로 수용되고 살해된 것)는 물론, 이 사회가 "조작된 테러의 공포"에 의해 민중이 배제된 독재권력이 탄생되었고, 다시 그 권력을 위해 이 사회가 통제되는 시스템을 이해하게 된다.
 
이비는 V와 함께 현 국가체제의 전복을 위해 전위활동에 나서게 되었다. 드디어 민중들은 무장한 국가권력에 맞서 봉기하였다.  거리와 광장은 민중들에 의해 장악되고 해방의 날은 축제처럼 화려하게 화면을 장식한다. 한편, 그 때까지 투쟁의 전위(前衛)였던 V는 민중들과 함께 해방의 날을 맞이하지 못하고 영국의 의사당 폭파의 화염속에서 장렬히 산화한다.
 
* 소개이유
이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작게는 명대사들에 있다. 대사에는 세상을 조롱하는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멕베스>, <헨리 5세>의 대사, 복수를 노래하는 몬테크리스토 백작, 세상의 정의를 갈망하는 윌리엄 브레이크의 시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 영화가 주는 큰 줄거움은 바로 우리가 보는 세상을 잘 묘사하고 있다는 데 있다. (결코, 가상현실이 아니다!)즉, 국가는 어떤 방식으로 우리민중들을 통제하고 있는 지, 언론과 의회의 기능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미국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9.11 테러의 주범이 바로 미국 부시정권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최근의 포항건설노동자 하중근열사의 죽음과 은폐된 진상을 연상해 보면 국가는 어떤 방식으로 권력을 강화하고 존재하는 지를 이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고 보여진다. 즉, 공포를 조장하여 민중들을 겁을 주어 통제하고, 그 통제에 작은 저항이라도 철저하게 배제하는 권력양태는 영화 속 영국이나 현실의 영국, 그리고 대한민국과 미국, 지구상 어디나 같을 것이다.
 
한편, 내게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짜릿한 즐거움은 오로지 솔직히 이 하나이다. 바로,  체.제.전.복! 
 
영화에서 등장하는 대사가 있다.
Remember, remember!  기억하라, 기억하라!
The Fifth of November 11월 5일을.
The gunpowder treason and plot
I know of no reason why the gunpowder treason
Should ever be forgot   그 사건은 결코 잊혀져선 안 된다.
(여기서 그 사건이란, 1605년 11월 5일 영국왕정 전복을 위한 가이 포크스의 영국의회 폭파음모사건)
즉, 영화는 이 매트릭스(사실, 주제가 같다!) 같은 통제된 체제의 전복 가능성을 계속해서 말한다.
 
여기서, 체제전복이 존재목적인 V란 누구이며, 무엇을 말하는 가?
불타며 폭발하는 국가기관, 특히 브르죠아 의회 앞에서 환호는 민중들을 보면서, 여 주인공  이비는 말한다.
희망찬 전위 Vanguard,  단호한 폭력 Violence,  과거의 흔적 Vestige,  철저한 복수 Vendetta, 전망의 제시 Vision,  결정적인 승리 Victory,  고귀한 희생 Victim...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V는 누구인가? Who is V?
"그는 나의 아버지였고, 또 어머니였고, 나의 동생이었고, 당신이었고, 그리고 나였어요. 우리 모두였어요."
 
영화감상 후 나는 상상한다.
"대한민국"과 "노동"의 통제를 거부하고 스스로 전위가 되어 투쟁하는 민중들이 모두 V가 되어 온 거리와 광장에 물결을 이루는 해방의 날을. 
 
ㅇ 04-15 해방연대의 총선 평가 글 
  
- 좋은 말씀을 하시는데, 이게 현실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을지... 단지 평론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 글에 붙은 댓글도 당연하달 수밖에... 그런데 진보신당이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노동자정치세력화 실패와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참세상, 문창호(해방연대(준) 회원)  / 2008년04월14일 11시19분)
[기고] 18대 총선 평가와 과제
 
- 계급전사님의 글에 달린 댓글 하나. 
  
거참, 심, 노에게는 무슨 말을 하면 안되는 건가요?
우리는 이명박, 노무현 개인을 거론하면서 성명서를 쓰기도 하고, 인터넷상에서 글을 자주 씁니다. 그 때 이명박, 노무현은 개인이 아니라 그로 대표되는 경향이나 세력을 의미하지요. 보존협회님의 논리에 의하면, 그렇게 하면 안되고, 국민을 향해 해야하는 거겠네요.
 
계급전사님이 노회찬, 심상정의 공약에 대해 비판할 때 당원들이 아니라 노, 심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크게 잘못되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더라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아먹으니까요. 거기에서 글이 향한 대상이 문제가 될까요?
 
물론 당원을 향해서 얘기하면서 함께 논의하는 출발점이 되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저는 보존협회님이 비본질적인 것으로 계급전사님이 말씀하시는 논지를 흐리고 있다고 보이네요.
 
글쓰고 말하기 전에 신중해야 함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보존협회님의 글이 소통의 통로를 아예 막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함부로 배설해서도 안되겠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의견을 거침없이 표출할 수 있어야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을까요?
 
ㅇ 04-15 국토해양부의 코드 맞추기
 
뉴타운에 이어서 그린베트 해제 또한 한나라당의 헛공약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국토해양부는 총선이 끝나자마자 부동산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정부의 선제적 대응조치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총선 전에는 그런 선제적 대응 조치가 불필요했던가.
이 넘들 하는 짓이 뻔하지. 국토해양부의 코드 맞추기는 어디까지 계속될까.
 
'그린벨트'도 총선 헛공약?…국토부 "해제 없다" (프레시안, 김하영/기자, 2008-04-15 오전 8:58:56)
부동산 시장에선 이미 해제 기대 심리 팽배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14일 "개발제한구역 해제는 이미 확정된 권력별 광역 도시계획에 따라 일관되게 추진 중인 사항"이라면서도 "그린벨트 추가해제 및 해제권한의 지방자치단체 이양 게획은 검토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2020년까지는 추가 해제 물량인 142㎢는 점차 해제가 되지만, 나머지 3820㎢는 해제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총선 공약을 발표하며 "우리나라의 도시용지는 전국의 6.2% 수준에 불과한데 도시용지를 2020년까지 9.2%로 늘리겠다"며 "도시외곽의 농지, 산지를 활용하며 관리지역 내 개발가용지도 최대한 확보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그린벨트와 군사보호구역 해제 등을 구체적 예로 들기도 했었다.
 
한나라당은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을 내걸고 있는데, 과밀 상태인 수도권에서 새 땅은 그린벨트나 군사보호구역 외에는 찾아볼 수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부동산 시장에서는 수도권 및 기업규제 완화책으로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가 불가피하지 않겠냐는 심리가 팽배하다.
 
[기자메모]‘집값잡기’ 총선 전엔 왜 안했나 (경향, 박재현 산업부, 2008년 04월 13일 19:03:16)
 
정부가 지난 11일 강북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노원구 등을 주택거래신고지역으로 지정하고 관계부처 합동 투기단속반을 투입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국토해양부의 올해 1·4분기 집값변동률을 보면 노원구 10.3%, 도봉구 4.7%, 강북구 2.8% 등으로 서울 평균(2.8%)보다 훨씬 높다. 특히 노원구의 상승세는 강북 집값을 선도했다.
 
그러나 왜 이 대책이 나온 시점이 지금인 지 이해하기는 힘들다. 노원구의 집값이 초강세를 보인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올 들어서는 민간 부동산정보업체들이 아파트 시세조사를 포기할 정도로 담합행위가 심각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집값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던 정부의 태도가 갑자기 돌변했다. 관계부처가 이구동성으로 “개발호재·담합 등에 투기수요까지 더해지면서 가격급등을 초래했다”면서 “서민주거 부담을 가중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사이 상황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4·9 총선이 끝난 것밖에 없다. 국토부는 선거 이틀 전 광역급행버스 운행 등으로 출퇴근 시간을 30분 줄이고 교통요금도 낮추겠다는 수도권 교통대책을 발표했다. 총선용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지만 “교통분야는 그 특수성상 스피드 있는 정책 시행이 필요하다”며 발표를 강행했다. 

  
ㅇ 04-15 노동계급 중심성 
 
진보정당을 건설하는데 있어 노동계급 중심성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은 대부분의 활동가라면 인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 진보신당의 경우 노동계급 중심성마저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를 언급할 때마다 알르레기 반응을 일으키는 이들 앞에서 무슨 진보의 재구성, 진보정당의 새로운 밑그림을 말할 수 있겠는가. 
 
'노동계급 중심성'만으로는 부족하다 (레디앙, 2008년 04월 15일 (화) 14:01:11 장석준 / 진보신당 정책팀장)
[기고] 새 진보정당의 밑그림 논의 전 확인할 것들…이념연합에서 화두연합으로 
  
이제 새 당 건설이 현안이 된 시점에서는 그것보다 한 발 더 앞서 나가야 한다. 이제는 새로운 것이 과연 어떤 점에서 새로워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 성찰은 민주노동당 해체 국면에서 쏟아진 진지한 반성들보다도 더 근본적인 지점을 겨냥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세계 자본주의의 점이 지대에 속한다. 점이 지대란 곧 세계 자본주의의 어떠한 전형적 분류에도 속하지 않는 지역을 뜻한다. 중심부도 아니고 주변부도 아닌 경계 지대. 여기에서는 세계 체제의 서로 다른 공간, 세계사의 서로 다른 시간이 공존하며 교차하고 접합된다. 그래서 이 점이 지대에서는 교과서적인 변혁 노선이 작동하지 못한다. 이런 노선은 대개 세계 자본주의의 보다 전형적인 지역에서 발전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바꿔야 할 세계는 또한 ‘우리’다. 세계를 변혁하자면, 세상을 바꿀 그 주역들이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을 우선 바꿔야 한다. 우리의 경우, 다시 말하면, 한국인, 한국의 대중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문제다. 그런데 교과서들이 전혀 답해주지 못하는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즉, 한국 사회가 세계 자본주의의 점이 지대이고 그래서 중층적, 복합적 모순을 지닌다는 것은 어찌어찌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복잡한 생각들을 어떻게 바꿀지는 영 오리무중이다. 이 벽 앞에서는 복지국가를 만들어보자는 호소도, 세상을 뒤엎자는 선동도 한 걸음을 더 내딛지 못한다.
 
총선 끝나고 새 당 건설이 화제로 떠오르면서 대뜸 나온 게 ‘노동계급 중심성’, ‘진보의 다원주의’ 이런 말들이다. ‘노동계급 중심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진보정당이라고 볼 수 없다며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 등등’을 이야기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고, 반대로 이런 주장을 낡은 교조주의로 치부하면서 과거의 용어나 관행이 반복되는 데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진보정당운동에 항상 등장하는 이념 노선 논쟁이 이번에도 역시 예외 없이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
 
좌파정당에서 이념 노선 논쟁이 벌어지는 것 자체를 흰 눈으로 봐서는 안 된다. 그런 논쟁 속에서 특정한 이념과 노선들의 연합이 등장할 것이고, 그것이 당의 골간이 될 것이다. 어떠한 좌파정당이든 처음 출발할 때는 다 이렇게 이념 노선 연합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다만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이 이념 노선 논쟁이라는 게 다시 한 번 ‘교과서’들의 쟁투가 되는 것이다.
 
마땅히 중심이 되어야 할 그 노동계급은 지금 한국 사회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런 노동계급이 존재하기는 하는가? 중산층의 일부로서 입시 전쟁과 집 값 상승 게임에 뛰어든 임금 소득자와, 최저임금 언저리에서 기간제 일자리를 전전하는 임금 소득자는 과연 지금 서로를 같은 편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과연 둘 사이의 강이 자본가와 전체 임금 소득자 사이의 바다보다 더 좁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래서 ‘노동계급 중심성’ 주장 자체를 타박하자는 게 아니다. ‘노동계급 중심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분들은 이제 그 푯말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기 전에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중심에 설 그 노동계급 자체를 존재하게 하는 일이다. 즉, 현실의 수많은 파편화된 집단들을 노동‘계급’으로 통일할 구체적인 전망과 포부, 전략과 계획을 먼저 제출해야 한다. 이게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의 입장권이다.
 
혁명의 주체가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한국 사회에는 개혁의 주체 또한 부재하다는 게 진짜 문제다. 개혁주의 노선에서 비롯된 호소들(대개 ‘복지 확대’로 수렴된다)은 그 호소에 응할 것으로 상정된 주체들 자신에 의해 거부당하고 있다. 그 주체들은 그러한 집단적 문제 해결이 가능하리라고, 바람직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새 진보정당이 다가가 설득하고 손을 맞잡아야 할 사람들은 바로 이 만인 투기 경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있는 그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어떻게 공공재의 확대를 통한 집단적 문제 해결을 설득할 수 있을까? 대중성과 현실성을 강조하는 분들 역시 ‘대중성’과 ‘현실성’을 또 다른 푯말로 들이댈 게 아니라 그 설득의 방략과 실행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노동계급 중심성?' 좋다. 하지만 그것을 말하려면, 노동계급 통일의 전략, 이를 위해 지금까지의 노동운동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실천을 감행하겠다는 계획을 함께 보여줘야 한다. ‘보다 대중적이고 현실적인 노선?' 좋다. 하지만 그것을 주장하려면, 대중의 교육 및 주거 욕망을 파고들어 헤집고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을 열어놓을 구상과 계획을 반드시 구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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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2 12:00 2008/05/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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