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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명절과 아이들의 명절 / 경향20100216

[문화와 세상] 부모의 명절과 아이들의 명절     /  이영미 문화평론가

 

설날과 밸런타인데이가 겹쳐 있던 연휴가 드디어 끝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언론은 명절증후군이니 초콜릿 판매실적이니 하는 이야기를 했다. 설날 ‘공부는 열심히 하냐?’ ‘언제 결혼할 거냐?’를 묻는 어른들 앞에서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젊은이들은, 차례와 세배가 끝나기 무섭게 애인들을 만나러 나가 버렸다. 그런 자녀들을 보고 부모들은 ‘요즘 애들은…’으로 시작하는 고정 레퍼토리를 한 바퀴 돌리면서 혀를 찼다.

‘조상이나 부모에게 인사하는 것보다 서양 명절이 그리도 중요하냐?’ ‘초콜릿 회사의 상술에 놀아나는 것도 모르냐?’는 핀잔에도 아랑곳없이 젊은이들은 별별 ‘데이’들을 다 수입하고 만들어 기념하고 있다. 아마 어른들이 아무리 야단을 해도 이런 기념일들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기념일이니 명절이니 하는 것으로 시간을 구획 짓고 살아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우리 명절을 외면하고 서양 명절에만 목을 거는 이유는? 젊은이들이 느끼기에 설이니 추석 같은 명절은 부모들을 위한 부모들의 명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설과 추석 같은 명절에는 가족 간의 권력관계가 매우 보수적 방식으로 작동한다. 명절증후군은, 그저 쪼그리고 앉아서 전을 많이 부쳐서만이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권력 아래서 힘든 일을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권력이란 모든 인간관계에 있게 마련이지만, 문제는 명절의 가족권력 작동방식이 평소에 비해 더 보수적이고 강고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현실을 무시한 채 당위, 명분, 체면 같은 것으로만 굴러가는 이날의 질서는 종종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평소에는 멀쩡하게 설거지를 하던 남편이 명절날 부모 앞에서는 손 하나 까딱 안한 채, 얼굴 퉁퉁 부어 일하는 아내를 외면한다. 서울의 명문대 대학원까지 나오고서도 몇년째 백수인 아들에게 시골의 아버지는 전화를 걸어 ‘바쁜데 안 내려와도 된다’고 한다. ‘요즘 뭐 하냐’고 안부 물을 친척들 보기가 민망해서다. 보수적 가족질서의 명분과 체면치레에 밀려, 평상시의 화목한 가족사랑이 불가능해지는 날이 바로 이 날이다.

남자 장손 중심 권력관계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타성(他姓)의 여자인 며느리가 가장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따지고 보면 상당한 권력을 지닌 시어머니 마음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주문 차례상은 절대로 안 된다’ ‘과채탕적(瓜菜湯炙) 빼놓으면 안 된다’고 옛날식 명분을 고집하는 늙은 남편과, 노골적으로 불편한 얼굴을 하는 젊은 며느리들 눈치까지 봐야 하니, 명절만 되면 기도원이나 절간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시어머니가 적지 않다.

부모들 중심의 이런 명절이 편하지 않은 청소년들은 집 바깥으로 튀어나가 자신들만의 명절을 갖고자 한다. 적어도 거기에는 가족권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서양식 명절이 고착화되면서 이 역시 적잖은 스트레스거리가 된다. 설과 추석이 가족권력을 확인하는 날이라면, 서양식 명절은 소유를 확인하는 날이다. 애인의 유무, 비싼 초콜릿과 저녁식사를 살 수 있는 경제력 유무가 이날만큼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소유를 확인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을지라도 소유의 확인과 과시를 무엇보다도 중시하면, 없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명절과 행사라는 것에서 절차와 형식으로 명분을 확인하는 속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명분과 체면이 실질을 지나치게 압도할 때 우리는 명절마다 늘 불행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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