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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의 미 상원 최초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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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의 기사가 연합뉴스에 보도된 다음 갑작스레 버니 샌더스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제도언론이 주목하지 않아 새삼스럽게 느껴질 뿐 그는 이미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인물이다.

  

그는 2004년 1월에 MBC에서 방영했던 신년 특별기획 10부작「세계의 국회의원」에서 소개된 적이 있다. 「세계의 국회의원」은 세계의 모범적인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살펴보고 바람직한 국회의원상과 그들을 통해서 이뤄야 할 정치문화를 돌아봄으로써 우리 정치문화의 개선방향을 찾아보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거기에 미국의 국회의원을 다루면서 '버몬트주는 왜 버니 샌더스를 선택했나'라는 제목으로 10번째로 소개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사회주의자였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으리라. 물론 나조차 '미국의 국회의원인데' 하면서 그냥 넘어갔다. 거기 프로그램의 소개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사실 그의 시장으로서의 활동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진보정치연구소의 장석준 동지가 민주노동당 영등포위원회 소식지 9월호에 기고한 아래 글을 참고하라.

 

올해 3월에는 샌더스 의원이 시장을 지냈던 벌링톤 시에서 20년만에 다시 좌파시장이 당선되었다. 샌더스 의원이 속한 버몬트진보당 소속의 밥 키스 후보가 선호투표제를 통해 시장으로 당선된 것이다. 버몬트진보당은 현재 주 하원의원 6명과 시의원 4명을 보유하고 있는 등 만만치 않은 세력을 과시하고 있다.

 

버몬트 주는 상원의원으로 무소속인 제임스 제포즈 의원이 있었는데, 이번에 그가 은퇴하면서 공석이 되었고, 그 자리를 두고 샌더스 의원이 나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공화당, 민주당이 아닌 명실상부한 제3의 후보는 아니다. 이번 버몬트 상원 프라이머리에서 민주당의 후보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공화당의 백만장자 기업인 후보와의 대결에서만 승리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사회주의자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상원에 진출하게 된 사실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반드시 상원의원이 되어서 미국에서 좌파적인 의정활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기대한다.

 



진보정치의 씨앗은 지역에서부터!

    
지금 미국 하원에는 단 한 명의 무소속 의원이 있다. '버니'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버나드 샌더스 의원이 그 사람이다(그는 2004년 MBC-TV의 다큐멘터리 '세계의 국회의원'을 통해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그는 원래 '버몬트 진보당'이라는 진보정당 소속이지만 이 당은 미국 북동부의 작은 주 버몬트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연방 하원에서는 공화당도, 민주당도 아닌 무소속으로 대접받고 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하원의 유일한 무소속 의원이 아니라 유일한 진보 의원인 것이다.
  
진보정치의 불모지인 미국에서 어떻게 지역의 작은 진보정치세력이 연방하원에까지 진출할 수 있었을까? 그 이면에는 지방정치에서의 오랜 투쟁의 역사가 있다. 버니 샌더스는 1981년부터 1986년까지 6년간 버몬트 주 벌링톤 시의 시장으로 있었다. 버몬트 진보당이 만들어지고 그가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된 것은 모두 이 때의 성과 덕분이었다.
  
- 벌링톤 인민공화국!
  
벌링톤 시는 샴플레인 호수라는 커다란 호수를 끼고 있는 아담한 도시다. 그런데 1981년 이 도시의 시장 선거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텃밭이던 이 곳에서 무소속 시장 후보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것이다. 그는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사람이었고,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고 다니는 말썽꾸러기인 데다가, 벌링톤 시에는 별다른 연고도 없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시장에 당선될 수 있었을까? 우선 노동조합의 열렬한 지지가 있었다. 민주당 소속의 전임 시장은 공무원 노조·소방관 노조·경찰관 노조를 무시하고 억눌렀다. 이에 반발한 공공부문 노조들이 샌더스를 공개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또 다른 승리의 요인은 부동산 개발 문제였다. 80년대 들어 미국 전역에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면서 벌링톤 시에도 공장이 하나 둘 문을 닫고 반면에 투기 자본이 부동산 쪽으로 몰렸다. 특히 샴플레인 호반에 콘도미니엄 건설 열풍이 불었다. 벌링톤 시의 서민들은 아름다운 고향 산천이 부자들의 돈놀이 판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샌더스 후보는 이러한 열망을 앞장서서 대변했다.  
  
샌더스의 당선은 너무도 극적인 것이었다. 민주당 후보와의 차이는 불과 12표밖에 되지 않았다. 그가 당선되자 버몬트 주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의 언론들이 들끓었다. 그 중에는 '벌링톤 인민공화국'이 들어섰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더욱이 이 때는 레이건 공화당 정부의 등장과 함께 보수화의 거센 파도가 미국 사회를 삼키던 무렵이었다.  
  
- 레이건의 미국에서 사회주의를 꿈꾸다
  
샌더스의 첫 임기(미국 자치단체장의 임기는 대개 2년이다)는 보수적인 시의회와의 투쟁으로 점철됐다. 시의회 내에서 시장의 지지자는 단 2명뿐이었다. 시의회의 승인이 필요한 사업은 거의 시도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의회의 승인이 필요 없는 사업에만 겨우 손을 대는 형편이었다.
  
결국은 대중의 힘으로 보수세력을 압박하는 수밖에 없었다. 샌더스 시장과 그 지지 세력은 우선 독자정치조직(버몬트 진보당의 전신)을 따로 만들었고, 지지 대중을 모아 '페어플레이를 위한 시민위원회'라는 시민조직도 만들었다. 샌더스 시장은 지지자들과 함께 시 곳곳을 누비며 보수세력을 비판하고 진보적 정책을 홍보하는 리플렛을 돌리기도 했다.
  
1983년의 시장 선거에서 샌더스 시장은 52%의 득표를 기록하며 재선됐다. 또한 시의회에서도 진보세력이 13석 중 6석을 차지해, 비록 과반수는 아니지만, 조례 제정을 주도할 수 있게 됐다. 이제 한껏 탄력을 받은 진보 시정부는 주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진보적 개혁 정책들을 추진했다.  
  
무엇보다 야심찬 것은 부동산 정책이었다. 샌더스 시장은 시청 안에 '지역사회개발청'(CEDO)이라는 부서를 새로 만든 뒤 샴플레인 호반에 대한 공영 개발을 추진했다. 공영 개발의 원칙은 계획 단계에서부터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새로 건설된 주택은 부유층·중간층·서민층에게 각각 1/3씩 분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샴플레인 호반에는 부유층만을 위한 위락시설 대신 호반 시민 공원과 주거 단지가 들어섰다. 이외에도 '토지신탁기금'을 설립해서 1가구 다주택 소유자들로부터 집을 사들여 노동자 가정에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임대하기도 했다.
   
지역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기 위한 각종 문화정책도 실시됐다. 그 중에는 지자체 차원에서 니카라과 혁명 정부와 자매 결연을 맺는 사업도 있었다. 레이건 연방정부는 니카라과 혁명을 무산시키기 위해 무력 개입을 일삼는 와중에 벌링톤 시는 니카라과의 민중에게 연대를 표시한 것이다.  
  
- 지역의 성과로 이제는 상원으로
  
샌더스 시장의 임기는 1986년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것으로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버니 샌더스 자신이 하원에 진출했을 뿐만 아니라 진보당은 버몬트 주의 유력한 정치세력이 됐고 지금도 벌링톤 시의 여당이다.
  
더 나아가 버니 샌더스 의원은 내년 선거에서 버몬트 주 상원의원에 도전할 계획이다. 만약 이 도전이 성공한다면 이제 미국 상원에도 '사회주의자' 의원이 생기게 된다. 한 작은 지역에서 시작된 진보정치의 물줄기가 부시와 네오콘과 기독교근본주의의 미국에 희망의 수맥을 뚫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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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최초 사회주의자 상원의원 탄생 박두 (연합뉴스 2006-11-02 오후 5:50:11)
버몬트주 샌더스 하원의원…"이변 없는 한 당선"
  

    

  미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오는 7일 중간선거에서 사회주의자 상원의원이 탄생할 전망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의 인터넷판이 2일 보도했다. 화제의 인물은 버몬트 주의 유일한 연방 하원의원이자 8차례 하원의원에 당선된 버니 샌더스(65.무소속) 의원. 그는 이번 버몬트 주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지금까지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이변이 없는 한 무난하게 당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신문은 전했다.
  
  샌더스 후보는 민주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20년 전에는 사회주의라고 하면 사람들이 소련 또는 알바니아를 생각했으나 이제는 스칸디나비아를 생각한다"며 "버몬트 주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민주사회주의를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그러나 "자유주의자"라는 말이 모욕으로 여겨지는 미국내 풍토에서 민주사회주의가 상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적은 없다며 1930년에 에밀 사이들이 6%의 지지를 얻은 게 최상의 성적이라고 덧붙였다.
  
  샌더스 후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 ⓒ 쿠키뉴스
  보수 성향의 버몬트 싱크탱크인 에탄 앨런 연구소의 존 맥로리 소장은 샌더스 후보를 과거 회귀주의자로 거론하면서 "그는 낡은 사상을 가진 1930년대의 사회주의자이고 계급투쟁을 신봉하는 선동정치가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버몬트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개리슨 넬슨은 뉴욕에서 온 무일푼의 웅변가였던 샌더스 후보가 냉전기인 1981년에 벌링턴 시장에 당선됐을 때 (사회주의자와 관련해) 경고음이 울렸었다고 회고하면서, "그는 정파, 매력, 돈 등 통상적으로 정치적 성공과 연계된 요소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버몬트주의 불만계층에게 다가서는 방법을 터득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샌더스 후보는 당시 벌링턴 시장으로서 시 정부가 활기를 되찾도록 하고 샹플레인 호수와 인접해 있는 벌링턴 선창가를 침체에서 탈출, 재건의 길로 이끌었다. 현지 언론인인 피터 프레인은 "그는 벌링턴시에 귀를 열어놓은 인물"이라고 평했다.
  
  샌더스 후보도 "시장으로서 정부가 기업이 아닌 근로자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며 그게 바로 의원에 당선될 수 있었던 바탕"이라면서 (자신의) 거듭된 당선은 미국 내에서 불평등, 빈곤심화, 의료보험 접근 축소 등으로 인해 불만족 층이 확대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샌더스 후보는 "북부 유럽의 민주사회주의 모델로부터 배울 게 많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이라크 만이 중요 이슈는 아니며 중산층의 축소, 빈부 격차의 확대,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미국내 유년층 빈곤 비율 등이 바로 미국의 불명예"라고 지적했다.
  
  샌더스 후보는 지난 6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위한 한국 원정대의 워싱턴 시위에 참석해 FTA 반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또 미 연방수사국(FBI) 등이 대(對) 테러 조사를 위해 도서관이나 서점 이용객의 독서기록을 확보하기 위해 비밀 연방 정보법원을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관련 법안 개정을 추진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美 사회주의자 첫 상원 진출? (경향신문, 유신모 기자, 2006년 11월 02일 18:31:22)

  

미국 버몬트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버니 샌더스 후보(65)는 미국 정계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민주적 사회주의자’이다. 그러나 그는 이번 선거에서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큰 이변이 없는 한 미국 정치사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30년이 넘는 정치이력을 쌓는 동안 샌더스 후보는 1971년 ‘베트남전쟁 반대 자유연합당’이라는 정당에 잠깐 몸담았던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무소속으로 활동해왔다. 그렇다고 그가 영향력 없는 무명의 정치인은 결코 아니다. 그는 냉전 전성기이던 81년 버몬트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벌링턴 시장에 당선돼 당시 크게 화제를 불렀다. 벌링턴 시장을 연임한 그는 94년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이후 지금까지 16년간 그 자리를 지킨 미국 유일의 8선 현역 의원이다.
    
그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가난한 이주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지금도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을 역설하고 있으며 미국 사회에서 계층간 불평등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64년 시카고대학을 졸업한 뒤 버몬트로 이주해 한때 목수, 언론인 등으로 일하기도 했다. 사안에 따라 민주·공화당과 연대하는 정치적 융통성을 보여왔다.
  
행정부의 애국법 제정에 대해 민주당과 공조해 반대 입장을 밝혔으며, 지난 6월 워싱턴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1차 본협상이 열렸을 때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FTA의 폐해와 졸속 추진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美 첫 ‘사회주의자 상원’ 나오나 (서울신문, 이세영 기자, 2006-11-06 15면)

  

좌파정당의 불모지 미국에서 60대 사회주의자의 ‘1인 혁명’이 결실을 맺고 있다.

미국 역사상 첫번째 ‘사회주의자 상원의원’을 노리는 버니 샌더스(65) 버몬트주 하원의원이 주인공이다. 그는 중간선거를 나흘 앞둔 현재 라이벌인 공화당의 백만장자 기업인 후보를 여유있게 앞서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일 현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사고만 없다면 샌더스와 상원의 ‘운명적 조우’는 무난할 것”이라면서 “그의 성공은 미국정치에 대한 전통적 학설들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200년이 넘는 미국의 정당정치사에서 사회주의 정당과 정치인들은 견고한 제도권의 벽 앞에서 번번이 좌절해야 했다. 상원의 보수성은 특히 심각해 역대 선거에서 사회주의 후보 가운데 가장 선전한 경우가 1930년 6%를 득표한 에밀 세이덜일 정도다.

  

특이한 점은 샌더스의 `정치기술´에 대한 평가가 지지자들이든 반대자들이든 한결같이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디서나 자신이 사회주의자란 사실을 자랑할 만큼 ‘뻔뻔’스러우며, 고집불통에 툭하면 장광설을 늘어놓는 등 사교감각이 ‘제로’에 가깝다는 평을 듣는다.

  

버몬트대 정치학과의 개리슨 넬슨 교수는 “‘자유주의자’라는 말조차 모욕으로 받아들여지는 미국 사회에서 돈도 없고 소속 정당도 없는 데다 특별한 신체적 매력도 없는 그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학문적 연구대상”이라고 말했다.

      

미 버몬트주, 20여년만에 좌파시장 (레디앙, 윤재설 기자, 2006년 03월 10일 (금) 10:56:02)
밥 키스 진보당 후보 공화․민주 후보 제치고 벌링턴 시장 당선

   

‘진보정치의 무풍지대’ 미국의 한 도시에서 좌파시장이 탄생했다. 버몬트주 벌링톤시에서 지난 7일(현지시간) 실시된 시장선거에서 버몬트진보당의 밥 키스 후보가 시의원 출신의 공화당 후보, 주 상원의원 출신의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시장에 당선됐다.
  
인구 20만의 벌링턴시는 연방 하원의원으로는 유일하게 무소속인 버니 샌더스 의원이 지난 1981년부터 6년 동안 시장으로 일했던 곳이다.
  
벌링턴시에서 처음으로 선호투표 방식으로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키스 후보는 1차에서 39% 득표율을 보이며 민주당의 힌다 밀러 후보(31%)와 공화당의 케빈 컬리 후보(26%)를 제쳤다. 3위 이하 후보자들을 선택한 유권자들의 2차 선호투표 결과를 1, 2위 후보들의 표로 합산한 결과 키스 후보가 54%를 득표해 당선이 확정됐다.
  
소도시에 불과하지만 벌링턴시의 이번 선거는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을 받았다. 먼저 미국에서 선호투표제가 시장선거에서 처음으로 채택됐다는 점이다. 선호투표제는 미국 내에서 정치개혁의 방안 중 하나로 유력하게 제시되고 있는 선거제도이다. 특히 버몬트 주지사 출신으로 지난 대선에 민주당 예비선거에 출마했던 하워드 딘 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이 선호투표제 도입을 강력히 주창하고 있다. 이 제도는 샌프란시스코의 몇몇 공직선거에서 사용되고 있고 미시간주와 워싱턴주의 몇몇 소도시에서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의 의미는 미국정치의 공화-민주 양당구도가 한층 더 공고해지면서 제3당 운동이 힘을 잃어가고 있는 가운데 진보정당이 승리를 거뒀다는 데 있다. 버몬트진보당은 버몬트주 안에서만 활동하고 있지만 미국내 제3당 가운데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1981년 무소속의 버니 샌더스가 시장에 당선된 이후 그의 지지자들이 결성한 진보연합(Progressive Coalition)에 기원을 두고 있는 버몬트진보당은 현재 주 하원의원 6명과 시의원 4명이 의정활동을 펴고 있다.
  
버몬트진보당의 강령에는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정의와 지속가능성의 증진”을 당의 목표로 규정하고 있다. 또 “인간의 노동은 부를 창출하는 열쇠”이고 “우리는 막대한 부가 소유나 신분에서 나온다는 거짓된 정의에 도전한다”거나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는 핵무기를 철폐하고 군비지출은 인류의 필요에 따라 재고돼야 한다”는 등의 급진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한편 오는 4월에 시장으로 취임하게 되는 57세의 밥 키스 당선자는 대학 졸업 후 평화봉사단에서 활동을 했고 베트남전 당시 징집영장을 받자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던 전력을 갖고 있다. 이후 벌링턴시에서 빈민운동을 하다 지난 2000년 버몬트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시장으로 재임한 샌더스 의원은 보수언론과 우파세력들의 공세 속에서 공공지출 확대, 부동산 투기 억제 등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키스 당선자 역시 이번 선거에서 해안가 호화주택 건설 반대, 좋은 일자리, 충분한 의료보장, 생활임금 등을 약속했다. 20여년만에 다시 돌아온 버몬트진보당의 지방자치 실험이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관심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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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4 16:26 2006/11/0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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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회주의와 한국에서의 좌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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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현장에서 미래를] 제124호의 기획기사 중 박영균의 글을 읽었다. 시간도 없고, 글이 상당히 긴 까닭에 나중에 읽으려고 했는데, 글의 중간에 전진을 비롯한 좌파 정치조직에 대해 언급해 놓은 것이 보여 마저 읽게 된 것이다.

 

읽은 소감은 나름의 얻은 것이 있었다는 점이다. 좌파들의 동향을 파악했다는, 그런 점이 아니라, 21세기 사회주의 모색에 있어서 생각할 꺼리를 얻은 것이 그 성과이다. 아래에 발췌한 것은 의미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옮겨온 것이다. 

 

좌파들에 대해 소개해놓은 것을 보면 전진은 맨 오른쪽에 있다. 그래도 그 틀 안에 넣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하긴 나중에 결론부분에서는 전진은 빼고 나머지 세력들을 가지고 논하고 있다. 한줌도 안되는 그런 세력들을 가지고...

  

각 세력의 영향력이나 현장장악력, 또는 활동성 등을 기준으로 할 필요는 없지만, 이러한 사항을 무시하고 글을 쓰다보니 스스로 좌파라고 주장하는 써클들까지 모두 호명하여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각 조직의 개별 성원들을 인터뷰하는 등의 노력 없이 단지 제출된 문건만을 중심으로 파악하다보니 그 정체성을 엉뚱하게 파악하고 있거나 잘못 분류하는 오류를 보이고 있다. 사회진보연대나 전진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정파운동의 분석을 제외하고 원론적인 입장은 유의미해 보인다. 이런 식의 모색을 전진에서도 하고 있고... 하지만, 원론을 제출함에 있어서 제기되는 문제들은 간과하고 있지 않나 싶다.

  

인터넷에 올려진 [현장에서 미래를] 원고만을 보다 보니 각주 처리나 분류 등을 제대로 알 수 없다. 현재 형성되어 있는 좌파의 전반적인 정치적 정체성의 도식화는 지나치게 도식적인데다가 제대로 오해에 기반해 있으며, 웹상으로는 잘 구분되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웠다.

 

길어도 한번쯤은 읽어볼 만한 글이다.  



21세기 사회주의와 한국에서의 좌파운동

박영균 / 연구원, 건국대 강사, 현장에서 미래를 제124호(2006년 11월호)

정치학적 문제 설정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두 가지 문제의 지점을 보여준다. 첫째, 스탈린주의에서의 국가=당독재라는 전체주의적 권력의 형성은 ‘계획’이라는 근대적인 이성의 권력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근대적 이성이 추구하는 합리주의와 계몽적 사고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그것은 근대 계몽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반민주적이며 엘리트주의적이다. 둘째, 이행의 본질적 문제는 계획의 산술적 합리성이 아니라 이미 정치화된 경제의 정치적 성격에 근거한 국가권력을 수립하는 문제라는 점이다. 스탈린적 정당은 이와 같은 경제의 정치적 성격을 엘리트적인 이성들의 합리적 계획으로 바꾸어 놓았다.

  

혁명 이후 국가권력이 부르주아 국가장치라는 물질성에 근거한 국가권력이 되지 않기 위해서, 실질적인 인민적 권력, 또는 생산자들의 권력이 되기 위해서는 이미 혁명 당시에 부르주아 국가장치를 대체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의 권력 장치, 프롤레타리아의 이해와 이데올로기가 각인되어 있는 장치들이 사회 곳곳에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기존의 낡은 부르주아적 국가장치를 완전히 대체하고 새로운 권력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은 곧 사회화된 생산자들의 직접 통치 형태로 물질화된 국가장치의 맹아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자들은 자기 스스로 사회 전체의 생산-유통-분배를 장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자들 자신이 자기의 생산 근거지와 생활 근거지를 자율적으로 통치하는 코뮌을 구축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국가 권력은 사회적 권력으로 전화할 수 있으며 생산자 자신에 의한 물질적 토대의 장악이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은 곧 생산자들이 경제를 정치로 전화시키며 그들 자신이 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 각각의 코뮌들은 경제를 정치화하는 생산단위이자 생활단위이며 국가는 이런 코뮌들의 자치적 통치 권력이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에서의 권력은 ‘자본’이라는 물질적 힘과 사법기관, 경찰, 군대의 물리력에 의존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에서의 권력은 인민들 자신에 의해서 주어진다. 따라서 사회주의 하에서 가장 중요한 물리력은 인민들이 그 스스로 사회화된 생산력에 기초한 권력을 향유하는 진정한 인민 권력, 생산자들의 권력으로 전화시키는 데에서 발생한다.

  

사회주의 이행에서 ‘민주주의’가 핵심적인 문제 중에 하나인 것은 ‘생산의 사회화’를 이룩하고 사회 전체의 공동체를 운영하는 핵심이 산술적이거나 기계적인 회계가 아니라 민주적인 의사소통과 의견조율, 그리고 상호 이해에 기초한 민주적 합의의 도출이기 때문이다. 최종 결정은 ‘정치’이며 ‘행정공학’과 ‘과학’은 이것에 복무하는 자료 또는 수단에 불과하다.

  

① 탈스탈린주의와 관련하여 ‘국가화’하지 않는 이행 전략을 사고해야 하며 ② 정치변혁에 대하여 사회변혁의 중요성을 포착하여 이 접합의 지점을 찾아내야 하며 ③ 신자유주의 지구화와 함께 형성된 ‘보편성’과 ‘복수화한 다중의 접합’, 그리고 ‘시민·사회운동’을 어떻게 ‘적색화’시키는가 하는 ‘주체형성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유해야 한다. 반면 기존의 변혁이론에서 해체되어야 할 것은 ① 시장/계획경제의 문제설정, ② ‘선정치변혁 후사회변혁’이라는 문제 설정과 더불어 국가에 대한 도구적 관점, ③ 노-농동맹과 같은 계급동맹만으로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를 사고하는 관점이다. 그리고 ‘신좌파적 경향을 가지는 좌파’에서 기각되어야 할 것은 ① 맑스의 변증법을 ‘차이’의 철학으로 대체하는 관점이며 ② 국가권력을 본질적으로 억압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당적으로 반국가적 사회변혁 전략만을 취하는 관점이며 ③ ‘탈’계급적, 노동자계급 중심성 없는, 그래서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의 관점 없는 ‘대중운동’과 ‘보편성’만을 중심으로 변혁을 사고하는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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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3 12:46 2006/11/03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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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기로 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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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조금씩이나마 하루를 정리하면서 보내자고 했으면서 왜 그냥 넘어갔을까.

어제 것부터 정리.

   

ㅇ 수요일(11월 1일)에는 샹님이 취재차 설대에 와서 전화를 했길래 함께 식사를 했다. 완산정에서 오랜만에...

모주를 마신 적이 있었던 듯한데, 나는 마시지 않았다.

함께 술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ㅇ 미진씨가 정보인권지수 테스트용 설문지를 부탁하였다. 내가 강의를 하고 있으면 그래도 쉽게 설문지를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모양이다.

아무튼 대학원생들에게 말하면 가능할 듯하여 20부 정도 받도록 하겠다고 하고 응했는데, 오늘 주연씨에게 부탁하여 돌리고, 개인적으로 알음알음하여 20부는 채운 것 같다. 역시 인간관계는 넓고 봐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를 시민행동에 보내나.

참, 설문지를 보냈더니 나보고 시민단체에서 일하냐고 묻는다. 그냥 회원일 뿐이라고 했는데, 이런 질문들이 나오는 걸 보면 정말 행정대학원 학생들은 세상사에 관여하지 않나 보다.

  

ㅇ 1일 밤에는 집에 왔더니 인터넷이 안되는 거다. 몇번 재부팅해도 마찬가지. 아침에 다시 했어도 안되고...

10여번 전화끝에 관악인터넷에 전화연결이 되어 수리를 부탁했다. 내일로 미루는 것을 시간이 없다고 하여 저녁 때 오라고 하여 수선을 했는데, 모뎀이 문제였다.

모뎀을 바꾸니 가뿐하게 연결이 된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쓰고 있고...

   

이번 기회에 아예 인터넷을 끊어버려 하고 생각하다가 참았다. 사실 밤에 집에 와서 생산적인 인터넷 사용을 별로 해본 것 같지 않은데...

    

ㅇ 2일 학교에서 기관지가 올 때가 되었는데 하고 생각하면서 집에 오니 기관지가 와 있다. 내 글이 이렇게 길 줄이야... 다시 읽으면서, 그리고 다른 동지들의 글과 비교를 하면서, 쪽팔리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전진]의 질을 몽땅 떨어뜨리는구나 싶은...

[현장에서 미래로]의 글을 읽으면서 더욱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불문가지.

당분간 내 전공 말고 다른 쪽은 삼가는 게 좋겠다.  

    

ㅇ 출 퇴근 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정리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알찬... 문제는 집에 도착하거나, 연구실에 도달하면 그 때 생각했던 것을 모조리 망각한다는 것.

트윈픽스던가 거기 나오는 수사관이 자신의 수사내용을 모조리 녹음하던 것이 기억난다. 나도 언뜻언뜻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놓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는데...

  

ㅇ 나남에서 책 출판 문제 때문에 전화가 와서 11월 중순까지 수정내용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가능할까. 그 전에 다른 일처리가 제대로 끝나야 할 텐데...

정말 10월,11월은 항상 왜 이리 바쁜 거냐. 그런데 난 어영부영하고만 싶고...

ㅇ 엔엘들에게 갈수록 짜증이 난다. 이넘들이 과연 동지일까.

말도 안되는 궤변을 늘어놓는가 하면, 말돌리기는 어떻고...

반미, 공안탄압, 동지, 국가보안법 철폐... 좋은 말들이 이 넘들 때문에 오염된다.

  

기억해두련다. 민주노동당 당게에서 활동하는 꼴통들.

북의 핵실험, 그리고 간첩단 사태 정국에 새롭게 등장한 꼴통들이 많다. 지령이라도 받았나 보지. 또 아뒤를 바꿀지 모르지만, 그 행적은 계속 남으리라.

진공청소기, 바위처럼~, 김호철, 단비숲, 바로걷기, 강철노동자, 행진, 타짜, 나무늘보, 새누리, 꽃들, 영원한봄(이재희), 뒤집기, I♥KDLP, 삼현, 주몽, 진정371, 오한강, 최석희, 개척정신, 빗자루, 아르템스, 명동, 팔봉산... 이 정도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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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3 03:56 2006/11/03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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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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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에 이런저런 글들을 읽으면서 도대체 내가 뭘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역량으로 뭘하려고 했단 말인가.

기관지에 쓴 글은 아무리 봐도 쪽팔리는 것이다.

의식의 성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답보상태에 있는 상황은 뭐라고 해도 내 자신의 게으름의 소산이다.

 

무슨 핑계를 대든지간에 기관지위원회에서 손을 털어야겠다. 그리고 대안사회팀에서도 이번 재벌문제 발제 이후에는 빠질 필요가 있다.

오프에서의 모임은 이제 되도록 단절해야 한다. 멀티도 능력이 되는 넘이 한다.

 

2.

집과 연구실에 쌓여져 있는 책들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이것들을 언제 읽고 정리하나.

아니 읽어도 제대로 읽어야 할 것 아닌가. 봐도 무슨 내용인지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그러면서도 헌책방과 인터넷 서점을 왔다갔다 하면서 쓸만한 책이 있으면 '언젠가는 보겠지'하면서 사버리고, 도서관에서 원서를 빌려 제본하는 행태는 지금의 내 형편으로 볼 때 그리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내가 지금 그렇게 이것저것 기웃거릴 때가 아니지 않은가.

  

3.

하지만 지금도 엉뚱한 글을 읽고 있다. 젠장... 사실 이 글을 쓰는 것도 그 글을 읽으면서 생긴 자학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4.

다음주까지 프로포절을 할 수 있을까. 대충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논문계획서를 쓰는 것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이 고민하고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모욕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좀더 일찍했어야 하는데...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빨리 학위를 받고 뭔가 하기를 바라는...

그런데 문제는 실속이 없기 때문인지 학위를 받는 게 꺼려진다는 점이다. 지금은 학위가 없다는 것으로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곤 했는데, 그리되면 방기가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5.

오늘부로 한 사람을 타겟에서 지웠다. 빨리 뭔가 운을 띄웠어야 하는데, 대쉬한 사람이 있었나 보다. 용기의 문제일까. 이렇게 놓친 것이 벌써 3번째이다. 물론 혼자 김칫국을 마시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하긴 얼마 전에 한번 뭔가 해보려다가 외면받지 않았던가. 이런 경험들이 자꾸 자신감을 앗아간다. 게다가 정보의 문제도 있고... 이래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니까...

  

올해 내로 다시 대쉬한다. 안되면 말고... 나로서는 본전 아닌가.

누가 대쉬해온다면? 설마 그럴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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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3 03:35 2006/11/03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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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민주화 시대, 진보의 대안을 묻는다 (조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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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볼만한 조희연 교수의 글.
아래는 그 중 몇 부분을 발췌.

 

포스트-민주화 시대, 진보의 대안을 묻는다
[한국 사회, 희망의 모색②-전문]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소장)
2006-09-18 15:21 ⓒ 2006 OhmyNews 

 



사실 박정희체제도 자신의 독재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개발을 성취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성취함으로써 개발이 동반하는 새로운 '성공의 위기'에 의해 직면하였고 그것을 적절히 응전하지 못함으로써 붕괴하였다. 마찬가지로 이제 민주세력은 자신들이 주창했던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성취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도전과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동안 사회적 세력으로 국가권력에 대결하면서 투쟁하던 세력에서 자신들이 통치세력이 되어 직접적으로 위로부터(자신들의 요구하는 의제를) 집행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통치엘리트가 된, 그러면서 과거의 반독재민주세력을 계승하는 제도권 중도자유주의정치세력의 문제점이 현재의 위기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보수세력에게는, 혹은 대중에게는 열린우리당을 포함하여 제도권 중도자유주의정치세력이 과거의 반독재 진보세력의 일정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위기는 일정 측면에서 '우리 모두'의 위기로 된다. 중도자유주의정치세력의 붕괴가 급진진보의 대중적 기반의 확대로 나타나면 문제가 없을 텐데, 대중의 눈에서 중도자유주의정치세력과 급진진보 세력 역시 동일한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주도세력이고 동일한 진보적 세력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위기의 '전염성'이 존재한다.
  
국가권력 담당세력으로서 중도자유주의정치세력이 이른바 개혁의제들을 설정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당위성만을 인식하였지 그것을 '헤게모니적'으로 추진하는 데 대한 고민이 부재했다는 것이다. 즉 특정한 개혁의제에 대해서 얼마나 철저하게 그것을 견지하느냐 하는 점만이 사고되었지 복합적 현실 속에서 어떻게 그것을 지혜롭게 추진하느냐 하는 데 대해서는 고민이 부재하였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이나 보수적 정치세력이 하나의 개혁의제에 대해 정략적 '쟁점화'를 시도한다고 할 때 이에 대항하여 역(逆)쟁점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치엘리트로서 보다 원숙한 위치에서 '탈(脫)쟁점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역쟁점화에 매몰됨으로써, 예컨대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의 비판에 동수준에서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일개 신문과 동차원에 놓이게 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반독재 민주세력의 일부가 국가권력 담당자가 되어 있는 이상, 독재 하에서 구축된 보수의 사회적 기반 혹은 조직적 기반을 어떻게 해체시켜 가면서, 현재의 중앙정치의 민주화 수준만큼 보수의 사회적 기반의 민주화를 성취할 것인가하는 것을 고민했었어야 한다.
 
정작 민주화가 되면서는 다양한 진보집단들이 스스로의 경계를 허물면서 보수의 분화를 촉진하고 보수집단의 일부를 포용하는 헤게모니적 실천의 노력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시대정신이 된 국면에서도 독재 시대의 경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행위하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독재에 저항하기 위한 자기희생의 과정에서 '민중'이라던가 운동권이라고 하는 범주가 형성되었다.
 
중도자유주의 통치엘리트나 장외의 급진진보집단 모두가 '경계허물기'를 통해서 외연을 확대하고 헤게모니를 확장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동일한 인식태도(mentality)에서 연유한다.
  
장외의 급진진보세력의 행위양식과 사고양식과 중도자유주의정치세력의 행위양식과 사고양식이 분화・분열되어야 한다. 서로의 '일체감'을 확인하기 보다는, 서로를 '대상화'하고 서로가 상이한 위치에 있음을 인식하고 그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달라져야 한다.
  
문제는 개혁적 의제(비록 굴절되더라도)가 어떻게 사회적인 보수세력의 저항 속에서 그리고 관료적 굴절의 조건속에서 헤게모니적으로 실현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시민단체도 김대중 정부와 동일화될 필요가 없이 의제제기집단으로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좋았고 김대중 정부도 의약분업이라는 의제를 수용하면서도 통치엘리트로서 가능한 문제점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시민단체와는 다른 고려 위에서 의약분업을 추진하는 방식이 좋았을 것이다.
 
의약분업이라는 목표를 시민운동이 제시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최소의 문제를 수반하면서 추진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현실적 고민을 해야 한다. 이는 장외의 시민운동가가 아니라 통치엘리트가 고민해야 하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장외의 사회운동은 '의제의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고, 주어진 현실 속에서 이를 지혜롭게 수행하는 것은 통치엘리트의 또다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거리의 진보투쟁세력은 '단일변수'적 접근을 하면서 의제지형을 확장해간다. 그러나 통치엘리트는 '다변수적' 접근 속에서 의제의 현실적 추진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진보진영 내부에는 바로 이러한 측면에 대한 고민이 없다. 의제를 진전시켜가기만을 바라는 식으로, 통치엘리트들도 사고한다. 그리고 현실이 복잡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원래의 의제를 버리고 보수적 입장으로 급선회한다.
   
통치세력으로서의 의제실현의 복합적인 문제점들을 고민하면서 중도자유주의 통치엘리트와 의제지평을 확장하면서 한국사회의 진보화를 위해서 거리에서 투쟁하는 진보세력으로 분리정립되어야 한다. 그런데 형식적으로는 분화되어 있는 것 같지만, 동일한 인식태도가 존재하는 것을 본다.
  
반독재민주세력의 일부이었던 통치엘리트들의 문제가 부메랑이 되어 진보개혁세력 모두의 문제로 되는 현실을 보면, 오히려 분화되고 분열되고 상이한 태도와 행위양식이 나타나야만이 '부정적인 부메랑' 효과가 최소화될 수 있다. 아니 부정적인 부메랑 효과를 넘어, 보수의 새로운 활성화를 촉진하는 계기를 막아야 한다. 이러한 분리정립의 사고가 장내와 장외의 민주진보세력 모두(각기 다른 형태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일체화된 사고가(특히 시민운동의 경우) 장외의 민주진보세력 내부의 급진성을 역으로 질곡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명확한 분리가 모두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
  
현재의 위기의 핵심적인 구성요소는 포스트-민주화시대의 대안담론이 민주진보진영 내부에 부재하다고 하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맥락 속에서 전개되는 민주화가 역설적으로 투명성이나 민주성을 높였지만, 더욱 악화된 불평등과 경제적 고통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민주적이고 투명한 계급사회'가 출현했다.
  
문제는 이러한 포스트-민주화 시대에 중도자유주의정치세력이나 급진진보세력들이 대중들의 지향을 선도하는 미래지향적 대안과 비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치엘리트로서 당장 실현할 수 있는 중도자유주의적의 프로젝트와 중장기적인 미래비젼을 담는 급진진보적 프로젝트는 분립정립되는 식으로 다양하게 모색되어야 한다.
  
중도자유주의적 프로젝트는 보수세력과 구별되는 중도자유주의세력의 입장에서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결과를 상쇄하는 프로젝트일 것이며, 급진진보세력은 우리 사회의 의식적 진보화를 촉진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자체를 쟁점화하고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속에서 확대재생산되는 전지구적 자본질서를 구조적으로 재편하는 대안적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다원적인 진보가 대중에게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장외의 급진진보세력의 과제의 하나는, 바로 강북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계급의식을 갖도록, 나아가 노동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계급계층들이 정당한 계급의식을 갖도록 계몽하고 의식화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중도자유주의 통치세력들은 현존하는 계급의식의 지형 속에서 어떻게 개혁의제들을 관철할 것인가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
  
민주세력이 성공한 것은 민주세력이 민주주의라는 의제, 민주개혁이라는 의제를 제기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자신들의 희생들과 헌신 속에서 대중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장외의 급진진보세력은 87년 6월 민주항쟁 속에 내재된 의제를 넘는 개혁의제를 대중적 의제로 만들기 위해 전진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정치적 개혁주의는 더 이상 중도자유주의 세력을 보수와 구별시켜주는 진보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중도자유주의정치세력의 '정치적 개혁주의'는 신자유주의에 응전하는 '사회경제적 개혁주의'로 전환해가야 한다.
 
참여정부 이후, 정당개혁·대연정·과거청산·사학법 등 정치적 이슈들에서 개혁성이 표출되었다. 그러나 사실 사회경제적 의제에서 개혁성이 표출된 것이 거의 없다. 비정규직 문제·교육·부동산·보건의료·재정조세 등이 사회경제적 핵심정책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8·31 부동산 정책처럼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에서 더 이상을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정책만이 추진되었을 뿐이다. 악화방지 정책을 넘어서서, 적극적인 사회경제적 정책이 필요하다. 국민정부의 생산적 복지와 다른 참여적 복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바로 이러한 사회경제적 개혁주의를 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참여적 복지는 수사이거나 절차의 문제로 왜소화되어 있다.
  
반세계화투쟁과 반신자유주의투쟁의 새로운 고양 속에서 신자유주의시대의 신개발국가모델이나 새로운 경쟁력 지향적 국가 모델을 뛰어넘어 새로운 공적 기능이 강화된 사회적 국가모델이 모색되어야 한다.
 
급진진보세력은 중도자유주의세력이 신자유주의로 경도되어가는 것을 비판하면서 이를 견인하고 중도자유주의세력의 사회적 성격을 강화하기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의 대중적 기반을 강화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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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1 22:03 2006/11/01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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