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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그리고 브라질

일주일 동안 겨우 도시 한 두 군데, 몇 사람을 만나본 거 가지고 그 사회를 "알게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신문이나 책에서 접하던 것과는 다른 생생한 "직관"을 갖게 된 것만은 사실.

 



0.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

 

뭐 어느 사회라고 슬렁슬렁 놀면서 먹고 살겠냐만,

상파울루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지만

특히 멕시코 시티에서 목격한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desperate 라는 단어 그 자체였다.

온 길을 채운 노점상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차들의 행렬, 지하철에서 고속버스에 끊이지 않고 출현하는 상인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따르따스 한 접시 먹고 바쁘게 일터로 학교로 오가는 초라한 행색의 거대한 물결...

보고 있노라면.... 그냥 입이 쩍.......

"필사적"이라는 단어 말고는 생각할 수가....

그렇게 해도 살기가 힘들어서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미국으로.... ㅡ.ㅡ

 

 

0. 주변부 자본주의, 물신성과 세련되지 못함

 

상 파울루에서 기가 막혔던 것 중 하나가,

이전 독재 시절에 건설되었다는 시내 중심을 가로지르는 복개천....

독재 정권들은 참 비슷한 일도 많이 하는구나 싶었더랬다. 한국은 최근에 복원 공사를 했다고 이야기하니까 얼마나 부러워들 하던지... (시간이 없어 청계천 복원의 자세한 내막은 이야기를 못했지...ㅎㅎ)

 

그 뿐이랴... 길거리를 걷는데, 술집에 앉아 있는데 쭉죽빵빵 처자들이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뭘 나눠 주는게 여기 저기 눈에 띈다. 도대체 뭔가 했더니만 아파트 모델 하우스 광고 전단.... 나중에 보니까 모델 하우스들도 어찌나 많은지... 요즘에 럭셔리 아파트가 붐이라 여기저기 난리란다..... 왜 한국에서는 동네 빵집 하나 열어도 젊은 처자들이 와서 전단 나눠주고 춤추고 난리 법썩을 떨잖나... (요즘도?) 그거랑 너무너무 비슷한 분위기....

 

멕시코 시티에서 테이크 아웃 커피점에 갔는데 (아침에 커피를 깜빡하고 하루 종일 하품을 해댔더니 M이 너 약먹을 시간 지났구나..하더군 ㅎㅎ) 뚜껑이 냉커피용이야. 빨대 꽂아 마시게 되어 있는.... 도대체 그 뜨거운 커피를 어찌 마시라구.... 도회적 세련됨을 추구하는 듯 하면서 한구석씩 꼭 어설픈....  

 

멕시코 시티 도심 공원에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상들이 구석 구석 놓여 있는데, 볼 때마다 아주 뜽금 없다고 생각됨... 어떤 동네는 길 이름이 모두 유명한 문화예술인인데, 괴테나 세익스피어까지는 참아주겠지만.. 도대체 헤로도투스.. 이런 이름은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안다고.... ㅡ.ㅡ

 

그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나름 가꿔보려고 하는데 충분히 세련되지 못한 급하다 급해 자본주의 문화.... 근데 이게 우리한테 완전 낯설고 새로운게 아니라는 점이 재밌는 거지. 조금 앞서거니 하면서 우리가 그랬으니까...

 

 

0. 거대한 불평등... ㅜ.ㅜ

 

사실 불평등 하면 또 라틴 아메리카의 명성이 자자하니....

국민 1인당 GDP (PPP)와 불평등 지표인 지니계수를 살펴보면,  

브라질 $  8400 (80위)  60.7 (3위)

멕시코 $ 10100 (75위)  53.1 (13위)

남한    $ 20400 (43위)  31.6 (80위)

 

멕시코에서 경험한 빈부 격차에 대해서는 앞서의 포스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브라질 또 장난 아니다. 워낙 상파울루 시는 전세계에서 헬기 교통량이 두 번째로 많은 도시... 도심의 교통체증이 심한데다, 워낙 빈부격차가 엄청나다 보니 초부유층들이 안전한 출퇴근 수단으로 헬기를 선호하기 때문....  가장 빠르게 성장한 산업은 사설 경호업이라고.... ㅡ.ㅡ

아니나 다를까... 아침 나절이면 따다다다.. 하면서 헬기 소리가 요란한데, 평생 살면서 헬기가 동시에 두 대 이상 하늘에 떠 있는 거는 처음 본 지라 정말 신기했다...  차타고 시내 구경시켜주던 날, 아주 훌륭해 보이는 저택이 있길래 Heleno 에게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헬기타고 출퇴근하는 부자들 집이냐 했더니 말도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그런 사람들 집은 아예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있다고.. 이 양반들도 그런 집은 어찌 생겼는지 본 적 없단다. ㅡ.ㅡ

극단의 경제적 어려움과 극단적인 불평등....  사회적 수단으로서의 "혁명" 혹은 사적인 수단으로서의 "폭력"이 횡행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M은 멕시코의 빈부 격차에 대해서 내가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걱정거리를 늘어놓았는데, 뭐냐하면... 미국의 경우 워낙 분리가 심해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마주칠 일이 아예 없고 (사는 동네가 완전 다르니까) 가난한 사람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면서 굳이 나쁜 인상이고 뭐고를 가질 여지가 별로 없는 반면, 멕시코 사회는 아직도 빠르게 변화를 거듭하는 중이라 상대적으로 부유층과 빈곤층이 생활에서 마주칠 기회가 많고 (이를테면 차도에 뛰어들어 공연하고 팁을 챙기거나 골목에서 죽치고 있으면서 주차를 봐주는) 그러다보니 빈곤층에 대한 부유층이나 중산층의 반감과 편견이 아주아주 엄청나다는 것이다. 마치 인간 말종이나 짐승 취급하면서 노골적인 반감을 표시한다는 거지....

미국처럼 아예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간다면 편견조차 존재하지 않을텐데, 그렇다고 그것도 말도 안 되고, 여기 사회처럼 빈곤이 마치 사회적 죄악인 양 경멸하는 태도도 황당하고.....

그들의 속물적 태도가 비난받아야 함은 물론이지만, 불평등이 사회적 연대의 정신을 헤친다는 것은 이들 개개인의 인간성을 넘어선 엄연한 사회적 실재.... ㅡ.ㅡ

 

한국 사회는 미국과 멕시코, 브라질.... 그 사이 과연 어디쯤 있을까....

 

 

0. 역동 - 문화적 정치적 자산...

 

두 사회 모두 다인종 사회, 풍부한 문화적 자산, 정치적으로 혁명과 반 혁명의 역사를 거쳐왔다. 

멕시코만 해도 독립전쟁부터 시작해서 어찌나 혁명도 많고 정치세력들도 복잡한지...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시티에는 쿠바의 독립 영웅인 Jose Marti 석상을 비롯하여 멕시코 영웅 Juarez 관련 조형물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한창 혁명 운동이 들끓어올랐던 20세기 초반의 벽화 운동은 도시의 웬만한 대형 건축물들을 하나씩 장식하고 있다. 마침 벌어졌던 부정선거 논란에 사람들이 보여준 직접 행동도 놀랍고, Oaxaca 에서 벌어진 교사들의 파업 투쟁을 비롯하여 10년을 이어오고 있는 치아파스의 Zapatista 투쟁도 경이롭고....  사람들이 정말 화끈해... ㅡ.ㅡ

 

브라질에 가기 전에 나름 치안 문제 때문에 걱정을 하니까 Eduardo 가 "너가 상파울루에서 돌아다녀도 아무도 너를 외국인으로 안 보니까 걱정 마" 해서 도대체 그게 뭔 소린가 했는데... 정말 가보니까 인종이 총천연색이더라. 일본인을 비롯하여 아시안 커뮤니티도 엄청 크고... Heleno나 Thais 도 나보구 "너가 입 벌리고 말만 안 하면 아무도 너가 외국인이라 생각도 안 할 뿐더러, 일단 여기 온 이상 너는 브라질인이야" 하면서 똑같이 말하는게 아주 인상적 ㅎㅎㅎ 

물론, 여기도 흑인 혈통에 대한 차별과 북동부 (주로 인디오들이 살았던 빈곤한 지역. 룰라도 그 지방 출신) 출신에 대한 차별이 사회적 문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단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민족 한국 사회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겪는 설움만 하랴....

 

그리고 PT에 대한 지지나 일상에서의 정치 활동은 매우 인상적!

그래도 그 양반들은 "우리는 주류 의사 사회에서 볼 때 아주 이상한 사람들이니까... 우리를 보구 일반화시키면 안 돼... " 하면서 낄낄 웃었지만 말야....

50대 아저씨들이 커뮤니티 센터에서 전시중인 쿠바 혁명 사진전에 나를 데려가서 자기네들끼리 숙연해하는 모습 보니... 마음이 짠 하기도 하고.....

 

0. 타인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연대를.... 

 

지구촌에는 "서구 선진국" 만 존재하는 건 아닌데, 

세상을 너무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음.

물론 내가 이들을 몰랐던 만큼, 이들도 한국 사회의 역동성에 대해 잘 모르긴 했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그토록 닮고 또 그토록 독특한 사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봐도 신기하잖아...

거대한 규모로 관철되는,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힘(social force)의 실체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서로가, 서로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인간해방을 위한 "연대"에 함께.....

 

Va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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