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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의 경제학 - 09.06.25 경향

[정태인칼럼]성 평등의 경제학

 

 

 

“참 많은 반대가 있었을 텐데 어떻게 설득을 하셨나요?” 심상정 전 의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다. 노르웨이 ‘아동 성 평등부’ 아르니 홀레 국장의 활기찬 설명으로 방은 후끈 달아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의 출산 전후에 부모 합쳐서 52주의 휴가, 그것도 월급의 80%를 지급하는 조건의, 부럽기 그지없던 법률도 그새 바뀌어서 7월1일부터는 56주란다. 과거에는 휴가를 준다고 해도 외면하던 젊은 남성들이 이젠 95%가 10주의 ‘출산휴가’를 즐기고 덕분에 출산율은 1.96으로 뛰어올라서 대체율(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로 노르웨이에서는 2.1)에 거의 다다랐다.

출산율 끌어올린 노르웨이 정책

그뿐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실천이 요원한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문제는 이미 옛이야기란다.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노동을 해도 여자·남자의 임금이 서로 다르고,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반밖에 안되는 우리 처지에서 볼 때 노르웨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은 경이로웠다.

‘평등과 반차별 옴부드’(LDO)의 모니카 혹스 자문관에 따르면 노르웨이에서는 같은 고용주 아래서 간호사와 의사가 같은 수준의 관리자(예컨대 수간호사와 내과과장)가 되었을 때, ‘동일가치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을 적용하는 문제로 다투고 있다. 설령 시장에서 결정된 임금이라도 여성 위주의 시장과 남성 위주의 시장은 이미 성 중립적이지 않은 상태이니 차별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사안은 몇가지 사례를 놓고 지금 논쟁 중이지만 그의 말대로 ‘혁명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설마 반발이 없었을까? 홀레 국장의 대답은 단 한 마디였다. ‘생산성’ 즉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 전 사회의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사실로 모두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덧붙이기를 “그래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통계로 노르웨이의 생산성이 미국보다 20%가량 높다”고.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두 개의 그래프가 바로 떠올랐다. 한 나라에 100명의 여성과 100명의 남성이 살고, 둘의 생산성은 똑같은 분포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자. 여성이건 남성이건 1, 2, 3, 4, …, 100에 이르는 생산성을 가진 사람이 한 명씩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남성만 고용한다면 그 나라의 평균 생산성은 50이다. 만일 성평등의 원칙에 따라 상위 50%의 남성과 상위 50%의 여성을 고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평균 생산성은 75로 뛰어오르게 된다. 그렇지 않은가?
 


생산성 높이는 여성 경제활동

그럼 아이들은 누가 볼 것인가? 그래서 1년이 넘는 유급 출산 휴가를 부부에게 주고 여섯살까지는 전문 인력이 사실상 무료로 육아를 100% 책임진다. 이런 사회복지의 재원이 바로 높은 생산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공기업 이사회의 17%였던 여성 비율을 2년 만에 41%로 끌어 올리고 이제 민간기업의 여성 이사 비율도 같은 수준으로 높이는 협약을 맺은 노르웨이의 비결은 간단하다. 남녀 간의 생산성 분포가 동일하다고, 즉 잠재력이 동일하다고 가정하고 또 증명한 것뿐이다. 그래서 당연히 남성들도 행복하다.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고 높은 생산성 덕에 전체 고용이 늘어났으니 ‘여성의 천국’만이 아니라 노르웨이 국민 스스로 자부하듯 아이들을 필두로 ‘모두의 천국’이 된 셈이다. 우리의 난제 중 난제인 출산율 저하와 교육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다행히 우리의 여성 교육 수준은 이미 세계 최고다. 우리의 미래는 여성에게,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달려 있다. 괜한 삽질 좀 그만 하고….

<정태인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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