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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핵심 갈등구조는 ‘합리와 비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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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은 기존의 관점으로는 정당이나 사회운동 세력 그 어디와도 연결되지 않는 대중들이 촛불시위에 모여드는 현상을 해석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솔직해지자. 촛불시위에 온 이들 중에 많은 수가 '반MB와 노무현 지지'를 외쳤던 이들이었다. 그래서 촛불이 조금만 급진적으로 변하면 그에 반발하였고, 시위현장에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은 금기시되었다. 초기 여중생의 참여, 시위의 독특하고 발랄함 등 몇 가지 특이한 사례가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었던 것 아닌가. 

 

촛불시위에 대한 인상은 이쯤으로 하고, 김정훈 교수의 책에 대해 말해보자. 제목이 <87년 체제를 넘어서>라고 되어 있지만, 과연 87년 체제가 무엇인지, 지금과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성격을 비합리성으로 가득찬 ‘조폭국가’라고 정의하였지만, 이게 정치학적으로 엄밀한 규정인지 의문이다. 그는 위기의 대안을 정당정치, 계급정치, 시민사회운동 등의 복원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합리성, 합리적 진보정당 등을 언급하는데, 한국사회에서 정당정치, 계급정치가 복원될 만큼 언제 제대로 해본 적이라도 있는가.

 

김정훈 교수는 합리성을 '말 바꾸기가 아닌 일관성 있는 논리, 소수에 대한 특혜가 아닌 평등한 기회 제공, 일방적이지 않고 토론이 가능한 소통 등'이라고 표현한다. 역시나 말그대로 상식이라는 것을 바꾼 것에 다름 아니다. 상식, 합리성이라는 용어를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어떠한 계급이 말하는, 누구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냐에 대한 질문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가 평소에 써온 글에 비추어보면 87년 체제를 넘어서자는 것이 과연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최소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수준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문득 그는 왜 진보세력에게만 합리성, 상식을 요구할까, 최근 지방선거에서 유시민, 한명숙으로의 무작정 단일화를 외치는 이들은 배제되는 걸까 생각해본다. 이 책을 읽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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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핵심 갈등구조는 ‘합리와 비합리’” (한겨레, 최원형 기자, 2010-04-28 오후 09:50:13)
기존 체제 논쟁 ‘촛불’ ‘4대강’ 해석 못해
합리적 주체·자발적 네트워크가 새 동력
진보세력과 접합…운동 위기 극복해야
‘87년 체제를 넘어서’ 쓴 김정훈 교수 
 
김정훈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는 기존 관점과는 색다른 갈등구조를 제시한다. 정치사회학 전공자이자 시민사회를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아 온 그는 최근에 펴낸 <87년 체제를 넘어서>에서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갈등구조는 ‘합리와 비합리’라고 풀이한다. 우리 사회에는 보수,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등의 이념이 표현하지 못하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존재하며, 그것은 ‘비합리성’으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나 양극화의 문제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이지만, 미국 쇠고기 수입, 4대강 살리기, 제2롯데월드, 용산참사 등의 문제는 합리와 비합리의 문제다. 
 
26일 만난 김 교수는 “기존의 사회체제 논쟁이 놓치고 있는 부분을 짚고자 책을 썼다”고 말했다. ‘정치적으로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뤄졌지만 사회 양극화의 심화에서 나타나듯 실질적 민주주의는 이뤄지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다. 그러나 복합적인 민주주의의 위기로서 ‘정치의 실패’를 지적한 87년 체제론이나 신자유주의의 심화로 ‘경제의 실패’를 지적한 97년 체제론 모두 시민사회 영역에서의 사회문화적 민주화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문제의식이다. 기존의 관점으로는 정당이나 사회운동 세력 그 어디와도 연결되지 않는 대중들이 촛불시위에 모여드는 현상을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87년을 ‘현대성의 출발’로 보면 더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김 교수는 87년 체제를 분석하며 ‘식민-탈식민’의 접근 방식에 집중한다. 그가 보는 우리 사회의 특징은 ‘식민적 근대화’다. 근대화는 각 사회 영역들이 자율화되고 스스로의 준거논리를 만드는 ‘분화’를 특징으로 하는데, 식민적 근대화에서는 분화뿐 아니라 권위주의 지배 체제가 통치를 위해 분화를 가로막는 ‘탈분화’가 동시에 일어난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도 관치경제가 앞서는 등의 현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때문에 권위주의 지배 체제가 후퇴한 87년 민주화는, 가로막혔던 각 영역의 분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된 ‘현대성의 출발’로 본다.
 
여기서 현대성의 핵심 개념인 ‘합리성’이 등장한다. 87년 뒤로 꾸준한 민주화의 효과로 반공주의·권위주의 등 식민적 근대의 영향이 줄어들면서 합리성이 형성됐고, 정보화의 효과에 따라 강화되어왔다는 것이다. 이때 합리성은 자발적 네트워크에 기대 토론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연고주의 네트워크에 기대 사익을 추구하는 전근대적인 ‘생존적 합리성’과 구분된다. 특히 이런 합리성은 정치·경제 분야보다 민주화가 더 활발히 진행되었던 사회문화적 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이 김 교수의 논지다.
 
합리성이 갈등구조의 핵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를 앞세웠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이어지면서부터라고 김 교수는 말한다. 그는 이명박 정권의 성격을 ‘조폭국가’로 정의한다. ‘고소영’, ‘강부자’로 나타나는 기득권집단의 연고주의 네트워크가 사익과 경제적 합리성을 내세워 다시금 사회 각 영역에 권위적으로 개입하는 ‘탈분화’를 벌인다. 여기에서 비합리성이 전면에 드러난다. 논리적 일관성이 없는 정책, 날마다 말을 바꾸는 행태, 원칙 없는 기득권 감싸기 등은 진보-보수의 갈등으로만 볼 수 없는, 합리-비합리의 갈등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풀이다. 촛불시위가 문제 삼은 것은 정권의 보수성이 아니라 비합리성이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익을 앞세운 비합리적 주체들의 연고주의 네트워크는 굳건한 반면, 자발적 네트워크에 기댄 합리적 주체들은 파편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진보세력 역시 계급 또는 민족 지상주의, 소통 없는 정파 갈등, 조직 이기주의 등 전근대성과 연고적 네트워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운동권 동창회’라는 바깥으로부터의 조소나, 대중이 공감하지 못하는 구호 등이 이를 보여준다. 김 교수는 “정부에 대한 비판이 높아도 야당·사회운동에 대한 지지가 늘어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때문에 그는 위기의 대안을 정당정치, 계급정치, 시민사회운동 등의 복원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대신 ‘진보세력과 합리적 주체의 접합’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정당과 사회운동이 자발적 네트워크와 만나 ‘합리적 진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세력이 추상적인 정치이념을 거두고 일반 시민들이 합의할 수 있는 합리성에만 기대더라도 ‘합리적 진보정당’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다만 과연 무엇을 합리성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의문이 남는다. 실체가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아주 단순한 것’으로 정의한다. 말 바꾸기가 아닌 일관성 있는 논리, 소수에 대한 특혜가 아닌 평등한 기회 제공, 일방적이지 않고 토론이 가능한 소통 등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에서만 출발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은 삶이 가능해지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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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9 20:30 2010/05/2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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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도시-광주민중항쟁과 제헌권력〉조정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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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환의 <공통도시>는 광주민중항쟁이 신자유주의와 맞선 '제헌권력'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5월 광주를 절대공동체로 묘사했던 최정운 교수의 <오월의 사회과학>이 생각나게 한다. 조지 카치아피카스와 자율주의를 가져와서 광주민중항쟁을 설명하는데, 글쎄다. 큰 공감은 되지 않는다.

 

당시 시민군 중에서 기동타격대의 역할에 주목하고 그 동안 주목되지 않았던 이들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의미있다고 보지만,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한 것은 아닌지...

 

그래도 이런 시각을 접해볼 필요는 있을 듯하다. 신문에 실린 서평만으로 재단해서는 안되겠기에 하는 말이다. 언제 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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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중항쟁은 신자유주의에 맞선 '제헌권력'"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2010-05-05 10:17)
 
정치철학자 조정환은 최근 출간된 '공통도시'(갈무리 펴냄)에서 "광주민중항쟁 이후 30년 역사는 정확히 신자유주의 30년 역사"라고 규정하고, 광주민중항쟁 주체들은 이에 맞서는 '제헌권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 근거로 1979~1980년 있었던 여러 저항ㆍ투쟁들과 5.18 직후 미국의 반응을 들었다.
 
박정희 정부는 1979년 4월 '경제안정화 종합시책'을 통해 임금인하와 정리해고, 농산물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이 때문에 삶이 어려워진 노동자와 농민은 투쟁과 저항에 나서는데, 부마항쟁과 YH무역 사건, 사북사태 등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유신 정부의 이런 정책은 이미 신자유주의 정책이며, 이를 유지하고자 12.12 '호헌'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은 신자유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유신헌법과 같은 폭력적 억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한국에서 미국의 신자유주의 축적구조가 시작된 것은 1980년 광주항쟁의 진압 때"라는 미국 사회정치학자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논문 '신자유주의와 광주민중항쟁'과 5.18 직후 당시 주한미국대사였던 글라이스틴이 "한국 경제는 앞으로 시장의 힘에 의지하는 자유화로 나아갈 것"이라고 진단했다는 기고문을 인용하기도 했다. 저자는 민주화운동 세력인 김영삼, 김대중 등의 정권과 뒤이은 노무현 정권 역시 '자본의 세계화'와 '노동의 유연화', '생산의 지식정보화' 등 신자유주의를 위한 '반혁명(反革命. 위로부터 내려오는 혁명)' 세력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광주민중항쟁의 민주시민학생투쟁위원회는 시민의 생명을 짓밟는 주권을 무효로 선언하고 주권을 거부했던 '제헌권력'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제헌권력이란 기존의 낡은 질서를 뒤집어엎고 새로운 법적 규약과 형식을 부과하는 권력을 뜻하는 사법이론 용어로, 저자는 전남도청에 모인 시민군이 자치정부의 성격을 띠었다는 점과 매일 모두가 직접 참여해 다양한 문제를 논의하는 기구가 있었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제헌권력적 요소가 있다고 봤다.
 
저자는 또 시민군이 매일 열었던 궐기대회에서의 회의는 '다중(多衆)'이 참여하는 집단지성의 측면이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제목으로 쓰인 '공통도시'는 지금 사회에서 사실상 '공통어' 역할을 하는 화폐의 권력에 대항해 다른 공통어를 창출할 이상적인 도시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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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 30주년은 신자유주의와 싸운 30년” (경향, 김종목 기자, 2010-05-07 17:50:55)
ㆍ‘공통도시 : 광주민중항쟁과 제헌권력’ 낸 정치철학자 조정환씨
 
“광주 사람들은 지금도 ‘호헌파’가 만들어온 ‘폭도’라는 이미지의 상처를 갖고 있습니다.”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인 정치철학자 조정환은 <공통도시 : 광주민중항쟁과 제헌권력>(이하 공통도시)을 쓴 이유를 묻자 ‘1980년 5월 광주’의 기억과 이미지에 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조정환은 당시 전두환으로 대표되는 호헌파들이 항쟁하는 민중을 ‘난동을 부리는 폭도들’ 즉, 아감벤 식으로 말하면 사회로부터 추방된 ‘벌거벗은 인간’의 이미지로 조작했다고 강조한다.
 
조정환이 보기에 군사정권과 극우세력이 조작한 이미지만 광주에 대한 성찰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호헌파 비판에서 더 나아간다. 즉 80년 당시 김대중·김영삼에서 이후 노무현을 잇는 개헌파가 남긴 유산과 ‘호헌철폐’ ‘김대중 석방’ 같은 몇몇 협소한 이해를 문제삼는 것이다. 바로 <공통도시>의 핵심 논점이며 이전 광주항쟁에 관한 책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조정환은 “개헌파들의 담론은 독재와 민주주의, 군부집권과 민간집권을 대립시키며 진압 과잉성을 문제삼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면서 “그들은 광주를 절차적 민주주의의 침해가 빚은 특수한 사건으로 이미지화했다”고 말한다. 조정환에게 항쟁이후 제도화되고 성역화된 광주는 돌멩이처럼 굳어지고 박제화된 것에 다름아니다. 그는 이어 “개헌파의 담론은 항쟁의 주체들을 희생자로 만들었다”고까지 지적한다. “97년 광주학살 책임자들에게 내려진 철저하지 못한 처벌은 광주 민중을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희생자로 자리매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때부터 5월 운동이 그 힘을 잃기 시작했고, 김대중의 집권은 5월 운동을 종료하는 분기점이 됐다”는 것이다.
 
“항쟁 과정에서도 개헌적 입장이 있었죠. 지식인·학생이 주축이던 시민수습위원회와 학생수습위원회는 무기회수와 반납으로 시민군의 무장을 해제해 계엄군의 관용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계엄군의 포위·공격 속에 인간적 존엄을 걸고 싸우는 민중들을 설득할 수 없었죠.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민주시민투쟁위원회에 길을 비켜주어야 했습니다.”
 
그해 5월21일 최초로 편성된 120명의 시민군 대부분은 공장·건설 노동자, 목공, 구두닦이, 웨이터, 일용품팔이 노동자였다. “당시 광주의 다중들은 국가에 대한 의무를 거부하며 자신들을 권력주체, 즉 ‘제헌권력’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분석한다.
 
조정환의 문제 의식은 신자유주의 문제로 확장된다. “박정희 정권 때 석유 위기에 맞물려 중화학 공업화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마산·창원 지역에 집중되었던 중화학 공장들에서 정리해고에 맞서 부마항쟁이 일어났고, 이 항쟁은 사북·고한에서의 광산노동자 투쟁, 그리고 광주민중항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조정환은 이 지점에서 당시 항쟁주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광주 민중들은 표면 의식에서는 권위주의 정부, 유신헌법, 계엄군에 대항해 싸웠지만 몸과 정동(情動)으로는 이미 신자유주의화에 맞서 싸우는 전위투사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민중을 넘는 새로운 주체성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에 의해 강요된 신자유주의 축적 구조가 한국에서 시작된 것이 광주항쟁 진압이었다”(조지 카치아피카스)는 분석처럼 5·18을 전후해 미국 자본이 본격적으로 들어온다. 신자유주의의 침투는 향후 30년간 지속되고, 개헌파 집권 이후 본격화된다. 그는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는 돌출이 아니다”라며 “박정희·전두환 정권에서 실험되고, 김영삼 정부에서 추진되고,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본격화된 정책의 연속이자 결론”이라고 말한다. “결국 광주항쟁은 개헌파에 의해 대의되어 신자유주의 이행에 필요한 민주 에너지로 편입된 것이죠. 김대중·노무현도 신자유주의의 부속품이었습니다.”
 
‘폭도’ 이미지는 여전히 재현된다. 그는 “정권과 극우언론은 쌍용자동차 옥쇄 파업을 벌인 노동자들을 좌익폭도로 기호화하면서, 광주시민군의 좌익폭도 이미지와 겹쳐놓았다”고 말했다. ‘포위된 광주’는 ‘포위된 쌍용자동차’ ‘포위된 용산’으로 재현되고 있다는 게 조정환의 시각이다.
 
신자유주의 이행 과정에서 광주는 ‘해방도시’에서 ‘개발의 꿈속에서 빠르게 부패해가는 혁신도시’로 뒤바뀌었다. 책 제목이기도 한 ‘공통도시’는 혁신도시로부터의 탈주다. “80년 5월22~27일 사이 나타났던 광주시민의 자치공동체의 ‘공동체적 항쟁’을 통해 표현된 권력, 즉 제헌권력의 공간이 공통도시입니다.” 그는 “당시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준비하고 있던 자본의 사회에서 배제되고 짓밟혀온 이들이 공포를 딛고 일어나 인간적 존엄을 만회·천명할 기회를 본 것”이라며 “당시 광주의 투쟁은 직업, 신분에서 벗어나 다시 태어난 자유로운 전인(全人)들이 사회가 강요하는 정체성·경계를 넘어서면서 공통됨을 구축하는 행동이었다”고 말했다. 조정환은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대신할 수 있는 코뮤니즘의 힘과 가능성을 ‘제헌권력’과 ‘공통도시’에서 끄집어내려 한다.
 
2010년 현재 광주항쟁 30주년은 곧 신자유주의 30년이라는 게 조정환의 기본 시각이다. 또한 그에 대한 대항운동 30년의 역사이기도 하다. 
 
● 제헌권력
사법이론에서 제헌권력은 정치권력의 변화나 행사와 관련된 근본 규칙을 설립하는 권력을 뜻한다. 제헌권력은 주어진 국가의 새로운 헌법을 창출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조정환은 <공통도시>에서 기존 질서에 대항하면서 새로운 제도를 창안할 수 있는 다중의 능력을 제헌권력이라 규정해 쓰고 있다. 또 낡은 질서를 뒤집어 엎고 새로운 법적 규약과 새로운 삶의 형식을 부과하는 권력으로 이해하고 있다. 제헌권력이 만든 헌법에서 나온 권력이 제정권력이다. 제정권력은 헌법을 개정할 수 있지만, 제정할 수는 없다. 제헌권력은 기존 권력이 온존할 때는 제정권력을 규정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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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광주’ 스스로 다스리는 공동체의 출현 (한겨레, 고명섭 기자, 2010-05-07 오후 08:51:15)
폭도로 규정된 ‘벌거벗은 목숨들’ 집단지성으로 새로운 질서 창조
신자유주의 지배하는 현재에도 주체적 공동체의 가능성 보여줘
〈공통도시-광주민중항쟁과 제헌권력〉 조정환 지음/갈무리·1만2000원 

 
5·18 광주민중항쟁 30돌을 앞두고 나온 조정환씨의 <공통도시-광주민중항쟁과 제헌권력>은 ‘아우토노미아’(자율) 이론가 안토니오 네그리의 개념을 빌려 ‘5월 광주’를 재해석하는 신선한 시도다. 아우토노미아 연구·운동 모임인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이기도 한 지은이는 이 책에서 광주민중항쟁을 “기념해야 할 기억 속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살아 움직이는 현재적 사건”으로 다룬다. 이런 현재화 작업에서 다중·제헌권력·공통도시라는 네그리적 개념이 새로운 해석의 열쇳말 구실을 한다.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지속된 광주 항쟁은 지은이의 해석 지평 안에서 ‘다중의 제헌권력이 출현한 사건’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제헌권력이란 정치질서의 근본 규칙을 새로 만드는 권력을 의미한다. 기존 체제가 붕괴했을 때 제헌의회를 열어 헌법을 새로 제정하는 것을 떠올리면, 제헌권력의 의미가 또렷해진다. 제헌권력이란 이렇게 기존 체제를 해체하여 새로운 체제를 만들고 새로운 규칙을 세우는 혁명적 권력이다. 5월 광주에서 이 제헌권력이 나타났다는 것인데, 그 권력의 주체를 지은이는 ‘다중’이라고 명명한다. 네그리의 개념장치 안에서 다중은 인민과 대립한다. 인민은 국가주권을 구성하는 집합체이지만, 다중은 이 주권의 바깥에서 “집단지성으로 결합하는 창조적 무리”이다. 지은이가 보기에 5월 광주는 국가주권, 곧 계엄사령부가 폭도라고 규정하여 국가 질서 바깥으로 축출한 ‘벌거벗은 목숨들’이 모여 새로운 자치질서를 만든 제헌권력의 출현 현장이었다.
 
지은이는 당시 5월 광주를 둘러싸고 세 가지 권력경향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하나가 호헌파이고 다른 하나가 개헌파이며, 세 번째가 바로 제헌파다. 호헌파는 유신폭압체제를 지키려 한 전두환 신군부를 가리키며, 개헌파는 유신체제를 개혁하려 한 재야 민주파를 가리킨다. 1980년의 초기 양상은 호헌파와 개헌파가 맞서 싸우는 모습으로 드러났는데, 5월 광주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타났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호헌파의 공수부대가 물러난 뒤 5월22일 지역의 유지·지식인 중심으로 구성된 5·18수습대책위원회가 이 개헌파의 논리를 뒤따랐다. 지은이는 이 수습위원회가 국가주권을 승인하고 그 아래서 계엄군의 선처와 관용에 호소하는 전략을 통해 사태를 수습해보려 했다고 지적한다. 개헌파의 이런 전략은 “거리의 다중들이 시민이 아니라 폭도이며, 그들의 행동이 저항이 아니라 난동이라는 ‘주권의 지각양식’을 정당화해준다.” 그리하여 수습위원회에 맞서 민주시민투쟁위원회가 결성되는데, 이들이 제헌권력을 떠맡게 된다.
 
새로 결성된 민주시민투쟁위원회를 이끈 것은 박남선·윤상원 같은 “특이한 개인들”이었다. 골재 채취 차량 운전사였던 박남선은 200여명의 시민군을 조직한 뒤 시민군 상황실을 맡고 있었다. 학생운동 출신으로 ‘들불야학’을 이끌던 윤상원은 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를 조직했다. “이 특이한 개인들의 활동이 시민군에 내재하던 제헌적 잠재력을 기폭시킴으로써, 광주의 ‘폭도들’은 호헌파에 맞설 힘을 회복할 수 있었다.” 지은이는 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를 특히 주목한다. 23일부터 매일 오후 2시 도청 앞 광장에서 열린 이 대회는 “시민들과 민중들이 참여하여 다양한 문제를 논의하고 결정하면서 정치적 집단지성과 집단의지를 생산하는 다중 자치의 공간이 되었다.” 박남선이 지도한 시민군은 공동체를 수호하는 군사조직 구실을 했으며, 도청에 자리잡은 민주시민투쟁위원회는 일종의 ‘혁명적 자치정부’의 성격을 띠었다.
 
지은이는 이 항쟁을 통해, 주권체(국가) 안에 갇혀 있던 민중이 주권체 바깥의 다중으로 바뀌어 갔음을 강조한다. “광주의 다중들은 국가에 대한 모든 의무를 거부한다.” 그리하여 투사가 된 이 다중들은 스스로 투쟁적 자치의 주체로 일어선다. “광주에 투쟁과 삶의 공동체가 출현한 것은 다중이 자신들을 제헌적 주체성으로, 내전의 주체로 구축한 바로 이 순간이었다.” 지은이는 이 대목에서 혁명사 연구자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5월 광주’ 해석을 소개한다. 카치아피카스는 투쟁을 통해 형성된 5월 광주의 공동체를 ‘코뮌’으로 부르면서 1871년 파리에서처럼 광주에 코뮌이 등장했다고 말한다. “지난 2세기 동안 민중들의 자발적 통치능력을 보여주는 두 개의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1871년 파리 코뮌과 1980년의 광주민중항쟁이다.”
 
지은이는 이렇게 5월 광주를 제헌권력이 출현한 사건으로 해석한 뒤, 5월의 그 제헌적 힘이 신자유주의가 전면화한 21세기 ‘지구제국’ 시대에 “제국 대 다중의 모습으로 확대돼 재출현한다”고 말한다. 이런 상상력의 뒷받침을 받아 광주는 지구적 차원의 현재성을 얻는다. 지은이는 5월 광주의 ‘코뮌’이 전지구적인 ‘공통도시’의 원형이었다고 말한다. 다중들이 꾸려가는 주체적이고 창조적이며 협력적인 삶이 함께 어우러지는 도시, 곧 다중들의 공통공간을 광주 코뮌이 선명하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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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9 19:56 2010/05/29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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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민주주의〉 조효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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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위기에 발부한 ‘처방전’ (한겨레, 이창곤 기자, 2010-05-07 오후 08:36:55)
〈노동조합 민주주의〉 조효래 지음/후마니타스·1만9000원 
 
언젠가부터 노조와 노동운동에 대해 위기란 수식어가 붙었다. 분열과 비리, 성추행 사건까지 겹치면서 불신과 고립을 자초하기도 했다. 하늘로 치솟던 노조원의 수는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혁신의 자성조차 관성화돼 위기는 깊게 고착화됐다. 노동의 이런 위기는 민주주의와 진보의 위기로 이어졌다.
 
조효래 창원대 교수(사회학)가 펴낸 <노동조합 민주주의>는 바로 이 물음에 대한 진단 및 처방서라고 할 수 있다. 조 교수는 우선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나 전투적 정치성향이란 표피적 진단을 거부한다. 그는 문제의 원인을 ‘1987년 노동체제’란 구조에서 찾는다. 이 체제는 87년 6월항쟁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뤘지만, 노동의 측면에서 보면 노동권이 명실공히 제도화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애초부터 심각한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내재하고 있었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파편화되고 분산적인 노사관계, 기업수준의 대립적이고 갈등적인 단체교섭”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이런 성격은 “작업장 수준에서만” 노동의 시민권을 인정할 뿐, 사회적 연대를 위한 산별노조의 기능이나 노동자 정당의 건설을 제약했다는 것이다. 하여 “노사간의 권력관계에 따라서만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고,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동과 권력관계의 급변에 따라 붕괴할 수밖에 없는 체제”라는 게 지은이의 진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구조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나? 지은이는 노동조합 내부의 정치과정, 곧 조합민주주의에서 답을 찾는다. 이는 노조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내부정치, 왜곡된 정파갈등이 민주노조운동의 병폐로 작용했다는 평가에 따른 것이지만, 더 핵심적인 이유는 “조합원들의 뜻을 수렴하고 전체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노조 내부에서 합의를 모아가는”, 조합민주주의의 확대 없이는 노동운동의 재활성화는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서다.
 
조합민주주의는 단순히 조합원 직선제나 선거제도의 활성화가 아니다. “지도부와 조합원들 사이에 그리고 대립하고 갈등하는 정파들 간에 협력과 소통의 문화를 활성화하는 문화적 혁신”을 가리킨다. 조 교수는 이를 ‘토의민주주의’로 개념지었다. 노동운동의 재활성화를 위한 그의 또 하나의 강조점은 “비정규 노동의 조직화와 이들과의 사회적 연대”다. 조 교수의 처방은 곧 ‘소통과 연대’라는 말로 집약된다.
 
모두 3부 11장으로 구성된 책의 내용은 그동안 조 교수가 발표해온 학술논문을 주제별로 재구성한 것이다. 주로 정치사회학적 관점에서 노조와 노동운동을 연구해온 그는 현재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부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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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9 19:17 2010/05/29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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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감동)26억을 가진 사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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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팔로우한 어떤 분의 멘션(트위터에 올라온 글을 뭐라고 해야할지 난감한데, 멘션이라는 말 대신 적당한 표현이 없을까?)을 읽고 생각나서 다시 담아놓는다.

7년 전의 글이지만, 지금도 26억은 작은 돈이 아니어서인지 느낌이 생생하다. 아는 이는 다 알겠지만...

 

조금 오래된 이야기이기는 한데...

세상에 아직도 이런 젊은이가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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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감동)26억을 가진 사내가...
  
   작성자 김태형 (ciel_waf)
   번호 56764 조회수 8346    
   작성일 2003-09-01 오전 11:48:59 추천수 93 2 
       
  내 나이 서른초반..
  적지도 않고...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나이이다.
  
  나도 몇년전만 해도 보통 샐러리맨과 다름없이 쥐꼬리만한 월급 받아서
  조금 저축하고, 조금 유흥-_펼치며 머 그렇게 계획도 없이 대충 살았었다.
  그러다 보니 내 앞날의 미래 역시 불투명 했으며.
  더이상은 이렇게 후지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아마 계획을 세워본 분들은 잘 알겠지만..
  원래 계획 세우는건 쉬워도 그걸 실천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하지만 난 예나 지금이나 한번 결심하면..
  대가리가 뽀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끝장을 보는 그런 놈이다.
  
  뭔가 달라져야겠다 라는 계획을 세운후 지금껏 수년간 거의 저녁은 굶다시피했다.
  
  "저녁 한끼 굶는다고 얼마나 아껴진다고..쯧쯧.."
  할지도 모르겠지만...
  
  맞다..저녁 한끼 굶는다고 무슨 돈이 아껴지겠는가..
  하지만 위장에 음식물이 들어감으로써 오는 나른함..권태..
  그 릴렉스한 기분을 없애고자 먹지 않았고...
  또한 저녁 먹을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달려왔다.
  
  잠도 거의 안잤다.
  하루에 2~3시간씩 자면서 내 자신과 격렬하게 싸워왔다.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당시엔 친구들이 독.한.놈.이라며 나를 씹어댔다.
  
  하지만 몇년이 지난 지금...
  그 어느 친구도 나를 욕하지 못한다.
  내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은 친구가 거의 없기에....
  
  어떤 친구는 내게 3천만원을 빌려갔다.
  또 어떤 친구에게는 9천만원도 빌려줬다.
  심지어 1억8천만원을 빌려간 친구도 있다.
  
  "이자 같은거 신경 쓰지말고...여유 되면 천천히 갚어..."
  
  저 세 친구에게 공통적으로 내가 했던 말이었다.
  
  솔직히 친구들에게 빌려준 저 돈들...
  받을 생각...전혀 없다.
  하지만 내가 저렇게라도 말한 건... 그들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살려주고 싶었던
  친구의 작은 배려쯤으로 보면 될 것이다.
  
  내가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이렇게 열심히 살아서 이만큼 돈 많이 벌었소!"
  라며 자랑질 하는게 절대 아니다.
  
  아마 나보다 10배 20배 많은 사람도 많을것이다.
  
  내 나이 서른초반..
  어찌보면 주위사람들 말대로 성공한 케이스라고 할 수도 있다.
  부모님에게 막대한 유산을 상속 받은것도 아니고..오로지 자수성가로 이뤄냈으니..
  하지만 성공도.. 절대 뒷따르는 노력 없이는 이룰수 없음을 꼭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그런 많은 돈을...나만 잘먹고 잘살겠다고 꽉 움켜지고 있으면..
  개인 뿐만 아니라..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
  
  돈 많은 사람들이...돈을 풀어야 한다.
  요즘 신문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기사들을 쉽게 접할수 있다.
  
  "생활고로 인한 가족 동반자살"
  "신용불량자 300만 시대"
  "도산으로 치닫는 중소기업들"
  
  정말 꼭! 돈이 필요하신분 연락 하십시요..
  저 비록 많은 돈은 아니지만..
  내가 지금껏 모아온 돈 26억여원중 10억여원을 이자없이 빌려 드리겠습니다.
  
  
  간략한 사연과 함께 필요하신 금액을 제 메일로 적어보내주십시요..
  터무니 없는 금액과, 미성년자는 정중히 사절합니다.
  
  사연을 읽고 제가 나름대로 심사 숙고하여 대략 열댓분 안쪽으로 정하여
  통보해 드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단,한게임 머니어야 합니다 -_-;;;;
  
  넷마블, 세이맞고...따른건 오링나서 안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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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지난 이 유머를 올린 이유는 어머니께 세이고스톱(피망) 사이버 머니를 드리면서 이 글이 생각나서이다. 

물론 내 계좌에서 어머니 계좌로 옮긴 것은 아니고, 내 아뒤와 비번을 어머니께 알려드리고 내 머니로 쓰도록 한 것이다. 한게임과는 달리 세이고스톱은 대여가 곤란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인데, 어머니가 오링되어서 몇 시간 정도 기다려야 리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내 사이버 머니는 1억 3천 정도 된다. "억대가 되도록 시간낭비했군" 할지 모르지만, 머니가 조금 올라가면 억 넘기는 것은 순간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잡기가 능한 것은 결코 아니다.

암튼 그냥 이 유머가 생각나서 올리려고 했는데, 사전예행연습으로 올린 유머가 좀 많았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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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29

고스톱은 세이클럽에서 운영하는 피망 맞고를 가끔 했는데, 거기서도 사이버머니가 억단위까지 가기 어렵다. 한게임은 좀더 쉬웠나? 

위 글은 지금 봐도 빵 터진다. 마지막 반전 땜에...

 

아래는 모티브가 되었던 트위터의 멘션.
 
gallery******    저희 어머니께서 맞고에서 6억까지 모으셨다가 4천만원까지 추락하셨네요 ㅋㅋ 쩜 만원에 미션, 광박, 피박, 쓰리고, 챤스 등등등 해서 한판에 1억, 2억씩 잃었다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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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9 04:13 2010/05/29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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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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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에서 진행중인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시민추모문화제를 지켜보니,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한 자리를 했던 사람들이 중심이 된 아마추어 밴드가 나와서 뭉게구름을 부르더군요.이 노래를 듣고 있자니, 이 노래가 노무현 정부 때 한수원의 광고로 쓰였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당연히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고, 그 가사가 씁쓸하게 다가오더군요.

 

1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의 재임기에 고통받았고, 상처받으며 죽어갔던 노동자 민중들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은 얼마나 될런지요. 당장 저에게 <뭉게구름>이라는 노래는 한수원의 그린워시 광고와 오버랩되는데, 저들은 반생태적인 사업추진에 대해 얼마나 자기비판하고 반성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네이버블로그에 있던 글을 옮겨옵니다. 저작권 문제도 있고 해서 노래URL 링크만 겁니다.

 

2010년 01월 11일 — 서울아주합창단 1회정기연주회 (2009.12 세라믹팔레스홀)

뭉게구름

   

이 땅이 끝나는 곳에서 뭉게구름이 되어
저 푸른 하늘 벗 삼아 훨훨 날아 다니리라
  
이 하늘 끝까지 가는 날 맑은 빗물이 되어
가만히 이 땅에 내리면 어디라도 외로울까
 
이 땅에 끝에서 모두 다시 만나면
우리는 또다시 둥글게 뭉게구름 되리라
 
이 하늘 끝까지 가는 날 맑은 빗물이 되어
가만이 이 땅에 내리면 어디라도 외로울까
  
이 땅에 끝에서 모두 다시 만나면
우리는 또다시 둥글게 뭉게구름 되리라
뭉게구름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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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선, 해바라기, 박혜경, 장나라 - 뭉게구름 2007/08/04 21:34

 

좋은 노래가 엉뚱하게 사용되는 걸 보면 상당히 언짢은 기분이 듭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뭉게구름>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의 광고죠.

한수원이 새만금 간척사업에서 저질렀던 행태를 안다면, 방폐장 유치를 위해 부안에서 했던 짓을 기억한다면, 박혜경의 목소리로 경쾌하고 발랄하게 들려오는 <뭉게구름>를 마냥 즐겁게 들을 수는 없을 겁니다. 

뭉게구름이 있는 푸른 벌판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광경을 연출하여 자신들이 진행하는 반환경적인 사업양상을 위장하는 한수원의 '친환경광고'는 대표적인 녹색위장술입니다.

 

원자력발전소를 짓고, 운영하고, 또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처리하는데 드는 비용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량을 계산하면, 원자력에너지는 결코 경제적인 에너지도 친환경적인 에너지도 아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광고는 대표적인 그린워시(Green Wash) 전략이다. (그린워시-녹색인 척, 착한 척 "속지 마세요", 이유진)

 

저는 처음 이 노래가 동요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정선이 작사,작곡하여 1977년 이정선 3집에 처음 발표된 대중가요더라구요. 딱 30년이 되었네요. 이 버전에서 남성이 부르는 것도 나름의 맛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작사, 작곡자가 부른 것이니 이를 소화하는 것도 다른 버전과 다르고요. (출처: 광성님의 블로그)

 

우리가 많이 접하는 버전은 이정선, 김영미, 한영애, 이광조가 1978년에 결성한 '해바라기' - <사랑으로>를 부른 유익종, 이주호 등의 해바라기와는 다릅니다. 물론 이주호가 '해바라기 1집'의 성원이긴 했지만요 - 의 2집 앨범(1979, 지구레코드)에서 불렀던 것입니다. 이 버전은 4사람의 화음이 돋보입니다. 이를 한영애 버전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꽤 있더군요. 그리고 이를 좀더 경쾌하고 풋풋하게 부른 것이 징검다리의 버전입니다. (출처: 별나님의 블로그
 

텔레비전을 자주 보는 10-20대의 분들은 아마 박혜경의 버전이 익숙하실 겁니다. 박혜경이 2006년에 부른 것이 한수원 광고에 사용되었지요. (출처: 겸미소님의 블로그) 장나라가 부른 버전과 헷갈릴 수도 있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구분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해바라기 버전이 제일 와닿더군요. 

 

실은 할 일이 쌓여있는데, 하다가 진도가 안나가는 바람에 잡생각이 나서리... ㅡ.ㅡ;;
 

이정선 3집 - 뭉게구름
http://mfiles.naver.net/16830ab9adf3f22e06e381b288681c69c89c648aff/data11/2007/8/1/269/mn-nathan01.wma
  

해바라기 2집 - 뭉게구름

http://mfiles.naver.net/2ebb328196c9ca163edbb98ab0502451f0a45cb24e/data12/2007/8/1/171/mm-nathan01.wma  

 

징검다리 - 뭉게구름

http://mfiles.naver.net/148108bbaff3f02c04e183b08a6a1e6bca9e668801/data18/2006/10/7/199/mung-6952-yuagnes.wma
  
 

박혜경 - 뭉게구름

http://mfiles.naver.net/dd48c172603f39e5cd284a7943a3d7a20357af4176/data22/2007/1/13/64/cloud.wma    

 

장나라 - 뭉게구름

http://mfiles.naver.net/28bd348790c5cc1038ddbf8cb6562257f6a25ab45c/data12/2007/7/26/159/wma_%C0%E5%B3%AA%B6%F3_%B9%B6%B0%D4%B1%B8%B8%A7-nimong0308.wma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5/23 21:12 2010/05/23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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