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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물

나는 70이 가까워 오는 남자임에도 아직 가끔 눈물을 흘린다. 최근에 약간 수정하여 한 옥타브를 번갈아 올려 부른 노래, 나의 즉흥시 다시만나’의 처음 녹음한 것을 아기 놀이터 구석에 홀로 앉아 다시 들어 보면서 흐느껴 울었다. 나는 젊었을 때 유행가를 싫어하였다. 너무 감정적인 표현이 싫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감정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이상하다. 작사 하면서 부르느라 박자가 틀리고  아기 수레를 밀면서 걷느라 숨이 차서 그랬을까? 나의 말하는 목소리는 베이스임으로 낮게 말하는 느낌으로 불러서일까? 작게 부르려 노력하여서 일까?

 

과거가 억울하여서 일까? 아니면 아직도 꿈이 있어서 일까? 아마 주변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은 아닌지..

오늘 조용한 공원에서 부른 Love Me Tender를 어제 공원에서 두번째 만난 집 없는 천사에게 바친다. 그 여인은 나를 보고 빙긋이 웃어 주었다.  그는 백 여명의 다른 천사들과 함께 공원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음악은 http://blog.hani.co.kr/habia 이나 http://blog.daum.net/habia 에 가셔서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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쌘프란시스코의 이른 봄 꽃과 나의 풍만했던 까만 머리

나의집 뒷 뜰에 핀 캘리포니아에만 있는 나무(Pink winter currant/Ribes sanguineum종류)의 꽃사진과 최근 공원에서 찍은 사진 및 나의 46년전 당시 22세에 찍은 사진을 올립니다. 나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고 들 합니다. 서양사람 같이 생겼다고 아이들이 놀리기도 했지요.

내가 이곳에 유학온 후에 노란 머리의 여성들의 관심을 끈 것은 나의 까만 머리였읍니다. 너도 나도 나의 머리를 만져봐도 되냐고 묻고 그래도 좋다고 하면 정말 만져보고 지나갔읍니다. 

나는 미국 시민이지만 여러분들의 미주 동포입니다. 요지음 자기나라의 해외 동포의 법적지위와 인종 또는 나이차별(까만머리)과의 관계가 왜 함께 어울려 두두러져야 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인종주의적 발언이 법에 저촉이 안되더라도 이것은 더 큰 초자연법에 어긋나는 행위임으로 여기에 특검 정호영씨를 고발합니다. 어느 사회 또는 누가 김경준씨를 그렇게 만들었는가도 물어 보아야 하겠읍니다. 지구상에 85 퍼센트 이상이 까만 머리이고 대부분 '외국'에 사는 그들의 윤리 도덕과 남한의 문제가 왜 연결이 되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남한의 사대주의 적 인종주의가 자신의 머리색 마저 잊어 버린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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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의 가극 아이다 1막 중의 쎌레스타 아이다를 아버지들에게 드림

나의 아버지는 조상 신숭겸씨를 늘 자랑하셨다. 임금을 대신하여 자기 목숨을 바친 좌의정이었다고 하셨다.  나의 노래는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에게 드리며 할아버지들이나 할머니들 사이에 들어 있을 수도 있었든 단군님의 피에게 드린다.

조상의 기념비를 부수는 망난이들을 가진 기독교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 온 민족을 원자탄으로 멸살하려든 미국놈 동상은 옳다고 까지 하니 기가 막힌다. 성경에 동전을 땅에 묻어두지 말라고 하였다하여 예수를 마치 자본주의자로 오산하지만 그는 아주 빨간 사람이었다. 평등하게 나누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최근 나의 형이 그린 아버지의 초상화이다.

노래는 http://blog.daum.net/habia 또는 http://blog.hani.co.kr/habia 에 가셔서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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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시 '다시 만나'를 'Love me tender'곡으로 부름

오는 2월 26일엔 뉴욕필하모니가 평야에서 연주를 한다. 미국의 작가 거쉬인의 곡을 북조국의 전국에 생방송하게 된다고 하며 이것을 세계로 생중계한다고 한다. 이번에 미국의 연주가들과 평양의 연주가들간에 서로 배우는 시간도 마련되어 조국의 서양음악의 진수를 배우게 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미국과 조국의 관계는 60년전 이전까지 오랬동안 광복군이었든 김일성 장군의 유격대 활동이 있었기에 일본과 맞서 싸운 동맹관계였다고 할 수도 있다. 미국이 북조국과 해방 후의 적대관계를 풀면서 남한과의 불평등한 관계도 털어버려가는 시작이 되기를 바라면서 나의 두번째 작시로 된 노래를 올립니다. 이름은 다시 함께이며 손녀와 놀이터에 가면서 즉흥적으로 불렀든 것을 다시 집에서 녹음한 것이다.

이 노래는 나의 정신적 애인(Platon Love)이었든 이화여대 국문과 출신 길항영씨와 우리의 조상의 용맹과 언어, 건축문화 및 고전 등 내 것을 살리고 유지 발전시키려는 모든 국민들과 인민들에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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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C로 다시 부른 네쑨도르마

나는 이제 높은C를 처음으로 소리 낼 수 있게 되었다. 거의 3-4개월이 걸렸다. 나의 요령들을 이론화하는데 수 없는 교정을 거치었다. 다시 부른 네쑨도르마를 나의 장인 어른에게 드린다.

그는 함남 북청에서 자랐고 미국의 남한 점령(8.15) 이전에 전주농대를 졸업하셨다. 미군이 원자폭탄 투하 직전이라고 선전하여 수많은 북한 주민을 반 강제로 탈북시켜 이남으로 오게 된 실향민들과 같은 취급을 받은 사람 중의 한사람이다. 많은 인민군 포로들이 거의 강제적으로 반공포로라는 명명하에 남쪽에 떨어진 사람들, 사상을 전향하지 않는다고 40여년을 옥고에 갇혔든 실향민들이 생각난다. 그는 아들을 못 가진 죄로 가지려고 하다 박정희에게 첫번 희생당했고

두번째는 자신이 손수 만든 한국 최초의 자동차보험회사 마저 박정희의 끄나풀 장교출신이 들어와 부 사장직을 그만두어야 했든 희생자였다. 청렴결백하신 분이어서 해방후에 국고과장 하실때에 사과 상자하나도 못 받게 하셨다고 당시 딸이었든 나의 부인은 자랑스러워 한다. 그는 이화여중고에게 땅을 더 넓히도록 남보다 유리하게 불하받도록 하였다고 들었다. 지금 서울엔 전통문화의 상징인 남대문이 없어졌다. 덕이 없는이가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마구 칼자루를 휘드르려다가 아차한 듯하다. 청계또랑이 부끄럽게 되었다. 남한 경제를 부흥시킨 천성이 상업인들인 부지런한 북한출생인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 그들을 강제적이지만 '인도적'이란 명목으로, 대부분 북으로 자진 귀순한 국군포로와 맞 바꾸어 보낼 정책은 없는지?

하루속히 남북이 하나되는 경제대국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노래는 http://blog.daum.net/habia 에 가셔서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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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애인을 생각하며 구노의 세레나데를 편곡하여 부름

가사와 곡은 변조된 곳이 많겠지만 젊을 때 혼자 즐겨 불렀든 것을 대충 기억하여 불렀다.

이 노래는 내가 미국에 온 후에 몸이 나빠져 학교를 계속할 수 없었을 때, 나를 기다리지 말고 잊어 달라고 부탁한 후, 소식이 끊어지게 된 순진하고 귀엽든 피아노 전공의 여인 정아(가명)씨에게 드린다. 내가 울린 단 하나의 여인이다. 내가 아내 다음으로 많이 생각하는 여인이라면 나를 용서 하여 줄까? 용서를 하셨겠지만, 조심스럽기만 하다.

사진은 지난 해 딸 결혼식 후 곧바로 있었든 저녁식사 후 여흥 순서에서 노래 부르는 나의 모습이다. 대중 앞에서 노래하기는 나의 두번째 풍물반의 발표에 이어 세번째라고 할 수 있다. 처음은 42년 전 TS Kim의 문학 영어 반 학생들과 놀러 가서 Crazy Love를 부른 것으로 기억한다.

http://blog.daum.net/habia 에 가셔서 사진과 음악을 보고 즐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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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된 북의 음악 이해

영어는 빨리 말을 할 수 있어야 출세 할 수 있고 듣는 실력은 온갖 사투리적인 제 삼 세계인들의 영어도 알아 들을 수 있어야 국제적으로 영어를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3-4년전 부터 이곳 미국의 1.5세대들은 그전부터 있었든 남쪽의 민주화를 지원하고 배우는 KEEP 프로그램에 병행하여 북쪽을 방문하는 DEEP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운행하고 있다. 지난해에 다녀온 결과를 가주지역 여러대학에서 발표하였다.

아래 첨부한것은 북의 음악 이해를 돕는 것이다. 빠르게 하는 영어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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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야외 운동

나는 68세가 가까워 오는 사람이지만 몸은 20년 젊어 보인다고 한다. 아직도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오늘을 은퇴하여 즐기고 있다. 새벽엔 커피 한잔을 한후에 금문공원으로 아내와 함께 운동을 하러 나간다.

먼저 숨쉬기등 빈손 운동을 5분 정도 한후에 제일 먼저 하는 운동이 있다.  허리와 등 어깨에 좋은 것 같아 매일 즐겨한다. 한 네 다섯번 정도.  쌘프란시스코를 방문중인 딸이 촬영을 하여주었다. 아내는 땅에서 약 20도 경사진 널판 위에서 같은 운동을 하지만 딸은 나의 것만을 찍었다.

아주 작은 mp4 파일로 올립니다.

http://blog.daum.net/habia 에 가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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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과 조국 그리고 가고파

나의 고향은 내가 8,9,10세때 충청북도 충주와 중원군 사이의 시냇가와 산과 들에대한 추억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고기잡이를 함께하여주었든 인민군 아저씨는 나에게 낭만의 극치였다. 나는 북조국을 몇번 방문하였는데 그 산천들이 그리고 그곳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마치 나의 옛 고향사람들을 만나보는 듯 포근감을 주었다. 그렇기에 나에겐 하나의 추억과 하나의 조국만이 있을 뿐이다.

가고파를 불러보려고 여러번 생각하였기에 불러보았다.  생각보다 어렵고 격정을 누르기 힘든 곡이라고 느껴진다. 특히 감기가 다 나가지 않은 상태여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이 노래를 좀 힘들게 불렀다. 이 노래는 나의 대학교 교육을 위하여 등록금과 용돈을 꼬박 꼬박 주었고 또 미국행 비행기를 타도록 하여 준 나의 은인 전 한독약품 주식회사 상무 김구환씨에게 드린다. 그의 고향도 나의 고향과 같다.

음악은 http://blog.hani.co.kr/habia 에 가셔서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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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때의 딸의 음악연주를 다시 듣고

이 음악은 Paganini의 Violin Concerto No.1 이며 1992년 3월 Oak Park High School Orchestra 와 함께 연주한 비데오 녹음을 다시 녹음한 것이며 두개의 OGG 파일로 만들어서

올립니다. 나는 당시 가난하여 단 몇천불 짜리 바이올린 밖에 사주지 못했든 것을 지금 후회하게 되었고 음악이 뭐길래 사람의 다른 정서를 무시하고 낭떠러지로 떠밀듯이 악기만을 익히라고 강요하였든가를 지금 후회하게 되었읍니다. 딸의 아름다움과 슬픔이 강렬한 음악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새해의 각오는 더 이상 주변 사람들에게 좀더 심각함을 원하거나 바라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더 심각할 것은 나 자신이여야 하였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지요. 못 사랑한 내 딸을 위하여.그리고 나를 위하여

음악은 http://blog.hani.co.kr/habia 에 가셔서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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