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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Again

hongsili님의 [코스모스] 에 관련된 글.

 

책으로 보았던 코스모스가 다큐멘터리와 셋트라는 것을 안 것은 2005년 미국에 머무를 때였다. 칼 세이건 할배의 얼굴도 그 때서야 처음 보았더랬다. 사실 우리 또래 중에 코스모스 다큐를 직접 본 사람이 얼마나 되나 모르겠다.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국내에 비디오가 출시된 것도 아니니 초중고등학교 시절에 이 다큐를 보면서 과학의 꿈을 키웠을 가능성은 매우 낮았을 것... ㅡ.ㅡ

 

하지만, 처음으로 코스모스를 보고 난 후 감격하여, 그 후 DVD 를 사서 여러 번 반복해서 보았다. 엄청 촌스러운 화면에, 역시나 촌스러운 칼 세이건 할배의 차림새에도 불구하고, 그 익숙한 배경음악만 시작되어도 가슴이 떨리곤 했다.

리메이크 작품이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우려 반, 기대 반.... 첫 프롤로그 편을 보았을 때에도 너무 화려해진 화면, 그리고 내가 별로 신뢰하지 않는 NGC 작품이라는 것에 좀 허거덕하기는 했다 (심지어 제작사가 Fox 흑...) 그리고 닐 타이슨 목소리가.... 음..... 좀 기름지다 ㅜ.ㅜ

하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역시나 또 빠져들고 말았다.

당연히, 그래픽이 멋지거나 스케일이 웅장해서는 결코 아니다.

 

실패와 역경, 때로는 위험에 맞선 과학자들의 이야기들은 감동 그 자체였고,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회의적 사고와 권위에의 의심, 스스로의 판단, 오류 가능성에 대한 인정, 이성이 아닌 믿음에 굴복하지 말라는 메시지는 다시 들어도 계속 사무쳤다. 

 

여러 과학자들 이야기 중에서, 특히나 패러데이 이야기는 정말 코끝이 찡했다.

가난한 집안 출신의 제본사 패러데이가 공개 강연에서 스타과학자의 강연을 듣고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자신이 제본한 그의 강연집을 선물하며 이루어진 인연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가난한 계급 출신의 그가 결코 넘지 못했던 수학의 장벽을, 부유한 가문의 천재수학자 젊은 멕스웰이 수식으로 만들어서 그 논문집을 그에게 선물했던 이야기로 끝난 에피소드 말이다.  패러데이는 40대 이후로 우울증이라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과학에의 정진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가난한 계급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왕실과학원에 공개과학 강연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오늘날에도 이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칼 세이건도 여기에 강연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지구의 나이를 측정하기 위해 납함량 분석에 평생을 바쳐온 패터슨이 뜻하지 않게 근세기 납농도 증가를 밝혀냄으로써 자동차/석유 산업의 엄청난 공격을 받았고, 하지만 과학적 증거 앞에 굴복하지 않은 그의 노력 덕분에 오늘날 무연휘발유가 탄생하여 수없는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게 된 이야기 또한 심금(?)을 울렸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헨리에트 리비트 같은 여성 과학자들에 대한 소개도 매우매우 좋았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륙이동설의 증거를 확인했던 한 여성과학자가 지도교수의 권위에 눌려 자신의 논문을 부정했던 이야기는 참 현실적이면서도 교훈을 주는 에피소드였다.  

 

전반적으로, 이보다 더 교훈적이고 이보다 더 계몽적일 수 없으면서도,

그러면서도 재미와 감동이 있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원본에서 등장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이야기가 재등장한다.

세계의 지식이 보관된 인류의 보물이었지만, 그 보물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한 줌의 엘리트들뿐이었고, 그래서 적들이 쳐들어와서 도서관을 불태웠을 때, 함께 도와 도서관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는 이야기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마지막에, 오늘날 과학은 너무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에, 하지만 엄청난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소수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이야기가 바로 코스모스를 만든 칼세이건과 그 후예들의 뜻을 잘 드러낸다. 칼 세이건 할배는 평생 이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했다. 과학의 잠재력과 위험성, 그 두 가지를 잘 조화시킬 수 있는 것은 계몽된 대중, 생각하는 대중이 있을 때 뿐이라는 점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이다. ㅡ.ㅡ  오죽하면 30년 만에 이걸 다시 만들 생각을 했을까...

오리지널 버전에서는 지구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 냉전구도와 지구온난화가 핵심 의제였다면, 이번 편에서는 (대놓고는 아니지만) 또라이 기독교의 논리를 반박하는 데 상당히 고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세상이 변한 것이다. 그것도 나쁜 방향으로... ㅜ.ㅜ 칼 세이건 할배 돌아가신 이래, 시계바퀴가 거꾸로 돌아서 미국에서는 진화론이 한낱 가설이라고 공격받는 일이 드문 일도 아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굳이 길가메시의 서에 나온 대홍수 이야기가 천년 후 구약성서의 노아 이야기로 발전했다는 언급을 한 것이나, 그랜드캐년에 서서 이것이 생겨난 게 6천년 전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꼭 해야만 할 필요가 생겨난 것이다. 오호 통재라... ㅡ.ㅡ

그러다보니 기독교 근본주의 집단에서 코스모스에 대한 공격을 엄청나게 하고 있다고...  

제발, 그들이 걱정하는 대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부디 이 작품을 보고 과학적/회의주의적 사고와 이성, 호기심을 키워나가 신에게 거역하는 세대로 자라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어쨌든, 보고 있자니 다시 칼 세이건 할배 생각이 났다. 

그의 명료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전해주던 과학과 이성의 이야기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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