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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쌍용차 해결 호소’ 일부종단의 침묵 2009.08.06.

‘쌍용차 해결 호소’ 일부종단의 침묵

 

"쌍용차는 전쟁터예요. 사측이 전기를 끊어버려 농성장 안에 있는 남편과 통화도 못해요. 물·음식은 물론 의료품도 들여보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쌍용차 노조 가족 이정아씨(35)의 절규다. 전쟁터에서도 부상당한 적군을 치료해 주는데, 평택의 전장에서는 최소한의 휴머니즘조차 증발됐다. 신랄한 이들은 평택을 ‘아우슈비츠’ ‘80년 광주’에 비유한다. 경찰이 뿌려대는 발암성 최루액이 농성장으로 쏟아지는데, 농성장 밖 가족은 농성장 안 가족의 안위를 알지 못한다.

첨예한 대치 속에 공권력이 이미 투입됐고, 협상은 타결이 난망한 상황에서 농성장 밖 가족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마지막으로 기댄 곳이 ‘종교계’다. 가족들은 정진석 추기경을 만난 자리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만난 자리에서 노조 측의 ‘전원 고용’ 구호를 외치지 않았다. “스님, 신부님이 ‘인권 유린’만이라도 막아달라”고 했다.

이런 절박한 호소를 외면하기는 힘들었을 터. 천주교·개신교·불교·원불교·유교·천도교·민족종교 등 7대 종단이 모인 종교지도자협의회는 5일 아침 쌍용차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기로 결정했다. 시민·사회단체와 언론의 비판과 지적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공권력도 한국을 대표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단일한 의견에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지 않을까. 헛된 기대였다.

한 종교계 인사의 전언이다. “몇몇 종단에서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냈어요. 언제 다시 종교 지도자들이 의견을 낼지 모르겠습니다.” 기자회견은 이렇게 돌연 연기됐다. 김대기 문화부 제2차관도 이날 오전 지관 스님을 찾아 “곧 해결될 수 있는데 (기자회견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한다. 지관 스님은 김 차관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지만 정부 측 입장이 다른 종단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몇몇 종교지도자들이 정부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듣기 민망한 추측도 나온다. 종교인들의 침묵이 자초한 결과다.

‘적절치 않은 시기?’ 경찰은 5일 현재 도장2공장을 제외한 모든 건물을 장악했다. 인화 물질이 가득한 공장 특성상 자칫하면 용산참사 같은 인명 피해도 배제할 수 없다. 종교인들이 마땅히 나서야 할 시기인데, 그들은 결국 침묵을 택했다. 재난과 수난을 목전에 둔 평택에서 무조건적 사랑과 평화라는 종교의 가치는 실종됐다.

<김종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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