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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와 자동차로 집에 오면서 손자가 심심하여 만들어 부른 노래와 어린아이의 명절 10월 말일 핼로윈 을
앞당겨 할머니 집에 들려 찍은 사진 몇장. 노래는 http://blog.daum.net/habia 의 사진 밑에 첨부됨.
호박을 직접 골라 나는 남자 얼굴을, 할머니는 고양이를 손자가 부탁한대로 만들었지요.
북조국 태권도 미국 방문 시범 사진 몇장과 함께 나의 노래를 올립니다.
http://blog.daum.net/habia 에 가셔서 사진 밑의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들으세요.
쌘프란시스코의 교외 플레잔톤에서, 그리고 루이빌에서 입장하는 모습(백인 미녀들이 한복을 입고서..)
나는 둥근 선에 쉬어감 또는 사랑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긴 팔의 힘을 붓 끝에 넣고 크게 휙 그을 수 있음은 사랑과 정렬의 힘이라고 하지요. 16개월 된 손녀 사진 두장을 올립니다.
나에겐 7살 된 개가 있다. 내가 이곳에 오기 4년 전에는 주인이 딸이거나 사위 였다. 직업이 떨어져 집에 있게 된 사람이 주인이었고 맨 마중에 직업이 떨어졌든 사람의 것이었다. 이제는 누구와 사는 것과 상관 없이 매일 한 두 시간씩 끌어 주는 내가 4년간의 연속 주인이 되었다.
나는 나의 개를 강아지처럼 귀여워한다. 그러나 그 개는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기에 개 라고 하기보다는 사람 어른 같이 점잖다. 우선 귀여운 아기를 빨아대지 않는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보고 그 무어라고 비방하지 않는다. 그리고 질투 끝에 그 아무개를 짧게 뭐라 부르지 않는다.
세상엔 개 강아지와 비교할 수 없는 수치스런 사람들이 많다.
아직도 남북의 조국을 위하여 일 하고 북미 수교를 위하는 사람을 ‘빨갱이’라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언론인이 미국에 많이 있다. 조금 점잖게는 ‘친북인사’라고 써 주기도 한다. 그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가끔 의심이 간다. 대부분 이곳 영주권을 얻어 내기 위하여 해외 지사에서 일 한다는 것은 안다. 기사를 본사에서 원하는 대로 써야만 본국지의 원판이 배달되고 여기에 잡동산이 인쇄 잉크를 젹서 말리면 돈이 되기 때문이다.
북미 수교가 이루어 져야 남북이 더 가까워 질 수 있고 그래야 재무장한 일본을 양심적으로 이끌고 견제 할 힘이 나오는 것을 모르는가? 언제 나와 같은 미국 사람들을 ‘친조국인사’ 또는 ‘조선 조국을 사랑하는 미국인’ 이라고 불러 줄지…
나의 개 사진 두장을 올립니다.
http://blog.daum.net/habia 에 가셔서 people-peace.mp3 를 다운로드 하세요.
내용은 쌘프란시스코의 환영 만찬 중에서 북의 대표가 입장 하기 직전의 말과 분위기 일부 입니다.
조미 친선의 밤(70% 타민족 미국인과 30% 한 민족 미국인 또는 동포가 참석한 화려한 시범을 마치고)
친근한 하늘(Twin Peak 에서)
균형(골든 게이트 다리와 급작스레 드리운 안개를 배경으로)
나는 젊었을 때 늘 외톨이었다. 나는 나 밖에 다른 것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빽 없고 돈 없는 놈이 택한 길은 유학이란 도피였다. 비행기 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서울시는 내가 다시는 돌아 오지 않을 데로 보였다. 방금 서울 까지 배웅 나온 나의 어머니와 가족 친구들 나를 선생님 하고 따르든 여자와 그 친구들을 본지 불과 몇 십분도 되지 않아서 나는 영영 굿바이를 속으로 하고 있었다.
대학원 학교에 청진기를 목에 걸고 저의 집 드나들 듯이 자주 나타나든 쑈 좋아하는 바람둥이 총각 의사는 셔쓰를 바지 밖으로 내 놓지 말고 반듯이 바지 속에다 집어 넣으라고 주의를 주곤 하였다. 그렇게 하면 합바지 라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인 지를 몰랐지만 그대로 지나쳤다.
나는 인혁당 사건이 꾸며 졌을 때 이들 가족을 돕다가 추방 당한 씨노트 신부와 이곳 저곳 한인 교회를 찾아 다니며 호소 하였다. 동아일보에 백지 광고를 물끄러미 드려다 보며 나는 그들의 꿈을 읽을 수 있었다. 아! 희망 있는 민족이구나를 깨달았다.
영어에
‘Do in Rome as Romans do’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항상 조선 사람으로 나를 정립하고 있었고 우리 조국과 연대하는 것이 내가 하여야 할 일로 받아 드렸다. 나는 미국인 인권 운동가들과 항상 유대를 가졌었고 남쪽 인권운동가와 통일 운동가를 돕고 노력 하였다. 그리고 이산 가족들과 함께 북을 두번 방문 하여 눈물을 흘렸고 자주를 지키는 민족의 지도자에게 충성 편지도 각 명절 마다 열심히 써 보내곤 하였다. 이것은 내 뜻이 높은 사람에게 전달 되기를 원하기 보다는 내 글을 읽을 사람들과 연대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나는 남쪽의 IMF 때에 넉넉하지 못한 나의 형편에도 불구하고 미화 만불을 남쪽에 있든 딸에게 쓰도록 보내었다.
나는
나의 희망을 우리 조국 남북에 동시 갖고 있는 것 만큼 완전 조선 사람이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이곳 활동을 펼쳐 온 것 만큼 나는 미국인 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여기도 꿈이 있는 다른 민족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더 가까운 형제가 되기를 원 하면서…..
나는 조선 옷을 벗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입고 미국 도심지를 걷고 즐기는 것일까? 내 손엔 세개의 국기가 동시에 쥐어져 있다. 이젠 무슨 옷인지 모를 헐렁한 국제 옷을 입은 사람들 속에서 조선옷을 속에 입고 뛰어야 하겠다.저자가 오늘 일본 정부에게 호소하는 데모에 참여 하여 녹음한 것을 .ogg 파일로 올렸읍니다.
아래의 주소에 가셔서 다운로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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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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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을 추가 했읍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