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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 주 보건기관 방문기록

길고 피곤한 하루... 요즘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도대체 밥하고 빨래하는 시간 내기도 힘들게 느껴진다. 그래도... 잊지 않기 위해 적는다.

 

일 때문에 Mass  주 내의 각급 보건기관들을 방문 중이다. 주 보건부를 비롯하여 엄청 잘사는 동네인 Newton과 지지리 못사는 동네 Fall River 보건과, 농촌 지역인 서부 지역을 관장하는 Northampton의 지역 사무소, 보스턴 근교의 빈곤 지역인 Dorchester 에 위치한 partnership 사무소, Holyoke의 또다른 partnership 사무소, 대표적인 민간 기구인 AHA(America Heart Association)의 Framingham 사무소 등을 둘러보았다. 

 

몇 가지 느낀 점...

 

1. 지역간 격차...

 

진짜 심하다. 책 속의 숫자들은 실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동네 주민의 60% 이상이 전문직, 행정직에 종사하는 동네가 있는가하면 평균 소득이 14000불 정도밖에 안 되는 동네가 있다. 굳이 통계 수치를 보여주지 않아도 동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누구나 직감할 수 있다. 이렇게 온 몸으로 보여주는게 도대체 쉽지 않을텐데 말이다. 그러다보니, 지역 주민들이 체감하는 필요, 활용가능한 자원의 수준이란게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곳은 연방정부에서 세운 보건목표를 이미 훌쩍 뛰어넘은데다 동네 주변에 즐비한 최고명문대학들의 인적 자원 덕분에 뭐 걱정할 일이 없고... 어떤 동네는 목표 달성이 꿈같은 이야기인데다 사업 기획을 지원해줄 변변한 전문가 하나 찾기도 힘들다. 

 

2. "public-private partnership"

 

책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내용이 바로 정부의 "purchasing" 기능이었다. 정부가 서비스를 구매한다니???  실제로 Mass 주의 지역 보건기관에서는 아무런 직접적인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럼 도대체 보건사업을 어떻게 한단 소린가? 미국 사회, 거대 정부에 대한 극도의 혐오와 공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정부가 일을 벌이고 직접 무언가를 하고, 조직을 키우는 것을 매우매우 싫어한다. 정부 보건당국이 하는 일이란 직접 사업을 계획해서 현장 행정력을 이용해 무슨 일을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예산을 마련하여 "공정한 경쟁"을 통해 각종 민간 단체나 기구들로 하여금 실행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금연 사업을 한다고 하면, 우리처럼 일선 보건소에서 현수막 내다걸고 보건교육 하고 찌라시 뿌리는게 아니라, 지역 금연운동 협의회 같은 곳과 계약을 체결하여 이들이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도록 하는 형태다. 물론 그 정도는 주마다 조금씩 다르단다.

여기에는 장점과 단점이 존재한다.

합리적인(ㅜ.ㅜ) 시장 메카니즘을 통해 일정 정도 효율성을 높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 정부 주도가 아닌 지역 주민들의 풀뿌리 운동과 자발적인 참여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은, 장점으로 보인다. 사실 보건소에서 거시적인 기획이나 조정 없이 분만 체조교실이네, 금연교실이네 직접 열어 놓고 눈에 보이는 사업들만 하는 것도 바람직한 형태는 분명 아니지 않은가..

허나, 민간에 모든 것을 맡기다보니, 도대체 조정이란게 쉽지 않다. 민간 조직은 그들 나름의 조직원리가 있는 것... 이들이 즉자적인 요구가 반드시 정부의 계획과 맞는 것도 아니며 전체적인 차원에서는 꼭 필요한 부분인데도 지역사회에서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도 있다. 더구나 지역사회에 인적, 물적 자원이 크게 부족한 경우 도대체  시장메커니즘이 작동할만한 풀이 형성되기 어렵다. 이 경우는 명백히 국가의 책임 방기라 할 수 있다. 

이 전통.. 참으로 오래된 것이다. 일찍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애팔래치아 산맥 서쪽으로, 곧이어 미시시피 강 서쪽으로 강제 이주 시킬 때에... 부족들과 협상을 하면서 이들의 이주를 정부가 나서서 도와주기로 했단다. 말하자면 이주 보상금 주고 이사 편의를 제공해주겠다는 건데... 당시 정부는 이를 "민간"에 계약해서 맡겼단다. 그 이후의 이야기들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다. 경비를 줄이려고 사람을 짐짝처럼 배에 실었다가 배가 가라앉아서 몰살당하고, 끼니를 제대로 마련해주지 않아서 수많은 인디언들이 굶어죽고.... 그나마 강제 이주 지역에 도달하기도 전에 수많은 인디언들이 "시장의 효율성" 때문에 객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이들의 믿음은 종교적 신념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3. 자조(self-reliance) 정신과 공동체 정신

 

상부상조, 두레 정신은 자랑스런 한민족 (ㅡ.ㅡ) 고유의 것인줄 알았건만, 여기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대한 헌신은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강하다. 지지리 못사는 동네인 Fall River가 그나마 보건사업을 해나갈 수 있는 것은 50대 중반의 한 자원활동가가 일주일에 3일을 무보수로 보건과에 나와 사업 계획도 세우고, 자료집도 만들고, 시장과 의회, 기업 등 지역 사회 여기저기 사람들을 만나고 협조를 구축해왔기 때문에 가능하단다. 시에서는 이 사람한테 월급 줄 여력이 없다. 잘 사는 동네건, 못 사는 동네건... 한결같이 지역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풀뿌리 활동가들의 작은 노력과 참여들을 소중하게 여긴다. AHA 같은 단체 (우리 나라로 치면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가족보건복지협회 같은 민간 운동기구)에서 발간하는 자료의 질은 진짜 장난 아니게 높고, 또 이들이 모금하고 교부하는 연구비 예산은 천문학적인 액수에 달하지만 (하버드가 이곳으로부터 지원받는 연구비만 해도 수백만 달러에 이른다)... 이들은 모두 자발적인 기부와 전문가들의 자원봉사활동에 근거하고 있단다. 놀랍지 않은가?

국가가 방치해놨으니 어떻게든 알아서 살아보려는 몸부림인거 같아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러한 자조 이데올로기가 공공 기능의 약화를 가져온 것인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지역사회라는게 단일한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그 안에 자리한 차별과 불평등, 다른 사회에 대한 배제도 중요한 문제일 것이고... 어쨌든 이웃간의 정리를 상당히 강조하면서도 막상 "지역사회"에 대한 개념없이 살아가는 우리사회와는 다른 모습....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적 지지와 사회적 자본에 대한 연구들이 나타날 수 있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4. 국가의 왼손과 오른손

 

소개를 받고 찾아간 지역 보건 기관, 민간 활동기구들이 다들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곳들이라 그렇기는 하겠지만... 당국자들이나 활동가들이 한결갈이 하는 이야기는...

"자본주의, 시장 메커니즘 자체의 장점은 인정하지만 공중보건이라는 것이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공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미국사회에서 이것이 안 되고 있다..." 특히 부시 집권 이후 대대적인 감세 정책은 공중보건 예산의 획기적인 감소를 가져왔다. 어떤 곳은 지역 사무소가 2곳에서 한 곳으로 줄고 예산이 순식간에 1/3으로 줄어들기도 했단다. 지금 오로지 중요한 것은 테러 대응.....

부르디외가 편저한 [세계의 비참]에는 극단적인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공공 부문에 종사하는 국가의 왼손들이 겪는 갈등과 비애가 잘 그려져 있다. 그나마 그것은 우리가 좀 낫다고 생각하는 (과연 그럴까?) 유럽-프랑스의 사례였다. 여기 미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보여주는 전문성과 열정의 근원은 새삼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 여러 교수들, 보건 분야 고위 공무원들, 혹은 지역의 보건담당 공무원들을 만나면서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포괄적인 접근의 필요성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 거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이야기였고, 감히(ㅡ.ㅡ) 일선의 공무원들이 입에 담을 만한 쉬운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만난 공중보건 담당 공무원들과 민간 기구 활동가들의 인식 수준은 상당하였고, 그에 덧붙여  현재의 한계들과 실천 가능한 영역에 대한 현실 인식 또한 상당하였다. 어쨌든 이런 것이 바로 역사의 무게, 소위 말하는 저력이라고 하는 것인가?

 

미국이라는 나라... 알아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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