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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반대하는 이준구 교수의 글, 그리고 문수 스님의 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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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이 문제가 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가 무엇인지 말해보라고 하면 어버버하게 된다. 그 점에서 이준구 교수의 글은 공학적인 면을 보지 않고서도 설득력 있게 반대할 근거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이보다는 문수 스님의 분신은 왜 4대강 사업에 반대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보여주신 사례다. 평소에 묵묵히 수행에만 전념하신, 아주 조용하신 분이라는 데, 그런 분마저 소신공양하였다면, 그 의미를 잘 헤아려야 할 텐데... 관련기사만 봐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하지만 지방선거에 가려, 그리고 언론의 의도적인 무관심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아쉽다. 종교계가 거의 일치단결로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이런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4대강 사업을 밀어부치는 이명박 정권, 지방선거가 나름 심판한 것인데, 그래도 4대강 사업이 정치쟁점이 되지는 않을 듯하다.
 
관련기사 링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92301&CMPT_CD=P0010
"내 양심 몽땅 걸고 4대강 사업 반대한다" 10.05.31 19:51  최경준 (235jun)
[전문]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격정 토로... "죽음의 사업"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5312328495&code=940202
“MB정부, 부자 아닌 서민을 위하라” 소신공양 (경향, 군위 | 박태우·최슬기 기자, 2010-05-31 23:28:49)
ㆍ문수 스님 분신 파장
ㆍ1986년 출가… 수행에 전념 “어지러운 세상에 자신 던져”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00601022425&section=03
'이명박 정면 비판' 문수 스님 '분신' 파장…충격 휩싸인 불교계 (프레시안, 선명수 기자, 2010-06-01 오전 8:23:05_
"4대강 중단은 스님 마지막 유지"…1일 조계사서 향후 계획 발표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355
문수스님 소신공양, 역시 조중동은 ‘침묵’ (미디어스, 2010년 06월 01일 (화) 14:04:34  권순택 기자)
[비평] KBS는 ‘간추린뉴스’로 다뤄…경향‘만’ 추가취재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00601132355&section=03
침통한 불교계 "소신공양은 '죽비'…큰 결단할 때다" (프레시안, 선명수 기자, 2010-06-01 오후 2:27:19)
"옳은 일에 주저없이 뛰어든 실천가, 이젠 뒤 따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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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3 03:03 2010/06/0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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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행정,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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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 하에서의 창의도시, 디자인행정 등의 여러 시도들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문제가 지적되었다. 하지만 그는 엄청난 현직 프리미엄을 통해 애초 예상과는 달리 무난하게 한나라당 경선을 통과하였고, 지금도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재선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 있다.

 

그 동안 풀뿌리 민주주의, 생활정치 등이 끊임없이 주장되었지만, 중앙정치의 쟁점 하에서 파묻히고 말았다. 지방선거가 정권 중간평가의 성격을 띤다는 점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현 정권의 정책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당 후보가 압도하고 있는 현실은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현 상황을 판단해야 함을 보여준다.

 

게다가 민주당 후보는 서울시정에 대해 뚜렷한 인상을 주는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한나라당 서울시정에 대한 평가조차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 한명숙 후보의 공보물에는 사람공약 10이 있지만, 이는 민주당이 꾸준히 의제화해왔던 것들은 아니고, 한나라당 서울시정에 대한 비판적 평가 또한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 기껏 쟁점화하는 것도 중앙정치에 보조를 맞추어 '1번은 전쟁, 2번은 평화'란다. 거기에 서울은 존재하지 않는다. 친민주당 시민운동가들, 민주당의 외곽 싱크탱크들에서는 심심하면 생활정치 노래를 불렀지만, 그의 슬로건 속에 서울에서 생활정치를 하겠다는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4페이지짜리 노회찬 진보신당 후보의 공보물은 자신에 대한 홍보 및 소개와 후보자 정보공개자료를 제외하면 공약은 겨우 한 페이지이다. 아마 예산 때문이었을 텐데, 그간 노력해온 정성에 비하면 이를 제대로 표현할 공간이 없었던 듯하여 아쉽다. 진보진영에서는 켄 리빙스턴의 붉은 런던에 대해 연구도 하고, 나름대로 오세훈 서울시정에 대한 평가와 함께 서울의 미래에 대한 계획도 있었지만, 지방선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를 다 풀어놓을 수는 없었나 보다.

 

물론 그렇다고 진보진영이 잘 준비했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잘 준비했다면 민주노동당의 이상규 후보가 아무런 보장도 없이 한명숙에게 투항하고(그들은 2012년 대선에서도 보수정당에게 후보를 양보할 것이다. 아니, 그 전에 통합될지도 모르겠다), 진보신당 서울당원들이 그렇게 개념 없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사실 공보물이나 선거 유세 등에서 진보정당으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드러내고 있는 민주노동당/진보신당 후보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그런 것이 그 왼쪽에 있는 이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오세훈 후보가 정력적으로 추진했던 디자인 행정을 비롯한 서울시정 내용에 대해 모아놓았던 기사들을 링크만 하려 했는데, 서설이 길었다. 아무래도 지방선거 전에 이런 기사들을 올려놔야 예의라 사료되어... 그러고 보니 지난 2002년, 2006년에는 민주노동당 당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역에서의 변혁이란 주제를 가지고 꽤 고심했던 듯한데, 올해는 정말 무심하게 보낸 듯하다. 하긴 내가 뭘 한다고 했어도 달라질 게 없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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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의 '창의도시'? '막장 개발'만 난무"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2009-02-23 오후 5:29:05)
[토론회] "난개발 막고 공동체 살찌워야 문화 발전"
 
한 달이 넘게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용산사태의 근본 원인은 군사작전식 철거정책, 나아가 철거 빌미를 제공하는 도심 개발정책에 있다. 아파트 신축, 도심 재개발 사업, 새 인프라 구축 사업 등은 모두 옛 것을 최대한 빨리 쓸어 없애고 '보기에 번듯한' 새 건물을 지어야만 한다는 조급함을 끌어안고 있었다.
 
이름은 바뀌었다. 하지만 철학은 바뀌지 않았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당시는 '뉴타운'이 바람을 일으켰다. 방점은 '뉴(new)'에 찍혔다. 청계천·재개발·시청광장의 근본 철학이 그랬다. 오세훈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문화를 내걸었으나 핵심 철학은 기존 건물을 갈아엎고 새 건물을 짓는다는 데서 과거 정책과 다를 바 없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아트팩토리·용산 국제업무지구, 보다 큰 규모로는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등도 결국은 개발정책을 포장한 수식어에 다름 아니다. 서울시의 이러한 개발정책에 많은 시민단체·활동가 등은 우려를 표한다. 문화를 내걸었으되 실체는 오히려 문화를 죽이는 정책이라는 게 이유다. 나아가 기존 문화공간을 가꿔오던 거주민을 철저하게 수탈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이같은 맥락에서 '문화'를 내걸었던 오세훈 시장은 정작 '환경미화'에 급급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문화연대와 <프레시안>은 서울시의 도시문화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지난 20일 공동주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김현우 진보신당 정책위원 △유의선 빈민대책회의 공동집행위원장 △김윤이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이 참여했으며,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문화정책, 비전은 없고 파괴만 있어
토론 참가자들은 서울시 도시문화 정책의 가장 큰 문제로 비전이 없고 개발논리만 있다는 점을 꼽았다. 도시 전체의 모습을 장기간에 걸쳐 가꿔나갈 밑그림이 없다보니 무차별 개발정책만이 시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곧 용산에서처럼 많은 철거민이 발생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원재 사무처장은 "당장 아트팩토리가 추진되는 문래동을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예술가가 터를 잡고 있고 시에서는 아트팩토리 사업을 추진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곳도 이미 개발 예정지"라며 "도시개발정책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없다보니 공업단지 개발 정책과 시가 내건 '문화'개발 정책이 충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윤이 연구원 역시 청계천 사업을 예로 들며 시가 추진하는 개발정책의 근시안성을 비판했다. 그는 "청계천 상인들은 시 정책에 따라 동남권 유통단지로 이주했다. 하지만 시 정책으로 그곳에 살던 비닐하우스촌 사람들은 또 갈 곳 없이 쫓겨나게 됐다"며 "중앙과 지방의 정책이 다르고 보건복지가족부와 국토해양부 입장 등도 다르다. 담당 부처 가치마저 조율되지 않은 정책이 어떻게 창의적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현우 정책위원은 "서울시의 문화 정책은 한 마디로 '녹색 파시즘'이다. '창의문화도시', '디자인 서울' 등의 캐치프레이즈는 과거 압축성장시기의 소수를 희생하는 속도전 문화를 오히려 가속화하고 있다"며 "삶의 조건이나 개개인의 상황 등이 가지는 다양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결과의 다양성만을 우선시하고 있다. 그 '결과의 다양성'마저 멋있고 큰 건물을 짓겠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시민참여 없는 창의도시는 결국 '막개발'
이러한 서울시 문화정책의 파괴성은 결국 지역 주민을 공격하는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고 참가자들은 지적했다. 유의선 집행위원장은 "서울시가 집에서부터 노점, 지하상가까지 모조리 갈아엎고 있다. 알맹이 포장을 어떻게 하든 그 안의 주체는 철저하게 배제하는 방식을 일관하고 있다"며 "주체, 곧 지역주민의 권리를 어떻게 복원할지를 고민해야 서울시가 추진하는 문화, 곧 개발정책에 진짜 문화가 깃들 수 있다. 문화를 살리는 것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시민이 배제되는 개발정책은 결과적으로 시의 문화를 더욱 죽이고 있다고 참가자들은 평가했다. 도시 문화개발이 가져야 할 새로운 철학, 기존 문화를 지켜야 하는 당위성이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특히 외국의 사례를 인용하면서 외국 재개발 사업의 핵심 철학은 고려하지 않고 개발 결과물만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일본 롯폰기 힐즈 재개발의 경우, 시공사가 지역 주민 설득에만 십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는 사례는 거론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 사무처장은 "외국의 경우 도심 재개발 사업은 대부분이 재생 프로그램 하에 이뤄진다. 런던의 템즈강 생태 복원이 대표적이다. 파리의 경우 까르푸와 같은 대형 유통마켓 진입을 막는다. 고유 문화를 파괴하기 때문"이라며 "반대로 서울은 과밀도 도시에 '디자인'을 핑계로 개발논리를 들이댈 뿐이다. 디자인이 환경미화 사업으로 전락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사실 난개발 정책은 비단 오세훈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짧게는 이명박 대통령의 시장 재임시절 정책부터 이런 비판이 나왔지만 길게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철학이 바로 난개발이었다. 이처럼 수십 년에 걸친 난개발 결과 서울은 시가 내건 '창의력'을 잃은 도시가 됐다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주민이 잃은 창의력은 결국 난개발에 대한 대안을 잃게 한 주요인이 됐다고 그들은 지적했다. '창의도시'를 말하는 시의 난개발이 결과적으로 지역 주민을 배제하고 철저히 자본논리로 개발이 이뤄지게 하는 근본 요인이라는 얘기다.
 
이 사무처장은 "이태원 인근에 사는데 이태원은 서울에서도 가장 오래된 다문화 지역인데도 지역이 스스로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최소 수준의 커뮤니티마저 생성되지 않았다"라며 "오세훈 시장이 내건 '창의도시'는 주민이 가진 삶의 질감이 켜켜이 쌓여야만 발현될 수 있는데 서울은 오랜 난개발로 그와 같은 감수성을 잃었다"고 했다.
 
난개발 막을 진짜 대안은 결국 공동체
따라서 난개발을 미화한 '창의도시'식 파괴를 막을 대안은 결국 난개발로 사라진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밖에 없다는데 참가자들은 의견을 같이 했다. 김 정책위원은 "서울시의 문화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공동체 형성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시의 미래 청사진을 제대로 그리는 것"이라며 "다기한 이해 당사자 모임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 지역민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을 곳곳에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사무처장 역시 "생활 단위에서 문화를 살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한 길은 결국 커뮤니티를 복원하는 것이다. 단체가 만들어져야 문화행정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 집행위원장도 "소통하는 공간이 중요하다. 지역운동의 고민을 장기적 과제로 살려내야 용산 문제와 같은 시의 공간환경 정책에 대응하는 힘이 생긴다"고 했다.
 
김 연구원은 "연구소 차원에서 과거 작은 마을 만들기와 같은 공동체 연대를 계획한 적 있다. 이제는 이를 도시개발과 정비사업 등에 대한 대안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다양한 차원에서 민간 자발적 모델을 창출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이동연 교수는 이날 토론회를 마무리하면서 시민 공동체 힘이 문화로 포장한 시의 난개발 정책을 어떻게 감시할 수 있는가를 독일에서의 생생한 사례를 통해 설명했다.
 
"3년 전 독일 뮌헨에 간 적이 있다. 개선문에서 3~4㎞ 정도 떨어진 곳에 50층 높이의 뮌헨트레이드센터가 있는데 시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한 계획이라 문제가 됐다. 문화공간을 즐기던 시민들이 '사색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시장을 고발했다. 이성적 시민과 합리적인 행정가가 있어야 한국에서와 같은 격한 충돌을 막을 수 있고 시의 문화를 살려나갈 수 있다. 발전적 고민을 시에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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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아직도 이런 행정을… (경향, 심혜리기자, 2009-06-26 03:12:27)
ㆍ흙 깔고 갈대 씨 뿌렸는데 비 쏟아지자 ‘도로 자갈밭’
ㆍ반포천 자갈밭 녹화사업주민들 “전형적 탁상행정”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지난 18일부터 한강과 반포천 하류가 만나는 서울 서초구 반포천 변에 갈대밭을 만드는 자연형 호안 녹화사업을 벌였다. 자갈밭 위에 갈대밭을 만들려고 하다보니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측은 흙을 퍼왔고, 20~30㎝ 두께로 밭 모양을 조성했다. 그리고 10여명의 인력을 동원해 갈대 뿌리를 일일이 심었다. 이번 공사는 서울시가 올 해부터 한강 호안을 자연형으로 만들기 위해 둔치 등에 각종 식물을 심어 친수공간을 만드는 사업의 하나였다.
 
그러나 지난 20일 비가 오면서 흙과 갈대 뿌리들은 완전히 쓸려나가고 다시 자갈밭이 됐다. 박씨는 “10년 동안 봐왔지만 이 천변 주변은 큰 비가 오면 어김없이 범람이 일어나 모든 것이 떠내려간다”며 “당초 녹화사업도 의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갈대밭 사건은 전형적인 탁상 행정이고 분명한 예산 낭비가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이날 “아직 확인을 해보진 않았지만 피해가 크진 않을 것”이라며 “아마도 교량 때문에 물이 소용돌이 치는 부분이 생겨 일어난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피해가 확인되면 다시 보충하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강 르네상스’의 일환으로 한강의 호안을 자연형으로 바꾸는 공사를 하고 있는 한강사업본부의 다른 관계자는 “현재 호안에 심은 풀들이 아직 뿌리를 내리지 않아 큰 비가 오면 쓸려내려가는 등의 일이 생길 수 있다”며 “솔직히 피해가 전혀 없을 순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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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청동길 특색 없애는 ‘디자인 행정’ (경향, 임아영기자, 2009-09-10 23:01:07)
ㆍ혈세 대주며 업소들 간판 획일화 종용
ㆍ“상가 특징 담아내는 디자인 장려해야”

 
삼청동길이 변하고 있다. 한옥·화랑·작은 상점·좁은 골목 등으로 상징되던 삼청동길이 지난해 3월 서울시가 추진 중인 ‘디자인 서울거리’ 1차 사업대상지로 선정되면서부터다. 먼저 변하고 있는 것은 간판. 전체 141개 업소 중 88곳의 간판이 다음주까지 교체될 예정이다. 종로구는 1월부터 삼청동 간판개선추진위를 구성, 주민들에게 간판을 바꿀 것을 설득했다. 상가 주인들은 구가 지정한 3개 디자인업체에서 제시한 간판디자인 중 한 개를 선택한다. 서울시는 간판 교체 업주들에게 30만~150만원씩을 지원했다. 종로구 관계자는 “삼청동 거리는 다른 지역에 비해 간판 수준이 기존에도 높은 편이어서 기존 간판을 상당수 인정했다”며 “크기를 작게 하는 등 삼청동 분위기를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소 주인들은 물론 삼청동을 찾는 시민들의 반응은 비판적이다. 박현설씨(37)는 “깔끔해지긴 했는데 삼청동의 고즈넉하고 복고적인 옛날 느낌이 안 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식당 주인 김모씨는 “우리야 불법 간판으로 몰려 구에서 떼어가면 할 말이 없어지니까 정책이 맘에 안 들어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면서 “신규 업소부터 간판을 바꿔도 될 텐데 획일적으로 간판을 바꾸려는 행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대 디자인학부 김민수 교수는 “관할 구청이 지정한 업체가 만든 몇 가지 안에서 고르는 형식이라면 선택의 폭이 애초부터 좁혀지기 때문에 디자인 경우의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제대로 디자인 거리를 조성하려면 획일적인 디자인 방법론에 의지해서는 안된다”며 “업주들이 스스로 상가 성격 등을 담아낼 수 있는 간판을 만들었을 때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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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행정, 왜 이래! (경향 기획기사)
 
[디자인 행정, 왜 이래!](1) 영세상인 울리는 ‘官 주도’ (경향, 임아영기자, 2009 10/04 23:56:20)
ㆍ서울시, 노점 부스 바꿔주고 “매년 돈 내라” 
 
서울시는 2007년 디자인서울 총괄본부를 만드는 등 광역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디자인을 행정에 접목시켰다. 디자인 행정은 유행처럼 전국으로 번졌고 지방자치단체는 상당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충분한 검토 없이 추진되는 디자인행정은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또 획일화·문화파괴·창의성부재 등 여러 문제를 노출시키고 있다. 경향신문은 디자인 행정에 대한 점검과 대안을 모색해 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구두수선공 강씨는 강씨는 수개월 전에 교체된 구두수선대를 쳐다보며 답답한 마음에 담배만 피워댔다. 서울시에서 시키는 대로 구두수선대를 교체했지만 내년 1월부터 매년 수십만원을 내야 하는 데다 사용하기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에 시에서 무료로 구두수선대를 바꿔 주는 줄로 알았다”며 “하루 3만원 벌이도 안되는데 시 맘대로 구두수선대를 바꾸고 무조건 매년 50만원씩을 내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강씨의 구두수선대는 지난 7월 교체됐다. 그는 윗골목에서 구두수선을 하는 할아버지로부터 처음 교체 얘기를 들었을 때 멀쩡한 구두수선대를 바꿔야 한다는 논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 땅에서 영업을 하고 있으면 다 바꿔야 한다”는 얘기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신형 수선대는 사용하기 불편했다. 우선 전보다 좁아졌다. 지난달 23일에는 구두수선대 바깥에 ‘2009디자인올림픽’ ‘다산120콜센터’ 등 서울시 홍보광고가 일방적으로 붙여졌다. 강씨는 “사용하지도 않는 에어컨을 놓으라고 공간을 두는 바람에 손님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에 지금은 두 명도 앉기 힘들다”고 말했다. 구두 닦을 때 사용하는 기계는 수선대 바깥에서만 열 수 있어 하루에도 몇번씩 들락날락거려야 한다. 강씨는 “쓰지 않는 에어컨이나 창고 등을 놓지 않고 편하게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구청 공무원들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2월까지 시내 구두수선대 960개를 교체한 데 이어 이달 말까지 500개를 더 교체 중이다. 가로판매대도 올해 말까지 1280개가 교체된다. 서울시는 조례에 근거해 도로 점용료는 물론이고 시설물 교체비용의 7%씩을 매년 대부료(시설사용료)로 부과한다. 구두수선공들은 그동안 점용료만 냈지만 내년부터는 매년 50만원씩의 대부료를 새로 내야 한다. 신형 가로판매대로 교체된 노점상에겐 7만원이 추가돼 매년 82만원가량의 대부료가 부과된다.
 
서울시는 지난해 2월 신형 가로판매대·구두수선대 디자인을 개발했고 같은 해 7월부터 3개월간 문제점을 보완했다. 시 가로환경개선추진단 관계자는 “디자인 중간 안이 나왔을 때부터 미화협회원이 회의에 참석, 의견을 받았다”며 “시에서 시설물을 제작해 준 것이기 때문에 대부료를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보광고를 전담하고 있는 시 홍보담당관 관계자도 “많은 운영주들이 불법 광고물이 덕지덕지 붙는 것보다 시 광고로 깔끔하게 관리해주는 것을 더 좋아해 홍보광고물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새로 설치한 가로판매대·구두수선대 때문에 대부료가 추가된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김상목 한국미화협회 서울지부 대표는 “대부료에 대해서는 협회 집행부 30여명만 알고 회원들은 잘 모르는 상태”라면서 “시가 ‘자기 집’ 짓겠다고 밀어붙이는데 영업 허가를 결정받는 우리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설계는 시에서 다 해놓고 우리를 불러서 의견 수렴하는 걸 ‘참여’라고 볼 수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강형기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오세훈 시장의 창의행정은 구두수선대를 교체하더라도 주인과 고객들이 어떻게 이용하면 편리할지 소통할 기회를 주자는 것인데 현실은 관주도로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며 “디자인을 하나로 통일한다고 도시가 아름다워지는 게 아닌데 지금 서울시는 ‘디자인의 맥도널드화’를 지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은 건축 국제현상공모 최다 도시 해외명품 지상주의에 설계비용 껑충” (경향, 심혜리기자, 2009-10-04 23:56:58)
ㆍ외국업체 ‘모시기’
 
서울시는 건축물을 지을 때마다 디자인 등을 이유로 국제현상공모를 통해 설계를 가장 많이 하는 도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건축관련 학계와 업계에선 “서울시가 과도한 해외명품 지상주의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마곡워터프런트 국제현상공모’ ‘강북 대형공원조성 마스터플랜 국제현상공모’ ‘용산국제업무지구 마스터플랜 국제현상공모’ ‘서울대공원 재조성 국제현상공모’ 등 서울시는 최근 대규모 개발사업 때마다 대부분 외국의 유명 건축설계업체 등을 포함한 국제현상공모를 실시했다. 서울시의 건축 자문으로 활동했던 한 건축가는 “유명한 외국 디자이너들이 도시 조성사업에 참여하면 순기능적 측면도 있겠지만 서울시의 건축물이 국적불명인 채 정체성이 없어지게 되는 역기능도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세계건축가협회(UIA)에 따르면 서울은 세계적으로 국제현상공모를 가장 많이 하는 도시 중 하나”라며 “자국의 수준을 신뢰하지 못해 이렇게 국제현상공모를 많이 벌이는 도시는 유례가 없다”고 말했다.
 
2007년 8월 국제지명현상설계에 당선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는 세계적 디자이너 자하 하디드가 설계를 맡았다. 그가 2배가량 높은 설계비를 요구하며 설계변경으로 공사까지 지연됐다. 하지만 자하 하디드는 설계가 끝나도록 동대문 현장을 방문한 적이 없어 논란이 됐다. ‘한강 예술섬(구 노들섬 오페라하우스)’도 2006년 ‘노들섬 예술센터 국제 아이디어 설계공모’ 당선자인 장 누벨이 설계비용을 과다 요구하는 바람에 서울시가 계약을 포기했다. 시는 설계비·재공모비용 등 총 21억원가량을 날렸다.
 
서울 용산역세권개발사업 마스터플랜 국제현상설계공모에서는 최종 경쟁에 다니엘 리베스킨트·아심토트·솜(SOM)·저디(Jerde)·포스터&파트너스 등 외국 5개사만이 올랐다. 건축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 유명업체는 국내업체보다 설계비를 통상 2배가량 더 요구한다”며 “굳이 외국업체에 맡기는 건 건축해외명품주의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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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행정, 왜 이래!](2) 개성 죽이는 획일화 (경향, 한대광·임아영·부산 | 권기정기자, 2009-10-06 00:55:53)
ㆍ거리 특색 무시… 간판 크기·서체까지 규제
ㆍ지방은 서울 모방 급급… 향토 이미지 퇴색
ㆍ“민주적 절차 없는 디자인 결정 ‘판박이’ 낳아”
 
서울 대학로·이태원과 부산 광복동·인천 구월동 등 전국 주요 도심의 거리풍경과 간판이 똑같은 모습으로 꾸며지고 있다. 지자체들이 행정에 디자인을 접목시키면서 앞다퉈 간판을 교체하고 있지만 작고 예쁘장한 디자인만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점포의 특성은 물론 해당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특색은 획일화된 간판 문화 때문에 오히려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서울시는 ‘디자인서울거리 조성사업’으로 지정된 50개의 거리를 공공시설물과 간판을 통합시켜 가로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거리로 조성 중이라고 5일 밝혔다. 서울시는 시예산을 지원해 시범적으로 간판을 정비하고 인근 업체들이 자율적으로 따라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동안 간판이 대형화되고 업소당 숫자도 많아 정비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던 점도 시의 간판 정책에 힘을 보탰다.
 
문제는 정비를 하는 방식에서 드러났다. 서울시는 가이드라인을 정해 간판 크기와 간판에 들어갈 글씨 모양과 크기를 규제했다. 상가 주인들은 3~4곳으로 한정된 업체가 제시한 디자인 중에 선택할 수밖에 없다. 시는 간판 크기와 개수를 줄이는 효과를 거뒀지만 가이드라인대로 간판을 획일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때문에 서울 종로구 삼청동길, 용산구 이태원로 등은 간판 교체 이후 특유의 거리 분위기를 잃어버렸다. 시의 기대와 달리 자율적으로 간판을 정비한 곳은 거의 없다. 미술평론가 최범씨는 “이미 전국적으로 획일적이었던 간판이 디자인 행정 도입으로 그 획일성이 극복된 게 아니라 다른 방향의 획일성으로 전환되었다”면서 “도시 디자인은 시민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고민해야 하는데 기존의 행정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니까 획일화를 초래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자치구의 창의성까지 가로 막은 채 성과를 거두는 데에만 주력했다. 금천구 도시디자인과 관계자는 “자치구가 구별 특색을 낼 수도 있지만 서울시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으면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이 줄어드니까 가이드라인에 따르게 된다”고 말했다. 광진구 관계자도 “광진구는 역사적 맥락에서 고구려 이미지를 접목시키고 싶지만 시에서 ‘구별로 달라지는 걸 자제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서울 이외 지역은 서울지역을 모방하기에 급급하다. 인천시는 도시경관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부터 173억원을 들여 남동구 구월동·연수구 연수동 일대 등 16곳의 간판을 교체 중이다. 그러나 새로 만들어진 간판은 이미 서울 디자인거리에 사용되고 있는 디자인과 차별성이 거의 없다. 최근 부산시가 도시에 색채를 입히기 위해 발주한 특정경관계획안(도시경관색채) 용역도 지역 이미지를 해안도시 위주로 획일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색채학 전문가는 “부산의 이미지를 최종 추출한 10경(景) 중 7경이 바닷가인 해운대·수영·남구 지역의 이미지”라며 “이 용역대로 부산의 전 행정구역에 똑같이 적용된다면 지역의 독자적 색채를 잃어버리는 셈”이라고 밝혔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도시 디자인은 간판이나 가로시설물을 정비하는 것을 캠페인성 사업으로 하는 게 아니라 도시민들의 공공적 삶을 풍부하게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디자인의 생산과정부터 콘텐츠의 구현과 활용에 이르는 과정이 개방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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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행정, 왜 이래!](3) 역사·문화자원 파괴 (경향, 심혜리기자, 2009-10-06 22:14:39)
ㆍ‘르네상스’ 미명 아래 역사적 건축물 부숴
ㆍ자본 중심 논리에 동대문운동장 등 철거“옛 정보부 건물 등 교육의 장으로 남겨야”
 
서울시가 도시에 디자인을 입히겠다며 ‘서울 디자인’ 사업을 벌이면서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껴안고 있는 건축물들까지 잇따라 훼손하고 있다. 디자인 전문가들은 디자인 정책에 역사성과 정체성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1960, 70년대에는 근대화라는 미명으로, 이후 뉴타운·재개발이란 건설자본의 이해를 대변한 개발과 자본 중심의 논리가 디자인 정책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가 철거를 진행했거나 철거 예정인 도심의 주요 근대 건축물이다. 문제는 이들 건축물이 시의 도시 디자인 사업인 ‘서울 르네상스’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06년 취임사를 통해 “도시 디자인으로 서울의 도시 경쟁력을 높이고 브랜드 가치를 키울 것”이라고 밝힌 이래 서울시는 다양한 디자인 사업을 추진했다. 한강르네상스, 남산르네상스, 디자인서울거리 등으로 명명된 사업이 그것이다. 특히 서울시는 지난 3월에는 ‘남산르네상스’ 계획을 발표하면서 “남산의 문화성과 접근성을 개선하고 서울성곽과 봉수대를 복원해 남산의 전통을 되살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기에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의 철거가 대거 포함돼 있다.
 
이미 조선왕조 이후 600년째 이어져 온 서울 종로구 피맛골도 도심재개발과 함께 사라졌다. 피맛골은 조선시대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던 곳으로 최근까지 값싼 음식점들이 많아 직장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서울시는 그러나 도심재정비를 이유로 피맛골 일대에 고층 빌딩들을 지을 수 있도록 허가했다.
 
디자인 행정을 이유로 국내 최초의 근대 체육시설인 동대문운동장도 철거됐다. 동대문운동장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세워진 이후 서민들과 애환을 함께했다. 서울시민들은 이곳에서 열린 각종 체육행사와 집회 등에 참가해 기쁨과 울분을 토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지난해 이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외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공사를 진행 중이다. 서울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한국 디자인산업의 중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민수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동대문운동장은 철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마련했어야 한다”며 “외국 작가의 작품이 엉뚱하게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놓임으로써 서울의 흔적은 사라지고 국적 불명의 장소가 됐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디자인 행정은 도시의 정체성·역사성·상징성 등이 도시계획 전반에 걸쳐 구현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현신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는 “디자인은 그 장소에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과 맥락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관광수입이나 디자인산업 등 경제주의적 발상을 명분으로 삶의 기억과 체험을 지우는 디자인 행정은 지금이라도 수정돼야 옳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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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행정, 왜 이래!](4) 예산 퍼붓는 ‘정치성 행사’ (경향, 심혜리·김기범기자, 2009-10-07 22:42:10)
ㆍ헛돈 펑펑 ‘단체장 치적 쌓기’ 전락
ㆍ“눈먼 돈 잔치” 외국 디자이너들만 떼돈
 
서울시가 디자인 행정을 명분으로 수조원의 예산을 집행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디자인 행정을 상징하는 행사인 ‘2010 세계디자인수도’와 ‘서울디자인올림픽’ 등은 무리한 예산 집행과 정치성 행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8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디자인 행정의 주요 사업인 한강르네상스와 남산르네상스에 올해 각각 1조7500억원과 2325억원을 집행할 예정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는 사업비가 3755억원에 달한다. 서울디자인올림픽·디자인거리 등을 책임지고 있는 디자인서울총괄본부는 올해 980억원의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국제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이하 협의회)는 2007년 서울을 세계 첫 ‘2010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했다. 시는 사전행사 격으로 지난해부터 ‘서울디자인올림픽’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서울디자인위크·서울디자인리포트·서울국제디자인마켓 등 각종 디자인 사업도 진행 중이다.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하루아침에 서울이 ‘디자인’의 도시로 급부상한 셈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과도한 예산을 들여 행사를 유치하고, 외국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시장을 열어준 대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이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된 데에는 세계적인 건축가를 고용해 디자인 산업의 거점이 될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를 건립하고, 부시장급 디자인본부장을 영입하면서 전담 부서를 만드는 등 디자인 산업을 육성한다는 점이 협의회 측으로부터 높게 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시장’이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구·경북디자인기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협의회에서 세계적 명품도시를 마다하고 서울을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한 이유가 무엇이겠냐”며 “서울시의 수천억원 예산이 강점으로 작용한 부분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평론가 이정우씨도 “서울 등 지자체마다 외국 디자이너들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외국 디자이너들에게 한국은 돈을 벌 수 있는 나라로 각인돼 있다”고 꼬집었다.
 
서울시는 또 지난해 3월 세계디자인수도와 관련된 양해각서(MOU) 체결 직후 협의회에 3만유로를 지불했다. 시 디자인서울총괄본부 측은 “세계디자인수도 자격을 1년간 유지하고 협회의 로고 등을 쓸 수 있는 사용료”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서울디자인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예비비를 편법으로 사용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시는 지난해 이 사업을 위해 70억4000만원을 예비비로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시의원들은 “예비비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때 사용해야 하는데 시가 행안부의 투자 심사를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예비비를 전용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행사 내용도 문제가 됐다. 시의회 고정균 의원(한나라당·동대문2)은 “대행사에 전적으로 의존했으며 외국인 초청작가 18명 중 11명(61%)이 대리인을 보내거나 불참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올해엔 행사장을 잠실종합운동장 외에도 한강공원·홍대앞·신사동 가로수길 등으로 확대해 9일 두번째 행사를 열 계획이다. 시는 그러나 행사가 끝나는 29일쯤에는 2년째 사용한 명칭을 바꾸기로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로부터 ‘올림픽’이란 명칭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말 것을 수차례 지적받은 데 따른 조치다. 조정래 서울시의회 전문위원은 7일 “서울디자인올림픽과 세계디자인수도만을 위한 과를 별도로 설치하고 수십억원을 들여 매년 이런 행사를 한다는 것에 대해 시의회에서도 논란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위원은 “서울이 ‘디자인’의 도시라는 성과를 내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예산을 쓰고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해 그 폐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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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행정, 왜 이래!](5) 전문가에 듣는다 (경향, 심혜리·임아영기자, 2009-10-08 23:55:31)
ㆍ‘관’보다 ‘민’ 주도로 창의성 살려야
ㆍ시민 감시·품질관리 제도적 장치 필요

 
디자인 전문가들은 디자인 행정이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관 주도에서 시급히 탈피하고 지역 주민·전문가들과의 소통을 통해 ‘창의성’을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경향신문은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디자인 행정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기획보도에 이어 8일 디자인 관련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대안을 들어봤다. 이들은 디자인 행정에 대해 우선 “지방자치단체가 행정에 디자인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바람직한 경향”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디자인 행정이 관 주도의 일방통행식으로 치우치는 바람에 창의성을 살리지 못한 채 획일화되고 자치단체장의 치적 쌓기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도시의 특성과 역사성에 근거한 도시경관보다는 개발 위주의 경제논리가 우선시되면서 소중한 문화자원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방안을 도출해내지 못하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지역성·전문성을 무시한 채 서울 따라하기에 급급한 지방의 실태도 지적했다. 이들은 생활에 밀접한 공공 디자인이 진정한 창의성과 독자성을 갖기 위해서는 행정의 주체와 권한을 ‘관’보다는 ‘민’, ‘광역’보다는 ‘기초’ 자치단체에 넘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와 광역자치단체는 이제 막 시작한 디자인 행정과 관련된 기본법을 제정하는 등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민수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지역 역사성과 주민 삶의 양식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자치단체와 주민이 끊임없이 소통하고 전문가들은 이 과정을 모아 세부 방안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중요하다”면서 “이제는 디자인을 상품화된 산업디자인 수준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도시경관과 도시계획 전체를 관통하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 나서 획일성 극복
◇최범 디자인평론가
디자인 행정은 디자인에 대한 규율이 아니라 디자인의 공공적 가치를 적극 추진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그러나 자치단체가 추진 중인 간판 정리 사업의 경우 전국적으로 이미 획일화돼 있던 것을 다른 방향의 획일성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공공적 가치보다는 규율 행정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치단체와 시민단체 간 협력(거버넌스)에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 시민들이 변화의 주체가 되고 공공 부문은 지원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자치단체장이 디자인 사업을 치적으로 생각하고 있어 행정이 정치적 동기에 의해 추동되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사회의 감시가 필요하며 공공디자인 품질관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있어야 한다.
 
지역 색채·개성 보전
◇김영대 대구 도시디자인본부장
도시 디자인은 지역의 색채와 개성을 살려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현재 지방의 도시 디자인은 일제히 서울만 바라보고 따라하기에 급급하다. 서울의 일부 디자이너가 지방을 돌며 디자인 장사를 하는 우스꽝스러운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디자인이라는 미명 아래 도시 개성을 말살시키는 꼴이다. 관료들이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소통 장애의 근본 원인이다. 지자체의 편협한 사고가 디자인 전문가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도시마다 디자인행정을 외치지만 치졸하거나 어색한 경우가 이를 방증해 주고 있다. 디자인행정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지자체는 지원에 나서야 한다.
 
심의권 기초단체 이양
◇조정래 서울시의회 전문위원
서울시의 디자인행정은 디자인가이드라인·경관계획수립 등의 실적을 거뒀다. 그러나 디자인 정책사업의 예산·조직에 비해 디자인올림픽·세계디자인수도 등 홍보사업 비중이 너무 높아 정책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 디자인의 경우 산업디자인을 제외하면 건축디자인·공공디자인·광고물디자인 영역은 기초자치단체와 민간의 활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공공시설 디자인심의권을 대폭 기초자치단체에 넘기고, 기초자치단체의 건축위원회에 디자인부문 심의를 활성화시키는 등의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대신 광역자치단체와 중앙정부는 디자인 문화 정착을 위해 아직 초기수준에 불과한 디자인 제도의 기반과 정책·연구개발에 전념해야 한다.
 
건축물 철거 신중해야
◇조현신 국민대 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
현재 디자인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논의 중 하나는 어떤 것을 남기고, 어떤 것을 없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원칙적 기준을 정하는 문제다. 이 기준은 시민과 정부, 전문가가 함께 동등한 힘을 갖고 결정해야 한다. 없애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역사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건축물 등을 철거하는 것에 대한 결정은 더욱 신중하고 합리적이며, 사회 각 층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다. 과거의 유산 중 어떤 것을 보존하고 남길 것이냐의 문제는 그 나라의 의식수준과 가치를 그대로 보여주는 물적 증거가 된다. 디자인 행정은 공간을 경제적으로만 계산하기 전에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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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1104억… 서울시 홍보비 과다 논란 (세계, 김보은 기자, 2009.10.09 (금) 03:04)
김희철 의원 국감서 "두 전임시장 시절의 1.7배" 지적
吳시장 "해외홍보예산 포함"… 시민 65% "정책 몰라"
 
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서울시의 과도한 홍보예산이 도마에 올랐다. 민주당 김희철 의원(서울 관악을)은 이날 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행안위의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2007년부터 3년 동안 고건 전 시장과 이명박 전 시장이 재임기간 사용한 홍보비를 합친 액수보다도 더 많은 홍보비를 썼다”며 “모든 것이 홍보를 위한 행정이냐”고 지적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고건 전 서울시장(1998년∼2002년 6월)은 4년 임기 동안 306억원을 홍보비로 썼다. 다음 이명박(2002년∼2006년 6월) 전 시장은 고 시장보다 약 30억원 많은 343억원을 사용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에 앞서 시장에 재임한 두 시장이 8년 동안 사용한 홍보예산은 649억원이다. 이에 비해 2006년 7월 취임한 오 시장이 2007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사용한 홍보예산은 무려 1104억원으로 두 전임 시장이 사용한 홍보예산의 1.7배에 달한다.
 
서울시의 올해 홍보예산은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서울시를 제외한 15개 지자체의 홍보예산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은 규모다. 김 의원이 행정안전부가 제출한 전국 16개 시·도의 홍보예산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시의 올해 홍보예산은 481억원으로 다른 15개 시·도의 홍보예산을 모두 합한 390억원보다 91억원이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시·도의 경우 경기 66억원, 부산 44억원, 광주 23억원 등 경기도를 제외한 지자체는 홍보예산이 50억원을 넘지 않는다.
 
김 의원은 “홍보도 중요하지만 서울시가 너무 홍보에만 열을 올린 것 아니냐”며 “이렇게 엄청난 예산을 쓴 효과는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고 문제 제기를 했다. 이에 대해 오 시장은 “서울시 홍보예산은 해외홍보 예산이 포함된 금액”이라고 답변했다. 서울시는 세계 40위권에 머물고 있는 서울의 도시 이미지를 높여 해외관광객 1200만명을 유치한다는 목표 아래 공격적 해외 마케팅을 벌이면서 2007년 40억원대에 불과하던 해외홍보 예산을 2008년에는 360억원대로 대폭 상향조정했다. 그러나 효과가 미미해 예산낭비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 결과 올해 해외홍보 예산은 기존 360억원에서 50억원을 감액한 310억원으로 책정됐다. 해외홍보에 너무 치중한 탓인지 정작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한 정책 홍보효과는 다소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최규식 의원(서울 강북을)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와 공동으로 만19세 이상 서울시민 7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오세훈 서울시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서울시 정책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조사 대상자의 65.5%는 ‘없음/모름’이라고 답하거나 응답하지 않았다. 이 밖의 답변은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5.6%), 그린환경·녹지개발(4.6%), 디자인도시(2.2%), 환경문제 개선(2.1%)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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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닮은 서울시의 '디자인 행정'…"사실상 '문화 테러'" (프레시안, 선명수 기자, 2009-10-28 오전 9:56:02)
[토론회] '디자인 도시' 서울, 어디로 가고 있나?
 
거리 미관을 확보한다며 추진된 '디자인 거리 조성 사업'으로 노점상은 철거돼 골목 구석으로 밀려났고, 한강 르네상스 사업으로 사라진 한강 둔치의 매점 자리엔 깔끔한 대기업 편의점이 들어섰다. '도시 경관을 고려해 가급적 튀지 않게 디자인했다'는 시의 신형 가로판매대는 서울시의 광고판으로 전락했다. 국내 최초의 근대 체육 시설인 동대문운동장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조성으로 철거됐다.
 
서울시는 2007년 '디자인 서울 총괄 본부'를 만드는 등, 광역자치단체로는 최초로 디자인을 행정에 접목시켰다. 서울 디자인 올림픽, 남산르네상스 사업,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조성 등 각종 디자인 사업이 공격적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서울 곳곳에서 엄청난 예산을 투여하며 진행되는 이 사업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충분한 검토와 내용없이 진행되는 '디자인 행정'은 오히려 문화를 획일화하고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디자인 도시' 서울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자리가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예술촌에서 열렸다. 문화연대와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문화 도시 서울, 어디로 가고 있나?'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고, 서울시의 문화 정책이 가지고 있는 한계 및 공공 디자인이 나아갈 방향을 짚어봤다.
 
발제를 맡은 김상철 진보신당 서울시당 정책기획국장은 서울시의 디자인 정책을 "과거의 기계적인 정비 사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디자인 거리 조성 사업을 비롯해 시가 추진하는 디자인 사업 대부분이 외관만을 신경 쓴 '보여주기 식' 사업으로 진행돼, 정작 시민들의 참여와 창조성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국장은 "서울시는 '하드 시티'에서 '소프트 시티'의 전환을 강조했지만, 사실상 서울시는 하드시티의 방법론으로 문화·디자인을 채택했을 뿐"이라며 "서울시가 채택하는 디자인 정책은 인간 중심이라기보다는 기능과 효율을 중시하는 하드시티에 걸 맞는 하드디자인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행정 속에는 '브랜드화', '경쟁력'이라는 몇 개의 키워드만이 자리 잡고 있을 뿐"이라며 "공공 디자인의 기본은 시민들의 참여인데, (시의 디자인 행정은) 시민을 끊임없이 객체화시켜 도시의 창조성을 키우기는커녕 소멸시키는 '문화 테러'에 가깝다"고 혹평했다.
 
시의 획일적인 디자인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김강 연구원은 "낙후돼 보이는 것, 보다 덜 세련되었다고 생각되는 곳이면 어디나 포클레인의 삽날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 서울의 현재"라며 "서울의 경관 어디에나 서려있는 기억과 문화는 안중에도 없이 서울시는 그럴듯한 건축 설계와 디자인으로 서울을 재개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개발 논리의 도구로 전락한 문화와 예술은 공공의 시선 안에서 또다시 '규격화'되기 마련"이라며 "그들이 호명하는 '예술'은 정치의 노예로서의 '예술'일 뿐이며, 이 때 인간의 창의력은 식민화된다"고 지적했다.
 
김강 연구위원은 서울 문래동 철공단지에 구성되고 있는 '예술 창작촌'을 시민들의 자율적인 문화 도시 사업으로 꼽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철공단지의 빈 사무실에 젊은 예술가들이 작업실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문래동은 점차 철공과 예술이 공존하는 창작촌으로 변해가고 있다. 옥상미술관 프로젝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철공 워크샵 등 여러 프로젝트가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곳의 사례는 낙후된 철공단지를 '재개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철공의 조화로 도시를 '재생'하기 위한 하나의 실험으로 평가받는다. 김 연구위원은 "이제 문래동의 예술가들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도시에서의 삶을 위해 지역 공동체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다"며 "서울시가 표방하는 '창조 도시' 만들기가 경관적 풍경의 세련된 전환이 아니라, 서울시민의 삶을 아우르며 진행되는 것이라는 내용적 증거를 위해서라도 문래동 실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재래산업으로 여겨지는 철공노동과 예술노동이 진정으로 어우러져 도시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 재생'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박정훈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멕시코의 도시 과나후아토의 사례를 들며 "16~17세기 금광 도시로 부흥했던 과나후아토는 19세기 들어 침체를 겪지만, 그 도시의 한 대학 교수가 학생들을 데리고 거리 곳곳에서 연극 공연을 하면서 도시의 축제와 예술이 다시 꽃피기 시작했다"며 "라틴아메리카의 문화 도시들은 관 주도가 아니라 민간 주도로 활성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어 "무너진 서울시민의 지역 공동체를 어떻게 복원시키느냐가 '자생적 문화 도시론'의 핵심"이라며 "그러나 지금의 서울시의 문화 도시 프로젝트는, 외국인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전시하기 위한, 마치 박정희 정권 당시의 농촌 가꾸기 사업으로 회귀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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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문화서울’은 파시즘 모습” (레디앙, 2009년 10월 27일 (화) 14:46:23 정상근 기자)
[토론회] “규격화된 디자인 벗어나 서울시민을 위한 디자인 만들어야” 
  
27일 진보신당 서울시당과 문화연대가 문래동 예술촌에서 개최한 ‘문화도시 서울, 어디로 가고 있나’ 토론회는 ‘디자인 올림픽’ 등 위계적이고 독선적인 서울시 문화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주민들의 소유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도시디자인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김상철 서울시당 정책기획국장은 ‘디자인올림픽을 통해 본 서울 문화정책의 한계’라는 발제를 통해 “오 시장의 문화정책은 공론의 장에서 이야기되기 전 정책화되었다는 한계를 지닌다”며 “어떤 평가나 논란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의 문화적 취향은 서울이라는 도시정부의 수장이 되었을 때 파시즘의 모습으로 등장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공공디자인’의 경우 “공공장소에서 삶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며 “그러나 디자인 거리 조성 사업,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사업, 한강르네상스 사업 등 서울시가 디자인이라는 이름을 걸고 해왔던 주요한 사업들의 진행과정을 되집어 보면 공공디자인으로서 가지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디자인올림픽’에 대해서도 “서울시가 지난해 디자인올림픽 개최 실적으로 7,800억에 이르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계산했지만 타당성이 의심되는 것은 물론 혹여 진실이라도 한 달 새 나타나고 사라지는 금액이라 실제 경제구조에는 별다른 효과를 끼치지 못했다”며 “디자인 올림픽은 도대체 왜 하는 사업인지 해명할 수 있는 근거는 전무하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문제는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서울의 모습이 무엇이냐는 것이며 외국인을 위해 화장해야 하는 서울시민들의 삶은 행복한 것이 아니”라며 “필요한 것은 디자인수도를 차지하기 위한 올림픽경기가 아닌 어떤 얼굴의 서울이 필요한지 질문을 시민과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의 문화경관과 도시디자인’을 발제한 김강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연구원은 “도시에서의 시각적 경관은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기억과 연관을 맺고 있다”며 “서울시가 경관적 풍경을 변화시켜 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문화를 대상화하며, 삶에 스며있는 ‘문화’를 읽지 못하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또한 “‘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서울시의 의도는 ‘도시의 기억’ ‘서울시민들의 기억’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그럴듯한 건축설계와 디자인뿐”이라며 “개발논리의 도구로 전락한 문화와 예술은 공공의 시선 안에서 또다시 ‘규격화’되고 삶을 피폐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된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서울시가 낙후공장을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 도시재생사업을 벌이고 있는 문래동을 예를 들며 “최소한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시간’”이라며 “재래산업으로 여겨지는 철공노동과 예술노동이 진정으로 어우러져 즐거운 도시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책이 돕는 것, 그것이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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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삽질이 시민 분노 가라앉힐까 (미디어오늘, 2010년 01월 05일 (화) 08:49:39 조현호 기자)
[아침신문 솎아보기]100년 만의 폭설, 정부·서울시 대응 도마에 
 
100년 만의 눈폭탄이라 할 만큼 서울시 등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폭설사태는 5일자 신문의 주요 지면을 장식했다. 무엇보다 천재지변의 불가피성을 감안하더라도 서울시를 마비시킬 정도로 사태가 악화된 데 대한 정부와 서울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여러 지면에서 볼 수 있었다. 신문들은 서울시의 무대책·늑장대응(경향)과 원시적 제설작업을 질타(서울신문)했고, 행정능력의 총체적 부재라는 근본적인 비판도 나왔다. 한국일보는 불과 며칠 전 '눈 치우는 일 하나는 제대로 하겠다'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직접 삽질하는 모습을 보고 "우스웠다"며 "시장좌판 펼치듯 온갖 곳에 전시성 사업을 벌이기보다 정말 시민생활에 중요한 행정시스템 구축 등 시정의 기본을 갖추는 일에 더 충실하라"고 호되게 비판했다. 이에 반해 조선일보는 정부·서울시 뿐 아니라 MBC 등 방송사와 국민들의 질서의식과 각성을 촉구해 마치 이번 사태가 모두의 탓인 것처럼 헛갈리게 했다. 중앙일보도 이와 엇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유래를 찾기 힘든 눈폭탄에 정부와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의 무대책과 늑장대응이 시민들의 원성을 샀다. 경향신문은 4면 머리기사 <서울시·수도권 지자체 제설 무대책·늑장대응>에서 "전국을 엄습한 폭설은 정부와 지자체의 제설 대책을 무력화시켰다"며 "서울시는 결국 관주도 제설작업의 한계를 인정하고 민간기업에 제설작업 참여를 요청했고, 예상 못한 눈폭탄과 지자체의 늦장 제설 때문에 출퇴근길 시민들만 혼란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경향은 "서울시가 총 3105t의 염화칼슘과 531t의 소금을 살포했으나 영하 3도 이하로 떨어진 날씨에서 효과가 없는 염화칼슘은 눈까지 계속 내리면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시는 뒤늦게 낮 12시부터 염화칼슘 살포 대신 눈을 밀어내 차량통로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대응책을 바꿨고, 오세훈 시장은 '간선도로와 언덕길, 주요도로 등에 대한 제설은 공공기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인정하면서 '민간업체에 제설작업 참여를 요청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경향은 "서울시는 불과 일주일 전에 교통대란을 초래했음에도 또다시 제설 대책에 실패해 '기초행정조차 제대로 못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고 비판했다.
 
서울신문도 서울시를 집중 비판했다. 서울은 4면 머리기사 <턱없는 장비·원시적 제설작업…온종일 '길없는 길'>에서 "경인년 첫 출근날인 4일 서울 교통대란은 원시적 제설방식과 미숙한 인력운용 등 서울시의 미숙한 사전준비가 원인이었다"며 "시민들은 서울시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고 보도했다. 서울시의 미숙한 대응과 관련해 서울은 "처음부터 장비를 동원해 눈을 녹이지 않고 치우는 작업을 병행했더라면 교통대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며 "(대형차량이 진입하기 어려운 뒷길은 트럭에 염화칼슘을 실어 삽으로 살포하는 원시적인 방법에 의존하는) 원시적인 제설작업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고 지적했다. 서울은 또 '서울시의 과욕'을 들어 "시는 제설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며 자치구 대신 세종로, 태평로, 을지로 등 주요 도심 진출·입 6개 노선의 제설작업을 직접 맡았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인력을 동원하고서도 효과적인 제설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3면 <제설작업도, 대중교통 대책도 '늑장'>에서 서울시는 제설업무 시스템의 허점이 곳곳에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조선은 비상근무와 관련해 "시는 명령만 내리고 제설작업 상황을 종합적으로 챙기는 기능은 없었다"며 "제설작업을 하는 정해진 지침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지하철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 운행 시간과 차량 대수를 늘려 시민 편의를 배려하는 조치 역시 출근길이 이미 엉망이 된 뒤에야 마련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이번 폭설이 총체적 행정능력 부재라고 정부와 서울시를 정면 비판했다. 한국은 사설에서 "전쟁과도 같은 상황을 치른 시민이 분명히 인식한 것은 비상상황에 대비한 국가 행정능력의 부재였다"며 "대통령이 탑승을 권유하지 않더라도 이미 서울 지하철은 말 그대로 지옥철이었고, 차량은 곳곳에서 멈추고 엉켰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간선도로를 포함한 어디서도 치열한 제설작업은 보기 힘들었다"며 "폭설지역 행정관서들의 해명은 '예보보다 눈이 더 많이 와 인력 및 장비 동원에 차질이 있었다'는 것인데, 언제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 공직자들의 근무자세라는 점에서 이 같은 변명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서울시에 대해 한국은 한마디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오세훈 시장을 도마에 올렸다. "불과 며칠 전 2cm 정도의 눈에 서울의 교통체계가 마비됐을 때 오세훈 시장은 '다른 건 몰라도 눈 치우는 일 하나는 제대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 그가 뒤늦게 삽을 들고 눈을 치우는 모습은 오히려 우스웠다. 시장좌판 펼치듯 온갖 곳에 전시성 사업을 벌이기보다 정말 시민생활에 중요한 행정시스템 구축 등 시정의 기본을 갖추는 일에 더 충실하기 바란다." 한국은 "새해를 출발하는 희망 찬 아침에 거꾸로 국가, 혹은 행정인프라의 여전한 낙후성을 확인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공직자들은 추상적인 경제수치나 업적 홍보보다 국민의 구체적, 일상적 경험이 정부 신뢰도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깊이 유념하고 대오각성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경향은 사설에서 이번 폭설에 대해 "시민들의 고통은 어느 때보다 컸다"며 "천재지변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점에 비쳐보면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하늘 탓만 하는 고질이 되풀이되는 것은 방재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들의 안이한 자세 때문은 아닌지 자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반해 조선일보는 수십년 만에 찾아온 폭설과 그에 따른 교통대란의 원인에 정부와 지차체, 기상청, 방송사 뿐 아니라 국민의 질서의식결여라는 항목을 더했다. 조선은 사설에서 "불가항력의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정부와 지자체·방송사·시민이 더 철저한 대비로 빈틈없는 대처를 했더라면 도시 교통이 완전히 마비되다시피 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기상청의 틀린 예보와 뒤늦은 경보 발령 △서울시의 는장대응과 대비 시스템 미비 △좀 더 빨리 비상상황에 준하는 편성을 하지 못한 MBC 등 방송사 등을 제시했다.
 
조선은 폭설대란 원인분석을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시민들의 '수준'을 끼워넣었다. "비상일수록 시민 개인개인의 철저한 질서의식이 중요하다. 서울 네거리마다 차량들이 서로 먼저 가겠다고 머리를 들이밀고 진입하는 바람에 모든 차량이 엉켜 꼼짝 못하는 혼란이 빚어졌다. 재난을 겪으면서 국가의 수준, 국민 수준이 드러나는 법이다. 4일 벌어진 일들은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준비하고 대비할 일이 아직 많다는 것을 보여줬다."
 
중앙일보도 조선의 주장과 엇비슷했다. 매번 반복되는 기상청의 예측 실패와 부실한 제설작업, 장관들의 지각사태에 덧붙여 성숙한 시민의식을 촉구했다. 중앙은 사설에서 기상청의 예보가 빗나간 데 대해 "바로 일주일 전 적설량 10㎝로 예보했다가 2.6cm로 망신당했으며 수퍼컴퓨터를 도입한 지 6년째이고, 지난해 8월엔 대통령보다 많은 연봉(3억2500만원)의 외국인 전문가까지 영입했다"며 "적설량은 오차가 클 수밖에 없다거나, 기후예측 모델이 낡았다는 설명은 지겹다"고 원색 비난했다.
 
중앙은 또 "시민들이 지하철로 몰릴 것도 충분히 예상됐음에도 지상 구간 제설작업이 부실해 전동차가 멈춘 것은 문제"라며 "염화칼슘을 뿌렸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중앙은 이어 장관 5명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 지각한 것을 두고 "(이들은) '차가 오르막길을 못 올라가서'라 변명했다고 한다"며 "상황실에서 일찍 연락했으면, 또 장관들이 승용차가 아니라 지하철이든 걷든 상황에 맞게 대처했으면 지각 사태는 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중앙은 "부실한 예보와 도로 관리도 문제지만, 내 집 앞 눈부터 치우는 성숙한 시민의식도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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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청계천-광화문' 야간 조명에 3년간 43억? (프레시안,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 2010-02-09 오후 3:13:52)
[김영호의 사자후] 녹색성장 비웃는 서울시의 '빛 잔치'
 
언제부터인가 12월이 되면 서울시청 광장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등장해 저물어가는 한 해를 알리곤 했다. 세월이 흘러 갈수록 크리스마스 트리가 더 커지고 더 화려해지더니 지난 3년 전부터는 휘황찬란한 옥외 조명이 연출하는 빛의 축제가 서울의 밤을 밝힌다. 서울시청은 2007년 12월 '2007년 하이서울 루체비스타'라는 일반 시민은 뜻조차 모를 이름의 빛의 축제를 벌였다. 서울시가 영어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이탈리아 말이란다. 루체(luce)는 빛이고 비스타(vista)는 전망, 풍경이란 뜻이라니 무슨 말이지 알 듯도 하다. 이탈리아에서 아치형 구조물을 들여다 청계천 일대와 서울광장을 밝혔다. 서울시가 디지털 조선일보와 맺은 계약금이 14억5000만 원이라고 한다. 여기에 얼마인지 모르는 전기요금이 들어갔을 테니 비용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서울시는 2008년에도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에서 빛의 축제를 열었다. '순백의 겨울, 순수의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순백이니 순수라는 단어는 눈을 뜻하는 모양이나 그 해 서울에는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았다. 아니면 야간 조명의 개념을 은백색으로 한다는 뜻인 듯하다. 호텔, 백화점 등에 연말 야간 옥외 조명의 기본색을 은백색으로 하라고 지시한 데서 알 것 같다. 서울시는 2008년 빛의 축제를 위해 시설비와 운영비로 12억2400만원을 썼다고 한다.
 
서울시는 작년에는 광화문 광장 개장을 축하하느라 '빛으로 행복한 도시 서울'이라는 더 성대한 빛의 축제를 열었다. 그 중에는 KT건물을 스크린 삼아 영상을 쏘는 '미디어 파사드'라는 뜻 모를 행사도 있다. 파사드(facade)가 건물의 정면을 뜻하는 불어라는 사실을 모르면 무슨 소리인지 알 리 없다. 또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프랙털 거북선'을 이순신 동상 앞에 설치해 전시하고 있다. 프랙털(fractal)이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를 뜻한단다. 사전적 해설을 들어야 알 수 있으니 서울 시민하기도 어렵다. 이 축제에도 16억7000만 원을 썼다고 한다.
 
서울시청이 이렇게 지난 3년간 빛의 잔치를 벌이느라 43억4400만 원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예산 집행액이다. 여기에다 백화점, 호텔, 은행 등 대형건물들이 연말에 야간 옥외 조명을 위해 쓴 돈까지 합치면 그 비용은 훨씬 클 것이다. 서울시가 빛의 거리를 조성한다며 민간 기업에 참여를 독려했으니 하는 말이다. 미국발 금융 위기로 많은 시민들이 공포에 떨던 2008년에도 야간 조명을 조성하도록 당부했다. 참여를 독려하려고 예산 1억4500만 원을 들여 우수업체 20곳을 선정해 500만 원씩 상금으로 줬다.
 
서울시는 빛의 거리, 빛의 도시를 만든다며 도심의 가로수마다 전깃줄로 꽁꽁 동여매고 거기에다 전등이나 점멸등을 매달아 서울의 밤을 밝힌다. 인공 빛이 밤을 밝히고 전구가 열을 발산하니 나무인들 겨울잠을 잘 수 없을 테니 생육 장애가 생기기 마련이다. 아무리 좋은 연말 행사라도 1월 중순쯤에는 끝나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 2월 들어 열흘이 넘었지만 태평로-세종로를 잇는 서울 도심의 밤은 가로수 조명등으로 어둠을 모른다. 아직 찬바람이 부나 지난 2월 4일이 입춘이니 절기로는 봄이다. 계절이 바뀌나 서울의 밤은 백야를 연출하며 겨울밤을 예찬하는 모습이다.
 
경제난, 생활고에 찌든 서울 시민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겨울 내내 빛의 축제를 즐길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한 장의 연탄이 아쉽고 냉바닥에 사지를 덥힐 전기장판을 쓰는 게 아까운 이들이 많을 테니 말이다. 시민들은 전기 값 아낀다고 한 등이라도 더 끄려고 애쓰고 안 쓰는 플러그를 뽑지만 돈도 전기도 아까운 줄 모르는 서울 도심의 옥외 조명은 밤새 눈이 부시도록 밝다. 전력사용량 최고치 수립은 이제까지 한 여름 무더위가 심할 때 일어났다. 냉방기를 많이 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겨울에는 전력사용량 최고치를 연이어 갱신했다. 혹한에다 폭설 때문일 테지만 빛의 축제 같은 전기 낭비 심한 행사가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이러니 전기 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나 보다.
 
청와대는 녹색 성장을 이룩하려고 골똘하고 있다고 한다. 녹색 성장은 화석연료 사용 감축을 통해 온실 기체 배출을 줄이면서 경제 성장을 모도하는 일이다. 이것은 지구인의 과제다. 그런데 서울시는 웬일인지 해마다 찬란한 빛의 축제를 벌이며 녹색 성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밤마다 전기 낭비, 예산 낭비를 일삼는다. 그것도 서울광장, 청계천광장, 광화문광장에서 시민의 소통은 틀어막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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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새마을운동’ 하십니까 (한겨레21 2010.04.09 제805호, 김미영 기자)
[특집] 공사 끊이지 않는 광화문광장, 호텔 로비 같은 인사동…
오세훈 서울시장 4년간의 디자인 정책 점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오세훈 서울시장의 ‘디자인 서울’ 정책이 정치 이슈로 떠올랐다. 정책 비판은 친정인 한나라당에서 먼저 나왔다. 서울시장 당내 경선 출마를 선언한 원희룡 의원은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아직 디자인에 ‘올인’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했고, 나경원 의원도 “디자인 서울은 장기적으로 방향은 맞지만 그것이 왜 지금이고 서울 시정의 중심인지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오세훈 시장을 압박했다. 특히 나 의원은 “광화문 광장 논란 때문에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며 “우리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한 사업이 역사 인식과 철학 없는 행정의 표본이 됐다”고 비판했다. ‘맑고 매력 있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민선 4기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정책은 왜 도마 위에 오른 것일까?
 
광화문 한복판은 세웠다 부쉈다…
오세훈 시장은 2006년 취임 당시부터 ‘디자인’을 강조했다. 2007년 디자인서울총괄본부를 꾸리고 ‘디자인 서울’ 정책을 내놨다. 한강과 남산을 친환경적으로 재개발하는 ‘한강르네상스’와 ‘남산르네상스’, 서울 거리 곳곳을 새 단장하는 디자인서울거리 조성사업, 동대문 일대에 조성하는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 등의 모든 사업에서 디자인이 우선으로 고려됐다. 서울시는 “기능과 효율 중심의 도시를 인간 중심의 도시로, 자동차 중심의 도시를 보행자 도시로 바꿔가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 결과, 서울은 소란하다. 한쪽에서는 건설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부수는 작업이 도시 곳곳에서 펼쳐진다. 도시가 디자인을 입는 과정은 때로 불편했다. 지하에서 고층까지 온통 공사판이고 길과 길이 서로 엉켰다. 경제·문화적 효율을 강조하며 역사적인 건물과 장소를 없애기도 했다. 건축된 지 83년 된 동대문운동장, 51년 된 옛 중앙정보부 건물이 철거되거나 철거될 처지에 놓였다. 서울의 600년 역사는 강화되는 듯 보이면서 퇴색했다. 시민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든다는 디자인 정책은 거리의 가난한 시민들을 도심 중심에서 바깥으로 밀어내기도 했다. 도시가 디자인을 입는 과정은 재개발 과정과 흡사했다.
 
지난 3월23일 오후 2시. 서울의 한복판인 광화문광장에 뜨거운 햇빛이 쏟아졌다. 대로 가운데 섬처럼 놓인 광장은 교차로로 쓰일 뿐, 낮 시간엔 썰렁했다. 지난해 8월 개장 당시 호기심에 광장을 채우던 사람들은 이벤트도 없고 그늘도 없는 광장에 더는 모이지 않는다. 이순신 장군 뒤편으로 세종대왕이 금빛을 번쩍였다. 지난해 12월 스노보드 경기대가 놓였던 자리에는 맨흙이 채워졌다. 올봄 잔디밭이나 꽃밭으로 변하려는지 빈 땅에 물을 뿌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휘장 덮인 경복궁도 여전히 공사 중이다.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경복궁까지 서울의 역사를 담은 조형물이 줄줄이 서 있지만, 역사의 향취도, 광장의 기능도 알 수 없었다.
 
광화문광장 주변에서 30년째 가로판매대(가판대)를 운영한다는 한 아주머니는 “광장이 조성된 뒤 한번도 광장을 거닐어보지 않았다”며 “하루도 쉴 날 없이 뭔가를 허물고 세우는 작업을 하는 걸 보면 혈세 낭비 같아 속이 터진다”고 했다. 아주머니의 가게인 가판대도 디자인 정책에 따라 지난 2월에 교체됐다. 고동빛의 새 가판대는 이전보다 좁고 불편하다. 차양이 짧아 비가 쏟아질 땐 빗물이 들이쳐 물건이 다 젖는다. 내부 선반도 부족해 물건을 한쪽 바닥에 쌓아둬야 한다. 헌것 주고 새것 받았는데 좋아졌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돈도 더 내고 있다. 이전 가판대는 도로점용료를 포함한 1년 임대료가 150만원이었는데, 교체 뒤 170만원을 낸다. 아주머니는 “광장에 머물다 가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음료수도 팔리지 않고 장사가 잘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시간의 해방구인 인사동도 변했다. 2000년 인사동길 역사탐방로조성계획에 따라 아스팔트 대신 검은 전돌이 깔렸던 바닥은 ‘하이힐이 빠지지 않는 거리’를 만든다며 다시 마천석을 깔아 평평하게 바뀌었다. 인사동 초입을 지키던 석장승이나 석물도 사라졌다. 변하지 않는 모습이 아름다운 인사동은 점차 옛 맛이 사라지고 있다. 2000년 당시 인사동 개선 사업에 참여했던 건축가 출신 김진애 민주당 의원은 “인사동길이 호텔 로비처럼 바뀌었다”며 “인사동은 결점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잘 쓰이는 공간임에도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의 색을 없애고 겉멋 든 화장에 집중하는 게 지금 시장의 디자인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옛것은 사라진 인사동과 동대문
옛것은 동대문운동장 주변에서도 사라지고 있다. 이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으로 개명된 지하철 동대문운동장역 앞도 버스전용차선 공사와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 건설로 시끄럽다. 베트남전 참전용사 귀국환영회,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농민집회 등 근현대 역사적 사건의 배경이 됐던 동대문운동장은 이제 터만 남아 공원으로 바뀌고 있다. 옛 모습은 새 건물 옆으로 들어선 홍보관에서 동영상이나 기념품을 보며 떠올려야 한다. 운동장 터를 밀었을 때 나온 조선시대 성벽, 관아 터, 우물 등은 공원 한켠에 유구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 일제가 운동장을 지으며 허물었다는 서울 성곽도 일부 인공적으로 재현했다. 일제 잔재라지만 시간의 켜가 쌓인 건물이 사라진 자리에 이미 흔적도 없어진 옛 유적의 모형이 어설프게 들어선 셈이다.
 
2011년 말에 완공될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는 이라크의 유명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를 맡았다. 액체 흐름을 형상화한 우주선 모양의 건물로 지어진다. 이를 두고 김진애 의원은 “동대문운동장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살리지 못한 디자인”이라며 “스타 건축가의 이름에 기댄 건물은 서울시가 ‘명품 중독증’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비난했다. 배정한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조금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국제적 홍보 효과도 있는데 역사적 장소라고 해외 유명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배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며 “다만 설계 과정에서 발주처인 서울시가 사업을 주도하지 못하고 디자이너에게 끌려다닌 측면이 아쉽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에 대해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되어 외국인 관광객이 연간 210만 명에서 280만 명으로 늘어나고, 향후 30년간 53조7천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44만6천 명의 고용 유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한다. 서울시가 생각하는 디자인플라자의 용도는 디자인 박물관, 정보교육센터, 국제 디자인 전시 및 콘퍼런스 유치 등이다. 숫자가 만든 경제 효과는 차지하더라도 일대 상인들이 기대하는 건물은 아닌 듯하다. 디자인플라자 홍보관의 한 직원은 “또 하나의 복합 쇼핑몰로 알고 주변 상인들의 상점 입점 문의가 많다”고 전했다.
 
광화문·종로·인사동·동대문운동장 등 디자인 정책을 입은 동네들이 변하는 사이 사람들의 삶도 변했다. 디자인 서울 정책을 가장 먼저 체감하는 이들은 거리의 영세상인이다. 디자인서울거리 조성으로 수많은 노점상과 상인들이 생계 공간을 잃고 있다. 노점상을 인정해준다는 디자인서울거리는 대로변의 노점을 싹쓸이해 이면도로로 몰아넣었다. 동대문운동장 일대에서만 1천여 명의 노점상인이 신설동 풍물시장이나 다른 곳으로 쫓겨났다. 이명박 전 시장의 청계천 복원사업 때문에 청계천에서 동대문운동장으로 쫓겨났던 노점상들은 오세훈 시장의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 사업 추진으로 다시 신설동 풍물시장으로 쫓겨난 셈이다. 이제 옛 동대문운동장 앞은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며 시위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공사장 소음과 엉킨다.
 
요란하다고 ‘몰개성’ 간판 강요?
서울시는 노점상이 떠난 도시 대로변의 환경미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7년부터 매년 10곳 이상의 거리를 지정해 보도환경을 개선 중이다. 지저분한 분전함, 전선이 얽힌 전신주, 울퉁불퉁한 보도바닥 등을 교체해 거리를 깨끗하게 포장하고 있다. 지난해 2월 능동로(어린이대공원역~시민체험관) 1차 거리 조성을 마친 광진구의 경우 올해 10월 완성을 목표로 능동로(능동소방파출소~군자역사거리) 2차 거리 조성을 하고 있다. 광진구청 도시디자인국의 한 공무원은 “보행 공간을 넓히고 거리를 깨끗하게 정비하면서 구민들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황진태 객원연구원은 “서울시가 디자인 정책을 강조하며 시민들의 경제와 문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근대 문화재를 파괴하고 노점상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노점상은 오세훈 시장이 위한다는 시민의 범주에서 제외되느냐”고 되물었다.
 
디자인서울거리 조성사업 중엔 도시 경관을 해치는 간판 정비사업도 포함된다. 디자인서울거리로 지정된 거리의 건물은 시가 지원비를 주고 간판 개선에 나섰다. 앞으로 신축될 건물은 시의 디자인 심의에 따라 규격에 맞는 간판을 만들어야 한다. 광진구청의 이 공무원은 “서울시가 부담해주는 금액을 초과해 간판을 교체해야 할 경우 건물 주인이 남은 비용을 부담하게 돼 반발이 있었지만, 지금은 간판 정비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 원만하게 해결 중”이라고 했다. 덕분에 색과 크기 경쟁을 벌이던 간판들은 작고 깔끔하게 건물 외벽을 장식하게 됐다.
 
하지만 획일화된 간판으로 바뀌면서 건물이나 장소의 개성이 사라졌다. 간판 교체 과정에서 강제된 행정력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서울시는 간판 정비사업의 첫 시범 지역으로 북촌 거리를 지정했다. 동네의 특성을 드러낸 북촌 일대 간판이 서울시의 획일화된 디자인 전략에 따라 만들어진 간판으로 교체되면서 상인들과 서울시 간에 마찰이 발생했다. 황진태 연구원은 “원색에다 크기도 제각각이어서 시각 공해를 초래하던 간판을 정리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지역과 장소의 특수성에 상관없이 비슷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간판을 강요하는 것은 몰개성적인 탁상 행정의 결과”라고 말했다.   
 
디자인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도시에 디자인을 입히겠다며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껴안고 있는 건축물을 훼손하고 밀어붙이기식 개발로 시민과 마찰을 빚는 건 역사성과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건설자본의 이해를 대변한 개발과 자본 중심의 논리가 디자인 정책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과의 소통 없이 장사용으로 디자인을 사용하고 있다”(김진애 민주당 의원)거나, “자치단체장이 임기 내 실적을 만들기 위해서인지 역사성에 대한 고려도 없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서둘러 도시계획을 추진한다”(배정한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오페라하우스만 세우면 시드니 되나”
문화마케팅 차원의 도시디자인 정책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시는 인공섬인 ‘플로팅 아일랜드’를 조성하고, 노들섬은 ‘한강예술섬’으로 꾸미는 계획을 포함한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올여름 완공 예정인 플로팅 아일랜드는 미디어아트를 주제로 첨단 기술을 접목한 복합문화시설로 만들어질 계획이다. 총 4500억원의 예산을 들여 2014년 완성 예정인 한강예술섬은 오페라하우스와 미술관 등 대단위 문화예술 공연장을 갖추게 된다. 이밖에도 다양한 프로젝트가 한강르네상스의 이름으로 2030년까지 추진된다. 문화우리 이중재 사무국장은 “외국에서 본 예쁜 오페라하우스를 한강에 갖다놓는다고 해서 서울이 시드니나 파리가 되겠냐”며 “여느 도시에서 보기 드물게 강과 산이 어우러진 서울의 경우 인공적인 조형물 없이 자연 그대로의 것을 어떻게 보여줄지를 고민하는 디자인 정책을 잡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진태 연구원은 “오세훈 시장이 한강 개발을 임기 이후까지 진행될 장기적인 사업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은 칭찬해줄 만하다”며 “한강르네상스야말로 오 시장이 그토록 강조해온 환경·생태 등의 수식어가 얼마나 진정성이 있었는지 판가름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데는 도시계획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견이 없다. 서울은 30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도시 가운데 인구밀도가 가장 높다. 인천·수원을 포함한 서울권역 인구밀도는 1㎢당 1만6700여 명. 뉴욕의 8배, 도쿄의 3배다. 좁은 땅을 많은 사람이 나눠 쓰려니 삶의 질이 높을 리 없다. 교통난과 주택난, 대기오염이 심각하다. 서울의 도시 환경을 바꾸기 위한 창의적 도시디자인 정책이 시급하다. 디자인 서울이 정책 추진 방법에 따른 문제성이 지적될 뿐 “왜 디자인을 해야 하나”란 반대 여론이 없는 건 이 때문이다.
 
서울시의 ‘디자인 서울’ 드라이브로 서울은 변했고, 변하고 있다. 서울시는 “디자인 정책을 펼친 이래 <뉴욕타임스> <뉴스위크> <월페이퍼> 등에서 서울을 가보고 싶은 도시로 꼽고 있다”며 성과를 과시했다.
 
그러나 반대의 조사 결과도 있다. 세계적인 여행서 출판사인 ‘론리플래닛’은 지난해 10월 누리꾼과 여행가의 의견을 바탕으로 세계 최악의 도시 9곳을 선정하면서 서울을 3위로 꼽았다. “무질서하게 뻗은 도로, 옛 소련 스타일의 콘크리트 아파트, 끔찍한 대기오염”이 이유였다. 가보고 싶은 도시와 최악의 도시란 상반된 평가가 서울시가 디자인 정책을 펼친 뒤 이뤄진 셈이다.
 
김아연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디자인 서울 정책을 ‘디자인 새마을 운동’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겉으로 보이는 외관만 바꿀 게 아니라 도시 체계를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고 평했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도 “디자인 서울 정책이 도시 환경과 관련되기보다는 포장된 이미지를 보여주고, 시민의 삶의 질에 기여하기보다는 도시 정치의 선전에만 쓰이고 있다”며 “디자인 서울 정책은 우리 사회에서 디자인이라는 말이 어떻게 이해되고 사용되는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고 말했다.
 
각 도시 정부가 더 많은 자본과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디자인 전략을 취하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서울시의 디자인정책 관계자는 “기술개발에 투자하면 5배의 매출 증대 효과가 있지만 디자인에 투자하면 22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말처럼 디자인 산업이 도시 경쟁력을 키워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병통치약처럼 보이는 디자인 정책은 양날의 칼을 지니고 있다. 기득권층을 지키기 위한 칼날과 도시 빈민을 쫓아내기 위한 칼날이다.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도시 경관 개선계획이 한강과 남산 일대 부동산값만 높이게 될 것이라든가, 깨끗한 거리는 결국 거리 노점상 청소를 의미한다는 비난이 계속되는 까닭이다. 김진애 의원은 “관광 수입이나 디자인 산업 등 경제주의적 발상으로 삶의 기억과 체험을 지우는 디자인 행정은 지금이라도 수정돼야 옳다”고 말했다. 
 
누구를 위한 디자인인지 생각해볼 때
많은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누구를, 무엇을 위한 디자인인가’를 고민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목소리를 모은다. 무엇보다 랜드마크 같은 거창한 결과물을 만드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배정한 교수는 “유럽 같은 선진 디자인 도시를 보면 보기좋은 공간이 아닌, 사람이 살기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공공성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시민의 참여를 늘리는 노력도 요구된다. 황진태 연구원은 “전북 진안군 원촌마을의 경우 주민들이 마을가꾸기의 일환으로 공공디자인을 가미한 간판 교체 사업을 자발적으로 진행해 마을을 아름답게 가꿨다”며 “디자인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정부와 시가 시민들과 지역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대화하느냐다”라고 말했다. 문화우리 이중재 사무국장도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회색빛 아파트, 복잡한 시내 도로 환경 등 서울의 문제점들을 다듬는 것만으로도 서울은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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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 ‘서울형 복지’ 차별성·실효성 떨어져” (경향, 한대광 기자, 2010-04-09 00:33:26)
ㆍ유권자희망연대 좌담회… 임대주택 공약도 못지켜
 
오세훈 서울시장이 내건 ‘서울형 복지’가 기존 복지정책과 차별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핵심사업으로 내세운 희망플러스통장 등도 저소득층 관련 사업 예산의 2%에 불과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 시장이 서울시장 후보 시절 내건 공공임대주택 10만채 공급도 2만1000여채 공급에 그쳐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참여연대 등 전국 353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2010 유권자희망연대는 9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오세훈 서울시정 4년 복지·주거정책 평가 공개좌담회’를 열기로 했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서울형 복지:정치적 수사와 실제의 모호함’, 이주원 나눔과미래 지역사업국장은 ‘미봉책으로 일관한 오세훈 시정의 주택정책 평가’를 각각 주제발표할 예정이다.
 
남 교수는 8일 배포된 주제발표문을 통해 “서울시는 기존 복지정책을 비판하면서 ‘서울형 복지’를 내걸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면서 “그러나 서울형 복지는 한두 개의 콘셉트에 대부분의 기존 정책을 끼워 맞춰 포장하는 형식”이라고 밝혔다. 그는 “서울형 복지의 핵심으로 광고되는 희망플러스통장·꿈나래통장·희망드림뱅크도 서울시 저소득층 지원사업 예산의 2% 이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이어 “서울형 그물망 복지센터도 시민들에게 전화번호 하나를 알려준 것일 뿐이며 그물망 복지프로그램에서 제시한 300개 단위 사업을 연결하고 관리할 수행인력은 10명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참여하는 박지영 공공노조 조직부장은 “서울형 어린이집은 보육교사의 급여가 일부 인상되고 간판만 달라졌을 뿐 보육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시설환경을 개선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며 “서울형 어린이집으로 공인된 이후 영어·음악·미술·체육 특기교육과정을 추가 신설하는 바람에 아이들이 납부하는 보육료에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오 시장의 주거정책에 대해 이주원 국장은 “공급보다 멸실량이 큰 주택공급 정책 때문에 서민주택이 줄어들고 전세 대란 등을 초래했다”면서 “시프트도 취지는 인정되지만 공급량이 제한적이고 한정된 자원을 중·고소득자에게 집중시키는 등 오 시장의 치적 쌓기용 수단이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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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오세훈 8년, 한 마디로 '거품' 시정"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 2010-04-09 오후 6:07:55)
"청계천 복원, 광화문 광장, 한강르네상스…일상 공간의 피폐화"
 
오세훈 서울시장이 역점을 두고 진행하는 이른바 '서울형 복지'가 '속빈 강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2010 유권자희망연대는 9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지난 4년간 오세훈 시장이 추진한 복지 정책을 평가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따뜻하고 행복한 복지 도시'. 오세훈 시장이 진행하는 '서울형 복지'의 슬로건이다. 서울시는 '서울희망드림 프로젝트', '9988 어르신 프로젝트', '장애인 행복도시 프로젝트', '여행 프로젝트', '꿈나무 프로젝트' 등 5개를 그 내용으로 내세운다.
 
남기철 동덕여자대학교 교수(사회복지학과)는 "현재 '서울형 복지'는 한두 개의 개념에 기존 정책을 끼워 맞춰 포장하는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서울형 복지'는 이미 기존에 진행돼 온 개별 프로그램을 재배치 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것. 남 교수는 "'서울형 복지'는 홍보를 위한 수사에 맞춰 서로 다른 내용을 같은 색 포장지에 포장한 것"이라며 "수백 개의 단위 사업으로 구성돼 있는 서울형 복지는 대부분 기존에 비판 받던 과거 사업과 다를 것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상당수의 단위 사업은 아예 예산이 편성되어 있지 않거나 예산 삭감이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여러 부분에서 예산과 사업 계획이 야심차게 알려지곤 했지만 이미 연간 예산에서부터 틀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울형 복지' 사업을 진행하는 사회복지관의 경상운영보조금은 2009년 동결된 이후 2010년에도 동결됐다. 오세훈 시장의 재임 기간 중 사회복지관 경상운영비의 평균 인상률은 2.26퍼센트에 불과하다. 또 '서울형 복지' 사업의 가장 핵심 영역으로 광고되는 '희망드림 프로젝트 사업'의 2010년 예산 규모도 모두 합해봐야 서울시 저소득층 지원 사업 예산 전체의 2퍼센트 이내 규모다. 더구나 서울시의 저소득층 지원 사업 전체 예산은 전년도에 비해 삭감됐다.
 
반면, 오세훈 서울시장의 재임기간 중 홍보비는 118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건, 이명박 전 서울시장 재임 8년간 서울시가 쓴 홍보비 649억여 원의 1.8배에 달하는 수치다. '서울형 복지'가 전시성에 불과하다는 지적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임성규 서울복지시민연대 대표는 "기본적으로 정책을 말할 때는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서울형 복지'는 그렇지 못하다는 게 홍보비 수치를 통해 잘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오세훈 시장이 힘주어 말하는 '서울형 복지'는 구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김수현 세종대학교 교수(도시부동산대학원)는 "이명박, 오세훈의 8년은 한 마디로 거품 시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광화문 광장, 한강르네상스, 청계천 복원 속에서 우리가 사는 동네, 즉, 일상 공간은 피폐화됐다"고 주장했다. 김수현 교수는 "제대로 된 시정을 펼친다는 것은 서울 시민이 사는 일상 공간을 어떻게 보기 좋은 곳으로,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스노보드 대회를 통해 시민 100만 명을 끌어들인다고 좋은 시정을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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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1 01:28 2010/05/31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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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진짜 문제, 무관심 (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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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진짜 문제, 무관심 (레디앙, 2010년 05월 29일 (토) 23:02:19 박노자 / 오슬로대)
정보 과잉 대중 눈멀게 해…진보에 관심 갖게 하려면? 
 
지금 호주의 내각은 노동당 내각이지만, 그 전의 보수적 내각이 부시 행정부와 아주 가까운 공범 관계였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반 노르웨이 대중들이 단순히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주에 가서 돈을 쓰고 공부한다는 것은, 전쟁 범죄를 방조하는 것과 무관하다고 보는 것은 통념이지요. 자기 정부의 범죄성에 대해서 훨씬 더 아프게 생각했던 호주 교수의 입장에서는 이는 아쉬운 이야기이었지만, 사실은 그렇습니다.
 
대중, 즉 매체 소비자들의 주의 범위(attention span)란 굉장히 좁은 것이지요. 대개 노르웨이인 성인은 하루에 34분 동안 신문(대개 2개 정도) 읽고, 또 약 30~40분 동안 텔레비전 뉴스를 시청하는데,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가장 강조하는 정보, 그렇지 않으면 본인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돼 있거나 가장 충격적인 정보에만 주의를 기울이곤 합니다.
 
미국의 전쟁 범죄 정도면 보수일간지조차도 많이 강조하고, 또 그 충격성은 매우 높으니 노르웨이인들의 대중인식에 그 영향을 크게 미쳤지만, 호주의 공범 행각은 그냥 아무 주의를 끌지 않고 지나가고 만 것입니다. 그러기에 미국에 안가겠다는 이들이 호주를 쉽게 선택하죠.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각종 과잉 생산입니다. 단순 소비재의 과잉 생산 같으면 오늘날과 같은 공황의 기본적 원인에 해당되기도 하죠. 충분한 수용 인프라가 뒷받침되어지지 않는 최고급 학력 소유자들의 과잉 생산은, 귀족적 위치에 있는 일부 '실력자' 교수들이 프로젝트를 따오면서 비정규직 박사들을 마음대로 착취하고 자살로까지 내몰 수 있는 오늘날 파행적인 대학 구조를 낳은 것입니다.
 
그리고 정보의 과잉 생산은 결국 대중들의 눈과 귀를 어둡게 하고, 개인으로 하여금 자율적 세계관의 수립을 거의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매체들이 대중으로 하여금 진보든 무엇이든 체제에 잠재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게 하자면 굳이 비방전을 전개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일단 뉴스를 개인의 경제적 생존에 요긴한 정보(부동산 등)와 일상적 고통들을 잊게 하는 '연성 정보'(모 연예인 과다 노출 시비부터 한일전에서의 축구 승리까지)로 그득 채우고, 충격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를 충격적 범죄(특히 부모들을 자극하기에 좋은 유아 유괴 등)에 대한 이야기로 충족시키면, 이걸로 일반인의 '정보 욕구'가 거의 다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이죠.
 
하루마다 땅값 시세를 몇 분 보고, 주식 시세를 몇 분 보고 방령 미녀(연예인) 허벅지의 하얀 살갗을 몇 분 보고, 태극전사의 만세 소리를 몇 분 듣고 하는 것을 일상으로 하면, 그 이상에 대한 욕구는 스스로 감퇴되죠. 이 정도로는 만족이 되고, 진보든 뭐든 뭔가를 크게 바꾸려는 '좀 이상한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 자체가 잘 생기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기반, 즉 시장은 늘 그 구성원을 불안하게 만들지만, 고도로 발전된 소비 자본주의의 매체 산업은 개인을 대단히 안락하게 만들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미디어들이 만들어낸 '재현의 세계'는 예측가능하고 안정적이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세계 속에서 안락하게 사는 선남선녀들에게 진보에 대한 관심이란 애당초 생기기가 힘든 것이죠. 진보가 그들의 '주의 범위' 속으로 들어가 약간이라도 주의를 끌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인가요? 진보의 전자 매체 등이 스스로 본질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일리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대중이 공감하는 거리투쟁'은 또 하나의 해답으로 떠오르기도 합니다. 예컨대 그나마 일부 젊은이 사이에서라도 진보신당이 알려지게 된 것은 바로 촛불시위 때 아니었습니까? 그러한 계기가 주어지지 않는 한 주요 매체들의 정보 봉쇄(informational blockade)를 뚫는다는 게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정보 범람의 시대에 사람들에게 장기적으로 진정으로 필요한 정보, 즉 이 체제를 어떻게 해서 보다 인간적으로 개조할 수 있을까에 대한 정보야말로 매체 소비자들에게 잘 들어가지 않는 게, 어떻게 보면 역설이지만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강고함의 비결 중의 하나입니다. 북한처럼 '바깥'에 대한 정보를 엄격히 통제하면 그 정보가 알려지고 나서 엄청난 대중적 분노를 맞을 수 있지만, 남한처럼 체제에 비판적 세력에 대한 정보를 자꾸 주변화시키면 결국 정보의 소비자들을 체제의 능동적 공범으로 만들기가 훨씬 편합니다. 대개 사람들이 북한을 '무서운 사회'라고 하지만, 거시적으로 본다면 개인에 대한 흡입력 등으로 봐서는 남한은 더 무섭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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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0 23:33 2010/05/30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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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성, 조건없이 경기도지사 후보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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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진보신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조건없이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와의 단일화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29일의 심상정 후보의 유세일정이 갑작스레 취소되고 장고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불안했는데,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니 시간은 남은 건가.

 

29일 오후에 있었던 진보신당 경기도당 운영위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었고, 다수가 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후보 본인이 이미 사퇴결심을 하고 왔다는 식으로 설명을 했고, 일부 운영위원들이 후보사퇴에 격렬하게 반대했으나 후보 본인의 뜻을 꺾지 못했다 한다. 어쩔 수 없었겠지. 선거는 어느 정도 후보 놀음이니...

 

사실 나는 심상정 후보의 사퇴에 원칙적인 말밖에 할 자격이 없다. 진보신당 당적도 없는데다가 최근 행보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그 하나하나가 그리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입장에서 심상정의 사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 하지만 진보신당 홈페이지와 심상정 홈페이지에 와서까지 후보단일화를 읍소하고 위협했던 몰상식한 넘들을 그냥 곱게 넘길 수는 없을 듯하다. 아마 그 넘들은 이미 당선이나 된듯이 환호할 것이고,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둥의 말을 하리라.

 

하지만 지난 2002년 대선 때나 2004년 총선 때 충분히 배웠던 것처럼 그들은 붕어 아이큐이기 때문에 은혜 같은 거 기억 못하거나 아니면 편의적으로 자신에게 편리한대로 기억한다. 그래서 사퇴운운하면서 민주노동당 후보를 언급해주었기 때문에 선방할 수 있었다는 식의 망발을 일삼았다. 그런 그들에게 뭘 기대하랴. 정당이 아니라 끊임없이 인물중심적으로 사고하고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은 MB/한나라당과 함께 한국정치를 후진시키는 양대세력일 뿐이다. 

 

물론 심상정 후보의 사퇴 결심을 이해할 수는 있다. 가장 크게는 진보정치의 미래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이, 김규항이 말한 것처럼 '비판적 지지가 최악을 막는 데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실재하는 진보정치의 씨앗을 보수정치로 흡수하는 진보정치의 미래를 없애버리는 굿판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눈을 감는 대중들, 이에 기반하여 끊임없이 후보단일화, 사실상의 심상정 사퇴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해온 노빠/유시민지지자들, 지방선거에 참여하기로 해놓고서도 그에 대한 정책, 재정 등의 필수적인 사항을 준비하지 않았고, 선거라곤 처음해보는 양 일처리가 엉망이었던 진보신당 경기도당, 당대표가 서울시장으로 출마하면서 중앙정치판을 놓치고(물론 역량도 없었겠지만) 서울시장 선거에만 힘을 쏟았던 진보신당 중앙당, 지난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경선만큼도 결합하지 않고 먼산 쳐다보듯 심상정의 경기도지사 후보 출마를 방관한 중앙파들, 민주노총 조합원인 후보 자신을 지지후보로 해놓고서도 정작 유시민과 정책협약식을 체결하면서 후보단일화하라는 성명서까지 쓰는 등 자신의 본색을 유감없이 발휘한 민주노총 경기지역본부, 처음부터 심상정의 출마를 뜨악하게 보면서 사사껀껀 단일화를 촉구했던 국민파와 진보신당 당원이 아닌 심상정 후보의 노동운동판 동료들, 차라리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노리는 게 낫다고 하면서 처음부터 경기도지사 후보 출마에 부정적이었던 심상정 주위 사람들, 10%의 지지율도 획득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 암울한 판세와 그에 따른 완주의 부담 등이 그의 사퇴 결심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래도 그가 사퇴하지는 않고 완주하리라 믿었는데, 정작 그는 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물론 오늘 오전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기자회견에서는 후보사퇴보다는 이상한모자님의 말대로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언급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좌초된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의 시작', '진보의 새로운 구성'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의 완주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후보 사퇴는 진보신당의 미래는 물론 심상정 본인의 미래에도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다. 당연히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염원했던 이들에게도 그러하다.

 

이번에 사퇴하면 앞으로도 저들은 계속해서 요구만 할 것이다. 지금 분위기라면 과연 보수야당을 제껴놓고 2012년 대선에서 진보정치세력은 민중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독자적인 후보를 완주시킬 수 있을까. 모르긴 해도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지방선거가 그 전초전임은 생각을 가진 이라면 다 알 수 있으리라.

 

이번 지방선거에서 심상정이 김문수와 유시민 사이의 표차 이상의 표를 획득해서 심상정 때문에 유시민이 떨어졌다는 말이 나올 때라야 현실적인 힘으로서 진보정치세력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정치공학상으로도 완주하는 게 타당한 것이다. 그런데 왜 사퇴를 한단 말인가. 심상정이 이런 것을 모를 사람이 아닌데...

 

그렇더라도 그가 사퇴를 하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진보신당 밖에 있는 나는 차라리 더 편한 입장인건가. 무심한 듯 했지만, 심상정의 사퇴에 이렇게 격하게 반응하게 되는 걸 보면, 여전히 나에게는 진보정당에 대한 열망이 강하게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답답하기만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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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0 03:44 2010/05/30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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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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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만으로 보면 흥미로운 책인 듯...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지음 | 이창신 옮김, 김영사 | 404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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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BOOK] 남의 불행으로 돈 버는 것, 어디까지 용납할까 (중앙, 김성희 기자, 2010.05.29 00:45)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지음 | 이창신 옮김, 김영사 | 404쪽, 1만5000원
 
정의(正義)의 의미와 그 실천적 방법을 다룬 이 정치철학 책은 흥미로운 실화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 논쟁은 정의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각, 즉 행복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를 반영한다고 지적한다. 높은 가격을 노려 물건의 공급이 늘어나면 사회 전체의 행복이 커지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규제 반대론, 가격 부담을 하지 못하는 서민들의 고통을 감안하면 사회 전체의 행복은 상쇄되며 생필품에 높은 값을 매기는 것은 자발적 교환이 아니라 강탈에 가깝다는 반대론의 논거는 나름 논리가 있다고 지은이는 인정한다. 하지만 그가 주목하는 것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혹은 좋은 공동체가 갖추어야 할 미덕이다.
 
지은이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칸트, 제레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존 롤스까지 대표적 정치철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하는데 그 설명방식이 독특하다. 구제금융은 정당한가, 정부는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등을 실제 도덕적 딜레마와 연결해 이야기를 풀어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정의론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지은이의 결론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共利)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며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기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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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옳은 것인가” 재치 번뜩이는 강의 (세계, 정승욱 선임기자, 2010.05.28 (금) 17:37)
 
이 책은 20여년간 하버드대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샌델 교수의 강의 제목 ’정의(Justice)’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센델 교수는 실제 수업에서 누구나 빠지는 도덕적 딜레마에서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흥미롭고 도발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하버드 정치철학과 교수 마커스 밀러는 “이런 강의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질문 공세 속에서 도덕적 딜레마를 깊이 고민하도록 하는 수업은 흔치않다. 학생들은 열정적인 토론의 주인으로 참여한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수업은 처음이다”고 격찬했다.
 
샌델은 “도덕적 사고란 혼자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대화를 통해 노력해서 얻는 것이다. 자기 성찰만으로는 정의의 의미나 최선의 삶의 방식을 발견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샌델은 ‘최대 행복 원칙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대리인 고용하기’, ‘중요한 것은 동기다’ 등 10개 강의 제목을 설정한다. 이를 통해 추상적이어서 어렵게만 느껴졌던 정치철학의 중요한 개념들을 실제 사실들과 연관시켜 명쾌하게 설명한다. 재치가 번뜩이는 사례와 저자의 명석한 설명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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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옳은가"… 낯선 답에 당황하지 말라 (한국, 송용창기자, 2010/05/28 22:12:57)
 
"내가 죽든 말든, 내 자유다"라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을 향해, '합의된 식인(食人)'이란 실화를 예로 들며 "자기 몸을 음식물로 바치는 것도 정당하냐"는 섬뜩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예사다. '당신이 어떤 견해를 가졌든, 당신을 멋지게 유인해… 기존의 사고방식을 통째로 흔들어 놓는다'는 책 뒷면에 실린 추천사가 의례적인 허언이 아니다.
 
소크라테스식 질문으로 독자를 '논쟁의 정글'로 이끄는 저자는 마이클 샌델(57) 하버드대 교수. <정의란 무엇인가>는 그가 하버드대에서 20여년 간 강의한 '정의(justice)' 수업을 토대로 지난해 출간한 책이다. 원제는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
 
신(神)을 끌어오지 않는 이상, '무엇이 올바르냐'는 질문만큼 포괄적이고 어려운 질문도 없다. 시장에 대한 규제, 누진세 적용 등 경제학의 오랜 논쟁부터 낙태, 동성혼, 소수집단 우대정책 등 모두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깔려 있는 사회 전반에 걸친 이슈들에 대해, 이 책은 그 뿌리를 파고든다. 결국 그 바탕에 놓인 근현대의 핵심 사상들과 한판 씨름판을 벌이는 셈인데, 주요 대결 상대는 제레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 로버트 노직이나 밀턴 프리드먼 등의 자유지상주의, 자유주의의 자장 내에서도 보편적 인권을 정립한 임마누엘 칸트, 평등을 옹호한 존 롤스 등이다.
 
책 첫머리부터 등장하는 난감한 질문.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 기관사인데, 철로에 다섯 명의 인부가 있고 비상철로에는 인부가 한 명 있다면? 전차를 비상철로로 돌리겠다는 선택은 정당해 보인다. 질문을 바꿔 당신이 이탈한 전차를 구경하는 목격자인데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옆에서 함께 구경하는 덩치 큰 사람을 선로로 밀어 전차를 멈추게 하는 것은 어떨까? 똑 같이 한 명을 희생해 다섯 명을 살리는 것인데, 두 번째 상황은 어딘지 꺼림칙하다.
 
저자의 이 질문은 실은 정당성의 근거를 '쾌락과 고통의 비교량'에서 찾는 공리주의를 겨냥한 것이다. 두 번째 상황에서도 한 명과 다섯 명의 생명을 비교하는 논리가 가능하느냐는 추궁이다. 공리주의적 사고는 현대 기업과 정부에서 비용ㆍ편익 분석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고, 심지어 인간 수명도 돈으로 환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담배회사 필립모리스는 담배가 노인을 조기에 사망시켜 정부의 예산절감 효과(연간 1억 4,000만 달러의 수익)가 크다는 어이없는 분석을 내놓아 물의를 빚기도 했다. 공리주의자들의 사고에서 빠져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의 존엄성과 개성, 자유인 것이다.
 
두번째 상대는 자유지상주의자. 예컨대 마이클 조던에게 누진세를 부과하는 것에 대해 자유지상주의는 '노동 결과에 대한 강탈'이라며 펄쩍 뛴다. 자유시장 옹호론의 핵심을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자기 소유'와 '선택의 자유'로 파악하는 저자가 이들에게 던지는 까다로운 질문은'국방의 의무'이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부자는 강제 징집되는 대신 시장에서 대리인을 구해도 상관없고, 전쟁도 '민영화'로 귀결된다. 저자는 또 장기매매, 안락사, 대리모 등의 이슈를 들이밀면서 이들 사안에 내재해 있는 보수적 시장자유주의자들의 모순점을 신랄하게 파고든다.
 
다음 라운드 대상은 칸트와 롤스인데, 저자는 이들에겐 다소 조심스럽다. 칸트는 이성이 내리는 '정언명령'에서, 롤스는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이뤄지는 '가언합의'를 정당성의 근거로 삼는다. 이들의 사상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정의의 객관적 근거를 찾는다는 점에서 근현대 정치철학의 정점이다. 저자는 그러나 이 대목에서 "좋은 삶(미덕)이 무엇이냐"는, 자유주의가 포기한 질문을 던지며 자유주의의 선을 넘는다. '좋은 삶'이란 사람마다 다른 것으로, 단지 좋은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만을 강조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전통이다.
 
험난한 논쟁의 여정 뒤에 도달하는 목적지는 다소 낯설고 당혹스럽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까지 끌어들이며, 주관적인 가치 문제를 정의론에 끼워 넣는다. 낙태 문제의 경우 자유주의자들은 가치판단은 보류한 채 단지 '선택의 자유'란 측면에서 지지하지만, 태아를 어디까지 인간으로 볼 것이냐는 가치판단이 이미 전제돼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즉 올바름에 대한 모든 판단이 결코 중립적일 수 없기 때문에 미덕에 대한 견해를 분명히 해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것.
 
이런 논의에서 보듯 저자는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공동체주의'의 대표적 이론가로 꼽힌다. "좋은 삶을 생각해보지 않고 정의를 고민하기란 불가능하다."(336쪽) 저자의 결론이 불편하더라도 이 책의 매력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무수한 논리적 공박의 여행 과정에서 독자는 이미 저자를 반격할 수 있는 또 다른 논리를 훈련받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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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소통’으로 푼 ‘정의’의 딜레마 (경향, 김재중 기자, 2010-05-28-17:37:59)
ㆍ공리·자유주의의 장단점 검토
ㆍ현대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 역설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는 서양 정치철학의 유구한 역사를 떠받치는 핵심적인 기둥들이다. 정치철학자들은 고래로 각자가 선택한 기둥에 올라서서 자신들이 그리는 ‘인간 본성에 기반한 이상적인 사회’의 조직 및 작동 원리를 이론적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애썼다. 정치철학이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히 사변적 탐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집단의 일상적 선택, 국가와 사회의 미래설계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력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발간된 2권의 책은 암울한 정치·사회·경제적 상황에 숨막혀 하는 한국의 시민들로 하여금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국가를 근원에서부터 생각할 수 있도록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 준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 대학교 교수(57)의 실제 강의를 정리한 이 책은 7000명이 채 안되는 하버드대 학부생 가운데 1000명이 그의 수업에 몰려든다는 명성답게 첫장부터 여러가지 딜레마적 상황을 제시, 보는 이를 솔깃하게 만든다. 답변을 이리저리 궁리해보지만 샌델은 허점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서양 정치철학에서 정의를 이해하는 방식은 행복의 극대화, 자유, 미덕의 추구 등 3가지로 압축된다. 흔히 공리주의로 불리는 행복의 극대화는 말 그대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정의의 척도다. 공리주의는 그러나 개인의 권리를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의가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라는 시각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이 입장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무엇도 정의에 반한다는 자유방임주의와 공평한 기회에서 오는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 평등주의로 나뉘어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전자가 하이예크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사상이라면 후자는 롤스로 대표되는 시장개입주의적 시각이다.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의 논리와 장단점을 검토한 샌델은 논의를 정의와 미덕, 즉 정의와 공동선의 관계로 이끌어간다. 그가 보기에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행복의 극대화와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공동체가 필요하고, 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시민의식과 희생·봉사·연대,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한 인식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샌델은 현대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를 역설한다.
 
샌델이 이 책의 여러곳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는 시장과 국가의 관계, 낙태, 소수자우대정책, 동성애, 부유층에 대한 중과세, 사형제 등 무엇이 정의인가를 둘러싸고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제들을 일상적으로 접한다. 그는 이런 주제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돌아보고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인지를 스스로 묻게 만든다.
 
샌델의 설명을 따라가다보면 우리 안에 정의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혼재돼 있고 때로는 모순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자유방임 경제정책을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들은 동성애나 마약 등 문화적 문제에 대해서는 법을 통한 규제에 찬성한다. 반대로 복지정책을 지지하는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동성애, 출산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 등에 대해 자유지상주의자들과 견해를 같이한다. 이 책은 샌델이 서 있는 공동체주의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정의에 대한 다양한 사상과 이 사상들이 현실에서 만들어낸 복잡한 변주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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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충돌할때…‘공동선’을 고민하라 (한겨레, 고명섭 기자, 2010-05-28 오후 08:15:52)
20년 지속된 하버드 명강의 엮어
숱한 ‘도덕적 딜레마’ 해결 지침서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57·미국 하버드대 교수)은 존 롤스(1921~2002) 이후 영어권 정치철학계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다. 27살에 하버드대 교수가 된 샌델은 29살 때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펴내 명성을 얻었다. 샌델은 이 책에서 롤스의 평등적 자유주의에 대응하여 ‘공동체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후 샌델은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마이클 월저, 찰스 테일러와 더불어 공동체주의 4대 이론가로 알려졌다.
 
2009년에 출간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지난 20여년 동안 수천명의 학생들과 함께했던 ‘정의’ 강의를 바탕으로 삼아 쓴 책이다. 통상의 정치철학서와 달리, 수많은 구체적인 사례를 실감나게 제시함으로써 ‘정의’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하여 이 책은 설득력 있는 사례들로 무장한 정치철학 입문서이자 샌델 자신의 견해를 비교적 분명하게 논증한 정치철학 이론서가 됐다.
 
철학적 고민은 둘 이상의 원칙이 서로 충돌할 때 그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샌델의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딜레마를 다룬다. 샌델이 여기서 정의를 둘러싼 딜레마적 요소로 제시하는 것이 ‘행복’과 ‘자유’와 ‘미덕’이다.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의냐, 개인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정의냐, 아니면 공동체의 미덕을 장려하고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냐. 행복을 극대화하려다 보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다 보면 공동체의 미덕이 훼손될 수 있다. 이 딜레마적 상황을 살필 때 샌델이 먼저 검토하는 것이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다. 벤담의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으로 요약되는데, 전체의 행복이 최대치가 되게 하는 것을 정의로 간주한다. 벤담은 이런 생각을 1780년 <도덕과 입법의 원리>에서 피력했는데, 5년 뒤 이마누엘 칸트는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1785)에서 벤담의 사상을 맹비판했다.
 
벤담의 논리는 전체의 행복을 위해 소수 개인들을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결코 정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칸트의 주장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 정의다. 칸트는 인간이란 이성을 사용해 스스로 법칙을 세우고 그 법칙에 입각해 행위할 수 있는 존재다. 자기가 세운 원칙을 자기가 지키는 것, 이것이 바로 자유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 자유를 지닌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200년 뒤 롤스는 칸트의 이 주장에 입각해 ‘평등적 자유주의’ 이론을 제시했다.
 
샌델은 칸트와 롤스의 자유이론이 매우 설득력 있는 것이긴 하지만, ‘무엇이 좋은 삶이냐’에 대한 대답을 괄호로 묶어 놓은 채, 모든 사람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정의의 일반적 원칙만 이야기한다고 비판한다. 그리하여 샌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관으로 눈을 돌린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는 좋은 삶이라는 미덕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정치는 시민들에게 무엇이 좋은 삶인지 터득하게 해주는 것이다. “정치의 목적은 사람들이 고유의 능력과 미덕을 계발하게 만드는 것, 곧 공동선을 고민하고, 판단력을 기르며, 시민 자치에 참여하고,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걱정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미덕을 장려함으로써 좋은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정의다.
 
샌델은 오늘날 정의의 이론이 공동선의 정치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샌델이 보기에 196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로버트 케네디가 이런 공동선을 외쳤으나, 그가 암살당한 뒤 진보파가 이 문제를 놓아버렸다. 그랬던 것이 2008년 대선에서야 버락 오바마와 함께 공동선의 문제가 진보적 의제로 부활했다. 샌델은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의 진보 정치가 시민의 도덕적·정치적 신념을 존중한다면서 그 신념의 내용을 외면하고 모른 척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회피에서 나온 존중은 가짜이기 십상이다.” 샌델은 좋은 삶을 다 같이 고민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이라면서 정치가 개인들의 도덕적 판단과 실천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는 것이 결국에 공동선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는 (도덕을)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 찬 기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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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최고 인기강의 샌델 교수,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다 (조선, 이한우 기자, 2010.05.29 03:09)
허리케인 때 바가지요금은 정당? 동성혼은 허용? 일부다처는 안돼?
다양한 질문들, 세가지 시각으로 조명

 
줄기차게 정의와 올바름, 정당함, 공정함을 캐묻는 사상가들이 있다. 그들이 정의를 묻는 것은 정의(正義)의 정의(定義)가 궁금해서라기보다 사회가 보다 정의로워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공동체주의자'라고 부른다. '덕의 상실'(이진우 옮김, 문예)의 알래스데어 맥킨타이어, '마르스의 두 얼굴'(권영근 등 옮김, 연경문화)의 마이클 월저, '불안한 현대사회'(송영배 옮김, 이학사)의 찰스 테일러, 그리고 이 책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정치철학)가 그들이다. 맥킨타이어가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식의 덕성(virtue) 회복을 통해, 월저가 '정의로운 전쟁은 과연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통해, 테일러가 이기심과 허무주의에 빠진 현대사회의 '그릇된' 지적 문화에 대한 철학적 비판을 통해 정의 회복을 꿈꾸었다면, 샌델은 우리를 곧장 다양한 쟁점들이 부딪치고 있는 일상현실 속으로 밀어넣는다.
 
본격적인 질문던지기가 시작된다. 먼저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한 질문던지기다. 신체적 손상이 아니라 정신적 손상, 즉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은 참전군인은 '상이군인훈장'을 받을 자격이 없는가? 금융위기의 '주범'들이 거액의 상여금을 받는 것은 정당한가? 가정(假定)의 질문은 더 곤혹스럽다. 국가가 결혼에 개입하는 것은 정당한가? 동성애자의 결혼을 허용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결혼의 다양화가 그 이유라면 일부다처(一夫多妻)나 일처다부(一妻多夫)를 허용해서는 안 되는 까닭은 또 무엇인가?
 
그렇다고 이 책이 마구잡이식 질문집은 아니다. 분배의 불평등, 교도소의 민간운영, 소수집단 우대 정책, 징병이냐 고용이냐를 둘러싼 병역논쟁 등 다양한 쟁점들을 공리주의적 시각과 자유주의적 시각으로 정리한 다음 조심스럽게 자신의 공동체주의적 주장을 암시한다. 그리고 전체 10장 중에서 2장이 벤덤과 밀의 공리주의, 5장이 칸트의 동기주의, 6장이 롤스의 자유주의, 8장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성 강조로 구성돼 있는 점에서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정치철학자로서 샌델은 도덕이나 종교로부터 독립을 내세우는 정치에 비판적이다. 그가 공리주의나 자유주의 정의론에 비판적인 이유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功利)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그는 오히려 시민들이 도덕이나 종교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좋은(정의로운)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생기게 마련인 이견(異見)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꿔야 한다.
 
이제 샌델을 포함한 공동체주의자들의 약점을 지적할 차례다. '당신들이 말하는 공동체의 덕성이란 무엇인가?' 덕성의 내용이 공허하다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강점은 분명하다.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즉 정의의 정의(定義)를 향한 지적 모험을 감행하도록 강력하게 유혹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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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 비극'은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증명한다"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 2005-09-05 오후 4:13:35)
美 철학자 마이클 샌델 "연대가 무너진 곳에 비극이 온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발생한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의 비극은 '미국 문명의 위기'를 상징하기보다는 지난 20여 년간 계속된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한국철학회가 주최하는 다산기념철학강좌 9번째 강사로 초청돼 우리나라를 찾은 미국 하버드대학교 마이클 샌델 교수(정치학)는 5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부시 정부의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 뉴올리언스 비극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샌델 교수는 "미국 내에서는 행정부가 늑장 대응을 했고 이렇게 늑장 대응을 하면서 흑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뉴올리언스의 하층 계층이 큰 피해를 입고 있어서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큰 피해를 입은 희생자가 가난한 흑인에 집중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십만 명에 이르는 재난 피해자 중에는 부유층을 포함한 중산층 이상도 많기 때문에 행정부가 인종 차별 같은 이유로 의도적으로 늑장 대응을 했다는 것은 무리한 비판"이라고 지적했다.
 
샌델 교수는 오히려 지난 20여 년 가까이 미국 정부가 추진해 오고 우리나라도 따라가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중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우리는 뉴올리언스에서 허리케인이라는 자연의 재앙이 곧 인간의 재앙으로 이어지는 비극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며 "이 인간의 재앙의 직접적인 계기는 허리케인이었지만, 그 근원에는 하층 계급 특히 흑인 계층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부시 정부의 신자유주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샌델 교수는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연대하기 위해서는 교육, 의료, 복지 서비스 등 삶에 필요한 기본 요소들이 계층, 인종을 초월해서 평등하게 제공돼야 한다"며 "가난한 사람들, 흑인이라는 이유로 이런 것들까지 제공받지 못한다면 연대성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미국이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처럼 삶에 필요한 기본 요소들이 빈부, 인종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공급되는 사회였다면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하는 뉴올리언스의 비극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샌델 교수는 "미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교육, 의료, 복지 분야에서 정부의 책임을 감소하고 시장에게 모든 것을 맡겨 왔으며 그 결과 이번 비극이 초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인 결과 사회 구성원들이 연대하기 위한 미국 사회의 토대가 근본부터 무너졌고 그것이 이번 뉴올리언스의 비극으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샌델 교수는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폭격은 그 곳이 테러리스트들의 근거지였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정당성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라크 침략의 경우에는 부시 행정부가 내세운 이유는 다 거짓이거나 설득력이 없음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샌델 교수는 "이렇게 불합리한 이유와 비현실적 목적을 위해서 수많은 생명과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전쟁이 진행되고 있지만 참담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시 행정부에 비판적인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교롭게도 2002년부터 부시 행정부의 생명윤리 정책을 자문하는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샌델 교수는 "인간 배아 연구에 대한 연방 정부의 지원 여부 등을 결정하는 위원회 표결에서 인간 복제, 유전자 조작은 반대했지만 난치병 치료를 위한 배아 연구는 부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하지만 그런 부분적 연구를 위해서는 강력한 법·제도적 규제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에서는 샌델 교수의 주장보다도 더 엄격하게 배아 연구에 대한 연방 정부의 지원이 전면 금지됐다. 샌델 교수는 "내가 소속돼 있는 하버드대에서도 기업의 지원을 받아 줄기세포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며 "법적 규제 때문에 공공의 지원을 받는 실험실이 아닌 별도의 실험실을 따로 마련해 연구를 하는 실정"이라고 미국 분위기를 소개했다. 그는 "한국의 경우에는 별다른 법·제도적 규제가 없는 상태에서 황우석 교수의 성과에 지지를 보내는 분위기인 것 같다"며 "황 교수의 연구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라도 생명윤리를 고려한 구체적인 법·제도를 만들고 그 통제 하에서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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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희생자는 '용병'!"…이 말에 왜 '분노'하는가?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 2010-06-05 오전 7:29:05)
[화제의 책]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천안함 침몰로 목숨을 잃은 46명 장병을 떠올려보자. 그들 중 다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직업 군인의 길을 선택하고 나서 이번 참사로 숨졌다. 그들은 정말로 군인으로서의 적성을 살리고자 '자유롭게' 이 길을 선택했을까? 질문은 꼬리를 문다.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목숨을 건 공동체 수호를 그들의 몫으로 돌리는 것은 옳은가? 이런 질문에 머리가 혼란스럽다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를 읽어야 한다. 하버드대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정의(Justice)>)를 고스란히 글로 옮긴 이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높이는 통찰로 가득하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겨냥하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가장 득세하는 입장은 '시장에 맡기면 모든 게 행복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징병제를 놓고 침묵하는 것은 흥미롭다. 이들의 생각대로라면, 군대 역시 시장에 맡길 때 모두가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노동시장에서 병사를 모집하면 간단하지 않겠는가? 필요한 군인 수와 자질을 고려해 적절한 급여와 복지 수준을 정한다. 누구도 자신의 의지를 거슬러 강요받아서는 안 되며, 군에 복무할 의사가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조건을 고려하고 나서 다른 일보다 병역이 나은지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 (117쪽)
 
사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런 생각은 낯설지 않다. 그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모병제를 옹호하는 이들이 얼른 떠올리는 논리가 바로 이런 것일 테니까. 더구나 우리는 천안함 침몰로 숨진 나이 어린 직업 군인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미 이런 식으로 시장에 의존해 군인을 모으는 중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방식은 정의로운가?
 
샌델은 두 가지 반박을 소개한다. 우선 그런 직업 군인 중 다수는 '어쩔 수 없이' 군인의 길을 선택한다. 적어도 미국은 그렇다. 한국전쟁에 참전하기도 한 미국의 의원 찰스 랭글의 인터뷰를 보면, 2004년 뉴욕에서 군대를 자원한 이들의 70퍼센트가 저소득층 출신이었다. 한국은 다른가? 샌델은 또 이렇게 묻는다. 그렇게 시장에 의존해 모은 군인이 '용병'과 뭐가 다른가? 당장 발끈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도 미국의 현실은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샌델이 인용하는 미국의 역사학자 케네스 데이비스의 얘기를 들어보자.
 
"오늘날 미군은 용병의 색채가 짙다." "군 복무에는 어떤 식으로든 눈곱만큼도 위험을 부담하지 않는 엄청나게 많은 미국인이 같은 국민인 소외 계층 사람을 고용해 가장 위험한 일을 시켜놓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눈 하나 꿈쩍 않고 자기 일을 계속한다." (124쪽, 125쪽)
 
사실 중요한 업무의 대부분을 직업 군인에 의존하는 한국 군대의 모습도 이런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군대 근처도 안 가본 대통령이 전쟁 운운하는 동안, 정작 자신도 모르게 용병으로 전락한 이들이 목숨을 건 '업무' 수행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서해에서 영문도 모르게 목숨을 잃었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명백한 현실을 두고도 우리는 왜 '신성한' 국방의 의무 운운하며 진실을 외면할까? 실제로는 헐값에 고용한 용병과 다를 바 없는 직업 군인을 놓고, 왜 그것을 "용병"이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할까? 공동체를 지키는 일을 돈을 주고 고용한 이들에게 맡기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판단의 정체는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는 징병제와 모병제를 둘러싼 이 짧은 얘기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 루소, 벤담, 밀, 칸트, 하이에크, 롤스 등이 수천 년에 걸쳐 토론했던 온갖 철학적 쟁점을 끄집어낸다. 이들의 사상에 어느 정도 익숙한 독자는 벌써 몇 가지 논점을 머리에 떠올렸을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위대한 철학자와 토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자의 이름을 들먹인다고 고담준론을 위한 따분한 책이라고 딱지를 붙이면 오산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가로지르며 첨예한 갈등을 낳는 온갖 문제를 놓고, 샌델의 안내를 받으며 철학자들과 씨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입장이 또렷해지기 때문이다. 그 때의 희열은 재미있는 소설 한 편을 읽는 것 못지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정치인, 지식인, 언론인을 비롯한 당대의 논객들이 어떤 입장에서 저런 주장을 펼치는지 간파할 수 있는 안목을 얻게 된다. 덧붙여, 그들이 얼마나 중구난방으로 상황에 따라서 입장을 바꾸는지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자신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음을 확인하면서, 낯 뜨거워지는 것을 감수해야 하고.
 
예를 들어 볼까? 평소에 시장을 예찬하던 이들이 군대를 시장에 맡기는 것을 꺼린다면 그는 군대 문제를 놓고는 다른 입장에 근거하는 셈이다. 평소 개인이 선택할 자유를 강조하던 이들이라면 식민지 시대의 만행을 사죄하는 데 인색한 일본 정부와 국민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일(식민 지배)을 놓고, 왜 앞 세대를 대신해 사죄해야 하는가.
 
<정의란 무엇인가>는 단순히 정의를 둘러싼 여러 가지 입장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이 책의 가치는 크게 반감되었으리라. 샌델은 거장답게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기존의 입장-자유지상주의자, 도덕적 개인주의자 등-을 검토하면서, 특정한 입장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한다. 평소에 시장을 그렇게 예찬하던 이들도 (속내야 어떻든 간에) 군대에서 복무하는 일은 공동체에 속한 시민의 의무라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관념으로 돌아간다. 개인의 자유를 목소리 높이던 이들도 일제 강점기의 만행을 사죄하라고 일본에게 촉구하면서, 역사에 대한 공동의 책임을 강조한다.
 
이처럼 행복(이익), 자유에만 근거해 정의를 이해하는 방식은 불충분하다. 샌델은 '미덕'을 그 대안으로 내놓는다. 그가 말하는 미덕은 특정한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이 서로 부대끼면서 오랫동안 만들어온 '좋은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일종의 합의이다. 그와 입장이 비슷한 철학자 매킨타이어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는 누구나 특정한 사회적 정체성을 지닌 사람으로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이해한다. 나는 누군가의 아들이거나 딸, 또는 사촌이거나 삼촌이다. 나는 이 도시나 저 도시의 시민이며, 이 조합 아니면 저 조합의 회원이다. 나는 이 친족, 저 부족, 이 나라에 속한다. 따라서 내게 이로운 것은 그러한 역할과 관련된 사람에게도 이로워야 한다. 이처럼 나는 내 가족, 내 도시, 내 부족, 내 나라의 과거에서 다양한 빚, 유산, 적절한 기대와 의무를 물려받는다. 이는 내 삶에서 기정사실이며 도덕의 출발점이다. 또한 내 삶에 도덕적 특수성을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 삶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 정체성이 형성된 공동체의 이야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311, 312쪽)
 
<정의란 무엇인가>의 이런 결론은 한국 사회에 어떤 함의를 던질까? 2005년 9월 샌델이 한국을 찾았을 때, 그는 적지 않은 반론을 받았다. 지연, 학연 등 사적인 관계망에 의존한 기득권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그의 주장은 기존의 권력 관계를 옹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 보면, 그런 반론이 오해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좋은 삶의 모습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구성원 각각의 새로운 경험과 그에 바탕을 둔 상호 간의 토론을 통해서 늘 새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동체와 그 구성원이 자유, 평등, 우애에 기반을 둔 좋은 삶을 지향하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은 새로운 미덕으로 개인의 삶에 각인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샌델이 곳곳에서 "나는 나, 너는 너!" 식의 사고를 비판하면서, 서로 다른 입장 간의 대화를 촉구하는 것도, 바로 이런 토론이야말로 새로운 좋은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가 20여 년 동안 새로운 공동체를 이끌 대학생을 상대로 <정의> 수업을 진행한 것도, 또 이것을 책으로 다시 쓴 것도 바로 이런 토론의 물꼬를 트기 위함일 것이다.
 
샌델은 책 말미에 좋은 삶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고민했던 미국의 대통령 후보 로버트 케네디가 1968년 3월 18일 했던 연설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그는 이 연설을 하고 나서 석 달이 지나지 않아 암살당했지만, 그의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그 고민에 답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 국민총생산은 한 해 8000달러가 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기오염, 담배 광고, 시체가 즐비한 고속도로를 치우는 구급차도 포함됩니다. 우리 문을 잠그는 특수 자물쇠, 그리고 그것을 부수는 사람들을 가둘 교도소도 포함됩니다. 미국 삼나무 숲이 파괴되고, 무섭게 뻗은 울창한 자연의 경이로움이 사라지는 것도 포함됩니다. (…) 그러나 국민총생산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총생산에는 우리 시의 아름다움, 결혼의 장점, 공개 토론에 나타나는 지성, 공무원의 청렴성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해학이나 용기도, 우리 지혜나 배움도, 국가에 대한 우리의 헌신이나 열정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측정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왜 자랑스러운가를 제외하고 미국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습니다." (363~3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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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서 소외된 ‘정의’ 한국도 미국처럼 시민들은 ‘갈증’을 느꼈다 (경향, 김재중 기자, 2010-08-19 21:29:46)
ㆍ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 방한
 
“정의,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가치에 대한 합의를 요구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서로 다른 윤리적, 정신적 이상을 갖고 있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공동의 이상을 합의하고 사람들의 권리를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제 대답은 서로 다른 도덕적 가치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이런 가치들이 서로 경쟁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덕적 불일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첫번째 단계인 것이죠. 건전한 민주주의 사회라면 도덕적 논쟁, 공공의 논의를 통해 시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공동체주의는 기회의 평등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시민의식, 공동선에 기반을 둔 분배의 정의, 민주적 참여를 강조한다. 샌델 교수는 “공동체주의는 빈부격차가 너무 벌어져서 공동의 시민의식을 갖는 것이, 공동의 목적을 갖는 너무 어려워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부가 시장을 어느 정도 제약해서 응집력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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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몰입사회, 사람들은 도덕에 목마르다” (한겨레, 최원형 기자, 2010-08-19 오후 08:10:00)
서점가 돌풍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 마이클 샌델 한국강연
“정치는 경제에만 매달릴 뿐 ‘공동선’이 무엇인지 잊어
다른 주장들이 논의될 때 정의로운 사회로 갈수 있어”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경제가 정치를 밀어냈고, 사람들은 정치가 다루지 못하고 있는 도덕이나 윤리와 같은 가치들에 큰 갈증을 느끼고 있다.”
 
샌델은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면 ‘좋은 삶’에 대한 가치를 따지는 일이 불가피하다”고 전제하고 “따라서 공공의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하며, 이것이 정의로운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정치가 해야 할 첫번째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정 사회’라는 개념을 ‘좋은 사회’라는 또다른 개념과 대비시켰다. “공정 사회는 재화를 어떻게 분배하느냐의 문제이지만, 좋은 사회는 재화에 어떤 가치를 매길 것이냐는 문제”라는 것이다. 곧 기존 정치가 공정 사회에 대한 논의에 그쳤다면, 새로운 정치는 좋은 사회에 대한 논의를 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동체주의가 강했던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주의·자유주의가 더 유효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는 청중의 질문에 그는 “내가 속한 영미 사회에서는 개인주의가 너무 강해서 공동체주의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지만, 무비판적으로 위계질서를 받아들이는 것은 거부한다”고 답했다. “가치에 대한 공공 논의에 끝이 없으면, 사회에 혼란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토론에 종점이 없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정의”라며 “도덕적 가치에 대한 논의 없이, 경영하고 관리하려 드는 정치로는 그 어떤 민주주의 사회도 존속할 수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경제논리가 정치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덕적·윤리적 가치에 대한 갈증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민주적인 삶의 가치, 공동체, 연대성, 신뢰, 시민애 등은 줄어드는 가치가 아니라 근육처럼 쓰면 쓸수록 크고 강해진다”며 도덕적 가치에 대한 희망과 신뢰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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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론 비판 1 :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 . . (티스토리 블로거 marxpino, 2010/08/0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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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신드롬이 싱거운 까닭 (미디어스, 2010년 09월 03일 (금) 09:18:42  안태호 객원기자)
반향 없는 열풍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정의 열풍’이란 말이 아깝잖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출간 세달 만에 30만부를 훌쩍 넘겨 독자들의 손에 쥐어졌다. 지난 달 열린 내한 강연에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 ‘마이클 잭슨도 아닌데...’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며칠 책을 들고 다녔더니 주변인들의 반응도 뜨겁다. 만나는 이들마다 한 마디씩 거들지 않고는 못 참겠다는 듯 코멘트를 날린다. ‘아, 그 책 읽어야 하는데’, ‘우리 사무실 지금 그 책 읽느라 난리예요~. 난리가 터지긴 한 모양이다.
 
혹자는 이번 신드롬의 원인으로 여전히 국내에 먹히는 ‘하버드 프리미엄’을 떠올리거나 대형출판사의 영악한 마케팅 전략을 꼽는다. 물론, 그럴 것이다. 거기에 입소문이 들불처럼 번져나가 지금과 같은 상황이 도래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MB가 여름휴가 길에 <정의란 무엇인가>를 들고 갔지만, 출판사가 이것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을 것 같지는 않다.
 
‘20년 명강의’라는 말에 걸맞게 책 자체는 매우 흥미롭다.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자유지상주의, 자유주의적 평등주의), 공동체주의 등의 정의론을 이도저도 선택하기 힘든 딜레마적 상황들을 예로 들며 명쾌하게 정리해 준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사고실험들은 정의가 무엇인지 한 마디로 알려주지 않지만, 적어도 정의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성찰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궁금해지는 것은 한국인들이 도대체 왜 지금, 정의에 탐닉하냐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대개의 한국인들에게 정의란 배워서 알게 되는 무엇이 아니다. 지금이야 아이들의 만화영화에서조차 정의의 사도와 악당이 무 자르듯이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어지간한 세상경험과 생활감각으로 정의와 불의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길거리 시시비비에 중재자로 나서는 사람들의 수만 헤아려도 정의에 대한 한국인들의 일상 감각이 부족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 세상이다. 단위가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생활감각으로는 도무지 정의와 불의를 파악하기가 어려워진다. 날이면 날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기준들이 횡행하는 게 현실 아닌가. <정의란 무엇인가> 신드롬은 이, 도무지 아리송하기만 한 사회적 정의에 대한 갈급함을 우회적으로 드러내주는 징후에 불과하다. 사실, 정의란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정의라는 말을 입에 담을 때면 목구멍 저 안쪽에 이물감이 느껴진다. 이것이 초등학교 시절 눈이 시도록 바라봐야 했던 ‘정의사회구현’이라는 아이러니한 간판 덕분인지, 고종석이 ‘한국어에 대한 모독’이라 칭했던 민정당이라는 이름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정의-불의의 이분법은 종종 거칠고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생각해 보면 ‘정의’의 이름 아래 저질러진 끔찍살스런 만행들은 역사에 얼마나 촘촘히 박혀있던가.
 
그러나 과연, 사회적 정의에 대한 갈구가 정의 신드롬으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을까. 혹자는 이 신드롬이 사회정의에 대한 요구로 이어질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는 듯한데, 쉽지 않아 보인다. 30만 명이 책을 봤다고 하지만, 사실 ‘신드롬이 됐다’는 것 이상의 반향을 확인하지 못했다. 책이 출간된 지 이제 겨우 세달 남짓이지만 이후에도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인문서가 종합 베스트셀러 일위에 오르고 30만명이라는 독자가 인문학에 대한 기초체력을 연마한 것은 소중하고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샌델의 책이 한국 현실에 몇 가지 시사점을 주지만, 결론으로 내세우는 이야기는 조금 싱겁게 느껴진다. 정치학을 전공한 한 지인은 ‘샌델의 입장은 한국에 딱 맞아떨어지는 안전한 이론이다’고 진단했다. 샌델이 말하는 공동선과 미덕을 중시하는 공동체주의에서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상상력은 찾아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샌델이 말하는 공동체주의의 덕목들(시민적 미덕, 애국주의, 자기희생, 이웃에 대한 배려)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어휘들이기도 한 것 아닌가 말이다. 자유주의 입장에서 본 공동체주의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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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9 21:08 2010/05/29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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