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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걱정병....

지난 주 수욜이 엄마 생신이었다.

설 다음 날이라 오빠랑 새언니가 친정에서 설날을 쇠고(우리 집은 양력설) 집으로 왔단다. 이날 아침에는 거의 몇 달 만에 모처럼 집에 전화를 해서 착한 딸의 면모를 과시했다.

엄마는 맛난 것도 드시고, 함께 찜질방도 가서 재밌게 지냈다고 밝은 목소리를 들려주셨는데....

 

오늘 보내신 이메일을 보니... 뭐 그닥 좋지만은 아니셨던 거 같다.

찜질방에 갔는데(울 부모님, 오빠네 부부 + 7살/5살 조카들, 친척같은 이웃사촌 부부 + 초딩 두 명)..... 술을 좋아하시는 울 아버지. 찜질방 안에서 술 못마시게 한다고 단단히 삐치셨단다. 다시는 그런 데(!) 가지 않겠다고 선언까지 하셨다니 원....일년에 한 번 엄마 생신이라고 간 건데, 서비스다 생각하고 좀 참으시지.....

거기다 아이들의 친엄마들이 모두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울 엄마가 아이들 네 명을 쫓아다니며 건사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어서 너무 피곤하셨단다... 뭐 갓난 아기들도 아니고, 아빠들도 있는데 왜 울 엄마가?

 

상황이 어땠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지만,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울 엄마의 걱정병.....

몇 년 전 아빠가 편찮으셔서 입원을 준비하고 있을 때, 수속 중에 선배를 만났는데 아빠가 아닌 엄마를 환자로 착각한 일이 있었다. 너무너무 걱정을 많이 하셔서 얼굴이 까맣게 변하고 입술이 타들어가고..... 반면, 나는 수술 당일 밤 병실 빈 침대에서 지나치게 푹~ 자다가 아침 회진 도는 전공의 선배한테 야단을 맞았다. 아버지가 수술하셨는데 참으로 천하태평이라고... ㅜ.ㅜ

 

상황이 이렇다보니, 내가 전공의 시절 갑자기 입원을 하게 되었을 때 내 몸 상태보다 이걸 어떻게하면 엄마에게 덜 충격적으로 전달할까 고민이 앞섰다. 작년에 귀 수술할 때도 마찬가지. 그 때는 아예 말을 하지 말고 그냥 혼자 몰래 입원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넘 처절하지 않은가..... 입원이니, 수술이니 입을 여는 순간부터 엄마가 걱정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울게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울 엄마의 근심걱정은 유명하여 내 친구들도 나의 수술 사실을 전해듣고 울 엄마 걱정을 했더랬다. 한 친구는 수술 당일 새벽에 월차를 내고 찾아왔는데, 나를 위로하러 온게 아니라 울 엄마랑 수술방 밖에서 같이 기다리려고 온 것이었다. (허나, 이 양반, 내 침대에 누워서 한 잠 늘어지게 자고, 결국 울 엄마 혼자 수술방 밖에서 전전긍긍했단다)

 

엄마는 나보구 어쩜 저렇게 성정이 고래심줄이냐고,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천하태평일 수가 있냐고 놀라시곤 한다. 내 생각에 가족들의 걱정 총량은 일정한 거 같다. 누군가 지나치게 근심걱정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책임감을 벗고 상대적으로 둔감해지는......

 

아이고... 불쌍한 울 엄마... 엄마가 그렇게 걱정근심하고 챙기고 거두지 않았으면 우리 식구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딸이 집 떠나 있는 2년 동안 얼마나 많은 밤들을 근심걱정으로 지새우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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