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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부유한 국가, 불행한 국민

관련된 일 때문에 옛날 파일 뒤지다가....

벌써 이 책이 출판된 것도 작년의 일이다. 몇 권이 팔렸는지 모르겠다.

인세 받아서 부자 되려는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ㅜ.ㅜ

 

누구는 이 서문을 보고 "흥분체"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평상심으로 아주 차분하게 썼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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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현대사 내내 소위 “미국식 자본주의”는 우리의 “항구적 목표”로 굳게 자리를 잡아왔다. 경제 성장이라는 화두는 거의 종교적 계시의 반열에 올랐고, 모든 사회악을 치유해줄 만병통치약으로서 한 몸에 기대를 받고 있다. 이제 우리는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열어젖히기 위해 신발끈을 조이고 다시금 비장한 각오로 출발선에 서 있다. 여기서 잠깐만 생각해보자. 국민 소득 2만불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국민 소득이 두 배로 오르면, 우리 모두는 지금보다 두 배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과연 두 배 더 건강해질 수 있을까?

 독자들이 짐작하듯, 이 책에 제시된 각종 사례와 연구결과들은 이러한 질문에 부정적인 답을 하고 있다. 저자들은 극단적인 경제 개발 논리와 소비문화, 불평등이 팽배해 있는 미국사회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보건 전문가답게 그것이 미국인들의 건강과 안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소비사회의 진면목이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서라면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무심코 켜 놓은 텔레비전에서는 그야말로 의미심장한 광고들이 쏟아져 나온다. 우리는 이동통신 서비스 업체의 식별 번호에서 “번호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1%”를 위한 승용차를 구입함으로써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 심지어 아파트 외벽에 그려진 건설회사의 이름과 로고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기”까지 하니, 포스트 모더니스트들로서는 경악할 일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저자들은 각종 부가 기능이 있는 299달러짜리 전화기를 보고 소비 자본주의를 비판했지만, 이미 64화음 120만 화소의 컬러 휴대폰에 익숙해진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 정도 사례는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다면, 불평등한 소비자본주의 사회는 우리의 건강과 안녕을 잠식한다. 어떤 소녀는 과연 자신에게 미래가 있기나 한걸까 의심하며 목숨을 내던지고, 또 다른 어떤 소녀는 집안 어른들의 따뜻한 사랑 덕분에 자신도 모르는 새에 수천억대 재산가의 명단에 올라 있다. 불평등이 단지 질투와 분노만을 자아낼 뿐이라면, 그래서 담배를 조금 더 많이 피우고  술을 조금 더 많이 마시고, 그저 혈압을 조금 더 올라가게 할 뿐이라면, 그리고 한편으로 우리를 자극하여 좀더 열심히 뛰도록 만들어준다면 우리는 그러한 불평등을 기꺼이 감내할 용의가 있다. 그런데 불평등으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개인적, 사회적 비용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혹독한 것 같다. 승자 독식의 시장에서 벌어지는 쳇바퀴 위의 무한경쟁과 시간 압박은 단지 아쉬움이나 불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 혹은 지역 공동체의 해체, 사회적 자본의 침식, 그리고 평균 수명의 감소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선진국들 중 가장 불평등이 심한 미국 사회의 빈곤층들이 오히려 유럽의 상위 계층보다도 사회정책에 더욱 냉담한 현상, 목소리를 가장 크게 내야 할 집단이 정치적으로 가장 소외되는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을 “노동자”가 아닌 “시민”으로 생각하고, OECD 국가들 중 가장 낮은 수준의 공공 지출에도 불구하고 “복지병”을 걱정하며,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사회주의 의료”라 비난하고,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조차 무상의료나 무상교육은 터무니없는 목표라고 접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우편향을 미국 사회라는 거울을 통해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우리 사회가 어쩌면 이리도 충실하게 미국식 터보 자본주의를 추종해왔을까 감탄하거나 비통해하기보다, 과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야 하는지, 또 다른 세계는 과연 불가능한 것인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빈곤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는 사람들, 병원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와 가족들, 끼니를 굶는 아이들, 위험한 작업 환경 때문에 건강을 잃은 노동자들... 우리 자신, 혹은 이웃들의 건강과 생명을 희생시켜서 얻는 경제성장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우리의 몸은 예민하다. 최첨단 생명공학 기술이나 신나는 음악이 울려 퍼지는 피트니스 센터, 높아지는 국민소득과 종합주가지수만으로는 우리의 건강과 안녕을 보장할 수 없다. 이 책이 과연 다가올 우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한편의 묵시록이 될 것이냐, 혹은 새로운 길을 찾게끔 만드는 보물 지도가 될 것이냐는 전적으로 우리 손에 달려 있다. 미국 바깥의 독자들이 제발 타산지석으로 삼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저자들의 염원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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