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진보정당에서 교육자본, 문화자본의 위력

View Comments

논문계획서를 쓴다고 예전에 보았던 마리옹 그레·이브 생또메의 [뽀르뚜 알레그리, 새로운 민주주의의 희망]을 다시 보고 있다. 목적의식적으로 살펴보다 보니 예전에 읽었을 때에는 그냥 넘어갔던 것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러다가 책읽는 진도를 멈춘 부분이 있다. 바로 진보정당 내에서 교육자본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부분이다.

 

책 내용 중에 포르투 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가 노동자계급의 참여비중을 증가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교육자본, 문화자본이 참여 피라미드의 기층과 상층의 관계를 심각하게 변질시켰음을 지적하는 대목이 나온다. 물론 전반적으로 학력이 짧은 주민들이 기층에서 다수를 이루고, 전체적으로도 대표자들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누가 참여구조의 최상층에서 기층을 대표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때가 되면 '은폐된 인두세'(저자들은 경제적 능력에 따라 선거권을 차별했던 인두세처럼 오늘날에도 정치사회적 차별체계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인두세 poll tax로 명명하고 있다)가 노동자 계급 안에서도, 특히 교육이라는 변수를 통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들은 이러한 참여예산제의 틀이 베르나르 뿌달(Bernard Pudal)의 1930년대 프랑스공산당 연구결과를 상기시킨다고 한다. 즉, 모리스 또레즈(Maurice Thorez)는 당의 구성과 지도부의 심대한 "노동자화"를 이루어 냈지만, 다른 한편 그 서열의 꼭대기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이력을 갖고 있거나 동료들보다 더 많은 문화적 자본을 지닌 노동자들이 자리를 잡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민주노동당 내의 현황을 떠올렸고, 또한 가방끈이 긴 내 자신의 위치를 대입시키게 되었다. 

 

민주노동당의 대선예비후보로 나온 권,노,심은 모두 서울대와 고려대 출신이다. 문성현 당대표 또한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이고... 살아오면서 자신이 노동자로서 많은 기간을 보냈고, 정체성 또한 노동자로 인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가진 문화자본을 부인할 수 없다. 당 대변인만 보더라도 자신의 언론계, 학계 인맥이 활동의 자산으로 작용하고, 정책연구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물론 필요한 인물을 적재적소에 써야 하겠지만, 거기에서 뭔가 빠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오히려 진보정당 내에서도 교육자본, 문화자본이 작동하고 있음을 깨닫고 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무관심하다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민주노동당의 당원이 된다고 하여 특별히 단련된다거나 새롭게 역량이 축적되지 않는다. 활동가라고 하더라도 당원으로 가입하기 전에 먼저 체득하고 있었던 학습과 경험에 기반하여 활동할 뿐이고, 대부분의 페이퍼 당원들은 당비를 내고 선거 때 투표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피상적이거나 급변하는 정세에 맞춰 당의 입장을 요약본으로 정리한 내용을 전달하는 데 급급하다. 기껏해야 당이 아닌 사회단체에서도 제공되는 내용들이다.

 

이런 상황에선 교육, 문화자본이 작은 당원들은 더 단련되고 성장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그들이 주요 당직에 진출하려 해도 그 역량에 의문을 품고 오바라고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은폐된 인두세'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당 내부에서부터 이를 논의하고 쟁점화할 수 있어야 한다. 당 내에서 여전히 교육자본, 문화자본의 위력이 남아 있는 한, 학벌 폐지, 국공립대 통폐합의 정책은 공문구에 불과할 수 있다. 당원 교육 또한 이러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 행해져야 한다. 물론 지금은 이런 말을 꺼내기도 옹색할 만큼, 당원 교육 자체가 부실한 형편이지만서도...

 

그리고 자신이 교육자본, 문화자본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이들부터 각성할 필요가 있다. 의식적으로 당직 내지 공직선거에 있어 나서는 것을 자제하는 것이다. 당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솔선해서 적극적으로 당직, 공직에 출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민주노동당에는 의외로 많다. 내 자신부터 그러했으니까...

 

하지만 이들은 좀더 기층에서 당을 지탱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하지 않을까. 바로 그것이 진보정당을 제대로 세우는 길이다. 

 

써놓고 나서 보니 마무리가 잘 안된 느낌이다. 처음에는 확실하게 문제제기하고, 그럴싸한 대안을 내보자 했는데, 스스로도 뭔말을 하는지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ㅡ.ㅡ;;

이 글을 쓰면서, 같은 지역위에 있는, 뭔가 당에 기여하고 싶어하나 그 계기를 만들지 못하는 노동자당원들을 떠올렸다. 활동해봤자 뭘 어떻게 해야할지, 활동 후에 무엇이 남을지, 혹시 단지 몸대주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그 동지들이 의문을 품고 있을 거라, 내 주관적으로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들이 당활동에서 자신이 단련되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할 것인가 고민했는데, 남은 게 없다. 

 

당 활동이 무슨 권력은 아니다. 또한 원칙적으로 당직, 공직에 나서는 것이 개인의 영달이나 권력욕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님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런 자리가 권력화할 수 있고, 앞으로도 상당기간동안은 변함없음을 인지해야 한다.  '당이 요구한다'고 하여, '당원의 뜻'이라고 하여, 자신의 권력욕을 정당화해서는 안된다. 설령 자신이 '정파의 대리인'으로 출마할 뿐이라고 해도 말이다. 

 

교육자본, 문화자본을 없애지 않고서는 진정한 변혁은 오지 않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5/14 04:12 2007/05/14 04:12

2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세상 참견 2007-05-11

View Comments

 

  
ㅇ 『반자본주의』의 미덕
  
이 책을 사서 보리라고 맘먹었는데, 장석준 동지가 벌써 읽고 레디앙에 서평까지 썼다. 쩝... 나는 도대체 뭘하고 있는 거지? 이 책은 서점에서 대충 훑어보았는데, 구미가 당기는 책이다. 이에 대해서는 장석준 동지가 잘 서술해놓았다.
다만 책의 마지막에 나와 있는 이재영의 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본문 내용하고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던데...
  
반신자유주의? 아니 반자본주의 (레디앙, 2007년 05월 08일 (화) 18:32:48 장석준 /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실장)
[서평] 『反자본주의』 잘난 척 안하는 친절한 안내지도
 
첫 번째는 좀 더 친절하다는 점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에서부터 논의를 풀어간다. 제목에서부터 자본주의에 반대한다고 공언해놓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출발점이겠다. 『반자본주의』의 저자 토미는 시장과 자본주의 사이의 관계,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관련성 등 특히 요즘 독자들이 관심 있어할만한 각도에서 자본주의를 찬찬히 조명한다.
  
이 책의 두 번째 미덕은 현재 반자본주의 운동 안에서 서로 경합하는 여러 흐름과 경향들을 냉정하게 정리, 소개한다는 점이다. 저자 자신의 입장이 무엇인지 꼭 집어내기 힘들 정도로 ‘객관적’ 소개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좌파 자유주의의 입장에서부터 변형된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맑스주의적 사회주의, 자율주의나 평의회 공산주의 혹은 아나키즘까지 다양한 조류들을 담담히 선보인다.
  
저자는 어쨌든 집권을 통한 사회 변혁 쪽에 강조점을 찍는 이른바 ‘다수자’ 입장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인 것 같다. 그보다는 지속적인 사회운동의 실천과 직접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편이다. 하지만 ‘한국어판 후기’인 <민주주의의 전복을 꿈꾸며>를 보면, 남미에서 벌어지는 진보적 지역통합의 시도에서부터 중국의 부상까지 미래의 여러 가능성들에 대해 열린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반자본주의』의 저명한 추천자들 중 한 사람, 보리스 카갈리츠키(러시아의 사회주의 이론가)의 말을 덧붙이고 싶다. 그것은 “오늘날 성실한 개혁주의자라면 누구나 혁명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는 진지하게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혁명적인 단호함과 급진성, 운동성을 동반해야만 한다는 것.

  



ㅇ 민주노총 대선독자후보 방침에 대한 참세상의 논평
 
참세상에서 왠 일로 논평을 내나 했더니 역시나이다. 하지만 이 문제제기는 귀담아둘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지 않는, 즉 사회당, 노동전선 등을 지지하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정치활동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다. 이 배타적 지지 방침이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지 않는지...
  
[논평] 민주노총 대선독자후보, 진정성 안 보여 (참세상  / 2007년05월08일 17시22분)
민주노총 정치방침 풀어야
  
        
ㅇ 참여연대의 비정규법 시행령에 대한 우려 표명, 당연한 것 아닌가?
 
하긴 지금까지 참여연대의 태도가 애매모호하긴 했다.
    
참여연대도 비정규법 시행령에 '우려' 표명 (프레시안, 2007-05-08 오후 12:23:28
노동부에 "입법 취지 퇴색시켰다" 의견서 전달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위원장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8일 노동부에 전달한 의견서를 통해 "시행령은 '기간제 사용기간 제한 예외 대상'과 '파견대상 업무'를 폭 넓게 규정해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라는 입법취지를 퇴색시켰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박사학위 소지자, 변호사·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를 기간제 사용 기간 제한의 예외로 인정하고 있고, 파견허용업무를 종전의 138개에서 199개 업무로 늘리는 내용을 담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시행령을 지난달 20일 입법예고했다.
 
참여연대는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 제한은 기간제법이 기간제 근로자의 무분별한 사용을 막기 위해 둔 유일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라며 "이 목적에 합치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더라도 고용 불안으로 인한 종속성 심화와 근로조건 저하 가능성이 발생하지 않는 직종, 근로계약 기간 제한을 통해 보호가 필요 없거나 오히려 직업생활에 장애가 되는 직종으로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참여연대는 박사학위 소지자가 기간제 사용 기간 제한의 예외로 인정된 것과 관련해 "박사학위 자체가 직장에서의 직위와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다"라며 "학위 취득만을 이유로 비정규직 기간 제한의 보호 범위에서 제외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16개 전문자격증 소지자 예외에 대해서도 "전문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취업에서의 교섭력과 취업의 용이성, 자영업의 가능성과 비율은 구체적 사정에 따라 큰 편차가 있을 수 있다"며 "획일적으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기간제법의 핵심조항인 '기간제한'과 '차별금지' 조항이 4인 이하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도록 한 것과 관련해서도 참여연대는 "4인 이하 사업장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더 두터운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도 4인 이하 사업장에는 해고 제한과 관련된 규정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는 "기간제한에 관한 비정규직 보호 규정을 적용한다하더라도 권리를 구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으므로 4인 이하 사업장에 근기법상 해고 제한 규정을 적용하는 것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ㅇ 블레어의 퇴임
 
나이도 얼마 먹지 않았고, 그리 오래 집권하지도 않았는데, 참 별 짓을 많이도 했다. 
  
초라한 퇴장, 토니 블레어 (한겨레, 서수민 기자, 2007-05-09 오후 08:37:16)
‘시작은 창대, 퇴장은 쓸쓸’, 한때 80% 지지율 이라크전으로 몰락 
  
英 '위대한 설교가' 물러나고 '거대한 수수께끼' 등극 (프레시안, 이지윤/기자, 2007-05-10 오전 11:01:39)
블레어 총리 집권 10년만에 퇴임…후임에 브라운 재무 
   
'제3의 길'을 주창하며 지난 1997년 5월 영국 역사상 최연소 총리로 화려하게 취임했던 토니 블레어(54) 영국 총리가 10년만에 권좌에서 물러난다. 영국 총리실은 9일 블레어 총리가 10일 자신의 사임 일자를 공식 발표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블레어 총리는 1983년 30살의 나이로 노동당 의원에 당선됐으며 1997년 영국 역사상 최연소 총리에 취임한 후 3회 연속 총선에 승리해 올해로 취임 10년을 맞았다. 처음 집권 당시 지지율이 83%에 달하며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블레어 총리는 이라크전 참전, 각료들의 정치자금 등 각종 스캔들, 1인 장기집권에 대한 유권자의 염증 등이 겹치면서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져 가장 인기 없는 노동당 총리로 전락했다.
   
ㅇ 홍기빈의 <소유는 춤춘다>  
     
나도 서울시 지하철 2호선 손잡이에 콜라 캔이 달린 것을 보고 황당했는데... 하긴 그 좋은 광고표적을 어떻게 자본이 놓칠 수 있겠는가.
우리 눈에 띄기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자본의 손길이 닿아 있다.
    
홍기빈의 <소유는 춤춘다>, 이 책은 '청소년용 권장도서'로 나왔단다. 관점도 그렇고, 읽어볼 만한 책 같다. 그리고 중고딩들에게도 추천해줄 수도 있고... 요새 홍기빈 아저씨, 잘 나가네.
  
지하철의 '콜라캔 손잡이'가 보기싫을 땐? (프레시안, 노주희/기자, 2007-05-09 오후 5:46:05)
[화제의 책] 홍기빈의 <소유는 춤춘다> 
   
우리는 '(공공이나 국가의) 공적 소유'와 '(민간이나 개인의) 사적 소유'와 같은 이분법적 논리로 세상의 소유 제도를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이렇게 현실에서는 소유의 개념이 불분명한 상황이 빈번히 발생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유라는 개념이 △소유하는 주체 △소유하는 대상 △소유 대상을 둘러싼 타인들의 접근 △소유자, 소유 대상, 타인들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 등 4가지의 요소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사실상 소유의 개념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무한 개의 조합으로 달라질 수 있다.
  
결론은, 이 책의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소유의 개념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춤을 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21세기 대한민국은 '사적 소유'만이 '참된 소유'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움직여 간다. 가령, 지적재산권(IPR)의 강화나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의 도입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이들이 그렇다.
  
 "지적 재산, 기업 경영, 국가의 법적 행정 정치 등의 문제는 아주 복잡하고 복합적이기 짝이 없는 수많은 사회적 관계와 측면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경우 모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소유 제도의 네 가지 상이한 구성 요소들을 하나하나 고려하는 대신 '배타적 사적 소유의 신성함'이라는 하나의 원칙만으로 상황을 풀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 그러한 복잡한 전후 사정을 살피지 않고 절대적 국가 소유의 원칙 하나로 덤벼들었다가 무수한 비효율과 정치적 불평등, 심지어 계급적 착취라는 모순까지 나타난 것이 20세기 공산주의 혁명의 실험이라 하겠다. 역사의 여신은 정말로 얄궂다. 이제 그 정반대의 방향으로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듯 보이니 말이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은 인간 문명의 기술적 조건이 또 한 번 크게 변하고 있어, 많은 이들이 '3차 산업혁명'과 같은 말을 입에 올리고 있다. 이는 어쩌면 19세기 초와 20세기 중반 같은 거대한 규모의 사회적 조건의 변화가 임박했음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듯 거대한 도전 앞에서 준비해야 할 것은, 우리가 가진 여러 사회적 제도의형식이 최대한 탄력적으로 상황과 조건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사회 체제와 사회사상을 열어놓는 일일 것이다."
        
ㅇ [인터뷰] <민주주의에 대한 전쟁> 감독한 존 필저 
 
남미의 새로운 대중운동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도 차베스는 주요 등장인물이다.
차베스가 대단한 이인 것 같기는 한데, 차베스가 없는 베네수엘라는 어떻게 될지, 차베스가 다시 개헌을 해서 영구집권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미국의 '실험장'에서 미국의 '대안'을 찾다 (프레시안, 번역=이지윤/기자, 2007-05-09 오전 11:37:01
[인터뷰] <민주주의에 대한 전쟁> 감독한 존 필저 
  
존 필저는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작가이며 영국 최고 기자상과 올해의 기자상을 두 번 수상한 탐사보도 전문 기자다. 그는 특히 외국군 주둔과 서방 정부의 투기 행각에 대한 맹렬한 비판자다. 지금껏 55편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온 그가 처음으로 극장용 영화를 만들었다. 미국의 정치경제군사적 위협에 저항하며 남미의 '보통 사람'들이 벌이고 있는 새로운 대중운동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민주주의에 대한 전쟁(The War on Democracy)>이 그것이다. 이 영화는 오는 11일 영국에서 시사회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부시는 "전 세계에 민주주의를 가져다주겠다"고 맹세했었죠.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말을 21번 하더군요. 그것은 매우 중요한 연설이었습니다. ... 나는 이 '위선적인 진실'을 조명해 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미국인들의 지성과 도덕을 왜곡해 프로파간다를 만들어 놓고 그 뒤에서 이른바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을 수행해 온 미국의 위선 말이죠.
   
내 영화는 제국의 힘과 국민의 힘에 관한 것입니다.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칠레, 미국, 과테말라, 니카라과 등을 돌아다니며 찍었습니다. 영화는 '미국의 뒷마당'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에는 아주 긍정적인 이야기가 포함돼 있습니다. 제국주의 지도자에게 맞서고 국가의 재산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겠노라 약속한 대중사회운동이 정부 권력까지 잡은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선두는 베네수엘라입니다. 그리고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의 흔치않은 대면 인터뷰가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겠죠.
  
볼리비아의 코차밤바란 도시에서는 주민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물에 대한 권리를 얻을 때까지 도시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버텼습니다. 남미 대륙에서 아마 가장 가난한 도시일 엘 알토의 주민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저항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차베스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그가 자신의 발전된 정치적 의식을 내보이면서도 전혀 우쭐되지 않는 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지도자로서의 그의 면모 못지않게 교육자로서의 면모에도 관심을 갖고 그를 관찰했습니다.
  
1998년 그가 처음 정권을 잡았을 때에 그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점이 그의 정치역정을 더욱 흥미롭게 하는 것이죠. 확실한 것은 그는 항상 가난한 민초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개혁주의자였다는 점입니다. 분명히 오늘날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사회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노동당 애틀리 정권 시절 영국 경제와 닮은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차베스는 다른 유럽인들이 자신을 '사민주의자'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할 것입니다.
  
변화를 견딜 수 있는 권력만이 풀뿌리부터 떠받쳐지는 진정한 권력입니다. 차베스의 힘은 그가 보통 사람들에게 부패한 낡은 체제에서도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준 데에서 비롯됐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귀찮은 일로 여기는 영국에서는 이런 정신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차베스는 적어도 '희망적인 교훈'이란 얘기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ㅇ 국립대법인화, 무엇이 문제인가

 

그 동안 국립대 법인화 문제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에 대해 구체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문제가 심각하긴 하다. 그런데 국립대법인화를 한꺼번에 보기 보다는 서울대법인화의 문제와는 따로 봐야 하지 않을까.   
 
국립대법인화, 무엇이 문제인가 (민중의 소리, 김현영 기자, 2007년05월09일)
국립대법인화법 '기초학문붕괴' '대학자율성침해' 우려
   
교육인적자원부(교육부)는 국립대법인화법을 통해 국립대 운영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제고하여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국립대법인화 저지와 교육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이하 국립대공투위)’를 중심으로 한 교수, 학생, 교직원과 사회단체들은 △등록금 상승에 따른 교육균등의 기회 박탈, △학문의 상업화로 인한 기초학문 붕괴, △대학의 자율성 및 민주적 운영 침해, △국립대 교직원의 고용불안정을 이유로 국립대법인화법을 반대하고 있다.
  
국립대법인화는 국립대학을 국가로부터 독립된 법인형 조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국립대법인화법에 따르면 대학 운영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 의결하기 위해 이사회가 설치된다. 이 이사회에는 정부가 추천한 인사를 비롯하여 외부인사가 참여하게 된다. 또 총장선출방식이 현 직선제에서 이사회 산하의 총학장 추천위원회가 2~3인의 후보자를 선출하여 이사회가 이중 1인을 선임하는 사실상 간선제로 바뀐다. 국립대학법인은 현 국립대와 달리 재산권 행사가 가능하며, 교육연구활동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수익사업을 할 수 있다.
  
국립대법인화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되는 부분은 교육의 공공성이다. ‘저렴한 양질의 고등교육의 제공’과 ‘기초학문의 육성’이라는 국립대학의 임무를 방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립대법인화로 국가의 재정지원이 줄어들면 대학은 재정지원을 확충하기 위해 등록금을 올릴 것이고, 저소득층이 교육받을 기회는 박탈된다. 
  
법인화를 앞두고 국립대의 등록금은 벌써 크게 오르고 있다. 2007년 국립대 등록금 인상률은 최고 26.5%(부산대 예체능)로 사립대의 배 이상을 기록했다. 재정확충을 위해 돈벌이 경쟁 심화되면서 수익성이 떨어지는 기초학문이 국립대학에서 마저 외면 받을 것이라는 점도 중요한 논란 지점이다.
  
대학의 자율성을 확대하겠다는 국립대법인화법이 오히려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민주적 운영을 방해한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립대법인화법은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4월 26일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사회 구성원으로 정부나 지자체가 추천한 3인을 비롯해 외부인사 6인을 규정해 놓은 조항이 문제다. 국립대공투위는 “정부나 지자체 인사 3인이 당연직 이사가 되는 까닭에 이사회를 통한 정부의 통제가 가능하며, 심지어 교육부 추천 인사가 이사장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또 총장선출이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바뀐다는 점, 사립학교법에는 있는 대학평의원회 조항이 국립대법인화법에는 없다는 점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억압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학 구성원의 고용 불안정화도 문제가 되고 있다. 교육부는 법인화 이후 교직원이 원칙적으로 법인 소속으로 고용 승계되고 사학연금을 적용하되 공무원 수준의 연금을 보장하는 보호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법인의 대표이사격인 총장에게 인사권이 주어짐에 따라 유연한 고용 형태와 급여 체계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 되고 있다.
 
   
ㅇ 심상정-중앙일보 평화정책 놓고 격돌?
 
격돌까지는 아니고, 중앙일보가 사설에서 심상정 의원의 정책에 대해 일부 지적한 것에 대해 심의원 측에서 확전을 도모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중앙일보는 이에 응할까. 아마도 그냥 무시할 것이다. 심의 주장을 부각시켜 줘봤자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민주노동당 대선예비후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노, 권, 심 모두 자신을 부각시키려고 용쓰는게 참 안쓰럽다. 당원들에게도 그리 어필하는 것 같지도 않고...   
  
심상정-중앙일보 평화정책 놓고 격돌 (레디앙, 2007년 05월 09일 (수) 16:32:54 문성준 기자)
"평화기금 100조 조성 비현실적" vs "시대착오적 냉전 사고"
   
<중앙>은 사설에서 “재정과 전력(戰力)을 그렇게 줄여도 되며, 그 많은 부담은 누가 어떻게 진다는 말인가. 어차피 우리 주장은 그대로 관철되지 않을 것이니 내놓고나 보자는 식이어서는 신뢰를 줄 수 없다”고 심 후보의 한반도평화기금 100조원 조성 정책을 비판했다.
 
심 후보는 8일 토론회에서 △남한 국가재정 중 1% 출연으로 25조원 △남한 전력증강예산 중 25조원 △북일수교 배상금 약 10조원 △국제공공자금 약 4~10조원 △한반도평화채권 30조원 등으로 향후 10년간 한반도 평화기금을 조성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심 후보는 9일 이 신문의 사설을 반박하는 글을 통해 “오히려 중앙일보가 과거 분단고착형 관행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미래 한반도 평화경제가 전해줄 막대한 가치를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심 후보는 “북일수교 배상금 약 10조원은 일본이 과거 한반도 민중들에 행한 잘못을 청산하는 조치로서 일본이 북한에게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고 “국제공공자금 10년간 약 4~10조원 제안은 현재 동북아 국가들이 세계은행(World Bank), 아시아개발은행(ADB), 양국간 정부개발원조(ODA) 등을 포함해 얻을 수 있는 국제공적자금 규모가 연간 3~4조원 규모인데 이후 북한의 국제외교관계가 정상화되면 이중 10~20%는 북한에 제공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심 후보는 “한반도평화채권 30조원 발행은 한반도평화은행을 설립해 공공자금관리기금 예수금을 활용, 한반도평화채권을 저리인수하고, 이후 연기금, 일반금융기관, 개인으로 확대시키는 것을 통해 모두 현실가능한 대안”이라고 반박했다. 
 
“한반도평화기금 100조 조성 현실적” (레디앙, 2007년 05월 09일 (수) 16:30:11 심상정 / 국회의원)
[전문] 중앙일보 사설에 대한 심상정의 반론
 
         
ㅇ 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
    
도서출판 메이데이에서 발간하는 '물고기학교'의 두 번째 책이란다. 교육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나도 읽어봐야 할까.
   
“3불논쟁은 허구다!” 교사,교육활동가 17인의 목소리 (참세상, 편집팀  / 2007년05월10일 10시15분)
[책] '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 출간
  
“현재의 교육 정책은 기득권층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다양한 처방은 학교 교육을 통해 수많은 탈락자를 발생시키고 엄청난 국민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소수의 경쟁력 있는 인재가 육성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학생들이 현 교육제도 아래서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신화에 사로잡혀 내린 잘못된 처방은 일시적인 고통을 완화시키는 진통제와 같은 효과를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갈등은 더욱 증폭되기 마련이다.”(머리말 가운데서, 11쪽)
   
<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은 한국사회 교육 신화의 뿌리 깊은 근원에는 ‘학력에 의한 사회 불균형’문제가 가로놓여 있음을 주목한다. ‘학력에 의한 사회 불균형’문제가 대학간 불평등, 더 나아가 일류대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이러한 현실이 내신과 수능, 그리고 본고사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더욱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노무현 정부는 자립형 사립고의 확장, 교육 개방화, 대학 구조조정, 교원 평가 등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전면화하면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은 지난 50여 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해 왔던 교육신화만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신화인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에 대해서도 그 비판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다.
  
“교육을 통해 사회의 불평등이 재생산되는 것은 분명하다. 왜곡된 신화가 유포되고, 자본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여 민중의 교육권이 억압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머리말 가운데서, 30쪽)
 
<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의 17인 필자들은 한국 사회 교육신화에 대한 비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교육은 그 활동과 과정을 통해 새로움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교육은 상호과정이기에 교육활동에 참여자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은 다음 세상을 그려나가는 현재의 활동이기에 교육을 통해 새로운 세상의 전망을 열어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국 교육을 지배하는 17가지 거짓 신화를 벗겨내기 위한 17인 교사와 진보적인 교육활동가들의 목표는 바로 한국 사회에서 교육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학벌없는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 입시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입시제도 자체를 철폐하는 것, 대학을 평준화하고 국공립 대학으로 전환하는 것, 무상교육제를 실시하는 것, 교육과정을 정하고 운영하는데 민주적 논의구조를 세워내는 것, 학교 운영에 대한 민주적 통제권을 세워내고 교사와 학생들의 자치권을 확대하는 것, 학생들의 인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등이 그것이다. <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의 17인 필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입시 경쟁’ 속에서 ‘내 자녀만을 위한’ 교육에 더 이상 휩싸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녀를 위한 교육’이 되는 것이다.
  
ㅇ 또 아름다운 선행?
 
KBS 방송만 보고서는 안경도매점으로 번 돈을 기부한 줄 알았는데, 아래 기사를 보니 부동산으로 얻은 돈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거액이 생기고서도 이런 아름다운 선행을 하는 이가 없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하다.
저런 선행도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이들이 정신적으로 가난하지는 않아서,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알기 때문에 오히려 기부에 응하는 비율이 더 높다고 한다.
  
국가는 뭐하는 걸까. 언제까지 사랑의 리퀘스트에 쾌척하는 이들에 의존해야 할까. 이런 선행을 볼 때마다 기부할 능력이 안되는 많은 민중들은 좌절할 텐데...
     
볼펜팔며 모은 60억 어린 환자들에 ‘선뜻’ (경향신문, 용인|최인진기자, 2007년 05월 09일 22:47:41)
     
불치병 환자들을 위해 써달라며 최근 두차례에 걸쳐 60억원을 기부한 ‘볼펜장수’ 출신의 60대 할아버지가 있다. 경기 용인시 상현동 이남림씨(61).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아들과 함께 안경도매점을 하는 이씨는 지난 2월 KBS ‘사랑의 리퀘스트’ 프로그램에 30억원을 기부했다.
  
이씨는 지난해 1월에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30억원을 전달했다.
30억원은 ‘사랑의 리퀘스트’에서 얻어지는 연간 기부금의 80%에 이르며, 150여명을 한꺼번에 수술할 수 있는 금액이다.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가난했던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이사온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20대 때 마을 야학에서 공부를 하며 남대문시장에서 볼펜·만년필 장사를 시작했다. 여기서 돈을 모아 남대문시장에서 안경도매점을 시작했고 번 돈으로 땅 한평 없던 가난을 생각하며 1984년 용인 상현동 지역의 토지를 매입했다.
 
이씨는 용인지역 아파트 건설 붐이 일면서 2005년 이 땅이 건설업체에 거액에 팔리자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다”라며 방송사에 30억원을 기부했다. 이어 현재 개발 중인 광교신도시 개발로 나머지 땅의 일부가 편입되면서 보상금이 나오자 1년 만에 다시 같은 방송사에 “돈이 없어 병을 못 고치는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30억원을 추가로 내놓았다.
  
“기부한 뒤에는 너무나 행복했고 지금은 더 많이 도와주지 못해 아쉽다”는 이씨.
“앞으로 어느 정도 여력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난한 사람, 돈이 없어 병을 고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면서 “2남1녀의 자식들도 나의 성금 기부 결심에 적극 호응해 줬다”고 말했다.
  
앞서 이씨는 태풍 루사와 매미로 피해를 입은 수재민들을 도와달라며 2002년과 2003년에도 1억원씩 2억원을 기부했다. 이씨는 “알려지는 것이 싫다”며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있다.

       
ㅇ 20대 보수화!?
  
발표자가 남재량 연구위원이네. 예전에 공무원 시험 준비할 때 학원에서 경제학 가르쳤던 분인데...
그러고 보니 경제학 강사 중에 튀는 인물들이 많구만. 신현준, 최병권, 박종현, 남재량...
 
직업의 안정성을 공무원시험의 이유로 대면서 비정규직 문제나 공무원노조 문제에 왜 관심을 갖지 않는 걸까. 하긴 20대들이 따로 갈만한 직장이 없긴 하다.
 
교육체계의 부실을 자신에게 맞는 직장을 찾지 못하는 이유로 대는 것에 대해서는 대학과 고교가 책임을 져야 한다. 사실 대학에서 뭘 가르쳐주는 게 있나? 갈수록 학벌체계는 공고화되는데...
  
그리고 이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보수화되고 경제가 어려운 것에 기인한다.
사회 분위기를 이렇게 만든 그 전 세대들도 책임감을 느껴야 하지 않겠나.
이런 기사들을 보면 그냥 답답하기만 하다.
 
이와 반대로 전대기련의 조사는 그 신뢰성에 의문이 간다. 진보라는 개념 자체가 불명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차라리 좌우파로 구분하는 게 나을 텐데...  

    
 "요즘 드라마엔 왜 20대 주인공이 사라졌나" (프레시안, 정홍기혜/기자, 2007-05-07 오전 10:42:33)
[20대 보수화? 그 이면③ㆍ끝]"'20대 보수화'는 위험신호"  
 
'청년실업', 눈 낮추면 해결된다고? (프레시안, 강이현/기자, 2007-05-10 오전 8:53:41)
"백수 절반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이유"
    
대학생 69%, 자신은 진보적 성향에 가까워
진보에 대한 개념이 혼재된 대학생들 (2007년05월09일 ⓒ민중의소리, 전대기련)
관련사이트
http://unip.or.kr 
    
ㅇ 이명박의 헛소리
   
이재영의 글은 톡 쏘는 맛이 있다. 아무래도 그는 정책 쪽의 일보다는 선전/홍보 쪽의 일을 하는 게 더 맞았을 듯하다.
   
이명박 반노조 발언, 쿠데타 예비음모 (레디앙, 2007년 05월 10일 (목) 17:47:16 이재영 기획위원)
"부자나라엔 별 노조가 다 있어요…감옥 보내기 전 치료 감호를"
  
이 후보는 서울시 오케스트라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그것도 금속노조에 가입했던 것을 비아냥댔다. 어떤 노조에 가입할 것인가는 국제노동협약 규정과 대한민국 헌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 자유로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다. “바이올린 줄이 금속이라서?”라니. 그렇다면 이명박이 한나라당 하는 건 ‘나라시’ 영업이라도 뛰기 때문인가?
  
이명박의 주장은 단순히 노조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을 무시하고, ‘국헌을 문란’케 하는 것이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 에 노력”한다는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는 대신 초헌적인 쿠데타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형법 제90조 ‘내란예비음모’에 해당되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유기금고에 처해지는 죄다. 좀 과하다 싶기도 하지만, “그 목적한 죄의 실행에 이르기 전에 자수한 때에는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한다.”
  
그런데, 이 후보 강연 동영상을 몇 차례 돌려 보니, 분노가 사그라진다. 그는 아무래도 ‘대학 나오신 분, 고매하신 교수님들, 음악가님들은 비천한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듯한데, 이는 조선 시대의 ‘사농공상’ 철학이다. 
 
ㅇ 하는 짓마다...
   
민노, 여론조사 회사 입찰 어이없는 해프닝 (레디앙, 2007년 05월 10일 (목) 15:10:41 문성준 기자)
‘당원 등 채용 정도, ‘당 사업 수행실적’ 기준 문제되자 삭제 
       
ㅇ 재미없는 민주노동당 예비 경선, 왜?
  
처음에는 민중의 소리 기사니까 뻔하려니 했는데, 그래도 귀담아들을 내용도 있다.
물론 진보정당의 당내 경선은 재미삼아 하는 것이어선 안된다. 하지만 서로간에 치고받는 맛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고, 과거 당 및 민중진영의 활동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차이가 드러날 것이 아닌가. 자민통 얘들은 왜 자신들의 후보도 못만들어내서 이렇게 골치 아프게 하는건지...
  
재미없는 민주노동당 예비 경선, 왜? (2007년05월10일 ⓒ민중의소리, 문형구 기자)
유사한 정책, 협소한 모집단.. 네거티브도 안 된다?
    
  민주노동당 예비경선은 현재대로라면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과 달리 당원직선으로 진행이 된다. 예비경선의 모집단이 협소한데다 부동표 비율이 많지 않은 진성당원들이 대상이다보니, 노선과 입장이 분명해 질수록 표가 줄어들 우려가 있다. 특히 당내 최대 다수를 점하는 자민통 계열이 후보를 내지 않으면서, 동시에 사회주의 성향의 후보가 없는 조건에서 모든 캠프의 정책이 공히 중간지점으로 수렴하고 있다.
  
  노회찬 캠프의 신장식 전 대표비서실장은 "당이 활동해오면서 그룹핑된 면도 있지만 각 그룹들이 의견에 있어 상호 근접한 부분도 있다"며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자민통 후보가 없으니 재미없다고도 하고 한 쪽에서는 전부 자민통 쪽으로 (정책이)가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각 캠프가 아예 입을 다물어버리기도 한다. 일례로 이날 각 캠프 관계자들은 이석행 위원장이 요구하는 당대회 재소집에 대해 '오프 더 레코드'를 걸었다.
  
  다수의 캠프 관계자들을 취재하면서, 각 후보진영이 당내경선을 말 그대로 '당내' 행사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정파 선거가 아니어서, 예년보다 나아질 거다'라고 전했다. 또 중앙언론에 기대를 걸거나, '판을 잘 짰으면 좋겠다'며 당 지도부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도 있었다.
 
     
ㅇ 최영기 원장의 일반론에 대한 자본의 반발
   
최영기 노동연구원장이 노사 모두에 대해 쓴소리를 했는데, 재계쪽에서 반발이 나왔다. 물론 토론자 중에 자본을 대변하는 이밖에 없어서이겠으나, 그들의 반발이 가소롭다. 지들이 도대체 한 게 뭐 있다고...
최영기 원장의 발제는 단지 일반론을 얘기한 것 아닌가. 
    
국책연구기관서 ‘노사불안, 재계 책임론’ (한겨레, 황보연 기자, 2007-05-10 오후 08:30:31)
최영기 노동연구원장 “타협전략 없어 지속성장 해쳐”
노동계에도 “고용·임금 타협안 제시해야” 쓴소리 
   
“재계 구조조정 집착이 노사관계 악화 불렀다” (경향신문, 이준호기자, 2007년 05월 10일 18:29:13)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장은 10일 오후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 주최로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열린 ‘노사관계 패러다임 전환 대토론회’에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후 재계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비용절감 등 재무중심의 구조조정’에 몰두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성장 및 고용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며 이례적으로 재계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는 “그동안 재계가 제시해온 선진화 전략은 ‘노동시장 유연화’와 ‘법과 원칙의 확립’에만 한정돼 있었다”며 “이 때문에 실익은 적었고 노사 불신만 키워 노사관계를 경직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최 원장은 “재계가 업종이나 지역 단위에서 사회적 차원의 노사관계 관리를 거의 방치하고, 경제5단체 명의로 노동계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는데만 치중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일본 게이다렌(경제단체연합회)의 회장을 지낸 오쿠다 히로시 전 도요타 회장은 ‘정리해고를 하는 경영자는 자신부터 먼저 할복해야 한다’면서 장기 불황에서도 고용 안정을 통한 노사관계의 신뢰쌓기에 힘써왔다”며 “반면 국내 경제단체의 대표들은 ‘비정규직을 채용하면 되는데, 굳이 정규직을 채용할 필요가 있느냐’는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는 등 노사관계를 불안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고용조정의 일반화는 근로자의 저항을 불러일으켜 단기적인 임금 극대화 및 고용보호 집착, 노사관계 악화 및 노동시장 양극화를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고용의 양적 감소와 질적 하락은 소득 감소와 소득 불안정으로 나타났고 이는 소비위축을 초래해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최원장은 “2000년대 일본 제조업체들은 장기불황에서도 고용안정과 노사관계의 장기적인 신뢰, 철저한 현장중시,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부활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불가피한 인력감축의 경우에도 정리해고보다는 자연감소 등을 통해 고용을 최대한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최원장은 “재계가 주도적으로 노사관계 인프라 구축과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 원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노동계의 자기반성도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4년 이후 대형 사업장의 파업이 대부분 실패했고, 전국 차원의 총파업 전술도 명분을 위한 행사로 전락했다”며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단기주의에 매몰되지 말고, 노동계의 새로운 고용 전략과 임금 전략이 타협안으로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5/11 16:44 2007/05/11 16:44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최장집(2006). 『민주주의의 민주화: 한국 민주주의의 변형과 헤게모니』

View Comments

최장집(2006). 『민주주의의 민주화: 한국 민주주의의 변형과 헤게모니』. 서울: 후마니타스.
 
이 책은 최장집 교수가 썼던 여러 글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미 보았던 글들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묶어서 보니 또 다른 맛이 난다.
편집자인 박상훈은 이미 출간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2년 1판 출간)의 후속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얘기한다. 그래서인지 이전에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주었던 만큼의 충격은 없다. 아마 이미 접해서일 수도 있겠다.
  
저자 서문
 
○ 선거경쟁과 수의 힘을 핵심 원리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민중이라 불리는 시민의 다수는,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여러 제도적 메커니즘을 통해 자신들의 삶의 조건이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잘 작동할 경우 사회복지에 친화적이고 노동통합적인 생산 및 분배체제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다른 체제에 비해 훨씬 더 크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지배적 헤게모니로 군림하는 오늘의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그러한 사회경제체제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가정은 비현실적인 것을 넘어 거의 허구인 것처럼 보인다(최장집, 2006: 6-7).
  
○ 경제민주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이 담론으로서나 정치적 이슈로 제대로 제기되지도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는 서유럽 국가들과 근본적으로 상이한 조건에 있다(최장집, 2006: 7).
  
○ 최장집은 민주정부의 구조, 민주정부의 리더십과 엘리트, 민주정부의 성격 변화에 분석의 초점을 두었다. 문제의 원인은 정책 이념과 방향, 그리고 실제 정책 수행의 과정과 결과를 포함하여 민주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데 기인하는 바 크며, 그것은 외부의 어떤 힘 때문이라기보다는 민주정부 스스로의 변형이 가져온 결과라고 보기 때문이다. 즉 보수적 기성질서와 같은 외부의 압력이나 제약이 강해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어떤 가치와 어떤 생각으로 민주주의를 운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제대로 고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최장집, 2006: 8).


1장 한국 민주주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나
 
○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외부로부터 뿐만 아니라 민주화세력 내부로부터 발생한다는 사실만큼, 한국 민주주의의 기반이 얼마나 허약해졌는가를 잘 보여주는 지표는 없다. 오른편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왼편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과 좌절이 제기되는 상황은 한국 민주주의가 체제위기로 치달을 수 있는 사회심리적 원천으로 작용할 수 있다(최장집, 2006: 18).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민중적인 내용을 확대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갖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최장집은 자주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적 정책레짐의 형성”이라는 표현을 써 왔다(최장집, 2006: 19).
  
○ 우리는 민주화 이후의 사태를 통하여 커다란 민주화의 역설을 발견하게 된다. 민주주의란 정치적 참여의 평등을 제도화하는 통치체제로서, 이를 통해 보통사람들 스스로가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는 체제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민주적 성격을 보다 많이 갖는 정부일수록 보통사람들의 사회경제적 권익보다는, 그 정책의 효과가 사회최상층의 권익을 보다 더 잘 실현하는 이념이자 정책독트린이라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래서 민주화와 특정 정책독트린의 효과 사이의 비상응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를 민주화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민주화의 역설은 노무현정부에 이르러 극대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최장집, 2006; 20).
  
※ 변형주의(trasformismo): 19세기 후반 이래 이탈리아 정치 엘리트들의 행태에서 기원한 개념. 좁게는 집권 엘리트들이 안정적인 다수를 형성하기 위해 반대파를 통합해내는 정치와, 그것이 빚어내는 비공식적인 후원-수혜 관례를 의미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반대파들이 지배적 가치에 흡수, 동화되는 양식 일반을 가리키는 데, 여기서는 주로 민주정부 나아가 민주화운동 세력들이 헤게모니에 흡수, 동화되는 현상에 초점을 두고 있다. 뚜렷이 구분되는 이념과 정책적 차이를 통해 사회에 강력한 지지 기반을 갖는 정당들간의 경쟁이 정치의 중심을 이루지 못한 정당체제에서 발생하는 대표적 정치양식(최장집, 2006: 22).
 
○ 노무현대통령은 김대중정부 시기 집권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부터 왔다. 대안이 주변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은, 기존 집권당의 지도체제가 부과하는 제약에서 자유롭다는 점과 아울러 개혁에 대한 커다란 자율성을 확보한 정부가 탄생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민주주의제도의 핵심내용을 이루는 대표성과 책임성의 연계를 모호하게 하는 문제가 있다. 만약 그가 책임성(accountability)의 연계로부터 벗어나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움직일 때, 그리고 그의 움직임이 민주주의의 가치에 부응하는 개혁의 추진자이기보다 현상유지를 더욱 강화하는 헤게모니의 추진자가 될 때 누가 그를 민주적으로 구속할 수 있겠는가?(최장집, 2006: 23)
   
○ 대의제민주주의는 현대 민주주의 제도의 핵심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민중이 스스로 직접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선출한 대표에 의해 통치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적 영역에서 통치자의 행위가 책임성을 갖도록 하는, 대표체제의 민주적 통제가 중요하다. 대표성과 책임성의 연계 고리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선출된 통치자가 그를 선출해준 투표자들의 요구에 반응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만드는가의 문제는, 민주주의체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해결해야할 최대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선거를 경쟁적으로 만들고, 정치적 자유와 참여를 확대시키고, 사회경제적 정치의제의 범위를 확대하고, 민주적 통제의 범위를 확대할 수 있을 때, 이러한 정부를 대의적이라고 말하고, 민주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민주주의는 어떤 형식적 기준을 갖고 외부로부터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실천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노력이 중단되거나 거부될 때 민주주의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최장집, 2006: 23-24).
   
○ 대표-책임의 고리는 통치자의 입장에서 민주적 통제와 구속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으나, 반대로 개혁자로서 자신에게 위임된 것을 수행하고자 할 때 지지의 동원과 권력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따라서 통치자가 민주적 통제와 책임성의 연계를 부담스러워할 때, 그것은 개혁에 필요한 사회적 지지기반을 구축하는 과제를 통치자 스스로 포기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최장집, 2006: 24).
  
○ 사회가 갈등적 이익과 요구로 이루어져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민주주의란 사회 내에 존재하는 갈등들을 억압하거나 범죄화하는 대신, 적대적이고 경쟁적인 이익들을 공식적 대표의 체계 내에 통합하고 제도적으로 관리하는 정치적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최장집, 2006: 26).
→ 이게 민주주의 맞나?
  
○ 보수적 야당은 민주정부가 자신들의 정책적 입장과 차이가 커서 더 공격적이고 그러지 않으면 협조적이 되기보다, 민주정부의 지지기반이 강할수록 타협적이고 약할수록 공격적인 양태를 보였다. 노무현 정부가 보수헤게모니에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지지기반과 야당과의 관계 모두에서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기반에 대한 이탈과 공격은 커졌고, 결과적으로 민주정부의 지지기반과 정치적 리더십은 크게 손상되었다.
경제정책과 노동-사회복지정책은 민주주의 하에서 하나의 정부가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정책영역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간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적 생산레짐을 뒷받침하고자 하는 경제관료의 수중으로 넘겨진지 오래다. 노동-사회복지정책은 경제정책의 잔여범주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강력했던 만큼 이를 추진할 수 있는 공간은 협소해졌다.
  
사회경제적 정책영역에서 변화가 없었던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동북아허브 건설, 지역균형 발전, 행정수도 이전, 기업도시 건설과 같은 정책영역이었다. 이는 국가재정과 행정력의 대규모 투입을 가져왔고, 이 과정에서 무엇인가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는 주장과 이미지는 만들어졌지만, 실제로 나타난 것은 개발이익을 둘러싼 ‘이권의 지방배분 정치’(pork-barrel politics)였다. 거대한 국가자원의 공간적 재배분이 사회적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그것이 민중적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갖기 어렵다. 국가의 예산이 이권이 되고, 여기에 투기적 요소들이 결합될 때, 그것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그간 적지 않게 경험해왔다(최장집, 2006: 27-28).
  
○ 민중주의 운동의 중요한 약점은 민주주의이론을 한국적 현실에 맞게 구체화시키지 못했고, 대의제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의 제도적 역동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이념과 가치는 자유, 평등, 연대를 핵심적 구성요소로 한다. 이로부터 권위주의를 붕괴시킬 수 있었던 강력한 집단적 열정과 에너지를 창출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가치이면서 동시에 제도적 실천이다. 그 제도 작동의 중심 메커니즘은 선거와 정당이다. 그리고 그것은 헤게모니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헤게모니의 제약이라는 조건하에서 민주적 제도를 운용하여 사회를 변화시키는 문제는 비상한 능력의 지적․정치적 리더십을 요구한다. 권위주의를 붕괴시키는 능력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력은 질적으로 다른 수준의 문제이다(최장집, 2006: 33).
 
○ ‘87년 체제’를 사실적 서술개념이 아닌 사태의 평가를 위한 가치함축적 개념으로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것은 민주화로의 전환점에서 이루어졌던 제도화의 한 형태에 불과한 것이, 이후 이 사태를 규정하는 응결된 틀로서 과도하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나치게 구조주의적인 설명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잘못된 경로를 1987년 헌법과 같은 제도의 틀이 갖는 문제로 환원하면서 결국에는 1987년을 전후한 민주화 과정을 통째로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역정당체제는 민주화운동으로 표출된 강렬한 변화의 욕구를 수용할 수 없었던 낡은 정치적 대표의 체제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의 갈등 축이 노동문제와 사회경제적 문제를 포괄하도록 재편하는 문제는 고려하지 않은 채, 기존 정당들이 전국적으로 의석을 골고루 나눠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바꾸자는 기존의 지배적 접근은, 민주화의 과제를 확대하려는 노력을 억압하고 낡은 정당체제를 지속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뿐이다(최장집, 2006: 34-35).
 
○ 최근 노사모가 보여 주고 있는 변화는 인물 중심의 정치참여가 갖는 문제의 최종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가치와 대의가 아닌, 특정의 리더를 추수하는 운동의 경우 그 리더의 행적에 따라 운동의 성격과 궤적이 쉽게 변질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민주화운동의 탈동원화와 함께 이들 운동세력의 해체와 기존질서내로의 분자적 흡수를 촉진하는 효과를 증폭시킨다. 이는 또한 변형주의의 효과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최장집, 2006: 37).
   
○ 민주주의를 가져온 중심세력들이 담지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는 운동의 열정을 통하여 분출된 바 있었지만, 제도를 만들고 제도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사회변화를 가져오는 데는 극히 미숙하다. 민주주의로의 전환은, 기존의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의 변화를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 엄청난 대중적 동원에 의한 집합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 상황에서는 국면적 힘을 극대화하는 운동이 극히 효과적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고 발전시키는 문제는 체제전환에서 요구되는 논리와는 상이하다. 민주주의는 대중의 폭넓은 정치참여를 통한 민중권력의 창출을 지향한다. 따라서 그 어느 체제보다 민중적 요소를 부여하는 체제이다. 하지만, 참여가 참여자의 계몽적 이해와 자각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할 때, 그리고 참여를 통한 힘의 창출이 제도의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를 진작시키지 못할 때, 제도를 운영하는 방법이 실천을 통해 습득되지 못할 때, 민주주의체제에 내재된 민중적 요소는 발현되기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운동에 의한 민주화의 실현은 민주주의에 내재된 모순적 요소를 과소평가하는 가운데 운동의 효능을 과대평가하는 인식을 키운 것만은 분명하다(최장집, 2006: 38-39).
  
○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것은 세단계로 구성된다. ① 민주주의의 시민사회적 기반이 강화되고 건강하게 발전하여, 정치의 중심조직으로서 정당과 정당체제가 사회에 폭넓게 기반을 갖게 되는 것, ② 선출된 정부가 대표-책임의 연계에 의해 구속되는 것, ③ 선출된 정부의 정책 효과가 경제적 부와 자원의 분배구조를 향상시켜 민주주의의 물질적 기반을 강화하고, 정치적 평등의 실현을 제약하는 조건을 최소화하는 것(최장집, 2006: 39).
  
민주주의는 총체적 비전을 담는 이념이나 어떤 통일적인 도식 내지는 규범과는 본질적으로 병존하기 어려운 체제이다. 공동체가 지향하는 목표와 결정은 가능한 많은 참여자들이 논의의 결과로서 획득되고,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그것이 작동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이 과정 내부로부터 문제를 끌어내고 결정하는 이 실천적 경험을 통해 민중들의 자각적 성장을 가능케 하는 체제이다. 운동은 위기나 특정의 국면적 상황을 제외하고는 평상시 장기간 지속되기 어렵다. 운동에 진정으로 헌신하는 진보파들은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지금 다시 운동으로 돌아가 민주주의를 재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치게 쉬운 선택이다. 운동의 재활성화가 오늘의 변화된 현실에서 얼마나 가능할지도 회의적이거니와, 설사 가능하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회피할 때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안타깝지만 퇴행의 사이클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운동을 통해 무엇을 못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운동의 항상적 동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민중참여의 정치적 실천은, 자각된 전위부대가 운동을 통해 외부로부터 자극을 불어넣는 방법보다 일상적 정치과정 내부에서 민중들 스스로에 의해 실현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제 권력의 작동과 민주주의의 제도, 작동원리를 학습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개인적으로 또 집합적으로 요구된다.
 
오늘의 현실에서 운동으로 돌아가는 것이 문제해결의 방법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운동에 헌신하고 참여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과거 민주화시기보다 더 큰 운동가 개인의 자기희생과 실존적 문제가 제기된다. 말할 것도 없이 운동은 투쟁을 통한 문제 해결을 본질로 한다. 운동이 정치와 사회 전체를 개혁의 대상으로 설정할 때, 운동가는 그에 대응하는 이념과 가치, 규범과 신념을 스스로 다짐하고 단련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운동은 피할 수 없이 사회에 대해 갈등적이고 이념적이 되며, 또 이러한 운동가의 사회적 역할과 지위는 사회를 향하여 어떤 효과를 갖기 이전에 자신 스스로에 대해 엄청난 압력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적인 삶의 조건과 공적 과업을 일상성 속에 결합함으로써 실현되어야 하고, 그러한 태도와 실천을 지향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오늘의 일상적 조건에서 운동가는 사적 생활과 공적 대의를 위한 행위간의 커다란 괴리와 긴장으로 고통받게 된다. 이것은 그의 행위가 사회를 개선하기 이전에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소외시키고 그 자신의 삶, 개인적 행복으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킨다.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를 스스로 강하게 설정할수록, 강한 이념을 스스로 발견해야 하고, 이념과 가치로 행위를 정당화해야 하기 때문에 개혁된 사회의 모습과 비전은 더욱 더 이상주의적이 될 수밖에 없다(최장집, 2006: 41-43).
→ 결국 운동도 정당정치라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최장집 교수는 미헬스가 언급한 바 있었던 과두제의 철칙에서 진보정당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했어야 하지 않은가. 이 운동과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에 관한 논의가 최근의 조희연, 손호철 교수가 참여한 진보논쟁의 싹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최장집 교수의 지적에도 귀기울일 필요가 있긴 하다.

   
○ "현실정치에서 제도 내지 일상적 담론구조를 통해 제기될 수 없는 문제를 드러내고, 그것을 사회의 공적 의제로 만드는 것은 운동이지만, 이를 정치의 일상 속에서 구현하는 것은 제도화된 정당이라는 사실 때문에 거기에는 언제나 괴리와 긴장,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정당으로의 제도화는 운동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언제나 불만족스럽게 대표하고 실현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은 운동대로, 오래 지속할 수 없고 일상 속에서 정책으로 전환될 수 있는 수단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운동-정당간의 관계는 일종의 변증법적 상호관계의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정치의 현실주의자로서 민주주의 제도가 허용하는 경계를 끊임없이 넓히려는 시도와 함께, 정당이라는 중심 수단을 활성화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현실의 삶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정치의제로 전환하여 실천하는 정치의 과정이 확대되고 발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과정은 정치현실 속에서는 최대한이지만, 운동의 의제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이상의 기준에서는 최소한이 될 수밖에 없는 범위 내에서 작동하게 되지 않나 싶다.
이상과 운동은 현실 속에서 어떤 것을 얻고자 한다면 무엇인가를 잃지 않으면 안 되고, 그리고 무엇을 얼마나 잃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갈등하고 타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정치에서 최대강령적 목표를 얻으려고 할 때는 다른 가치를 희생시키거나 너무 많은 비용/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조정된 최소강령적 목표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실정치에서는 때때로 엘스터가 ‘신포도’(sour grapes)라고 표현하듯, 적당한 물러섬과 현실 상황에 적응하며 실현가능한 범위에서 가능성 또는 선호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최장집, 2006: 44-45).
→ 편집자 주에 나와 있는 글인데, 앞에 나온 논의를 잘 정리하고 있는 인용문이다.
  
2장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민주화 세대의 과제
  
○ 과거 군부통치를 한국 사회의 소수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협소한 엘리트 지배의 권위주의였다고 한다면, 민주화 이후에는 그간 참여가 배제되었던 대중적 참여의 폭이 비약적으로 넓어진 민주주의가 되었어야 했는데, 오늘의 민주주의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즉,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되 엘리트 중심의 민주주의로 정착되고 있다는 것이다(최장집, 2006: 48).
→ 이에 대한 근거가 구체적으로 보여져야 하는 것 아닌가?
 
○ 정서적 급진주의와 보수적 실천이 기묘하게 결합하는 현상을 만들어 내는 원인은 결국 헤게모니에 의존한다는 데 있다. 그러면서 있는 것을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갖다 쓰기 때문이다. 현실에서의 실패를 강한 레토릭으로 보상하고자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그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켜 왔다(최장집, 2006: 54).
  
○ 투입 지향적(input-oriented) 정치와 정책 형성의 모델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사회와 유리된 전문가들만의 싱크탱크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요구와 변화가 투입되고 소통되는 체계이다. 산출(putout) 중심의 정책생산 전문가 집단은 자본과 권력, 헤게모니 등 외부의 영향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싱크탱크가 잘 발달해 있는 미국 정치, 미국 민주주의의 문제 가운데 하나는 정치가 사회적 기반, 민중적 요소와 괴리되어 미국 사회의 상층과 전문가 엘리트 집단 중심의 기술관료적 비전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점이다(최장집, 2006: 55).
  
3장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와 헤게모니 사이에서
 
○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들은 우리가 삶의 현실을 이해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련의 개념틀이나 믿음의 체계를 발전시켜 온 결과로 보기 어렵다. 즉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말이다. 냉전반공주의나 신자유주의적 경제독트린은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해방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냉전반공주의는 한국사회와 정치의 제도화를 주형해온 이데올로기적 기반이자 해석의 틀이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경제적․사회적 갈등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자리잡았다. 특정 갈등은 그 표출과 대표가 허용되는 반면, 어떤 갈등은 허용되지 않는 방식으로, 갈등의 제도화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현상의 유지를 가져오는 보수의 스펙트럼에서만이 정당의 조직과 정치경쟁이 허용되는 정당체제의 협애한 제도화는 그 직접적인 결과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이러한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데올로기가 창출하는 가장 부정적 효과는 그것이 삶의 현실에서 발생하는 실제의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한다는데 있다. 헤게모니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능력 내지는 힘이라 할 수 있다(최장집, 60-61).
  
한국의 민주화가 폭넓은 사회개혁과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게 하는 제약
- 이 모든 것은 분명 이를 믿도록 하는 역사적 경험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두려움의 동원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이는 세 가지 역사적 경험을 말하는 것인데, 일제 식민지배로 상징되는 주체적 근대화의 실패 경험, 전쟁과 분단을 통하여 내면화된 미국에 대한 의존성,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성공사례로서 인식되는 박정희 신화가 그것이다. 이들 경험은 한국사회에서 전체주의적 속성을 강화하는 경향을 부추기고, 비판과 경쟁적 대안의 조직화를 어렵게 하며, 가치의 다원화를 가로막는 효과를 갖는다. ‘어떻게 하든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하든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어찌되었든 경쟁에서 이겨야한다’, ‘미국에 밉보이면 안 된다’는 두려움은 그러한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최장집, 2006: 61).
  
○ 신자유주의적 독트린이 갖는 문제의 핵심은, 사익의 실현과 사적 영역의 극대화를 강조하고 공적영역을 최소화하려는 것을 중심가치로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존립기반을 해체하는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다. 시장 역시 사회조직의 한 형태에 불과하며 그 자체가 국가의 규제정책과 국가의 역할을 통하여 조직되고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효율성이 시장 스스로에 의해 자동적으로 창출된다는 주장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 나아가 신자유주의의 독트린이 강조하는 것처럼 국가의 역할, 국가의 경제행위가 축소되고 있다는 주장도 진실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제이콥 핵커와 폴 피어슨이 미국정치에 대해 말하고 있듯이, 세금 감축과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은 일차적으로 부유층에 혜택을 부여하고 사회복지정책과 공공정책을 위한 재정을 감축함으로써 일반 국민과 저소득층에 해악적 효과를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핵심은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부유층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국가의 역할이 전환된다는 사실이다(최장집, 2006: 62-63).
Hacker, Jacob S. and Paul Pierson(2005). Off Center: The Republican Revolution and the Erosion of American Democracy. Yale University Press.
  
○ 신자유주의의 효과가 두 가지 내용으로 작동한다. 하나는 사적영역과 공적영역, 시장과 국가․정치․민주주의와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설정하면서, 전자의 사적 영역과 시장원리가 후자의 국가․정치․민주주의로 인해 축소되는 것을 문제 삼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구성의 내부적 작동원리에 있어 시장원리의 절대적 우선순위를 강조하는 것이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상대적 크기를 강조하는 첫 번째의 경우,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은 각각 뚜렷한 자율성과 작동원리를 가지며, 양자의 경계를 인지하기가 쉽다는 점에서 시장의 지배효과는 상당 정도 제한된다. 그러나 두 번째의 경우에는, 시장의 가치와 원리가 사회의 모든 하위구성단위와 수준, 영역에 일반적으로 적용되어야 하고 사회 전체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갖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전면적이다.
 
그동안 신자유주의가 정치영역에 미치는 효과는 첫 번째 경우에서 두 번째 경우로 확대되고 심화되어 왔다. 청와대와 정부조직의 구성 및 운영원리를 기업조직의 원리를 따라 개혁하고자 했고, 정책과 그 결정과정, 나아가 정치와 정당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압도했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부만큼 그 영향력의 확대를 잘 보여 주는 사례는 없다(최장집, 2006: 63-64).
  
○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원리들은, 반부패와 투명성 강화, 그리고 정책경쟁을 모토로 한 당의 전문화 등과 결합하면서, 정치개혁론의 근저에서 가장 중요한 헤게모니적 위력을 갖는다. 이런 종류의 개혁들이 전혀 무용한 것은 아닐는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제도화에서 더 중요한 것은, 사회기층의 대중적 삶의 현실로부터 나오는 요구들이 어떻게 폭넓게 대표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최장집, 2006: 65).
  
○ 성장과 효율성의 원리를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기술관료적 경영주의나 전문기술주의 가치의 강화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최장집, 2006: 65).
- 기술관료적 경영주의(technocratic managerialism): 막스 베버적 관료주의의 목적합리성과 현대 기업 조직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경영적 원리를 결합한 개념. 수단적 가치와 효율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조직 및 조직운영의 원리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비정치적 내지는 반정치적 가치를 핵심으로 한다. 그러므로 사기업조직과 정치적인 권위주의 체제와 잘 상응한다. 사회의 다양한 이익 갈등에 기초하고 이를 조정하고 타협하며, 효율성보다는 갈등의 조정과 통합을 중심 원리로 하는 민주정치의 특성과는 상반된다. 엘리트 내지는 전문가 중심의 폐쇄회로식 결정방식과는 달리 결정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그것이 공적 통제 하에서 개방적이고 투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민주주의적 정치과정 및 정책결정과정과는 정반대되는 조직이나 제도의 운영원리이다.
  
○ 아직은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민주주의보다 권위주의가 더 우월한 가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성장을 위해서는 효율성의 가치가 중시되어야 하고, 이는 기술관료적 경영주의를 통해 가장 잘 실현될 수 있다는 ‘성장=효율성=기술관료적 경영주의’의 등식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자연스럽게 수용한다. 이 등식은 민주주의와 정면으로 배치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가치는 민중주의와 분명히 배치된다는 사실이다. 정치개혁의 의제를 지배하는 기술관료적 효율성의 가치는 대중의 정치참여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이를 대신하여 전문적 지식이라는 덕목을 갖춘 엘리트들의 역할과 참여를 확대하는 전제나 지향을 배면에 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이후 정치개혁의 내용들 역시 민중참여를 제약하고 엘리트지향성을 강하게 갖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민주화 이후 모든 선거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높은 국회의원 교체율을 나타냈으며, 17대 국회의 경우만 보더라도 기존 국회의원의 60% 이상이 교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당체제는 여전히 보수독점의 구조를 탈각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이익과 갈등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책 경쟁과는 거리가 먼 구태의연한 쟁투를 계속하고 있다. 현상적으로 보면 엄청난 변화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당체제의 구조적 특성이 강력하게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정부하의 정책결정과정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발견한다. 청와대와 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부서의 정책형성과 심의과정에서 외부로부터의 투입은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정부의 최고 정책결정자들과 중간층 인사들의 다수는 과거 운동권 출신이며, 개혁적 인사들이다. 이들과 시민사회의 소통 채널들은 전에 없이 확대되어 정책결정과정에 있어 시민사회 운동단체들의 참여와 그로 인한 투입 또한 비약적으로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정부의 정책 내용과 결정 방식은 실제 사회현실 및 사회갈등의 중심내용과는 크게 괴리되어 있다. 정책결정과정에서 대대적으로 참여가 확대되고, 역할이 비약적으로 커진 집단은 대학의 지식인들과 연구자들, 국가영역과 민간영역에 있는 연구기관과 단체에서 활동하는 많은 전문가 집단이다. 최근에 이르러 크게 확대된 각종 정부위원회나 자문위원회, 그리고 정책연구 프로젝트 등을 통한 이들 전문가 집단의 참여는 민주화와 더불어 변화된 정책결정과정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이다. 지난 어떤 민주정부보다 노무현 정부는 정부의 효율적 운영과 생산적 정책결정이라는 모토를 내세우면서, 전문가의 참여가 결합된 기술관료적 결정스타일을 발전시키는 데 열성적이었다. 물론 정책결정과정에서 전문 지식인의 참여와 투입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의제의 설정에서 정책의 형성과 결정에 이르기까지 사회현실에서 발생하는 삶의 문제와 민중적 요구가 중심적 동력이 되어야 하며, 이들을 대표하는 것이 그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민주정부의 정책과 그 결정과정은, 이러한 사회적 현실이나 정치경제적 문제와는 매우 거리가 먼 방식으로 변질되었다. 그것은 정책 산출 중심의 사고와 정향으로 특징되는 바, 전문가 엘리트의 비전에 의해 창출되는 사회를 지향하고 이를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내용과 스타일은 특히 노무현정부에 들어와 두드러진다. 국가 운영과 정책 결정의 이러한 기술관료적 스타일은 정치를 효율적 정책의 산출과는 거리가 먼 비생산적인 이전투구의 장이자 파벌간의 난투장으로 이해하는 정치관과 무관하지 않다(최장집, 2006: 66-67).
  
○ 정치에서 도덕주의적 가치가 강한 이유에 대해, 혹자는 도덕과 명분을 중시했던 조선조 유교적 전통의 산물이라는 정치문화적 기원을 강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에 대해 도덕주의적 접근이 강한 것은 사회경제적 갈등의 표출을 억압하고 자연히 갈등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배제하는 데 기인한다. 즉 즉 갈등이 팽만한 사회에서 갈등을 정치적․제도적으로 표출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결국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데 따른 사회심리적 보상작용의 결과물이이라는 것이다.
 
도덕주의는 민주적 과정의 실패의 산물이다. 그것은 갈등을 민주정치의 과정 내에서, 정치 안에서 제도화의 방법을 통하여 해소했던 경험이 많지 않고, 그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에서 문제를 혁명적 방법으로 일거에 해소하고자 하는 일종의 청산주의적 심리와 성급함의 심성에 그 연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최장집, 2006: 68-69).
  
○ 도덕주의에 대한 운동권의 의미내용은 훨씬 더 치열하다. 운동에 진정으로 헌신하는 자는 도덕적 인간이 되어야하고, 역으로 도덕적 인간이 진정한 운동가라고 인식은, 자연스럽게 도덕적 인간만이 민주주의자이며 이들만이 민주주의를 잘 발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이는 민주주의를 제도와 매개된 정치적 실천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규범으로 수용하는 태도이자 자세이다. 민주주의가 가치와 이상, 그에 헌신하는 도덕적 열정 없이는 진전될 수 없고, 또 그럴 경우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현실 제도의 메커니즘을 통하여 실천되고 작동되지 않으면 안 되며, 갈등과 권력이 충돌하는 정치과정으로 뛰어들지 않고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러할 때만이 운동이 지향하는 민중적 가치와 대의를 민주주의라는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다(최장집, 2006: 70).
  
○ 도덕주의가 가져오는 민주적 과정에 대한 부정적 효과는, 그것이 현실을 현실 자체로서 접근하기보다 규범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사회경제적 차원의 실질적 문제에 무감하게 만들고, 갈등과 권력, 나아가 정치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도록 한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는 갈등의 표출과 그에 기초를 둔 정당을 매개로 권력을 창출하는 것을 핵심요소로 한다. 즉 민중적 참여와 민중적 요구의 확대를 통해 기존의 제도에 대해 끊임없이 개혁을 압박하거나, 민중적 권력을 창출을 둘러싸고 갈등하는 것을 정치과정의 중심으로 포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민중적 요소의 투입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상당정도의 갈등, 무질서와 소란스러움을 동반하며, 이는 ‘민주주의의 비용’이다. 요컨대 민주주의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라는 말이다(최장집, 2006: 70-71).
   
대체적으로 운동권들은, 권력이 충돌하는 민주정치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책을 정치의 영역 밖에서 찾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다시 말해 정치를 초월해 있는 것으로 상정되는 전문가라든가 사법부라든가 시민사회의 운동이라든가 하는 어떤 제3의 해결자를 불러들이는 방법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최장집, 2006: 71).
  
○ IMF 금융위기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전개와, 한국의 경제발전과 산업구조의 급속한 변화가 초래한 노동시장의 분화는 모든 노동운동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동의 이익기반을 해체했다. 이러한 변화는 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 이들 사업장에서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취업자와 실업자들간의 이익갈등을 첨예한 대립관계로 몰아넣었다. 어떠한 방법으로, 어떠한 공동이익을 제공하면서 이들을 조직해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도덕주의적 방법으로 접근되거나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이 전혀 아니다. 오늘의 노동운동은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노동운동의 대의를 저버리고 사적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론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의 한국 노동운동도 이 집합행위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독립운동, 혁명적 변화, 민주화운동과 같은 사회적 변혁기, 즉 동원의 시기에는 집합행위의 딜레마가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동원이 평상시로 되돌아가는 탈동원의 시기, 도덕주의는 물질적 이익추구 앞에서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이익집단운동으로 전락했다”라든가, “초심으로 돌아가자”라고 말하며, 과거의 도덕적 가치를 불러들이면서 이 사태에 대해 도덕적으로 개탄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이들 운동이 더 이상 과거의 도덕성을 견지할 수 없는 것은, 거시적으로는 민주화라는 정치적 조건의 변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경제발전에 의한 노동시장조건의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미시적으로는 운동에 헌신하는 개인이 자기이익에 반해, 그리고 인간의 행복 추구 욕구에 거슬러 지속적으로 도덕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덕주의를 다시 불러들이는 방법으로는 실천적이고 도덕적인 힘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도덕주의의 딜레마는 노동운동에 국한되지 않고 민주화운동 전반에 해당된다. 도덕률에 기초한 정당화는 그것이 만들어 낸 결과와 양립하지 못하게 될 때 붕괴된다(최장집, 2006: 71-73).
  
○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와 개혁의 이름으로 과격하게 진행되어 온 것이 저간의 현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규모나 자원동원 능력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이다. 연대와 공동체의 원리로 움직여야 할 시민사회의 운동 부문은 정부가 제공하는 재정자원을 고리로 수혜-후원의 구조에 깊숙이 통합되었다. 반대로 권위주의 체제에서 조직된 관료행정체제의 구조를 민주주의의 원리에 상응하도록 개혁하려는 노력은 쉽게 포기되었다. 각종 위원회 제도를 도입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관료기술주의적 결정을 보완하는 기능으로 전락했다. 즉 시민사회가 권위주의 시절보다 국가의 확장된 부문으로 통합된 사실이 두드러진다. 요컨대 시민권을 확장하는 민주정부의 기능은 실종된 반면, 신자유주의 가치를 준봉 혹은 내면화한 정부의 기능은 크게 확장된 것이 그간의 현실이 아닐 수 없다(최장집, 2006: 73-74).
 
4장 노무현 정부와 한국 민주주의: 열망-실망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나
→ 2003년 5월 29일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주최로 열린 “참여정부 출범 100일,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글이다. 최장집 교수의 탁견을 볼 수 있는 글이다. 노무현 정부는 최장집 교수가 우려했던 대로 행동해왔다.
  
○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특징 - ‘열망-실망의 사이클’과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
전자는 선거과정에서 분출된 열망이 선거 이후, 즉 새로운 정부의 수립 이후 실망으로 변하는 주기적 순환을 말하며, 후자는 정당의 역할보다 언론과 검찰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열망-실망 사이클’의 악순환의 결과이자 때로는 원인 혹은 그와 수반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열망-실망의 사이클은 김영삼․김대중 정부를 거치며 하나의 법칙적 현상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그간 민주정부들이 보여 준 반복적 패턴이었다(최장집, 2006: 76).
  
○ 민주화 이후 야당이 집권정당이 되고 정부가 되면서 직면하게 되는 커다란 문제(최장집, 2006: 77-79)
 
첫째, 리더십과 인적자원의 문제
개혁은 힘의 진공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있다는 것을 기본전제로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슬로건이나 개혁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를 뒷받침할 힘의 동원과 기득이익 못지않은 강력한 정치적 지지기반의 투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개혁의 과정에서 리더십은 흔들림이 없어야 하고, 비전과 프로그램은 체계적이고 현실성이 있어야 하며, 이를 추진할 수단들 역시 정비되어야 한다. 즉 개혁은 정책적이기에 앞서 정치적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둘째, 헤게모니와의 대면과 타협
새로운 정부들은 보수적인 헤게모니와 타협하는 정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새로이 집권한 민주정부 자체의 약함 때문이고, 사회의 사적 영역에서 강력한 기득이익들의 저항이 있기 때문이다.
기득이익을 능가하는 정치적 지지기반이 투입되지 못하고, 강력한 헤게모니에 저항할 주체적 역량을 갖지 못한 상황에 직면하면서 이들은 현상유지를 결과하게 될 안일한 정책대안을 선택하려는 강한 유혹을 받게 된다.
 
셋째, 한국판 분할정부의 출현
중요한 것은 분할정부가 자주 정치의 교착상태를 만들어내면서, 대중동원을 목표로 한 정당간 선거경쟁으로부터 대통령 대 의회라는 제도간의 권력투쟁이 정치의 중심이 되고 이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이 엄청나게 증대하게 되는 정치의 퇴락현상, 긴스버그와 세프터가 말하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정당정치를 압도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분할정부는 행정부와 의회간의 제도적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때에는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역기능적으로 작동할 때에는 오히려 민주정치를 퇴행시키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최장집, 2006: 79-81)
Ginsberg, Benjamin and Martin Shefter(1999). Politics by Other Means: Politicians, Prosecutors, and the Press from Watergate to Whitewater. W.W. Norton & Company.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출현은 민주주의의 퇴락을 말하는 징후적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는 두 정당간의 이념적․정책적 차이가 좁혀지는 것과 함께 선거에서의 지지율 차이가 줄어드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정치인들간의 정권 획득을 둘러싼 쟁투가 격렬해짐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다. 그리고 선거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이 엄청나게 팽창하는 반면, 사회 저변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대중동원의 메커니즘인 정당의 역할은 줄어드는 현상을 동반한다. 이 과정에서 투표자들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성’을 갖지 않는 제도나 기구들, 즉 국가기구 내의 검찰이나 사적 영역에서의 언론이 점차 정치의 중심 행위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정치와 경제를 둘러싼 중심적 이슈들 바깥에 위치하는, 즉 갈등의 폭이 적고 기술관료적 접근이 가능한 이슈들, 예컨대 탈규제정책이나 행정합리화, 대민행정업무의 개선과 같은 문제들은 쉽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갈등의 폭이 넓은 이슈는 거의 다루어지지 못했다. 여기서 최장집은 외적 제약보다 내적 제약을 더 강조한다. 선출된 정부가 대안적인 비전, 정책목표, 정책의 실천프로그램과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인적 체계를 갖추지 못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민주정부는 집권 초기를 지나면서 빠르게 보수기득이익과 타협하고 그에 포획되는 경향을 보였다.
  
○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 나타난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민간 부문의 자율성 증대와 더불어 사적 영역의 확대이다. 기업, 언론, 지식사회 등 한국 사회의 보수적 부문은 시장효율성을 강조하고 그 동안 한국을 이끌어 왔던 국가에 대하여 그것의 실패, 비효율성을 말하면서 공공부문에 대한 민간부문의 우위를 강조한다. 즉 이들에게 있어 민주화는 곧 시장자유화를 말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시민운동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국가의 팽창이 권위주의를 가져오게 한 요인이라고 전제하면서 공공성과 시민사회, 그리고 비정부조직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러한 변화의 방향은 세계화, 민주화, 신자유주의, 시장효율성의 가치와 독트린이 지배적인 오늘의 시대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사적 영역과 시민사회의 확대가 곧 그동안 권위주의하에서 억제되었던 일반 대중들의 정치적 참여의 확대, 사회의 균열과 갈등의 광범위한 표출, 그리고 그것이 바탕이 된 정치적 대표체제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의 정치참여가 증대되고, 이들의 이니셔티브하에서 정치가 확대되는 것이 민주주의이며, 이 민주주의의 중심 조직, 메커니즘이 정당이다. 그러나 대중의 정치참여 확대 없이 사적 영역과 시민사회가 확대된다는 것은 사회의 거대 사익 집단들, 거대 사적 조직과 기구들이 정치를 주도하게 되는 ‘정치의 민영화’(privatization)를 의미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곧 정치영역에 있어서 거대 사익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반면 공공영역을 축소시키는 효과를 갖는다(최장집, 2006: 83-84).
 
○ 정당 중심의 정치가 약해지고 언론이 정치를 대신할 경우 사회의 광범한 저변층이나 중산층의 이익과 요구보다는 상층의 기득이익이 일면적으로 대변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과정의 순환구조
1) 사회․시민․투표자→투표→정당→선거로 선출된 정부→사회․시민․투표자에 대한 ‘책임성’
2) 사회․시민․투표자→언론을 통하여 제공되는 여론의 투입→언론의 영향하에 있는 여론의 부침과 평가에 끌려 다니는 정당과 정부→투표자에 대한 책임성의 약화 : 미디어크라시(mediacracy), 미디어민주주의(media democracy)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가 잘 안 된다면 그 원인은 일차적으로 정당의 저발전과 정치인들의 무책임에 돌려질 수 있다. 민주화 이후 정당은 새로운 유권자층과 사회 저변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고, 변화에 대한 강렬한 요구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으며, 선거경쟁에서 새로운 리더십, 새로운 비전과 대안을 조직하지도 못했다. 다른 한편 언론의 정치지배는 ‘운동에 의한 민주화’의 귀결인 측면도 있다(최장집, 2006: 84-85).
 
○ 지배담론으로서의 도덕주의(최장집, 2006: 86-88)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는 정치에 대한 도덕적 평가의 잣대를 비약적으로 높이면서 부패문제를 정치의 중심에 놓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노무현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대통령 주변의 부패문제와 씨름했다. 대통령과 관련 있다 싶은 부패 사안에 선택적으로 집중하는 언론과 야당의 공격, 국회의 제도적 권력과 결합된 특검제의 활용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번창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부패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인과관계의 설정이 잘못되었다는 사실 역시 지적되어야 한다. 국가 부문과 관련된 부패문제의 핵심은 국가와 사적 영역 사이에서 후원과 정치적 지지가 교환되는 관계, 혹은 정부와 민간 부문이 수혜와 지대추구로 연결되는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부패를 구조적으로 축소하는 최선의 방법은 민주화이다. 부패 때문에 민주주의나 정치가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부족 때문에 부패가 유지되고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부패담론’과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창궐은 민주주의 발전에 부정적 효과를 낳는다.
  
개혁적인 정부라면 정치개혁의 제일의 주제를 민주적 참여와 대표성의 확대, 그리고 국가/정부의 책임성 확대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간의 정치개혁 논의에서 그 기준과 목표가, 반부패로 표징되는 도덕적 규범이나 정치의 생산성과 효율성 증진이라는 경제적 가치에 두어지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 지배담론으로서의 전문가주의(최장집, 2006: 88-90)
 
민주정부도 큰 사회를 움직이는 기구이고 국가 역시 거대조직의 하나라고 할 때 이를 운영함에 있어서 전문성, 기술합리성이 필요함은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전문기술합리성이 민주적 가치에 우선하여 강조되거나 이를 대체하려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나 조직의 운영원리로서 그것은 그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를 통치하는 것은 전문적 지식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사회적 가치판단과 여러 윤리적 고려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평등한 참여, 평등한 시민권과 같은 정치적 원리 등 숱한 문제를 포괄한다.
  
로버트 달은 이미 플라톤의 『국가』에서 이론화된 바 있는 이러한 전문기술주의를 민주주의의 최대 적이라고 보았다. 마넹은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추첨제와 순환제를 중심으로 공직을 선출하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의 본질은 전문기술주의에 대한 거부라고 해석했다(마넹, 버나드(2004). 『선거는 민주적인가』. 서울: 후마니타스.). 이 전문기술주의는 정치에 있어 ‘후견주의’를 그 내용으로 하며, 민주주의의 중우적 성격을 부정적으로 강조한다. 기술합리주의, 엘리트주의는 일체의 민중적인 것에 대한 부정적 담론과 병행하여 진행된다.
  
언론이 강조하는 전문기술주의는 현대의 발전한 과학적 지식이나 현대 사회의 복잡한 구조를 민중들이 이해할 수 없으며, 다수결과 같은 민주주의의 원리를 통해 해결하기도 어렵거니와 민주주의는 갈등으로 분열되기 쉽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분열과 갈등에 끌려 다니는 동안 사회 전체를 위해 중요한 문제, 미룰 수도 방치할 수도 없는 문제들은 산적해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큰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엘리트주의적 관점을 갖는다. 이러한 가치와 관점은, 우리 사회가 갖는 학벌 중심적 특성이나, ‘고시’라는 국가시험을 통한 공직자 충원 방법, 그리고 박정희식 관료적 발전모델의 신화 등으로 인해 쉽게 확산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정치인들의 자격에서도 전문가라는 평가가 중시되고, 정부의 인사 특히 국영기업, 공사 등의 인사충원에 있어 “정치인 배제, 전문가 중시”라는 기준이 자주 강조되듯이 전문성, 기술합리성의 가치는 정치적 가치보다 우선시된다. 뿐만 아니라 정책결정 과정에서 전문가주의가 수반하는 효율성의 가치는 민주적 결정이 아닌 기술관료적 결정을 정당화한다.
  
○ 지배담론으로서의 신자유주의(최장집, 2006: 90-91)
시장경쟁에서의 이익창출과 이를 위한 효율성을 기본가치로 하는 기업운영의 논리가, 사회적 갈등을 표출․대변하고 시민들의 안정과 복리 증진을 기본가치로 하는 공적 결정의 논리를 대신하면서, 국가 운영의 원리를 기업 운영의 원리와 동일선상에 놓게 된 것이다.
  
○ 민주정부라면 참여의 폭을 넓히고 사회의 요구를 폭넓게 대표하려는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현재 노무현 정부의 개혁자들이 논의하고 있는 것과 같이, 정치개혁의 목표를 지역주의 극복/반부패에 둔다면 그것은 방향을 잘못 설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인사이더라고 할 수 있는 기존의 정치엘리트 내의 지역적 분포만을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최장집, 2006: 92-93).
  
○ 민주화 이후 한국의 대통령에게서 발견되는 특징: ① 선거와 더불어 대통령이 된 후 자신이 한 정당의 지도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그 역할을 등한히 하는 경향이 있다. ② 갈등을 적극적으로 대면하고 이를 민주적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대통령 역할에서 핵심은 그가 정당의 대표라는 사실이다. 투표자들은 선거경쟁에서 그가 자신들이 선호하는 정책, 이념,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의 후보이기 때문에 다른 정당 후보가 아닌 그를 지지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출된 대통령은 일차적으로 그를 지지한 투표자로부터 선거를 통해 그 요구를 위임받았기 때문에 지지자들에게 책임을 질 의무가 있다. 그러나 언론을 중심으로 한 지배담론의 여론몰이는 그가 갈등을 표출하고 파당적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대표가 아닌, 통합과 화합을 실현하는 국가 전체의 대표가 될 것을 요구한다. 여기에서 이에 부응해 대통령은 정당의 대표가 아닌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는 태도를 취하는데, 그러면 결과적으로 기득이익과 타협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 즉 선거 때는 표를 위해 지지자를 끌어들이려 하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지지자들의 요구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최장집, 2006: 94).
  
○ 일반 대중들의 참여로부터 시작하여 정책이 만들어지고 시행되는 이 전체과정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강조해야 할 것은 이 상상력이 대통령의 머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가 무엇인지에 관한 대중의 요구 표출과 지식인들의 이론화 노력이 정당의 대표기능과 상호 소통하면서 만들어지고 습득되는 사회적 지식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이를 정치적으로 응집하여 정책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 주변에 그리고 정책결정이 일어나는 정부의 부처 주변에 정책자문을 위한 위원회들의 설치가 꾸준히 증가해 왔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이들 정책자문기구의 역할이 사회의 요구와 사회적 지식의 투입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앞선 정부보다 나은 차이와 업적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정책결정은 전문가주의와 기술관료주의의 범위 안에서 순환되는 내부투입(within-put)에 중심이 주어졌다. 핵심은 국가영역 밖의 사회로부터의 투입이다. 정책결정이 아래로부터의 투입과 결합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민주주의란 대통령을 중심으로 행정부의 고위 결정자들이나 전문가들이 정책을 만드는 산출과정을 의미하기보다 사회와 소통하며 사회의 광범한 요구들이 정책결정과정으로 투입되는 과정을 더 중심에 두는 체제이기 때문이다(최장집, 2006: 95-96).
  
○ 3년이 지난 2006년 시점에서의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최장집, 2006: 96-98)
  
노무현 정부의 통치스타일은, 앞선 다른 정권에 비해 세 가지 점에서 특징적이다. 첫째, 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담론과 실제 정부 정책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 정책의 관점에서 노무현 정부는 역대 어떤 정권 못지않게, 아마도 가장 미국의 요구에 순응적이었다. 한때 그토록 강조했던 동북아시대론, 동북아균형자론은 자취를 감추고 지금은 한미동맹에 집중하고 있다. 경제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말로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면서 실제 정책에서는 가장 과격한 신자유주의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그로 인하여 일찍이 보기 어려웠던 부정적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둘째, 서로 다른 정책방향 내지 정책 사이에 부정적 의미의 상호교환(trade-off)이 빈번하다는 점이다. 한 정책분야에서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다른 분야의 중대 정책을 끌어 쓰는 틀어막기식 접근이 자주 나타난다. 대미외교의 미숙함으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보완하기 위해 다른 정책영역을 부당하게 포기하거나 양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최근 한미 FTA를 하면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안보위험이 줄어드는 효과를 갖는다는 식의, 서로 다른 차원의 정책분야가 비논리적으로 뒤섞인 주장이 아무렇지도 않게 개진될 수 있는 것은 이런 조건에서 가능했다.
 
셋째, 정책노선의 일관성 부재이다. 하나의 정책이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정책방향과는 매우 다르거나 아니면 정반대가 되는, 변화의 진폭이 드라마틱하다 할 정도로 크다.
이러한 문제가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한미 FTA 문제이다. 자칫 IMF사태보다도 더 큰 충격을 줄지도 모르는 정책사안에 대하여 정책결정자들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충분한 사전준비도 없이, 그리고 광범한 사회적 논의와 공론화의 과정도 없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사회에 강권하는 일은 민주정부가 취해야 할 결정방식이 아니다. 미국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면서까지 그렇게 졸속으로 추진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은 제시되지 않았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일반 국민과, 그 정책효과를 부정적으로 안게 되는 사회집단들을 소외시키고 대통령과 소수 기술관료 내지 보좌관들이 중대 정책사안을 폐쇄회로적 방법으로 결정하는, 권위주의체제에 전형적인 기술관료적 결정방식을 닮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장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디자인 서설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편, 「아세아연구」, 47권 3호(2003년 12월)에 게재된 논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 민주화 이후 제도개혁은 여야당을 포함하여 여러 정치적․사회적 그룹으로부터 제기되었다. 하나는 분권형 대통령제 및 책임총리제와 같이 대통령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을 핵심으로 정부형태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치부패 척결, 깨끗한 정치 구현, 생산성과 효율성을 실현하는 정당개혁에 대한 요구였다.
 
노무현 정부는 출발 초기부터 통치구조를 둘러싼 개헌이슈에 결속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헌정체제가 우리 사회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고 잘 작동하고 있는가에 의문을 갖게 한다. 나아가 대통령 권력을 둘러싼 현재의 제도논의들이 얼마나 한국 민주주의가 대면하고 있는 현실에 기초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제도문제가 좋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은 틀림없지만, 제도디자인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최장집, 2006: 100-101).
 
○ 제도논의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들은 수없이 많다. 민주화라고 하는 변화된 환경에서 기존 제도들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려니와 민주화 이후 사회의 새로운 주요 이슈들과 그로부터 분출하는 사회적 갈등을 다룰 수 있는 제도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제도의 결핍 또한 큰 문제가 되고 있다(최장집, 2006: 101).
 
○ 제도 문제를 검토함에 있어 최장집은 지오반니 사르토리의 문제의식, 즉 “제도는 무엇보다도 작동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사르토리는 제도를 제재와 보상으로 구성된 유인체계의 틀로 이해한다. 하지만 최장집은 제도를 유인체계의 메커니즘으로만 이해하기보다는 한국으로 수입된 원래의 모델과 한국적 토양이 접합하면서 빚어지는 효과, 즉 정치사회학적 문제에 보다 많이 관심을 갖기 때문에 다소간 문제의식을 달리한다. 그것은 한국의 개혁자들이 외래의 모델을 가져왔을 때, 한국 사회의 정치적․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조건들이 그 제도의 효과를 다르게 만들 수도 있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제도를 수입할 때 상정했던 목적과 실제로 이식된 토양에서 나타나는 효과간의 차이에 주목한다.
Sartori, Giovanni(1994). Comparative Constitutional Engineering. Macmillan Press Itd. p. ix.
 
이러한 문제의식은 두 단계의 고려를 필요로 한다. 하나는 개혁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목적이 설정된 이후에 특정의 제도가 의도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광범한 그물망으로서의 사회적 관계가 상호연관 효과를 가짐으로 인하여 제도는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인과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최장집, 2006: 101-102).
Elster, Jon(1988). "Introduction." Jon Elster and Rune Slagstad eds. Constitutionalism and Democracy. Cambridge University Press.
 
○ 필립 슈미터와 마찬가지로 최장집도, 현대의 민주주의는 하나의 통일된 체제가 아니라 별개의 특성을 갖는 영역에서 제도화된 ‘부분체제들’(partial regimes)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해한다. 즉 여러 부분체제들은 하나의 원리에 의해 위계적으로 조직될 수 없으며,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원리로 조직된 부분체제들이 잘 작동하면서 전체적으로 좋은 효과를 낳을 수 있도록 결합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에 대한 전체적 이해를 가지고 부분적이고 국지적인 문제영역에서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특정 영역 또는 보다 상위의 영역에서 제도개혁 디자인을 할 때에도 다른 영역, 또는 하위 체계의 영역과 상호보완적이고 순기능적으로 결합하는 문제를 포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데 있다(최장집, 2006: 103).
 
○ 민주주의도 하나의 통치체제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지속하는 데는 인간의 선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정한 비용이 든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정치가 비록 부패로 변질되고 부패의 온상이 되기 쉽다 하더라도 이를 원천적으로 제거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정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로막고 민주주의를 위한 비용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올바른 처방이라 할 수 없다. 올바른 치유책은 민주주의의 비용이 정치에서 과도한 부패로 확대되어 나타나는 부정적 결과를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패를 평가하는 잣대 역시 과도한 도덕적 기준이 아닌 엄격한 법률적 기준이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그 목적 역시 부패가 완전히 척결된 상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가 이성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면 족하다. 부패문제를 다루는 방법과 관련하여, 병보다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최장집, 2006: 104).
  
○ 민주주의에 필요한 정치의 비용의 문제와 관련해 가장 합리적인 개혁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대기업이나 거대 사익집단에는 법적 기준을 높이되 비용의 원천은 다변화․다원화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당과 사회, 후보와 유권자가 접촉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비용의 통제기준은 낮추되 거대 사익과 국가/정부가 유착될 가능성이 있는 지점의 통제기준은 강화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대중 참여의 정치에 기초를 둔다. 어떠한 부패도 허용하지 않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환경에 정치를 위치시키고자 한다면 역설적이게도 대중의 참여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는 약화된다. 정치가 도덕화될수록 대중정치의 조건은 약화되고, 그 결과 정치 밖에서 풍부한 정치적 자원을 끌어올 수 있는 사회 상층이 정치의 중심이 되는, 현대판 귀족주의적 특성은 강화될 것이다. 니노는 민주주의에 있어 중요한 것은, 개인들이 한 체제를 민주주의적이다, 또는 공고화되었다라고 평가하는 주관적 정당성이 아니라, 그 작동을 통하여 실체적으로 그 정의가 충족되는 객관적 정당성이라고 강조하면서, “나의 관심은 정치체제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에 관한 공동체의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체제를 도덕적이고 정당하게 만드는 데 있다”라고 말한다.
Nino, Carlos Santiago(1996). The Constitution of Deliberative Democracy. Yale University Press. p. 8.
  
민주주의는 제도적 형태를 갖는 여러 형태의 민주주의‘들’로 구현될 수 있다. 어떤 민주주의를 선택할 것인가는 한 사회의 선택이다. ‘객관적 정당성’의 기준을 중심으로 한 개혁을 통해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을 실현하고자 할 수 있다(최장집, 2006: 105-106).
  
○ ‘즉응의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세 문헌
1) 엘스터는 제도적 안정성을 통해 지속적으로 시민의 동의를 끌어내지 못하는 정치체제를 서술하는 개념으로 ‘인스턴트’(instant) 정치라는 말을 사용하고,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자주 변화했던 플로렌스의 선거제도를 예로 든다. Elster, "Introduction", pp. 9-10. 2) 니노는 다수결을 통해 결정이 만들어질 때 시간적 변수에 초점을 둔다. 그의 관점에서는 사람들의 이익이 변하고 새로운 사람들의 이익이 표출될 때 과거의 다수결에 의한 결정은 현재의 변화된 시점에서 더 이상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결정이 현재의 사람들을 구속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암묵적 동의가 필요하다. 만약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치는 항상적인 변화에 대응하는 ‘즉응적’(instantaneous) 정치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니노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어떤 도덕적․규범적 끈, 그리고 또한 이 관계를 강제적으로 묶는 외부적 제도로서의 헌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Nino, p. 183. 3) 쉐보르스키, 스토크스, 마넹은 제도화가 너무 안정적으로 된 결과로서 고도의 담합적 정당체제가 만들어진 경우와 그 정반대로 선거 때마다 정당체제가 변하는 제도화 없는 극단적인 경쟁체제로서 ‘명멸하는’(ephemeral) 정당체제를 대비시킨다. 두 극단은 다 부정적이다. 바람직한 정당체제는 안정적 제도의 틀 내에서 경쟁체제가 지속되는 것이다. Przeworski, Adam, S. Stokes, B. Manin eds.(1999). "Elections and Representation." Democracy, Accountability and Represent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49.
한국의 인스턴트 정치는 위의 세 요소를 모두 부분적으로 포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빠르게 변하는 이익과 유동하는 세력균형 상황에서 기존의 제도와 체제가 끊임없이 도전받고 작동하지 않게 되는 현상, 혹은 표피적 변화는 계속되지만 기존의 구조는 그대로 있는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의 부정적 현상을 지칭한다(최장집, 2006: 109-110).
  
○ 민주화 이후 정치적 대표체제와 관련하여 진정으로 문제되는 것은 하나의 독자적 조직으로서의 정당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하고 우선적인 문제는, 정당이라는 개별 구성단위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개별 정당으로 환원되지 않는 그 자체 독자적 차원을 갖고 있으며, 역으로 개별 정당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정당간 경쟁의 틀 내지는 배열형태, 즉 정당체제의 차원에 존재한다(최장집, 2006: 111).
  
○ 사회의 갈등이 폭넓게 대표되는 것과 이들간의 경쟁이 중요한 까닭은, 샤츠슈나이더가 강조했던 바와 같이, 갈등의 범위가 좁아질 때 갈등의 강도는 더 첨예화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당정치가 제도화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유동하는 것은, 사회적 갈등을 폭넓게 대변하지 못하는 허약한 체질의 정당체제로부터 나온다(최장집, 2006: 111-112).
  
○ 문제가 되는 것은 특수이익과 정부간의 갈등이 아니라, 분출하는 특수이익을 다루고, 공익과 특수이익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민주적 제도들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특수이익에 대해 정부와 일반이 사용하는 지배적인 담론이란 고작해야 ‘집단이기주의’라는 말밖에는 없다. 이 단순하고 권위주의적인 말만으로는 무엇이 공익이고 무엇이 사익인지, 무엇이 공익과 부합하는 사익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 사익인지를 알 수 없다. 특수이익들이 왜 나쁜지에 대한 이렇다 할 정의 없이, 집단이기주의라는 말이 전횡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특수이익에 대한 비합리적 대응은 사회의 갈등이 정치적으로 대표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문제들이다(최장집, 2006: 112).
  
○ 최장집은 한국에서의 지역주의 문제가 갖는 핵심 성격을 이데올로기적 현상이라고 규정해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분해가능한 주요 요소들로 구성된 집적물로 이해된다. 즉 다양한 이념과 가치의 정치적 동원을 억압하는 ‘협애한 이념적 대표체계’, 사회의 다양한 집단이익에 조직적․재정적 기반을 두지 않는 ‘사회적 기반 없는 정당구조’,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가치들이 중첩적으로 중앙집권화된 ‘초집중화된 사회구조’ 등 한국 사회의 여러 특징들이 결합하여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최장집, 2006: 113).
 
○ 지역주의적 현상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 한다면, 인위적으로 지역별 의석분포를 균등화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지역 이외의 다른 이익들이 표출/조직되어 선택의 대안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균열축이 들어오게 해야 할 것이다(최장집, 2006: 114).
 
○ 오늘의 정치권과 언론을 통하여 무성하게 제기되는 정치개혁 담론과 논의를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은, 그것들이 도덕주의적 관점을 통하여 오늘날 한국 정치가 당면한 문제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깨끗한 정치를 위한 개혁을 강조하는 동안, 참여․대표․책임성과 같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들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는 거의 완전히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를 중심으로 하는 체제이다. 정당이 국가/정부와 사회를 매개하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자, 정부를 만들고 정책적 수단을 통하여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심적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당의 발전 없이 민주주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치개혁의 제1의 목표는 어떻게 정치의 장을 경쟁적이면서 이념적으로나 계층적으로 포괄적이 되게 만드느냐 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로부터 모든 정치개혁이 시발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곧 참여와 대표, 책임성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최장집, 2006: 114-115).
 
(1) 참여
 
민주주의는 곧 대중참여의 정치를 의미하기 때문에 참여, 대표, 책임성 가운데 가장 기초가 되는 원리는 참여이다. 민주적 제도의 모든 것은 이 참여라는 기초 위에 건립된다. 그러므로 참여의 폭과 내용은 민주주의의 성격을 규정하는 핵심요인이다. 참여의 개념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중심적인 것은 투표를 통해 선거경쟁에 참여하는 것이며, 따라서 투표율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결정적인 민주주의의 척도이다.
  
인구의 1/3 정도가 참여한 가운데서 다수를 획득한 정당이 집권당이 된다는 것은 대표성 역시 극히 취약한 정치체제를 의미한다. 구조적으로 소수정권이기 때문이다. 더욱 큰 문제는 투표자와 투표불참자의 구성이 확연한 계층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수인종, 저소득층, 노동자 등 사회 하위계층의 투표율은 극히 저조한데, 그래서 미국을 중산층 중심의 보수적 민주주의라고 말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이를 개혁하려 하지 않는가? 그것은 공화-민주 양당의 당 간부들과 중산층 지지자들이 그들의 기득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담합하여 개혁을 사보타지하기 때문이다(Ginsberg and Shefter. Politics by Other Means. pp. 21-22.). 
 
민주주의에서 하나의 정치제도가 보수적이냐 개혁적이냐를 가늠할 수 있는 어떤 기준을 찾는다면, 그것은 참여를 억제하는 효과를 낳는 제도를 갖느냐, 아니면 이를 촉진하는 제도를 갖느냐에 있다. 한국에서 민주화 이후 개혁논의는 참여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법의 집행자들, 개혁자들, 지배적 담론은 대중의 집단적 힘이 정치로 들어오는 문제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신규 유권자들이 선거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인은 줄고 있는데도, 시민운동의 선거개입이나 여러 가지 운동적 형태의 선거캠페인 등은 불법으로 규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민주화는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던 새로운 이슈들을 폭증시켜 왔다. 그것은 양적으로 많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다양하고 복잡하다. 비교적 장기간의 주기를 갖는 한 번의 선거로, 이 다양하고 복잡한 의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몇 개의 정당대안 중 하나에 대한 투표라는 선택이 만들어 내는 집합적 결정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적 결정구조는 매우 엉성하고 조야하기만 하다. 새로운 이슈의 등장과 선거라는 방법에 의한 결정 사이에 비대칭적․구조적 불균형이 커지게 되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의 한 특징인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전반적인 사회의 민주화와 아울러 여론, 담론이 창출되는 영역에서 거대 사익들의 독과점을 억제하는 논의구조의 확대와 활성화를 촉진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수이익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유리한 영향을 미치도록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기를 더욱 강하게 기대한다. 그러므로 정부가 정책이나 개혁안을 결정하여 위로부터 부과할 때 충돌은 필연적이다. 더구나 민주정부가 공권력을 사용할 때 정부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은 권위주의 정권 때보다 훨씬 더 높아진다.
 
사회 전체이익과 특수이익이 충돌할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민주적 제도의 핵심은 이들 이해당사자들을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노동과 같이 사회의 중요 생산자 집단을 정책결정과정에 참여시키는 합의적 결정주의, 즉 코포라티즘이다. 그 제도적 장치는 정부가 중재자(interlocutor)가 되고 이해당사자 대표들이 직접 대화하여 결정하는 정부, 기업단체 대표, 조직노동자 대표의 3자결정기구와 같은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합의적 결정주의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하부기반이 존재할 때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기업이든, 노동자든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율적 결사체 조직이 기능이익의 범주에서 대표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강력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정부대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이들 조직을 협의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노동조합을 정책결정의 당사자로서는 그만두고라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기를 꺼려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참여는 사회 내에서 공존해야 한다는 인식하에 대표성을 갖는 각자의 조직이 정당성을 부여받는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최장집, 2006: 115-118).
  
(2) 대표
 
중요한 것은 사태의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문제인데, 결정구조의 폐쇄성과 정치부패는 정치적 대표체제의 이념적․계층적 협애성과 엘리트 카르텔 구조의 특성 위에서 만들어졌고 유지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정당체제의 변화 없이 개별 정당조직의 개혁이 효과를 갖기는 어렵다. 따라서 현재의 지배적인 접근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정당체제 개혁의 효과가 정당조직 내부의 민주화로 연결되는 접근이 바람직하고 현실적이다.
 
샤츠슈나이더는 “(갈등의) 범위와 (계급의) 편향성은 동일한 경향성”을 갖는다고 강조한다. 갈등이 한 쪽으로 치우쳐 국지화되면 사회상층의 이익이 편향적으로 대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개혁의 방향은 갈등의 범위를 확대하고 편향성을 줄이는 것이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정치개혁 논의들은 어떻게 사회의 이익, 요구들이 정치권에 많이 들어오고 어떻게 정치를 경쟁적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인가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정치안정이냐 불안정이냐의 기준이 주요가치로 인식되면서 양당제가 선호되고, 다당제는 부정적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가치와 이익, 갈등들이 광범위하게 표출되는 것에 중심적인 가치를 둔다면 다당제가 선호될 수 있을 것이다(최장집, 2006: 118-120).
  
(3) 책임(성)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선출된 대표․정부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하나는 후보들 가운데 누구에게 맡기면 잘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의 정도를 판단해 전망적으로(ex ante) 평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정부가 임기동안 얼마나 제대로 업무를 수행했느냐 하는 데 대해 사후적으로(ex post) 평가하는 것이다(Przeworski, Stokes, and Manin, "Elections and Representation," pp. 29-54). 현실에서 이를 담보하는 중심적인 메커니즘은 정당이다. 정당․후보는 강령, 이념, 공약의 차이와 유능함의 정도로 경쟁자와의 차별성을 과시하게 되고, 이를 이행하도록 노력하여 다음 선거에서의 평가를 통해 재선을 도모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통하여 제기되고 또 실제로 실현되기도 한 당정분리론과 대통령의 당적 이탈은 바로 이 책임의 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그것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연계, 대통령과 정당의 연계를 단절하고, 정치적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책임정치의 약화를 가져오고, 정치체제를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기능적 통합성을 무력화시킬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정치체제의 파편화, 즉흥성, 무책임성, 제재대상의 불분명함, 평가의 불확실성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제도적 문제 가운데 하나는, 권력의 분립과 견제에만 치우침으로써 체제를 작동시키지 못하게 하는 역기능을 많이 드러냈다는 데 있다. 개혁자들은 수평적 책임성이 과도할 경우 그것이 자주 파괴적 효과를 가질 수 있고 잠재적으로 헌정적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최장집, 2006: 120-123).
  
○ 쉐보르스키는 민주주의란 “결과의 불확실성을 제도화”한 체제라는 매우 함축적인 정의를 내린다(쉐보르스키, 아담, 임혁백․윤성학 옮김(1997). 『민주주의와 시장』. 서울: 한울. p. 34. Adam Pezeworski(1991). Democracy and the Market. Cambridge University Press.). 권위주의는 집권세력이 패배할 경우 판을 쓸어버리고 결과를 번복하면 되기 때문에, 또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선거과정에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경쟁의 결과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체제이다. 여기에서 선거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거나 다만 체제정당화의 기제에 불과하다. 이와는 달리 민주주의에서 정치행위자들이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결과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도 패자는 다음 선거경쟁에서 승리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최장집, 2006: 128).
  
○ 좋은 제도개혁은 어떤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 좋은가, 왜 어떤 부문에서 제도개혁이 필요한가에 대한 이성적이고 사려 깊은 논의과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동일한 제도는 개혁의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정치적․사회적 조건에 따라 상이한 효과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제도개혁은 제도 자체의 내용과 그 제도가 작동하는 조건을 함께 검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많은 경우 외부의 모델을 따르는 개혁은 원래 모델이 실현했던 효과를 갖기보다, 해당 사회의 여러 토착적 조건들과 결합하면서 기존의 부정적 문제를 재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제도개혁은 최소주의적이어야 하고, 신중해야 하며, 광범한 사회적 합의에 기초해야 한다(최장집, 2006: 129). 
  
○ 현대 민주주의의 중심적 원리이자 제도들, 예컨대 3권분립, 다수결의 원리, 지역대표의 선거제도 등 기존의 제도적 장치에 상상력과 사고를 묶어둘 필요는 없다. 자유주의의 한계를 넘는 다양한 제도대안이 모색될 단계에 이르렀고 또 실제로 모색되고 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제도개혁 논의는 그간의 한계를 넘어, 상상력과 아울러 넓은 이성적․공론적 논의가 가능한 방향으로 확대․발전되어야 할 것이다(최장집, 2006: 130).  
  
6장 민주주의와 노동의 문제
  
○ 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 수준에서 무엇을 이루어냈느냐 하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기준에서 볼 때,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매우 초라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현저하게 퇴보했고 현재 계속 퇴보하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즉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가 서로 반비례하여 발전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최장집, 2006; 136).
  
○ 한국의 민주정부들의 경제, 사회정책은 권위주의정부보다도 더 성장중심적이고, 그러므로 재벌중심-노동배제적이고, 세계의 그 어떤 주요 국가들보다도 더 신자유주의적 워싱턴 컨센서스, 즉 시장근본주의를 따르는 경제독트린과 정책라인을 취해왔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정책기조가 신자유주의적 정책라인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IMF위기 이후 불과 7, 8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시장근본주의적 정책기조가 매우 급진적으로 취해졌고, 그 결과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구조가 신자유주의적으로 너무나 급격하게 재편성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를 추동하는 중심적 가치는 경제성장이고, 이를 실현하는 도구적 가치는 효율성, 경쟁, 능력주의(meritocracy) 등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권력도 갖지 않고 시장경쟁에서 약한 자원을 갖는 보통사람들이, 수의 힘을 통하여 정치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권익을 실현하는 것을 허용하는 체제이다. 시장경쟁에서의 열패자 또는 약자의 위치에 있는 서민층이나 소외계층들은 선출된 정부들이 개혁적이기를 기대하면서 투표했고, 그들을 정부로 선출했다. 그러므로 선출된 정부는 시장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이들에게 사회적 보장과 복지를 부여하는 정책을 실현할 위임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로크의 개념을 따르면 그것은 정부와 피치자간의 신뢰(trust)이며 최근의 민주주의이론의 개념으로는 책임성(accountability)이라고 하겠다. 이 연결은 하나의 체제를 민주주의, 하나의 정부를 민주정부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 핵심적인 고리이다. 따라서 민주정부들이 신자유주의적 이념과 가치, 그리고 그에 따른 정책을 솔선해서 수용하고 추구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따지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이다.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한 세계적 모델사례로 발전해 가고 있다(최장집, 2006: 138).
  
○ PD적 문제의식은 그동안 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전혀 정리․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PD적 문제의식의 정리․실현 내용은 ① 노동이 민주주의의 기본적이며 보편적 원리로서 일정한 경제적 시민권을 획득/부여받고 그에 따라 사회전체와 생산체제에서 주요하고도 정당한 행위자로서 인정되는 것 ②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원리는 존중되나, 제어되지 않은 시장경제는 경쟁, 효율성, 업적중심의 가치만이 아닌 그와는 다른 근원적인 인간가치, 사회윤리적․공동체적 가치에 의해 민주적인 방법으로 일정하게 규제․제어되는 것 ③ 재벌중심의 경제/산업구조는 다양한 대기업의 존재와 중소기업의 강화에 의해 보다 다원화되고, 영세자영업은 현대화된 자영업으로 발전되는 것 등의 요소들을 포함한다(최장집, 2006: 140).
  
○ 선거경쟁을 주도하는 정치엘리트 ― 그들의 조직적 표현으로서 정당 ― 경쟁의 결과 등장한 민주정부가 자신들의 사회적 기반과 단지 논리적으로만 연계되어 있을 경우, 다시 말해 책임성과 위임의 원리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을 경우, 그러한 체제는 민주주의를 형해화하거나, 냉소적으로 만들거나 또는 실제로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다른 어떤 권위주의적, 엘리트적 지배체제 이상의 것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왜 민주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의 내용을 갖지 않는 한 민주주의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갖지 못하는가 하는 이유이다.
  
투표에 의한 선거경쟁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실제로 사태를 변화시키기 어렵거니와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이론가들이나 학자들은 두 방향에서 대안을 찾는다. 한 방향은 투표와 선거경쟁 자체를 의미있게 하고 심화시키는 동시에 직접민주주의의 모델을 살려 참여민주주의의 범위를 넓히고 채널들을 발전시키는 방법이다. 결정과정의 참여범위를 넓히고, 민주적 통제의 이슈영역과 범위를 확대하고, 시민들이 대안적 정보원과 지식을 확보하여 이슈에 대한 계몽적 이해와 이성적 판단의 능력을 확대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는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주장이다(John Dryzek, Robert Goodin, 그 밖의 참여민주주주의 이론가들). 다른 한 방향은, 민주적 자유와 권리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능력, 즉 경제적 조건의 평등을 강조하는 것이다(Robert Dahl, Charles Lindblom, Amartya Sen, Joseph Raz 등). 이 내용들은 이미 PD라는 형태로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제시되었다. 요컨대 한국의 민주주의발전을 위해서는 PD적 문제의식이 현실적으로 정리․실현하는 과제가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될 것이다(최장집, 2006: 141-142).
→ 최장집 교수는 참여민주주의의 틀 안에 경제민주주의, 산업민주주의의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다. 참여민주주의의 범위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 민주주의의 질과 내용은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국가와 시민사회, 공동체적 필요와 사적 선호, 국가에 의한 공적 강제력과 자율적 교환 등 이들 양자 간의 구분들이 실제로 어떻게 배합되느냐에 따라 차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공적 필요와 공적영역을 극단적으로 확대하고자 했던 사회주의 체제가 민주주의와 병립하지 못했듯이, 사적 선호와 사적 영역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역시 민주주의와 병립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최장집, 2006; 143-144).
 
○ 현재 한국의 민주정부들은, 급진적 신자유주의의 발전으로 인하여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를 스스로 허무는 위험지역으로 접근하고 있다. 오늘의 한국의 현실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민주주의 그 어느 것도 송두리째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양자는 어디에서인가 접점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흥미있는 사실은, IMF위기이후 민주정부들의 정책에서 신자유주의적 시장지상주의의 이념과 가치를 수용한 것은, 외부적 압력의 강제에 의해 선택이 완전히 닫혀있는 상황의 산물이었다기보다 민주정부 스스로 적극적으로 그것을 선택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즉 민주정부에 의한 선택이 성장주의, 시장효율성, 시장합리성, 시장주권의 이념과 가치가 완강한 헤게모니로 자리 잡도록 한 가장 큰 요인의 하나였다.
 
민주주의와 시장원리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념, 가치, 제도, 실천을 갖는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이익과 갈등의 광범한 표출을 허용하고 정당이나 운동 또는 이익집단들을 매개로 하면서, 갈등해결의 제도화를 통해 사회를 통합하는 하나의 정치체제이다. 일차적으로 민주주의는 시장경쟁과 그것이 창출하는 불평등화와 소외효과를 중화하고 보완하는 민중적 성격을 띠는 정치제도이자 체제이다. 민주정부들이 스스로 시장원리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탈정치화와 정치의 다운사이징에 앞장섬으로써 왜 스스로의 권력과 사회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퇴행한 것은 한국민주주의의 커다란 아이러니라 하겠다(최장집, 2006; 144-145).
  
○ 민주정부의 변신(metamorphosis)은 세 단계로 진행되었다(최장집, 2006; 145-147).
①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세력들의 다수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것으로 믿는 정당의 후보를 지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민주정부가 성립한다. 그러나 이들 정치적 집권세력은 정부가 된 이후 어떤 경제적․사회적 정책을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 대안적 정책, 실천프로그램, 그리고 이를 추진할 인적 역량을 갖지 못했다.
  
② 정부가 된 이들은 시민사회와 시장에서의 막강한 헤게모니를 대면하게 된다. 그것은 주로 국가관리와 정부정책의 수행평가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 대 헤게모니와 압력은 대중매체와 여론에 의해 두 방향에서 작용하게 되는데, 하나의 방향은 정부의 업적이 언론을 통하여 시시각각으로 평가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리더십과 집권세력 자체에 대한 능력이 모든 계기마다 추궁된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두 외부세력에 대한 의존을 키워왔는데, 하나는 시민사회 내 가장 강력한 권력집단인 재벌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내의 전문가집단인 행정관료, 테크노크라트이다. 불확실한 위임과 대표-책임간의 연계가 느슨한 구조를 갖는 데다 민주정부가 아무런 경제사회정책을 갖지 못하고, 급진적인 신자유주의정책을 통하여 경제적 민주화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동안, 대북문제와 한미관계에서는 일정한 개혁성을 유지하려는 자세를 견지한다. ... 민주정부의 집권세력들은 그들 스스로가 절차적 정당성과 도덕성을 가졌다고 자임하기 때문에, 그들이 취약하다고 믿는 보수세력과 좋은 관계 설정 또는 그 방향으로의 지지확대가 중요하다고 믿고 그렇게 노력한다. 결과는 경제, 사회정책 영역의 보수화이다.
  
③ 헤게모니와의 타협에 의한 문제해결방식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증폭시키게 된다. 민주정부는 두 요소에 의해 부정적 효과의 증폭에 직면한다. 하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자체가 결과하는 빈부격차, 고용불안정, 노동자 소외, 사회해체와 같은 부정적 효과에 의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체성의 위기가 수반하는 리더십의 약화와 정부수행/업적의 하락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정부에 대한 잠재적․현재적 지지세력의 이탈이 증대하고, 정부의 기반은 더욱 취약해진다. ... 아마도 노무현 정부만큼 정서적 급진주의와 실제 제도적․정책적 실천에 있어 극도의 보수적 내용이 기묘하게 결합하는 현상을 보여 주는 예는 찾기 힘들 것이다.
  
○ 민주화이후 한국사회의 가장 특징적인 변화는, 시장지상주의, 이를 구성하는 시장자율성 또는 시장주권, 경쟁, 업적주의, 효율성의 가치가 사회 전체의 전일적 가치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시장지상주의의 가치가 이데올로기가 된 것의 효과(최장집, 2006: 147-149)
 
① 시장지상주의의 가치는, 가치다원주의를 허용하지 않는 단일가치이기 때문에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는 이를 수행한 결과에 따라 서열화되기에 이르렀다. ... 성장주의와 시장지상주의가 헤게모니가 되는 만큼 그 안에서 재벌이 중심이 되고 하위파트너로서 국가의 정책이 그에 봉사하는 내용을 갖는다. 그것은 국가-재벌관계뿐만 아니라, 국가의 역할과 성격 자체를 변모시킨다. 즉 모델이 되는 재벌기업이 국가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그 행위의 범위를 정의해주고, 국가가 해야 할 정책을 제시하며, 관료행정의 규칙과 규범의 모델을 제공함으로써 국가 그 자체를 내부로부터 변모시키는 것이다.
  
② 시장과 시민사회를 포함하여 사회에 대한 국가의 중심적 역할이 급격하게 약화됨과 동시에, 시민사회와 시장에서의 거대기업의 역할을 확대함으로써 한국도 이제 기업사회적 면모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 민주화 이후 계속되어야 할 민주화는 민주정부의 선출을 중심으로 국가부문의 민주화가 선행하고, 다음에는 민주정부의 개혁적인 정책들을 통해 사회를 구성하는 하위단위를 개혁하는 방법으로 민주적 가치와 규범, 규칙들을 전 사회적으로 확대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민주화가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는 수준에서 정지될 때, 국가의 약화에 힘입어 사회의 헤게모니 구조는 이전보다 더 완강한 보수적 질서로 재편되기 쉽다.
  
○ 핵심은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유연화의 방향을 완결짓고자 하는 정책목표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정책의도가 사전에 결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협상에 참여하여 노조가 얻을 것은 다만 부분적인 교환 이상일 수 없다. 노조는 참여하여 작은 것이라도 얻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폭력적․급진적․파괴적 집단이 아니라 민주주의 하에서 이성적 협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어떤 이미지개선의 효과를 얻느냐, 아니면 협상의제 자체를 보다 중요한 것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현재의 얻을 것을 포기하고 판을 깨느냐 하는 선택의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최장집, 2006: 151).
    
○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의 과제는 선출된 민주정부가 어떻게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도록 하게 하는가, 이를 위해 어떻게 사회부문과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드는가에 있다. 민주정부의 경험이 실질적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 까닭은 두 측면, 즉 ① 강력한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에 대응하는 현실적인 이념과 정책대안을 갖지 못했다는 점과, ②이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세력화의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 결과 절차적 수준에서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증폭되고, 그 사회적 기반이 오히려 약화되는 현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최장집, 2006: 158).
 
○ PD적 문제의식의 핵심은, 성장에 균형을 맞추는 노동의 가치에 대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갈등하고, 경쟁하는 사회세력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그 정당성을 인정하는 다원주의에 기초하면서, 그것은 혁명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일방의 전일적 가치와 힘이 지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정치체제이다. 또한 시장-효율성-경쟁을 중심원리요 가치로 삼고, 인간노동의 가치가 발전의 한 수단, 성장을 위한 하나의 요소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 공리주의적 원리에 대응하여, 공동체의 가치, 인간의 근원적 가치, 그리고 노동의 보편적 가치 등 독립적인 가치를 증진함으로써 양자가 균형을 맞추면서 공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적 노동의 가치는 구체적으로 정책으로 구현되어야 하며, 이를 형성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적․정치적 세력의 발전을 필요로 한다. 정책의 수준에서 그것은, 노동계층을 포함하는 민중들에게 보편적인 경제적 시민권이 부여되는 것, 그리고 상당한 산업구조의 변화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생산 및 고용체계를 발전시키는 일을 포함한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성장동력을 구축하는 것이 그 핵심이라 하겠다. 그리고 사회적․정치적 세력화의 수준에서는, 노동자와 그들의 운동이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사회적 힘의 균형추 내지 중심세력 중의 하나로 역할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절차적 민주주의로부터 또는 그것을 기초로 실질적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일이, 현재와 같은 선거경쟁과 대표의 체계를 통한 대의제 민주주의에 의해 가능할 수 있는가?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참여의 범위가 보다 확대되고, 이를 통해 민중적 힘의 투입이 정치과정 내로 넓게 수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참여와 시민사회에서의 운동의 중요성을 말한다. 참여는 투표를 통해 선거에 참여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노동현장, 직업현장인 사회의 하위조직과 수준에서 성원들의 폭넓은 참여를 말한다. 그리고 운동은, 제도가 갖는 본래적 보수성, 즉 경직화와 일상화, 민중적 힘을 제약하는 경향성 때문에 민중적 힘이 정치과정으로 투입되는 중요한 채널이다(최장집, 2006: 159-160).
  
7장 한미 자유무역협정 정책 비판과 대안적 발전모델: 하나의 시안
 
○ 갑작스럽게 결정되었고 과격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한미 FTA 정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사안이 중대하다는 것은 한미 FTA 정책이 그만큼 복합적이고도 다층적인 문제를 함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이 결정된 이후에야 서둘러 이 사안에 대해 논의를 시작함에 따라 혼란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최장집, 2006: 162).
  
○ 성장잠재력 저하, 국제경쟁력 약화, 고용증대에 대한 부정적 전망, 사회 양극화, 그 위에 중국의 추격위협이 가중시키는 미래에 대한 어두운 예상 등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모두 한미 FTA를 추진해야 할 근거로 동원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국을 불러들이는’ 이 쉬운 방법을 모르고, 그간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치에 상응하고 한국적 조건에 부합하는 대안적 발전모델을 모색하기 위해 괜한 노력을 기울인 것이 된다.
  
위와 같은 정부의 논리는 ‘개방이 안 돼서 문제이고 한미 FTA로 개방이 이뤄진다면 생산성 향상과 경제발전 등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매우 단순한 인과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그간 정책결정자들이 견지했던 신자유주의적 비전과 한미 FTA 추진이라는 처방 사이에는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노무현 정부의 한미 DTA 정책은 더 많은 시장원리와 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추구했던 그 동안의 경제정책이 만들어낸 최종적 결과물 이상이 아니다. 그간 추구했던 정책노선이 가져온 가장 분명한 문제는 경제의 불균등 심화 내지 사회 양극화이고 노동배제적 생산체제의 지속이었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경제정책 수행이 가져온 실제의 기록일 텐데, 이에 기초해서 평가한다면 분명 그렇게밖에 정의할 수 없다. 따라서 그 연장선상에 있는 한미 FTA 정책은 신자유주의적 독트린에 입각하여 운영해온 기존의 경제체제를 보다 공고히 하고 양극화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성장과 동시에 양극화 해소를 말하고, 한미 FTA 추진의 근거 중 하나로 그것이 양극화 해소에 기여한다고 홍보함에도 불구하고, 그 인과논리는 그저 상정된 것일 뿐 현실화될 가능성이나 설득력을 전혀 갖지 못한다. 다른 변수가 없다면 한미 FTA는 한국경제를 신자유주의적 미국경제에 전면적으로 개방 내지 통합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최장집, 2006; 164-166).
  
○ 성장중심론의 한계
정부의 경제정책 결정자들이 성장의 둔화를 걱정하면서 그 원인을 따지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새로운 충격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동안, 제조업이 급격히 약화된 산업구조와 분절화된 노동시장 체제,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빈부격차 및 양극화가 지속적인 경제발전에 지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에게 양극화 문제는 성장둔화의 결과물일 뿐 그 인과관계가 역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약하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주요 정책결정자들의 주장은 성장의 분배효과(성장이 가져다주는 ‘넘쳐흐르는 효과’)에 대한 일방적 과신에 치우쳐 있다.
성장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행진하는 기둥들의 대열구조에서 높은 기둥들은 다음 단계의 행진에서도 언제나 제일 앞서고, 중간은 언제나 중간이고, 제일 작은 기둥은 언제나 맨 뒷줄에 서게 될 수 있다. 더 나쁜 경우는 행진(성장)이 계속되면서 맨 앞줄의 기둥(최고소득 집단)이 전봇대만큼 높아지고, 중간과 마지막에 선 기둥(소득수준이 낮은 집단)들의 높이가 비슷해지거나 더 작아지는 경우이다. 그럴 경우 행진하는 대열 속에서는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성장에만 초점을 두고, 성장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이론이나 정책은, 행진 그 자체가 발전을 의미하기 때문에 대열에 참여해서 행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다렌도르프가 ‘행진하는 기둥들의 대열’이라는 비유를 통해 설명하려는 것은, 성장에만 초점을 두는 논리는 너무 단순하고 일면적이라는 사실이다. 동반성장론은 성장을 강조하고 ‘행진하는 기둥들의 대열’은 말하지만, 그 대열의 구성과 내용과 관련하여 민주주의와 복지의 역할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이렇다 할 처방을 제시하지 못한다. 신자유주의적 환경에서는 지속적인 성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고용은 증대시키지 못한 채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오늘날 경제지표들은 이러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최장집, 2006: 167-168).
   
○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은 과거에 이루어진 선택이 그 이후의 선택을 체계적으로 제약한다는 뜻이다. 경로의존성은 제도들에 얽혀있는 상호작용의 체계가 여러 행위자들의 관성적 패턴을 지속시키는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자 기성 제도에서 혜택을 보는 기득이익이 제도의 지속성을 강화하고 변화를 어렵게 하는 이치를 나타내는 말이다. 제조업 중심의 권위주의 산업화에서 이제 금융, IT, 서비스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개방경제로 발전하자는 것은 한국 경제사에서 경로의존성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민주정부들이 잘못된 선택을 계속해온 결과였다. 다른 경로의 선택의 공간이 존재했다고 보기 때문이다(최장집, 2006: 174-175).
  
○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IMF 금융위기와 같은 엄청난 균열과 갈등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적 정책의 차이가 정당간 경쟁의 축을 만들기보다는, 거꾸로 사회경제적 차원의 정책적 차이가 더욱 무의미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이다. 경쟁하는 정당들은 정작 민중적 삶의 조건에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정책 차이를 발전시키지 않았다(최장집, 2006: 179).
   
○ 지식정보산업, 금융 및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을 앞세운 성장제일주의는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양극화, 노동․고용․소득 상황의 악화를 가져왔고, 이 과정에서 정부여당, 야당, 관료, 재계, 주류 언론, 지식인 전문가 등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주요 엘리트 집단을 포괄하는 신자유주의적 발전 동맹이 형성되었다. 이에 대항하는 어떤 대안적 이념이나 프로그램의 형성도 어렵게 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완강한 헤게모니의 구조를 만들었다. 이들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정부정책과 국가의 자원들이 집중될 때 사회적 시민권 내지 사회보호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은 자리 잡을 공간이 없다. 이는 대통령과 경제정책 결정자들이 한미 FTA 추진을 천명했을 때, 한국의 여야 양대 정당 어디로부터도 이렇다 할 비판이나 대안이 제기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문제삼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사회경제적 삶의 피폐화나 불평등의 심화가 한국 사회에서는 정당간 경쟁을 분기시키는 정치적 의제로 부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정당들은 한결같이 경제성장을 강조한다. 대안을 말하고 이를 진지하게 실현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이 대안을 지지할 수 있는 강한 정치적 세력화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대안이 강한 의지를 갖는 정당의 강령과 정책으로 제시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러한 강령과 정책을 갖는 정당이 선거경쟁에서 승리하여 그 정책 실현을 위임받거나, 아니면 정치적 다수 형성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표의 블록을 형성하여 그 크기만큼 정책내용으로 포함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강한 분배효과를 갖는 사회경제적 이슈와 정책대안이 제기될 때 기존의 수혜집단들은 많든 적든 불이익의 위험에 직면하게 되고 반대로 새로운 잠재적 수혜집단이 부각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정책이슈가 선거경쟁의 핵심 의제로 제기될 때 갈등은 사회화되고 유권자 동원은 확대되면서 정당체제는 재편의 압력에 더 강하게 노출되는 것이다(최장집, 2006: 180-181).
  
○ 교육-기술유형은 생산의 사회적 체제이론의 관점에서 말하는 제조업 생산체제와도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양자 사이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제공해주는 연결고리는 ‘자산특수성’(asset specificity) 개념이다. 노동자들이 갖는 특정의 교육과 기술은 투자를 통해서 그들이 획득하는 것으로 그들 자신에게 자산이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특정 노동자들이 소지하는 특정의 기술은 ‘자산특수적 기술’이 된다. 이 개념에 바탕을 둔 산업조직의 거래비용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소지하는 기술 자산이 특수하면 할수록 그 자산의 소지자들은 한 경제조직 내에서 경제행위를 수행하는 데 더 큰 인센티브를 갖는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복지문제와 관련하여 이것이 갖는 이론적 함의는 매우 크다. 이 관점에서 볼 경우, 노동자가 보다 특정한 기술을 소지하는 것과 이들이 취업해 있는 기업에 대한 헌신의 강도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복지체제란 생산성을 초과해서 국가가 지불하는 비용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갖는 자산특수적 기술을 보호한다는 관념으로 이해되고, 그러할 때 그 혜택은 노동자뿐 아니라 기업의 몫으로도 돌아가게 된다. 국가가 사회보호를 통해 일정한 기술을 갖는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면, 그것은 사적 생산의 단위인 기업에 대해 경쟁력을 갖는 기술을 보호하고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경감시키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최장집, 2006: 185-186).
 
○ 최장집은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성장정책의 대안으로 유럽의 사회적 시장경제모델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제조업분야 중소기업 육성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산업정책과 노동-사회복지정책을 병행하면서 두 영역에서의 미시적 연계가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짐으로써 세계화된 국제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조율된 생산체제를 창출하는 것을 가리킨다.  
 
경제성장의 동력이 국내 생산체제로부터 나오고 그에 기반을 두는 ‘내발적’ 발전 전략, 즉 성장정책과 산업정책, 노동 및 복지를 위한 사회정책이 만날 수 있는 발전의 틀, 그 속에서 성장과 고용증대가 병행하고, 그렇기 때문에 성장이 양극화 해소 내지는 완화에 기여하고, 또 반대로 양극화 해소가 성장에 기여하는 산업발전 모델이 필요하다.
 
현재의 노무현 정부에서 이런 방향의 대안이 개척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외적 제약이 크다 하더라도 모든 나라가 동일한 발전 경로를 갖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대표체제가 사회적 요구를 얼마나 폭넓게 대표하는가에 따라 여러 다른 유형의 기술-교육-생산-성장-복지-노사관계의 체제를 발전시킬 수 있고, 정치적 리더십의 진취적 계기 역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사회적·정치적 계기들의 응집을 통해 미국 일변도의 신자유주의 모델이 고착화되는 것을 억제하고, 사회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생산체제를 향한 적절한 모델을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믿는다(최장집, 2006: 197).
    
○ 필립 슈미터는 로버트 달이 말하는 민주주의 조건 목록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한 요소가 빠져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가 하나의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때, 그 체제는 ‘스스로 통치해야 한다’는 조건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외부로부터 다른 강력한 정치체제가 부과하는 제약으로부터 독립해서 독자적으로 행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선출된 국민의 대표가 영토 밖 행위자들의 승인 없이는 정책결정을 할 수 없다면 그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최장집, 2006: 198). 
  
8장 한반도 평화의 조건과 구조: 칸트의 영구평화론의 관점에서
  
○ 한반도 평화를 ‘통일’에서 찾는 이해방법과 ‘공존’에서 찾는 이해방법을 대비시키면서, 후자의 관점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는 이유는, 통일이 안 돼서가 아니라 공존의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통일이 당위적으로 강요될 때, 남북한의 공존과 평화를 위한 중요한 과제들이 과소평가되거나 통일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거부되기 쉽다.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민주화와 같이 우리 사회의 절실한 과제들이 통일 이후로 미뤄지거나, 모든 문제의 근원을 분단으로 치환하려는 이데올로기에 희생될 수 있다. 통일은 공존이라고 하는 평화의 조건이 갖춰진 이후 남북한 두 체제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이루어질 때 의미가 있고, 또 그럴 때만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할 것이다(최장집, 2006: 223).
  
9장 동아시아 공동체의 이념적 기초: 공존과 평화를 위한 의미지평
  
10장 한국 현대사에 대한 하나의 해석: 민주주의자의 관점에서

  
○ 민주화를 중심으로 현대사를 보는 이유는 민주화의 동력들이 한국사회 내부로부터 일차적으로 성장했고 그 동력이 민주화를 이끌어 냈으며, 이러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소수의 엘리트가 아니라 다수의 민중이 참여했다는 데 있다. 나아가 향후에도 민주주의 정치과정에서 민중적 참여의 폭이 확대됨과 아울러 그 역할이 커지는 것을 중시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최장집, 2006: 261-262).
   
○ 절차적 정당성을 갖지 못했던 박정희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통하여 산업화라는 실질적 변화를 통해 사후적으로 정당성을 보전하고자 했다는 능동적 측면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산업화는 말 그대로 권위주의정부가 주도하는 산업화를 의미한다. 권위주의적 산업화는 고속성장을 목표로 국가-재벌기업의 연합을 통해 중심적인 생산자 집단인 노동자들의 참여를 정치와 생산 과정에서 배제하는 것을 그 핵심 내용으로 한다. 권위주의는 고도성장을 추동하고, 고도성장의 성과는 권위주의를 정당화하는 구조를 통하여 권위주의와 경제발전은 병행되었다. 이러한 권위주의산업화의 구조적 결함은 무엇보다도 그 발전체제가 민주적 요소를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생산체제란 국가가 앞장서 자본을 증대시키고, 노동을 억압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로부터의 소외는 발전의 성과를 분배하는 과정에서의 소외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최장집, 2006: 263).
   
○ 기본적으로 민주화란, 구체제가 구축한 정치적 사회적 구조를 어떻게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체제 내에 다시 위치시키고 정렬할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근본 문제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구체제세력과 민주화세력의 양자 간의 갈등을 어떻게 민주주의에 의해 제도화할 것인가 하는 것으로 집약되었다(최장집, 2006: 267).
  
○ 민주화이후의 정당체제가 구체제 하에서 발전한 정당체제를 얼마나 변화시키느냐 하는 문제는 민주주의의 성격을 형성하고, 발전방향에 영향을 미치는데 결정적 변수라 하겠다. 구체제의 정당체제는, 매우 협애한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 내에서 제도화된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것은 구체제의 지배적 이념이요 가치라 할 냉전반공주의와 발전주의를 중심 내용으로 했으며 또한 그 틀이 유지되는 조건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현되도록 제약하는 조건이었다. 그 부수적 결과의 하나는 지역감정의 동원과 지역기반에 의존하는 지역주의 정당체제라 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의 정당체제는 운동의 중심세력이 참여함으로써 그것이 변화의 계기를 가졌던 것도 아니고 따라서 변화의 계기를 가졌던 것도 아니었으며, 운동이 제기한 두 중심의제를 정당 간 경쟁구조 내로 포섭하지도 못했다(최장집, 2006: 268-269).
  
○ 한국의 민주화가 절차적 수준에서의 민주화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조건은, NLPD의 이념에서 혁명적 급진성을 제거하고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이념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민주화이후의 조건에서는 현실의 핵심문제를 다룰 수 있는 내용으로 재구성될 것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그 이념을 대표하는 민주화운동 세력들이 정당체제 내로 들어오고, 그럼으로써 구체제하에서의 정당체제가 재편성되고, 그 정당이 선거경쟁을 통해 다수당이 되고 정부가 되어 그 개혁프로그램들을 실행하는 경로를 개혁해야 할 것이다(최장집, 2006: 270-271).
  
○ 민주정부들이 민중문제와 관련된 정책영역, 즉 경제정책과 노동/사회정책에 있어서 대안을 갖지 못할 때 나타난 결과는 매우 퇴행적이었다. 한편의 결과는 민주주의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대안형성의 틀과 방향이 거의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이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세력화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의 결과는 민주정부들이, "신자유주의적 정책레짐", 즉, 구체제 하에서 완결된 권위주의산업화 발전모델에 워싱턴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결합한 정책을 실천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게 된 것이다.
  
헤게모니가 가장 강하게 작동하고 효과를 미치는 영역은, 바로 보통사람들의 경제적, 사회적 생활이 핵심이 되는 보통사람들의 삶의 문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제 및 사회-노동정책이라고 하겠다. 민주화이후 민주정부들이 발전시켰던 신자유주의 정책레짐은 경제영역이나 사회의 구조와 계층화에 있어서나 미시적 삶의 영역에 있어서나 여러 형태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사회경제적 문제해결을 위한 공적 집합적 결정능력과 수행능력을 실현할 수 있는 민주정치의 구조도 취약해졌다. 신자유주의적 정책레짐이 만들어내는 것은 ‘노동없는 민주주의’, ‘민중 배제적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는 그 정의에 있어 보통사람들이 그들의 이익, 요구, 열정을 그들의 대표를 통하여 실현하는, 보통사람들 스스로의 통치체제이다. 즉 민주정치는 공공선을 결정하고 창출하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 수의 힘이 지배적인 결정원리인 민주주의 하에서는 보통사람들의 의지와 권력이 권위주의와 같은 다른 엘리트중심 체제와 비교하여 더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전제를 갖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경험에서 가장 큰 역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와 리더십이 IMF금융위기 이후, 구체제의 성장체제를 변화시키려는 진지한 노력 없이 구체제의 성장 이데올로기와 신자유주의를 무비판적이고 무매개적으로, 매우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추진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최장집, 2006: 272-273).
  
○ 한국현대사가 냉전반공주의 이념과 분단국가의 발전→권위주의적 산업화와 고도성장→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동안, 우리사회는 몇 개의 대기업집단, 몇 개의 대학, 이들 대학 출신의 엘리트, 몇 개의 언론사, 몇 개의 강력한 이익집단들과 그들 간의 상호 연계망에 의해 지배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한 사회가 동심원적 구조를 갖는 것을 말하는데, 그리하여 모든 사회적 힘이 중심의 정점으로 초집중화하면서 특권 계층 간의 폐쇄적 순환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반면 서민대중의 보통사람들은 그들의 이익과 요구를 조직하고 대변함에 있어 별다른 진전을 얻지 못하고, 민주주의 정치과정에서 스스로를 대표하는 자율적 권력의 중심으로 성장하지 못한 힘없는 익명의 다중으로 떨어졌으며, 이데올로기와 대중조작에 의한 동원의 대상으로 자주 전락하곤 했다. 경제적 생산체제에서만이 양극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주요 영역에 있어서도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즉 정치적·사회경제적 동원능력이 잘 발달된 강력한 대규모 조직과 그 주변에서 기능하는 엘리트집단을 한편으로 하고, 힘없고 조직·대표되지 못한 다중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것이 한국 사회 양극화의 또 다른 측면이라는 것이다.
  
강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상상력, 창조적 사고, 그리고 대안이념들의 발전에 의한 이데올로기의 다원적 발전이 억압된다. 결과는 냉전반공주의나 발전주의와 같은 일괴암적 유일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을 모델로 하는 워싱턴 컨센서스와 노동없는 민주주의 또한 대표적인 지배이데올로기이다. 그것은 한국사회에 유일가치와 몽매주의를 만연하게 한다. 민주화 이후 이데올로기의 정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치적 수준에서의 민주화가 경제와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넘쳐흐르는 효과를 제어하고자 했던 거대 조직과 기득이익들의 보수적 대응에 기인하는 바 크다(최장집, 2006: 273-275).
  
○ 최대강령적 혁명은 민주주의의 작동과 병립하기 어렵다. 혁명적 사태를 동반하면서 민주주의 체제가 수립될 수는 있으나, 민주주의는 항시적인 민중동원과 운동을 통해 작동하는 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평등한 정치적 참여와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가지며, 공공선을 창출하는 집합적 결정과정에 개인이 개별적인 단위로서, 또는 유사한 이익과 요구를 조직하는 방법을 통하여 참여하는 체제이다. 따라서 그것은 경쟁하는 이익의 평등한 참여가 보장된 제도의 틀 안에서, 갈등하는 이익들 간의 경쟁을 허용하고 타협하도록 이끄는 체제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운동이 중심이 되는 비상한 시기의 체제가 아니라 일상성 속에서, 즉 보통사람들의 삶의 세계에서 제기되는 일상적 관심사와 더불어 작동하는 체제이다. 그러므로 이 체제에서는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문제해결을 포괄하는 최소강령적(minimalist) 이념이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최장집, 2006: 276).
  
○ 오늘날 민주적 제도 내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갈등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 어떤 최적의 배합을 만드느냐 하는 문제를 그 중심 내용으로 한다. 한국사회는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을 갖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민족민중주의는 민주적 국가의 역할을 통한 개혁의 프로그램들, 즉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 노동을 정당한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생산체제의 각 수준에서 조직노동의 참여와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며, 분배구조의 개선과 사회복지권의 확대를 포함하는 공동체와 공공선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실제로는 신자유주의의 원리로 실현되었다.
  
신자유주의적 독트린과 그에 입각한 경제정책의 방향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여기에 노동참여, 사회복지 및 사회통합을 가치로 하는 사회적 유럽(social Europe) 모델의 내용이 가미될 수는 있어야 한다(최장집, 2006: 277-278).
  
○ 한국의 현대사는, 해방이후 초기 건국과정에서의 이데올로기 투쟁의 양극화로 인한 내전적 상황과 6.25전쟁으로 나타난 실제의 전쟁을 통하여, 그리고 남북한 분단과 항구적 대결구조를 통해 어느 나라보다도 큰 폭력과 보통사람들의 많은 희생, 사회적·이데올로기적 균열과 갈등을 경험했다. 이 갈등과 균열 위에서 군부엘리트 지배와 권위주의 산업화는, 경제발전이라는 긍정적 효과 못지않게 엘리트지배의 공고화와 노동배제/소외라는 부정적 결과를 낳음으로써, 또 하나의 거대 균열과 갈등구조를 창출했다.
민주화는 중첩적 갈등으로부터 배태되고 분출되었지만, 동시에 이 거대 갈등을 어떻게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틀을 통해 완화시킬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는다(최장집, 2006: 278-279).
  
○ 갈등과 균열의 표출과 정치적 대표를 부정시하는 한 통합의 이데올로기와 담론은 대안의 봉쇄, 곧 이데올로기적 전체주의를 말하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한국의 정당체제는 사회의 중심적 갈등과 균열을 대표해야 하며, 기존의 지배적 이념이 아닌 대안적 이념을 통해 이를 조직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
랄프 다렌도르프에 따르면, 현대의 대규모 사회에서 갈등은, 그것이 제도화되지 않고 억압될 때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그는 사회가 강해지고 통합적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갈등을 억압하거나 마구 뒤섞거나 치환되지 않게 해야 하며 그 자체가 표출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당과 정당간의 차이를 통해 이러한 갈등을 대변하고 이를 현대적 언어와 이념과 이론으로 정의하고, 그리고 이들 차이들이 정당과 정당간의 경쟁을 제도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정치적으로 접근되고 해결될 때 비로소 한국사회의 해체적 경향은 서서히 제어되기 시작할 것이다(최장집, 2006: 279-280).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5/07 06:05 2007/05/07 06:05

3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세상 참견 2007-05-06

View Comments

ㅇ 봄날은 이렇게 가는구나.
 
입하라고 하던가. 집에 있을 때는 더운 줄도 몰랐는데, 밖에 나와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니 날씨가 덥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반팔을 입을 때인가.
아래 경향신문의 기사를 쓴 이가 강병한기자다. 저번 허세욱 동지 장례식 때에도 얼굴을 보고 인사를 했는데, 군대를 갔다 오더니 어떻게 신문사에 들어간 모양이다. 예전 그 필력 가지고 좋은 기사 쓰길...
 
봄날은 갔다!…이번주도 30도 육박 ‘뜨거운 5월’ (경향신문, 강병한기자, 2007년 05월 06일 18:16:36)
    
ㅇ역시 아사히 답다.
 
日 아사히신문 하루에 21개 사설 실어 화제 (경향신문, 미디어칸 뉴스팀, 2007년 05월 04일 10:05:48)
   
일본 아사히신문이 3일 ‘평화헌법’ 발효 60주년을 맞아 8개 면에 걸쳐 여러개의 사설을 실어 화제가 되고 있다. 아사히는 이날 1면 머리기사로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논설주간의 ‘세계에 공헌하는 국가가 되자'란 기사를 싣고, 17면부터 24면까지 8개 면에 걸쳐 21개의 사설을 게재했다.
  
이날 지면에 실린 21개 사설은 ‘총론' , ‘지구와 인간' , ‘글로벌화와 아시아·이슬람', ‘헌법 9조와 평화.안전보장' , ‘일본의 외교' 등으로 항목을 나눠 편집됐다. 
와카미야 주간은 1면 기사에서 “오늘 21개의 사설은 지난해 4월부터 아사히가 전개해 온 기획시리즈 ‘새 전략을 찾아서'의 집대성”이라며 “8개 면에 걸쳐 사설을 싣는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나 신문사의 ‘결의의 표현'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밝혔다.
  
이 신문은 “전쟁 포기를 규정한 9조를 갖고 있는 헌법은 일본이 세계에 공헌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 매우 귀중한 자산”이라며 “이 때문에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라고 강조했다.

   
ㅇ 볼리비아,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 탈퇴 선언
   
남미에서의 국제금융기구 탈퇴바람을 어떻게 봐야 하나. 남한에서 국제금융기구를 탈퇴한다고 하면, 기간산업을 국유화한다면 어떤 반응이 올까? 이에 대한 공감대가 전혀 형성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노무현 정부가 좌파가 아님은 분명하다.
국유화에 대해 삐딱하게 보는 이들도 꽤 있을 텐데... 
  
볼리비아,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 탈퇴 선언 (참세상, 변정필 기자, 2007년05월04일 19시33분)
기간시설 국유화에 박차 
   
라파엘 꼬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의 세계은행 지부 대표 추방, 베네수엘라가 차베스 대통령의 4월 30일 IMF, 세계은행 탈퇴 선언에 이어 볼리비아도 세계은행 산하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 탈퇴를 선언했다.
  
이런 흐름은 남미 좌파 정권들이 제헌의회를 구성하고, 에너지를 비롯한 기간산업 시설을 국유화하는 과정에서 외국 투자자들의 공격과 저항으로부터 국가의 정책집행력을 강화할 수 있는 효과를 가진다.
아울러, 국가적 수준에서 뿐만 아니라 남미에 부는 국제금융기구 탈퇴바람은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추진해온 남미은행에 대한 기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미국에 반대하는 남미 좌파 정권의 대항블럭 형성이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볼리비아 정부가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 탈퇴를 선언하자 외국계 투자 자본들은 “볼리비아 정부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며 크게 반발하고 “탈퇴 결정이 외국계 투자가들을 쫓아내는 행위이며,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해 5월 볼리비아 정부가 석유가스 국유화방안을 선언하며 산 알베트로 지역의 페트로브라스 운영 기업을 강제점거 했을 당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지지도가 81%까지 상승한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조치에 대해서도 볼리비아 국민들의 지지가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를 통해 에너지 자원을 국유화하는 과정에서 국제금융기구의 개입 여지를 축소하고 정책을 집행하는 데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ㅇ 영국 지방선거, 노동당 참패
 
영국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이 참패했다. 하지만, 집권여당은 지방선거에 패하면 총선에서 이긴다는 관행이 있다고 하여 별로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노동당은 46석을 얻어 47석을 얻은 SNP(스코틀랜드 국민당)에 뒤졌고, 연정구성권한도 국민당에 넘겨주었다. 잉글랜드에서도 보수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하였다. 
 
나의 관심은 스코틀랜드 지역에서 SSP(스코틀랜드 사회주의당)의 결과였는데, 전혀 보이지 않는다. 2003년 지방선거에서 6석인가 의석을 얻었는데, 이번에는 의석은 커녕 득표율이 1%를 넘는 지역도 별로 없다. 토미 세리던이 비례대표로 진출했던 지역에서도 1.2%의 득표율로, 14%의 지지율 감소를 보였다. 이 중의 상당부분은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주장하는 SNP의 표로 흡수되었다. SLP(사회주의노동당)보다 대체로 득표율이 떨어지던데, SLP는 또 뭐지?
 
과연 지난 4년간 SSP는 지방정치에서 무엇을 했던가. 대중교통을 강조하는 선거광고는 그럴싸하긴 했는데, 부족한 점이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RESPECT는 지방선거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나?
      
영국의 지방선거는 어떻게 의원을 선출하는지 제대로 감이 안잡힌다. 득표율이 훨씬 많아도 의석을 하나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각 지역마다 다른 선거제도를 선택하는 건 좋은데, 도대체 이해가 안되니...
  
영국 지방선거 노동당 참패 (경향신문, 김정선 기자, 2007년 05월 05일 09:53:54)
 
英 지방선거 집권 노동당 참패..최악은 모면(종합) [연합뉴스 2007-05-04 22:22]  
      
ㅇ 역시 중간규모가 최적인가?
 
역시 너무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은 규모의 도시에서 사는 게 삶의 질이 제일 보장되는 걸까.
시골 아이들이 행복하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거기에서의 생활상의 불편함 때문에 많이 힘들 것 같았다. 단지 문명의 이기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조건 자체의 문제 때문에 유한계층이 아닌한 시골 삶은 그리 풍족할 수가 없다. 당연히 아이들도 마찬가지이고...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는 서울의 아이들은 다른 식의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정쩡한 규모의 도시에서 편하게 살고 싶고, 나에게 아이가 있다면 그런 삶과 교육을 권하고 싶다.
아래 한겨레의 기사는 읽어봐둘만 하다.
   
시골·강남 아이들은 행복? 어른들의 착각 (한겨레, 기획취재반=유신재 이완 노현웅 최원형 김지은 윤은숙 김외현 정유경 김명진 신소영 정옥재 기자, 2007-05-04 오후 11:31:34)
[우리 아이들은 행복할까] 전국 6곳 초등생 심리조사 해보니 
    
심리검사 결과, 시골에서 자연을 가까이하며 자라는 아이들이 도시 아이들보다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시 현상’으로 드러났다. 농촌인 전남 장흥 ㄹ초등학교 어린이들은 부모와의 정서적 친밀감이 여섯 학교 가운데 가장 낮았다. 또 가정환경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자아 존중감과 자신감도 다른 지역보다 크게 떨어졌다.
 
부족한 것이 없을 것만 같은 서울 강남 쪽 초등학생들도 행복과 거리가 멀었다. 강남구 ㄱ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여섯 학교 가운데 학업과 관련해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아이들은 높은 불안감과 우울도 겪고 있었다.
 
반면,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들이 모여사는 경기 남양주시 ㄴ초등학교 아이들은 대체로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은 2004년 택지개발 사업으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새도시 지역이다. ㄴ초교 어린이들은 강남구 ㄱ초교보다 학업 스트레스를 훨씬 적게 받고 있고, 학습목표 성향 등 그 밖의 여러 심리 척도에서도 다른 학교들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

   
▶[서울 강남구ㄱ초등학교] 3시, 5시, 7시 과외 과외…
▶[경기 남양주시ㄴ초등학교] 학교끝나자 와~놀이터로
▶[전남 장흥군 ㄹ초등학교] 집에 가도 엄마 떠나 썰렁
▶낙관적 아이 만들기…“그것봐 노력하니까 잘하잖아”
▶낙관적 아이는 “지능도 변해요”  
  
ㅇ '사우나 사운드'가 하루이틀의 일인가.
 
한겨레21의 기사는 현실을 이야기한 것 뿐이지만, 문화운동진영은 그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맨날 문화행사한다고 틀에 박힌 것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인프라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도 신경써야 하지 않나. 이건 조금만 신경 쓰면 그에 대한 효과가 훨씬 크게 나올 듯 한데..
 
한국에만 있는 소리 ‘사우나 사운드’ (한겨레21 2007년04월19일 제656호,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공연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무조건 라이브를 강요할 수 있나
   
ㅇ 고액과외 시킬 돈이면 책을 사라!
 
맞는 말이고, 지속적으로 강조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에 딸린 다른 기사들은 너무 심한 것 아닌가. 독서에 대해 강박관념이 생기도록 하면 나중에는 역효과가 있을 듯한데...
 
오늘 논문계획서를 구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험 전에 오히려 공부가 더 안되는 것처럼 스트레스만 받아서 서점에 갔더니 보고 싶은 책이 많더라. 심사가 끝나면 이 책들을 사서 읽어야지. 체크도 해두었다. 도합 9권(범버, 인터넷 시대 정치권력의 변동, 삼인 / 사이먼 토미, 반자본주의: 시장독재와와 싸우는 사람들, 유토피아 / 로이 바스카, 비판적 실재론과 해방의 사회과학, 하마니타스 / 김진숙, 소금꽃나무, 후마니타스 / 손호철, 마추피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이매진 / 캘리니코스, 우드 외, 제국이라는 유령, 이매진 / 고종석, 바리에테, 주변풍경 / 로버트 로렌스톤, 존 리드 평전, 아고라 / 경제와 사회, 2007년 봄호, 한울)
  
[교육]고액과외 시킬 돈이면 책을 사라! (2007 05/08 뉴스메이커 723호, 최효찬 객원기자)
    
ㅇ 남자 둘이 모이면?
 
아래 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남재일 씨의 말이 나름대로 보편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적인 경험을 일반화한 것이다, 쓰레기같은 글이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뭐가 맞는 거지?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남자 둘 (씨네21, 남재일 (문화평론가) | 2007.04.27)
남녀는 성적관심, 여여는 연대감…남남은?
업무나 정치 얘기로 술…‘단둘’은 유난히 불편
‘FTA 당해야’할 알코올 연대의 소아병적 문화 
   
ㅇ 박노자 교수의 노회찬 진영 합류
  
박노자 교수가 노회찬 후보의 정책 자문단에 합류했다는 기사가 레디앙에 나오고, 서울신문 1면에 나온다.
노회찬 진영은 권, 심과는 달리 그 동안 명망가 흡수가 별로 없나 보다 했는데, 하나는 건진 셈이다.
그런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박노자 교수가 뚜렷하게 정책에서 히트상품을 내올 것 같지는 않은데...
오히려 그의 합류가 노회찬 후보 진영의 정책 급진화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박노자, 노회찬 정책 자문단 합류 (레디앙, 2007년 05월 06일 (일) 18:08:13 정제혁 기자)
"대중적 호소력 있는 후보…인권, 교육 등 자문할 것"
   
노 예비후보측 한 관계자는 6일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박노자 교수를 노 예비후보의 정책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면서 "박 교수의 주요 관심사인 대체복무와 인권 등의 문제를 비롯해 교육 정책, 북구 사민주의 정당의 정책 및 집권 과정 등에 대해 폭 넓은 자문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노 예비후보를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300~400만표를 얻으면 앞으로의 정치는 총자본을 대표하는 한나라당과 총노동을 대표하는 민주노동당의 2자 구도로 갈 수 있다"면서 "대중적 호소력을 갖는 후보를 내보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노 의원이 가장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중도우파 이미 공중분해 올 대선 신자유주의 심판” (서울신문, 구혜영기자, 2007-05-07  1면)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학 박노자 교수가 연말 대선에 민주노동당의 지원군으로 나선다. 박 교수는 6년 전 귀화한 ‘한국인’으로, 그동안 한국 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으로 ‘(한국태생의)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잘 아는’ 학자로 불렸다.    
  
노 대통령의 탈당으로 여당이 없어져서 집권세력에 대한 심판이 애매모호해졌지만, 그는 “특정 개인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아우르는 ‘신자유주의’ 세력을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정책 생산능력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노 대통령의 신자유주의적 요소에 실망하면서도 개발과 자유주의에 대한 환상이 남아 있어 극우세력들이 다소 유리한 부분이 남아 있다.”면서 “극우세력들의 선정주의에 대항하려면 사회민주주의 세력들이 정책적 무기를 들고 총공세를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측면에서 민노당이 한나라당의 주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특히 시대여건상 한국이 복지형(재분배형) 국가로 나아가야 하는데 경험이 없다 보니, 각종 조세·재분배 정책과 무상 의료·교육 등 노르웨이의 선례를 분석해 한국적 상황에 맞게 도출하는 중이라고 한다.
   
노회찬 후보를 지지하게 된 것은 “확고한 철학과 실천능력, 쉬운 언어구사로 (민노당 후보중) 가장 득표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노당 창당 이후 줄곧 지지세력이었던 만큼 일차적으로는 민노당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가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ㅇ 생각과는 다른 마무리라서 약간 당황스러웠던 칼럼.
   
[미디어 돋보기] 佛대선 우파후보-미디어 ‘공모’ 논란 (경향신문, 설원태 선임기자, 2007년 05월 06일 17:16:35)
  
“미디어: 사르코지를 위한 제도; UMP후보와 텔레비전 사주들의 공모(Medias: le systeme Sarkozy)”(리베라시옹, 4·28)
 
좌파로 분류되는 리베라시옹은 4월28일자에서 1·2·3·4·5면 등 무려 5개면에 걸쳐 우파인 사르코지 대통령 후보와 언론과의 유착문제를 비판했습니다. 리베라시옹은 “니콜라 사르코지 대중운동연합(UMP) 대통령후보가 미디어를 장악했다”면서 마르탱 부이그, 아르노 라가르데르, 클로드 게앙, 피에르 샤롱 등 그를 지원하는 미디어계 거물들을 일일이 소개했습니다.
  
리베라시옹은 “프랑스의 텔레비전들이 내무장관을 지낸 사르코지의 직접적 영향을 받고 있으며, ‘파리 마치’ 등 간행물들은 사르코지의 직접적인 압력을 받고 있다”고 썼습니다. 이 신문은 미디어 거물들의 지원을 받는 사르코지가 프랑스 언론인은 물론 프랑스 주재 외국 언론사의 특파원들에게도 거만하게 굴며 인터뷰를 거부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정·언 유착’을 보면서 필자는 우리나라에선 정치와 언론의 유착이 상대적으로 약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실정 모르는 얘기를 하지 말라고요?) 국내에선 공영방송이 친여적 논조를 보이면 야측으로부터 비판받고, 보수적 신문들은 진보측의 비판을 받습니다.
 
필자는 언론은 정치를 견제하고, 정치는 언론을 견제하며, 언론은 또 서로를 견제·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일부 논자들은 최근 수년간 정치와 언론이 빚는 잦은 충돌을 보면서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기자는 언론과 정치의 충돌은 우려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바람직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ㅇ‘공동사업’ 토지 강제수용 가능?
   
강제수용 어쩌고 하는 것을 보면서 '괜찮은 것 같은데, 시민단체가 왜 반발하는 거지? 혹시 꼴보수 시민단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는데, 기사를 보니 그게 아니다. 건교부가 완전히 자본의 하수인임을 선언했다고나 할까.
  
‘공동사업’ 토지 강제수용 가능…시민단체 강력 반발 (경향신문, 박재현기자, 2007년 05월 06일 18:13:0)
   
건설교통부는 주택공사 등 공공이 택지개발 사업을 제안하는 경우 민간이 택지의 20%만 확보해도 민간·공공 공동사업이 가능해지도록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을 개정키로 했다고 6일 밝혔다. 개정안은 민간시행자가 잔여토지의 매수가 어려워 공공에 공동사업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전체 예정지구 면적의 50% 이상을 확보하도록 했다.
  
민간·공공 공동사업제는 민간이 일정 규모의 택지를 확보하고도 알박기나 매도 거부 등으로 인해 사업이 차질을 빚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되는 제도다. 개정안은 공동사업을 위한 면적 기준을 도시지역은 1만㎡ 이상, 비도시지역은 3만㎡ 이상으로 정했다. 이중 공공택지로 확보해야 하는 토지 최소비율은 전체 토지면적의 30% 이상이 돼야 한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공공과 민간이 누가 먼저 제안하느냐는 형식적인 문제일 뿐 사실상 민간사업자가 토지를 수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경실련 김헌동 국책사업감시단장은 “민간이 3000여평의 토지에다 아파트를 짓는다고 국가의 기본 기능인 토지수용을 건설업체에 넘겨주는 나라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면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돼야 할 토지강제수용권이 건설업자의 이익을 위해 남발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ㅇ 빨랑 글이나 써야지. 도대체 시간을 얼마나 허비한 거냐. ㅡ.ㅡ;;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5/06 22:54 2007/05/06 22:54

2 Comments (+add yours?)

트랙백1 Tracbacks (+view to the desc.)

4.9 -5.5 한달간의 생활

View Comments

매일 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길게 쓸 꺼리가 없어서 이를 블로그에 올리지는 못하고 모아두다 보니 週記가 된다. 이번에도 한달 가까운 기간의 기록이다.
  
하긴 이렇게 해야 부담스러운 내용들도 눈을 피해갈 수 있다. 이 글의 행간을 읽거나 샅샅히 읽는 이들의 레이다에는 걸리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ㅇ 4. 9 (월)
 
- 322호 연구실로 책과 짐을 다 옮기고 나름대로 공부할 수 있도록 정리를 했다. 연구실 안의 다른 성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쌓아놓고 보니 역시나 뭐가 많다. 책을 사놓기만 하고 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322호는 조그만 방에 5명이 책상을 놓고 사용하게 된다. 게다가 밀폐된 공간이라서 개인용 스탠드가 있어야 공부할 수 있다. 공부하기에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다. 올해의 목표는 이 공간을 빨리 빠져나가는 것이 되겠다
   
마무리 정리를 하다 보니 촛불집회에 가지 못했다. 허세욱 동지에게 미안할 뿐이다. 멀리서나마 쾌유를 빈다.
  


ㅇ 4. 11 (수) 새벽
  
- 어제는 채일씨를 독촉하여 오후에 용산전자상가로 컴퓨터를 사러 갔다. 미리 인터넷상으로 견적을 빼고 간 것이어서 조립에 들어가는 부품을 고르는데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이 문을 닫아서 거기서 가장 잘 알려진 곳에서 컴퓨터를 사게 되었다. 거기는 카드와 현찰에 차이가 없다. 현찰로 하면 조금 더 싸게 해주는 곳도 있긴 하지만, 카드로 지불하다 보니 오히려 더 마음이 놓인다.
 
도합 94만 여원이 들었다. 모니터까지 합하여 90만원을 예정했는데, 20.1인치 와이드 모니터를 사다보니 조금 더 들어가게 되었고, 여기저기서 조금더 업그레이드된 버전을 골랐다.
  
용산상가에는 주차할 공간이 마땅하지 않아서 버스로 왔다가 컴퓨터를 사서 갈 때에는 택시를 탔다. 컴퓨터가 상당히 무거웠다. 채일 씨도 모니터를 하나 장만했기 때문에 내가 모니터와 본체를 들고 학교까지 가기엔 힘이 부쳤던 것이다.
 
4층 센터방에서 채일씨가 프로그램을 깔아주는 서비스까지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이전에 쓰던 컴퓨터의 자료들을 USB로 옮기는 작업도 동시에 했는데, 이것도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결국 7시 약속을 접고 8시 반에 영화를 보기로 한 장소로 가기로 했는대도 마무리되지 않는다. 7시반이 조금 못되어 나머지는 채일씨에게 맡기고 헐레벌떡 광화문으로 출발.
  
- 6명이서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우리학교]를 보았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쓸 기회가 있겠지. 가끔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장면이 나왔고, 주위에서 흐느끼는 이도 있었다. 나름 감동적인 영화다.
 
하지만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의 반북 편향 때문일까. 고딩들의 삶의 근거가 조국과 동포들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신림동으로 와서 관악구에 거주하는 4명이서 술잔을 기울였다. 3시간 가량 되었나.
할 얘기는 뻔하다. 전진 지도부, 민주노동당, 지역위, 민주노총에 관한 얘기들이다. 당연히 비판적인 논의가 주를 이루었고... 하지만 가끔씩 꾸벅꾸벅 졸았다.
  
지역위에서도 나름 활동을 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한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 아무래도 전진이라는 정치조직이 부담스럽다. 다른 이들처럼 활동을 못하는데, 나로 인해 지역위 내에서 전진에 대한 이미지가 안좋아지는 듯해서...
  
ㅇ 4. 11 (수) 저녁
 
- 컴퓨터가 쌩쌩하게 잘 돌아간다. 속도도 빠르고...  거금을 들여 잘 샀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 조희연 교수의 책을 읽고 정리했다.
   
- 대단하다고밖에... 경쟁 밖으로 얘들을 내놓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다만 이와 반대되는 사례도 있을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성숙 씨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줄 선택지가 충분히 있었고, 그 중에서 괜찮다 싶은 것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시골에 쳐박혀 있다고 생각하면서 청소년 시기를 보내는 많은 시골 아이들이 있으리라. 
  
‘자연학교’ 7년 성적표, 이만하면 100점 아닌가요? (한겨레, 속초/권복기 기자, 2007-03-20 오후 06:51:06)
   
ㅇ 4. 12 (목) 저녁  
  
- 오전에는 컴퓨터 인터넷이 잘 열리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그래서 전산조교에게 말해서 익스플로러를 7.0으로 바꾸기까지 했는데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다 밀어버리고 다시 깔아야 하나 했는데, 처음 컴퓨터를 막 켰을 때 구글 툴바와 관련된 것을 손댔던 것이 생각나서 이를 삭제했더니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다행이다. 오전 내내 시간을 잡아먹었는데, 오후마저 시간을 빼앗길 뻔 했다.    
   
- 도대체 이석행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끝까지 애먹일 모양이다. 이런 강아지...    
  
민주노총, 대선 독자후보 선출 검토 중 (참세상, 이윤원 기자, 2007년04월10일 22시11분)
이석행, 민주노동당에 3개안 제시.. 당-노총 내부 논란 지속  
   
민주노총 독자 대선후보 선출 검토 (레디앙, 2007년 04월 11일 (수) 13:03:23 정제혁 기자)
조합원 총투표 등 방법 제시 "당 방침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10일 민주노동당-민주노총 정례협의회에서 이석행 위원장은 민주노동당의 개방형 경선제 부결에 대해 “80만 조합원을 대선 과정에서 정치적 주체로 세우고 진보정당 발전에 복무할 수 있기 위해 민중참여경선제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며 “내가 약속한 공약을 당대회에서 부결됐다는 핑계로 철회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또 “민주노동당의 대선, 총선 승리는 노동자 계급의 투표 조직이 핵심인데 당원직선으로 대선, 총선 승리를 보장받을 수 있겠냐”며 “당에서 재론해서 (민중경선제를) 반영할 수 없겠냐”고 요구했다.
  
이석행 위원장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임시당대회 개최 후 개방형경선제 재검토 △민주노총 대선후보 독자 선출 △당원직선을 통해 선출된 후보를 배타적 지지하는 현재 방침 유지 3가지 안을 당 측에 제안했다. 이 중 민주노총의 대선후보 독자 선출안은 민주노동당 후보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까지 포함하고 있어 논란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의 제안은 민주노동당을 개방해 ‘진보진영 단일후보’를 뽑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미래구상, 노동자의힘, 사회당 등이 각자 후보를 내고 단일후보 선출 위해 경선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통합 경선해 진보진영 후보로 추천 △민주노동당-민주노총 간 교차등록을 허용해 경선 병행, 후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임시당대회서 통합 여부를 결정하는 2단계 통합경선 등의 세부안을 놓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ㅇ 4. 12 (목) 밤 - 편안한 길, 불편한 길
  
'편안함.'
그것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편안함은 흐르지 않는 강물이기 때문입니다.
'불편함'은 흐르는 강물입니다.
흐르는 강물은 수많은 소리와 풍경을
그 속에 담고 있는 추억의 물이며
어딘가를 희망하는 잠들지 않는 물입니다.
  
- 신영복의《나무야 나무야》중에서 -
 
* 길도 편안한 길이 물론 좋습니다.
그러나 너무 편안한 길만 가다보면 졸음운전으로
낭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다소 불편한 길이 도리어
큰 사고를 막아줍니다. 희망의 언덕을 오르는 길일수록
더 가파르고 곳곳에 굴곡도 많습니다.  
(2006년 9월 25일 월요일, 고도원의 아침편지)
     
  
ㅇ 4. 13 (금) 밤   
   
- 어머니가 갑작스레 오신단다. 무슨 이유인가 했더니 어제가 동생 생일이었던 것이다. 왜 내가 이것을 잊었을까. 오늘 동생이 왔다 갔었는데도 이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동생이 얼마나 섭섭했을까.    
  
- 그나 저나 미국넘들 정말 심하네. 이러고도 괴물의 배경이 되는 오염문제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오염 상상 초월, 미군 치유 거부" (레디앙, 2007년 04월 13일 (금) 11:08:34 김선희 기자)
정부 14개 기지 반환절차 완료…단병호 "반환협상 다시 해야" 
    
미군기지 오염처리 ‘덤터기’ (서울신문, 류찬희, 이세영 기자, 2007-04-14  1면)
    
ㅇ 4. 15 (일) 새벽 
    
 - 어제 어머니를 만나느라 엄청 고생을 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 어머니의 연락을 받고 오신다고 하는 강남역으로 가서 기다리는데, 어머니는 친구댁에서 오는 버스가 오지 않아서 1시간여를 기다리셨다고 한다. 문제는 강남역에 도착해서인데, 어머니가 도착한 장소를 몰라 거의 30여분을 헤맸다. 역시 나는 강남 쪽은 모르겠다. 소개팅을 했어도 몇번을 강남역 쪽에서 했는데... 
   
- 최근에 스페이스 공감을 본 적은 없지만, 잘 되기를 바란다. 예전에 천지인 공연을 가서 봤어야 되는데... 예매에 성공해놓고 가지 않아서 앞으로 다시 당첨될 확률이 그리 높지 않겠네.  
  
시청률은 1% 미만, 티켓 경쟁률은 11:1 (오마이뉴스, 천호영(razliv) 기자     2007-04-06 12:26)
EBS <스페이스 공감>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까닭
 
    
- 이명박이 한국육수학회의 심포지엄에서 나온 내용들에 귀를 기울이기나 할까.  
   
“경부운하 경제성 거의 없다” (한겨레, 김규원 기자, 2007-04-11 오후 08:59:16)
한국육수학회 심포지엄…대부분 부정적 견해
     

11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 20층 국제회의장에선 한국육수(陸水)학회 주최로 ‘21세기 한국의 수자원 보전과 한반도 대운하’ 심포지엄이 열렸다. 육수학은 호수, 하천, 지하수, 온천 등 내륙에 있는 물에 관한 학문으로, 한국육수학회는 1967년 창립돼 우리나라의 물 관련 학술단체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와 규모를 가진 단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발제자와 토론자 다수는 경부운하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나타냈다. 홍종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경부운하는 14조~20조원의 공사비가 드는데, 비용 대비 편익은 0.26~0.05에 불과해 11조~19조원의 손해가 나는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홍 교수는 그 근거로서 엄청난 환경비용을 들었다. 운하 건설비만 최대 20조원에 이르는데, 공사가 끝난 뒤 파괴된 환경·생태·수질을 개선하려면 또다른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강·낙동강 수질 개선에 1993~2005년 19조8천억원이 들었고, 2006~2015년에도 20조4천억원이 드는데, 운하가 건설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이라고 홍 교수는 지적했다.
     
또 공사비의 절반을 충당할 수 있다는 골재 규모(8억㎥)도 과장됐다고 홍 교수는 주장했다. 2007년 국내 모래시장 규모는 1년에 5천만㎥에 불과한데다, 1998년 수자원공사의 연구에서도 경부운하의 골재 채취 규모는 1억6천만㎥로 추산됐다고 그는 밝혔다. 아울러 홍 교수는 경부운하의 운송 예상 시간은 60~100시간으로 도로 수송의 10배가 넘으며, 심지어 국내 물류업체들이 최근 경제성을 이유로 포기한 연안해 운송 시간보다도 2~3배가 더 걸린다고 지적했다.
     
공학적 측면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김진홍 중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한국은 비가 여름철에 집중돼 일정한 수량의 관리가 매우 어렵다”며 “지형도 산지가 많아 운하 건설 때 인공수로, 터널, 보, 갑문 등에 더 많은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운하로 수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오히려 물을 가둠으로써 수질이 나빠지고 수자원을 파괴한다”며 “운하 공사 4~5년 동안 2500만명이 마시는 한강과 낙동강의 상수원을 사용하는 데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청계천 복원은 자연 복원이 아니며, 이명박 전 시장은 환경친화적인 정치인이 아니다”라며 “21세기엔 지식기반 경제로 전환해야 하는데, 토건회사 사장을 지낸 이 전 시장의 전근대성이 너무 깊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 여기저기 퀴즈영웅이 된 파업기자 고재열 씨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그는 한석규 주연의 미스터 주부퀴즈왕을 생각나게 한다. 일요일에 방송을 타는 '퀴즈 대한민국'에서 그는 퀴즈영웅으로 등극하는데, 거기서 스스로를 생계형 출연자로 분류한단다.
  
그의 출연은 단지 생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로 93일째를 맞고 있는 시사저널 파업사태가 하나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원래 파업은 생각은 달라도 행동은 같게인데, 생각은 같아도 행동은 다르게" 할 수도 있는 것이고, 퀴즈프로그램 참여도 그런 차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파업을 하면서 새로운 면을 깨달았다. 취재원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아는 기자가 되겠다"고 인터뷰한다. 멋진 사람이다. 
      
파업중인 ‘시사저널’ 기자 퀴즈영웅에 (한겨레, 김미영 기자, 2007-04-11 오후 09:18:56)
고재열씨 “난 생계형 도전자”…언론탄압 알리는 계기되길
 
  
ㅇ 4. 15 (일) 밤   
  
- 허세욱 동지가 오전에 숨을 거두었다. 게다가 시신은 안성의 성요셉병원인가로 빠졌다 하고...   
아무래도 가봐야 할 듯해서 어머니가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오후에 한강성심병원으로 달려갔다.  
   
도착해 있는 많은 당원들이 보였다. 그리고 관악의 한미FTA저지공동운동본부 분들도 보이고... 시신이 없는 가운데 거기에 분향소를 차렸다. 그리고 향린교회 교인들을 중심으로 추모예배를 하고...   
   
이미 돌아가신 다음인데도 붙어잇는 "쾌유를 바라는" 플랑카드가 참 어색해보였다. 그렇게 7시에 촛불집회를 하는 것으로 정해진 후 새벽별 동지와 신림동으로 돌아왔다. 새벽별 동지는 시당 차를 가지려 온 것이었고, 나는 길 동무 겸 아무래도 어머니께 가봐야 할 것 같아서였다.   
   
- 저녁 때 다시 한강성심병원으로 돌아가려다 어머니와 여의도 벚꽃축제에 갔다. 오늘이 벚꽃축제를 위해 차도를 막은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어머니께 이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다행히 어머니는 이를 매우 좋아하셨다. 벚꽃이 전등과 어우러진 여의도의 야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나도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뭐 얼마나 볼 것이 있으랴 했는데, 의외로 올만한 장소였던 것이다.  
  
어머니는 오는 방법을 알았으니 수요일 쯤 친구분들과 함께 오시겠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오실 수 있을까.  
어머니의 눈길이 젊은 부부나 연인들에게 많이 꽂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나의 강박관념일 수도 있지만, 괜시리 어머니께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친구분에게 여의도 벚꽃축제에 아들이랑 같이왔다고 자랑하시는 것을 보면서도 조금 겸연쩍더라.  
   
- 어머니는 그대로 신림동으로 버스를 타고 가시고 나는 한강성심병원으로 향했다. 여의도 벚꽃축제 장소에서 걸어서 10분거리였기 때문에 그냥 갈 수 있었다.  
 이미 집회는 끝난 시간이었지만, 바람이 몹시 강하게 불어 추가 천막치기도 어렵고, 화환이나 플랭카드가 자칫 사고를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서 이를 정리정돈했다.
  
그렇게 하고 천막에 있는데 어머니가 집 열쇠가 없으시다고 찾으신다. 아, 광주에서 열쇠를 잘못 가지고 오셨구나. 그래서 택시를 타고 획... 택시가 버스보다 더 느리다. 다음부터는 여의도에서 신림동으로 밤늦게 올 때는 버스를 이용해야겠다.    
  
ㅇ 4. 16 (월)   
  
- 동생네가 신림동 집으로 왔다. 어머니가 구리로 가신다고 했는데, 집이 많이 어질러져 있다고 그냥 신림동으로 온단다. 그래서 민서도 다시 보게 되었다. 민서가 많이 컸다.
   
ㅇ 4. 17 (화) 밤  
  
- 낮에 버지니아 텍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을 접하고 또 터졌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연구실에 있는 넘은 선배와 얘기를 하면서 범인이 중국계일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에 역시 짱께들은 어쩔 수 없어 하는 소리를 해대었다. 박사과정이라고 하는 넘이 그런 소리를 하니, 한심해서 뭐라고 말하기도 싫더라.   
    
뉴스에서는 아시아계로서 재미동포들도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하필 중국계에서 한국계까지 피해를 본다는 그런 투...  
그런 식의 접근이 문제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문제가 커졌다.     
    
저녁 뉴스가 이 사건으로 떡칠되는 것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 싶었다. 그리고 엠비씨 뉴스 말미에 한국인일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있다는 말을 듣고 인터넷을 찾아 헤맸더니 그런 기사가 속보로 올라왔더라. 그리고 나서 10시 반이 넘어서자 한국계 조승희가 범인이고, 정부에서 급박하게 대응한다는 보도가 흘러나온다.   
   
덕분에 허세욱 동지의 분신은 거의 잊혀지고, 다들 조승희만을 떠들어대겠지. 거참...  
   
ㅇ 4. 18 (수) 밤 
  
- 오늘은 허세욱 동지의 장례식이 있어 거기에 참여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마석 모란공원까지는 가지 못했다. 나남출판사에 전달할 센터의 원고 때문에 학교에 가야했기 때문이다.   
   
 한독운수에서 이명애 관악주민연대 사무국장이 추도사를 읽을 때는 계속 눈물이 나왔다. 아마 그 뒤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 한나라당이 별 지랄을 다한다. 인터넷에 재갈을 물리려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건 그들이 구태를 벗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달리 한나라당을 꼴통이라고 하나.   
   
한나라, '초강경 선거규제'로 비난 자초 (프레시안, 송호균/기자, 2007-04-18 오후 4:52:39)
법 바꿔 '대세론' 보호?…블로그-미니홈피도 규제대상  
   
“한나라당, 제 정신이 아니다” (레디앙, 2007년 04월 18일 (수) 17:47:29 김선희 기자)
촛불시위 금지법 이어 인터넷 재갈-후보 단일화 토론봉쇄 
   
ㅇ 4. 19 (목)  밤
   
- 오늘은 인터넷 서핑을 많이 한 듯하다. 프레시안의 기사 두개가 인상적이다. 미국 버지니아 텍 총기난사 사건과 관련하여 읽어볼 만한 글. 
    
총 없는 한국사회, 안전합니까? (프레시안, 김하영/기자, 2007-04-19 오전 11:24:23)
[기자의 눈]브레이크 없는 '미국화' 고민할 때  
  
"당신은 왜 촛불을 들 건가요?" (프레시안, 전홍기혜/기자, 2007-04-19 오전 8:55:17)
<기자의 눈>버지니아텍 총기난사와 한국사회의 '오버'
  
 
ㅇ 4. 21 (토) 새벽 
   
- 한겨레는 사설에서 장애우라는 말을 썼다. 한겨레신문 내에는 장애인이 없나 보다.  
 
어제 420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집회에 갔다왔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래서인지 시간을 내서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장애인들은 서울역에서 국가인권위까지 행진을 했다. 하지만 당 대오는 그 전에 있었던 당 사전대회 이후 절반이 가버렸고, 의원단 또한 행진에는 함께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을 비워서 그 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그게 확실한 인상을 주었을 텐데.   
 
나 또한 행진을 참여하던 도중 돌아왔기에 사실 자격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의원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쉬운 마음이다.  
  
사회당 동지들이 집회에서는 민주노동당보다 더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 것은 무리가 아니다. 아니 그 만큼 열의 있게 결합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갈수록 당의 모습에 실망한다. 지역위원회에서는 허세욱 동지 관련 투쟁 때문인지 장애인 중앙위원인 김주현 동지만 참여하였다. 이것도 아쉬운 부분.
   
궂은비에도 ‘장애인차별철폐’ 울려퍼지다 (프로메테우스, 강서희 기자, 2007.04.20 17:23)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결의대회 열려
 
     
ㅇ 4. 21 (토) 오후 3:00
  
- 모 님에게서 청첩장을 보낼 주소를 알려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결혼식일자가 정해진 모양이다. 아니 이미 정해져 있는데 정식으로 알리는 것이 늦었겠지. 메신저로 자신이 게을러서 그렇다고 얘기한다.
   
결혼하는 이들이 둘다 아는 사람인 만큼 축하해주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왜 이리 씁쓸한 거냐. '여우와 신포도'라는 우화가 떠오르는데, 맞는 비유일까.  
    
- 분명히 다알의 아래 책을 헌책방에서 구입한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아직 풀지 않은 박스 안에 있으려나. 이사를 하고, 또한 연구실을 옮기는 과정에서 책의 소재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눈에 보이는 책은 지금 당장 읽을 필요가 없고, 필요한 책은 찾으려면 없고, 젠장...
    
다알, 로버트 A., 안승국 역(1995). 『경제민주주의』. 서울: 인간사랑. Dahl, R.A.(1985). A Preface to Economic Democracy. Berkeley, C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ㅇ 4. 21 (토) 밤 11:00 전진은 과연 정치조직인가
 
- 전진 홈페이지 내의 회원게시판에 올린 글로 인해 전진 성원이 아닌 이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내가 그런 처지였다면 도대체 전진이라는 조직이 정치조직이 맞나 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400명이 조금 넘는 회원들끼리도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면서 같은 대선 후보 캠프에 있다고, 노동조합 활동을 함께 한다고, 사적으로 학연, 지연 등이 있어서 친하게 지낸다고 정치조직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그것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왜곡해서 털어놓는다면 그게 과연 동지적 관계로 묶인 정치조직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이 되풀이될수록 그렇지 않아도 소통의 통로로서 그리 원활하게 활용되지 않고 있는 전진의 회원게시판은 그 활용도가 줄어들 것이다. 아니면 회원게시판으로 놔두는 것이 아니라 아예 공개를 해버리든지 해야 하지 않을까. 동지라고 믿고 자신이 활동하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항들에 대해 털어놓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서 동지들과 공유하고자 했던 것들이, 오히려 자신의 목을 죄어올 때의 기분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런 것들을 밖에서 얘기하지 말고 안에서 동지들과 함께 논의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자신과 이견이 있는 전진의 회원들을 동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할 말 없다.
   
전진은 행동강령도 있고, 앞으로 지회, 총회 등의 모임 참여 및 학습 등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러기에 앞서 각 회원들이 해온 행태들에 대해 먼저 검토와 자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전진에 가입한 것이 각 회원들의 활동에 도움을 주어야지 오히려 활동의 제약으로 작용해온 것이 하루이틀의 일인가. 이로 인해 회원들, 특히 당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이 자기 주위의 당원들에게 전진에 가입할 것을 권유하는데 주저하고 있는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덧붙여, 이번에 전진은 운영규약 개정을 하면서 후원회원을 두기로 했다. 각 지역에서 ‘회원’으로 가입하기는 어려우나 지지?연대할 동지들을 ‘후원회원’으로 조직하여 지속적인 공동활동을 이뤄나가자는 목적도 있고, 현재 전진 ‘회원’중에서 안정적 활동이 사실상 어려운 동지들을 ‘후원회원’으로 전환하는 길을 열어두자는 취지이다.
  
나의 경우 전진이 하고자 하는 바에 동의하지만, 현재의 내 활동조건이 정치조직원으로서 활동하는데 곤란하고, 그렇게 할 의욕도 현재는 없는 만큼, 28일에 중앙위원회에서 결정된다면 후원회원으로 해야겠다. 게다가 지금은 학교운영위원이라서 당원도 아니고 당우일 뿐이다. 전진에, 지역위원회에,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은 벗어나고 싶다.   
      
- 청계광장에서 열린 허세욱 동지 추도식에 다녀왔다. 신장식 동지의 발언이 평소답지 않게 상당히 과격하고 열정적이다.  
      
5시 반부터 당원대회가 있고 7시에 추모촛불집회가 있었는데, 7시 것만 참여했다. 왜 당원들만 따로 결의대회 비슷한 것을 하는지 모르겠다.       
   
ㅇ 4. 22 (일) 오후 2:40
 
- 어머니가 2시 55분 버스로 광주에 내려가신다고 전화하셨다. 일주일 동안 어머니와 서울에 함께 있으면서 별로 해드린 것도 없고, 부담만 드린 듯하여 죄송하다. 논문 핑계로 이제는 백수 신세로 밥만 축내는 큰 아들을 어떻게 생각하실 것인지...
 
허세욱 동지의 상을 치르는 과정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허세욱 동지의 뜻을 사장시키려는 시도에 가슴이 많이 아팠다. 그래도 가족이면 고인의 뜻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 과정에서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그 나마 나는 행복한 편이리라.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생각하는 바를 이해하는 어머니와 동생이 있어서이다. 게다가 동생은 내가 가장 깊게 의지할 수 있는 동지이다.
 
어머니를 터미널까지 마중나가지 못하고 학교 앞에서 헤어지면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하는 공부가, 내가 하는 활동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렇다면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도 불효일 터인데...
  
하루에도 몇번씩 서로 모순된 사고와 행동을 한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제대로 후회없는 사는 삶일까.  
단지 무슨 혁명가나 전위인 것처럼 치열하게 하는 것만은 나의 길은 아니다. 그렇다고 대충 되는대로 사는 것도 문제는 있을 터, 그 절묘한 지점을 어떻게 잡아내는가가 관건이다.
   
ㅇ 4. 23 (월) 오후 4:00
  
- 아래 기사가 한겨레에 1면으로 나왔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괜찮은 의제설정이다. 우리안의 차별은 얼마나 심한지 다들 인식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이번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총기규제를 완화하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고, 범죄자나 정신질환자 경력이 있는 사람은 총기를 사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제출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접근을 하는 셈인데, 한겨레의 기사를 보니 정신질환자들의 범죄율이 일반인보다 낮은 것으로 나온다는 기사가 나온다. 우리들의 편견은 개인적인 경험이나 피상적인 관찰을 통해 강화된다. 
     
한국판 ‘승희 조’ 사건 나면 우린 어떤 반응 했을까 (한겨레, 김기태 기자 , 2007-04-23 오후 03:12:44)
총기참극 계기로 ‘외국인 차별’ 돌아보니, 코시안은 점점 느는데 외모·말투 편견 여전
  
만약, 2007년 4월 한국의 한 대학에서 외국 출신 학생이 미국 버지니아공대 참사와 같은 사건을 벌였다면, 한국 사회는 어떤 반응을 했을까?
이런 가상의 질문에 지난해 귀화한 중앙아시아 출신 아셀라 쥬말리바(30·여·가명)씨는 “미국은 다민족 사회지만,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단일 민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차별이 훨씬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몽골에서 온 잉케수레(36·여·가명)씨의 답변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답변은 평소 겪고 있는 눈물나는 차별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신질환자 범죄율 일반인보다 낮아” (한겨레, 김양중 기자, 2007-04-22 오후 10:01:14)
“대부분 남 해칠 기운 없어”…인상적인 특정범죄로 편견 생겨
   
우종민 인제의대 정신과 교수는 “대다수의 정신질환자는 자신의 증상 때문에 고통 받고 신음하고 있어 남을 해칠 기운도 없는 경우가 많다”며 “다만 그들이 몸을 자해하거나 종종 일으키는 사건이 보통의 범죄자 등과는 달라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에 그런 편견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자기의 귀나 눈을 특이한 도구를 이용해 자해하거나 자살하는 경우, 언론의 집중적 보도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장(소아정신과 전문의)은 “미국 등 여러 나라의 역학 연구에서도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일반인보다 낮은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ㅇ 4. 24 (화) 새벽 1:00
   
- 노회찬 의원이 정책의 정치화를 전략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방향은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민주노동당이 정책이 없어서, 구체적이지 못해서 문제였던가. '정책의 정치화'는 그 동안 사실 전진에서 얘기해오던 것들이다. 특히 이장규 동지가 많이 주장했던 것인데...
  
다만 정책의 정치화가 단지 당의 지지율 확대로 그쳐서는 안되지 않나. 좌파 정치인이라면 그 이상 나갈 필요가 있다. 나중에 전진의 대선강령에 어떠한 태도를 표명할지 궁금하다.
   
대선국면이 되니 노, 권, 심 모두 자신들이 하나의 정파가 된 느낌이다. 다들 '정파'에 대한 내용을 한마디씩 집어넣는다. 각 캠프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정파 소속원들은 뭘까. 결국은 인물로 승부를 보는구나.  
    
"정책을 정치화하라" (레디앙, 2007년 04월 23일 (월) 18:42:53 정제혁 기자)
[노회찬 전략 및 정책 컨셉] "대안 정책 쏟아낸다"
   
노 의원측 정책을 관통하는 원칙은 '정책의 정치화'다. 단순히 정책을 제시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계획을 함께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그를 통해 대중을 정치적으로 묶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 의원측 한 관계자는 민주노동당의 문제는 정책의 '과소'가 아니라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계획의 '과소'에 있다고 했다.
  
예컨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비판하는 경우, 그것이 국내 헌법은 물론 소파(SOFA) 협정과도 상충되는 것이라는 구체적인 반대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를 기초로 사람들을 묶어세우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계획까지 함께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의 정치화'는 곧 노 의원측 경선 전략의 핵심과도 직결되어 있다. 당 바깥의 대중적 지지세를 키워, 이 힘을 바탕으로 당내 지지율을 높인다는 게 노 의원측 기본 구상이다.
당원들은 결국 본선경쟁력이 있는 후보를 선택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전략이다. 어떤 의미에선 국민을 상대로 경선을 치르는 격이다.
  
노 의원측은 대권도전을 공식화하기 전부터 구체적인 정책을 매개로 국민과 접촉하고, 사업을 조직하고, 그를 통해 정치적 성과를 남기는 활동 패턴을 보여왔다고 말한다.
노 의원이 국회 등원 후 2년 반 동안 300회가 넘는 지역강연을 다닌 것도 이런 맥락이다.
   
노 의원측은 당내 '정파'들에도 이런 원칙에서 접근할 방침이다. 노 의원측은 차라리 '정파'를 상대로 한 별도의 접근법 자체를 생각치 않고 있다고 말한다.
당의 정책과 이념으로 대중을 묶을 프로그램을 놓고 '정치적 지분단위으로서의 정파'가 아닌, '정치적 의견단위으로서의 정파'를 만나 대화하고 설득하고 보완할 것이라고 했다.
내용을 놓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상호침투는 있을 수 있지만 '정치적 거래'는 않겠다고 했다.

    
- 옐친이 죽었네. 올해로 76세다. 살 만큼 살았다.
옐친이 없었더라도 소련은 망했겠지만, 그래도 옐친에 대해 그리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냉전종식의 주인공…‘세기의 풍운아’ 가다 (한겨레, 이본영 기자, 2007-04-24 오전 01:38:44)
91년 쿠데타 막아내며 러시아 ‘영웅’으로
경제파탄·체첸 유혈진압 등 통치는 낙제점

   
- 어제 오전에 KBS에서 본 것보다 훨씬 신중하게 쓴 기사이다. 역시 조폭이 무섭긴 무섭나 보다.
하긴 KBS도 단지 사실보도만 했을 뿐 '조폭들이 왜 이렇게 설치고 다니나' 식의 보도는 하지 않더라.
세상이 좋아지긴 한 건가.  
    
‘칠성파 거물’ 검진하다 죽자 의사 한때 잠적 (한겨레, 김소연 기자, 최원형 수습기자, 2007-04-20 오전 09:42:46)
    
- 이 음반들, 기억하자.
물론 클래식을 그리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연구실에 있으면서 함께 있는 이의 혼잣말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듣는 클래식이 그럭저럭 들을 만해서 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값싼 ‘클래식 음반’은 비지떡? (한겨레, 김미영 기자, 2007-04-22 오후 07:14:44)
명곡들 저가 세트제품 인기, 유명 연주자·단체 음원으로, EMI 등 상반기 출시 ‘봇물’ 
  
추천! 클래식 세트음반
  
- 심청전이라.. 말도 잘 붙이네.
하지만 분명히 의미가 있는 논쟁이다.
확실하게 물고늘어질 필요가 있다.
    
심상정-청와대 양극화 논쟁 가열 (레디앙, 2007년 04월 19일 (목) 14:18:33 정제혁 기자)
한미FTA 양극화 '심화' vs '무관'…심-청전 3라운드 주목 
      
[생각나눔 NEWS] 靑·심상정의원 FTA 양극화 불꽃 논쟁 (서울신문, 구혜영기자, 2007-04-24  3면)
       
[심바람] 심상정-노무현 ‘심청戰’으로 베스트블로거 공동수상
  
ㅇ 4. 24 (화) 오후: 5: 30
  
- 재호가 채원이형이 쓴 책을 주고 간다. 어제 학교에 왔을 때 나를 만나지 못하여 대신 재호에게 맡겨 놓은 모양이다.
작년 말에 냈던 [신자유주의를 넘어 사회투자국가로]라는 책의 후속편이다. 제목 [사회투자국가" 미래한국의 새로운 길]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투자국가론을 한국적 현실에 맞게 소개하면서 제도화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것 때문에 논문계획서를 쓰지 못했나. 아무튼 이렇게 책을 써내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한 사람이다. 책에 대한 논평은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자.
 
그러고 보니 27일에 포럼 사회복지와노동에서 사회투자국가론에 대해 다룬다고 하던데, 전진 서울지부 정기총회와 겹쳐서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좋은 기회일 듯한데... 앞부분이라도 들어보고, 자료를 가져올까.
   
- '날아라 허동구', 볼만한 영화인 듯하다. 아이들의 연기도 그렇고, 정진영의 연기도... 
    
날아라 허동구 어린이 주인공 최우혁·윤찬 (서울신문, 류지영기자, 2007-04-23  25면)
"장애인 편견 싹~ 학교생활도 100점"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날아라 허동구’(박규태 감독)의 두 주연인 최우혁(사진 오른쪽·10)과 윤찬(11)군. 초등학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IQ 60의 장애아 동구(최우혁)가 아버지(정진영)와 짝꿍 준태(윤찬)의 도움으로 야구를 시작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둘은 각각 경기도 화성시 매송초등학교(4학년)와 서울 예일초등학교(5학년)에 재학중이다. 이번 영화가 우혁에게는 세번째, 찬에게는 첫번째 스크린 나들이다. 영화를 찍으며 너무도 친해진 듯 인터뷰 내내 우혁이와 찬은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즐거운 시간이었다.
          
ㅇ 4. 25 (수) 새벽 12:40
 
- 김규항의 블로그에 갔다가 '고래가 꿈꾸는 세상'(http://cafe.naver.com/dreamwhale.cafe)에 가입했다.
조카 민서에게 <고래가 그랬어>를 선물로 사준다는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오른다.
주위 사람들에게 구독을 권유도 하고, 과월호를 민서에게 사주어야겠다. 
    
ㅇ 4. 26 (목) 새벽 3:00
     
- 어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있었던 풀뿌리정책포럼은 주민참여예산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1) 김태근(울산시민연대(준)) 2) 이병국(함께하는 시민행동) 3) 진경아(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4) 하승우(한양대제3섹터 연구소) 이 네 명의 발제가 모두 흥미있었다. 토론내용도 그렇고..  

   
나도 그래도 전문연구자라고 몇 마디 거들었다. 
그러고 보니 참여한 단체가 나와 연관이 많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회원이기도 하고, 시민행동의 회원이며, 민주노동당의 당우이기도 하니까... 허영일 동지가 함께 갔기에 조금더 맘놓고 토론에 임할 수 있었다. 
   
관악에서도 참여예산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검토를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관악주민연대에서 온 두 사람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이번 기회에 관악 주민운동에도 관심을 가져볼 필요성을 느꼈다.  
  
저녁식사 겸 뒷풀이는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에서 부담해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 뒤늦게 전진 기관지 회의에 결합했다. 하는 것도 별로 없는 주제에 기관지 위원이라니... 이것도 빨리 그만 둬야 할 텐데...  
    
이번부터 나상윤 동지가 기관지 위원회에 결합하기로 했다. 앞으로 기획을 짜서 비정규직 문제 등을 체계적으로 검토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담당할 주체가 없어서 미뤄지던 것인데, 앞으로 노동쪽을 좀더 심도 있게 다룰 수 있지 않나 싶다.   
    
- 정경섭 동지의 글은 뭔가 색다른 내용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 잔잔한 울림이 있다. 이를 보면 지역활동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의욕이 솟는다.
그는 내가 '적'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이 중의 하나이다.   
    
"민주노동당에서 왜 오시는 거죠?" (레디앙,  2007년 04월 25일 (수) 11:50:39 정경섭 / 민주노동당 마포구위원회 위원장)
[발로 뛰는 진보정치 현장] 진보정당이 동장을 만났을 때

  
- 재보선결과 김홍업, 심대평이 당선되었다. 한나라당 의원당선자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경기 화성의 한나라당 의원당선자는 종묘로 600억원의 재산을 벌어들여 선거에 임했다고 한다. 당선은 그 금권선거의 결과이다.
   
기초자체단체장 선거에서 한 곳을 제외하고 다섯곳에서 모두 무소속이 당선되었지만, 성향은 한나라당과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의 불패신화가 깨졌다는데 모두 관심을 갖지만, 사실 지역주의의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나.
  
'지역 자존심 회복'을 앞세우며 지역색과 인물론에 기댄 후보가 압승했다는 것은 한나라당의 참패만큼이나 그 정치적 의미를 중요하게 되새겨 보아야 한다.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가 여전히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진보정치가 아직까지 이러한 지역주의를 뛰어넘을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은 이번 선거에서 뼈아프게 되짚어 보아야 할 부분이다. 
    
ㅇ 4. 26 (목) 11:00
 
- 금속노조가 한미FTA 저지를 위한 1주일 총파업에 나섰다. 어제 총파업을 현장발의한다는 말을 듣고 과연 될까 반신반의했는데, 과반이 넘은 금속노조 대의원들이 이에 찬성을 한 것이다.
 
허세욱 님의 영결식 과정에서마저 한미FTA 저지를 위한 총파업을 하겠다는 말을 립서비스 차원에서도 하지 않은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의 행태와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물론 책임지는 투쟁을 위해서 그렇다고 변명하겠지.
 
하지만 현장순회대장정은 소위 투쟁회피론 아니던가. 지난 3개월간 이석행 민주노총 집행부는 투쟁을 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투쟁을 가로막았다. 나아가서 현장대장정에서 민주노총 독자대선후보 선출을 내용으로 설득하는 컨셉을 잡고 꼴통짓을 하고 있다. 도대체 뭘 어쩌자는 것인지... 
   
금속, 한미FTA 저지 1주일 총파업 (레디앙, 2007년 04월 26일 (목) 09:28:20 박점규 / 현장기자)
대의원대회서 결정, 6월 양국 대통령 체결 시기 맞춰

   

ㅇ 4. 26 (목) 저녁 7:00
 
- 키라가 데쓰노트에 나오는 주인공인가 보다.
주간조선의 실수가 이렇게 화제가 될 수도 있구나. 그것도 정확히 1년 전에... 쉽지 않은 일일 텐데...
그래서 다시 한번 옐친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심장병]옐친·김일성, 심장병으로 사망 [주간조선 2006-06-20 15:44] 
    

- 경영평가 회의가 3시에 서대문 비정규센터에서 있었다. 5월달에 본격적으로 진행하게 될 모양이다. 나는 총론으로서 지배구조 문제를 정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설문조사는 각자 분담하는 것으로 하고...
  
현우가 5월부터 한노사연을 나와서 서울시당 산하의 서울진보연구소로 옮긴다고 한다. 그게 잘된 일일 수 있다. 이제 좀 실력을 발휘해 봐.  
   
ㅇ 4. 26 (목) 12:00
 
- 밤에는 신림2동 분회모임이 있었다. 분회장인 황규수 동지 외에 나경채, 조제희, 박진화, 하성만, 박문순 동지가 참석했다. 새로운 성원은 없었지만, 다른 때와는 달리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다.   
    
바로 분회소식지에 들어갈 대선후보의 여론조사 문제로 논란을 벌였던 것이다.
황규수 동지에게 미안하다. 그렇게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나중에 말을 해야지. 하지만 내 의견이 정치적으로 옳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되는데...
     
ㅇ 4. 27 (금) 7: 40
    
- 우리사회의 오바를 보여주는 증거들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제목을 보고 대충 무슨 내용의 기사일지 짐작했는데, 역시 그렇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몇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화수첩] 일본 배우에게 ‘과거사’를 묻는 사회 (경향신문, 백승찬 기자, 2007년 04월 26일 18:25:58)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중년 남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를 홍보하러 온 배우에게 과거사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조승희씨에 대한 비난과 미국인 희생자에 대한 대리 사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엄밀히 말해 조씨가 저지른 비극적 사건은 한국인의 고유한 유전자 때문은 아니다. 조씨 개인의 정신적 미성숙함과 더불어 미국의 느슨한 총기규제, 경찰의 미숙한 대처, 적응력이 부족한 이민자를 포용하지 못한 미국 사회의 분위기 등이 맞물려 있는 문제다.
     
우리는 불합리한 민족적 연좌제의 굴레를 짊어진 채 그것을 또 타인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민족의 연좌제는 인종주의로 발전할 수 있기에 더욱 위험하다.

  
- 그러고 보니 [오래된 정원]을 보지 않았구나.
책으로 읽은 것과 어떻게 차이가 날까.
현우와 윤희, 모두 익숙한 이름이다.
오랜만에 명인님의 노래도 들어볼까. 이 노래는 소설, 영화의 감수성과 얼마나 닿아있을까.
      
[하재봉의 영화읽기]오래된 정원 (서울신문, 하재봉 시인, 영화평론가, 동서대 교수, 2007-04-25)
  
mms://mms.plsong.com/plsong/myungin/AudioTrack 08.wma

명인 - 오래된 정원 (작사 : 황석영, 작곡 : 최원락)
     
보았나요? 우리 꿈꾸던
혹시 바위 틈 사이로 뚫린 길을 걸어가
찾았나요?
   
보았나요? 우릴 가두었던
그 외롭고 무섭던 캄캄한 벽 속에서
당신은 찾았나요-?
   
우리가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던
아름다운 그 꿈들은 부셔졌지만
속세의 먼지 속에 투명히 빛나는 게 보여요- 우리는
  
보았죠. 찬란한 햇살
그 가운데 갖가지 꽃이 만발한 세상
우리들의 오래된 정원을.
  
- 신장섭 교수의 견해가 의외다. 장하준 교수와 함께 글을 쓴 것을 보면서 괜찮게 봤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7%의 성장이 가능한가는 둘째치고라도 그런 성장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나.
  
이종구 의원, 7% 경제성장 가능한가 격론 (이종구 의원실 보도자료, 2007-04-26 15:00)
국회디지털경제연구회 토론회 개최
    
7% 성장가능론자들은 현 정부의 저성장 불가피론을 성장체념주의라고 비판하며 한국경제는 현재의 성장률보다 높은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론자들은 잠재성장률 등에 비추어 볼 때 고성장을 추구하다가는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렇지만 토론참가자들은 모두 성장체념주의에서 벗어나 보다 높은 성장을 이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데 대해서는 공감대를 이루었다.
   
신장섭 교수가 '고성장체념주의의 원인과 대책 - 슘페터적 경제관으로의 전환'이라는 주제발표로 저성장론자들에 대한 포문을 열었다. 신 교수는 외환위기이후 정부가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초점을 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위험을 부담하고 투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실패, 저성장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또 외국인투자에 대한 환상에 빠져 국내투자를 등한시한 나머지, 외국인투자자들이 장악한 주요기업과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단기업적주의와 고배당요구 등이 확산돼 성장잠재력이 위축됐다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이와 함께 한국경제는 더 이상 고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근거로 자주 거론되는 잠재성장률 이론은 비현실적인 가정에 근거한 것으로 논리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만큼 추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중국의 급부상으로 국내 기업이 설 땅을 잃어 성장이 부진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중국공포증'이라며 주변대국의 성장을 활용한 소국들의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고성장체념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건전한 성장과 균형성장에 집착하는 신고전파경제학에서 벗어나 창조적파괴를 중시하는 슘페터적 경제발전관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 신장섭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위험관리중심의 금융논리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위험을 부담하면서 투자하는 산업의 논리도 함께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BIS비율 등 지나친 금융건전성 규제를 완화하고, 위험이 적은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의 비중을 낮추어 기업대출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투기적인 부문의 수익률과 생산적인 부문의 수익률간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안과 △제조업 해외이전에 대응한 선제적인 제조업 고도화 정책을 추진하면 6∼7%의 성장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분배위주의 정책보다는 성장중심 정책을 펴야만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에 김재천 한국은행 조사국장은 발표자의 인식과 대안제시에는 대체로 공감한다고 하면서도 성장률 저하 불가피론을 폈다. 김 국장은 IT중심으로의 산업구조변화, 비정규직 확대, 고령화 등으로 저성장체제로의 진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수치중심의 목표보다는 교육의 효율성제고와 인력활용도 제고, 합리적 노사관계정리, 대외개방강화,사회갈등해소 등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을 살릴 수 있는 질적인 제도개선에 중점을 두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성장의 필요성에 동감하면서도 신교수의 불균형 성장 주장이 과거체제로의 복귀라고 맹비판했다. 금융시스템의 효율성제고와 교육 등 비교역재 부문의 상당한 구조조정과 혁신을 하지 않은 채 성장을 추구하면 또 다른 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성장의 내용이 중요한 단계인데 시장중심의 체질적 변화가 미흡한 상태라며 각종 인프라구축과 지배구조개선 등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사회복지와노동 포럼에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시간 낭비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포기했다. 사회투자국가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말이지. 사회투자국가론에 대해서도 심층적으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대신 동생이 노트북을 돌려주러 집으로 온단다. 동생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연구실에 있는 책들을 가지고 올 수 있겠네.
오랜만에 학교에 가지 않은 평일이 될 뻔 했는데, 결국은 한번 가야 하는구나.
   
ㅇ 4. 28 (토) 오후
 
- 동생과 얘기를 나누면 얻을 것이 많다.  
     
- 동생이 간 다음에 새벽에 아는 지인과 간단하게 술을 마셨다. 하루 종일 집에 있었더니 좀이 쑤시기도 하고, 울적하기도 한 차였는데, 새벽에 볼 기회가 있었으니 오케이 아닌가. 물론 여유가 없긴 하지만, 이 정도는 시간을 내고...
  
5월에 수련회라... 그 때가 되면 조금 한숨을 돌릴 수 있으려나.
계속 머리 속에 생각만 해 두던 것들을 실천으로 옮겨야겠네.
   
서울대입구 역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집까지 걸어서 오는데 20여분이 조금 더 걸린다. 걍 택시를 타든지 조금 더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라고 했지만, 도보 결정은 역시 괜찮은 선택. 앞으로는 자주 걸어다녀야겠네. 그렇다고 건강이 좋아지진 않겠지만...
   
- 금요일 저녁부터 매일노동뉴스 지난 기사들을 검색하였다. 그 중에 나중에라도 참고해야 할 것들을 뽑았는데, 작년 기사는 봤고, 올해 기사만 선별하여 대충 훑어보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럴 시간이 있나 싶기도 하지만, 이왕 시작한거 마무리하자는 생각이 걍 4월 27일자까지 다 보았다.
확실히 노동전문 매체라 그러한지 다른 진보언론매체에서 놓친 것을 다룬 기사도 있고, 또한 좀더 자세하게 분석적인 기사를 내놓은 것도 있다. 매노가 온라인 서비스를 하지 않으면서 독자가 조금 늘었다고 하던데...
    
ㅇ 4. 29 (일) 새벽 4:00
   
- 오랜만에 연구실에서 날을 샌다. 
      
갈아입고 온 옷의 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검은 리본 - 근조 열사정신계승 한미FTA무효 - 을 발견하고 새벽내내 허세욱 동지를 생각했다.
   
ㅇ 4. 29 (일) 오후: 5: 40
  
- 오늘이 시제였는데, 논문계획서를 핑계로 내려가 보지 못했다. 대신 동생이 지방도 뽑고, 운전도 하고 일처리를 많이 했단다.
아침부터 몸이 많이 안좋았다고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다행히 동생 목소리를 들어보니 그럭저럭 괜찮네.
마음의 부담 때문에 나도 내려가겠다고 했건만...
   
나는 광주에 내려가지 않는 대신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했는지...
    
ㅇ 4. 30 (월) 2:00
   
- 좋은 분석 해놓고 결론이 왜 이런가?
   
‘빈곤 탈출’ 더 어려워졌다 (서울신문, 백문일 기자, 2007-04-30  2면)
   
- 미납된 전기요금을 냈다. 6만 여원 정도 된다. 그 동안 이사한 이후에도 여전히 이전에 거주하던 이의 명의로 전기요금이 나왔기 때문에 확인하지 못했던 거다. 잘못했으면 단전될 뻔 했는데...
   
- 2시에 정운찬 교수가 기자회견을 해서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어느 정도는 예측이 되었던 행보이다. 이대로 밀고나가서는 별로 승산이 없어보였는데, 경제학 교수답게 합리적 결정을 내렸다. 하긴 며칠 전부터 여권 내의 여기저기에서 더이상 기회가 없다는 소리를 자꾸 해대더라.
  
정운찬에 줄을 대고 뭔가 해보려던 이들이 졸지에 물먹었다. 그렇다면 대타는 누구일까.
 
이를 예측이라도 한 듯이 한명숙 전 총리가 5월 중에 깃발을 든다며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노심이 자신의 뒤에 있다는 암시도 했다. 하긴 최근 자신이 각료로 참여했으면서도 열우당과 노무현 정권에 비판적인 시선을 보이면서 반사이익을 보려는 김근태나 정동영을 노무현이 지지할 리는 없다.
여기에 참여정부평가포럼인가가 외곽단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왜 이리 포럼이 많나. 손학규는 무슨 선진평화포럼을 만든다고 하고...
요새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포럼의 성격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운동권들은 무슨 연대, 무슨 대책위, 무슨 운동본부를 잘 만들더니, 정치권에서는 포럼인가.
   
-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들이 다들 통일전사가 되었다. 평화와 통일을 전면에 내걸고 예전부터 이에 신경을 써온 양 정책들을 내놓는다.
 
좌파라면 좌파답게 지금 치열하게 쟁점을 형성하는 사회경제적 의제에 대해, 계급문제에 대해 명확한 비전을 내놓고 이것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지 않나.
특히 심상정 의원에게 실망이다. 저번에 당원규정을 가지고 당내 문제에 별 생각이 없음을 드러내더니 이젠 우파에 영합하려는 모습까지 보인다. 심 캠프에 있는 이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 사서 들을 만 하겠다. 
  
‘이문세’는 옛사랑, ‘이영훈’만 담았어요 (한겨레, 김미영 기자 김경호 기자, 2007-04-29 오후 07:11:18))
작곡가 이영훈 인터뷰…히트 자작곡집 ‘옛사랑2’ 발매
 
  
ㅇ 5. 1 (화) 2:00
 
- 아마 마녀유희를 한번쯤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아래 오마이뉴스 기사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마녀 유희? 마녀 다 죽었다. 성이 마씨라고 마녀면, 성이 소씨면 소녀냐?" ㅋㅋㅋ
   
'마녀유희'가 아니라 '무뇌유희'? (오마이뉴스, 조은미(cool) 기자, 2007-04-30 15:42)
[조은미의 비틀어뷰] 드라마 <마녀유희> 유감
       
사랑받는 여자는 요리하는 여자라는 공자님 같은 이야길 연애 코치라고 코치한다. 그리고 마유희는 족히 30년은 묵힌 까칠함은 된장 발라 끓여먹었는지, 나긋나긋 빨리도 세뇌 당한다.
  
채무룡이 말하는 마유희 변신 테마는 단순하다. '얼빡이'를 만나서도 "마빡이도 아니잖아요?"라며 직설적이고 거침없던 말괄량이 마유희 길들이기다. 남자에게 나긋나긋한 여자 만들기다.
 
   
ㅇ 5. 1 (화) 밤 11:00
  
- 오늘은 노동절이었다. 하지만 대학로 집회에 나가지 않았다. 심사가 약간 뒤틀린 것도 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창원에서는 615기념으로 하는 통일축구대회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사이좋게 치뤘다고 한다. 작년 노사관계 로드맵을 가지고 싸웠던 것은 다 잊었는지... 하긴 이석행 집행부 앞에서는 "오로지 통일만이 살길이어라"이겠지.
  
이재영 레디앙 기획위원이 이와 관련된 기사를 썼다. 당연히 할 만한 문제제기이지만, 차라리 민주노동당에 있을 때 이런 문제의식으로 한판 붙었어야 하지 않는가. 즉 약간은 뒤늦은 문제제기라는 것이다. 노동절 때, 11월 노동자대회 때 이러한 것들이 문제된 적이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조차 없다. 민족순혈주의와 우리민족제일주의에 대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고, 그에 대해 다 나름의 판단을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 사람들은 레디앙까지 와서 읽지 않는다.
 
이재영의 글을 보면 그 동안 묵혀두었던 아이템들을 하나하나 꺼내놓는 느낌이다. 그 아이템들이 언제까지 나올까. 그리고 아이템을 내놓는 것에다 실천적인 방안에 대해서도 얘기했으면 한다. 항상 그는 무엇인가를 비판하는 입장에 설 뿐 이를 대체하는 그 무엇인가를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비판할 꺼리가 없다. 뭐, 기자라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쌍거풀 잡종인 나는 항거한다 (레디앙, 2007년 05월 01일 (화) 08:10:52 이재영 기획위원)
노동절에 민족순혈주의와 우리민족제일주의를 고발하며

   
ㅇ 5. 2 (수) 새벽 1: 00
 
- 그랬나? 결과 나온 것 보고 여기에 맞춰 꿰맞춘 것 같은데... 
  
개그프로 단골시청 10~20대 아닌 30대 (경향신문, 2007년 05월 01일 18:08:03)
   
30대 시청률이 오른 것은 최근의 ‘개그코드’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를테면 ‘개그콘서트’의 ‘같기도’ 코너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모호함, 혹은 정체성의 혼란을 희화화한다. “이건 춤도 아니고 무술도 아니여” “이건 우는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니여” 등의 개그가 일상생활 속에서 회자되기도 한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는 “30대가 개그 프로그램 주시청자라는 사실에 공감이 간다”면서 “요즘 개그 프로그램들이 인간관계나 조직을 풍자한 것이 많은데, 30대야말로 이런 문제를 민감하게 느낀다”고 설명했다. 황교수는 또 “개그작가 한두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동창작으로 소재를 찾으면서 이런 식의 세태 풍자적인 개그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ㅇ 5. 2 (수) 10:00
 
- 미 복음주의 본산 풀러신학교 리처드 마우 총장과 관련된 기사가 한겨레에 나왔다. 답변내용으로 보면 상당히 개방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오랜만에 한국에 왔으니 듣기 좋은 말을 한 것이 아닐까. 어차피 미국의 복음주의야말로 부시 정권을 뒷받침하는 튼튼한 지주 아니던가. 
   
“예수천국 불신지옥 전도 당혹스럽다” (한겨레, 조연현 기자, 2007-05-02 오후 05:33:54)
미 복음주의 본산 풀러신학교 리처드 마우 총장
“교회가 한 건물 안의 절 간판 치우는 건 비문화적“
한가족 안 다른 종교인들 섞어있을 때 해법도 제시
    

ㅇ 5. 3 (목) 새벽  
   
- 반복되는구나. 쇼를 해라.    

또 다시 무대에 서지 못한 수도권지역율동패 (참세상, 이꽃맘 기자, 2007년05월02일 13시44분)
“노동절 무대에서 못 만났지만 투쟁의 거리에서”
  
   
ㅇ 5. 5 (토) 8:40   
   
-   이틀간 정말 집에서 뒹굴뒹굴 징하게 했다. 자포자기인가. 그래도 메신저도 안하고 나름대로 정신자세는 되어 있는데...
오늘은 지금이라도 연구실에 가야겠다. 이틀동안 제대로 하면 뭐가 나올까. 될대로 되라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5/05 08:52 2007/05/05 08:52

댓글1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Newer Entries Older Entries

새벽길

Recent Trackbacks

Calender

«   2026/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