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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동지의 사진빨!

노건연 상근활동가인 스즈키 동지에 대한 기사가 며칠 전 한겨레에 실렸다.

피부가 백옥처럼 곱게 나왔다!!!

그가 동안인 것은 사실이지만,  사진만 보면 심한 피부미인.... 이/럴/수/가.....

 

지난 금요일에 지역 간담회 때문에 들렀을 때 사무실에서 김밥 먹으며 글쓰던 낯선 분이 기자였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미리 알았으면 스즈키 동지한테 좀더 깍듯한 모습을 연출했을텐데.. 아쉬워라 ㅎㅎ

지역에서 인기 만점이라는 거는 왜 기사에 안 실렸나 모르겠다.

본인이 민망해서 이야기안했나보다...

 

함께 브라질 출장 가서 화학노조 방문했을 때 바닥에 교육자료 펼쳐놓고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말한마디 안 통하는 브라질 노동자들이 완전 감동받은 표정이었음 ㅡ.ㅡ 사실 당시 스즈키 한국어 - 나  한국어/영어 - Heleno 선생님 영어/포르투갈어 - 브라질 노동자 포르투갈어... 에 이르는 기나긴 언어장벽이 존재했지만, 말로 표현되지 않는 그 아우라만으로 상황 파악이 되었달까?

 

그의 걱정대로 한국사회는 후퇴하고 노동자 건강문제는 여전히 심각한데,

과연 올해 활동은 어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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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링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01848.html

 

    한국 시민단체서 상근하는 일본인 스즈키 아키라

 

    14년째 한·일 노동운동 ‘다리 역할’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영세공장 밀집지역에 가면 작은 키와 온화한 얼굴의 일본인을 만날 수 있다.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 등을 위해 일하고 있는 ‘노동건강연대’에서 8년째 상근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스즈키 아키라(49)다.

1993년 ‘원진레이온 사태’를 다룬 국제 세미나로 처음 한국과 인연을 맺은 스즈키는 1997년부터 한국에 눌러앉아 줄곧 노동현장의 건강·보건문제 개선에 매달리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노동자 건강권에서 ‘한국과 일본을 잇는 다리’라고 부른다. 스즈키 주변의 활동가들은 그를 “겉보기와 달리 무서운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문종찬 서울동부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순하게 보이지만 원칙에는 칼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29일 노동건강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스즈키는 먼저 한·일 양국의 노동운동 교류에 대해 차분하게 얘기했다. “일본 최대 노동단체인 전국노동조합연합회(렌고)의 오사카지부가 내게 연락을 해와, 한국의 3개 공무원노조의 통합에 대해 물었습니다. 양쪽의 만남을 주선해 지난해 9·10월 두 차례 만났고, 그때 통역을 맡았죠. 렌고는 세 단체가 통합을 이뤄낸 과정을 배웠고, 한국은 일본 노조 활동의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앞서 2월에는 양국의 금속노조가 스즈키를 통해 만남을 갖기도 했다.

그는 국제적 사안에서 한·일 노동자의 연대가 특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중점을 두고 활동하는 석면 문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부터 부산에서 진행중인 석면 피해자 소송을 보면, 피고 가운데 일본 석면제품 제조업체 ‘니치아스’란 곳이 나옵니다. 니치아스는 1970년대 일본에서 특히 유독한 청석면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관련 공장을 한국으로 옮겼죠. 문제가 된 공장들이 지금은 인도네시아에 있습니다.”

스즈키는 자신의 삶터인 성수동 주변 노동자에 대한 걱정도 깊었다. “근골격계 질환이나 유기용제 노출 등의 문제로 우리 단체를 찾는 영세업체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성수노동자건강센터를 운영하면서 무료 건강검진과 상담 등을 하고 있죠.”

한국과 맺은 노동운동의 인연은 결혼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원진레이온 세미나를 하면서 부인 최경숙(51)씨를 만났다. 최씨도 보건의료시설 노동자 단체인 병원노동자희망터의 대표를 맡으며 남편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13년의 세월 동안 그가 바라본 한국은 많이 변했다. “한국은 여러 면에서 일본에 뒤처지고 있다는 게 예전의 인식이었죠. 그런데 지난 정부 때 국가인권위원회, 과거사정리위원회 등 일본에서 볼 수 없는 기구들이 생기면서 제도적 차원에서 일본을 앞질렀습니다. 요즘 들어서 이런 진전이 멈춘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일본 나가노현에 살고 있는 그의 부모는 노동운동을 좇아 외국으로 떠난 아들이 섭섭하지 않을까. “일 때문에 일본은 두 달에 한 번꼴로 가지만 부모님은 가족들과 함께 1년에 한두 번밖에 못 찾죠. 손주를 못 보는 게 늘 섭섭하시대요.”

 

글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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