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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자주)와 민족 그리고 고유문화

강대국은 약소 국가와의 협정을 요구한다.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하기위한 사기극이다. 그다음은 물리적  힘으로 슬쩍 밀어 부쳐 놓고 사근 사근 말라 죽게 만든다. 그러나 묘한 것은 약소민의 문화는 위해 주는 한다.  특히 착취된 후에 봉기등으로 다시 일어 없을 때는 그들의 문화를 자기들의 구경거리로 삼는 것이다. 먹고 먹기 식이다.

나는 위스콘신 주의 Dell이라는 곳과 쌘프란씨스코의  Alcatraz 섬에서 인디안 춤을 보았다. 그리고 지난 주말에 하와이 Honolulu에서 훌라댄스등  폴리네시안의 전통 춤과  주변 Fiji 섬에 사는 원주민의 용맹스런 춤도 보았다.  백인과 흑인등이 상당 부분에서 폴리네시안 역할을 하고 있었다.  40 전에 하와이로 처음와서 보았을 때는 전부가  원주민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고 아내가 말하여 주었다. 와이키키 해변가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러나 아내는 지금은 아파트 숲이 바짝 닥아와 있지만 전에는 없었다고 그때의 아름다움을 아쉬워 하였다. 그때 아내가 해변가 야자수 밑에서 한복을 입고 파티하는 사진을 것을 기억한다.  선녀들 같앴다. 이것을 다시 돌려 없을 때는 차라리  하고 생각도 하여 보았다.

우리 민족 문화를 습득하고 즐기는 것을 통하여 내가 우리가 되고 주체성을 생명으로 삼아야  문화를 영구보존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문화의 핵심은 주체성이어야 함이다. 생존을 위한 도구이기 보다는  생무력 자체가 되는 밑거름이어야 하지 않을까.

사진은 작가가 하와이에서 딸을 만난 아내와 찍은 사진 이다.

Copyright(c)Ik Kil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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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손녀의 사진과 나의 오일 페인트 '어항' 24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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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핵심과 약자에게 붙이는 말

자본주의는 사기꾼들과 있고 갖인 자들의 천국이다. 거의 모든 진실은 밝혀지지 않도록 통제되어 있고 진실을 말하는 자나 억압에 항거하는 자들은 테로이스트또는 친북좌파또는 간첩또는 순진한 이라고 딱지를 붙인다. 50 전에 지금 CJ 증권이 서있는 곳에서 나의 아버지는 작은 술집을 경영하시고 있었는데 사기꾼들 한테 외상(사기적 신용)으로 모두 떼어 버리고 사업을 그만두실 때에 나에게 수금을 부탁하셨다. 백명이 넘는 그들은 하나 같이 공통된 점이 있었다. 갚는 다는 것이었고 못갚는 핑게는 무한정한 것이었다.

거의 모든 법은 가진 자들이나 사끼꾼 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쓰여지고 있다. 거의 모든 영업은 사기적이다. 과장된 선전을 하고 구매 후에 이용 가치는 폭락하도록 만든다. 이러 저러한 연구 결과들도 시간에 따라 서로 상충하여 어느 것을 믿다가는 쓰러지게 만든다.

지금 우리 조국은 핵을 소유하고 있는 만큼 실세의 힘을 소유하였기에 이미 테로이스트 아니게 되었다. 잣대를 계속 미국이 사용하면 자체의 세계 착조 구조에 금이 가게 되어 있다. 그러기에 테러국 명단에서 제거 하겠다는 것이고 그것은 현명한 결정이다. 팔레스타인이 소유한소규모 폭탄 만으로는  진실의 항변이라기 보다는 테로 간주 되는 것이다.  친미 사대주의자인 MB 수입 소고기 뼈를 강제로 먹고  미래의 희생자가 약자들을 친북좌파 몰기 시작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을 공비라고 산으로 몰고가 쏘아 죽이든 이승만 정권과 비슷한 시작이다.

이것은 시대 착오적인 오산이다. 촛불은 약한 자들 손에서 핵과 같은 힘을 주기 때문이다. 이북과 미국은 진정한 우호 동등 관계를 향하고 있는데  미국의 추종자들이 이남의 약자들을 친북파로 몰면 친북은 좌우를 떠나 주체파로 옹호되는 날이 빨리 오고 있다고 보아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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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림 그리기와 만 두 살 되어가는 손녀의 첫 채색 작품

나는 나의 그림이 상업적으로 이용 될 것이 싫어서 그림을 시도하다 곧 접었었다. 아무래도 일단은 어느 개인의 소유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는 예쁜 손녀와 귀여운 손자를 갖게 되었고 그들에게도 보일 겸 붓을 다시 들었다. 맨 위의 그림은 손녀가 몇일 간 꾸준히 휙 긋기 또는 반복적 휘두르기 선으로 조금씩 더 진한 색채를 만든 것이다.  위의 부분은 나의 무릎을 딛고 서서 그릴 수 있었다.

밑의 그림은 오일로 그린 불에 타는 물위의 자동차라고 하여 보았다. 24 와 18인치이며 대부분을 사진으로 공개한다. 이 그림은 나의 청주 사범 병설 중학교 2-3학년 담임선생 겸 미술 선생인 키가 크신 정진국(기억이 확실하지 않아 가명) 선생님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올린다. 나는 그림을 배운 기억은 없지만 내가 깡패들과 늘 싸움을 하다가 몸을 다쳐서 6개월 휴학하고 있을 때 나에게 고등학교에 진학하도록 특별 지도를 하여 주셨다.

아래 사진의 상업적으로 이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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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음악들을 접으면서...

지난 8개월간 나의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노래 부르는 것은 후배들이나 어떤 사회의 요구가 있을 때까지 접기로 하였습니다. 작곡이나 다른 예술 창작을 하여 발표하게 되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간 나의 글의 주제 넘는 부분에 대하여 용서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내가 특별히 고마워 하지 못한 나의 다른 모든 친지들에게도 행복하심을 바랍니다. 아래 첨부된 그림들은 나의 창문에 시각적 보안상으로 만들어 붙인 무늬(디자인) 들입니다. 제작은 20년 전의 것 들입니다.

저의 이 메일 주소는 ikshin@sbcglobal.net 입니다. 통일 조국을 열도록 안녕들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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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봉선화와 예술

예술은 힘과 아름다움 또는 진리 그리고 조화를 바탕으로 하며 소리와 빛, 형상의 활동무대에서의 역할 또는 이들의 매개체 자체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흥은 보통 예술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지만 유흥 자체가 예술성을 띤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예술이 상업적 유흥이나 권위 게임에 너무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음악이란 나에겐 스스로 선택되어지는 음 또는 음으로 표현되는 마음 감이다.  예술이 유흥에 상습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17세 미만에게 강제적으로 투여 되는 종교와 같이 마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유흥이나 상업을 목적으로 작가나 성인의 의도와 다르게 꾸며지는 것은 그만큼 악한 것이기 때문이다. 감상은 유흥보다 귀하다. 감상은 신나는 것 이상의 것을 목표로 한다.

나의 음악들은 상업이나 유흥에 이용되는 것을 금합니다. 봉선화를 낮은 음으로 불렀습니다.

이 음악은 집 없이 4년간 서울서 떠돌이 생활을 할 때 친구가 되어준 김철기, 김정자씨,

김학정씨, 연대 영어강사 였던 김태성씨에게 드린다.

음악은 http://blog.daum.net/habia 에 가셔서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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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고등학교 시절의 슬픔과 유행가

나는 육이오 직후에 청주로 이사한 후에 슬픈 7년을 보냈다. 버스 정류소에 밤 늦게 까지 집으로 데리고 갈 여인숙 손님을 기다리든 일. 50미터 떨어진 이웃의 펌프 물을  매일 같이 길어 오든일, 구공탄이 나오기 전에 네 군데의 방을 앵겨(벼 껍데기)로 매일 저녁 뎁히든 일, 저녁 일이 끝나면 어머니의 팔 주물러 드리는 일, 이가 나쁘신 어머니에게 사과를 숫갈로 글거 즙을 만들어 드리든 일, 이웃집들이 모아 놓는 뜸물을 걷어 오든 일, 십리 떨어 진 곳에 자전거로 닭 사료를 돌 자갈 길로 나라 오든일, 숙제하려고 하면 이미 몸은 피곤하여 책상에 꼬꾸라져 잠을 자는 둥 마는 둥하든 시절, 나는 슬프게 부르는 노래 소리가 싫었다. 내가 너무나 슬픈데 어찌 그런 노래를 좋아 할 수가 있었겠는가. 나는 지치고 슬픈 몸을 이끌고 뒷 동산에 올라 오페라의 아리아나 세레나데를 목이 터져라 부르곤 했다.

유행가들은 나에겐 딴따라(흥 돋구기) 혹은 넉두리(우는 소리) 같이 들렸다..

생전 처음으로 유행가를 불러 보았다. 대충 기억나는 동백아가씨를 편곡하여 불렀다.

음악은 http://blog.daum.net/habia 에 가셔서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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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나는 네가 없으면 다르게 존재 하지 않는다.

너는 학문 제일 주의였다.

너는 어릴 때 어머니를 돌보지 않았다.

너는 명문 서울 고등학교와 서울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너는 뻐기고 살기를 좋아하였다.

너는 내가 40년 만에 너의 잘 사는 집에서 점심 한끼 먹는 것 조차 거절하였다.

너는 전화 받는 것 조차 귀찮아 하였다.

너는 너의 새끼들 밖에 모른다.  너는 너의 짝짓기 밖에  모른다.

너는 힘있는 놈에게 아부하는 것 밖에 모른다.

내가 제국주의와 싸움하는 동안 너는 그놈들에게 붙어 먹고 남 놀리는 것 밖에 모르지.

너는 잘 난체하는 것 만큼 잘 못 다시 태어나는 구나. 한나라 한 배속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아 주오.

위의 시와 첨부되는 노래 I cant stop loving you는 나의 작은 형과 나의 남동생에게 준다.

음악은 http://blog.daum.net/habia 에 가셔서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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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어 말 소리

나는 우리 말을 주로 하면서 40여년을 미국에서 살았다. 은퇴 전 10여년은 컴퓨터 일을 하였고 복잡한 전문영어를 하면서 일한 적이 없다. 주말에는 주로 우리의 청년운동을 하였고 우리 말만 즐겨하였다. 요지음 우리나라의 젊은이와 어린이도 영어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서 부족한 영어지만 영어로 나의 말 소리를 조금 녹음하였다. 어린 아이일 수록 억양이 다양하고 음악적이다. 나도 조금 그런 편이다. 

나는 미국 오기전 2년 동안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였다. 회화를 터키 장교와 처음으로 2시간 정도 하였는데 표현에 별 지장이 없었다. 그는 나의 문장체적 영어 실력에 놀랐다. 헤어지면서 회화하기는 처음이라고 하자 나만큼 그도 놀랐다. 지금 나는 문장체적 영어를 잘 못하게 되었다. 다시 영어 책들을 읽어 볼까한다. 영어 말을 어릴 때 부터 익힐 필요는 없다고 본다. 명랑하게 그리고 독립성 있게 기르면 억양이 좋게 어느 말이든지 잘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말 소리는 http://blog.daum.net/habia 에 가셔서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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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의미

나는 신학을 조금하여 보았다. 예수라는 과목을 시카고의 유명한 장로교신학교에서 들어볼 때를 기억한다. 죽을 것을 미리 결정한 내용은 그가 부활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고 신도들은 몰랐다는 것이 비교가 되었다. 빈 돌무덤을 드려 보는 이들을 생각하여 보았다. 내가 예수의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예수를 믿는 사람들과 어쩌면 꼭 같은가?

그 몸이 살아져 없어져야 만 그를 믿는 것이다.  즉 그의 마적인 힘을 믿는 것이다. 그는 헛 수고를 한 셈이다.

나는 부활의 의미는 마적인 힘과 다르게  아픈 영혼이 혼으로 발전되어 다른 형태와 삶으로의 전환으로 본다. 이것은 사람이 죽든 말든 관계가 없는 것이다.

힘든 삶의 영혼이 고난을 이긴 후에 느끼는 기분과 같은 것이다. 지금 우리 북조국은 집요했든 제국주의자들의 압력과 억제된 생활로부터 소생하는 부활을 느끼고 있다.

아래 사진은 손자 손녀가 뒤 뜰에서  숨겨진 달걀들을 찾아 들고 있는 모습과 손자의 색칠한 계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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