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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사랑

우리 모두는 혼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저 마음이다 정신이다 또는 정이다 하는 것 들이다. 이것이 있기에 사랑한다는 말 또는 사람 들 사이를 의미하는 인간이란 말이 나온 듯 하다. 그럼 여기에 속하는 말 중에 사람들 사이의 것을 찾아 보자.

귀여워 하다 와 귀염둥이, 좋아 하다 와 애인, 믿다 와 친구, 매달리다 와 은인, 구원하다 와 불쌍한 이, 가르치다 와 제자 또는 아이들, 존경하다 와 어른 또는 선생, 그 밖에 주고 받기 나 받는 척 하기 등등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사람 관계를 말 하여 주는 것이 있다. 여기에는 한 쪽이 일방적으로 시작하게끔 하는 상대방의 혼에 대한 관심이나 그것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에 대한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분노의 크기와 종류는 사람 마다 각각 틀리며 이것을 표현하는 길도 여러 가지이다. 이 분노적 느낌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상대방이 나 자신이 처했든 약하거나 처절하고 불쌍한 지경과 흡사하다고 느낄 때 오는 분노 감이 있다.  또 하나는 한때 내가 가지었든 정서나 좋고 아름다운 것을 빼앗기고 잃어버린 사실을 알아 낼 때와 이것을 되찾고 그런 사랑을 보호하려는 분노다. 그리고 마지막 큰 분노는 외부의 조직적인 악한 세력이 나와 형제 자매들을 현재 착취하며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 때의 분노다. 그리고 여기 동조하는 이웃 사람들과 제도적 기관이나 원님 들을 볼 때의 분노다.

분노가

연민 등, 분노적으로 사랑의 불 태우기는 다양하다. 이것을 지금부터 혼불 이라고 하겠다. 지금 밖에 나가면 수 없는 혼불 들을 만날 수 있다. 거의 꺼진 혼불 들이 모여 춤추고 바쁘게 이리 저리 몰리며 어두운 데로 점점 꺼져 가는가 하면. 조금씩 움직여 불을 태우는 이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때로는 내용을 잘못 발표하거나 악의 얼굴을 감추는 데에 쓰이는 판촉 물로 이용 되곤 한다. 아니면 그들이 꾸미는 연극 속에 희생물로 이용되거나 폭력 폭동이란 조롱 또는 자기들이 한 듯한 선전 또는 무 표정 하게 잠깐 들여다 보고 말 거리로 이용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

하나 큰 희망이 있다. 어느 혼불이 어느 혼을 다시 살려 내느냐는 미지 수 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눈보라 속으로 활활 태우고 간 영웅의 혼불 들과 이를 따르는 혼불들, 외세의 침입 속에서 싸운 수 십만의 농민전쟁의 가난했고 헐벗고 못배운 영웅들, 해방후 보도연맹으로 몰렸든 이미 일제와 싸웠든 수 만의 가난한 이와 쌍놈의 백성들, 수 만의 통일을 염원한 4.3항쟁의 혼들, 6.25의 진실을 알고 모르고 돌아간 수 백만의 혼과 이후에 고난을 안고 가셨든 이들, 노동운동의 혼들, 남북통일운동의 혼들과 간첩으로 몰린 이들과 서해교전의 남북 희생자, 광주의거 속에서 당했고 느끼고 본 수 천과 수 많은 혼들, 장기수님들과 이산가족과 양심수들과 가족들의 눈물, 외국으로 쬣겨나 집 그리는이, 여성차별로 더 가혹했든 고난의 눈물, 혼불은 혼으로 혼은 혼불로 다시 피고 파고 들어 깨 나기 때문이다. 나와 그들의 불이 싸움과 눈물로 세상을 아름다웁게 할 날을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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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과 시간

시간에 대한 각자의 개념은 다르다. 어떤 이는 변화를 말한다. 어떤 이는 사람이 만든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 한다. 변화엔 각개인이 자신을 포함하여 접하는 수 많은 물체와 일들이 있으니 어떤 물체와 물체 사이인지 어떤 것과 나 사이인지 일반화 된 개념을 찾기에 어렵다. 시간도 사람마다 긴 시간이나 세월도 한 순간 또는 한 훌떡 지난 시각 사이로 짧게 보는 눈이 있으니 제 각각이다.

무엇이 이런 짓을 하도록 할까? 사람들은 각각 여러 가지 인연의 연속 속에서 산다. 인연의 고리 또는 인연의 연속성에 의하여 마치 자기 의지가 없는 듯이 또는 자신을 어제의 고리로 만들어진 의지에 매놓고 오늘을 보낸다. 소위 할 일의 시간표들이다. 이밖에 뜻하지 않든 마주침인 여러 가지가 일어 난다. 이것을 영어로는 accident 라고 하며 우리 말엔 뜻 밖(인연)이라고 한다. 내가 만들지 않았다는 인연이다.

우리는 잘 보이지 않는 역사라고 하는 큰 인연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의 작은 인연도 따져봐야 한다. 여기서 재미 있는 것은 그것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믿게 만드는 시간의 흐름(결과)이 처음 시각이 운명의 고리였든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은 그때의 확률을 거슬려 높였다고 해야 할까(제 이차원 시간 관념?). 찾든 배우자를 만나게 되는 것과 찾든 집이나 물건들 하고 따져보면 인연이 있어야 된다는 말로 되돌아 간다. 그 인연은 나의 시간(의 흐름)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나는 27세가 지나면서 늘 30세를 넘기지 않고 그리고 30세 되는 해 만나지는 무조건의 여자와 결혼 하기로 마음 먹고 해들을 넘기면서 막상 30세 되든 해의 6월 까지 결정할 만한 애인은 없었다. 그러든 차에 '뜻 밖의'(?) 만남이 곧 찾아왔고 그 해 11월에 결혼을 하였다. 그 여인은 길에서 데이트할 때 햄버거를 사먹어도 되고 학벌이나 영주권이나 재산도 전혀 없는 나를 믿어 주는 천진 난만의  소녀 같은 숙녀였다. 그녀가 조건 없이 나의 의지와 나의 여건을 받아 준 것이다. 한시각의 뜻은 나와 전체의 시간흐름 속에서 덕으로 확인 되였다. 정해진 시각에 같은 나를 연장하는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나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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쌘프란시스코의 작가와 젊은이의 조직 KAUP(한미평화연합)가 후원할 행사 안내

> Committee To Defend Japanese Anti-War Teachers
> (415)867-0628 lvpsf@labornet.org
> Endorsed by AFT2121  , San Franciso Labor
> Council, Doro-Chiba, Transport Workers
> Solidarity Committee, Bob Mandel Member OEA
> Executive Board, Labor Video Project,Bay Area
> Labor Committee For Peace&Justice
> http://vpress.la.coocan.jp/  
>
http://search.japantimes.co.jp/cgi-bin/nn20070717i1.html
>
http://search.japantimes.co.jp/cgi-bin/nn20070720a7.html
>
> SF AFT 2121 Executive Board Resolution For
> Support Of October 2007
> International Day Of Action For Anti-War
> Japanese Teachers & Against Militarism
>
> Whereas the Japanese people have a long history
> of opposition to war and Article 9 of the
> Japanese Constitution prohibits Japan from
> developing a growing military force and
> militarized society along with a militarized
> education system, and
>
> Whereas the cost of war has been catastrophic
> for the Japanese people, the youth and
> education workers as well as the people of
> various other Asian countries, and
>
> Whereas the growing drive for militarization
> has led to the re-writing of history books to
> censor the role of Japan in World War II, which
> included slave labor and sex slaves in order to
> justify Japanese militarism, and
>
> Whereas the U.S. government has encouraged
> Japan to violate Article 9 and to use its
> military in wars (currently in Iraq) and the
> expansion of U.S. bases in Japan for greater
> Japanese military activity in the Middle East,
> and
>
> Whereas the U.S. government has supported the
> elimination of this anti-war Article in the
> Japanese constitution in order to further
> militarize Japan, and
>
> Whereas the Japanese government has railroaded
> the legislation of the National Referendum Law
> to eliminate Article 9, and prohibit teachers
> and public workers from participating in any
> movement in opposition to amending the
> Constitution, and
>
> Whereas the increased funding for the military
> has meant decreases in funding for teachers and
> the educational system of Japan, and
>
> Whereas hundreds of Japanese teachers have been
> punished and harassed for refusing to stand in
> front of the national flag, "Hinomaru," and for
> refusing to sing the national anthem,
> "Kimigayo," or to play the piano accompaniment
> in graduation and matriculation and other
> school ceremonies and,
>
> Whereas these demands and directives instituted
> by the education system have unjustly violated
> the teachers?freedom of thought and conscience,
>
> Therefore, be it resolved that the American
> Federation of Teachers, Local 2121, protest the
> retaliation and discrimination against Japanese
> teachers for refusing to stand before the
> national flag, "Hinomaru," and for refusing to
> sing the national anthem, "Kimigayo," or to
> play the piano accompaniment in graduation and
> other school ceremonies and that AFT Local 2121
> will send letters protesting these policies and
> call for their removal, and
>
> AFT Local 2121 call on the Japanese and Tokyo
> municipal governments to stop the harassment,
> punishment and possible firings of Japanese
> teachers and other related actions by the Tokyo
> Metropolitan Board of Education against sisters
> Nezu and Kawarai, and
>
> AFT Local 2121 affirm its support for the
> rights of Japanese teachers and all public
> employees to lobby against any changes in the
> Japanese constitution, and
>
> AFT Local 2121 send this statement to the
> Japanese Consulate and participate in a
> delegation to meet with the Japanese consular
> officials to express our opposition and
> concerns, and
>
> AFT Local 2121 support sending a delegation of
> teachers to Japan to
> Investigate the growing danger of
> militarization of the Japanese education system
> and report the findings to the next CFT and AFT
> conventions, and
>
> AFT Local 2121 call on all Bay Area
> Congressional officials to oppose changing the
> Japanese Constitution Article 9, which prevents
> the militarization of Japan, and finally
>
> AFT Local 2121 send this resolution to the
> education unions of
> Japan and appropriate unions in other
> countries, urging concurrence and support for
> the teachers under attack in Japan and to focus
> International Teachers Day, October 5, 2007, on
> supporting the rights of Japanese teachers to
> lobby against the changes of the Japanese
> constitution and against the repression of
> those teachers who refuse to stand in the
> presence of the flag, "Hinomaru," and
> participate in singing the national anthem,
> "Kimigayo," and finally
>
> AFT Local 2121 support action at Japanese
> consulates and embassies around the world on
> October 5, 2005 to show our support for
> anti-war activist teachers and to oppose the
> militarization of Japan and we will seek
> concurrence from and participation by
> affiliated bodies.
>
> Submitted By AFT 2121 Members
> Allan Fisher
> Rodger Scott
> Pablo Rodriguez
>
> http://www.aft2121.com
> Mailing address: 311 Miramar Avenue, San
> Francisco, CA 94112

> Phone: 415-585-2121
> Fax: 415-585-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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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의무

인간은 원숭이와 비슷할 때부터 많은 단어를 만들어 왔고 지금도 만들어 내고 있다. 모든 단어들은 상대적 단어가 있고 그 단어로 비교함이나 말 장난으로 그 의미를 더 할 수 도 있고 덜 할 수 도 있다. 이것은 어떤 개인의 인생 경험과 지식 차이가 다르고 말 하는 사람의 그것들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생지옥을 경험하였거나 그 처참함과 여기에 대한 분노를 마음으로 느껴보며 슬퍼하였든 사람의 천당에 대한 느낌은 이것을 모르고 하늘을 생각하는 것이나 그들의 꿈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옥도 천태만상이요 천국도 억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 모두를 어떻게 하나로 만들 수 있을까? 여기에 나는 우리나라 대표 시인이자  철학자이신 봉래 양사언선생의 시로부터 찾아 본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르리 없건 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나는 여기에서 오른다고 하는 것은 더 밑으로 내려가 보아야 더 크게 올려 볼 수 있는 이상의 방향으로 본다. 겸손하여 지면 보이는 것들. 힘이 없어지면 보이는 것들. 미끄러떨어지면 보이는 것, 아프면 보이는 것들, 사랑 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지면 내가 그랬을 것, 여기에 세상의 모든 단어를 모두 다 열거 할 수 있다.

극과 극은 하나라고 막연한 말 들을 하고 있는 요지음 나는 극과 극은 깨달음의 도구이지 하나로 볼 수 있는 처세술의 도구는 아니라고, 그리고 격차의 진미는 각자가 찾아 내야 할 첫 의무 이라고 말 하고 싶다. 우리가 단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힘은 실천 속에서 온다. 태초 후에 몸바쳐 싸우시든 조상들과 후세대의 정의로운 싸움으로 오는 한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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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할 일

많은 사람들이 안전 제일주의로 살려고 한다. 내일 할 일들이 거의 정해져 있다. 그렇다고 불안 함이 없을까? 불안함은 첫째 미래를 모르고 있는 것으로부터 온다. 그렇다고 미래가 모두 정해져 이룰 수 있다거나 모두 미래의 섬세함을 안다면 아무 재미가 없을 것이다. 즉 내가 예측한 것이 맞아 들어가는군, 거참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나중에는 이것은 남도 할 수 있는 누워서 콩 먹기이니 나의 존재에 대한 회의가 오고 말 것이다.

지금을 알려고 하면 한순간 앞을 재어보는 미래의 가능성을 눈치챔 말고도 현재 찾아지는 진리나 지식을 접하고 찾는데 게으르지 말아야 하고 이를 정돈 할 줄도 알아야 한다. 

둘째로 불안은 정돈이 안되어 있는 복잡한 환경이나 더러운 환경과 이를 다룰 줄 모르는 속에서 온다. 끝으로는 자신의 내적 불안이라고 도 할 수 있는 항시적 불안이다. 이것은 자신의 몸 건강상태에 직접관계가 있다고 도 할 수 있지만 무엇을 억지로 붙잡아 보려는 자기 불신이라고 도 할 수 있다. 보통 불안과 화는 쌓을수록 물에 빠지듯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

불안을 없애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자신을 분석하여 볼 수 있을까? 무슨 일부터 하여야 할까? 내가 그런 능력이 스스로 있을까? 왜 그놈의 것이 자꾸 되 살아나 엉뚱한 성(씅)을 사랑해야 할 님들과 내 자신 에게 풀어보려고 할까?

나는

있다고 한다. 우선 내가 안전하게 제어 할 수 없었든 것을 보면서 화를 내는 것은 바보다. 내가 이해 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것도 막 일어난 직후에는 사회가 공론화하여 해결 할 때까지는 그래라고 하여야 한다. 둘째는 내가 하여야 할 일 중에 제일 어려운 문제나 일에 제일 먼저 손을 대기 시작하여 다른 것들 보다 먼저 끝내려고 하여야 그 다음 일이 쉬워진다.

셋째는 응급치료다. 마싸지 또는 청소로 나는 해결한다. 아니면 남의 이야기를 들어 이것 저것 시도하여 본다. 청소엔 생활공간의 공기 가구 밑 구강 눈 얼굴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마싸지는 운동으로 대신 할 수 도 있다. 마싸지는 한살배기 아기가 모래에서 어떻게 하나를 보면 여러가지를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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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적 감상

우리가 눈을 뜨든 감든 어떤 그림을 허공에 그려보는 것을 가상이다 또는 상상하여 영상을 만들다 라고 하거나 구상 한다고 도 한다. 거의 모든 작가들이나 화가들 그밖에 수 없는 다른 예술과 발명과 창작 언론 등이 이것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그저 그대로 무엇을 옮겨 다른 미디아에 옮기는 것도 작가의 그 무엇에 대한 해석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 가상 없는 실상이란 카메라나 녹음기도 다잡지 못한다.  동서남북 위 아래의 전체적 분위기를 표현 할 수 있는 미디아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 즉 말과 미디아가 표현하려는 그 무엇은 전체 진리의 지극히 일부로 만 표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실상적 가상 또는 허상적 부분실상 이라고 해보자.

그리고 전달되는 창의 크기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미디아의 기록방법과 그것을 열어보는 창 이 있는 기계와 이의 프로그램은 각각 다르다. 여기에 독자와 관람자의 정서와 나이 교육정도 등의 다양성, 관람장소, 시각, 환경 등등 말 할 수 없이 많은 조건들에 의하여 허상이 생겨날 수 있다고 할 수 있게 된다. 그럼 어떻게 모자라는 허상적 작품이나 이것을 연출하고 연주할 때 부족함이거나 왜곡된 진실을 더큰 진실로 극대화 할 수 있을까?

첫째로 의심 하여야 할 것은 작가가 작품완성 자체를 위하여 거짓을 넣었을 가능성을 갖고 보는 것이다. 대부분 교회 설교가 여기에 속한다. 너는 하지 말라 이다. 다음은 작가가 너무 소침하고 의기 양양하게 어떤데 몰두 되어 있지 않았을까를 점검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덕성을 살펴보고 역사성의 배경과 그의 덕성을 비교하여 보는 것이다. 보통 끝에 대안 제시가 추상적이거나 자기 오만에 빠진 것들이다. 눈 감자가 여기에 속한다.

셋째로 작품이 우물 안 개구리이거나 어떤 민족적 자만을 가져오는데 그치기가 쉽다. 즉 목적이 너무 뻔한 것이거나 아예 없이 비판하는 것들이다.

나는 어떤 음악을 감상 할 때 항상 부족한(그저 비판만 하고 있을) 표현 부분을 내가 원하는 음악적 이상(아이디알)으로 즉 더 완전한 아름다음으로 거의 동시에  만들어 연주하는 듯 나 자신의 표현을 가상하여 감상한다. 이런 예술적 표현을 언제 다시 가상 할 수 있을까.나는 언젠가 나의 딸이 피아노로 내가 원하는 이상으로 음악을 만들고 있을 때 자연인 천둥이 함께 하면서 더 극치의 음악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든 것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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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노리 수

본다는 것은 그저 멍하니 그저 보다 와 좀더 시선을 만들어 의지적으로 어떠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다 와 좀더 가까이 들여다보다 라고 구별 할 수 있다. 이 셋 중에 그저 보다 와 바라보다 사이는 눈 깜짝하는 사이에 서로 교차하면서 오가지만 보통 멍하게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지금 어떤 무엇을 바라보는 것은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읽고 있다는 말도 된다.

본다는 것은 눈을 감고 있든 뜨고 있든 두뇌에 그려지는 영상이 있음을 실감 하는 것 이라고 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꿈에서 보이든 것을 깨어 없앤다 또는 눈 감고 본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

또 다른 눈이 더 있다. 이것은 활동적 눈이라고 도 할 수 있는 눈이다. 우리는 잠이 깨거나 눈을 뜨면 곧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엄격히 말하면 눈을 굴려 생각을 시작한다. 그 다음에 그 생각이 주체적인 나의 몸을 움직이면서 어떤 다른 동작으로 이어간다. 그리고 온종일 이러한 동작들 속에서 또는 동작들을 하면서 주변과 세계를 보며 동물적이거나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연출적 살핌 즉 자아 또 나라고 도 한다. 즉 잘 때는  내 몸이 의식을 갖고 있지 않는 것 만큼 내 몸이라 고 하기 도 어렵고, 내 몸은 있어도 나는 없다고 도 할 수 있다.

활동적

눈이 보는 객체가 사람일 경우는 우선 눈 대화라는 것이 있다. 우선 우리의 눈과 더 큰 눈이라고 할 수 있는 몸은 거울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는 나를 눈 안에 갖고 있고 나는 그를 갖게 된다. 즉 자아는 확대되어 간다. 이때 나와 그, 그리고 주변을 함께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보는 삼자의 눈이 생길 수 있다. 이것으로 내가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 가를 보면 그를 언제 앞지르거나 일부러 질 수 있는 쓸  눈이 발전 된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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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과 육감

색은 3가지 원색과 이것을 합쳐 만들어 지는 다른 여러 가지 색들이 있다. 여기에 나는 의미를 부여해 본다. 대부분 빨강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정열이라고 들 한다. 나는 이것을 불이라고 도 한다. 다음엔 노랑인데 어떤 사람은 질투라고 하지만 나는 기쁨이라고 한다. 나는 또 빛이라고 도 한다. 파랑은 빨강의 상대적인 색으로 무겁고 춥고 타지않았음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세 색을 팔랑개비 낱개에 각각 같은 비율로 칠하여 햇빛처럼 밝은 빛 아래서 힘껏 돌려 정면으로 보면 흰색과 같은 빛이 되어 감을 본다. 이는 마치 프리즘으로 햇빛을 나누면 세가지 외에 더 많은 무지개 색이 되는 것을 반대로 하여 흰빛을 만든다고 도 할 수 있음을 증명 하는 것이다. 태양은 붉은 불덩어리 지만 멀리부터 오기에 빛이 무색화 되어 밝음으로 만 보일 뿐이다.

지금

까지 색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빛이 있는 조건 아래에서다. 빛이 없으면 모든 색의 물질은 검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삼원색의 페인트 물질을 골고루 섞으면 까망에 가까워 진다. 이것은 원색들이 그만큼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즉 색은 빛 아래서 서로 상대 적이다.

어떤 색을 어떤 색으로 보느냐에 달려 느낌이 달라 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오렌지 색이 중립이라고 한다. 즉 오렌지 색을 오래 보고 있다 다른 어떤 색을 볼 때 그 색이 주는 느낌이 진정한 그 색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주변의 여러 색의 벽들에게서 반사 되어 온 색깔 먹은 빛이 그 어떤 색의 물질표면(쌤풀)으로 들어가는 정도를 무시 하면 그것도 아니다. 물론 태양 빛도 계절 날씨 시각 구름의 다양성에 따라 붉은 정도가 틀려 진다. 쌤플에는 여러 종류의 표면이 있고 어느 곳에 놓고 어디에 서서 어느 각도로 보느냐에 또 틀려 보인다.

이렇게

우리의 눈은 무쌍하게 시시 각각 색에 물들어 변화하고 있다. 아침에 잘 골라 어울렸든 옷이나 색이 저녁에 어느 장소에선 아니올시다 다.  그것은 즉 색으로 미래를 짐작해볼 줄 알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미래를 보는 육감, 미래를 저울 질 하는 용기다.

옆의 나의 넥타이는 직접 그려 만든것이며 나의 딸 야외 결혼식때 들었든 꽃들 색과 일치 하였지요.

 

그동안 활동하시는 진보 운동 하시는 분들께 오늘 아침에 잡은 태양 빛을 선물합니다다. 높고 짙은 보기 드문 안개 속에서 보였든 촬영 가능한 태양이었읍니다. 쌘프란시스코입니다. 쉬었다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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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과 행복

요즘 대부분의 영업적 이익에 몰두한 영상 또는 활자 언론들과 상당한 인터넷과 사실이든 소설이든 이것을 영화화 한 것 모두가 황금과 관계 있는 것으로 기승을 부린다. 가난이나 희생 속에서 겸손해지고 투쟁하면서 아름다워 지는 말은 옛 것이 되어 가고 있다. 이것과 관계 있는 쎅스(황금으로도 살 수 있는 정치력의 퇴폐에 이용되는 또는 유명해지려는 사람들과 이들의 성 관계 혹은 부부 맺기, 음행한 마음으로 뒹구는 동물적 사람 이야기나 유혹과 싸우는 아름다움이나 속음 등), 스포츠(최고 선수에게 돈 몰아 주거나 외국에 들락 거리기), 교회의 번창(여성의 예쁜 사람들을 앞에 앉혀 놓고 돈 거두어 1% 빼고 교회 안에 황금 쌓고 모여 웅성대기), 폭력(돈 가진 사람의 우쭐댐이나 똑같이 구는 밑 주먹, 그림 속이니까 깨버려도 되는 그들의 무기 이야기와 이들 장면들과 게임), 황금으로 만든 정객이나 언론들이 어렵게 사는 형제 나라 거짓으로 흉보기, 억울함 호소나 독립투쟁이나 민중항쟁을 폭도로 몰기 등등도 여기 속한다. 거짓은 폭력 중에 보이지 않을뿐 폭력의 핵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연 이렇게 하면서 행복할까? 대한민국은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니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개인의 잘못이 아닌 것으로 자살하게끔 내버려두는 것을 우리 손으로 막을 수 있을까? 첫째로 윗 물이 맑아지도록 정치인을 지성 있는 사람이나 힘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속이지 않을 사람들로 골라야 하며, 마음을 사기 위하여 경제니 주권이니 허풍 떠는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 작은 것도 감추려 하면 완전 검증을 요구해야 한다. 벼룩이 용이 되거나 왕의 옷을 입어도 집에 쳐 박혀 저녁 식사에 어르신네 들을 불러 꼬마 대하듯 포도주로 묶어두지 말고 들에 나가 삽질을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이웃나라와 화해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거지 취급하며 못 주게 하다  자기는 더 주겠다고 하는 것은 화해하고 싶지도 않으면서 하는 말이다.

이제

돈 없이 돈을 이기는 또 다른 것을 찾아보자. 첫째로 돈의 노예가 되어 간 위의 썩은 나무들을 멀리하도록 여러 프로그램을 개발 하여야 한다. 제일 첫째로 환기 잘 되는 운동 시설이 무척 많아야 한다. 일일 장터 대신 정치 토론 장이 저 학년부터 장려 되어야 한다. 밤에 실외 연극장소나 밝은 만남의 장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학벌 위주에서 탈피하여 아이디어의 공동개발을 통한 소유권의 공유를 장려하고, 잉여에 대한 자본주의 독식을 막고 노동자와 국내 자본주와의 타당성 있는 자산 분배 및 재투자를 장려하여 외국 자본의 침입을 막으며, 제일 중요한 것은 실패한 사람들 끼리 만나 아무 걱정 없이 수개월 수년씩 놀면서도 아이디어를 생산하여 맡길 뱅크가 있거나 재생할 일거리를 찾아 주는 것이다. 물론 문화 쇄신을 통한 정신적 재훈련 센터 프로그램이 우선인 것을 말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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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판소리 녹음

 

나의 판소리 사철가를 들어 보세요.

 위의 파일이 안올라 갔네요. //blog.daum.net/habia 에  가서 "나의 첫 판소리 녹음"을 찾아 habia-pansori.wav 를 다운로드 하세요.

 

저자 habia( 손자가 나를 불러주는 할아버지의 준말, 손녀는 하부아 라고 부르지요)가 풍물을 배워 발표하는 모습

 

 

East Bay 의 Oakland 에서 풀뿌리들이 세운 청년문화원에서 저자가 사랑가를 처음 배워 부르고 있다.

 

아래의 나의 첫 판소리(사철가) 녹음은 지난 일년이상 혼자의 창법 발굴로 9/4/07부른 것이다.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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