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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생일

원래 엄마 생신이 음력 설 다음 날이었는데,

 

작년에 돌연, 올해(2007년)부터는 "양력 생일"을 치르자고 제안하셨다.  

 

이유는 매우 합리적인데, 사연은 좀 길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양력설만 공식 휴일로 인정하고, 음력 설은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 지방에 살고 계신 친척들이 함께 모여 차례를 지내는게 은근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승용차가 있나, 그렇다고 고속열차가 있었나...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가족 회의를 통해 양력 설을 지내는 걸로 바꾸었는데,

민족 고유의 명절 운운하면서 다시 음력설이 제 위치를 찾게 되면서 다시 가족 내에 혼란이 일었다. 하지만, 남들 다 이동하는 음력설은  교통편 구하기도 힘들고, 더구나 제수 물가가 급상승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우리 집은 그냥 양력설을 고수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양력설이 너무 짧아 이동이 불편하다는 다른 친척들의 이견이 간간이 접수되었으나, 차례 준비는 엄마 혼자 거의 도맡아 하는 상황이었기에 누가 감히(!) 뭐라 하기도 어려웠고...

여기에 결정타를 날려준 것은 오빠의 결혼이었다.

 

언니네 집은 제사/차례를 지내지 않지만 어쨌든 음력설을 지낸다는 점을 고려하여,

오빠네 식구가 양력설은 우리집에서, 음력설은 언니네 친정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차저차한 사정으로 이제는 다른 친척들은 잘 모이지 않고 대개 우리 부모님과 오빠네 가족, 나만 모여서 차례를 지내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그래서 양력설 지내는 것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그 사정의 대부분은 누가 누구한테 섭섭하게 했다는 둥, 의례는 이렇게저렇게 해야 마땅하다는 류의 가부장제를 둘러싼 가족 갈등인데 우리 식구는 하나같이 나몰라라 분위기.  밥 먹고 한가하니까 쓸데없이 저딴 소리한다는게 중론. 우리 식구 모두 냉혈한??)

 

뜻하지 아니한 문제가 한 가지...

바로 엄마의 생신이었다.

엄마 생신이 설 바로 다음날이다보니 오빠네 가족이 친정집에 충분히 눌러앉지 못한 채 서둘러 우리집에 와야 했던 것. 제도와 현실의 괴리라고나 할까...

한 10년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지켜보던 울 오마니께서 마침내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올해의 생일 변경 사건이다.

 

며느리의 입장을 배려한 매우 존경할만한 결정이나,

나로서는 항상 기억해오던 '설 다음날'의 공식이 깨지고 나서 날짜를 깜빡 잊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할 소지가 큰, 매우 위험한 결정인지라...

 

오늘 아침에 문득(!!!) 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으면 클날뻔했다. ㅡ.ㅡ;;

미국에서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맞는 엄마 생일인디 하마터면....

 

엄마한테 전화해보니까 아들딸 오면 주려고 손수(ㅜ.ㅜ) 음식 장만까지 다 하셨더만...

사실 바빠서 이번 주말에는 서울에 안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이거 생각 안 났으면 정말정말 큰일날 뻔.... 식은땀이 삐질...

 

 

* 사족...

 

대한민국의 대부분 아들들은 결혼하고 나면 부쩍 효자가 되는데 (그것도 리모콘 효자). 이벤트 준비를 위해 김씨에게 전화해보니 다짜고짜 언니랑 통화해서 의논하랜다.  

어이가 없어서

"뭐? 너네 엄마지, *** 씨 엄마냐?" 라고 한다는게, 그만

"뭐? 너네 오빠지, *** 씨 오빠냐?" 해버리고 말았다.

 

수화기 저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뭔 소리야? 바보냐?"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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