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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두번째 소설집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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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소설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문학과지성사. 1999.
  
헌책방에 갔을 때 찾아보는 소설이 있다면 김영하와 성석제의 소설이다.
사실 김영하는 최근 조선닷컴에서 연재소설 '퀴즈 쇼'이 연재된 것을 발견하게 된 후 실망하게 되었지만, 이미 사놓은 책이니 읽어보는 것이다. 
   
이 소설집은 호출에 이은 김영하의 두번째 소설집이고, 내가 읽은 두번째 소설집이다. 호출을 읽었을 때보다는 감흥이 조금 덜하다. 그래서인지 작가 후기에서 김영하는 두번째 소설집을 묶는 지금, 좀더 독해지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피력한다. 그가 말하는 담배 같은 소설이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담배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유독하고 매캐한, 조금은 중독성이 있는, 읽는 자들의 기관지로 빨려들어가 그들의 기도와 폐와 뇌에 들어붙어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호흡을 곤란하게 하며 다소는 몽롱하게 만든 후, 탈색된 채로 뱉어져 주위에 피해를 끼치는, 그런 소설을 쓸 수 있기를, 나는 바랐다. (285쪽) 



첫번째 나오는 “사진관 살인 사건”은 예상한대로 전개된다. 사진관 살인 사건이 영화 '주홍글씨'의 모티브가 되었다던가. 갑자기 한번도 실물을 본 적이 없는 이은주가 생각난다.
  
"흡혈귀"에 나오는 흡혈귀는 내가 꿈꾸었던 이라고 해야 하나. 흡혈귀 옆지기의 사정이 조금 안타깝긴 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흡혈귀처럼 사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섹스보다 이렇게 안고 있는 게 좋다. 이게 영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세상의 시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를 안고 있으면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다도 다른 몸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 벌레라도 상관없다. 지금의 내 몸을 나는 증오한다." (67쪽)
 
위의 말은 흡혈귀로 여겨지는 주인공의 말이다. 한마디로 배부른 투정이라고나 할까. 세상에는 지나침보다는 부족함으로 인해 절망하는 이들이 많다. 나는 전자일까, 후자일까. 아니면 둘다 아닐까.
 
"바람이 분다"에 나오는 만남이 누구에게나 가능할까. 나는 여기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그렇게 단순하게 살기도 어렵고, 갑작스레 훌쩍 떠나지도 못한다. 이런 나에게도 바람이 불 수 있을까. 소설의 '나'는 현실의 나와도 비슷하긴 한데 나는 '나'만큼 뭔가 '저지르지'는 못한다. 범생이라서 그런가.
 
소설에서 그녀가 아무 말 없이 결근하자 '나'는 아주 오래 전에 누군가를 기다려본 경험을 떠올린다.
 
끝까지 나타나지 않는 사람을 증오하며, 그 사람을 증오하는 자신을 증오하며, 증오하면서도 증오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실없음을 증오하며 나는 아주 오래도록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83쪽)
 
하지만 나는 이런 경험이 너무 많다. 내 진심을 알아주었으면 할 때가 많은데, 그는 전혀 이런 맘을 모른다. 이심전심은 이럴 때 적용되지는 않는다. 
 
음식을 먹으면서 누군가를 바라보는 일에는 감정이, 때로는 감상이 개입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건 연인이나 가족이 하는 일이다. (85쪽)
  
나는 이런 감정이 생길까봐 상대방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나 보다. 아마 상대방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면 별 다른 감정이 생기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런 CD가 좋다. LP의 추억 따위를 읊조리는 인간들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LP의 음은 따뜻했다고, 바늘이 먼지를 긁을 때마다 내는 잡음이 정겨웠다고 말하는 인간들 말이다. 그런 이들은 잡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잡음에 묻어 있을 자신의 추억을 사랑하는 것이고, 추억을 사랑하는 자들은 추억이 없는 자들에 대해 폭력적이다. (86쪽)
 
OK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에 나온 것처럼 '살다 보면 이상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아침부터 어쩐지 모든 일이 뒤틀려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하루종일 평생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들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하나씩 하나씩 찾아온다.' (101쪽)
   
그런 날은 자신의 얘기를 다른 이들에게 말을 해주어도 모두 귀찮아하고, 나도 말하는 게 조리가 없어진다.
  
엘리베이터에 한 여자와 갇혀지내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나라면 어떻게 할까. 역시 주인공처럼 당황해하다가 좋지 않은 인상만 남길 듯하다.
  
“피뢰침”은 벼락을 맞아본 사람들의 모임을 소재로 했다. 그런 모임이 있을까. 벼락을 맞고 살 수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안 것이다. 벼락을 맞는 희열이 가능한가. 나는 두려워서도 그리 못할 것 같다.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한번쯤 잊지 못할 경험을 한다. 문제는 그 경험이 아주 짧고 강렬했을 때 발생한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디테일들은 부정확해지고 나중엔 그런 일이 정말로 있었나 싶은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그 잊지 못할 일을 이야기로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한번 언어로 만들어지면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보통 다소의 윤색이 가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내 경우는 조금 달랐다. 그 짧고 강렬한 순간이 지나가고 난 후, 까닭 없이 죄의식을 느꼈던 것이다. (125쪽)

 
내 경우는 전자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기보다는 문서로 남긴다. 그 문서도 다소 윤색된다. 엄밀한 사실을 담고 있지는 않는 것이다. 물론 문서들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비상구"의 '나'와 같은 삶은 상상할 수는 있으나, 나의 삶과는 거리가 있다. 나는 스무 살 때 뭘했을까나. 여기에 나와 있는 소설들은 이전 소설집 '호출'의 상황보다 더 현실적이다. 하지만 리얼리즘의 틀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해설에서 백지연이 말했듯이, '"비상구"가 전하는 메시지는 희망이 거세된 세계가 보여주는 인생의 아이러니 그 자체에 있다'는 것에 동감한다.
 
내 나이도 올 겨울만 지나면 스물하나가 된다. 오토바이 타고 장난칠 때도 지났고 삐끼질 할 짬밥도 아니다. 조직에 들어가서 허리 굽히고 살기도 싫다. 집구석으로 들어가는 건 더 좆같다. 집에 가봐야 눈칫밥밖에 더 먹나. 괜찮은 년 하나 있으면 살림 차리고 씨팔, 이삿짐이라도 날라볼까. 하루 일당 십만 원이면 뺑이야 치지만 삐끼보다는 낫다. (172쪽)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과 "당신의 나무"는 무대가 한국이 아니라 외국이다. 그래서 따로 할 얘기도 없긴 하나, 아래 구절이 인상적이라서 옮겨온다.
  
세상 어디는 그렇지 않은가. 모든 사물의 틈새에는 그것을 부술 씨앗들이 자라고 있다네. 지금은 이런 모습이 이곳 타 프롬 사원에만 남아 있지만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밀림에서 뻗어나온 나무들이 앙코르의 모든 사원을 뒤덮고 있었지. 바람이 휭 하니 불어와 승려의 장삼을 펄럭였고 당신의 땀을 증발시켰다. 승려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그때까지 나무는 두 가지 일을 했다네. 하나는 뿌리로 불상과 사원을 부수는 일이요, 또 하나는 그 뿌리로 사원과 불상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버텨주는 일이라네. 그렇게 나무와 부처가 서로 얽혀 9백 년을 견뎠다네. 여기 돌은 부서지기 쉬운 사암이어서 이 나무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흙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 사람살이가 다 그렇지 않은가. (261쪽)
  
"고압선"은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자 사라지게 되는, 투명인간이 되는 색다른 얘기를 다룬다. 투명인간이 된다는 설정만 다를 뿐,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되는 나에 관한 것이다. 지금의 나도 그렇게 되고 있는 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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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3 22:26 2007/06/03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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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강호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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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화책을 집어들었다.

연구실에서 걸어오는 길에 21세기 소년이 곧 완간된다는 소식(이전에도 많이 나온 말이어서 확실하진 않다)을 ㅎㅅㅇ님에게 말해준 것을 생각하다가 만화방에 들려 열혈강호를 빌렸다. 사서 봐야겠지만, 아직은 소장용 만화를 살 정도의 매니아는 아니라 그냥 대본소를 이용한 것이다.

 

책 이미지

이쯤해선 완간이 되었거니 하고 봤는데, 44권으로 계속이라는 표시가 올 4월 중에 나온 43권 마지막에 나오더라.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결국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는 31권 정도부터 빌려보기로 결심.

 

만화방에서 보는 건 시간당 천원이고, 빌려보는 건 권당 300원. 이 정도면 만화가게를 해도 수지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왜 내가 예전에 다녔던 단골 만화가게들은 없어졌을까. 하긴 그래서 만화를 보지 않게 되었지만 말이다.

 

전극진, 양재현의 폭소무협은 여전하다. 한비광, 담화린은 참 멋있는 캐릭터이다. 근데, 이것도 실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렇게 설익었던 녀석이 갈수록 내공이 깊어지는 건, 부럽기만 하다. 보면서 나와 동일시되는 이들은 그 사건의 와중에 몇 마디 던지고 사라지거나 헛소리하다가 저승길로 가는 넘들이니, 거참...

  

12시가 조금 못되어서 보기 시작해서 3시가 조금 넘어서까지 13권을 본 셈인데, 4,000원이 못되는 돈으로 집에서 배깔고 누워 낄낄대면서 맘편하게 볼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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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31 03:56 2007/05/31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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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참견 0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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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전도연의 칸 여우주연상 수상
  
방송에서 계속 설레발을 치길래 받을 줄 알았다. 솔직히 <밀양>이 그리 재미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스타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도연이나 송강호의 연기력은 봐줄 만한 것이고, 그것이 이번에 인정을 받았을 것이다.
오동진씨는 첫 기사에서 중국, 일본을 제치고 세계정상에 우뚝 섰다는 등의 표현을 써서 이 아저씨의 글 맞아 하는 생각까지 들게 했지만, 아래 글을 보니 그건 속보성 기사여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 많았을 것이라는 이해를 하게 된다.
이전에는 전도연이 내 옆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 굉장히 멀리 가버린 느낌이다.  
   
칸의 성과, 그러나 남은 과제들 (프레시안 무비, 오동진/편집장, 2007-05-28 오후 4:20:17)
[특집] 여우주연상 수상 계기로 해외시장 진출 적극 모색해야
 
  
ㅇ 제헌의회 수준의 강령이 필요하나...
  
임승수 당원은 베네수엘라에 관한 책을 내면서 전문가로 자리매김하였고, 그래서 여기저기 불러다니고 글도 많이 쓰긴 했는데, 이번에 민주노동당에서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방문단을 꾸리면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충분히 이용당하고 차였다고나 할까. (이건 임승수님께서 사실관계가 잘못되었다고 전해주었다. "이번 베네수엘라 방문은 제가 안간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까지 같이 가자는 제의를 받았지만 제가 거절했지요." 전해들은 얘기를 옮기다보니...ㅡ.ㅡ;;)
자민통에서 베네수엘라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마 북한과 유사점을 발견해서일 것이다. 현지 분위기가 어떠한지는 아직 뭐라고 판단내리지 못하겠다. 다만 차베스라는 한 개인에 의존한 혁명이라는 건 위험하다는 것.
 
임승수 당원의 글이 참세상에 실린 것을 어떻게 봐야할지... 참세상과 코드가 맞는 건가. 아님 베네수엘라에 대해 글을 써줄 필자가 없는 건가. 하긴 임승수 당원의 색깔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자민통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금천지역위에서 분란 없이 지내는 것을 보면 좌파라고 하기도 어려울 듯 싶고... 이런 잣대를 들이대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가.
   
임승수가 제헌의회의 문제에 천작하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포인트가 잘못 잡혀 있다. 제헌의회를 내건다고 해서 새로이 국가기구를 구성하는 계기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글에서는 룰라와 비교를 하고 있고, 나 또한 룰라에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베네수엘라와 브라질을 동일선상에 놓고 파악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국가가 활용할 수 있는, 석유와 같은 자원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민중의 힘을 이끌어내는 건 쉽지 않다. 남미의 좌파 바람은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의 재창당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이유는 많이 다르다. 의회주의로의 경도는 아직 우려할 만한 단계가 아니다. 미흡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민주노동당의 문제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자민통 계열의 뻘짓이 당을 말아먹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는 당이 제대로 서려면 하루빨리 자민통과 갈라서야 한다고 본다. 그들과 협력, 연대를 할 수 있지만, 그와 함께 당을 만든 것은 커다란 실수였다. 다시 당을 시작하기 어렵다고, 조그마한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고 이에 집착해서는 점점 더 사태를 키울 뿐이다.
 
나아가 중남미와 우리는 많이 다르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경험을 벤치마킹하면서도 우리의 특수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전세계적인 운동의 보편성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베네수엘라의 경험은 가려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중남미의 제헌의회 바람, 그리고 우리는? (참세상, 임승수 민주노동당 당원, 2007년05월28일 8시39분)
[기고] 민주노동당, ‘재창당’과 ‘집권전략’ 준비가 필요하다 
   
중남미에서 현재 대통령 선거 승리를 통해 제헌의회를 소집하고 있는 나라들에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이 나라들에서는 거의 항쟁 수준의 대중투쟁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미 제국주의에 의해 고통 받고 있는 것은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이 마찬가지이지만, 유독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에서 대통령 선거 승리를 통한 제헌의회 소집이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주체역량의 문제와 연결된다. 그리고, 이 세 나라에서 항쟁수준의 대중투쟁이 공통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은 바로 주체역량 형성에 있어서 핵심은 ‘투쟁’이라는 점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투쟁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것은 ‘주체역량’ 뿐만이 아니다. 바로 ‘지도력’이다. ‘객관적 조건’의 필연적 결과로서 형성되는 근로대중들의 분노와 슬픔, 그리고 고통이 세상을 바꾸는 일치단결된 힘으로 결집되는 것은 ‘지도력’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도력은 투쟁과정을 통해 검증되고 형성된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의 민중들이 세상을 바꾸는 일치단결된 힘으로 결집할 수 있었던 것은 투쟁과정에서 형성된 ‘지도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고 차베스(베네수엘라), 에보 모랄레스(볼리비아), 라파엘 꼬레아(에콰도르)와 같은 인물들은 바로 이 ‘지도력’의 구심역할을 하고 있다.
 
본디 ‘사회주의’라고 하는 것은 근로대중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고, 사회의 주인, 그리고 역사의 주체로서 우뚝 서게 되는 사회를 일컫는 말이다. 그 누구한테 자비를 바라고 사는 것은 ‘사회주의’가 아닌 것이다.
근로대중이 사회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과제가 제기된다. 바로 ‘국가주권’의 문제와 ‘생산수단’의 문제이다. ...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가주권’과 ‘생산수단’을 민중의 통제 하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헌의회’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존의 국가기구를 일거에 청산하고 새로운 헌법에 의거해 새로이 국가기구를 구성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바로 제헌의회인 것이다.
   
브라질의 룰라 정권이 그 많은 기대를 받고도 개혁을 한걸음도 전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게 된 주요한 이유중 하나가 바로 ‘국가주권’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룰라의 PT당은 의회에서 20% 정도만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개혁적 법안 추진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브라질의 룰라로 대표되는 세력들은 ‘국가주권’을 민중의 통제하에 두기 위한 기획 자체가 부재했던 것이다.
  
필자는 일부에서 제기하는 ‘민중경선제’의 진정성을 이해하면서도 진보와 변혁운동 세력을 묶어세우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중들은 대통령 후보의 선출권을 행사할 수 있는 한 표를 받는 것만으로 그 세력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만약에 한 표를 준다고 지지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그리고, 실상 당의 대통령 후보라고 한다면 그것은 당원들의 변혁에 대한 의지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당원들에 의해 선출되는 것이 원칙적으로 올바르다. 문제는 오히려 ‘민중경선제’가 아니라 ‘당’ 그 자체에 있다.
  
민주노동당이 실천과 투쟁과정에서 민중들의 신뢰를 얻었다면 그것은 당의 ‘지도력’으로 된다. 실천과 투쟁과정을 통해 형성된 지도력은 중요한 시기에 단결의 구심으로서 역할을 한다. 지금의 문제는 당의 ‘지도력’이 부재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필자는 현 시기에 당에 선차적으로 나서는 문제는 지도력의 복원을 위해 ‘당’을 제대로 세우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결국 ‘재창당’의 문제로만 해결될 수 있다. 진정성 있는 당원이라면 현재 당이 보여주고 있는 의회주의에 경도된 모습에 매우 우려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근로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의회’의 달콤함에 가까워지고 있는 당의 모습은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재창당’을 통해 당을 좀 더 ‘변혁적’이면서, 좀 더 ‘대중적’으로 환골탈태하는 일이 시급하다.
   
아쉽게도 지금 민주노동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온 동지들은 등따시고 배부르게 해주겠다는 식의 공약은 얘기하고 있지만, 변혁의 핵심과제인 ‘국가주권’과 ‘생산수단’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겠다는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변혁의 핵심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고서는 소위 ‘등따시고 배부르게’ 해주는 사민주의식 해법조차도 제대로 해볼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신자유주의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서유럽 사민주의 국가들을 통해 여실히 알 수 있다. 경제문제는 사실은 정치의 문제이고 결국은 권력의 문제이다. 권력을 부르주아 지배계급에 그래도 두고 떡고물을 떼어서 ‘등따시고 배부르게’ 해주겠다는 사민주의 방식은 그 한계가 명백하다.
  
중남미의 ‘제헌의회’ 사례는 ‘국가주권’ 문제에 대한 중요한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으며, ‘국유화’ 사례는 ‘생산수단’ 문제에 대한 중요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변혁을 수행할 ‘집권전략’을 내와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준비된 집권전략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새로운 공화국 건설에 대한 비젼을 제시하고 대중적 운동으로 벌여나가야 한다.
    


ㅇ 민주노총 대의원들의 압도적인 권영길 지지
 
예상했던 결과이다. 이런 조사가 왜 안나오나 했는데, 매노에서 했구나.
권영길 의원이 민중경선제에 대해 지지를 보내는 것이 다 근거가 있다. 게다가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권이 대선 후보로 뽑힐 확률이 거의 90%이다. 설마 자민통이 심, 노를 지지하지는 않을 테니...
 
물론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노가 인천연합과 전술적 제휴를 맺었다고 한다. 심과 노 모두 내년 당권에 관심이 있는 건 불문가지이고, 나름의 연고가 있는 인천 쪽에서 지역구 출마를 하면서 인천연합 쪽의 지지로 대표로 당선되면서 그에 대한 지분(국회의원 비례대표 의석으로 나타날 수 있을 거다)을 보장해 준다면 둘다 윈윈게임이 되는 것이다. 이미 서울시당 지역위의 과반수를 장악한 인천연합은 노의 튼튼한 원군이 될 것이다. 그래서 민중경선제에 대해 인천연합 쪽에서 결사 반대하는 이유도 있는 것 같고...
 
이런 것을 본다면 심이 확실하게 좌파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세우는 게 필요할 텐데, 이것저것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다. 정파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전진을 자신의 하부조직으로 생각하나 보지? 게다가 1개월 당권안은 또 뭐고?
  
권영길 블로그에서 이웃신청을 해와서 네이버블로그의 이웃을 하긴 했는데, 솔직히 권은 이번에 출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을 진정 생각한다면 말이다.
3명의 후보 중에 지지할 사람이 없다. ㅡ.ㅡ;;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함께 조사한 이유를 궁금하게 만든 설문결과도 있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한국노총 소속 대의원 376명 가운데 29.8%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하는 동시에 가장 반노동자적인 대선 후보를 꼽아달라는 질문에서도 46.5%로 1위를 차지했다. 반노동자적인 이가 대선후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암튼 한국노총 꼴통들은 어쩔 수 없다.
 
민주노총 대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명박이 0.5%밖에 얻지 못했는데, 이는 아마 대의원들이 모두 선진 활동가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노총은? 그냥 한국노총 소속 노동자들의 의식수준을 잘 반영한 거겠지.
민주노동당의 세 후보 모두에 비판적인 민주노총 대의원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래도 심상정? 글쎄...
    
권 38.1%-심 20.7%-노 15.5% (레디앙, 2007년 05월 28일 (월) 13:02:36 정제혁 기자)
'매노' 조사, 민주노총 대의원 대상…한국노총은 이-손-박 
  
“가장 반노동적 후보 이명박…가장 선호후보 이명박” (한겨레, 황보연 기자, 2007-05-28 오후 07:16:25)
한국노총 대의원 희한한 설문결과
   
양노총 여론조사 각 캠프 '해석투쟁' (레디앙, 2007년 05월 29일 (화) 12:58:18 정제혁 기자)
은근한 신경전, 권 "기대감"-노 "평조합원은 다를 것"-심 "아직 부족해"
 
ㅇ 새로운 시사저널이 탄생하나
  
결국 시사저널 사태는 해결이 안되려나 보다. 벌써 파입을 한지 140여일이 된지도 몰랐네. 여전히 자본의 벽은 공고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지.
   
"기자의 양심 지키기 위해 사직합니다" (프레시안, 강이현/기자, 2007-05-28 오후 7:35:01)
<시사저널> 기자 전원 노조에 사표 위임…공은 사측에 
  
지난 1월부터 파업을 진행해온 <시사저널> 노동조합이 사측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지난해 '삼성 기사 삭제 사건'이 있은 뒤 사측에 편집권 독립을 요구해오던 23명 기자 전원은 28일 노조 집행부에 사직서를 위임하고 "독립 언론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누구도 복귀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모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시사저널>의 모회사인 서울 용산구 서울문화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같이 밝혔다. 파입에 돌입한 지 139일만이다.
 
<시사저널> 노조는 지난 15일 보내온 사측의 회신이 '최종안'인지에 대한 여부를 확인한 뒤 <시사저널> 사태가 1주년을 맞는 오는 6월 15일 이전에 '결별'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그러나 사실상 상당수의 기자들은 노조의 안을 거부한 사측이 원만한 타협 자체를 포기했다고 보고 있으며 새 매체 창간을 준비하고 있는 태세다.
 
<시사저널> 김은남 기자는 "오늘로써 20권째 '짝퉁 시사저널'이 발행됐다"며 "우리는 이제 사측에 '<시사저널> 훼손을 절대 멈추지 말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심 회장이 협상 테이블에 참석하는 등 해결되는가 싶던 사태에서 사측의 태도가 표변한 건 미스터리에 가깝다"며 "기자들과의 타협을 포기한 듯 보이는 사측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ㅇ 경찰에게 필요한 건 염치
 
오후에 ytn을 보면서 경찰이 경찰을 검찰에 고발하였다는 기사를 보고 이게 도대체 뭔가 했는데, 프레시안의 김하영 기자가 사태의 본질을 잘 짚어주었다. 
 
지금 경찰에게 필요한 건 뭐? '염치' (프레시안, 김하영/기자, 2007-05-28 오후 4:50:49)
[기자의 눈]자성의 소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번 사건의 본질은 다름 아닌 재벌 총수의 '사적 보복'에 관한 문제였고, 이 의혹이 김 회장의 '소극적 자백'으로 어느 정도 해소된 이후 단계에서의 최대 관심사는 재벌의 영향력에 의해 경찰의 수사가 어떻게 무마됐었는지를 규명하는 일이다.
  
그 늑장수사·외압의 의혹이 경찰의 내부 감찰에 의해 어느 정도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이 의혹을 명확하게 밝혀내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특히 이 의혹은 해당 경찰에게는 직무유기 혹은 뇌물수수, 한화 측에는 공무집행방해 혹은 뇌물공여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 혐의가 걸린 일이어서 단순하게 '감찰' 수준에서 넘어갈 일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저해야 한다.
   
김 회장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 후 한때 검찰이 "적극 수사지휘를 하겠다"는 반응을 보여 검찰이 '불필요한 간섭'을 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었고, 한창 수사가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내부 감찰' 얘기가 나오자 '일선 경찰의 수사의지를 꺾는 일'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시민들은 경찰이 김 회장의 혐의를 밝혀내도록 많은 응원을 했다.
 
그리고 늑장수사·외압 의혹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끈질긴 노력 끝에 김 회장의 혐의는 어느 정도 가려졌다. 이제는 재벌 혹은 '전관'이라는 권력에 굴한 경찰관을 밝혀내는 것이 관건이다. 물론 이 작업에서 이택순 청장도 예외일 수는 없다. 경찰은 검찰에 피해 의식이 있는지 몰라도, 시민들에게는 검찰이나 경찰이나 마찬가지의 막강한 권력기관일 뿐이다.
 
시민들은 이 외압 의혹을 경찰이 자체 조사하건 검찰이 수사하건 솔직히 별 관심이 없다. 누가 하든 진상을 제대로 밝힐 수 있는 쪽에서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본질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경찰에게 필요한 것은 '검찰에 우리 식구를 넘겼다'고 비통해 할 일이 아니라, 시민들 앞에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염치'가 아닐까.
   
ㅇ공무원 초과근무수당 문제가 화두가 되려나
 
오늘 특종이라고 하면서 YTN에서 성북구청의 공무원 초과근무수당 문제를 제기하더니 한겨레에는 서대문구청, 영등포구청, 성북구청의 사례를 들었다.
사실 단지 수당 문제도 있겠지만, 이를 가지고 근평에도 반영을 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오도된 성과주의의 폐해이다. 
     
공무원 초과근무수당은 여전히 ‘눈먼 돈’ (한겨레, 김기태 기자, 2007-05-28 오후 07:28:31)
서울 구청직원들, 한밤 사무실 들러 퇴근기록 ‘꼼수’ 드러나
   
〈한겨레〉가 지난 25일 밤 9시부터 두시간 동안 서울 서대문구청을 점검한 결과, 이 시간에 사무실로 다시 들어와 입구에 마련된 카드·지문 인식기를 사용한 직원이 38명에 이르렀다. 9시5분께 동료와 함께 구청을 찾은 한 공무원은 “우리 과의 김아무개 직원은 원칙이 있는 사람이어서 카드를 찍어도 자기가 직접 찍는다”는 말을 동료와 주고받기도 했다. 9시40분께에는 테니스 운동복 차림의 한 공무원이 건설교통국을 찾아 퇴근 기록을 남겼다.
   
서대문구 이은실 행정관리국장은 “퇴근 기록을 엄격히 관리하라고 수차례 지시한 만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인욱 함께하는 시민행동 예산감시국장은 “일부 공무원들의 집단적 도덕의식이 마비돼 자율 정화 능력이 없는 듯하다”며 “엄격한 징계와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ㅇ 현대차지부의 민중경선제 촉구
 
현대자동자 지부의 정치위원회에서 민중경선제를 촉구했단다. 이에 대해 민중의 소리는 현대차지부의 현 지도부가 노동자 계급정당을 표방하는 '노동자의힘(집행위원장 이종회)'을 지지해온 민투위 계열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해설한다.
모든 현장조직들의 정치위원들이 모여서 결정한 것이기는 하지만, 대의원대회를 통해 결정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큰 의미부여를 할 수 있을까. 현대차지부가 정치위원회 수준에서 그렇게 결정 해놓고서도 말로 그친 것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에...
게다가 이번 결정은 아마 내부의 타협적인 모색일 것이다. 민중의 소리가 민중경선제를 띄우기 위해 별 짓을 다하는구만. 이게 참세상에 나오지 않고 민중의 소리에 나온 것을 보면 알아볼 쪼다. 
 
현대차노조, 민노당에 민중참여경선제 수용 촉구 (민중의 소리, 문형구 기자, 2007년05월28일)
25일 정치위원회 "계급적 정치투쟁에 새로운 획".. 큰 파장 예상
 
현대차지부 정치위원회는 25일 확정한 정치방침을 통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는 최적의 조건들이 형성되고 있다"며 "(민중참여경선제는)그동안 조합원을 동원의 대상에서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계급적 정치투쟁에 새로운 한 획을 그을수 있다"고 평가했다.
  
현대차지부는 지난 3월 민주노동당의 당헌개정안 부결과 관련 "노동자 농민뿐만 아니라 전체 민중들을 아우르는 정치적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노동계급에게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결정에 극심한 실망감을 금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그간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지지 방침 철회를 총연맹에 요구해온 현대차지부는, 이번 결정에서 이같은 문제의식을 최소화하면서 '노동자 계급 투표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로든 조합원의 직접적 정치활동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방점을 찍었다. 이에 현대차지부는 "민주노동당의 내부적 절차와 과정을 거친 의사 결정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것은 자칫 당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어 올바르지 않다고 판단된다"면서도 "다만 민주노총은 총연맹 차원에서 조합원들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조건을 감안, 민주노동당에 대한 일방적인 배타적지지 방침에 대해 재고되어야 하며 당과 민주노총의 관계 재정립을 요구한다"고 조심스레 밝혔다.
 
김태곤 현대차지부 조직강화실장은 이번 결정과 관련해서 "총선과 몇 차례의 지자체 선거, 재보선을 거치며 실제 현장과 괴리된 선거운동들이 진행됐고 '진보정치 일번지'라는 울산 북구의 기반들마저 무너져가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며 "노동자계급 투표를 조직하기 위한 조합원들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일방적인 정치방침은 더이상 안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민중경선제는 계급배신제라고 하면서 남긴 노동자의 덧글이 인상적이다. 과거의 행태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필요한데...박준석 부위원장이 전진에 가입했던가. 쩝...
 
민중경선제는 계급배신제다..!!  kkakduki  05-29 02:27:53
   
영국 노동당이 계급적 관점을 폐기하고 친미우파로 돌아서버린 가장 큰 계기는 일반 당원들 모두에게 경선 투표를 허용한것이다.. 그 내막은 당의 정책이나 노선등을 장악하고 있던 핵심 당원들에게 주어졌던 권한들을 무력화시켜서 좌파들을 배제하고 우파측 (토니 블레어) 후보들을 대거 진출시키려한것이며 당의 대중적 토대(외연 확대)란 미명하에 당을 이끌어왔던 주요 좌파후보들은 거의 초토화되고 노동당은 급속도로 반동화되고 말았다.. 지금 영국 집권노동당의 행태가 그걸 증명하고도 남지 않는가? 당내 경선 투표 방식에 반발해서 탈당후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사람들중 대표적인 사례가 현 런던시장이다.. 오늘날 공공부문의 사유화 복지부문의 대폭 축소등은 모두 블레어를 기반으로한 우파들의 작품임은 모두다 아는 상식이며 영국노동계급은 보수당보다 노동당우파들을 그들의 적으로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실정이다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이 어떤 곳이며 현 집행부는 과연 어떤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가? 울산에서 조합원 총투표란 명분을 내세우며 계급적 관점을 폐기시켜버린 주역이 바로 박준석(전 울산본부장, 현 금속노조부위원장)인데 그가 당시 누굴 내세우려고 계급투표니 어쩌구 나발불었었나?
 
연합의 김창현을 배제하고 노동자계급의 대안이라고 떠들었던 대상이 바로 당시 법무부장관의 친동생이며 현 노무현의 정치특보인 송철호였다 (당시 수석본부장이던 전 울산시장 후보로 나섰던 노옥희는 전교조 조합원들을 떼거지로 동원해서 <시민단체>란 명의로 노골적으로 송철호를 지원하고 실명공개하기도 했다) 경선에서 승리하고 시장선거에서 낙선후 그가 보여준 첫모션이 바로 민노당 탈당이었는데 이 더러운 사태에 그 누가 책임을 진적있나? 장본인은 아직도 저렇듯 기세등등하지않은가? 류기혁열사를 말하기전에 2001년 효성 총파업당시 급작스런 파업철회로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의 온갖 찬사를 받으며 계급의 등에 비수를 꽂았던 당사자가 바로 현 민투위집행부 이상욱이다. 여기서 그토록 선명성을 견지한다고 했던 <노힘>은 달랑 해명서 비스무리한 종이한장 나눠주고 유야무야 감싸안기에 바빴었고.. 현자노조의 역사가 어떤 역사인가? 노동계급 배신과 반동의 역사 아닌가? 민중경선제의 본질이 무엇인가? 당권까지 대기업 노동관료들의 손아귀에 꽉 잡고 놓치 않으려는거 아닌가? 지난 재보선때의 참패를 보고도 반성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미 오래전에 잊혀진 <밥꽃양>을 기억하는가? 당시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장본인들은 지금 어디있는가? 그때 위원장은 현 울산시당 위원장, 복직을 반대했던 위원장은 현 금속노조 위원장이다.. 이건 대표적인 사례일뿐이다. 누가 현자노조를 아직도 계급의 친구로 말하는가..!! 현중노조가 꺼꾸러져갈때 그 단물만 빨면서 시늉만 해왔던 세력들이 누구인가? 북구에선 빨간조끼를 입고나가야 아줌마라도 헌팅하는데 유리하단건 다 알고있는 사실아닌가? 별별 온갖 해괴망측한 지역 모임 단체의 짱들은 모다 빨간조끼출신들이 꿰차고있단건 이미 오랜과거일이고 지난번 경선에서 탈락한 현자소속 현직시구의원들 전원이 탈당후 출마한것도 과연 명분이 무엇이었나? 쇼..!! 그만큼 했으면 이제 관두자.. 얼마나 더 죽어자빠져야하고 꼬꾸라져야 만족하려는가?
  
허울좋은 민중경선제는 노동계급에 대한 배신이다..!! 그건 현 노동귀족들의 기득권 고착화 수단뿐 진짜배기 민중, 저 힘없는 노동자들을 배제한 반동적인 헛소리일뿐이다..!!! 이석행위원장의 현장대장정이랑 손학규의 민심순례랑 뭐가 다른가? 립써비스하지말자.. 알놈은 다안다.. 글구 언젠가 계급의 이름으로 단죄될날 올것이다 꼭~ - 울산 조선소에서 땜질하는 노동자 취해서 날림 -

 
인터넷 언어도 사회적 방언? (서울신문, 이문영기자, 2007-05-29  24면)
   
청소년 네티즌들의 인터넷언어 사용 동기는 크게 5가지다. 네티즌들은 ‘ㅋㄷㅋㄷ’(키득키득)‘ㅊㅋ’(축하) ‘ㅠㅠ’(슬픈 감정) 등 자판을 한 자라도 빨리 치기 위한 경제적 동기에서 말 줄임과 붙여 쓰기를 일상화했고,‘왔쪄요’ ‘안 해쪄’ 등 혀 짧은 아이 말투나 ‘○(*´∩‘*)○’‘ㅋ1ㅋ’와 같은 이른바 ‘민지체’를 사용해 언어유희를 즐긴다.
 
▲‘샤방샤방’(눈부시게 예쁘고 화려한 모습) ‘완소남’(완전 소중한 남자) 등 감정을 충실하게 드러내기 위한 표현적 동기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2인칭 대명사) ‘’(화자 자신을 지칭하는 1인칭 대명사) 등 네티즌간 유대강화 목적 ▲욕설과 비속어 사용을 통한 심리적 해방동기 등도 네티즌들이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이유다. 이렇게 생산된 인터넷 통신언어는 우리말의 새로운 변이어로서 한국인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반영하는 문화적 산물이란 게 이 교수의 해석이다.
  
인터넷 언어가 사회적 방언이 될 수 있을까. 위의 이유들을 보면 나름 타당성도 있긴 하지만, 그 폐해를 간과해선 안된다. 그 경계가 문제가 될 것이다.
    
ㅇ이건희 일가와의 공모, 밝혀질까.
  
법원은 검찰에 공을 넘겼어도 검찰이 제대로 밝혀낼까 의문이다. 이런 도둑짓거리를 해놓고서도 투명하고 깨끗하며 신사적인 척 하는 삼성. 그리고 이를 곧이곧대로 믿어주는 국민들. 거참...
    
삼성 "문제 많은 판결"…진보 측 "이건희 회장 소환" (프레시안, 김하영/기자, 2007-05-29 오후 6:29:05)
'1만4852원' 항소심 전환가격 두고도 논란 여전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논평을 통해 "검찰은 에버랜드 사건에 대해 삼성그룹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이건희 회장의 지시 혹은 개입의 가능성을 분명히 인정하면서도 이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항소심 판결 이후로 미뤄 왔다"며 "항소심 선고가 이뤄진 만큼 이 회장에 대한 소환 조사를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도 논평을 통해 "재용 씨에게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넘기기 위한 행위가 에버랜드라는 계열사 임원들의 독자적인 판단과 계획에 따른 것이라 믿을 사람은 없다"며 "항소심 선고 후 이 회장을 소환하겠다는 검찰이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킬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검찰은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 등 진보진영에서는 당시 에버랜드의 주식가치가 장외시장에서 8만5000원으로 평가됐음에도 불구하고 에버랜드 측이 100억 원이라는 목표에 맞춰 전환사채 120만 주를 7700원에 발행하는 것은 재용 씨 등에게 지배권을 넘기기 위한 편법이라는 주장이다.
 
검찰도 에버랜드의 주식가치를 8만5000원으로 산정해 기소했으나, 1심 재판부는 주식가치를 따로 산정하지 않았고, 항소심 재판부는 에버랜드 전환사채가 발행되던 때인 1996년 삼성물산과 삼성건설이 합병하며 평가한 에버랜드 주식가액(1만4852원)으로 전환사채의 가격을 산정해 판결을 내렸다. 
   
"이제 '이건희 회장 일가와의 공모' 밝히는 게 숙제" (프레시안, 김하영/기자, 2007-05-29 오후 3:42:27)
11년 묵은 에버랜드 사건, 클라이막스 향해 간다 
  
"'전환사채 발행에 대한 피고인들과 이건희 회장 등 기존 주주들의 공모 여부가 입증이 안 됐다'는 주장이 있으나, 검찰 측 공소사실에는 이 공모 부분이 담겨져 있지 않아, 피고인들에게는 공모 여부와 관계없이 배임 혐의가 성립된다."
 
이른바 '에버랜드 편법증여' 의혹 사건에 대해 1심에 이어 29일 열린 2심 선고에서도 허태학, 박노빈 전·현직 경영진들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2심에서는 오히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상 배임' 혐의가 적용돼 형량이 강화됐다.
  
2심의 판결로 인해 두 전문경영인이 "위법한 방법으로, 현저히 낮은 가격에 전환사채를 발행해, 재용 씨 등에게 주식을 몰아줘, 지배권을 넘겼다"는 정황이 더욱 분명해졌다.
 
1996년 에버랜드 이사진은 70여만 주였던 에버랜드 발행주식을 200만 주로, 자본금은 100억 원으로 늘리기로 하고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이 과정에서 이건회 회장과 그룹 후계 문제로 갈등을 빚던 제일제당을 제외한 나머지 주주들이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는 대신 이 회장의 자녀인 재용 씨 남매가 전환사채를 사들여 최대주주가 됐다. 당시 전환사채 가격은 7700원. 재용 씨 등은 96억 원에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돼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획득하게 됐다.
 
2심 재판부는 그러나 "당시 전환사채 발행을 의결하는 이사회의 정족수가 미달됐기 때문에 이사회의 결정은 모두 무효"라고 못 박았다. 이밖에 "시설자금이 필요했다", "경영상의 판단이었다"는 등의 주장은 모두 일축했다.
 
논란이 되던 전환사채의 가격에 대해서도 고발인 측의 주장(8만5000원)과는 큰 차이가 있지만, 1996년 삼성물산과 삼성건설이 합병되던 당시 이들 기업이 보유하고 있던 에버랜드 주식의 가치 산정 기준을 적용해 "최소 1만4825원"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최소 금액으로 계산해도 전환사채 가격은 재용 씨 측에 배정된 가격의 2배"라며 "재용 씨 측이 90여억 원의 이득을 봤고, 회사에 같은 금액만큼의 손해를 끼쳤다"고 판결했다.
  
에버랜드 사건에 대해 법원이 일관되게 '배임' 혐의를 인정하고 있는 마당에 검찰이 계속 '공모' 혐의를 묻어두고 수사를 미루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법원도 검찰에게 "공모 혐의를 공소장에 명확히 해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었다. 하지만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소제기를 하지 못한 채 시간만 보냈다. 이로 인해 검찰은 진보진영으로부터 "이건희 회장을 소환하지도 않는 등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검찰이 재벌, 특히 삼성에 약해서 아니냐"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현재 소송은 허태학, 박노빈 피고인의 배임 혐의에 대한 형사사건으로 소송의 쟁점은 피고인들의 행위가 회사에 손해를 끼쳤는지를 판단할 뿐, 재용 씨 등이 취득한 전환사채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따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대법원에서도 이들의 배임혐의가 유죄로 확정돼 이들이 이사회에서 내린 전환사채 발행 결정 자체가 무효화 되더라도, 재용 씨의 전환사채 취득 자체를 무효화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소송이 필요하다. 그리고 소송의 주체는 전환사채 발행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주주들이다.
 
다만 당시 에버랜드는 비상장 회사로 기업 소유구조가 대부분 '친(親) 이건희 체제'로 돼 있었음을 감안할 때 실제 이와 같은 소송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ㅇ시핸의 반전활동 중단 선언
 
프레시안에 보니 신디 시핸이 반전활동을 접겠다는 선언을 표명했다고 한다. 민주당의 이라크 전쟁 비용 법안 승인은 분명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반전활동 중단의 이유는 되지 않는다. 피곤하다고? 그럼 적당히 하지 그랬나. 그게 평화주의자로서의 태도인가?
 
나는 솔직히 그가 너무 튀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다. 지나치게 오바했다는 것이다. 그는 민주당 등이 자신에게 '딱지'를 붙였다고 실망감을 표명했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활동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활동중단 선언으로 자신에게 주목이 쏠리도록 했으니 성공은 했다.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걸까. 
  
"미국은 내가 사랑했던 조국이 아니다" (프레시안,  2007-05-29 오후 2:35:47
'반전 엄마' 신디 시핸 "활동 접겠다" 
   
시핸은 반전운동 진영 전반에 대해 "개인의 자존심을 평화나 생명의 가치 위에 두는 모습을 보인다"고 비판했고, 민주당에 향해서도 "내가 공화당에 댔던 것과 같은 기준을 민주당에 적용하게 되면서 나에 대한 지지가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좌파'는 우파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중상모략으로 내게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시핸은 반전운동 진영 전반에 대해 "개인의 자존심을 평화나 생명의 가치 위에 두는 모습을 보인다"고 비판했고, 민주당에 향해서도 "내가 공화당에 댔던 것과 같은 기준을 민주당에 적용하게 되면서 나에 대한 지지가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좌파'는 우파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중상모략으로 내게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ㅇ전진의 대선 후보 검증
  
각 캠프의 반응이 재미있다. 현재 세 후보의 캠프는 전진의 계획을 전달받지 못했단다. 각 캠프에 들어가 있는 전진 회원들이 몇명인데, 모르고 있었다니... 부르조아 정치인들과 똑같은 행태를 보이네. 자기 캠프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면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서 그러한가. 갈수록 세 캠프에 대해 밥맛이 떨어진다.
 
권영길 후보는 자신의 정책이라고 할 것이 있을까. 이코노미21의 택시기사들 설문조사에서 권영길 후보의 정책이 '무상의료, 무상교육'이란다. 당 정책이 자신의 정책인 것일까.
   
평등파 최대 정파 '전진', 대선 후보 검증 (레디앙, 2007년 05월 29일 (화) 17:35:54 문성준 기자)
6월 중 각 캠프 정책책임자 초청…세 후보 진영 반응 온도 차이
   
조희만 전진 의장은 “전진의 문제의식이 담긴 대선 강령이 당과 대선 후보의 대선공약으로 채택되도록 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라고 밝혔다. 조 의장은 또 “이는 전진이 지지하는 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의 하나”라며 “토론회에서 발표하는 각 캠프의 입장, 전진의 대선강령 동의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대선 후보 선출 전에 지지 후보를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전진의 지지후보는 “1인 될 수도 있고 3인 모두가 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 15일에 확정해서 전진의 홈페이지에 게시된 전진의 선거강령은 총론과 6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원고지 200매가 넘는 분량이다. (전문보기
http://www.goequal.org/bbs/view.php?id=headline&no=87)
 
현재 민주노동당 세 후보의 캠프는 전진의 이러한 계획에 대해서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 전달받지 못한 상태이다. 조희만 전진 의장은 “다음 주에 직접 각 캠프를 방문해서 토론회 취지를 설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토론회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으며 캠프의 의견을 반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ㅇ 하종강 샘의 책이 또 나왔네
  
기사내용을 보니 노동과꿈 사이트에서 눈에 익은 글들을 모은 모양이다. 저번에 나왔던 책도 아직 못읽었는데, 이건 또 언제 사서 읽을까.
 
"정태인은 청중을 웃기고 하종강은 울린다" (프레시안, 여정민/기자, 2007-05-29 오전 9:28:02)
[화제의 책] 하종강의 <철들지 않는다는 것>
 
  
ㅇ 한나라당 후보 정책토론회
  
헛소리를 해대는 한나라당 후보들의 정책토론회를 공중파 3사가 생중계를 했다. 거기에서 예의 노동자 파업이 문제라고 지랄을 하고... 아무리 잘 포장을 해도 반노동자성을 견결하게 유지하는 그들의 본질은 확실하다.
 
한나라당 후보들 "노동자 파업이 문제" (레디앙, 2007년 05월 29일 (화) 17:55:41 정제혁 기자)
경제분야 '정책토론', 대운하-2층고속도로 등 '개발-성장론 향연'

  
ㅇ 사회당이 후보를 낼 수 있나
  
올초에 대선에서 독자후보를 선출한다고 했는데,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그건 물건너간 듯하고, 정당으로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사회당, 대선준비위 구성하고 대선 행보 본격화 (참세상, 김삼권 기자, 2007년05월29일 18시00분)
7월8일까지 후보전술․외부 연합에 대한 방침 확정키로 
  
금민 한국사회당 대표는 "한국사회당이 대선에 임하는 목표는 진보정치의 혁신과 재구성이며,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한국사회당이 이러한 혁신과 재구성의 중심이 되고자 한다"며 "대선의 준비과정 자체가 대선뿐만 아니라 이후 한국사회당의 나아갈 바를 제시할 수 있는 과정이 될 수 있도록 해야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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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30 00:22 2007/05/3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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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론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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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전진의 대안사회팀에서 진행했던 세미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제 1년밖에 안되었는데도 그 내용이 새롭다. 대안적인 정부조직개편에 대해 연구하려고 하면서 기본적인 철학과 원칙이 있어야 할 듯 싶어 다시 살펴봤는데, 공공성과 관련된 부분이 부족하고, 참여와 민주주의에 관한 것은 별도로 정리되어 있다는 것 이외에는 훌륭하다. 여기에 여성이나 환경, 소수자의 문제가 빠져 있는 것도 한계이지만, 이는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최종 정리를 장석준 동지가 했기 때문인지, 그의 흔적이 물씬 풍긴다.
 
     

[대안사회보고서_국가(최종).hwp (67.39 K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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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1. 국가, 왜 중요한가? 
 
1.1 국가란 무엇인가?
   
연말마다 천막 농성이 벌어지고 집회가 열리는 여의도에 가면 육중한 국회의사당이 버티고 있다. 그 곳에 들어갈라치면 전경이 나타나 주민등록증을 요구하거나 아니면 몽둥이를 날린다. 대한민국의 남성들이면 누구나 징집영장을 받아들고서 새삼 국가를 실감한다. 또한 노동자면 누구나 세금이 원천 징수된 월급 봉투를 받아들고 국가를 느낀다. 이게 우리가 아는 국가다.
  
하지만 생각을 깊이 하면 할수록 국가가 무엇인지는 그렇게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행정부라고 부르는 게 국가라는 건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도 국가의 일부다. 3권 분립이라고 해서 행정부와 함께 권력을 나눠 가지는 입법부와 사법부도 국가의 한 부분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은 어떤가? 국민이면 누구나 어린 시절을 거치게 되어 있는 초등학교,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복지기관들, 이런 것들은 국가인가, 아닌가?
    
사실은 국가가 뭔지를 말하는 것 자체가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다. 국가가 뭔지 답을 내놓는다면 정치 문제의 절반 이상은 해결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우리의 고민을 풀어나가자면, 적어도 잠정적으로 국가는 이런 것이라고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 
  
우선 국가에 대한 아주 상식적인 정의, 두 가지를 확인하자. 
 
첫째, 바깥으로부터 그리고 위로부터 바라보자. 그러니까 마치 우주인이 된 것처럼 지구의를 쳐다보는 시선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 때 국가란 한국,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같은 나라(nation)들이다.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주된 형태의 정치적 공동체들이다. 모든 국가는 반드시 다른 국가들로부터 ‘주권’을 인정받아야 한다. 주권을 인정받은 국가는 그 권한이 배타적으로 행사되는 일정한 영토와 국민(‘국민’이라는 표현을 쓰면 사람들이 국가에 지나치게 종속된 것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에서는 보통 ‘시민’ 혹은 ‘인민’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을 지닌다.
     
둘째, 시선을 안으로 그리고 아래로 옮겨보자. 각 나라의 안에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 때 국가란 각 나라가 정치적 공동체로서 유지되게 만드는 여러 조직과 활동들, 즉 특수한 사회 관계들을 의미한다. 한국사회라는 게 있다. 그런데 이게 일본사회의 일부도 아니고 중국사회의 일부도 아닌 ‘한국’사회로 유지되게 만드는 특수한 조직과 활동들이 사회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조직과 활동들은 사회의 다른 부분들과는 구분된다는 것이다. 이게 또 다른 의미의 국가(state)다. 그런데 한 사회 안에서 국가라고 부를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 사이의 경계는 아주 모호하다. 둘은 오히려 서로 긴밀히 중첩돼 있다. 그래서 국가가 뭔지 답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1.2 국가의 ‘두 얼굴’
  
국가는 모순 그 자체다. 서로 대립하기까지 하는 두 측면이 항상 함께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우리의 두통거리다. 여기서는 그것을 국가의 ‘두 얼굴’이라고 부르자.
  
국가의 한 쪽 얼굴은 그야말로 폭력의 화신이다. 국가가 처음 태어날 때부터 그것은 항상 폭력과 함께 했다. 안으로는 귀족계급이 민중을 창칼로 짓누르면서 국가라는 게 제 꼴을 갖춰왔다. 또한 국가는 밖으로 항상 다른 국가와 싸움을 벌이면서 성장해왔다. 세계사 책을 펼쳐보면 국가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임을 알 수 있다. 굳이 다른 나라 역사를 들춰낼 필요 없이 우리 역사 속에서도 고구려, 백제, 신라 같은 초기 국가가 등장하고 성장한 과정은 바로 피 튀기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먼 과거의 역사만은 아니다. 근대에 들어서도 국가는 항상 전쟁을 통해 발전해왔다. 국가의 가장 문명화된 형태인 복지국가조차도 2차 대전의 참화 속에서 등장했다는 것을 잊지 말자.
  
하지만 국가에게는 또 다른 얼굴도 있다. 권리의 보장자라는 측면이 그것이다. 우리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들을 보장해주는 것은 가족도 아니고, 마을도 아니며, 기업도 아니다. 그것은 국가다. 굳이 고도의 사회적 권리들을 예로 들 필요도 없다. 우리 삶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권리, 가령 내가 타인에게 맞아 죽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다. 일제 식민지 시절 이 땅의 사람들에게는 바로 이런 역할을 해줄 자신들의 국가가 없었다. 그래서 그토록 독립국가의 건설을 염원하고 이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것이다.
  
국가는 참으로 얄궂은 것이다. 있으면 번거롭고 없으면 섭섭하다. 국가는 예사롭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지만, 또 사람들을 일상의 폭력으로부터 그나마 숨 돌리게 하는 것도 국가다. 국가를 바라볼 때 항상 ‘변증법’적 시각(모순을 모순 그대로 인식하기)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1.3 세상을 바꾸려면 국가 문제를 우회할 수 없다
 
세상을 바꾸려는 그 어떤 운동도 국가 문제를 빙 둘러갈 수는 없다. 국가를 어떻게든 처리하지 않고서는 어떤 사회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국가를 어떻게 할지, 그 복안이 없고서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대혁명 이후 수 세기 동안 혁명운동의 주된 쟁점은 항상 국가 문제였다. 세계 최초의 노동자 국제조직(제1인터내셔널)에서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이 서로 갈라지게 된 것도 국가 문제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주위에서는 ‘비국가적 실천’이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이런 주장의 밑바탕에는, 소련 등 현실사회주의 체제가 보여준 크나큰 오류에 대한 역사적 반성이 자리한다. 현실사회주의 나라의 공산당들은 국가기구를 통해 위로부터 사회를 변화시키려 했고 그 때문에 관료 지배의 억압적 체제를 낳고 말았다. 결국 이런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현실사회주의 나라들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주의에 불과했던 게 아닌가. 숨막히는 관료 독재와 피의 숙청, 숱한 전쟁과 강제수용소, 이런 20세기의 비극은 바로 이 국가주의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따지고 보면, 한국전쟁과 분단체제로 인해 신음한 한국사회야말로 국가주의의 최대 희생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주의를 벗어난 새로운 전략, ‘비국가적 실천’이 필요하다는 데 일단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비국가적 실천’이라는 게 ‘이제 국가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면, 그래서 국가 문제를 우회해서 세상을 바꾸는 방식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대표적인 예로, 존 홀러웨이,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조정환 옮김, 갈무리, 2002. 참고). 국가는 확실히 변혁운동의 덫이다. 하지만 이 덫을 피하려면 누구보다 덫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덫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하고, 덫에 걸리더라도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으려면 덫의 얼개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소규모 공동체를 만들든 대중운동을 벌이든 국가라는 그물망에 전혀 걸리지 않고 성장․발전할 수는 없다. 처음부터 국가 문제를 고민하고 그것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어느새 거미줄에 걸려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국가주의의 오류에 다시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여전히 국가 문제를 변혁 전략의 핵심 과제로 고민해야 한다. 국가가 작동하는 바로 그 현장에 두 발을 디디면서 동시에 그 국가를 넘어서는 것(in and against)이 우리 시대 변혁 전략의 화두다.
  
1.4 세계화 시대에도 국가는 중요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 세계화 시대에는 이제 더 이상 국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겉만 보면 이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정부 관료들과 보수정당, 언론들은 하나같이 세계화가 대세라고 주장하면서 쌀 협상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저들이 말하는 대로 국가에 더 이상 재량권이 없다면 그 멱살을 부여잡는다는 게 부질없는 짓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일면의 진실일 뿐이다. 속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선 세계화라는 과정 자체가 국가를 제쳐둔 무엇이 아니라 국가들이 주인공이 돼 서로 위협하고 야합하고 협상하여 추진하는 것이다. WTO니 세계은행이니 IMF니 하는 초국적 기구들도 완전히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다. 그 이면에는 미국을 정점으로 한 여러 국가들 사이의 대립과 타협이 존재한다. 심지어는 자본에 비해 국가의 힘이 약화되는 과정도 국가 자신이 그렇게 만들고 그것을 허용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 세계화가 우리가 국가에서 눈을 뗄 이유는 되지 못한다.
  
또한 세계화의 모순이 깊어지면 질수록 국가의 역할이 긴급하게 요청된다. 어느 사회에서나 세계화는 빈곤과 소외, 갈등과 대립을 부추긴다. 그래서 이러한 재앙적인 결과들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지 않고서는 체제 자체가 버텨낼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 뒤치다꺼리는 결국 국가의 몫으로 남는다. 프랑스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폭동이 벌어지면 자본은 다름 아닌 프랑스 국가를 쳐다보는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민중 세력도 마찬가지로 국가를 향해, 그것을 무대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결정적으로 격퇴되지 않는 한, 이러한 과정은 세계 어디에서든 반복될 것이다.
 
즉, 세계화는 결코 국가 문제의 위상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역전시키기 위해, 그리고 세계화의 가공할 참극에 도전하기 위해, 각 나라에서 국가에 대한 투쟁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2. 사회주의 운동의 전통적인 두 국가론, 그리고 그 비판 
 
국가 문제는 사회주의와 아나키즘 사이의 분열의 도화선이었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사회주의를 두 가지 흐름으로 갈라놓았다. 우리가 흔히 ‘사회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개혁적 사회주의(개혁주의 혹은 개량주의)와 ‘공산주의’ 등으로 불려온 혁명적 사회주의, 이 두 흐름을 낳은 결정적인 쟁점이 바로 국가 문제였던 것이다. 우선 개혁적 사회주의의 입장부터 보자. 
 
2.1. 국가를 ‘장악’해야 한다: 개혁적 사회주의 
 
개혁적 사회주의자들은 국가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다른 사회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이제까지 국가가 지배 계급의 무기가 되어 노동자․민중을 억압하는 역할을 해온 것을 비판한다. 하지만 이들은 보통선거권의 도입과 함께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또한 강조한다. 이제 국가는 바야흐로 민주공화국이 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민주공화국에서는 누구나 일정 연령이 되면 동등하게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한다. 그리고 그 투표 결과에 따라 집권 세력이 바뀐다. 선거로 뽑히는 대통령이나 수상이 누구냐에 따라 국가의 나머지 부분은 이들 명령권자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정당을 만들어 여당이 된다면 곧 노동계급이 국가를 ‘장악’하게 되는 것 아닌가. 즉, 부르주아 계급의 무기였던 국가가 이제는 오히려 노동계급의 무기가 된다. 계급 지배의 도구였던 국가가 오히려 그것을 혁파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게 개혁적 사회주의자들이 국가를 바라보는 기본 관점이다. 그래서 이들은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당선시키거나 의회 다수당이 되어 내각을 구성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들은 의회 사회주의자, 선거 사회주의자이기도 하다.
  
즉, 개혁적 사회주의자들에게 국가(민주공화국)는 누구든 선거를 통해 손에 쥘 수 있고 일단 손에 쥐면 자신의 무기로 삼을 수 있는 장돌 같은 것이다. 자본가들의 손에 들어가면 자본가들의 무기가 되지만 노동자들의 손에 들어가면 노동자들의 무기가 된다. 그러니 우선 국가를 ‘장악’하자!
 
* 더 읽을 책․글들:
- E. 베른슈타인,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민당의 과제』, 강신준 옮김, 한길사, 1999.
- E. 베른슈타인,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외』, 송병헌 옮김, 책세상, 2002.
- P. 게이, 『민주사회주의의 딜레마』, 김용권 옮김, 한울, 1994: 베른슈타인의 사상을 정리한 책.
 
 
2.2. 국가를 ‘분쇄’해야 한다: 혁명적 사회주의
 
반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보통선거가 실시된다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선거로 노동자정당이 집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자정당이 여당이 된다고 해서 국가기구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까? 아니다. 상황은 그 반대다. 국가기구를 실제 좌우하는 것은 선출직 공직자들이 아니라 선거와 상관없이 국가기구의 중심에 버티고 있는 비선출직 고위 관료들이다. 이들은 실로 다양한 방식으로 기득권 세력의 이해에 긴밀히 얽혀 있다. 아무리 노동자 대통령이 나오고 사회주의자 수상이 취임한다 해도 국가기구는 이들 고위 관료의 주도로 의연히 제 갈 길을 가게 마련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여기에다가 더욱 강력한 근거를 하나 더 추가한다. 비록 민주공화국이라 할지라도 국가의 폭력적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것이다. 국가기구의 핵심 중의 핵심은 바로 경찰과 군대다. 평상시에는 눈에 보일 듯 말 듯 하다가도 기득권 세력과 노동자․민중이 첨예하게 대립하기만 하면 곧바로 전면에 등장하는 게 경찰과 군대다. 국회의사당에 진입하려는 노동자, 농민이 전경들의 몽둥이 찜질을 당하고 군홧발에 차여 길바닥에 쓰러질 때 도대체 민주공화국의 ‘주인’은 누구인가.
 
국가는 애초부터 계급 지배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온통 그 목적으로 짜여져 있다. 설사 선거로 진보 세력이 최상층 공직 몇 개를 차지한다고 해도 국가 전체의 성격이 변하지도 않을 뿐더러 고분고분 명령에 따르지도 않는다. 계속해서 기득권 세력의 지배 수단이 될 뿐이다. 그렇다면 이 물건을 어찌할 것인가. 애당초 노동자․민중이 차지할 수 없는 무기라면 그저 파괴해버릴 수밖에. 기존의 국가를 ‘분쇄’하고 아예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야만 새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혁명을 해야 하는 것이다.
  
즉,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에게 기존의 국가는, 그것이 비록 민주공화국이라 할지라도, 자본가계급의 무기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와 생리를 지니고 있다. 선거로 그것을 노동자․민중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가능한 방법은 기존 국가를 파괴하고 노동자․민중의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국가를 ‘분쇄’하자!
 
* 더 읽을 책․글들:
- K. 맑스, 『프랑스의 내전』: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4』(박종철출판사)에 수록.
- V. I. 레닌, 『국가와 혁명』, 김영철 옮김, 논장, 1988: 절판 상태.
 
 
2.3 전통적인 두 국가론에 대한 비판: 역사적 경험에 따른 비판
  
2.3.1 국가를 ‘장악’하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개혁적 사회주의자들은 선거를 통해 국가를 장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힘으로 사회개혁을 펴나갈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2차 대전 이후 서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주도로 복지국가가 건설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발전된 민주주의 사회의 경우에는 개혁주의 노선이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단정짓기에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다. 우선 복지국가를 건설한 과정부터가 그렇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처음 집권하기 시작한 것은 1차 대전 직후부터였다. 그러나 복지국가가 본격적으로 건설된 것은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였다. 스웨덴 정도만이 예외였다. 이것은 복지국가 건설 과정에서도, 진보정당이 선거로 집권하고 나서 개혁정책을 하나 하나 추진하는 식으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1920년대에 등장한 좌파 정부들(혹은 좌파가 주도한 연정)은 모두 우파 정당이나 정부 내의 반대 세력들과 타협을 모색하다가 변변한 개혁정책 하나 추진하지 못했다. 1934년 오스트리아에서는 진보적 정책을 펼치던 비엔나의 좌파 시정부가 극우파 중앙정부의 군사 공격으로 해산되기까지 했다.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자본가계급이 한 발 물러서게 된 뒤에야 복지개혁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었다.
  
게다가 진보정당의 개혁이 자본가계급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특히 자본가계급의 소유 독재에 손을 대는 순간 일이 벌어진다. 다름 아니라 국가기구 내에서 기득권 세력과 긴밀히 연관돼 있는 부분들이 개혁을 사보타지하고 나선다. 더 나아가 이들은 오히려 개혁 추진 세력을 포위하여 무력화시킨다.
 
1974년에 영국 노동당이 25대 대기업의 국유화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졌다. 당내 좌파 성향의 토니 벤이 산업부 장관이 돼 국유화 공약을 실현시키려 하자 고위 경제 관료들이 일손을 놓았다. 이들은 주류 언론 매체들과 손잡고 벤 장관 죽이기에 나섰다. 단지 선거 공약을 지키려 했을 뿐인 벤은 노동당 내각 안에서마저 따돌림의 대상이 됐고, 국유화 정책은 흐지부지됐다.
 
만약 이렇게 굴복하지 않고 선거에서 노동자․민중과 맺은 약속을 ‘겁도 없이’ 계속 추진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1970년에 집권해서 1973년 미국의 사주를 받은 군부 쿠데타로 무너진 칠레의 인민연합(사회당․공산당 등의 연합) 정부가 그 답을 보여준다. 인민연합의 살바도르 아옌데 후보가 국유화 등의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되자 칠레의 기득권 세력은 선거 결과를 무시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아옌데가 대통령이 돼도 그 명령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한 참모총장이 첫 번째 희생양이 되었다. 누군가 그의 자동차에 폭탄을 설치해 날려 버린 것이다. 우파정당들은 새 정부로부터 개헌 시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서야 새 정부의 출범을 인정했다.
  
하지만 싸움은 오히려 그 다음부터였다. 아옌데 정부의 개혁정책은 의회의 다수 의석을 차지한 우파정당들과의 힘겨운 싸움을 거쳐야 그나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한데 그것조차도 헌법재판소로부터 번번이 위헌 판결을 받아 무효가 되기 일수였다. 또한 이 나라에서도 수많은 행정 관료들이 사실상 태업 상태에 들어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군대가 있었다. 군대 내의 수구파 장성들은 1973년 9월 11일 결국 쿠데타를 일으켜 합법 정부를 박살내고 10만 명을 학살했다.
    
한 마디로, 국가를 ‘장악’한다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국가기구의 각 부분들은 선출직 공직자에 반발해 들고일어날 수 있으며, 그것은 아주 효과적이다. 개혁주의자들의 국가론에 대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비판이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특히 개혁정책이 기득권 세력의 이해와 심각하게 대립하는 상황에 이르면 그 비판은 마치 불길한 예언과도 같이 어김없이 실현되곤 했다. 기존 국가기구는 개혁의 수단이 아니라 그 강력한 걸림돌, 아니 반개혁의 디딤돌이 되곤 했던 것이다.
 
* 더 읽을 책․글들:
- 고세훈, 『영국노동당사』, 나남, 1999: 이 중 제9․10장
- 서병훈, 『다시 시작하는 혁명』, 나남, 1991: 칠레 아옌데 정부의 경험을 정리한 책.
- 장석준, 「칠레의 전투는 계속된다: 칠레 사회당․공산당과 아옌데 인민연합정부」, <이론과 실천> 2003년 5월호.
- 영상자료: <칠레의 전투> 제1부 (인권운동사랑방 배급)
 
   
2.3.2 국가를 ‘분쇄’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고 효과적인가 
 
그렇다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이 곧 우리의 대안인가? 그렇게 답할 수 있다면 편하겠지만, 20세기의 교훈은 그런 간편한 양자택일을 허용하지 않는다. 혁명 노선도 나름의 한계와 오류에 부딪혔다.
  
우선 민주공화국의 모순적 성격을 충분히 주목하지 못했다는 게 드러났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대의 민주주의가 아무리 발전해도 국가의 폭력적․계급적 성격이 변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은 올바른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대의 민주주의의 위력은 생각보다 강한 것이었다. 선거나 의회 제도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선진자본주의 사회의 대중은 그것을 이유로 기존 국가기구 전체의 파괴를 선뜻 지지하지는 않았다. 러시아의 10월 혁명이 단순히 반복되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대중은 그보다는 대의제의 룰을 계속 고수하려 했다.
 
20세기 초에 전 세계를 뒤흔든 자본주의의 위기가 진정된 2차 대전 이후에는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자본주의의 위기 시기에도 혁명정당들(제3인터내셔널, 즉 코민테른에 속했던 공산당들)은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에서 혁명을 실현시키는 데 실패했지만, 2차 대전 이후에는 더더욱 이런 고전적 혁명 노선을 주장하는 정치세력이 대중의 지지를 얻기 힘들었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국가기구의 ‘분쇄’를 추진한 역사적 경험, 즉 러시아 10월 혁명이 뜻밖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러시아에서는 기존의 의회 대신에 새로운 대의기관으로 소비에트(노동자․농민․병사 평의회)가 등장했다. 구 체제의 경찰과 군대도 해산되고, 국가기구 전체가 새로 조직됐다. 그런데 이 새로 등장한 국가가 과거의 짜르 정부를 능가하는 관료 독재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 우리가 흔히 ‘스탈린주의’라고 부르는 억압적 체제가 그 완성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10월 혁명의 변질은 민주주의가 일정하게 정착한 나라들에서 혁명 노선이 대중의 신뢰를 상실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현실사회주의의 실상이 외부에 그대로 알려지는 게 우파의 어떠한 반공 선전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말하자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국가론은 개혁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는 위력을 발휘했으나 그 대안은 만족스럽게 제시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10월 혁명의 경험은 서구의 민주공화국에는 잘 들어맞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일정하게 정착된 사회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 변혁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3. 국가, 어떻게 바꿀 것인가?
 
3.1 국가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국가는 손에 쥘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그렇다고 통째로 부숴야 한다는 시각으로만 볼 것도 아니다. 무엇을 국가라고 부르고 무엇을 국가가 아니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현대 국가는 다양한 조직과 활동들로 구성된다. 한 사회 전체만큼이나 복잡하게 여러 사회적 관계들이 그물처럼 얽혀 있는 게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국가를 이루는 여러 구성 요소들은 서로 그 구조와 기능이 다를 뿐만 아니라 역사적 뿌리 자체가 다르기도 하다. 관료제나 상비군은 비교적 오래 전부터 국가의 구성 요소가 돼온 것들이다. 국왕과 귀족이 지배하던 당시에도 이들은 국가기구의 일부를 이뤘었다. 한데 의회는 이것들과는 출생이 다르다. 애당초 의회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시기에 국왕의 군대와 겨루고 귀족계급과 투쟁하던 혁명 기관이었다. 그런데 민주주의 혁명이 승리하고 나자 바로 이 의회가 관료제, 군대 등과 함께 국가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되었다. 아니 국가 내의 새로운 권력 중심으로까지 부상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 그 기원이 다른 기관들이 오랜 역사적 과정을 통해 서로 결합돼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게 지금의 국가다.
 
또한 사회의 다른 부분(흔히 ‘시민사회’라 부른다)과 국가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도 국가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복잡하게 만든다. 현대 국가일수록 국가와 시민사회가 서로 중첩되는데, 이게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민사회 안에 국가의 촉수가 길게 뻗어 나와 있어야 국가의 활동이 원활하게 펼쳐질 수 있다. 이걸 방향을 달리 해서 보면, 시민사회의 여러 부분들이 국가 내부와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진 제2건국위원회는 국가기관인가, 시민사회인가? 노무현 정부가 무슨 일 있을 때마다 만들자고 주장하는 범국민 연석회의 운운은 또 뭔가?
 
국가가 누군가의 손에 쥐어지길 기다리는 장돌도 아니고 어떤 집단의 전용 무기도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잡다한 요소들이 얼기설기 모여 있는 무질서한 다발 같은 것은 더욱 아니다. 차라리 수많은 세포로 이뤄져 있고 다양한 내장 기관들의 복잡한 운동을 통해 살아가는 생물체라고나 할까.
 
그럼 이렇게 다양하고 서로 상반되기까지 하는 요소들을 국가라는 하나의 덩어리로 통일하는 힘은 도대체 무엇인가? 고대의 폭력적 지배 조직으로부터 비롯된 이 국가라는 것을 수많은 하위 조직과 활동들을 포괄하는 복잡한 그물망으로 발전시킨 그 힘은 무엇인가? ― 그것은 바로 사회적 세력관계들, 투쟁과 타협의 관계들이다(계급, 성, 인종 등등). 그리고 그 중에서도 계급 세력관계, 즉 계급투쟁이다.
 
어떠한 조직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어 국가라는 걸 구성할지 결정하는 것은 계급 세력관계다. 국가 전체에서 어떤 조직이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할지 결정하는 것도 계급 세력관계다. 그 때 그 때의 계급투쟁이 국가의 성격과 구조, 작동 방식을 결정한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함의를 끌어낼 수 있다.
 
첫째, 지금까지의 국가는 지배계급의 독무대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이제까지 계급 세력관계란 건 항상 지배계급이 일방적으로 리드하는 판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자본가계급의 헤게모니가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따라서 국가라는 복잡한 그물망도 결국은 자본가계급을 향해 쏠릴 수밖에 없다.
 
둘째, 그렇지만 동시에 주목해야 할 것은 국가에 지배계급의 권력과 이해가 관철되는 과정은 그렇게 자동적이거나 순탄하기만 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지만 국가는 ‘그 때 그 때’의 계급 세력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국가가 자본가계급을 향해 쏠리는 것도 항상 기계적으로 보장되는 거라고 볼 수는 없다. 아니, 이것은 ‘그 때 그 때’ 확인되고 또 재확인되어야 한다. 게다가 그 과정은 사회의 여러 투쟁들에 노출된 시끄럽고 골치 아픈 것이다. 그렇다면 ‘때에 따라서는’ 국가 안에 자본가계급의 뜻을 관철하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제 비로소 국가는 하나의 생물체처럼 뭔가 확실히 꿈틀거리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셋째, 혁명 수준의 격렬한 계급투쟁은 국가에도 그 정도의 커다란 변화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바로 그 대표적 사례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즉 국왕․귀족과 부르주아 계급 사이의 계급투쟁 과정에서 의회라는 부르주아 계급의 혁명 기관이 등장했다. 이 기관은 민중들의 지지를 받아 권력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했고 이를 중심으로 국가 전체가 다시 짜여졌다. 새로운 기관이 등장하고 그것이 새 중심이 되었으며 이에 따라 국가의 얼개가 크게 바뀌었다. 즉, 국가는 ‘변형’되었다.
 
* 더 읽을 책․글들:
- A. 그람시, 『그람시의 옥중수고 1: 정치편』, 이상훈 옮김, 거름, 1999: 이 중 제2장 “국가와 시민사회”.
- C. 보그, 『다시 그람시에게로』, 강문구 옮김, 한울, 2004: 그람시의 사상을 정리한 책.
- N. 풀란차스, 『국가, 권력, 사회주의』, 박병영 옮김, 백의, 1994: 절판 상태.
- B. 제솝, 『풀란차스를 읽자』, 백의, 1996: 현대 맑스주의 국가이론가 풀란차스의 사상을 정리한 책.

3.2 국가 안의 투쟁: 본격적인 싸움은 집권 이후부터 
 
민주공화국에서 사회주의자는 선거와 의회에 참여해야 한다. 아주 강한 의미에서 참여<해야> 한다. 선거와 의회는 국가 안에서 민중 투쟁에 가장 열려 있는 공간이다. 또한 이것은 민중 투쟁의 산물이기도 하다. 우리의 경우는 4월 혁명, 광주 항쟁, 6월 항쟁을 떠올려 보면 된다. 대의민주제는 어쨌든 형식적인 수준에서는 진보정당도 선거를 통해 집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사실 선거로 집권하고 나서 과연 제대로 된 개혁을 펼칠 수 있는지 여부는 고사하고라도 선거란 것 자체가 이만저만 편파적이고 왜곡된 싸움판이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서 깊은 ‘민주’공화국에서 1인1표는 추상적 이상에 불과하다. 지역 선거구에서 한 명의 당선자를 뽑는 경기는 도대체 국민의 의사를 정치에 반영한다는 목표와는 거리가 멀다. 비록 가장 민주적인 선거 제도(비례대표제)를 취한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장애는 계속 남는다. 선거전은 여론전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거대 매체는 자본의 소유다. 이들 매체는 아무래도 기존 체제를 대변하는 역할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주장을 사람들의 귀에 다가가게 하는 데에 이미 커다란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자는 선거와 의회 공간을 포기할 수 없다. 그것은 선거 정치에 대한 환상 때문은 아니다. 아니, 어떠한 환상과도 관계없는, 가장 냉정한 현실 판단 때문에 그렇다. 이미 대의민주제가 뿌리내린 사회, 그것도 민중 투쟁을 통해 그것을 쟁취한 사회에서 대중은 선거와 의회를 값싸게 여기지 않는다. 그것에 결코 만족할 수 없고 자주 냉소의 대상이 되긴 하지만, 어쨌든 그것이 자신들의 의사를 표출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라고 여긴다. 다른 더 나은 통로가 없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에 제도정치공간은 그 정당성을 유지한다. 사회주의 세력이 소수 엘리트가 아닌 다수 대중의 지지와 동의에 기반해 사회를 바꾸려 하는 한(다수자 혁명), 제도정치공간은 사회주의자들이 반드시 두 발을 디뎌야 할 곳 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는 개혁적 사회주의자들과 같은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 국가기구 내에서 선거를 통해 접근하고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노동자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해 여당이 된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국가권력이 곧바로 노동자․민중에게 넘어온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국가 내에서 하나의 진지, 아주 중요하기는 하지만 결코 국가 전체와 혼동되어서는 안 될 한 진지를 확보한 것을 뜻할 뿐이다. 우리는 항상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집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따름이다. 오히려 본격적인 싸움은 집권 이후에 시작된다. 칠레의 사례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진보세력이 집권해서 급진적 개혁정책을 펼치면 기득권 세력과 노동자․민중 사이의 이해 대립이 대중의 눈에 선명히 드러나게 된다. 기득권 세력은 (외세를 비롯한) 참으로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반격을 펼치지만, 이 중에서도 특히 효과적인 방법은 국가기구 내에서 집권 진보세력에 대한 사보타지와 반란이 일어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대립이 국가기구 내의 투쟁에 집약돼 나타난다. 이 치열한 무대 연기는 지금까지 숨죽이고만 있던 관객들로 하여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한다. 이제 역사의 전혀 새로운 국면이 열린다.
  
이것은 중앙정부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진실이 아니다. 의회의 일부에 진출하든 지방자치단체의 여당이 되든 마찬가지다. 체제 자체에 손을 대는 것과는 거리가 먼 수준의 개혁정책이라 하더라도 때로 기득권층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한국사회처럼 한 번도 진지한 사회개혁이 추진되어본 적이 없는 곳일수록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 때 진보세력은 기득권층의 반대를 이유로 개혁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것을 대중들의 새로운 각성과 참여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국가기구 안에서의 진보세력의 정치활동은 이렇게 대중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계기로서 기획되어야 한다.
  
브라질 노동자당이 포르투 알레그레 시에서 추진한 참여예산제가 주목할만한 사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동자당 시정부는 시의회 내의 보수파 때문에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게 되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예산안을 짜게 했다. 시의회의 보수파들도 시민의 힘에 굴복해 이 예산안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 도시의 예산안은 항상 시민들의 활발한 참여를 통해 작성되었다. 지방자치제도 내의 투쟁이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연 것이다.
 
3.3 국가 밖의 투쟁: 핵심은 아래로부터의 민중권력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국가기구 안의 대립과 타협을 결정하는 것은 국가 안팎에 걸친 계급 세력관계다. 그렇다면 국가기구 내의 진보세력의 투쟁도 계급 세력관계가 노동자․민중 쪽에 유리한지 그렇지 못한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즉, 진보세력이 제도정치공간에서 투쟁할 힘은 노동자․민중운동의 역량에서 나온다.
  
이것은 사회주의 운동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득표율과 국회의원 수, 지방의원 수가 진보세력의 역량을 말해주는 게 아니다.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자․민중운동의 성장이다. 진보정당이 국가 내에 일정한 진지를 확보하더라도 대중운동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국가기구 내의 투쟁 역시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낮은 수준의 개혁정책조차 밀어붙이기 힘들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한 뒤 겪고 있는 상황이 바로 이런 것 아닌가. 노동운동․농민운동이 모두 침체와 수세 상태에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의 활동도 폭발력을 갖기 힘든 형편이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는 핵심은 대중운동이라는 점을 결코 잊어선 안 되는 것이다. 진보정당의 성장은 노동조합운동의 발전과 함께 해야 한다. 한편에서는 국회 의석도 늘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에 진보적인 공동체들이 뿌리내려야 한다. 지도자들이 TV에 자주 나오는 것도 좋지만, 기존의 매체들을 대신하거나 변화시킬 대안문화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단지 이것만이 아니다. 노동자․민중운동의 가장 드높은 형태는 민중권력이다. 중요한 역사적 순간마다 대중은 기존의 대의민주제를 훌쩍 뛰어넘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스스로 고안해낸다. 정치라고는 관심도 없고 패배와 냉소에 젖어 있는 것만 같았던 대중들이 어느 날 갑자기 권력의 주인임을 확인하고 나서는 것이다. 이들은 어떠한 이념가보다 더 앞으로 나아가고 어떠한 이론가보다 더 뛰어난 창의력을 보여준다.
  
1871년 프랑스의 파리 코뮌, 1917년 러시아의 노동자․농민․병사 평의회(러시아 말로 ‘소비에트’), 1919년 이탈리아의 공장평의회 등이 그 좋은 예다. 우리 역사에서도 1894년 동학농민혁명 중의 집강소나 해방 공간에 등장한 건국준비위원회․노동자 자주관리운동 등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민중권력은 기득권 세력과 노동자․민중 사이의 이해 대립이 사회 전체에 걸쳐 너무도 선명히 부각될 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단순히 선동만 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계기가 있어야 한다. 국가기구 내의 투쟁을 통해 사회의 근본 대립이 모두의 눈앞에 명백히 드러나는 상황이 이런 계기들 중 하나다.
  
1972년 10월의 칠레가 바로 그런 순간을 보여준다. 이 때 칠레에서는 자본가계급이 아옌데 정부에 반대해 일손을 놓았다. 파업투쟁을 한 것이다! 파업은 노동자들만의 무기가 아니었다. 더구나 풍족한 파업 기금을 지닌 자본가계급의 단결력은 노동자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공장에 관리자들이 출근하지 않고, 상점들이 문을 닫아 생필품을 사기도 힘들어졌다. 그러자 이제 노동자․민중이 전면에 나섰다. 인민연합 정부에만 기대를 거는 게 아니라 민중들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공장 자주관리 기관인 산업코르돈(‘코르돈’은 조정위원회라는 뜻이다)을 공장마다, 공단마다 만들었다. 관리자들이 출근하지 않아도 공장이 다시 돌아갔다. 더구나 어떤 공장에서는 이윤이 아니라 삶을 위한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상점이 문을 닫아 품귀 현상이 일어난 동네에서는 주민 자치 기관인 ‘자치지도부’가 만들어져 시장을 거치지 않고 생필품을 공급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자본가계급도 결국 한 달만에 파업을 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아옌데 정부를 굴복시키기는커녕 역사의 참된 주인공의 잠만 깨웠을 뿐이었다.
  
똑같은 일이 지금 베네수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의 진보적 정책이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가져와 어용 노조의 파업, 군부 쿠데타 시도, 대통령 불신임 국민투표 등 정치적 대립이 격렬해지자 이 나라에서도 민중들 자신이 무대의 주인공으로 나섰다. 30년 전의 칠레와 꼭 마찬가지로 공장에서는 자주관리, 지역에서는 민중 자치의 거센 물결이 휘몰아치고 있다.
    
포르투 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도 규모만 훨씬 작다 뿐이지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례다. 해마다 수만 명의 시민이 예산 작성 과정에 참여하고 기존의 시의회 외에 예산참여평의회라는 새로운 자치 기관이 등장해 시민들의 토론장 역할을 하는 것은 민중권력의 초보적 단계라 할 수 있다.
  
3.4 국가 안과 밖의 투쟁을 통해 국가를 ‘변형’시킨다
  
여기에서 당연히 이런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럼 기존 국가 내의 투쟁과 새로 등장한 민중권력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우리가 갖고 있는 답 중 하나는 민중권력기관이 기존 국가기구에 맞서게 하는 것이다. 즉,  ‘이중 권력’이다. 그리고 결국은 민중권력기관(소비에트)이 나서서 기존 국가기구(임시정부)를 ‘분쇄’하고 노동자국가를 새롭게 건설하는 것이다. 바로 10월 혁명의 길이다.
 
이것과는 다른 길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한 마디로 국가를 ‘변형’시키는 것이다. 그 구조와 작동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전혀 새로운 권력 기관이 등장하고, 이 기관이 국가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한다. 이를 주축으로 이제까지 국가를 이루던 여러 요소들도 혹독한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또한 이들 사이의 관계도 바뀐다. 이렇게 하여 ‘변형’된 국가는 지금의 국가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일 것이다. 마치 과거의 봉건제 국가가 민주공화국과 다르듯이, 아니 그것 이상으로.
    
새로운 권력 기관이란 곧 민중권력이다. 과거에 의회가 그랬듯이 이제는 현재의 의회보다 훨씬 더 민주적인 대의 기관이 등장해 국가 권력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다. 국가기구 내의 투쟁 세력은 민중권력기관의 등장과 확장을 돕고 이들과 연대한다. 민중권력기관이 기존 국가 전체와 대립하는 형국이 아니라 국가기구 내의 투쟁 세력과 만나 사회 전반에 걸친 새로운 그물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 때 국가 내의 어떤 요소들은 폐지되거나 축소되어야 한다. 억압적 국가기구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또 다른 요소들은 역할이 재조정되어야 한다. 기존의 의회는 민중권력기관과 역할을 분담해야 할 것이다. 또 어떤 요소들은 그 내부 구조와 작동 방식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경제 전문 관료기구는 시민사회의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경제 담당 위원회로 교체되던가 그것에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헌법을 개정해 국가기구를 크게 손봤다. 직접민주주의 제도들이 도입되고, 관료 엘리트들의 본산인 사법부 등의 구조가 바뀌었다. 이것은 국가를 변형시킨다는 게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국가의 변형, 30여 년 전 칠레의 민중들은 이 길의 첫 발만 내딛은 상태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반면 지금 베네수엘라 민중들은 이 길의 중턱을 넘어서고 있다. 역사상 가장 앞선 경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끝이 어디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편 오래 전, 1차 대전 직후, 유럽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당시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노동당은 노동자와 참전 병사들이 자발적으로 건설한 노동자․병사 평의회를 합법 기관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것은 새로운 대의 기구로 성장하지 못하고 사회민주노동당의 동원 기구 정도로 전락했다. 이렇게, 민중권력기관이 국가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하기보다는 오히려 기존 국가기구에 흡수돼버릴 수도 있다.
  
말하자면 국가 변형론 역시 역사 속에서 충분히 검증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와 비슷한 길을 추구한 얼마 안 되는 역사적 경험들 중에도 역시 성공보다는 실패 사례들이 더 많다. 또한 무슨 완성된 모델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밑그림에 불과하고 그 내용은 이제부터 씌어져야 할 판이다. 하지만 형식민주주의가 뿌리내린 민주공화국에 적합한 변혁 전략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장 풍부한 시사를 던져주는 논의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한편 미해결의 과제 중 특히 중요한 것으로 억압적 국가기구의 반발이나 외세의 간섭 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넘어가야겠다. 사실 이것들은 애당초 어떤 이론적 공식으로 풀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구체적 상황의 구체적 분석과 그에 따른 실천이 필요할 뿐이다. 베네수엘라를 예로 들어 보자. 베네수엘라에서는 군대 내의 민중적 부분이 차베스 정부를 성원한 덕분에 평화 혁명이 가능했다. 보수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차베스 정부를 지지하는 공수부대가 쿠데타 군을 진압해버렸다. 또한 베네수엘라가 갖고 있는 석유 자원이 외세의 개입을 우습게 만들었다. 오일 달러가 있고 베네수엘라를 지지하는 이웃 나라들(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이 있기 때문에 미국의 협박도 별 효과가 없다. 하지만 어쨌든 이것은 베네수엘라의 이야기다.
 
* 더 읽을 책․글들:
- N. 풀란차스, 「유로코뮤니즘: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길」, 한국정치연구회 사상분과 편, 『현대민주주의론 2』, 창작과비평사, 1992.
- B. 제솝, 『풀란차스를 읽자』, 백의, 1996: 이 중 제16장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민주적 이행”.
- M. 카노이, 『국가와 정치이론』, 이재석 옮김, 한울, 1985: 이 중 제6장 “국가, 민주주의 및 사회주의로의 이행”.
- R. 밀리반트, 『회의하는 세대를 위한 사회주의: 사회주의의 새로운 모색』, 이남표 외 옮김, 변증법, 2003.
- 장석준, 「칠레의 전투는 계속된다: 칠레 사회당․공산당과 아옌데 인민연합정부」, <이론과 실천> 2003년 5월호.
- M. 아르네케르, 「미래를 만들기 위해 과거를 이해하자」, <이론과 실천> 2003년 10월호: 칠레 아옌데 정부의 경험을 평가한 글.
- 영상자료: <칠레의 전투> 제2․3부 (인권운동사랑방 배급)
- M. 그레 외, 『새로운 민주주의의 희망』, 김택현 옮김, 박종철출판사, 2005: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 시의 참여예산제 경험을 정리한 책.
- 마르꼬스 외, 『게릴라의 전설을 넘어』, 박정훈 옮김, 생각의나무, 2004: 이 중 제2장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

  
3.5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지향: 국가는 점차 ‘사멸’해야 한다
  
고전 사회주의 이론가들이 국가 문제를 놓고 제시한 이상은 참으로 드높고 원대한 것이었다. 맑스, 엥겔스, 레닌, 이런 사람들은 단지 기존의 자본가계급 국가를 무너뜨리고 노동계급의 국가를 건설하자는 이야기만 한 게 아니었다. 이들은 국가 자체가 결국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계급 국가도 마찬가지다. 노동계급 국가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노동계급’ 국가인 주된 이유는 스스로 알아서 사라져 가는 국가라는 데 있다는 것이다.
  
왜 국가가 사라져야만 하고 또 사라질 수밖에 없는가? 국가는 어쨌거나 누군가가 다른 누구를 지배하기 위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자본가계급도, 따라서 그에게 고용돼 살아가는 노동계급도 존재하지 않고 모두가 소유권을 공유하는 동등한 시민이 된다면 국가가 더 존재할 필요가 없다. 민중을 억압하고 다른 국가와 싸우기 위해 폭력을 독점하는 조직이 더 있을 이유가 없다. 대중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에 국가라는 이 대리 통치 기관은 이제 무용지물이다.
  
다만 국가는 단박에 없어지고 마는 건 아니다. 국가가 없어질 토대가 갖춰져야, 즉 자본주의 계급사회가 일단 극복돼야 국가도 없어질 수 있다. 말하자면, 국가는 서서히 죽어 가는 것이다. ‘사멸’하는 것이다.
  
이게 고전 사회주의 이론가들의 주장이다. 너무 유토피아적인 공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도대체 국가 없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사멸의 이상은 결코 만만히 볼 게 아니다. 이것은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만큼이나 현대 생활의 비극을 직시한 데서 나온 근본적 문제의식이다. 20세기의 수많은 비극 중에서 국가와 무관한 게 과연 있는가? 사회주의 운동 자체의 비극도 혁명의 실험들이 국가주의로 전락해버린 데서 비롯된 것 아닌가? 요즘 ‘비국가적 실천’ 같은 말이 회자되는 것도 국가 사멸의 이상을 새삼 재발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가 주도하는 이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대규모 폭력의 문제(전쟁, 학살 등등)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국가 사멸의 이상을 사멸된 채 놔둬선 안 되는 것 아닐까.
  
물론 국가 사멸의 상태를 마음 속에 그려놓고 이것을 현실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려 한다면 큰 사단이 날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사멸을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지향으로 바라보고 이에 따라 지금 우리의 실천이 어느 쪽으로 향할지를 결정한다면 이건 또 다른 이야기다. 맑스의 말처럼 “공산주의[국가의 사멸도 이 개념 안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인용자]는 우리가 달성해야 할 미래의 상태나, 현실을 끼워 맞춰야 할 어떤 이상이 아니라, 현재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의 운동”(『독일 이데올로기』)이니까 말이다.
  
이탈리아의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국가의 사멸이 곧 국가(정치사회)가 시민사회에 흡수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옥중수고』). 국가가 대리하던 활동들을 민중들 자신, 그리고 민중 자치조직의 몫으로 회수한다는 이야기다. 달리 말하면, 국가 없이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꾸려갈 수 있는 민중들의 능력이 성숙해 가는 과정이고, 민주주의가 끊임없이 심화․확대되는 과정이다. 즉, 우리가 장기적․근본적 지향으로서 국가의 사멸을 추구한다는 것은 항상 민중의 자치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정치 활동을 기획․실천한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권력이 등장하고 이를 통해 국가가 변형되는 것은 국가 사멸의 이상을 향한 일대 도약이라고 할 수 있다. 민중권력의 부상은 곧 민중 자치의 비약적 성장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의 폭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 덧붙일 게 몇 가지 있다. 고전 이론가들이 충분히 강조하지 못한 내용, 두 가지다.
 
하나는 국가 사멸의 국내적 조건에 관한 것이다. 레닌을 비롯한 고전 이론가들은 하나 같이 국가 사멸의 ‘경제적’ 토대만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그러나 경제적 영역만 강조하는 것은 너무 일면적이다. 국가는 그것을 대신할 대안적 사회 조직들이 성숙하지 않고서는 결코 인류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안적인 사회 조직들은 자본주의 착취 관계가 사라진다고 해서 자동으로 생겨나는 게 아니다. 대중의 경제적․정치적․문화적 능력이 함께 성숙해야 한다. 또한 민중권력의 밀물이 한 차례 휩쓸었다고 해서 단번에 민중 자치의 능력이 성숙하는 것도 아니다. 더 많은 역사적 경험 속에서 단련되고 또 단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없이는 착취와 폭력 없는 세상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만년의 레닌이 ‘문화혁명’을 그토록 강조한 것도 결국 이런 이유 때문 아닐까.
  
다른 하나는 국가 사멸의 국제적 조건에 관한 것이다. 국가가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다른 국가들이 존재한다’는 가장 단순한 사실에 있다. 다른 국가들이 존재하는 한, 이에 대해 주권을 주장할 ‘우리의’ 국가가 존재해야만 한다. 즉, 국가들이 서로 지배하고 지배받으며 경쟁하고 싸우는 국제질서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한, 국가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10월 혁명 이후 등장한 혁명 국가가 다른 국가들과 별 차이 없는 것으로 전락한 데는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 탓이 컸다. 혁명 러시아가 제국주의 국가들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이 신생 국가는 제국주의 적대국들의 논리를 모방하며 제 살길을 찾았던 것이다.
 
이제 ‘국제연대’라는 추상적인 구호는 국제질서를 조금이라도 의식적으로 개편하려는 구체적인 노력들로 나타나야 한다. 이 점에서 일국 혁명과 세계 혁명의 이분법은 허망한 것이다. 세계 변혁이 일국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듯이 모든 일국적 변혁(개혁의 수준일지라도)은 세계 개조의 전망을 동반하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다. 이러한 전망이 없다면 진보세력은 국가 간 경쟁과 투쟁의 논리를 무의식적으로 뒤좇다가 항상 국가주의의 포로 신세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유럽연합 헌법안에 반대하면서 사회권 중심의 통합을 요구하는 유럽 사회주의 운동의 움직임이나, 최근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 정부들의 주도로 추진되는 통합운동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더 읽을 책․글들:
- V. I. 레닌, 『국가와 혁명』, 김영철 옮김, 논장, 1988: 절판 상태.
- A. 그람시, 『그람시의 옥중수고 1: 정치편』, 이상훈 옮김, 거름, 1999: 이 중 제2장 “국가와 시민사회”.

    
4. 무엇을 할 것인가?
  
4.1 국가 변형을 위한 당과 대중운동의 판짜기
  
우리의 목표가 국가라는 거미줄 안에 갇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제압하고 바꾸는 것이라면 우리 운동은 바로 지금부터 그 태세를 갖춰나가야 한다. 국회에서 보수세력이 내놓은 법안 하나 제대로 막지 못하면서 벌써부터 집권하고 난 뒤 걱정이냐고 할지 모른다. 팔자 좋은 고민 아니냐, 사치스러운 공상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를 어떻게 다루고 사회를 어떻게 바꿔나갈지는 결코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고 나서야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종착역이 어디냐에 따라 우리의 중간 기착 역이 달라진다.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에 따라 지금 우리의 발걸음 하나 하나가 결정된다.
   
국가 변형 전략을 추구한다면 우선 당운동의 중심부터 제대로 놓아야 한다. 대중의 인기를 끌고 선거에 이기는 건 그것대로 해야 하지만, 이것에 취해서 정작 더 중요한 걸 놓쳐선 안 된다. 국회의원이 아무리 많고 지방의원이 수천 명이 돼도 이 사람들이 감투 차지하는 데만 골몰한 정치꾼들이어서는 그 수가 연대 규모가 되고 사단 병력이 돼도 쓸 데 없다. 이런 사람들만으로는 재경부니 외통부니 하는 곳에 포진한 제 잘난 고위 관료들을 제압하기는커녕 비웃음만 사기 딱 알맞다. 몇몇 똑똑한 스타 정치인들이 있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이들만의 힘으로 저 방대한 국가기구를 휘어잡기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선거정당․의회정당으로는 집권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세상은 바꿀 수 없다.
  
이건 무엇보다도 노무현 정부의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노무현 정부가 약속한 보잘것없는 수준의 개혁조차도 관료들에게 영이 안 서서 용두사미가 돼버렸다. 그러자 노무현 정부가 생각해낸 묘책이란 게 기존 정부기구 바깥에 숱한 정책자문위원회들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 위원회들이 하는 일이란 학자들이 모여 보고서 내고 언론 플레이하는 게 고작이다. 정작 일은 여전히 정부 부처들이 알아서 한다. 노무현 지지 세력과 열린우리당이 특히 못나서 이런 게 아니다. 제 아무리 급진적인 언사를 내뱉는 정치세력이라 하더라도 국가기구를 바꿀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다 마찬가지 운명이다.
  
선거정당․의회정당을 비판하면, 그럼 코민테른의 혁명정당 노선을 선택하자는 거냐고 반문하곤 한다. 물론 과거 혁명운동의 전통 중에는 우리 시대에 맞게 다듬어 계승해야 할 것들이 많다. 하지만 혁명을 신앙으로 바꾼 소규모 정파․서클들이 우리의 대안은 분명히 아니다. 이런 조직, 이런 활동에 머물러서는 혁명은 고사하고 어떠한 거대한 사건도 만들어낼 수 없다.
  
대중은 급진적인 문구의 선전 선동에 감동해 움직이지는 않는다. 대중은 오직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만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한 번 걸음을 내디디면 그 속도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 경험들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촉발하는 게 당의 몫이다. 그러자면 대중정당은 대중정당이되 선거정당․의회정당의 길에 대해 늘 의문과 비판을 제기하면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정당이 있어야 한다.
  
혹자는 이런 당을 ‘운동정당’ 혹은 ‘사회운동정당’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간판이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깨닫는 게 관건이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합법대중정당을 한다면서 선거정치나 국가주의의 덫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과거 신선한 시도들로 이름을 날렸던 브라질 노동자당조차 집권 이후에는 영 형편없는 것을 보면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어려운 과제에 도전해야 한다. 어차피 세상을 바꾼다는 게 무슨 선례가 있어서 하는 일이 아니다. 수풀을 헤쳐 길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 시대의 당운동은 다음의 과제들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한다.
  
첫째, 노동자․민중운동의 성장을 제도정치의 성과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시해야 한다. 노동조합운동을 노동계급 전체로 확대시키고 지역에 풀뿌리 진보세력을 형성하는 걸 자신의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항상 모든 정치 활동을 국가를 들썩이고 시민사회를 약동시키는 계기로서 기획․추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의 역사적 경험을 촉발하는 것이다.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전국적으로는 노동자․민중의 새로운 집단적 경험을 만들어내야 한다.
 
셋째, 당 활동을 통해 현재의 국가와는 전혀 다른 민주주의의 제도적 맹아와 실천 능력들을 싹 틔워야 한다. 노동 현장과 지역 현장의 토론으로부터 전국적인 합의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훈련해야 한다. 관료기구와는 달리 전문가와 생활인이 기획 단계에서부터 지식과 의견을 함께 나누는 모델을 몸으로 보여줘야 한다. 기존 국가기구의 네트워크(고위 관료-관변 전문가-주류 언론 등)를 압도할 대안세력의 네트워크(대중운동-진보적 지식인․운동가-대안 언론 등)를 구축해야 한다.
     
한편 당뿐만 아니라 대중운동도 변혁 전략의 내용에 따라 그 성격과 과제를 재정비해야 한다. 가령 노동조합들이 단체교섭에만 매몰돼 교섭 전문기구처럼 되어 버린다면 민중 투쟁의 힘으로 국가를 변형시킨다는 것은 공염불에 그쳐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전투성을 견지하면 다 될 일도 아니다. 비록 파업 투쟁을 잘 하고 거리에 나가 싸우는 데 능하더라도 광범한 대중이 그 투쟁을 지지하도록 설득할 능력이 부족하거나 그 투쟁력을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뒷받침할 저력으로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이것도 결국 헛일이다.
  
흔히 대중운동이라고 하면 일회적인 동원, 즉 총파업이나 가두 투쟁만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운동의 한 측면일 뿐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노동조합 투쟁과 정치 투쟁이 갖는 커다란 사회주의적 의미는, 그것이 노동계급의 인식과 의식을 사회[주의]화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55쪽). 선거에 뛰어들든 총파업 투쟁을 하든 가장 중요한 건 이것이다: 자본과 국가를 극복할 대중의 능력을 형성하고 축적하는 것.
  
한국의 노동자․민중운동은 그간 워낙 국가 권력과 모질게 맞붙어 싸워와서 그런지 일순간에 폭발하고 격렬하게 싸우는 것은 잘 한다. 그 광경을 지켜본 외국인들이 한국은 항상 ‘혁명 전야’라고 오해할 정도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정반대다. 노동자들의 의식이 ‘코포라티즘’이니 ‘개량주의’니 하고 비판받는 서유럽의 노동자만 못하다. 공장과 사무실 담벼락을 넘어 1400만 노동계급이 공동의 이해관계를 지닌다는 생각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서울 도심에서 데모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동네나 마을로 들어가면 그 사람들이 다 어디에 숨었는지.
  
이제 우리 노동자․민중운동은 노동 현장․지역 현장에서부터 대중의 역량을 키워 차곡차곡 쌓아간다는 근본 과제에 치열하게 매달려야 한다. 흔히 ‘진지전’이라는 표현을 쓴다. 수많은 ‘진지’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국가와 자본의 그물망에 대항하고 그것을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업 투쟁을 해도 그것이 남길 진지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협상을 하고 타협을 하더라도 우리가 쟁취할 진지가 무엇인지부터 따져야 한다.
  
4.2 국가 변형을 위한 한 걸음 - 국가의 민주화․자치공간의 확대
 
 
그렇다면 당과 대중운동은 일상적으로 무엇을 주장하고 추진할 것인가?
  
우선, <국가의 민주화>다. 물론 국가 기관들을 조금씩 바꾼다고 해서 국가를 변형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을 좀 바꾸고 수많은 위원회에 노동자 대표를 보낸다고 국가의 성격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은 국가 안에 진지들을 남길 수 있다. 노동자․민중운동은 이들 진지를 발판으로 저항과 개입의 능력을 훈련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과 역량이 쌓여야만 모처럼 역사의 기회가 열렸을 때 국가의 변형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만약 이런 ‘예행 연습’들이 없다면 모처럼의 기회도 막간극 정도로 끝나버릴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부터 국가 내에 저항과 개입의 중심들을 건설해야 한다.
 
국가 안에 민주적․민중적 요소를 강화하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어디에 어떠한 저항의 중심들을 건설해야 하는가? 토론을 통해 많은 실천 과제들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일단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정리해본다.
  
선거와 정당․의회제도의 민주적 성격을 강화한다. 전면적인 비례대표제의 도입도 그 한 부분이다. 또한 공직자 소환 제도의 실시도 중요하다.
  
② 한국사회 민주화의 성역으로 남아 있는 국가 기관, 특히 공안기관과 사법부를 민주화한다. 지역 경찰․검찰 책임자를 선출직으로 만드는 것이 그 한 방법이다. 그리고 시민 배심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경제․사회․문화정책 담당 기관들을 노동자․민중의 대표들이 참여하는 위원회 구조로 바꾼다. 여기에서 위원회란 정부가 안건을 제시하고 결론의 가이드라인까지 쳐놓으면 거기에 들러리나 서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노사정위가 바로 이런 식이었다. 중앙정부부터 지방자치단체에 이르는 숱한 위원회들 모두가 관료기구의 기획․집행 활동에 자문이나 해주는 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위원회가 기획 단계부터 마지막 평가 절차까지 막강한 권한을 지녀야 한다. 최소한 각 참여 주체들이 자유롭게 의안을 상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경제․사회적 쟁점들에 대한 위원회 내의 논쟁은 그 어떤 폭로나 선동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회적 관심과 토론을 촉발하게 될 것이다.
  
국가의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국가의 모든 비밀 관행은 혁파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공공적 성격이 강하면서도 사적으로 독점되어 있는 정보들이 있다. 국가는 이러한 정보들을 시민사회에 공개․유통시키는 통로 역할을 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권한을 대폭 지방으로 이전하고 민중 참여․민중 자치의 계기를 마련한다.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중앙의 관료나 정치인들보다 지방의 관료나 정치인들이 더 많은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결정권의 단위가 민중들의 삶의 현장에 물리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 있어야 민중 참여의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방으로 이전된 권한들은 다시 지역 민중들에게로 이전되어야 한다. 즉, 민중 자치의 시도들이 필요하다. 위에서 소개한 참여예산제가 그 대표적 사례다. 브라질 외에도 1980년대의 영국 런던에서, 최근 우루과이, 인도 등지에서 비슷한 시도들이 성공을 거뒀다. 이것이 이제는 서울, 대전 그리고 호남의 한 농촌 지역과 영남의 한 지방 도시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공공부문의 지배구조에 노동자․민중 대표가 참여한다. 앞에서 정부 내의 각종 위원회들에 대해 제시한 원칙들이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이사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공공부문 지배구조의 민주화는 공공부문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높임으로써 공공부문이 확장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다. 더 나아가 공공부문의 새로운 경험들이 사기업의 소유 및 지배구조에 대한 진보적 논의를 촉발할 수 있다.
  
국가의 일선 요원들 사이에서 대중운동을 발전시킨다. 우선 공무원, 교사, 공공부문 노동자, 경찰, 군인 등이 노동권을 비롯한 제반 권리를 온전히 누려야 한다. 그리고 일선 국가 요원들의 대중운동은 국가 안에서 진보적 개혁을 추진하는 주축이 되어야 한다.
  
⑧ 또한 평화체제 구축과 군비 축소도 국가의 민주화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환기하자. 어느 나라나 군대는 적대 국가의 존재를 그 존립의 이유로 삼는다. 적대국이 존재하고 그 위협이 증폭될수록 군은 팽창하고 군부의 정치적 성격도 강화된다. 따라서 국가 간의 적대적 관계를 극복하는 게 군대의 과잉 팽창을 막고 군부 내의 보수적 요소를 최소화하는 첩경이다. 우리의 경우, 무엇보다도 남북이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군비 축소에 착수해야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동아시아 차원의 평화체제 건설과 핵 폐기를 포함한 군비 축소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국가의 민주화와 함께 또 다른 중요한 과제는 <자치 공간의 확대>다. 앞의 것이 국가 안에 저항 및 개입의 중심들을 건설하는 것이라면, 뒤의 것은 사회 곳곳에 새로운 권력의 중심들을 건설하는 것이다. 전자가 국가 안의 진지라면, 후자는 국가 바깥에 건설되지만 장래에 새로운 국가의 핵심적 부분이 될 진지라고 할 수 있겠다. 노동자․민중운동은 이러한 자치 공간을 거점으로 삼아 대중의 능력을 배양하고 새로운 사회 관계와 실천의 훈련을 쌓으며 지지 세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적 가치인 자주성과 현장 권력도 이런 맥락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 기업별 노동조합 체제를 깨고 초기업단위 노동조합을 건설하게 되면, 수십, 수백만 규모의 조합원들이 중요한 경제․사회 문제들에 대해 국가와 자본의 간섭 없이 분임 토론을 벌이고 집단적 의사를 형성해야 한다. 즉, 노동조합 사무실이나 대의원대회 장소에 국가와 자본의 힘이 미쳐선 안 된다는 소극적 자주성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수 구성원인 노동계급이 스스로 집단적 의사를 형성해서 사회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는 보다 적극적인 자주성이 필요하다.
    
또한 현장 권력도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다. 노동자․민중운동은 독자적인 교육 기관들을 설립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의 교육휴가권을 확대해야 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교유휴가권이 자본이 주도하는 좁은 의미의 직업 훈련에 제한되었다면, 이제는 노동운동의 독자적 교육기관에서 실시하는 진보적 시민 교육의 기회로 활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확대된’ 현장 권력에 다름 아니다.
  
노동 현장뿐만이 아니다. 지역 현장에서도 자치 공간들을 확보하고 그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 소비협동조합에서 복지협동조합, 생산협동조합까지 다양한 협동조합을 건설하고 이들 협동조합간의 거래를 통해 주류 시장경제로부터 벗어난 경제권을 형성할 수 있다. 노동조합, 농민회가 서로 협력하여 조합원, 농민회원들을 지역생활공동체로 조직할 수 있다. 대안문화운동가들이 지역 문화센터를 건설하고 지역 차원의 FM 라디오 방송을 시도할 수도 있다. 특히 이러한 지역 차원의 자치 공간들이 진보적 지방자치단체와 서로 만난다면 더 강한 폭발력을 갖게 될 것이다.
  
민중들의 삶의 현장 곳곳에 등장할 자치 공간들은 대안 사회의 맹아라고 할 수 있다. 이것 자체가 민중권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민중권력의 영감이 확대되고 그 꼴을 갖추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치 공간들을 통해서다.
  
4.3 국가 사멸을 향한 고민
  
마지막으로 국가 사멸의 장기적․근본적 관점에서 우리가 다시 짚어봐야 할 문제들을 지적해야겠다. 아직 고민이 깊지 못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지금부터 머리를 맞대고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들이다.
 
첫째, 지식 혹은 지적 능력의 공유․사회화 문제다. 국가의 극복을 위해 필요한 대중의 역량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이 지적 능력이다. 왜 그러한가?
  
계급사회에서는 항상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사회적으로 분리되어왔다. 그리고 정신노동을 전담하는 집단이 국가의 중추를 이뤄왔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와 현대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흔히 고위 관료, 직업 정치인 혹은 전문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단순히 자본주의 사회의 지식 격차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독점하고 지적 능력을 사유화하여 그 격차를 온존시키거나 확대한다. (법전에 나와 있는 해독 불능의 기이한 언어들을 떠올려보자. 도대체 이 암호들은 누굴 위해 존재하는가?)
 
현대 국가의 이러한 활동을 해체하지 않는다면, 국가를 변형시키려는 시도들은 국가 관료의 조용한 반격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말 것이다. 또한 대중의 지적 역량을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국가의 수명은 터무니없이 연장되고 관료 독재의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레닌은 새로운 사회에서는 요리사도 쉽게 국가 회계 업무를 맡아볼 수 있으리라고 내다봤지만, 이것은 지나친 낙관론이었다. 지식․지적 능력의 세계에서 불평등과 싸우는 특별한 노력들이 필요하다.
  
아마도 노동시간이 단축돼 자유시간이 늘어나고 그만큼 공적 생활의 일상적 참여, 학습과 토론, 자기계발과 문화활동의 기회가 풍부해지는 게 해결의 첫 실마리가 될 것이다.
  
둘째, 통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제까지 통일은 한반도에서 민족국가를 완성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하지만 왜 민족국가는 ‘완성’되어야 하는가? 그래서 통일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통일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바라보자는 것이다. 일단 두 분단국가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대안이 더 크고 강력한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뿐일까?
  
이 대목에서 지금으로부터 15년도 더 전 문익환 목사가 연방제 통일의 제3단계로 제시한 내용을 주목해보자. 그는 이렇게 제안한다. “제3단계는 남과 북 두 단위로 실시하던 지방자치제를 도 단위로 세분화한 단계이다. 그러나 연방제를 과도기적인 체제로 소극적으로만 이해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 제도의 기본인, 지방자치제로서 적극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가 실험해야 하는 지방자치제는 미국이나 소련의 지방자치제보다 철저한 것이어야 한다. 현재의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두 단위로 지방자치제를 실험하다가 때가 되면 도 단위로 지방자치제를 분화한 후에도 도마다 개성 있는 실험들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한다.”(「연방제 통일의 3단계 과정」, <사회와 사상> 창간호, 1988년 9월) 우리가 이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통일=민족국가의 완성’을 넘어선 전망도 가능하다는 것만은 생각해볼 수 있다.
   
일단 우리는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혹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형식부터 새로운 각도에서 재음미해봐야 한다. 애초에 제안된 의도나 취지와는 다르게 이러한 단계적 통일 방안들을 국가 단위를 넘어서려는 인류의 새로운 의식적 실험들과 연결시킬 가능성은 없는가. 한반도 전체에 걸쳐 전통적 형태의 국가기구를 건설하는 게 아니라 동아시아연합과 한반도연합, 각 지방정부들로 구성되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우리의 통일 전망으로 설계하는 것은 어떨까.
 
이것은 결국 세 번째 문제로 우리를 이끈다. 국가의 위상을 축소하고 종내는 그것의 극복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국제질서의 재편이다.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이미 신자유주의 세계화와는 다른 방향에서 민중의 정치적 공동체를 재설계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지역통합의 시도들은 그것 자체가 끝이 아니라 더 커다란 전 세계적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 것이다.
 
너무 멀리 나아간 걸까. 하지만 원래 사회주의자란 미래의 자리에서 현재를 바라보고 지금 이 순간의 한 발자국을 내딛는 사람들이다. 누구보다도 먼저, 그리고 더 치열하게 미래를 고민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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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9 13:31 2007/05/2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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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참견 07-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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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부터 참견하고 챙겨야 하는데... 

  
ㅇ 권정생 선생 타계
 
여기저기 지인들이 권정생 선생의 타계를 전하면서 안타까워할 때 약간 오바가 아닐까 생각했다. 단지 몽실언니, 강아지똥 등의 동화를 쓴 작가에 불과하지 않나. 그렇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인세는 굶주리는 북녘의 어린이를 위해 써달라. 남과 북이 통일을 이뤄 잘 살았으면 좋겠다. 시신은 화장하여 집 뒷산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동화 속 주인공들은 바보, 장애인, 노인 같은 약자들이거나 똥이나 돌, 풀처럼 볼품 없는 것들이었고...
뒤늦게나마 선생의 명복을 빈다. 
 
[사설] 모두 비우고 떠난 권정생, 그가 채워주는 것들 (경향신문, 2007년 05월 21일 18:12:16)    



ㅇ 새삼 GS칼텍스 불매운동?
 
여전히 불매운동을 하고 있는데, 전면적 불매운동을 하겠다는 선포식을 했단다. 하긴 사람들의 기억 속에 거의 사라졌을 것이다. 나의 실천방안은?
   
"GS칼텍스 기름 넣지 맙시다" (참세상, 최인희 기자, 2007년05월23일 14시58분)
 22일 여수공장 앞 'GS칼텍스 불매운동 선포식' 열려
 
   
전국민주화학섬유연맹 화학섬유노조와 GS칼텍스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등은 22일 오전 11시 GS칼텍스 여수공장 앞에서 광주전남지역 노동자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희망쟁취 원직복직 GS칼텍스 기름 전면적 불매운동 선포식'을 가졌다.
  
GS칼텍스 노동자들은 'LG정유노동조합'이던 2004년 당시 정유사 역사상 최초의 총파업을 단행한 바 있다. 이들 노동자들은 당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차별철폐, 지역사회 발전기금 조성을 통한 기업의 사회적 책무 이행, 일자리 창출을 위한 주5일 근무 등을 요구했지만 이 과정에서 회사측과 정부, 보수언론들의 '대기업 이기주의' 공세로 매도되고 징계와 해고, 손배가압류, 민주노조 파괴 등으로 인해 현재까지 어렵게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주최측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GS칼텍스 자본의 상상을 초월한 인권유린과 노동탄압 앞에 민주노조 깃발을 내려야만 했던 노동자들의 피눈물을 기억하고 있다"며 "노동탄압, 부당해고, 인권탄압, 환경오염, 지역무시로 일관하는 반사회적 패륜, 악덕자본을 노동계급의 단결된 투쟁으로 반드시 심판하기 위해 민주노총 전 조합원이 참여하는 GS칼텍스 기름 불매투쟁을 조직적으로 진행할 것"이라 선포했다.
  
ㅇ인문학진흥 기본계획
  
정부가 인문학진흥 기본계획이라는 것도 발표했구나. 10년간 이 계획에 4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1년에 400억원이고, 그 정도로 인문학이 진흥될 수 있을까. 물론 돈이 전부도 아니고... 졸속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경향신문 사설이 인문학진흥 기본계획에 대해 잘 적어놓았다.
  
[사설] ‘인문학 살리기’ 돈만으론 안된다 (경향신문, 2007년 05월 18일 18:17:54)
  
계획이 성과를 거두려면 학계, 문화계, 출판계를 포함한 우리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계획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인문학계 나름대로 새로운 관례와 풍토를 가꿔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동안 논문형 작품만 학위논문으로 인정해온 관행을 바꿔 동서양 고전의 번역도 논문으로 인정키로 한다는 방침도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지역학 연구소에서 각 지역의 언어·풍습·종교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한다면 기업들과의 산학연계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른 차원에서 우려되는 것은 이런 지원금이 자칫 그럴 듯한 명목만 앞세운 나눠먹기식 잔칫상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두뇌한국(BK) 21’을 비롯한 여러 프로젝트에서 그런 전례를 적잖이 겪어 왔다. 실적을 마구 부풀리거나 권력층과의 연줄을 내세워 연구비를 타가는 등의 사례는 단호히 막아야 한다. 영문으로 번역할 고전 및 번역자의 선정과 장학금 지원 대학생을 배분하는 과정에서도 확실한 기준과 원칙이 마련돼야 뒤탈을 줄일 수 있다.
 
ㅇ 새흐름부터 기회주의적 행태를 벗어야
    
김승호 사이버노동대학대표가 민주노동당에 충고를 해주었다. 말 그 자체로만 보면 그럴싸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새흐름이 해온 행태는 그 자격에 시비를 걸게 한다. 민중경선제에 관한 부분이 대표적이다. 민중경선제가 가진 민주노동당 내의 함의를 그렇게 모른다는 말인가. 당 강령의 급진화를 얘기하면서 드는 예가 기껏 택지국유화 뿐이다. 정은교 샘이 지금까지 꾸준히 주장해오긴 했지만, 선거강령과 최대강령은 구별해야 하지 않나.   

“우측 깜빡이 민주노동당에 브레이크” (참세상, 이윤원 기자, 2007년05월23일 11시51분)
[인터뷰]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민주노동당에 대한 비판은 단지 선거공약의 내용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데 따른 것이다. 예컨대 민중참여경선제(민중경선제) 문제로 불거진 진성당원에 의한 당 형태는 사민주의적 정치와 맞닿아있다. 또 당과 노동조합의 관계에 있어서도 여전히 당을 우위에 두고, 노조는 정치에 있어서 2차적으로 사고 하는 것도 전부 사민주의적 정치 개념이다.
당 강령도 좀 더 급진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강령에 택지국유화를 포함시킬 수 있다.
  
(정당을) 새로 만드는 것부터 여러 생각이 가능한데 그 문제는 열어놓는 게 좋다는 입장이다. 일차적으로 민주노동당을 중시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당 중심성에서 벗어나야 된다. 대선출마를 선언한 후보들이 당 후보가 안 될 수도 있다는 결정을 내리기는 힘들겠지만 선거가 진보진영 전체에 미치는 의미를 생각해 (민중경선제를) 결단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전면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한데, 당으로 통합하자고 하기는 어려우니 강령 중심으로 토론하고 이를 가지고 후보를 논의한다면 통합 원칙에 부합하리라 본다. 목적을 위해서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냐. 그런데 강령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채 조직적 통일부터 먼저 하자고 하니, 지분 문제를 놓고 쓸데없는 논쟁만 하고 있다. 이제는 좀 생산적인 논의를 하자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세력화가 먼저인데 사람들이 매개를 건너뛰니 함의가 팍 죽는다. 민중경선제에 대해 말싸움만 해서는 해결이 안 된다. 정세에 대한 분석과 이에 대한 계급적 목표에 따라 최종적으로 방도가 나오는 것인데 그 순서를 건너뛰면 대체 뭘 위해서 이러지 하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순서가 엉켰다 하더라도 지금부터 당과 민주노총 내 공론화와 아울러 선거 강령과 대선 전략,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안이 동시에 얘기됐으면 좋겠다. 노동운동 안에서 최대한 합의를 이루는 구조와 관계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은 입체적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자세로 실천해야 한다. 당내에서 우리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대중적으로 강령에 대한 토론을 활성화한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이면 된다. 당 대선후보로 누가 뽑히든 뽑힌 사람을 지지하고 우리 운동에서는 다른 얘기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당 대선후보가 우리의 생각을 어느 정도 수용하기도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처음보다 진취성이 떨어졌고 원내 의석을 챙기면서 사민주의 성향이 뚜렷해졌는데, 아래로부터의 극복 과정을 실현한다면 꼭 강령 만들고 후보 세워서 대선투쟁 하지 않아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ㅇ 제조업 일자리 줄어 양극화 심화
  
사회통계로서 의미있는 기사.
 
“제조업 일자리 줄어 양극화 심화” (한겨레, 황보연 기자, 2007-05-21 오후 08:37:54)
“비제조업으로 이직자, 중산층 잔류비율 겨우 51%”
노동연구원 첫 분석…대한상의도 “고용감소 너무 빨라”
 
구미공단만 해도 최근 2년 사이 박씨가 다닌 ㄱ업체뿐 아니라, 한국전기초자, 엘에스(LS)전선 등 기업 10여곳이 폐업하거나 구조조정을 실시해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처럼 구조조정이나 폐업 등에 따른 제조업의 일자리 감소가 소득구조의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켰다는 연구결과가 처음으로 나왔다.
  
21일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노동시장 양극화의 경제적 분석’ 보고서를 보면, 중산층 가구주를 기준으로 제조업에서 비제조업으로 직장을 옮긴 사람들이 다음해에도 중산층에 남는 비율은 51%였고, 저소득층으로 내려앉는 비율은 22%에 이르렀다. 제조업에 계속 있을 때는 중산층에 잔류하거나 저소득층이 되는 비율이 각각 68%와 7%였다.
반면 비제조업에서 제조업으로 이동했을 때는, 중산층 잔류 비율이 81%였고 저소득층으로 떨어지는 비율은 5%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해마다 동일한 표본을 조사하는 ‘한국노동패널(KLIPS)’(전국 도시거주 5천가구 대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1998~2004년 산업 간 이직을 한 가구주들의 1년 뒤 소득수준 변화를 추적한 결과다. 중산층은 전체 가구소득 평균값의 70~150%에 해당되는 소득계층을 말한다.
 
 
ㅇ 먹거리에 관심을 갖자
  
<레디앙>에 연재됐던 '먹거리 안심 프로젝트와 대선 의제' 시리즈가 끝났다. 이 시리즈의 집필팀은 글을 읽은 보통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독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내용을 평가 받고 향후 활동에 참고를 하기 위해서 필요할 것 같다는 얘기였다.
    
밥은 꼭 집에서 먹어야 하나? (레디앙, 2007년 05월 21일 (월) 18:31:33 이재영 기획위원)
[먹거리 필자, 독자들과 만나다] 욕망을 죄악시하는 '운동권'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으니 익숙한 문제이긴 한데, 익숙하다 하여 다 아는 건 아니다. 연재물에 댓글이 적었던 것만 봐도 쉽게 말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닌 듯하다.
  
먹거리는 비판운동 진영에서도 주변화된 토픽(topic)이다. 연재 기사에서 언급하는 ‘세계식량체계’ 같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를 굉장히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을까? 그런데 운동권은 큰 문제 해결되면 먹거리 같은 것도 자동으로 해결된다는 막연한 기대에 매몰돼 있다.
  
다들 시스템만 고민한다. 그래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면 일을 시작할 엄두도 못 낸다. 먹거리는 민주노동당이라는 큰 시스템을 활용해 풀기 좋은 주제라 생각한다.
 
박동범씨가 이야기한 것처럼 다른 당도 뛰어들기 좋은 주제다. 그러면 민주노동당은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 이 문제가 중요하다는 당원 인식부터 만들어야 한다. ... 빈곤층 아동의 영양 상태라든가, 가난한 아이들에게 먹이기만 하면 장땡이라는 생각에서 더 좋은 음식을 먹이려는 것으로 인식이 발전해야 한다.
  
떡을 싼 랩에서 환경호르몬이 나와 몸에 안 좋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쩔 수 없고 막막하다. 먹거리 연재 기사에 나온 원칙들을 개인 수준에서는 지킬 수 없다. 보통들은 어차피 오래 살 것도 아닌데, 라고 생각한다.
 
값싼 외식, 나쁜 생산물이라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 먹거리에 관련된 결혼이나 모성담론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좋은 먹거리 외식 문화를 만드는 것도 정치적 실천이다.
  
노동운동은 생산이나 소득 문제에는 치중하지만, 소비나 지출 문제에는 무관심하다. 라면만 먹어도 감지덕지지 같은 인식도 있고.
  
한국 먹거리는 국제적으로 고급화된 상태고 가격도 가장 높은 편이다. 쌀이든 소고기든 최근 20년 동안은 생산성보다 맛 중심으로 개량됐고, 이유식에서는 이미 유기농이 시장 지배적이다. 하지만 네덜란드나 덴마크 같은 나라와는 달리 유기농이 워낙 고가이다 보니 서민들은 엄두도 못 낸다.
 
보통 사람들은 더 좋은 먹거리를 생각하지만, 운동권은 그렇지 않다. 욕망을 죄악시하고, 안 밝히는 금욕주의다. 다들 해외여행 다니는 시절에 외국 나간다고 하면, 저만 잘 먹고 잘 살려느냐는 식으로 비아냥대는 게 운동권 분위기다.
  
‘웰빙’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인 취향과 선호로 문제를 치환하는 거다. 함께 잘 먹고 사는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
  
공장에서 시작된 좌파운동은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먹거리 문제 같은 건 못 푸는 한계도 가진다. 노동 문제가 해결되면 먹거리나 농민 문제에도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은 원리적으로는 깔끔하지만, 현실을 방기하는 것이다.
 
     
ㅇ 공교육의 의미   
     
한국교육개발원의 보고서는 도시와 농촌간에 존재하는 학력격차를 학교교육이 그나마 줄여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학력차이를 근거로 이를 고착화하려는 3불정책의 폐지시도는 우려할 만하다.   
 
도시-농촌 학력격차 ‘학교교육’이 그나마 줄여 (한겨레, 이수범 기자, 2007-05-21 오후 08:35:19)
농촌학생 읽기등 원점수 낮지만 학교풍토 등 반영땐 격차 줄어 
  
이는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지난해 9월 일반고 135곳의 2학년생 7582명을 상대로 학업능력 검사를 벌여 분석한 ‘학교 교육수준 및 실태 분석 연구’ 보고서에서 드러났다.

보고서를 보면, 읽기에서 광역시 고교생들의 원점수 평균은 63.18로, 읍·면 지역 고교생 44.80보다 18.38점이 높았다. 하지만 학생의 사회·경제·문화적 배경, 학교의 소재지·설립유형 같은 교육여건을 반영한 점수를 빼고 학교 교육활동 효과 점수만을 비교해 보니, 점수 차가 8.98점으로 줄었다. 학교 효과는 교수·학습 활동, 방과후 활동, 학습 심리적 배경, 학교 풍토 등을 반영한 것이다.
 
김양분 교육개발원 교육조사연구실장 등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이 연구로 곧바로 고교 평준화 효과를 따질 경우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 있다”며 연구 결과의 뜻을 한정했다.
연구진은 △도시와 읍·면 지역 학교 간 학력 격차의 해소책 △교육 소외계층에 대한 보상 교육 프로그램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학업성취도 자료의 공개 여부를 떠나, 학교 평가에는 학업성취도 같은 학교 교육활동 성과가 반영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사설]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빚은 학력 격차 (한겨레, 2007-05-21 오후 07:11:07)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지난해 일반계 고교 150곳을 대상으로 벌인 학업능력검사의 결과 보고서를 보면, 도시와 농촌 사이 학력 격차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읽기에선 광역시 고교보다 읍·면 지역 고교 평균 원점수가 18.3점 낮았고, 수학은 18.1, 과학은 13.1점 정도 떨어졌다고 한다. 적은 점수 차가 아니다.
  
일부 언론은 보고서 가운데 자립형 사립고나 비평준화 고교와 일반 고교를 비교해 학력 격차가 최고 네 배나 난다는 부분을 특별히 강조하며, 고교 평준화 정책의 실패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학교간 격차(고교 등급)를 인정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 등 이른바 ‘3불정책’을 흔들어 온 집단이 항용 동원하는 자의적인 통계 해석의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이 보고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격차의 정도가 아니라 원인이다. 도·농 학교에서 보이는 이런 격차는, 서울의 강남과 강북처럼 동일한 모집단 고교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중소도시의 경우 학교에 따라 수학 점수 차이가 12.5점에 이르기도 했다. 결국 학부모나 학교가 속한 사회·경제적 배경, 그리고 학교의 교육 여건에서 격차가 발생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부모의 재산 수준에 따른 사교육비의 격차와 공적 지원의 차가 학력 격차를 고착·확대시켜 온 셈이다. 서울의 경우 자치구에 따라 교육 보조금이 최대 12배나 차이 나기도 한다.
  
따라서 더욱 강조돼야 할 것은, 교육 기회와 여건에서 불리한 처지에 있는 읍·면 지역을 비롯한 낙후지역 학교에 투자를 대폭확대해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른 학력 격차를 해소하는 일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학생의 배경이나 학교 여건을 제외하면, 방과후 학교 등 학교 교육활동의 효과는 읍·면에서 더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교육 여건이 나쁜 지방 출신 학생은, 수능 점수에선 몰라도 학업 성취도에선 도시 학생한테 결코 뒤지지 않았다. 서울대 2005년 신입생의 경우, 학교생활기록부로 선발하는 지역 균형선발 학생의 평균 학점이, 수능과 논술 점수로 선발하는 일반 정시모집 학생보다 1, 2학년 모두 높았다. 성적 향상 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교육 소외층에 대한 보상교육의 필요성과 그 효과를 웅변하는 대목이다.
 
  
ㅇ 장애인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  
  

이명박 말대로 이 땅에선 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살아갈 권리가 없나 보다. 
   
“사고땐 책임 못진다” 장애학생 수학여행 ‘기막힌 차별’ (경향신문, 울산|김한태기자, 2007년 05월 23일 22:20:40)
  
23일 울산장애인학부모회와 울산인권운동연대는 “학교측은 다운증후군이 있는 장애학생의 부모에게 수학여행에 가는 조건으로 ‘안전사고 발생시 학교측은 책임이 없는 것으로 한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요구했다”며 동의서 사본을 공개했다.
 
동의서는 학생 이름과 학부모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는 수학여행 기간 동안 발생하는 안전사고에 대해 학교 및 담임교사·보조교사에게 책임이 없는 것으로 동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단체는 “학교측은 또 다른 장애학생의 학부모에게 수학여행에 동행하되 학생들이 탄 버스에 동승하지 말고 개인 승용차로 뒤따라 오도록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두 장애학생은 수학여행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애학생의 부모는 “장애를 가진 학생도 엄연히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 학교측이 장애학생에게 편견을 갖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고 분노했다.
 
이들 단체는 “울산시교육청은 장애인을 차별대우한 학교장과 교사를 처벌하고 장애인식 개선을 위한 인권교육을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이 학교 강모 교감은 “동의서는 해당 학생의 담임이 개인적으로 받은 것으로 안다. 잘못됐다. 긴급교직원회의를 열어 담임을 책망하고 다른 교사에게도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훈화했다”고 말했다.
 
ㅇ 이번 기회에 확실한 문제제기가 되어야
  
[사설] ‘대부업 천국’ 언제까지 방치할 셈인가 (경향신문, 2007년 05월 23일 18:17:23)
  
보도에 따르면 정식 등록된 업체만 따져도 서울에만 약 6500곳에 이르고 전국적으로는 1만7500여 곳이 된다. 미등록 불법 업체까지 합치면 줄잡아 4만여 곳이 영업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의 경우 등록 대부업체 수가 이발소보다 많고 세탁소 수와 비슷할 만큼 많다니 놀라울 뿐이다.
 
대부업이 지난해 기준으로 시장 규모 18조원, 이용자가 329만명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한 데는 부실한 제도금융이 큰 몫을 했다. 신용이 아주 좋거나 담보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은행에서 급전 빌리기가 어려워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은행이 편하고 안전하게 장사하면서 대부업체에 손님을 몰아준 꼴이다. 대부업체들의 공격적인 영업도 급성장의 한 배경이다. 그 과정에서 터무니없이 높은 금리를 물리거나, 허위·과장 광고를 일삼고 불법 추심에 따른 문제를 끊임없이 일으켰지만 대부업은 사실상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고금리의 대부업 시장이 이처럼 커지는 것은 분명히 비정상이며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은 등록 대부업체의 갖가지 불법행위와 미등록 업체의 영업을 철저하게 단속해 피해를 막고 대부업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감독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장기적으로는 대부업 이용자를 제도금융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금융시스템 개선이 절실하다.
    
ㅇ 이수봉이 뭐하나 했더니...
  
 "조합원 이전에 평범한 국민들"인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길이었단다. 반대의 발상이 필요하지 않나. 평범한 국민 또한 노동자라는... 이수봉은 무슨 희망을 발견했을까.
이석행의 현장대장정으로 남는 게 뭘까? 그렇게 돌아다녀야 현장을 아는 것일까. 현장대장정을 하면서 민중경선제를 제안하였는데, 그 기간이면 이미 민주노총 조합원 중에 당원으로 가입할 사람들은 다 가입했겠다.
현장은 어디일까라는 질문부터 하고 싶다. 나에게 현장은?
  
그들도 조합원 이전에 평범한 국민이다" (프레시안, 이수봉/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2007-05-25 오전 6:50:58
[기고] 광주지역 '현장대장정'에 참가한 뒤 
  
작년에 총파업만 10회가 넘게 선언했다. 현장은 총파업 지침을 따라하느라고 허덕였다. 이제 민주노총의 투쟁은 '공문'으로는 조직되지 않는다. 무너진 체계와 기강을 다시 세우기 위해 조합원에게 다가가 호소하는 일부터 시작할 결심을 한 것이 현장대장정의 출발정신이다. 책상 앞에 앉아서는 어떤 좋은 구상도 무용지물이다. 기본이 안 서 있는데 무슨 일을 벌일 수 있겠는가? 위원장이 '총파업'이라는 말을 쓰기 싫어하는 이유다.
   
현장대장정은 이미 조금씩 얼어붙은 조합원들의 마음을 녹이고 있다. 오로지 정성과 진심으로 조합원들을 대하면 그만큼 조합원들이 알아준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 몸은 지칠대로 지치지만 오히려 정신은 점점 더 맑아진다. 현장에서 발견한 것은 '희망'이었다.
 
      
ㅇ 중국에서 사민주의 논쟁?
 
인민일보가 민주사회주의 주장을 비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 공산당은 노동자계급의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단 말인가. 이래서 실천이 중요한 모양이다. 
   
中 사회민주주의 논쟁…개혁파 “스위스식 수용” (경향신문, 베이징|홍인표특파원, 2007년 05월 25일 22:42:32)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5일 민주사회주의는 자산계급과 소자산계급사회의 정치사상이라고 규정하고, 중국이 외국의 제도를 모방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인민일보의 논평은 대표적인 개혁파 이론가 셰타오(謝韜·85) 전 중국인민대학 부총장 등이 제기한 ‘민주개혁’ 주장에 대한 직접적인 반론이다.
  
셰전부총장은 지난 2월20일 개혁성향의 월간지 ‘염황춘추(炎黃春秋)’에 기고한 ‘민주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다’는 제목의 글에서 중국이 사회민주주의 체제의 대표격인 스위스식의 정치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민주주의 모델이 현존하는 공산주의와 수정되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해 승리했다”며 “중국은 민주개혁을 통해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셰전부총장의 주장이 나오자 당시 공산당 내부에서 격렬한 반발이 일었으나, 올 가을로 예정된 제17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정치논쟁을 자제하자는 신중론에 묻혀 잠잠해졌다. 하지만 공산당이 뒤늦게 민주사회주의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정치논쟁이 불붙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민일보는 이번 논평에서 민주사회주의는 개량자본주의로 중국의 사회주의와 양립될 수 없다며 자국 정치체제의 독자성과 우월성을 역설했다.
  
ㅇ줄위의 종달새, 볼만 하겠네
 
이영화를 심상정을 지지하는 팬카페에서 단체로 보았다고 한다. 내용도 그렇고, 볼만 하겠다. 이런 영화에 대해서도 열어놓고 볼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과거보다 진전된 것이라고 봐도 될까. 
   
영화 ‘줄위의 종달새’, 채플린 풍자로 사회주의 꼬집어 (경향신문, 송형국기자, 2007년 05월 17일 17:53:34)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들이 모순으로 둘러싸인 자본주의를 애처로운 해학으로 묘사했다면, 체코의 이리 멘젤 감독의 이 영화는 공산주의의 자가당착을 채플린식 희극을 통해 고발한다. 정반대일 것만 같은 두 체제에 대한 풍자에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고전이 지니는 보편성이자 현재 한국에서 이 영화가 개봉하는 가치다.
  
“채플린은 나의 영화학교”라고 밝히는 멘젤 감독은 순박한 남자가 아름다운 여자와의 사랑에 빠지고,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이들을 가로막는 현실을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로 채워나간다.
  
영화는 ‘프라하의 봄’ 당시인 1968년 제작됐지만 체코 정부에 의해 20년 넘도록 상영금지 상태로 묶여있다가 1990년 베를린영화제에 출품돼 비로소 빛을 보게 됐고 이 영화제 금곰상을 받았다.
 
ㅇ 05-26, 노찾사가 공연을 한다
  
1회 공연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겠지.
아래 한동헌의 인터뷰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긴 했는데, 그렇다면 그 공연이 6월 항쟁 20주년 기념으로 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리고 아직도 노찾사를 노래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면 지난 20년동안 성장한 노동자계급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삶의 진실을 담아내는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프레시안, 박인규/기자, 2007-05-25 오후 7:39:52)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5/25] '노찾사' 한동헌 대표 
  
소위 얘기하는 민중성이라는 것을 80년대와는 또 다르게 해석하고 더 확대, 심어나갈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편에는 저희들이 그만큼 나이가 들고 과거 저희 음악을 들었던 분들도 그만큼 세월이 흘러가면서 삶의 경험이나 사회경험이 자신의 삶에 녹아있는 거고. 분명히 삶에 대해 느끼는 게 다를 거라고 봐요. 저의 경우는 좀 더 성숙한, 음악적으로도 좀 더 성숙한 모습을 이런 느낌으로, 좀 더 섬세하고 깊은 느낌으로 표현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뜻에서 그런 방향을 잡아봤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한국 대중음악이 표현하는 세계의 협애함. 내지는 심지어 그들이 과연 삶을 진실되게 담아내고 있는가. 또는 좀 더 깊이 생각한 무엇. 우리로 하여금 뭔가 생각하고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고. 우리에게 치유의 힘을 가진 만큼 그런 깊은 울림을 주는 음악들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에서 저는 사실 문제의식을 많이 느끼고 있었고.
 
이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반응이라든지 그런 대중성을 인기를 얻을 수 없다 하더라도 의미있는 소수자의 문화로서 다시 되살릴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회성이나 민주화 또는 시대정서를 대변했던 80년대 노찾사에 저희가 꼭 매여 있을 필요는 없고 오히려 진정한 예술, 노래에 있어서 진실이 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집단으로서 노찾사의 작업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저는 봅니다.
   
노찾사 “87 민주화 항쟁 20주년에 바침” (경향신문, 백승찬기자, 2007년 05월 22일 17:46:16)
  
한대표는 “이번 공연은 6월 민주화항쟁 20주년에 대한 헌정”이라며 “노찾사의 활동을 스스로 축하하려는 공연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노찾사에게 합법적 활동 공간이 열린 것도 사회의 민주화 덕분이니, 자신들의 이름보다 ‘민주화’를 내세우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다.
  
음악의 진정성이 점차 엷어지고, 음악을 진지하게 듣는 이들도 과거보다 줄어들었다고 누구나 말한다. 이에 대해 한대표는 “30, 40대의 문화 갈증은 여전하지만, 이들이 공감할 만한 음악이 너무나 드물다”고 말했다. 아울러 “노찾사가 요즘 음악시장의 자극제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다만 의미 있는 소수로 남고 싶다”고 덧붙였다.
   

ㅇ 구청장들 외유 주민감사청구 추진    
   
주민감사청구로는 아마 밝혀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 계속 물고늘어진다는 인상을 줄 필요가 있다.   
  
구청장들 외유 주민감사청구 추진 (레디앙, 2007년 05월 21일 (월) 12:22:50 문성준 기자)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세금 축내는 관광성 외유는 이제 그만"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지방자치위원회는 이번 구청장 해외연수가 “선진도시의 환경, 복지 정책을 시찰한다고 되어 있지만, 이과수 폭포, 브라질의 해변, 안데스 산맥, 잉카문명 유적지 방문 등 해당 지역 관광지가 주요하게 포함된 것을 주목하며, 이번 구청장들의 해외 시찰을 전형적인 연수를 위장한 관광성 외유”라고 주장했다.
이 연수를 위해 각 구별로 2,000여만 원에 가까운 구예산을 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당 지방자치위원회는 해당 구의 각 지역위원회가 “건강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구별로 집행된 2,000여만 원에 대한 환수조치를 위해 일곱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주민감사청구를 실시할 것”이라 밝혔다.
 
정경섭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지방자치위원장은 “언제까지 주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관행이 매년 반복되어야 하느냐”면서 “이번 주민감사 추진을 계기로 주민들과 함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고 낭비된 혈세를 돌려받겠다”고 밝혔다.
 
  
ㅇ 비정규직 32만 증가
 
통계청의 조사결과가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여기에서마져 비정규직이 늘어났다면 뻔하지 않은가.
   
"비정규직 줄었다"더니 1년도 못돼 32만 늘어 (프레시안, 여정민/기자, 2007-05-23 오후 6:24:24)
고학력 비정규직 21만 ↑…4대보험·복지혜택 격차도 2배  
  
  통계청이 23일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3월 전체 임금 노동자 1573만1000명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는 577만3000명으로 36.7%를 차지했다. 지난해 8월의 경우 전체 임금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은 35.5%(545만7000명)이었다.
  
  '고학력 비정규직'의 비율도 늘어났다. 대졸 이상의 고학력 비정규직 노동자는 지난해 28.6%에서 30.7%로 2.1%포인트(21만 명) 증가했다. 이는 통계청 설명대로 3월이 대학 졸업생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는 시기라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고졸 비정규직은 지난해에 비해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대졸 이상이나 중졸 이하에 비해 가장 비중이 높은 42.3%(244만1000명)를 차지했다. 중졸 이하의 저학력 비정규직은 지난해에 비해 7만 명 가량 늘었다.
  
  비정규직 가운데는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거나 비자발적인 사유로 계속 근무를 기대할 수 없는' 한시적 근로자의 비율이 63.1%로 가장 높았다.
  
 이번 조사 결과 복지혜택에서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도 상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규직 가운데 퇴직금과 상여금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각각 68.9%, 69.5%였지만, 비정규직은 각각 33.7%, 31.4%로 절반 수준이었다. 시간외 수당의 경우에는 정규직은 43.2%, 비정규직은 24.3%가 그 혜택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고, 유급휴가는 정규직이 48.0%, 비정규직이 27.3%였다.
  
ㅇ 반차베스 TV 폐쇄, 어떻게 볼까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참 역동적이다. 이러한 역동성을 그냥 긍정적으로 보기엔 뭔가 찝찝함이 있다. 자신에 반대하는 언론일지라도 놔두면서 헤게모니를 장악해야 진정한 변혁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反차베스 TV 폐쇄' 놓고 대규모 찬반 시위 (프레시안, 황준호/기자, 2007-05-27 오후 3:49:32)
2002년 쿠데타 주도세력 RCTV 28일 終放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국가들은 지난 22일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서 열린 메르코수르 재무장관 회담에서 RCTV 사태에 관해 지지 입장을 표명해 달라는 차베스 대통령의 요청을 거부했다. 베네수엘라 재무장관의 지지 요청에 대해 우루과이와 파라과이는 공식적으로 반대한다는 뜻을 나타냈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아무런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언론자유를 위한 국경 없는 기자협회(RSF), 국제 라디오 텔레비전협회(AIR) 등 국제 언론기구들도 올해 초 "차베스 정부가 체계적이고도 지속적인 언론매체들과 그 구성원들에 대한 탄압이 있어 왔음이 보고되고 있었다"며 RCTV 사태를 언론탄압으로 규정하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
☞관련기사 : 남미리포트 "차베스와 언론, 누가 누구를 탄압하나" )   
     
ㅇ 요즘 집회, 시위를 보는 눈
 
나도 요즘 집회, 시위에 짜증나지만 안진걸 씨가 제기한 방향과는 다른 것 같다.
희망제작소에 들어가더니 부쩍 언론노출도가 높아졌는데, 그가 내뱉는 말들이 반드시 타당하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집회, 시위는 주체의 문제만이 아니라 상황과 공권력의 문제도 있다. 감동을 주지 못하도록 몰아가는 분위기의 문제에 주목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권단체연석회의에서 시민불복종운동을 벌이는 것에 대해서도 좀 생각을 했으면 좋겠고... 물론 본문에서는 이러한 내용들을 다 언급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글이 어떻게 이용될 것인지를 인지했다면, 문제제기의 방식에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전경에까지 감동을 주었다고? 글쎄다.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던 집회나 시위를 별로 경험한 적이 없는데... 게다가 깃발 없는 집회라는 것도 일괄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 집회마다 다른 것이다.
   
갑자기 지난 4. 20 장애인차별철폐대회 집회가 끝난 후 장애인들이 인권위원회까지 거리행진을 할 때 쏟아졌던 버스 속의 일반 시민들이 보냈던 냉소와 야유가 떠오른다.
 
“요즘 집회·시위 감동없고 짜증” (한겨레, 이정애 기자, 2007-05-25 오전 02:26:56)
안진걸 희망제작소 팀장, 시민·사회단체에 쓴소리
  
안 팀장은 “사회운동의 집회·시위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짜증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교통체증 △감동이 없는 집회 △행사장을 뒤덮는 깃발 △전경과의 충돌 △소음 △화형식 △음주행위 등으로 시민들이 시민·사회단체의 집회·시위에 거리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른 대안이 있는데도 도로 위 행사나 행진을 관성처럼 진행해 길이 막혀 국민들의 짜증이 민주사회에서 참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정도에 이르렀다면 깊이 반성해볼 수밖에 없다”며 “집회 신고 때부터 되도록 도로 위를 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어 “이전에 집회를 준비하던 사람들은 집회를 막으러 온 경찰, 전경마저 감동시키려 했다”며 “요즘 집회는 감동이 부족하다. 운동권 중심으로 이뤄져 보통의 시민들이 들어갈 틈이 없다”고 지적했다. 집회·시위의 구호도 쉽게 해 일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그는 “집회·시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큰 깃발 때문에 시민들이 거리감을 느껴, ‘깃발 없는 집회’도 상상해 보자”며 “경찰의 무리한 압박이나 행진 봉쇄로 충돌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전경과의 충돌도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ㅇ 휴먼다큐 '사랑'
  
문화방송이 가끔씩 가슴찡한 휴먼다큐를 잘 제작한다. 이번 휴먼다큐 '사랑'도 그런 류인 듯하다. 하지만 나는 당연히 이를 보지 못했다. 재방송을 한다니 나중에 한번 볼까나. 이런 류의 다큐는 나로 하여금 눈물을 짜게 만들기 때문에 부담스럽다.
혹시나 했더니 해진이가 피디로 참여했다. 그 녀석이 당을 탈당한 이후 당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얼굴도 한번 못본 것 같은데... 
  
절망 무릎꿇린 ‘사랑’에 숨죽여 울었다 (한겨레, 서정민 기자, 2007-05-27 오후 09:08:38)
MBC 휴먼다큐 ‘사랑’ 제작 후일담

 
ㅇ '화려한 휴가' 세트장 보존 목소리
  
어머니에게 세트장이 있는 오룡동을 여쭤봤더니 변두리에 있다는 것 밖에 모르신단다. 지금 예전 전남도청 앞의 건물들은 대부분 철거되었기에 정성스레 꼼꼼하게 복원되었다면 이를 남겨둘 필요도 있을 듯하다. 광주에 내려가게 되면 한번 찾아가 봐야지.
   
‘화려한 휴가’ 세트장 ‘5·18 체험공간’으로 (한겨레, 안관옥 기자, 2007-05-27 오후 09:51:00)
월 3만여명 찾는 명소 보존 목소리, 광주시 ‘빌린 터 임시 구조물’ 난색
  
광주시 북구 오룡동 5·18영화 <화려한 휴가> 세트장에 서면, 1980년 5월의 아린 기억의 조각들이 되살아난다.
이곳은 영화 제작사인 ‘기획시대’가 지난해 30억원을 들여 전남도청·상무관·분수대·시계탑·전일빌딩·와이엠시에이 등을 80%로 축소해 고스란히 되살렸다. 현장감을 더하려고 지적도·설계도·사진을 대조하며 건물 외양에서 간판 글씨까지 꼼꼼하게 복원했다.
  
이 세트장을 공공 문화자원으로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획시대 쪽은 애초 지난해 11월 촬영을 끝내고 세트장을 철거하려 했으나 문화공간으로 삼자는 제안이 나오면서 미뤘다. 광주의 상징인 5·18을 알리고 배우는 체험공간으로 이곳을 보존하자는 것이다.
 
이곳에선 지난달에 영화 <두사람이다>를 찍었고, <스카우트>, <강풀 26년>, <순지> 등이 촬영 대기 중이다. ‘한번 가볼만한 장소’로 입소문이 나면서 5·18 27돌 기념행사 동안에는 1만여명이 세트장을 찾기도 했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이 이곳의 안전·청소·관리를 맡아 △문화체험 △교육마당 △기념행사 △촬영장소 △영화관광 등에 쓰자는 의견이 문화단체와 지방의회 등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ㅇ 주간동아의 P세대 07학번 연구   
     
주간동아 2007.05.22 586 호에 실린 글. 현 세태를 알아보는데 나름 도움이 되는 기사이다.     
    
[커버스토리|P세대 07학번 연구]박종철 몰라도 경쟁논리 알아요
[커버스토리|P세대 07학번 연구]미팅요? 휴대전화로 사진 보고 만나요

[커버스토리|P세대 07학번 연구]“자기중심적, 그래도 경쟁력은 A+”
[커버스토리|P세대 07학번 연구]그래, 직업 쇼핑은 선택 유연한 적응력은 필수야!
[주간동아로 배우는 시사논술]87 vs 07학번, 두 세대가 본 세상   
  
ㅇ <혁명을 꿈꾼 시대>
 
장석준 동지가 쓴 책의 서평이 한겨레에 실렸다. 한승동 기자가 쓴 것인데, 사서 보고 싶은 구매욕구를 자극하는 서평이다. 여기에 나와 있는 건 아마 예전에 <이론과 실천>에 실렸던 것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좀더 다듬고 친절한 해설을 덧붙였기에 각 연설의 의미를 되새겨보는데 좋다. 강추!!
  
‘혁명의 추억’은 현재 진행형 (한겨레, 한승동기자, 2007-05-25 오후 10:13:47)
체 게바라부터 사회주의자 헬렌 켈러까지 혁명 꿈꾼 20세기 인물 23명의 연설
21세기에도 그들의 소망은 여전히 과제로
<혁명을 꿈꾼 시대> 장석준 쓰고 엮음/살림·1만3000원
    
책은 이처럼 그런 꿈을 꾸고 이루기 위해 분투했던 사람들 얘기다. 하지만 전기나 평전이 아니라 그들이 역사의 고비에서 행한 의미심장한 연설들을 소개한다. 23명이 한 24개 연설이다. 그냥 늘어놓지 않고 주제에 따라 몇 개씩 묶고, 연설마다 그 앞쪽에 의인화한 ‘20세기’와 ‘21세기’를 등장시켜 대화체로 해당 연설을 등장시키는 이유, 곧 문제의식을 깔아 놓았다. 그리고 따로 인물설명과 연설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나왔는지 해설하는 꼭지를 보태 역사적 배경과 맥락, 의미를 짚었다.

 
ㅇ 진보비평지들의 창간, 복간
  
이제는 재정적 여력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수요자가 갑자기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다시 ‘깃발’ 든 진보비평지 (한겨레, 강성만 기자, 2007-05-25 오후 07:35:32)
‘사회비평’ 복간·‘먼슬리 리뷰’ 한국판 창간등
“우파 헤게모니에 대응할 필요성” 배경 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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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8 03:52 2007/05/28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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